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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성경 구절: 예레미야 33:2~3
20171022 주일3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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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 주일 설교 – 19891210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 금란교회
37.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누가복음 18장 1~8절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 …
Source: www.kumnan.org
Date Published: 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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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예레미야 29:11~14) – 기독정보넷
또 더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을 때 마귀가 떠나가고 힘든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득실거리며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를 …
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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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 다음블로그
그 교회의 통성기도의 소리가 커지고 부르짖는 기도가 많아지고 길어지면 그만큼 그 교회는 능력 있고 부흥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다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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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9장 10-14.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고진하 – 네이버 블로그
부르짖는 기도는 먼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히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도 간절함 없이 대충 할 수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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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하늘의 권능이 임하는 부르짖는 기도1』, 부르짖지 않는 …
부흥과 능력과 하늘의 역사는 부르짖는 기도에서 나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기도이며 영적인 권능의 세계가 열리는 열쇠가 되는 기도 …
Source: growingbooks.tistory.com
Date Published: 8/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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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칼럼] 부르짖는 기도의 축복 – 크리스천투데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성경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9절을 … 영국의 설교가 존 번연은 “기도는 죄를 멈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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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기도 – 복음뉴스
부르짖는 기도 · 1.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 2. 기도 없는 설교가 영혼을 죽인다. · 3. 목회의 성공은 기도에 있다. · 4. 골방의 능력이 강단의 …
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8/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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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을 강건하게 해주는 부르짖는 기도” (시편 3편)
그것은 그 사람의 기도 가운데 하늘의 영광이 임하며 능력과 생명력이 충만하게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다른 …
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8/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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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권능이 임하는 부르짖는 기도1 – 두란노몰
부디 이 기도를 배우고 시작하십시오. 당신은 놀라운 권능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1권의 1부에는 부르짖는 기도의 원리와 능력에 대해서 썼으며 발성 …
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10/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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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성복교회 이태희 원로목사 부흥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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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7.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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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210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37.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누가복음 18장 1~8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신자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신자거나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 기도하여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을 알지 못하면 영적인 능력을 소유한신자라고 할 수 없고 마귀가 싸워서 승리할 수가 없고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받는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흔히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뜨겁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귀가 잡수신 줄 아느냐고 비난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는 위력 있는 기도의 비결을 알지 못한 소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은밀한 영적인 교제이므로 육신의 몸가짐이나 육신의 음성과는 무관한 줄 알지마는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령 누워서도 기도할 수 있고, 길 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눈을 뜨고도 할 수 있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는 무릎을 꿇고 뜨겁게 기도한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들어갈 운명인데도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그 무서운 시험을 이겼고(단 6:10) 엘리야는 비 오게 하기 위하여 무릎 꿇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기를 한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까지 기도하여 마침내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왕상 18:42). 간절히 그리고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여 땀방울이 땅을 적신다음에 빗방울이 떨어진 줄 압니다. 바울도 무릎 꿇고 기도했고(엡 3:15, 행 20:36, 21:5) 베드로도 무릎 꿇고 기도했고(행 9:40 도르가 살릴 때) 스데반은 돌 탕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일을 앞에 놓고 무릎 꿇고(눅 22:4) 간절히 기도하시되“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으면 무릎도 꿇고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도록 육신의 온 힘과 정력을 기울였겠습니까? 간절한 기도는 육신의 태도나 음성과도 깊은 관계가 없습니다.
간절한 기도, 뜨거운 기도, 위급한 상황에서 하는 기도는 묵상기도가 아니라 온몸과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 히시는도다”(시 3:4) 했고,“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는도다”(시 9:12)고 했고,“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 18:6)고 했으며,“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라고 하였고, “나는 하나님에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히시리로다”(시 55:16)고 하였고,“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는도다”(시 77:1)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시 88:1~2)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끈질기게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신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있는 힘을 다해소리질렀더니 예수께서 그 소경을 고쳐 주시며“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더욱이 마귀에 눌린 사람은 기도 소리를 듣기 무서워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심령의 문이 열리고, 부르짖는 기도가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냅니다.
1. 문제해결의 응답을 받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8장에 보면“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재판관을 찾아가서 하소연했는데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 가난한 과부를 소청을 들은 척 만 척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낙심치 않고 집으로 재판소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끈질기게 찾아갔더니 마침내 번거롭고 괴로워서 들어주고야 말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불의한 재판관도 하도 졸라대니까 들어주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밤낮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왜 안 들어 주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고 하신 것을 보면 이런 끈덕진 부르짖는 기도는 믿음이 없이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낙망치 않는 부르짖는 기도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2.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출 받습니다
바사 나라 아하수에로 왕 때에 그 나라의 모든 유다 백성이하만의 간계로 말미암아 꼼짝 못하고 떼죽음 당하게 됐을 때 에스더 왕후와 모든 백성이“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각오로“금식하며 부르짖어”(에 9:31) 기도하여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앞길이 막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비결을 주셔서 구출 받게 하십니다.“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하늘의 계시와 비밀을 가르쳐주셔서 절망에서 헤어나게 하십니다.“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고 말씀했습니다.
3.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극도로 부패하고 무기 하나 변변한 것이 없을 때 막강한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자 사무엘과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하며 사무엘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사무엘하 22장에 보면“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노래하기를“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다 나라 여호사밧 왕때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대가 쳐들어올 때“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금식하며(20:34) 부르짖어 기도했더니(20:9) 하나님께서“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15절)고 말씀하시고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6·25동란에 부산까지 밀려 내려갔을 때 부르짖는 기도의 응답으로 유엔(UN)군이 기적적으로 파병되었고, 파병은 되었으나 7, 8월 장마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 없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목사님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기적밖에 바랄 것이 없으니 기도해 달라고 할 때 금식하며 부르짖었더니 장마철에 비가 막 그치고 여러 날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폭격할 수가 있었고 승리하고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4.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큰일을 앞두고 회피하라는 마귀의 유혹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만은 피땀 흘리는 간절한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떨어지더라”(눅 22:44)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여 승리하거늘 우리 연약한 인간이 묵상하는 기도만 가지고 어찌 마귀를 이기고 시험을 이기겠습니까?
깡패 출신이고 당수가 8단인 김백문 목사님의 간증을 잠깐 들으니까 그는 신학교 다니면서 걸핏하면 두들겨 패고 목회하면서도 걸핏하면 주먹을 휘둘렀는데 하루는 간신히 무허가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구청에서 나와 헐려고 하는 것을 보고 제일 높은 사람을 당수 실력을 발휘하여 타다닥 때려눕혔더니 도망가더랍니다. 그 후 감옥생활까지 했는데 아무리 애써도 자기 성질을 이길 길이 없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 목숨 걸고 부르짖었더니 그때부터 옛 성질이 죽고 양처럼 순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서 책을 쓰고 세계적으로 “부르짖는 기도 운동”을 하고 다닙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고 엄청난 기적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5.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확신도 없으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자위하면서 체험 없이 다니는 신자가 많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분명히 누구나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피 땀 어린기도,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있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만난다고 해서 흰 수염이 달린 할아버지 같은 분을 이 육안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부르짖을 때 심령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부르짖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세상에 허다합니다.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은 이번 부흥회 며칠간이라도 부르짖어 보세요. 체험할 수 있습니다.
