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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 욥기 17강 \”앨리후라는 사나이\”
(본문) 욥기 32~33장
1. 끼어들기
2. 욥을 논박함
3. 하나님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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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 의 뜻 는 누구인가 의 발언 는 누구 – 53suhwan
엘리후 의 뜻. 엘리후의 증언이 욥기의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것은 엘리후가 욥과 욥의 세 친구들이 주고받는 논쟁 사이에 낄 틈이 엘리후란 …
Source: hyk3666.tistory.com
Date Published: 5/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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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엘리후의 의미 – 네이버 블로그
이 사람도 욥의 친구인가요? 또 하나님은 앞의 세사람에게 화를 냈을때 왜 엘리후는 포함하지 않았는지요? … 그는 누구인가?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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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02_word01 – 욥의 네번째 친구 엘리후 – 이한교회
엘리후는 그를 소개할 때 람 족속 부스 사람 브라겔의 아들 엘리후라고 소개한다. 람 족속 부스 사람은 에돔 지역의 사람임을 뜻하는데,. 욥과 세 친구를 소개할 때와 …
Source: www.ehanchurch.com
Date Published: 5/6/2021
View: 2348
두란노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의 견해에 대해 거부한다. 고난은 죄악의 증거인가? 욥에게 숨은 죄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의로운 욥이 고난 받음은 하나님의 불의하심 …
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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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 는 누구 인가 | 욥기 17강 김기석 목사 \”엘리후라는 사나이\”
엘리후 의 뜻 는 누구인가 의 발언 는 누구 – 53suhwan · 욥기-엘리후의 의미 – 네이버 블로그 · sub02_word01 – 욥의 네번째 친구 엘리후 – 이한교회.
Source: you.covadoc.vn
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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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비교 – 다음블로그
엘리바스는 그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혹은 “하나님은 심판자 이시다”라는 것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신학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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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 의 뜻 의 변론 영어 는 누구 – nna0
욥을 방문한 세 친구는 누구인가? 211 엘리후의 변론이 있는 후 예호와께서는 어디에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는가? 381 폭풍가운데 욥기문제.
Source: tibus2.tistory.com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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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 대체 그댄 누구요? – 큐티 라이프
(32장). 과연 그가 여지껏 보여준 인내는 무엇인가? 요즘 계속 묵상해 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엘리후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Source: www.qtlife.org
Date Published: 12/23/2021
View: 9482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엘리후의 독백은 욥기에서 어떤 …
엘리후는 다른 세 친구들보다 젊은 사람입니다. 욥과 세 친구들(어른들)이 논쟁하는 것을 다 듣고 나서 이제서야 자신의 생각을 말할 정도로 참을성이 …
Source: gyusikjung.blogspot.com
Date Published: 11/23/2022
View: 6158
하나님의 숨결로 이루어진 성경… 가장 좋은 상담 교본
엘리후는 람 족속 바라겔의 아들 입니다. 엘리후의 이름과 함께 그 조상들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엘리후가 다른 세 친구들보다 더 중요한 인물임을 암시 …
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7/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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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엘리후 는 누구 인가
- Author: CBS성서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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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4. 1.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5Y1DonbpLZo
엘리후 의 뜻 는 누구인가 의 발언 는 누구
– 엘리후 의 뜻
엘리후의 증언이 욥기의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것은 엘리후가 욥과 욥의 세 친구들이 주고받는 논쟁 사이에 낄 틈이 엘리후란 “그가 나의 하나님이다”란 뜻이다. 엘리후의 증언 욥기의 가르침4
엘리후의 이야기로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정리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등장하는 나도 내 본분책임을 따라 욥의 말에 대답하고 나도 내 뜻을 보이리니, 이는 내 입에 엘리후의 발언
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서 벌이는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 사이의 변론의 엘리바스는 그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혹은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비교
오해 욥 341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엘리후의 무지와 편견의 조작들
인격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진정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에서 전인격적인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Mosaic Ministry 2019 욥기8 진심을 담은 엘리후가 틀린 이유
