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요약 | 에베소서 4-6장 요약 설명 215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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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7~10절에 대한 요약으로, 다음 내용을 설명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다른 은사들도 주셨음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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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에베소서 4장 부르심에 합당한 삶 – Pensé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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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장별 요약 –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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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그리소도 안에서의 새 생활[엡 4장] [내용개요] 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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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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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에베소서 4:17-32 / 새 사람의 삶으로 변화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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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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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6장 요약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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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베소서 4장 요약

  • Author: 백경태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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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2.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ZRVrBfrfOU

제122과: 에베소서 4장

에베소서 4:1~16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다

학생들에게 다음에 나오는 두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떤 주제에 대해 견해를 발표하라고 한다. 학생들이 각자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여러분은 반 친구 대부분이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른 견해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러분 나라의 입법자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그릇 되다고 가르친 행위를 합법화했다.

이런 상황은 왜 교회 회원들에게 힘들 수도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에베소서 4장 1~16절을 공부하면서, 가치관과 신념이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한 가지 진리를 찾아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바울은 교회의 신회원들을 대상으로 이 서한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준다. 한 학생에게 에베소서 4장 1~6절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바울이 교회와 교회의 교리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지 찾아보라고 한다.

바울은 교회와 교회의 교리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가?

바울은 어떤 의미로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 (5절)임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시대에도 지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한 곳뿐이었다.[교리와 성약 1:30 참조])

에베소서 4장 7~10절에 대한 요약으로, 다음 내용을 설명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다른 은사들도 주셨음을 가르쳤다.

한 학생에게 에베소서 4장 11절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주님께서 교회에 무엇을 주셨는지 찾아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찾은 내용을 발표해 달라고 한다.

에베소서 4장 11~14절은 성구 익히기 구절이다. 성구 익히기 구절을 공부하면, 학생들이 기본 교리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교리를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구 익히기 구절을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눈에 잘 띄게 표시해 두라고 제안해도 좋다. 학생들이 이 성구를 익힐 수 있도록 이번 과 끝에 나오는 교수 방안을 참고한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무엇을 주셨는가?

다음 내용을 설명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권 직분의 명칭은 바울의 시대에 사용하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 교회에는 오늘날 교회에 있는 모든 부름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예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복음 전하는 자는 축복사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139쪽)라고 가르쳤다. 또한, 목사는 목자 즉, 무리를 이끄는 사람을 말하는데, 현대의 용어로 묘사하자면 감독, 지부 회장, 스테이크 회장, 지방부 회장이 적합하다.

다음에 나오는 미완성 문장을 칠판에 쓴다. 주님께서는 … 하기 위해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지도자들을 부르셨다.

한 학생에게 에베소서 4장 12~13절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주님께서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지도자들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한다.

주님께서는 어떤 목적으로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 기타 여러 지도자들을 주셨는가? (칠판의 문장에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를 추가한다.)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은 우리가 온전하게 되도록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는가?

한 학생에게 에베소서 4장 14절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주님께서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기타 여러 지도자들을 주신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보라고 한다.

주님께서 교회 회원들에게 이 지도자들을 주신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칠판에 거짓 교리로부터 보호를 추가하여, 다음과 같은 진리가 되도록 문장을 완성한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거짓 교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기타 여러 지도자들을 부르셨다.)

이미지

학생들이 14절에 나오는 비유적 표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세찬 물결에 요동하는 배 그림을 전시한다. 아니면, 칠판에 세찬 물결에 요동하는 배 한 척을 여러분이 직접 그리거나 학생 한 명에게 그려 달라고 한다.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는 물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수업을 시작할 때 이야기했던 두 시나리오를 다시 언급한다.

세찬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는 어떻게 거짓 가르침과 여론이라는, 변화하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14절) 사람에 비유될 수 있는가?

사도와 선지자, 그 외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런 세찬 물결을 항해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안전히 돌아가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다음 교회 부름들을 칠판에 쓴다. 사도, 선지자, 축복사, 감독, 교사. 학생들에게 그 부름 중 두 가지를 선택해서, 그 부름에서 봉사하는 지도자가 자신이 영적으로 발전하거나 성장하도록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를, 또는 거짓 교리와 속임수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 주었는지를 수업 공책이나 경전 학습 일지에 적어 보라고 한다. 시간을 충분히 준 후, 몇몇 학생에게 기록한 경험 중 하나를 말해 달라고 한다.

한 학생에게 에베소서 4장 15~16절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나머지 반원들에게는 눈으로 따라 읽으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복음 진리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찾아보라고 한다.

[장별설교] 에베소서 4장 부르심에 합당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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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에베소서 4장 부르심에 합당한 삶

에베소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이유와 하나님을 본 받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Ⅰ.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1-16절)

1.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

바울은 먼저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조언합니다.(1절) 먼저 ‘부르심’이 뭔가 생각해 봅시다.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목적이라고 말하면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클린턴 E. 아놀드라는 학자는 부르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초청 혹은 소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 되도록 부르신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분과 가까이 관계를 맺도록 부르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씀을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의 목적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부르심으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목적하십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 뭘까요? 2-3절에서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심이기 보다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겸손과 온유는 내 자신과 상대방을 향한 거룩한 성품입니다. 오래 참음과 사랑 역시 공동체 안에서 가져야할 삶의 성품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정의하면서 가장 먼저 ‘오래 참음’을 이야기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도 간의 관계 속으로 부름이라할 수 있습니다.

2. 부르심의 소망(목적)

그런데 4절에서 갑자기 교회론으로 나아갑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우리의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불렀다’고 말합니다. 그 소망이 무엇일까요? 12절에서 다양한 은사를 이야기한 다음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결국 성도를 부르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온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의 모범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닮고 또 닮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자 보십시오. 성도는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3. 성도를 세우시는 과정

5-12절까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교회의 직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에 나타난 교회의 직분을 봅시다. 먼저는 사도입니다. 두 번째는 선지자입니다. 세 번째는 복음 전하는 자로, 그 다음은 목사와 교사입니다. 헬라어 원문은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칼로우스(ποιμένας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로 우리나라 성경은 목사로 번역했지만 목자가 더 좋은 번역입니다. 디다칼로우스는 말 그대로 교사입니다. 그런데 정관사 없기 때문에 두 직분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즉 목사와 교사를 한 직분을 말합니다. 자 좋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직분은 성도를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침의 세상의 풍조에 이끌리지 않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기 위함입니다.

