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 장 강해 | [하루 한 장] 이사야53장_그가 찔림은 우리의 상위 230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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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21 [하루 한 장]“그가 찔림은 우리의” (사53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이사야 53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메시야 예언장입니다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정도로
상하고 찢기셔서 도저히
마주할 수 없을 정도의 모습으로
모진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온 몸으로
받아내시고 감당해내신
사랑의 증거요 희생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가는 죄인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어진
사랑의 전부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숨 쉬며 살 수 있고
어제의 죄를 온전히 잊고
오늘의 문제와 싸우고
내일의 죽음을 두려워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그가 찔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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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이사야 53장 강해 · 1) 예수는 우리의 질고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 2) 그가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시고 창에 찔리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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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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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6(토) “이사야53:1-12”/ 작성: 김대인

본문: 이사야 53장 1절-12절 찬송: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업신여김을 당하시는 메시야(1~9) 앞선 52장에서 황폐한 이스라엘에 평화의 좋은 소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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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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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히브리어주석강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언(사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3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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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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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전해 주신 복음 (존 맥아더 목사의 이사야 53장 강해)

당연하다. 이사야 53장은 하나님이 전하시는 복음이다. 신약 성경의 예수님과 사도들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 역시 우연이 아니며, 전혀 놀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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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8/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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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예언, 이사야 53장을 바라보다 – 국민일보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에 대한 기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 이사야 53장을 다룬 강해서들이 최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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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kmib.co.kr

Date Published: 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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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53장 주석

이사야 53장 주석.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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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7/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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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이사야 53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미 헤에민 리쉬무아테누 우제로아 아도나이 알 미 니글라타 개역개정,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새번역,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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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3/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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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성경 이사야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이사야 53장은 종의 노래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예언 … 유진피터슨,메시지성경,이사야53장,성경통독,말씀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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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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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53 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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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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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강해

오직 예수로 인하여

이사야 52장 12 – 53장 12절

2010년 9월 26일 주일 설교

설교자 : 곽노아 목사

성도 여러분! 세상 속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해보셨습니까?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해 보셨습니까?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받아보셨습니까?

그 어떤 고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어떤 모욕과 수치와 멸시,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당해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약 700년 후에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에 죽으심을 너무나도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이렇게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는 곳은 본문 말씀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십자가의 사건이 이루어진 것을 본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생생하게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고 있다는 크리스챤들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에 대한 고난과 대속함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세상 속에 십자가의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내 종이 형통하리니

(사52:13-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52장에서 택함 받은 자들을 깨우셨습니다. 영적 잠에서 깨어난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어야 하고, 세상의 티끌 같은 존재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구속자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말씀을 열심히 듣고, 하나님을 구원을 찬양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살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구원받아 천국가기 위함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52장과 53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단계가 택함 받은 자들을 깨우시고 그들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거룩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이단계로 말씀과 찬양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삼단계가 오직 예수 안에 들어와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안에 들어와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에 대한 십자가 고난을 온전히 체험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이 52장, 53장의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육적으로 형통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오직 예수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53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52장 13-15절 까지 의 말씀은 53장에 대한 말씀을 서술적으로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지만 그것은 곧 형통함이 이루어지고, 존귀함이 이루어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들이 가로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소리치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로 막힌 담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외침이셨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형통함이 이루어지고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존귀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떠나서 찾아오는 형통함은 완전한 형통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를 떠나서 찾아오는 존귀함은 썩어질 면류관이라는 사실도 깨닫기 바랍니다.

14-15절에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15절은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놀래는 것은 똑같은데 그 내용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한 자 이십니까? 14절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놀랜 자들입니다. 예수가 메시아인줄 알고, 이제 예수가 자신들에게 큰 행운과 기쁨과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놀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고 육적으로만 형통해지려고 교회 다니는 자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런 자들은 어떤 고난이 찾아오면 놀래서 도망갈 자들입니다.

내 삶이 형통한 인생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길 원하신다면 먼저 영적으로 깨어나서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고, 세성적인 티끌 같은 것들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15절의 사람들처럼 예수를 보고 놀래고 복음을 듣고 놀래고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놀래는 자들이 곧 영적 잠에서 깨어나는 자들입니다.

영적 잠에서 깨어난 자들은 십자가 고난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자들이고 그런 자들은 예수를 통해 찾아오는 고난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고난이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한 인간이 태어나기 까지도 엄마 뱃속에서 10달이라는 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습니까?

벌써 코스모스가 피고 들녘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도 여름의 따가운 햇빛 속에서 잘 견디었기 때문에 꽃이 피고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하나 만들어지기 까지도 모두 부수어지고 깨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예수를 만난 자들이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놀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오직 예수 안에 있는 한 그 고난은 잠간 지나가는 태풍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더 십자가 예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예수가 당하신 고난

(사53:1-9)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 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메시아에 대해서 전했건만 믿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팔이 예수께 분명하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된 말씀이 분명하게 이루어졌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음에도 인간들은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52장 14절부터 53장 12절까지 “그” 라는 단어가 33번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나이와 같은 숫자입니다.

“우리” 라는 단어는 12번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제자의 숫자이며 특별하게 택하신 자의 숫자입니다.

