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 의 권세 | \”자녀의 권세\” (1) – 데이빗 나이트 David Nthite 198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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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1부 예배 : 오전 9:00 (주일학교)
・ 2부 예배 : 오전 10:30 (대예배)
・ 3부 예배 : 오후 2:00 (청년)

・ 화요일 : 오후 9:00 (ZOOM 온라인 바이블)
・ 수요일 : 오후 8:00 (수요성경공부)
・ 금요일 : 오후 8:00 (찬양\u0026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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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요1:12-13) – 네이버 블로그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가장 큰 권세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고 가야 할 지옥에 가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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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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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요즘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소위 ‘장자권회복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많은 교회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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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faith.net

Date Published: 1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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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생각할 때… – 크리스천투데이

‘권세’는 그리스어로 ‘엑수시아’인데, 이는 누구에게나 떳떳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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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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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 금요철야 – 정필도목사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20070420 본문 / 요한복음 1:9~13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본문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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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ildo.kr

Date Published: 1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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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요1:12-13) ……………………………………….. 2…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권세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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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aerimc.com

Date Published: 9/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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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6-18)

로마서 8: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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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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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칼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 오피니언 – 기독일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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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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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 (요 1:6-13) – Faithlife Sermons

주일설교 – 요한복음강해2 (20210110) 작년 6월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한 공군 부사관이 자기 부대의 잘못된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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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1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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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 – 미주 크리스천 신문

하나님 자녀의 권세 … 1. 주님이 주시려는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나옵니다. …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됩니다.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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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press.net

Date Published: 8/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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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 – mission – 자녀의 권세

하나님이 ‘김 목사 설교 평생 하나만 하게’라고 말씀하신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택하고 평생 할 설교가 바로 오늘의 설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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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1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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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Jesus Glor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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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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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요1:12-13)

성경/요1:12-13 제목/하나님 자녀의 권세

● 권세의 힘

1957년 8월 30일 경주 경찰서 서장실로 전화 한 통이 옵니다. ‘나 이강석인데…’, 이 전화 한 통에 경주 경찰서장은 이강석이 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가서 ‘귀하신 몸이 오찌 홀로 오셨습니까?’라며, 연신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강석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입니다. 자식이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의 아들을 양자로 입양했고, 당시 1인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양아버지이고, 2인자인 이기붕이 친아버지였습니다. 이강석은 대단한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런 이강석이 아버지의 밀명을 받고 경주에 암행시찰을 왔다고 하니 경주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경찰서장, 시장, 군수, 은행장 할 것 없이 이강석에게 관사는 물론,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당시 36사단장은 경호원을 붙여 군용차량을 제공했습니다. 다들 이강석과 사진 한 번 찍겠다고 난리를 치며, 온갖 융숭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강석은 진짜 이강석이 아니라 22살의 대구 출신의 무직자 강성병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이강석의 얼굴을 아는 당시 경북지사로 인해 탄로가 나서 붙잡히게 되고, 결국 사기죄로 구속이 됩니다.

10여 년 전에 이윤규라는 사람이 이와 비슷한 일로 구속이 됩니다. 청와대 총무수석실 과장이라는 직함을 내세워 한국 디지털 라인 사장에게 8억을 뇌물을 받고, 약 3년 동안 극진한 대접과 유흥비 등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윤규는 청와대 총무수석실 과장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잡일을 하는 청소부였습니다.

청와대라는 말 한마디에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5, 60년대에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권력의 대단함, 권세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이야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권력의 힘, 권세 앞에서는 몸을 사리게 됩니다. 그래서 불법을 저지르고도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큰소리치기도 하고, ‘검찰인데요.’라는 한 마디에 스미싱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이 이 정도면 예전에 임금을 모시고 살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임금의 아들이라면 그 권세는 대단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무서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는 존재였을 겁니다. 하물며 이런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 영접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영접합니까? ‘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곧 예수인데, 예수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이기에 예수라는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한마디로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가장 우선의 조건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 이름대로 “구원자”이심을 “받아드리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이 “예수”, “구원자”라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전인격”을 나타냅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사고방식, 생활방식 등등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믿는다는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고, 어떤 삶을 사셨고, 어떤 일을 하셨으며,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하심과 40일 후에 승천하시고 다시 오마, 약속하신 약속까지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 영접에 대해서 또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란 성경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그”라는 “인칭 지시 대명사”를 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오직 그 이름만을 영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입니다.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여호수아,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겁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름”이라고 지시하여 말하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만을 가리킵니다. 이런 모습에 대해서 빌립보서에서 보여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7절 뒷부분과 8절 앞부분을 잘 보시면“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라고 말씀합니다. 7절은 “사람들과 같이”라는 복수를 썼고, 8절은 “사람의 모양”이란 단수로 썼습니다. 이것을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들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한 가정의 아들로 오셨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이름”이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사람처럼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오직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오신 ‘예수’만을 의미합니다. 그 예수만을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선언합니다.