6.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밤중에 굶어 죽게 된 손님이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서 벗을 찾아가서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하니까 들은 척도 않고 문도 안 열어 주었습니다. 계속 두들기고 소리 지르고 흔들어 댔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 은“듣기는 듣고 있었구나”하고 계속 부르짖었더니 일어나 소원대로 떡을 주면서 “벗됨을 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강청함을 인하여 준다”고 했는데 그 강청함이 무엇입니까? 낙담하지 않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는 자가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행 4:24 lifted their voices together to God) 부르짖어 기도했더니“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고 했습니다. 조용히 기도해도 가랑비 같은 성령을 받겠지만 불같은 성령,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려면 내 얼굴이 뻘개지고 내 몸에서 불이 나고 땀이 날 정도로 부르짖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깨어나서 우렁차게 부르짖기만 하다면 이 나라 복음화도 빨리 이루어지고 공산당도 이길 수가 있고 모든 문제도 해결되고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가장 큰 자산은 부르짖는 성도가 많은 것, 즉 큰 기도의 소리라고 분명히 단언할 수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기도 소리를 들어 보면 거의 형편을 진단할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1989년 12월 10일 주일 낮 대예배 설교>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아기가 모태에서 출생하여 세상에 태어났는데도 “앙” 하고 소리쳐 울지 않고 몇 시간 혹은 몇 일을 지난다면 어딘가 잘못되었거나 건강치 못한 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하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지 못하거나 하나님께 소리내어 부르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잘못되었거나 건강한 신자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몇 년, 몇십 년 되었으면서도 묵상기도만 하고 소리내어 부르짖지도 못하고 대표기도를 해도 글을 써서 읽기만 한다면 건강한 영적 상태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몇 년 전 국군중앙교회에서 부흥성회를 인도하고 났는데 육군 대령 한 분이 찾아와서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제가 30년 동안 예수를 믿었으나 소리내어 기도하지 못하고 묵상기도만 하고 지나왔는데,
이번에 목사님 말씀대로 입을 열어 큰소리로 부르짖었더니 성령의 불을 받고 제 심령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부흥 성장하게 된 비결의 하나는 바로 부르짖는 통성기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통성기도의 소리가 커지고 부르짖는 기도가 많아지고 길어지면 그만큼 그 교회는 능력 있고 부흥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다 부르짖어 기도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고 모든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큰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왜 꼭 부르짖어야 하는가?
전에 저는 신학교 나와서 첫 목회할 때 성령 받은 교인이 밤새 소리내어 기도하거나 방언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귀가 잡수셨냐”고 하면서 못하게 하고 내어 쫓았으나,
제가 큰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세례를 받은 후부터는 부르짖는 기도를 강조하는 목사가 되었고 작은 교회가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이 “부르짖는 기도”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①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중심을 다 아시는 분이시지만 목소리를 내어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엄마, 아빠 소리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입 꼭 다물고 있다면 부모가 기쁘겠습니까?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말로 “아바”란 말은 “아빠” 혹은 “아버지”란 말인데 우리가 소리 내어 “아바”라고 부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도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부르짖는다”라고 했습니다.
큰소리로 “주여” 혹은 “아버지 하나님” 하고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아가서는 신랑 예수님과 신부인 성도와의 사랑의 교제를 노래한 시인데 아가서 2장 14절에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라고 했습니다.
“네 소리를 듣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I love you” 하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② 간절함과 열정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Charles Spurgeon 목사님은 “열정 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전혀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고 E.M.Bounder는 “열정은 기도의 핵심이며 기도에서 불은 원동력이다”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소원을 불같이 하나님께 쏟아놓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은 토하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열정적인 기도, 뜨거운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뜨거운 소원으로 기도해야 응답을 잘 받습니다.
17세기 청교도 Thomas Watson은 “최고의 기도는 마음과 혀가 협력하여 조화를 이룰 때이며 그들이 열광적이고 열정적일 때이다. 열정과 기도의 관계는 불꽃과 같고 하늘로 올라가는 향수와 같다”고 했고 “열정의 반대는 위선이다”라고 했습니다.
③ 세상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TV 소리, 라디오 소리, 자동차 소리, 공사장의 소리 등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많고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어수선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부르짖어야 세상 소리를 이길 수가 있고 마음이 정돈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기회를 놓칠세라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는데,
예수님은 들은 척도 안 하시고 지나가시자 계속 부르짖었더니 주위 사람들은 꾸짖으며 “시끄럽다, 조용하라”고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죽지 않고 “더욱 심히 소리질러” 부르짖었더니 예수님이 머물러서 불러 오라고 하시고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지만 열광적으로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편 116편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라고 했고 히스기야 왕이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울며 통곡하며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열왕기하 20장 5절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중심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도 들으시고 눈물도 보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시편 55편 17절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하며, 기도 소리를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18편 6절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④ 겸손한 자가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자아와 아집이 깨지지 않고 체면을 중시하고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은 어린아이같이 입을 열어 부르짖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인생 계급장, 학벌, 다 떼어놓고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부르짖게 됩니다.
시편 86편 5절에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시다고 했습니다. 시편 34편 15절에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⑤ 부르짖음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이 있어야 부르짖게 되고 또 부르짖을 때 믿음이 커지고 강해집니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불의 사자 엘리야는 큰 능력을 행한 선지자인데 그 능력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그의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 능력은 그의 믿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간절히”란 말은 뜨겁게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비오기를 기도할 때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뜨겁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그의 땀방울이 줄줄 흘러나와서 땅을 적신 뒤에야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부르짖어도 딸을 고쳐주지 않았지만 반복하여 간청하고 부르짖을 때 결국 치료해 주신 것은 그녀가 계속 부르짖는 동안 믿음이 자라서 응답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 부르짖을 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놀라웁게 역사하셔서
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며(렘29:12~13),
② 영적 비밀을 깨닫게 되며
③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며(눅8:22,시50:15)
④ 전쟁에서 승리하기도하며(시56:9)
⑤ 부르짖을 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시30:2)
⑥ 부르짖을 때 성령충만과 능력을 받습니다. (행4:24)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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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9장 10-14.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고진하
렘29장 10-14.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고진하 목사 10007주
쌍문중앙감리교회 http://cafe.naver.com/scmchurch
할렐루야! 우리 주위 분들에게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오늘 아침에는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한 번 같이 하겠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어제 국민일보 신문을 보니깐 이번 주에 있었던 “명성교회 새벽기도 국제 컨퍼런스”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명성교회는 “새벽기도” 하면 생각나는 교회라고 할 정도로 새벽기도로 부흥한 교회입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 평일에도 평균 6만 여명이 새벽기도를 드리고, 그 중에 어린이가 9,000여 명의 참여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참여하는 성도들의 남녀비율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기사에서 미국 필라델피아 에논성막침례교회의 알란 윌러 목사님의 간증이 눈에 띄였습니다. 그는 1997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그가 섬기는 교회는 150여명 교인이 출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성교회 새벽기도회를 참석해서 “주여, 주여, 주여!”라고 외치며 부르짖는 기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 교회로 돌아가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를 도입하자 모든 것이 바뀌고 빠르게 성장해 지금은 1만 5000여명의 교회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필라델피아가 미국 내에서 살인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 범죄가 많았는데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이후에 교인들과 함께 72시간씩 계속해서 기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최근 필라델피아의 강력 범죄가 30% 감소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기차가 달릴 레일을 놓는 시간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도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남 유다는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끌려갔습니다. 그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칠십 년이 차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징계하신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1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에게 징계를 주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시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고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칠십 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감사와 인내로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12-14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9: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칠십 년이 차면 남 유다를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 귀환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었습니다. 심지어 그 기간까지도 70년으로 정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이스라엘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포로된 중에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마치 기차가 달릴 수 있는 레일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기차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달릴 수 있지만 레일이 없으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무한합니다. 하지만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어떤 교회들은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명성교회와 같은 경우는 특별새벽기도를 하면 평균 6만 명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왜 어떤 교회나 성도는 세상을 이기고, 어떤 교회나 성도는 세상에서 질까요? 하나님께서 차별하시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러한 차이는 성경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했을 때에 그들 모두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훈련 받다가 죽었습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출애굽 2세대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을 때에는 그들 모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1세대가 늘 불평, 원망하면서 순종하기를 거절하자 결국은 광야에서 연단만 받다가 생이 끝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평안이요 재앙이 아닙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잘 안 되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원하시고, 잘 되도록 인도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그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복과 능력이라는 기차가 오게 하는 레일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많고, 기도를 적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적습니다. 기도를 길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도 길어지지만 기도를 짧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짧아집니다. 기도를 깊게 하면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지만 기도를 얕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그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까지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피곤이라는 핑계로 잠잤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증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인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마귀의 유혹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가나안의 복을 예비해 놓으셨어도 그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부르짖는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합니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자꾸 대화하게 됩니다. 반대로 대화가 끊기면 오해하기가 쉬워지고 관계 자체가 위험해집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해야 하고 오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 줍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기도하는 특권을 사용할 줄을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아기가 태어났으면 말을 배워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자녀가 할 말만 딱 하고 전혀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은행에 어마어마한 돈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마찬가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지도 않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우리는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인격적으로 친밀히 교제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덧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1.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이 있습니다.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엠블런스가 “삐요, 삐요” 소리를 내면서 달리듯이 우리가 앞을 가로막는 위기나 장애물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기나 장애물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사실상 위기의 연속이고 장애물의 연속입니다. 그 위기와 장애물을 뛰어 넘고 전진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위기와 장애물을 뛰어넘고 전진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수많은 기도가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적들의 공격이나 병으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또한 자신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도 고통으로 인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이 띄여지는 은혜를 경험했을 때에도 남들이 멸시하고 말려도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의 고침을 받았을 때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삼손이 엔학고레에서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사 천 명을 무찌르고 목말라 죽어갈 때에도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시편의 나오는 수많은 다윗의 시들에도 부르짖는 기도가 나옵니다. 다윗 역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인생의 위기들을 넘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능력을 소유한 것과 소유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반드시 부르짖어 기도하는 능력을 더 소유해야 합니다. 이 시간 한 번 다 함께 “주여”라고 외쳐 보길 원합니다. 하나 둘 셋 “주여!” 다시 한번 합니다. 하나 둘 셋 “주여!”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영혼의 힘이 생기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게 됩니다.
