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11 장 주석 | 2021-10-06 새벽예배 (요한계시록 강해 – 요한계시록 11장) – 박한수 목사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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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만명 반대 합시다.
🚨평등법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일간지 광고비 후원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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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 요한계시록 11장
[ 제자광성교회 ] 박한수 위임목사
제1성전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462 (정발산동 1140번지)
제2성전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하늘마을1로 72 (베스트요양원 옆)
전화번호 : 031-975-4004, FAX : 070-8277-2525
헌금계좌 : 301-0170-1798-71 (농협, 제자광성교회)
홈페이지 : http://www.jejaks.org
※ 새가족 등록을 원하는 분은 사전에 교회에 연락하시고 방문하셔야
예배에 참여하고,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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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세대후원 방법 ]1. 국내용 계좌 : 301-0277-1597-91 (농협, 제자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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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address: 462, Ilsan-ro, Ilsandong-gu, Goya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bank(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account number: 301-0277-1597-91
-account holder: Jejakwangsungkyoheo(제자광성교회)
-bank address: 10, Goyangsicheong-ro, Deogyang-gu, Goya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SWIFT Code : NACFKRS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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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홍길동 미래세대)라고 꼭 기입해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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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주석 – Daum 카페

요한계시록 제 11장 =====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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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3/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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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11장

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 )는 물건이나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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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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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주석 성경말씀]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계 …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믿음과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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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1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헬라어 요한계시록 1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굿윌러 2020. 10. 2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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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두 증인 – 오늘의 신앙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장면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에스겔의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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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aithkorea.com

Date Published: 3/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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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1240 – 요한계시록 11장 – 네이버 블로그

하나님의 선택된 대표자인 유대인의 거절(참조 마 21:43 주석)로 인해 그 성전은 결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경배의 중심지로 회복될 수 없을 것이었다(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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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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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요한계시록 11장

11:1 성전 측량 (요한 계시록 11:1,2) 여기 기록된 성전 척량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이 참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스겔의 환상과 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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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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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주석, 요한계시록 11장 – HANGL CFC

계 11:1 지팡이 같은 갈대 – 겔 40:3, 42:20 참조.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성전”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나오스(* )니 지성소(至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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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fc.kr

Date Published: 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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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4(금) “요한계시록 11:1-19” / 작성: 서지훈

에스겔서 40-48장에 나옵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 측량의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을 하나님이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측량하는 대상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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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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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1:8은 상징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불린 큰 성 곧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의 거리에 두 증인의 시체(헬라어로 단수)가 놓여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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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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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새벽예배 (요한계시록 강해 - 요한계시록 11장) - 박한수 목사
2021-10-06 새벽예배 (요한계시록 강해 – 요한계시록 11장) – 박한수 목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 계시록 11 장 주석

  • Author: 제자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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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0.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55AOT-ugtw

요한계시록 11장 주석

요한계시록 제 11장

=====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

하는 헬라어 ‘칼라모스'(* )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은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을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하였다(겔 40:2ff.). 한편

구약성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

(렘 31:39;슥 1:16;2:1-5). (2) 파괴를 의미한다(삼하 8:2;왕하 21:13;사 28:17;

34:11;애 2:8;암 7:7-9). 본문의 ‘척량’은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

(21:15-17, 24, 27,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

서 척량되지 않은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

량 대상이 설사 고난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

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척량해야 할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님의 성전. – ‘성전’의 헬라어 ‘나온'(* )은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 )과는 달리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는 성소

를 가리킨다(Johnson, Ladd). 요한이 척량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지상의 성전으로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실제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Holtzmann,

Walvoord)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전

3:16;6:19;고후 6:16;엡 2:21,Johnson, Morris, Hendriksen, Charles, Plummer,

Beasley-Murray).

제단. – 이것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향단’을 가

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듯하다(8:3;9:13, Hendriksen,

Mounce, Hughes).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히 13:10, Johnson) 그

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언약 백성을 의미한다(1:5;5:10, Hughes, Morris, Mounce).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헤롯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로서 제사자의 뜰, 남자의 뜰 혹은 이스라엘이 뜰,

여자의 뜰이며, 둘째는 성전 밖의 뜰로 이방인의 뜰이다. 이 두부분의 뜰은 엄격히 구

분되어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Johnson). 이러한 두 부분의 뜰 중에서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

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

‘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Morris). (2) 혹자는 교회

내에 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Johnson, Mounce, Hendriksen, Kissle).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한마디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Beasley-Murray). 이러한 이방인

의 뜰은 척량 대상에서 제외되어 앞절에서 언급된 척량 대상과는 달리 고난의 때에 하

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파멸을 당할 것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

)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18

절;2:26;19:15;20:3;21:24, 26;22:2). 한편 ‘주었은즉’의 헬라어 ‘에도데'(*

)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거룩한 성’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성’ 혹은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Holtzmann,

Walvoord, Beckwith, Ladd, Rissi). (2) 혹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1:2,

10;22:19, Johnson,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단 7, 9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서 내에서 ‘일천 이백 육십 일'(3절;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하나님의 성소와 유대

인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내며(단 8:10, 13; 마카비하 8:2), 본서에서는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2절),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

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

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

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Mounce).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

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

미이다(Morris).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

을 예언하리라. – ‘두 증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혹자는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한다(에녹서 90:11, Tertullian). (2)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

(Charles, Smith, Gundry, Barclay). (3) 혹자는 미래의 두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Beckwith). (4) 혹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5) 혹자는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

(Rissi). (6) 혹자는 일천 이백 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기간을 통

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Murray, Hendriksen).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

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Hughes).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

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으며(신 19:15;요 8:17, 18)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막 6:7;눅 10:1). 한편 ‘굵은 베

옥’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사 20:2;슥 13:4)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

다.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Hughes,

Beasley-Murray, Johnson).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이 땅의 주 앞에 ‘는 하

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Morris). 한편 본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촤대’는 앞절에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을 암시한다(슥 4:1-14).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총독 스룹바벧과 제사장인 여호수아를 가리킨다(슥 3:1;4:6, 7, 14).

요한은 이 스가랴의 환상을 이용하여 두 증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Ladd). 또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서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촤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진(Swete, Mounce)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마 5:14-16) 세상의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요

1:4, 5, 9) 발해야 한다(Hughes, Johnson).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언

자들을 보호하신 왕하 1:10과 렘 5:14을 반영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두 증인들이 선포한 예언의 말씀을 암시한다(렘 5:14). 하나님께서는 원수들

이 두 증인을 해하려 할지라도 원수들의 손에서 두 증인을 보호하시고 말씀의 선포가

지속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의 입으로 선포하는 불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수들을 철저히 파멸시키신다.

=====11:6

본절은 앞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왕상 17:1).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이것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한다(출

7:20;8:12).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혹자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주

장한다(Charles, Smith, Barclay). 그러나 누가가 세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눅 1:17) 본절에서 암시한 모세와 엘이야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에 사역하던 역사적 인물의 재출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Ladd). 단지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소유한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Johnson, Beasley-Murray, Hughes).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 ‘증거를 마칠

때에’에서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 )은 부정 과

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거하기를 다마쳤음을 시사

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

려고 애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할 수 없었음

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단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짐승’은 본서에

서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 )에

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

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

에서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열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

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단 7:1-25).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

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지칭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

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단이며 하나

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

재임을 시사한다(9:1-11;17:8). 한편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21을 반

영하는 것으로 두 증인이 개인적인 두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전 백성 즉 그리스

도인들을 가리킴을 암시한다(Beasley-Murray).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

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줄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6:9-11).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이니라. – 본절의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내에서 흔히 ‘바벧론’으로 지칭된다(16:19;17:18;18:10, 16,

18, 19, 21). 혹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

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

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Johnson, Morris, Beasley-Murray).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

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려진다. (1) 소돔. 이 곳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창 19:4-11). (2) 애굽.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

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

다.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목도하며 무덤에 장사

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에 대한 혹자는 유대인

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

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구조를 의미한다(Hughes, Morris). 한편 시체를 장

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

21:24;렘 8:1), 2;14:16). 짐승은 증인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였으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Morris, Mounce).

사흘 반 동안. –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

다. 즉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증인들이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증거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임을 시사한다(Ladd, Mounce,

Hendriksen).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

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

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

(3:10;6:10;8:13;13:8, 14;17: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

다.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

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

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

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11:11,12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본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다(겔 37:5, 10

-12). 여기서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창 2:7;6:17;7:15, 22)

두 증인들의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

에서 조롱을 당하던 짧은 기간 즉 삼 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다. 삼 일

반이 지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하여 서게 됨으로 조

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핍바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한다(Morris, Mounce, Johnson).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그리고 영광을

의미한다(Johnson).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으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과 마찬 가지로(마 24:30;행 1;9-11) 두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가운데 승천하였다. 한편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두 증인의 승천은

공개성(公開性)을 시사한다. 두 증인의 승천은 절대로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Morris, Swete).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본문은 두 증인의 승

천 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지진’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의미한다(6:12;겔 38:19, 20;마 27:54). 두 증인의 부활때에 일어난 지

진으로 인해 죽은 ‘성 십분의 일’의 인구 ‘칠 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

자는 당시 예루살렘 성의 인구가 55,000-95,000명이었음을 추측하여(J.Jeremias) 예

루살렘 성 주민의 일부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 결과로 유대인이 회개한 것이라고 주장

한다(Ladd). (2) 혹자는 인류 전체의 일부라고 이해하며 이러한 일부에 대한 징계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

이다(8절). 한편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것은 16:9에 나타

난 반응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단순한 두려움이나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11:14

둘째 화는 지나 같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둘째 화’는 여섯째 나

팔에 해당되는 화를 의미한다(9:13-11:14). 이 둘째 화 다음에 지체 없이 속히 임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일곱째 나팔’은 10:7 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감추신 비밀에 대해 보여준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큰 음성’이 누구의 음성

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늘의 천군 천사’의 음성인 듯하다

(Morris, Mounce).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본문은 시 2:2을 반

영하는 것으로 큰 음성을 통해 이루어진 선포이다. 여기서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나 본서 내에서는 빈번히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1:8, Ladd,

Morris). 이것은 본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이 사단이나 군왕들에게 있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선포임을 시사한다(Swete,

Johnson, Beasley-Murray). 이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사단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1:6, 9;5:10;12:10;19:6;20:4;22:5). 한편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

어 ‘에게네토'(* )는 단순 과거 시상으로 이 세상의 주권이 사단

에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전도되었음을 시사한다(12:10;19:6, 16;요 12:31,

Ladd, Morris).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그가…왕노릇하시리로다’의 헬라어 ‘바실류

세이'(* )는 단수이다. 이것은 사단에세서 이 세상의 주권을

되찾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주권의

단일성을(unity)을 시사한다(Mounce, Lohmeyer, Beasley-Murray). 하나님과 그리스도

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왕으로서 단일한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11:16,17

본문은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은 여섯째 인의 심판

이 지난 후 나타났었다(7:2).

감사하옵나니 옛적에고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 ‘잡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일레파스'(*

)는 완료 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

심을 시사한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1) 옛적에도 계셨

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본 칭호는 앞서 언급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칭호(1;8;4:8)와 대비를 이룬다. 앞서 언급된 칭호에서는 ‘장차 올 자’라

는 칭호가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의 오심이 성취되어

서 이미 오셨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시사한다(Morris, Johnson, Mounce). (2) 전

능하신 이. 분 칭호는 앞서 언급된 ‘큰 권능을 잡으시고’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의

권한과 힘에 대적할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1:8, Morris, Mounce).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하더라. – 본문은 시 2:2과 병행된다. 열방들은 서로 의논하

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으신 종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대적과

분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 제공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시 2:5, 12). 하나

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보상은 세 범주의 존재들에게 주어진다.

(1)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죽은 자’는 20:11-15과 연결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여부가 정해지게 된다(Ladd, Johnson).

(2)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받을 자에 대해 세 부류 즉 1 종 선지자

(18:20), 2 순교자나 모든 시대의 믿는 자를 의미하는 성도들(5:8;8:3;13:7,

10;15:4;16:6;18:20, 24), 3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7;15:4)로 나타난다. 이러

한 세 부류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보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Morris).

(3)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땅을 망하게 하는 자

들’은 바벧론이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나 용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무리를 나타낸다(16:13;19:2, 11;20:10. Beasley-Murray, Johnson). 이러한 자

들은 그날에 멸망을 달할 것이다.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여진 언약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약속의 상징이었

다. 언약궤는 B.C. 586젼에 느브갓네살의 침략과 성전의 손실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외경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회복 때까지 언약궤를 숨겨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카비 2서 2:4-8).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언약궤의 회복을 통해 구원

을 소망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Mounce). 그러나 본절의 언약궤는 구약

성경에 나타난 지상성전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

해 성취된 하나님과 백성간의 새 언약을 암시한다(Johnson). 옛 언약하에서는 대제사

장이 일 년에 한 번 언약궤가 있는 지성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를 의지함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9:11, 12;10:19-22). 그러므로 본절의 언약궤는 하나님 나라의 도

래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Johnson, Morris), 한편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과 지

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엄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4;5;6:12;8:5;16:17-21) 하나님의 임재와 그 백성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Johnson).

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11장

=====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 )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은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을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하였다(겔 40:2ff.). 한편 구약성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렘 31:39;슥 1:16;2:1-5). (2) 파괴를 의미한다(삼하 8:2;왕하 21:13;사 28:17; 34:11;애 2:8;암 7:7-9). 본문의 ‘척량’은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21:15-17, 24, 27,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척량되지 않은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량 대상이 설사 고난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척량해야 할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님의 성전 – ‘성전’의 헬라어 ‘나온'(* )은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 )과는 달리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는 성소를 가리킨다(Johnson, Ladd). 요한이 척량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지상의 성전으로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실제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Holtzmann, Walvoord)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전 3:16;6:19;고후 6:16;엡 2:21,Johnson, Morris, Hendriksen, Charles, Plummer, Beasley-Murray).

제단 – 이것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향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듯하다(8:3;9:13, Hendriksen, Mounce, Hughes).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히 13:10, Johnson)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언약 백성을 의미한다(1:5;5:10, Hughes, Morris, Mounce).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헤롯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로서 제사자의 뜰, 남자의 뜰 혹은 이스라엘이 뜰, 여자의 뜰이며, 둘째는 성전 밖의 뜰로 이방인의 뜰이다. 이 두부분의 뜰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Johnson). 이러한 두 부분의 뜰 중에서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 ‘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Morris). (2) 혹자는 교회 내에 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ohnson, Mounce, Hendriksen, Kissle).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한마디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Beasley-Murray). 이러한 이방인의 뜰은 척량 대상에서 제외되어 앞절에서 언급된 척량 대상과는 달리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파멸을 당할 것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 )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18절;2:26;19:15;20:3;21:24, 26;22:2). 한편 ‘주었은즉’의 헬라어 ‘에도데'(* )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거룩한 성’에 대한 견해는 두가지이다. (1) 혹자는 ‘성’ 혹은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Holtzmann, Walvoord, Beckwith, Ladd, Rissi). (2) 혹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1:2, 10;22:19, Johnson,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단 7, 9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서 내에서 ‘일천 이백 육십 일'(3절;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하나님의 성소와 유대인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내며(단 8:10, 13; 마카비하 8:2), 본서에서는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2절),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 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Mounce).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Morris).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두 증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혹자는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한다(에녹서 90:11, Tertullian). (2)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Gundry, Barclay). (3) 혹자는 미래의 두 예언자라고 주장한다(Beckwith). (4) 혹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5) 혹자는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Rissi). (6) 혹자는 일천 이백 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기간을 통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Murray, Hendriksen).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Hughes).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으며(신 19:15;요 8:17, 18)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막 6:7;눅 10:1). 한편 ‘굵은 베옥’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사 20:2;슥 13:4)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Hughes, Beasley-Murray, Johnson).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이 땅의 주 앞에 ‘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Morris). 한편 본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촤대’는 앞절에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을 암시한다(슥 4:1-14).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인 여호수아를 가리킨다(슥 3:1;4:6, 7, 14). 요한은 이 스가랴의 환상을 이용하여 두 증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Ladd). 또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서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촤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진(Swete, Mounce)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마 5:14-16) 세상의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요 1:4, 5, 9) 발해야 한다(Hughes, Johnson).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호하신 왕하 1:10과 렘 5:14을 반영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것으로서 두 증인들이 선포한 예언의 말씀을 암시한다(렘 5:14).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두 증인을 해하려 할지라도 원수들의 손에서 두 증인을 보호하시고 말씀의 선포가 지속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의 입으로 선포하는 불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수들을 철저히 파멸시키신다.