먼저 8절 말씀을 봅시다. 이곳의 말씀은 시편 68:18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그런데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적군들을 쳐 부수고 그들의 탈취물들은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오늘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다시 9절로 가보겠습니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바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적들을 쳐부신 것은 이 땅에 내려오셨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올라가시면서 적들에게 빼앗을 탈취물을 백성들에게 풍성하게 나누어 주신 것이죠. 그로 인해 주의 백성들이 풍성하게 소유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건을 곧바로 신약의 교회로 대입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탈취물로 나누어주신 선물을 11절에서 교회의 직분으로 연결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낮아짐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말하는 것이고, 높아지심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사건, 즉 승귀하신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하늘에 오르시면서 교회에 즉 새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통치하시는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직분자들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세웠고, 현대교회는 목사와 교사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있는 말입니다.

Ⅱ.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1. 새 사람을 입으라

첫 번째 권면은 새 사람을 입으라(24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22절) 옛 사람은 육체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른다’라고 말합니다.(22절 상) 17-19절에서 이러한 삶을 이야기 합니다. 허망한 것으로 행하고(17절),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는 것(18절)이며, 결국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19절)을 말합니다.

그럼 우리가 입어야할 새 사람은 무엇입니까? 먼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의와 진리, 그리고 거룩함은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삶의 방식, 즉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삶을 말합니다. 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복음 안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거룩함은 진리를 따라 삶을 통해 욕심이 아닌 사랑과 헌신을 통해 희생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의와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눅]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2. 삶으로 열매를 드러내라.

25절은 ‘그런즉’으로 시작합니다. 앞에 소개된 새 사람을 입은 자의 구체적인 삶을 말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26절에서는 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어떤 이유든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27절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서 마귀가 유혹하여 죄를 짓도록 우리 자신을 방임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규모있는 절제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도둑질 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9절의 ‘더러운 말’에서 ‘더럽다’라는 단언 ‘σαπρός’로 ‘썩어 악취가 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1-18에 의하면 나쁜 열매를 뜻합니다. 마태복음 13:48에서는 천국의 비유 중에서 버려야할 물고기에 사용되었습니다.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욕심과 욕망, 방탕과 방임으로 인해 일어나는 세상의 헛된 것들과 죄악들을 말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마땅히 다 버려야 합니다. 대신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3.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말은 성령을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의 오래 된 습관을 말합니다. 죄를 계속 짓게 되면 성도는 성령을 거의 소멸하게 됩니다. 물론 한 번 내주하신 성령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근심하심으로 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삶,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교회의 사역도 똑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령이 주도하는 삶을 살지만, 어떤 교회는 철저히 육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영이 눌리고 또 눌리면 결국 성령은 거의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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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장별 요약

에베소서 1장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의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에 대해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성부 하나님의 선택(3-6)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7-12), 성령의 인치심(보증, 13-14)을 찬송한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감사드리며(15-16),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을 가지고 참된 소망과 영원한 기업,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도록 기도한다(17-19). 이어지는 20~23은 교회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설명이다

1:7, 1:20-23

에베소서 2장 <구원은 은혜로,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을 단계적으로 설명한다(1-10).

구원받기 이전의 비참한 상태(1-3),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4-10).

이로써 구원은 사람들이 어떤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로 오직 선물처럼 거저 주어지는 것이 된다(8-9).

대부분이 이방인으로 구성된 에베소 교인들의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11-12)와 이후의 상태(13-18)를 대조적으로 설명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화목의 결과임을 말한다(16). 이처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머리되시며(1:22),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2:20)를 중심으로, 각 지체인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21-22).

2:8-9, 2:13-14a, 2:20-22

에베소서 3장 <하나님 구원 섭리의 비밀>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3-6)과 더불어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7-8)고 밝힌다.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경륜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되었던 것으로(9, 1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6), 그의 교회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었으므로(10), 따라서 성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12). 그로 인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린다.

영적으로 강건해지고(16),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경험적으로 깨달음으로써(17-19a)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한다(19b).

3:8-9, 3:16-19

에베소서 4장 <교회의 일치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4장에서는 성령 안에서,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다. 또한 일치를 위한 도덕적인 권면(2-3)과 더불어 일치의 원리(4-6)를 제시한다.

일치를 위한 직분자의 역할과 은사를 주신 목적(7-12)을 이야기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일치해야 하며(13),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인정되는 영적이며 유기적인 연합을 통해서 성장해야 할 것(15-16)을 강조한다.

또한 4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방인의 옛 생활(17-19)과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20-21)을 대조시키며, 더럽고 허망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22),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고한다(23-24).

4:2-3, 4:13-15, 4:22-24, 4:26-27, 4:29-30, 4:31-32

에베소서 5장 <세 개의 디다케>

(1-14)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의 생활방식을 빛(8-9)과 어두움(11-12)으로 대조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속에서 불의한 관계와 함께 살아가야 하지만, 그들의 죄악된 생활 방식에서 떠나, 세상의 빛으로서 어두움을 밝게 비추어야 할 책임이 있다(13-14).

(15-21) 불신자들은 악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고 시간과 기회를 허비하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뜻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22-33) 성령 충만한 자들의 인간관계 중에서, 특히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며, 이를 영적 맥락으로까지 확장한다.

5:1-2, 5:4-5, 5:8-9, 5:16-18, 5:19-21, 5:33

에베소서 6장 <전신갑주>

부모와 자녀의 관계(1-4), 종과 상전의 관계(5-9),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싸움, 곧 전신갑주를 입으라(10-18), 자신을 위한 기도 부탁(19)과 인사(21-24)로 마무리한다.

