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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0-18 KRV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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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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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7(수) “에베소서 6:10-24” / 작성: 강요섭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모든 죄와 죽음과 악한 영들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입니다. ‘또 그들을 미혹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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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10절-13절 전신갑주를 입으라 – 네이버 블로그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전신갑주를 입으라 ·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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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10-17절/성도의 영적 무장 – 다음블로그
영적 싸움을 잘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해지려면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군인이 갑옷도 입지 않고 싸울 수 없습니다. 무기도 없이 싸우러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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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영적 전쟁에서 필요한 최고 무기 (에베소서 6장 10 …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
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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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10-24절 말씀 묵상
에베소서 6장 10-24절 말씀 묵상.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비된 삶의 모습과 더불어 이제는 전투 태세에 들어간 군인과 같이 …
Source: meditatio.tistory.com
Date Published: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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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에베소서6장10~18절) – 에스라바이블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18) 2011년6월17일 본문말씀 : 엡 6:10 ~18 에베소서 배경 : 옥중서신, 바울 1~3장 :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의 신분 (비밀 …
Source: ezrabible.net
Date Published: 10/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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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영적전쟁(에베소서 6장 10~13절) 10.끝으로 너희가 …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에베소서 6장 10~13절) 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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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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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베소서 6 장 10 절
- Author: SamilChurch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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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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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0-18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에베소서 6:10-18 KRV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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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
자녀와 부모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ㄱ)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과 상전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1)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2)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2021/04/07(수) “에베소서 6:10-24” / 작성: 강요섭
본문 에베소서 6장 10-24절
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찾아오는 큰 구원의 감격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제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믿음과 현실의 괴리감속에 자신이 생각했던 푸른 초장은 펼쳐지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면 당혹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고 평안만 가득할 줄 알았고, 형통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차가운 마룻바닥처럼 실패와 고통과 아픔과 삶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에는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에베소서를 기록하여 교회 내 갈등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가정과 일터에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오늘 6장 10절부터 24절까지 서신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그 마침표를 찍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어떻게 무장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함께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10-17절)
(10-13)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강건하여 질 것을 명하는데 ‘강건하여지고’라는 명령법 수동태를 사용하여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 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적들과 싸움에 있어서 스스로 강하게 한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 지성이 발달하고 육체를 단련하여 강한 힘을 가지게 되고 정신수련을 하여 견고한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적은 12절에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혈과 육 곧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더 지혜롭고 강하고 견고한 쪽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적은 세상의 주관자 곧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들과의 싸움에 있어서 육신을 의지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강건해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란 군인이 전투에 나가기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전신갑주를 ‘입으라’, ‘취하라’ 두 번이나 명령형동사를 사용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까? 우리가 악한 영들과 싸우고 전쟁이 끝난 후에 굳게 서 있기 위함입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 최후 승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기까지 우리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죽음이든, 우주적 종말이든 우리의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날까지 우리는 선줄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이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합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의 공격이 찾아올 때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말씀으로 대적과 싸웠지만 그가 전쟁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되는 한가로움 속에 오히려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여 큰 수치와 고통을 겪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먼저 ‘서서’라는 것은 싸울 준비가 된 자세를 의미합니다. 전투에 임하는 자가 누워있거나 앉아 있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다가올 적군과 싸울 수 있도록 긴장감을 가지고 대처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음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로마 군인의 허리띠는 현재 사용하는 얇은 허리띠가 아니라 배를 보호하고 강하게 받쳐주는 힘의 근원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힘의 근원은 바로 ‘진리를 아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주춧돌을 내 힘과 지혜가 아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또한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합니다. 