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15-23절 | [Live]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에베소서 1:15-23)_주일 2부 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01206 143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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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목) \”에베소서 1: 15-23\” /작성: 박창용

오늘 본문도 1장 1-14절에 이어 한 문장으로 된 ‘바울의 긴 기도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1장 서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두를 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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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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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15절-23절 큐티: 지혜와 계시의 영 – 네이버 블로그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큐티: 지혜와 계시의 영 · 1.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17절) · 2. 제 마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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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8/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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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15-23절,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힘쓰십시오. 지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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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karl21.tistory.com

Date Published: 10/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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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밝혀 알게 하소서(엡1:15-23) – 유평교회

본문: 에베소서 1장 15-23절. 설교자: 최종혁. 에베소서 1장은 인사말을 제외하면 두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바울은 3-14절에서는 하나님을 찬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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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6/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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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15~23절 – 에스라바이블

– 우리의 모든 것은 교회중심이어야 하고 그것이 가장 큰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지금 세대는 이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직장, 가족, 자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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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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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5-23 (2016.11.16. 아침묵상) – 밴쿠버 새벽교회

말씀> 에베소서 1장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 (19-23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성도들이 알기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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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voiceofdawn.tistory.com

Date Published: 8/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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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기도 에베소서1:15-23 – 다음블로그

바울의 기도 에베소서1:15-23 · 1. 부르심의 소망.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됨. 하나님이 우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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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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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에베소서 성경공부(1장15절-23절)

20171030 에베소서 성경공부(1장15절-23절) ; 단락. 1:15~16 에베소 성도들의 사랑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울. 1:17~18 하나님의 약속하신 풍성함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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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wshju.tistory.com

Date Published: 10/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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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장 15-23절 “그의 능력” – 여백 여정

주님, 또한 연약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어 당신의 능력 안에 품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의 거짓된 힘에 속지 않게 하시고 자신의 한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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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ektos0921.blogspot.com

Date Published: 9/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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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5-23 KRV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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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5/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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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에베소서 1:15-23)_주일 2부 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01206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베소서 1장 15-23절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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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0. 12.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1Bf4eElqR8

2016/02/11(목) \”에베소서 1: 15-23\” /작성: 박창용

본문: 에베소서 1:15-23

찬송가: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늘 본문도 1장 1-14절에 이어 한 문장으로 된 ‘바울의 긴 기도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1장 서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두를 자녀삼아 주시고 성령으로 인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살아가게 해 주심에 대한 감사를 찬송시로 고백한 이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두 가지 주제를 갖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로, 사도바울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소유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기를 간구했습니다. ‘지혜'(소피아)는 깨달음을 뜻하고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뜻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계시의 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분으로 소개했고,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했습니다. (요16:7-15; 고전2:10-11)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중보기도한 것입니다.

이어서 18-19절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히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마음의 눈이 밝히사’에서 ‘밝히사’로 변역된 헬라어 ‘페포티스메누스’는 현재완료시제로 회심사건 이후 계속적인 성령의 조명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3가지를 깨닫기를 간구했습니다.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은 증인 공동체인 교회의 성도 한명 한명이 흠 없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5:26-7)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만물을 통일’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참여하고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소망을 의미합니다.

2)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 입니다. ‘기업'(클레로노미아)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업이었듯이, 이제 증인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기업인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기업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지혜와 계시의 영의 조명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눈이 밝혀진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우주만물 가운데 풍성해짐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무엇인가 입니다. 사실 19절에 보면 ‘그의 힘’, ‘역사하심’, ‘능력의 지극히 크심’ 다른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은 구체적으로 20-21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1장 서두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과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상속에 관해 강조했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승리하신 것과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우주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신 권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교회의 사명을 분명히 알도록 간구했습니다. 22절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입니다. 먼저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했다’라는 표현을 통해 만물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했습니다. 누가 주인인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어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그를 만물 위에 계신 머리(권위/능력)로 교회에 주셨습니다’ 입니다. 즉, ‘교회의’가 아닌 ‘교회에게'(테 에클레시아)가 맞는 번역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머리가 뜻하는 ‘권위’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23a절을 통해 설명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몸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의 유기적 연합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물 안에서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를 어떻게 이해해야 겠습니까? 충만케 하시는 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우주만물의 통치자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족함이 없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충만’으로 번역된 헬라어 ‘플레루'(pleroo)는 ‘채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주만물의 통치자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부족함이 없이 채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령의 조명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혀지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조명아래 읽어 내려갈 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 안에 임해 계시는 성령님께서 통해 만나야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 삶에 세밀하게 찾아와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않으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충만케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우주만물의 통치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의 몸인 연합체로 함께 해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참 부족해 보이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건물도, 주차장도 또 성도님들도 부족해 보이나 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인데 왜 부족하다고들 할까요? 혹시 교회의 머리가 바뀌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몸 된 우리 스스로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 였기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리하여 우주만물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시며 우리는 그 주님의 몸이라는 성경말씀을 바르게 알고 적용하며 살아가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동북아시아에 긴장관계가 이어지고 있고

시리아 난민은 이 추운 겨울을 떠돌며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회의 절기 사순절을 보내며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도 우주만물의 통치자 되시며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비록 현실은 불안하고 참혹하지만 여전히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음을 드러내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케 하심을 경험케 하옵소서. 이를 위해 중보하며 쓰임 받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밝혀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2. 이를 통해 나 자신 그리고 공동체(교회, 가정 등)에 허락하신 소명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사속에 나 자신이 쓰임 받고 있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4.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만물의 통치자로서 여전히 교회를 통해 이 세상 속에서 충만케(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하시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에 마음과 시선을 고정해야 겠는가?

