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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8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 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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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8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욥기 8 · 9(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 10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7/25/2021
View: 6149
2018/03/08(목) “욥기 8:1-22” / 작성: 정한조
본문 욥기 8:1-22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오늘의 본문은 욥의 세 친구 중 두 번째 사람인 빌닷이 욥에게 말한 충고이자 변론입니다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6/9/2021
View: 3835
욥기 8장 본문 설명
욥기 8장은 욥에 대한 빌닷의 첫 번째 논쟁입니다. 빌닷은 옛 선인들의 가르침, 조상들이 경험한 일을 근거로 욥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 설명합니다.
Source: gyusikjung.blogspot.com
Date Published: 9/29/2022
View: 3986
욥8장 해석, 빌닷의 1차 공박 – 다음블로그
빌닷의 1차 공박 욥기8장 출처, 정리 빌닷 역시 엘리바스 못지않게 지혜로운 사람이며 높은 경륜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욥에게..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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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회개가 곧 회복의 길이다 (욥기 8장 1-7절)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은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0/18/2021
View: 9983
[욥기 8장 – 교사용]
욥기 8장. 1. 빌닷이 욥에게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라면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2) 이유는 6-7장에 …
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4/11/2021
View: 5911
매일말씀묵상. 2월 9일. 욥기 8장. – 하늘품은교회
“건져내시지 아니하실지라도, 고통 가운데 그대로 두실지라도, 여전히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
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6/14/2021
View: 9967
[스크랩] 욥기 (8 : 1~22) 주석
[스크랩] 욥기 (8 : 1~2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5. 욥기 8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ㅇ수아 사람 빌닷 – 2:11 주석 …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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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욥기 8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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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WKywX1mIUE
욥기 8
빌닷의 첫번째 말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
11 1)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12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14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15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16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
17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18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19 그 길의 기쁨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21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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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4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이에게 빌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 청컨대 너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 11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12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14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15 그 집을 의지할찌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16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17 그 뿌리가 돌 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 갔을찌라도 18 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19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2018/03/08(목) “욥기 8:1-22” / 작성: 정한조
본문 욥기 8:1-22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오늘의 본문은 욥의 세 친구 중 두 번째 사람인 빌닷이 욥에게 말한 충고이자 변론입니다. 빌닷은 엘리바스와 욥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며, 속에서 부아가 끓어오른 듯이 보입니다. 빌닷도 엘리바스처럼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가치관으로 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엘리바스보다 훨씬 더 거친 표현으로 욥을 공격합니다. 1-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빌닷은 욥이 엘리바스에게 하는 말을 듣고서 “시끄럽다. 말같이 않은 소리 하지 마! 네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셨다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틀렸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의를 굽게 한다’라는 표현은 상업용어로도 사용이 되었는데, 상인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저울을 속일 때 사용했었습니다. 즉 빌닷의 말은 “네 죄가 1g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네 죄가 1톤이라고 저울을 속여서 벌을 줌으로 네가 이 일을 당했다는 말이냐?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네가 벌을 받을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불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평가하시는 분, 상을 주시는 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빌닷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4-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에 버려두셨다고 합니다. 즉 욥의 자녀들이 죄를 지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잔인하고 무서운 말입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께서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는 빌닷의 말은 “네가 깨끗해지고 정직해지면 하나님께서 너를 돌아보셔서 네 본래의 목장을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이다, 네 본래의 재산을 되찾게 해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빨리 더러운 삶에서 나오고, 부정직한 삶에서 돌아서라.”는 의미가 깔려 있습니다.
7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씀은 욥기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곳은 그리스도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비롯한 가게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지금 시작하는 가게가 작고, 소규모일지라도 나중에는 체인점을 많이 가진 식품회사나 큰 기업이 되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말씀으로 현판을 걸어놓은 이유의 거의 대부분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13과 더불어 성경에서 가장 오용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말씀도 아니고, 욥의 말도 아닙니다. 빌닷의 말입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던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의 말은 ‘틀렸다’가 전체 욥기가 말하는 내용입니다.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적으로 보면 욥의 시작은 결코 미약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겨리, 암나귀가 500마리 있었고, 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욥이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욥보다 더 큰 부자는 임금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욥은 시작할 때에 경제적으로는 이미 창대했었던 사람입니다.
빌닷이 말한 이 말의 의미는 “너와 네 자녀들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쫄딱 망하지 않았냐? 이렇게 망하게 된 것이 죄 때문임을 인정해라.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혹 아니?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게 해 주실지?”입니다. 그러니까 미약은 돈이 없는 가난한 상태가 아니라 지은 죄로 인해서 처참하게 된 상태, 모든 가축이 없어졌음은 물론, 자녀들도 다 죽고, 온 몸에 악한 종양이 뒤덮은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빌닷의 말은 8절에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을 욥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빌닷은 조상들의 지혜, 전통을 통해서 욥을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이 8절은 빌닷이 가진 사고의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즉 자신은 아는 것이 별로 없을지라도, 조상들의 말씀과 지혜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틀림없이 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닷의 말은 엘리바스의 말보다 훨씬 날카롭습니다.
조상들의 말이 맞는 것도 많지만,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의미가 달라진 것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10번을 찍는 것이 마음에 품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지라도, 지금은 이내 스토커로 여겨져 처벌을 받습니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것에 의존하는 죄인은 이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빌닷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1-1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이런 것은 새 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빌닷은 왕골과 갈대, 거미줄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골은 애굽의 강변이나 물의 고여 있는 늪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인 파피루스를 말합니다. 종이가 영어로 ‘페이퍼(paper)’인데, 파피루스에서 온 말입니다. 학창시절에 역사시간에 강화도의 화문석이 ‘왕골로 짠 돗자리’라고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왕골은 다량의 물이 없으면 자랄 수 없는 식물입니다.
