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빛 을 발하라 | [악보\U0026찬양] ‘일어나 빛을 발하라’ 장욱조 曲, \U0026 찬양 상위 230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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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3) – 주일예배 설교 | 동탄영락교회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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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7/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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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당당뉴스

* 본문은 성도들에게 빛을 발하라고 사명을 고취시키는 말씀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는 말씀은 어둠의 세력에 굴하지 말고 담대하게 일어나 세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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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5/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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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보스톤한인교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 빛은 바로 말씀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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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boston.org

Date Published: 1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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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cjob)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주전 700년경 선지자 이시야가 이르라엘 백성을 향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요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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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1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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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휴스턴 새 믿음 장로 교회

이사야 60장 1-3절에 보면, “일어나라빛을발하라. 이는네빛이이르렀고여호와의영광이네위에임하였음이니라. 보라어둠이땅을덮을것이며, 캄캄함이만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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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fpch.org

Date Published: 10/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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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u0026찬양] '일어나 빛을 발하라'   장욱조 曲, \u0026 찬양
[악보\u0026찬양] ‘일어나 빛을 발하라’ 장욱조 曲, \u0026 찬양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일어나 빛 을 발하라

  • Author: 백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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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0. 2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gl8d1CUZPFw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3) – 주일예배 설교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어느 날 영국의 유명한 의사에게 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환자의 얼굴은 몹시 창백하였고 번민에 가득 차 보였습니다.

의사는 진찰 후에 그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우울증 걸려 있음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몸을 치료하는 것보다 정신적 휴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약을 쓰시기 전에 먼저 극장에 가서 ‘그리말디’의 희극을 관람하십시오.

그 곳에서 실컷 웃고 마음을 풀어주십시오. 그 후에 다시 치료를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말디’라는 사람은 당시 런던에서 굉장한 명성을 얻고 있던 희극배우였습니다.

그 사람은 관객들을 웃음으로 사로잡는 재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듣던 환자가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약으로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데 약으로 처방이 안 될까요?”

그러나 의사는 끝까지 자신의 처방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사실은 제가 바로 ‘그리말디’입니다.”

의사는 이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런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즐겁게 해 주던 그가 그 자신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빠져 웃지도 못하고,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일인데, 우리나라에서 ‘행복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방송인인 최모씨가 남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한 사건으로 온 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쓴 저서에서 일관성 있게 ‘희망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행복 그거 얼마에요, 행복이 뭐 별건가요, 유쾌한 행복사전, 행복의 홈런을 날려라 등등…”

이 외에도 행복에 관한 그녀의 저서가 많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저서들과 방송을 통해 평소 “슬픔, 처절한 아픔, 고통의 순간에도 행복을 노래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실패와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실체를 알고 보니, 정작 본인은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우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행복전도사”라는 굴레에 갇혀, 치료도 받지 못하고 내색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깊은 불행의 수렁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 원리가 있듯이 행복에도 분명한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행복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장난감이나 과자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이 일시적인 행복감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곧 싫증이 납니다.

그 때 아이는 무엇을 찾습니까?

엄마입니다.

아이에게 있어 행복의 근원은 엄마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엄마가 함께 있을 때 과자가 더 맛있고, 엄마가 함께 있을 때 노는 것이 더 즐거운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돈이나, 학력이나, 권력이나, 명예, 좋은 차, 좋은 아파트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곧 그러한 것에 싫증을 내게 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꼭 갖고 싶었던 것, 그것을 가졌을 때 얼마동안 행복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 기쁨은 곧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또 다른 기쁨을 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것처럼, 나 자신을 이 땅에 있게 하신 분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하듯, 우리의 모든 인생에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자녀 삼아주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 관계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희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열심히 놀다가 엄마를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지 못해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그 아이에게 기운을 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디에 가면 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요?

지쳐서,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네 엄마를 저기서 봤다”라고 말하면 아마도 그 아이는 죽을힘을 다해서 다시 일어나 엄마를 찾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엄마만이 자기의 절대적인 보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기의 절대적인 보호자인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그들의 절대적인 보호자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민족 멸망 직전의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스스로 그들의 보호자인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장인 59:1-3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도우시려고 해도 도울 수가 없는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진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그들은 악한 일에 너무도 깊이 빠져 하나님을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자격마저 상실했던 것입니다.

