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 장 | 에스라 9장 156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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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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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

에스라의 회개 기도.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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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6/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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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에스라 9. 9. 1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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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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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화) “에스라 9:1-15”/ 작성: 정재규

본문 에스라9장1-15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2차 귀환이 마쳤습니다. 출발과 도착 사이를 설명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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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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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월 9일. 에스라 9장. – 하늘품은교회

에스라 9장.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공동체 안에 공적인 죄악이 드러날 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그리던 땅으로 몸은 돌아왔으나, 아직 마음은 하나님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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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7/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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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1절-8절 큐티: 에스라의 회개 기도 – 네이버 블로그

에스라 9장 1절-8절 본문. 에스라의 회개 기도. (스 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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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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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8-9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 복음뉴스

제목 :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구약시대의 은혜의 불완전함과 그 한계)본문 : 에스라 9:8~9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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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2/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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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설교문]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1-6) – 복음 빵집

동사, 히트파엘,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보증하다, 저당 잡히다, 담보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방백들과 고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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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3/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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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에스라 09장

9:1 <에스라의 기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뒤에 지도자들이 나 에스라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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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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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에스라강해 – (15) 참된 회개의 시작 – 지구촌교회

여기에 대한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에스라 9장 전체는 에스라의 회개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회개 기도가 민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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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iguchon.or.kr

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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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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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에스라 9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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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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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

에스라의 회개 기도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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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2018/01/30(화) “에스라 9:1-15”/ 작성: 정재규

본문 에스라9장1-15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2차 귀환이 마쳤습니다. 출발과 도착 사이를 설명하는 자세한 문장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걸어야 했던 그 먼 거리의 여정은 수많은 우여곡절의 문장을 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여곡절을 넘어 무사히 예루살렘까지 도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은혜로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라는 몹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관계를 끊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결혼은 단순한 결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절에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라는 구절을 원어로 직역하면, ‘그들이 그 자신들과 그들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입니다. 즉 그들의 결혼에는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아들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방인과의 결합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빠져 있고, 자신이 주체가 된 영적이고 신앙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심각한 결합이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 중요한 이 시점에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 공동체성을 완전히 와해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율법에서 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이 잘못된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포로 귀환도 이루어졌고, 성전도 재건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무언가 공동체성을 이루어 가는 듯 보였지만, 실제적인 내면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내면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외형이 좋아 보여도 내면도 외형과 같으리라 볼 수 없습니다. 외형적 열심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외형적 열심이 반드시 내면적 열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형적 노력만큼 내면을 잘 돌아봄이 중요합니다. 열심히 섬기는 만큼 내면도 주님의 말씀으로 잘 다스림을 받고 있는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포로의 아픔을 겪어야 했는지 충분히 돌아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또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지 충분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또 나태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첫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옷을 찢는 행동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듣거나 보았을 때 가지는 슬픔이나 놀람의 표현입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야곱이 보인 첫 반응이 자신의 옷을 찢은 것이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은 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명예와 자부심,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깎는 것은 수치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앉은 모습은 참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세 행동이 이스라엘이 지은 잘못이 얼마나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중하고 심각한 죄임을 알게 합니다.

에스라는 이 반응 후 그 백성이 지은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6절입니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차마 하나님께 얼굴을 들 수 없는데, 이유는 우리의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죄라고 하며 자신도 죄를 지은 그들 안에 포함시켰습니다. 에스라는 과거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언급을 하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셨는데 또다시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11~15절까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금 범한 죄가 어떠한 죄인지를 고백하며 그 예로 과거 가나안 땅을 언급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우상을 숭배하는 땅이기에 구석구석 더럽혀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고 또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음에도, 지금 똑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고 있으니 이제 주님이 어떤 징계를 내리신다 하여도 핑계할 것이 없다며 죄를 구체적으로 솔직히 인정하고 자백했습니다.

에스라의 모습에서 2가지 적용 점을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 무겁게 여기고 주님께 솔직하게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짓는 죄에 대해 결코 무관심하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동체 안에 두셨다는 것은 그 공동체도 나의 몸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든 두신 그 공동체는 나와 한 몸입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곳입니다. 공동체의 죄 또한 나의 죄로 끌어안고 주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에스라의 모습을 기억하며 어떤 환경에서든 주님을 꼭 붙잡고 내적 개혁, 내적 성숙이 일어나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기도

