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 의 집 | [예수님의 비유]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 The Parable Of Two Builders Bible Animation | 성경 애니메이션 | 신앙 교육 | 179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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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지은 집!(마태복음 7:21-27) 176호 – 기독타임즈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수가 난다는 말은 홍수가 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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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idoktimes.co.kr

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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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강해82강 – 반석위의 집과 모래위의 집 (마7:24-27 …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이 산상수훈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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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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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집을 세워라 – 당당뉴스

* 본문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준행하므로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 집은 모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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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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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반석 위에 지은 집

경전 이야기. 마태복음 7장 24~27절과 누가복음 6장 47~49절에 나와 있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래 대신에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가르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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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3/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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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반석 위에 지은 집(마7:24-25) – 광성교회

2012. 6. 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64) 본문 : 마 7:24-25 제목 : 반석 위에 지은 집.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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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sch.net

Date Published: 10/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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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반석 위에 지은 집 – 국민일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땅을 깊이 파고 견고한 바위에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초도 없이 지반이 약한 모래 위에 세운 것입니다. 평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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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4/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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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석위에 집을 짓고 있는가?(12/29/19) – 늘푸른교회

문제는 많은 비가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불어닥칠 때인데, 그런 때도 반석위의 집은 견뎌내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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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vergreenpromising.org

Date Published: 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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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반석위의 집과 흙위의 집(눅 6:46-49) – KMC뉴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터를 닦고 집을 지은 자와 같아 어려움이 와도 걱정이 없으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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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mcnews.kr

Date Published: 9/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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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반석 위 의 집

  • Author: The Soon Studio [삼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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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21Odw4eoBTs

산상수훈강해82강 – 반석위의 집과 모래위의 집 (마7:24-27/소그룹성경공부) / 온땅교회 한성민목사

산상수훈강해82강 – 반석위의 집과 모래위의 집 (마7:24-27/소그룹성경공부) / 온땅교회 한성민목사 ​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VS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