6:1-3, 6:4, 6:12-13, 6:18, 6:19

[에베소서 4장 주일설교말씀]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엡 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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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베소서 4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탄생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은 하늘로부터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성장을 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나면 그다음은 성장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먹고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어린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자의 분량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성숙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성숙한 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지금부터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목: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자”(에베소서 4:1~32)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요절: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엡 4:15)

주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활 하자.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에베소서 4장을 강해합니다. 엡 4-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윤리]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4장은 교회의 일체성과 새로운 피조물로 된 그리스도인의 신앙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교회의 일곱 가지 하나 됨 안에서 믿음 생활 하라(엡 4:1-6)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엡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1절. ‘그러므로’라는 말은 엡 1-3장의 교회론을 요약하는 말로 ‘교회의 참된 터는 그리스도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경륜이니’는 뜻입니다. ‘간청한다 beseech’는 말은 엄하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게 권한다는 말입니다. 간청하는 부탁의 말은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그 구원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2절은 엡 4-5장의 요약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사랑과 거룩의 삶입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입니다. ‘모든 겸손’이라는 말은 모든 면에서 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로 인해 죽었던 자이었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또 오래 참음으로 행하여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사랑의 속성입니다(고전 13:4, 7).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과 허물을 덮어주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잠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벧전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3절. ‘평안의 매는 줄’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화평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일치와 단합이며 불화와 분열이 아닙니다. 갈 5:20은 육신의 죄악들 가운데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 등을 열거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입니다(요일 3:15).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헤노테스 ἑνότης henotes)’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의 하나 되게 하신 것 the unity of the Spirit’이라는 뜻입니다. ‘힘써 지키라 Endeavouring to keep’는 말은 인간의 연약성을 전제하면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분열하기 쉽고 성도들이 교만과 욕심과 미움에 빠지기 쉽기에 우리는 믿음과 진리와 의안에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 곧 교회의 일체성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일체성을 일곱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절. ① 몸이 하나입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 세상에 교회들이 많고 교파들이 많아도 또 우리가 속한 지교회는 달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며 모든 성도는 그 한 교회의 교인입니다. 택함 받은 성도들은 중생과 회개와 믿음으로 이 한 몸 안으로 들어옵니다.

② 성령님은 한분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격적 영이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실제적으로 이루시며 죄인들을 중생시키시고 믿게 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모든 성도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 격려자, 권면자이시며 교회를 인도하시며 책망하시고 부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므로(요 14:17) 모든 일을 성경 교훈대로 행하십니다. 참된 성령 운동은 에스라 때의 말씀사경회처럼 성경의 성실한 연구와 강해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③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도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래의 소망으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들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의 영생입니다. 모든 성도는 다 이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5절. ④ 주님도 하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증거 되신 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장차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에 증거 된 이 예수님 외에 다른 주님이 없습니다.

⑤ 믿음도 하나입니다. 역사적 정통교회들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일치하는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 탄생, 그의 대속, 부활, 재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한 죄인들의 중생(重生)과 칭의(稱義), 성화, 영화, 마지막 심판, 몸의 부활, 영생, 지옥과 천국 등을 믿습니다.

⑥ 세례[침례]도 하나입니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합니다. 죄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합니다(요일 1:7). 그러므로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마 28:19, 행 2:38) 베풀어집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⑦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도 하나이십니다. 영원무궁 자존하신 참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이방 나라의 모든 신들은 다 거짓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십계명에서 밝히듯이 창조주, 구속주, 섭리주이신 하나님 이외는 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1-3 계명).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한 일곱 가지의 근거를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을 믿고 섬기기 때문에, 또 한 소망, 한 믿음, 한 세례[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들은 이런 일곱 가지 교리적 주제들의 일치에 근거해서 온전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2. 영적인 선물(엡 4:7-16)

엡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7-8절. 주님께서는 한 몸으로서의 교회를 완성하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한으로 은혜의 선물을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십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에 따른 것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메시아 사역을 예언한 시 68:18을 인용함으로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키며,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라는 말은 메시아의 원수 곧 사탄과 악령들과 죄와 사망을 가리킵니다. 시편의 본문에서는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는다’고 표현했으나,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원수들에게서 전리품들을 취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악령들과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님의 은사들을 나누어주셨음을 말합니다.

9-10절. ‘올라가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리키고, ‘그가 먼저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가리키든지 그분께서 무덤 속에 묻히셨던 일을 말합니다. ‘모든 하늘 위에 오르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들어가신 천국은 지극히 높은 하늘임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구원을 온 세상에 충만히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11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은사와 직분은 ‘사도 apostles’입니다. 사도는 열두 제자와 바울에게 주어진 은사요 직분입니다. 원문 성경에서 예외적으로 바나바도 두 번 사도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행 14:4, 14). 사도들은 복음의 선포자요 해설자이었습니다(롬 1:1). ‘대언자(=선지자) prophets’는 사도들처럼 복음 진리의 계시와 은혜를 받은 직분입니다. 유다와 실라 등은 대언자들입니다(행 15:32). 대언자의 사역은 주로 말씀을 선포하던 설교자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들과 더불어 신약시대의 대언자들을 교회의 기초라고 불렀습니다(엡 2:20). ‘복음 전하는 자 evangelists’는 빌립, 디모데, 디도 등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했던 직분을 가리킵니다. 행 21:8은 초대 교회가 뽑았던 일곱 사람 중 하나인 빌립을 ‘전도자’라고 불렀습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후서 4:5에서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목사 겸 교사’라는 말 (투스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칼루스 τοὺς δὲ ποιμένας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 tous poimenas kai didaskalous)은 하나의 정관사에 두 명칭이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동의 반복법, 즉 동격을 나타냅니다. 목사와 교사라기보다 “목사 즉 교사”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문법에서 이를 The Granville Sharp Rule이라고 합니다. 본래 ‘목사’라는 원어(포이멘poimen)는 ‘(양이나 소를 치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양무리를 돌보는 자를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한 목자이십니다(요 10:14-16). 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6). ‘치라’는 말(포이마이노poimaino)은 ‘돌보다, 다스리다, 인도하다’는 뜻입니다. 행 20:28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오늘날 목사와 장로들의 회인 당회는 교인들을 돌보고 다스리고 인도하는 목양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목사를 ‘교사’라고 부른 것은 목사의 중요한 직무를 말합니다. 장로교에서 목사를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라고 부릅니다. 목회에 있어서 설교와 성경공부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모든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딤후 1:11에서 바울 자신을 ‘복음 전파자와 교사’라고 부릅니다. 참된 목회자들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계시된 신구약 66권의 성경 말씀을 가감 없이, 바르게, 충실하게 가르치기를 힘써야 합니다.