또 그 앞부분인 54장에 보시면 이스라엘은 자식도 다 잃어버리고, 남편도 다 잃어버린 과부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런 꿈도 소망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56:10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여러분, 파수꾼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적들이 쳐들어오거나 위험에 빠지게 되면 소리치고, 알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다 “맹인이요, 무지하며, 벙어리고, 잠자는 자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은 바벨론에게 침략 당해 나라가 망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서 노예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의 70년간 포로생활로 연단된 뒤에 고레스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때의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보통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것만 해결되면, 이 이 때만 넘기면, 이 고비만 넘기면 하고 앞으로 있을 소망을 붙들고 이겨냅니다.

그런데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거나 더 큰 난관을 만나게 되면, 더욱 낙심하여 완전히 주저앉게 됩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희망과 기대를 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예루살렘 성은 기대한 것과는 달리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더구나 주변 민족들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들의 재건을 방해하고, 억압하고, 탈취했습니다.

이에 낙심한 예루살렘 주민들은 원망을 늘어놓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일어나라” 히브리어로 ‘쿰’입니다.

여기서 ‘쿰’ 이라는 말은 신약성경 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면서 말씀하셨던 ‘달리다굼: 달리다-소녀냐, 굼-일어나라’, 바로 그 단어입니다.

“달리다 굼 – 소녀야 일어나라”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죽은 소녀가 ‘일어나라’고 한다고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죽은 소녀는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달리다굼’ 명령하셨을 때에 그 소녀는 죽음과 절망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일어나라” 명령하심으로 죽은 소녀를 살렸다면, 좀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는 우리를 일으키시는 것이야 그렇게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좀 지쳐서 엎드려 있는 우리를 일으키시는 것이야 예수님에게는 아주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도 ‘쿰’이라는 예수님의 음성들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금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그 모든 문제에서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일어나라”는 이 말씀을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어날 힘까지도 공급해 주시므로, 우리가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의 문제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 있더라도 “일어나라”는 이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가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났으면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일어나라”라는 말씀이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라면,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보다 더 차원이 높은 사회적인 사명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사명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4-1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은 창조의 근원이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너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으로는 자기 속에 어둠이 없도록 겸비하고, 밖으로는 세상의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옛 습관들을 청산하고 끊어내야 합니다.

특히 ‘빛’을 말라기서 4:2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면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빛’ 곧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인데, 그러면 우리는 외양간에 묶여 있다가 풀려난 송아지처럼 기뻐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의 빛,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짐으로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2절에는 빛을 비춰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는데 ‘어둠과 캄캄함’입니다.

여기서 어둠과 캄캄함은 죄악과 죽음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죄악과 죽음의 세력이 온 땅과 온 인류를 덮고 있기에 그들에게 새 생명을 부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세상의 빛’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의 원천은 아닙니다.

우리는 반사체입니다.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해 주듯이, 거울이 햇빛을 반사해서 그늘진 곳을 밝혀 주듯이, 우리의 사명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 구원의 생명의 빛을 전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고, 그 임재 안에 머물기만 하면, 마치 우리 자신이 빛인 것처럼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거울의 표면이 매끄럽고 깨끗할수록 더 잘 빛을 반사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의 광채가 우리에게서도 잘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할 때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 때, 믿음에서 떠나갔던 우리자녀들이 돌아오게 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하게 될 것이고 그들도 범사에 잘되고 형통함을 맞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그 빛을 통해 우리의 삶에 형통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인 것입니다.