(1)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깐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전심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영적인 비밀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영적인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 33:3을 보시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일이 진행이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한 마음으로 진행시킬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5에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혹은 일을 하면서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3)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을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호수를 건널 때에 광풍이 불러와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고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사 잠잠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려면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시편 22:5에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풍랑을 만날수록 더욱 부르짖어 구원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4)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시편 56:9에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에베소서 6장을 보시면 영적 전쟁을 위한 전신갑주를 말씀하시면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했습니다. 간구하며 깨어 기도할 때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5)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아뢰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에 주위 사람들은 꾸짖으면서 잠잠하라고 했지만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눈이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시편 30:2을 보시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3:4은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몸에 땀이 나도록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땀도 나고, 소리 높여 찬양하다가 땀도 나야 합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뜨거워질 때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밋밋하게 기도하지 말고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에서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신 후에 치유와 용서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꾸 부르짖어 기도하려고 할 때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6)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게 됩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성령 충만함과 능력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1:13을 보시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도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섰다고 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이 사로잡혔다가 놓였을 때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소리를 낮추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행4:31).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죄를 이길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죄에 끌려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야 필수 사항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받게 됩니다.
2. 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실까요?
(1)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한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요? 부르짖는 기도는 먼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히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도 간절함 없이 대충 할 수 있습니다. “들어주시든지 말든지” 혹은 “안 들어주시면 그만” 이라는 식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앙이 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에는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도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소원을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열정 없이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엠바운드는 “열정은 기도의 핵심이며, 기도에서 불은 원동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분명하고 뜨겁게 신앙생활하길 원하시고, 뜨겁게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열정을 주시는 영이시기 때문에 불로 상징될 때가 많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얼음과 같이 차가운 역사가 아니라 불과 같이 뜨거운 역사입니다.
(2) 부르짖는 기도는 겸손한 믿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열정적인 마음은 순수할 때에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짖는 기도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간절함의 표현인 동시에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18:4을 보시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6을 보시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은혜와 응답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습니다. 체면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 보게 됩니다. 거기에는 영혼의 기쁨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있게 묻고 찾아가는 묵상의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기도도 묵상으로 조용히 기도할 수도 있고, 찬양으로 기도할 수도 있고, 삶으로 기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동시에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능력도 소유해야 합니다.
(3)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이유는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5: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열왕기상 18장을 보시면 엘리야는 비가 오게 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에 걸쳐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에는 무릎이 아프지 않으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후에 응답이 없자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시 기도하고, 그래도 응답이 없자 또 기도하고 그렇게 일곱 번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했을 뿐만 아니라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끈질기에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기도를 통해서 삼년 육 개월 만에 비가 온 것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술집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 들어선 것이 교회 옆에 술집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교인들과 함께 그 술집이 문을 닫도록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말 술집이 문을 닫게 되었고, 술집 주인은 교회가 술집이 문을 닫도록 기도한 사실을 알고 법원에 재판을 의뢰했습니다.
재판관이 목사님을 불러놓고 술집이 문을 닫도록 기도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기도하긴 했지만 기도한다고 다 되나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집 주인에게 묻자 “교회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고 강력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재판 결과가 “교회 목사, 기도에 대한 믿음이 없음. 술집 주인, 기도에 대한 믿음이 있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물론 유머이긴 하지만 기도가 얼마나 형식적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유머입니다. 엘리야가 일곱 번에 걸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성을 듣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길 원하십니다.
시편 116:1-2을 보시면 “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116: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4:3에서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 내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각으로만 기도하지 말고 음성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8:15에서도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 자녀가 말을 못하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답답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시 한번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보겠습니다. 하나 둘 셋 “아버지”
부부 사이에서도 사랑하는 것을 다 알지만 아는 것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에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기도도 생각으로만 하는 것보다는 목소리를 높여 하는 기도가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합심해서 부르짖을 때에 더 강력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회나 저녁 기도회가 생긴 것입니다. 속회 모임도 이론적인 모임이거나 사람만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기도하고 전도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도 살고, 다른 사람의 영혼도 살릴 수 있습니다.
3. 부르짖는 기도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하는 기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을까요? 부르짖어 기도하려면 온 마음으로 즉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는 전심으로 찬송하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힘없이 예배하다가 조는 것이나 능력 없이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능력 있게 기도하는 습관이 생기도록 의식적으로 매순간 힘을 주어서 기도하고 찬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셨다는 표시로 제물이 불인 내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할 때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온 힘을 다하여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영혼 깊숙한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담아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생기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에스라나 느헤미야를 보시면 그들도 영적인 부흥과 사회적인 개혁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놓고 그리고 동족의 죄를 놓고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실패나 가난이 우리의 삶의 본래 모습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때로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늘 경제적으로 끌려 다닌다면 그것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적인 세계만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물질세계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고, 경제적으로 늘 어렵다면 왜 그런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알아내야 하고, 부르짖는 기도로 그 상황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도 억지로 마지못해 하거나 누가 시켜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동적으로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3:12에서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로 잡힌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다음에는 억지로 신앙생활하지 않고 예수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로 잡으신 것은 우리에게 하늘의 상을 주시기 위함인데 그 하늘의 상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신앙생활하지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특별새벽기도회 때에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꼭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에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진취적으로 나아가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갈렙과 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 복을 내게 주소서.”라고 거룩한 욕심과 대장부의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믿음이 아니라 달려가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요엘 1:14을 보시면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 초청장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실은 기차가 달릴 레일을 놓는 시간이므로 결국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남는 시간이고, 가장 유익한 시간입니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심으로 주어진 현실과 상황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원, 『하늘의 권능이 임하는 부르짖는 기도1』, 부르짖지 않는 것은 교만이다
1.한국 교회의 열정과 부흥은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 비결은 바로 열정적인 부르짖는 기도이며 통성기도였습니다. 과거에 한국교회 많은 집회에는 감격이 있었고 회개가 있었으며 열정적인 통성기도와 부르짖음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부흥회에는 항상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그것은 천국의 축제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그러한 열기는 이제 슬픈 지난날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예배들은 조용하게 드려집니다. 많은 성도들이 졸거나 공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예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예배를 드릴 때나 예배를 마치고 난 후나 주님과 천국에 대한 간절하고 뜨거운 열망과 사모함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한국교회는 시들해지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통성기도를 할 줄 모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러한 기도를 한심스럽고 유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예전엔 새마을 노래의 가사에도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면서 새벽이 되면 교회에서 새벽종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세상의 악한 영들은 그 소리를 빼앗아 가버렸고 정확하게 새벽종 소리가 멈추면서부터 한국교회의 성장도 주춤거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부흥과 능력과 하늘의 역사는 부르짖는 기도에서 나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기도이며 영적인 권능의 세계가 열리는 열쇠가 되는 기도입니다.