이제 산상수훈의 끝 부분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산상수훈은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교훈으로 끝나게 됩니다. 본 단락의 핵심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와 “이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 대한 대조입니다. “이 말은 듣고 행하다”에서 “이 말은” 당연히 마태복음5장부터 시작된 산상수훈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이 산상수훈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결국 구약의 시내산에서 선포된 율법에 대한 기독론 중심의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기독론 중심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내 밖에서 내가 지켜야 할 율법적 규범이 될 뿐입니다. 열심히 지켜도 마지막 하나를 못 지키면 다 못 지킨 것이 됩니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 땅에서는 조금 지킨 사람과 조금 더 많이 지킨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모두 똑같이 못 지켰다고 선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1점 맞은 사람이나, 50점 맞은 사람이나, 99점 맞은 사람을 모두 똑 같이 대접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와는 다른 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입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의 의와 예수님의 의 우리에겐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더 좋은”의 의미보다 “차원이 다른” 의 입니다. 율법과 관련하여 바리새인은 말하자면 99점 맞은 율법의 우등생입니다. 그러나 100점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정죄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바래시인과는 차원이 다른, 근본적으로 다른 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의가 바로 예수님의 의인데, 이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느냐? 십자가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해석되어야 우리를 살리는 복음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그 의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완성되는 의 그러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열로(10) 주어진 율법의 계명을 사랑이라는 하나로 내 마음에 담아, 하나님의 원수인 나에게(이웃) 용서하게 하는 그 사랑을 전하고 흘려주면 이 율법의 지옥에서 내가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용서하게 하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가 하나님의 온전함 같은 그 온전을 가지고 있는 자가 되고, 그를 의로운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5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은 온전 그 온전은 초월적이고, 이원론적이며, 영지주의적인 온전이 아니라, 이 율법의 지옥이라는 역사 속에서 은혜의 복음, 형제를 용서하게 하는 사랑을 진리로 흘려줄 수 있는 그 사람을 온전한 자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온전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영역의 문제입니다. 내가 인간이 규정한 보편적 양심에 맞는 행동을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정한 그 의로움 안에 있는가 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느 영역에 있는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에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의의 기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선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다른 이를 살리는 것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유다와 다말의 사건도 그런 것이고,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모든 사람을 다 죽인 사건도 그러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하나님이 죽이라고 아멜렉 왕을 죽이지 않은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의 기준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판단이며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창38: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차다크)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수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수8:24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 이라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대한 인간의 순종, 곧 영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자의 삶 : 구제, 기도, 금식 그리고 보물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용서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자를 존재적으로, 영역으로 온전한 자, 의로운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온전, 하나님의 의를 마음에 담고, 역사 속에서 흘려내는 삶을 6장부터 구제, 기도, 금식의 삶이라고 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여서 복음의 진리를 나누어주는 성도가 하늘에 쌓여지는 보물, 진리의 전대를 가지고 있는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내일의 양식을 구함 이 성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는 인도하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아이테오), 기도의 삶을(프로슈코마이) 살게 되고 그렇게 내일의 양식을 오늘 미리 받으며 역사의 종말의 때를 내일의 양식으로(구제와 금식)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를 용서하게 하는 복음 그렇게 우리 안에 진리의 복음이 있으니까? 형제를 비판하지 않고, 자유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는 복음을 흘려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 역사 속에서 하늘의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진짜 기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과 규범으로 이해하여 열심히 지켜야 할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열매인 가시와 엉겅퀴가 나오는 나쁜 나무인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을 행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규범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은혜를 창조하고 만들어낸다는 것 입니다. “포이에오”, “아사”라는 동사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인간의 개별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창조의 행위를 의미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혼돈과 흑암과 어두움 속에 있었던 이 땅에 빛을 주시고, 질서를 주시고, 내용을 주셔서 창조하신 것처럼 먼지이고 흙인 우리에게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는 자, 은혜의 내용으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 피조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님의 행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 그러면 반대로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무엇입니까? 그 말씀의 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이 지켜야 할 율법과 규범으로 받아서, 자신의 행위의 기준과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행위만 있을 뿐 하나님의 영원한 행위,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고, 그 창조는 구원을 통해서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안에 갇혀 있는 자는 열심히 율법적 규범을 지켜서 인간의 행위만 만들어, 잘해야 99점을 맞는 것입니다. 그 점수는 빵점 맞은 사람이나, 90점 맞은 사람에게는 자랑할 것이 되지만, 하나님의 기준, 100점에는(하나님의 온전함) 도달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똥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 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사64: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하나님의 일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집 , 성전을 짓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가 우리 안에서 행하는 일,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집으로, 성전으로 만들어 가시기 때문에, 그 예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단순히 하나님으로서의 신적인 능력만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율법 안에서, 율법으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성도 안에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교가 아니라 예수교 그러니까 기독교는 하나님 종교가 아닙니다. “엘로힘”, “여호와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예수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져 있는 구속사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이런 케리그마적 진리를 근거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지, 그냥 무턱대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는 것은 완전히 이교적이고 미신적인 자기 암시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행함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은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고, 초월적, 은총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감지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행함은 율법적, 규범적, 자기 의 챙기기의 행함이 아니라 은혜의 행함, 은총적 행함, 인간의 의를 부수는 행함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행함입니다. 그래서 그 행함을 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석위의 집, 모래위의 집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사랑으로 깨달으면, 내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행위는 곧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가는 성전 건축,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반석이라는 예수 그리스도, 믿음위에 지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모두 성전 짓는 지혜이고,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지혜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그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모래라는 율법 위에 지은 집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모래라는 율법으로 이해하지 않고, 예수라는 반석, 사랑이라는 그 진의로 이해하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집이 지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모래는 율법이라고 비유합니다. 율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로 완성된 사랑으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이 개별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만 이해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찢어지고, 분리되고, 나누어지는 것으로 주어집니다.

모래의 상징적 의미 성경에서 모래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아주 많은 자손을 상징할 때 사용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을 상징할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자손이 모래처럼 많을 것인데, 그들의 모든 자손이 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래는 율법으로 주어진 모든 자손이란 의미고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하늘의 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 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신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 을 받으리니

모래위에 지은 집: 율법(많은 것으로 분류) 그러면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란 결국 하나님의 주신 언약, 말씀을 인간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만 이해하여서 열심히 율법적 행위로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보편 인간의 모든 존재와 행위를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실은 결국 이 역사의 창수와 바람으로 나타나는 종말이 올 때 다 무너지게 됩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 은혜(하나로 완성) 그러나 그 집을 반석이라는 예수 그리스도 지을 때, 사랑과 용서와 은혜의 현실이 나타나고,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는 집이 되기 때문에 비와 창수 속에서도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용서라는 반석으로 받게 되면 그가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그가 곧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지고 있는 지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시고, 그 과정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앙의 내용, 삶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워라