또 갈대도 파피루스의 일종입니다. 제가 어릴 때 몇 번 가보았던, 을숙도 갈대밭은 낙동강가에 있습니다. 이 역시 다량의 물이 있어야 자라는 식물입니다. 왕골이나 갈대가 물이 없으면 이내 말라비틀어지고 말 것입니다.
빌닷은 욥을 늪에 심겨지지 않은 왕골과 물가에 심겨지지 않은 갈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왕골과 갈대는 올리브나무처럼 오래 사는 식물이 아닙니다. 게다가 물가가 아닌 마른 땅에 심겨져 있습니다. 이내 말라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네 삶의 근거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라비틀어지는 고난을 겪고 있으니,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와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미가 거미줄로 정성을 다해서 집을 지어도 이내 허물어지고 맙니다. 처음에는 작은 곤충들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마당 뒤편에, 숲속에 쳐진 거미줄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거미무상, 인생무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빌닷의 말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 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성한 식물도 물이 없고, 뿌리가 뽑히면 이내 말라비틀어지고 말듯이, 또 거미줄을 아무리 잘 쳐놓은 것처럼 보여도 이내 다 끊어지고 말듯이, 네가 한 때 잘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네가 재난을 당한 것 차체가 네 삶이 하나님께 불경했던 것을 반증해 준다.”라는 것입니다.
교리주의자와 같은 빌닷의 말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20-2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사람은 거두어주시지만, 악한 사람은 물리치실 뿐만 아니라 장막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욥아! 제발 악인의 길에서 나와서 의인의 길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욥은 세 친구 앞에서 죄인 중에 죄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셋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서, 그 사람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평가하고, 정죄하는 것은 죄입니다.
사도행전 9장 이전의 사도 바울을 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겠습니까? 기독교의 원수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평생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13년 동안 칩거하고 있을 때에, 사람들은 그가 고향에서 소일을 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자가 되어서 루스드라에서 사람들이 던진 돌을 심하게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다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아마 혀를 찼을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그가 전도자로 다녔던 곳들은 신묘막측한 은혜의 지도가 되었고, 불가사의한 섭리의 지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록한 편지로 인해서 기독교는 기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욥은 친구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해해 주심으로 그는 믿음의 사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혹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난이나 고통을 보게 된다면, 그것을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다.
혹 우리의 삶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우리를 우리 삶의 자리에 마음과 다하여 심어주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신묘막측한 은혜의 지도와 불가사의한 섭리의 지도를 그려가고 계심을 믿고, 오늘도 그 주님을 목적으로 살아가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가진 경험, 내가 배운 학문, 내가 아는 전통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잣대로 사용되지 않고, 격려의 도구로, 위로의 통로가 되게 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그것이 그의 인생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현재의 모습을 보고,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특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사람을 본다면, 의미 없는 미사여구를 던지기보다 함께 울어주고, 한 끼의 밥이라도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피를 흘려주시고, 그로 하여금 신묘막측한 은혜의 지도와 불가사의한 섭리의 지도를 그려가고 계심을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의미와 용기를 되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주신 주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심으신 곳에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와 십자가의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본문의 말씀을 찬찬히 다시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보십시오.
2. 빌닷은 전통과 자신의 생각으로 욥을 정죄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는 무엇입니까?
3. 고난당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습니까?
4.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빌닷의 말을 오용(誤用)합니다. 이 외에 오용하는 말씀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5. 주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것에서 은혜와 섭리의 지도를 그려가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냉수한그릇 창고
빌닷 역시 엘리바스 못지않게 지혜로운 사람이며 높은 경륜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욥에게 선생이나 된 것처럼,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이어받은 지혜와 지식과 경험, 관찰 등을 총동원하여
욥이 저지른 잘못과 죄악을 깨우치게 하여
빨리 하나님께 회개한 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욥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빌닷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여러 세대를 거쳐 전수받은 빌닷의 지혜가
적어도 겉보기에는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지만
문제는 그 일반 원리를 교조화하여 기계론적으로 적용시키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1. 욥의 자녀들에게까지도 확대 적용된 인과율 8:1-7
▶1절, 그러자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이렇게 말했다.
2절 말씀을 보면 엘리바스와 달리 빌닷의 발언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비판적으로 시작됩니다.
▶2절,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욥이 엘리바스에게 대꾸할 때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자 6:24, :30등
욥을 힘껏 다그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빌닷은 욥이 분명히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당한다는 부동의 전제를 가지고 욥을 몰아붙입니다.
자, 그러면서 3절을 보면
▶3절, “너는, 하나님이 심판을 잘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
전능하신 분께서 공의를 거짓으로 (잘못) 판단하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으로
욥의 결백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의로운 사람을 상주시고 죄, 있는 사람을 벌주시는데,
네가 이와 같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네 죄 때문이라는 주장이지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와 같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이미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욥의 10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시키는 비정함입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4절, “네 자식들이 주께 죄를 지으면, 주께서 그들을 벌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욥의 자식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죄지은 결과로서 욥의 자녀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해석이지요.
얼마나 가혹한 해석인지 모릅니다.