2.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의 명령이며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수없이 많은 명령이 있으며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응답의 약속과 그 사례에 대한 수백 군데의 언급이 있습니다. (렘33:3, 렘29:12-13, 시22:44, 시31:22, 시81:7, 시86:7, 시50:15)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움과 풍성함의 근원이시므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때 그 모든 풍성함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그래서 영혼의 눈을 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사모합니다. 아직 영적으로 어리고 미숙한 이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많은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주님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고 찾으며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그 구하고 사모하는 방법이 곧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대부분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잠잠히 기도하라는 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부르짖으라는 내용에 비하면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의 명령이며 약속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명백한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심히 이상한 일입니다.
3.부르짖음에서 하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명목상으로만 주님을 섬기며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각종 죄의 습관에 사로잡히고 온갖 좋지 않은 것들에 중독이 되어 헤어나지 못하며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 분노 등에 시달리고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환경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들은 세상의 왕, 즉 지옥의 왕을 섬기며 그들의 지배를 받고 살게 되어 지옥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늘의 구원과 권능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4.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응답은 부르짖어서 오는 것이며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들으심과 응답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하며 처음부터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며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얼마나 부르짖어야 합니까? 부르짖어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이 되면 마음 속에서 ‘이제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르짖지 말아라. 지금은 나의 시간이다. 내가 역사 하리라. 이제는 부르짖지 말고 마음을 시인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려라’하는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그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상황이 좋아지면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하며 온갖 난리를 꾸미다가도, 조금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푸념하고 원망하며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들은 고민하고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그 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와 짐을 부르짖어서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항상 편안함을 느낍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걱정해도 끄떡없는 사람들이 바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온갖 염려와 근심에 잠겨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고민을 들어줄 상담자를 찾아다니기만 할 뿐 부르짖어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해결책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르짖어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서 스스로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6. 부르짖는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중요한 비밀이며 열쇠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갈망이 동반되지 않은 부르짖음은 그냥 비명소리일 뿐 아무런 유익이나 효과가 없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외적인 표현이고, 중요한 것은 그 내적인 마음의 상태이며 동기입니다. 많은 훈련과 정화를 통하여 그 영혼이 아름답게 되어야 깊은 곳에서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부르짖음이 나옵니다. 훈련되고 정화된 사람의 부르짖는 소리는 아주 듣기에 아름다우며 하늘의 영광이 임하며 권능과 생명이 충만하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부르짖음의 초기에는 소리가 요란하고 거칠며 소리를 통해 어두운 악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소리는 아주 듣기가 싫습니다.
7.부르짖는 기도는 강렬하고 뜨거운 기도입니다. 흔히 기도를 꼭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요란하게 해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해도 됩니다. 묵상기도는 깊은 기도이며 아름다운 기도이고 달콤한 기도이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빛의 기도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기도는 아닙니다. 활활 타오르려면 빛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이 필요합니다. 확 태워버리려면 불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의 기도는 아주 강렬하고 뜨거운 통성기도였습니다. 모두 뜨거운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성령은 불길같이 임합니다. 뜨겁게 부르짖을 때 감옥문이 열리고 땅이 흔들리며 성령의 능력이 임합니다.
8. 부르짖는 기도는 수준이 낮은 기도인가? 지적인 신자들이 대체로 부르짖는 기도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면서 무식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체험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아주 답답하고, 그들은 대표기도를 두려워합니다. 자신 있고 담대하고 강한 발성으로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기 전에 원고를 작성하거나 밤새 고민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의 대표기도는 강하고 충만하며 듣는 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합니다. 그것은 헌신의 영과 주님을 사모하는 영을 불러일으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기도이며 영광으로 가득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염원과 소망이 담긴 기도입니다. 그것은 세련되고 교양이 넘치는 기도는 아닐지라도 진실하며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9.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해주시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낮고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겸손한 기도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눈물로 드리는 애통하는 기도이며 티끌같이 낮아져서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얼굴이 찡그려지게 됩니다. 얼굴이 구겨지는 것입니다. 찌푸리고 상한 얼굴은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표식입니다.(렘5:3) 얼굴은 얼, 영혼이 담겨있는 굴, 즉 구멍이므로 그 사람의 마음과 심령의 상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얼굴을 찡그리며 슬피 울고 부르짖으며 낮은 자세로 구하는 자녀에게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부르짖지 않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징계를 경험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부르짖지 않고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는 것은 교만한 짓입니다.
10.하나님이 귀가 없으신가요? 꼭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만 하나님이 들으시는가요? 조용히 속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듣지 않으실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 들으시라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하며 하늘 문을 열어 하늘의 구원과 영광이 우리에게 내려오게 합니다. 분명하게 소리를 내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만 있을 뿐입니다. 그 두 부류의 하늘의 은총과 영적 깊이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11.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왜 소리를 내야 하는가? 아무리 계약서를 잘 작성해도 마지막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지 않으면 계약서의 효력이 없는 것처럼, 소리는 맨 마지막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는 영적인 것이, 이론이나 개념이 실제가 되는 과정입니다. 입술의 시인이 구원의 완성은 아니지만, 구원의 시작입니다. 영혼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통해서 육체를 훈련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은 생각을 통해서 움직이지만 육체는 소리를 통해서 움직입니다.
12.소리는 물질계에서 구원과 복을 가져옵니다. – 이 땅의 모든 보이는 복들은 배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배에서 생명인 사람이 잉태되고 나오며 배에서 모든 물질적인 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적인 복을 받기를 원하거나 영적인 은사들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배로 부르짖는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심장은 하늘과 관련이 있으며 배는 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배에 힘을 주고 부르짖으면 각종 은사나 물질이나 땅에 속한 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입을 열고 소리를 낼 때 우리는 물질적인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가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물질적인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3. 반드시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입술을 통해서 영적인 힘과 능력이 당신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이 원망을 하게 되면 원망의 영과 기운이 당신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고백하면 자녀들에게 더 강한 불순종의 영들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삶이 힘들다고 고백하면 당신의 삶에 더 많은 재앙의 역사들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 언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평소에 말하는 모든 말에 능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삶들은 과거에 다 당신이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하며 만들어낸 것입니다. 어두움의 고백을 하지 말며 사랑과 신뢰와 희망과 감사에 대한 고백과 시인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14.소리는 사람의 안에 들어오며 사람의 안에서 영적인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소리를 분별하지 않고 소리에 대해서 조심하며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입니다. 악한 소리는 악한 능력이 있으며 악한 영향을 끼치고 아름다운 소리는 아름다움의 능력이 있으며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15.여리고성은 소리로 인하여 무너졌습니다. 여리고성을 빙빙 돈 것은 여리고와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포위하고 결박하여 무력화 시키는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소리는 그 결박한 대상을 파괴하는 힘이었습니다. 빙빙 도는 것이 상대방을 묶는 것이라면,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 대상에게 폭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결박은 상대방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며, 소리는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강력하게 외치는 소리는 어떤 대상을 깨뜨리는데 결정적인 힘을 행사합니다.
16.악한 영들은 소리를 무서워합니다. 그들은 강력하게 찬양을 드리는 소리를 무서워하며 강력하게 소리 질러 기도하는 소리를 두려워합니다.
영들은 소리에 아주 민감합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도 소리에 민감한 것이 보통입니다. 평소에 분명하게 소리를 질러 기도하고 소리를 높여 찬양하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영적인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7.오늘날의 기독교는 너무 소리가 없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뿐입니다. 기껏 찬송을 부르거나 사도신경, 교독문을 형식적으로 할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성의 눈뜸과 개발에는 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을 벌릴 때 사람의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하늘 문이 열리며 영광스러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도소리는 참 좋은 것이고 찬양소리도 참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소리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자기 스스로 직접 소리를 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남의 기도소리를 백날 듣는 것보다도 자기가 한 마디 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영적 성장에 유익입니다.