● 하나님 자녀의 권세

그러면 그 이름 예수를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권세”라는 표현을 썼는데, 다른 말로 한다면 “특권”입니다. 오직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 가장 큰 특권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무엇으로부터 구원입니까?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고 영원한 형벌인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가복음 9:47-49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또 우리가 잘 아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에서 지옥에 간 부자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3-24)

이런 지옥에 대한 표현은 언어로서의 표현일 뿐입니다. 지옥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 이상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그 무서운 지옥을 예수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가지 않는 권세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가장 큰 권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천국을 소유하는 특권이 있는데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 21~22장을 보면 천국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진주로 만든 열두 대문이 있고, 온갖 보석과 정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나무마다 열두 과실을 맺고, 수정과 같은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찬양의 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도 인간의 언어적 표현일 뿐입니다. 천국의 실제는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 이 세상에서의 권세

이런 천국에 가며, 지옥에 가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또는 우리의 육체가 죽은 후에 누리는 특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의 특권은 저 세상만의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무한한 능력을 이 세상에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3-14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6:23-24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러한 기도의 특권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세입니다.

● 마무리

말씀을 정리하고 마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은 ‘그 이름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가장 큰 권세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고 가야 할 지옥에 가진 않는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더불어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가장 큰 권세는 구원받는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응답받는 권세를 누리를 특권이 주어집니다. 열왕기하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은 기도하므로 한 번은 국가의 멸망이란 위기 속에서 창 한번 쓰지 않고,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도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죽을병에서 기도하므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고, 그 증거로 해그림자를 15도나 물러가게 하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기도의 특권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천국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가 천국의 소망을 갖고, 기도의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요즘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소위 ‘장자권회복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많은 교회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한국교회에서는 조금만 부흥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것이 성경적 근거보다는 오히려 이방종교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고 실용성만을 절대화시켜서 도입하는지 데이빗 웰스의 표현대로 한국교회는 ‘신학실종'(No Place for Truth)상태에 빠져 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 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의 뿌리는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 강사였던 나폴레온 힐의 가르침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다. 노만빈센트 필의 가르침은 로버트 슐러와 조엘 오스틴으로 계승되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축복과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위에 언급된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목소리만 다를 뿐 내용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유명 성공학 강사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둔갑되어 많은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본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복음으로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을 더 알기 원한다면 「기막힌 속임수」(워렌스미스 저/스데반 황 역)와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저/전미영 역)을 추천한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선포, 믿음, 긍정적인 사고와 말 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물론 이런 용어들은 성경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포하고, 믿음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와 말을 했어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그 책임은 믿음 부족, 기도 부족, 헌신과 충성의 부족으로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므로 설교자는 그 책임을 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체면까지 지켜 드릴 수 있는 기막힌(?) 구조를 갖고 있는 가르침이다. 강조할수록 듣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강한 확신과 희망을 갖게 하지만, 극히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를 일반화시켜서 모두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기니 어찌 가혹한 희망고문이 아니겠는가?

몇 년 전 소천하신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은 “자녀 됨의 축복”이라는 설교에서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능력과 축복들을 믿음으로 선포하면 이뤄지는 것이 자녀 됨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이 비밀을 깨닫고 나서 하루에 100번에서 1,000번까지 “내 병은 치유되었다.”고 믿음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믿음으로 선포하다보면 성령님의 놀라운 기름 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면서 “은혜라는 자물쇠에 믿음의 열쇠를 돌리면 놀라운 은혜와 축복들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는 1,000번까지 선포하면서 놀라운 성령의 기름부음(?)을 경험했다고 하지만 그 기름부음(?)은 안타깝게도 그의 병을 고치지는 못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자녀 됨의 권세가 이런 것일까? 성경이 말하는 자녀 됨의 권세는 이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며 공급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주님을 신뢰하고 이런 것들을 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대속죽음으로 구원한 자녀들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보급품은 충분히 공급해 줄 테니까 싸움만 열심히 하라는 것과 똑같다.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이 보급품 걱정에 싸움에는 손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보급품 걱정에 싸움에는 관심도 없이 밤낮 간구하는 것을 믿음이요 충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은 약속을 주시면서, 그 약속에 근거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거늘, 이방인들처럼 주께서 필요한 때에 공급해 주실 것을 얻겠다고 믿음으로 선포하며 떼쓰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선하심, 그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불순종이 아닌가? 육신의 부모도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굳이 구하지 않아도 미리 다 준비해 놓고, 필요한 시점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준다. 자녀의 선포나 부모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정도와 상관없이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하늘의 새와 들의 꽃과 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께서 구하거나 선포하지 않았다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헌신과 충성이 부족하다고 주시지 않으실까? 이것이야말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한낱 이방종교의 신으로 격하시키는 신성모독이요, 기독교를 율법종교로 전락시키는 미련한 짓이다. 성경이 정의하는 믿음은 주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염원의 성취를 믿음으로 착각하여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가 무엇일까?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문제는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께 나오지 못하게 만든 죄에 있다. 결코 가난, 질병이나 인생의 고통이 아니다. 주님은 이런 세속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주님께 나갈 수 없었는데, 성자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아버지와 막혔던 담을 허무시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며 우리를 구원의 완성, 성화의 완성까지 인도하여 주신다.

요1:12,13절은 이 자녀 됨은 혈통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것(Born of God),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임을 증거해 준다. 롬 8장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 양자의 영, 성령이 그들 안에 계셔서 육신의 본성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성령으로 육신의 본성을 죽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른다고 교훈하고 있다. 이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영이시다(롬8:16). 바울은 롬8:17,18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교훈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결코 세속적인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고난도 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 영광은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으로서, 만유의 회복과 함께 주어질 영광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속으로 탄식하면서 이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인내하게 만드는 것이다.

로마서 8:26,27은 성령께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탄식하시면서 간구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령 하나님의 간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으로 응답될 것이다(28절). 성화의 완성에 이르는 것도 자녀된 자들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하여 완성된다(롬8:29-31). 롬 8:35-39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신가운데 교훈하였다. 누구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된 우리의 구원을 취소할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다.

