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2장 강해 | [하루 한 장] 예레미야52장_바벨론왕에게로 188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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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3 (월) [하루 한 장]“바벨론 왕에게로” (렘52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예레미야 52장은 마지막 장으로서
두 왕의 최후를 비교해주면서
우리가 따라야할 길을 선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끝까지 고집을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벨론을 배신해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반면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끌려가는 포로신세가 되었지만
37년만에 다시 풀려나서
왕의 지위를 회복하고
왕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장렬히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만 높이는 삶을 살았던
그의 뜨거웠던 생애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의 오늘도 하나님만
높이는 신실한 삶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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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예레미야 52장. 긴 예레미야의 말씀에서 52장은 마지막 장이다. 이 마지막은 결론 부분에 해당하기에 과연 어떤 결론으로 예레미야의 말씀이 끝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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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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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8. 18:02. 예레미야 52장 주석. =====52:1. 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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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9/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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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31/(토) \”예레미야 52:1-34\”/ 작성: 박창용

예례미야 52장은 시드기야 통치의 최후와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록하면서 예례미야서의 결론을 맺습니다. … 예레미야 1장 7절부터 10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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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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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장 강해 (52:1~34 – 다음블로그

예레미야 52장 강해 (52:1~34) 가)시드기야의 배반과 죽음(왕하 24:18-25:7) (렘 52: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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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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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예레미야 5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히브리어 예레미야 5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벤 에스림 웨아하트 솨나 치드키야후 베말르코 웨아하트 에스레 솨나 말라크 비루솰라임 웨쉠 임모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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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장) 결국은 희망입니다 – 양산중앙교회

그러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전해야 했기에 전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52장까지 지속적으로 심판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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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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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큐티설교(예레미야 52:1-11) 신앙의 본이 되는 삶

51장까지는 예언적 현실이라고 한다면 다시 역사의 현실로 52장에서는 돌아오게 합니다. 52장은 예레미야의 조력자이자 대필가인 바룩이 기록하여 첨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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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iic.net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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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예루살렘의 종말과 미래 (예레미야 52장 해설과 설교). [본문해설] 모두 5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예레미야서는 무너져 내리는 조국 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분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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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1/27/2021

View: 4433

성 경 : 예레미야 52장

시드기야 왕이 예언을 불신하고 애굽의 도움(겔 17장)을 기대한 것은 국민에게까지 … 본 예레미야 서책 강해를 끝마치며 회고해 볼 때 하나님의 한없고 크신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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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eadstone924.net

Date Published: 5/11/2022

View: 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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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예레미야52장_바벨론왕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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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예레미야 52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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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6.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P6OkPigh0M

예레미야 52장 강해설교

예레미야 52장

긴 예레미야의 말씀에서 52장은 마지막 장이다. 이 마지막은 결론 부분에 해당하기에 과연 어떤 결론으로 예레미야의 말씀이 끝날까 기대하며 펼치지만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내용이 전개되지 않고 39장의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단, 31-34절은 24장의 성취다). 자구 전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중심 내용은 분명 반복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미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패하는 사건이 언급되었는데 왜 또 마지막에 그 사건을 반복하는 것인가?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받은 말씀을 근 40여 년 동안 계속 예언해 왔다. 이제 그의 사명을 마무리 하면서 그가 남기고 싶은 결말은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어김없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부분에서 다시 같은 사건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가장 큰 사건을 뽑아서.

성도라면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살기 마련이다. 예언의 말씀이 성취됨을 보면서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온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언약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구나. 그분의 말씀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남은 일들 또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거야. 그 말씀만 바라보며 살자!’ 이런 생각이 들게 하신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젊어서 왕위에 올라 혈기와 사명감으로 뭉쳐있었다. 일국의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추앙과 신임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여론을 살피며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왜 시드기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는가? 그가 왕의 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웠다거나 국정에 소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외교적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다. 단 한 가지 왕으로서의 잘못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점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고 그 결과 나라는 패망하고 왕 본인 또한 처참한 환경을 맞이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남을 의식하면서 산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늘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학생이면 선생님의 평가를 의식하고, 직장에서는 다른 직원들의 눈을 의식한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나 아닌 상대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의식하는 것 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분이 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분은 모든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자기 뜻에 따라 천하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런 주인되시는 분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시드기야 왕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다.

유다 백성들은 시드기야 왕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성경에는 그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관심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시드기야는 낙제점을 받았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삶은 과연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가?’라는 물음이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호와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전부이기에 거기에 관심기울이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만약 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생애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 여호와시다. 그분의 분노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삶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시드기야 왕이 겪은 심판 또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자식들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도해야했고, 왕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끌려갔다.

이제 예레미야의 말씀을 정리해 보자. 과연 하나님은 자기 언약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성도는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인간들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취소되는 법은 없다. 결국은 그분의 약속대로 되어간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에 기대와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선지자를 통해 자기 뜻을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겸손하게 그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가자.

[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예레미야 52장 주석

=====52:1

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란 이름은 그의 왕명이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의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였다(왕하 24:17 참조). 그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다(B.C. 597년).

=====52: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

다.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52:3

여호와께서…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진

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결국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진노가 성취되었던 것이다(왕하 24:20 참조). 한편,

본절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며, ‘실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쫓아낼 때까

지 그것이(죄악이) 여호와의 진노에 대해 유다와 예루살렘 안에 있었도다’이다. 한

편, 일반 역사가들은 유다의 멸망이 주변 상황에 따른 것이지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 여호와이시고 또 유다 멸망의

변수를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시란 것이 신앙인의 역사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Bright).

=====52:4

시드기야 구 년은 현대력으로 B.C. 588년에 해당된다. 그리고 히브리 종교력

시 월은 바벨론식으로 데벱월(에 2:16)에 해당하며, 양력으로는 12-1월에 해당한

다. 바벨론 군대는 겨울의 혹한을 이용하여 기습적 공격을 감행했던 것 같다.

=====52:5

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앗수르 고분 부조를 연구해 보면,예루살렘 성의 포위

공격의 형태가 어떠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양상은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성을 포위하여 진을치고, 그리고 성벽 파괴

용 무기들을 가동했으며, 또한 임시 망루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불화살이나 돌 따

위를 성안으로 던지는 그런 전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

년 넷째 달(6절) 즉, 현대력으로 B.C. 586년 6-7월경까지 계속되었다. 넷째 달이라고

하는 언급은 70인역(LXX)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포위 공격은 약 18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이다.

=====52:6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성중의 기근에 대해서 39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여

기서와 애 4:1-10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Nicholson). ‘심하여’의 히

브리어 ‘하자크'(* )는 ‘달라붙다’, ‘지속되다’는 뜻으로, 오랜 기간 동안 포

위당함으로 인해 기근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낸다.

=====52:7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 본절의 내용은 39:4에도 언급되고 있다. 시드기

야와 그의 근신들은 삼엄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달아났을 것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와 같이 맛소라 사본은 시드기야의 탈주에 대한 언급을 생략

하고 있으나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서, 그리고 39장에 언급된 사실로 보아서도 왕의

탈주는 분명하다(Bright).

아라바는 사해(死海) 남쪽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넓은 광야 지역이다.

=====52:8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

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

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

왔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39:1-10에는 이같은 내용이 언급되고 있

지 않다. 이 사건은 애 4:19, 20에 반영되고 있다.

=====52:9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 시드기야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의 신

하들에 관한 내용은 39:5-7과 왕하 25:5-7에 기록되어 있다. ‘하맛 땅 립나’는 오론

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

정군의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립나는 또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도 하였으며, 느부갓네살의 임시 본부가 위

치해 있던 곳이었다(Thompson).

=====52:10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그 목전에

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곳의

모든 방백이란 립나에 죄수로 수용되어 있던 유다 방백들을 말한다. 왕하 25장에

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송되었던 것이 분명하

며, 이들에 대한 처형은 예루살렘 함락 후 몇 주가 지나서 행하여졌을 것이다.

=====52:11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겔 12:13의 성취이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옮

겨져 거기서 죽을 때까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상세한 설명은 39:7에는 언

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 전후에 겪었던 그 쓰라린 육체

적,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면서 그 이후 그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짐작컨대, 아마 그는 그 이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옥에 해당하는 ‘베트 하페쿠드트'(* )는, ‘감옥’이란 뜻으로

본서에 자주 언급되는 ‘마타라'(* )와 비교된다(32:2, 8, 12; 33:1; 37:21

등). 문자적으로 ‘징계의 집’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혹자는 시드기

야가 삼손처럼 맷돌을 돌려야 했다고 해석하나(Hitzing) 확실한 근거는 없다.

=====52:12

본절의 내용은 39:1-10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오 월’은 현재의 7-8월에

해당되며, ‘십 일’은 왕하 25:8에서는 7일로 나타나 있다. 아무튼 느부사라단이 예루

살렘에 도착한 것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때였다(Bright). 한편 그의

도착 연대로 언급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십 구 년은 B.C. 586년에 해당된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실제적으로 왕위에 등극한 때가 B.C. 605년이었다는 연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

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그 불길은 전도시를 휩쓸었을 것이다(Thompson). 한편 어떤

이는 ‘귀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 )을 그다랴라고 번역하였는

데, 이는 음가가 다소 비슷하기 때문이나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52:14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

사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황폐가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헐다'(* , 나타츠)라고 하는 말은 본서에서 빈번하게 쓰였다. 여호와는 예

레미야에게 열방을 헐어내리는 임무를 맡기셨으며(1:10), 또한 여호와 자신이 한 나라

를 헐어내리실 것이라고도 말씀했다(18:7), 그리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이미 헐어내

리셨던 것이다(31:28).

=====52:15

본절은 느부사라단이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을 언급한다.

백성 중 빈한한 자에 대한 언급이 왕하 25:11; 렘 39:9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맛소

라 사본을 위시하여 대부분의 사본에는 수록되어 있다. 본절의 ‘빈한한 자’나 16절의

‘빈천한 국민’은 히브리어로는 모두 ‘달로트'(* )이다. 결국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빈부 귀천을 막론한 일반 백성들까지 상당수를 잡아갔던 셈

이다.

무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몬'(* )은 ‘하몬'(* )의 어미 변

화로 보고 ‘군중’, ‘무리’로도 번역되나, ‘공교한 기술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52:16

빈천한 국민을 남겨 두어 – 정치적으로 비중이 없는 자들은 남아서 포도원을 가꾸

는 농부가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힘이 없고 빈천한 자들이었다. 갈대아인들은 유다

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만한 충분한 포로들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람들

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한편, 40-41장의 내용을 보면, 미스바 지역 공동체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듯이 보인다. 아마 그들은 바벨론 군대를 용케 피했던 자들에 의해 인

도된 집단이었으리라 짐작된다.

=====52:17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놋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성전 기구들은 왕상

7:15-39에 나온다. 이 ‘두 놋기둥’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

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

다.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을 참조하라. ‘놋바다’는 왕상 7:23-26에, 그리고

‘받침’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에 언급되고 있다. 이 기둥의 용도가 어떠한 것이었

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제단의 불이나 화롯불을 담아두었던 것 같다. 이러한

기둥들은 수리아 신전 벽화를 보건대 B.C. 10세기경에 대단히 유행했던 것 같다.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가마’는 조그마한 물건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아무튼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여러 기구들은 크기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놋바다의 직경은 약 456cm 정도되었다. 이런 기구들은 모두 놋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바벨론으로 옮겨갈 만큼 귀중한 것이었다(Thompson).

=====52:19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를 직역하면, ‘금이었던 것 – 금, 은이

었던 것 – 은’이다. 아마도 이 말은 본절의 잔들, 화로들, 주발들,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금으로 만들어진 제기들이 출

25:29 이하에 언급되고 있고, 왕상 7:49 이하에는 이들 항목 중 대부분이 언급되고 있

다.

=====52:20

열 두 놋소 곧…놋 중수를 – 왕하 25:16에는 본절에 언급된 항목들이 나오지 않는

다. 어떤 학자들은 놋으로 만들어진 열 두 소들이 한세기 반 전에 이미 앗수르의 공

물로 보내졌기 때문에 본절이 첨가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설령 앗수르로 보내진 것

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들은 그 이후에 다시 되돌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Bright).

=====52:21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 70인역(LXX)은 대하 3:15과 같이 기둥의 높이를

35규빗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왕상 7:15 주석을 참조하라.

=====52:22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왕상

7:16-20에 언급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출 28:33). 한편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용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

런 장식은 이스라엘 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 몇몇 세부적인 사항들은 왕상 7장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 당시 바벨론으로 약탈되어간

성전 기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 진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본장의

기록 목적도 세부적인 사실 전달에 있었던 것이 아니며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이 약탈

당하고 파괴되었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Thompson).

=====52:24

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한다. ‘스라야’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다(대상 6:13-15).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포로기 이후 성

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다(스 5:2; 학 1:1 등 참조). 그

리고 ‘부제사장 스바냐’는 29:24-32과 37:3에 언급되었던 스바냐와 동일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명의 문지기는 성전을 관리했던 것으로 보이는 높은 직책의 제사

장들이었다.

=====52:25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왕의 시종 – ‘장관’으로 번역된 ‘사리스’

(* )는 ‘거세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환관을 의

미한다. 본서 중반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그 이후 보직(補職)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브

라이트(Bright)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떤 공직자였던 것으

로 설명한다. 그러나 어쩌면 군대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야전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 국방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왕의 시종’

(* , 로에 페네 하멜레크)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왕의 얼굴

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들은 왕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어 빈번하게 왕과 접촉했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의 숫자가 본

절에서는 칠 인으로 되어 있으나 왕하 25:19에는 다섯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군대 장관의 서기관’이란 것은 부사령관이나 부관 정도 되는 그런 위치였을 것이다.

‘국민'(* , 메암 하아레츠)의 문자적 번역은 ‘그 땅의 백성’으로서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Bright).

=====52:26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시드기야가 압송되어 갔던 립나로 이들 선발된 무

리들 역시 이송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그곳에서 처형 당하기 위해서 붙잡혀 갔을 것

이다(27절).

=====52:27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이들 포로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바 있으며(50:17-20;

51:45-49 등)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도 나타난다(사 52:1-12; 겔 37장

등). 반면에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는 미

래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52:28

제 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여기서의

제 칠년은 B.C. 597년이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등극 년도인 B.C. 605년부터 계수한

것이 아니라 이듬해인 B.C. 604년부터 그의 즉위 년도를 계수한 방법이다. 열왕기하

도 이와 같은 연대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때 잡혀간 유다인 삼천 이십 삼

인은 유다 전역에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것이 왕하 24:14, 16

에 언급된 포로들의 숫자와는 틀리는데, 아마 열왕기하에서는 이미 국외로 추방당해

있던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하였던 것 같다. 혹은 본절의 숫자는 성인 남자만을 센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52:29

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B.C. 586년에 해당되며,

열왕기에 따르면 그의 즉위 19년에 해당된다.

=====52:30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 28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무리가 세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B.C. 597년, 두 번째

는 B.C. 586년, 그리고 세 번째는 B.C. 581년의 사건이다. 본 절에는 세 번째로 끌려

간 무리들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건 이후에 발생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친 패배와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또

다른 반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면 그다랴를 암살한 범죄에

대한 처벌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포로로 끌려간 전체 숫자가 4600명

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15,000명에서 20,000명 정

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가던 중에 죽었을 수도 있다.

비록 적은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자들이 바

로 이들 중에 있었다(Thompson).