12절. 교회의 지도자의 직무는 성도를 완전케 하고 섬김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를 완전케 한다’는 것은 성도의 완전한 영적 성장을 말합니다. 골 1:28-29에서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심은 섬김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봉사의 일들이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는 교회학교 교사들, 주방 봉사자들, 찬양대원들, 재정 관리인들, 주차요원, 청소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또 교회 지도자의 직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모든 혼(soul)들이 다 구원받으면 그리스도의 몸은 수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질적으로 말한다면,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각자 지식과 인격과 삶에 있어서 완전케 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13-16절.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이상적인 인격이십니다. 교회는 목회자들의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까지 자라서 완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합니다. 목회의 목표는 단순히 개인들의 성화와 온전함뿐 아니라 또한 교회적 완전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지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의 온전함을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본받을 수 없으나 그분의 인성의 완전함은 본받을 수 있습니다. 14절. 교회에게 영적 온전함이 필요한 까닭은 모든 인간적 교훈들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과거에 어린아이들처럼 사람들의 속임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방황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속고 다른 이들도 속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15절.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라는 말은 완전케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진리를 말하다’는 원어(알레듀오 aledeuo)는 ‘참된 말과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과 진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본래의 인생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그 본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잃어버렸고 심히 죄악 된 자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죄악 된 옛 성품을 다 버리고 사랑과 진실 안에서 자라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 성장의 목표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분은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의 이치를 사람의 머리와 몸에 비유한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두뇌]는 몸을 자라게 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머리가 상하면 몸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전한 머리는 몸을 성장케 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이상적 머리이십니다. 16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서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활동하여 자라며 사랑 안에서 건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힘의 근원이 되십니다. 개인이나 교회의 영적 성장과 온전함은 사람의 인위적 행위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 곧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3. 옛사람과 새 사람(엡 4:17-32)

엡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 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엡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7-19절.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은 ‘구원받은 후부터는’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부터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여덟 가지 점들을 증거 합니다.

첫째로, 17절에 이방인들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원어(누스 nous)는 ‘생각’이라는 뜻인데, 이방인들은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허무한 것을 생각합니다.

둘째로, 18절에 이방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육신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에는 지혜가 있을지 모르나, 인생이 참으로 알아야 할 바 하나님과 죄와 구원에 대한 총명과 깨달음이 없습니다.

셋째로, 이방인들은 무지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의 목적도, 참된 도덕 원리도 모르고 있습니다.

넷째로, 이방인들은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만 살며 하나님의 진리를 진지하게 찾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비교적 순수해서 진리를 들을 때 잘 듣지만, 어른들은 마음이 고집스러워서 바른말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멀리 떠나 사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며,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여섯째로, 19절에 이방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도덕적 감각이 없습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있지만,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그 도덕적 감각은 억눌리고 억압됩니다.

일곱째로, 이방인들은 자신들을 방탕에 방임하고 있습니다. ‘방탕’이라는 원어(아셀게이아 aselgeia)는 ‘육욕, 호색, 방탕’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인간관계의 죄악들 중 첫째는 음란입니다. 인간은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여덟째로, 이방인들은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이란 온갖 죄악들을 가리킵니다. 죄는 사람의 아름다운 인격을 더럽히고 아름다운 부부관계와 가족관계, 나아가 이웃 관계를 더럽힙니다. 죄 없는 사회는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지만, 죄악 된 세상은 정신적, 육신적 상처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의는 깨끗한 옷과 같고, 죄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이런 여덟 가지 점들이 이방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이방인의 모습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20-2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죄악 된 것들로부터 떠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를 회개했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며 진리가 그분 안에 있으십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라는 구원의 초청입니다.

22절. “이전의 생활 방식에 대하여, 너희는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입니다. ‘이전의 생활 방식’이라는 원어(카타 텐 프로테란 아나스트로펜 kata ten proteran anastrofen)는 ‘썩어져 가는’ 원어(톤 프데이로메논 ton fdeiromenon) ‘부패되어가는’와 연결됩니다. ‘유혹의 욕심’이라는 원어(타스 에피두미아스테스아파테스tas epiduastes apates) ‘속이는 욕심들’이라는 뜻입니다, 욕심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기 때문에 속이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구원받기 전의 자아(自我)를 말합니다. 이것은 앞절들에서 말한 이방인들의 모습의 요약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속이는 욕심들을 따라 부패되어 가는 삶입니다. ‘벗어버리고’라는 원어(아포데스다이 apodesdai, 과거부정사)는 단회성(單回性)을 보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을 때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반복될 수 없는 구원 사건입니다. 23절. “너희의 생각의 영 속에서 새롭게 되라.” ‘생각의 영속에서’라는 원어(토 프뉴마티 투 누스 휘몬 to pneumati tou’ noos hymon)으로, 영의 기능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특히 지식 혹은 생각을 강조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달라집니다. 바른 생각은 바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구원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새롭게 되어’라는 원어(아나네우스다이 ananeousdai, 현재부정사)는 계속성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그 생각의 변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진행됩니다.

심령의 새로움은 평생 계속됩니다. 24절.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새사람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래의 내용임을 말합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원어는 ‘의와 참된 거룩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은 ‘의와 참된 거룩함’입니다. ‘입으라’는 원어(엔뒤사스다이 endysasdai, 과거부정사)는 단회성(單回性)을 말합니다. 그것은 지금 성도들에게 명하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 믿기 전에 우리가 받았던 구원 초청의 내용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구원 초청은 바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옛사람의 상태에서 새사람의 상태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5-28절에서 새로운 사람의 모습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①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거짓을 버리고 서로 진리를 말하라고 교훈합니다.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② 26-27절. “너희는 화를 내도 죄는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진노하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화를 내지 말고 화를 다스립시다(anger management, 창 4:7). 사람은 분을 낼 때 말이나 판단이나 행동에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과격한 감정, 미움, 지나친 말, 불완전한 판단과 성급한 정죄, 심지어 살인 등의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노가 날 때 우리의 감정이 지나치고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치우치지 않도록 조금 멈추어 생각하고 혹은 기도하면서 차분하게 신앙적,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③ 28절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 도둑질은 남의 돈이나 물건을 부당하게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과 탐심, 또 쉽게 살려는 불성실한 마음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돈 벌기가 어렵고 땀 흘려 일하기는 싫기 때문에 남이 벌어놓은 것을 훔쳐서 쉽게 사용하려는 것이 도둑질입니다. 성도는 제 손으로 부지런히 수고하여 수고의 대가를 누리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선한 일을 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④ 29 상반절 “부패한 대화는 결코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부패한’이라는 원어(사프로스 sapros)는 ‘썩은, 나쁜, 불건전한’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불건전하고 나쁜 말을 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라가’[빈 머리, 바보]라고 말하면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2).