주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내면을 잘 살피게 해 주시옵소서. 죄를 가볍게 여기어 방치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또 우리를 두신 그 공동체를 나의 몸으로 끌어안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아름다운 성숙을 함께 이뤄가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2차귀환이 마친 후 에스라가 들은 충격적인 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2.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가 보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3. 에스라는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4. 나는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가볍게 여기고 있는 죄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5. 나는 가정, 교회, 사회 공동체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또한 그들의 아픔과 죄를 나의 아픔과 죄로 끌어안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작성: 정재규)

매일말씀묵상. 1월 9일. 에스라 9장. > 매일말씀묵상

에스라 9장.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공동체 안에 공적인 죄악이 드러날 때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그리던 땅으로 몸은 돌아왔으나 , 아직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옛 조상들의 범죄가 동일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범죄의 실상은 심각했습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 현실과 타협하면서 그 땅에 살던 이방 백성들과 교역 관계와 혼인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입니다 . 이방인과의 혼인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며, 단순한 부부관계를 넘어서서 신앙적인 배교 행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며 미워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이라는 것입니다 (1). 영적 지도자들도 이 범죄에 백성들과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1-2 절 ).

2. 에스라는 기가 막혀서 옷을 찢으며 저녁 제사를 드리기까지 성전에 앉아있었습니다 . 얼마나 큰 상심이 있었을까요 ? 그런데 놀랍게도 에스라가 그렇게 앉아있을 때 , ‘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 ’ 들이 에스라에게 모여왔습니다 (4).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서 그것으로 인하여 실망하고 상심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떠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입니다.

3. 이들로 인하여 힘을 얻었을까요 ?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를 마치 자기의 죄와 같이 여기고서 ,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6~15).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 백성의 범죄함이 드러날 때 하나님께 자기가 그 죄에 대해서 청산할 자인 것 같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4. 에스라가 더욱 끔찍하게 여긴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나라를 멸하시고 그들을 외국에 포로로 보내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대가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다시 회복하여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범죄하는 것이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

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안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듯이 ,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동일합니다 . 이스라엘에서 범죄한 자들이 제사장과 레위 자손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직분자들 가운데 , 그리고 목사들 가운데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 그 이유를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무너지고, 사회로부터 온갖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 에스라가 근심하고 울며 하나님 앞에 앉아 있을 때 에스라에게 나아온 자들은 , 오직 ‘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 ’ 들이었습니다 . 그리고 참된 지도자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자들입니다 . 회개 운동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 인하여 시작됩니다 . 당신은 어느 길에 서겠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는 자 입니까 ? 아니면 그저 내 옳은 소견대로 사는 사람입니까 ? 종교적 언어만 사용한다고,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예배 가운데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그 말씀 앞에 엎드려 살아가는 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필요하며, 바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7. 참된 지도자는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마치 자기 죄를 회개하듯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에스라는 흥분해서 당장에 그 죄를 심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간구했습니다 . 교회 안에 공적인 범죄가 드러날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요 ? 그것이 범죄임을 ‘ 깨달은 ’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공동체의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 죄를 드러내고 따지고, 죄인을 찾아내서 벌을 주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먼저 할 일은 깨달은 자들이 — 이들이 진정한 영적 지도자들이다 —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 이 원리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의 죄악, 교회의 패역함을 보면서, 이들을 정죄하기 빨랐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가장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모든 죄악이 바로 나의 죄악인 것처럼 기도하는 무릎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에스라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을 오늘날 각 교회들에 허락하여 주셔서, 이들을 통하여 교회와 가정과 민족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에스라 9장 1절-8절 큐티: 에스라의 회개 기도

에스라 9장 1절-8절 본문

에스라의 회개 기도

(스 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 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스 9: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스 9: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스 9:4) 이에 이스라엘 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출29:39

(스 9: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스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스 9: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 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스 9: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에스라 9장 1절-8절 말씀묵상

에스라 9장과 10장은 에스라를 통한 공동체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개혁의 내용은 정체성 확립과 율법 중심의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은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를 다룬다.

전후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예루살렘 귀환 후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다.

이 날 에스라는 방백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에스라를 더 놀라고 안타깝게 만든 것은 이 일에 지도자들이 예외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장섰다는 것이다.(1절, 2절)

이 기가막힌 소식을 듣고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뜯으며 괴로워한다.

옷을 찢는 행동은 애통함의 표시이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는 행동은 극도의 진노를 표현하는 행동이었다.

에스라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선조들이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여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렵게 다시 돌아온 백성들이 아직도 이전과 동일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저녁제사를 드릴 때까지 옷을 찢은 상태로 앉아 있다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한다.

6절부터는 에스라의 기도 내용이다.

에스라는 먼저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는데, 반복적으로 ‘우리’, 혹은 ‘우리의 죄’라는 표현을 사용해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긴다.

