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과 아벨 | (어린이설교)가인과 아벨 : 죄를 다스려요! 22036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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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인과 아벨 – 죄를 다스려요! (Kain and Abel – Rule over Sin)
본문 창세기 4장 1-15절 (Genesis 4:1-15)
내용: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각각 제물을 가져와 제사를 드렸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어요. 가인은 화가 났고, 죄 짓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두었어요. 가인의 마음 속의 죄는 점점 더 커져서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어요. 큰 죄를 지은 가인은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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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 KLB – 가인과 아벨 – 아담의 아내 – Bible Gateway

가인과 아벨 – 아담의 아내 이브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내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하며 그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다. 이브는 또 가인의 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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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8/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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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카인(히브리어: קַיִן, Cain)과 아벨(히브리어: הֶבֶל, Abel)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이다. 형 카인은 농부였고 동생 아벨은 양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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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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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주는 의미 – 아이굿뉴스

다시 말하면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합당하지 못했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여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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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goodnews.net

Date Published: 8/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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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내러티브(창세기 4:1-7)에 대한 예배학적 고찰

가인과 아벨의 내러티브는 기독교 강단에서 가장 많이 설교되어지는 본문 중의 하나이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 예배에서 가인이 바친 것은 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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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1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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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4장 강해 – 가인과 아벨 – 다음블로그

아벨은 ‘양 치는 자’ 즉 목축을 하였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 즉 땅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땅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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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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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 최초의 형제살해 – 아틀라스뉴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이다. 가인(Cain)이 형이고, 아벨(Abel)이 동생이다. 가인은 농부이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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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tlasnews.co.kr

Date Published: 5/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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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 나무위키:대문

카인과 아벨 ; 장르. 드라마 ; 제작사. 플랜비픽처스, DIMA 엔터테인먼트 ; 연출. 김형식[1] ; 극본. 박계옥, 윤혜진 ; 출연자. 소지섭, 신현준, 한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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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4/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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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강해 – 18 가인과 아벨의 제사 창 [ 4:1~7] – 온누리교회

창세기강해 – 18. 가인과 아벨의 제사 창. [. 4:1~7]. 하용조 목사 / 1998.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쫓겨난 세상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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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nnuri.org

Date Published: 1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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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가인 과 아벨

  • Author: 허니맘의꿀보다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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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카인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벨을 쳐죽이는 카인.

카인(히브리어: קַיִן, Cain)과 아벨(히브리어: הֶבֶל, Abel)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이다. 형 카인은 농부였고 동생 아벨은 양치기였다.[1] 카인은 사람이 낳은 최초의 사람이었고, 아벨은 최초로 사망한 사람이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2]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이들을 단순히 아담의 아들들(아랍어: ابني آدم)이라고 한다.

카인 [ 편집 ]

카인(히브리어: קָיִן) 또는 가인은 히브리어 성경과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큰아들이다. 그의 히브리 이름 Qáyin은 몇몇 셈족의 언어에서는 ‘대장장이’를 뜻한다. 창세기는 이 이름을 ‘얻다(קנה)’라는 동사에 접근시켜 ‘하와는 가인을 낳아 “나는 야훼께 아들을 얻었구나”’(창세 4:1)라고 말한다. 최초의 농부인 카인은 수확물을 하느님에게 바쳤다. 그러나 하느님은 겉으로 보기의 아름다움보다 정성을 더 원하시는 분인 관계로 목동인 동생 아벨의 제물을 더 좋아했다. 이에 질투를 느낀 카인은 아벨을 몰래 꾀어내어 돌로 쳐서 죽임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 벌로 카인을 영원한 유랑 생활에 몰아넣고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했다. 이때 카인은 추방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카인의 표식’이라는 표를 받았는데, 이는 살인자의 표식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다른 자식(또는 그 후손)이 카인을 해치지 못하게끔 하느님이 보호해주고 있다는 보호자의 표식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아들 에녹을 낳은 후 도시의 건설자가 되었다. 창세기는 하느님이 형에게 죽임당한 아벨의 원한에 찬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하느님이 민중의 하느님임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4장 25절에 따르면 셋은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후에 태어났으며 하와는 셋을 하느님이 아벨을 대신하여 정해준 아들이라고 믿었다.