– 엘리후 는 누구인가
이 사람도 욥의 친구인가요? 또 하나님은 앞의 세사람에게 화를 냈을때 왜 엘리후는 포함하지 않았는지요? 3. 마지막 .. 그는 누구인가? 왜 갑자기 욥기
그의 이름은 엘리후입니다. 엘리후는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히브리식 이름을 가진 이는 그가 유일 제18강 엘리후라는 사나이
이번 교구별 성경퀴즈 대회는 말그대로 교구별 단합과 성경 공부를 욥을 방문한 세 친구는 누구인가?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어디 출신인가? 엘리후의 변론이 있는 후 예호와께서는 어디에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는가? 욥기문제
자는 누구인가? 설교자 / 류현수 목사 본문 욥기 38장 1215 12.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13. 그것으로 땅 끝에 비취게 네 옆에 있는자 누구인가?류현수 목사
– 엘리후 의 발언
2 엘리후의 발언과 문체는 욥기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다. 3 엘리후의 견해는 이 책의 논쟁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4 욥이 엘리후의 말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엘리후의 발언
욥과 친구들을 향하여 4차례에 걸친 발언을 합니다. 3233장, 34장, 35장, 3637장. 그렇다면 결코 짧지 않은 엘리후의 말이, 욥기 안에,. 그것도 욥 욥32장 해석, 엘리후의 공박 / 서론
이 입장도 엘리후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욥이 의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욥을 비난하는 엘리후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황대원 목사 욥기는 의인이 받는 고난의 문제인가?23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 엘리후의 경고를 통하여 배움
개역한글,6 엘리후의 말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발언하여 가로되 나는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영감이 그들에게 명철을 주나니 바른성경,8 욥기 32장 엘리후가 뭔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남
– 엘리후 는 누구
엘리후는 편파적이지 않아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첨하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욥처럼 진흙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능자가 자기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했다. 엘리후 —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엘리후가 욥에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기상의 오묘함을 알고 있느냐고 383941, 동물들의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 제64일, 욥 3242장, 엘리후의 발언과 하나님의 말씀
욥을 방문한 세 친구는 누구인가? 211 엘리후의 변론이 있는 후 예호와께서는 어디에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는가? 381 폭풍가운데 욥기문제
걸음을 낱낱이 보신다. ⑥行惡者는 숨을 만한 암흑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다22절 ⑦없다. 의롭든 의롭지 못하든 간에 누구나 고난 받는다. 우리는 모두 고난에 엘리후의 둘째 담론34,137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내가 알아가는 것Knowing God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심을 아신다고 합니다. 내가 언제 Mosaic Ministry 2019 욥기8 진심을 담은 엘리후가 틀린 이유
욥기-엘리후의 의미
1. 각각의 대화가 욥의 고난의 이유를 무엇이라 설명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는가?
2. 부스사람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 이사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람도 욥의 친구인가요? 또 하나님은 앞의 세사람에게 화를 냈을때 왜 엘리후는 포함하지 않았는지요?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나타났을때, 사실 하나님이 했던 말들이 엘리바즈, 빌닷, 소바르가 했던 얘기와 거의 비슷한데요. 이 차이점을 정확히 지적해주십시오. [인간의 고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의 문제를 곁들이셔도 상관 없습니다.]
될수있으면 각 대화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만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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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에 나오는 대화들이 아주 많고 그 말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기엔 벅차니까
세친구에 대해서 특징적인것만 잡아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성경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 참고로 이 세친구들의 특징을 각각 소개합니다.
*.엘리파스(엘리바즈)-그는 요즘으로 따지면 종교적 교조주의자에 속합니다. 교조주의자란 말은 편협한 자기 교리에 빠져서 진실을 알지못하는 사람을 뜻하죠. 특히 그의 교의는 그가 체험한 놀라운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욥기 4장에도 나오지만 그는 환상들이라던지 영을 보았다던지 하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갖고있다는 것을 자랑삼는 자로서 그는 욥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 몰인정하고 윽박지르듯이 설교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마치 그가 영적으로 다른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처럼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결국 완고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에 불과합니다.
*.빌닷- 그는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다른 두친구와 마찬가지로 교조주의자라고 불릴만하고요.
그의 교의는 전통에 기초하고 있고 격언적인 지혜와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종교적 경구에 토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상투적인 말들은 다 옳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모든 말들이 욥이 당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과는 동떨어져 있다는데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헛짚은거죠.