18.생명이 있는 곳에는 항상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소리를 시끄러워 하고 아이들은 항상 시끄럽게 떠듭니다. 노인들이 떠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지치고 힘들어서 소리를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이 강하고 충만할수록 그 안에 많은 소리를 담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이 강하고 충만하면 설교를 잘 받아들이지만, 영이 약하고 병들게 되면 더 이상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죽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빨리 무덤 속에 들어가 조용히 쉬고 싶어합니다. 고요함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가운데 있을 때에만 생명입니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대부분의 고요함은 죽음입니다.
19.사람의 안에는 소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영혼이 강건하고 충만한 사람은 소리의 공간이 넓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새로 나온 찬양이나 경배곡에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이미 찬송가를 오래 부르면서 소리의 용량이 꽉 찼기 때문에 새 노래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려면 소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리의 용량이 적으면 사소한 소리에도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듭니다. 우리가 소리를 내소 소리를 지르면 소리를 내는 만큼 소리의 용량이 증가합니다.
20.십자가, 보혈, 은혜, 주님의 사랑, 성경의 말씀 등등… 아무리 많이 알아도 소리를 내어 표현하지 않으면 그러한 진리들은 삶에서 감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무덤덤 할 뿐입니다. 말하는 대신 듣기만 많이 하면 생각만 복잡해집니다. 언어로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고 연합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사람을 이끌고 인도하는 중요한 파워는 소리에서 나오며 사람들을 압도하고 도전을 주는 것도 소리의 힘입니다. 항상 어디에서나 무시를 당하고 공격을 받는 사람은 소리가 약하고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무예에는 기합이 있습니다. 그것은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고 정신을 통일시키며 강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분명하게 소리를 내어 강하고 힘차게 기도하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1.사역자들이 ‘잘 가르치는 사람’만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부르짖어서 하늘 문을 열고 하늘의 열쇠를 얻어 강력한 영권의 사람이 되어서 그가 인도하는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임해야 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예배를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소리는 그 사람의 영혼을 보여 줍니다.
소리는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보여 줍니다.
소리는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감과 충격을 주는 소리, 중심을 토하는 소리만이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게 됩니다.
사역자는 위로자이기도 하지만 더욱 리더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따르는 리더가 되려면 마음과 심령이 강해야 합니다.
22. 우리가 기도하고 훈련해야 하는 소리는 영감이 충만한 소리입니다. 우리는 성악가나 웅변가가 되려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통해서 하늘을 열고 하늘의 은총을 얻는 사람이 되고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르짖습니다. 심령이 맑은 사람은 소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찬양하고 노래하고 연주를 하고 춤을 추는 이들 가운데에도 목소리는 감미롭고 듣기 좋지만 그 속에서 음란함과 완악함과 각종 더러운 영들이 흘러 나와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잘 하는지 모르지만 심령은 마비되어 있습니다.
23.부르짖는 기도는 문제의 해결이나 기도응답 자체보다 영혼을 깨우고 각 사람의 영혼을 일으키는 측면과 더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먼저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그 영이 풀리면 환경은 자연히 열리게 됩니다. 물질 문제든, 건강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영이 강해져서 영적으로 회복이 되면 문제는 저절로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영혼이 열린 사람, 하늘을 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영계를 열며 하늘 문을 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는 기도는 영감의 시작이며 능력의 시작입니다. 소리가 은사와 능력의 비결이며 하늘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24.말씀은 문자가 아니고 소리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발성기도를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기도 보다 말씀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식하게 떠들고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씀 앞에서 묵상하고 있는 모습이 거룩하고 영적이며 성숙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오해가 있는데,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문자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정지되어 있는 문자가 아니고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란 연구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소리내어 외칠 때 그 말씀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사람 안에 스며들고, 그것을 외치고 선포할 때 말씀이 흘러 나와 능력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마음의 곳간에 조용히 모셔두지 말고 그것을 꺼내어 사용해야 합니다.
25. 통성기도는 영감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거나 통성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통성 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같이 하자고 하면 기절할 지경이 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머리에 생각을 한 다음에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하게 되는데, 통성 기도는 생각하기 전에 그냥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통성 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겁이 나지요.
철저하게 논리적인 백인들이나, 백인들의 체재에서 공부를 한 목회자들도 생각 없이 터져 나오는 통성 기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통성 기도는 논리나 이성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소리를 밀어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을 하나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입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입을 벌리고 입에서 소리나 나오는 대로 소리를 내면 됩니다. 거기에는 정해진 각본도, 리허설도 없습니다. 그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통성 기도에 익숙해지면 기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26.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절제, 인내, 고난, 고행, 침묵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웃고 떠들고 즐겁게 사는 것은 세상적이며 경박한 삶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충분하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지 않고 고요하게 예배를 드리고 고요한 침묵으로 기도하는 교회는 대체로 우울하고 어둡고 수군수군하고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신앙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며 예배 중에 요란하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는 대체로 밝고 명랑하며 웃고 즐거워합니다. 문제가 있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문제도 맥을 못 춥니다. 침묵기도와 묵상에 익숙한 사람은 어두워지기 쉽습니다. 그것은 경건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눌린 것입니다. 우울하고 괴로운 것은 충분하게 소리를 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다 조용하고 고요한데, 기독교는 왜 이렇게 요란하냐는 소리에 기죽지 마십시오. 살아있다면 요란한 것이 정상이고, 죽어 있다면 고요한 것이 정상입니다.
27.. 변비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병도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약함도 그 영혼의 특성입니다. 변비가 심한 사람들의 특징은 생각이 많고 상처가 많지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안에 쌓이는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변비가 걸리면 몸에도 변비가 걸립니다.
변비는 먹은 것을 잘 내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잘 받지만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그러한 영혼과 마음의 특성이 몸에 변비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생각을 합니다. 즉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입으로 나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 속에 무엇을 담아두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절 때 변비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반대로 자주 설사를 합니다.
28. 발성이 부족한 묵상은 어두운 의식을 가져온다 – 발성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묵상기도와 묵상에 익숙해진 이들은 점점 더 영혼이 섬세해지며 약해집니다. 영적으로 활력이 부족해지고 침체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약해지고 무디어진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부르짖는 새벽기도가 새벽 큐티로 바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성과 묵상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느냐가 그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발성이 부족하면 생각과 성향이 어둡고 우울해집니다. 항상 힘들다, 어렵다고 말하며 징징거리는 이들이 참으로 많은데,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즐겁게 사는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9.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는 나쁜 기운이 몸 안으로, 영혼 안으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힘이 약하고 방어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은 외부의 나쁜 에너지가 쉽게 침투하게 되어 상처받는 일이 많아집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상처나 고통, 에너지는 ‘소리’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악한 생각들, 근심, 염려, 미움과 같은 생각들도 사람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더럽히는 근원이며 통로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소리는 그것들보다 더 강렬하며 직접적으로 사람을 더럽히고 어둡게 하며 상처와 충격을 주며 좀 더 강력하게 사람을 파괴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나 소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 식물들, 심지어 물에게까지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사람의 입 기운에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고백과 사랑의 고백과 믿음의 시인을 통해 천사들의 도움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운이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또한 비난과 잔소리와 공격적인 말과 원망이 말과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그 순간 입에서는 독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30.기도를 배우기 시작할 때 먼저 입으로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어느 정도의 소리를 내어서 하다보면 기도의 영이 임하고 기도에 주님의 은총과 감동이 임하면 좀 더 강력하고 간절한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발성기도는 몸을 사용하여 드리는 기도이고, 묵상기도나 침묵기도는 마음과 영을 사용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전투가 있습니다. 기도를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소리를 통해서 악한 세력을 파괴한 후에 주님의 깊으신 임재로 나아가야 기도의 깊은 맛과 기쁨과 행복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31.부르짖는 기도는 생기가 넘치는 사람을 만든다.-소리를 내는 것은 영혼의 운동입니다. 영혼을 운동시키지 않고 누워있게만 하면 당연히 영혼이 서서히 약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와 싸울 수 없고, 사소한 일로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매사에 의욕을 잃고 소극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하고 졸리고 한숨을 쉬면서 매사에 일을 미루고 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활기가 부족하여 사람을 리드하지 못하고 항상 끌려 다니게 됩니다. 영적 활기가 부족한 사람은 교회의 일이나 봉사하는 일도 힘이 듭니다. 조용한 교회에서는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란한 교회는 일꾼들로 넘칩니다. 부르짖어 발성으로 기도하고 소리를 내어 당신의 영혼을 운동시키십시오.