구약의 12지파를 택하시고 예수님이 제자 12명을 택하신 것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지막 때에 14만 4천 명을 택하실 때 12지파에서 1만 2천 명씩을 택하신 것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택하심을 받을 12라는 숫자 속에서 정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53장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을 깨달을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만이 깨닫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난을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로 그는 연한 순 성장했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흠모할 만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2절)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나약한 집안에서 조용하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예수에게는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호감을 줄만한 모습도 없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예수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옷도 남루했고 체격도 못 먹고 자라서 마른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그를 메시아로 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인간들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평가하실 때 절대로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를 모르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큰 실수를 범하는 자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그는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3절)

만약에 예수가 제사장 집 자손으로나 왕족의 자제로 태어났다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멸시 천대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천대와 멸시 속에서 간고를 많이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것은 가난 속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자란 나사렛에서도 배척을 당하셨고 형제 친척에게도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자였습니다.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께 얼굴을 가리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얼굴을 돌리는 행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문둥병 환자에게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문둥병 환자 보듯이 얼굴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 받은 자들도 오직 예수 신앙이 되지 못하면 예수를 귀히 여기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직히 예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내 삶 속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되십니까? 무게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삶을 100kg 이라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이 몇 kg 정도 되십니까? 돈에 대한 것은 70kg 정도이고 예수님은 30kg 정도 되십니까? 반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70kg 이고 30kg는 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마음을 예수를 향해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한다면 최소한도 삼분의 일만 세상을 보고 삼분의 이는 오직 예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도 물 속에 삼분의 일만 잠기면 떠내려 가지 않지만 허리까지 차면 떠내려 갈 수 있듯이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지 아십니까? 세상 것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니깐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우리들도 예수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나의 하나뿐인 생명보다도 더 귀한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런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까? (4-6)

다섯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는 우리의 질고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질고는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병은 두 가지입니다. 육체의 질병이 있는가 하면 영적 질병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병을 다 치료함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질병은 크고 영적 질병은 소홀하게 다루는데 오히려 육체의 질병보다 영적 질병이 더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육체의 질병은 약을 먹고 병원에서 수술하면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영적 질병은 병원에서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의 병도 영적인 병도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병 때문에 죽으신 예수를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의 병이든 영적인 병이든 모두 예수께 치료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출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나의 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어떤 병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가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시고 창에 찔리신 것은 나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허물투성인 존재입니다. 허물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인간들은 상대방의 허물을 가지고 놀리고 비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그런 허물을 없애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조상에게도 아내를 이방 왕에게 파는 허물이 있었고, 노아에게도 홍수 후에 술에 취한 허물이 있었고, 모세에게도 사람을 살인하는 허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허물이 있었고 사도 요한에게도 자기만 살겠다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는 허물이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는 허물이 있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의 허물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다섯 이나 바꾸어가며 살아온 사마리아 여인의 허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모든 자들의 허물을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허물이 있으십니까? 그 허물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예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담대히 예수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나의 허물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모두 덮어 버렸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담대하게 십자가에 나오셔서 나의 허물이었던 죄를 고백하시면 예수의 피가 나의 허물을 씻어주시고 영적인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예수의 상함으로 우리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셨습니다. 빌라도 뜰에서 채찍에 맞으셨는데 당시에 채찍 끝에는 쇠 갈코리가 달려있어서 맞으면 살점이 뜯겨져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끌려 다니시면서 재판을 받은 예수님은 무게가 약 20kg 정도 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1.5km 정도 되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는데 지칠 대로 지친 예수님은 수 없이 쓰러지셨고 결국에는 구경 나온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는데 그 사람이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상할대로 상하셨습니다. 머리에서도 굵은 가시로 만든 가시관 때문에 피가 흐르고 계셨고 등에는 채찍으로 맞아 찢겨진 살을 통해 피가 흐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상한 몸보다 더욱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섭고 큰 죄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자들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일곱 마디 중 첫 번째로 외치는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였습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몸과 마음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상함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사함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마음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죄 때문에 당하신 예수님의 상하신 몸과 마음을 생각하시면서 위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것들로 내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 하신다면 너무나도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속에서 인간들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그 모든 징계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지 못한 평안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가고 있는 자라면 예수님이 주신 평안 속에 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세상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참 평안과 안식이 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5) 예수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4절에서 우리의 질고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최고 무서운 것은 병입니다. 병에 대한 자유함을 가지고 산다면 가장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암 병 발생율이 세계 1위 국가입니다. 그 중에서 위암, 간암, 유방암은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암병으로 죽는 자가 얼마나 되는 지 아십니까? 하루에 179명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육신의 질병도 무섭지만 더욱 무서운 것이 악한 영들에게 붙잡혀 살아가는 영적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은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고 내가 느낄 수 있지만 영적 질병은 내가 느끼지 못한다는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오늘날 육신의 질병보다 영적 질병에 걸린 자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육신이 병들면 우리는 병원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할 병들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병원에서조차 병명을 모르는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누구에게 와야 합니까? 예수께 오셔서 고침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말씀을 의지하고 예수께 나와야 합니다.

(렘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만병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피 묻은 손에 안수만 받기만 하면 그 어떤 병도 치료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질병도 즉 악한 원수 마귀에게 걸린 병도 예수님이 피묻은 손으로 안수만 받기만 한다면 악한 귀신들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가 진실로 나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당하셨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을 때 하나님의 기적을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자에게 안수하실 때 예수님이 질문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 네가 나를 믿느냐” 여러분은 예수님이 나의 영적 육적 치료자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을 찢으시고 온 몸에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사실을 믿으십니까? 진실로 믿으신다면 어떤 병 중에서라도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제가 낫겠나이다” 진실로 고백하는 자들이 될 때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뜻도 모르고 각기 제멋대로 세상 속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악을 예수께 담당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깨달았다면 예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심지어 살인을 했다 할지라도 예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오면 그 허물, 그 죄악, 그 아픔, 그 고통을 세상이 주지 못한 평강을 주시고 치료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어둠 속에서, 죄악 속에서 더 이상 고통당하지 말고, 병 속에서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예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세 번째.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 모습

(사53:7-12)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약 700년 후에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모습을 보고 기록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수치와 천대와 멸시와 핍박을 받으실 것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처럼 그 고난을 감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너무나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거짓 것들의 심문 앞에 예수님은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했습니다.

거짓된 세력 앞에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도 않으셨고, 변명도 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거짓된 세력 앞에 저항하지도 않으셨고, 악한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의 온유함을 지키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악인으로 취급하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의 육체를 부자의 묘에 안치케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무리 세상이 나를 욕을 하고 비웃고 비방한다 할지라도 같이 더러운 입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억울하고 분통이 나지만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다 들으시고 계십니다.