=====11:6

본절은 앞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왕상 17:1).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이것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한다(출 7:20;8:12).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혹자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Barclay). 그러나 누가가 세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눅 1:17) 본절에서 암시한 모세와 엘이야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에 사역하던 역사적 인물의 재출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Ladd). 단지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소유한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Johnson, Beasley-Murray, Hughes).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 ‘증거를 마칠 때에’에서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 )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거하기를 다마쳤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려고 애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단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짐승’은 본서에서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 )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열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단 7:1-25).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지칭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9:1-11;17:8). 한편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21을 반영하는 것으로 두 증인이 개인적인 두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전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을 암시한다(Beasley-Murray).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줄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6:9-11).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본절의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내에서 흔히 ‘바벧론’으로 지칭된다(16:19;17:18;18:10, 16, 18, 19, 21). 혹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곳을 가리킨다(Johnson, Morris, Beasley-Murray).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려진다. (1) 소돔. 이 곳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창 19:4-11). (2) 애굽.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에 대한 혹자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구조를 의미한다(Hughes, Morris). 한편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 21:24;렘 8:1), 2;14:16). 짐승은 증인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였으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Morris, Mounce). 사흘 반 동안 –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다. 즉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증인들이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증거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임을 시사한다(Ladd, Mounce, Hendriksen).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3:10;6:10;8:13;13:8, 14;17: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11:11,12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본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다(겔 37:5, 10 -12). 여기서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창 2:7;6:17;7:15, 22)두 증인들의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던 짧은 기간 즉 삼 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다. 삼 일 반이 지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하여 서게 됨으로 조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핍바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한다(Morris, Mounce, Johnson).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그리고 영광을 의미한다(Johnson).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으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과 마찬 가지로(마 24:30;행 1;9-11) 두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가운데 승천하였다. 한편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두 증인의 승천은 공개성(公開性)을 시사한다. 두 증인의 승천은 절대로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Morris, Swete).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본문은 두 증인의 승천 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지진’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의미한다(6:12;겔 38:19, 20;마 27:54). 두 증인의 부활때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죽은 ‘성 십분의 일’의 인구 ‘칠 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당시 예루살렘 성의 인구가 55,000-95,000명이었음을 추측하여(J.Jeremias) 예루살렘 성 주민의 일부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 결과로 유대인이 회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인류 전체의 일부라고 이해하며 이러한 일부에 대한 징계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절). 한편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것은 16:9에 나타난 반응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단순한 두려움이나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11:14

둘째 화는 지나 같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에 해당되는 화를 의미한다(9:13-11:14). 이 둘째 화 다음에 지체 없이 속히 임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일곱째 나팔’은 10:7 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감추신 비밀에 대해 보여준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큰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늘의 천군 천사’의 음성인 듯하다(Morris, Mounce).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본문은 시 2:2을 반영하는 것으로 큰 음성을 통해 이루어진 선포이다. 여기서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나 본서 내에서는 빈번히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1:8, Ladd, Morris). 이것은 본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이 사단이나 군왕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선포임을 시사한다(Swete, Johnson, Beasley-Murray). 이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사단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1:6, 9;5:10;12:10;19:6;20:4;22:5). 한편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네토'(* )는 단순 과거 시상으로 이 세상의 주권이 사단에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전도되었음을 시사한다(12:10;19:6, 16;요 12:31, Ladd, Morris).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그가…왕노릇하시리로다’의 헬라어 ‘바실류세이'(* )는 단수이다. 이것은 사단에세서 이 세상의 주권을 되찾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주권의 단일성을(unity)을 시사한다(Mounce, Lohmeyer, Beasley-Murray).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왕으로서 단일한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11:16,17

본문은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은 여섯째 인의 심판이 지난 후 나타났었다(7:2).

감사하옵나니 옛적에고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 ‘잡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일레파스'(* )는 완료 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1)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본 칭호는 앞서 언급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칭호(1;8;4:8)와 대비를 이룬다. 앞서 언급된 칭호에서는 ‘장차 올 자’라는 칭호가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의 오심이 성취되어서 이미 오셨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시사한다(Morris, Johnson, Mounce). (2) 전능하신 이. 분 칭호는 앞서 언급된 ‘큰 권능을 잡으시고’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의 권한과 힘에 대적할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1:8, Morris, Mounce).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하더라 – 본문은 시 2:2과 병행된다. 열방들은 서로 의논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으신 종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대적과 분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 제공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시 2:5, 12).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보상은 세 범주의 존재들에게 주어진다.

(1)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죽은 자’는 20:11-15과 연결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여부가 정해지게 된다(Ladd, Johnson).

(2)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받을 자에 대해 세 부류 즉 1 종 선지자(18:20), 2 순교자나 모든 시대의 믿는 자를 의미하는 성도들(5:8;8:3;13:7, 10;15:4;16:6;18:20, 24), 3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7;15:4)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 부류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보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Morris).

(3)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바벧론이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나 용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무리를 나타낸다(16:13;19:2, 11;20:10. Beasley-Murray, Johnson). 이러한 자들은 그날에 멸망을 달할 것이다.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여진 언약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언약궤는 B.C. 586젼에 느브갓네살의 침략과 성전의 손실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외경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회복 때까지 언약궤를 숨겨둔 것으로 되어 있다(마카비 2서 2:4-8).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언약궤의 회복을 통해 구원을 소망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Mounce). 그러나 본절의 언약궤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지상성전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과 백성간의 새 언약을 암시한다(Johnson). 옛 언약하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언약궤가 있는 지성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를 의지함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9:11, 12;10:19-22). 그러므로 본절의 언약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Johnson, Morris), 한편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엄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4;5;6:12;8:5;16:17-21) 하나님의 임재와 그 백성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Johnson).

삽입 2-1:성전 척량(聖殿 尺量)

(계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여기의 대용이 여섯째번 나팔과 연관이 있다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성전,제단,거룩한 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이 내용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내용인가?

미래주의에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에 회복될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

다른 견해는 성전을 중심으로 척량하는 것은 유대인의 남은 자만을 구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 다른 입장은 “하나님의 전”(고전3:16)으로 불리우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이 세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하는 문제는 10장과 11장의 문맥에서 살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증거의 사역에서 등장하는 내용이기에 이 부분은 교회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2]그러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내용이 교회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라는 것이라면 각각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이 표현은 성전의 모습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는데 성전이라는 말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제단이라는 말은 성소밖에 있는 번제단인가,아니면 성소안에 있는 향단인가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성전 밖 마당이라는 말은 성전의 성소 앞에 있는 뜰로부터 전부인가,아니면 맨 바깥에 있는 이방인의 뜰인가라는 것이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교회를 상징하는 문제로 연결시킨다면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잠시 생각하지 말고 해석하여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척량이라는 말부터 시작을 하여야 할 것이다. 11장에서 요한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내용이 극화된다. 그것은 척량이라는 말부터 시작을 하여야 할 것이다. 척량이라는 말은 보존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7:l-8에 나오는 인치심과 상응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러면 척량되어 보존되는 내용이 두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가,아니면 한 종류의 두 성격을 가리키는 내용인가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핀대로라면 성전,제단,마당,거룩한 성이라는 말이 교회를 상징하는 내용이라면 두 종류로 본다면 보호받는 쪽은 참된 성도이며, 그렇지 못한 쪽은 형식적인 세속적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거것 선생과 이단에 속한 자들이 들어와 있음을 보지만 저들이 교회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세속적 형식적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교회의 두 성격을 가리키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전 밖 마당과 성은 이방인들이 짓밟을 것이 허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적의를 가지고 대항할는지 모르나 생명의 참근원은 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두 증인의 사역에 연결이 되어서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바깥의 마당과 성이 짓 밟힘을 당하고 핍박과 고통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교회의 그 본질은 하나님에 의하여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기간은 얼마동안인가? “마흔 두달”이라고 한다. 그것을 1260일(11:3,12:6), 한때와 두때와 반때(12:14) 등으로 설명을 하는데 이는 여러가지 상황(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지배기간,엘리아시대의 가뭄,광야에서 이

스라엘의 진친 곳이 42번등)이 연결이 되나 계시록의 전체 장면에서 본다면 이 기간은 세상이 교회를 괴롭히는 기간이며,동시에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활동하는 기간으로 등장하니 바로 초림과 제림사이의 교회의 전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우기 이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사역하신 기간과도 일치하니 교회의 공7적인 존재기간 전부를 나타대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성전척량이 여섯째번 나팔과 관련하여 교회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만 재앙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도 핍박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교회가 도대체 세상에 대하여서 어떤 존재이기에 그렇게 핍박을 받는 존재로등장을 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이 바로 두 증인이다.

삽입 2-2:두 증인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계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계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계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계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계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사실 이 삽입의 내용은 10장의 내용과 연결이 되어서 설명이 되고 있다. 일곱째번 나팔의 의미를 아는 자는 세상이 아니라 사도요한이었다. 요한은 쓴 맛을 느끼면서 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이제 누가 그 일을 계속하여야 하는가? 요한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저들을 향하여 그 사실을 증거하여 줄 증거자가 있다는 사실을 본문이 보여주며,이 사실이 오히려 세상으로 하여금 핍박을 불러 일으키나 교회의 본질을 이기지는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성전척량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실핌에 있어서 그 내용에 대하여서 여러가지 견해가 있어서 그 의미를 밝힘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해 오던 해석의 원칙에 의하여서 살피려고 한다.

l.두 증인의 신분

가장 첫번째 다루어야 할 문제는 바로 두 증인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①세상과의 관계에서 두 증인을 4절에서는 두 촛대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대 이는 1장에서 교회를 등잔대(촛대)로 설명한 것과 연결이 되고있으며, 예수께서 교회의 사명을 빛과 소금으로 설명하신 것과 연결이 된다(마5:13-16).

②또한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라고 하는데 이는 스가랴 4:14에 나오는 상징으로 거기서는 성령으로 일하는(스가랴4:6)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는 성령의 사역으로 활동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모습은 모든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③교회를 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저들을 증인으로 부르셨으며, 증인으로 파송하시고 계시기때문이다(마28:16-20,행l:8). 그러므로 교회를 증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증거의 사역을 세상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존재는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그러면 왜 그 수가 둘인가? 그것은 증인이라는 말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어떤 증거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두명의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신ll:6,19:15,요8:17). 그러므로 두 증인이라는 말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참된 증인이며,그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2.두 증인(교회)의 사역

(계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①권세를 받은 증인-하나님께서 두 증인에계 권세를 주셨다고 한다. 그 권세는 물론 증거할 수 있는 권세이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l:8이 잘 설명하고 있다. 권세를 받아야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사설을 인정하여야 한다.

②증거의 자세-굵은 베옷(거친 옷)을 입은 것은 옛날 선지자들의 옷이다(슥13:4). 이는 그 증거의 내용이 엄숙함을 보여주며,그 중심은 회개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9:20,21).

③증거의 기간-1260일(11:2의 해석 참조)은 신약시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계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④능력있는 증거-그들의 복음의 증거가 능력 있음을 구약의 생생한 선지자의 활동에 비추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첫번째 예는 엘리야에 대한 것으로 아하시야왕의 사자들이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50명의 무리들이 왔을때 두번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타서 죽은 사실을 생각나게한다(왕하l:). 그리고 또한 엘리야가 기도함으로 비를 움직인 아합왕시대의 사건을 말한다(왕상17:l,눅4:25,약5:17).

두번째 예는 모세로 물이 변하여 피가되게 하였고(출7:20), 여러 재앙으로 땅을 친 사건(출8:12)을 말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저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반항하게 될 때에 여러가지 재앙이 생겨나게 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우리가 살핀 첫째 나팔부터 여섯째번 나팔 그 자체가 바로 복음 증거의 능력과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회개하기를 거부하게 될 때에 복음의 증거로 인하여 재앙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내용은 복음의 구원사역의 측면보다 거절하는 자들에 대하 심판의 사역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이미 살핀 일곱째번 나팔의 의미를 아는 요한의 사역과 그 사역은 이어받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저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있을 파멸을 증거하여야 한다. 만약에 증인이 증거하거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이다.

그리고 증인이 증거의 사명을 완수하는 동안은 엘리야와 모세를 보호하신 것같이 지켜주시는 것이다.

*결국 증인의 사역은 환경과 인간을 쳐도 깨닫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친히 하나님의 뜻을 선포(증거)하는 것이다.

3.증인에 대한 세상의 반응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핍박하는 장면은 이미 11:l,2에서 등장을 하였다. 그러나 거기서는 왜 고난을 당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본문이 밝히고 있다.

증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한 마디로 핍박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교회는 순교의 길을 가게된다.

1]교회를 핍박하고[이는 계속적일 것이다] 결과로 순교하게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답을 하나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제공을 한다.

①긍정적인 측면에서 교회가 순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교회가 그 증거를 마치기 전에는 죽임을 당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사역의 완성인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성도의 위로이다. 그리고 동시에 1,2절에서 설명한 교회의 본질이 보존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②부정적인 측면에서 교회가 핍박과 순교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2]교회를 핍박하는 세력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본질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세력은 마귀의 세력이다. 그것이 외면상으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등장을 하지만 본질적인 모습은 영적이며,마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그 당시 교회의 외견

①전쟁에서 패배를 당하고 죽임을 당함(7)-때때로 교회는 큰 핍박과 환난가운데서 사라져 버리고 죽어버린 듯한 느낌을 느끼게되기도 한다.

②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큰 성길에 버려짐(8,9)-시체가 묻히지 못함은 큰 수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③땅에 거하는 자들이 보고 기뻐함(10)-회개하라는 교회의 경고를 세상은 싫어하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그러한 존재가 없어진 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4]죽임을 당한 곳

(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증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버려진 곳은 어떤 곳인가? 소돔과 애굽과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라고 하여서 세가지를 연결시켰는데 이는 “영적으로하면”이라는 말로 연결을 시켜놓고 있다. 즉 그것은 어떠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Morris는 큰 성은 “모든 성이며 동시에 아무 성도 아니다. 그것은 조직된 사회 속에 있는 개화된 인간이다”라고 하였다. 소돔이란 말은 도덕적인 타락(부패)의 깊이로 가장 극한 상태를 가리키고(창19:11-14), 애굽은 교회를 향한 극에 달한 압박과 고난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다(출2:23,24). 그 곳은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예루살렘처럼 반기독교적이요,기독교를 괴롭히는 자들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복음을 증거하고,그리고 그 속에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5:10-12 참조).

5]죽임을 당한 기간

(계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 기간에 대하여서는 사흘 반이라고 한다. 혹자는 이 기간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할사이의 그리스도의 경험-3년사역과 3일간의 죽으심-의 기간을 비유로서 나타낸 것으로 본다. 그 순간에 대하여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그러나 그 기간은 전체의 시간기간(1260일)에 비하여 짧은 기간이다.

*종합적으로 증인의 사역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4.회복되는 증인

그러나 증인은 단순히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1]다시 살아나게 된다.

(계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이것에 강조점은 증인에게 하나님의 역사라고 느낄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때로 교회는 핍박을 당하여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시 살아난다. 궁극적인 승리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이다. 때로 교회는 세상의 유혹과 부패에 함께 썩어져 없어지는 것 같고 때로는 핍박으로 쓰러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때는 바로 삼일 반에 해당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교회는 다시 회복되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갱신이 이루어지고,다시 세상을 향하여 증거하고 있다면 여전히 1260일의 증거의 기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통의 기간이 여러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반복되지만 마지막 불법의 사람이 오게되면 많은 사람들이 배도하게 되어(살후2:3,마24:11-,24) 그 절정에 이르게되지만 그 기간은 극히 짧은 기간이요 교회는 다시 회복되는데 이제는 부분적인 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변화된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계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이는 궁극격으로 주께서 강림감시는 날에 완성이 될 일이다(살전4:17). 이는 은밀한 것이나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원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승리와 진실한 증인이었음이 선언이 된다. 그날에 성도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가?

3]남은 자들이 두려움에 쌓이게 된다.

(계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저들에게 증인이 말한 그 종말론적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은 공포에 질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믿게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실되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저들에게는 회개와 은혜의 날은 지나가고 없다.

(계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이제 세상에 대하여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기회는 지나가 버린 것이다. 멸망만 남은 것이다. 정말 이제는 단순히 목회적인 의미에서 “속히”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시간은 주어지지 않고 마지막 화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두번째 삽입의 모습은 끝나게된다. 이 삽입의 내용은 두번째 화가 임한 세상에 대하여 성도가 하여야 할 사명과 어려움 속에서의 위로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세상이 재앙과 화를 당하면서도 우상숭배와 헛된 행위를 계속행하면서 달려간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그 사실마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 안타까운 사실을 바로 신앙인인 우리가 주님의 증인으로 나가서 고난을 받으면서 아니 죽으면서까지라도 증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제 3막 제 7장 일곱째 나팔-역사의 완성[땅의 멸망]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11: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계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때로소이다 하더라

독수리가 외친 세가지 화 중에 이미 두가지가 지나갔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하는 궁금함으로 우리는 일곱째번 나팔이 울려퍼짐을 듣게된다. 이것은 마지막 나팔이요 마지막 사건이다.

1.일곱째 나팔로 일어나는 사건은 무엇인가?