아벨 [ 편집 ]

아벨은 히브리 성경과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둘째아들이다. 최초의 목동인 아벨은 자신이 기르는 양들 중 가장 품질이 좋은 양으로 골라서 하느님에게 바쳤다. 성경은 여호와가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은 반면, 아벨의 제사는 받았다고 기록한다. 카인은 농산물로 제사했고, 아벨은 양의 첫새끼를 희생시켜 제사했다.[5] 이에 질투를 느낀 카인은 아벨을 몰래 꾀어내어 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형의 공격을 받은 아벨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 벌로 카인을 영원한 유랑 생활에 몰아넣고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했다. 이때 카인은 추방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카인의 표식’이라는 표를 받았다. 아담 또는 아벨의 후손들이 카인에게 보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주는 의미

금주의 설교:창세기 4:2~7

제사에 대하여 가인과 아벨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담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서 에덴에서 쫓겨나기까지 일어난 정황은 일반적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제사하는 방법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법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벨의 제사에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라는 것을 기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가인의 제사를 소개할 때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라고 단순하게 기록해서 가인과 아벨의 차이를 두었습니다.

물론 제사법이 모세 시대에 제도화 된 것이기 때문에 무리한 접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결코 무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제도가 모세 시대에 제도화 되었다고 해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성경의 제사에서 분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오늘날 우리는 모세 시대에 시내산에서 제도화된 제사를 무시하면서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사의 핵심이 피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예배 또한 예수님의 보혈이 없이는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자기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사의 문제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힘입지 않은 자가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요일 3:12절은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하심으로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는 것은 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 11:4절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창 4:3~4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합당하지 못했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여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예수님의 보혈에 의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새소망교회 조창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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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내러티브(창세기 4:1-7)에 대한 예배학적 고찰

가인과 아벨의 내러티브는 기독교 강단에서 가장 많이 설교되어지는 본문 중의 하나이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 예배에서 가인이 바친 것은 그가 수확한 땅의 소산물중 일부였고, 아벨이 바친 것은 양의 첫 새끼 중 일부였다. 문제는 하나님이 이 모두를 받으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 내러티브를 핵심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되어져야 하는 것은 ‘왜 하나님이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시고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물의 질이나 예배자로서의 가인과 아벨의 본성으로 그 해석의 열쇠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접근은 사실 이 본문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함정일 수 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기독교 해석자들은 다양한 해석학적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예배의 결과가 가인과 아벨의 제물에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에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선호도가 땅에 있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피의 제물에 선호도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고, 혹은 하나님의 동기는 알 수 없다는 의견도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예배자로서 가인과 아벨의 본성과 관련되었다는 또 다른 전통적 입장을 받아들인 의견도 제시되고 있고, 그리고 구속사적 입장에서 ‘둘째’가 예수님의 모형론적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대답들 이전에 예배자로서 기독교인들의 초점은 과연 이 내러티브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에 의해 드려진 예배를 받거나 혹은 거절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내러티브를 읽으면서 예배자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The narrative of Cain and Abel is one of the most commonly preached stories in a Christian pulpit. Cain an Abel offered sacrifices in worship to God. Cain’s offering was the fruit of his labors from the ground while Abel’s offering was the fruit of his labors from the flock. The problem is God has not regarded for both offerings. The significant questions to understand the core meaning of this narrative is about why God has accepted Abel and his offering and about why God has denied Cain and his offering. Traditionally, the most familiar interpretation related to the questions has been related to the quality of the offerings and the nature of Cain and Abel as worshipers. However, this common approach can be the pitfall where most readers could be trapped in. And this pitfall used to lead them to misunderstand what the narrative really wants to say. Christian interpreters in its history have suggested various acceptable answers about the questions. They try to explains in various way that the result of Cain and Abel’s worship is closely related to the quality of Cain and Abel’s offerings, God’s preference to a shepherd and a blood sacrifice, God’s unknown willing, the nature of Cain and Abel as worshipers, Scripture’s preference to ‘the second son, and so on. However, instead of those interpretations, Christians as worshiper need to focus on what the narrative directly shows. That is, to accept or reject worship by people is totally depend on God and His free willing. Therefore, what readers should firstly focus on in this narrative is God rather than a human as a worshiper.