=====52:31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서 B.C. 561-560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의 원 이름은 ‘아멜-마르둑’으로서 ‘마르둑

의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에 에윌므로닥은 ‘어리석은 므로닥’이란 뜻이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변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Bright). 그리고 ‘이십 오일’이란

말은 70인역(LXX)에서는 24일로, 그리고 왕하 25:27에는 27일로 표현되어 있다. 날짜

가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떤 세부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연유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것으로도 믿고 있었

다(28:1-4). 바벨론의 고고학 발굴에 나타난 그 당시의 기름 영수증에는 그가 ‘유다

의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머리를 들게 하고(* , 나사로쉬)는 창 40:13, 20에 처음 나타나는

표현인데, 여기서처럼 ‘석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Feinberg). 특히 ‘나사’

(* )는 ‘높이다’, ‘명예롭게 하다’의 뜻을 내포하므로, 여호야긴이 석방된 뒤

에 후한 대접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52:32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바벨론에 있는 왕들’이란 말은 여호

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피정복국의 왕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를 단순히 포로로서

잘 대우해 주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벨론 왕실에서 특권을 지니고 생활

하도록 배려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좋을 것 같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

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先王)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52:33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여호야긴은 적

어도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사실은 앞에 언급된 기름 영수증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은택은 그의 평생 동안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에윌므로닥

을 몰아내고 그 후 왕위에 올랐던 네리글리살 때에도 그런 특권을 계속 누렸음을 짐작

케 한다(Thompson).

=====52:34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31-34절)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

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前兆)이기도 하였던

것이다(Thompson).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2014/05/31/(토) \”예레미야 52:1-34\”/ 작성: 박창용

예례미야 52:1-34

찬송가 488 이몸의 소망 무언가 박창용목사

예례미야 52장은 시드기야 통치의 최후와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록하면서 예례미야서의 결론을 맺습니다.

1-11절에 시드기야의 인생을 간략하게 묘사합니다. 21세에 왕이 되어서 11년 동안 다스렸고,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달,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었습니다. 시드기야 란 이름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닙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맛다냐 , ‘여호와의 선물’ 이란 뜻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한 후에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올리면서 그의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입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그의 삶을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둘째,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의 핵심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신들을 섬긴 것과 윤리적 도덕적인 죄가 개인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끔찍한 상황임을 선포했습니다. 동시에, 예레미야는 반복해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이며, 친애굽정책을 통해 반바벨론 정책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4절에서부터 11절까지 보면, 불순종한 시드기야의 결말이 얼마나 처참한지 보게 됩니다. 성벽을 쌓았으나 결국 백성의 양식도 떨어지고, 성벽은 파괴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여리고 평지로 도망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붙잡혀 심문당합니다. 자기 자신의 아들들 모두 자기 눈앞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모든 고관들도 쳐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두 눈이 뽑히는 끔찍한 처벌을 당하고, 놋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이후 지어준 이름입니다. 시드기야,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즉, 불순종의 결말은 심판이고, 그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불순종의 결말은 뽑힘이며, 파괴이며, 파멸이며 그리고 넘어뜨려짐입니다.

12-30절에서는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1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크게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성벽도 헐어버립니다.

둘째, 바벨론으로 데려갈 쓸고 있는 사람들은 데려가고 물건들을 분류하여 가져갑니다.

총 세 차례에 걸쳐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가는데, 597년에 3,023명, 586년에 832명, 그리고 582년에 745명 총 4600명을 끌고 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본문에 언급된 강제 이송된 숫자는 기대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인원은 남자들만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열왕기하 24장 14-16절에 보면 597년에 끌려간 숫자는 18,000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자들과 자녀들도 포함한 인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처형당했을 것이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은 버려져 유다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의 이름의 뜻은 The City of Peace 입니다. 평화의 도시 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처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세웠고, 솔로몬은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군사 모두를 하나로 모은 명실상부 하나님의 성이였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이 결국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것 뿐 아니라, 완전 파괴되었고, 오랜 세월 애지중지 하던 거룩한 물건들 금은보화 모두 빼앗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버려지고, 죽임당하고,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그 평화의 도시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파멸되어 넘어져 버렸습니다. 앞으로 약 140년간 폐허로 버려져있게 됩니다.

31절부터 34절에 보면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을 3개월 만에 폐위된 여호야긴이 등장합니다. 그는 폐위된 이후 바벨론으로 끌려갔었습니다. 18살에 왕이 된 이후 37년만에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나이는 약 55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20대도, 30대도 그리고 40대도 모두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왕이 였던 그는 타국으로 끌려간 죄수였습니다. 그의 젊음도 열정도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감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서 마지막장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이 여호야긴으로 마쳐진 것일까요? 그는 분명 소망 없이 살아왔을 것입니다. 왕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사실이 그에게 부끄러움 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줄 알았던 그에게 광명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32절입니다.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자신도 잊어버린 왕위를 되찾은 것입니다. 누가 과연 감옥에서 친절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를 왕처럼 여겨 줬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여호야긴은 의복을 갈아입고, 왕과 함께 식사를 하는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여호야긴’ 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신다’ 입니다.

예레미야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7절부터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나라와 여러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는 40년간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5명의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경고하며 선포했습니다. 자신도 수차례 매질을 당하고 강금당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하층민들과 간신히 유다 땅에서 살게 될 줄 알았으나 총독 그다랴가 살해되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가 결국 그곳에서 죽고 맙니다.

예레미야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만 높입니다’ 입니다. 그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 입니다. 모세가 죄와 사망의 권세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며 40년을 보냈다면, 예레미야는 눈물 뿌리며 샬롬의 땅 이스라엘에서 바벨론포로로 끌려가기까지 40년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만 높였습니다. 눈물 뿌리며 하나님만 높였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임을 확신했으며, 하나님 없는 예루살렘 성에 참된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불순종에 대해서 심판하시기 위해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시지만, 반드시 새롭게 건설하시고 새롭게 예루살렘성, 평화의 도시를 심으실 것을 믿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도 애굽 어딘가에 처참하게 버려져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서신서의 마지막은 여호야긴에게 다시금 살 소망을 주고 새옷을 입고 새신을 신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습으로 마칩니다.

마치, 허랑방탕한 삶을 살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에게 새옷을 입혀주시고, 새신을 신겨주시고 큰 파티를 열어주신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상들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하고 마땅히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나 자신이 번듯이 앉아 왕노릇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원치않은 절망과 슬픔의 시간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리질러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이죠”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난을 인과응보로 이해하고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가며 자악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어떤 난공불락의 성도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없는 어떤 화려한 성도 그곳은 영원한 샬롬의 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샬롬이십니다. 그 샬롬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고 기쁠때나 슬프고 아플때도 함께 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좋고 기쁠때도 슬프고 아플때도 하나님만을 높이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만 높였던 예레미야로 살아가십시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때에 샬롬의 땅 예루살렘성이 회복되고 재건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건설하시고 심으실 것을 영원의 눈으로 보며 오늘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 만을 높이기를 결심하고 살아가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높이게 하시어, 이시대를 밝히는 예레미야로 오늘 한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예레미야 52 장 강해 (52:1~34) 가) 시드기야의 배반과 죽음 ( 왕하 24:18-25:7) (렘 52:1) 시드기야 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 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 이라 립나 인 예레미야 의 딸이더라 (렘 52:2) 그가 여호야김 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렘 52: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 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렘 52:4)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렘 52: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렘 52:6)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렘 52: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 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렘 52:8)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 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렘 52: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 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 를 심문하니라 (렘 52: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 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 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렘 52:11) 시드기야 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 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성 경: [ 렘 52:1] 시드기야가 … 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 후 ,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습니다 (B.C. 597 년 ). 성 경: [ 렘 52: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죠 .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 성 경: [ 렘 52:3] 여호와께서 … 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극심한 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 결국 시드기야도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 참조 ). 성 경: [ 렘 52:4] 시드기야 구 년은 현대력으로 B.C. 588 년에 해당됩니다 . 그리고 히브리 력 시 월은 바벨론식으로 데벱월 ( 에 2:16) 이며 겨울이었고 더위를 피해 바벨론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여집니다 . 성 경: [ 렘 52:5] 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 년 넷째 달 (6 절 ) 즉 , 현대력으로 B.C. 586 년 6-7 월경까지 계속되었으니 약 18 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입니다 . 성 경: [ 렘 52:6]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오랜 기간 동안 포위당함과 아울러 기근의 상태가 업친데 덮치는 형국으로 극에 달했음을 나타냅니다 . 성 경: [ 렘 52:7] 왕의 동산 곁 문 길로 도망하여 – 시드기야와 그의 근신들은 삼엄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달아났으며 , 아라바는 사해 ( 死海 ) 남쪽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넓은 광야 지역입니다 . 성 경: [ 렘 52:8]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왔기 때문으로 대부분이 정신을 못 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성 경: [ 렘 52:9]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 ‘ 하맛 땅 립나 ‘ 는 오론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정군의 임시 본부를 꾸리고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 이곳 립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답니다 . 성 경: [ 렘 52:10]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 써 , 그 목전에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당했습니다 . 성 경: [ 렘 52:11]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짐작컨대 , 아마 그는 투옥된 그 이후 , 아마 오래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 나) 여호와의 성전의 늑탈된 정황 ( 왕하 25:8-17) (렘 52: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 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 이 예루살렘 에 이르러 (렘 52: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렘 52: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렘 52:15) 사령관 느부사라단 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렘 52: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렘 52: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 으로 가져갔고 (렘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렘 52: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렘 52: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렘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1)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렘 52: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렘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성 경: [ 렘 52:12]’ 오 월 ‘ 은 현재의 7-8 월에 해당되며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9 월 즈음 이였습니다 . 한편 그의 도착 연대로 언급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십구 년은 B.C. 586 년에 해당됩니다 . 성 경: [ 렘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 그 불길은 전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 성 경: [ 렘 52:14]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사된 적이 있는데 ,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파괴가 극심했던 성벽의 잔해들이 나타났습니다 . 성 경: [ 렘 52:15] 본절은 느부사라단이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을 언급합니다 .. 결국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빈부 귀천을 막론한 일반 백성들까지 상당수를 잡아갔던 셈이죠 . 여기서 가난한 자는 아마 기술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 성 경: [ 렘 52:16] 빈천한 국민을 남겨 두어 – 아무 힘없고 무지하고 기술도 없는 빈천한? 자들은 남겨져서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가 되게 했습니다 . 성 경: [ 렘 52:17]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놋 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 두 놋기둥 ‘ 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 하나는 야긴이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는데 ,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 을 참조하면 됩니다 . ‘ 놋바다 ‘ 는 제물의 피를 씻어내는 곳이고 ‘ 받침 ‘ 은 아마도 제단의 불이나 화롯불을 담아두었던 그릇이었던 듯 합니다 . 성 경: [ 렘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 ‘ 가마 ‘ 는 뜨거운 것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 놋바다의 직경은 약 456cm 정도되었습니다 . 성 경: [ 렘 52:19]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 말은 본절의 잔들 , 화로들 , 주발들 ,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을 가리킵니다 . 성 경: [ 렘 52:20] 열 두 놋소 곧 … 놋 중수를 – 놋으로 만들어진 열 두 소들이 성전에 있었다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 제작해 경배용으로 쓰던 것이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 익 ). 성 경: [ 렘 52:21]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라 했으니 -18*0.45=8. 1m 입니다 . 성 경: [ 렘 52:22]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각에 대한 상세한 내용입니다 .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죠 ( 출 28:33). 성 경: [ 렘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 기둥장식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입니다. 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으로 사로잡혀 가다( 왕하 25:18-21, 27-30) (렘 52: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 와 부제사장 스바냐 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렘 52: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2)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렘 52:26) 사령관 느부사라단 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 에 있는 바벨론 의 왕에게 나아가매 (렘 52:27) 바벨론 의 왕이 하맛 땅 립나 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렘 52: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렘 52:29) 느부갓네살 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 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렘 52:30) 느부갓네살 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 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렘 52:31) ○유다 왕 여호야긴 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렘 52: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 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렘 52: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렘 52: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 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성 경: [ 렘 52:24] 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합니다 . ‘ 스라야 ‘ 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는데 ,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습니다 ( 스 5:2; 학 1:1 등 참조 ). 성 경: [ 렘 52:25]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 왕의 시종 – ‘ 장관 ‘ 으로 번역된 ‘ 사리스 ‘(*) 는 환관을 의미하며 ,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 그 이후 보직 ( 補職 ) 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 브라이트 (Bright) 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던 공직자였던 것으로 보았습니다 . 한편 , 이들의 숫자가 본절에서는 칠 인이라 했습니다 . 성 경: [ 렘 52:26]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시드기야가 압송되어 갔던 립나로 , 이들 선발된 무리들 역시 이송되었습니다 . 아마도 이들은 그곳에서 본보기로 처형 당하기 위해서 붙잡혀 갔을 것입니다 . 성 경: [ 렘 52:27]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사로 잡혀 타지로 갔다는 것 . 성 경: [ 렘 52:28] 제 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 이때 잡혀간 유다인 삼천 이십 삼인은 유다 전역에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숫자입니다 . 성 경: [ 렘 52:29] 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그의 즉위 19 년에 해당됩니다 . 성 경: [ 렘 52:30]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 28 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무리가 세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첫 번째는 B.C. 597 년 , 두 번째는 B.C. 586 년 , 그리고 세 번째는 B.C. 581 년의 사건이다 . 본 절에는 세 번째로 끌려간 무리들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 한편, 포로로 끌려간 전체 숫자가 4600 명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 아마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 15,000 명에서 20,000 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 비록 적은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자들이 바로 이들 중에 있었죠 . 성 경: [ 렘 52:31]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서 B.C. 561-560 년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 . 그의 원 이름은 ‘ 아멜 – 마르둑 ‘ 으로서 ‘ 마르둑의 사람 ‘ 이란 뜻이다 . 한편,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 것으로도 믿고 있었습니다 (28:1-4). 머리를 들게 하고 (*, 나사로쉬 ) 는 ‘ 석방하다 ‘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Feinberg). 성 경: [ 렘 52:32]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 바벨론에 있는 왕들 ‘ 이란 말은 여호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다른 정복된 국가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 유대 전승에 의하면 , 에윌므로닥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 ( 先王 ) 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 성 경: [ 렘 52:33]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합니다 .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 또한 이러한 은택은 그의 평생 동안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 이는 그가 에윌므로닥을 몰아내고 그 후 왕위에 올랐던 네리글리살 때에도 그런 특권을 계속 누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 성 경: [ 렘 52:34]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 (31-34 절 ) 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죠 .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 ( 前兆 ) 이기도 했습니다 (Thompson). 참조: 빛고을 선교회 / 편집 : 익선 052416

히브리어 예레미야 5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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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에스림 웨아하트 솨나 치드키야후 베말르코 웨아하트 에스레 솨나 말라크 비루솰라임 웨쉠 임모 하미탈 하무탈 바트 이르메야후 밀리브나

개역개정,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새번역,1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하무달은 리블라 출신으로 예레미야의 딸이다.

우리말성경,1 시드기야가 왕이 됐을 때 21세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고 립나 출신으로 예레미야의 딸입니다.

가톨릭성경,1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탈인데,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이었다.

영어NIV,1 Zedekiah was twenty-on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eleven years.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daughter of Jeremiah; she was from Libnah.

영어NASB,1 Zedekiah was twenty-on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eleven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the daughter of Jeremiah of Libnah.

영어MSG,1 Zedekiah was twenty-one years old when he started out as king. He was king in Jerusalem for eleven years.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the daughter of Jeremiah. Her hometown was Libnah.

영어NRSV,1 Zedekiah was twenty-one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he reigned eleven years in Jerusalem.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daughter of Jeremiah of Libnah.

헬라어구약Septuagint,1 οντος εικοστου και ενος ετους σεδεκιου εν τω βασιλευειν αυτον και ενδεκα ετη εβασιλευσεν ε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ονομα τη μητρι αυτου αμιτααλ θυγατηρ ιερεμιου εκ λοβενα

라틴어Vulgate,1 filius viginti et unius anni Sedecias cum regnare coepisset et undecim annis regnavit in Hierusalem et nomen matris eius Amithal filia Hieremiae de Lobna

히브리어구약BHS,1 בֶּן־עֶשְׂרִים וְאַחַת שָׁנָה צִדְקִיָּהוּ בְמָלְכֹו וְאַחַת עֶשְׂרֵה שָׁנָה מָלַךְ בִּירוּשָׁלִָם וְשֵׁם אִמֹּו [כ= חֲמִיטַל] [ק= חֲמוּטַל] בַּת־יִרְמְיָהוּ מִלִּבְנָה׃

성 경: [렘52:1]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란 이름은 그의 왕명이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의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였다(왕하 24:17 참조). 그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다(B.C. 597년).