혈통과 행위로 자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자녀가 되었고, 세상의 고난을 피하기 보다는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이 땅의 고난을 소망가운데 견디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 구원의 완성, 성화의 완성에 이르는 것도 육신의 본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보장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자녀 됨의 권세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비록 늘 죄로 치우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이르도록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다시 죄에 대항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해주신 자녀 됨의 권세에 감사하며 주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더욱 힘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자녀 됨의 권세,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해주신 아버지의 놀라운 은혜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녀 됨의 권세를 부패한 육신의 본성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율법주의와 이방종교적 가르침으로 격하시키는 다른 복음이 언제쯤 근절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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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20070420본문 / 요한복음 1:9~13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본문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까?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어떤 증거가 나타날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로마서 8장 14~16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하나님의 영도 성령, 그리스도의 영도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입니다.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사실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증거가 됩니다.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내가 주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요한일서 4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나는 하나님 안에 있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다.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은 형제에게 절대로 불의를 행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된 증거입니다.요한복음 8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완악한 유대인에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0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1장 8~9절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는데,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는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주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을 따르게 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은첫째,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죄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누리는 첫째 복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죄 없는 사람처럼 의인처럼 취급받는 것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100% 다 지키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율법을 100% 완전하게 지키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다 받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는데도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셨습니다.로마서 3장 20~22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율법대로 다 지키고 의롭다 함을 받을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면, 의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의롭다하심으로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입니다.옛날에는 율법대로 살아야 의롭다함을 받는데, 그러나 율법대로 살아서 의롭다함을 받을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놀랍고 새로운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로마서 3장 23~2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공로도 없이, 우리는 행한 것도 없는데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로마서 3장 25~28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이 십자가 보혈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넘어가버리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요한복음 5장 22~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이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심판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수지맞은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심판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의 심판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예수님이 심판하십니다. 어느 인간이 심판하는 것도, 사탄이 심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심판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판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으로 산 사람은 주님과 함께 주님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아서 주님과 함께 심판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이 세상에 무서운 심판이 옵니다. 소돔 고모라 때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옵니다. 노아의 홍수 때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옵니다.그런데 우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판에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로마서 4장 6~9절에 보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냐에 대해서 다윗이 말한 것이 있습니다. 죄가 있는데 정죄함을 받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 축복을 받게 됩니다.로마서 8장 33~34절에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고발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심판 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이십니다.요한일서 2장 1~2절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우리를 고발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는데, 왜 내버려둡니까? 불공평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쁜 짓을 하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셔야 합니다. 지옥에 보내야 합니다.”라고 고발합니다.그때 변호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변호사가 되셔서 “내가 바로 이 양을 위해서, 이 성도를 위해서 내가 대신 죄 값을 받지 않았습니까.”라고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예수님이 대언자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렇게 귀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우리가 매일 매 순간 죄를 범할 때마다 마귀는 우리를 진노해야 한다고, 멸망해야 한다고 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 대언자가 되어주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대변해주시고, 우리를 책임지겠다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 지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이 시간까지도 구원의 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둘째, 모든 저주를 속량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갈라디아서 3장 7~8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복락과 기업과 축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그대로 이어갈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여기서 ‘성령의 약속’은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의미합니다(요 14:16).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시므로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속량 받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약속까지 받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4장 4~7절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하나님의 때가 되니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우리의 죄를 다 속량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가지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고, 아들딸이기 때문에 그 유업을 받을 자입니다.자손들은 부모의 유산을 이어받고, 부모에게로부터 축복을 이어 받는 것처럼,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이어갈 자입니다.그러므로 저주가 끝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저주는 영원히 끝났습니다. 절대로 저주가 없습니다.우리가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이게 저주인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주신다고 하셨지(잠 3:12),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저주하지 않으십니다.참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28~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는 육체를 따라 태어났다가 한번 더 태어났습니다. 성령을 따라 난 자가 되었습니다.우리는 두 번 태어났습니다. 첫 번째로는 부모님에게서 육체를 따라 태어났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어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중생한 자가 되었습니다.세상 사람들이 거듭난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히지만, 그들은 천국의 유업,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우리와 함께 누리지 못합니다. 다 지옥으로 다 쫓겨납니다.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도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게 됩니다.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되, 칭찬과 상급을 받아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전도서 5장 10~13절에 보면,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재산이 많으니까 자식도 도둑이고, 친척도 도둑이고, 기회만 있으면 뜯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부자들에게 걱정 근심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전도서 5장 14~20절에 보면,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먹고 사느라 수고하는데, 항상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재산이 얼마나 많으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입니다.전도서 6장 1~6절에 보면,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재산이 많고, 명예가 많고, 자식이 많아도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고 낙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복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전도서 3장 12~13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수고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늘 낙이 있고, 낙을 누린다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큰 선물이고 축복입니다.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베드로는 믿음을 가리켜서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보배 중에 가장 귀한 보배는 믿음입니다.왜 그렇습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다 받기 때문입니다.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믿음만큼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적하면 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합니다.그런데, 대적하지 않고, 친구처럼 삽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편안하게 속임수를 써서 집안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고, 우리 마음속에도 들어옵니다. 대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승리합니다.마태복음 8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백부장의 하인의 병이 나았습니다.마태복음 9장에 보면, 주님이 두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라고 말씀하시니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라고 말씀하시니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믿음은 보배입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압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압니다.우리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압니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셔야 우리가 받는다는 것을 압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믿음의 사람은 우리가 청지기란 것을 압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압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압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거룩한 데 있고, 하나님의 뜻은 의롭고 선하시다는 것을 압니다.그 뿐만 아니라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믿음만큼 순종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아브라함은 순종하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조건 떠났습니다. “네 독자 이삭을 바쳐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조건 바쳤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믿음만큼 순종하는 것입니다.믿음만큼 거룩하게 삽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 단호하게 물리칩니다. 그것이 요셉의 믿음을 보여줍니다.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보면, 왕이 주는 포도주와 진미로 더럽히지 않기로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먹지 않았습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우상 앞에 제사 지낸 것을 먹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믿음만큼 헌신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대로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립니다. 로마서 14장 8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믿음만큼 헌신합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사도들도 그러했습니다.빌립보서 2장 30절에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믿음의 사람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믿음만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만큼 열매가 나타납니다.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나타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은 우선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넘치고, 희락이 넘치고, 화평이 넘쳐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일이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예배하는 일이 좋고, 봉사하는 것이 좋고, 찬양하는 것이 좋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하나님의 일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믿음은 성령 충만과 정비례합니다. 성령 충만한 만큼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믿음이 충만해집니다.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살다가 승리하고, 주 앞에 가서 칭찬 듣고, 면류관 받고, 영광을 얻으려면 성령 충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만큼 복을 받습니다. 믿음만큼 복을 누립니다.그러므로 “축복해주세요, 병 고쳐주세요,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라는 식으로 기도하지 마세요. 성령 충만을 구하세요. 믿음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을 통해 받는 복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많은지, 믿음으로 무장되면, 우리의 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얼마나 간증거리가 많아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복을 구하는 식으로 기도하지 마세요.특별히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복 받고, 믿음으로 복을 누리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요1:12-13) ……………………………………….. 2018. 7. 29. 주일낮예배