15-17절의 내용이 일곱째번 나팔의 사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1]시간적으로 언제 일어나는 사건인가?

17절에서 24장로들이 드리는 찬송에서 그리스도를 부르는 명칭을 l:8과 유의하여 비교해 보면 시간적인 내용이 등장을 한다.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 차이점은 간단하다. 장차 올 자요라는 말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 “장차 올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째번 나팔은 l:8에서 말한 장차 올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즉 시간적으로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에 일어날 사건인 것이다.

2]역삭적인 의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완성이된다. 역사의 목표와 의미가 무엇인가?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역사의 목표는 바로 15절에 나온대로 세상나라(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그 유일한 나라)가 주와 그 그리스도(시2:2)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①(계11:15)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이 말은 단순과거로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즉 이미 그리스도의 초림때부터 그 나라가 되는 과정이 계속격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② (계11:15)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이 말은 미래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왕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그 통치, 즉 모든 피조물이 오로지 그분의 뜻에 복종하게 되는 그 완성은 재림때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일곱째번 나팔에서 이미 그 일이 이루어겨서 17절에서 “친히 그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으로 인하여 24장로들이 영광을 누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다. 그러면 이것이 왜 화가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재림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로 인하여서 그러하다.

2.재림의 결과

결과는 두가거로 나타나고 있다.

(계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때로소이다 하더라

1]성도들에게 일어나는 결과-성도들(선지자,성도들,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상주신다.

2]파괴자들

①진노의 심판이 임함

②멸망시킴(살후1:6,7)

성도들에게는 그 재림의 날이 영광의 승리의 날이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는 진노와 멸망의 날이기에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는 것이다.

*일곱 나팔의 모습을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항하면서 사는 땅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재앙과 큰 화를 당하면서도 저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이제 저들을 항하여 직접적인 말로 증거의 사역이 필요한데 그 사역을 오늘 교회에게 맡기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증인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주석 성경말씀]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계 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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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믿음과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계 11:1-19)

1-14절, 성전과 두 증인의 환상

[1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지팡이 같은 갈대는 길이를 재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은 구약적 표현이다. 구약의 성전은 일차적으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또한 그의 몸된 교회인 참된 성도들도 가리켰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참된 성도들을 가리키며 ‘척량한다’는 말은 소유물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신다. 그는 대환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보존하신다. ‘성전 밖 마당’은 성전 뜰만 밟는 중생치 못한 형식적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들은 습관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외식적으로 교회에 다니거나 가족이나 친척의 비위를 맞추려고 다니거나 인간적 교제나 세상적 유익을 위해 다니는 자들이다. 그들은 본질상 이방 사람들이다. 이런 형식적 교인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밖에 있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지도 모르나, 그보다 이름만의 기독교 세계를 가리킨 듯하다. 그 속에는 천주교인들, 각종 이단종파 신봉자들, 자유주의자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의 세계이다. 이름만의 기독교 세계는 이방인에게 마흔 두 달, 즉 3년 반 동안 짓밟힐 것이다. 이 3년 반은 대환난 기간의 일부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3년 반을 의미하든지, 아니면 너무 길지 않은 어떤 기간을 상징할 것이다.

[3-6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본문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에 속한다.

말씀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이시다. 두 증인이 나타나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즉 3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할 것이다. 두 증인의 증거는 확실한 증거로 여겨진다. 예수께서도 전도자들을 둘씩 내보내셨다(눅 10:1). 굵은 베옷은 금식하며 회개할 때 입는 복장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를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것이다.

1260일은 신약교회시대를 가리킬지 모른다. 주께서는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고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 성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고 있다. 그러나 1260일은 여섯째 천사의 나팔로 계시된 유브라데 강에서 시작되는 전쟁이 끝난 후에 이방인들이 형식적 교회들과 교인들을 핍박하는 기간에 더 적합해 보인다. 또 아마 그 기간에 두 증인이 나타날 것이다.

두 증인들은 이 땅의 주, 곧 하나님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였다. 이 표현은 구약 스가랴 4장의 환상에 나오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비슷하다. 본문의 두 증인은 3년 반 환난 기간 중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신약교회 혹은 충성된 두 명의 종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이 감람나무라고 불리는 것은 성령의 끊임없는 공급을 받기 때문이고 촛대라고 불리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 곧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 같은 능력을 가진 신약교회 혹은 두 명의 종들일 것이다. 모세가 물로 피가 되게 하는 기적을 행했듯이, 또 엘리야가 3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하고 또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였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다. 또 그들을 해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모세와 엘리야같이, 그들은 그 사역기간 동안 여러 능력의 일들을 행할 것이다.

[7-8절]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곧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그 두 증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무저갱’은 깊은 구덩이를 가리킨다. 짐승으로 표현된 적그리스도는 짐승같이 사납고 난폭하며 이성과 도덕성이 없는 인물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예언된 ‘불법의 사람’으로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전제적, 독재적 통치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초대교회로부터 활동해왔다. 역사상 로마제국과 로마 천주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활동하였다. 그들은 많은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였고 또 죽였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라고 불릴 절정적 인물이 나타날 것이며 그가 나타나면 그 두 증인들과 싸워 이길 것이고 그들을 죽일 것이라고 보인다.

두 증인들의 시체가 놓여질 큰 성은 적그리스도의 본거지일 것이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렸다. 소돔은 음란한 도시이며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었다. 또 그 도시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곳, 즉 예루살렘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는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으로 표현된다. 그 도시는 뒤에 나올 음녀와 바벨론으로 묘사된 큰 도시와 동일한 도시일 것이다. 그것은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도시를 가리킬 것이다. 역사상 로마가 바로 그런 도시이었다.

[9-10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온 세상 사람들은 그 두 증인의 시체를 3일 반 동안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들이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1-12절]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 . . .

요한은 또 말한다.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도 잠시 동안뿐이었다.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영 혹은 기운이 들어감으로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날 것이고 구경하는 자들은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더구나 부활한 그 증인들은 예수님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주의 재림 시에는 모든 성도가 주를 영접하기 위해 하늘로 올릴 것이다.

[13-14절]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 . . .

요한은 또 말한다.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두 증인의 승천이 있을 때 그 큰 성에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파괴되고 7천명이 죽게 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옛날 애굽의 바로 왕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러했듯이(출 9:27; 10:16, 17; 단 2:46-47), 이런 행위가 그들이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첫째 화와 둘째 화가 지나갔다. 첫째 화는 황충 재앙이고, 둘째 화는 유브라데 강에서의 큰 전쟁과 그 후에 있을 두 증인의 사역과 큰 지진이다. 이제 마지막 화만 남았다. 그것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계시될 것이다.

1절부터 14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전 뜰만 밟는 형식적 교인이 되지 말고,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참된 성도들이 되자. 그들은 속죄신앙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목사들의 교훈을 겸손하게 또 즐거움으로 받자.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셋째로, 우리는 진실한 증인들처럼 순교를 각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증거하자.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다시 살 것이다.

15-19절, 일곱째 나팔과 하늘의 찬송

[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일곱 천사들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들이 하나씩 계시되는 가운데, 이제 일곱째 천사의 나팔로 말미암은 종말 예언이 계시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외치는 승리의 외침이었다. 그 내용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 하나님과 그의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 나라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 주’는 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역사이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예언하였다(단 2:44).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하셨다(마 4:17). 신약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확장의 시대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다 구원받아 주께로 돌아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수가 찰 때, 그리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목표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과 완성은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16-18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24장로들이 엎드려 . . . .

요한은 또 말한다.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24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이는]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왕노릇하심이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하더라.”

24장로들은 하늘의 큰 소리에 화답하여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의 찬송을 올렸다. 24장로들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를 대표할 것이다. 그들은 구약시대의 열두 지파와 신약시대의 열두 사도를 대표하는 것일 것이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을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을 ‘장차 오실 자’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재림의 때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재림의 시간을 미리 앞당겨 하나님의 통치권이 완전히 드러났음을 노래한 것이다.

24장로들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17절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가지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의 일들이 끝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하심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요 내용이다. 18절도 계속 감사의 이유를 말한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의 통치 내용에 대해 좀더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방인들이 분노했을 때 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주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일 것이다. 그 심판의 결과는 보상 혹은 멸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며, 세상을 멸망시키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24장로들의 감사의 내용과 이유이었다.

[19절]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요한은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전은 천국 자체를 상징한 듯하다. 요한계시록 21:22에 보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는 성전이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히브리서 9:23-24에는 하늘 성소에 대해 말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성전 혹은 성소는 천국 자체, 특히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요한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보았고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을 보았다. 그가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를 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에 따른 것임을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약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의 심판이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엄위성을 나타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 나라는 마침내 주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통치는 그 나라에서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영원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둘째로, 모든 인간들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죽은 자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철저하고 공정한 심판이다. 셋째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한 종들과 성도들은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삶을 주실 것이다. 넷째로,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교회를 혼란시키고 세상을 멸망시킨 자들은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영원한 수치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

[마태복음 산상수훈 헬라어 성경말씀] 맹세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5: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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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1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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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에도데 모이 칼라모스 호모이오스 랍도 레곤 에게이레 카이 메트레손 톤 나온 투 데우 카이 토 뒤시아스테리온 카이 투스 프로스퀴눈타스 엔 아우토

개역개정,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새번역,1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우리말성경,1 또 그는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사람들을 측량해라.

가톨릭성경,1 그리고 나에게 지팡이 같은 잣대가 주어지면서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일어나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재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세어라.

영어NIV,1 I was given a reed like a measuring rod and was told, “Go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the altar, and count the worshipers there.

영어NASB,1 And there was given me a measuring rod like a staff; and someone said, “Rise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the altar, and those who worship in it.

영어MSG,1 I was given a stick for a measuring rod and told, “Get up and measure God’s Temple and Altar and everyone worshiping in it.

영어NRSV,1 Then I was given a measuring rod like a staff, and I was told, “Come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the altar and those who worship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εδοθη μοι καλαμος ομοιος ραβδω λεγων εγειραι και μετρησον τον ναον του θεου και το θυσιαστηριον και τους προσκυνουντας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 et datus est mihi calamus similis virgae dicens surge et metire templum Dei et altare et adorantes in eo

히브리어Modern,1 וינתן לי קנה דומה למטה ויעמד המלאך ויאמר קום ומד את היכל יהוה ואת המזבח ואת המשתחוים בו׃

성 경: [계11:1]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은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을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하였다(겔 40:2ff.). 한편 구약성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렘 31:39;슥 1:16;2:1-5). (2) 파괴를 의미한다(삼하 8:2;왕하 21:13;사 28:17; 34:11;애 2:8;암 7:7-9). 본문의 ‘척량’은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21:15-17, 24, 27,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척량되지 않은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량 대상이 설사 고난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척량해야 할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님의 성전. – ‘성전’의 헬라어 ‘나온'(*)은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과는 달리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는 성소를 가리킨다(Johnson, Ladd). 요한이 척량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지상의 성전으로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실제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Holtzmann, Walvoord)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전 3:16;6:19;고후 6:16;엡 2:21,Johnson, Morris, Hendriksen, Charles, Plummer, Beasley-Murray).

제단. – 이것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향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듯하다(8:3;9:13, Hendriksen, Mounce, Hughes).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히 13:10, Johnson)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언약 백성을 의미한다(1:5;5:10, Hughes, Morris, Mounce).

카이 텐 아울렌 텐 엨소덴 투 나우 엨발레 엨소덴 카이 메 아우텐 메트레세스 호티 에도데 토이스 에드네신 카이 텐 폴린 텐 하기안 파테수신 메나스 테쎄라콘타 카이 뒤오

개역개정,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새번역,2 그러나 그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 그러나 성전 바깥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마라. 이는 그것이 이방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그들이 42개월 동안 그 거룩한 도성을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2 성전 바깥뜰은 재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민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들이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영어NIV,2 But exclude the outer court; do not measure it, because it has been given to the Gentiles. They will trample on the holy city for 42 months.

영어NASB,2 “And leave out the court which is outside the temple, and do not measure it, for it has been given to the nations; and they will tread under foot the holy city for forty-two months.

영어MSG,2 Exclude the outside court; don’t measure it. It’s been handed over to non-Jewish outsiders. They’ll desecrate the Holy City for forty-two months.

영어NRSV,2 but do not measure the court outside the temple; leave that out, for it is given over to the nations, and they will trample over the holy city for forty-two months.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την αυλην την εσωθεν του ναου εκβαλε εξω και μη αυτην μετρησης οτι εδοθη τοις εθνεσιν και την πολιν την αγιαν πατησουσιν μηνας τεσσαρακοντα δυο

라틴어Vulgate,2 atrium autem quod est foris templum eice foras et ne metieris eum quoniam datum est gentibus et civitatem sanctam calcabunt mensibus quadraginta duobus

히브리어Modern,2 ואת החצר אשר לפנימה להיכל השלך חוצה ואל תמדנה כי נתנה לגוים ורמסו את העיר הקדשה ארבעים ושנים חדשים׃

성 경: [계11:2]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헤롯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로서 제사자의 뜰, 남자의 뜰 혹은 이스라엘이 뜰, 여자의 뜰이며, 둘째는 성전 밖의 뜰로 이방인의 뜰이다. 이 두부분의 뜰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Johnson). 이러한 두 부분의 뜰 중에서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 ‘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Morris). (2) 혹자는 교회 내에 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ohnson, Mounce, Hendriksen, Kissle).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한마디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Beasley – Murray). 이러한 이방인의 뜰은 척량 대상에서 제외되어 앞절에서 언급된 척량 대상과는 달리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파멸을 당할 것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18절;2:26;19:15;20:3;21:24, 26;22:2). 한편 ‘주었은즉’의 헬라어 ‘에도데'(*)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거룩한 성’에 대한 견해는 두가지이다. (1) 혹자는 ‘성’ 혹은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Holtzmann, Walvoord, Beckwith, Ladd, Rissi). (2) 혹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1:2, 10;22:19, Johnson,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단 7, 9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서 내에서 ‘일천 이백 육십 일'(3절;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하나님의 성소와 유대인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내며(단 8:10, 13; 마카비하 8:2), 본서에서는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2절),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 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Mounce).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Morris).

카이 도소 토이스 뒤신 마르튀신 무 카이 프로페튜수신 헤메라스 킬리아스 디아코시아스 엨세콘타 페리베블레메노이 사쿠스

개역개정,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새번역,3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 내가 내 두 증인에게 권세를 줄 텐데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예언할 것이다.”

가톨릭성경,3 나는 나의 두 증인을 내세워 천이백육십 일 동안 자루옷을 걸치고 예언하게 할 것이다.”

영어NIV,3 And I will give power to my two witnesses, and they will prophesy for 1,260 days, clothed in sackcloth.”

영어NASB,3 “And I will grant authority to my two witnesses, and they will prophesy for twelve hundred and sixty days, clothed in sackcloth.”

영어MSG,3 “Meanwhile, I’ll provide my two Witnesses. Dressed in sackcloth, they’ll prophesy for one thousand two hundred sixty days.

영어NRSV,3 And I will grant my two witnesses authority to prophesy for one thousand two hundred sixty days, wearing sackcloth.”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δωσω τοις δυσιν μαρτυσιν μου και προφητευσουσιν ημερας χιλιας διακοσιας εξηκοντα περιβεβλημενοι σακκους

라틴어Vulgate,3 et dabo duobus testibus meis et prophetabunt diebus mille ducentis sexaginta amicti saccos

히브리어Modern,3 ואתן לשני עדי ונבאו ימים אלף ומאתים וששים מתכסים בשקים׃

성 경: [계11:3]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두 증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혹자는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한다(에녹서 90:11, Tertullian). (2)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Gundry, Barclay). (3) 혹자는 미래의 두 예언자라고 주장한다(Beckwith). (4) 혹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5) 혹자는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Rissi). (6) 혹자는 일천 이백 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기간을 통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 – Murray, Hendriksen).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Hughes).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으며(신 19:15;요 8:17, 18)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막 6:7;눅 10:1). 한편 ‘굵은 베옷’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사 20:2;슥 13:4)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Hughes, Beasley-Murray, Johnson).

후토이 에이신 하이 뒤오 엘라이아이 카이 하이 뒤오 뤼크니아이 하이 에노피온 투 퀴리우 테스 게스 헤스토테스

개역개정,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새번역,4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우리말성경,4 이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요 두 촛대입니다.

가톨릭성경,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영어NIV,4 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lampstands that stand before the Lord of the earth.

영어NASB,4 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lampstands that stand before the Lord of the earth.

영어MSG,4 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the two Lampstands, standing at attention before God on earth.