(잠24: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의롭게 사는 자들이 큰소리 치고 사는 날들이 오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비웃고 비방하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였던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A.D 70년에 로마에 멸망하여 2천년 동안 나라가 없이 떠도는 방랑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거짓 세력들은 망하였지만 예수님은 왕성케 되리라는 말씀이 10절-12절 까지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52장 13-15절에서 말씀하셨던 세상이 놀래는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 가지의 놀라운 일을 하셨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속건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10절)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죄 사함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두 가지 있었는데 속죄제와 속건제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모든 경우에 일반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물건이나 이웃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했을 때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제”는 죄 용서 목적을 하는 속죄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속건제”는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의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배상의 성격이 강합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림으로 온 인류를 구속을 이루셨고, 동시에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씨를 보게 될 것이며, 예수의 날은 영원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성취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완성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이 땅에 진정한 예수의 몸된 교회가 탄생하였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교회 안에서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날은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며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사람을 의롭게 하실 것입니다.(11절)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지식”은 예수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예수에 대한 지식이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아무리 학식이 있고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를 모르고서는 의로워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에 대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지식 만큼이라고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롬5:9)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왜 이 시대에 의로운 자들을 보기 힘듭니까? 예수의 피로 내가 구원받았고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날마다 예수를 깊이 더 깊이 알아가는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승리의 분깃을 얻으셨습니다.(12절)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의 머리를 부수어 뜨리고 완전하게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소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예수님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와도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어떤 자들과 함께 승리의 분깃을 나누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첫째로 존귀한 자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존귀한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존귀한 자가 곧 의로운 자입니다. 하나님은 의롭지 않는 자를 존귀한 자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존귀한 자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싶으십니까?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강한 자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지면 안됩니다.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마다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절대로 양보는 없습니다. 반드시 원수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히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위하여 이런 고난과 수모와 천대와 멸시를 당하셨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이 고통, 이 아픔, 이 슬픔을 감당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으심이 아니었습니다. 12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까지 버리시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철저한 죄인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매달리셨는데 낮 12시가 되자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예수께 완전하게 외면하신 시간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창세 이래로 하나님과 떨어져 본 적이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의 한 범죄자로 완전하게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완전한 한 인간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승리하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것입니다.

12절 끝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2장과 53장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죄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고 계십니다.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럼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나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아 가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를 모르고서는 절대로 예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소리가 작아지고 있고 십자가의 색깔이 변색되어져 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만이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자랑이며, 우리의 승리임을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19/03/16(토) “이사야53:1-12”/ 작성: 김대인

본문 : 이사야 53장 1절-12절

찬송 :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업신여김을 당하시는 메시야(1~9)

앞선 52장에서 황폐한 이스라엘에 평화의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은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식을 접한 이들을 침묵하게 된 이유는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소식이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52장 15절입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현재 이스라엘은 힘없이 바벨론에 끌려간 상황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바벨론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혹독한 고통의 상황에서 깊은 숨 조차 쉬지 못하는 억울하고 답답한 때입니다. 그래서 기다린 메시야는 자연스럽게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가장 낮고 천하던 우리를 가장 높이 들어 올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줄 힘 있는 메시야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만국의 왕들이 경배하고 무릎 꿇는 상황에서 우쭐거리며 메시야와 걷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지금의 고통을 반감시켜주는 쾌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에게 나타난 메시야는 아주 볼품없는 초라함 그 자체였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왜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었을까?” 나라는 망했고 성전은 무너져 포로 되어 끌려간 바벨론 시기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율법을 맡은 자라는 교만함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동안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고, 우상에 젖어 살았으며, 영혼은 병들고 피폐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집스럽게 불순종하던 율법을 재해석해보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부하였던 지난날의 역사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매우 가슴 아프지만 지금이 타락한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 것입니다.

능력의 메시야를 기대하며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전혀 다른 메시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4~6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회복은 쌓아온 잘못된 것의 해결이 전재가 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덮어두고 묵인하면 더 큰 상처와 아픔으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됩니다. 2차 대전 후에 프랑스는 나치에 부역했던 이들에게 철저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200만 명의 부역자를 기소하였고, 99만 명이 재판을 받았으며, 6,700명이 사형, 26,000여명이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은 사람들도 가혹한 여론의 뭇매를 받았습니다. 가혹하다는 의견 앞에서도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범죄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하며 강행하였고, 그 결과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다시 외세에 지배를 받을 지라도 민족의 반역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난날들의 죄에 대한 분명한 해결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메시야임을 이사야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처벌, 분명한 심판, 확실한 징계는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하건만 하나님은 그 모든 책임을 메시야에게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되신 주님은 그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본문 7~8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질고로 성취되는 하나님의 뜻(10~12)

이사야의 네 번째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강력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반복적이며 유한한 불완전 제사가 아니라 죄의 연속성을 끊어낼 희생의 제사, 거룩하며 영원한 단 한 번의 제사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천하고 멸시받는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은 늘 함께 계셨고, 스스로 범한 죄악에서 제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의 비겁함과 무능함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죄가 주는 잔혹하고 처참한 심판을 단 한 번의 제사로 친히 담당하시는 것입니다. 잘 하면 구원이요 못하면 심판이라는 어설픈 이분법에 갇힌 우리를 위해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강력한 사랑으로 끌어안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었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로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율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끌어안음을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람의 비난과 멸시보다 하나님의 가슴 아픔이 더 두려운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희생으로 남겨진 ‘씨’로 이 땅에 남아 있습니다. 남겨진 거룩한 씨는 죄악 된 세상을 참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아무런 보상이 없는 희생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이기에 힘들고 고된 일들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다보면 어느덧 모든 힘든 일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들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화가 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하면 칭찬과 격려가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명감으로 했던 지난 날들을 후회합니다. 시댁 어른들께 착하고 성품 좋은 며느리로 존재하고 싶지만, 어느덧 함부로 대해도 되는 가벼운 존재가 되었음을 느낄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친절하고 자상한 태도로 사람을 대했지만, 큰 맘 먹고 베푼 선행에 보상은커녕 호구가 된 것 같은 모멸감이 느껴질 때 우리는 의욕을 잃고 맙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주님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으며, 귀히여김을 받지 못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롱과 멸시를 뒤엎을 힘이 있으셨으나 오히려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세상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신 주님이셨기에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꺾으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십자가를 집니다. 저항할 수 있음에도, 큰소리 낼 수 있음에도. 거부할 수 있음에도,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 회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의 씨들이 영혼의 생명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바보라고 조롱당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복음을 살아갑니다. 많은 죄를 책임지며 치유하려 합니다. 그런 십자가의 씨들에게 1절의 여호와의 권능의 팔이 나타날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도