32.조용한 예배, 조용한 교회에는 활력이 없다. – 교회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모두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원가 유쾌하고 설레기도 하고 흥분되고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청년들은 장식을 하고, 성가대는 칸타타를 준비하고… 찬양을 하고, 춤을 추고, 율동연습을 하고, 그러다가 틀리면 까르르 웃고… 거기에는 소리가 있고 아우성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행복한 흥겨움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아이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야 사람 사는 것 같지요? 소리가 있고 외침이 있는 곳에는 뜨겁고 강렬한 영의 흐름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 달콤한 분위기에서 떠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게 됩니다. 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적막은 사람을 쫓아냅니다. 귀신들은 소리가 없고 빛이 없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33.소리에는 치유가 있다 – 조용한 교회에는 아픈 사람들도 많고 문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통성으로 기도하며 활발하게 소리를 표현하는 교회는 육신적인 강건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리의 표현, 소리의 흐름에 치유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제한하는 교회가 있고 주님을 표현하는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영적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마음이 선하고 순수하기만 한 목회자와 사모가 사역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역자들은 성도들로 인하여, 사람들로 인하여 목회에 회의가 오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배후에 있는 악령들에게 폭격을 당한 것입니다. 강건하고 힘있는 목회를 하려면 배후의 악령들을 깨부수는 강력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34 소리의 힘은 영혼을 제압한다 – 소리가 강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인관계가 좋으며 친구들도 많고 사이도 원만한 편입니다. 소리가 약한 사람은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가 약하고 심령이 약한 사람은 남에게 잘해주면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남에게 무시를 당하고 상처를 받게 되어 마음 문을 닫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약함은 사악함을 끌어오는 힘이 있어서 악성을 일으킵니다. 강함이 결여된 선이란 비참한 것이며 악과 같은 것입니다. 심령이 강건한 사람이 되면 그 강함이 자동적으로 상대방 안에 있는 악을 제압함으로 상대방의 악과 강퍅함은 결박되고 제압되어 상대방의 안에 숨겨져 있던 선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35. 예수님은 날마다 제자들을 가르치셨지만 거기에는 교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오늘 1시부터 2시까지 사도신경 강해다… 그리고 2시부터는 구원론 강의다…” 이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같이 먹고 주무시고 대화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자교육이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교재이고 그분의 삶, 그분의 임재와 생명 자체가 그들에게 교육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입니다. 주님 자신을 먹고 마시고 경험하고 주님의 실상을 알아가는 것…
사람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적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무기력하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무시를 당하는 사람이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6. 발성이 결여된 깨달음에는 영적인 실제가 없다 – 어떤 이는 기도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기도에는 인간적인 소원이나 인간적인 열정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말씀은 순수한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둘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우위냐 하는 질문은 어린아이들이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기도를 먼저 하고 말씀을 보는 것이 순서라면 순서입니다. 기도로 심령을 열어 놓고 말씀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말씀으로만 사람을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기도로 심령이 열리지 않으면 그 말씀은 심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뇌로 가서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심령’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지 아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37. 발성이 충만할 때 응답이 선명하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머리가 발달하고 영이 발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듣기가 힘듭니다. 뇌의 특징은 보기에 따라서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지만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렷하고 선명한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고 의심을 먼저 합니다.
단순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듣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모두에게 똑같이 들려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38. 발성의 기초 위에서 다른 것들이 풍성함의 도구가 된다 – 씨름에 대한 동영상이나 비디오를 많이 보았어도 실제로 삿바를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막상 씨름을 해보면 자신이 본 것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수영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강의를 듣고 이론적으로 잘 알더라도 실제로는 물 속에 가라앉고 맙니다. 보고 듣고 아는 것과 실제로 해 보아서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와 발성의 훈련은 모든 기도의 기초입니다. 발성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무슨 기도의 비법을 알려 줘도 한 두 번 하다가 포기하고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39.부흥이 있는 곳에 소리가 있다. – 강렬한 부흥의 역사,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집회를 사모하며 그러한 집회를 인도하기 원하는 사역자들은 그러한 소리를 훈련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부르짖고 외치는 것을 기도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그저 편안하게 조용조용히 가르치고 전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그러한 부흥의 주역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건축을 한 해에는 다른 해보다 몇 배나 성도들의 숫자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부흥은 아닙니다. 교회 시설이 좋으면 사람들은 좀 더 많이 올 것입니다. 주차하기가 편하고, 가정 세미나, 취미생활을 위한 세련된 좋은 강좌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모이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부흥이 아닙니다. 그렇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가지고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부흥에는 심령의 폭발이 있습니다. 생명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충만하게 나타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사람들의 영혼에 임하며 심령에서 생수가 쏟아지고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눈물의 탄원이 그치지 않습니다.
밤이 새도록 찬송을 하고 또 찬송을 해도 그 심령의 달콤한 기쁨은 사라지지 않아 더욱 더욱 기도하고 찬송을 드리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주님을 사모하는 갈망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싶은 열망이 미칠 듯이 일어납니다. 더욱 더 기도하고 싶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난리가 납니다. 사람의 숫자와 상관없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있냐고요? …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40. 악한 영들은 소리를 빼앗아간다. – 소리는 능력의 비결이며 풍성함의 비결이며 권능의 비결인데 왜 교회는 소리를 잃어버렸을까요? 왜 하늘 문을 여는 그 중요한 열쇠를 잃어버렸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귀중한 보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물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도둑이 와서 훔쳐간 것입니다. 그 보물의 가치와 위력을 알고 있는 어떤 놈이 훔쳐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마을 노래’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고 시작합니다. 그 새벽종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점점 기도하지 않기 시작했고 성도들이 기도를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종소리를 누가 빼앗아갔습니까? 새벽 종소리가 울리지 않음으로 세상이 더 나아졌습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새벽종소리는 종소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소리였습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새벽종소리를 찾아와야 합니다.
41. 기가 죽었다는 말은 ‘소리가 죽어 있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기가 죽은 사람은 소리를 잘 내지 못합니다. 무엇을 물어보아도 주저하고 망설이며 모기소리 만한 소리로 잘 들리지 않게 대답합니다. 악한 영들은 건강하지 못한 가정의 분위기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기를 죽이며 소리를 빼앗아 갑니다.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것은 소리를 빼앗는 것이며 소리를 죽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평생을 자신감이 없이 소심하게 눌리고 고민하고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도 소리의 생명적인 의미를 알고 소리를 토하고 소리 지르며 소리를 회복하게 되면 그의 영도, 마음도, 성격도, 환경도 다 변화되어 행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2. 뜨겁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소리를 지를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교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며 “주여!” 3창을 시도해 보십시오.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유롭고 풍성하게, 원하는 만큼 소리를 내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롭고 강하고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르짖는 기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영이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나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피를 토하듯이 간절하게 강력하게 설교하는 것도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43 영이 맑고 예민하며 깨어있는 사람은 항상 쉽게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수 있으며 그 맑은 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깨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소리, 조금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분노에 찬 소리나, 남을 험담하거나 원망하는 소리, TV소리들을 들으면 그는 속이 고통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소리가 들어오면 가슴이 답답해지므로 다시 부르짖어 그렇게 들어온 악한 소리의 기운을 토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감각이 둔하고 마비되어 있으며 깨어있지 않은 이들은 언제 그의 안에 세상의 소리, 악한 소리가 들어왔는지조차 모릅니다.
44. 부르짖는 기도는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발전해간다 -부르짖는 기도는 무조건 악으로 깡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원리에 의해서 차분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며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르짖음의 결과로 영적인 탈진이 올 수도 있고 온 몸이 쑤시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 부르짖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한 순간의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1.2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기도의 초보는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그저 소란스럽고 거칠고 사납고 육성적인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미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초보를 벗어나 오랜 세월을 거쳐 훈련된 부르짖는 기도는 거룩함과 영광으로 가득 찬 기도입니다.