영어NRSV,4 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lampstands that stand before the Lord of the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4 ουτοι εισιν αι δυο ελαιαι και δυο λυχνιαι αι ενωπιον του θεου της γης εστωσαι

라틴어Vulgate,4 hii sunt duo olivae et duo candelabra in conspectu Domini terrae stantes

히브리어Modern,4 אלה הם שני הזיתים ושתי המנרות העמדים לפני אלהי הארץ׃

성 경: [계11:4]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이 땅의 주 앞에’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Morris). 한편 본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앞절에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을 암시한다(슥 4:1-14).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인 여호수아를 가리킨다(슥 3:1;4:6, 7, 14). 요한은 이 스가랴의 환상을 이용하여 두 증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Ladd). 또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서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촤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진(Swete, Mounce)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마 5:14-16) 세상의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요 1:4, 5, 9) 발해야 한다(Hughes, Johnson).

카이 에이 티스 아우투스 델레이 아디케사이 퓌르 엨포류에타이 에크 투 스토마토스 아우톤 카이 카테스디에이 투스 에크드루스 아우톤 카이 에이 티스 델레세 아우투스 아디케사이 후토스 데이 아우톤 아퐄탄데나이

개역개정,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새번역,5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말성경,5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들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반드시 이같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영어NIV,5 If anyone tries to harm them, fire comes from their mouths and devours their enemies. This is how anyone who wants to harm them must die.

영어NASB,5 And if anyone desires to harm them, fire proceeds out of their mouth and devours their enemies; and if anyone would desire to harm them, in this manner he must be killed.

영어MSG,5 If anyone tries to hurt them, a blast of fire from their mouths will incinerate them–burn them to a crisp just like that.

영어NRSV,5 And if anyone wants to harm them, fire pours from their mouth and consumes their foes; anyone who wants to harm them must be killed in this manner.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ει τις αυτους θελη αδικησαι πυρ εκπορευεται εκ του στοματος αυτων και κατεσθιει τους εχθρους αυτων και ει τις αυτους θελη αδικησαι ουτως δει αυτον αποκτανθηναι

라틴어Vulgate,5 et si quis eos voluerit nocere ignis exiet de ore illorum et devorabit inimicos eorum et si quis voluerit eos laedere sic oportet eum occidi

히브리어Modern,5 וכי יבקש איש להרע להם תצא אש מפיהם ואכלה את איביהם וכן כל המבקש להרע להם מות יומת׃

성 경: [계11:5]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호하신 왕하 1:10과 렘 5:14을 반영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두 증인들이 선포한 예언의 말씀을 암시한다(렘 5:14).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두 증인을 해하려 할지라도 원수들의 손에서 두 증인을 보호하시고 말씀의 선포가 지속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의 입으로 선포하는 불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수들을 철저히 파멸시키신다.

후토이 에쿠신 텐 엨수시안 클레이사이 톤 우라논 히나 메 휘에토스 브레케 타스 헤메라스 테스 프로페테이아스 아우톤 카이 엨수시안 에쿠신 에피 톤 휘다톤 스트레페인 아우타 에이스 하이마 카이 파탘사이 텐 겐 엔 파세 플레게 호사키스 에안 델레소신

개역개정,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새번역,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6 이들은 하늘을 닫을 권세를 가지고 있어 그들이 예언하는 날들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언제든지 원하는 때 갖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NIV,6 These men have power to shut up the sky so that it will not rain during the time they are prophesying; and they have power to turn the waters into blood and to strike the earth with every kind of plague as often as they want.

영어NASB,6 These have the power to shut up the sky, in order that rain may not fall during the days of their prophesying; and they have power over the waters to turn them into blood, and to smite the earth with every plague, as often as they desire.

영어MSG,6 They’ll have power to seal the sky so that it doesn’t rain for the time of their prophesying, power to turn rivers and springs to blood, power to hit earth with any and every disaster as often as they want.

영어NRSV,6 They have authority to shut the sky, so that no rain may fall during the days of their prophesying, and they have authority over the waters to turn them into blood, and to strike the earth with every kind of plague, as often as they desire.

헬라어신약Stephanos,6 ουτοι εχουσιν εξουσιαν κλεισαι τον ουρανον ινα μη βρεχη υετος εν ημεραις αυτων της προφητειας και εξουσιαν εχουσιν επι των υδατων στρεφειν αυτα εις αιμα και παταξαι την γην παση πληγη οσακις εαν θελησωσιν

라틴어Vulgate,6 hii habent potestatem cludendi caelum ne pluat diebus prophetiae ipsorum et potestatem habent super aquas convertendi eas in sanguinem et percutere terram omni plaga quotienscumque voluerint

히브리어Modern,6 ולהם השלטן לעצר את השמים ולא יהיה מטר בימי נבואתם וישלטו על המים להפכם לדם ועל הארץ להכתה בכל נגע מדי יחפצו׃

성 경: [계11:6]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본절은 앞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왕상 17:1).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이것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한다(출 7:20;8:12).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혹자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Barclay). 그러나 누가가 침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눅 1:17) 본절에서 암시한 모세와 엘이야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에 사역하던 역사적 인물의 재출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Ladd). 단지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소유한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Johnson, Beasley-Murray, Hughes).

카이 호탄 텔레소신 텐 마르튀리안 아우톤 토 데리온 토 아나바이논 에크테스 아뷔쑤 포이에세이 멭 아우톤 폴레몬 카이 니케세이 아우투스 카이 아퐄테네이 아우투스

개역개정,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새번역,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우리말성경,7 그들이 그들의 증거를 마칠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공격해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가톨릭성경,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영어NIV,7 Now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comes up from the Abyss will attack them, and overpower and kill them.

영어NASB,7 And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comes up out of the abyss will make war with them, and overcome them and kill them.

영어MSG,7 “When they’ve completed their witness, the Beast from the Abyss will emerge and fight them, conquer and kill them,

영어NRSV,7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the beast that comes up from the bottomless pit will make war on them and conquer them and kill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οταν τελεσωσιν την μαρτυριαν αυτων το θηριον το αναβαινον εκ της αβυσσου ποιησει πολεμον μετ αυτων και νικησει αυτους και αποκτενει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7 et cum finierint testimonium suum bestia quae ascendit de abysso faciet adversus illos bellum et vincet eos et occidet illos

히브리어Modern,7 ואחרי השלימם עדותם החיה העלה מן התהום תעשה עמהם מלחמה ותוכל להם והרגתם׃

성 경: [계11:7]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 ‘증거를 마칠 때에’에서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거하기를 다마쳤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단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짐승’은 본서에서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열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단 7:1-25).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지칭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9:1-11;17:8). 한편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21을 반영하는 것으로 두 증인이 개인적인 두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전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을 암시한다(Beasley-Murray).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줄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6:9-11).

카이 토 프토마 아우톤 에피 테스 플라테이아스 테스 폴레오스 테스 메갈레스 헤티스 칼레이타이 프뉴마티코스 소도마 카이 아이귚토스 호푸 카이 호 퀴리오스 아우톤 에스타우로데

개역개정,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새번역,8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우리말성경,8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큰 도성의 거리에 놓일 것입니다. 이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고모라라 불리는 곳으로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입니다.

가톨릭성경,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영어NIV,8 Their bodies will lie in the street of the great city, which is figuratively called Sodom and Egypt, where also their Lord was crucified.

영어NASB,8 And their dead bodies will lie in the street of the great city which mystically is called Sodom and Egypt, where also their Lord was crucified.

영어MSG,8 leaving their corpses exposed on the street of the Great City spiritually called Sodom and Egypt, the same City where their Master was crucified.

영어NRSV,8 and their dead bodies will lie in the street of the great city that is prophetically called Sodom and Egypt, where also their Lord was cruc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τα πτωματα αυτων επι της πλατειας πολεως της μεγαλης ητις καλειται πνευματικως σοδομα και αιγυπτος οπου και ο κυριος ημων εσταυρωθη

라틴어Vulgate,8 et corpora eorum in plateis civitatis magnae quae vocatur spiritaliter Sodoma et Aegyptus ubi et Dominus eorum crucifixus est

히브리어Modern,8 והיתה נבלתם ברהוב העיר הגדולה הנקראת כפי הרוח בשם סדום ומצרים אשר שם נצלב גם אדנינו׃

성 경: [계11:8]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본절의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내에서 흔히 ‘바벨론’으로 지칭된다(16:19;17:18;18:10, 16, 18, 19, 21). 혹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곳을 가리킨다(Johnson, Morris, Beasley-Murray).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려진다. (1) 소돔. 이 곳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창 19:4-11). (2) 애굽.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카이 블레푸신 에크 톤 라온 카이 퓔론 카이 글로쏜 카이 에드논 토 프토마 아우톤 헤메라스 트레이스 카이 헤미쉬 카이 타 프토마타 아우톤 우크 아피우신 테데나이 에이스 므네마

개역개정,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새번역,9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 두 예언자의 시체를 볼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백성들과 족속들과 언어들과 나라들로부터 온 사람들이 3일 반 동안 그들의 시체를 구경할 것이며 그들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영어NIV,9 For three and a half days men from every people, tribe, language and nation will gaze on their bodies and refuse them burial.

영어NASB,9 And those from the peoples and tribes and tongues and nations will look at their dead bodies for three and a half days, and will not permit their dead bodies to be laid in a tomb.

영어MSG,9 For three and a half days they’ll be there–exposed, prevented from getting a decent burial, stared at by the curious from all over the world.

영어NRSV,9 For three and a half days members of the peoples and tribes and languages and nations will gaze at their dead bodies and refuse to let them be placed in a tomb;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βλεψουσιν εκ των λαων και φυλων και γλωσσων και εθνων τα πτωματα αυτων ημερας τρεις και ημισυ και τα πτωματα αυτων ουκ αφησουσιν τεθηναι εις μνηματα

라틴어Vulgate,9 et videbunt de populis et tribubus et linguis et gentibus corpora eorum per tres dies et dimidium et corpora eorum non sinunt poni in monumentis

히브리어Modern,9 ורבים מן העמים והמשפחות והלשנות והגוים יראו את נבלתם ימים שלשה וחצי ולא יתנו את גויתם לשום בקברים׃

성 경: [계11:9]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에 대한 혹자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구조를 의미한다(Hughes, Morris). 한편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 21:24;렘 8:1), 2;14:16). 짐승은 증인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였으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Morris, Mounce).

사흘 반 동안. –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다. 즉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증인들이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증거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임을 시사한다(Ladd, Mounce, Hendriksen).

카이 호이 카토이쿤테스 에피 테스 게스 카이우신 엪 아우토이스 카이 유프라이논타이 카이 도라 펨프수신 알레로이스 호티 후토이 호이 뒤오 프로페타이 에바사니산 투스 카토이쿤타스 에피 테스 게스

개역개정,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새번역,10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 시체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0 그때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로 인해 서로 선물들을 주고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이는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0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will gloat over them and will celebrate by sending each other gifts, because these two prophets had tormented those who live on the earth.

영어NASB,10 And those who dwell on the earth will rejoice over them and make merry; and they will send gifts to one another, because these two prophets tormented those who dwell on the earth.

영어MSG,10 Those people will cheer at the spectacle, shouting ‘Good riddance!’ and calling for a celebration, for these two prophets pricked the conscience of all the people on earth, made it impossible for them to enjoy their sins.

영어NRSV,10 and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will gloat over them and celebrate and exchange presents, because these two prophets had been a torment to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οι κατοικουντες επι της γης χαρουσιν επ αυτοις και ευφρανθησονται και δωρα πεμψουσιν αλληλοις οτι ουτοι οι δυο προφηται εβασανισαν τους κατοικουντας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10 et inhabitantes terram gaudebunt super illis et iucundabuntur et munera mittent invicem quoniam hii duo prophetae cruciaverunt eos qui inhabitant super terram

히브리어Modern,10 וישבי הארץ ישמחו עליהם ויעלזו וישלחו מנות זה לזה כי שני הנביאים האלה הכאיבו את ישבי הארץ׃

성 경: [계11:10]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3:10;6:10;8:13;13:8, 14;17: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카이 메타 타스 트레이스 헤메라스 카이 헤미쉬 프뉴마 조에스 에크 투 데우 에이셀덴 엔 아우토이스 카이 에스테산 에피 투스 포다스 아우톤 카이 포보스 메가스 에페페센 에피 투스 데오룬타스 아우투스

개역개정,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새번역,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 ㉡또는 ‘영이’

우리말성경,11 그러나 3일 반 후에 생명의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이에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영어NIV,11 But after the three and a half days a breath of life from God entered them, and they stood on their feet, and terror struck those who saw them.

영어NASB,11 And after the three and a half days the breath of life from God came into them, and they stood on their feet; and great fear fell upon those who were beholding them.

영어MSG,11 “Then, after three and a half days, the Living Spirit of God will enter them–they’re on their feet!–and all those gloating spectators will be scared to death.”

영어NRSV,11 But after the three and a half days, the breath of life from God entered them, and they stood on their feet, and those who saw them were terr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μετα τας τρεις ημερας και ημισυ πνευμα ζωης εκ του θεου εισηλθεν επ αυτους και εστησαν επι τους ποδας αυτων και φοβος μεγας επεσεν επι τους θεωρουντας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1 et post dies tres et dimidium spiritus vitae a Deo intravit in eos et steterunt super pedes suos et timor magnus cecidit super eos qui viderunt eos

히브리어Modern,11 ויהי אחרי ימים שלשה וחצי ותבא בהם רוח חיים מאת האלהים ויעמדו על רגליהם ואימה גדולה נפלה על כל ראיהם׃

성 경: [계11:11,12]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본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다(겔 37:5, 10 -12). 여기서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창 2:7;6:17;7:15, 22)두 증인들의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던 짧은 기간 즉 삼 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다. 삼 일 반이 지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하여 서게 됨으로 조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핍바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한다(Morris, Mounce, Johnson).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그리고 영광을 의미한다(Johnson).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으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과 마찬가지로(마 24:30;행 1;9-11) 두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가운데 승천하였다. 한편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두 증인의 승천은 공개성(公開性)을 시사한다. 두 증인의 승천은 절대로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Morris, Swete).

카이 에쿠산 포네스 메갈레스 에크 투 우라누 레구세스 아우토이스 아나바테 호데 카이 아네베산 에이스 톤 우라논 엔 테 네펠레 카이 에데오레산 아우투스 호이 에크드로이 아우톤

개역개정,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새번역,12 그 두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큰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게로’

우리말성경,12 그때 그들은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에 그들은 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가톨릭성경,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영어NIV,12 Then they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to them, “Come up here.” And they went up to heaven in a cloud, while their enemies looked on.

영어NASB,12 And they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to them, “Come up here.” And they went up into heaven in the cloud, and their enemies beheld them.

영어MSG,12 I heard a strong voice out of Heaven calling, “Come up here!” and up they went to Heaven, wrapped in a cloud, their enemies watching it all.

영어NRSV,12 Then they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to them, “Come up here!” And they went up to heaven in a cloud while their enemies watche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ηκουσαν φωνην μεγαλην εκ του ουρανου λεγουσαν αυτοις αναβητε ωδε και ανεβησαν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ν τη νεφελη και εθεωρησαν αυτους οι εχθροι αυτων

라틴어Vulgate,12 et audierunt vocem magnam de caelo dicentem illis ascendite huc et ascenderunt in caelum in nube et viderunt illos inimici eorum

히브리어Modern,12 וישמעו קול גדול מן השמים מדבר אליהם לאמר עלו הנה ויעלו בענן השמימה ושנאיהם ראים אתם׃

카이 엔 에케이네 테 호라 에게네토 세이스모스 메가스 카이 토 데카톤 테스 플레오스 에페센 카이 아펰탄데산 엔 토 세이스모 오노마타 안드로폰 킬리아데스 헾타 카이 호이 로이포이 엠포보이 에게논토 카이 에도칸 돜산 토 데오 투 우라누

개역개정,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새번역,13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는데, 그 지진으로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은 두려움에 싸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말성경,13 바로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 도성의 10분의 1을 무너뜨렸고 7,000명의 사람들이 그 지진으로 죽었습니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가톨릭성경,13 바로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 도성 십분의 일이 무너졌습니다. 그 지진으로 사람도 칠천 명이 죽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싸여 하늘의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영어NIV,13 At that very hour there was a severe earthquake and a tenth of the city collapsed. Seven thousand people were killed in the earthquake, and the survivors were terrified and gave glory to the God of heaven.

영어NASB,13 And in that hour there was a great earthquake, and a tenth of the city fell; and seven thousand people were killed in the earthquake, and the rest were terrified and gave glory to the God of heaven.

영어MSG,13 At that moment there was a gigantic earthquake–a tenth of the city fell to ruin, seven thousand perished in the earthquake, the rest frightened to the core of their being, frightened into giving honor to the God of Heaven.