사랑의 주님. 여전히 까닭 없는 고난은 두렵습니다. 우리의 얇은 귀는 말씀보다는 세상의 소리에 더 민감하며, 약한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것들에 더 확실하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주님, 주님이 사람의 멸시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더 사랑하셨고,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감당하사 평화와 나음을 허락하심을 더 기뻐하셨기에 우리가 오늘도 살아있음을 믿습니다. 거룩한 씨로 살아갈 우리에게도 주님과 같은 깊은 순종 허락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사 우리 삶에서 십자가의 사랑이 흐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흠모할 아름다운 것이 없는 메시야를 보내셨을까 묵상해봅시다.

2. 죄악은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혹시 책임지지 않았던 죄악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면 회개하며 책임을 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실행해보기로 결단합시다.

3. 십자가의 의미를 이어갈 거룩한 씨로써 오늘 곤욕을 당하고 채찍에 맞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주어야 할 영혼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작성: 김대인)

[이사야 53장 히브리어주석강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언(사5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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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3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 못에 박혀 고통받아야 함을 예언합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고통이요 나의 죄악을 위한 고통입니다. 주님이 이런 고통을 나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언(사 53:1-12)

이사야 53장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파란색은 히브리어 상형문자입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1절은 헤에민 리쉐무아테누 우제로아 아도나이 알 미 니겔라타입니다.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믿었다고 하는 단어가 아만 동사이다. 히필 사역 능동형 완료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자는 계속해서 믿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아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2절은 바야알 카요네크 레파나이브 베카쇼레쉬 메에레츠 치야 로 토아르 로 베로 하다르 베니르에후 베로 마르에 베네흐메데후입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2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아이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 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언적 과거’라 부른다.

마른땅…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흠모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버렸다. 유대인들도 예수를 버렸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3절은 니브제 바하달 이쉼 이쉬 마케오보트 비두아 홀리 우케마세테르 파님 미메누 니브제 베로 하샤베누후입니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3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 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이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바자라는 동사인데 닢알 수동태 분사 수동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런 멸시 천대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달리게 함으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 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4절은 아켄 홀라예누 후 나사 우마케오베누 세발람 바아나흐누 하샤베누후 나구아 무케 엘로힘 우메우네입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3:4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 우리는 생각하기를 예수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맞으며는 나카 동사로서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때리는 수준이 아니라 죽이는 수준으로 맞은 것이다. 호팔 사역 수동형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예수는 선택받은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로 정해졌다.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5절은 베후 메홀랄 미페솨에누 메두카 메아보노테누 무사르 쉘로메누 알라이브 우바하부라토 니르파 라누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5

본절은 ‘종’이 고난 받은 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 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 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 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나음을 입었도다 – 라파 동사로서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이 고통당함으로 영육으로 고침을 받았다. 수동태는 고침 받기 싫어도 고침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받은 백성은 예수만 믿으면 원죄가 완전히 사라져 고침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6절은 쿨라누 카촌 타이누 이쉬 레다르코 파니누 바아도나이 히페기아 보 에트 아온 쿨라누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담당시키셨도다 – 파가라는 동사로서 만나다, 다다르다는 뜻으로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담당하셨다는 의미다. 히필 사역 능동형 완료를 사용하여 이 세상의 죄를 담당할 분은 예수 한 분 외에는 없다는 의미다. 그분만이 모든 죄를 담당하고 골고다에 오를 수가 있다.

7절은 니가스 베후 나아네 베로 이프타흐 피브 카세 라테바흐 유발 우케라헬 리페네 고즈제이하 네엘라마 베로 이프타흐 피브입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53:7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 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끌려가는 – 야발이라는 동사로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말한다. 도살자는 양을 끌고 도살장으로 갔다. 호팔 사역 수동형 미완료를 쓰고 있다. 유월절 어린양은 이미 선택되어 있다. 이 양을 유월절에 잡아서 문설주에 피를 뿌리게 된다. 사역 수동은 바로 예수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지정되어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드려짐을 의미한다.

8절은 메오체르 우미미쉐파트 루카흐 베에트 도로 미 예쇼헤하 키 니제자르 메이레츠 하임 미페샤 암미 네가 라모입니다.

사 53: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53:8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 ‘곤욕'(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다.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 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 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그가 끌려갔으나 – 라카흐 동사로서 푸알 강조 수동형 완료를 사용했다. 예수는 억지로 유대인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거부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선택되어 예수는 빌라도의 법정인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로마 병사에 의해서 많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모든 수모는 믿는 자들을 위한 수치이며 수모이다.

9절은 바이텐 에트 레솨임 키브로 베에트 아쉬르 베모타이브 알 로 하마스 아사 베로 미르마 베피브입니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53:9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 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신약에서 이 말씀이 성취된다. 아리마대 요셉의 묘에 장사됨으로 부자의 묘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10절은 바아도나이 하페츠 다케오 헤헬리 임 타심 아솸 나페쑈 이르에 제라 야아리크 야밈 베헤페츠 아도나이 베야도 이첼라흐입니다.

사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53:10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죗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아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 롬 6:9). 아라크 동사로서 히필 사역 능동형 미완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워 부활시켜 주실 것을 말한다. 미완료는 부활하여 영원히 장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예수를 믿으면 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원히 장수하게 된다.

11절은 메아말 나페쑈 이르에 이세바 베다에토 야체디크 차디크 아베디 라라빔 바아오노탐입니다.