와야아스 하라 베에네 아도나이 케콜 아쉘 아사 예호야킴

개역개정,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새번역,2 그는 여호야김이 하였던 것과 똑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우리말성경,2 여호야김이 행한 모든 것을 따라 시드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가톨릭성경,2 치드키야는 여호야킴이 하던 그대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영어NIV,2 He did evil in the eyes of the LORD, just as Jehoiakim had done.

영어NASB,2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like all that Jehoiakim had done.

영어MSG,2 As far as GOD was concerned, Zedekiah was just one more evil king, a carbon copy of Jehoiakim.

영어NRSV,2 He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just as Jehoiakim had done.

헬라어구약Septuagint,2 (없음)

라틴어Vulgate,2 et fecit malum in oculis Domini iuxta omnia quae fecerat Ioachim

히브리어구약BHS,2 וַיַּעַשׂ הָרַע בְּעֵינֵי יְהוָה כְּכֹל אֲשֶׁר־עָשָׂה יְהֹויָקִים׃

성 경: [렘52:2]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다.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키 알 아프 아도나이 하예타 비루솰라임 위후다 아드 히쉘리코 오탐 메알 파나우 와이메로드 치드키야후 베멜렠 바벨

개역개정,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새번역,3 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그토록 진노하시게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주님 앞에서 쫓아내셨다. 시드기야가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기를 들었으므로,

우리말성경,3 여호와의 노여움 때문에 결국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는 이런 일이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게 반역했습니다.

가톨릭성경,3 예루살렘과 유다가 주님을 분노하시게 하였기에,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들을 당신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런데 치드키야가 바빌론 임금에게 반역하였다.

영어NIV,3 It was because of the LORD’S anger that all this happened to Jerusalem and Judah, and in the end he thrust them from his presence. Now Zedekiah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Babylon.

영어NASB,3 For through the anger of the LORD this came about in Jerusalem and Judah until He cast them out from His presence. And Zedekiah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Babylon.

영어MSG,3 The source of all this doom to Jerusalem and Judah was GOD’s anger. GOD turned his back on them as an act of judgment. Zedekiah revolted against the king of Babylon.

영어NRSV,3 Indeed, Jerusalem and Judah so angered the LORD that he expelled them from his presence. Zedekiah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Babylon.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ετει τω ενατω της βασιλειας αυτου εν μηνι τω δεκατω δεκατη του μηνος ηλθεν ναβουχοδονοσορ βασιλευς βαβυλωνος και πασα η δυναμις αυτου επι ιερουσαλημ και περιεχαρακωσαν αυτην και περιωκοδομησαν αυτην τετραπεδοις λιθοις κυκλω

라틴어Vulgate,3 quoniam furor Domini erat in Hierusalem et in Iuda usquequo proiceret eos a facie sua et recessit Sedecias a rege Babylonis

히브리어구약BHS,3 כִּי עַל־אַף יְהוָה הָיְתָה בִּירוּשָׁלִַם וִיהוּדָה עַד־הִשְׁלִיכֹו אֹותָם מֵעַל פָּנָיו וַיִּמְרֹד צִדְקִיָּהוּ בְּמֶלֶךְ בָּבֶל׃

성 경: [렘52:3]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여호와께서…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결국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진노가 성취되었던 것이다(왕하 24:20 참조). 한편, 본절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며, ‘실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쫓아낼 때까지 그것이(죄악이) 여호와의 진노에 대해 유다와 예루살렘 안에 있었도다’이다. 한편, 일반 역사가들은 유다의 멸망이 주변 상황에 따른 것이지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 여호와이시고 또 유다 멸망의 변수를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시란 것이 신앙인의 역사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Bright).

와예히 밧솨나 핱테쉬이트 레말르코 바호데쉬 하아시리 베아솔 라호데쉬 바 네부카드레차르 멜렠 바벨 후 웨콜 헤로 알 예루솰람 와야하누 알레하 와이베누 알레하 다예크 사비브

개역개정,4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새번역,4 시드기야 왕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고, 도성 안을 공격하려고 성벽 바깥 사방에 흙 언덕을 쌓았다.

우리말성경,4 그러자 시드기야 통치 9년 열째 달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와서 성읍 밖에 진을 치고 성읍을 둘러서 포위 벽을 쌓았습니다.

가톨릭성경,4 그래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왔다. 그들은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영어NIV,4 So in the ninth year of Zedekiah’s reign, on the tenth day of the tenth month,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marched against Jerusalem with his whole army. They camped outside the city and built siege works all around it.

영어NASB,4 Now it came about in the ninth year of his reign, on the tenth day of the tenth month, that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came, he and all his army, against Jerusalem, camped against it, and built a siege wall all around it.

영어MSG,4 Nebuchadnezzar set out for Jerusalem with a full army. He set up camp and sealed off the city by building siege mounds around it.

영어NRSV,4 And in the ninth year of his reign, in the tenth month, on the tenth day of the month, King Nebuchadrezzar of Babylon came with all his army against Jerusalem, and they laid siege to it; they built siegeworks against it all a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4 (없음)

라틴어Vulgate,4 factum est autem in anno nono regni eius in mense decimo decima mensis venit Nabuchodonosor rex Babylonis ipse et omnis exercitus eius adversum Hierusalem et obsederunt eam et aedificaverunt contra eam munitiones in circuitu

히브리어구약BHS,4 וַיְהִי בַשָּׁנָה הַתְּשִׁעִית לְמָלְכֹו בַּחֹדֶשׁ הָעֲשִׂירִי בֶּעָשֹׂור לַחֹדֶשׁ בָּא נְבוּכַדְרֶאצַּר מֶלֶךְ־בָּבֶל הוּא וְכָל־חֵילֹו עַל־יְרוּשָׁלִַם וַיַּחֲנוּ עָלֶיהָ וַיִּבְנוּ עָלֶיהָ דָּיֵק סָבִיב׃

성 경: [렘52:4]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시드기야 구 년은 현대력으로 B.C. 588년에 해당된다. 그리고 히브리 종교력 시 월은 바벨론식으로 데벱월(에 2:16)에 해당하며, 양력으로는 12-1월에 해당한다. 바벨론 군대는 겨울의 혹한을 이용하여 기습적 공격을 감행했던 것 같다.

와타보 하이르 밤마초르 아드 아쉬테 에스레 와나 람메렠 치드키야후

개역개정,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새번역,5 그리하여 이 도성은 시드기야 왕 제 십일년까지 포위되어 있었다.

우리말성경,5 성읍은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포위돼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5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영어NIV,5 The city was kept under siege until the eleventh year of King Zedekiah.

영어NASB,5 So the city was under siege until the eleventh year of King Zedekiah.

영어MSG,5 He arrived on the ninth year and tenth month of Zedekiah’s reign. The city was under siege for nineteen months (until the eleventh year of Zedekiah).

영어NRSV,5 So the city was besieged until the eleventh year of King Zedekiah.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ηλθεν η πολις εις συνοχην εως ενδεκατου ετους τω βασιλει σεδεκια

라틴어Vulgate,5 et fuit civitas obsessa usque ad undecimum annum regis Sedeciae

히브리어구약BHS,5 וַתָּבֹא הָעִיר בַּמָּצֹור עַד עַשְׁתֵּי עֶשְׂרֵה שָׁנָה לַמֶּלֶךְ צִדְקִיָּהוּ׃

성 경: [렘52:5]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앗수르 고분 부조를 연구해 보면, 예루살렘 성의 포위공격의 형태가 어떠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양상은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성을 포위하여 진을 치고, 그리고 성벽 파괴용 무기들을 가동했으며, 또한 임시 망루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불화살이나 돌 따위를 성안으로 던지는 그런 전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년 넷째 달(6절) 즉, 현대력으로 B.C. 586년 6-7월경까지 계속되었다. 넷째 달이라고 하는 언급은 70인역(LXX)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포위 공격은 약 18개월동안 계속되었던 셈이다.

바호데쉬 하레비이 베티쉐아 라호데쉬 와예헤잨 하라압 바일 웨로 하야 레헴 레암 하아레츠

개역개정,6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새번역,6 그 해 넷째 달 구일이 되었을 때에, 도성 안에 기근이 심해져서, 그 땅 백성이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말성경,6 넷째 달 9일에 성읍 안에 기근이 극심해 그 땅의 백성에게 양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6 넷째 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굶주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영어NIV,6 By the ninth day of the fourth month the famine in the city had become so severe that there was no food for the people to eat.

영어NASB,6 On the ninth day of the fourth month the famine was so severe in the city that there was no food for the people of the land.

영어MSG,6 By the fourth month of Zedekiah’s eleventh year, on the ninth day of the month, the famine was so bad that there wasn’t so much as a crumb of bread for anyone.

영어NRSV,6 On the ninth day of the fourth month the famine became so severe in the city that there was no food for the people of the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εν τη ενατη του μηνος και εστερεωθη ο λιμος εν τη πολει και ουκ ησαν αρτοι τω λαω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6 mense autem quarto nona mensis obtinuit fames in civitate et non erant alimenta populo terrae

히브리어구약BHS,6 בַּחֹדֶשׁ הָרְבִיעִי בְּתִשְׁעָה לַחֹדֶשׁ וַיֶּחֱזַק הָרָעָב בָּעִיר וְלֹא־הָיָה לֶחֶם לְעַם הָאָרֶץ׃

성 경: [렘52:6]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성중의 기근에 대해서 39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서와 애 4:1-10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Nicholson). ‘심하여’의 히브리어 ‘하자크'(*)는 ‘달라붙다’, ‘지속되다’는 뜻으로, 오랜 기간 동안 포위당함으로 인해 기근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낸다.

왙팁바카 하이르 웨콜 아네쉐 함밀하마 이브레후 와예체우 메하이르 라일라 데렠 솨알 베인 하호모타임 아쉘 알 간 함메렠 웨카스딤 알 하이르 사비브 와예레쿠 데렠 하아라바

개역개정,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새번역,7 드디어 성벽이 뚫리니, 이것을 본 왕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도성을 포위하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정원 근처, 두 성벽을 잇는 통로를 지나 도성 바깥으로 빠져 나와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였다. / ㉠또는 ‘갈대아’

우리말성경,7 그때 성벽이 무너졌고 모든 군사들이 도망갔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성읍을 둘러 포진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밤에 왕의 정원 가까이에 있는 두 성벽 사이의 문을 통해 성읍에서 나가 아라바 길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7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이 모두 달아났다.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나가 아라바 쪽으로 갔다.

영어NIV,7 Then the city wall was broken through, and the whole army fled. They left the city at night through the gate between the two walls near the king’s garden, though the Babylonians were surrounding the city. They fled toward the Arabah,

영어NASB,7 Then the city was broken into, and all the men of war fled and went forth from the city at night by way of the gate between the two walls which was by the king’s garden, though the Chaldeans were all around the city. And they went by way of the Arabah.

영어MSG,7 Then the Babylonians broke through the city walls. Under cover of the night darkness, the entire Judean army fled through an opening in the wall (it was the gate between the two walls above the King’s Garden). They slipped through the lines of the Babylonians who surrounded the city and headed for the Jordan into the Arabah Valley,

영어NRSV,7 Then a breach was made in the city wall; and all the soldiers fled and went out from the city by night by the way of the gate between the two walls, by the king’s garden, though the Chaldeans were all around the city. They went in the direction of the Arabah.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διεκοπη η πολις και παντες οι ανδρες οι πολεμισται εξηλθον νυκτος κατα την οδον της πυλης ανα μεσον του τειχους και του προτειχισματος ο ην κατα τον κηπον του βασιλεως και οι χαλδαιοι επι της πολεως κυκλω και επορευθησαν οδον την εις αραβα

라틴어Vulgate,7 et disrupta est civitas et omnes viri bellatores fugerunt et exierunt de civitate nocte per viam portae quae est inter duos muros et ducit ad hortum regis Chaldeis obsidentibus urbem in gyro et abierunt per viam quae ducit in heremum

히브리어구약BHS,7 וַתִּבָּקַע הָעִיר וְכָל־אַנְשֵׁי הַמִּלְחָמָה יִבְרְחוּ וַיֵּצְאוּ מֵהָעִיר לַיְלָה דֶּרֶךְ שַׁעַר בֵּין־הַחֹמֹתַיִם אֲשֶׁר עַל־גַּן הַמֶּלֶךְ וְכַשְׂדִּים עַל־הָעִיר סָבִיב וַיֵּלְכוּ דֶּרֶךְ הָעֲרָבָה׃

성 경: [렘52:7]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 본절의 내용은 39:4에도 언급되고 있다. 시드기야와 그의 근신들은 삼엄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달아났을 것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와 같이 맛소라 사본은 시드기야의 탈주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으나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서, 그리고 39장에 언급된 사실로 보아서도 왕의 탈주는 분명하다(Bright). 아라바는 사해(死海) 남쪽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넓은 광야 지역이다.

와일데푸 헬 카스딤 아하레 함메렠 와야시구 엩 치드키야후 베알보트 예레호 웨콜 헤로 나포추 메알라우

개역개정,8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새번역,8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추격하여, 여리고 평원에서 그를 사로잡으니, 시드기야의 군사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우리말성경,8 그러나 갈대아 사람들의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원에서 그를 따라잡았습니다. 그의 모든 군사들은 그를 떠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가톨릭성경,8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치드키야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영어NIV,8 but the Babylonian army pursued King Zedekiah and overtook him in the plains of Jericho. All his soldiers were separated from him and scattered,

영어NASB,8 But the army of the Chaldeans pursued the king and overtook Zedekiah in the plains of Jericho, and all his army was scattered from him.

영어MSG,8 but the Babylonians were in full pursuit. They caught up with them in the Plains of Jericho. But by then Zedekiah’s army had deserted and was scattered.

영어NRSV,8 But the army of the Chaldeans pursued the king, and overtook Zedekiah in the plains of Jericho; and all his army was scattered, deserting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κατεδιωξεν η δυναμις των χαλδαιων οπισω του βασιλεως και κατελαβον αυτον εν τω περαν ιεριχω και παντες οι παιδες αυτου διεσπαρησαν απ’ αυτου

라틴어Vulgate,8 persecutus est autem exercitus Chaldeorum regem et adprehenderunt Sedeciam in deserto quod est iuxta Hiericho et omnis comitatus eius diffugit ab eo

히브리어구약BHS,8 וַיִּרְדְּפוּ חֵיל־כַּשְׂדִּים אַחֲרֵי הַמֶּלֶךְ וַיַּשִּׂיגוּ אֶת־צִדְקִיָּהוּ בְּעַרְבֹת יְרֵחֹו וְכָל־חֵילֹו נָפֹצוּ מֵעָלָיו׃

성 경: [렘52:8]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왔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39:1-10에는 이같은 내용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은 애 4:19, 20에 반영되고 있다.

와이트페수 엩 함메렠 와야알루 오토 엘 멜렠 바벨 리블라타 베에레츠 하마트 와예다벨 잍토 미쉬파트

개역개정,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

새번역,9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체포해서, 하맛 땅의 리블라에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끌고 가니, 그가 시드기야를 신문하고,

우리말성경,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이 그를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어갔고 바벨론 왕이 그를 판결했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영어NIV,9 and he was captured. He was taken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where he pronounced sentence on him.

영어NASB,9 Then they captured the king and brought him up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and he passed sentence on him.

영어MSG,9 The Babylonians captured Zedekiah and marched him off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in Hamath, who tried and sentenced him on the spot.