호심경이란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금속으로 된 가슴 판 곧 흉패를 의미합니다. 적의 공격에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가 심장과 폐가 있는 가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의의 호심경’으로 보호하라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로움’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정죄합니다. ‘니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냐?,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로움을 자랑하며 그 정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둘째는 그 ‘의로움’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그 의로움을 닮아 삶의 열매를 맺어갈 때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돌아오는 정죄의 공격을 막아 하나님의 의로움을 세상에 보여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말씀합니다. 신발은 가는 곳에 그 발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곳에 남아야 하는 것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고 구원에 이르러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이 평안의 복음을 전하며 ‘전도자’로 살기 힘써야 합니다. 행여나 내 삶의 발자국에 ‘다툼, 갈등, 미움, 증오’의 발자국만 남기고 있다면 다시금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걸어 나가십시다. 다음은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이 방패는 작은 방패가 아닌 가죽을 몇 번 덧대서 만든 큰 방패를 의미합니다. 특히 적의 불화살 공격을 대비하여 전투 전 방패를 물에 담갔다가 사용하면 불화살이 방패에 박혀도 곧 불이 사그라지며 꺼지고 맙니다. 이는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여러 불화살들을 막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방패인 것을 알려줍니다. 현실의 고난과 아픔과 실패 속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게 맞는지, 하나님은 왜 나를 바라만 보고 계신 것 같은지 의심되고 불안감이 엄습할 때 나를 위해 그 아들까지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을 신뢰하면 이내 비온 뒤 날이 개듯 마음속에 다시금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다음으로 ‘구원의 투구’를 착용하라고 합니다. 투구란 얼굴과 목을 보호하는 도구인데 특히 ‘구원의 투구’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적 전투가 힘들고 곤할 때 우리는 좌절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되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쓰러질 때 두 발이 무겁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감이 찾아올 때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모든 죄와 죽음과 악한 영들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입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장 14절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미 우린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긴 싸움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위험과 고난과 아픔을 무릅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앞서 싸우시는 장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 전투를 끝마칠 때까지 서서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것 같고 포기하고 싶으십니까? 조금만 더 견뎌 함께 나아 가십시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싸우면 영원한 승리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하여 모든 것을 분별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이 말씀의 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예수님께 불화살을 쏘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의도와 목적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분별하며 그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마귀는 악한 간계 곧 거짓으로 우리를 공격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 합니다. 그 모든 마귀의 술수를 파악하고 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마귀의 간계는 속이는 것이기에 우리의 지혜로 그것을 분별하기 힘이 듭니다. 이것이 나를 죽이는 것인지, 살리는 것인지 알아차리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간계에 넘어져 삶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오직 나의 지혜를 내려놓고 말씀을 붙들 때 그 말씀의 검을 든 우리의 모습을 볼 때 마귀는 두려워 떨며 그 말씀 앞에 도망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의 검으로 유혹을 물리치셨을 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우리의 삶에도 말씀의 검을 붙들면 마귀가 두려워 떠나갈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라(18-20)
18절에서 20절까지는 기도에 힘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특히 기도와 간구를 할 때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깨우치고 기억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이 명하는 바를 따라 구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비 그리스도인의 기도제목이 대상 외엔 다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보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 뒤에 삶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따라옵니다.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달라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전쟁에 참여한 군인에게 오늘의 병참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군인이 마땅히 필요한 식사, 전투복, 무기가 아니라 갑자기 고급 스포츠카를 사달라고 한다면 그 요구가 어떻게 될 것은 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간구가 나의 정욕을 이루기 위함인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세우기 위함인지 분별함이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고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 위함이며 또한 기도를 통해 응답받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더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알아서 우리 삶의 필요들을 채우신다면 우리의 삶에는 응답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과 믿음보다 형통으로 인한 교만과 안일함과 나약함에 빠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때론 기도하지 않은 것도 주시는 넉넉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늘 잊지 않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실하게 나와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 넘치는 창고에서 필요한 것들을 선하신 뜻 가운데 이 땅에 부어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19-20)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사도바울이고 교회 식구들에게 기도제목을 부탁한다면 당연히 무엇을 부탁해야 합니까? ‘출옥’을 위한 기도제목을 부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저는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니 어서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이 답답한 감옥에서 속히 나올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자신이 당할 환난과 고난이 복음에 유익한 거름이 될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안위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옥 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의 제목을 나눕니다. 마치 출산하는 어머니가 위급한 상황가운데 자신의 생명보다 아이를 먼저 걱정하듯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자신의 안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기도제목은 우리의 기도를 부끄럽게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의 앞길과 평안과 형통을 위해 기도했지 정작 우리 자신과 가정과 형제, 자매가 주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오늘 코로나19로 인해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통해 생명의 복음이 담대하게 증거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다. 다함께 모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시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온라인을 통해 온전히 증거되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 하십시다.
