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장 주석 | [목요성경공부] 이사야 1장 198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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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성경주석

이사야 1장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9. 5. 23:05. <이사야 1장 흐름정리>. 본서는 유다 왕 웃시야 때부터 므낫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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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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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야 1장 주석

이사야 1장 주석.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에서 히스기야 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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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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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이사야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우리말성경,25 내가 네게로 손을 돌려 네 찌꺼기를 녹여 깨끗하게 하고 네 모든 불순물들을 걷어낼 것이다. 가톨릭성경,25 그러고 나서 나의 손을 너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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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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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묵상 및 설교를 위한 주석

이사야 1장, 개역개정성경.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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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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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1절-20절(메튜 헨리주석) – 네이버 블로그

(1) 우리는 실행해야 한다. 악행을 그칠 때 또 다시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선을,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리고 유익을 가져올 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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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강해 – 옛신앙

Jamieson, Faussett, Brown의 주석. 1장: 이스라엘과 유다의 부패상. 1-9절,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 [1절] 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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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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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설교말씀] 이사야서 서론과 이스라엘의 죄악됨(사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1장 설교 말씀 중에서 이사야서의 서론과 이스라엘의 죄악 된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읽을 성경 : 사 1 : 1 – 17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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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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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주석강해 설교말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 …

우리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음란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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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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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강해 1

그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사야의 말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교 하였습니다. 이 설교에 이스라엘성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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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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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주석 (양장본) – 두란노몰

신약성경의 기자들과 히에로니무스 이래의 기독교 주석자들이 인정해왔듯이,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의 전승들을 활용 … 왕의 책(이사야서 1-37장)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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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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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성경공부] 이사야 1장
[목요성경공부] 이사야 1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1장 주석

  • Author: 그리심교회 조윤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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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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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성경주석

<이사야 1장 흐름정리>

본서는 유다 왕 웃시야 때부터 므낫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반부(1~35장)는 열방들에 대해서는 물론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후반부는 장차 메시야가 도래할 때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다. 그 첫머리인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연대와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라도 당신의 택한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이에 근거해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이처럼 본서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회개의 촉구,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경고라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사야 1장 줄거리>

1. 이사야가 유다의 반역에 대하여 한탄함.

5. 그나라에 임한 심판을 슬퍼함.

10. 유다의 전체 예배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함.

16. 약속과 위협을 제시하며 회개하도록 권고함.

21. 그들의 악함을 애통해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함.

25. 은혜를 약속함.

28. 악인들에게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함.

<이사야 1장 개역한글>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 1장 성경주석>

1:1 시대에.

이 주석에서 사용된 연대기에 따르면 웃시야는 BC 740/739년에 죽었으며, 히스기야는 BC 687/686년에 죽었다(참조 이사야 서론).

1:1 아모스(Amoz)의 아들.

이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온다. 이사야의 아버지에 관해서 더 이상은 알려진 것이 없다. 아모스(Amoz)라는 이름과 아모스(Amos)라는 이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히브리어로는 이 둘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1:1 이사야가…본 이상이라.

이사야는 이 책 전체에 대하여 “이사야의 이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에서 “이상”은 계시가 전해지는 과정보다는 계시 자체를 의미한다. 초기 시대에는 선지자가 “선견자”로 불렸지만(삼상 9:9) 결국 그 용어는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영감 받은 통찰력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선견자들이었다. 이상 중에서 선지자의 눈은 이 세계와 영의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휘장을 꿰뚫고 나가 여호와가 그에게 드러내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중요성, 다가올 일들의 양상, 개인들이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 등을 보여 주실 수 있다. 종종 경고와 권면과 지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발견된다. “오바댜의 묵시”(옵 1절)와 “나훔의 묵시의 글”(나 1:1)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선지자들에게 에돔과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뜻을 보여 주셨다. 이사야의 이상들은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변 나라들과 또한 온 세상까지도 다루고 있다. “이사야의 이상”에서 하나님이 사물들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것들을 바라보며, 또한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도록 작정하셨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이다.