45.발성이 된 사람들은 상상하는 기도를 해도 그 상상이 그에게 실제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묵상으로 말씀을 먹어도 그 말씀이 그들 안에서 생생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발성은 이처럼 모든 은혜의 도구가 역사할 수 있는 기초인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
제목 : 부르짖는 기도
성경 : 사도행전 4:23 – 31
인생 길 65년을 한국과 미국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과 같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해오는 주일 예배와 각종 기도모임과 전도와 선교와 성경공부와 성도의 교제 등,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멈췄습니다.
“4명 이상이 모이는 예배”를 뉴저지 버겐카운티는 금지한다고 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3월 17일(화) 오후11시 부터 이 명령은 실행된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얼어 붙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세계적 유행병(pandemic)이 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런 두려움과 위기의 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위기의 때에 사도들과 성도들이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서 기도에 관한 주의 뜻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아 기도해야 합니다.
24절 –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시요.”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살아계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26절 –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개인이나 가정이 성경책을 펴서 함께 읽고 연구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현재 당하고 있는 온갖 문제를 내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29절 –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오늘 우리가 지금 겪는 이 큰 코로나 바이러스의 문제 뿐 만 아니라, 각자의 온갖 문제들을 다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넷째, 응답될 줄로 확신하고 강한 믿음과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31절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성경 전체에는 약 650개 정도의 기도에 관한 사건과 인물과 말씀이 나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수많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도의 확신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엠 바운즈(E. M. Bounds) 는 1835-1913년 에 미국에서 살았던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914년에 출판된 그의 책이 “설교자와 기도”입니다. 원래 영어 원본은 “Preacher and Prayer” 인데 한국말로는 “설교의 능력은 기도에 있다” 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하고 따라가야 할 기도의 지침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2. 기도 없는 설교가 영혼을 죽인다.
3. 목회의 성공은 기도에 있다.
4. 골방의 능력이 강단의 능력이다.
5. 아침 일찍 하나님을 찾아라.
6.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놓아라.
7. 기도의 후원을 요청하라.
8. 짧은 기도는 경건의 해악이다.
9. 기도하는 성도를 길러내라.
기도제목 :
1. 이번 위기의 때를 영적인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소서!
2. 기도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심령을 강건하게 해주는 부르짖는 기도” (시편 3편)
2018년 11월 7일 수요예배
✦ 치유기도 17 ✦
“심령을 강건하게 해주는 부르짖는 기도”
(시편 3편 1~8절)
미국의 유명한 찬양 그룹 중에 ‘셀라(Selah)’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셀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읽지 않아도 됩니다. ‘아멘’과 비슷한 뜻도 있고, 시편은 원래 노래였기 때문에 중간에 쉬어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읽을 때는 안 읽어도 되겠습니다.
1. 부르짖는 기도로 인한 인생 역전
이 시편 3편은 다윗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치기 위해 진군할 때 도피생활을 하는 중에 지은 시입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많은 대적들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 앞에 있음을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아들에 의해서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 위기 속에 도망가며 시를 지어 하나님께 기도한 그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이 시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1-2절)
우리도 사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 이 시편을 읽으면 좋습니다. 특히 기도문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내용이 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쫓기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다면 아주 비참한 상황인데, 자기 아들이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입니까? 이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다윗은 밤새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3-4절)
여기 보면 다윗이 굉장히 부르짖는 기도를 드린 후에 마침내 자기 마음속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4절 끝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위기상황에서 계속 괴롭고 슬프다고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하고 계시다는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믿음의 고백을 선포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5-6절)
얼마나 놀랍습니까? 완전히 소망을 가지고서 ‘정말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신다.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인데 소망을 가지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간구로 이 시편을 마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7-8절)
다윗이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영적 파워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채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리게 되고, 사소한 일에도 근심하게 되며,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작은 문제가 굉장히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은 깨어나게 되며, 두려움과 죄와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렇습니다. 상황은 변한 게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며 나아가니까 이렇게 담대히 믿음을 선포하며 담대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소리를 높여 열정적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부르짖다’ 또는 ‘소리 내어 기도하다’라는 뜻의 단어들이 나오는 구절 뒤에는 대부분 ‘응답하겠다’라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마치 세트처럼 따라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히브리어로 ‘부르짖다’가 ‘쯔아흐’인데 ‘으악’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살려달라고 하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주겠다고 하시는 ‘샤마’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7-9)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보내셔서 징계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고(‘쯔아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셔서(‘샤마’) 사사를 보내어 구해주십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짓고,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민족을 보내어 징계하시고, 그때 다시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또 들으시고 구해주십니다. 사사기에서 그런 과정이 7번 반복됩니다. 아무리 형편없이 살다가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쯔아흐’ 하면 하나님은 ‘샤마’ 해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이 말씀도 똑같습니다. ‘쯔아흐’ 하면 ‘샤마’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똑같은 말씀인데 여기에는 목적도 나와 있습니다. 왜 부르짖으면 들어주십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르짖는 순간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와 마음의 짐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문제와 어려운 상황이 가져다주는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하더라도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게 아닙니다. 상황은 똑같은데 똑같은 상황에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괴로워하며 근심합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하고 원망하며 자신의 문제와 힘든 상황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소리에 담겨 있는 영적 의미
그런데 부르짖는 기도에도 수준과 차원이 있습니다. 간혹 새벽기도회나 특별기도회에서 기도할 때 아주 거칠고 요란하여 거부감을 주는 기도 소리가 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섬뜩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배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크게 기도하는 것은 괜찮은데,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와서 듣기가 거북하고 이상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고 내면이 정결한 사람이 부르짖는 기도 소리는 아무리 큰 소리라고 할지라도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똑같이 크게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거북함과 불편함을 주고, 어떤 사람은 똑같이 크게 기도해도 굉장히 은혜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도 가운데 하늘의 영광이 임하며 능력과 생명력이 충만하게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안에 있는 게 굉장히 어두운 것들인데 나오게 되면 불편함과 거북함을 주고,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데 나오게 되면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사실 누구나 처음부터 온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비록 옆에서 거북한 기도소리가 들려온다면 너무 싫어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반면 내 목소리가 거칠고 요란하게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 같다면 절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럴 때는 침묵기도(숨기도)나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음소리도 다 들으시는데 왜 굳이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침묵기도도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귀가 어두우셔서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으로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며 하늘 문을 열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과 복을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우리 영혼에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매개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한 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청아하고 윤택하며, 영적 파워가 있는 사람은 목소리가 힘차고 무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더불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설교하거나 찬양을 인도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력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설교자인 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평소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고, 우리 찬양 팀과 또 성가대도 평소에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나 사역을 이끄는 리더도 역시 평소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정결하게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역은 몰라도 성가대 사역과 교사 사역은 반드시 활동교인이 된 다음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활동교인이 되는 게 무슨 엄청나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람의 믿음을 확인한 다음에 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가대도 별달리 할 게 없으니까 한다는 식이 아니라, 성가대원으로서 평소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결함으로 가득 차도록 평소에 기도와 말씀의 생활을 해야 하고,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이 정말 은혜롭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 팀도 마찬가지고, 설교자도 마찬가지고, 교사도 마찬가지고, 목자 목녀나 위원장이나 당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일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정결함으로 충만하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소리를 내거나 특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자율신경이 활성화되는 세로토닌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세로토닌은 뇌의 신경 전달 호르몬인데,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소위 ‘공부 호르몬’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또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세로토인은 비만과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감사하며 살 때 우리 뇌 속에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충동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며 두뇌 활동이 활발해져서, 위급한 상황이 와도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며 사는 것이 우리 건강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감사하는 것이 그저 영적 차원이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세로토닌이 절대 부족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 감정 조절을 못하고 참지 못하며, 충동적으로 또는 거칠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방송활동과 저서로 유명해진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 역시 “신경증적 성향은 세로토닌 결핍과 관련이 있으며, 세로토닌 결핍 시 공격성이 증가한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는 사람, 화를 잘내는 사람의 삶을 잘 보십시오. 