마태복음 7장 24-27절 반석 위에 집을 세워라 가. 반석 위에 집을 세워야 한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본문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준행하므로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 집은 모래 위에 짓는 것이 쉽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날 때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쉽게 무너진다. 집은 반석 위에 세워야 한다. *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라고 하였다.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 집을 반석 위에 세운다는 것은 주님과 그의 말씀을 토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다. 가치관이 인생을 좌우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반석’(페트라, 여성명사)은 주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이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한다. 나. 편의주의가 문제다.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지으려는 것은 쉽게 살려는 편의주의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현재, 분사) 않는다. 또한 그들은 말씀대로 철저하게 행하려고(현재, 분사)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은 아멘으로 받아들이지만 힘들고 불리한 말씀은 무시한다. * 쉽게 살려는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 먹는다. 사람은 대체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 말씀의 규제를 벗어나서 자신이 좋은 대로 살기를 원한다. 이는 말씀을 따라 힘들게 살기보다는 편하게 자유롭게 살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문제다. *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여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껍데기가 전부가 아니다.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또한 물질문명이 전부가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너무 쉽게 살려는 욕구가 인생을 망친다. 다. 말씀의 고삐에 묶여 있으라. 24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세우려면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여기서 ‘지혜로운’(프로니모스)은 ‘고삐를 매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는 주님의 말씀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안 된다. 주님과 그의 말씀에 단단히 붙어 있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네게 명령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1:7)라고 하셨다. 말씀에서 떠나면 안 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1:2)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남은 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과 그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육신의 소리, 마귀의 속삼임, 세상의 악한 풍조가 유혹할지라도 오직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항상 말씀의 고삐에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한다. 라.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좋은 날에는 모른다.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는 날이 되어서야 반석 위에 세운 집의 가치가 드러난다. 언젠가는 심판의 날이 오는 것을 기억하고 반석 위에 집을 세워야 한다. *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 위하여 두 가지를 요청하였다. 하나는 그리스로를 터로 삼고 집을 지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에 타지 않는 금이나 은으로 집을 지으라는 것이다(고전3:10-15). 언젠가 있을 심판의 날을 기억하고 튼튼한 집을 세우라.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온전히 준행하였던 노아는 큰 홍수 가운데서 가족을 지켰다.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라고 하였고,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6:22)라고 하였다.

반석 위에 지은 집(마7:24-25)

2012. 6. 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64)

본문 : 마 7:24-25

제목 : 반석 위에 지은 집.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요즘 사람들은 외모를 아주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속은 볼 수가 없으니까 겉모양이라고 보도 판단을 하는 것이겠지만 외형적인 것을 보고 만족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실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밖으로 보이는 것은 보기에 좀 좋지 않다는 것일 뿐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속에 들어 있는 그 사람의 마음 상태는 정말로 인생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도 아름답고 속도 차고 그런 사람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외모보다는 속사람의 상태를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신앙은 외형적인 것보다는 그 중심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속을 볼 수 있는 분이시고 속을 중심적으로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겉보다는 속이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똑 같이 생긴 집이 두채가 있습니다.

크기도 똑 같고 설계도도 똑 같고 재질도 똑 같고 밖에서 볼 때 어느 것 하나 다른 것이 없는 똑 같은 집입니다.

그런데 볼 수 없는 곳에 아주 다른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반석위에 세워졌고 하나는 모래위에 세워졌다는 점이 다릅니다.

외모나 용도가 똑 같기 때문에 평소에는 별로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잘 버티고 있지만 모래위에 지은 집은 바로 무너져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은 그 신앙이 기초가 아주 든든한 반석 같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신앙의 기초가 모래와 같이 든든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신앙의 기초를 아주 반석과 같이 든든하게 해 두고 그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기초가 시원치 않아도 그냥 방치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다짐을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의 말을 잘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다가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고 나의 말을 잘 들었으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모래위에다가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조금도 반응이 없거나 반응은 있었는데도 실천을 하지 않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들이지만 특별히 산상보훈의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기본이요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닫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을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다짐을 한 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기초가 든든한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어떤 경우든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이 본문을 대하면서 아 우리는 반석위에다가 집을 짓는 사람들이구나. 반석위에다가 우리 집을 짓자고 말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 중에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후렴에는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사실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집을 잘 짓자는 말은 없습니다.

이미 잘 지어진 집에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라고 했지 집을 잘 지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은 사람이나 짓고 있는 사람이나 지을 사람이나 결국은 짓는 것인데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위에다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미 반석위에 지어진 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우리는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성도들을 나타내는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을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그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보고 좋은 나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보고 무화가 나무나 포도나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무화과나무이고 이미 포도나무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우리가 양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양이기 때문에 양에게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염소는 염소라는 이유 때문에 작은 잘못 하나까지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양은 양이라는 이유 때문에 별 볼일 없는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아주 작은 일 하나까지도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행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아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해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불안해합니다.

내가 선을 행한 일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할까?

내가 의로운 일을 행한 것보다 불의를 행한 일들이 더 낳은데 어떻게 할까?