이런 논리가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욥의 상처 난 가슴을 헤집고 후비는 폭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빌닷은 5-7절에서 우리 목회자들이 심방 가서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죄악의 결과로 이미 죽었으니
아직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욥은 이 말씀을 듣고 빨리 하나님께 회개해서
구원받으라는 충고입니다. 다같이 읽어볼까요?
▶5절,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전능하신 분께 자비를 구하면,
(6절) 또 네가 정말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주께서는 너를 살리시려고 떨치고 일어나셔서, 네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7절)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잘못 설교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교우님 가정이 개업을 해서
그저 보통 목회자들이 하듯이 깊은 생각 없이 이 본문을 선택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전화를 해서 과연 이 말씀이 개업 예배에 적절한 본문인지
따지는 것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 ”
야, 우리 교회에도 꽤 수준 높은 교인이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사과했습니다.
사실 다른 성경 말씀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욥기,
욥기 중에서도 특히 욥과 세 친구들 사이의 대화 내용은
어느 한 부분만을 싹둑 잘라서 쉽게 설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전후문맥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사실 이 말씀 하나만 놓고 생각하면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요,
새로 시작하는 성도의 사업이나 가정을 축복하기에 안성맞춤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빌닷이 이런 말씀을 욥에게 던지는 배경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던진 말씀이 아니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한 말씀이라는 문맥이 문제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7
이 말씀은 빌닷이 살고 있던 당대에 매우 잘 알려진 지혜의 격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빌닷이 이 말씀을 욥에게 던진 배경이 중요합니다.
빌닷이 말하는 “미약한 시작”은 죄를 지은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나타난 “고난받는 현재의 상황” 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욥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면,
또 욥이 정말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기만 하면
비록 현재는 미약해서 고난을 받지만, 그 나중은 심히도 창대한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옳은 말이고
욥기의 결론부를 보면 욥이 실제로 그런 축복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욥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빌닷이 미약한 욥의 현실을
욥이 하나님께 지은 죄악의 결과로서 해석하는 한 이 말씀은
욥에게 고통만 가중시킬 뿐, 그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전후문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성경의 어느 한 구절만 적당히 발췌해서 상황에 함부로 적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선조의 경험을 끌어들인 빌닷 8:8-19
▶8절, 이제 옛 세대에게 물어 보아라. 조상들의 경험으로 배운 진리를 잘 생각해 보아라.
(9) 우리는 다만 갓 태어난 사람과 같아서, 아는 것이 없으며,
땅 위에 사는 우리의 나날도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10) 조상들이 네게 가르쳐 주며 일러주지 않았느냐?
조상들이 마음에 깨달은 바를 말하지 않았느냐?
자, 이제 8-10절 말씀을 보면 빌닷은 욥이 과거에 지은 죄의 결과로서
현재의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조들의 경험을 끌어들입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남을 공격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른바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정통 신학이라는 것이 ‘도그마’가 되어서
기계적으로 아무 구별 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때
사람을 얽어매는 또 하나의 사슬이 될 수가 있습니다.
*dogma : 교회에서 부동의 진리로 인정되는 교리·교조(敎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11절, 늪이 아닌 곳에서 왕골이 어떻게 자라겠으며, 물이 없는 곳에서 갈대가 어떻게 크겠느냐?
(12) 물이 말라 버리면, 왕골은 벨 때가 아직 멀었는데도 모두 말라 죽고 만다.
11-19절 말씀을 보면, 빌닷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지혜 가운데
몇 가지 비유를 제시합니다.
먼저 왕골과 진펄을 비유로 듭니다. 왕골, 즉 골풀은 식물의 일종인데
반드시 진펄, 즉 늪지대에서 자랍니다.
그 다음에 갈대도 마찬가지로 물 있는 곳에서만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빠진 상태에서 왕골이나 갈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13절 말씀입니다.
▶13절, “하나님을 잊는 모든 사람의 앞길이 이와 같을 것이며,
믿음을 저버린 사람의 소망도 이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갑작스레 물이 빠져 때가 되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지는 왕골이나 갈대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14-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금방 끊어지고 말 거미줄을 의지하는 사람같고
쉽게 부서질 집을 보호막으로 삼는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14절, 그런 사람이 믿는 것은 끊어질 줄에 지나지 않으며,
의지하는 것은 거미줄에 지나지 않는다.
(15) 기대어 살고 있는 집도 오래 서 있지 못하며,
굳게 잡고 있는 집도 버티고 서 있지 못할 것이다.
결국 빌닷의 비유는 또 하나의 인과율에 대한 비유입니다.
욥이 명백히 불의한 자이기에 물이 다 빠져 말라가는 왕골이나 갈대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닷의 비유(옛 선조의 교훈)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참혹한 고난을 겪고 있는 욥에게는, 결코 시의적절한 말이 아니며,
더욱이 욥에게 적용될 말은 아닙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적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의 죄성을 파헤치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위로 한 마디입니다. 아니면 따뜻한 침묵이요, 고난의 동참입니다.
◑미래의 회복도 역시 인과율 8:20-22
빌닷의 공박의 결론은 20-22절 말씀입니다.
▶20절, “정말 하나님은, 온전한 사람 물리치지 않으시며, 악한 사람 손잡아 주지 않으신다.
(21) 그분께서 네 입을 웃음으로 채워 주시면, 네 입술은 즐거운 소리를 낼 것이니,
(22) 너를 미워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악인의 장막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욥이 미래에 웃고자 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올바른 삶을 회복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20~:21
그렇지 않을 경우, 욥은 악인의 장막과 마찬가지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22
희망찬 미래에 대한 설계도 이와 같이
욥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한 상태에서
욥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된다는 조건부적인 것입니다.
