하나님 께 소망 을 두라 |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Feat.이찬미) 최근 답변 2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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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설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크리스천투데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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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8/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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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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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4/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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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1~11)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하심을 믿고 더욱 기도합시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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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idok.com

Date Published: 4/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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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 다음블로그

나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 1.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며, 가장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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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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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김지철 목사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매일종교신문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뜻이고, 죽는다는 것은 소망이 우리 인생에 관여할 자리가 없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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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ilywrn.com

Date Published: 4/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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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43:5) 113호 – 기독타임즈

그래서 사람들은 낙심하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합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은 낙심 중에 있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그 해결책을 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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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idoktimes.co.kr

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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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네이버 블로그

성경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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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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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feat.이찬미)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feat.이찬미)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께 소망 을 두라

  • Author: iNWorship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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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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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1~11)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하심을 믿고 더욱 기도합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 김희수 목사

지금 대한민국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여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북한에서는 큰 것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생각나는 말씀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보면 비방하는 주변의 사람들로 인하여 크게 낙심하고 불안해하며 슬픔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10절)

하나님을 믿는 자가 당한 절망적인 상황에 불신자들이 조롱하며 하는 말이 “네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느냐?”, “너를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이냐?”,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많은 기독학생들이 있고 그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혹시 그 가족들 중에 누군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하실 수 없는 데’ 하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나아가 주변의 사람들이 혹은 믿지 않는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류역사 가운데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책임감과 안전의식과 제도가 제대로 세워져서 또 다른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하면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를 죄악의 파도 속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믿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3절)

우리들도 이 땅에 살면서 세월호 침몰 사건 같은, 말로 할 수 없는 침통한 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하는 비방과 조롱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국가적 절망적인 상황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낙심에 빠졌습니다. 불안과 안타까움, 걱정과 근심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했습니다. 그 때에 그에게 소망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며 날마다 새롭게 다가옴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애 3:19~22).

여호사밧왕 때 모압, 암몬, 세일 자손들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러 왔을 때 모두가 두려워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과 더불어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대하 20:12). 결국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왕과 온 백성이 즐거워하며 찬양을 드리고 유다에는 평강이 있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통회하고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절)

시편 기자도 주변의 상황으로 영혼과 마음이 상하고 낙심과 불안이 있었지만 생명의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할 때에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절)

강대국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볼 때 불안하기만 합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허둥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북한은 항상 공격적인 성향으로 위협하고 내부에서는 이념적인 갈등과 양극화의 문제 사회 안전에 대한 불신감 속에서 살고 청년 실업률, 자살, 집단이기주의, 생명경시 풍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 속에 불안하고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며,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집니다. 죽음마저도 절망이 아닌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절)

성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낙심하지 말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바라보며 기도하게 될 때에 선하게 모든 것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은혜를 주시므로 주님을 찬송하게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찬송하리로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2~3)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너무나도 많은 고난을 만나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자 같이 되었으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함께 하심으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확실히 믿기는 지금은 이해가 잘되지 않아 슬픔과 절망적인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훗날 하나님의 선하게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주님을 찬양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고 많고 환난과 슬픔이 많은 인생 보이는 곳에 소망을 두지 말고 보이지 않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세상에 빛으로 복음을 전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고 환난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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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윤삼중 목사의 외침)

나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성경본문:딤전6:17-19절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는가?에 따라 내 인생의 목적과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돈에 소망을 두는 살아가는 자는 돈버는 일에 모든 시간과 재능과 인생을 투자할 것입니다. 지식에 소망에 두는 자는 공부하는 일에, 학위받는 일에 모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입니다. 또한 권력에 소망을 두는 자들은 국회의원, 장관이나 시장이 되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모든 인생을 투자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전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데 목숨을 걸고 살 것입니다. 나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희랍 사람들의 신화 가운데 탄타로스라는 거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탄타로스는 희랍 신들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죄로 제우스신의 진노를 받아서 종신형을 받고 지옥의 호수 속에 결박당한 채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탄타로스가 결박당해 있는 바로 그의 턱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탄타로스가 목이 타서 그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은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맛있고 탐스럽게 익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 과일을 따 먹으려고 하면 역시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탄타로스의 비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흐르는 맑은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마시지를 못하고 탐스러운 과일을 바라보면서도 먹지를 못합니다.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긴장, 갈등, 초조, 불만 속에서 탄타로스는 신음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그가 받은 저주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갈망입니다. 이 갈망이 채워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식과 평강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은 돈이나 학식이나 권세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소망,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39편 7절에 보면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소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요, 이 세상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게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까?