*.소팔(소바르)- 그는 본인이 하나님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왜 그렇게 하시는지, 또 그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생각들 모두를 훤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는 가장 불경건한 사람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함부로 넘겨짚어 생각하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옳지 못한일입니다.
1. 욥과 세친구와의 대화에서 이 세친구들은 각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욥의 불행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한가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욥이 악하다는 겁니다. 욥은 표면상으로는 선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악한 자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욥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부당하기 짝이없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갖고있는 생각이었습니다.욥은 자신이 바로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장본인이지만, 하나님의 의를 그런 식으로 비난하려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기 변호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욥의 주장은 즉 하나님이 나를 벌하는것도 인정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것또한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세친구들에게는 그것이 모순된 주장이라고 생각되어진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좁은 견해로는 도저히 ‘의인이 하나님께 벌받는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욥이 뉘우치지 않고 계속 스스로를 변호하는것에 대해 화를 냅니다.
2.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는 다니엘의 다른 세친구에 비하면 훨씬 더 온당하고 욥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훨씬 더 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사실 욥의 친구는 아닙니다. 그는 욥과 다른 세친구들에 비하면 매우 젊은 사람으로 그가 왜 등장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차원높은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도다.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항상 현명한 것이 아니요, 나이 든 자들이라고 심판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는 욥의 세친구들이 자기만의 편견에 사로잡혀있음에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욥을 무조건 정죄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욥에게 조언해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였습니다.
(정녕,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하신 분은 심판을 왜곡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는 욥에대한 편견이 없는 동시에 하나님의 ‘의’에대해서도 한점 의심이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비록 엘리후가 ‘의인이 벌받는 이유’에 대해 정답을 알고 있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다른사람들처럼 꽉막힌 사람은 아니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후를 다른 세친구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 않은 이유도 그때문일 겁니다.
3. 엘리후의 말이 끝나고 나서 하나님이 직접 욥에게 말씀합니다. 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분이 욥에게 하신말씀중에는 다른 세친구들이 한 말과 비슷한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욥이 결코 위선자가 아니었고, 경건하였으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욥 스스로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욥에게도 분명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음을 알게하십니다. (29장에서 욥은 스스로가 행한 의로운 일들을 열거하는 우를 범합니다.)
어째건 이번 사건의 본질은 그를 벌하는것이 아니였을을 하나님이 알게해주십니다.
그것은 ‘경건한 자도 고난을 당해야만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게 되고, 자기 심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42장의 욥의 고백이 바로 그것을 뜻합니다.
*. 내가 간구하오니, 들으소서, 내가 말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나로 알게 하소서. 내가 주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보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더라.
욥은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욥의 경험과 같은 사건들을 현대에 적용해본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잘사는 착한 그리스도인에게 불행한 일들이 생기는 것도 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쇠를 달구어 더 강하게 만드시듯 그리스도인들을 고통으로 단련시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다고해서 하나님은 없을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영화 “The Hiding Place”의 중반부에는 독일의 라벤스부르크 정치범 수용소가 장면으로 등장한다. 코리 텐 붐과 그의 자매 베시는 다른 만 명의 여성들과 함께 끔찍하고 모욕스러운 환경의 수용소에 있었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고 이가 득실득실한 막사에 모였고 베시가 성경을 읽는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성이 자신이 침대에서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조롱했다. 이로 인해 그들 가운데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왜 그토록 고난과 고통이 빈번하게 일어나느냐고 했다.
“만일 당신의 하나님의 그토록 좋으신 하나님이면, 그는 왜 이러한 고통이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입니까?” 그녀는 흥분된 상태에서 밴드와 그녀의 손을 감고 있던 천 조각을 뜯어 버리고는 그녀의 부러지고 토막 난 손가락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제일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이렇게 한 것입니까? 그의 뜻입니까?” 잠시 동안 막사 안에서 정적이 흘렀고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코리 여사가 그녀의 자매 옆으로 걸어 나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전부는 우리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같이 되셨고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사랑 때문에 하셨다는 것입니다.”