영어NRSV,9 Then they captured the king, and brought him up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and he passed sentence on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συνελαβον τον βασιλεα και ηγαγον αυτον προς τον βασιλεα βαβυλωνος εις δεβλαθα και ελαλησεν αυτω μετα κρισεως

라틴어Vulgate,9 cumque conprehendissent regem adduxerunt eum ad regem Babylonis in Reblatha quae est in terra Emath et locutus est ad eum iudicia

히브리어구약BHS,9 וַיִּתְפְּשׂוּ אֶת־הַמֶּלֶךְ וַיַּעֲלוּ אֹתֹו אֶל־מֶלֶךְ בָּבֶל רִבְלָתָה בְּאֶרֶץ חֲמָת וַיְדַבֵּר אִתֹּו מִשְׁפָּטִים׃

성 경: [렘52:9]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 시드기야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의 신하들에 관한 내용은 39:5-7과 왕하 25:5-7에 기록되어 있다. ‘하맛 땅 립나’는 오론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정군의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립나는 또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의 여러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도 하였으며, 느부갓네살의 임시 본부가 위치해 있던 곳이었다(Thompson).

와이쉬하트 멜렠 바벨 엩 베네이 치드키야후 레에나우 웨감 엩 콜 사레 예후다 솨하트 베리브라타

개역개정,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새번역,10 또 바빌로니아 왕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처형하고, 역시 리블라에서 유다의 고관들도 모두 처형하였다.

우리말성경,10 그리고 바벨론 왕은 립나에서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또 유다의 모든 관료들도 죽였습니다.

가톨릭성경,10 바빌론 임금은 리블라에서 치드키야가 보는 가운데, 그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유다의 모든 대신들도 살해하였다.

영어NIV,10 There at Riblah the king of Babylon slaughtered the sons of Zedekiah before his eyes; he also killed all the officials of Judah.

영어NASB,10 And the king of Babylon slaughtered the sons of Zedekiah before his eyes, and he also slaughtered all the princes of Judah in Riblah.

영어MSG,10 The king of Babylon then killed Zedekiah’s sons right before his eyes. The summary murder of his sons was the last thing Zedekiah saw, for they then blinded him. The king of Babylon followed that up by killing all the officials of Judah.

영어NRSV,10 The king of Babylon killed the sons of Zedekiah before his eyes, and also killed all the officers of Judah at Riblah.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εσφαξεν βασιλευς βαβυλωνος τους υιους σεδεκιου κατ’ οφθαλμους αυτου και παντας τους αρχοντας ιουδα εσφαξεν εν δεβλαθα

라틴어Vulgate,10 et iugulavit rex Babylonis filios Sedeciae in oculis eius sed et omnes principes Iudae occidit in Reblatha

히브리어구약BHS,10 וַיִּשְׁחַט מֶלֶךְ־בָּבֶל אֶת־בְּנֵי צִדְקִיָּהוּ לְעֵינָיו וְגַם אֶת־כָּל־שָׂרֵי יְהוּדָה שָׁחַט בְּרִבְלָתָה׃

성 경: [렘52:10]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그 목전에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곳의 모든 방백이란 립나에 죄수로 수용되어 있던 유다 방백들을 말한다. 왕하 25장에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송되었던 것이 분명하며, 이들에 대한 처형은 예루살렘 함락 후 몇 주가 지나서 행하여졌을 것이다.

웨엩 에네 치드키야후 아웰 와야아스레후 바누후쉬타임 와예비에후 멜렠 바벨 바벨라 와이트네후 베베트 베트 핲페쿠도트 아드 욤 모토

개역개정,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새번역,11 그리고 바빌로니아 왕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에,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우리말성경,11 그리고 그는 시드기야의 눈을 뽑고 청동족쇄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어가 그가 죽는 날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러고 나서 바빌론 임금은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가서는, 죽는 날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

영어NIV,11 Then he put out Zedekiah’s eyes, bound him with bronze shackles and took him to Babylon, where he put him in prison till the day of his death.

영어NASB,11 Then he blinded the eyes of Zedekiah; and the king of Babylon bound him with bronze fetters and brought him to Babylon, and put him in prison until the day of his death.

영어MSG,11 Securely handcuffed, Zedekiah was hauled off to Babylon. The king of Babylon threw him in prison, where he stayed until the day he died.

영어NRSV,11 He put out the eyes of Zedekiah, and bound him in fetters, and the king of Babylon took him to Babylon, and put him in prison until the day of his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τους οφθαλμους σεδεκιου εξετυφλωσεν και εδησεν αυτον εν πεδαις και ηγαγεν αυτον βασιλευς βαβυλωνος εις βαβυλωνα και εδωκεν αυτον εις οικιαν μυλωνος εως ημερας ης απεθανεν

라틴어Vulgate,11 et oculos Sedeciae eruit et vinxit eum conpedibus et adduxit eum rex Babylonis in Babylonem et posuit eum in domo carceris usque ad diem mortis eius

히브리어구약BHS,11 וְאֶת־עֵינֵי צִדְקִיָּהוּ עִוֵּר וַיַּאַסְרֵהוּ בַנְחֻשְׁתַּיִם וַיְבִאֵהוּ מֶלֶךְ־בָּבֶל בָּבֶלָה וַיִּתְּנֵהוּ [כ= בְבֵית]־ [ק= בֵית]־הַפְּקֻדֹּת עַד־יֹום מֹותֹו׃

성 경: [렘52:11]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겔 12:13의 성취이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옮겨져 거기서 죽을 때까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상세한 설명은 39:7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 전후에 겪었던 그 쓰라린 육체적,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면서 그 이후 그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짐작컨대, 아마 그는 그 이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옥에 해당하는 ‘베트 하페쿠드트'(*)는, ‘감옥’이란 뜻으로 본서에 자주 언급되는 ‘마타라'(*)와 비교된다(32:2, 8, 12; 33:1; 37:21등). 문자적으로 ‘징계의 집’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혹자는 시드기야가 삼손처럼 맷돌을 돌려야 했다고 해석하나(Hitzing) 확실한 근거는 없다.

우바호데쉬 하하미쉬 베아솔 라호데쉬 히 쉐나트 테솨 에스레 솨나 람메렠 네부카드레차르 멜렠 바벨 바 느부잘아단 랍 탑바힘 아마드 리페네 멜렠 바벨 비루솰람

개역개정,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새번역,12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 제 십구년 다섯째 달 십일에, 바빌로니아 왕의 부하인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우리말성경,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19년 다섯째 달 10일에 바벨론 왕을 섬기는 경호 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가톨릭성경,12 다섯째 달 초열흘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을 면전에서 섬기던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영어NIV,12 On the tenth day of the fifth month, in the nineteenth year of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Nebuzaradan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who served the king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영어NASB,12 Now on the tenth day of the fifth month, which was the nineteenth year of King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bodyguard, who was in the service of the king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영어MSG,12 In the nineteenth year of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on the seventh day of the fifth month, Nebuzaradan, the king of Babylon’s chief deputy, arrived in Jerusalem.

영어NRSV,12 In the fifth month, on the tenth day of the month–which was the nineteenth year of King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bodyguard who served the king of Babylon, entered Jerusalem.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ν μηνι πεμπτω δεκατη του μηνος ηλθεν ναβουζαρδαν ο αρχιμαγειρος ο εστηκως κατα προσωπον του βασιλεως βαβυλωνος εις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12 in mense autem quinto decima mensis ipse est annus nonusdecimus Nabuchodonosor regis Babylonis venit Nabuzardan princeps militiae qui stabat coram rege Babylonis in Hierusalem

히브리어구약BHS,12 וּבַחֹדֶשׁ הַחֲמִישִׁי בֶּעָשֹׂור לַחֹדֶשׁ הִיא שְׁנַת תְּשַׁע־עֶשְׂרֵה שָׁנָה לַמֶּלֶךְ נְבוּכַדְרֶאצַּר מֶלֶךְ־בָּבֶל בָּא נְבוּזַרְאֲדָן רַב־טַבָּחִים עָמַד לִפְנֵי מֶלֶךְ־בָּבֶל בִּירוּשָׁלִָם׃

성 경: [렘52:12]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본절의 내용은 39:1-10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오 월’은 현재의 7-8월에 해당되며, ‘십 일’은 왕하 25:8에서는 7일로 나타나 있다. 아무튼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때였다(Bright). 한편 그의 도착 연대로 언급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십 구 년은 B.C. 586년에 해당된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실제적으로 왕위에 등극한 때가 B.C. 605년이었다는 연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와이스로프 엩 베이트 아도나이 웨엩 베이트 함메렠 웨엩 콜 밭테 예루솰람 웨엩 콜 베이트 학가돌 사라프 바에쉬

개역개정,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새번역,13 그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 곧 큰 건물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우리말성경,13 그는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들, 모든 큰 집들을 불태웠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영어NIV,13 He set fire to the temple of the LORD, the royal palace and all the houses of Jerusalem. Every important building he burned down.

영어NASB,13 And he burned the house of the LORD, the king’s house, and all the houses of Jerusalem; even every large house he burned with fire.

영어MSG,13 He burned the Temple of GOD to the ground, went on to the royal palace, and then finished off the city. He burned the whole place down.

영어NRSV,13 He burned the house of the LORD, the king’s house, and all the houses of Jerusalem; every great house he burned down.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νεπρησεν τον οικον κυριου και τον οικον του βασιλεως και πασας τας οικιας της πολεως και πασαν οικιαν μεγαλην ενεπρησεν εν πυρι

라틴어Vulgate,13 et incendit domum Domini et domum regis et omnes domos Hierusalem et omnem domum magnam igne conbusit

히브리어구약BHS,13 וַיִּשְׂרֹף אֶת־בֵּית־יְהוָה וְאֶת־בֵּית הַמֶּלֶךְ וְאֵת כָּל־בָּתֵּי יְרוּשָׁלִַם וְאֶת־כָּל־בֵּית הַגָּדֹול שָׂרַף בָּאֵשׁ׃

성 경: [렘52:13]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그 불길은 전도시를 휩쓸었을 것이다(Thompson). 한편 어떤 이는 ‘귀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을 그다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음가가 다소 비슷하기 때문이나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웨윁 콜 호모트 예루솰람 사비브 나트추 콜 헬 카스딤 아쉘 엩 랍 탑바힘

개역개정,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새번역,14 근위대장이 지휘하는 바빌로니아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모두 헐어 버렸다.

우리말성경,14 경호 대장을 따르던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가톨릭성경,14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모두 허물었다.

영어NIV,14 The whole Babylonian army under the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broke down all the walls around Jerusalem.

영어NASB,14 So all the army of the Chaldeans who were with the captain of the guard broke down all the walls around Jerusalem.

영어MSG,14 He put the Babylonian troops he had with him to work knocking down the city walls.

영어NRSV,14 All the army of the Chaldeans, who were with the captain of the guard, broke down all the walls around Jerusalem.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παν τειχος ιερουσαλημ κυκλω καθειλεν η δυναμις των χαλδαιων η μετα του αρχιμαγειρου

라틴어Vulgate,14 et totum murum Hierusalem per circuitum destruxit cunctus exercitus Chaldeorum qui erat cum magistro militiae

히브리어구약BHS,14 וְאֶת־כָּל־חֹמֹות יְרוּשָׁלִַם סָבִיב נָתְצוּ כָּל־חֵיל כַּשְׂדִּים אֲשֶׁר אֶת־רַב־טַבָּחִים׃

성 경: [렘52:14]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사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황폐가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헐다'(*, 나타츠)라고 하는 말은 본서에서 빈번하게 쓰였다.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열방을 헐어내리는 임무를 맡기셨으며(1:10), 또한 여호와 자신이 한 나라를 헐어내리실 것이라고도 말씀했다(18:7), 그리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이미 헐어내리셨던 것이다(31:28).

우믿달로트 하암 웨엩 예텔 하암 한니스아림 바일 웨엩 한노페림 아쉘 나펠루 엘 멜렠 바벨 웨엩 예텔 하아몬 헤글라 느부잘아단 랍 탑바힘

개역개정,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새번역,15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백성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도성 안에 남은 나머지 사람들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투항한 사람들과, 나머지 기술자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

우리말성경,15 경호 대장 느부사라단은 백성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과 성읍 안에 남아 있던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사람들과 남아 있던 세공장이들을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가톨릭성경,15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백성 가운데 일부 가난한 이들과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 장인들을 끌고 갔다.

영어NIV,15 Nebuzaradan the commander of the guard carried into exile some of the poorest people and those who remained in the city, along with the rest of the craftsmen and those who had gone over to the king of Babylon.

영어NASB,15 Then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carried away into exile some of the poorest of the people, the rest of the people who were left in the city, the deserters who had deserted to the king of Babylon, and the rest of the artisans.

영어MSG,15 Finally, he rounded up everyone left in the city, including those who had earlier deserted to the king of Babylon, and took them off into exile.

영어NRSV,15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carried into exile some of the poorest of the people and the rest of the people who were left in the city and the deserters who had defected to the king of Babylon, together with the rest of the artisans.

헬라어구약Septuagint,15 (없음)

라틴어Vulgate,15 de pauperibus autem populi et de reliquo vulgo quod remanserat in civitate et de perfugis qui transfugerant ad regem Babylonis et ceteros de multitudine transtulit Nabuzardan princeps militiae

히브리어구약BHS,15 וּמִדַּלֹּות הָעָם וְאֶת־יֶתֶר הָעָם הַנִּשְׁאָרִים בָּעִיר וְאֶת־הַנֹּפְלִים אֲשֶׁר נָפְלוּ אֶל־מֶלֶךְ בָּבֶל וְאֵת יֶתֶר הָאָמֹון הֶגְלָה נְבוּזַרְאֲדָן רַב־טַבָּחִים׃

성 경: [렘52:15]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본절은 느부사라단이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을 언급한다. 백성 중 빈한한 자에 대한 언급이 왕하 25:11; 렘 39:9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맛소라 사본을 위시하여 대부분의 사본에는 수록되어 있다. 본절의 ‘빈한한 자’나 16절의 ‘빈천한 국민’은 히브리어로는 모두 ‘달로트'(*)이다. 결국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지도층 뿐만 아니라 빈부 귀천을 막론한 일반 백성들까지 상당수를 잡아갔던 셈이다. 무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몬'(*)은 ‘하몬'(*)의 어미 변화로 보고 ‘군중’, ‘무리’로도 번역되나, ‘공교한 기술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우믿달로트 하아레츠 히쉬일 느부잘아단 랍 탑바힘 레코르밈 우레요그빔

개역개정,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새번역,16 그러나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우리말성경,16 그러나 경호 대장 느부사라단은 가난한 사람들 일부를 그 땅에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고 밭을 갈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러나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영어NIV,16 But Nebuzaradan left behind the rest of the poorest people of the land to work the vineyards and fields.

영어NASB,16 But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left some of the poorest of the land to be vinedressers and plowmen.

영어MSG,16 He left a few poor dirt farmers behind to tend the vineyards and what was left of the fields.

영어NRSV,16 But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left some of the poorest people of the land to be vinedressers and tillers of the soil.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τους καταλοιπους του λαου κατελιπεν ο αρχιμαγειρος εις αμπελουργους και εις γεωργους

라틴어Vulgate,16 de pauperibus vero terrae reliquit Nabuzardan princeps militiae in vinitores et in agricolas

히브리어구약BHS,16 וּמִדַּלֹּות הָאָרֶץ הִשְׁאִיר נְבוּזַרְאֲדָן רַב־טַבָּחִים לְכֹרְמִים וּלְיֹגְבִים׃

성 경: [렘52:16]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예루살렘의 멸망]

󰃨 빈천한 국민을 남겨 두어 – 정치적으로 비중이 없는 자들은 남아서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가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힘이 없고 빈천한 자들이었다. 갈대아인들은 유다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만한 충분한 포로들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람들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한편, 40-41장의 내용을 보면, 미스바 지역 공동체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듯이 보인다. 아마 그들은 바벨론 군대를 용케 피했던 자들에 의해 인도된 집단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웨엩 암무데 한네호쉩 아쉘 레베트 아도나이 웨엩 함메코노트 웨엩 얌 한네호쉐트 아쉘 베베트 아도나이 쉽베루 카스딤 와이스우 엩 콜 네후쉬탐 바벨라

개역개정,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새번역,17 바빌로니아 군대는 주님의 성전에 있는 놋쇠 기둥과 받침대, 또 주님의 성전에 있는 놋바다를 부수어서, 모든 놋쇠를 바빌론으로 가져 갔다.