창세기 제4장 강해

창세기 제4장 강해 – 가인과 아벨

선악과 사건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과 또 다른 자녀들의 모습은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이끌어 가시기로 하셨습니다.

1-15절은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덴 추방 이후에 첫 세대인 가인과 아벨은 사랑과 화평이 아닌 반목과 질시로 인하여 살인까지 가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불순종의 죄를 저지른 그 순간부터 죄의 씨앗은 무서운 암세포처럼 인간의 심성 깊이 파고들어 인간을 파괴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인이 살해하는 그것은 바로 죄가 밖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동침하다’(야다:ידע)는 ‘알다’라는 뜻이지만, 이 단어는 성경 용례 상 종종 ‘동침하다’는 뜻으로 사용이 됩니다.(17, 25; 삼상 1:19; 왕상 1:4) ‘가인’(קין)은 얻다, 소유하다는 뜻의 ‘카나’(קנה)에서 파생된 말로, 곧 ‘얻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인류의 첫 열매를 얻은 하와의 기쁨의 고백이자, 그녀의 신앙이 반영된 이름으로,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얻은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가인을 얻게 된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구속주’를 뜻하는 것으로 ‘여자의 후손’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소망을 피력했다고 하겠습니다.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벨’(חבל)은 “허무, 공허‘라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아벨에 태어날 당시에 삶의 괴로움이나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벨의 죽음을 암시하는 예언적 이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 즉 목축을 하였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 즉 땅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땅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암시합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꽤 많은 시간이 경과된 시점입니다. 이때는 한 해의 농사나 목축을 마무리하는 수확의 때라고 보입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 얻은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아벨은 첫 태생 중 가장 살찌고 기름진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이는 아벨의 정성이 흠뻑 담긴 제물입니다. 아벨의 제물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첫 새끼 중 가장 좋은 것이란 점에서 만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며(출 13:2), 둘째 화목 제사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장차 하나님과 죄인과의 화목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골 1:20-22). 그러면 3절에서 가인이 드린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그 답은 히브리서 11:4을 보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믿음’이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제물이 농산물이라서 열납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며, 제물이 양이라서 열납하신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정성’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됩니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하는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바라는 자세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따라서 가인에게는 겸손과 정성과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믿음이 담기지 않은 가인의 제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주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의 영납 여부를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셨는지는 화실하지 않습니다. 고대에 나타나는 방식을 볼 때에 아마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레위 9:24; 왕상 18:38; 대상 21:26; 대하 7:1).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못하자 가인은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당황하는 것이며 불만과 분노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셨을까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으려는 자세가 없으며, 반성하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어찜이며(람마:למה)” 두 번 거듭 반복된 하나님의 질문은 가인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질책이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배려입니다. 죄인이 망하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없거나 하나님의 긍휼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며, 단지 그 자신의 교만과 강퍅한 고집 때문에 스스로 멸망과 저주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가 있으나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진정 정성이 들어간 믿음의 제사를 드렸다면, 또 네게 허물이 없고 결백하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고개를 떨군다든지 낯을 피하는 모습이 양심의 가책 혹은 죄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낯을 든 모습은 양심상 거리낌이 없는 떳떳하고 결백한 상태를 의미합니다(욥 11:15).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핫타트:הטאת)란 단어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기본 의미는 궁수가 표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성경적 죄의 개념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모든 인간의 행동이나 마음 상태에 적용이 됩니다. 죄는 사나은 맹수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벧전 5:8), 곧 인간의 심령 문에 웅크리고 앉아서 호시탐탐 침입의 기회를 노리는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마음 문에 똬리를 튼 채 숨어서 기습 공격을 노리는 독사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지금 바로 가인의 마음 문 앞에 있는 상황이므로, 가인은 분노를 삭이고 회개하여 강력하고도 악한 죄의 세력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이 아벨에게 무엇을 고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을 아벨에게 기분 나쁘게 전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들로 가자고 말할 수 있지만, 원시상태에서는 거의 모든 곳이 들판이나 아니면 산지이기 때문에 굳이 들을 찾아나가지 않아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둘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은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는 죽일 의도를 갖고 힘껏 내리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책망과 충고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퍅한 마음으로 기회를 틈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쳐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악은 그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도록 만들고 더욱 지배를 받는 노예가 되도록 만들어 악행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의 죄가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형제를 살해하는 무서운 죄로 급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도 그러하셨든지 가인에게 일단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아벨의 소재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거짓의 아비(요 8:44) 마귀의 속성을 좇아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은 참이요 진리이신 하나님의 속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장 큰 마귀적 특성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롱하는 패역한 죄입니다.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런 대답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그 큰 죄를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가인은 이미 죄에 의하여 삼킨바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신의 파괴시키고 타인을 파괴시키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보혈로 원수까지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살인죄를 범한 가인의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즉시 가인을 처벌할 수도 있었지만 가인이 회개하고 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에 사로잡힌 심령은 가증스러운 마음과 뻔뻔한 변명으로 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호소하다(차아크:)’는 ‘사람 살려’하고 비명을 지르며 외치는 소이입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아벨의 피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눈물은 악인의 용서를 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피는 신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 핏소리에 귀 기울이사 때가 이르면 반드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사 34:8;51:22;단7:22;계18:20).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살인자 가인의 사악한 범죄는 땅으로 하여금 원치 않는 아벨의 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부터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듣고 땅을 신원의 집행자로 삼으셨습니다. 땅은 살인자 가인을 토해냈습니다. 이것은 훗날 가나안 땅이 가나안 족속의 가증스러움 때문에 토해 내친 것과 같습니다(레위 18:28). 그 결과 가인은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억지로 아벨의 피를 받은 땅이 그 분노로 소산 내 주기를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땅을 인간의 고향으로 생각한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특히 농사를 그 업으로 삼고 있는 가인에게 있어 이러한 땅으로부터 처절한 배척과 단절은 아담의 형벌(3:17)보다 훨씬 무서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땅에서 피하며’ 여기에서 피하는 것은 어떤 만족과 행복을 얻어 보려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모습으로 시사합니다. ‘유리하는’ 일정한 안식처를 얻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떠도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가인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땅의 소산물을 얻기 위해 계속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으며, 심적인 측면에서는 땅의 핏소리를 피해 양심의 가책을 안고 불안정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습니다. 일평생 동안 죄책감, 공포, 불안정과 안식이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는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큰 벌을 준 것에 대한 불만과 탄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흉악한 것인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고통스럽고 부자유스럽게 만든 하나님의 판결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의뢰하지 않으며, 멸망의 길을 갈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에 대한 절규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곳에서 멀리 쫓겨나게 된 것을 체감적으로 깨닫게 된 것에 대한 비명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신 31:18) 영영 버려진 존재가 되었다는 영혼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만날 자” 지금까지의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네 명만 등장했는데, 가인이 만날 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성경은 구속사에서 중요한 사실과 인물들만 기록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3절에서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을 근거로 볼 때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 두 명만을 낳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자녀가 탄생을 했고 이곳 저곳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인과 아벨의 형제와 자매이고, 아벨의 무죄한 피에 대하여 보수(報讎: 갚을 보, 짝 수(갚다, 바로잡다는 뜻)할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하여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은 죽을까 얼마나 염려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악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은 죄를 지으면 얼마나 엄중하고 무서운 벌을 받는가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은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인의 표에도 불구하고 가인을 죽이는 자는 살인죄에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가 첨가되어 가중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칠 배’는 철저하고도 완전한 신적 보응을 말합니다(레위 26:28). ‘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인은 이로 인하여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며, 또한 죄의 형벌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자를 경고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26절은 아담의 다른 자녀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나름대로 문명을 발달시켜가면서 번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명은 인간을 위한 세속적 문명일 뿐 결코 여호와를 위한 문명은 아닙니다. 즉 죄의 영향 아래 놓인 교만과 타락과 방종의 문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촛불처럼 미약하기는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씨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을 통하여 거룩한 씨를 보존하시며 인간의 구속사를 이끌어 나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은 점점 더 영적으로 타락하여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놋(노드:נוד)’은 ‘유리, 방황, 요동’이란 뜻으로 기쁨과 환희의 땅인 에덴동산과 대조되는 도망과 추방의 땅임을 암시합니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외에는 그 위치를 알 길이 없습니다.