마지막 인사말(21-24절)
(21-22)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성경 인물 중에 두기고는 많이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그가 차지하는 분량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보내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를 전달 할 때 파견되기도 했으며 디도의 후임으로 그레데와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두기고는 멀리까지 여행해야 하는 궂은 일, 누군가가 떠나 돌보아야 하는 교회를 대신 섬기는 일 등 주목받는 일이라기보다 피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감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주목받지 않더라도, 힘이 드는 일임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임에도, 두기고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그런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소개하며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때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줄 것이라 생각되는 사람, 두기고는 그런 ‘진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두기고를 사랑하였고 특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두기고 같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비록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편한 자리, 인정받는 자리, 주목받는 자리를 원합니다. 적게 일하고 크게 칭찬받는 자리 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두기고는 삶으로 도전합니다. 하나님께서 궂은일을 맡기려 하실 때 생각나는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23-24)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에베소 교우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안과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또한 그 사랑을 받은 에베소의 교우들이 그 사랑의 반응가운데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참으로 크고 화려하고 멋진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세속적 가치관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에베소 교우들이 변치 않는 신실한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에베소와 같이 아니 에베소 보다 더한 세속적 가치관과 쾌락의 문화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변함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질 최후의 그날까지 전심을 다해 싸우고 승리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해이하고 무뎌진 우리의 마음을 돌아봅니다. 주님 주신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싸워야 함에도 게으름과 나태함속에 주저앉아 최후의 영광에만 동참하길 원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을 회개합니다. 이 시간 다시금 우리의 영혼이 깨어 바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을 때에 도저히 빈틈을 찾을 수 없어 으르렁대며 물러가는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항상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실 때에 두기고와 같이 편히 쓰시는 그릇으로 준비되어 하나님 아버지에게 ‘진실된 일꾼’으로 인정받는 주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는 어떤 간계를 사용하는지 성경 속에서 찾아봅시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생각해보며 현재 나에게 없는 혹은 약해진 부분은 없는지 묵상해봅시다.
3. 나의 기도는 성령 안에서 드려지고 있는지 성령과 무관한 기도의 제목들은 없는지 묵상해봅시다.
4. 바울이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그가 맡긴 궂은일을 묵묵히 감당해준 두기고의 삶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해봅시다.
(작성: 강요섭)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13 전신갑주를 입으라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는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의 교리적인 내용을 살펴본 후에, 이어 4장부터 6장까지 그 교리에 따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의 예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특히 사도는 믿는 자의 ‘행위’(peripateo)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다시 간략히 정리하면 4장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 일치 안에서, 그리고 거룩함으로 행하고, 5장과 6장에서는 사랑 안에서, 빛 안에서 그리고 지혜롭게 행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6장 10절 이하에서는 전신갑주를 입고 전투자세로 서라는 peripateo를 요구한다.
사도는 10절에서 “끝으로”(Tou loipou)라고 “시작하여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하면서 11절에 “전신갑주”(panoplian)를 입으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peripateo를 명하는 것으로 보아 “끝으로”라고 쓴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Tou loipou라는 말은 “지금부터는”(henceforth)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거룩한 공동체로 하나가 된 교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성도가 된 이제부터는, 즉 지금부터는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사탄 마귀의 간계(methodeias 악을 저지르기 위한 교모한 수단과 방법)를 대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계략에 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끝으로”가 아닌 “지금부터는” 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전신갑주는 전쟁터에 나갈 때 군사들이 입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전신갑주를 넘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는데, 이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 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들의 씨름(싸움 pale)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archas)과 권세들(exousias)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kosmokratoras)과 하늘의 악의 영들(pneumatika tes ponerias)을 상대하는 것이라 본다. 따라서 성도들의 영적인 생활은 피흘리기까지 처절하게 싸워야 할 싸움터 곧 전쟁터가 삶의 현장이기 때문에 여기서 만나는 영적인 ‘마피아’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안 된다.
사도는 이처럼 영적인 마피아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데, 13절에서는 다시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라고 한다. 혹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미래적인 의미로 이해하여 최후의 승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본래의 뜻은 최후승리보다는 앞에서 서술한 것에 대한 요약이라 봄이 옳을 것 같다. 말하자면 위와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아간다면 모든 대적들을 능히 대적할 수 있을 것임을 재인식시키는 구절로 봄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특히 13절 마지막의 “서기 위함이라”고 할 때의 “서기”(stenai)란 ‘견디기 혹은 저항하기’(antistenai)라는 뜻을 담고 있어, 위에서 언급한 영적 마피아를 대적하기 위하여 설 준비를 하는 의미(to stand ready or prepared)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후승리가 아닌 요약적 의미로 봄이 옳을 것 같다.(이하 계속/ 구모영씀)
영적 분별력
성경에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군사’라는 말은 군인이라는 뜻입니다. 군인은 전쟁을 위해서 특별하게 뽑힘을 받은 사람이며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무장하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본문은 영적 무장의 필요성과 그 방법을 알려줍니다.