역시 율법주의요, 인과응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앞으로 미래에 잘 되려면, 좀 더 의롭게 살아라는 권고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더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욥, 너는 비교적 의롭다고 치자. 그러나 봐라.
그래서 너는 더 의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네 고난이 해결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일반 논리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욥은 순전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서
자기의 죄악과 상관없이 무고한 고난을 당하고 있기에
인과율이 욥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용
고난당하는 자는 누구나 다 반드시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일반 원리가 문제입니다.
이 원리는 거꾸로 말해서 “현재 모든 것이 형통하는 사람은 죄가 없다.”
는 말도 되기에 더 큰 문제입니다.
물론 고난이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서 일어난 경우가 많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의로운 욥(1:1)에게 환란을 주셔서
그 ‘자기 의’를 깨뜨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빌닷은,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그런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현실도 마찬가집니다.
대개, 누가 더 많은 고난을 당하는지 아십니까?
‘욥처럼, 의롭게 살려는 사람, 하나님 제대로 믿어 보겠다는 사람’이
엄청난 시련을 당합니다. ‘자기 의’를 깨뜨리고, 더 잘 믿으라는 섭리입니다.
그리고 욥의 세 친구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은,
욥과 같은 고난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탄도 바쁘니까요. 한가하지 않습니다.
욥기8장의 핵심은,
1) 그의 자녀까지 끌어들여 공격하지 맙시다.
2) 우리는 이른바 정통 신학, 정통 교리, 조상의 지혜를 도그마화해서
무비판적으로 아무 때에나 함부로 적용하는 우(愚)를 범해서 안 될 것입니다.
비판을 할 때, 사람이 그렇게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엘리바스, 빌닷의 논리가 맞다면,
가장 큰 시련을 당해야 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변에 있는 환란 당하는 사람들을 볼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더 크게 쓰시려고.. 맹훈련을 시키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3) 환란당한 자의 회복에 대해서도,
인과율(네가 의롭게 살면, 회복된다)에 의해서,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의롭게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율법)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불의를 깨닫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것입니다. (복음)
20181102 회개가 곧 회복의 길이다 (욥기 8장 1-7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http://thececc.com/wp-content/uploads/2018/11/20181102.m4a 한국 분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방문하다 보면, 가끔씩 식당 주인 분들이 교회 다니시는 경우 벽에 성경구절이 적힌 팻말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에서 개업 심방 오실 때 선물로 주신 성경 구절들일 것입니다. 벽에 붙는 단골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7장 29절 말씀 “이체 청컨대 주의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라든지,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시편 23편 1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정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개업 하시는 분에게 제일 인기 많은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 욥기 8장 7절 말씀입니다.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구절을 무슨 의미로 드리는 것일까요? ‘가게가 지금은 미약하여도 즉 규모가 작고, 테이블 수는 적어도 나중에는 더욱 더 크게 번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인사가 되는 것이죠. 이 성경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교회 다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말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누가 했는지, 어느 맥락에서 이 말씀이 나왔는지, 심지어 이 말씀이 욥기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유명한 말은 욥의 두 번째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전해준 내용입니다. ‘빌닷’이라는 이름에는 “논쟁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빌닷은 매우 논리적이고 논쟁에 능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욥기를 살펴보면, 욥의 세 친구들 중 빌닷이 욥과 가장 격렬하고 치열하게 논쟁을 펼칩니다. 욥의 나머지 두 친구 엘리바스의 경우 다소 욥을 동정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고, 소발도 욥에게 말할 때 좀 할말을 유보하는 느낌을 갖습니다만, 빌닷은 거침이 없습니다. 빌닷이 욥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칼같이 날카로웠습니다. 첫째로, “고난은 틀림없이 죄에서 기인한다.” 둘째로, “악한 자는 항상 고난 가운데 있다.” 이 두 가지 논리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욥을 밀어붙였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욥 8: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욥기 6장에서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반박하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7장에 와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쏟아 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마치 자신을 과녁으로 삼고 독화살을 쏘는 궁수가 되셨다고 말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이제 하나님이 나 좀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놓아달라는 울부짖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의 처절한 외침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그의 마음의 울음이었겠지요. 그러나 그의 친구 빌닷은 냉정합니다. 친구 욥의 아픔을 동정하고 공감해 주기 보다는 아주 날카로운 태도로 욥을 비판합니다. 2절 말씀에 그가 말합니다. “자네는 언제까지 이런 말을 계속할 작정인가? 자네의 말은 마치 태풍 같구려?” 왜 빌닷이 욥의 말을 ‘광풍’ 즉 태풍 같다고 했을까요? 얼마 전에 플로디아에 마이클이란 이름의 허리캐인이 찾아와서 수많은 재산피해 인명피해를 냈죠? 이 당시에도 강력한 바람은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와 농경지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빌닷은 욥이 쏟아낸 말들이 이런 태풍 같이 매우 거칠고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욥이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점과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거에요.
그 이유에 대해서 빌닷은 3절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욥 8: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빌닷은 논리는 이런 거죠. 하나님께서 어찌 잘못 판단하시겠어요? 전능자이신 주께서 어찌 실수가 있으시겠어요? 욥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였고, 하나님이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에 자신은 그럴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고난 받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실수나 착오가 아니며, 그것은 분명 욥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못 박아 말했습니다.