사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53:11

자기 자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 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 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발 동사인데 칼 능동형 미완료이다. 예수가 죄악의 짊을 계속해서 짊어짐을 말한다. 우리의 죄악을 주님이 계속해서 짊어지셨다.

12절은 라켄 아할레크 로 바라빔 베에트 아추밈 예할레크 솰랄 타하트 아쎄르 헤에라 라마베트 나페쑈 베에트 포쉐임 니므나 베후 헤테 라빔 나사 베라포쉐임 야페기아입니다.

사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53:12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로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 할라크 동사인데 피엘 강조 능동형 미완료 공성 1인칭 단수이다.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여 몫을 나누어 주겠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몫을 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구원도 하나님께서 주실 때 가능하다. 피엘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몫을 나누어 주신다는 의미다. 우리는 천국을 몫으로 받았다. 이 몫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다. 미완료는 계속해서 몫이 주어짐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백성은 구원이 취소되지 않고 천국을 계속해서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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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53장 주석

이사야 53장 주석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

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

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53:2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

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 ,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

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

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

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

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엊넉 과거’라 부른다.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

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3:3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

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

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

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

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

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

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53:4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

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53:5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

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

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

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

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

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

화를 뜻한다.

=====53:6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

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

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53:7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

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

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

하고 있다.

=====53:8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

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

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

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

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53:9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53:10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

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

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

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

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

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

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53:11

자기 자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

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

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

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

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

리기도 한다.

=====53:12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히브리어 이사야 53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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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헤에민 리쉬무아테누 우제로아 아도나이 알 미 니글라타

개역개정,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새번역,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또는 ‘우리가 전한 것을’

우리말성경,1 우리가 들은 이 소식을 누가 곧이 믿겠느냐? 여호와께서 그분의 팔을 누구에게 드러내셨느냐?

가톨릭성경,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영어NIV,1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영어NASB,1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영어MSG,1 Who believes what we’ve heard and seen? Who would have thought GOD’s saving power would look like this?

영어NRSV,1 Who has believed what we have heard?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υριε τις επιστευσεν τη ακοη ημων και ο βραχιων κυριου τινι απεκαλυφθη

라틴어Vulgate,1 quis credidit auditui nostro et brachium Domini cui revelatum est

히브리어구약BHS,1 מִי הֶאֱמִין לִשְׁמֻעָתֵנוּ וּזְרֹועַ יְהוָה עַל־מִי נִגְלָתָה׃

성 경: [사53: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와야알 카요네크 레파나우 웨캇쇼레쉬 메에레츠 치야 로 토알 로 웨로 하달 웨니르에후 웨로 마르에 웨네흐메데후

개역개정,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새번역,2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우리말성경,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새싹과 같이, 메마른 땅을 뚫고 나온 싹과 같이 자라났다. 그는 수려한 풍채도 없고 화려한 위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볼품이 없었다.

가톨릭성경,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영어NIV,2 He grew up before him like a tender shoot, and like a root out of dry ground. He had no beauty or majesty to attract us to him, nothing in his appearance that we should desire him.

영어NASB,2 For He grew up before Him like a tender shoot, And like a root out of parched ground; He has no stately form or majesty That we should look upon Him, Nor appearance that we should be attracted to Him.

영어MSG,2 The servant grew up before God–a scrawny seedling, a scrubby plant in a parched field.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o cause us to take a second look.

영어NRSV,2 For he grew up before him like a young plant, and like a root out of dry ground; he had no form or majesty that we should look at him, nothing in his appearance that we should desire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2 ανηγγειλαμεν εναντιον αυτου ως παιδιον ως ριζα εν γη διψωση ουκ εστιν ειδος αυτω ουδε δοξα και ειδομεν αυτον και ουκ ειχεν ειδος ουδε καλλος

라틴어Vulgate,2 et ascendet sicut virgultum coram eo et sicut radix de terra sitienti non est species ei neque decor et vidimus eum et non erat aspectus et desideravimus eum

히브리어구약BHS,2 וַיַּעַל כַּיֹּונֵק לְפָנָיו וְכַשֹּׁרֶשׁ מֵאֶרֶץ צִיָּה לֹא־תֹאַר לֹו וְלֹא הָדָר וְנִרְאֵהוּ וְלֹא־מַרְאֶה וְנֶחְמְדֵהוּ׃

성 경: [사53: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 자라나기를(*,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언적 과거’라 부른다.

󰃨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니베제 와하달 이쉼 이쉬 마케오보트 웨두아 호리 우케마스테르 파님 밈멘누 니베제 웨로 하솨브누후

개역개정,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새번역,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말성경,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통을 겪었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를 당했으니 우리마저도 그를 무시해 버렸다.

가톨릭성경,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영어NIV,3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a man of sorrows, and familiar with suffering. Like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esteemed him not.

영어NASB,3 He was despised and forsaken of men, A man of sorrows, and acquainted with grief; And like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 He was despised, and we did not esteem Him.

영어MSG,3 He was looked down on and passed over, a man who suffered, who knew pain firsthand. One look at him and people turned away. We looked down on him, thought he was scum.

영어NRSV,3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others; a man of suffering and acquainted with infirmity; and as one from whom others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held him of no account.

헬라어구약Septuagint,3 αλλα το ειδος αυτου ατιμον εκλειπον παρα παντας ανθρωπους ανθρωπος εν πληγη ων και ειδως φερειν μαλακιαν οτι απεστραπται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ητιμασθη και ουκ ελογισθη

라틴어Vulgate,3 despectum et novissimum virorum virum dolorum et scientem infirmitatem et quasi absconditus vultus eius et despectus unde nec reputavimus eum

히브리어구약BHS,3 נִבְזֶה וַחֲדַל אִישִׁים אִישׁ מַכְאֹבֹות וִידוּעַ חֹלִי וּכְמַסְתֵּר פָּנִים מִמֶּנּוּ נִבְזֶה וְלֹא חֲשַׁבְנֻהוּ׃

성 경: [사53:3]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멸시와 외면을 당하는 메시야]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아켄 홀라예누 후 나사 우마케오베누 세발람 와아나흐누 하솨브누후 나구아 무케 엘로힘 우메운네

개역개정,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새번역,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말성경,4 그러나 사실 그가 짊어진 병은 우리의 병이었고 그가 짊어진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맞을 짓을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때리시고 고난을 주신다고 생각했다.