우리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절-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저는 은혜를 체험하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시는데 못할 것이 뭐랴….

그러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확신이 와서 겁 없이 이 말씀이 “확…..”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누가 아파도 기도해주고, 누가 문제 있다고 하면 안고 기도해주고, 학생들이 밤새 철야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랬을 때 능력을 좀 받은 것 같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이길 때도 이것이 확실히 믿어졌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도 여호와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내가 30년을 살든, 50년 살든 자녀는 오래 살아도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우리는 지렁이 같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여러분! 우리가 권세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 곧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권세’ 헬) ‘엑수시아’라고 하는데 ‘맡겨진 권위’를 말합니다.

권세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능력’이란 헬)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권세가 능력을 다스립니다.

자동차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력이 있습니다.

“이 차는 3,000cc, ‘

340마력’입니다. 340마력은 340마리의 말이 끄는 힘

그러나 ‘운전수’가 움직이지 않으면 꼼짝하지 않습니다.

운전사는 그 자동차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교통경찰’은 아주 키가 작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덤프트럭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비행기는 능력이 있지만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어도,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믿고, 권세를 사용하면 권세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게 주어진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불안과 근심, 걱정 가운데 살아가기 쉽습니다.

제가 처음 신학생 시절 설교집을 하나 샀습니다. 독립문 성결교회 임영재M “응답받는 기도”

그 목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그분의 간증 봄대심방을 하는데 저기 서울 달동네 판잣집에 사는 한 할머니 집사님 집을 심방

그 할머니는 혼자서 파출부, 일을 하면서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추운 겨울인데도 연탄을 때지 못한 냉방에 살고 계셨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방이 도배도 못하고 신문지로 골판지로 우중충하게 하고 살고 계셨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 할머니가 그래도 목사님을 대접한다고 부엌에 나가셨습니다.

임영재 목사님은 할머니 집사님이 사는게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벽지는 찢어지고 곰팡이…..그런데 저쪽 구석 벽에 이상한 게, 허연게 뭐가 붙어 있더랍니다.

목사님이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글쎄 ‘은행수표’ 같았습니다.

진짜 수표일 리가 없지 하고 자세히 가서 보니까, 글쎄 진짜 수표인데, 그 가격이 서울에서 집을 한 채 사거나, 이 돈을 은행에 저금해 두고 이자만 가지고도, 이 집사님이 죽을 때까지 살고도 남는 아주 큰 액수 더랍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이 집사님을 막 불렀습니다.

“아, 아니… 집사님, 이 수표 뭐예요, 아니 왜 이렇게 귀한 수표를 이 벽에다 붙여 놨어요?”

그러니까 집사님이 대답하시더랍니다.

“아, 그거요, 별 거 아네요. 목사님, 먼저 이거나 드세요.” 할머니 집사님이 삶은 달걀을…

그러자 목사님은 달걀을 쳐다도 안보고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이게 수표인데, 이 수표를 은행에 갖다 주면, 집사님 평생 살고 남는 돈도 나오고, 집도 살 수 있는 아주 큰 액수의 수표예요. 이게 어서 났어요?”하고 물으니까

“작년에 저 옆 집에, 할머니도 없고,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병간호를 못하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제가 그 분 병 간호를 몇 년 해 드렸지요.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날 부르더니 제 손에 저 것을 쥐어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어르신은 얼마 후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잘 간직하라고 하셨기에, 어디다 두기도 뭐하고 그래서 기념으로 벽에 붙여 두었어요”