욥기 13 ; 욥기의 내용(5) [가톨릭 신문] 2004-01-01
엘리후, 고통을 새롭게 정의
「타인과의 대화」라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과 갈등의 시작일 때가 있다. 자신의 입장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을 상대할 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그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이미 생겨났을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신명기적 의식이라는 전통적 잣대만을 가지고 자기 이론을 피력하던 친구들은 결국 그들의 높은 이상과 고상한 논리성에 갇혀, 이론의 범주 밖에서 존재하던 욥의 「실제적」 고통과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이유가 무의미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바로, 자신들이 배운 것만을 믿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득하겠다던 오만함과 그로 인한 치밀한 폭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엘리후의 등장(32~37장)
자기 변론에만 급급하던 욥과 세 친구는 결국 타결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만을 입히고, 급기야는 말하기를 포기해버린다. 이러한 대화의 실패와 그로 인한 무거운 침묵을 욥기 32, 1은 또 다른 친구 엘리후의 등장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의 등장과 연설(32~37장)은 본론의 첫 부분(세 친구와의 논쟁: 3~31장)과 끝 부분(하느님의 응답: 38~42, 6)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물론 이에 반대하는 이도 있다. 베르너, H. 슈미트 같은 이는 엘리후의 등장이 오히려 본론의 처음과 끝을 단절시킨다고 주장한다).
엘리후는 이미 등장했던 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첫 태도를 취하는데(32, 2), 그의 분노는 욥만이 아니라 세 친구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욥의 주장에 변변한 대답조차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세 친구들에 대한 비판이었다(32, 3).
엘리후 연설의 신학적 의미
엘리후의 연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의미는 「고난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엘리후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고통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고난」은 인간이 자기 중심 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하느님의 존재를 만나고 알게 하는 교육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를 그 고통으로 구하시고 / 재앙을 통하여 그 귀를 열어주십니다』(욥 36, 15).
이러한 고난 이해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오던 세 친구들의 입장을 전복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고통을 죄의 결과, 벌로서만 이해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오히려 진정한 삶과 생명이 시작되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후 연사의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업적을 찬송하는 찬양시가 등장하는데(36, 26~37, 24) 이는 본론의 끝 부분, 즉 「하느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엘리후 연설의 후대 첨가 근거
이러한 엘리후의 연설은 비교적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유는,
1) 고통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라는 비교적 후대의 해석을 보여주었다는 점,
2) 세 친구가 보여준 실패는 기존의 지식인들(전통 지혜학파)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며 이에 대한 유감 표현이라는 점. 즉 그들의 이론은 인간의 고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데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
3) 엘리후가 언급되는 곳은 오직 여기뿐이라는 점 등이다.
세계적 성서학자 알롱소 쇠켈은 엘리후의 연설이 욥기의 원저자보다 한 두 세기 후에 살았던 한 독자에 의해 첨가된 부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왜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한 정답은, 역설적이게도,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 즉 물리적으로는 아무리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 상황 「고통」은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 정답을 알게 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상황과 처지에서도 견디어 낼 내면의 힘을 갖게 하는 지혜와 교육의 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욥기는 분명 절절한 한 인간의 슬픈 사연을 서술하고 있지만, 절대로 「비극적 이야기」는 아니다. 비극을 통해서, 역으로, 삶의 희망과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을 뿐.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광주가톨릭대 교수>
엘리후 ( aWhylia> , Elihu) 「 그는 나의 하나님 」