(작성자: 박창용)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큐티: 지혜와 계시의 영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본문

바울의 기도

(엡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을 나도 듣고

(엡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 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히2:8 , 계19:16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장 15절-23절 말씀묵상

강해설교: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깨달아 알게된 하늘의 비밀을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도 알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 말씀은 아마 바울이 이미 예견했던 에베소 교회의 어려움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인 듯 하다.

–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9절~31절에서 바울이 떠난 에베소 교회에 거짓교사들을 통해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을 예언하며 염려했었다.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정해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눈물로 당부했던 상황이, 에베소서를 보낼 즈음엔 어떤 방식으로 에베소 교회를 어려움에 빠뜨렸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고, 복음을 오해하게 하는 무리들에 의해 오랜 시간 혼란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던 중 난관에 부딪친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 디모데전서만 읽어보아도,

신화, 족보, 금욕주의 같은 것들이 복음으로 둔갑하여 에베소 교인들을 속이고 그들이 지도자 디모데와 바울까지도 불신하게 했었다.

이런 성도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었다.

구원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진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결단코 깨달아 알 수 없다.

성령께서만 이것을 알게 하실 수 있다.

성령님만이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의 기업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보게될 때 상대적인 세상가치와 기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고, 그것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님의 기업의 풍성함을 보는 자는 유한한 생명을 위한 바둥거림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을 귀하게 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과 자기를 의지하여 살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힘과 권세에 굴복하게 하지 않는 것은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바울은 이토록 간절히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셔서 날마다 새 생명을 공급해 주신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지체인 서로가 서로의 유익을 위해 사랑하고 헌신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고 누리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의 온전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이 세상의 기관은 교회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이 됨으로, 파괴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회복하고 본래 목적하신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것, 이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적용 & 기도제목

1.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충만히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17절)

2. 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18절)

3.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19절)

에베소서 1장 15-23절,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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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락은 사도 바울의 감사와 기도를 담고 있는 단락입니다. 개역한글판에서는 본 단락을 네 문장(15-16절, 17-19절, 20-22절, 23절)으로 나누어 번역하였으나, 앞 단락과 마찬가지로 본 단락도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23절까지의 내용들 가운데 특별히 15-19절까지의 내용만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여기서 볼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의 감사이고(15-16절), 둘째는 사도 바울의 기도(17-19절)입니다.

①사도 바울의 감사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세운 사도는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지속해서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전국에서 유명한 절에 가본 적이 있다면 바울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산의 해동용궁사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바위절벽이 있는 해안가, 그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이 참 이색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이토록 우상숭배가 심각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데군데마다 동상과 석상이 서 있는데, 그 앞에는 헌금함이 아주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헌금함이 있다는 것은 헌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배치가 되어 있겠지요. 깊은 향 냄새로 머리가 어지럽고, 나무관세음보살이란 염불이 계속 울려퍼지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과 복을 빌며 헌금을 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그것도 아주 경건하게! 대한민국의 종교성의 한 부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득 그 분위기는 바울의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면서 느낀 분위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절 앞에는 포장마차가 즐비해 있고 음식과 음료를 팔고 있는 것이 마치 에베소나 당시 바울이 사역했던 전도여행지의 분위기가 아닐까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런 불신과 우상숭배가 가득한 에베소 가운데 바울이 사역하였고 그 복음에 반응했던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지금 그들의 믿음에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 안에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울이 기도하는 이유가 15절에 나타나는데 한번 읽어봅시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두 가지 바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성도들 안에 믿음과 사랑이 함께 있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골 1:4; 몬 1:5). 믿음과 사랑은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그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기 마련입니다. 간혹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굉장히 표독스럽거나 매몰찬 모습을 가진 분을 본 적 있습니다. 참 믿음이 있다면 풍성한 사랑이 그 안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과 사랑이 함께 있습니까? 담임목사님이나 교역자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한다고 눈을 감고 여러분의 삶의 내용을 기억하는데 그 삶의 내용에 믿음과 사랑이 충분합니까? 그러면 목회자의 기도가, 중보기도자의 기도가 절로 나오고 감사와 감동이 넘칠 것입니다. 때론 그 성도를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날 것입니다.

16절…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이 그런 모양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가 그치지 않는 믿음! 반대로 믿음과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면 기도가 건조하고 기도가 부실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시고, 사랑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게 하소서!

②사도 바울의 기도

이 기도들은 바울서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깊이 있고 본질적인 간구로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기도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15-23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첫 번째 기도’인데, 이 기도에서 우리는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1:17-19, 바울의 첫 번째 기도>

에베소서에는 두 군데에서 바울의 기도가 나타난다. 그 본문은 바로 1:15-23과 3:14-21이다. 이 두 군데서 나타난 바울의 기도 중 첫 번째 기도가 바로 오늘 본문 1:15-23이다. 더 세부적으로는 1:17-19은 바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바울의 기도는, 바울의 중보는 과연 어떠했는가? 그의 기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첫째,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V.17)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먼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알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7절의 NIV번역을 보면 ‘I keep asking that…’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간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바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체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체험적인 앎, 그것은 히브리어 동사 ‘야다’의 의미입니다. ‘야다’는 부부관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고유하고도 독특한 관계-성관계를 포함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음미하는 것, 동고동락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는 지식적인 앎과 체험적인 앎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안다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대상자체가 다른 것이죠. 사람을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사람이 있고,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 진국이 사람이 있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한계를 가지고 있고 단점이 무수합니다. 부부가 결혼을 하면 결혼전의 설레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마도 사람의 냄새가 더욱 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냄새가 안 납니다. 그 하나님을 더욱 알아갑시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는 구절 앞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지혜와 계시의 정신, 성령이 필요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대별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께 말입니다. 에베소서에는 보혜사 성령에 대한 언급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고,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성령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지혜와 계시를 공급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의 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오로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힘쓰십시오.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배가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제목이 더해졌음을 좋겠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관계relationship’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것이 전부(全部)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에 매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지기를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V.18a)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이 왜 불렀는지, 왜 그들을 선택하여 불렀는지를, 어떠한 부르심의 소망이 있는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망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심으로 여러분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심을 기억하십시오!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과 계획을 망각하고 부르심은 있었지만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자신의 소명의 소망이 무엇인지, 소명의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종의 망각이라든가 아니면 무지함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우리의 무지함을 밝혀주기라도 하듯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앞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곧 신령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앤드루 링컨은 여기서 사용된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현재완료 수동태 분사)’페포티스메누스’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마음의 눈이 밝아진 것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회심할 때 일어난, 그리고 그 뒤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구원의 조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주어진 결과로 일어나는 현상을 표현하는 분사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바울은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바울은 중보기도에 담아 내어놓고 있다.