에스라는 스스로를 공동체와 결속시키고, 공동체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한 것이다.

죄의 고백에 이어 에스라는 이런 이스라엘임에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셨음을 고백한다.(8절)

‘눈을 밝히사’에서 눈을 밝게 하셨다는 것은 암흑과 같은 포로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얼마를 남겨 두셔서 80년 전 고레스 칙령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1차 귀환 백성들은 벅찬 감격과 새로운 다짐으로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을 재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이 점차 무뎌지고, 주위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방 여인들과 통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는 단순히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적용

1.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변을 보면 크리스천이었던 친구가 불신자 남자를 만나 교제를 하고 덩달아 교회 예배를 안나가게 되기도 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보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귐에 있어 크리스천 친구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하지만, 가족과 예배와 말씀묵상, 기도, 찬양, CCM 등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 주는 핵심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내 삶에 늘 가까이 두어야겠다. 🙂

2. 내가 속한 공동체, 사회, 나라의 죄악과 잘못을 ‘우리’ 것이라 여기고 애통해하기, 기도하기

내가 속한 곳에서 반복적으로 부정한 행동들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차별과 억압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나와는 관계 없는 문제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오늘 에스라처럼 애통해하고 회개하며 기도해야겠다.

그는 옷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이처럼 나도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무관심하지 않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에스라 9장 8-9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

제목 :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구약시대의 은혜의 불완전함과 그 한계)

본문 : 에스라 9:8~9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시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70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모습(=다윗과 솔로몬 때의 왕성한 영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왕을 세울 수도 없었고 재건된 성전(스룹바벨)은 이전보다 초라하게 여겨졌고 더 더욱 그 땅(가나안=팔레스타인)에 대한 완전한 통치권을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그리스 제국과 로마 제국에게 계속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제사장이면서 율법학자인 에스라(Ezra)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백성의 지도층 가운데 만연한 죄(unfaithfulness) 이방여인과의 통혼에 대하여 절규하고 통탄하는 고백에서, 우리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구약시대에 경험한 은혜는 여전히 그 한계와 불완전함이 뚜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까지도 경험하였던 그 은혜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임시적인(=temporary)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사로 잡혔던 자들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returned) 일도 “잠시 동안의 은혜”에 불과하였다고 고백합니다(8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왕, 성전, 통치권이 회복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에스라의 처절한 고백은, 특히 지도층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인간의 근본적인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실을 통해서, 이들이 경험한 은혜라는 것은 여전히 “잠시 동안의 은혜”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2.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마치 거룩한 처소(=천막으로 만들었기에 이동해야 하는 성막)에 박힌 못(=peg, 말뚝)”에 불과하였다고 고백합니다(8절).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의 위치(status)가 마치 움직이는 성소(=이동용 성막)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였던 말뚝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굳건하게 박혀서 결코 움직이지 않게 하는 영원한 은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경험하지는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3. 우리로 종노릇 하는 중에 “조금 소생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8절). 완전한 소생(=완전하게 살아남)이 아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왔지만(=생존하였지만=살아났지만), 조금 밖에는 살아나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4.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9절). 아직은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성벽(wall)을 쌓는 일이 이루어지기 전의 어떤 형편을 말하고 있습니다. 완전하고 굳건한 성벽으로 성전과 백성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세워지기 전에, 마치 “울타리”의 수준에서 예루살렘의 성전과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연약한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던 정도의 은혜이었다는 말입니다.

••• 이런 모든 것들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신 은혜는 아직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할 미래의 일(=그리스도의 초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불변하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역사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도 말씀에서 성령 하나님의 조명을 통하여 풍성하게 경험하시기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에스라 9장 설교문]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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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에스라 9장 설교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타락을 보면서 기가 막혀 앉아있는 에스라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1-6)

● 명제 :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기가 막혀했다.

● 목적 : 예수 그리스도도 나의 원죄와 자 범죄 때문에 기막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 싶어 했던 민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인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B.C. 722년에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 유다 백성들은 왕족과, 제사장들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할 성전은 훼파되었고 이스라엘 땅은 황폐해져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자가 없었기 때문에 남 유다에 남은 백성들은 여호와의 율법의 말씀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이 차면 다시 이스라엘 땅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주셨는데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신앙을 버리면 70년이라는 고통의 기간을 주십니다. 신앙을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았던 때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고레스와 같은 자를 만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은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고레스에 의해서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인 이스라엘로 귀환하기 시작합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3차의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첫 번째, 스룹바벨에 의하여 B.C. 536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 에스라에 의하여 B.C. 455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에 의하여 B.C. 445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버리지 않으시고 때가 되매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선택하셨기 때문에 원죄의 고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육적인 고통에서도 때가 되매 해방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이 나에게 영육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온전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들어와 평안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에스라가 두 번째로 귀환하여 이스라엘 땅을 밟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환경이 너무나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70년 동안 남아있던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자신 멋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기가 막혀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에스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님은 어떨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사라지고 번영 신앙에 눈이 멀어 세상의 육체의 정욕만을 따라가는 신앙을 보면서 기가 막혀하십니다.