[1]에브라임 사람인데 사무엘의 증조부이다(삼상 1:1). →엘리엘[2]. 역대상 6:34에는 `엘리엘’, 역대상 6:27에는 `엘리압’으로 되어 있다. [2]므낫세 사람인데, 다윗이 사울로 인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 그에게 충성하기 위해 귀순한 천부장이다(대상 12:20). [3]고라 족속 오벧에돔의 자손 스마야의 아들 엘사밧의 형제이며, 능력있는 자였다(대상 26:7). [4]욥의 친구 중 한 사람인데, 람 족속 부스 사람 바사겔의 아들이다. 욥의 친구 중 제일 연소하여 처음엔 그들의 논쟁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욥이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한데 격분하고, 또 세 친구가 그릇된 논리로서 욥을 변박하지 못하고 정죄한데 통분했다. 그는 공정한 입장에서 세 친구와 다른 논점에서 발언하였다. 그는 장자에 대한 겸손을 표시하였으나, 영감이 충만해지자 사양치 않고 일어났다. 그는 욥과 세 친구 간에 도덕적 차이가 없는 일은 다 같은 죄인으로서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지적하였다. 그는 세 친구에 대하여 욥을 위선자로 단정함을 비난하고, 욥에 대답할 때에는 창조주의 위대성과 묵시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서 시작했다(욥 32장). 그는욥으로 하여금 대화할 수 있도록 자기의 처지를 말하여 피차 흉금을 터놓고 의견 교환할 것을 바랐다. 엘리후는 욥을 오해하여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로 간주하고 비난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대한 세 가지 교훈을 말했다. 즉, ① 꿈, ② 질병, ③ 중보자로서 한다고 했다(욥 33장). 그는 또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 무사하시다고 하면서, ①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내재적 역사로 보아서 그는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으며, ② 그의 우주 통치가 그의 공의를 증명하며, ③ 그의 전지하신 성품 때문에 그의 공의가 실행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 없을터인데, 욥의 불평은 그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욥 34장). 엘리후는 욥의 불경건한 언사를 비난하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는 욥의 탄식에 그는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 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 하심이라”고 대답하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라고 했다(욥 35장).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와 같은 인과론을 떠나, 고난은 하나님이 인간을 단련해서 완전한 인격을 만드는 방편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욥에게 권고하기를, 고난에 대한 이 원칙에 이념을 두고 자의(自義) 고집이나 자포자기적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배전의 축복을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욥 36:17- 21). 엘리후는 하나님의 속성, 능력, 자연계를 통한 계시들을 말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행사를 알기 어려우나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고로 심판을 결코 부정하게 하시지 않으니 인간이 취할 태도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할 것 뿐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엘리후의 소론(所論)은 욥의 세 친구의 논지에 대동소이하나, 고난이 욥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이며,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슈퍼바이블>욥32:1-22 | 엘리후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후 는 누구 인가 | 욥기 17강 김기석 목사 \”엘리후라는 사나이\”|Cbs 성서학당 155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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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욥기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던 욥이 오히려 그 어떤 악인조차도 당하지 않은 혹심한 고난을 겪는 모순된 현실을 두고 이를 규명하기 위하여 욥과 욥의 친구였던 당대의 지혜자 들이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벌인 긴 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 사이의 논쟁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도 실패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께서 등장하여 절대 초월자로서 창조자이신 자신만이 전 우주와 역사에 대한 절대 주권을 홀로이 가지신 바 이를 피조물이요 유한자인 인간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도 또 관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거듭하여 전 우주적 스케일의 각종 소재를 동원하여 선언하셨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절대 신뢰와 순종이 필연적이며 또한 그럴 때만이 인간 실존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음을 강력히 암시함으로써 욥의 고난에 대해 간접적이지만, 그러나 이런 당장의 고난의 문제를 넘어서 보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주시며 변론을 종결시키신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서 벌이는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 사이의 변론의 차이점을 인격적인 면, 방법론 적인 면 그리고 신학적인 면에서 간략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 본 론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변론을 구분하기 위하여 먼저 그들의 인격적인 면과 변론의 특징을 각각 살펴본다.
[ 엘리바스의 변론의 세부적인 특징 ]엘리바스는 그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혹은 “하나님은 심판자 이시다”라는 것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신학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논증의 특징은 경험적 지식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의 인품은 다소 동정적인 모습도 보이기도 하며 그의 변론의 논조는 다분히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죄를 지으면 고난을 당한다”는 논지로 욥에 대하여 “악한 자만이 고난을 당한다”고 훈계를 한다. 이러한 그의 사고를 근거로 그의 신관을 살펴보면 엘리바스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악한 자를 징계하고 선한 자를 복 주시는 의로운 하나님”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다음은 엘리바스의 변론의 특징을 열거한 것이다.