분명히 감사함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사납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으니까 의학적으로도 세로토닌이 나오지 않아서 공격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로토닌을 많이 나오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바로 감사의 습관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장 모임 때 감사의 제목을 나누는 것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목장에 참여할 때 미리 무엇을 감사할지 생각을 좀 하고 와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게 너무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물, 나무, 꽃, 하늘, 바람, 공기, 자동차, 집 등, 매일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통해 주님께 감사하며 사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오늘은 나뭇잎을 가지고 하루 종일 감사해보겠다.’라고 하며 시도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떨어져 있는 낙엽을 봐도 감사하고, 달려 있는 나뭇잎을 봐도 감사하고, 지나가다 나무만 보아도 감사한 겁니다. 의식적으로 감사하는 연습을 해보면 이상하게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큰 소리로 찬양하거나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도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해집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이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통찰력과 묵상의 깊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영적인 면이 약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약하면 쉽게 공격받고 사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성은 영성으로 전달되어야 듣는 사람의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지적이고 섬세하며 성품도 좋은 목회자들 가운데 자주 아픈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영적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돌보면서 과로에 지친 사역자의 마음속으로 안 좋은 기운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채 계속 안으로 그것이 쌓이다 보면 결국 육신의 병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심령이 약하면 남들에게 휘둘리게 되지만, 심령이 강건하면 상대방의 어떤 악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든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악한 기운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오든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의 악과 강퍅함은 결박이 되고, 상대방 안에 숨겨져 있던 선과 부드러움이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면 거기서 끝내거나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심령이 강하게 되면 그런 안 좋은 것들을 제압할 수 있고 그 사람 안에 숨겨져 있던 선하고 부드러운 것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이 영적으로 약해서 그런 것인데, 그것을 모른 채 그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상대방만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원리를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제 집에서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또 직장에서 동료들이나 사업체에서 손님들이나 일하는 사람들과 신경전도 그만하고, 교회에 나와 부르짖는 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 쌓여 있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권능을 내려 받아 강건해지면, 나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고 일터에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까지 온 이유는 영적으로 볼 때 교회에서 기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이 기도하지를 않아서 영적으로 약해지니까 사회에 악한 영들이 날뛰어서 사악함과 잔인함이 기승을 부려도 영적으로 제압할 힘이 없어서 사회와 나라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여 강건해지면 가정 내의 악이 무너집니다. 교회(즉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이 지역사회가 깨끗해집니다. 교회들이 연합하여 마음을 합쳐서 기도하면 나라가 거룩해지고 열방이 변화됩니다. 이것이 기도의 원리이며,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어도 악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다른 점은, 아무리 악한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 부르짖는 기도는 영적 전쟁에 효과적입니다. 소리의 영적 원리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수 6:16, 20)
소리에 의해서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것에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다가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소리만 질렀을 뿐입니다. 이것은 부르짖는 기도소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뭐 굳이 소리를 내서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속으로 기도하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우리의 속을 모릅니다. 소리가 나야만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가 영적 전쟁에서 중요합니다.
사탄은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시고 마음의 중심을 다 보시지만, 사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축사를 하시는 분들도 그 앞에서 서로 메모로 주고받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대화할 때 귀신이 듣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르짖는 기도로 나아갈 때에 귀신을 대적하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침묵기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내적인 성찰을 하는 데 효과적인 반면, 부르짖는 기도처럼 소리를 내어 하는 발성기도는 영혼을 강건하게 하며 영적 전쟁에 효과적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영적인 세계로 쏘아 올리는 로켓과도 같아서, 문제와 고난으로 근심과 염려 가운데 있을 때, 그리고 주님과의 교제와 기도가 막혀 있을 때, 이 막힌 것을 무너뜨리고 파괴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의 보좌까지 확 도달하게 해줍니다.
3. 부르짖는 기도로 인한 치유
우리는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통해 상처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고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근본적으로 다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습니까?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염려와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쌓아 둔 채 살아갑니다. 억울해도 말을 못하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면서 점점 속이 썩어가니,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처럼 속에서 썩어가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다른 말로 하면 ‘토설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 가운데 스트레스와 상처와 고통과 근심과 염려를 통해서 들어온 나쁜 기운들을 토해냄으로써, 억눌려 있는 영혼과 병든 몸을 살리는 치유기도인 것입니다.
한국은 ‘한’의 문화가 있습니다. 한의 사전적 의미는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응어리짐’인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기에 한을 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마 18:21-22, 새)
개역성경에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복수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독을 조금씩 마시며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적은 양의 독이라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옛날에 왕들을 독살할 때 거의 표시가 안 나게 매일 조금씩 독을 넣어서 죽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의 문화에서는 전통민요 <아리랑>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저주입니다. 이런 저주가 담긴 응어리진 마음을 풀지 않습니다. 한을 잘 풀지 않는 민족입니다. 개인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 한과 같은 마음의 응어리와 부정적인 기운들이 마음속에 쌓일 때 주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그것들이 방해합니다.
그것들을 방치하면 마음의 쓴 뿌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우울증, 치매, 공황장애, 암, 심장 계통의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사탄의 견고한 진이 내 안에 형성되면 영적으로도 계속 괴롭힘을 당하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부정적이고 어두운 기운들을 토설해서 내보내고 용서를 습관화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마음의 쓴 뿌리와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4.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
소리를 내서 기도할 때도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낮추면 자연스럽게 배에서 나는 기도소리가 되고, 애절한 마음을 담아서 가슴에 힘을 주어 위를 향해 기도하면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악의 원리와도 비슷한데, 배를 사용해서 기도하면 영혼의 강건함과 담대함이 생겨 영적 전쟁에 효과적이게 해줍니다. 뭔가 파워가 필요하다면 묵직하게 배를 사용하여 밑으로 기도해보십시오. 그런데 가슴을 사용하여 기도하면 영이 맑아지고 섬세하고 부드러워져서 내적인 정화작용을 일으킵니다.
특히 마음이 유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 낮은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되면 정서가 강건해져서 두려움이 사라지며, 심각하고 강퍅하던 성격이 여유롭고 낙관적인 성품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격이 강한 사람들, 다혈질이나 담즙질의 사람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강퍅해지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위쪽을 향해 가슴으로 소리를 내며 기도하면 좋습니다.
악한 영들은 경건한 소리를 싫어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우렁찬 찬양소리와 부르짖는 기도와 선포의 외침을 악한 영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바로 그런 찬양과 기도를 통해 악한 영들을 무너뜨리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큰 소리로 기도할 때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크게 불러야 하고 기도를 소리 내어 해야 합니다.
찬양 시간에 찬양하지 않고 기도 시간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영적으로 강건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찬양할 때 가만히 있는 사람, 기도할 때 가만히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그만큼 취약해지며 악한 영의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길 능력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기도해야 하는 시간에 큰소리로 찬양하지 않는 사람,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영적으로 약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당연히 침묵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속삭임을 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전쟁을 할 때는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주도했던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는 한국교회의 위대한 유산이며 한국교회에 부흥과 축복을 가져다준 일등공신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나 새벽기도의 열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는 데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조용한 교회들은 유럽에 가면 많습니다. 기도 소리가 사라지니까 교회의 영향력도 줄어들었고, 지금 유명한 교회 건물들이 관광 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유지가 안 되니까 팔아서 호텔이 되기도 하고, 겉은 교회 같이 생겼는데 속은 클럽인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교도의 예배당으로 팔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이 임하시면 마음이 뜨거워져서 조용히 있기가 어렵습니다.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초대교회의 가장 큰 외적 특징은 소리였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승천 후에 모여서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곳은 더 이상 조용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도 휙휙 하며 바람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소리와 불로 보이게 임하셨고, 그곳의 성도들도 큰소리로 방언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물론 언어방언이었습니다. 소리를 내어 언어방언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것을 듣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는 곳은 찬양과 기도와 기적과 전도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조금 시끄럽기는 해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이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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