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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
질그릇에 담긴 보배.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4/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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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4장 17-18절(2) – 다음블로그
고린도후서4장 17-18절(2) ·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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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_7월 첫 번째 수요 저녁 말씀 고린도후서 4장 16~18절<신 290>, v.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 …
Source: www.kfgca.com
Date Published: 10/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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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보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삶에는 …
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9/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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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보고 사는 사람(고후 4:18) – 유평교회
영원을 보고 사는 사람(고후 4:18) … 대 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삶을 설계합니다. 현재 나이가 몇이니 몇 년 뒤에 은퇴를 해서 …
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6/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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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2/(화) \”고린도후서 4:1-18\”/ 작성: 박창용
고린도후서 4장은 3장에 이어 하나님의 영광이 율법이나 사람에게 있지 … 특별히, 2:1절 이후 가슴 아픈 방문이었기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까지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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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고린도 후서 4 장 18 절
- Author: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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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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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
질그릇에 담긴 보배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1)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ㄱ)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ㄴ)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mission200
8/6/2013(화)
고린도 후서 4장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 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 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 는 하나님의 형상 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 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 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 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 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 가 많은 사람의 감사 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 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 함이니라
묵상 17-18절(2):
어제는 17절의 말씀으로 묵상을 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왜 환란이 있는가? 환란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 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하고 있다.
그것은 잠깐 동안의 경한 환란을 통해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라고 답한다.
잠시 받는 경한 환란은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 또는 도구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에 강력하게 반기를 들 수 있을 것이고, 믿는 자들도 쉽게 수용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야말로 아주 경한 연단을 통해서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알듯하다. 야고보서 1장에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이 있다. 즉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자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죄를 씻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법이다. 그리고 죄 씻김 받은 성도들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변화를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비율로 환란이라는 연단을 통해서 아버지의 의를 알게 된다. 자기의 의를 버릴 때 즉 자아를 버릴 때 드디어 주의 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의를 버리고 오직 주의 의를 알게 될 때 드디어 주님께서 나를 온전히 인도하시고 주의 나라를 위해 쓰실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아직 많이 멀었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것은 나의 의를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필요했던 연단의 시간이 적어도 13년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극한 환란의 순간,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지난 10 여 년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제야 내 영은 평강을 얻은 듯하다. 이제야 내 의를 버리고 온전히 주의 의와 주의 나라만을 구하는 기본 자세를 갖추게 된 듯하다.
이 또한 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주님의 기준으로는 아직도 한참 멀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가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세심함으로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고, 그 안에 기쁨이 있다.
작은 환란으로 연단하셔서 자기를 버리고, 자아를 버리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을 내게서 이루시기 위해 나에게 연단은 필수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연단의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의 모습은 영원히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연단은 순전함을 낳는 듯하다.
비교도 안되지만 욥기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다.
단련을 하신 데는 목적이 있다. 거룩하게 하여 천국 백성을 만드시기 위한 참으로 거룩하신 목적이 있다.
그러기에 연단이 있을 때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 만드시기 위해 친히 역사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18절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영원함에 대한 믿음의 소망, 아니 갈망!
우리에겐 영원함에 대한 실체적 소망이 있기에 오늘의 환란이나 연단도 경한 것으로, 잠깐 동안 받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함에 대한 소망, 보이지 않는 영원함의 비밀!
크리스천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원하신 나라에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환란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이 땅에 보이는 유한한 물질 세계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믿음도 지혜도 허락하심을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제한된 방법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아마도 바울도 다른 더 어울리고 멋진 표현이 있었으면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우리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기에 그저 감격하고 감동하여 감사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감격과 감사, 기쁨을 체험하였으면 좋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주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며, 주의 생명을 전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영원을 보고 사는 사람(고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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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영원을 보고 사는 사람
본 문: 고린도후서 4장 18절
설교자: 조 성 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대 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삶을 설계합니다. 현재 나이가 몇이니 몇 년 뒤에 은퇴를 해서 퇴직금을 받아서 언제까지 어떤 삶을 살리라 계획합니다. 그럴 때 300년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도 80-90살 정도를 잡고 계획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사후세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몇 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삶의 계획을 세울 때 80-90살까지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참 놀랍고 신비한 것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억력을 그대로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모든 정보, 자신이 잘한 일, 잘못한 일, 어려웠던 일, 교회 생활을 했던 것들도 모두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세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 리스도인들도 주님을 믿기 전에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짧고 굵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뿐이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삶의 계획이 달라져야 합니다.
“만 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말씀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나 세례 요한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정처 없이 살았던 것은, 내 삶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먹고 살 걱정할 필요 없고 질병도 없으며 늙지도 않고 예쁘게 꾸밀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반가운 성도들과 한없이 교제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은 곳, 가고 싶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와 같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 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땅에 있는 동안 심는 것에 따라 좌우되는 하늘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큰 궁궐과 같은 집을 여러 채 지나고 초라하고 작은 오두막집으로 자신을 데려가자 “어떻게 내 집이 이렇게 초라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이것도 당신이 보내온 돈으로 구하기 어려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주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핍박받고 고통당하고 물질을 투자하고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며 하늘나라를 위해 심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의 육신과 이 땅에서의 삶을 즐기기 위해 심고 뿌리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거두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20)” 하늘나라의 삶은 이 땅의 삶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 이 세상의 것은 곧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저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그 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 이 땅에서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의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려는 사람은 분명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여러분도 곧 주님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죽음을 곁에 두고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날엔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하늘나라에 올라오라는 통지서를 받게 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하 늘나라에는 분명히 상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많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은, 참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해처럼 빛나리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영광이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믿음의 눈입니다. 현재의 환경과 육신적인 것들만 보인다면 그는 영적인 눈이 흐려져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밝을수록 우리는 하늘나라에 더 투자하게 됩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의 상이 결정된다는 것은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마음껏 즐기고 살다가 하늘나라에 간 사람과,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 위해 고통 받고 성도를 바로 세우며 힘들게 살다 간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똑같은 상을 받는다면 주님은 공평한 분이 아닙니다.