헬라어 본문에서는 바울은 한 가지 내용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있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핵심은 성도들의 마음을 밝혀 주는 성령의 내적 조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 가운데 부르심의 소망을 알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보면,

셋째,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V. 18b)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는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와 연결되면서 동시에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V.19)과 연결되어집니다. NIV성경에서도 ‘부르심의 소망,(쉼표) 기업의 영광의 풍성,(쉼표) and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바울은 세 번째 기도제목으로 내어놓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 분 안에서 누리게 될 기업, 유업은 어떠한 것들입니까?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는 우리가 받게 될 영생의 선물로부터 시작하여서 우리가 일상가운데 누리게 되는 여러 가지 자잘한 축복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산, 상속물, 기업 등을 물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으로 환산하려고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속주의의 영향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내려 주시는 그 기업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일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흩어져 먼지처럼 날려 버릴 허무주의와 비관주의의 허망한 그러한 기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우리 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벧전 1:4)입니다. 또한 불멸의 요소로 남아 있을 영원한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그 기업은 또한 겨우 쥐어짜내는 그런 부족함이나 결핍함의 그 무엇이 아니라 풍성함으로, 넘쳐남으로, 충만함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 중에서’(among the saints)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기를 간구했습니다. 여러분들 안에 이러한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넷째,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V.19)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지극히 크신”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NIV에서는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 개념에 있어서 다른 영역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권능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V.19)하십니다.1) 그는 역사(歷史)에 개입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 역사 가운데 역사(役事)하십니다. 그러한 ‘역사 속의 역사’ 가운데 우리를 압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그 분의 능력이요 업적이요 성취이십니다. 이러한 그의 초월적인 업적,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바로 V.20에 나오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 승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십자가에서의 처절한 죽음은 세상도 하나님조차도 그를 버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있고 부활이 없었다면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 후의 부활은 곧 능력이며 승리입니다. 그 능력은 ‘지극히 크신’ 능력입니다.

친애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여러분은 깨닫고 있습니까? 그 지극히 광대하시고 강력한 능력의 초월성을 믿고 있습니까?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하나님의 ‘부르심’이 시작이고 하나님의 ‘기업’이 내다보는 종국이라면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부르심의 기대를 성취하고 우리를 기업의 풍성함으로 인도합니다. 바울이 기도한 것처럼 여러분 들 안에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체험하여 알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에 나타난 첫 번째 기도제목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둘째, 우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셋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넷째,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되기를 구하노라…

이 4가지의 바울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제목이자 우리의 성취이기를 기도한다.

1) ‘힘’이라고 번역한 ‘이스퀴스’는 힘을 행사하는 것, ‘강력’이라고 번역한 ‘크라토스’는 가는 길에 앞에 놓인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 ‘역사하심’이라고 번역한 ‘에넬게이아’는 내재된 힘, ‘능력’이라고 번역한 ‘뒤나미스’는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러한 동의어를 중복하여 사용한 것은 그 뜻을 세심하게 구별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히 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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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밝혀 알게 하소서(엡1:15-23)

제목: 내 눈을 밝혀 알게 하소서

본문: 에베소서 1장 15-23절

설교자: 최종혁

에베소서 1장은 인사말을 제외하면 두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바울은 3-14절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했고, 15-23절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믿든 자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또한 그에 근거하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3-14절의 찬양을 통해 우리는 믿는 자가 받은 모든 신령한 복과 그 목적을 배웠다. 성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자 하나님의 속량,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삶, 차이가 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바울의 기도는 바로 이 사실에 기초한다(“이로 말미암아”).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렇기 하기 위해 무엇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지를 이 기도에서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구원의 기쁨은 과거의 일로서 기억만 할 수 있고 천국의 기쁨은 미래의 일이어서 소망만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실제로 현재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교회는 잘 나가고 헌금도 빠지지 않고 하려고 노력한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사역에도 참여하면서 나름 보람도 느낀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니 조금씩이라고 그렇게 하려고 하고 기도도 필요하다고 하니 노력은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맞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종은 책임과 의무로만 느껴진다. 그런 순종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면 죄책감이 든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기쁨도 누렸는데, 그 이후의 삶은 뭔가 내가 알아서 잘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내 삶을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의 기쁨을 어떻게든 기억하면서 다가올 천국을 어떻게든 바라는 가운데 현재를 어떻게든 견디고 있는 삶인 것 같은데, 이게 맞나 싶다가도 또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게 된다.

근데, 이게 정말 맞는 것일까?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평안이 정말 이런 것일까? 구원은 은혜로 받고 내가 할 것이 전혀 없지만, 그 후의 삶은 나에게 달려 있어서 내가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예수님께서 속량하시고, 성령께서 인치셨으니,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이제 다 하신거고 그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실제적인 이 땅에서의 삶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일까?

오늘 본문의 바울의 기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이 어떻게든 힘을 짜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구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기를 구했다. 그것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먼저 15-16절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 대한 바울의 확신과 감사를 볼 수 있다.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자신의 기도 시간에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를 기억하며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 기도는 먼저는 “감사”였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는 에베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참된 성도로서의 증거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말이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 – 먼저 이들의 믿음은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 표현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증언한다.