우리말성경,17 갈대아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청동기둥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받침대와 청동바다를 깨뜨리고 부수어 그 모든 청동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가톨릭성경,17 칼데아인들은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기둥들과 받침대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 있는 청동 바다를 부순 뒤, 그 청동을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영어NIV,17 The Babylonians broke up the bronze pillars, the movable stands and the bronze Sea that were at the temple of the LORD and they carried all the bronze to Babylon.

영어NASB,17 Now the bronze pillars which belonged to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stands and the bronze sea, which were in the house of the LORD, the Chaldeans broke in pieces and carried all their bronze to Babylon.

영어MSG,17 The Babylonians broke up the bronze pillars, the bronze washstands, and the huge bronze basin (the Sea) that were in the Temple of GOD, and hauled the bronze off to Babylon.

영어NRSV,17 The pillars of bronze that were in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stands and the bronze sea that were in the house of the LORD, the Chaldeans broke in pieces, and carried all the bronze to Babylon.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τους στυλους τους χαλκους τους εν οικω κυριου και τας βασεις και την θαλασσαν την χαλκην την εν οικω κυριου συνετριψαν οι χαλδαιοι και ελαβον τον χαλκον αυτων και απηνεγκαν εις βαβυλωνα

라틴어Vulgate,17 columnas quoque aereas quae erant in domo Domini et bases et mare aereum quod erat in domo Domini confregerunt Chaldei et tulerunt omne aes eorum in Babylonem

히브리어구약BHS,17 וְאֶת־עַמּוּדֵי הַנְּחֹשֶׁת אֲשֶׁר לְבֵית־יְהוָה וְאֶת־הַמְּכֹנֹות וְאֶת־יָם הַנְּחֹשֶׁת אֲשֶׁר בְּבֵית־יְהוָה שִׁבְּרוּ כַשְׂדִּים וַיִּשְׂאוּ אֶת־כָּל־נְחֻשְׁתָּם בָּבֶלָה׃

성 경: [렘52:17]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놋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성전 기구들은 왕상7:15-39에 나온다. 이 ‘두 놋기둥’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다.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을 참조하라. ‘놋바다’는 왕상 7:23-26에, 그리고 ‘받침’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에 언급되고 있다. 이 기둥의 용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제단의 불이나 화롯불을 담아두었던 것 같다. 이러한 기둥들은 수리아 신전 벽화를 보건대 B.C. 10세기경에 대단히 유행했던 것 같다.

웨엩 핫시로트 웨엩 하야임 웨엩 하므잠메로트 웨엩 함미즈라코트 웨엩 하카포트 웨윁 콜 케레 한네호쉩 아쉘 예솰레투 바헴 라카후

개역개정,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새번역,18 또 솥과 부삽과 부집게와, 대야와 향 접시와 제사를 드릴 때에 쓰는 놋쇠 기구를 모두 가져 갔다.

우리말성경,18 그들은 또한 솥, 부삽, 부집게, 사발, 접시와 성전 예배 때 쓰는 청동으로 만든 모든 기구들을 다 가져갔습니다.

가톨릭성경,18 그들은 냄비와 부삽, 불똥 가위와 쟁반과 접시, 그 밖에 예배 때에 쓰는 모든 청동 기물도 가져갔다.

영어NIV,18 They also took away the pots, shovels, wick trimmers, sprinkling bowls, dishes and all the bronze articles used in the temple service.

영어NASB,18 And they also took away the pots, the shovels, the snuffers, the basins, the pans, and all the bronze vessels which were used in temple service.

영어MSG,18 They also took the various bronze-crafted liturgical accessories, as well as the gold and silver censers and sprinkling bowls, used in the services of Temple worship.

영어NRSV,18 They took away the pots, the shovels, the snuffers, the basins, the ladles, and all the vessels of bronze used in the temple service.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την στεφανην και τας φιαλας και τας κρεαγρας και παντα τα σκευη τα χαλκα εν οις ελειτουργουν ε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18 et lebetas et creagras et psalteria et fialas et mortariola et omnia vasa aerea quae in ministerio fuerant tulerunt

히브리어구약BHS,18 וְאֶת־הַסִּרֹות וְאֶת־הַיָּעִים וְאֶת־הַמְזַמְּרֹות וְאֶת־הַמִּזְרָקֹת וְאֶת־הַכַּפֹּות וְאֵת כָּל־כְּלֵי הַנְּחֹשֶׁת אֲשֶׁר־יְשָׁרְתוּ בָהֶם לָקָחוּ׃

성 경: [렘52:18]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가마’는 조그마한 물건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아무튼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여러 기구들은 크기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놋바다의 직경은 약 456cm 정도되었다. 이런 기구들은 모두 놋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바벨론으로 옮겨갈 만큼 귀중한 것이었다(Thompson).

웨엩 핫시핌 웨엩 함마흐토트 웨엩 함미즈라코트 웨엩 핫시로트 웨엩 함메노로트 웨엩 핰카포트 웨엩 함메나키요트 아쉘 자합 자합 와아쉘 케셒 카셒 라카흐 랍 탑바힘

개역개정,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새번역,19 근위대장은 잔과 화로와 대야와 솥과 등잔대와 향 접시와 부어 드리는 제사 때 쓰는 잔을 모두 가져 갔다.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하여 가져 갔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고 하여 가져 갔다.

우리말성경,19 경호 대장은 또 대야, 화로, 사발, 솥, 촛대, 접시, 잔 등 순금과 순은으로 된 것들을 다 가져갔습니다.

가톨릭성경,19 친위대장은 작은 대접과 향로, 쟁반과 냄비와 등잔대, 접시와 술잔도 가져갔는데, 금으로 만든 것은 금이라고 가져가고, 은으로 만든 것은 은이라고 가져갔다.

영어NIV,19 The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took away the basins, censers, sprinkling bowls, pots, lampstands, dishes and bowls used for drink offerings–all that were made of pure gold or silver.

영어NASB,19 The captain of the guard also took away the bowls, the firepans, the basins, the pots, the lampstands, the pans and the libation bowls, what was fine gold and what was fine silver.

영어MSG,19 The king’s deputy didn’t miss a thing. He took every scrap of precious metal he could find.

영어NRSV,19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away the small bowls also, the firepans, the basins, the pots, the lampstands, the ladles, and the bowls for libation, both those of gold and those of silver.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τα σαφφωθ και τα μασμαρωθ και τους υποχυτηρας και τας λυχνιας και τας θυισκας και τους κυαθους α ην χρυσα χρυσα και α ην αργυρα αργυρα ελαβεν ο αρχιμαγειρος

라틴어Vulgate,19 et hydrias et thymiamateria et urceos et pelves et candelabra et mortaria et cyatos quotquot aurea aurea et quotquot argentea argentea tulit magister militiae

히브리어구약BHS,19 וְאֶת־הַסִּפִּים וְאֶת־הַמַּחְתֹּות וְאֶת־הַמִּזְרָקֹות וְאֶת־הַסִּירֹות וְאֶת־הַמְּנֹרֹות וְאֶת־הַכַּפֹּות וְאֶת־הַמְּנַקִיֹות אֲשֶׁר זָהָב זָהָב וַאֲשֶׁר־כֶּסֶף כָּסֶף לָקַח רַב־טַבָּחִים׃

성 경: [렘52:19]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를 직역하면, ‘금이었던 것 – 금, 은이었던 것 – 은’이다. 아마도 이 말은 본절의 잔들, 화로들, 주발들,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금으로 만들어진 제기들이 출25:29 이하에 언급되고 있고, 왕상 7:49 이하에는 이들 항목 중 대부분이 언급되고 있다.

하암무딤 쉐나임 하얌 에하드 웨합바카르 쉬넴 아사르 네호쉐트 아쉘 타하트 함메코노트 아쉘 아사 함메렠 쉐로모 레베트 아도나이 로 하야 미쉬칼 리네후쉬탐 콜 핰케림 하엘레

개역개정,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새번역,20 솔로몬 왕이 주님의 성전에 만들어 놓은 놋쇠로 만든 두 기둥과, 놋바다 하나와, 놋받침대 밑에 있는 놋쇠로 만든 소 모형 열둘을 모두 가져 갔다. 그가 가져 간 이 모든 기구의 놋쇠는, 그 무게를 달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리말성경,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만든 두 기둥들과 바다 하나와 그 아래 12마리 청동황소 받침대 등 이 모든 집기들에서 나온 청동은 무게를 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톨릭성경,20 솔로몬 임금이 주님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기둥 두 개와 청동 바다 하나와, 받침대 밑에 청동으로 만든 황소 열두 개 등, 이 모든 기물에 쓰인 청동은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정도였다.

영어NIV,20 The bronze from the two pillars, the Sea and the twelve bronze bulls under it, and the movable stands, which King Solomon had made for the temple of the LORD, was more than could be weighed.

영어NASB,20 The two pillars, the one sea, and the twelve bronze bulls that were under the sea, and the stands, which King Solomon had made for the house of the LORD– the bronze of all these vessels was beyond weight.

영어MSG,20 The amount of bronze they got from the two pillars, the Sea, the twelve bronze bulls that supported the Sea, and the ten washstands that Solomon had made for the Temple of GOD was enormous. They couldn’t weigh it all!

영어NRSV,20 As for the two pillars, the one sea, the twelve bronze bulls that were under the sea, and the stands, which King Solomon had made for the house of the LORD, the bronze of all these vessels was beyond weigh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οι στυλοι δυο και η θαλασσα μια και οι μοσχοι δωδεκα χαλκοι υποκατω της θαλασσης α εποιησεν ο βασιλευς σαλωμων εις οικον κυριου ουκ ην σταθμος του χαλκου αυτων

라틴어Vulgate,20 columnas duas et mare unum vitulos duodecim aereos qui erant sub basibus quas fecerat rex Salomon in domo Domini non erat pondus aeris omnium vasorum horum

히브리어구약BHS,20 הָעַמּוּדִים שְׁנַיִם הַיָּם אֶחָד וְהַבָּקָר שְׁנֵים־עָשָׂר נְחֹשֶׁת אֲשֶׁר־תַּחַת הַמְּכֹנֹות אֲשֶׁר עָשָׂה הַמֶּלֶךְ שְׁלֹמֹה לְבֵית יְהוָה לֹא־הָיָה מִשְׁקָל לִנְחֻשְׁתָּם כָּל־הַכֵּלִים הָאֵלֶּה׃

성 경: [렘52:20]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열 두 놋소 곧…놋 중수를 – 왕하 25:16에는 본절에 언급된 항목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학자들은 놋으로 만들어진 열 두 소들이 한세기 반 전에 이미 앗수르의 공물로 보내졌기 때문에 본절이 첨가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설령 앗수르로 보내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들은 그 이후에 다시 되돌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Bright).

웨하암무딤 쉐모네 에스레 암마 코마 코마트 하암무드 하에하드 웨후트 쉬템 에스레 암마 예숩벤누 웨아베요 알바 아츠바오트 나부브

개역개정,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새번역,21 기둥 한 개의 높이는 열여덟 자이고, 둘레가 열두 자이고, 기둥 속은 비었지만, 놋쇠 두께는 손가락 네 개의 너비이다.

우리말성경,21 기둥에 대해서 말하자면 기둥 하나에 높이가 18규빗, 둘레가 12규빗이었고 그 두께가 손가락 네 개 너비였고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1 기둥만 해도 기둥 한 개의 높이가 열여덟 암마, 그 둘레가 열두 암마이다. 그 속은 비어 있지만 기둥 면의 두께가 손가락 넷을 합친 것만큼이나 되었다.

영어NIV,21 Each of the pillars was eighteen cubits high and twelve cubits in circumference; each was four fingers thick, and hollow.

영어NASB,21 As for the pillars, the height of each pillar was eighteen cubits, and it was twelve cubits in circumference and four fingers in thickness, and hollow.

영어MSG,21 Each pillar stood twenty-seven feet high with a circumference of eighteen feet. The pillars were hollow, the bronze a little less than an inch thick.

영어NRSV,21 As for the pillars, the height of the one pillar was eighteen cubits, its circumference was twelve cubits; it was hollow and its thickness was four finger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οι στυλοι τριακοντα πεντε πηχων υψος του στυλου του ενος και σπαρτιον δωδεκα πηχεων περιεκυκλου αυτον και το παχος αυτου δακτυλων τεσσαρων κυκλω

라틴어Vulgate,21 de columnis autem decem et octo cubiti altitudinis erant in columna una et funiculus duodecim cubitorum circuibat eam porro grossitudo eius quattuor digitorum et intrinsecus cava erat

히브리어구약BHS,21 וְהָעַמּוּדִים שְׁמֹנֶה עֶשְׂרֵה אַמָּה [כ= קֹומָה] [ק= קֹומַת] הָעַמֻּד הָאֶחָד וְחוּט שְׁתֵּים־עֶשְׂרֵה אַמָּה יְסֻבֶּנּוּ וְעָבְיֹו אַרְבַּע אַצְבָּעֹות נָבוּב׃

성 경: [렘52:21]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 70인역(LXX)은 대하 3:15과 같이 기둥의 높이를 35규빗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왕상 7:15 주석을 참조하라.

웨코테레트 알라우 네호쉐트 웨코마트 하코테레트 하아하트 하메쉬 암모트 우스바카 웨림모님 알 핰코테레트 사비브 핰콜 네호쉐트 웨카엘레 라암무드 핫쉐니 웨림모님

개역개정,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새번역,22 그 위에는 놋쇠로 된 기둥머리가 있고, 각 기둥머리의 높이는 다섯 자이다. 그리고 놋쇠로 된 기둥머리 위 사방에는 그물과 석류 모양의 장식이 얹혀 있다. 다른 기둥도 석류 모양을 하고 있어서, 똑같이 장식되어 있다.

우리말성경,22 기둥 위에는 청동으로 된 머리가 있었는데 그 머리는 높이가 5규빗이었고 머리 주위에 그물과 석류가 달려 있었는데 모두 청동이었습니다. 다른 기둥도 석류들을 갖고 있어 그 모양이 비슷했습니다.

가톨릭성경,22 그 기둥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기둥머리가 있는데, 그 기둥머리의 높이는 다섯 암마였다. 이 기둥머리에는 모두 청동으로 만든 그물과 석류들이 돌아가며 달리고, 두 번째 기둥도 마찬가지로 석류들이 달렸다.

영어NIV,22 The bronze capital on top of the one pillar was five cubits high and was decorated with a network and pomegranates of bronze all around. The other pillar, with its pomegranates, was similar.

영어NASB,22 Now a capital of bronze was on it; and the height of each capital was five cubits, with network and pomegranates upon the capital all around, all of bronze. And the second pillar was like these, including pomegranates.

영어MSG,22 Each pillar was topped with an ornate capital of bronze pomegranates and filigree, which added another seven and a half feet to its height.

영어NRSV,22 Upon it was a capital of bronze; the height of the one capital was five cubits; latticework and pomegranates, all of bronze, encircled the top of the capital. And the second pillar had the same, with pomegranates.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γεισος επ’ αυτοις χαλκουν και πεντε πηχεων το μηκος υπεροχη του γεισους του ενος και δικτυον και ροαι επι του γεισους κυκλω τα παντα χαλκα και κατα ταυτα τω στυλω τω δευτερω οκτω ροαι τω πηχει τοις δωδεκα πηχεσιν

라틴어Vulgate,22 et capitella super utramque aerea altitudo capitelli unius quinque cubitorum et retiacula et mala granata

히브리어구약BHS,22 וְכֹתֶרֶת עָלָיו נְחֹשֶׁת וְקֹומַת הַכֹּתֶרֶת הָאַחַת חָמֵשׁ אַמֹּות וּשְׂבָכָה וְרִמֹּונִים עַל־הַכֹּותֶרֶת סָבִיב הַכֹּל נְחֹשֶׁת וְכָאֵלֶּה לַעַמּוּד הַשֵּׁנִי וְרִמֹּונִים׃

성 경: [렘52:22]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왕상7:16-20에 언급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출 28:33). 한편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용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런 장식은 이스라엘 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와이흐이우 하림모님 티쉬임 웨쉬솨 루하 콜 하림모님 메아 알 핫세바카 사비브

개역개정,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새번역,23 그물에 사방으로 매달린 석류는 모두 백 개인데, 밖에서 보이는 것은 아흔여섯 개이다.