1. 우리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며, 가장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재물에는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재물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너게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제가 서울에서 목회사역을 할 때 남대문 시장에서 큰 사업을 하는 집사님께서 제가 와서 예배를 드려달라고 해서 전도사님과 함께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제가 집사님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묻자 그 집사님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왜 지혜를 구합니까? 묻자 자신이 아침 일찍이 남대문 시장에서 와서 가게 문을 열어 놓고 보면 만원짜리(세종 대왕) 돈이 하늘을 날아 다닙니다. 그런데 그 돈을 많이 붙잡는 자들은 지혜가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제목을 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며, 평생 그 재물을 쫓아다니는 자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고, 재물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대문호가 톨스토이는 영생의 소망이 없고, 재물이 눈에 어두워진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들판에서 일하다가 들소 떼의 습격을 받아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으나 들소들의 걸음이 빨라서 더 이상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들소의 뿔에 받칠 순간에 우물을 발견하여 그 우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우물 중간에 나무 줄기가 있어서 거기에 갈려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위를 쳐다보니 아직도 들소들은 숨가쁜 콧김을 내쉬며, 우물속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숨을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물은 없었지만 그 밑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살아날 소망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불안함과 공포감이 밀물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쥐고 있는 나무를 살펴보니 나무 끝에 벌들이 꿀을 모아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쪽 나무 끝에를 보니 작은 쥐 2마리가 번갈아 가며, 나무를 싹싹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 있으면 얼마 안되어 나무가 부러져서 밑에 떨어져 독사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실존을 깨닫지 못하고 꿀을 먹기에 여념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이것이 오늘날 우리 인생의 삶인 것입니다.

재물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모든 재물은 소중하지만 내것이 아닙니다. 재물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이 성도의 구별된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많은 재물을 맡겨주실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거두워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욥기에 보면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을 잘 경외한 욥에게 큰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큰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자가 욥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大風)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때에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가 주관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에서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신앙과 의로운 인격은 고난 가운데서 더욱 빛났습니다. 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을 향한 소망, 믿음의 극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욥처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치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가 주시기도 하고 취하시기도 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오직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살려고 하면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합니까? 17절에 보면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우리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절망이 소망으로, 곤핍한 자가 부한 자로, 병든 자가 건강한 자로,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그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결국 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될 때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 집니까? 첫째, 낙심과 불안이 사라집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낙심이 없어지고 불안이 없어지며 절망하지 않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인내하고 싸우고 견뎌서 최후에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환난 중에서도 승리하며 걱정,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유다의 제3대왕 아사가 구스의 백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전쟁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군이 쳐들어와 아사왕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아사왕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구스 사람 백만 대군이 도망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간구 할 때 도와주시고 은총 베풀어 주십니다.(대하14:11절) 로마의 저명한 신학자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면 그 어떤 위험 중에서도 우리는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때에 안전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감사, 찬송을 하게 됩니다.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행복할리 만무합니다. 찬송 많이 부르는 사람이 신앙 좋은 사람이며, 감사 많이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다고 할지라도 감사 찬송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43: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영광 돌리는 것이 최고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눈을 하나님께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동하는 세상을 바라보면 나의 마음이 같이 요동됩니다. 늘 사소한 곳에 영향 받고 상처받는 내 자신을 바라보면 내 자신 스스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높이 들어 만군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3편 1절에 보면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극한 절망에 처했을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자꾸 절망적인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과 구제하며, 나눠 주기를 좋아하는 인생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소망을 하나님께 둔 자는 이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갑니까? 18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는 세상의 것에 욕심내지 않고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힘쓰는 자가 됩니다. 남을 사랑하며, 섬기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바보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애요, 바울이 걸어간 길이요,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창고를 확장하고 그 곳에 곡식을 가득 채운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에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인생의 어리석음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지 않는 내일을 자랑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가 오늘밤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내일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진정한 부자는 누구입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을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그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하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 선행은 사람의 앞길을 열리게 합니다. 선을 행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착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선을 행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 무엇입니까? a)”선한 일을 행하고“(18절) -착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선을 행하라 뜻이다. b)”선한 사업에 부하고”(18절)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라 뜻이다. c)”나눠주기를 좋아하며“(18절) -자신의 귀한 것을 즐겨 나누어주라.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11:13-14)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들은 찾아갈 본향이 있기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나그네는 잠시 머무는 곳에서 백년천년 살 것처럼 거창한 건물을 짓지도 않고, 짐이 될 것들로 가득 채우지도 않습니다. 모세가 그러했듯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5-26) 우리는 모세처럼 상주심을 바라보기에 잠시 죄악의 낙보다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고,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겨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땅에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인생을 투자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속하신 하나님의 미쁘심에 즉 절대로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더 이상 정함이 없는 재물에 나의 소망을 두지 마세요. 세상의 지식에 소망을 두지 마세요. 나중에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구원주이신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본문: 시편 43편: 1- 5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희랍 사람들의 신화 가운데 탄타로스라는 거인의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탄타로스는 희랍 신들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죄로 제우스신의 진노를 받아서 종신형을 받고 지옥의 호수 속에 결박당한 채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탄타로스가 결박당해 있는 바로 그의 턱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탄타로스가 목이 타서 그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은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맛있고 탐스럽게 익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그 과일을 따 먹으려고 하면 역시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탄 타로스의 비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흐르는 맑은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마시지를 못하고 탐스러운 과일을 바라보면서도 먹지를 못합니다.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긴장, 갈등, 초조, 불만 속에서 탄타로스는 신음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그가 받은 저주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갈망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은 돈이나 학식이나 권세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39편 7절에 보면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소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본 시편 43편은 전42편에 이어서 우리 영혼이 불안하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함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덧입고 승리하는 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우리 영혼이 왜 불안하고 낙망하고 있습니까?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며 두 사람의 종에게 각각 한 채씩 집을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돈 아끼지 말고, 최고급 자재로 최신식 인테리어를 곁들인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종은 주인의 당부대로 주인이나 그 아들이 살집이려니 생각하고 최고급 주택을 건축했습니다. 면밀한 설계, 탄탄한 시공, 최고급 자재로 최신 문화주택을 완공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의 종은 심술이 나 있었습니다. ‘사는 집이면 됐지 무슨 놈의 집을 또 지으라는 건가. 아들도 좋은 집에 살고 있는데 웬 집 타령인가.’라며 저질 자재만을 골라 불량시공으로 건축을 마무리했습니다. 날림 집을 지은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 두 종을 불렀습니다. “그동안 수고들 했다. 나를 위해 몸 아끼지 않고 봉사한데 대해 보답을 하고 싶다. 너희들이 그동안 정성 들여 지은 집을 선물로 주고 싶다. 받아주기 바란다.” 한 사람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한 사람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가에 의해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는 가에 따라 교회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교회는 무엇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성경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같이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 세상과 재물에 소망을 둔 자