첫째로 믿음의 대상이 올발랐다. 그들은 참되고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었다. 아무리 진실한 믿음이라도 그 대상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시다(요 14:6)/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둘째로 믿음의 내용이 올발랐다. 때로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 잘못된 경우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는 믿지만 주인으로는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 믿음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다. 물론 구원을 받을 때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면서 믿을 수는 없다.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서는 괜찮지만, 내 삶에 관여하시는 분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구원자이시며 주인으로 믿었다.

셋째로 믿음의 결과가 올발랐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믿음에 대해서 들었다는 말은 이들이 지금 믿고 구원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이 참된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렇게 믿음을 버리지 않고 지켜가는 것은 참된 믿음의 증거다. 특히나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했었던 말을 고려해 보면 더욱 그렇다. 에베소는 그 속한 지역 자체만 생각해 봐도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 안과 밖에서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 그들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속에서 에베소 교회가 계속해서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분명한 참된 믿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에 대해서도 들었다. 형제 사랑은 요한 사도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참된 신자의 열매다. 야고보가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믿음은 행위로서 입증되는데, 그 행위가 바로 사랑의 행위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5:6에서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모든 성도” – 특히 바울은 이 사랑이 “모든 성도”를 향했다는 것도 들었다. 에베소 교회가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또한 다른 교회에 사랑을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에베소는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비롯한 소아시아 서쪽 교회들의 모교회와 같은 역할을 했었는데, 그런 교회들을 사랑으로 잘 돌아보았을 것이다. 이들은 차별없는 사랑을 모두에게 베풀었다.

여기서 차별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성도를 동일하게 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예수님도 주변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12명의 제자들 중에서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특별하게 대하셨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신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모두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심지어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발까지도 씻겨주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셨다.

에베소 성도들의 사랑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 안에서 차별없이 서로를 돌보고 하나되기 위해 애쓰는 사랑이 그들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에베소의 믿음과 사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이었고, 그것은 강력하게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예수님의 속량하심으로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임을 증명했다.

이것으로 인해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그칠 수가 없었다. 전도의 열매를 보게 될 때 성도라면 누구나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그 과정에 얼마나 관여 했느냐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의 경우 계속되는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시작하였지만, 에베소는 그 중에서도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3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에베소의 장로들을 특별히 불러 그들에게 닥칠 일에 대해서 경고하며 그들에게 자신이 그동안 겸손과 눈물로 가르치고 섬긴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리고 지금 감옥에서 그들의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당연히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 입에서 먼저 나왔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진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들이 잘 해 왔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신앙의 어려움을 지금 겪는 성도가 과거에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뜨거웠다고 말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면서 그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았던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 에베소 교회처럼 말이다. 뜨거운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을 수 있다. 지금 그렇게 열매를 맺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그렇게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이 기도는 그렇게 살기 원하는 우리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앞선 바울의 찬양에서 삼위의 하나님이 모두 드러났던 것처럼, 바울의 이 기도에도 삼위의 하나님을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영광의 아버지께로 향하지만 중보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진다. 그래서 마치 구약에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불렀던 것처럼, 여기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은 궁극적으로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인데,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렇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표현하였다.

“지혜와 계시의 영” – “성령”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의 결과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바울은 이미 믿는 자에 대한 성령의 인치심을 강조했기 때문에 성령을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맥락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야 11:2에서 성령을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표현하고, 예수님도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하시면서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었다(요 14:17, 26). 즉,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여 알게 하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이렇게 바울의 기도는 삼위의 하나님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데 삼위의 하나님이 모두 관여하셨던 것처럼 그들이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기도의 내용이다. 바울은 다른 무엇을 구한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 알기’를 구했다. 물론, 에베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더욱 알아야 했다. 그것이 그들이 계속해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광의 아버지” – 영광은 피조물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어떠하심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믿는 자가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내 생각, 말, 행동, 결정 등 모든 것을 통하여 나타내고 높이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만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동력이 된다. 어떤 물건을 판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좋은 약이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이라고 해보자. 사기를 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약에 대해서 잘 알면 알수록 어떻게 이 약을 설명하고 광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더 잘 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 약에 대한 확신이 생겨서 더 사명감을 가지고 팔게 될 것이다. 약을 사는 사람을 보면 기쁠 것이다. 사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할 것이다. 약을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면 어떨까? 더 사명감에 불타오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삶의 관계가 그렇다.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가 이 삶을 확신 가운데,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의 시작과 19절의 끝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바꿔서 말했다. 즉, 구원 받은 자로서 우리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워진 우리 마음의 눈(영안)을 밝혀서 보고 알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보고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볼 수 있어야 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 큰 확신과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은 18-19절에서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기업, 그리고 하나님의 힘이다.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의 눈을 밝혀 꼭 알게 하여 주시기를 구한 하나님의 부르심, 기업, 힘은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적인 측면이 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여기서 소망은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의 소망을 의미한다기 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부르실 때 계획하신 것, 즉 목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도에는 과거적인 측면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둠 가운데서 빛으로 부르셨다. 세상 가운데서 교회로 부르셨다. 내가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 이유없이 목적없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일단 불러놓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신 것도 아니다. ‘일단 부르기는 했는데 부르고 보니 별로 쓸모가 없네’ 이러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롬 11:29). 먼저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릴 부르신 것을 하나님은 절대 후회하지 않으신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내가 하나님께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온 우주에서 가장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여 부르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구체적인 부르심의 목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의 고민이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정리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거룩함으로, 자유와 평강으로, 고난과 영광으로 부르셨다. 좀더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섬기며,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서로서로 교제를 나누고, 현재 당하는 고난을 넘어 언젠가 나타나게 될 영광을 바라보는 그런 삶으로의 부르심이다(존 스토트, BST, 69).