우리말성경,23 그 사방에 석류 96개가 있었고 기둥 위로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다 합쳐 100개였습니다.

가톨릭성경,23 겉보기에는 아흔여섯 개지만 실제로 그물에 매달린 석류는 모두 백 개나 되었다.

영어NIV,23 There were ninety-six pomegranates on the sides; the total number of pomegranates above the surrounding network was a hundred.

영어NASB,23 And there were ninety-six exposed pomegranates; all the pomegranates numbered a hundred on the network all around.

영어MSG,23 There were ninety-six pomegranates evenly spaced–in all, a hundred pomegranates worked into the filigree.

영어NRSV,23 There were ninety-six pomegranates on the sides; all the pomegranates encircling the latticework numbered one hundred.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ησαν αι ροαι ενενηκοντα εξ το εν μερος και ησαν αι πασαι ροαι επι του δικτυου κυκλω εκατον

라틴어Vulgate,23 nonaginta sex dependentia omnia mala granata centum retiaculis circumdabantur

히브리어구약BHS,23 וַיִּהְיוּ הָרִמֹּנִים תִּשְׁעִים וְשִׁשָּׁה רוּחָה כָּל־הָרִמֹּונִים מֵאָה עַל־הַשְּׂבָכָה סָבִיב׃

성 경: [렘52:23]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성전 파괴와 성전 기물의 훼손]

󰃨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 몇몇 세부적인 사항들은 왕상 7장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 당시 바벨론으로 약탈되어 간 성전 기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 진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본장의 기록 목적도 세부적인 사실 전달에 있었던 것이 아니며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Thompson).

와이카흐 랍 탑바힘 엩 스라야 코헨 하로쉬 웨엩 체파느야 코헨 함미쉬네 웨엩 쉐로쉐트 쇼메레 핫사프

개역개정,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새번역,24 근위대장은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세 명의 성전 문지기를 체포하였다.

우리말성경,24 경호 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세 명의 문지기들을 붙잡았습니다.

가톨릭성경,24 친위대장은 스라야 수석 사제, 두 번째 서열의 스바니야 사제, 그리고 성전 문지기 셋을 체포하였다.

영어NIV,24 The commander of the guard took as prisoners Seraiah the chief priest, Zephaniah the priest next in rank and the three doorkeepers.

영어NASB,24 Then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Seraiah the chief priest and Zephaniah the second priest, with the three officers of the temple.

영어MSG,24 The king’s deputy took a number of special prisoners: Seraiah the chief priest, Zephaniah the associate priest, three wardens,

영어NRSV,24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the chief priest Seraiah, the second priest Zephaniah, and the three guardians of the threshold;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και ελαβεν ο αρχιμαγειρος τον ιερεα τον πρωτον και τον ιερεα τον δευτερευοντα και τους τρεις τους φυλαττοντας την οδον

라틴어Vulgate,24 et tulit magister militiae Saraiam sacerdotem primum et Sophoniam sacerdotem secundum et tres custodes vestibuli

히브리어구약BHS,24 וַיִּקַּח רַב־טַבָּחִים אֶת־שְׂרָיָה כֹּהֵן הָרֹאשׁ וְאֶת־צְפַנְיָה כֹּהֵן הַמִּשְׁנֶה וְאֶת־שְׁלֹשֶׁת שֹׁמְרֵי הַסַּף׃

성 경: [렘52:24]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한다. ‘스라야’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다(대상 6:13-15).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포로기 이후 성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다(스 5:2; 학 1:1 등 참조). 그리고 ‘부제사장 스바냐’는 29:24-32과 37:3에 언급되었던 스바냐와 동일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명의 문지기는 성전을 관리했던 것으로 보이는 높은 직책의 제사장들이었다.

우민 하이르 라카흐 사리스 에하드 아쉘 하야 파키드 알 아네쉐 함밀하마 웨쉬브아 아나쉼 메로에 페네 함메렠 아쉘 니므체우 바이르 웨엩 소페르 사르 하차바 함미츠비 엩 암 하아레츠 웨쉬쉼 이쉬 메암 하아레츠 한니므체임 베토크 하이르

개역개정,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새번역,25 이 밖에도 그가 도성 안에서 체포한 사람은, 군대를 통솔하는 내시 한 사람과, 도성 안에 그대로 남은 왕의 시종 일곱 사람과, 그 땅의 백성을 군인으로 징집하는 권한을 가진 군대 참모장과, 도성 안에 남은 그 땅의 백성 예순 명이다.

우리말성경,25 또 군사들을 담당했던 장관 한 사람과 성읍 가운데서 찾은 일곱 명의 왕의 고문들과 그 땅 백성을 징집하던 군대의 최고 서기관과 성읍 가운데서 발견된 그 땅의 백성 60명을 성읍에서 붙잡았습니다.

가톨릭성경,25 또한 군사의 지휘관이었던 내시 하나도 도성에서 체포하였다. 이 밖에도 도성에서 발견된 임금의 측근 일곱과 나라 백성을 징집하는 군부대신 서기관과, 도성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나라 백성 예순 명도 체포하였다.

영어NIV,25 Of those still in the city, he took the officer in charge of the fighting men, and seven royal advisers. He also took the secretary who was chief officer in charge of conscripting the people of the land and sixty of his men who were found in the city.

영어NASB,25 He also took from the city one official who was overseer of the men of war, and seven of the king’s advisers who were found in the city, and the scribe of the commander of the army who mustered the people of the land, and sixty men of the people of the land who were found in the midst of the city.

영어MSG,25 the chief remaining army officer, seven of the king’s counselors who happened to be in the city, the chief recruiting officer for the army, and sixty men of standing from among the people who were still there.

영어NRSV,25 and from the city he took an officer who had been in command of the soldiers, and seven men of the king’s council who were found in the city; the secretary of the commander of the army who mustered the people of the land; and sixty men of the people of the land who were found inside the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ευνουχον ενα ος ην επιστατης των ανδρων των πολεμιστων και επτα ανδρας ονομαστους τους εν προσωπω του βασιλεως τους ευρεθεντας εν τη πολει και τον γραμματεα των δυναμεων τον γραμματευοντα τω λαω της γης και εξηκοντα ανθρωπους εκ του λαου της γης τους ευρεθεντας εν μεσω της πολεως

라틴어Vulgate,25 et de civitate tulit eunuchum unum qui erat praepositus super viros bellatores et septem viros de his qui videbant faciem regis qui inventi sunt in civitate et scribam principem militum qui probabat tirones et sexaginta viros de populo terrae qui inventi sunt in medio civitatis

히브리어구약BHS,25 וּמִן־הָעִיר לָקַח סָרִיס אֶחָד אֲשֶׁר־הָיָה פָקִיד עַל־אַנְשֵׁי הַמִּלְחָמָה וְשִׁבְעָה אֲנָשִׁים מֵרֹאֵי פְנֵי־הַמֶּלֶךְ אֲשֶׁר נִמְצְאוּ בָעִיר וְאֵת סֹפֵר שַׂר הַצָּבָא הַמַּצְבִּא אֶת־עַם הָאָרֶץ וְשִׁשִּׁים אִישׁ מֵעַם הָאָרֶץ הַנִּמְצְאִים בְּתֹוךְ הָעִיר׃

성 경: [렘52:25]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왕의 시종 – ‘장관’으로 번역된 ‘사리스'(*)는 ‘거세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환관을 의미한다. 본서 중반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그 이후 보직(補職)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브라이트(Bright)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떤 공직자였던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어쩌면 군대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야전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 국방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왕의 시종'(*, 로에 페네 하멜레크)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왕의 얼굴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들은 왕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어 빈번하게 왕과 접촉했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의 숫자가 본절에서는 칠 인으로 되어 있으나 왕하 25:19에는 다섯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군대 장관의 서기관’이란 것은 부사령관이나 부관 정도 되는 그런 위치였을 것이다. ‘국민'(*, 메암 하아레츠)의 문자적 번역은 ‘그 땅의 백성’으로서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Bright).

와잌카흐 오탐 느부잘아단 랍 탑바힘 와욜레크 오탐 엘 멜렠 바벨 리블라타

개역개정,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새번역,26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체포하여, 리블라에 머물고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데리고 갔다.

우리말성경,26 경호 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갔습니다.

가톨릭성경,26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그들을 체포하여,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끌고 갔다.

영어NIV,26 Nebuzaradan the commander took them all and brought them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영어NASB,26 And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them and brought them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영어MSG,26 Nebuzaradan the king’s deputy marched them all off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영어NRSV,26 Then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them, and brought them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ελαβεν αυτους ναβουζαρδαν ο αρχιμαγειρος και ηγαγεν αυτους προς βασιλεα βαβυλωνος εις δεβλαθα

라틴어Vulgate,26 tulit autem eos Nabuzardan magister militiae et duxit eos ad regem Babylonis in Reblatha

히브리어구약BHS,26 וַיִּקַּח אֹותָם נְבוּזַרְאֲדָן רַב־טַבָּחִים וַיֹּלֶךְ אֹותָם אֶל־מֶלֶךְ בָּבֶל רִבְלָתָה׃

성 경: [렘52:26]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시드기야가 압송되어 갔던 립나로 이들 선발된 무리들 역시 이송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그곳에서 처형 당하기 위해서 붙잡혀 갔을 것이다(27절).

와야케 오탐 멜렠 바벨 와예미템 베리블라 베에레츠 하마트 와야겔 예후다 메알 아드마토

개역개정,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새번역,27 바빌로니아 왕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처형하였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다.

우리말성경,27 그 후에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그들을 쳐 죽였습니다. 이렇게 유다가 자기 땅에서 떠나 포로로 잡혀가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27 바빌론 임금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쳐 죽였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

영어NIV,27 There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the king had them executed. So Judah went into captivity, away from her land.

영어NASB,27 Then the king of Babylon struck them down and put them to death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So Judah was led away into exile from its land.

영어MSG,27 And there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the king of Babylon killed the lot of them in cold blood. Judah went into exile, orphaned from her land.

영어NRSV,27 And the king of Babylon struck them down, and put them to death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So Judah went into exile out of its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και επαταξεν αυτους βασιλευς βαβυλωνος εν δεβλαθα εν γη αιμαθ

라틴어Vulgate,27 et percussit eos rex Babylonis et interfecit eos in Reblatha in terra Emath et translatus est Iuda de terra sua

히브리어구약BHS,27 וַיַּכֶּה אֹותָם מֶלֶךְ בָּבֶל וַיְמִתֵם בְּרִבְלָה בְּאֶרֶץ חֲמָת וַיִּגֶל יְהוּדָה מֵעַל אַדְמָתֹו׃

성 경: [렘52:27]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이들 포로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바 있으며(50:17-20;51:45-49 등)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도 나타난다(사 52:1-12; 겔 37장등). 반면에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제 하암 아쉘 헤글라 네부카드레차르 비쉐나트 쉐바 예후딤 쉐로쉐트 알라핌 웨에쉐림 우쉘로솨

개역개정,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새번역,28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끌고 간 유다 백성의 수는 이러하다. 그의 통치 제 칠년에는 삼천이십삼 명이었다.

우리말성경,28 이것이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사로잡아 간 백성입니다. 느부갓네살 7년에 유다 사람 3,023명,

가톨릭성경,28 네부카드네자르가 유배시킨 백성은 제칠년에 삼천이십삼 명이었고,

영어NIV,28 This is the number of the people Nebuchadnezzar carried into exile: in the seventh year, 3,023 Jews;

영어NASB,28 These are the people whom Nebuchadnezzar carried away into exile: in the seventh year 30233 Jews;

영어MSG,28 3,023 men of Judah were taken into exile by Nebuchadnezzar in the seventh year of his reign.

영어NRSV,28 This is the number of the people whom Nebuchadrezzar took into exile: in the seventh year, three thousand twenty-three Judeans;

헬라어구약Septuagint,28 (없음)

라틴어Vulgate,28 iste est populus quem transtulit Nabuchodonosor in anno septimo Iudaeos tria milia et viginti tres

히브리어구약BHS,28 זֶה הָעָם אֲשֶׁר הֶגְלָה נְבוּכַדְרֶאצַּר בִּשְׁנַת־שֶׁבַע יְהוּדִים שְׁלֹשֶׁת אֲלָפִים וְעֶשְׂרִים וּשְׁלֹשָׁה׃

성 경: [렘52:28]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제 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여기서의 제 칠년은 B.C. 597년이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등극 년도인 B.C. 605년부터 계수한 것이 아니라 이듬해인 B.C. 604년부터 그의 즉위 년도를 계수한 방법이다. 열왕기하도 이와 같은 연대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때 잡혀간 유다인 삼천 이십 삼인은 유다 전역에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것이 왕하 24:14, 16에 언급된 포로들의 숫자와는 틀리는데, 아마 열왕기하에서는 이미 국외로 추방당해있던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하였던 것 같다. 혹은 본절의 숫자는 성인 남자만을 센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쉐나트 쉐모네 에스레 리네부카드레차르 미루솰라임 네페쉬 쉐모네 메오드 쉘로쉼 우쉬나임

개역개정,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새번역,29 느부갓네살의 통치 제 십팔년에는 예루살렘에서 팔백삼십이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우리말성경,29 느부갓네살 18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사람 832명,

가톨릭성경,29 네부카드네자르 제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끌고 간 사람은 팔백삼십이 명이었다.

영어NIV,29 in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832 people from Jerusalem;

영어NASB,29 in the eighteenth year of Nebuchadnezzar 832 persons from Jerusalem;

영어MSG,29 832 from Jerusalem were taken in the eighteenth year of his reign.

영어NRSV,29 in the eighteenth year of Nebuchadrezzar he took into exile from Jerusalem eight hundred thirty-two persons;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τριακοστω και εβδομω ετει αποικισθεντος του ιωακιμ βασιλεως ιουδα εν τω δωδεκατω μηνι εν τη τετραδι και εικαδι του μηνος ελαβεν ουλαιμαραδαχ βασιλευς βαβυλωνος εν τω ενιαυτω ω εβασιλευσεν την κεφαλην ιωακιμ βασιλεως ιουδα και εξηγαγεν αυτον εξ οικιας ης εφυλαττετο

라틴어Vulgate,29 in anno octavodecimo Nabuchodonosor de Hierusalem animas octingentas triginta duas

히브리어구약BHS,29 בִּשְׁנַת שְׁמֹונֶה עֶשְׂרֵה לִנְבוּכַדְרֶאצַּר מִירוּשָׁלִַם נֶפֶשׁ שְׁמֹנֶה מֵאֹות שְׁלֹשִׁים וּשְׁנָיִם׃

성 경: [렘52:29]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B.C. 586년에 해당되며, 열왕기에 따르면 그의 즉위 19년에 해당된다.

비쉐나트 솨로쉬 웨에쉐림 리네부카드레차르 헤글라 느부잘아단 랍 탑바힘 예후딤 네페쉬 쉐바 메오트 알바임 와하밋솨 콜 네페쉬 알바아트 알라핌 웨쉐쉬 메오트

개역개정,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새번역,30 느부갓네살의 통치 제 이십삼년에는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유다 사람 칠백사십오 명을 포로로 잡아 갔다. 잡혀 간 포로의 수는 모두 사천육백 명이다.

우리말성경,30 느부갓네살 23년에 경호 대장 느부사라단이 포로로 끌고 간 유다 사람 745명, 모두 합해 4,600명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30 네부카드네자르 제이십삼년에는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유다인 칠백사십오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렇게 해서 모두 사천육백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영어NIV,30 in his twenty-third year, 745 Jews taken into exile by Nebuzaradan the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There were 4,600 people in all.