이 세상과 재물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마치 곳간을 더 크게 짓고 곡식을 그득히 채우고는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외치는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부자가 우선적으로 곳간을 더 크게 짓기에 혈안이 되었던 것처럼 좀 더 큰 아파트와 좀 더 거창한 예배당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세상의 편안에 취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평안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기만족에 안주해서 더 이상 버려진 자들은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없으면 형식적인 신앙으로 변질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남의 눈을 의식해서, 즉 가족들의 비난을 의식해서 교회에 출석하고,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교회에 등록하며, 교우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봉사에 참여하고, 사역자들의 책망을 의식해서 헌금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이 늘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자

반면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들은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 – 14)같이 찾아갈 본향이 있기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나그네는 잠시 머무는 곳에서 백년천년 살 것처럼 거창한 건물을 짓지도 않고, 짐이 될 것들로 가득 채우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모세가 그러했듯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5-26)처럼 소망, 즉 상 주심을 바라보기에 잠시 죄악의 낙보다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고,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큰 재물로 여깁니다.

우리가 어떻게 소망을 계속 붙잡고 나갈 수 있을 가는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4- 36)에서 같이 먼저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을 분명히 알아야하고, 세상을 추구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세상의 강력한 주장에 대해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하며,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끝까지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소망을 굳게 잡고 나갈 수 있는 근거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 10:23)같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미쁘심, 즉 절대로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심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처럼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은 소망을 소유하길 소망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본문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련의 스파이 로젠버그를 재판할 때의 일입니다. 검찰의 구형이 있고 피고인 로젠버그의 최후 진술이 끝났습니다. 이제 재판정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재판장인 카프만 판사에게로 쏠려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의 변호사는 ‘판사님, 공정을 기해 주십시오. 너무나 여론에 치우쳐서 내린 판결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의했습니다. 이때 카프만 판사는 ‘정의와 공정은 이미 집행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구할 것이 있다면 자비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법의 적용과 집행은 공정하고 준엄한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한 사회의 질서와 기강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모든 것을 판단하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기에 가장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동의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잣대 앞에서 부끄럼 없을 만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이 말씀은 앞 장(시편 42편) 9절 말씀과 동일합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낙심될 때 우리 성도는 할 일이 무엇입니까?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간구입니다.

본문 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빛과 진리를 만나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러야 합니다.