가톨릭성경,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영어NIV,4 Surely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

영어NASB,4 Surely our griefs He Himself bore, And our sorrows He carried; Yet we ourselves esteemed Him stricken, Smitten of God, and afflicted.

영어MSG,4 But the fact is, it was our pains he carried– our disfigurements, all the things wrong with us. We thought he brought it on himself, that God was punishing him for his own failures.

영어NRSV,4 Surely he has borne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diseases; yet we accounted him stricken, struck down by God, and afflicted.

헬라어구약Septuagint,4 ουτος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φερει και περι ημων οδυναται και ημεις ελογισαμεθα αυτον ειναι εν πονω και εν πληγη και εν κακωσει

라틴어Vulgate,4 vere languores nostros ipse tulit et dolores nostros ipse portavit et nos putavimus eum quasi leprosum et percussum a Deo et humiliatum

히브리어구약BHS,4 אָכֵן חֳלָיֵנוּ הוּא נָשָׂא וּמַכְאֹבֵינוּ סְבָלָם וַאֲנַחְנוּ חֲשַׁבְנֻהוּ נָגוּעַ מֻכֵּה אֱלֹהִים וּמְעֻנֶּה׃

성 경: [사53:4]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웨후 메홀랄 미프솨에누 메두카 메아오노테누 무살 쉘로메누 알라우 우바하부라토 니르파 라누

개역개정,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새번역,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말성경,5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허물이 그를 찔렀고 우리의 악함이 그를 짓뭉갰다. 그가 책망을 받아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아서 우리의 병이 나은 것이다.

가톨릭성경,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영어NIV,5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영어NASB,5 But He was pierced through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chastening for our well-being fell upon Him, And by His scourging we are healed.

영어MSG,5 But it was our sins that did that to him, that ripped and tore and crushed him–our sins! He took the punishment, and that made us whole. Through his bruises we get healed.

영어NRSV,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punishment that made us whole, and by his bruises we are healed.

헬라어구약Septuagint,5 αυτος δε ετραυματισθη δια τας ανομιας ημων και μεμαλακισται δια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παιδεια ειρηνης ημων επ’ αυτον τω μωλωπι αυτου ημεις ιαθημεν

라틴어Vulgate,5 ipse autem vulneratus est propter iniquitates nostras adtritus est propter scelera nostra disciplina pacis nostrae super eum et livore eius sanati sumus

히브리어구약BHS,5 וְהוּא מְחֹלָל מִפְּשָׁעֵנוּ מְדֻכָּא מֵעֲוֹנֹתֵינוּ מוּסַר שְׁלֹומֵנוּ עָלָיו וּבַחֲבֻרָתֹו נִרְפָּא־לָנוּ׃

성 경: [사53:5]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쿨라누 카촌 타이누 이쉬 레다르코 파니누 아도나이 히프기아 보 엩 아욘 쿨라누

개역개정,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새번역,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우리말성경,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제각각 자기 길로 흩어져 가 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시고 그를 공격하셨다.

가톨릭성경,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영어NIV,6 We all,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영어NASB,6 All of us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But the LORD has caused the iniquity of us all To fall on Him.

영어MSG,6 We’re all like sheep who’ve wandered off and gotten lost. We’ve all done our own thing, gone our own way. And GOD has piled all our sins, everything we’ve done wrong, on him, on him.

영어NRSV,6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all turned to our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헬라어구약Septuagint,6 παντες ως προβατα επλανηθημεν ανθρωπος τη οδω αυτου επλανηθη και κυριος παρεδωκεν αυτον ταις αμαρτιαις ημων

라틴어Vulgate,6 omnes nos quasi oves erravimus unusquisque in viam suam declinavit et Dominus posuit in eo iniquitatem omnium nostrum

히브리어구약BHS,6 כֻּלָּנוּ כַּצֹּאן תָּעִינוּ אִישׁ לְדַרְכֹּו פָּנִינוּ וַיהוָה הִפְגִּיעַ בֹּו אֵת עֲוֹן כֻּלָּנוּ׃

성 경: [사53:6]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닉가스 웨후 나아네 웨로 이프타흐 피우 캇세 랕테바흐 유발 우케라헬 리페네 고즈제하 네엘라마 웨로 이프타흐 피우

개역개정,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새번역,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7 그는 학대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을 깎이는 잠잠한 어미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가톨릭성경,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영어NIV,7 He was oppressed and afflicted, yet he did not open his mouth; he was led like a lamb to the slaughter, and as a sheep before her shearers is silent, so he did not open his mouth.

영어NASB,7 He was oppressed and He was afflicted, Yet He did not open His mouth; Like a lamb that is led to slaughter, And like a sheep that is silent before its shearers, So He did not open His mouth.

영어MSG,7 He was beaten, he was tortured, but he didn’t say a word. Like a lamb taken to be slaughtered and like a sheep being sheared, he took it all in silence.

영어NRSV,7 He was oppressed, and he was afflicted, yet he did not open his mouth; like a lamb that is led to the slaughter, and like a sheep that before its shearers is silent, so he did not open his mouth.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αυτος δια το κεκακωσθαι ουκ ανοιγει το στομα ως προβατον επι σφαγην ηχθη και ως αμνος εναντιον του κειροντος αυτον αφωνος ουτως ουκ ανοιγει το στομ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7 oblatus est quia ipse voluit et non aperuit os suum sicut ovis ad occisionem ducetur et quasi agnus coram tondente obmutescet et non aperiet os suum

히브리어구약BHS,7 נִגַּשׂ וְהוּא נַעֲנֶה וְלֹא יִפְתַּח־פִּיו כַּשֶּׂה לַטֶּבַח יוּבָל וּכְרָחֵל לִפְנֵי גֹזְזֶיהָ נֶאֱלָמָה וְלֹא יִפְתַּח פִּיו׃

성 경: [사53:7]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메오체르 우밈미쉬파트 뤀카흐 웨엩 도로 미 예쇼헤아흐 키 니그자르 메에레츠 하이욤 밒페솨 암미 네가 라모

개역개정,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새번역,8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우리말성경,8 그는 강제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처형을 받았지만 땅에서 그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가 당하는 것은 내 백성의 죄악 때문이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한 사람이 우리 세대 가운데 누가 있느냐?