영어NRSV,13 At that moment there was a great earthquake, and a tenth of the city fell; seven thousand people were killed in the earthquake, and the rest were terrified and gave glory to the God of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εν εκεινη τη ωρα εγενετο σεισμος μεγας και το δεκατον της πολεως επεσεν και απεκτανθησαν εν τω σεισμω ονοματα ανθρωπων χιλιαδες επτα και οι λοιποι εμφοβοι εγενοντο και εδωκαν δοξαν τω θεω του ουρανου

라틴어Vulgate,13 et in illa hora factus est terraemotus magnus et decima pars civitatis cecidit et occisi sunt in terraemotu nomina hominum septem milia et reliqui in timore sunt missi et dederunt gloriam Deo caeli

히브리어Modern,13 ובשעה ההיא היה רעש גדול ותפל עשירית העיר ושבעת אלפים שמות בני אדם נהרגו ברעש והנשארים רעדה אחזתם ויתנו כבוד לאלהי השמים׃

성 경: [계11:13]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두 증인]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본문은 두 증인의 승천 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지진’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의미한다(6:12;겔 38:19, 20;마 27:54). 두 증인의 부활때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죽은 ‘성 십분의 일’의 인구 ‘칠 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당시 예루살렘 성의 인구가 55,000-95,000명이었음을 추측하여(J.Jeremias) 예루살렘 성 주민의 일부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 결과로 유대인이 회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인류 전체의 일부라고 이해하며 이러한 일부에 대한 징계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절). 한편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것은 16:9에 나타난 반응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단순한 두려움이나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헤 우아이 헤 듀테라 아펠덴 이두 헤 우아이 헤 트리테 에르케타이 타퀴

개역개정,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새번역,14 둘째 재난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재난이 곧 닥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4 두 번째 재앙이 지나갔습니다. 세 번째 재앙이 곧 닥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4 둘째 불행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셋째 불행이 곧 닥칠 것입니다.

영어NIV,14 The second woe has passed; the third woe is coming soon.

영어NASB,14 The second woe is past; behold, the third woe is coming quickly.

영어MSG,14 The second doom is past, the third doom coming right on its heels.

영어NRSV,14 The second woe has passed. The third woe is coming very soon.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 ουαι η δευτερα απηλθεν ιδου η ουαι η τριτη ερχεται ταχυ

라틴어Vulgate,14 vae secundum abiit ecce vae tertium veniet cito

히브리어Modern,14 הצרה השנית חלפה הלכה לה והנה הצרה השלישית מהרה תבוא׃

성 경: [계11:14]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일곱째 나팔 재앙]

둘째 화는 지나 같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에 해당되는 화를 의미한다(9:13-11:14). 이 둘째 화 다음에 지체 없이 속히 임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일곱째 나팔’은 10:7 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감추신 비밀에 대해 보여준다.

카이 호 헵도모스 앙겔로스 에살피센 카이 에게논토 포나이 메갈라이 엔 토 우라노 레곤테스 에게네토 헤 바실레이아 투 코스무 투 퀴리우 헤몬 카이 투 크리스투 아우투 카이 바실류세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개역개정,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새번역,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 ㉣또는 ‘메시아’

우리말성경,15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 그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

가톨릭성경,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

영어NIV,15 The seventh angel sounded his trumpet, and there were loud voices in heaven, which said: “The kingdom of the world has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and he will reign for ever and ever.”

영어NASB,15 And the seventh angel sounded; and there arose loud voices in heaven, saying, “The kingdom of the world has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and He will reign forever and ever.”

영어MSG,15 The seventh Angel trumpeted. A crescendo of voices in Heaven sang out, The kingdom of the world is now the Kingdom of our God and his Messiah! He will rule forever and ever!

영어NRSV,15 Then the seventh angel blew his trumpet, and there were loud voices in heaven, saying, “The kingdom of the world has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and of his Messiah, and he will reign forever and ever.”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ο εβδομος αγγελος εσαλπισεν και εγενοντο φωναι μεγαλαι εν τω ουρανω λεγουσαι εγενοντο αι βασιλειαι του κοσμου του κυριου ημων και του χριστου αυτου και βασιλευσει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των αιωνων

라틴어Vulgate,15 et septimus angelus tuba cecinit et factae sunt voces magnae in caelo dicentes factum est regnum huius mundi Domini nostri et Christi eius et regnabit in saecula saeculorum

히브리어Modern,15 והמלאך השביעי תקע בשופר ויהי קלות גדולים בשמים ויאמרו הנה ממלכת העולם היתה לאדיניו ולמשיחו והוא ימלך לעולמי עולמים׃

성 경: [계11:15]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일곱째 나팔 재앙]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큰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늘의 천군 천사’의 음성인 듯하다(Morris, Mounce).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본문은 시 2:2을 반영하는 것으로 큰 음성을 통해 이루어진 선포이다. 여기서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나 본서 내에서는 빈번히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1:8, Ladd, Morris). 이것은 본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이 사단이나 군왕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선포임을 시사한다(Swete, Johnson, Beasley-Murray). 이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사단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1:6, 9;5:10;12:10;19:6;20:4;22:5). 한편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네토'(*)는 단순 과거 시상으로 이 세상의 주권이 사단에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전도되었음을 시사한다(12:10;19:6, 16;요 12:31, Ladd, Morris).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그가…왕노릇하시리로다’의 헬라어 ‘바실류세이'(*)는 단수이다. 이것은 사단에세서 이 세상의 주권을 되찾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주권의 단일성을(unity)을 시사한다(Mounce, Lohmeyer, Beasley-Murray).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왕으로서 단일한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카이 호이 에이코시 테싸레스 프레스뷔테로이 호이 에노피온 투 데우 카데메노이 에피 투스 드로누스 아우톤 에페산 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 카이 프로세퀴네산 토 데오

개역개정,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새번역,16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도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우리말성경,16 그러자 하나님 앞의 자기 보좌에 앉은 24장로들이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가톨릭성경,16 그때에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의 어좌에 앉아 있던 스물네 원로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느님께 경배하며

영어NIV,16 And the twenty-four elders, who were seated on their thrones before God, fell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God,

영어NASB,16 And the twenty-four elders, who sit on their thrones before God, fell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God,

영어MSG,16 The Twenty-four Elders seated before God on their thrones fell to their knees, worshiped,

영어NRSV,16 Then the twenty-four elders who sit on their thrones before God fell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οι εικοσι και τεσσαρες πρεσβυτεροι οι ενωπιον του θεου καθημενοι επι τους θρονους αυτων επεσαν επι τα προσωπα αυτων και προσεκυνησαν τω θεω

라틴어Vulgate,16 et viginti quattuor seniores qui in conspectu Dei sedent in sedibus suis ceciderunt in facies suas et adoraverunt Deum

히브리어Modern,16 ועשרים וארבעה הזקנים הישבים לפני האלהים על כסאותם נפלו על פניהם וישתחוו לאלהים׃

성 경: [계11:16,17]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일곱째 나팔 재앙]

본문은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은 여섯째 인의 심판이 지난 후 나타났었다(7:2).

감사하옵나니 옛적에고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시도다. – ‘잡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일레파스'(*)는 완료 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1)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본 칭호는 앞서 언급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칭호(1;8;4:8)와 대비를 이룬다. 앞서 언급된 칭호에서는 ‘장차 올 자’라는 칭호가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의 오심이 성취되어서 이미 오셨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시사한다(Morris, Johnson, Mounce). (2) 전능하신 이. 분 칭호는 앞서 언급된 ‘큰 권능을 잡으시고’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의 권한과 힘에 대적할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1:8, Morris, Mounce).

레곤테스 유카리스투멘 소이 퀴리에 호 데오스 호 판토크라토르 호 온 카이 호 엔 호티 에일레파스 텐 뒤나민 수 텐 메갈렌 카이 에바실류사스

개역개정,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새번역,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17 말했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을 취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가톨릭성경,17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주 하느님 큰 권능을 쥐시고 친히 다스리기 시작하셨으니 저희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어NIV,17 saying: “We give thanks to you, Lord God Almighty, the One who is and who was, because you have taken your great power and have begun to reign.

영어NASB,17 saying, “We give You thanks, O Lord God, the Almighty, who are and who were, because You have taken Your great power and have begun to reign.

영어MSG,17 and sang, We thank you, O God, Sovereign-Strong, WHO IS AND WHO WAS. You took your great power and took over–reigned!

영어NRSV,17 singing, “We give you thanks, Lord God Almighty, who are and who were, for you have taken your great power and begun to reign.

헬라어신약Stephanos,17 λεγοντες ευχαριστουμεν σοι κυριε ο θεος ο παντοκρατωρ ο ων και ο ην και ο ερχομενος οτι ειληφας την δυναμιν σου την μεγαλην και εβασιλευσας

라틴어Vulgate,17 dicentes gratias agimus tibi Domine Deus omnipotens qui es et qui eras quia accepisti virtutem tuam magnam et regnasti

히브리어Modern,17 ויאמרו מודים אנחנו לך יהוה אלהים צבאות ההוה והיה ויבוא כי לבשת עזך הגדול ותמלך׃

카이 타 에드네 오르기스데산 카이 엘덴 헤 오르게 수 카이 호 카이로스 톤 네크론 크리데나이 카이 두나이 톤 미스돈 토이스 둘로이스 수 토이스 프로페타이스 카이 토이스 하기오이스 카이 토이스 포부메노이스 토 오노마 수 투스 미크루스 카이 투스 메갈루스 카이 디아프데이라이 투스 디아프데이론타스 텐 겐

개역개정,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새번역,18 뭇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우리말성경,18 이에 나라들이 분노했으나 오히려 주의 진노를 내려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가 왔습니다. 주의 종인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며 땅을 더럽힌 사람들을 멸망시키실 때가 왔습니다.”

가톨릭성경,18 민족들이 분개하였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진노가 닥쳤습니다. 이제 죽은 이들이 심판받을 때가 왔습니다. 하느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에게, 그리고 낮은 사람이든 높은 사람이든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이에게 상을 주시고 땅을 파괴하는 자들을 파멸시키실 때가 왔습니다.”

영어NIV,18 The nations were angry; and your wrath has come. The time has come for judging the dead, and for rewarding your servants the prophets and your saints and those who reverence your name, both small and great–and for destroying those who destroy the earth.”

영어NASB,18 “And the nations were enraged, and Your wrath came, and the time came for the dead to be judged, and the time to reward Your bond-servants the prophets and to the saints and to those who fear Your name,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o destroy those who destroy the earth.”

영어MSG,18 The angry nations now get a taste of your anger. The time has come to judge the dead, to reward your servants, all prophets and saints, Reward small and great who fear your Name, and destroy the destroyers of earth.

영어NRSV,18 The nations raged, but your wrath has come, and the time for judging the dead, for rewarding your servants, the prophets and saints and all who fear your name, both small and great, and for destroying those who destroy the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τα εθνη ωργισθησαν και ηλθεν η οργη σου και ο καιρος των νεκρων κριθηναι και δουναι τον μισθον τοις δουλοις σου τοις προφηταις και τοις αγιοις και τοις φοβουμενοις το ονομα σου τοις μικροις και τοις μεγαλοις και διαφθειραι τους διαφθειροντας την γην

라틴어Vulgate,18 et iratae sunt gentes et advenit ira tua et tempus mortuorum iudicari et reddere mercedem servis tuis prophetis et sanctis et timentibus nomen tuum pusillis et magnis et exterminandi eos qui corruperunt terram

히브리어Modern,18 והגוים קצפו ויבא קצפך ועת המתים להשפט ולתת שכר לעבדיך הנביאים ולקדשים וליראי שמך למקטנם ועד גדולם ולהשחית את משחיתי הארץ׃

성 경: [계11:18]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일곱째 나팔 재앙]

이방들이 분노하매…하더라. – 본문은 시 2:2과 병행된다. 열방들은 서로 의논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으신 종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대적과 분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 제공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시 2:5, 12).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보상은 세 범주의 존재들에게 주어진다.

(1)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죽은 자’는 20:11-15과 연결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여부가 정해지게 된다(Ladd, Johnson).

(2)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받을 자에 대해 세 부류 즉 1. 종 선지자(18:20), 2. 순교자나 모든 시대의 믿는 자를 의미하는 성도들(5:8;8:3;13:7, 10;15:4;16:6;18:20, 24), 3.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7;15:4)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 부류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보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Morris).

(3)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바벨론이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나 용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무리를 나타낸다(16:13;19:2, 11;20:10. Beasley – Murray, Johnson). 이러한 자들은 그날에 멸망을 달할 것이다.

카이 에노이게 호 나오스 투 데우 호 엔 토 우라노 카이 오프데 헤 키보토스 테스 디아데케스 아우투 엔 토 나오 아우투 카이 에게논토 아스트라파이 카이 포나이 카이 브론타이 카이 세이스모스 카이 칼라자 메갈레

개역개정,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새번역,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우리말성경,19 그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고 그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러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나면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영어NIV,19 Then God’s temple in heaven was opened, and within his temple was seen the ark of his covenant. And there came flashes of lightning, rumblings, peals of thunder, an earthquake and a great hailstorm.

영어NASB,19 And the temple of God which is in heaven was opened; and the ark of His covenant appeared in His temple, and there were flashes of lightning and sounds and peals of thunder and an earthquake and a great hailstorm.

영어MSG,19 The doors of God’s Temple in Heaven flew open, and the Ark of his Covenant was clearly seen surrounded by flashes of lightning, loud shouts, peals of thunder, an earthquake, and a fierce hailstorm.

영어NRSV,19 Then God’s temple in heaven was opened, and the ark of his covenant was seen within his temple; and there were flashes of lightning, rumblings, peals of thunder, an earthquake, and heavy hail.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ι ηνοιγη ο ναος του θεου εν τω ουρανω και ωφθη η κιβωτος της διαθηκης αυτου εν τω ναω αυτου και εγενοντο αστραπαι και φωναι και βρονται και σεισμος και χαλαζα μεγαλη

라틴어Vulgate,19 et apertum est templum Dei in caelo et visa est arca testamenti eius in templo eius et facta sunt fulgora et voces et terraemotus et grando magna

히브리어Modern,19 ויפתח היכל יהוה בשמים וירא ארון בריתו בהיכל ויהי ברקים וקלות ורעמים ורעש וברד כבד׃

성 경: [계11:19]

주제1: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

주제2: [일곱째 나팔 재앙]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여진 언약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언약궤는 B.C. 586년에 느브갓네살의 침략과 성전의 손실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외경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회복 때까지 언약궤를 숨겨둔 것으로 되어 있다(마카비 2서 2:4-8).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언약궤의 회복을 통해 구원을 소망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Mounce). 그러나 본절의 언약궤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지상성전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과 백성간의 새 언약을 암시한다(Johnson). 옛 언약하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언약궤가 있는 지성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를 의지함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9:11, 12;10:19-22). 그러므로 본절의 언약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Johnson, Morris), 한편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엄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4;5;6:12;8:5;16:17-21) 하나님의 임재와 그 백성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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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1240 – 요한계시록 11장

제 11 장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갈대. 이 갈대는 척량하는 지팡이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그 상징성에 대해서는 겔 40:3, 6; 슥 2:1, 2을 참조하라.

주며. 10장의 사상 전개가 11장으로 이어진다.

일어나서. 요한은 계시 중에 행동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성전. 헬라어 나오스(naos). 참조 3:12; 7:15 주석; 11:19. 1844년 10월 22일의 대실망 후에 재림신도들의 주의는 하늘 성소와 그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일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일에 이끌렸다. 이 언급이 예루살렘에 있는 문자적인 성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요한이 그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성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된 대표자인 유대인의 거절(참조 마 21:43 주석)로 인해 그 성전은 결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경배의 중심지로 회복될 수 없을 것이었다(참조 겔 40:1 주석). 따라서 “경배하는 자들”은 문자적 성전에서 경배하는 문자적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의 자녀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하늘 성전으로 그 경배를 돌린 자들이다(히 8:1, 2).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고 예언의 문맥으로 볼 때, 이 척량은 교회 역사의 특정한 기간에 일어난다.

경배하는 자들. 즉 “이방인”(2절)과 대조되는 참된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다. 경배자들에 대한 척량은 심판 사업임을 암시한다(참조 Ellen G. White, Supplementary Material, on Rev. 11:1).

척량하되. 성이 재건되리라는 보증으로 예루살렘을 척량한, 척량줄을 든 사람에 대한 스가랴의 상징에 기초하여 볼 때(참조 슥 2:2 주석), 이곳에서 성전과 경배자들을 척량하는 것 역시 회복과 보존에 대한 약속으로 제시될 수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비록 그리스도의 재림에 수반되는 두려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뎌낼 한 백성이 하나님께 있다는 삽입구적인 보증이 있다(참조 6:17 주석; 계 7장). 그와 흡사하게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현 삽입구도 나팔이 울릴 때에 수반되는 공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전구속의 계획이 그 가운데 묘사된 성전과 그의 참된 경배자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재보증으로 의도된 것이다.2. 마당. 요한이 잘 알고 있었던 헤롯의 성전에는 여인을 위한 뜰, 이스라엘을 위한 뜰, 제사장들을 위한 뜰로 나뉜 안뜰이 있었다. 이 뜰을 지나서 이방인의 뜰인 큰 바깥뜰이 있었다. 한 벽, “중간에 막힌 담”(엡 2:14)이 안뜰과 바깥뜰을 나누었고 이방인은 누구도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고는 이 벽을 통과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참조 제10권, 76). 이곳에 나온 마당이 “이방인에게 주”어졌다고 언급된 것을 볼 때, 요한이 이 큰 바깥뜰을 특별히 마음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당은 하늘 “하나님의 성전”(1절)과 대조되는 이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교회를 척량함(계 20:12, 13; 벧전 4:17; 벧후 1:10, 11)―엄숙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 심판은 얼마동안 계속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전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하신다. 그대가 그대의 사업차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대를 척량하고 계심을 기억하라. 그대가 가사에 종사하고 있을 때,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대를 척량하고 계심을 기억하라. 그대의 말과 행동이 하늘 책에 사진으로 찍히고 있음을 기억하라…..