4절에 가서 빌닷은 더 냉혹하게 말합니다. “(욥 8:4)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4절 본문이야말로 빌닷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만한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인의 죄로 인해 사형을 당한 범죄자인 자녀를 둔 부모라 할지라도 그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이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자녀들이 그렇게 다 세상을 떠나 버렸으니 자네 마음이야 얼마나 무겁고 힘들겠나? 내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려. 내가 무슨 말로 자네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하고 최소한 친구의 아픔을 동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빌닷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빌닷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자네 자녀들이 일시에 죽은 것을 보니,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어. 자네 자녀들은 자신들의 죄값을 받고 죽은 걸세.” 빌닷의 이런 말이 자녀를 잃어버린 아버지 욥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자녀가 잘못을 저질러서 죄값을 받았다 해도, 그게 다 아버지인 내가 잘 못 가리킨 탓이고, 내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이런 비참함에 빠진 욥에게 잔혹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빌닷은 참 무서운 친구 입니다.
어쩌면, 빌닷은 자신이 이렇게 욥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야말로 친구를 위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라고 다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죠. 때로는 옳은 말도 상황에 따라 틀린 말, 부적절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빌닷은 참 융통성이 없는 친구 입니다. 너무 대쪽 같은 사람이라 친구를 위한 위로를 하기로 타협하지 않고 그를 도리어 직면 시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5절부터는 빌닷이 욥에게 그가 처한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욥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 다시 한 번 눈으로 보세요. 제가 쉬운성경 번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욥,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전능자에게 자비를 구하게나. 만일 자네가 깨끗하고 정직하다면, 그분이 자네를 도와 주실 걸세.” 한 마디로 말하면 뭐하라는 거에요? 죄를 회개하라는 거에요. 빌닷이 전해주는 내용을 욥이 몰랐을까요? 다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까지 해주는 빌닷 참 무서운 사람이죠.
자, 빌닷의 말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은 자의 삶에 나타나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은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이 죄로 인해 다 망해버렸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산을 크게 성장 시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7절을 읽으며 대부분 무조건적으로 그 끝이 창대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5-6절에서 나온 것처럼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한 삶을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바로 7절인 것이죠. 제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구절은 사업장 개업 때나 혹은 이사 심방 때 자주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조건적인 축복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빌닷이 욥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가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데 사용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 구절을 축복의 구절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주의사항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빌닷의 자세를 주의하십시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 하다가, 사람을 잃어 버렸습니다. 논쟁에서는 승리했는지 모르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실패 했습니다. 하나님은 빌닷도 책망하십니다. 그는 ‘인과응보’라는 한 가지 틀로 욥의 삶을 해석 하고 정죄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빌닷이 욥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회개가 곧 회복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죄를 지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빌닷의 말처럼 부지런히 하나님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고, 도덕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죄로 인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어도 빌닷의 말처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는 죄로 인해 지금 당장은 미약할지 몰라도 점차 삶이 창대의 길로 나아가는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빌닷의 말을 욥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자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조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가 곧 회복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서있으므로 크신 은혜를 누리시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일말씀묵상. 2월 9일. 욥기 8장. > 매일말씀묵상
욥기 8장.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1. 이제 욥의 또 다른 친구인 수아 사람 빌닷이 말합니다 . 앞에서 욥이 한 말이 빌닷에게는 마땅치 않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2). 앞의 엘리바스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말을 했다면 , 빌닷은 자신의 지식과 학문에 근거하여 말을 합니다 .
2. 빌닷은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는 확고하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리 욥이 무고히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더라도 , 하나님은 무고한 자에게 고난을 주시지 않고 , 그분의 공의와 능력은 확고하므로 욥의 말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 그는 구체적으로 욥의 자녀들이 함께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4). 이 말이 욥에게는 얼마나 무정하고 잔인하게 들렸을까요? 빌닷은 욥에게 자신의 죄와 잘못을 인정하고 , 이제 그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합니다 . 그러면 나중에는 회복되고 창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까지 주면서 말입니다 (7).
3. 또 빌닷은 선조들의 지혜를 언급합니다 (8~10). 인과응보 , 즉 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구하는 물질주의자가 세상에서 잘 되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그들이 의지하던 것은 거미줄처럼 끊어지고, 금방 시들고 뽑혀 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11~19). 그러나 하나님께서 순전한 사람은 결국 버리지 않으시므로, 욥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즐거움을 곧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20~22).
4. 빌닷은 신학적 지식을 가졌지만 , 그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며 일차원적입니다 . 그는 고난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거나 심판이라는 차원만을 알았을 뿐입니다 .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하여 주시는 시련과 고난이 있다는 차원을 놓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신학은 차갑고 무정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니 네가 죄를 지었거나 네가 틀렸다는 논리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견고히 만드실 뿐 아니라 ,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고난이었는데 말입니다 .