영혼은 죽어있는데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육체의 정욕에 빠져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기가 막혀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정욕을 따른 것을 회개하고, 예배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않고 육체의 일을 따랐던 일들을 이 시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나의 모습을 보면서 기가 막혀하시면 안 됩니다. 나의 신앙 상태를 보고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에스라가 왜 기가 막혀했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스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에스라가 기가 막혀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의 이방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떠나지’ (בדל바달 914 동사, 닢알,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나누다, 분리하다, 구별하다, 라는 뜻입니다. 70년 동안 남아있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과 이방 백성들로부터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이방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분리되어 나누어지기가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우상들과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이방 백성들로부터 구별되기 싫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항상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에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있는 자들이 어둠과 섞여있다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과 함께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가증한 일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9: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다음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죄가 크기 때문에 에스라가 기가 막혀했습니다. 이방 백성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손들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만드는데 일등공신들이 그 지방의 방백들과 고관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을 보여야 할 자들이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서로 섞이게 하는데’ (ערב아라브 6148 와우접속사. 동사, 히트파엘,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보증하다, 저당 잡히다, 담보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방백들과 고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지도자들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버렸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손들을 이방인의 여자와 결혼을 하는데 담보자로 섰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왜 빠질까요? 세상의 유명한 어떤 사람도 자신의 단체에 있다는 말에 담보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이단에 저당 잡히게 됩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귀환하고 나서 방백들과 고관들이 죄를 더욱 조장하고 앞장선 것에 대하여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거룩한 자손들이 통혼하여 이방인의 피가 흐르게 하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히트파엘, 강조 재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거룩한 자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방인 여자들과 통혼하지 않으려고 하면 강제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담보로 저당을 잡듯이 자신의 힘과 권력을 남용하여 약한 자들에게 억지로 통혼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들과 통혼하게 되면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현재 한국 사회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힘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를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상황을 보시면서 기가 막혀하십니다.

스9: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에스라는 남아있었던 자들의 행동들과 지도자들이 행동했던 일들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했습니다.

‘찢고’ (קרע카라 7167 동사, 칼,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찢다, 찢어서 조각을 내다, 라는 뜻입니다. 에스라가 자신의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극도의 분노를 의미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회개를 할 때와 슬픔에 빠졌을 때에 옷을 찢습니다. 에스라는 영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짓는 모습과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죄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분노가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분이 일어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돈을 바꾸어 주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향하여 분노를 내셨습니다. 상을 엎어버렸습니다. 주님도 성전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보면서 화를 내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장사하려는 것을 보고 기각 막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육적인 장사와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육적인 축복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육적인 번영의 복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이 구원을 얻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스9: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유다 땅에 남은 자들 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다시 회복되어 돌아온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에스라에게 모여 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서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모여 오더라’ (אסף아사프 622 동사, 닢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모으다, 거두어들이다, 영접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남은 자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자들은 에스라에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에스라를 하나님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영접했기 때문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 상황이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날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찾아 모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갈증을 내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를 듣기 위함이 아니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생수를 찾아 모여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생수를 마시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세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기가 막혀’ (שמם샤멤 8074 동사, 피엘, 분사능동, 남성, 단수) 오싹하게 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거룩한 방백들이 찾아와 현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죄를 짓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당하면 소름이 돋듯이 에스라도 마찬가지로 몸이 오싹해지고 전율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일 때문에 너무나 황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에 빠져 살면 에스라와 같이 기가 막혀하십니다. 주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자신은 행위로도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기가 막히게 됩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기가 막힐 일이 있습니까? 육적인 일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일입니까? 나의 영혼이 죽는 줄도 모르면서 세상에 빠져 산다면 이것이 기가 막힐 일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저녁 제사를 드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스9: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에스라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너무나 커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유대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통탄하시는 모습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모든 죄를 위해서 에스라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표현입니다. 에스라도 이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저녁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스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께 얼굴을 들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이 많아서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너무나 커서 하늘에 미치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죄가 너무나 커서 기가 막히고 나의 자 범죄가 정수리에 넘쳐서 하늘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죄를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셨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회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에스라가 기가 막혀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도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위해서 기가 막혀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나의 행동은 아직도 세상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나를 주님은 바라보면서 기가 막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라지고 세상의 정욕을 따라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슬퍼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할 때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기가 막혀했다면 이제는 나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 영혼이 똑바로 서고 육신의 삶은 거룩한 주님의 백성의 삶으로 돌아오는 결단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에는 세상의 정욕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주님의 일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게 해 주셔서 육적인 물질의 고통과,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적인 고통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으니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면서 신앙이 회복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보실 때에 기가 막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께 회개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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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에스라 09장