영어NASB,30 in the twenty-third year of Nebuchadnezzar,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carried into exile 745 Jewish people; there were 46000 persons in all.

영어MSG,30 745 men from Judah were taken off by Nebuzaradan, the king’s chief deputy, in Nebuchadnezzar’s twenty-third year. The total number of exiles was 4,600.

영어NRSV,30 in the twenty-third year of Nebuchadrezzar,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took into exile of the Judeans seven hundred forty-five persons; all the persons were four thousand six hundred.

헬라어구약Septuagint,30 (없음)

라틴어Vulgate,30 in anno vicesimo tertio Nabuchodonosor transtulit Nabuzardan magister militiae Iudaeorum animas septingentas quadraginta quinque omnes ergo animae quattuor milia sescentae

히브리어구약BHS,30 בִּשְׁנַת שָׁלֹשׁ וְעֶשְׂרִים לִנְבוּכַדְרֶאצַּר הֶגְלָה נְבוּזַרְאֲדָן רַב־טַבָּחִים יְהוּדִים נֶפֶשׁ שְׁבַע מֵאֹות אַרְבָּעִים וַחֲמִשָּׁה כָּל־נֶפֶשׁ אַרְבַּעַת אֲלָפִים וְשֵׁשׁ מֵאֹות׃ ף

성 경: [렘52:30]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 28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무리가 세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B.C. 597년, 두 번째는 B.C. 586년, 그리고 세 번째는 B.C. 581년의 사건이다. 본 절에는 세 번째로 끌려간 무리들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건 이후에 발생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친 패배와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또다른 반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면 그다랴를 암살한 범죄에 대한 처벌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포로로 끌려간 전체 숫자가 4600명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15,000명에서 20,000명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가던 중에 죽었을 수도 있다. 비록 적은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자들이 바로 이들 중에 있었다(Thompson).

와예히 비쉘로쉼 와쉐바 솨나 레갈루트 예후야킨 멜렠 예후다 비쉬넴 아사르 호데쉬 베에스림 와하밋솨 라호데쉬 나사 에윌므로닼 멜렠 바벨 비쉐나트 말레쿠토 엩 로쉬 예호야킨 멜렠 예후다 와요체 오토 미베트 핰켈리 핰켈루

개역개정,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새번역,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 간 지 서른일곱 해가 되는 해 곧 바빌로니아 왕 에윌므로닥이 왕위에 오른 그 해 열두째 달 이십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에게 특사를 베풀어서, 그를 옥에서 석방하였다.

우리말성경,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포로가 된 지 37년째 되던 해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이 왕으로 즉위한 해 열두 달째 25일에 에윌므로닥 왕이 유다 왕 여호야긴의 머리를 들어 주고 감옥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31 유다 임금 여호야킨의 유배살이 제삼십칠년 열두째 달 스무닷샛날이었다. 바빌론 임금 에윌 므로닥은 자기가 왕위에 오른 바로 그해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다.

영어NIV,31 In the thirty-seventh year of the exile of Jehoiachin king of Judah, in the year Evil-Merodach became king of Babylon, he released Jehoiachin king of Judah and freed him from prison on the twenty-fifth day of the twelfth month.

영어NASB,31 Now it came about in the thirty-seventh year of the exile of Jehoiachin king of Judah, in the twelfth month, on the twenty-fifth of the month, that Evil-merodach king of Babylon,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showed favor to Jehoiachin king of Judah and brought him out of prison.

영어MSG,31 When Jehoiachin king of Judah had been in exile for thirty-seven years, Evil-Merodach became king in Babylon and let Jehoiachin out of prison. This release took place on the twenty-fifth day of the twelfth month.

영어NRSV,31 In the thirty-seventh year of the exile of King Jehoiachin of Judah, in the twelfth month, on the twenty-fifth day of the month, King Evil-merodach of Babylon, in the year he began to reign, showed favor to King Jehoiachin of Judah and brought him out of prison;

헬라어구약Septuagint,32 και ελαλησεν αυτω χρηστα και εδωκεν τον θρονον αυτου επανω των θρονων των βασιλεων των μετ’ αυτου εν βαβυλωνι

라틴어Vulgate,31 et factum est in tricesimo septimo anno transmigrationis Ioachim regis Iudae duodecimo mense vicesima quinta mensis elevavit Evilmerodach rex Babylonis ipso anno regni sui caput Ioachim regis Iudae et eduxit eum de domo carceris

히브리어구약BHS,31 וַיְהִי בִשְׁלֹשִׁים וָשֶׁבַע שָׁנָה לְגָלוּת יְהֹויָכִן מֶלֶךְ־יְהוּדָה בִּשְׁנֵים עָשָׂר חֹדֶשׁ בְּעֶשְׂרִים וַחֲמִשָּׁה לַחֹדֶשׁ נָשָׂא אֱוִיל מְרֹדַךְ מֶלֶךְ בָּבֶל בִּשְׁנַת מַלְכֻתֹו אֶת־רֹאשׁ יְהֹויָכִין מֶלֶךְ־יְהוּדָה וַיֹּצֵא אֹותֹו מִבֵּית [כ= הַכְּלִיא] [ק= הַכְּלוּא]׃

성 경: [렘52:31]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서 B.C. 561-560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의 원 이름은 ‘아멜-마르둑’으로서 ‘마르둑의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에 에윌므로닥은 ‘어리석은 므로닥’이란 뜻이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변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Bright). 그리고 ‘이십 오일’이란 말은 70인역(LXX)에서는 24일로, 그리고 왕하 25:27에는 27일로 표현되어 있다. 날짜가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떤 세부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연유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 것으로도 믿고 있었다(28:1-4). 바벨론의 고고학 발굴에 나타난 그 당시의 기름 영수증에는 그가 ‘유다의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머리를 들게 하고(*, 나사로쉬)는 창 40:13, 20에 처음 나타나는 표현인데, 여기서처럼 ‘석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Feinberg). 특히 ‘나사'(*)는 ‘높이다’, ‘명예롭게 하다’의 뜻을 내포하므로, 여호야긴이 석방된 뒤에 후한 대접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와예다벨 잍토 토보트 와이텐 엩 키스오 밈마알 레킷세 멜라킴 함멜라킴 아쉘 잍토 베바벨

개역개정,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새번역,32 그는 여호야긴에게 친절하게 대접하여 주면서, 그와 함께 바빌로니아에 있는 다른 왕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를 그에게 주었다.

우리말성경,32 에윌므로닥 왕은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바벨론에 자기와 함께 있는 다른 왕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32 바빌론 임금은 그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며, 그와 함께 바빌론에 있는 다른 임금들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영어NIV,32 He spoke kindly to him and gave him a seat of honor higher than those of the other kings who were with him in Babylon.

영어NASB,32 Then he spoke kindly to him and set his throne above the thrones of the kings who were with him in Babylon.

영어MSG,32 The king treated him most courteously and gave him preferential treatment beyond anything experienced by the political prisoners held in Babylon.

영어NRSV,32 he spoke kindly to him, and gave him a seat above the seats of the other kings who were with him in Babylon.

헬라어구약Septuagint,32 (없음)

라틴어Vulgate,32 et locutus est cum eo bona et posuit thronum eius super thronos regum qui erant post se in Babylone

히브리어구약BHS,32 וַיְדַבֵּר אִתֹּו טֹבֹות וַיִּתֵּן אֶת־כִּסְאֹו מִמַּעַל לְכִסֵּא [כ= מְלָכִים] [ק= הַמְּלָכִים] אֲשֶׁר אִתֹּו בְּבָבֶל׃

성 경: [렘52:32]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바벨론에 있는 왕들’이란 말은 여호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피정복국의 왕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를 단순히 포로로서 잘 대우해 주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벨론 왕실에서 특권을 지니고 생활하도록 배려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좋을 것 같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先王)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웨쉰나 엩 비그데 킬르오 웨아칼 레헴 레파나우 타미드 콜 예메 하야우

개역개정,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새번역,33 그래서 여호야긴은 죄수복을 벗고, 남은 생애 동안 늘 왕과 한 상에서 먹었다.

우리말성경,33 그리하여 여호야긴은 죄수복을 벗고 그의 남은 평생을 계속해서 바벨론 왕 앞에서 식사하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33 그 뒤에 여호야킨은 죄수복을 벗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바빌론 임금 앞에서 늘 음식을 먹게 되었다.

영어NIV,33 So Jehoiachin put aside his prison clothes and for the rest of his life ate regularly at the king’s table.

영어NASB,33 So Jehoiachin changed his prison clothes, and had his meals in the king’s presence regularly all the days of his life.

영어MSG,33 Jehoiachin took off his prison garb and from then on ate his meals in company with the king.

영어NRSV,33 So Jehoiachin put aside his prison clothes, and every day of his life he dined regularly at the king’s table.

헬라어구약Septuagint,33 και ηλλαξεν την στολην της φυλακης αυτου και ησθιεν αρτον δια παντος κατα προσωπον αυτου πασας τας ημερας ας εζησεν

라틴어Vulgate,33 et mutavit vestimenta carceris eius et comedebat panem coram eo semper cunctis diebus vitae suae

히브리어구약BHS,33 וְשִׁנָּה אֵת בִּגְדֵי כִלְאֹו וְאָכַל לֶחֶם לְפָנָיו תָּמִיד כָּל־יְמֵי חַיָּו׃

성 경: [렘52:33]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여호야긴은 적어도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사실은 앞에 언급된 기름 영수증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은택은 그의 평생 동안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에윌므로닥을 몰아내고 그 후 왕위에 올랐던 네리글리살 때에도 그런 특권을 계속 누렸음을 짐작케 한다(Thompson).

와아루하토 아루하트 타미드 닡테나 로 메엩 멜렠 바벨 데발 욤 베요모 아드 욤 모토 콜 예메 하야우

개역개정,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새번역,34 여호야긴의 생계비는, 그가 죽을 때까지 매일 일정하게, 그의 일생 동안 끊이지 않고, 바빌로니아 왕이 그에게 대주었다.

우리말성경,34 그의 쓰는 몫은 바벨론 왕이 날마다 그에게 필요한 몫을 죽는 날까지 그의 남은 평생 동안 공급해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34 여호야킨의 생계비는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바빌론 임금이 날마다 일정하게 대 주었다.

영어NIV,34 Day by day the king of Babylon gave Jehoiachin a regular allowance as long as he lived, till the day of his death.

영어NASB,34 And for his allowance, a regular allowance was given him by the king of Babylon, a daily portion all the days of his life until the day of his death.

영어MSG,34 The king provided everything he needed to live comfortably for the rest of his life.

영어NRSV,34 For his allowance, a regular daily allowance was given him by the king of Babylon, as long as he lived, up to the day of his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34 και η συνταξις αυτω εδιδοτο δια παντος παρα του βασιλεως βαβυλωνος εξ ημερας εις ημεραν εως ημερας ης απεθανεν .

라틴어Vulgate,34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4 וַאֲרֻחָתֹו אֲרֻחַת תָּמִיד נִתְּנָה־לֹּו מֵאֵת מֶלֶךְ־בָּבֶל דְּבַר־יֹום בְּיֹומֹו עַד־יֹום מֹותֹו כֹּל יְמֵי חַיָּיו׃

성 경: [렘52:34]

주제1: [예루살렘의 함락]

주제2: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의 말로]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31-34절)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前兆)이기도 하였던 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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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설]

모두 5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예레미야서는 무너져 내리는 조국 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분노와 애끓는 탄식, 애절한 호소와 단호한 심판선언을 생의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해 부르짖었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신탁들과 그의 삶에 관한 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로 시작하여(1장) 그를 통해 선포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들과 “돌아오라”는 회개 촉구들(2~35장), 그리고 완고하고 패역한 유다의 왕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삶의 단편들이 긴박한 필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36~38장). 계속해서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비극적 멸망과 그 후로 이어지는 혼란한 유다의 난세(亂世)를 역사적 시각에서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39~45장).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락은 일명 ‘열국심판 신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이 단순히 유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두루 미친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46~51장).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인 52장은 유다 최후의 날들에 대한 역사적 기술로서 예레미야서에 의미 있는 종지부를 찍습니다. 흥미롭게도 51장은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는 구절로 끝을 맺습니다(64절).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어 나오는 52장은 일종의 부록(appendix)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멸망에 관해 자세히 보도하고 있는 52장은 그 내용에 있어 열왕기하 24장 18절에서 25장 30절과 여러모로 흡사합니다(참고로, 렘 52장을 다음과 같은 평행구절들과 비교하여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렘 52:1~13 // 왕하 24:18~20; 대하 36:11~16]; [렘 52:4~16 // 렘 39:1~10]; [렘 52:4~21 // 왕하 25:1~21; 대하 36:17~20]).

아마 열왕기서 저자와 예레미야서의 이 부록 부분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예레미야의 개인 서기관인 바룩이 아닌가 생각된다)은 예루살렘 멸망 사건에 관한 동일한 전승자료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보고 베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각자의 저술 방식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두 저자의 이야기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25장 22~26절에 나오는 그달리야에 관한 이야기는 예레미야 52장에 나오지 않고 예레미야 40장 7절에서 41절 18절에 나옵니다. 또한 52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함락에 관한 기사 역시 이미 예레미야 39장 1~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음의 경우들을 살펴보면, 예레미야서의 기록이 열왕기하의 기록보다도 좀더 자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렘 10~11절과 왕하 25:7; 렘 15절과 왕하 25:11; 렘 19~23절과 왕하 25:15~17; 렘 31절과 왕하 25:27; 렘 34절과 왕하 25:30).

그렇다면 왜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52장을 부록으로 첨부한 것일까요? 두 가지 측면에서 52장은 ‘의미 있는 부록’일 것입니다. 첫째,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자세한 보도는 예레미야의 심판 경고와 선언이 마침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였으며 유다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52장을 읽는 후대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경고의 목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의 초창기부터 “북쪽으로부터 대적이[바벨론] 올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마지막 왕들인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는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정치적 변수와 군사적 요인들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둘째, 특별히 52장 끝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31~34절), 예레미야서는 비록 예루살렘의 멸망이 모든 것의 끝인 듯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예레미야서는 희망의 차원을 추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희망을 열어놓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5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돋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은 아래의 해설에서 좀더 자세하게 취급될 것입니다.

이처럼 52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곧 ‘종말’과 ‘열려진 미래.’

(1) 예루살렘의 종말

a. 1~3a절: 하나님의 진노와 예루살렘의 멸망

b. 3b~16절: 불타는 예루살렘

c. 17~23절: 전쟁노획물이 된 성전기물들

d. 24~27절: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유대인들

e. 28~30절: 포로가 되어 끌려간 유대인들

(2) 열려진 미래

a. 31~34절: 여호야긴의 복권과 열려진 미래

하나님의 진노와 예루살렘의 멸망(1~3a절)

본 단락의 핵심 문구는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야웨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아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이 최후의 날을 맞이한 것이나 유다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 것은 단순히 유다 왕들의 미숙한 외교정책이나 허약한 군사력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그들의 불행과 파멸은 야웨 보시기에 그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본문은 그들이 쫓겨난 것은 그들의 땅으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 쫓겨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즉 바벨론 포로는 ‘신학적 문제’이지 인간적 차원, 즉 정치閨본瑛?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은 ‘악’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선지자가 외친 야웨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 됨은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의 토라(Torah)를 저버리고 그가 보낸 선지자들의 말씀을 배척한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세상의 역사와 신앙의 역사가 함께 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함락과 바벨론에로의 사로잡혀감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안목에서 바라다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신학적 사시(斜視)를 그대로 노출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역사의 세계와 신앙의 세계를 나누어 행동하려는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적 사고구조를 철저하게 통박하면서, 이 세상 역사는 인간 세력간의 역학관계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의 책임성 있는 당사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인간들이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타는 예루살렘(3b~16절)

본 단락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 됨을 신학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위의 단락과는 달리 현실 정치적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3b절). 즉 정치적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브루그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a절이 야웨의 분노에 관한 신학적 판단을 내리는 반면에, 3b~11절은 바벨론의 침공에 대한 정치적 설명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관련성, 즉 정치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해서 본문은 그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1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幽囚)는 단순히 정치적,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 역시 심각한 신학적 문제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북쪽으로부터 오는 대적’에 관해 말했습니다(1:14~15; 25:9; 27:8). 그는 바벨론을 직접 거명(擧名)하면서 유다가 바벨론을 섬겨야 하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했다는 본문의 정치적 묘사는 사실상 바벨론 왕을 자신의 심판 도구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왕을 향한 시드기야의 반역은 단순히 정치적 차원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 기인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었으며 귀머거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하고도 혹독했습니다. 4~16절은 사실적 묘사를 통해 예루살렘 최후의 날들이 담담하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드기야의 비참한 마지막 날들에 대한 묘사는 독자들의 마음을 비통하게 할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의 침공, 예루살렘의 포위, 성안의 심한 기근과 굶주림, 살인과 약탈, 도주하는 유다의 패잔병들, 야반도주하는 시드기야, 여리고 평지에 홀로 남겨진 시드기야, 체포되어 결박된 채로 머나먼 북방 지역 하맛까지 끌려가 신문 당하는 시드기야,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들의 처형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무력한 시드기야, 두 눈을 뽑힌 채 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시드기야,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어야만 했던 시드기야 ….