1. 영적 무장의 필요성
첫째. 강건해지기 위함
10절에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연약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일도 강건한 사람이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을 잘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해지려면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군인이 갑옷도 입지 않고 싸울 수 없습니다. 무기도 없이 싸우러 나가는 군인은 없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군인은 민간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마귀를 이길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서 힘과 능력을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그러면 강하고 능력있는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함
11절을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의 간계’란 ‘마귀의 간교한 계획’을 의미하는데 마귀가 성도를 시험하고 공격할 때 아주 간교하게 계획을 세워서 시험하고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생각 없이 대충대충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시험할 때도 하나님 말씀을 직접 받지 못한 하와를 먼저 시험하고 그 하와를 통해서 아담을 미혹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와를 시험할 때도 하나님 말씀과 거짓말을 섞어서 시험했습니다. 오늘날도 시험할 때 ‘저 사람은 마음이 약한데 낙심시키면 넘어지겠구나’ ‘저 사람은 혈기를 잘 부리는데 주일 아침에 화를 내게 만들면 교회에 안 가겠구나.’ ‘저 사람은 돈에 욕심이 많은데 돈을 가지고 시험하면 넘어지겠구나.’ 이렇게 마귀는 계획을 세워서 공격합니다. 이런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마귀가 없는 곳이 없고 마귀가 시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셋째. 마귀를 대적하고 서기 위함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은 육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며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고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바로 알고 싸워야 합니다. 자기편끼리 싸우면 안 됩니다. 내부 총질하면 마귀만 좋아할 것입니다.
13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마귀를 대적하고 서기 위해서는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성도는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면 죄를 짓게 되고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싸움이 끝한 후 서 있는 사람은 승리자입니다. 쓰러지거나 넘어진 사람은 죽은 사람이거나 패한 사람입니다. 성도는 넘어지지 않고 서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무장한 사람은 승리하고, 무장하지 않은 사람은 실패합니다.
2. 영적 무장의 방법
첫째. 진리의 허리띠(14절)
허리띠는 무엇입니까? 옷을 입은 다음에 허리를 동여매는 것인데, 허리띠를 매는 이유는 활동하기 편하고, 힘을 쓰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천과 같은 긴 옷을 겉에다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것을 끈으로 묶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힘을 쓰려고 할 때는 허리 때를 단단히 매야 합니다. 마귀와 싸우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몸의 허리띠가 아니고 마음의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13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여기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힘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느슨하고, 산만하고, 흐트러져있는 마음을 꽉 잡아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허리띠’는 말은 진리의 말씀으로 마음을 동여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붙들어 매고, 말씀에서 힘과 능력을 얻고, 말씀으로 자기를 단속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마음의 허리띠를 매는 것부터 못하게 합니다. 즉 마음이 갈라지게 하고, 복잡하게 하고, 산만하게 합니다. 마음이 나누어지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4에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예배시간에 말씀 들을 때 딴 생각하게 만들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자꾸 산만해지게 만듭니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 기도를 못하게 하고, 또 의심하게 만듭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부패하고 산만해질까요? 말씀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딤전 6:3-5).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으로 마음의 허리띠를 단단히 묶어야 합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14절)
여기서 말하는 ‘의’는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칭의를 가리키고, 호심경은 목에서 가슴과 배 부분을 가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10에 보면 마귀는 밤낮 참소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밤낮 정죄하고 참소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정죄하고 폭로하고 비방하고 남 지적하고 참소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죄를 들춰내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에게 죄를 알려주는 것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이시고 또 하나는 마귀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의 하나는 우리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를 회개시켜서 용서받게 하고, 죄에서 해방되고 결국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가 죄를 지적하고 공격하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여 멸망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악한 사람이야.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야.’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귀가 이렇게 공격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 나는 죄인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피 흘리셨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의로 나에게 옷 입혀 주셨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마귀가 공격할 때 나의 의와 내 공로로 막으려고 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의를 붙들고 그것을 가슴에 붙이고 나가야 합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내가 의롭지 않지만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도 죄 사함의 확신이 없고 예수님의 의를 붙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의 호심경이 없는 사람입니다. 의의 호심경은 악한 마귀의 궤계에서 나를 지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적용하여 다른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서로 세워주는 교회가 됩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만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8:1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셋째.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15절)
사람이 어디를 가고 활동하려면 신을 신어야 하는 것처럼 성도가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걸어가고 말씀대로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우리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게 되고 우리는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 평안의 복음을 신처럼 신고 다니며 만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귀는 성도로 하여금 전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도가 마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영적무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 많이 하는 성도치고 시험에 드는 성도가 없습니다. 복음증거하면 자신의 신앙이 건강하고 튼튼해집니다. 왜냐면 그것이 자신의 무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 제자들이 모여서 병 고치고,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할 때 핍박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칭찬하면서 ‘저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증거하며 전도할 때 핍박합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즉시 가서 전도했습니다. 