5. 빌닷의 논리는 결국 현세적 물질주의의 기초논리에 불과합니다 . 하나님께 빌면 다시 너를 형통케 하실 것이고 지금은 미약해도 나중에는 ‘ 이 세상에서 ’ 창대해진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5~7). 우리는 이 말을 사업장이나 일터에 자주 걸려 있는 것을 보는데 , 얼마나 이 말씀을 오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6. 우리는 질병과 가난과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영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 빌닷의 주장대로 하면, 질병에 걸린 사람, 가난한 사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은 무조건 악한 죄인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이러한 주장은 영원의 관점보다는 현세적 관점이고, 영적이기보다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입니다. 이러한 빌닷의 태도는, 결국 사탄이 하나님께 도전한 관점이었던,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에게 물질과 복을 주셨기 때문’이란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다니엘의 고백입니다 . “ 건져내시지 아니하실지라도 , 고통 가운데 그대로 두실지라도 , 여전히 고난의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 “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 하나님은 여전히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 빌닷과는 차원이 다른 참된 신앙의 고백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오늘 질병 가운데 있다고, 오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혹 아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입술을 허락하옵소서. 또한 곤고한 중에 있는 형제들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세워줄 수 있는 영적인 넉넉함을 허락하여 주시고, 저들을 짧은 지식과 신학으로 매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증거하는 입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크랩] 욥기 (8 : 1~22) 주석
욥기 8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ㅇ수아 사람 빌닷 – 2:11 주석 참조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ㅇ본절에서부터 시작되는 빌닷의 변론과 그의 태도에서 나타난 특징 몇 가지를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분법적 사고 : 일찍이 엘리바스는 악인은 징계를 받고, 의인
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역설한 바 있다(4:7-11; 5:12-16). 빌닷 역시 그 같은
사고 체계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파악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고 체계는 엘리바
스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경직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엘리바스는 `의인=축복, 악
인=징계(멸망)’라는 근본 원리를 고수하기는 하였으나, 종종 의인도 징계를 받는다는
(5:17-27)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반면, 빌닷은 현실의 제반사가 `순전한 사람’ (의
인;20절)과 `사곡한 자'(악인;13절) 등 두 부류로 분류되며, 전자는 흥함(축복)을 받
고 후자는 재난(멸망)을 받는다는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그는 극히 경
직된 권선 징악, 또는 인과 응보적 차원에서만 하나님의 공의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다. (2) 조언자(위로자)의 자격 결여 :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병중에 빠진 욥에게 있
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은 그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해 주는 동정심과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실제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무조건적인 동정과 이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6:14, 28). 그러나 본절에서 빌닷은 다짜고짜로 비난하는 투로 자신의 변론을 시작하
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체계(신앙관)에 근거하여 욥을 죄인으로 취급한다(2 -4
절). 이러한 그의 태도는 엘리바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매정하다. 그러므로 그는 참된
의미의 `상담자’ , `위로자’이기 보다는 가혹한 `정죄자'(accuser)였다 하겠다. 이러
한 빌닷의 태도 때문에 욥과 그의 친구들과 의반목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되어
갔던 것이다.
ㅇ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 여기서 `광풍’이라는 것은 욥의 언설(言說)의 허
탄함과 거셈을 비유한 것이다(15:2; 16:3; 왕상 19:11). 욥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중에 죽음을 의구(3장)하고 친구들의 무정함을 신랄하게 질책(6:14-25)한 바 있는데
아마 빌닷은 이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러나 빌닷의 이 말은 위로를 바라는 욥의
심경과 까닭 모를 재난에 처한 그의 상황에는 적합지 않은 것이었다. 빌닷은 욥이 심
경의 교란과 신앙의 갈등 상태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그의 말이 때론 비이성적(비신
앙적)이고 정도에 지나칠 정도로 과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참작했어야 했다. 실제 욥
은 자신의 말이 `바람'(6:26)과 같이 두서없으며, 따라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말을 꼬
투리 잡아 책망하지 말 것을 간청한 바 있다(6:28).
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ㅇ본절에 나타난 빌닷의 말은 변개(變改)할 수 없는 진리이기는 했다. 왜냐하면 공
의로운 하나님은 그 심판과 해위에 있어서 왜곡되거나 그릇됨이 없기 때문이다(창
18:25). 그러나 그의 말이 욥의 현재 상황에 적합하지는 못했다. 즉, 빌닷은 `순전
한 자가 왜 고난에 처해야 하는가?’하는 욥의 신앙적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빌닷은 지극히 전통적, 율법적인 자신의 신관(神觀)에 집착하여 욥을 반박하
였던 것이다. 사실 욥 자신도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그 심판을 의롭게 하신다는 사
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그의 신앙(신관)이 현재의 자신의 상황과 모
순을 일으키는데에 그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4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ㅇ엘리바스는 욥의 자녀들이 범죄하여 재앙을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언급하였
다(5:4). 그러나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단정하고 있
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정확한 상황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관적인 견해
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욥은 그의 자녀들이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지 않도록 정례적으로
성결 의식을 시행하였기 때문이다(1:5).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ㅇ부지런히 구하며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솨헤르’는 자신의 소
원을 겸손하고 간절하게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ㅇ전능하신 이 – 3절 주석 참조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ㅇ네 의로운 집 –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웨’는 좁게는 `양 우리’를
뜻하고, 넓게는 목자들의 거주지를 지칭하기도 하며, 여기서 `양 우리’란 특별히 하나
님의 보호하에 있는 안락한 거주지를(잠 3:33) 상징한다(Hartley). 한편 본문을 `너
의 의로운 재물(소유)’로 보는 해석도 가능하다(your rightful estate; 5:3). 이는
욥이 소유했던 육축(1:3)을 가리킨다.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ㅇ본문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구를 이루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시작’ 과
`나중’, 그리고 `미약’과 `창대’가 각각 대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전반부를
과거, 즉 욥이 재앙을 받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왜냐
하면 그때 욥은 막대한 부(副)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2, 3). 따라서
이는 욥의 현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한편 후반부에 나타난
빌닷의 예언은 엘리바스의 그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5:18-26), 그의 이러한 예언
은 정확하게 적중되었다(42:12).
8 청컨대 너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ㅇ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 본절에서 `우리’는 욥과 그의 친구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다 넓게는 `현세대'(現世代)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제’는 과장법적 표
현으로 짧은 시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현세대가 그 경험과 지혜에 있어서 `옛
시대’, 또는 `열조'(8절)와 비교될 수 없다는 말이다.