이러다가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닐까? 라고 고민을 합니다.

반대로 뭘 좀 잘 한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교만한 마음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좋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양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반석위에 기초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든든한 반석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겉모습은 양 같지만 속에는 이리가 들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잎은 푸르고 무성하지만 실상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나무나 엉겅퀴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주인처럼 섬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정말로 바른 신앙의 기초를 가진 참된 성도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그냥 아무렇게나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순교자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고신교단의 교회이고 순교자의 후손이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성경의 핵심진리를 다 배워서 공부를 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을 10년 20년 동안 계속 듣고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를 통해 경배와 찬양의 의미를 알고 최선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복지선교를 하며 직접 간접적으로 이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이렇게 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믿으시면 됩니다.

제가 학설을 만들고 규정을 만들어서 그 규정에 맞춰서 여러분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든든한 기초위에 세워진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반석위에다가 집을 지은 사람과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면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서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온유한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삶을 사모하고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니야 심령만 가난하면 되고 육신은 부자가 되어도 괜찮아 부자로 잘 사는 게 좋아 부자가 되자 라고 생각하면서 부자 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늘 죄에 대해서 부족함에 대해서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만날 잘난 척 하고 싶어 하고 만날 자랑하고 싶어 하고 만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면 참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 참 어렵습니다.

잘난 사람이 되는 것 참 어렵습니다.

자랑거리 만들려면 어렵습니다.

죄짓지 않고 바르게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보고 부자가 되어라, 잘난 사람이 되어라, 자랑거리를 많이 만들어라 죄짓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라, 라고 하셨다면 그 말씀 실천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입니다.

솔직히 부자 되기 싫은 사람 여기 있습니까?

다 한 때는 한번 일어서 보려고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며 살아보려고 노력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더냐구요.

좀 되는가 싶으면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좀 벌어 놓으면 더 쓸 일이 많아지고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해지는 것은 참 쉽습니다.

그냥 나누어주고 내버리면 가난해 집니다.

욕심내서 많이 안 벌면 금방 가난해집니다.

일부러 가난해지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가난해지는데 그게 복이라고 하는데 뭘 걱정을 합니까?

남들 앞에 교만하게 자랑하고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잘난 척 하는 것도 뭐 잘난 척 할 건더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아무나 잘난 척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난 척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겸손하게 조용히 있는 것 참 쉽습니다.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너무 쉽습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못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되는 일이니까 너무나 쉽습니다.

이 복잡하고 죄가 관영하는 세상에서 나만 죄짓지 않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생각하는 것이 늘 죄고 계획하는 것이 늘 죄뿐이 이 세상에서 어찌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형제에게 욕한 마디 안하고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오른뺨을 맞으면 외편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냥 예, 저는 어쩔 수 없이 죄를 많이 짓고 삽니다.

노력은 하지만 부패한 심령이 어쩔 수 없이 또 죄를 짓곤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난 도저히 회생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죄 때문에 애통해 울고 그런 나를 용서받게 하시는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해서 웁니다.

어리석게 부자가 되려고 그렇게 욕심 부리고 살지 말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면 됩니다.

어리석게 자랑하고 잘난척하려고 하지 말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리석게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지로 행동으로는 주님을 주인처럼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여 주여 하는 대로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이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돈 몇 푼 때문에 그 돈 따라 가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냥 없으면 굶고 가난해지십시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차라리 가난해지면 되잖아요.

주님께서 굶게 놔둔다고 하셨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사십니까?

말로는 주님을 주인으로 섬긴다고 하면서 주일날 그까짓 좀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따라가십니까?

산으로 들로 바다로 스포츠 경기장으로 여행지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까?

이 좋은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일을 제쳐두고 세상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까?

정 노력해도 안 되면 손이 안 되면 손이라도 잘라 버리고 눈이 안 되면 눈이라도 뽑아 버리고 바르게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안 해도 좀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들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마시고 지혜롭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3.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나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나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이나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당할 때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기초가 든든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그 어려움이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그 어려움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제가 요즘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삽니다.

수산동에 작은 텃밭에 고구마랑 호박이랑 여러 가지 채소들을 심었는데 비가 와야 됩니다.

비가 안 오면 가서 물을 길러다가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많은 피해를 입기는 하지만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논밭이 떠내려가기도 하지만 비는 와야 하고 바람은 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풍파는 필요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고통을 당하기는 하지만 그 풍랑으로 인해서 인생을 깨닫기도 하고 훈련을 받기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풍랑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려 가면 얼마나 편안하고 좋겠습니까?