이 여자가 전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런 전도를 듣고도 그 동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10:15에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들의 발이 이런 복된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발이 죄 짓는 곳으로 달려가는 발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주는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증거는 나 자신에게 힘과 능력을 줍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16절)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마귀는 성도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불화살을 쏩니다. 질병이라는 불화살,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불화살, 분노, 혈기, 미움의 불화살, 낙심과 절망의 불화살을 우리를 향해 쏩니다. 이 불화살을 막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화살이 날아올 때 살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믿음의 방패로 막으면 됩니다. 마귀가 불화살을 쏠 때 믿음의 방패가 없는 사람은 불화살이 날아와서 몸에 꽂힙니다. 그러나 방패가 있는 사람은 불화살이 방패에 꽂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방패가 없는 사람은 항상 시험에 들었다고 하고,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가 있는 사람은 마귀가 불화살을 쏘면 믿음의 방패로 막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올 때, ‘믿음의 방패’로 막으면 끝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17절)
17절에 “구원의 투구”입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8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구원의 투구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한 것인데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를 참으로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은 환난은 연단을,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확신이 없으면 늘 불안합니다. 갈등합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면 소망 가운데 즐거워합니다.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이고, 내가 갈 길이 어떤 길인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도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섯째. 성령의 검(17절)
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지금까지 배운 것들은 다 방어용인데 이것은 공격용입니다. 아무리 방어를 잘해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방어만 하고 공격하지 못하면 위험에 빠집니다. 마귀를 이기려면 공격용 무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성령의 검이 필요합니다. 그 성령의 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배워서 말씀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강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바로 검입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마귀의 시험과 공격을 어떻게, 무엇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까? 말씀입니다. 마귀가 공격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았을 때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마귀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할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렇게 물리쳤습니다. 또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 할 때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또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할 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시며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말씀은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입니다. 이 말씀을 사용하십시오. 마귀의 시험이 올 때마다 말씀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무장하지 않고 싸우러 가는 군인은 없습니다. 무기도 없이 싸우는 군인은 당연히 실패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전신을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무장하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시험을 이기고 말씀 위에 굳게 설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 목사
20190122 영적 전쟁에서 필요한 최고 무기 (에베소서 6장 10-20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http://thececc.com/wp-content/uploads/2019/01/201209122.mp3 전쟁에 나가는 장수는 빈손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킬 방어구를 착용하고 손에는 적군을 무찌를 칼, 창, 활과 같은 무기를 쥐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의 전쟁터에만 해당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군인들을 보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방탄모를 씁니다. 방탄복을 입은 특수 부대도 있습니다. 손에는 칼 대신 총을 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이처럼 방어구와 무기를 반드시 소지 합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에 보이는 총을 들고 사단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방탄모를 쓰고 다닌다고 사단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방어구와 무기를 가지고 영적 전쟁에 참여하면 될까요? 어떻게 이 영적 전쟁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군대 훈련소에 가면 무기를 주기 전에 먼저 훈련부터 합니다. 군인은 뭐니뭐니 해도 정신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대 유격훈련장에 가면 이런 글귀가 써 있습니다. “훈련 중에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투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같다.” 군인에게 무기를 주기 전에 훈련을 통해서 육체강화 정신강화부터 합니다. 오늘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Be strong in the Lord in his mighty power) 성도의 힘은 그의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거 잘 들고, 체력이 좋다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모든 힘의 근원 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강하여지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 키는 ‘주 안에서’라는 표현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할수록 강해집니까? 힘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연합을 이룰수록 강해 집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자가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 입니다. 10절을 보면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 헬라어를 보면 단순히 강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강해지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10절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떠나지 않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한 채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자라갈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빌립보서 4장 13절 기억나십니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어디서 할 수 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우리는 주 안에서 살아갈 때 강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죠. 힘의 근원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깨닫고 포도나무에 접붙임 바 된 가지처럼 주님께 계속해서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영혼이 주 안에 거하여 강해진 후에 드디어 영적 전쟁을 위한 전신갑주를 입게 됩니다. ‘전신’이란 말은 ‘온몸’을 뜻하고, ‘갑주’란 말은 ‘갑옷’과 ‘투구’를 합쳐서 갑주라고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궤계, 마귀의 교묘한 전략과 술책을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흉악한 이리처럼 성도들을 해치고, 사나운 사자처럼 먹이를 찾는 사단을 맨몸으로 상대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귀의 궤계를 능히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주신 장비들로 완전무장 하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총을 들고 싸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혈과 육 즉 육신을 가진 대상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즉 마귀의 세력을 대적한 싸움 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해야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총 여섯 가지 장비를 소개했습니다.