1. 고난의 원인이 죄에만 있다고 봄 (4:7~9)
2. 근본이 불투명한 환상과 같은 주관적인 체험을 근거로 변론함 (4:12~21)
3. 주관적 체험인 환상을 하나님의 계시와 같은 권위를 갖는 것으로 말함 (4:12)
4. 자신이 경험한 바가 곧 진리의 전체인양 과장하여 말함 (5:1~7)
5.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세속 인과응보론으로만 설명함 (5:9~16)
6. 전통적인 도덕률에 근거하여 변론함 (15:17~19)
7. 욥의 고난의 진정한 원인을 깨닫지 못한 체 거듭 회개만을 촉구함 (5:17~27)
[ 빌닷의 변론의 세부적인 특징 ]빌닷의 이름은 뜻은 “논쟁의 아들”이다. 이 이름에서 살펴볼 수 있듯 그는 전통, 전승을 중히 여기는 역사가나 법률가의 이미지를 많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가 다분히 역사적인 논조로 변론을 하면서 논쟁적인 모습을 함께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닷은 “고난은 틀림없이 죄 때문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욥에게 “악한 자는 항상 고난 가운데 있다”고 훈계를 한다. 이러한 빌닷의 신관은 “확고 부동한 입법자이며 심판자인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변론의 특징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의 공의를 인과응보론으로만 설명함 (8:1~7)
2. 악인은 벌을, 의인은 복을 받는다는 철저한 흑백논리를 내세움 (8:13;20)
3.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승에 근거하여 변론함 (8:8~10)
4. 자연 현상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함 (8:11~19)
5.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욥을 비난함 (18:1~4)
6. 욥에게 독설로 저주함 (18:7~10)
7. 하나님과 인간을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로만 파악하고 인격적 관계에 있음을 알지 못함 (25:1~6)
[ 소발의 변론의 특징 ]소발은 “거친” 혹은 “지저귀는 자”라는 이름을 뜻을 갖는다. 그는 도덕가나 독단적 교리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그의 논증의 근거는 가정이다. 다소 거칠고 둔한 모습을 느끼게 하는 소발은 인습적인 분위기로 현재 “우리는 죄를 짓고 있다”라는 논지로 욥에게 “악한 자의 생이 짧다”라는 것을 훈계한다. 이 소발의 신관은 “굽은 것을 곧게 하시는 철저한 하나님”임을 믿고 있으며 그의 변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함 (11:4~6)
2.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교리적으로만 설명함 (11:7~11)
3. 욥에게 직접적으로 회개를 촉구함 (11:12~20)
4. 모든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거, 변론함 (20:2~4)
5. 하나님의 공의만을 강조하고 사랑은 도외시함 (20:27~29)
[ 엘리후의 변론의 특징 ]다소 이지적인 신학자의 모습을 보이는 엘리후는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갖고 있다. 그는 젊은이답게 교육을 통한 논증의 근거를 보이고 있으며 예민하고, 분을 내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젊은 사람의 혈기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그의 논조를 보면 약간의 교만감도 우리는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그의 논조는 논리적인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시고 교훈하신다”는 논지로 욥에게 “겸손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훈계를 한다. 이 엘리후의 신관을 그의 변론을 통해 살펴보자면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훈련자 이시며 교사이신 하나님”이시다.
엘리후의 변론이 다른 세 친구와 다른 점은 그의 변론은 첫째로 그가 철두철미하게 욥에 대하여 동정을 갖고 그 변호자로써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세 친구들에게도 노를 발하는 모습(32:3)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다.
둘째, 엘리후는 총명(지혜)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람에게 타고난 것이라고 설명한다.(32:8) 따라서 지혜로 불리워 질 때 까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또 완숙해 지도록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욥은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8:28)
셋째, 이러한 엘리후의 변론 역시 그의 지나친 자신만만함과 작은 교만은 그의 논지를 입증 하는데는 실패한다.
넷째, 그는 분노의 감정으로 논쟁에 임한다.(32:2~5) 이는 지극히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다. 욥이 의롭다 함을 보고 그는 분을 냈으며 친구들이 욥을 정죄하면서도 욥의 질문에 대답할말을 하지 못할 때 분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노는 그 자신이 하고 있는 지금의 변론 자체도 온전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섯째, 이러한 엘리후도 욥을 변호한다고는 하지만 욥의 진정한 속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갖는 유한성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후의 모습이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변론에서 기여한 바는 하나님은 인간의 훈련과 징벌을 목적으로 고난을 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33:14~30;37:13) 이것은 엘리바스의 변론과 비슷하기도 하지만(5:17) 젊은 그가 변론한 말 가운데에서 가장 인본주의적인 모습을 벗어난 말이기도 하다. 사실 1장과 2장 서문에서 이미 욥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고 또 욥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고난의 모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잃지 않고 있는데 엘리후의 이 말이 욥에게 커다란 위안은 되지 않았을 지라도 인간으로서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위로한 말치고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엘리후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욥의 세 친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적인 모습을 그 세 친구와는 다르게 신본주의적인 모습을 가지고 변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변론을 함으로서 전통과 경험, 이성을 통한 가정을 중심으로 변론하는 세 친구의 모습과는 대조를 보이는 것이다.