“아이고, 집사님, 이거 큰돈이에요. 엄청나게 큰 돈이에요. 이 돈이면 집도 사고, 연탄도 사고,

쌀도 사고, 집사님 끼니 걱정 안하고, 평생 파출부 안해도 될 큰 돈이예요”

그러니까 집사님이 못 믿겠다는 듯이 “아이 목사님, 저게 뭔 돈이에요. 종이 쪼가리죠”

“집사님, 이건 수표라고 하는건데요, 이거 은행에 가져가면 큰 돈을 줘요. 그러면 집사님 집도 사고 연탄도 사고, 끼니 걱정 안해도 되고, 집사님 파출부 일 안해도 돼요”

목사님이 한참 설명을 하시자 그제서 “그래요? 정말이에요? 이게 그렇게 큰 돈이에요?”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따라) “난 그것도 모르고…”하며 한 숨을 푹 쉬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교인들을 시켜서 그것으로 집을 마련해 드리고 저금하고 이자로 생활하시게…

할머니 집사님은 그걸 알지 못하셨기에, 추운 겨울에도 연탄불도 못 피우고, 매일 끼니 걱정하고, 약한 몸으로 매일 파출부 일 다니며 살았습니다. 부자였는데,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남 얘기가 아리라 우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도 있습니다.

1)청구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청구하면,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십니다.

‘달라’고 하는 권리가 있습니다. 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죠?

지난 주 금요심야기도회에도, 그 더우신데들 다들 나오셔서 소예배실이 그득….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께 달라고 할 권리가 있습니다.

옆집 아저씨 한테는 아무리 달라고 하면? ‘니 아버지한테 달라고 해야지 왜 나에게 달라고 해?’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하고 부르면 “어 그래, 알았다”…

그것가지고 되겠니? 더 주시잖아요….. 온갖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네 자녀가 떡을 달라하면 돌,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자가 있겠느냐”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 뿐만 아니라 더 얹어서 주십니다. 청구권 “기도합시다”

2) 악한 것을 물리치는 “영적 정복권”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귀신도 떠나고 저주도 흑암도 물러가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 기도합시다 우리의 기도가 명령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3)계획을 바꾸시는 “예정 교환권”이 있습니다.

원래 히스기야 왕은 죽고 살지 못하도록 예정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이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예정까지도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합시다

4)“천사 동원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를 구출하였습니다. 믿는 이는 천사가 죽을 자리에서도 구출해 주십니다. 기도합시다

5)“자연 지배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멈추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바다야, 잔잔하라!”고 명하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명령하면 듣습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권세… 예수님이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더 큰 일도 하리라

기도합시다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명령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자녀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합시다.

그리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오, 주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게 하소서. 아멘!”

베델 바이블 하우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6-18

오늘 설교의 본문은 지난 주의 것과 같지만 설교의 초점을 달리 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1:6-18 절 말씀은 크게 4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 그 각각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6-9: 예수님께서 참빛으로 증거되심

10-13: 예수님께서 주( 主 )로 오심

14-15: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거하심

16-18: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충만케 하심

지난 주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참빛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 참빛 ” 이란 “ 참된 행복의 근원 ” 또는 “ 참된 생명의 근원 ” 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행복의 근원이시며 참된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 우리가 세상의 거짓 빛들에 속지 않으며 , 참빛 되신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을 가장 사랑할 때 , 우리는 변하지 않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더 나아가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의 초점은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예수님 ” 입니다 . 이 말씀의 본질은 지난 번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

12 절 말씀입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참빛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 오늘 본문 말씀에는 “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 고 하며 (10 절 ), “ 자기 땅 , 자기 백성에게로 오셨다 ” 고 합니다 (11 절 ). 이 말씀들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또한 이 세상의 주인 (Lord) 이 되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 예수님을 알아보고 또 그들의 주님을 영접해야 했습니다 . 하지만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 거절하고 , 싫어했습니다 .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주 되신 예수님께 행한 일이었습니다 .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라보고 또 영접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람들의 죄 때문입니다 . 사람이 처음 죄를 짓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 너희가 그것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 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 고 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 곧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며 스스로 “ 왕노릇 ” 하려는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 이 욕심 때문에 창조주이시며 주인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 하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 이는 주님께서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거느리고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큰 영광과 권능으로 임하신 것이 아니고 , 갈릴리 나사렛 시골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고요한 밤에 “ 한 아기 ” 로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오심은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아무도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 왜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조용하게 “ 보통 사람 ” 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일까요 ? 이는 주님께서 “ 평화 ” 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 우리에게 “ 평화 ” 를 주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