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과 그 아내 사이에 에녹이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은 ‘헌신하다, 가르치다’는 뜻입니다. 학자들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 가인이 삶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고자 애썼던 흔적이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간 위주의 삶이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 이름은 교만한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독립 선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가인이 쌓은 ‘성’은 천막(tent)과 구별되는 벽으로 둘러쌓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인이 하나님의 저주 명령에도 불구하고 성을 쌓아 정착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의 교만과 거역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가인의 도성은 인간 교만과 허영의 상징인 바벨탑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 19: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에녹의 4대 손인 라멕에 대한 내용입니다. 라멕은 ‘강한 자, 힘센 자’라는 뜻입니다. 그의 두 아내 아다와 씰라는 ‘장식한 자’와 ‘딸랑거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통하여 가인의 후손들의 폭력상과 세속적 미와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부일처 제도를 파괴시키고 일부다처제를 만든 장본인이 라멕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화는 라멕 이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정욕을 좇아 일부다처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야발은 ‘시내, 강, 여행자, 생산자’ 등의 뜻입니다. 이로 볼 때 그의 삶은 물과 목초지를 좇아 끊임없이 여행하는 유목인으로서의 일생이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야발은 양떼를 방목하며 사육하는 기술과 방법을 개발하고 터득하여 후손들에게 전래시킨 목축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수양의 뿔’이라는 뜻의 ‘요벨’과 관련이 깊은 이름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수금은 줄을 튕겨 소리내는 악기(현악기)를 가리키고, ‘퉁소’는 숨을 내쉬거나 바름을 불어줌으로써 소리 내는 악기(관악기)를 가리킵니다. 즉 유발은 인간을 향락과 즐거움의 길로 이끈 사람입니다.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두발가인은 금속으로 각양 날선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조상입니다. 금속 기술의 선구자로서, 농기구를 비롯하여 전쟁 도구 등을 발명한 자입니다.