또한 이 형통함은 우리 믿는 자들만의 형통함이 아니라 우리가 빛이기에,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그곳이 형통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의 진정한 소망과 생명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이 말씀 앞에 믿음과 헌신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주어짐을 오늘 다시 깨닫습니다. 저희들 모두, 이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빛으로 삼음으로 어두운 이 땅 가운데, 일어나 빛을 발하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구원의 빛을 땅 끝까지 전하는 복음이 일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장 1-3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가. 성도는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한다.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 본문은 성도들에게 빛을 발하라고 사명을 고취시키는 말씀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는 말씀은 어둠의 세력에 굴하지 말고 담대하게 일어나 세상을 밝히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비록 어두울지라도 성도들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빛으로 밝게 해야 한다. * 여기서 말하는 ‘빛’(오르)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은 깊은 위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오르)이 있었고 그 빛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다(창1:2-3). 이 빛은 어둠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빛이다. 성도들은 이 빛으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세상을 밝게 해야 한다. * 여기서 ‘일어나다’(쿰)은 ‘무엇에 대적하여 일어나다’라는 뜻이다. 사명감을 갖고 어둠에 대적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다(마5:14절). 바울도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였다(엡5:8). 나. 사명감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2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요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 이 말씀은 “비록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릴지라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 어둠의 세력이 강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어둠을 몰아내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어둠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신다. * 그런데 사명감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어둠 앞에서 쉽게 낙심한다. 또한 세상이 어둡다고 탄식을 하면서도 빛이 되려고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살려고 한다. 빛을 밝히려고 앞장서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기도 한다. * 하나님은 빛을 발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엘리야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갖고 일어나야 한다. 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1절,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 세상에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위에 임하셨고, 그의 영광도 우리 위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네 빛’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빛을 우리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성도는 하나님의 빛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 하나님의 찬란한 빛은 이미 우리 위에 임하여 있다(완료). 그러나 성도들에게서 그 빛을 찾아볼 수 없으니 문제다. “교회가 죽어야 하나님이 산다”는 말이 있다. “예수는 좋은데 종교는 싫다”는 말도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는 못할망정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 성도들은 빛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냥 장롱 속에 걸어두면 안 된다. 하나님의 빛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야 한다. 주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마5:16). 빛의 갑옷을 차려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라. 빛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된다. 3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본문은 예루살렘이 일어나 빛을 발하면 열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4-7절의 말씀을 참조하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고 하였다. * 사람은 누구나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강대국들은 나름대로 세계의 중심이 되려고 경쟁하고 있다.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세상의 중심이 되려고 한다. 힘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중심이 되는 데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빛을 발하는 사람이 중심이다. * 권력이나 재물이 많음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도 귀하다. 많은 지식의 힘으로 중심이 되는 것도 귀하다. 그러나 빛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 가장 귀하다. 힘이 없어도,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성도가 빛을 발하면 세상의 중심이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015년 이전 설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날짜 : 2000.01.02

예배명 : 신년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성경본문 : 이사야 60장 1-3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video_master/Sermon_20110102.wmv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audio_master/Sermon_20110102-0.mp3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솔직히 말해. 네가 돈을 훔쳤지?”

“아니예요. 아빠. 전 돈을 훔치지 않았어요.”

“정말이야?”

아버지는 그의 몸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두를 벗어봐.”

“다리를 다쳐서 구두를 벗기가 곤란해요.”

“잔소리 말고 어서 벗어!”

구두를 벗자 그 안에 은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럼 이건 뭐지?”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훔치지 않을게요.”

이렇게 시작한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은 청년시절로 이어지고 허랑방탕한 생활의 연속의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그는 사기죄로 고발당해 16세 때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후에 고아의 아버지가 됩니다. 후에 만 개 가량의 고아원을 세우고 평생 5만번 기도 응답을 받는 최고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만 명의 고아를 키운 것이 아니라 만 개 가량의 고아원을 세운 것입니다. 이 아이가 곧 죠지 뮐러입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합니다.

“걱정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요, 참 믿음의 시작은 걱정의 끝이다.”

만개의 고아원의 아이들을 먹이는 길은 걱정이 아니라 믿음이었음을 삶 속에서 체험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아야 하는 아이가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고민 거리인 걱정에 대해서 시원한 해답마저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죠지 뮐러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과거의 삶에 상관 없이 미래는 더욱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말까지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0년도까지의 삶에 관계없이 2011년도는 위대한 삶의 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2011년도 우리 모두 위대한 삶의 자취를 남기십시다. 아울러 위대한 말까지 남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신년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모두 각자 마음의 소원을 안고 예배에 참석하시고 계실줄 압니다. 우리들의 소원이 올 한 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더욱 바라기는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소원이 멋지게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본인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같은 분일줄 압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소원은 안 이루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소원은 분명히 이루워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원하신다면 길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소원이 무엇인지 빨리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들의 소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가장 행복한 한 해를 보내게 될 줄 압니다.