때로는 하나님도 안 계신 것 같고 믿음도 없는 것 같고 신앙에도 갈등을 느낄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남들은 다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늘 기도하는데도 응답도 없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도 현실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회의를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돈과 교회, 이 세상의 쾌락과 천국, 별별 생각들이 우리를 괴롭게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들이 우리를 시험하는 풍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들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이기고 승리하면 더 굳건한 믿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작은 시험들을 이기게 될 때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 만나게 될 최후의 시험에서 능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특별하게 말씀해 주신 산상보훈의 귀한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려고 다짐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설교] 반석 위에 지은 집

삼풍백화점은 지금까지도 부실공사의 대명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런데 인생도 부실공사 때문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나름 잘 살아보겠다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노력하지만 끝에 가서 보니 무너진 인생이 된다면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기에 일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름답고 튼튼하고 복스러운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인생을 집짓기로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24절)

인생의 집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고 다른 하나는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이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초의 차이입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땅을 깊이 파고 견고한 바위에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초도 없이 지반이 약한 모래 위에 세운 것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실상이 드러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집니다. 비와 홍수, 그리고 바람은 인생에 불어오는 갖가지 시련을 의미합니다. 질병 고통 환란 실패 죽음 심판입니다. 이런 것들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재계 순위 5위 안에 드는 기업 총수가 그동안 가정생활이 불행했다며 이혼 계획을 밝혔습니다. 행복의 개념이 소유에 있다면 이 가정은 우리나라에서 5번째 안에 드는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에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을 지켜주는 견고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 것들은 모두 모래와 같이 연약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입니다. 다시 말해 온갖 욕망들입니다. 이런 것들 위에 인생의 집을 지으면 언젠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 참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말씀대로 살 때 비로소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19:1∼2) 성도 여러분, 이 같은 신앙 위에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원토록 주님과 동행하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병하 서울 양천구 화평교회 목사

11. 반석위의 집과 흙위의 집(눅 6:46-49)

위에서 여러 가지 교훈으로 말씀하신 예수께서 오늘의 본문에서는 들은 말씀을 믿고 실천할 것을 요구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터를 닦고 집을 지은 자와 같아 어려움이 와도 걱정이 없으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는 기초도 닦지 않고 흙위에 집을 지은자와 같아서 결국에 가서는 그 집은 무너지게 된다는 비유의 교훈이다. 신앙생활이란 집을 짓는 원리와 같은데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는지 점검할 이유가 된다.

첫째: 참 신앙인의 생활(47-48)

1) 듣고 행하는 자: 예수께서 원하는 사람은 예수께 나아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인데 듣고(ajkouwn), 그리고 행하는(poiwn)것은 현재 분사형으로 계속적인 동작을 가리키며, 그러므로 믿음은 정 체되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살아 움직여야 한다. 믿음은 행함을 요구하며 행하는 믿음은 변화와 함 께 창조적인 역사가 나타난다. 성도는 자기가 믿는 믿음을 삶을 통해 실천할 때 성숙한 신앙인으로 열매 맺는 생활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씀을 증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이 된다.

2) 반석 위에 집을 지음: 이스라엘의 지형과 기후에 익숙한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먼저 반석이 묻혀 있는 곳까지 깊숙이 땅을 파고 그 위에 집의 기초를 놓는다. 왜냐하면 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도 우기가 되면 반석위의 집이 아닌 것은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예상치 못했던 풍파로 인해 위기를 당하게 되는데 반석위에 든든한 믿음의 집을 지은 사람은 염려가 없고 능히 대처해 나간다. 바울은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는데(고전 3:11),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인생을 설계하고 건축한 자는 마지막 날에도 주님앞에 떳떳이 서게 된다(살전 3:13).

둘째: 거짓 신앙인의 생활(46, 49)

1) 듣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46):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며 경의를 표하고 영광을 돌려도 주님의 가르침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며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교훈을 듣고도 행치 아니함에 대한 강한 책망의 말씀이다(마 7:21).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생활을 통해 순종치 않음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문제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유창한 기도에 뜨거운 찬송을 해도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삶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되지못하면 궁극적으로 주님과 상관없는 자가 된다.

2) 흙위에 집을 지음(49): 집을 짓는 건축 작업은 외형으로 볼 때 제대로 지은 집인지 아니면 부실 공사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비바람이 불거나 홍수가 나면 공사의 질적 내용은 비로소 판가름이 난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짓는 영적 집도 원리는 같아서 외견상으로는 분간하기가 곤란하지만 유혹이나 시험이 오면 흙위에 지은 집과 같은 믿음을 가진자는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고 만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약 2:17), 세상에는 행함이 없는 이름뿐의 성도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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