12 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 그리고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 란 어떤 권세일까요 ? 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일까요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 우리의 삶은 과거에 비해 어떻게 달라집니까 ? 많은 질문들이 마음 속에 떠오릅니다 . 이런 여러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이 증거하는 바 한가지 매우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 그것은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 입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 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 성경 , 특히 신약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며 ,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 하나님의 자녀 ” 가 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 옛사람 ” 으로 살기를 고집한다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별로 의미 (relevance) 가 없습니다 . 우리는 항상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며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배워나가며 , 또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 화해의 선물 ” 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 “ 평화의 선물 ” 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 곧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높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으로 그 얼굴을 우리에게서 가리우시고 , 우리는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멀리하였습니다 . 하지만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 그것은 우리를 위해 “ 가장 좋은 선물 ” 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 선물 ” 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 로마서 8:32 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완전한 사랑 ” 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모두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 제가 군 생활을 할 때 , 휴가를 받아 집에 가면 저를 반겨주시는 어머니의 환대가 얼마나 따뜻하고 푸근한지 모릅니다 . 거친 군복과 군화를 벗고 대신 어머니가 주시는 보드랍고 편안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밥을 먹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마음이 평안하고 자유롭습니다 . 그 때 어머니가 저에게 주시는 것들은 어머니가 갖고 있는 것들 중 “ 최고 ” 입니다 . 가장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 어머니에게 기름진 햅쌀이 있는데 그 쌀을 쓰지 않고 일년 묵은 퀴퀴한 쌀로 밥을 짓는다는 것은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 입니다 . 어머니가 아끼는 반찬이 있는데 그 반찬이 아까워 몰래 감추고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 입니다 . TV 에 마침 어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밥상을 차리지 않고 배고픈 아들을 잠시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 입니다 . 어머니와 그 아들 사이에는 이런 “ 사랑 ” 곧 “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사랑 ” 이 있습니다 .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사랑도 이와 비슷한 사랑입니다 . “ 비슷 ” 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 훠 ~ 얼 ~ 씬 더 크고 깊고 넓은 사랑입니다 . 가장 좋은 것을 주시되 “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는 ” 사랑입니다 . 우리로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사랑입니다 .

이사야 49:15 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신실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 우리는 교만함과 죄악됨으로 하나님을 떠났으며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교만하고 죄악된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 그리고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 이사야 65:2 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그렇습니다 .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난 죄인들을 향한 “ 하나님의 부르심 ” 의 역사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셔서 이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 이적을 행하시고 , 타이르시고 , 때로는 고난을 주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셨습니다 . 이런 것들이 잘 통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길 “ 아무래도 내가 보인 사랑이 부족했던가 보다 .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시 그는 공경하리라 ” 하셨습니다 ( 누가복음 20:13). 예수님은 하나님의 “ 내 사랑하는 아들 ” 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독생자이십니다 . “ 독생자 ” 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겠습니까 ? 그런데 그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 이 사랑은 심지어 “ 내 사랑하는 아들 ” 에 대한 사랑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 가장 귀한 것 ” 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이 큰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심으로 ,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화해의 선물을 받고 마음을 돌이켜 그 사랑의 품에 안기기를 기대하십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해의 선물이십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 화목제물 (sacrifice of atonement)” 이라고 부릅니다 ( 로마서 3:25). 곧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셔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 이 예수님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던 장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습니다 . 곧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처럼 가까워진 것입니다 .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 는 비록 가깝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벽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 하지만 구주 예수님의 희생으로 회복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이 없습니다 . 그것은 완전한 연합 (union) 입니다 .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16:23,24 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26 절에 이렇게 더하십니다 . “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을 믿는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 이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 그리고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 품에 안으시고 말씀하십니다 . “ 무엇이든 구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 예수님께서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는 것 ” 입니다 .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님의 사이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친밀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우리는 이제 무시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며 “ 무엇이든 ”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 구한 그것을 받으리라 ” 하시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 하나님께서 참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

“ 하나님의 자녀” 의 삶 또는 그 권세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 저는 “ 하나님의 자녀 ” 의 삶을 설명하는 세 가지 중요한 키워드를 말하고자 합니다 .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 하나님의 자녀 ” 의 삶을 이해한다면 ,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의 원수였던 “ 옛사람 ” 이 이제 예수님 안에서 “ 새사람 ” 이 되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 그 세가지 키워드란 바로 “ 사랑 ” 과 “ 자유 ” 와 “ 영 ( 또는 성령 )” 입니다 . 그렇다면 “ 옛사람 ” 의 삶을 상징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 그것은 “ 두려움 ” 입니다 . 우리 옛사람의 삶을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 우리 새사람이 갖는 권세는 사랑과 자유와 성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얼마 전 (2

019/8/21) 사람들의 눈을 끄는 뉴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 교황 프란시스가 설교를 하는 도중에 한 자폐증을 앓는 소녀 (Clelia Manfellotti, 11 살 ) 가 강단 위로 올라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 물론 이 소녀의 어머니와 교황의 경호원들은 당황하며 놀라서 아이를 강단에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 그러자 교황이 말했습니다 . “ 아이를 그냥 두세요 (Let her be)!” 아이에 대한 교황의 인자함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 이 뉴스에서 한 가지 사실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 교황이 “ 아이를 그냥 두세요 !” 했을 때 사람들은 교황 할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 만일 경호원이 “ 아이를 그냥 두세요 !”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 사람들이 여전히 감동하며 박수를 쳤을까요 ?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 오히려 그 반대였겠죠 . 그 경호원은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 그것은 교황과 경호원 사이에 “ 권세 ” 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 교황은 모든 것을 “ 원하는 대로 (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 생각하고 , 말하고 , 결정할 권세가 있습니다 . “ 모든 것을 ” 말이죠 ! 하지만 경호원은 다릅니다 . 그에게는 그런 권세가 없습니다 . 그는 반드시 “ 정해진 규칙 ” 을 따라서 일해야 합니다 . 그것을 벗어나면 두려운 벌을 받게 됩니다 . 그런데 교황에게는 심지어 그 “ 정해진 규칙 ” 을 무시할 권세도 있습니다 . 교황에게는 정해준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 사랑할 자유 ” 가 있습니다 . 그 홀 (hall) 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 교황만 ” 그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권세가 바로 이 권세입니다 . 교황이 “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 사랑의 자유를 누리듯이 ,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무서워하는 종의 영 (spirit of bondage to fear) 이 아니라 양자의 영 (Spirit of sonship – 로마서 8:15) 이 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랑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사랑의 자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깊이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평화의 선물 ” 입니다 . 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한 가운데 무시로 아버지께 나아가며 그 사랑 안에서 “ 모든 좋은 것 ” 을 마음껏 자유롭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있는 한 가지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고 , 따라서 그 축복을 잘 누리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 누가복음 19:42 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말씀하십니다 . “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해하시고자 “ 가장 좋은 선물 ” 을 주셨는데 죄로 눈이 멀어서 그 선물을 싫어하고 , 걷어차며 ,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는 사람들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너무 안타까우신 나머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합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화해의 약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선물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이 평화의 선물을 받아 누림으로 참으로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박진우 칼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자 들에게 주어진 권세들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권세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뭘까요?