가톨릭성경,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영어NIV,8 By oppression and judgment he was taken away. And who can speak of his descendants? For he was cut off from the land of the living;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he was stricken.

영어NASB,8 By oppression and judgment He was taken away; And as for His generation, who considered That He was cut off out of the land of the living,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to whom the stroke was due?

영어MSG,8 Justice miscarried, and he was led off– and did anyone really know what was happening? He died without a thought for his own welfare, beaten bloody for the sins of my people.

영어NRSV,8 By a perversion of justice he was taken away. Who could have imagined his future? For he was cut off from the land of the living, stricken for the transgression of my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8 εν τη ταπεινωσει η κρισις αυτου ηρθη την γενεαν αυτου τις διηγησεται οτι αιρεται απο της γης η ζωη αυτου απο των ανομιων του λαου μου ηχθη εις θανατον

라틴어Vulgate,8 de angustia et de iudicio sublatus est generationem eius quis enarrabit quia abscisus est de terra viventium propter scelus populi mei percussit eum

히브리어구약BHS,8 מֵעֹצֶר וּמִמִּשְׁפָּט לֻקָּח וְאֶת־דֹּורֹו מִי יְשֹׂוחֵחַ כִּי נִגְזַר מֵאֶרֶץ חַיִּים מִפֶּשַׁע עַמִּי נֶגַע לָמֹו׃

성 경: [사53:8]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와이텐 엩 레솨임 키브로 웨엩 아쉬르 베모타우 알 로 하마스 아사 웨로 미르마 베피우

개역개정,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새번역,9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 ㉡사해 사본에는 ‘부자와 함께 들어 갈 묘실을 마련하였다’

우리말성경,9 폭행을 한 적도 없고 거짓말을 입에 담은 적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악인과 함께 두었고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묻어버렸다.

가톨릭성경,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영어NIV,9 He was assigned a grave with the wicked, and with the rich in his death, though he had done no violence, nor was any deceit in his mouth.

영어NASB,9 His grave was assigned with wicked men, Yet He was with a rich man in His death, Because He had done no violence, Nor was there any deceit in His mouth.

영어MSG,9 They buried him with the wicked, threw him in a grave with a rich man, Even though he’d never hurt a soul or said one word that wasn’t true.

영어NRSV,9 They made his grave with the wicked and his tomb with the rich, although he had done no violence, and there was no deceit in his mouth.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δωσω τους πονηρους αντι της ταφης αυτου και τους πλουσιους αντι του θανατου αυτου οτι ανομιαν ουκ εποιησεν ουδε ευρεθη δολος εν τω στοματ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9 et dabit impios pro sepultura et divitem pro morte sua eo quod iniquitatem non fecerit neque dolus fuerit in ore eius

히브리어구약BHS,9 וַיִּתֵּן אֶת־רְשָׁעִים קִבְרֹו וְאֶת־עָשִׁיר בְּמֹתָיו עַל לֹא־חָמָס עָשָׂה וְלֹא מִרְמָה בְּפִיו׃

성 경: [사53:9]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시야의 대속]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아도나이 하페츠 닼케오 헤헬리 임 타심 아솸 나프쇼 이르에 제라 야아리크 야밈 웨헤페츠 아도나이 베야도 이츨라흐

개역개정,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새번역,10 주님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님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우리말성경,10 그러나 그가 병들어 으스러진 것은 여호와께서 원하신 일이었다. 그가 그의 생명을 속건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자손을 보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원하신 일이 그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톨릭성경,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영어NIV,10 Yet it was the LORD’S will to crush him and cause him to suffer, and though the LORD makes his life a guilt offering, he will see his offspring and prolong his days, and the will of the LORD will prosper in his hand.

영어NASB,10 But the LORD was pleased To crush Him, putting Him to grief; If He would render Himself as a guilt offering, He will see His offspring, He will prolong His days, And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ill prosper in His hand.

영어MSG,10 Still, it’s what GOD had in mind all along, to crush him with pain. The plan was that he give himself as an offering for sin so that he’d see life come from it–life, life, and more life. And GOD’s plan will deeply prosper through him.

영어NRSV,10 Yet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o crush him with pain. When you make his life an offering for sin, he shall see his offspring, and shall prolong his days; through him the will of the LORD shall prosper.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κυριος βουλεται καθαρισαι αυτον της πληγης εαν δωτε περι αμαρτιας η ψυχη υμων οψεται σπερμα μακροβιον και βουλεται κυριος αφελειν

라틴어Vulgate,10 et Dominus voluit conterere eum in infirmitate si posuerit pro peccato animam suam videbit semen longevum et voluntas Domini in manu eius dirigetur

히브리어구약BHS,10 וַיהוָה חָפֵץ דַּכְּאֹו הֶחֱלִי אִם־תָּשִׂים אָשָׁם נַפְשֹׁו יִרְאֶה זֶרַע יַאֲרִיךְ יָמִים וְחֵפֶץ יְהוָה בְּיָדֹו יִצְלָח׃

성 경: [사53:10]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메아말 나프쇼 이르에 이스바 베다토 야츠디크 차디크 아브디 라랍빔 와아노탐 후 이스볼

개역개정,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새번역,11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을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그는 고난의 결과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우리말성경,11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서 그가 알고 있었던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이뤄 냈음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내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질 것이다.

가톨릭성경,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영어NIV,11 After the suffering of his soul, he will see the light of life and be satisfied; by his knowledge my righteous servant will justify many, and he will bear their iniquities.