좀더 넓은 견지에서 바라보면, 이방 군대의 예루살렘 침공과 주둔(4절), 그리고 심한 기근(6절), 칼(10절)과 방화(13절), 폐허가 된 예루살렘(14절), 포로 되어 옮겨감(15절) 등은 우리를 포함한 신앙공동체에게 언약 백성인 유다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초래한 ‘언약적 저주들’(covenant curses)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언약파기에 대한 값을 반드시 지불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노획물이 된 성전기물들(17∼23절)

본 단락은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인들에 의해 유린당함으로써 야웨의 신성(神性)이 심하게 모독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전기물 탈취 행위는 하나님의 집을 더럽힐 뿐 아니라 야웨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과 성소를 보호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무능한 신임을 만천하에 드려내려는 고의적인 신성모독 행위였습니다. 바벨론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기물 압수는 신(神)들의 전쟁에서 바벨론의 신들이 이스라엘의 신 야웨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강한 고의적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인들에 의한 성전기물 탈취는 많은 유다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소를 포기하시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브루그만의 재치 있는 표현처럼 “그 날은 정말로 예루살렘 성전의 성금요일”이었습니다.2

그러나 예레미야 27장에 의하면, 성전기구의 탈취는 시드기야로 대표되는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바벨론에 복종하라”)을 거역함으로써 당하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며 따라서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멸망의 신학적 의미를 물었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성전파괴와 성전기물의 유린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회개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작정하신 ‘진노의 기간’을 받아들여야만 했었습니다(참조, 25:11~12; 29:10). 그러나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백성들을 호도(糊塗)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옮겨간 성전기물들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서 대중들의 마음에 잘못된 희망을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단호하게 “이것은 거짓 예언이다!”라고 말합니다(27:16).

그렇다면 언제까지 성전기물이 바벨론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이에 대해 27장 22절에세서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돌아보는 날까지”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여기 ‘돌아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파카드’(dqp)로 ‘방문하시다’는 뜻을 갖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때’가 되면 찾아가서 유다의 포로 상황을 돌려놓아 회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유대인들(24~27절)

본 단락은 예루살렘을 침공한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 느부라사단이 예루살렘의 지도급 제사장 2명, 3명의 부제사장들, 한 명의 고급장교, 7명의 왕의 신하들, 또 다른 한 명의 부관, 그리고 60명의 시민 등 모두 74명의 매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체포하여 느부갓네살의 임시사령부인 시리아 땅 립나에서 처형하는 내용입니다. 앞 단락의 성전기물의 이송과 함께 본 단락의 지도급 인사들의 처형은 언약 백성인 유다가 잔혹한 바벨론 제국의 전적인 통치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끌려간 유대인들(28∼30절)

유다는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으로 강제이주를 당합니다. 세 경우 모두 침략자이며 정복자인 느부갓네살의 치세 년도로 산정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다의 운명은 전적으로 느부갓네살에 달려있습니다. 그의 치세 7년째 되던 해(주전 598년, 에스겔이 잡혀간 해)에 3,023명이, 그의 치세 18년째 되던 해(주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의 해) 832명이, 그의 치세 23년째 되던 해(주전 582년) 745명, 모두 4,600명이 사로잡혀 옮겨갔습니다. 유다는 이제 비로소 국가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본 단락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사로잡혀 옮겨갔다”는 말 속에는 52장 초입의 “야웨께서 그들을 자신의 면전에서 쫓아내었다”(3절)는 목소리가 반향(反響)되는 듯합니다.

여호야긴의 복권과 열려진 미래(31~34절)

주전 598년 여호야긴 왕은 즉위한 지 3개월만에 18세의 어린 나이로 바벨론 군에 사로잡혀 이 억 만리 바벨론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국(異國) 땅 바벨론의 어두운 감옥에서 길고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잠시나마 한때는 위엄 있는 왕복을 입고 한 나라를 다스렸던 그가 죄수의 의복을 입은 채로 37년을 이국의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채 죽음의 그늘 아래 앉아 있었던 유다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월므로닥(562~560년)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는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주고 복권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왕궁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사면을 내린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의 맨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날마다 여호야긴에게 그가 살아있는 동안 일정한 양의 식량과 쓸 것을 그가 죽을 때까지 공급해 주었다”(34절). 아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있던 고난 가운데 있던 유대인들은 여호야긴 석방 사건 속에서 희망의 태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호야긴의 석방과 복권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를 잊지 않고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원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삼하 7:13) 유다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총의 증표(sign)였습니다. 너무도 암울하고 부정적인 색조가 깊게 배었던 예레미야서는 놀랍게도 이와 같은 희망의 힌트를 간직한 채 그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존 브래키(John M. Bracke)는 다음과 쓰고 있습니다:

“세우시고 다시 심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현실 속에 살고 있던 포로민들은 이제야 마침내 주님의 놀라운 말씀, 다시 말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힌트만을 지닌 참으로 믿기 어려운 주님의 놀라운 말씀을 신뢰하라고 요청 받고 있는 것입니다.”3

이제 우리들 역시 이렇게 태동하기 시작한 희망의 싹이 어떻게 자라갈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전환에 희망을 가져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가 이렇게 ‘열려진 끝’(open end)으로 끝을 맺는 것은 하나님이 열어 가실 미래에로 독자들을 초청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희망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담고 있는 이 단락에 대해 다시금 브래키의 통찰력 있는 적용을 들어보십시다. 깊이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용구일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이, 깨어진 우리의 세상과 삶들 한 가운데서 매주일 모여 ‘이것이 사실일 것이야!’라는 희미한 희망을 갖고, 당차게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정말로 살아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는 방식인 것입니다.”4

[설교전문]

“한 도시 안에 있는 온 세계”

410년 8월 24일, 게르만족들이 로마를 침공해 사방을 포위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부(敎父) 제롬(Jerome)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구를 남겼습니다:

“온 세상의 밝은 빛이 소멸되었다.

아니… 로마제국이 무력화되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 세계가 한 도시 안에서 멸망한 것이다.”

로마는 개화된 세계, 문명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도시들의 여왕,” “나라들의 어머니”라 불렸습니다. 그러기에 로마가 멸망하자,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픔과 충격에 온 몸을 떨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실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경악했습니다. 로마는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었고 자부심이었고 긍지였습니다. 로마는 그들 삶의 중심부였습니다. “한 도시 안에서 온 세계가 멸망했다”는 제롬의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410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로마의 멸망을 현대적으로 설명하자면, 원자탄 투하에 초토화된 일본의 히로시마(廣島)를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 하늘을 가로질러 강렬한 광선이 번뜩였습니다. 핵폭발의 열기와 돌풍은 폭발 지점에 있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었고, 거의 11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완전히 불태웠습니다. 순식간에 7만 명 이상이 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온 세계가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핵 파멸의 버섯구름 아래로 들어온 것입니다.

·온 세계가 한 도시 안에서 파멸되었던 것입니다.

410년 8월 24일 로마의 함락,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멸망은 묵시론적(默示論的) 사건이었습니다. 우주적 충격을 가져온 참으로 어두운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시들이 멸망했을 때,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죽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로마의 함락이나 히로시마의 멸망에 해당하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사랑인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에 따른 추방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의 파장은 너무도 깊고 충격적이어서 어느 유대인도 이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때, 온 유대인의 세계가 이 도시 안에서 멸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때, 한 달 내내 이 도시는 포위당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때, 연약한 여인들은 점령군들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당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때, 사람들은 무자비한 군인들에 의해 무차별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파괴가 시작됐습니다:

·바벨론인들은 야웨의 성전에 불을 놓았습니다.

·미친 개처럼 그들은 이리저리 날뛰면서 왕궁들과 예루살렘 안에 있는 가옥들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중요한 관공서 건물은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해 갔습니다.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던 성벽들을 다 부셔버렸습니다(렘 52:13∼14).

이 모든 파괴와 약탈과 방화가 끝나자, 예루살렘은 마치 히로시마와 같았습니다. 연기 나는 잔해덩어리들만이 처절하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전쟁이 남기고 간 모든 잔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짐승으로 바뀌어버린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폐허와 공허의 바람소리만 허공에 맴돌았으며, 어둠이 도시 위에 깊이 덮여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혼돈의 상태로 축소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예루살렘 시민들이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머나먼 이국으로 끌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52장 27절은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다의 바벨론 유배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 위에 임한 가장 비극적 재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그 의미를 이해했을까요? 아닙니다.

·오직 반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회고적으로만 그들은 추방과 포로됨을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으로,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절대적인 분기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 52장의 내용을 열왕기하 24장과 25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왕기하 24장과 25장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이 어떻게 예레미야의 마지막 장에 다시 반복되는 것일까요?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다의 바벨론 포로에 관한 기사를 그의 책 마지막에 놓음으로써 예레미야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합니다:

·나의 예언들은 성취되었다.

·야웨는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야웨는 그의 집(성전)을 버리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야웨는 그의 기업을 포기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야웨는 그가 사랑하는 자를 그의 원수의 손에 넘긴다(렘 12:7).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도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영원히 폐허와 죽음에 내버려질 것인가?”

·“죽음이 마지막 말인가?”

·“이것으로 끝장인가?”

·“절망 안에서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가?”

모든 엄청난 파괴의 경험이 대부분 그렇듯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껴나갔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의 의미는 한참 후에야 그들에게 동터올 것입니다.

언제입니까?

·많이 고통을 한 후에,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한 후에,

·정치적 사건들을 내면적으로 충분히 흡수한 후에,

·수많은 날들을 생각과 반성의 시간으로 보낸 후에야,

그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고통당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번민했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과 절망 속에 있는 바벨론 포로들에게 들려줄 좋은 소식은 없을까요?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메시지는 없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이 그것입니다!

아마 이런 대답이 여러분에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게다가 저는 여러분이 이런 방식으로 창세기 1장을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즉 여러분이 창세기 1장을 이스라엘의 ‘추방 경험’에 대한 응답으로 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사실은 창세기 1장은 이스라엘의 ‘추방 경험’에 대한 가장 심도 깊은 대답입니다.

·창세기 1장은 우리에게 우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였는지 알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의자를 당겨 앉고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 세상은 정확하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문헌이 아닙니다.

– 창세기 1장은 우리에게 우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 창세기 1장은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 다시 말해 ‘의미를 갈망하는 절규에 대한 응답’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포로기에, 추방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로 하여금 민족 되게 하는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그들이 땅, 그들의 성전, 그들이 왕 등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포로기에, 추방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삶에 의미를 주었던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누가 그들의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었습니까?

·누가 그들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까?

– 왜 그들이 포로로 잡혀 타국에 끌려왔는지?

– 왜 하나님께서 지금 침묵하고 계시는지?

–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계신가?

– 아직도 그들은 하나님이 백성인가?

–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언약 상대자에서 제외시키셨는가?

– 바벨론의 신들은 그들의 하나님보다 더 강한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창세기 1장은 힘차게 외칩니다: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직도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직도 이스라엘을 돌보고 계십니다!

– 창세기 1장은 이 우주의 생성 기원에 관한 객관적 기록이 아닙니다.

– 창세기 1장은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향한 목회적 선언입니다.

– 창세기 1장은 혼란스런 백성들이 내뱉는 질문들에 대답하는 당대적 증언입니다.

창세기 1장은 말합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뒤에, 유다의 추방과 포로 됨의 뒤에, 보이는 질서의 붕괴 뒤에 다른 질서가 있다! 견고한 질서, 흔들리지 않는 질서, 하나님 자신에 의해 창조된 질서가 있다!

창세기 1장은 말합니다:

·만일 사건들의 표면만을 바라본다면,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예루살렘의 파멸과 유다의 추방은 모든 것의 끝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팔은 짧아서 구원하실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나님은 무능한 신이다.”

“이스라엘의 삶은 공허하고 폐허가 되었다.”

“세상은 온통 어두움으로 덮이게 되었다.”

“바벨론 군대의 막강한 힘은 파괴적인 물들처럼 약속의 땅을 덮어버렸다.”

“하나님은 그저 무력하게 서 계셨다.”

바로 이러한 절규에 대해 창세기 1장이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창세기 1장은 절규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 1장은 구약의 나머지 부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편의 많은 시들이 절규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고 있었을 때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백성들의 부르짖음은 항상 부르짖음 그 이상이었습니다. 구약 백성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불러내는 외침’이었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내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성’에 대한 신앙입니다. 구약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삶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두려운 미래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사면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두려움 가운데서, 구약의 백성은 도움을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깊음들’(深淵)로부터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오 주님,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소서.

오 주님 우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다립니다. 당신의 말씀 안에 우리의 희망을 둡니다.

·창세기 1장은 이 희망을 살리기 위해 외쳐졌습니다.

·창세기 1장은 추방당한 자들을 그들의 패배와 절망의 심연으로부터 들어올리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창세기 1장은 위대한 복음(Good News)의 선언문입니다.

· 창세기 1장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혼돈을 압도하시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도록 초청합니다.

·창세기 1장은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삶과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의해 유지되고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우리의 삶과 생명을 밑에서 받쳐주고 있는 ‘영원한 팔’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이 우리의 삶을 온통 감싸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는 모두 죽은 개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창세기 1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위험천만한 세상 안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안전지대를 만들어 우리가 안전하게 살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은 우리를 파괴하려는 이 세상의 세력들에게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추방 경험’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신의 뿌리로부터 잘려나갔으며

집과 유산을 잃어버렸으며

알지 못하는 어두움의 대양(大洋) 위에서 표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삶을 탄식하였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선언합니다:

·아니야! 절망하지 말라!

·기억하라,

주님이 자신의 손으로 이 온 세상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주님은 너를 지키는 분이시며

그가 너를 모든 악에서 지키시며

그가 너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시며

그가 너의 출입을 지키시며

그가 너의 시작에도 있고 너의 끝에도 계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레미야 52장은 절망의 심연(深淵)이었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종종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파산과 죽음이 최종적인 언어가 될 수는 없음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창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새 창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보호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아멘.

주(註)

1. Walther Brueggemann, A Commentary on Jeremiah: Exile & Homecoming(Grand Rapids: Eerdmans, 1998), p.489. 그는 이 사실이 구문론을 통하여 좀더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해설간의 관계에 관한 한, 본문은 접속사 없는 병렬법(parataxis)을 사용하여 이 둘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2. Brueggemann, A Commentary on Jeremiah, p.491.(”This is indeed the Good Friday of the temple”).

3. John M. Bracke, Jeremiah 30∼52 and Lamentations,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0), p.175.

4. Bracke, Jeremiah 30∼52 and Lamentations,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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