첫째, 권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얻은 가장 큰 권리는 무엇입니까? 죄사함입니다. 왜 죄사함이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됩니까? 그것은 죄사함을 받아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는 바로 천국상속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믿는 자가 누려야할 가장 중요한 권세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라고 가정해보시죠? 친구들이 왜 여러분들을 부러워할까요? 만약 여러분이 지금 돈이 없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전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네. 나중에 그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재산상속권이 자녀 된 여러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던 어느 날 남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몰래 골프장 잔디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시다가 원래 장애를 가지셨던 다리를 또 다쳤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속상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속상해서 전화기에다 대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니 아부지, 뭐하실려고 다리도 안 좋으신데 그러한 일을 해가지고 또 다치셨어요, 지금 괜찮으세요?”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괜찮다. 니가 힘들다고 해서 한 푼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다.”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아버지나 몸 잘 챙기세요. 다리 말고 힘든 거는 없어요. 제가 아버지 못 챙겨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난 괜찮다. 귀 좀 안 들리고, 다리 좀 절고, 돈 좀 없으면 어떻노. 그래도 우리는 이미 천국 안 가나.” 아버지의 그 고백이 저의 가슴을 쳤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천국 안가나.” 저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여러분,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계십니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잠 못 자는 시간을 보내십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모자란 자신의 모습 때문에 열등감속에서 허우적 거리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천국에 안 갑니까?”

둘째,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천국복음을 전하시면서 동시에 했던 사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을 쫓아내고 모든 악한 병들을 회복시킨 것이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두가지가 우리의 삶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그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고 악한 병들이 떠나가게 되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 능력을 허락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앞에서 나눈 것처럼 미래에 올 천국을 지금 이 땅 가운데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할 천국에서 할 일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천국을 지금 이 땅 가운데서 경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이 주어진 이유입니다.

예수 이름에는 사단을 이길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예수이름으로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죄악들의 배후에는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사단이 있습니다. 왜 이 능력이 주어졌다구요? 네. 천국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자임을 확신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 20절에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서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낸 걸로 기뻐하지 말고, 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단을 물리치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천국에 속한 자임을 확신하고 누리게 되는 겁니다.

예수 이름에는 악한 병들을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걷지 못하는 거지 한명에게 믿음으로 명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내가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 거지는 바로 일어나 걷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거기까지만 묵상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물론 분명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적 자체로써의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귀신들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있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거지를 걷게 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걷게 된 그 거지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여기에 악한병을 치유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 거지에게 참된 복은 걷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참된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먼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능력이 이미 있습니다. 올 한 해 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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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요 1:12-13.

제가 목사가 된지가 이제 27년이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설교를 하였는데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교는 오늘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을 본문으로 한 ‘자녀의 권세’라는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김 목사 설교 평생 하나만 하게’라고 말씀하신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택하고 평생 할 설교가 바로 오늘의 설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권세’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제일 큰 권세 중의 권세가 자녀의 권세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저희 선친은 술을 좀 하셨었습니다. 소주 반병만 드시면 주정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술이 취하시면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아들이라고 하나 밖에 없는데 마음껏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희 아버님의 진심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껏 해 주고 싶은데 마음껏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주정을 하셨던 아버님의 마음을 지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마음껏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하시면서 그래도 너는 형제가 없어서 나눠가질 것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숟가락도 다 네 것이고 밥그릇도 다 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님의 말씀대로 숟가락도 다 내 것이 되었고 밥그릇도 다 내 것이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버님이 가지고 계셨던 집도 제 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합법적으로 제게 상속되었습니다. 자녀의 권세는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올 때 ‘우리 집 갈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말로 우리 집이라는 말은 자기 집이라는 말입니다. 순 도둑놈(?)들입니다. 단돈 10원도 집에 보탠 일이 없으면서도 당당하게 아버지 집을 자기 집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코메디언 중에 이휘재라는 코메디언이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전화를 하였는데 아버님이 받으셨답니다. 친구들이 ‘거기 휘재네 집이지요?’라고 물었더니 그 아버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아니다. 내 집이다’ 그 아버님이 참으로 위트가 있는 분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권세 중의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모두가 다 그 권세를 받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의 열쇠는 자녀의 권세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집 열쇠는 자녀에게만 주는 것입니다. 집 열쇠를 주시겠다는 것은 베드로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돈입니다. 백 원 천 원 하면 묻지 않고 주곤 했었지만 만원하면 물어보고 주고 준 다음에도 또 확인을 하곤 하였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아까워서였습니다. 잘못하면 아이들이 잘못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은행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카드였습니다. 대학생이면 어른인데 어른이면 돈을 다루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카드를 쓰면 그 리포트가 제게로 왔습니다. 늘 꼼꼼히 확인해 보았습니다. 카드를 주었다고 마음대로 쓰면 회수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가 카드를 잘 관리하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믿으니 카드를 줄 수 있었습니다. 자기 돈이 내 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돈은 다 자기 돈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저는 하나님이 저를 믿으실 수 있으면 하나님이 저에게도 카드를 주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때에는 카드가 없어서 예수님이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 말씀하신다면 천국 열쇠가 아니라 천국 카드를 주시겠다고 하시겠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의 권세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자녀의 권세가 바로 그런 권세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정말 권세입니다.