그러면 올 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향한 소원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지난번 제직회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연말이 되면 항상 새해의 표어를 작성하기 위해서 고심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어느 날 본당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새해에는 어떤 표어를 가지고 목회를 할까요?” 요즘 경제가 아주 안 좋은 때인데 저희 교회는 창설 이래 처음으로 loan을 갚아야 하는 첫 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려운 때 용기를 주는 말씀을 주실줄 알았습니다. 저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60:1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순간 저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빛을 비추라니요? 무슨 빛을 비추라는 말씀입니까? 빚 좀 갚은 후에 빛을 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편 이 말씀을 주시고는 하나님은 사라진듯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안 하시는데 어떻게 합니까? 저는 말씀을 좀 더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민족도 저와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막 포로 생활을 마친 때였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신학자들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습니다. 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물론 해방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이들은 이러한 말씀을 은근히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포로생활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마음껏 자유를 즐겨라.”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빛을 발하라니요? 우리는 그동안 바벨론 왕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만 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있다면 초라한 눈빛 거지 눈빛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빛을 발하라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나중에 본국에 가서 제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문화를 계발시켜 멋진 빛을 그때 발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완전히 동문서답입니다. 이미 빛이 이르렀다 말씀하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벌써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서로를 쳐다봅니다. 아무리 봐도 빛을 받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남루한 포로생활에서 남은 초라한 빛을 빛이라 할까요? 여호와의 영광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렇게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2, 3절에 말씀입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 빛으로 어두운 땅을 밝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빛은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왕들을 바라보던 눈치의 빛 밖에 없는데 왕들이 도리어 자기들의 빛으로 나아온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현명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학자는 그 빛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빛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앞 뒤 귀절을 살펴보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바로 전 귀절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59:21절 말씀입니다. 원래 장절을 나눈 것은 중세기에 나뉘어진 것입니다. 처음 성경이 쓰여질 때는 59장이니 60장이니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전 귀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한 언약을 세웠는데 그 언약은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과 그 후손과 또 그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그들에게 주신 빛이었습니다. 학자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70년의 삶을 뒤돌아봅니다. 정말로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선물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손에는 무거운 파피루스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 당시는 요즘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러한 가벼운 성경책이 아니었습니다. 파피루스에다가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70년 동안 포로생활 하면서 얻은 것 중에 하나가 많은 성경책을 만든 것입니다. 곧 첫 번째로 포로 생활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서기관 내지 랍비가 탄생합니다. 이에 대표적인 사람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이 파피루스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두 번째 선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하나님의 말씀을 책으로 체계화 시켰습니다. 구약 성경의 기초를 만드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체계화된 말씀을 에스라와 같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가르쳤겠습니까? 회당이 바벨론 포로 시절에 생겨납니다. 70년간 수치스러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였지만 이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됩니다. 세 가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책으로 정식으로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회당이 세워졌습니다. 포로생활을 통하여 세 가지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이 끝나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 빛은 바로 말씀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지혜로운 자들은 그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신비한 축복에 한 없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놀라운 감격을 안고 들었을 것입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이처럼 위대한 민족으로 삼기 위하여 70년의 고통의 시간을 주신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70년의 시간도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을 소유한 민족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소유한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에게 파피루스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선 우리에게는 이 성경책을 주신 것입니다. 하여튼 이제 이 말씀을 깨달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들의 삶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었을줄 압니다. 아니 두 그룹이 생겼을 것입니다.