다음은 엘리후의 변론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요약한 것이다.
< 장점 >
1.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므로 인간이 하나님과 변론하려 해서는 안됨을 강조함 (33:13~18)
2. 인간의 구원은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달려 있음을 강조함(33:24~30)
3.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이 연단을 위해 주신 것임을 강조함 (33:29~30)
4. 하나님이 우주와 역사를 절대적인 공의에 의해 섭리하심을 강조함 (34:10~15)
5.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음을 강조함 (35:1~8)
6. 자연 현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함 (36:1~37:18)
< 단점 >
1. 고난중에 있는 욥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음 (35:8)
2. 욥이 고난 중에도 신앙을 잃지 않았음에도 신앙을 버린 양 정죄함 (36:17~23)
3.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이해하긴 했으나 욥의 고난 자체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함
III. 결 론
결론적으로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변론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변론을 시작하였지만(2:11) 엘리후는 선지자적 사명으로 진리 수호을 위해 변론하기 시작하였다.(32:18~22) 따라서 이들의 방법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데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독단적, 인본주의적인 인과응보적 논리로 욥을 정죄하였지만 엘리후는 욥 스스로 자신을 살피도록 유도를 하였다.(33:5~7)
이들은 변론 과정에서 역시 다른 태도를 각각 보이는데 욥의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해 노하였지만(18:7~10) 엘리후는 욥이 반박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33:32)
변론의 근거를 살펴 보면 세 친구는 환상(4:12~21)과 전승(8:8~10)으로 변론을 주로 하였고 엘리후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바른 통찰력(33:13~33)을 근거로 하였고 세 친구는 고난은 죄의 결과임을(4:7~11) 입증하는데 주력한 반면 엘리후는 고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연단하시기 위한 것임을(33:19~30) 밝힌다.그러나 이들은 고난의 해결책으로 모두 회개를 촉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2:21~30;34:31~32)
이들 모두에게는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 역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다.아무리 그들의 말과 변론이 인격적이고 도덕적이며 하나님을 아는 수준에서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그들 역시 유한한 인간이며 죄로 오염되어진 인간이기에 신이신 하나님의 그 모든 계획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세 친구가 갖는 한계성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무지하고 감정에 치우친 반면 엘리후는 자기의 주관대로 욥을 판단하고 정죄함에 있다.(34:7~9;33)
이 논술을 통하여 두 가지를 개인적으로 고난에 대하여 깨닫는다.
첫째는 고통의 첫째 이유는 보다 큰 고통을 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이며 둘째는 어떠한 고통이 우리에게 임한다 할 지라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바를 모두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이 논술을 통해 깨닫기를 원한다.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끝.
[참고자료]1. 빌 아놀드 외 1인, 구약의 역사적 신학적 개론, 크리스챤, 2009
2. C.헤슬 벌럭, 시가서 개론, 은성, 1999
3. 우찌무라 간조, 성서주해, 성서연구원, 2001
4. 제자원 편집 위원, 그랜드 종합 주석, 제자원 워드 하우스, 2009
출처 : 이영우의 블로그
글쓴이 : 이영우 원글보기 : 이영우
메모 :
엘리후 의 뜻 의 변론 영어 는 누구
– 엘리후 의 뜻
엘리후의 증언이 욥기의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것은 엘리후가 욥과 욥의 세 친구들이 주고받는 논쟁 사이에 낄 틈이 엘리후란 “그가 나의 하나님이다”란 뜻이다. 엘리후의 증언 욥기의 가르침4
2 3237장, 엘리후의 발언새로운 제3의 인물, 젊은이 엘리후의 등장 그분의 해석자인중보자,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뜻말씀을 전 제64일, 욥 3242장, 엘리후의 발언과 하나님의 말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서 벌이는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 사이의 변론의 엘리바스는 그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혹은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비교
치며*, 이스포크는 이 단어는 본절에서는 조롱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엘리후는 자기의 의를 고집하는 욥의 행동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엘리후의 두 번째 반론 욥기 34장