누가 마지막 날에 설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성전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굳게 서는 사람은 우리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얻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에 종사하고 있을 때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가를 주목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우리의 구주를 우리의 매일의 생활과 우리가 보통 하는 일과 집안 일들 속으로 모셔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 곧 모든 잡담과 별 유익이 없는 방문 등을 뒤에다 내어 버리고 우리의 몸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로 그분께 바치기를 원한다(원고 4, 1888).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그냥 두라. 요한이 척량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담 안쪽에 들어갈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경배자들이다. 그러한 자들만이 지구에 임할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보존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지상 성소의 이방인을 위한 뜰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이방인”은 경배자가 아닌 자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한다고 고백하지 않은 자들로 이해될 수 있다.

거룩한 성. 즉 예루살렘(단 9:24; 참조 눅 21:20). 바깥뜰을 이방인에게 준다는 것은 거룩한 성이 짓밟힌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루살렘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의 “짓밟으리라”를 참조하라.

마흔두 달. 이 기간은 명백하게 단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동일하다(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짓밟으리라. 이 구절은 넷째 짐승에게 짓밟히는 것을 묘사하는 단 7:7, 23의 기술(참조 단 7:7, 8, 25 주석)과 평행을 이룬다. 이 짐승의 활동이 특별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단 7:25)를 대적하는 것이므로 이곳의 “거룩한 성”을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내가…권세를 주리니. 이 문장은 문자적으로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줄 것이며, 그들은 예언하리라”, 즉 “내가 나의 두 증인으로 예언하게 하리라”이다.

나의 두 증인. 이 상징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다. 5, 6절의 암시는 어떤 이들로 하여금 이 증인을 엘리야와 모세로 파악하도록 이끌었으나(참조 5, 6절 주석), 이 “두 증인”의 의미는 그것을 초월한다. 4절에서 그들은 슥 4:1~6, 11~14에서 유래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와 동일시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14절)로 묘사되었다. 감람나무 가지들은 성전의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듯이(12절),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이 거룩한 존재들로부터 사람에게 나누어진다(참조 슥 4:6, 14 주석; 참조 실물교훈, 408;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38). 인간에게 주어지는 성령에 대한 가장 완전한 표현이 구약과 신약의 말씀에 담겨 있으므로 그들은 두 증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267; 참조 요 5:39 주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시 119:105, 130; 참조 잠 6:23)라고 선포한다.

굵은 베옷을 입고.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슬픔(삼하 3:31)과 회개(욘 3:6, 8)를 나타내는 통상적인 표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전통이 우세하게 되었을 때 슬퍼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참조 단 7:25 주석).

일천이백육십 일. 2절의 “마흔두 달”과 동일한 기간(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예언하리라. 1,260일 동안 악이 지배함(참조 2절 주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령은, 특히 성경에 나타난 것처럼, 그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증언하였다.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주 앞에 섰는. 참조 슥 4:14; 계 11:3 주석.

두 감람나무. 참조 3절 주석.

두 촛대. 곧 “두 등잔대”(참조 1:12 주석). 참조 11:3 주석.

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해하고자. 즉 해하기를 원하거나 해할 마음을 갖는 것.

입. 단수형은 “입들”을 집합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마음”(마 15:8; 막 6:52), “얼굴”(마 15:8; 막 6:52), “얼굴”(마 17:6; 행 7:45)처럼 그런 용법은 헬라어에서 흔하다.

불이 나서. 이것은 아하시야의 사자들에게 내렸던 엘리야의 심판(왕하 1:10, 12)을 상기시킨다. 궁극적으로 성령의 증언에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자들은 불못에서 멸망할 것이다(참조 계 20:15).

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권세.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 “권위.” 엑수시아는 이 절에 두 번 나오며 두 번 다 “권세”로 번역되었다.

닫아. 5절에서와 같이 이것도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왕상 17:1) 혹은 누가가 말했듯이 “세 해 여섯 달”(눅 4:25; 참조 약 5:17)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고 예언했던 엘리야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

물을…피 되게. 이들 증인에 대한 지금까지의 암시는 엘리야를 생각나게 했으나(전술한 것과 5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모세와 애굽에 내린 첫 재앙(출 7:19~21)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재앙. 증인들은 애굽에 첫 번째로 내린 재앙과 동일한 재앙을 그들의 원수 위에 내리게 할 권세를 가졌을 뿐 아니라 어떤 재앙이라도 내리게 할 권세를 가졌다.

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가…마칠 때에. 즉 1,260일의 끝에(참조 단 7:25 주석; 계 11:3).

무저갱. 헬라어 아붓소스(abussos). 참조 9:1 주석. 아래의 “짐승”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프랑스와 관련해서, 그 짐승이 무저갱에서부터 올라왔다는 사실은 그 나라가 아무런 기초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 나라는 무신론적 권력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형태의 악마적 권세였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269).

짐승. 헬라어 토 쎄리온(to the-rion), “야생의 짐승.” 지금까지 요한은 “짐승”(쎄리온[the-rion], 4:6의 “네 생물”은 실제로 짐승이 아님. 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을 언급한 적이 없다. “그 짐승”이라는 표현은 독자들이 이 짐승이 어떤 짐승인지 이해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징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다.

“그 짐승”이라는 표현이 이미 확인된 존재를 암시한다는 견해를 가진 주석자들은, 그러한 존재를 계시록에서는 발견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다니엘서에서 찾는데, 그곳에서 현저한 짐승은 단 7장의 네 번째 짐승이다. 더욱이 그들은 그 짐승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것 때문에, 지금 짐승이 구약에서 바다와 뚜렷한 연관을 가진(참조 velation/9/1e 주석) “무저갱(아붓소스[abussos])에서부터 올라”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다니엘의 네 번째 짐승으로 상징된 그 권세, 특히 그것의 나중 단계가 두 증인을 죽이는 권세가 된다.

다른 주석자들은 이 짐승을 1,260일 기간의 끝인 AD 1798년(참조 단 7:25 주석)에 두 증인으로 상징된, 성경을 파기하려고 추구하는 권세로 파악한다. 이 시기에 무신론이 프랑스에서 특히 성행했으며, 당시의 반종교적인 정신이 자연스레 성경을 사용하고 믿는 일을 방해했으므로, 프랑스 제1공화국을 이 구절의 짐승으로 여겨왔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대체로 나중의 견해를 견지한다.

저희를 죽일 터인즉. 즉 하나님의 말씀을 파기하려고 시도하는 것. 프랑스가 종교에 대해 수행한 전쟁의 방법은 9절 주석을 참조하라.

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시체 (bodies). 본문상의 증거는 이것과 “body”라는 독법이 엇갈려 나타난다(참조 20쪽). 그러나 5절의 “입”이라는 말처럼(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단수가 집합적으로 사용되었다.

큰 성. 이 성을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는 주장은 이것을 2절의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주석자가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을, 소돔과 애굽이라는 지명이 분명 그렇게 이해되듯이, 비유적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큰 성”을 프랑스로 간주했는데, 1,260년 기간이 마쳐질 무렵 프랑스는 이 말이 상징한 특성들을 보여 주었다. 대체적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 나중 견해를 받아들인다.

있으리니. 시체를 매장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는 것은 혐오스런 모욕으로 여겨져 왔다. 참조 계 11:9 주석; 시 79:2, 3.

영적으로 하면. 헬라어 프뉴마티코스(pneumatikos), 즉 문자적으로가 아닌, 영적인 비유의 말로 하자면(참조 사 1:10).

소돔. 소돔은 도덕적 타락을 상징한다(겔 16:46~55). 혁명 기간에 프랑스의 상태는 그러했다.

애굽. 이 나라는 참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출 5:2)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가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의 특징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곧 프랑스에서 일어난 핍박으로 죽임을 당한 많은 이들을 대신해서.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백성들과 족속. 다른 나라들. 이들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성경에 대한 전쟁을 주시하였다.

사흘 반. 예언 해석의 원칙과 일치되게 1일이 1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사흘 반”은 삼 년 반이 된다. 7절의 짐승이, 특히 반종교적 경향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제1공화국(1792~ 1804)을 의미한다고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인들은 이 예언이 무신론이 그 절정에 달했던 프랑스 혁명사의 그 짧은 기간에 성취되었다고 본다. 그 기간은 1793년 11월 10일, 파리에서 발포된 법령이 종교를 폐지하던 때로부터 1797년 6월 17일, 프랑스 정부가 종교령에 따른 제한을 철회한 때까지로 계산될 수 있다.

계시의 다른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사흘 반”의 문제는 주석자들의 상당한 견해의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어 왔다. 이것은 상징성 자체의 어떤 문제점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라는 격동의 역사에 정확한 날짜를 정하는 어려움 때문에도 그랬다. 그러나 다행히 이 기간의 정확한 위치가 성경의 위대한 예언적 기간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거나 그것이 속해 있는 예언의 주요 주제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괴롭게 한 고로. 그들이 하는 예언의 양심을 찌르는 능력에 의해(참조 3절). 죄책감이라는 고문보다 더 큰 고문은 없다. 진리와 의가 고집스러운 죄인 앞에 지속적으로 제시될 때, 그것은 종종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땅에 거하는 자들. 참조 3:10 주석.

기뻐하여. 헬라어 유프라이노(euphraino-),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유프라이노는 눅 12:19에서 “즐거워하자”로 번역되었다. 이제 악한 자들은 두 증인의 고문, 즉 양심에 가책을 주는 증언에서 벗어나 환락에 스스로 빠져들므로 그들의 양심을 잠재운다.

예물을 보내리라. 즐거워함의 표식. 참조 에 9:22.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삼 일 반 후에. 즉 증인들의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공중이 보도록 노출된 채 버려져 있는 기간의 끝에(참조 9절 주석).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생명의 시여자인 하나님이 그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을 일으킨다.

생기. 즉 생명인 영. 이곳에 쓰인 헬라어 구절은 「70인역」에서 히브리어 루아흐 하이임(ruah. h.ayyim), “생명의 기식”(창 6:17; 창 7:15)을 번역하는 데 사용하였다. 히브리어는 사실상 호흡을 생명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생명의 호흡이 사람에게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생명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참조 창 2:7).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참조 왕하 13:21; 겔 37:10.

크게 두려워하더라.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에 악한 자들을 괴롭게 했던(참조 10절 주석) 죄책감이 다시 한 번 발동한다. 증인들의 죽음에 기뻐하던 자들은 이제 이 증인들의 부활의 기적을 목도하고 망연자실해 한다.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어 있지 않으나 아마도 그는 하나님일 것이다.

이리로 올라오라. 증인들은 하나님에 의해 부활할 뿐 아니라 하늘로 들어오라는 명령도 받는다. 그리하여 “저희 원수들”이 “저희”를 보는 중에 그들은 그들이 당한 능욕으로부터 완전히 변호를 받으며 그들이 1,260일 동안 충실하게 선포한 예언의 진리는 모든 이에게 제시된다. 그들을 파멸시키려고 했던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친히 그들을 하늘로 환영해 들인다.

증인들이 이렇게 높아진 것은 19세기 초 이후로 성경이 누렸던 두드러진 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여러 나라에 성서공회가 설립되었다. 이들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804년에 설립된 영국 및 국외 성서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와 1816년에 조직된 미국성서공회이다. 이 공회들은 다른 공회들과 함께 1,500개 이상의 언어로 성경의 각권을 유포시켰다. 그리하여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성경은 영적 지침서로서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보다는 가장 널리 유포되는 호기를 누렸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셨을 때,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행 1:9). 그와 같이 두 증인도 구름 가운데 하늘로 올려진다. 이 비유는 프랑스에서 탄압을 받은 후에 성경이 높아지는 것을 적절하게 묘사한다(참조 계 11:9 주석; 단 4:22).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위의 “이리로 올라오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그 시에. 즉 증인들이 올라간 다음 즉시.

큰 지진. 지진의 상징은 재림 직전의 세상을 특징짓는 소란과 격변을 묘사하기 위하여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참조 막 13:8; 계 16:18). 이 예언을 프랑스에 적용하면서, 주석자들은 지진이 18세기 말엽에 그 나라를 뒤흔든 격변을 묘사한 것으로 본다.

십분의 일. 이때에 그 성의 일부분(참조 2, 8절 주석)만 무너졌으므로(참조 16:18), 이것은 마지막 지진이 아니다. 이 지진은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한 자들 중 얼마를 두렵게 하여 굴복하게 한 일시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성 10분의 1”이라는 표현을, 프랑스가 멸망한 로마 제국에서 일어난 “열 왕” 중 하나(단 7:24)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프랑스 전 나라에 적용한다. 다른 이들은 그 성을 교황 로마로 그리고 프랑스를 그 열 개의 분열국 중 하나로 파악한다.

사람. 헬라어 오노마타 안쓰로폰(onomata anthro-po-n), 문자적으로 “사람들의 이름들.” 어떤 이들은 이곳의 단어 오노마타, “이름들”을 “인격체들”(참조 행 3:16 주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다른 이들은 오노마타를 프랑스 혁명 기간에 억압된 직함, 직임 혹은 계급에 적용한다.

칠천. 비교적 사람의 수가 적게 제시되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이 그 증언을 멸시하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는 충분하다.

하늘의 하나님. 이 명칭은 다니엘서에 흔하게 나타난다(참조 단 2:18, 19, 37, 44; 스 5:11, 12; 6:9; 7:12).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둘째 화. 즉 1840년에 끝난, 여섯째 나팔이 울릴 때 있게 되는 심판(참조 8:13; 9:12; 9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셋째 화. 즉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묘사된 사건들(15~19절).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일곱째 천사. 이것은 셋째 화의 시작(참조 14절 주석)과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 사이의 삽입구(10:1~11:14; 참조 11:1 주석)의 끝을 표시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 시작을 1844년으로 산정한다(참조 19절 주석).

큰 음성들. 이들은 아마도 하늘 천사들의 음성일 것이다(참조 5:11, 12). 이와 비슷하게 일곱째 재앙 때에도 한 큰 음성이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부터 들린다(16:17).

나라. (「제임스왕역」에는 “kingdoms”[나라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는 “나라”(kingdom)라는 독법을 입증한다. 그리스도는 이 지구에 다시 오기 직전에 나라를 받는다(참조 단 7:14 주석). 그가 올 때 지상의 모든 저항은 분쇄될 것이다(참조 계 17:14 주석).

그 그리스도. 즉 그분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참조 시 2:2).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지 않은 하늘의 천사들은 그분을 “그의[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언급한다.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특별히 구속의 사업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신격의 제2위를 언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참조 단 2:44; 7:14, 27; 눅 1:33.

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십사 장로들. 참조 4장 주석.

엎드려 얼굴을 대고. 참조 4:10.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옛적에도 계셨고. 참조 1:4 주석.

시방도 계신. 참조 1:4 주석.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 참조 1:8 주석. 특별히 승리자로서의 하나님에게 적합한 명칭.

잡으시고 왕 노릇하시도다. 헬라어의 시제로 볼 때는 “잡으셨고 왕 노릇하셨도다”, 즉 “잡으셨고 왕 노릇을 시작하셨다”라는 의미이다. 성공적 통치는 하나님이 그의 전능함을 주장할 때 시작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전능하셨으며 죄의 통치는 다만 피조물에게 악의 진정한 성격이 드러나도록 그분이 허용할 때에만 있어 왔다. 그 목적이 성취될 때 그는 그의 “큰 권능”을 잡고 다시 한 번 최고의 통치를 베푼다. 참조 고전 15:24~28.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방들이 분노하매. 참조 시 2:1.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이방들의 상태가 그럴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과 백성을 대적하기 위하여 동맹할 것이다(참조 계 13:12; 14:8 주석).

진노. 하나님의 진노는 마지막 일곱 재앙에 다 들어 있다(15:1). 그리스도를 반대하던 일은 이 재앙으로 제지된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상과 멸망 두 가지가 다 언급된 것은 요한이 천년기 후에 있을 마지막 심판(20:12~15)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종…에게 상 주시며. 참조 마 5:12; 6:1; 고전 3:8; 계 22:12. 열거된 사건들은 잇따라 일어나는 것(참조 초기문집, 36)이므로, 이곳에서 말하는 상은 천년기의 끝에 새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선지자들. 하나님을 옹호하여 목소리를 높였던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 이 부류는 무거운 짐을 졌으며 자주 그들의 주를 위하여 가장 혹독한 고난을 당했다.