⑤ 29 하반절. “오직 세워 주는 일에 쓸 좋은 것만을 말하여 그것이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는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남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지 말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잠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⑥ 30절.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께서는 피조세계를 초월해 계시며 도덕적으로 성결하십니다.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정신과 거룩한 마음, 거룩한 생각, 거룩하게 살려는 의지를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인을 치는 것은 확인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슨 문서를 확인할 때 거기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하나님의 확인입니다.

⑦ 31절 “너희는 모든 쓴 것과 진노와 분노와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쓴 것’이라는 원어는 독한 생각을 뜻합니다. 거기에서 ‘진노와 분노’가 나옵니다. 진노는 악한 생각에서 나오고, 분노는 ‘소리 지르는 것(떠듦)과 비방’으로 나타납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실상, 말은 사람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악의(惡意)’라는 말은 남을 해치려는 소원과 계획을 가리킵니다. 이 말들은 점점 심해지는 과정이라고 보이는데, 처음에는 ‘모든 쓴 것’이요, 그다음에는 ‘진노와 분냄’, 그 다음에는 ‘소리 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모든 악의’로 발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모든 악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⑧ 32절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친절히’는 원어(크레스토스 crestos)는 ‘자비롭다, 친절하다’는 말입니다. ‘상냥히 여기다’는 원어(유스프랑크노스 eusplancnos)는 ‘동정적이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입니다. 또 서로 용서하는 자들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용서는 사랑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지식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인 완전한 인격으로 성장합시다. 사랑 안에서 성장할 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옛사람은 버리고 새 사람답게 살아갑시다. 진리 안에 행하고, 화를 다스리며, 도둑질하지 말고 정당한 일을 하며, 더러운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천국 언어를 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지 말고, 인자한 언행으로 서로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찬송 600장(통 242장)은 “에베소서 주제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 흘려 샀으니 땅 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

2) 온 세계 모든 교회 한 몸을 이루어 한 주님 섬기면서 한 믿음 가지네.

한 이름 찬송하고 한 성경 읽으며 다 같은 소망 품고 늘 은혜받도다.

3) 땅 위의 모든 교회 주안에 있어서 하늘의 성도들과 한 몸을 이루네.

오 주여 복을 주사 저 성도들같이 우리도 주와 함께 늘 살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하나님, 귀한 교회를 주셔서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 입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진리 말씀 속에 항상 새사람으로 거듭나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데 힘쓰게 하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레위기 2장 히브리어 강해설교]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 규례(레 2:1-3)

[추수감사절 주일설교말씀] 다윗의 감사와 찬송(대상 2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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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1021 10b1 [ 문단분해 ] 1-6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와 일치의 권면.

7-16 교회에 주어진 각양의 은사와 그 목적.

17-24 이방인의 부정한 행위를 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서 새 사람을 옷 입을 것.

25-32 모든 악을 버리고, 좋은 언행을 해야 할 것. 그리소도 안에서의 새 생활[엡 4장] [내용개요]

본장에는 만유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과 예정, 구속, 화해 등의 교리와 함께 교회론을 다루었지만, 본장에서부터는 그러한 내용들을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장은 교리적인 윈리에서 실천적인 적용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교리와 실천은 따로 분리되어 있거나 서로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한 사건의 원인과 결과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교리처럼 그에 부응하는 실천적 삶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본 장의 내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1-10절),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11-16절),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17-24절), 새로운 생활의 법칙(25-3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바울은 본장에서 교회가 하나 된 것과 그 하나 된 교회 성도들이 각 자에게 받은 직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교훈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성도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 새 삶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 되었던 자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던 것같이 성도가 서로를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교회의 하나 됨

1)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할 것을 교훈 하면서 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서로가 겸손과 온유로 행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성도들간에 평안의 성령의 줄로 매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를 부르심에 있어서 하나 됨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간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상태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서로 하나 되기 위하여 힘쓸 것을 명했습니다.

a.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빌1:27)

b. 하나님께 합당하게(살전2:12)

2) 교회의 하나 되어야 할 이유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함은 하나님의 하나이신 속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만물을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며 만유를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성도는 한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에 의하여 하나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하나 됨은 그 기능이나 직분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두셔서 성도 각자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성도는 각자의 다양한 직분과 은사를 감당함으로써 교회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세우신 목적을,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증거 함으로써 교회의 하나 됨의 목적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a. 한 성령 안에서 한 몸 된 교회(고전12:13)

b.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감(엡2:18)

3) 믿음과 지식에 하나 되어야 할 교회

바울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았을지라도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 있기에 계속해서 성장하여야 함을 교훈한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자라 가야만 신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세상의 악한 교훈과 풍조에 밀려 요동하며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신앙 성장은 서로 밀어 주고 당겨 주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a.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자라 감(벧후3:18)

b.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아야 함(골2:6-7)

2. 새 사람을 입어야 할 성도

1) 허망한 것으로 행치 말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방인의 허망한 것으로 행치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죄악된 삶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무지함과 완악함으로 행합니다. 즉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 사망의 길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완악함을 인하여 방탕과 죄악의 길로 행하도록 방임하여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위하여 진노의 불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a.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자(엡2:3)

b. 마음이 어두워짐(롬1:21)

c. 깨닫지 못하는 마음(사44:18)

2) 주 안에서 새롭게 지음받은 성도

성도는 예수 믿기 전에는 이방인 중에 있어 그들이 행하는 허망한 것을 좇아 행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르침받은 성도는 이제 새 사람으로 지음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로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성도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a. 마음을 새롭게 함(롬12:2)

b. 십자가에 못박힌 옛 사람(롬6:6)

c. 부끄러운 것을 버려야 함(골3:8)