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다. 구원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좋았던 추억이 아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고 구원하셨다. 그리고 그 목적은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럽다. 감히 우리가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목적으로 부르셨다. 피조물인 우리가 이런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그것을 알게 해달라고 구했고, 우리도 그렇게 구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나를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이 표현은 분명 미래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영광스럽고 풍성하다. 부끄러운 기업이 아니다. 부족해서 서로 싸워야할 일도 없다.

이 기업은 너무나 확실해서 14절에서는 성령님께서 이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고 표현했다(벧전 1:4). 절대로 잃지 않을 영원한 기업이 믿는 자에게 약속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상급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기업이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으로 인해 받게 되는 기업이다. 성도는 어떤 신분인지 아는가? 하나님의 자녀다. 입양된 자녀로서 본래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무엇을 상속하는지 아는가?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래서 믿는 자는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딤후 2:12). 이것이 어떤 모습일지 솔직히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실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다 알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표현도 못하겠다. 정말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기를 기도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믿는 자에게 약속된 확실한 그 기업은 영광스럽고 풍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없는 자처럼 살 필요가 없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것이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고백이며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우리의 확실한 미래는 현실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 앞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동력을 얻었다면,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현재에 대해서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힘을 에베소 성도들이 밝히 알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과거와 미래에 해당되는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현재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힘’에 대해서는 한 구절을 사용해서 설명했고, 사실 20절부터 이어지는 말씀도 이 힘이 어떤 힘인지에 대한 긴 추가 설명이다. 그만큼 바울은 이 힘을 에베소의 성도들이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이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부담만 가지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고,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되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 필요가 있다.

바울은 그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으로서 믿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 여기서 바울의 기도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기를 구하고 있지 않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이 이미 가진 힘을 깨닫기를 구하고 있다. 그 힘이 ‘지극히 큼’을 알게 되기를 구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힘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바울은 반복되는 유사한 표현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다.

우리말의 ‘지극히’는 끝에 다다랐다는 의미로서 ‘더할 나위 없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무언가를 ‘뛰어 넘는’, ‘초월하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듯하지만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우리가 말씀에 따라 순종과 예배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힘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좌절하고 무력해진다. 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그렇게 연약하게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산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어서 더할 나위 없이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바울은 그 능력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해 준다.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씩 설명하자면 또 다른 한 시간 설교를 해야하는 중요한 말씀이지만, 오늘은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에만 집중해 보자.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능력이 어느 정도의 능력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한 능력으로서 그분을 무덤에서 부활하게 한 능력이다. 죽음을 무력화 하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그 능력은 예수님을 영광 가운데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능력이다. 이 만물에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이 포함되어 있다. 이 표현은 영적인 존재들, 특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력한 존재들, 지금 세상이든 영원한 세상이든 그 모든 이름 위에 예수님을 두신 그 능력이 믿는 자와 함께 하는 능력이다.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신 것이 그 능력이다. 즉, 모든 능력을 무력화 하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능력이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하신 일을 통해 설명한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서 설명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어찌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처럼도 보일 수 있지만, 비유의 연속성 상에서 이해한다면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뜻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회와 그리스도는 한 몸이고 한 몸으로서 움직일 때 온전하여 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능력은 그 몸인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부어졌다.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면 내 삶에 나타나야 하는 하나님의 능력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었던 에베소는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아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 힘이 다 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된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게 된다. 참된 믿음과 사랑으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계시록이 기록될 때 에베소의 상황이 그러했다. 첫 사랑을 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영광의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풍성한 기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모든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잊으면 남는 것은 책임감과 의무감, 죄책감으로 삐끄덕 거리는 삶 뿐이다. 겨우 살아가는 그런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풍성한 삶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언제나 첫번째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한다. 나의 눈을 밝혀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소서.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천국의 가치를, 그리스도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기뻐한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빌 3:8-9). 바울만 그런가. 아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참된 보화, 참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쩌면 그러고 나서 다시 그 보화를 땅에 묻어두고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린 사람들 같다. 팔았던 것들을 다시 하나 하나 집으로 들여놓고는 그것으로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 같다.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 같다.

보화가 없어서가 아니다. 보화를 보지 못해서다. 우리의 보화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 받고 천국에 가기까지 우리는 우리 눈으로 주님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밝은 마음의 눈으로 우리는 주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주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지, 어떤 기업을 약속 받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더 분명히 보면 볼수록 주님을 알고 우리는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바울의 기도가 우리 교회,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 매일의 기도가 되기를 원한다.

에베소서 1장 15~23절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주 예수 안에서’ 주인되심과 그리스도 안에서를 생각해야 한다.

– ‘너희 믿음’,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갈라디아서 5:6

– 에베소 교회는 믿음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차별없는 사랑)

– 내가 하고 말하는 사랑이 성경과 일치하는가?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 사도바울의 감사기도 제목은 성도들이었다. 특별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행함

– 나의 감사기도제목 중에 성도들의 열매의 감사기도제목은 얼마나 있는가?

– 그의 기도의 시작은 ‘감사’였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마음의 눈을 밝히사’ -> 빛이 하는 일은 어둠을 물리치고 그곳에 있는 실제를 보게 한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과 진실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게 하신다.

– 성령의 조명은 기록된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성령님의 이땅에서의 중요한 사역

– 성경의 오해에서 벗어날 필요성(오순절, 찬양 등에 잘못 형성된 개념)

– 그의 부르심의 소망은 이 땅에 부르신 하나님의 사명, 이곳에서 이루실 하나님의 사역)

– 그 소망은 ‘영원’의 관점에서 그분 앞에 우리를 세우는 것이고, 자기 아들로서 소유하는 것이다.

–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은 우리가 받은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하늘소망, 성경을 통한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들이다.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에서 이길 힘, 믿음, 사랑, 소망 등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지혜와 다른 것이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그의 능력은 성부하나님을 가르킨다.