23, 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이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흔히 ‘검의 노래’라고 하는 라멕의 복수의 노래입니다. 성경의 가장 오래된 노래로서 히브리인들의 특색인 병행과 대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인의 대표적인 후예인 라멕이 두발가인이 만든 칼을 손에 쥐고 오만한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 이 노래 속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 심성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살인과 폭력의 악취를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창상(創傷)’ 상처로 인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는 자는 가차 없이 죽였다는 것입니다. 죄의식의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는 잔학성을 엿보게 됩니다. 라멕은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을까 두려워할 때에 가인을 죽이는 자는 그 벌을 ‘칠 배’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자신이 사람을 죽였지만 그에 대하여 복수를 하는 자는 칠십칠 배나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즉 하나님을 우롱하는 교만과 자만의 극치를 보고 있습니다.

25, 26: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인류 최초의 순교자 아벨을 대신하여 태어난 셋과 그 후손의 기록입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방종과 타락의 삶을 사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따라 아벨 대신 셋 계열을 택하고 보존하사 인류 구속을 위한 거룩한 섭리와 역사를 이끌어 나가셨습니다. 셋은 아담이 130세에 낳았으며, 그 뜻은 ‘놓다, 지정하다, 안정되다’는 뜻입니다. 곧 정해진 자, 안정된 자입니다. 셋은 아벨 대신 보상으로 주어진 자라는 뜻이며, 유리하며 피하는 가인과는 달리 안정된 자라는 뜻입니다. ‘에노스’는 ‘사람, 병든 사람, 죽음, 부패로 사라져갈 사람’의 뜻입니다. 이는 인간 지상주의를 표방한 가인 계열과는 대조적으로 철저히 허무한 인간의 실존을 간파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에노스는 경건한 공적 예배의 창시자로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름으로써 그 이름이 경건한 신앙 가문의 조상으로 영영히 소개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예를 얻기까지 하였습니다(눅 3:38).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공적 예배와 관련하여 종종 사용되는 말입니다(12:8; 13:4; 21:33; 대상 16:8; 시 105:1). 이 말은 셋 시대에 이르러서야 셋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비로소 구속주 여호와께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감사와 간구가 있는 공식적인 예배를 연합으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고 악기와 무기를 개발하는 등 세속 문명을 발전시킴으로써 세상 왕국의 기초를 다져가는 동안, 셋의 후예들은 여호와께 감사와 찬양을 연합하여 드림으로써 하나님 왕국의 기틀을 세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최초의 형제살해

농경부족과 목축부족의 대립으로 보기도…살해자 가인은 추방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이다. 가인(Cain)이 형이고, 아벨(Abel)이 동생이다. 가인은 농부이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어느날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데,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떼에서 태어난 첫 번째 새끼를 죽여 좋은 부위를 예물로 바쳤다. 하나님은 가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고 아벨이 예물을 반겼다.