그 권세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내 삶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Lord)으로 영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주권포기입니다. 권리포기입니다. 자기부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원죄 때문입니다. 선악과 따먹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사탄이 하와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다. ‘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앉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선악과를 따먹고 우리는 모두가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모두 입으로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리와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고 천국 열쇠와 천국 카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기 위하여 천국의 열쇠를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의 권세를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에 대한 욕심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정말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를 부인하고 권리를 포기하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제 돈 지갑에 눈 독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용어인 것 같습니다)을 들이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부담스러워지고 기분이 찜찜해 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순발력이 있는지는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하나님께 ‘저 해와 달과 별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관심과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해와 달과 별에는 별로 관심도 욕심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 같은 것에게 속으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도 해와 달과 별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계속 제 돈 지갑에만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정말 답답하여 지갑을 열어 보여 드리며 ‘땅 한 평 값도 없습니다. 저 해와 달과 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제 돈 지갑에만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그 장난 같은 생각을 그날 하루 종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정말 평생에 몇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지갑의 주인이 내 주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하여도 지갑 즉 돈의 주인이 나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하나님이 지갑과 돈의 주인이실 때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는 정말 하나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게 하기 위하여 제 지갑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키워주셨던 임택진 목사님께서 청량리중앙교회 목사로 계실 때 상도동에 있는 어떤 큰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눈치 채신 장로님들께서 목사님이 떠나지 못하시게 막으셨습니다. 그때 선임 장로님이 임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큰 교회에 가시게 되면 아마 봉급이 우리보다 많으시겠지요? 우리도 다음 달부터 봉급을 올려드릴 터이니 가지 마세요.” 그때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임 목사님의 명언이 나왔습니다. “소시장의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시장의 소가 아니요” 얼마나 근사한 말인지 모릅니다. 제가 청량리중앙교회 45년사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이야기였는데 그 때 받은 감동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소시장의 소로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각오가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청량리중앙교회 장로님 중에 큰 회사를 경영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직원이 약 600여명이 되는 그런 회사였는데 목요일마다 직장예배를 드리곤 하셨습니다. 신대원 졸업반 때였는데 설교부탁이 있어서 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신학생도 강사라고 강사비를 주셨습니다. 그때 그 강사비가 7,000원이었는데 당시 7천원은 제게 거의 한달 용돈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거의 매달 한번 혹은 두 번 씩 가게 되어 갑자기 용돈 쓰는 일이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그 장로님의 부인 되시는 권사님을 만났는데 그 권사님께서 직원들이 제 설교를 좋아한다면서 이번 달에는 4번을 계속해서 설교 해 줄 수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였는데 그때 제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었습니다. 그것은 ‘사 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소시장의 소’ 이야기만 없었다면 혹시 이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감동을 하고 소시장의 소가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였는데 그게 그렇게 맥도 없이 무너지는지 그때 참 마음으로 비참했었습니다. 저는 그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미국의 예수 잘 믿는 청년들이 청년 때 하나님께 십일조 서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봉 10만 불까지는 1/10조를 드리겠습니다. 연봉 10만 불에서 15만 불 사이가 되면 1.5/10조를 드리겠습니다. 연봉 20만 불이 되면 2/10조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여 9/10조까지 하나님께 약속을 드리는 것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와 문방구에서 커다란 금전출납부를 사다놓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기록하며 돈을 쓰고 있습니다. 금전출납부 맨 앞 한 장에는 ‘사랑하는 아들 부열, 지열, 정열이에게 돈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아비가 되기 위하여 남기는 기록’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한 달 수입이 얼마면 수입의 몇 퍼센트를 떼고, 얼마면 몇 퍼센트를 떼겠다는 누진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2002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기록하면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수입이 얼마가 되든 내 생활의 수준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대로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워놓고 전투하듯 하루, 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 욕심과 내 뜻대로 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써보려고 나름대로 부족하지만 발버둥질 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삶의 자유를 느낍니다. 그것을 통하여 돈보다 하나님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제 삶에 더 가까워지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돈보다 하나님이 제게 더 귀한 분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혹 아십니까? 사람보다 돈이 귀하면 그 사람은 남입니다. 남이라고 우리가 다 모르는 남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대부분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의미에서는 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보다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은 가족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귀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아닐 것입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시다면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시라야 여러분은 그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을, 참으로 신기한 것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을 늘리면 늘릴수록 내 몫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입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의 열쇠요 천국의 카드요 자녀의 권세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망의 뿌리는 죄요,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욕심 중의 욕심이 바로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세상에서 아마 제일 큰 권세가 있다면 그것은 돈의 권세일 것입니다. 세상에 돈처럼 힘이 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물론 돈이 없으면 힘들고 어렵고 불편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면 재벌이 자살을 하겠습니까?

돈의 권세로는 절대로 잘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정말 부요케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여러분의 주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돈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살지 아니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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