–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는 것은 성자 하나님을 가르킨다.

– 성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다.

–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원토록 가장 뛰어난 이름을 부여하셨다.

–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

– 예수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교회의 위치와 비밀이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교회를 하나님의 몸으로 삼을 것을 계획하셨다.

– 영원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였다.

–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바로 교회다.

–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을 사람, 거듭난 사람들로 만들것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셨다.

– 영원히 영광스러운 그분께서 그 영광스러움 가운데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로 가질것을 작정하셨다.

– 교회가 그의 몸이라는 이 비밀이 얼마나 놀라운가?

– 이것은 이땅을 살면서 계속 오랫동안 영구히 연구하여도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

– 너무나 놀랍고 크신 하나님의 지혜이기에 인간이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 교회의 위치는 이 땅, 이 세대 가운데 어디인가?

–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하시는이의 충만함이 만물안에 있으면서 이 만물을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교회를 통해서 이 세대 가운데 드러난다.

– 비록 세상은 죄악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이곳에 두신 교회는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 만물을 충만케 하는 역사가 있다.

– 사탄은 이것을 가장 싫어한다. 흘러간 교회사를 보라

– 이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운행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계시록의 일곱교회를 보면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드러난다.

– 우리의 모든 것은 교회중심이어야 하고 그것이 가장 큰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지금 세대는 이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직장, 가족, 자아가 교회보다 항상 우선순위다. 교회는 그 권위와 가치를 잃어버렸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계획을 그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를 심각히 돌아봐야 한다.

– 이 교회의 주관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것은 절대 잊어버려서 안되는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가? 머리가 되시는가? 내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신가? 주인된 그리스도가 가장 큰 가치인가?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나의 시간 사용과 물질 사용,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알 수 있다. 이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먼저는 개인이 그리고 교회이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밴쿠버 새벽교회 :: 에베소서 1:15-23 (2016.11.16. 아침묵상)

<말씀>

에베소서 1장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나눔>

1. 오늘 말씀은 바울의 기도로 불리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기도하였습니다.

2. (15-16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늘 기억하고 이를 늘 감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목회자였던 바울에게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 만큼 큰 기쁨과 감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3. 바울은 이 기쁨과 감사 위에서 성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성도의 성공이나 부유함, 자랑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를 보면 성도인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4. (17절) 바울은 먼저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계시와 지혜를 주실 때 가능합니다. 이를 위한 간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먼저 기도했습니다.

5. (18절)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 위에서, 성도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 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약속하신 복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을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혀져서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소망,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기업은 곧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소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원한 것입니다.

6. (19-23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성도들이 알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 능력의 위대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능력으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늘로 승천시키시고, 예수님께서 모든 통치권력, 권세, 능력과 주권을 지배시키시고, 오늘날과 미래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서 통치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아가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밑에 두시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이 교회를 통해 (아직은 죄 가운데 불완전한) 만물을 최후에 온전하게 완성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7.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권력이 당장은 강해보이지만 결국 예수님의 통치가 이 땅을 온전히 바꾸어낼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돈, 권력, 학벌, 명예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우리를 내어드리고,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을 넘어서 예수님의 최후 승리를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믿음입니다.

8.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의 통치를 교회를 통해 이루어가심을 아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땅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가십니다.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고,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드러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은 온전하게 완성될 것입니다.

9.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깊이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할지,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깊이 바라보고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EFqkYF4zVqs

Word First! (신성욱 목사 설교모음)

에베소서1:15-23 바울의 기도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Introduction

사도 바울은 에베소 지역의 두란노 서원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약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자신이 양육한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린 아주 유명한 기도.

오늘 이 바울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해야할지를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함.

15-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에베소서 1:3-14절에서 사도바울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일을 자세히 설명함.

성부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심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심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치시고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어주셨음

그리고 오늘 본문의 15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로 말미암아’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게 되었다고 말함.

무슨 말?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

즉, 에베소 성도들에게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을 수 있던 것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 이 두 가지는 교회를 성립하는 두가지 핵심.

믿음은 수직적인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즉 대신관계에 필수 요소이고

사랑은 수평적인 것으로 이웃과의 관계, 즉 대인관계에 필수 요소임

먼저, 교회인 우리에게 었어야 할 믿음이 무엇?

오늘 말씀은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이라고 말함

이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어떤 지식적 믿음이 아님.

우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것을 분명히 믿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지는 못함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그냥 머리로만 믿을 수 있음.

에베소는 우상이 판을 치던 도시.

그냥 지식적 믿음으로는 에베소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을 도저히 불가능했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그냥 단순한 지식적 믿음이 아님.

이 믿음은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즉, 우리가 우리 삶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는 전적인 믿음을 말함.

매순간 철저하게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

또한 이 믿음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믿음

교회에서만 드러나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믿음. 그러므로 이 믿음은 우리의 가정에서 드러나고 삶의 현장에서 드러날 수 있어야 함

다음으로 교회인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사랑이 무엇?

오늘 말씀은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라고 함.

이 사랑이 어떤 사랑? 이 사랑은 다른 이들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는 그런 사랑.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주는 그런 사랑이었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 사랑을 하라고 하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문제는 모든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사랑스러운 사람은 사랑하기 쉽지만 솔직히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있는 것

그래서 이것을 알았던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무엇? 사랑은 오래참고!

오래 참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아주는 것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낭만적으로 사랑의 마음이 차오르는 그런 사랑이 아님

성도 중 누군가 잘못하는 걸 보면 확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도 꾹 참아 주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

사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전 13장을 묵상해 보면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낭만적인 사랑이 아님 도리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노력에 가까움.

다른 성도들을 위해 끝임 없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도 우리 주위의 성도들의 연약함을 참아주고 덮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

살전 1:3에 보면 ‘사랑의 수고’라고 말함

사랑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

예수님처럼 우리 주위의 성도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수고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람.