첫째로 진리의 허리띠(14a) 입니다. 오늘날은 옷이 발달해도 허리띠가 없어도 바지를 단추에 있는 자크를 잠그고 단추를 매면 바지가 흘러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옷은 허리띠가 없으면 옷이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쉽게 흘러 내렸습니다. 적과 싸워야 하는데 옷이 벗겨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싸움이 되겠습니까? 군인에게 허리띠를 차는 것은 필수 입니다. 자, 그런데 그냥 허리띠가 아니라 ‘진리의 허리띠’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우리 영혼 전체를 꽉 붙잡아주고 있는 것이죠. 거짓 사상과 교리들을 무찌르고 악마의 유혹과 은밀한 꾐을 분별하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흐트러짐 없이 서 있게 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 입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성도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를 꽉 잡고 있으면 마귀의 술책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의의 흉배 (14b) 입니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가운데 심장만큼 중요한 기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팔과 다리가 잘려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심장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병사들은 원수의 심장을 향하여 화살을 쏘고 창을 던졌습니다. 전쟁에서 가슴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 했습니다. 병사의 가슴을 보호해주는 방어구가 바로 흉배 입니다. 바울은 의의 흉배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우리가 무언가 도덕적이고 착한 일을 해서 얻는 의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흉배는 녹슬고 강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 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죄에 빠지도록 유혹 합니다. 또한 죄에 빠진 사람을 정죄합니다. “너가 무슨 그리스도인이냐! 너 같이 사는 사람이 무슨 집사냐? 너 같이 말씀 읽는 것도 게으르고 기도 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성도냐?” 사단이 우리를 자꾸만 정죄하고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그 때 의의 흉배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33-34절 말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 34a)” 물론 이 의의 흉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입니다만 우리 역시 도덕적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활을 할 때 마귀의 참소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은 분명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때 의의 흉배는 그 어떠한 사단의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강한 갑옷이 됩니다.
셋째, 복음의 신 (15) 입니다. 이 당시 로마 군인들이 신던 신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무좀을 방지하기 위해 발가락 부분은 드러내고 발목과 정강이 부분에는 장식용 끈이 달려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센들하고 비슷합니다. 이는 병사들이 긴 행군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장비였으며, 여정 중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습니다. 또 이 신을 신어야 험한 곳도 갈 수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는 오늘날처럼 길이 반들반들하게 깔려 있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돌과 자갈로 울퉁불퉁 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신을 꼭 신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어디에 가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생명의 부활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복음 앞에 사단의 권세가 무너집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그 곳에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원수가 서로 화해하게 됩니다. 화목이 찾아옵니다. 복음은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사단이 쉽게 우리를 지치지 못하게 합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 입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6절에서 ‘모든 것 위에’라는 말은 모든 무기 중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장 급할 때 찾는 두 가지 무기가 칼과 방패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기록된 방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둥근 방패가 아니라, 전신을 가릴 수 있는 장방형 방패 입니다. 이 당시 적군들은 화살 끝에 송진을 발라서 불을 붙인 후 사격 했습니다. 그래서 불화살 맞으면 온 몸이 타 죽었습니다. 그래서 불화살을 막기 위한 방패의 역할을 참 중요 했습니다. 바울은 방패를 믿음의 방패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자꾸만 성도에게 불신의 불화살을 쏩니다. “야, 김 집사. 너 지난 번에 기도한 거 그거 어떻게 되었어? 아무 응답 없지? 거봐 기도해도 아무 소용 없다니까? 박 집사 자네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지난 주에 교통사고 당했다며?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자네가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혹시 하나님 안 계신 것 아냐?” “최 집사, 자네는 왜 병이 안 나고 계속 그리 몸이 약해지나? 