사 도 바울과 세례 요한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포기한 것은 그들이 더 나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왜 이 땅에서의 기쁨을 뺏으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더 나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것, 하늘나라를 위해서 투자한 것입니다. 그들 눈에는 그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이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하늘나라에서의 삶 중 이 땅을 택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번 계산해 보십시오. 이 땅에서 얼마나 살지를 생각하시고, 죽음 이후에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살지를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 원한 삶을 위해서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떠서 하늘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늘나라에서 초가집으로 가지 않고 멋진 궁궐과 같은 집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만큼 하늘나라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원을 계산하고 사신다면 여러분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2016/01/12/(화) \”고린도후서 4:1-18\”/ 작성: 박창용
본문: 고린도후서 4:1-18
찬송가: 597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고린도후서 4장은 3장에 이어 하나님의 영광이 율법이나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설명합니다.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가르침과 사역에 오해를 갖고 대항하던 자들은 유대의 전통을 따라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던 이들로 여전히 율법에 매여 그리스도인의 규범(음식, 성, 결혼, 그리고 법적 소송 등)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고린도의 개방된 문화 속에서 근친상간 죄를 범한 자들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고린도 교회에 2차방문을 했었습니다. 누가도 사도행전에 기록하지 않았지만 고린도후서 12:14; 13:1-2에 ‘세번재 방문’이라 언급함으로 가슴아픈 ‘sorrowful visit’가 있었음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2:1절 이후 가슴 아픈 방문이었기에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까지 했었던 차였습니다. 그로인해, 사도바울은 디도를 교회에 보내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알아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쓴 바울은 드로아에 가서 디도의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디도의 도착이 늦어지자, 마게도니아까지 바울은 이동하여 기다렸습니다. 결국 마게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에 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과 바울에 대항 했던 이들에 대한 돌이킴과 회개에 대한 소식을 듣고 3차 전도여행 기간 중에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후서를 쓴 것입니다.
이런맥락에서, 사도바울은 4장을 통해 비록 2차방문 때 받은 수많은 모함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3장에 이어 부드럽고 문학적인 표현을 통해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은혜와 사명을 신학적으로 재정립하도록 도움으로 아픔과 상처를 아름답게 승화시킵니다.
먼저,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직분은 3장6절에 언급한 ‘새 언약의 일꾼’ 을 가리킵니다. ‘직분’ 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니아’(diakonia)입니다. ‘Service’, 즉, 섬긴다 또는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은혜도 직분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은혜와 직분의 주인이 되면 이는 거짓이며, 3-4절에 언급된 대로 ‘복음을 가리는 것이며’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단호하게 직분의 목적을 정의합니다. 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를 통해 바울은 은혜와 직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둘째로, 이 분명한 직분의 목적을 위해 두 개의 그림언어를 사용합니다.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주목해야 할 두단어가 무엇입니까? ‘보배’와 ‘질그릇’ 입니다. ‘보배’를 뜻하는 헬라어 ‘테사우로스’(thesauros)는 간직된 것, 보석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보배입니까? 바로 앞서 6절에 언급된 ‘영광을 아는 빛’ 이 그 보배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을 들어내는 영원한 빛을 뜻하며, 그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연약하고 가치 없는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45:9; 시22:15)
뿐만 아니라,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이 생겨도 박해를 받아 버린바 되어도 괜찮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동시에 보배를 담은 질그릇의 특권이 사명임도 언급합니다. 10절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 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뜻입니다. 왜 희생합니까? 그 희생 뒤에 그 죽음 뒤에 들어날 예수의 생명이 직분 맡은 질그릇 같은 우리들에게 나타나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1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것은 부활의 승리 때문이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때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된다는 바울의 신학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16절에 다음과 같이 마지막 권면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왜 낙심하지 않습니까? 은혜로 말미암아 직분을 받은 자들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살아가는 이들은 겉사람은 계속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며, 직분맡은 이들은 잠시 받는 환난에 떨지 않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바라기 때문이고, 직분 맡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닌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직분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일 뿐입니다. 질그릇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와 동거하며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조금이나마 영광의 광채가 난다면 이는 우리의 공로와 수고 때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때문입니다.
둘째로, 직분을 맡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희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자신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시며 고난 받고 조롱당하셔야 했던 자기부인 이였습니다.
잊지맙시다. 우리의 연약함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그리스도, 그 복음만을 자랑하십시다.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않은 것은’ 바로 나 같은 죄인까지도 품고 사랑하시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질그릇같이 아무런 가치도 필요도 없는 내 안에서 광채를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다. 또한 허물투성이인 우리에게 직분을 믿고 맡기시고 봉사를 통해 성령의 열매와 은사들을 더하시는 성령님을 기억하십시다. 그리하여, 이기심의 독성과 폐해를 되돌려 주고 받은 인생이 아니라 바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섬김의 본을 보이는 믿음의 명문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직분의 주인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직함과 공로로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애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정직히 나의 나됨이 나에게 있지 않고 오로지 보배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만 있음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존귀한 보배를 담는 질그릇이라는 존재만으로 감사하며 정결한 삶 살아내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교회에서 힘들게 봉사하고 누군가의 격려 또는 알아줌을 기대해 본적이 있는가?
2. 어떻게 하면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봉사에 매진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스스로 고취시킬 수 있을까?
3. 질그릇에 담긴 보화를 생각해 봤는가? 가치 있어 보이는가?
4. 지나친 포장이 보화를 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봤는가? 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작성자: 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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