3. 새 생활의 법칙

1) 거짓을 버리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거짓을 버리고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명했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은 마귀의 자식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어 거짓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항상 참된 것만을 말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가 분노를 발할 수도 있지만 그 분을 오래도록 품고 있으면 사단이 틈을 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도라 하더라도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완전한 의분만을 품을 수 는 없습니다. 잘못하면 자신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바울은 이를 경계한 것입니다.

a. 서로 속이지 말라(레l9:11)

b. 지옥불에 들어갈 거짓말하는 자(계21:8)

c. 성내기를 더디 하라(약1:19)

2) 성령을 근심케 말라

바울은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 것을 명했습니다. 모든 악독과 악행은 성령을 근심시키게 됩니다. 성령은 거룩하시므로 죄가 있을 때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성도의 범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어하고 성령을 소멸시킵니다. 반대로 성도가 선을 행할 때 성령께서는 기뻐하게 되며 성령이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은 성도의 심령 안에 거하시면서 구원의 보증이 되시므로 성도가 성령을 기쁘시게 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a. 반역하면 근심하시는 성령(사63:10)

b. 소멸되는 성령(살전5:19)

c. 서로 용납하라(골3:13)

결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되었으므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모습을 지니게 되며 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입었다는 사실은 현실의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는데, 이는 성도의 거룩한 행실과 선행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죄악 된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좇아 거룩하게 행할 때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기뻐하시며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단어해설]

2절. 용납하고. ‘인내하면서 견디다, 인정하다, 허락하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의생활 미덕 중에서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감사주는 태도를 가리킨다.

7절. 은혜. 원어 는 특히 하나님의 복음의 계획에 다라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 은총을 의미한다. 이는 성도들의 사명 감당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11절. 목사와 교사. 오늘날의 목사나 교회의 교사가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 이단으로부터 기독교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역 교회에서 가리치고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13절. 온전한 사람.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최고의 성숙도를 가진 성도들을 의미한다.

26절. 분.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과도한 화를 내는 태도를 말한다.

31절. 훼방하는 것.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전도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초대교회의 윤리관. 초대교회는 부활을 경험한 공동체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였을 뿐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한 승리였다.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총의 결과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바울에게서 잘 나타나며 베드로에게서도 나타난다.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흩어 졌던 제자들을 다시 모아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은 부활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윤리는 은혜의 윤리였고 부활을 경험하고 용서받은 자들의 윤리였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윤리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으며, 성령의 윤리였다. 이 모든것들이 바탕이 되어 초대교회의 윤리가 ‘코이노니아’ (친교)의 윤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 제 자매가 죄었고 친교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영적교훈]

바울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여 살아가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윤리적 삶으로써 몸소 보여 주라는 권면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승리해야 하며,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세상을 향하여 정죄하거나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개혁하며 주도해 나가라는 권면이기 때문이다.

1019 개역개정 1.

예수만나 || 헵시바 || 1-6 부르심에 합당한 행위와 일치의 권면.

7-16 교회에 주어진 각양의 은사와 그 목적.

17-24 이방인의 부정한 행위를 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서 새 사람을 옷 입을 것.

25-32 모든 악을 버리고, 좋은 언행을 해야 할 것.

2016/02/17(수) “에베소서 4:1-16” / 작성: 정재규

본문 에베소서 4장1-16절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1~3장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과 그 구원의 은혜에 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4장부터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 사는 성도들의 실천적이고도 합당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 됨’입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때 ‘힘써’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온갖 노력을 다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은 즉각 실천해야 하는 중요하고도 당위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키라’는 말은 헬라어로 ‘테레인’인데, 이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의 하나 됨’은 복음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노력함으로 새롭게 하나 됨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의 하나 됨이 주어졌는데, 이 주어진 성령의 하나 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본문 4~6절은 왜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표준 새번역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오,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신분은 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한 주님인 그리스도를 믿고, 한 성령으로 한 세례를 받고, 이룬 한 몸입니다. 따라서 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는 다툼으로 분열되어서는 안 되며,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본문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는 데 필요한 덕목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노력만으로 맺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와 오래 참음, 사랑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로 나옵니다. 이런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때, 맺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나란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아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의 능력을 의지 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며, 인내로 기다려주며,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아량과, 또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7~16절은 본문의 두 번째 주제인 ‘영적 성장’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때 ‘은혜’는 구원을 위한 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교회 구성원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를 말합니다.

11절에 은사에 따른 다양한 직임이 소개되는데,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직임을 주신 목적에 대해 12~15절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첫째는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있으며, 둘째는 성도들이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에서 벗어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번째 단락은 성장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16절은 이 두 번째 단락을 요약하며, 몸의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몸의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몸의 성장 원천입니다. 머리인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어야만 몸을 이루는 우리 각자와 교회공동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는 자랄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을 살 힘과 오늘도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은 모두 그리스도께로부터 비롯됨을 늘 인지해야 할뿐 아니라, 오늘도 나는 그분과 연결되어 있는지 살피고 또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의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또 한 가지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는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소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즉 한 몸을 이루는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자신의 소임을 다할 때,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의 성장과 관련하여 중요한 마지막 한 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 온몸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지체들이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사랑 안에서 자기의 맡은 소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없이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과 ‘영적인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는 다름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가장 다름이 존재하는 곳이 교회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름은 분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 다르지 않음이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다름은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가장 좋은 선물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는 다름이 주는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삶의 수준도 삶의 방식도, 삶의 이해도, 삶의 모습도 다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로 부르셔서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하는 것은, 주님은 이 다름을 넘어서는 한 주님 안에서, 한 믿음 안에서, 한 소망가운데 부르셨다는 것이고 또한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잘 지켜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잊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여 서로를 용납하면, 이 다름은 더욱 우리를 하나되게 만드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나임을 인정하고, 겸손과 온유, 또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은혜로 주신 신분에 걸맞은 삶을 실천적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끊임없이 성장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장의 원천이 되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지 늘 살피고, 그분을 통해 마디로 연결된 우리 각자가 은사로 주어진 소임을 사랑으로 잘 감당하여, 하루하루가 성장의 나날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기도

주님, 자격없는 우리에게 복음의 은혜를 주시고, 복음을 통해 주님과 하나되며, 또 많은 지체들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비록 다름이 있지만, 한 주님아래, 한 소망으로 묶여진 우리이기에 그 다름이 더욱 단단한 하나됨을 이루어 감을 보게 하시고, 머리인 그리스도를 통해 한 지체된 우리모두가 함께 성장하며 온전함을 이뤄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두 주제는 무엇입니까?