성도들. 곧 “거룩한 자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그들의 삶의 순결함으로 특징지어진다.

무론 대소하고. 마지막 심판에는 세상의 신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

경외하는 자들. 헬라어 호이 포부메노이(hoi phoboumenoi), 완전히 이스라엘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참하나님을 경배하던 자들(참조 행 10:2 주석)에 대해 사도행전에서 사용한 용어. 만약 그와 동일한 일반적 의미가 여기에서 의도되었다면, 심판 때에 상을 받는 이 세 번째 부류는 그리스도와 그의 방식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으나 그들에게 이르러 온 빛을 따라 충실하게 산 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했으므로 그들 역시 상을 받는다(참조 시대의 소망, 638). 한편 호이 포부메노이는 단순히 “성도들”로 번역된 단어와 동격일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문장은 “성도들, 곧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로 읽힌다.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지구를 물리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파괴해 온 악한 자들의 파멸은 매우 적절하다. 그들 자신이 파멸된다.

때. 헬라어 카이로스(kairos), 명확한 목적을 띤 특정한 시간(참조 1:3 주석). 이는 심판의 시간, 상과 멸망을 받는 때이다.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성전. 요한의 눈앞에 계시의 초점인 “하나님의 언약궤”와 더불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린다. 이제 하늘에 있는 “참 것의 사본”(히 9:24, 「개정표준역」)이었던 표상적인 성소 안에는, 심판에 대한 상징적인 날인 대속죄일 봉사의 중심이었던 법궤가 지성소 안에 있었다. 요한이 하늘의 성전과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궤”를 본 것은 일곱째 나팔의 시작과 연관되어서이다. 이것은 상징적인 대속죄일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이 시작되었음을 지적한다. 다른 성경절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이 마지막 국면이 1844년에 시작되었음을 드러낸다(참조 단 8:14 주석). 따라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일곱째 나팔의 시작 연대를 그 해로 정한다.

하나님의 언약궤. 상징적인 성소 안에 있던 언약궤는 모든 인간과 모든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불변의 도덕률인 십계명의 보관소였다. 유대인 당시에 하나님을 믿었던 자는 누구나 십계명을 떠올리면 곧바로 언약궤를 생각했다. 하늘에 있는 언약궤에 대한 요한의 이상은, 이 땅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도덕률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참조 12:17; 14:12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433).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 일곱째 재앙 아래에서와 같다(16:18).

지진. 일곱째 재앙 아래에서와 같다(17:18, 19; 참조 11:13 주석).

큰 우박. 일곱째 재앙 아래에서와 같다(16:21).

돌판들은 확신을 주시는 증거(출 31:18; 사 6:1-7; 58:12-14 주해 참조)―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이 공개될 때 충성을 다하여 온 진실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감격적인 승리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성전 안에는 두 돌비, 곧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두 돌비가 보일 것이다. 가리워 놓았던 곳에서 두 돌비를 가져 나오실 것이다. 그 돌비들 위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새겨진 십계명이 보일 것이다. 지금 언약궤 속에 들어있는 이 돌비들은 진리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며, 구속력이 있는 하나님의 요구가 될 것이다(편지 47, 1902).

하늘 언약궤에 십계명이 있음―신성 모독적인 머리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에는 그들은 아주 큰 힘을 가졌기 때문에 여호와의 때와 법을 변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늘의 기록 보관소, 하나님의 언약궤 속에는 두 돌비에 기록된 십계명의 원본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 땅의 어떤 세도가라도 시은소 아래 그 거룩한 곳에서 그 돌판들을 꺼내어 올만한 권세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사인즈 187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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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량하지 않는 것. 그것은 “성전 밖 마당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성전 밖 홀은 헤롯이 성전 본 건물에 첨가하여 지은 것으로 “이방인의 뜰”이라는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드리안(Adrian)이 그 도성과 성전 밖 마당을 만들고 이 “홀”을 아일리아(AELIA)라고 명령한 후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성전 밖 마당을 척량하지 않은 이유. 이 성전 밖 마당은 솔로몬이나 스룹바벨 왕이 지은 어전의 본래의 원형에는 없었던 것으로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마당을 개의치 않으신 것이다. 그는 이 성전 마당을 자신의 보호밖에 두었다. 이 성전 마당은 이방인들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그들이 이방의 제의와 관습을 끌어들여 복음 교회에 덧붙이기 위해서 세워졌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 성전 뜰을 그들에게 맡겨버려서 좋을 대로 사용하게 했으며 마흔 두 달 동안 그 성과 성전 밖 마당이 넓힘을 당하게 하셨다. 어떤 이는 이 기간을 적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이라고 말한다. 성전 밖 마당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거짓된 방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거나 위선적인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고 그의 원수들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말씀의 개괄적 의미.하나님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성전과 제단을 이 세상에 두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님은 이 성전에 대한 엄격한 관심을 보이시며 이 성전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목하신다는 사실이다.성전 밖 마당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물리침을 당할 것이며 오직 휘장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만 열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거룩한 성, 보이는 교회는 이 세상에서 많은 학대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그러나 교회의 폐허는 제한된 기간 동안만일 것이며 곧 교회는 모든 고난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전.” 여기서 성전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복음 시대의 교회를 뜻한다. 교회는 언제나 자신이 복음의 규격대로 세워졌는지 혹시 교회가 너무 좁거나 또는 크지나 않는지 또 그 문이 너무 넓거나 또는 좁지나 않는지 재볼 필요가 있다.제단. 이는 일반적으로 예배의 엄숙한 행위가 수행되는 장소를 말한다고 하겠다. 교회는 그 본질이나 위치, 모든 면에 있어서 참된 제단을 가지고 있는지를 재어 보아야 한다. 본질이라 함은 그들이 제단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며 또 그들의 모든 제물을 과연 제단에 드리고 있느냐 하는 본래의 목적에 부응하느냐는 여부에 대한 물음을 말하는 것이요, 위치라 함은 그 제단이 가장 거룩한 곳에 위치하여 있는지 즉 교인들이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을 말한다.경배하는 자 또한 척량되어져야만 함을 본문은 말해 준다. 즉 그들의 예배의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며 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지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지 또 “그들의 생활을 복음에 합당한 것인지”를 척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본문에 예언된 재난과 위기가 닥칠 때 성전의 보호를 대비해서 척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또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시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시온산에 세워진 원래의 예루살렘 성전에 비할 때 현재의 성전이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성전을 개혁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불충분하고 결함 있는 성전은 참된 원형을 따라 개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 기록된 성전 척량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이 참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스겔의 환상과 사도 요한의 환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자의 성전 척량은 성전 재건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후자의 척량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1:3

하나님의 두 증인 (요한 계시록 11:3-13)

짓밟힘을 당하는 마흔 두달 동안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증인들을 보전하신다. 이들 증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의 뛰어난 법도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Ⅰ. 증인들의 수효, 비록 증인의 수는 매우 적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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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효는 지극히 적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의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박해시에는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멀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시에 한 증인은 평화로울 때의 많은 수의 교인들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이 수는 비록 적은 수지만 그러나 충분한 수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을 둘씩둘씩 파견했다.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여기서 말하는 두 증인은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들리어 올라간 에녹과 엘리야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의 교회와 믿는 이방인들의 교회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두 증인은 최악의 경지에서도 기독교 복음만을 고백하고 그것을 전파할 하나님의 충성된 뛰어난 사역자들을 말한다고 봄이 옳겠다.

Ⅱ. 증인들의 예언 기간, 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간. 그 기간은 “일천 이백 육십 일”이다. 즉 이 기간은 적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시기를 말한다. 만일 예언의 기간이 언제부터를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 낼 수 있다면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세상 끝날이 언제가 될지를 가름해 볼 수도 있으리라.

Ⅲ. 증인들의 복장과 모습. 그들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 이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지위와 그리스도의 이권(利權)이 실추되고 몰락되었음을 슬퍼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Ⅳ. 그 증인들의 크고도 어려운 과업을 위임 맡은 동안 그들로 하여금 굳게 설 수 있게 해 준 도움의 근원. 그들은 온 세상의 하나님 앞에 섰고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언의 권세를 주셨다. 그는 그들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같게 하셨다. 즉 그들을 스가랴가 환상 중에서 본 두 감람나무와 촛대와 같게 하셨다(슥 4:2 이하). 그는 그들에게 거룩한 열심의 기름을 부으시며 용기와 힘과 위안을 주셨다. 그는 그들을 감람나무로 삼으시고 또 그들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기름을 그에게 공급받으므로 그들이 믿음의 고백의 등에 계속 불을 밝힐 수 있게 하셨다. 그들은 등에만 기름을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그릇에 이 기름을 공급받고 있었다. 이는 곧 그들이 영적인 생을 살며 빛 가운데 거하며 열심을 다하는 계속적인 신앙의 생을 말하는 것이다.

Ⅴ. 증인들이 예언하는 동안에 그들이 받은 안전과 보호. 본문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 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하였다”(5절)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십 부장과 그 오십 인이 왔을 때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요청했던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왕하 1:12).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렘 5:14)고 하셨다고 이 말씀대로 증인들은 그들의 기도와 말씀 전파와 용기 있는 고난과 맞섬을 통하여 많은 박해자들의 양심과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줄 것이다. 이들 박해자들은 스스로 자이를 정죄하고 자기를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난 후의 바스훌과 같은 상태에 처할 것이다(렘 20:4). 그러나 증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누리시는 권한에 참여할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따라 그들의 적들에게 역병과 심판을 내리시고 그가 바로 왕에게 하셨듯이 하늘의 우로를 막고, 하늘 문을 닫아 거심으로 많은 날 동안 비가 오지 않게도 하실 것이다(왕하 17:1). 하나님은 박해자들을 향해 활을 당기시며 그들이 그의 백성을 괴롭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온역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그들로 “가시를 발로 차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게 하신다.

Ⅵ. 증언들의 살해당함. 그들은 그들의 증거를 보다 강하게 내보이기 위하여 그들의 피로 자신들의 증거를 인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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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이 죽음을 당할 시기. 그 시기는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그들의 소임이 끝날 때까지는 그들은 결코 상처를 입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욱이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그들의 증거가 끝날 때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께 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굵은 베 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년이 거의 끝날 때까지 예언을 했을 때 그들은 적 그리스도인들이 악랄함의 마지막으로 발작을 일으킬 것을 각오해야 한다.증인들을 이기고 죽이게 될 원수. 이 원수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다. 마귀의 유익한 도구인 적 그리스도가 증인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이 원수는 간교하고 궤변적인 교훈으로 무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주로 폭력과 무력으로 무장을 갖춘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의 원수들이 그의 증인들을 대적하려고 하는 것을 당분간 허용을 하실 것이다.살육 당한 증인들의 시체에 대한 저희들의 야만적인 처우. 그들의 원수들의 악은, 증인들의 피를 보고 살육 을 한 것으로 만족치 않고 죽은 시체에까지도 악을 행한다.그들은 증인들의 시체가 무덤 속에 조용히 매장하는 것마저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증인들의 시체는 바벨론의 중심거리나 대로에 또는 그 도시로 가는 넓은 진입로에 놓이게 된다. 이 도성은 그 끔찍한 죄악 때문에 애굽이라고도 한다. 신비스러운 육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보다 바로 이 도성에서 더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그들의 시체들은 이 세상 거민들에 의해 욕을 보았고 또 그들의 죽음은 적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게는 기쁨과 환락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10절). 그들은 이 증인들이 제거된 것을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이 증인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모본을 통하여 적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고통과 두려움을 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영적인 무기는 악인의 심령을 쪼개며 그러므로 악인들은 신실한 자에 대하여 큰 분노와 잔악함을 품게 되는 것이다.

Ⅶ. 증인들의 부활과 그에 따르는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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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부활의 시기. 죽임을 당한지 “삼일 반 후”(11절) 그들은 다시 일어난다. 이 기간은 그들이 예언하던 기간에 비해서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이 말씀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 있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너희의 죽은 몸도 산 것이며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사람들이 그의 재생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의 나사로의 부활과 관계 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죽임을 당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있기 전에 그들이 육체로 부활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그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계속 부활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업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끝난 것같이 보일 때에도 그 사업을 다시 소생시킨다.증인들을 부활시키는 능력. 이에 대하여 본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섰다”(11절)고 하였다. 하나님은 죽음에 생기를 불어넣으실 뿐만 아니라 힘도 불어넣으신다.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살리실 수 있다.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생명의 성령이시다. 이 생명의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죽은 시체를 살리시며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죽어 가는 듯한 이권(利權)을 살리신다.증인들의 부활이 그들을 괴롭히던 원수들에게 미치는 효과, 본문에 “그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과업과 증인들의 소생은 그의 원수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될 것이다. 죄악이 있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또한 박해하는 영은 비록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용기 있는 영이 아니라 비겁한 영이다. 그러므로 헤롯 왕도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Ⅷ. 증인들의 승천과 그 결과(12,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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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의 승천. 하늘이란 말씀을 이 세상에 있는 은혜의 왕국인 교회의 찬란한 모습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고 위에 있는 영광의 나라의 보좌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12절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즉 이 세상에서와 심판의 큰 날에 적지 않은 수의 박해자들이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이 큰 영광 중에 들림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까지 그의 신자들은 이 영광의 승천을 하려 하지 않는다. 주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교회 안에서나 하늘에서나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섬김을 회피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서둘러 보상을 붙잡으려 해서도 안된다. 다만 주께서 부르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기쁨으로 그 앞에 들림을 받을 것이다.증인들의 승천 결과. 적 그리스도인의 나라에 큰 충격과 동요가 일어나고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진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종교 개혁의 서막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본다. 사실 종교 개혁시 많은 제왕들과 나라들이 로마 제국에게 대한, 예속 상태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이 위대한 개혁 사업은 많은 공격을 받았다. 적 그리스도인들은 결정타를 당했으며 그들의 많은 근거지와 이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그들은 그 당시 뽑혀진 전쟁의 칼날에 의하여 치명타를 당하였다. 또 적 그리스도의 기치 아래서 싸우던 많은 사람들이 이 칼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그들은 성령의 검에 의하여 치명타를 당하였다.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넘어졌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미신과 우상 숭배와 과오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참된 회개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므로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같이 하나님의 사업과 그의 증인들이 소생하면 악마의 일과 악마의 증인들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된다.

박윤선 주석, 요한계시록 11장

계 11:1

지팡이 같은 갈대 – 겔 40:3, 42:20 참조.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성전”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나오스(* )니 지성소(至聖所)를 의미한다. 그러면 여기 지성소와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영적 성전 곧, 기독 교회를 가리키는 비유이다(Charles, Swete). “척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소유의 회복이나 소유의 확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위이니(겔 40:2, 43:13), 하나님의 교회의 신약적 건설(新約的建設)을 통하여 택한 백성을 소집하는일 곧, 복음으로 돌아올것을 비유한다고 한다.)

계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이것은, 외부적으로 혹은 명목(名目的)으로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 특별히 예수님과 사도들 당시에, 유대인이라는 자세만 하고 복음은 받지 아니한 자들을 새로이 이스라엘 운동(복음 운동)에서 기각(棄却)함이다(Swete). 외양으로 유대인 된것이 이스라엘 자손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서 주님을 신앙하는 것 만이 이스라엘 자손의 자격이다(롬 9:6, 7).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것은, 유태인이 그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뒤에, 이방인들이 그 땅을 주관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데, 곧,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이다(눅 21:24). 그들이 복음을 배척한 죄로 과연 그렇게 되었다.

마흔 두달 동안 – 이것은, 단 – 9:24-27에 있는 말씀을 해석함으로 알 수 있는 기간인 둣하다. 다니엘서를 보면 “마흔 두달”은, 세계 종말의 최후 한 주간의 전반부(前半部)이다. 그 후반부(後半部)는 아주심독한 환난으로 가득할 터인데,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바와 같다. 그런데 위에 말한 전반부는 여자적 연수(如子的年數)가 아니고, 상징적 연수로서 적그리스도가 최후 활동하기 전의 신약 시대 전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것은, 복음서에 있는 이방인의 때를 가리킨다(눅 21:24).