하나님은 자네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거야… 이 집사 자네는 왜 그리 가정 형편이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나? 하나님은 자네를 버리셨다네…” 이처럼 사단이 한 번 맞으면 치명적인 불화살을 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사단이 쏘는 불화살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냐, 하나님은 날 사랑하셔! 하나님은 절대 나에게 악을 행하실 분이 아니야!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셔! 지금 당장 내 앞에 문제가 있어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날 붙들고 계시지!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리라!” 믿음으로 원수가 쏘는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는 지금도 무차별로 많은 화전을 쏘고 있습니다. 온갖 의심의 화살을 쏩니다. 이거 맞지 않도록 믿음의 방패를 늘 놓지 말고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 (17a) 입니다. 심장처럼 중요한 것이 바로 머리 입니다. 머리를 보호 안하면 적이 도끼나 망치로 내리치는 공격에 치명타를 입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군인은 반드시 투구를 써야 합니다. 바울은 구원의 투구라고 했어요. 구원의 확신을 말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 주셨다는 믿음과 주 예수의 재림 날 우리의 승리가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 입니다. 이러한 굳건한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성도를 사단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줍니다.
자 여태까지 나온 5가지 전신갑주의 특징은 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구’라는데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적을 공격할 무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여섯째, 성령의 검 (17b) 입니다. 17b절 보십시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검은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입니다. 그런데 17절을 보니까 이 성령의 검이 사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을 성령의 검 입니다. 사단을 무엇으로 무찌릅니까? 말씀으로 이깁니다.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 입니다. 아무리 검이 있어도 날이 무디면 적을 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인은 늘 자신의 검을 날카롭게 날을 새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될 때 성령의 검이 날카로워지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히 4:12). 이 말씀이 원수 사단의 모든 궤계를 무찌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에게 시험 당하실 때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쟁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 입니다. 진리로 허리를 띄 띠십시오. 의의 흉배를 착용하십시오. 복음으로 예비된 신으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놓치 마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착용하십시오. 성령의 검을 높게 드십시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지십시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베소서6장10~18절)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0~18)
2011년6월17일
본문말씀 : 엡 6:10 ~18
에베소서 배경 : 옥중서신 , 바울
1~3 장 :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의 신분 ( 비밀인 교회 )
4~6 장 : 주님안에서의 신자의 상태
6 장 10 절 ~ 그리스도인의 싸움에 대한 권고 !
그리스도인의 싸움 3 가지 : 육신과의 싸움 – 빛의 갑옷 ( 롬 13:12), 세상과의 싸움 – 의의 병기
마귀와의 싸움 – 하나님의 전신갑주
10 절 –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è 종말로 ( 로이폰 , 더더욱 , 그밖에 ) – 서신을 마치려 하는 …
è 사단의 많은 군사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방해하며 각 군인을 넘어뜨리라는 명령을 받고 있음
è 사단의 관심은 앞선 일꾼들 .. 평범한 .. 잠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시간 낭비하지 않음 .
è 하나님의 가장 좋은 군사는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자
11 절 – 마귀의 궈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è 두번째 명령은 하나님의 갑옷에 대한 필요성 !
è 하나님의 전신갑주 ( 파노플리아 , 하나님의 모든 병기 )
è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전신갑주만이 우리를 온전히 보호하실 수 있음
è 사단은 낙심 , 좌절 , 혼돈 , 도덕적 실패 , 교리적인 오류 등 다양한 공격방법 , 무기 가지고 있음
è 그는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언제나 그것을 공격 !!
12 절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è 우리의 씨름은 “ 혈과 육 ” 에 대한 것이 아님 . 때때로 인간이 대리자 되긴 하지만 진정한 적은 아님 ,
è 악의 세력 , 범죄한 천사들 ,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 !
è 눈에 보이지 않고 , 막강하고 , 전략이 뛰어난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대항하여 포진해 있음 .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갑옷은 사단의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완전하다 !!