2.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말 속에서 ‘힘써’와 ‘지키라’는 단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4. 머리인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고, 각 지체와 이루고 있는 몸을 잘 성장하게 하기 위해 본문이 말하는 중요한 세가

지는 무엇입니까?

5. 성령의 하나 됨을 이루는 것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하는 영적 성장은 성도인 우리의 본분입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또 이것을 지키기 위해 오늘 내가 결심해야 하는 바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작성: 정재규)

에베소서 4장 요약

에베소서 4:1-16

4장부터는 (1-3장에서 정리된 것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공동체(새 인류)가 나아갈 길과 모습에 대해 말한다. 먼저 4:1-24은 새 인류 됨에 합당한 원칙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로 부르심은 입은 자들은 모두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한다(4:1). 그런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는 연합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합의 원리가 중요하다. 4:1-16은 이점을 먼저 다룬다. 모두 함께 연합하여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4:1-3).

이 연합에 대한 권면은 성령, 성자, 성부 하나님이 연합하여 하나로 계신다는 원리에 기초해 있다(4:4-6). 그런데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복수로 교회에 주신다(4:7-16).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는 모두 교회에서 가르치고 다스리어 목양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일한다(4:11). 그들의 노력과 봉사로 교회 공동체는 1-3장에서 설명한 거룩한 공동체 모습을 이루어간다(4:12-16).

4:1-24 vs. 4:25-6:9:원리와 구체화

4:1-16 & 4:17-24의 비교: 새 인류로 만들어짐의 공동체적, 개별적 측면의 노력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참 이스라엘로의 연합) (4:1-6)

4:1의 <그러므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 새 인류, 새 이스라엘로의 연합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4:1)

‘행한다.’

합당하게 행하는 모습

1) 태도:

2) 행동 모습

① 소극적: 용납

② 적극적: 연합

4:4-6의 특징

– 성령 → 주(예수님) → 하나님 …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소개

– 진정한 연합

새 이스라엘 공동체에 이르는 길과 방법 (4:7-16)

시편 68:18의 인용과 해석

올라가실 때에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선물을 주셨다고 했는데, 어떤 선물을 주셨는가?

교회의 지도자들

4:11에 등장하는 사역자들의 종류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자들과 교사들

1) 당시의 사역자들 구성

2) 이 사역자들의 주요 특징

가르치는 사역

사역 모습(직분)의 다양성

4:12에서 ‘봉사(사역)의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① 성도들

② 4:11의 사역자들

1.4.5. • 4:12-13a & 4:14-15a

4:14-15a: (사역자가 있는 이유) 몸인 교회가 온전하게 자라서 그리스도에까지 이르기 위해

4:12-13a: (다양한 사역자가 있는 이유) 다양한 사역자들의 필요성

-복수 지도력

1.4.6. • 4:15b-16의 비유: 연결되어 잘 자라 가는 사람

4:17-24

4:17-24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모습을 개별적 측면에서 권면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옛 모습에서 (참조. 2:1-3) 그리스도로 살리셨으니 (참조. 2:4-7), 이제부터 이방인의 허망한 모습을 따라 살지 말고 (4:17-1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라고 권한다(4:20-24).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새 창조되는 새 인류의 길이다 (4:23-24; 참조. 1:3-4).

4:17-24의 문맥 구조

부정적, 소극적 권면: 이방인의 행함 같이 하지 말라 (4:17-19)

이방인의 행함 같이 하지 말라 (4:17)

cf. 2:2-3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4:18-19: 두 결과와 두 원인

긍정적, 적극적 권면: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라 (4:20-24)

그리스도에게서 영향 받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4:22: 옛 사람의 모습

4:23-24: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됨과 새 창조됨(새사람 됨)

2:4-7

그리스도를 통한 새창조와 구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cf. 롬 12:1-2

옛사람과 새사람

cf. 3:15의 기도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cf. 고후 4:16; 골 3:10

엡 4:25-6:9

4:25-6:9은 새 인류 되는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개별적 측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4:25-5:21), 공동체 측면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5:22-6:9).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 개인의 모습이 4:25-5:2과 5:3-21에서 두 번 반복되어 설명된다. 첫 번째 설명은 일상의 삶 속에서 평범하게 부딪히는 문제들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면 (4:25-5:2), 두 번째 설명은 보다 심각한 문제들과 당시 이방 종교의 영향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 (5:3-21).

그런데 이 두 설명 모두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면서 (4:25-32; 5:3-14), 바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5:1-2; 5:15-21). 예를 들어, 거짓을 버리고 (4:25) 도적질 하지 말아야 (4:28) 할 뿐 아니라, 음행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5:3-5). 그 대신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하며 (5:1-2), 주의 뜻을 잘 이해하고 성령에 충만해야 한다(5:17-18).

4:25-5:2

4:1-24과 4:25-6:9의 비교

원리적 vs. 구체적

1-3장과 4-6장을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

문단 사이 관계의 교차 대조법(chiasmus)

4:1-16 (공동체적), 4:17-24 (개별적) … 원리적

.4:25-5:21 (개별적), 5:22-6:9 (공동체적) … 구체적

4:25-5:2과 5:3-21의 비교

공통점: 개별적 측면의 원리적 얘기

차이점: 첫째 문단: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얘기

둘째 문단: 좀 더 심각한 얘기

일상의 잘못된 길을 반대하며 (4:25-32)

4:25-5:2의 권면 배경

7가지 잘못된 모습에 대한 권면

1) 거짓

– 처음에 등장하는 점

골로새서에도 보면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 언급.

소아시아 지역 교인들에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였을 수도,

엉터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죄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2) 분으로 인한 죄

크리스챤은 화를 내서는 안된다 는 생각은 잘못.

‘화를 잘 내는 분’은 하나님.