16-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이렇게 믿음과 사랑이 있는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보며 감동하며 감사함

실제로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사역자를 감동시킴

그리고 사역자로 하여금 기도할 때마다 그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만듬

이렇게 성도가 바른 믿음과 바른 사랑을 가질 때 사역자는 그모습에 감동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이 믿음과 사랑을 발견하실 때 과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이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길 바람

17-23절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을 보며 감사하는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사도는 에베소에서 2년을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쳤음

따라서 에베소 교인들이 겪고 있는 신앙적인 어려움들뿐 아니라 현실적 어려움들도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

그런데 바울이 이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무엇?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함

왜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위해 이 기도를 드렸을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

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요 구원이기 때문

요한복음 17:3에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심

바울은 이 영생의 비밀을 알았기에 이 영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함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함.

그렇다면 바울이 기도하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

18-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 부르심의 소망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됨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음.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주어짐.

어떤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이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하나님이 부르신 우리에겐 이 땅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소망

이 땅의 삶은 어떠한가?

이 땅을 사는 것은 쉽지가 않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부딪치는 삶의 문제들은 정말 만만치가 않음.

이 땅에서의 삶에는 언제나 슬픔과 고통이 있음.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가 있고 무엇보다 죽음이 있음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은 아무리 좋아도 완벽할 수는 없고 영원할 수 없음

이 슬픔과 고통이 어디서 시작됐나?

바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간의 죄로 인해 시작됨

사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것이 아님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겪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심

하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을 없애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심.

그리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부르심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해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 우리에겐 소망이 생겨남

이 소망은 우리가 앞으로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는 것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흘린 모든 눈물을 씻겨주실 것

그곳에는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

그래서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이 좀 고통스러워도 견딜 수 있음.

오늘 이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삶에 지친 성도님들에게 마음의 눈을 밝히사 이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람.

2.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둘째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함

성경에서 영광은 항상 미래뿐 아니라 현재적 개념을 포함함

그러므로 기업의 영광의 풍성은 미래에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부름받은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영적인 복들을 포함

사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놀라운 축복들을 잊고 살아감.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들이 가시가 되어 우리의 영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축복들이 무엇?

먼저, 우리는 구원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

우리는 너무도 자주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잊고 삶

우리는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감

천국을 기업으로 받은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

하지만 지금도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영생을 얻어보려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음

몇 년 전에 아내와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 한분을 차에 태워드림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하심

목적지가 어디시냐고 어쭤봤더니 절에 가시는 길

모시고 가면서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절까지 태워드리는 데 그 절까지 거리가 10Km가 훨씬 더 되는 거리였음

그런데 그 할머니는 벌쩌 몇 십년째 그 거리를 걸어서 다니셨다고 함

정말 그 정성에 깜짝 놀랐음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아팠음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해 절에 다녀봤자 끝이 결국에는 지옥이라는 사실이 저희 부부의 마음을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음

차에서 내려드리면서 “저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할머니도 예수님을 믿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림

할머니는 계속 고맙다고만 하시면서 절을 향해 걸어가셨음

우리가 받은 구원의 축복이 이 세상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복된 사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람

또한 우리는 예배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

혹시 북한 성도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아나?

북한 성도들의 소원은 마음껏 소리 내어 찬양하고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

그들의 소원은 마음껏 줄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자기 성경책 한권을 갖는 것

굶주리고 핍박받는 북한 성도들의 꿈은 배부르게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돈많이 벌어 자식들 교육잘 시키고 노후를 편하게 지내는 그런 것이 아님

그들의 소원은 마음껏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오늘 우리는 어떤가?

부끄럽지만 저도 예배가 힘들고, 말씀 읽는 것이 어렵고, 기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음

하지만 우리는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지 말아야 함

하나님이 허락하신 예배의 축복에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람

이 외에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영광의 축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름

괴로울 때면 우리는 영적인 아버지께 언제라도 마음껏 기도할 수 있고

또 언제라도 믿음의 가족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음

믿음이 좋은 성도들도 때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축복을 망각할 수 있음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즉,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축복들을 깨닫게 하시기를 구하는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놀라운 축복에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람

19-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

셋째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

우선 하나님은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

20상-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이 능력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능력.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게 될 우리들도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

우리가 우리를 다시 살리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함.

둘째로 하나님은 능력으로 그리스도에게 세상만물을 통치하는 권세를 주심

20하-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보이지 않으심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에게 오른편이 있다는 것이 아님

성경에서 오른편은 권세의 자리

그러므로 예수님을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21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주셨음을 의미함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다는 것은 예수님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존재하는 이름을 가진 그 무엇보다도 더 높은 존재이심을 드러나게 하셨다는 것

그러므로 세상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께 머리를 숙이고 복종할 수 밖에 없음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 뿐 아니라 세상 최고의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이 높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너무나 큰 은혜

셋째로 하나님은 이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심

22하-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 로 삼으셨느니라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심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가 되게하심으로 교회인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삼아주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음

바울은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말함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드러내는 존재라는 것

결국 무슨 말인가 하면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엄청난 능력이 바로 교회인 우리를 통해서 세상가운데 드러나게 된다는 것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남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존재들.