ㅇ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 이는 (1) 인생의 유한성과 짧음(14:2; 시 1
02:11; 사 40:6), 그리고 (2) 덧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욥도 이와 유사한 말을 하였
다(7:7, 16). 그러나 양자는 서로 다른 의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즉, 빌닷은 인생은
그 짧음으로 인해서 스스로 어떤 중요한 지식이나 지혜를 얻을 수 없기에 과거에 경험
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삶 자체는 무의미하다는 뜻에서 이 말을 하였던 것이다.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발하지
아니하겠느냐
ㅇ그들 – 8절에 나타난 `옛 시대 사람’과 `열조’를 가리킨다.
11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 물 없이 자라겠느냐
ㅇ왕골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메’는 `마시다’, `흡수하다’, `빨아들
이다’를 뜻하는 동사 `가마’에서 유래하였으며 파피루스를 뜻한다(출 2:3;
사 18:2; 35:7). 이 식물은 고대 애굽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강변이나, 물이 고여
있는 늪 지대에 분포해 있었다. 여기서는 `악한 자’, `사곡한 자’를 상징한다.
ㅇ갈대가 물없이 자라겠느냐 – 여기서 `갈대'(아후)는 전절에 언급된 파피
루스의 일종으로서 `갈대’, `갈대 풀'(창 41:2, 18)을 가리킨다. 이것 역시 앝은 강물
속에나 물이 고여 있는 늪 지대에 서식한다. 여기서는 `왕골’과 마찬가지로 `악인’을
상징한다. 한편 `물’은 앞절에 나타난 `진펄’과 내용상 동의어로서 `세속의 헛된 소망
‘ 또는 `헛된 의뢰처’, `악행'(惡行)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악인이 세속의
헛된 것 내지는 자신의 악행에 근거해 살아가므로 조만간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
실을 뜻한다.
12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벧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ㅇ본절은 왕골과 갈대가 수분이 있을 동안에는 무성하고 신속하게 성장하나 수분이
말라버리면 곧바로 메말라 죽어버리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는 악인이 세상의
의지와 소망이 끊어질 때 그 존재 근거를 상실하고 멸망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 이는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나무(시 1:3), 길가에 떨어진 씨(막 4:4), 돌밭에
떨어진 씨(막 4:5),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막 4:7)의 종국과 다름없다 하겠다.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ㅇ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 본문은 11, 12절에 대한 결론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는 `왕골’, `갈대'(11절)와 더불어 `악
인’또는 `사곡한 자'(13b절)를 가리킨다. 악인은 마치 갈대와 왕골이 신속하고 무성하
게 자라듯이, 그 행사가 번성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가지 자낳아서 그 형국이 파탄
을 맞게된다(시 1:6; 잠 1:19). 한편 본문에 나타난 `길'(아르호트)은
`운명'(destiny, fate)으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Dhorme).
14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ㅇ그 믿는 것 – `믿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슬로’는 그 어원이
`허리’를 뜻한다. 이는 인체 구성상 허리가 힘의 근원인 것으로 여긴 고대인들의 관념
에서 유래된 듯하다. 따라서 이 말은 `희망’, `신뢰’, `신망’ 등을 상징한다(레 3: 4;
잠 3:26). 결국 본절은, 몸의 중심을 지탱하는 허리가 끊어지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듯, 사곡한 자 역시 세속적 의지(처)가 끊어지면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뜻한
다.
ㅇ거미줄 – 원문을 직역하면 `거미의 집’이다. 거미는 매우 힘을 들여, 그리고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정교하게 자기 집을 짓는다. 그러나 그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외부
의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서도 쉽게 허물어져 버린다. 이는 악한 자들의 결국에도 적용
된다. 즉, 그들은 세속적 책략과 공력(功力)에 의해 자기 행사를 도모하나 조만간 하
나님의 심판의 불 앞에 전소되고 말 것이다. 이는 그들의 의지 대상 자체가 악하고 무
의미학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성과는 외견상 화려하게 보이나 내실(內實)이 전무(全
無)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인은 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쳐서 지은 집처럼 오래 보
존되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한편 본문의 표현을 통해서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세상적인 것에 의지함으로써 현재의 고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은근히
지적하고 있다.
15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 되지 못하리라
ㅇ집 – 여기서는 가족, 육축, 재산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악인들이 의지하는 세속
적인 요소들을 총칭한다(14b절 주석 참조).
16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ㅇ본문은 악인의 번성을 나타낸 말이다. 종종 악인은 번성하되, 급작스럽게 그리고
크게 번성한다. 그것은 마치 급작스럽게 자라나는 풀, 또는 여름철에 온 뜰을 뒤덮는
무성한 잡초처럼 왕성하게 성장한다(창 49:22; 욘 4:6). 그래서 외견상 생명과 기운이
넘쳐 흐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성은 일시적인 것이요, 영원하지
는 않다. 왜냐하면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의 불 앞에 악인의 헛된 영화는 소진
(燒盡)될 것이기 때문이다.