계 11:3

두증인 – 이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서 두 가지 의견이 있다. (1)촬스(Charles)는, 이것이, 율법의 대표자 모세와 예언의 대표자 엘리야가 이세상 말기에 땅위에 다시 나타날 사실을 가리킨다 하였으나, (2) 다음 귀절에 있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란 말씀이, 슥4:14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아서 여기 “두 증인”은 교회를 가리킨다. 스가랴서 3,4장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예수살렘 성전 재건자 스룹바벧을 당시 교회의 대표자들로 취급하였다(느 7:5-7).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의 교회를 표상(表象)하였다. 그처럼 계시록의 이 장절의 “두 증인도” 신약교회의 표상이다. 그러나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두 증인”을 가리켜서, “주님의 증인들”이라고 하였으니(Zij worden in ons vers getuigen van den Heere genoemd), 이는, 교회의 모든 참된 증인들을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이 해석은, “두 증인”이 교회라는 해석과 다를 것 없다. 그 이유는, 계시록의 이 장절이 말하는 “두 증인”은, 복음을 증거하는 참된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증인의 이수(二數)는, 증거상 신실(信實)을 성립시키는데 요구되는 수효이다(신 19:15).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때에 두 사람씩 보내신 것도 이뜻이다. 또한 성경에는 두 사람을 가지고 협력의 의미로도 말한 바 있다(전 4:9, 12)

굵은 베옷을 입고 – 이것은 통회(通悔)의 비애(悲哀)를 상징한다(왕상 21:27: 마 11:21 참조). 이들의 통회의 슬픔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보다 세상 사람들의 죄에 대한 것이다. 예언자나 전도자는, 이렇게 남들의 죄에대하여 연대 책임(連帶責任)을 지고(히 11:17), 그들의 영혼 구원의 문제를 맡은 자들이다(겔 3:16 -21). 일천 이백 육십일 – 앞에 2절의 42개월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서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두 증인으로 상징된 교회가 복음을 증거한다.

계 11:4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 – 이말씀은, 위의 3절에서 말한, “두 증인”과 같은 뜻이다. 스가랴서 4장에 의하면, “두 감람나무”는 기름을 촛대에 공급하는 것이므로, 성령의 역사 있는 기관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교회를 가리킨다(호 14:6). 그리고 “두 촛대”는 복음의 빛을 발휘하는 것인 만큼, 역시 교회를 상징한다. 참된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이 말씀이 복음 증인들을 의미 한다고 해도, 교회를 가리킨다는 해석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 11:5,6

이 귀절들의 말씀은, 일종의 상징 표현이니 여자적(如子的)으로 볼것은 아니다. 이것을 글자 대로 본다면,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란 엇구를 해득(解得)하기 어렵다. 이 귀절들은, 모세(출 7:20)와 엘리야(왕상 7:1:왕하 1:9-12)의 행적을 염두(念頭)에 두고 한 말씀이다. 이것은 신약 교회가 모세나 엘리야처럼 영능(靈能)이 있으리라는 의미인 듯하다. 신약 시대 교회의 사역자들이 할 위대한 일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도말씀하셨다(마 21:21: 막 16:17,18: 요 14:12-14).

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때에 –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복음 증인은, 그일을 미완성으로 두고 죽는 법이 없다. 루터(Luther)보다 100년 전에 종교 개혁을 부르짖은 영국 사람, 위클리프(Wycliff)는, 일개의 필부(匹夫)로서 로마의 교권(敎權)과 항쟁(抗爭)하여 성공하였다. 그가 그렇게 싸우던 때에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는 그의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경륜대로 필경 늙어서 별세하였다.

무저갱으로 부터 올라오는 – 이것은, 그 짐승이 이때에 비로소 “무저갱(無低坑)”에서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그 소속(所屬)이 어디임을 밝히는 것이다. 곧, 그 짐승은 무저갱에 속하는 것이니 지옥적(地獄的)인 잔인 무도한 자라는 의미가 이문구에 표시된다. 이 짐승은, 적그리스도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옛날부터 여러번 일어났다가 멸망(무저갱에 들어감)하곤 하였다. 예컨대, 애굽, 바벨론, 헬라 등이다. 그런데 본절이 말하는 “짐승”, 곧, 적 그리스도 나라의 절정적(絶頂的) 출현 기간(出現期間)은, 7년 기간의 후반부(後半部)이다. 단 9:27 참조.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이것은, 13장의 사실을 미리 당겨 일부 나타냄이다(13:5-7).

계 11:8

저희시체 – “시체”는, 헬라 원어로 프로-마( )이니, 집합체(集合體)를 가리키는 단수 명사(單數名詞)이다. 이것을 보아도 위의 두 증인은 두 개인이 아니고 한 집합체 곧, 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의 집합체를 가리킨 듯하다. 말은 단수 명사이지만 집합 명사(集合名詞)의 내용을 가진다.

큰 성 길에 있으리니 –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순교자들을 멸시하여 그들의 시체들을 거리에 밟아 굴린다.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소돔”은, 경건치 아니하고 또 도독이 부패하였으므로(벧후 2:6,7), 하나님께서 그곳을 벌하셨고, “애굽”은 잔인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몹시 핍박하였다. 불경건과 도덕 부패와 기독교 박해는 이 세상의 속성(屬性)인데, 적그리스도 나라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저렇게 소돔 같고 애굽 같은 적그리스도 나라에서 수난(受難)하고,또 모욕을 당한다.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란 말은 영적(靈的)으로 사용된 것이니, “골고다”라는 장소를 가리킴이 아니고 극악(極惡)한 세상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잡아 죽인 곳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어떤 때에는 신자에게도 꽤 좋아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눈가림으로만 그렇게 보이는것 뿐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믿다가는 망한다.

계 11:9

백성, 족속, 방언, 나라 – 5:9의 참조.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이것은, 적그리스도 나라가 있을동안(후 3년 반 동안) 성도 박해(聖徒迫害)가 끊이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복음 증인들의 시체가 욕보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내세의 더 큰 영광을 입혀 주시려는 까닭이다.

계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 이것은, 그들이 진정한 예언자들이었던 증표이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에게 아첨하며(렘 6:14, 8:11), 사람들의 죄를 바로 말해 주지 아니하며, 치료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자는, 사람들이 듣든지 말든지 죄를 책망한다(겔 2;7 딤후 4:2).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는다. 요 15:18-21 참조

계 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 이것은, 적 그리스도의 시대가 지난 후(그리스도 다시 오시므로) 주님을 위하다가죽은 참 신자들이 부활할 것을 예언한 것인데, 20:5에 말할 것을 미리당기어 말한 듯하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생을 지으실 때에도 인생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살게 하셨다. “생기”는 호흡(숨)의 기운을 의미하지 않고, 신혼(身魂)의 결합 생존(結合生存)을 성립시키는 능력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 능력은 주로 그가 인생을 창조하실 때와 부활시키실 때에 나타내신다. 이 생기를 받은 두 증인의 시체가 회생(回生), 기립(起立)할 때에, “구경하는 자들이크게 두려워하더라” – 고 했으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불가항적(不可抗的)으로 나타남을 본 까닭이다. 핍박자들이 성도를 두려워할 때가반드시 한번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필경 그들을 벌하시는 때이다.

계 11:13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며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 여기 10분의 1이란 수와 7,000이란 수는 계시록의 상징수(象徵數)니 인간의 통용수(通用數)로는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전(靈戰)의 승리를 주실 때에 그의 원수들을 벌하시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을 우리에게 알게한다. 역사를 살펴 보면, 교회를 핍박하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벌이 내렀던 것이다. “지진”은 정치적 동란(動亂)을 상징 할 수도 있다. “십분의 일”은 이 세상의 일부분을 가리키고, “칠천”은 적그리스도 나라 사람들의 잔재(殘滓)이다. 이들의 멸망은 적그리스도의 죄종적 청산이데, 19장 끝의 일을 미리 당겨 말함이다. 이때에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 – 었으니, 이것은, 세상 끝에 있을사람들이 회개할 사실을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사 구원시기의 최종기(最終期)까지 구원 사업을 쉬지 않으신다. 이 엇구 대로 보면, 그 때에는 멸망 받는 자들보다 회개하고 구원 받는 자들의 수효가 더 많은 듯하다.

계 11:15-18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심판하실 것과 성도들을구원하실 것을 내어다 보고 말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15절). 이때까지는 이 세상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이 다스리고 있었다(비록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는 잇었으나). 그러나 이제 부터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것을 다스리신다. 이것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세계를 하나님께로 귀정(歸正)시키실 때를 현실과같이 내다 보는 예언이다. 17절에 말하기를, “시방도 계신 주”라고 할 뿐 이고 “장차 오실 자”란 말은 없다. 그 이유는, 여기 이 말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 그때에 할 말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18절)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대주재(大主宰)이시다. 인간은 죽어도 그 행한 대로 갚음을 받도록 찾아 붙잡힘이 되고야 만다. 죽은자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는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주님의 존전에서 판단 받게 됨을 가리킨다.

계 11:19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계약(癸約)의 증표(證標)인데, 그 안에는 언약의 비석들이 들어 있다(히 9:4 출 25:22). 이것이 나타나 보임은,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계약하신 말씀 대로 이제 완전히 실현하시겠다는 암시이다. 그런데 그 실현 방법은,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 – 으로 상징되어 나타났으니, 곧 위엄스런 심판을 상징한다. 통치하 재(大主宰)이시다. 인간은 죽어도 그 행한 대로 갚음을 받도록 찾아 붙잡힘이 되고야 만다. 죽은자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는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주님의 존전에서 판단 받게 됨을 가리킨다.

계 11:19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계약(癸約)의 증표(證標)인데, 그 안에는 언약의 비석들이 들어 있다(히 9:4 출 25:22). 이것이 나타나 보임은,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계약하신 말씀 대로 이제 완전히 실현하시겠다는 암시이다. 그런데 그 실현 방법은,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 – 으로 상징되어 나타났으니, 곧 위엄스런 심판을 상징한다.

2011/06/24(금) “요한계시록 11:1-19” / 작성: 서지훈

<본문> 요한계시록 11:1-19

찬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오늘 본문 11장은 여섯째 나팔 심판과 일곱째 나팔 심판 사이에 나오는 성전측량(11:1-2)과 두 증인(11:3-14)의 내용, 그리고 이어서 일곱째 나팔 심판(11:15-19)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전측량이 1-2절에 나옵니다. 힘센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합니다. 이 성전 측량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측량의 이미지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에스겔서 40-48장에 나옵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 측량의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을 하나님이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측량하는 대상에 대한 보호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신약에서 성전은 교회공동체(엡2:21,22)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성전 측량 또한 측량하는 대상인 성전, 즉 교회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요한사도에게 전체 성전 영역 중에서 측량할 부분, 그리고 측량하지 말 부분을 나누어서 지시해 줍니다. 측량의 내용 중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측량하지 않고 내어주는 부분은 ‘성전 바깥 마당’이라고 합니다. ‘성전 바깥 마당’은 성소 건물을 제외한 모든 뜰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전을 측량할 부분과 측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의 성소를 보호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교회를 영적으로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의 육체적인 부분을 말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예를 들어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으로 하여금 순교하도록 하셨습니다. 육신은 세상에 박해당하도록 내어 주셨기 때문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비유하자면 ‘성전 바깥 마당’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혹독한 박해 가운데서도 스데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영혼을 보호하셨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전체 성전의 중요한 부분인 성소는 보호하시지만, 성전의 일부분인 성전의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내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외적으로 박해를 받도록 허용하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이방인에게 밟히도록 내어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기간이 ‘마흔 두 달’이라고 합니다. ‘마흔 두 달’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종말적인 기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세상의 박해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박해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집사처럼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내용입니다. 선택한 성도를 끝까지 놓치지 아니하시고 견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이지요. 끝까지 가는 겁니다. 믿음으로.

3절부터 ‘두 증인’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1,260일 동안 예언을 하다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사흘 반 만에 부활, 승천한다는 내용입니다. 3절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11:3)

여기서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언하는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예언 사역이 ‘회개를 요청’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에서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을 때, 니느웨가 왕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이 바로 회개의 요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 그리고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등도 모두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전도의 내용을 압축하면 결국 회개하라는 것과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회개를 요청하는 예언사역을 감당하는 이 두 증인이 누구인가? 두 증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실존인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증인은 어떤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이 두 증인을 가리켜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의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서 촛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일곱촛대…교회이지요. 교회의 상징. 두 증인을 ‘두 촛대’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개인이 아니라 교회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두 촛대인가? 둘이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둘씩 짝지워 보내셨지요. 구약시대부터 율법에서 증언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려면 둘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즉,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이 증언하는 것만을 증언으로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두 촛대는 곧 ‘증언하는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전도하는 교회, 복음증거의 사명을 가진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두 촛대외에 하나의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라고 부릅니다. 이건 스가랴서를 배경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4장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일곱 등잔을 가진 등잔대와 함께, 등잔대 좌우편에 있는 두 감람나무를 봅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두 감람나무의 의미가 뭐냐고 묻자, 천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슥4:14)

기른 부음 받은 자 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정치지도자 스룹바벨을 말합니다. 다윗왕의 후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포로귀환 후에 전쟁으로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지 않습니까? 성전 재건의 두 주역들입니다. 포로민으로 있다가 귀환한 사람들에게 성전재건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성전 재건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역사로 완성될 것이라는 내용이 스가랴서 4장의 내용입니다.

4장 6절과 9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4:9)

요한계시록에서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성전건축을 완성하는 것과 같이, 두 증인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예언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실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교회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계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행사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증거의 사역이 감당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돌이켜 회개하라는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의 기간이 나옵니다. 1,260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260일은 ‘성전 바깥 마당’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마흔 두 달’과 동일합니다. 1,260을 30으로 나누면 마흔 두 달이 나옵니다. 즉, 둘 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말하는데, 동일한 기간에 일어날 일들을 다른 각도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종말의 기간은 교회가 세상의 박해를 받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과 대가가 있고, 더불어 증언하는 교회로서 전해야 할 복음증거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두 증인의 사역의 특징을 5-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야와 모세의 사역을 배경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11:5)

아하시야왕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섬기려 한 것에 대해 엘리야가 뭐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엘리야 죽이겠다고 병사들 보냅니다.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병사들을 태워 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5절의 배경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세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두 증인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가 삼년 동안 하늘을 닫아 가뭄이 들게 하였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것 역시 아합왕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바알을 숭배하려고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처럼 아하시야 왕과 아합 왕에 대한 엘리야의 사역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우상숭배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자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금 회복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두 증인으로 상징되는 교회의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세상 가운데 다시금 세우는 일입니다.

엘리야에 이어서 모세의 사역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11장 6절 하반절 입니다.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모세가 출애굽 당시 이집트 바로 왕을 상대로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것을 금방 연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왕에 대한 열 가지 재앙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두 증인의 사역의 특징이 바로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세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1장 7절부터 12절까지는 두 증인의 사역의 특징을 예수님께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것과 같이 두 증인도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 반 후에 부활하여 승천합니다.

먼저, 두 증인은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세상으로부터 박해 받고, 심지어 순교까지 당할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과 17장에서 자세히 소개 되는데, 곧 교회를 박해하는 세상의 통치자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한 장소를 예루살렘이라고 소개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두 증인은 사흘 반 동안 장사를 지내지도 못하게 버려둠을 당하다가 삼일 반 후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합니다. 교회가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기도 하지만, 교회의 운명은 결국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증인은 구약시대의 엘리야와 모세처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또 신약시대의 예수님처럼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부활,승천하여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런 두 증인의 사역의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11장 13절에서 그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만의 특징입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반대로 끝까지 하나님께 반역하여 복음을 듣지 않고 지진에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숫자가 칠천이라고 합니다. 칠천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본래 ‘십분의 일’이라는 숫자는 구약에서 의인으로서 남은 자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수입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이 숫자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습니다. 의인으로 남은 자가 아니라 심판 받는 자가 칠천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회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즉, 구약에서는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소수(십분의 일/7,000명)이지만, 신약에서는 이 상황이 역전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 받을 사람이 소수(7,000명)라는 것입니다.

심판받는 사람 십분의 일과 구원받는 사람 십분의 구는 반드시 문자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취된다는데 있는 겁니다, 구원 받을 백성이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처럼 많을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즉 ‘마흔 두 달’, ‘1,260’이라는 종말의 기간을 지나고 있는 교회의 세계선교의 성취는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요한계시록의 인,나팔,대접 심판의 결과로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9:20-21, 16:8-11) 하지만 두 증인의 사역으로 회개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두 증인, 즉 교회의 복음 증거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어려움을 겪을수록 마음이 더 강퍅해져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정작 사람들을 회개로 이끄는 것은 바로 두 증인의 증언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증인의 복음증거 사역을 통해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들을 택하셨지만, 선택하신 구원받을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바로 교회의 복음증거를 통해서 입니다.

교회가 하는 복음증거사역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을 선포함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회개와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이 위대한 복음증거의 사역에는 교회가 치러야 할 희생과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가 박해를 받는 동안에도 신실하심으로 교회의 믿음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붙들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의 두 증인으로서의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교회의 복음증거 사역의 완성은 성령님께 달려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우리의 이 사명을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 하나님의 두 증인으로 살아가는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주님 뵈올 때까지 가슴으로 지고가야 하는 우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렇게 우리가 ‘예수 생명’을 입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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