가브리엘 박사는 이슬람 최고학부인 알아즈하르대학교 최연소 교수이자 무슬림 이맘이었다가 기독교인 된 세계적인 변증가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까? 그는 온갖 고문후유증과 여러 정신적인 충격으로 번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기독교인 약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전해준 성경을 통해 스스로 기독교인이 된 뒤 체계적인 기독교교육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예수제자훈련학교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첫 번째 만난 남아공 백인목사와 두 번째 만난 나이지리아 목사는 이슬람 교리로 이미 철저하게 무장된 그의 신앙 멘토가 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난 한국인 선교사는 끝까지 단념하지 않고 그를 부둥켜 앉고 울면서 멘토가 돼주었습니다. 그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해주었습니다. 그는 불안하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에게 성경을 전해준 약사와 따뜻한 말로 그의 멘토가 되어준 한국 선교사 덕분에 큰 구원 앞에 나아온 것입니다. 또한 그는 성경 속에서 마호메트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음을 알게 됩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려는 무리들에게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나서서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 물러났지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라면 간음한 여인이 임신을 해 붙잡혀 온 똑같은 상황을 연출된다면 이렇게 할 거에요. 여인에게 아이를 낳고 2년 뒤 다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여인을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구덩이를 파놓고 돌로 쳐 죽일거에요. 즉,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관용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반면 무함마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증오와 폭력, 살인을 말했죠.” 가브리엘 박사는 한국교회 안에 있는 ”이슬람교를 대적해야 한다” ”무슬림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두 관점의 충돌에 대해 이슬람교와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박사가 주님의 빛을 만나서 그의 갈망이 해갈된 것을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빛과 진리를 통해 열린 인생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열린예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는 열린 예배입니다. 다소 형식이 진부하다해서 닫힌 예배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북 치고, 손 흔들고, 소리 지른다고 열린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는 모두 열린 예배입니다.’

‘사람은 그 눈으로 두 개의 세계를 봅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세계입니다. 긍정적인 눈은 미래, 비전, 세계, 이웃, 국가, 그리고 영원을 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눈은 절망, 좌절, 실패, 그리고 과거를 봅니다. 문제는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 판도가 바뀌고 앞길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또는 극락의 하나님이란 ‘내 기쁨 중의 기쁨 이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최고의 기쁨의 원천이시라는 시인의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잘 드러내 줍니다. 또한 이 표현은 기쁨의 날들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만 자신과 함께 계시면 자신은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합3: 17- 19, 고후6:10)

세상을 갈망하지 말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갈망할 때,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세상을 갈망할 때, 세상은 우리로 낙망의 늪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주십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시150:3)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제3세계의 선교를 연구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을 보내는 휼륭한 기관입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의 실망과 낙담과 좌절을 통해, 선한 일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만 바라볼 때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에 새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을 생각하면 소망이 샘솟듯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닥칠는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겁내지 맙시다. 더구나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이사야 49장 23절에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인생 가운데는 고난이 끊이질 않습니다. 어쩌다 저명한 인물들의 회고록을 잃어 보아도 고난 없이 삶을 일군 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창47:9) “나의 일생은 온전히 평안하고 행복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환난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삶에 필연적으로 닥치는 고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다만 수동적으로 운명에 맡기고 눈물과 한숨 가운데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주님 앞에 나아가 꿇어 엎드려 자신의 고난의 길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께 간구함으로써 죄와 고통의 짐을 내려놓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2:2)

2.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의 심령에 은혜와 기쁨이 넘치게 하는 가장 능동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욥도, 하박국도, 바울과 실라도 결국은 승리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고난이 크고 어려울수록 더욱 뜨겁게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시140: 1- 3)

3.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홀어머니 한 분이 부산에 계십니다. 그분은 행상을 하시고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성공하고 장성했는데도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으시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 가시게 해 드릴게요”하며 졸라대자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지어야 하느니라.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꼭 12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은 12개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하자, “없으면 그만둬라. 나는 그 집을 하늘나라에 갖고 있으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소박한 삶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또한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던 이 어머니의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빛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낙망하게 한다 할지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힘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 넘치는 소망은 우리에게 고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롬8: 24, 25)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이처럼 우리의 삶의 중심에 들어와 적극적으로 현재의 슬픔을 기쁨으로 뒤바꾸어 놓는 능력있는 것이기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소망을 붙잡을 때 우리는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소망을 놓치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시편 37: 7~9)

성도 여러분! 인간이 갖은 노력을 다해 평안을 추구한다 해도 고난은 그림자처럼 따라 붙습니다. 또 고난을 스스로 헤쳐 나가다 보면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금 절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이기는 바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만났을 때 뒷걸음치지 마시고 지혜롭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고난을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 28- 31)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는 중에 새 힘을 얻어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신 하나님, 주님을 멀리하여 소망을 잃고 생명을 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시고 소망 속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 행사를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단에 맡길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안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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