그런데 우리가 이 엄청난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감

아무 감사함도 없이 자부심이나 존귀함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사도바울이 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나?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게될 때 우리는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현실이 힘들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교회인 우리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그 충만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엄청난 존재임을 깨닫게 됨

오늘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람

20171030 에베소서 성경공부(1장15절-23절)

(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엡 1: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시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엡 1:2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지배자, 권세자, 왕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 있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엡 1:20)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엡 1:19)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큰 능력으로

(엡 1:18)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두신 것을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지 깨닫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며,

(엡 1:16) 항상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엡 1:15) <바울의 기도> 그러므로 내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와 몸으로 세우신 하나님사랑

1) 하나님( 예수님 , 성령님 ) 은 어떤 분 이신가 ? -예수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시다.(15)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주신다(16)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보내주신다(17)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을 밝혀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해주신 것을 깨닫게 하신다(18)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이 풍성하고 놀랍다(18)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으로 믿는자 안에서 역사하신다(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다(20)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다(20)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지배자, 권세자, 왕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하셨다.(21)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시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2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몸인 교회를 통하여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우신다.(23) (엡 1:20)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엡 1:2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든 지배자, 권세자, 왕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 있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엡 1: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시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에베소서 서론 ( 질문1)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감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엡 1:15) < 바울의 기도 > 그러므로 내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 엡 1:16) 항상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 è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생각할 때마다 끊임없이 감사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 감사가 생겼습니다 . 그치지 않는 감사가 생겼습니다 . 소리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 사도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서두에서 언제든지 먼저 감사 기도를 합니다 . 심지어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하면서도 항상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 고린도 교회는 분파 , 음란 , 불신 , 교만등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감사하였습니다 .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에 가본 일이 없습니다 . 로마 교회에 편지 하면서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된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 골로새 교회에 편지에서도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였습니다 . 데살로니카의 편지에서도 데살로니카 성도를 인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 사도바울은 책망할 때도 감사로 시작하며 충고할 때도 감사로 시작하며 기뻐할 때도 감사로 시작했습니다 .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의 체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 그는 복음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 그는 자신이 감사할 뿐 아니라 양들에게도 감사를 가르쳤습니다 . 바울은 데살로니카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 ” 범사에 감사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우리는 누구나 감사거리가 있으면 감사합니다 . è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감사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15 절을 다시 보십시오 .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에베소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 사실 믿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고 , 사랑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결핍이 있습니다 .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 사랑은 그 믿음에 기초하여 성도들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 우리는 믿음과 함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 사랑 안에서 서로의 죄를 책임지고 믿어주고 기뻐하며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소홀히 여기거나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이들은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휴머니즘을 강조합니다 . 예수를 믿든 석가를 믿든 무엇이 중요하냐 사랑만 실천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분명히 믿고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 뿐만 아니라 거기에 기초하여 구체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 교회는 이 양면성이 있어야 합니다 .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도 중요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우리는 절대 신앙에 기초하여 사랑을 절대 실천하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 ( 질문2) 사도바울은 기도의 대상과 어떻게 기도를 하였는가 ? (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며 , è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대상은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믿었던 하나님이십니다 .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 우리의 기도에는 찬양과 회개, 믿음과 사랑의 고백과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실제로 기도하다보면 주시옵소서 . 하는 간구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 주로 달라고 하는 것도 새로운 성도나 돈이나 성적등이 대부분입니다 . 현실 문제에 얽매여 있으면 문제의 노예가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고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지 못합니다 . 그러나 사도바울의 기도의 내용은 좀 다릅니다 . 그는 자신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기도하지 않았고 자신의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 사도바울은 첫번째 기도제목은 찬송과 감사를 한 후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 ( 성령 ) 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 먼저 깨닫고 내면이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깨달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해서 알아야합니다 .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맺히게 됩니다 . è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하나님 어떤분이십니까? 어거스틴이 평생 동안 알고자 했던 것도 하나님은 누구시며 자신은 누구인가였습니다. 1)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셨습니다 . 2)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 3)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사정없이 심판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4) 하나님의 능력과 완전하신 주권과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è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은 두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성령이 임해야합니다 첫째는 지혜의 영이요 둘째는 계시의 영입니다 . 다시 말하면 지혜의 성령이요 , 계시의 성령이 도와줘야 합니다 .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지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가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열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 우리는 지혜의 마음으로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계시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 ( 질문3)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 ( 엡 1:18)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두신 것을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지 깨닫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 è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풀타임으로 부르셨고 어떤 사람은 파트 타임으로 부르셨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시대에 BBB 를 통하여 부르셨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직장선교를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성취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 이 부르심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영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로마와 세계선교를 이루고자 소망하셨습니다 . 아브라함을 통해 복의 근원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 베드로를 부르실 때 교회의 반석으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왕같은 제사장으로 소망을 두셨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큰 민족의 양떼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 세계적인 말씀의 종 기도의 종이요 목자 교수로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 우리에게 캠퍼스 개척 역사에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는 쓰시고자하는 소망을 갖고 부르신 것입니다 .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을 두고 부르십니다 . ( 질문5) 이미 알고 잇는 능력을 아는 방법은 ? ( 엡 1:19)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큰 능력으로 è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하지 않고 이미 있는 능력을 알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능력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지극히 크십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힘의 강력으로 일하십니다 . 여기서 힘의 강력은 이기는 힘 , 승리하는 힘 , 사단을 완전히 정복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넘어뜨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 어떤 골짜기라도 높일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태산 같은 힘을 말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 하나님은 이런 힘으로 역사하십니다 . 여기서 일하신다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만 일하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 ( 질문6) 그리스도를 만물의 머리로 주신 것은 ? 22b,23 을 보십시오. ”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하나님의 충만한 능력이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 머리가 갖고 있는 지혜의 능력은 몸의 손과 발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능력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으로 나타납니다 .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부족함이 없고 충만해집니다 . 하나님으로 가득차고 넘쳐나게 됩니다 .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신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 2) 새롭게 깨닫거나 도전 받은 말씀(구절)은 무엇인가 ? (엡 1:16) 항상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3)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동역하는 지체들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4)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ㅇ당장 실천해야 할 것: -동역하는 지체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ㅇ지속적으로 힘써야 할 것: -직장 사역을 하는 지체들과 함께 사역을 하는데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에베소서 1:15-23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

에베소서 1:15-23 KRV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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