원인은 하나님의 편애였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이 가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성경 해석자들은 아벨이 가인보다 더 정성스럽게 예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가인은 하나님의 조치에 얼굴을 들지 않고 화를 냈다. 하나님은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문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고 가인을 꾸짖었다. 가인은 아벨을 질투하게 되었고,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는 스토리다.

가인과 아벨 (16세기 그림, Titian) /위키피디아

성경은 최초의 인간들에게 죄를 씌웠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먹었고, 그들의 아들은 형제살인을 했다. 성경은 태초 인간을 사악하게 그렸다. 하나님이 만든 첫 세대와 둘번째 세대는 하지 말라는 것을 했고, 서로 질투하고, 계율을 어겼다. 그 원인은 절대신인 하나님이 제공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 가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마음이었다. 절대자는 인간의 융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인과 아벨의 신화는 인간 역사에 숱하게 나타나는 형제살인(siblicide, fratricide)을 다루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최초로 만나는 적이 형제다. 부모는 성인이라 대들기 어렵고, 같은 또래의 형제가 서로 싸운다. 먹을 것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며 질투하기도 한다.

형제살해는 역사스토리에 많이 등장한다. 우리 역사에 조선초 이방원이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고,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인 것이 일종의 형제살해다. 재벌기업에서 형제간의 상속분쟁을 ‘왕자의 난’이라 부르는 것도 그와 상통한다.

형제살해를 제도화한 경우도 있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는 초기에 한 왕자가 술탄에 오르면 다른 왕자를 죽이는 형제살해가 제도적으로 인정되었다. 야만적인 이 제도는 100년 정도 지속되었다.

오스만투르크의 형제살해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정복자 메흐메드 2세(Mehmed I, 1451~148I) 때 법제화되었다.

메흐메드 2세는 술탄 무라드 2세(Murad II)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첫째 형은 먼저 죽었고, 둘째 형도 잠을 자다가 목이 졸려 죽었다. 1451년 2월 아버지 무라드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죽자, 그는 제위를 계승했다. 나이 19살에 술탄에 오른 그는 즉위와 동시에 동생 모두를 비단 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메흐메드 2세는 카눈나메(kanunname)라는 법령을 만들어 형제살해를 정당화했다. 그는 “내 아들중 누군가 술탄의 지위를 물려받는다면 세상의 질서를 위해 그의 형제들을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이슬람 율법이 그러한 조치를 용인한다. 그러므로 이 조치를 시행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가인과 아벨의 스토리는 목축업을 하는 부족과 농업에 종사하는 부족의 적대관계를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농경 부족을 대표하는 가인이 목축 부족을 대표하는 아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스토리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농경부족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에서 관개를 통해 농토를 일구어 살았고, 목축을 하는 부족은 떠돌면서 농경지 근처를 기웃거렸다. 두 부족은 늘상 대치관계에 있었다.

유대인은 고대에 목축을 하며 중동 일대를 떠돌아 다녔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물을 받은 것은 유대인을 지지했다는 뜻일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인 농경민족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을 탄압했을수도 있다.

성서에는 가인이 하나님의 분노를 사 놋(Nod)으로 쫓겨 난다. 놋은 에덴 동산 동쪽에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놋은 방랑(wander)라는 의미라고 한다. 가인은 쫓겨나 방랑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인은 방랑지에서 여인을 만나 후손을 낳고 무리를 이루게 된다.

가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쫓겨나는 그림(Fernand-Anne Piestre Cormon, 1880) /위키피디아

성경에서 가인과 아벨의 형제 싸움에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인이 떠난 후에 아담은 하와와의 사이에 또다른 아들 셋(Seth)을 낳는다. 아담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성경에 등장하는 계보는 가인에게서 단절되고, 아담이 130살에 낳은 셋에게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신화를 한군데 모아 꿰어 맞추다보니 성경작가들이 곳곳에서 억지를 부린 것 같다.

가인과 아벨의 스토리는 1947년에 발견된 사해문서(Dead Sea Scrolls)에서도 서술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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