9:1 <에스라의 기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뒤에 지도자들이 나 에스라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사는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처럼 역겨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9:2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이 아닌 다른 민족들의 딸을 아내와 며느리로 맞아들여,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피가 이 땅에 사는 세상 민족들의 피와 섞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관리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9:3 나는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으며 주저앉았습니다.

9:4 그러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죄를 보았습니다. 나는 저녁 희생 제사를 드릴 때까지 그런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9:5 그러다가 저녁 희생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 겉옷과 속옷은 찢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 하나님 여호와께 두 손을 들고

9:6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하나님께 얼굴을 들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가 너무 많아 우리의 키를 넘어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9:7 우리 조상들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와 왕들과 제사장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칼에 위협을 받고, 포로 생활을 함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 왕들이 우리의 물건을 빼앗아 가고, 우리에게 욕을 보였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9:8 하지만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으므로, 우리 가운데 몇몇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고, 노예 생활로부터 얼마 동안 안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9:9 우리가 종살이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를 돕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전을 다시 짓고 허물어진 곳을 고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우리를 보호해 줄 성벽을 쌓도록 하셨습니다.

9:10 우리 하나님이시여, 이 모든 일을 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9:1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인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들어가는 땅은 더러워진 땅이다.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이 역겨운 일을 하여 그 땅을 더럽혔다.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그 땅을 더러운 것으로 가득 채웠다.

9:12 그러므로 너희의 딸을 그들의 아들과 결혼시키지 마라. 그들의 딸도 너희의 아들과 결혼시키지 마라. 그들의 평화나 번영을 빌어 주지 마라. 그러면 너희가 강해지고 그 땅의 좋은 것들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영원히 남겨 줄 수 있을 것이다.’

9:13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 잘못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보다 더 적게 벌을 내리시고, 우리들 가운데 몇몇을 살려 주셨습니다.

9:14 우리는 이 역겨운 백성들과 결혼하여 또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우리는 망하고 말 것이며,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9: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여호와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 남았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들 가운데 여호와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5) 참된 회개의 시작 > 예배와 말씀

본문

말씀본문 (에스라 9:1-6, 15)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가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 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어거스틴은 피상적인 사회현상이나 종교현상이 아닌 당시 로마의 우상숭배와 교만이야 말로 로마 멸망의 뿌리가 되는 원인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역사 속에 있었던 한 민족 한 문화에 대한 심판의 원인은 언제나 로마의 멸망과 궤를 같이합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시온의 땅에 도달했을 때 가장 큰 놀라움은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가증한 죄들이 보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죄는 이방인들과의 잡혼으로 말미암아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처방은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에스라 9장 전체는 에스라의 회개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회개 기도가 민족을 살리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민족을 살리는 참된 회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인적 응답입니다. 성경적 회개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전인적 반응(알고 느끼고 결단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4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보다 죄를 깨닫자마자 두려움으로 떨기 시작하고 기가 막혀 주저앉았다고 말합니다. 어찌할 바 모르는 거룩한 근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됩니다. 2. 예배를 통한 공동체의 공개적 응답입니다. 지나간 교회 역사 속에 영적 대 각성, 혹은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 거기에는 언제나 예배의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참회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 시대에도 동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는 공개적 집회인 저녁제사에서 에스라는 공개적인 참회를 합니다(5-6절). 이렇게 한 민족의 참회의 진정성은 누군가 한 사람의 진지한 회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3. ‘남은 자들’에 대한 긍휼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9장의 마지막 구절에는 ‘남아 피한 자들’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 속에서도 포로 생활 속에서도 남은 자들이 있어 거룩한 백성들의 정체성을 지켜왔는데 에스라는 그 남은 자들 마져 범죄한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회개하며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 남은 자는 언제나 역사의 그루터기와 같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아무리 그 시대가 부패하고 어두워져도 남은 자들을 남겨 두셨다가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소망이 되는 남은 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역사의 구원이요 소망입니다. 회개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나라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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