13 절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è 그러므로 .. 취하라 : 하나님의 자녀가 감사하게도 스스로 무기를 만들도록 방치되어 있지 않음, 그 무기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이다 !
14 절 –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è 1. 진리의 띠
“ 너희 허리 ” : 힘의 자리 , “ 띠를 띠다 ” : 장애물을 제하는 것 , 행동을 취하기 위해 준비
“ 진리 ” :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붙잡고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
è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것들을 정리하는데 진리의 말씀을 사용 !
è 탐욕 , 부 , 명예 , 권세욕 , 육욕 , 안락한 삶 , 호화스러운 삶 .
è 그리스도인이 싸움에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을 등한시 하기 때문일 것이다 .
“ 성경이 당신을 죄에서 멀게 해 주든지 아니면 죄가 당신을 성경에서 멀게 해줄 것이다 .”
è 2. 의의 흉배
: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 !
음침한 것 , 의문스러운 것들을 피하는데 예민한 양심
타협하지 않고 , 뇌물 받지 않고 , 세금을 정직하게 , 낙제할지라도 답지 훔쳐보지 않음 ..
15 절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è 3. 복음의 신
: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준비
우리의 진에서 안식하며 방심하면 위험에 처하게 됨
“ 주여 오늘 저를 영혼들에게로 인도해 주소서 . 문을 열어 주셔서 누구에겐가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 라는 기도로 매일 아침 이 신발을 신는다 .
16 절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è 4. 믿음의 방패
: 믿음의 방패 ( 투레오스 , 커다란 장방형 방패 )
-> 조그만 원형 방패가 아닌 몸 전체를 가리우는 문짝 같은 로마의 대형방패
화전 : 화살 끝에 불이 붙어있는 고대의 불 화살
-> 영혼속에 위험한 불이 돌 수 있는 불신앙의 생각들
마귀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 , 난심 , 시험 , 거짓송사 , 악하고 헛된 공상 ..
è 약속들을 믿고 나아갈 때에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함 . 단순히 “ 나는 믿는다 ”
믿음의 방패를 굳게 잡는 것이 필요 !!
17 절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è 5. 구원의 투구
: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 ,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대한 지적인 공격 !
è 성경은 모순이다라는 고등비평가 , 자유주의 신학자 , 인간의 이론 , 사색 , 철학 등 .
è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
è 6. 성령의 검
: 때에 가장 적합한 어떤 특정한 부분의 말씀 .- 성령에 의해 상황에 적합하게 주어지는 말씀, 예수님이 “ 기록되었으되 ”.. 우리는 말씀을 암기하거나 알고 있어야 함 .
18 절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è 7. 기도 : 군인들이 본부와 갖는 필수적인 대화통로임
è 그날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보이지 않는 천군을 부르기도 하고 , 승리를 거둠 .
è 기도에는 ( 끝까지 지켜보는 ) 경계와 ( 지속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 인내가 필요
결론
è 우리 모두는 이 싸움터에 있음 . 끝까지 싸우며 부상당하지 않도록 서로 힘을 합하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함 . 누군가 넘어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임 !
è 죤 돌세이는 사단의 공격에 대한 신자들의 방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
“ 나는 오늘 기도처에서 사단과 처절한 싸움을 싸웠다 . 나는 하나님을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그곳에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었다 . 그는 내게 ‘ 너는 기도할 수 없어 . 오래 전부터 벌써 틀렸는 걸 . 무릎을 꿇고 무어라고 말은 하겠지만 네가 알다시피 너는 진정한 기도를 할 수는 없어 ’ 라고 소리를 질렀다 . 그래서 나는 내 투구를 귀까지 내려오도록 깊숙이 내려섰는데 그로 인해 그의 소리가 적게 들렸으며 두려움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 나는 나의 다른 갑옷들을 점검해 보았다 . 발에는 신발을 신고 있었고 허리에는 진리의 띠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꽂혀 있었으며 가슴에는 내 의의 흉배가 가슴을 보호하고 있었다 . 나의 믿음의 방패는 손상 되지않고 그대로 있었고 사단의 화전은 방패에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 나는 사단이 부끄러운 얼굴로 슬그머니 물러가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è 진리의 띠 , 의의흉배 , 복음의 신 , 믿음의 방패 , 구원의 투구 , 성령의 검 , 기도 !!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까?
키워드에 대한 정보 에베소서 6 장 10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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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교회론(1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01)’ / 에베소서 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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