17 그 뿌리가 돌 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 갔을지라도
ㅇ생명력이 강한 식물은 그 뿌리를 단단한 지층에 둔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돌 무
더기 사이를 헤치고 뿌리를 박기도 한다. 대부분 암석과 자갈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
방에 있어서 식물이 암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본문은 악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가리킨다. 동시에 이것은 세속적 의지(처)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악인의 심성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18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ㅇ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하리니 – 전체적으로 의인법이 쓰인 구절이다(신
33:29). 돌 무더기(17절), 진펄, 그리고 물(11절)등은 식물의 존재 기반이었다. 그러
나 이제 식물이 그곳에서 뽑히게 되자 그들이 모른체 한다는 뜻이다. 이는 악인이 멸
망당할때에 자신의 존재 근거로 부터도 따돌림을 당하며 모멸을 당할 것임을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악인은 종국의 때에 자신이 믿었던 것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비참함
을 맛보아야 한다. 한편 빌닷은 악인의 급속한 번창과 비참한 최후를 식물의 빠른 성
장과 순식간의 쇠퇴에 도시적으로 비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기존의 논리를 강화시키
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연중 욥을 죄인의 부류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19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ㅇ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 본문은 다양하게 번역된다. (1) `태양 가운데 그가 바
짝 마른다'(Kaisein). (2) `확실히 그것의 생명은 소멸되어 버린다'(NIV, Surely its
life with hers away). (3) `보라 그가 자기 길을 새롭게 하리라'(Tur Sinai). 그러나
개역 성경의 번역을 그대로 취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 즉, 악인은 그의
번성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부러움과 존귀를 받기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
의 인생 항로가 공고하며, 기쁨에 넘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물을 빼앗긴 갈대가
창졸간에 시들어 버리듯(11절), 돌 무더기에 뿌리를 박은 식물이 뽑힘을 당하여 완전
한 멸망을 당하듯, 그의 최종 형국은 비참한 것으로 막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ㅇ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 이는 식물이 자랐다가 죽은 자리에 또 다른 식
물이 성장한다는 의미로서 악인이 흥망한 자리에는 또 다른 악인이 그 전철을 밟아 일
어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빌닷의 이러한 논리는 결국 (1) 현세상에는 악인이 항
상 존재한다. 그리고 (2) 그 악인은 성장했다가 시드는 풀처럼 예정된 파국을 맞는다
는 의미가 된다. 이 주장을 좀더 극단화시키면 악인은 반드시 징벌을 당하고 그 반대
로 의인은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물론 이러한 그의 논조는 원론적
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
서는 이러한 원리가 엄밀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연기되
기도 할 뿐더러, 종종 악인의 흥왕이 목도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인은 축복을
받는 대신 악인의 압박을 받거나, 이유없는 고난의 굴레를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ㅇ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 본문 역시 지금까지 전개된 빌닷의
사고의 연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는 지금가지 악인에게 임할 심판을 설파한 데
이어(11-18절), 여기서는 의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보호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데 본절의 빌닷의 논리를 극단화시킬 경우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
음마저도 죄의 결과로 보는 오류에 봉착하게 된다(마 27:43).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볼
때 빌닷의 주장은 분명히 진리이다. 왜냐하면 현상계에서는 종종 의인의 수난과 핍박
이 발생하난 궁극적 차원에서는 의인이 반드시 그 의로움에 대한 보응을 받기 때문이
다.
ㅇ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악인의 손을 붙
들어 주지 않으리라’가 된다. 여기서 `손을 붙잡다’라는 표현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하
나님의 확고한 보호와 인도하심을 상징한다(사 43:6; 51:18). 하나님께서는 잠시 동안
은 악인의 손을 붙들어 주실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그들의 손을 붙들어 주시지
는 않으신다.
21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ㅇ본절에 나타난 히브리 원문의 접속사 `아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문의 내용이 달라진다. (1) `그리고'(and)로 볼 경우(Pope) : 이렇게 될 때 본절의
내용이 20절 하반부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 해석은 적당치 않다. (2) `
그러므로'(Pulpit Commentary)로 볼 경우 : 본문이 20절의 사상을 요약하는 결구(結
句)가 된다. 그러나 전체의 결구는 22절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므로 이 해석 역시 타
당성이 별로 없다. (3) `게다가'(Umbreit)로 볼 경우 : 이것 역시 (1)의 해석과 흡사
한 것으로서 무리가 따른다. (4) `그러나’로 볼 경우 : 에발트(Ewald), 딜만(Dilmann
), 슈티겔(Stickel), 뵈쳐(Bottcher)등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이 해석은 시 42:6 을
근거로 하여 본 구절을 앞 절의 내용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5) `동안에'(
during)로 볼 경우 : 델리취(Delitzsch), 랑게(Lange)등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이 주
장을 따를 경우 본문은 `(그가)네 입에 웃음으로 채우실 동안에 네 입술은 즐거움으로
채우시리라'(Lange Commentary)로 해석된다. 전후 문맥상 (4)와 (5)의 견해가 가장 무
난한 것 같다.
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ㅇ21절을 20절 상반부의 사상을 확대 발전시킨 것으로 본다면 본문은 20절 하반부의
사상을 확대 요약한 것임과 동시에 본장 전체의 내용을 결말짓는 부분이라 하겠다.
한편 본문의 내용은 일차적으로 욥의 대적자에 대한 저주라 할 수 있겠지만, 욥을 포
함시켜 악인 일반의 멸망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욥이라
는 구체적 인물을 경시하지는 않으나 이 표현을 통해서 빌닷은 욥을 죄인의 동류(同類
)로 취급하려 한 것 같다. 어쨌든 본장 전체를 통해 볼 때 빌닷의 논리는 이분법적 사
고 체계에 철저히 근거해 있으며, 욥을 죄인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게 스며 있
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교조적, 전통적 입장에만 매달려 그의 신앙 태도에
서 연유한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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