분을 내도 죄를 짓지 않도록 권면. 분을 내면 바른 판단 힘들다. 실수할 수 있고…

3) 도적질

남의 것을 공짜로 쓰는 것, (지식, 정보),

4) 더러운 말

5) 성령을 근심케 말라

6) 각종 나쁜 것

7) 용서

– 용서의 중요성

5), 7)의 권면은 당시의 일반적 윤리와 차이가 나는 부분

바른 길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하라 (5:1-2)

하나님을 본받는 자 & 사랑

사랑이란 덕목의 중요성

제시되는 모델: 너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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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1-16절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장 1-16절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첫 번째 갇혔을 때 기록한 네 개의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이 네 개의 성경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들을 가리켜 옥중서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성경들 중에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교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주제이고 골로새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주제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 에베소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으르렁 거리던 사람들이 화해하고 한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남북, 동서로 나누어진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한마음, 한나라가 되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인종과 신분과 나이를 떠나 예수님을 통해 성도로 부름받아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전이 되고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삶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인 습관적로 ‘하나 됩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바른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 됩시다.’는 말은 성도들 사이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도들은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할 일은 그것을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가 된 것은 이미 과거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한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심령에 거하시지만 그분은 한분입니다.

그래서 4절부터 6절까지 말씀에서 모두가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부터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들에게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이유는 바로 몸이 하나며 성령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한 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것은 결코 나뉠 수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 첫 번째가 바로 분열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견대로 교회를 나누었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누어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이 나누어 진적이 없음에도 나뉘었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기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 말씀은 성도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힌다는 말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누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나누고 찢고 교회 내에서 파당을 나누어 싸우는 모든 행위를 책망하면서 무서운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의 분열은 사탄에게 교회를 무너뜨릴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어떤 유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지 않고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평안의 매는 줄’이라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공동체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견의 차이로, 성경의 차이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도 평안으로 서로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렇게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1절과 2절에서 하신 말씀이 전제됩니다.

1절과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4:1,2)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입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다른 들보를 하나 더 세워’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기억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한 말씀이 모든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평안의 매는 줄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묶어주신 그 끈을 끊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힘써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순간 곧바로 한 성령 안에 거하게 되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과 15절은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5:14,1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도 간에 하나가 되는 법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래 참는 것’과 ‘항상 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르지 않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신자나 나름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연약하고 바르지 못한 사람을 용납하는 일에 약합니다. 그 이유는 그 기준이 자신이고 예전의 바르지 못했던 자신을 용납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한 것은 성도와의 관계에서 악한 일을 당했거나 손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항상 선을 따라 행함으로 주께서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 간에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해야 하는 것이 성도에게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란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셨고 그 빚을 형제들에게 갚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 되게 하시면서 우리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11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하나님은 당신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12절과 13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여 오늘 본문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4절부터 20절에서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한 몸의 지체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눈으로, 누군가는 손으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장기의 역할을 하는 이로 교회를 섬기며 세워가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체 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1절부터 27절에서는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림교회가 13주년 감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 우리 중 누구도 힘을 다하지 않은 성도가 없습니다. 나름의 힘을 다했고 역할을 해 주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보이게 누군가는 보이지 않게 누군가는 오른손의 역할을 누군가는 새끼발가락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교회는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군가가 없기를 바라거나 나 하나쯤이야 는 생각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거나 행동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림교회는 우리 모두가 있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12절은 말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 지체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주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또 다른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당장 어떤 것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욕심대로 무엇인가 되지 않아도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가꾸고 주님은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중소형 교회의 성도들이 자주 지칩니다. 정체된 것 같아 지치고,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아 지치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지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심어야 하고 누군가는 가꾸어야 하고 누군가는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삶과 사역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성도를 부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도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라고 말해서 우리의 믿음과 지식이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지식이 자라야 한다는 말은 우리의 믿음이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여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장은 했는데 바른 지식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지식은 많은데 성장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모두 이상한 것입니다. 믿음이 바른 지식위에 세워졌는지 점검해야 하며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지식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성장이 믿음과 지식이 없이 성장하는 것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되는 것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가 강한 태양 아래 나오면 타 죽듯이 바른 지식 위에 세워지지 않은 믿음은 환란이 오면 곧바로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 자체만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외적 성장입니다. 교회성장 세미나나 교회건축 세미나 등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한국교회는 외적 성장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구했던 외적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붕괴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서 그 말씀을 자신의 신앙의 기본으로 삼는 일에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자라가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게 됩니다. 이는 다음 절에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한다는 말과 대조됩니다.

신앙적 어린아이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어린아이 믿음이 아니라 부정적인 어린아이의 믿음입니다. 바르지 않은 가르침에 넘어가고 교계에 벌어지는 일이 말씀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성도입니다. 사탕으로 유혹하면 따라가는 아이처럼 세속의 유혹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 본문의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기에 15절에서 말하기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성도와 교회가 성장하는 수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알레듀온테스’라고 합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말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진리를 말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성도와 교회를 성장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성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와 여러분이 많은 부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계속해서 자라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리의 선포가 사랑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무리 바른 말이라고 해도 미움이나 시기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하기에 진리를 선포하고 그 말씀을 받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라는 데 있어서 중요한 원리가 본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읽은 15절 후반에 ‘그는 머리는 곧 그리스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에 입각하여 기록한 말씀이 1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머리를 통해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기록한 골로새서는 이 원리를 더욱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10)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천사숭배, 절기, 먹고 마심, 안식일, 고행”등의 바르지 않은 것을 지켜 신앙생활하는 그들에게 그 바르지 않은 것들을 통해 신앙생활하지 말라고 하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록되기를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라”(골2:29)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제일 원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배우고 그것을 지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머리를 붙들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교회가 그리스도가 없거나 그리스도 이외의 것이 들어온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세속의 가치관과 싸우고 가면을 쓴 거짓 복음과 싸우고 편협하다는 말을 듣지만 진리가 아닌 것과는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수성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만을 붙드느냐 아니면 다른 것도 함께 붙들고 있느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교회설립 13주년 감사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오래 된 것도 자랑이 아닙니다. 외형적 성장을 이룬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에 근거해 바르게 자라고 있느냐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을 다해 지켰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하며 또 다른 성도들이 우리 안에서 태어나 주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일을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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