한 그룹은 말씀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옛 조상의 집을 다시 차지하고 잘 살아갈까 생각만 하는 자들입니다. 빨리 가서 땅을 차지하기에 바쁜 자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했겠습니까? 포로생활하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초라한 거지의 모습이 되어서 귀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릿 속에 가득차 있는 생각은 자기만을 위한 땅입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하면 Lottery 한번 맞아 볼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 그룹은 말씀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본국에 돌아가서 말씀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전 세계에 빛을 발할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비록 포로생활 할 때 입던 남루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흥분이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빛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말씀을 듣고 행할 때마다 그 빛은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밝히곤 하였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죠지 뮐러는 바로 두 번째 그룹의 속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도벽이 심한 아들이 목사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보냅니다. 뮐러는 신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뮐러를 초대합니다. 그들의 기도회에 초대 받은 것입니다. 친구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감동합니다. 그 순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읽기 시작합니다.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 일 년에 네 번씩 성경을 통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 가운데 거하는 그에게 빛이 임하였습니다.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 간 것입니다. 친구들보다 훨씬 큰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가 수많은 고아를 키울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말씀이 늘 살아서 역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말씀 가운데 거하면 우리는 빛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빛을 발해야 할지 아무 염려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빛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빛을 발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들의 손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올 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교우 여러분, 2011년도는 우리교회에게는 너무도 뜻깊은 한 해입니다. 일년내내 새로 완공된 ECC공간 안에서 함께 배우고 이웃을 섬기는 첫해가 되었습니다. 이 뜻 깊은 해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해야 하는 빛은 훌륭하게 완공된 건축물이 아닙니다. 이 안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요?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들의 입에 두신 말씀이 우리들의 입과 우리들의 후손과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시다. 곧 3세대가 함께 말씀의 빛 가운데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동안 물론 저의 책임도 큽니다만 많은 분들이 ECC는 마치 자녀들과 이웃을 위한 건물로 여겼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삼 세대를 위한 건물입니다. 삼 세대가 함께 말씀을 배우는 건물입니다. 자녀들은 거의 두 시간 좋은 환경 가운데서 말씀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편 어른들을 위해서는 성인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의 빛은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빛을 발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빛을 발하십시다.

일주일에 한번 듣는 설교 말씀만으로는 택도 안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씨름하셔야 합니다. 그 씨름한 흔적을 성경공부를 통하여 나누어야 합니다. 그 때 빛의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에 들어 온만큼 우리는 빛의 사람이 됩니다. 조이스 메이어(Joyce Meyer)라는 유명한 여자 목사님이 있습니다. 큰 교회를 목회할 뿐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당신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성적 폭행을 당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아버지의 폭행 가운데서 모든 자신감을 다 잃은 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가운데서 특히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말씀만 찾아서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영혼 속 깊게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힘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만 세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말씀으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빛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을 빛의 삶으로 가꾸어 갑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 오면 우리는 빛의 사람이 됩니다.

새해에 우리가 모두 resolution(결심)을 세우지 않습니까? 올 해는 말씀을 많이 일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resolution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말을 남기는 한 해가 될 줄 압니다. ‘말씀과 함께’ 교재는 3년에 한번 성경을 훑는 교재입니다. 그 교재만 총실히 해도 3년에 한번은 성경을 통독 내지 공부하게 됩니다. 물론 이 기간 뮐러는 12번 통독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도 뮐러의 12분지 1의 빛을 발하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함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세워 나가십시다. 우리는 세상이 필요한 빛을 발하는 자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사실 하나님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씀이 평민들의 손에 주어지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약 500년 전부터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교회에 나가서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평민들의 손에 주어지게 하는데 큰 공헌을 세운 사람은 바로 인쇄기술을 창시한 구텐베르크(Gutenberg)입니다. 어느 날 수도원장의 요청으로 보석 연마공인 그는 나무에 성경을 새기기 시작합니다. 큰 나무판에다가 창세기 1장을 다 파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일장을 찍으면 한 장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장을 큰 나무판에다가 또 팝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자만 더 새기면 되는데 그만 칼이 빗나가 목판에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아 안타깝다. 두 자만 새기면 되는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구나.”

허탈해하면서 실패한 목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목판에서 이리 저리 한 글자씩 잘라내면 된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한 글자씩 큰 목판에 새길 것이 아니라, 새길 글자를 잘라내어 글자판을 만들어서 조합하여 찍으면 되는 것입니다. 곧 abcd를 하나씩 만들어서 조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판인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 손에 하나님의 빛인 말씀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구텐베르크가 말씀을 한 자 한 자 새기다가 위대한 발견을 한 것처럼,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들 뇌리에 한 자 한 자 새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위대한 빛을 발하는 자가 되지 않을까요? 새 해는 말씀을 우리들의 뇌리에 새기는 한 해가 되십시다. 위대한 빛을 발하는 자들이 되십시다. 그리고 위대한 말을 남기는 한 해가 되십시다. 뮐러가 남긴 말과 비슷한 말을 말입니다.

“걱정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요, 참 믿음의 시작은 걱정의 끝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 Bookmark the permalink ← Older posts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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