영어NASB,11 As a result of the anguish of His soul, He will see it and be satisfied; By His knowledge the Righteous One, My Servant, will justify the many, As He will bear their iniquities.

영어MSG,11 Out of that terrible travail of soul, he’ll see that it’s worth it and be glad he did it. Through what he experienced, my righteous one, my servant, will make many “righteous ones,” as he himself carries the burden of their sins.

영어NRSV,11 Out of his anguish he shall see light; he shall find satisfaction through his knowledge. The righteous one, my servant, shall make many righteous, and he shall bear their iniquitie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απο του πονου της ψυχης αυτου δειξαι αυτω φως και πλασαι τη συνεσει δικαιωσαι δικαιον ευ δουλευοντα πολλοις και τας αμαρτιας αυτων αυτος ανοισει

라틴어Vulgate,11 pro eo quod laboravit anima eius videbit et saturabitur in scientia sua iustificabit ipse iustus servus meus multos et iniquitates eorum ipse portabit

히브리어구약BHS,11 מֵעֲמַל נַפְשֹׁו יִרְאֶה יִשְׂבָּע בְּדַעְתֹּו יַצְדִּיק צַדִּיק עַבְדִּי לָרַבִּים וַעֲוֹנֹתָם הוּא יִסְבֹּל׃

성 경: [사53:11]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 자기 지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켄 아할레크 로 바라빔 웨엩 아추밈 예할레크 솨랄 타하트 아쉘 헤에라 람마웨트 나프쇼 웨엩 포쉐임 니므나 웨후 헤트 랍빔 나사 웨라포쉐임 야프기아

개역개정,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새번역,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우리말성경,12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을 몫으로 나눠 주고 강한 사람들을 전리품으로 나눠 주겠다. 그가 자기 목숨을 죽음으로 내던지고 죄 지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으며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죄 지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도록 중재를 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영어NIV,12 Therefore I will give him a portion among the great, and he will divide the spoils with the strong, because he poured out his life unto death, and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For he bore the sin of many, and made intercession for the transgressors.

영어NASB,12 Therefore, I will allot Him a portion with the great, And He will divide the booty with the strong; Because He poured out Himself to death, And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Yet He Himself bore the sin of many, And interceded for the transgressors.

영어MSG,12 Therefore I’ll reward him extravagantly– the best of everything, the highest honors– Because he looked death in the face and didn’t flinch, because he embraced the company of the lowest. He took on his own shoulders the sin of the many, he took up the cause of all the black sheep.

영어NRSV,12 Therefore I will allot him a portion with the great, and he shall divide the spoil with the strong; because he poured out himself to death, and was numbered with the transgressors; yet he bore the sin of many, and made intercession for the transgressor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δια τουτο αυτος κληρονομησει πολλους και των ισχυρων μεριει σκυλα ανθ’ ων παρεδοθη εις θανατον η ψυχη αυτου και εν τοις ανομοις ελογισθη και αυτος αμαρτιας πολλων ανηνεγκεν και δια τας αμαρτιας αυτων παρεδοθη

라틴어Vulgate,12 ideo dispertiam ei plurimos et fortium dividet spolia pro eo quod tradidit in morte animam suam et cum sceleratis reputatus est et ipse peccatum multorum tulit et pro transgressoribus rogavit

히브리어구약BHS,12 לָכֵן אֲחַלֶּק־לֹו בָרַבִּים וְאֶת־עֲצוּמִים יְחַלֵּק שָׁלָל תַּחַת אֲשֶׁר הֶעֱרָה לַמָּוֶת נַפְשֹׁו וְאֶת־פֹּשְׁעִים נִמְנָה וְהוּא חֵטְא־רַבִּים נָשָׂא וְלַפֹּשְׁעִים יַפְגִּיעַ׃ ס

성 경: [사53:12]

주제1: [고난의 종]

주제2: [메사야의 승리]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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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성경 이사야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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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는 주의 종에 대한 노래인 “종의 노래”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종의 노래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으로 읽고 묵상합니다.

이사야 53장, 메시지성경

1

우리가 듣고 본 이 일을 믿은 자 있었느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이런 것일 줄 상상이라도 해본 자 있었느냐?

2-6

하나님 앞에서 자라난 그 종, 바싹 마른 땅에 심긴 앙상한 묘목, 왜소한 초목 같았다. 아무 볼품없고 보잘것 없었다. 멸시받고 무시 당하며, 고난을 아는 사람, 고통을 몸소 겪은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그를 멸시했고, 벌레 취급했다. 그러나 그는, 질고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고통, 우리의 추함,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우리는 그가 제 잘못 때문에 저렇게 되었다고, 자기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그가 찢기고, 깨지고, 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그가 벌을 받아들였기에 우리가 온전해졌고, 그가 입은 상처를 통해 우리가 치유를 받았다. 우리는 길 잃고 방황하는 양들같이 다 제멋대로 제 갈 길로 갔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 모든 잘못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에게.

7-9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했어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이는 어미 양처럼, 잠잠히 있었다. 정의가 죽고, 그가 붙들려 갔건만, 진상을 알았던 자 있느냐? 자기 안위는 조금도 돌보지 않았던, 그가 죽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았다. 내 백성의 죄를 위해. 누구도 해코지하지 않고 어떤 거짓도 말한 적 없는데도,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혔고, 어느 부자와 함께 무덤에 뉘였다.

10

그러나 그를 그렇게 고통으로 짓누른 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였다. 그로 하여금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어 주어 거기서 나오는 생명, 그 끝없는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계획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를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지리라.

11-12

그 극심한 영혼의 산고 끝에, 그는 자신이 해낸 값진 일을 보며 기뻐하게 되리라. 나의 이 의로운 종이 겪은 일을 통해 의로운 이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리라. 그가 그들의 죄 짐을 대신 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넘치는 상을 베풀리라. 최고의 것, 최고의 영예를 주리라. 그가 죽음과 맞서 뒤로 물러나지 않았고, 가장 낮은 이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자기 어깨에 짊어졌고, 모든 문제아를 위해 발 벗고 나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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