인격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진정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에서 전인격적인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Mosaic Ministry 2019 욥기8 진심을 담은 엘리후가 틀린 이유
– 엘리후 의 변론
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서 벌이는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 사이의 변론의 차이점을 인격적인 면, 방법론 적인 면 그리고 신학적인 면에서 간략히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의 비교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변론을 시작했지만211, 엘리후는 선지자적 사명으로 진리 수호를 위해 변론하기 시작합니다321822. 엘리후의 말
두 문단은 엘리후의 제삼차 변론을 보도한다. 이러한 엘리후의 제삼차 변론은 욥이상대적 무가치성 강조를 통하여 자기 의를 주장하며 회개를 거부한 욥을 간접적 욥14, 엘리후의 등장과 변론욥 3237장
– 엘리후 영어
욥기는 42장, 1,070절, 10,102단어영어 킹제임스 성경 기준로 되어 욥기의 저자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엘리후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욥3216. 욥기
묵상과기도 247; 성경역사,간증 165; 한글,영어오디오성경 154; 영어 . 욥 321, 2, 6; 창 2220, 21 엘리후는 욥과 세 명의 자칭 위로자들 사이의 전체 그래서 엘리후는 여호와 하느님의 올바르심을 입증하는 일이 어떤 사람 엘리후
엘리후 루트Elihu Root, 1845년 2월 15일 뉴욕주 클린턴 1937년 2월 7일 뉴욕주 뉴욕는 미국 영어 엘리후 루트 미국 의회 인명 사전 · 노벨 재단의 엘리후 루트 소개 ·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의 엘리후 루트 소개 · Elihu Root의 작품 프로젝트 엘리후 루트
문제를 말해 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엘리후는 자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그대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역주, 영어 성경과 우리나라 성경 사이에는 번역 엘리후의 연설3
– 엘리후 는 누구
욥을 방문한 세 친구는 누구인가? 211 엘리후의 변론이 있는 후 예호와께서는 어디에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셨는가? 381 폭풍가운데 욥기문제
또 하나님은 앞의 세사람에게 화를 냈을때 왜 엘리후는 포함하지 . 그리고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 없을터인데, 욥의 불평 욥기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내가 알아가는 것Knowing God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심을 아신다고 합니다. 내가 언제 Mosaic Ministry 2019 욥기8 진심을 담은 엘리후가 틀린 이유
옳고 누구를 옳지 않다고 생각할까요? 당연히 옳은 자는 자신이고 옳지 않은 자는 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엘리후의 말에서 낱낱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말을 80강 욥 362433 엘리후의 하나님
엘리후, 대체 그댄 누구요?
12-4-12 (화) <욥기 36:1~16>
큐티 묵상을 시작한 이후 요즘 같이 갑갑할때가 있을까 싶다.
엘리후의 말을 옳게 여기며 받아 들여야 하는건지,
아니면 경계의 마음으로 조심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괜히 엘리후를 나 혼자의 해석으로 잘못 이해할까봐
사이트에서의 나눔마저도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욥기 42장이 끝나도록 하나님께 혼나지도 않는
엘리후의 정체와 욥기에서의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
엘리후에게서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옳은 말들인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참 냉철하고 인정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말을 꺼낼때만해도
세 친구들이 욥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꺽지도 못한다… 라고 했다.
욥기의 몇장에 거듭되도록
엘리후가 계속 욥을 꺽기 위해 말을 하는것 같아 내 마음이 무척 답답하고 눌린다.
그가 여지껏 침묵하고 있었던것은 연소해서 참았던 것이지
겸손하고 온유해서 그런것은 아닌것처럼 보인다.
마치 봉한 포도주가 부글 부글 끓다가
cork 마개를 따면 퍼엉! 하고 터지면서 온 사방에 튀기듯
그의 말은 완전 거침 없이 하이킥! 이다.
낡은 부대가 어쩌다 찢어져 터지는것도 아니고
새 부대가 터지듯 한다고 했다.
자신의 속이 시원하게 말 좀 하겠다고 했다. (32장)
과연 그가 여지껏 보여준 인내는 무엇인가? 요즘 계속 묵상해 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엘리후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똑부러지고 옳은 소리라 할지라도
욥에게 지금 필요한 말은
“욥 어르신, 힘들지요? 조금만 견디세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이 한마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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