1: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참조 2:1; 3:1; 4:3; 5:3; 52:1; 62:1; 65:9, 19. 이사야의 기별은 본래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기별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기별이 설교 형태로 직접 그 사람들에게 선포되었을 것이다.

1:2 하늘이여 들으라.

참조 신 32:1 주석; 미 6:1. 이사야의 첫 번째 강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일과 더불어 시작된다. 한 민족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그 미증유의 기회들을 전혀 고맙게 여기지도 않고, 또한 그 기회들을 통해서 그 어떤 덕도 입지 못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말하자면 이사야는 하늘의 거민들에게 이 이상한 광경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에 대하여 마음이 무뎌진 백성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문장 구조로, 요엘이 사용한 문장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욜 1:2, 3).

다른 세계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서 익히 알고 있으며, 또한 이 세상의 거민들이 하늘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킨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회들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토록 큰일을 많이 행하셨는데도 당신을 너무나도 쉽게 잘 잊어버리는 그들의 놀라운 상태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반역한 하나님의 백성은 우주 앞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반역자들을 대적하여 지금 막 하시고자 하는 일은 정당한 것이다.

1:2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은 아들로서의 특권뿐 아니라 그 의무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1:2 거역하였도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가 그들에게 하시는 요구들을 무시하였다.

1:3 소.

가축들도 그들에게 여물을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안다. 생각 없는 짐승들까지도 자신들이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는 사람에게 일종의 애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배은망덕의 어리석음, 곧 그들의 하늘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돌보심을 쉽게 잊어버리고 그것에 대하여 전혀 감사하지 않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 지니고 있는 이해력조차 나타내지 못하였다.

1:3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서 유다를 지칭한다. 이는 그들이 야곱의 자손으로서 그 민족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상속받은 자들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참조 1, 8절 주석).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하나님이 “여호와의 성민”(신 14:2)이 되도록 선택하신 바로 그 사람들이 범죄한 나라가 되었다. 자신들에게 부어 주신 복들에 대하여 감사치 않은 것이 그들이 사악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었다(신 8:10~20; 호 2:8, 9; 롬 1:21, 22). 그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좋은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리고 공공연한 배도와 극악한 불순종의 행위들을 자행하였다. 소극적인 태만이 적극적인 반역의 길을 열어 주었다.

1:4 행악의 종자요.

참조 5:4 주석. “거룩한 씨”(6:13)가 되어야 할 자들이 무가치한 열매를 맺는 악한 식물이 되어 버렸다.

1:4 여호와를 버리며.

즉 다른 주인 곧 악의 왕을 선택함으로(참조 요 8:44 주석).

1:4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사야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 구약의 다른 모든 기자가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여섯 번밖에 안 되는 반면, 이사야는 혼자서 이 표현을 스물다섯 번이나 사용하였다. 이사야가 이상 중에서 자기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또한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6:3)라고 노래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이 선지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그 이후로 이사야가 자신의 생애의 최대 과업으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존하는 것과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4 만홀히 여겨.

하나님의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는 사랑이다(고전 13:5. 참조 겔 18:23, 32, 32; 벧후 3:9). 하지만 이스라엘이 너무나도 심하게 이를 거절하고 또한 그의 교훈들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자신의 품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들의 죄된 행위들을 확인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1:4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그와 동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를 멀리 떠났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거룩한 길로부터 방향을 돌려 버렸다.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인 호세아는 슬픈 어조로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호 4:16)라고 말하였다.

1:5 어찌하여.

혹은 “어디에?” 비록 형벌이 필요할지라도 그 몸이 이미 찢어진 상처와 멍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더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신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이전에 맞은 매로 인해 상처가 나 있는 아들의 몸을 다시 치기를 원치 않으신다.

1:5 매를 더 맞으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자들이 범죄로 인하여 화를 자초하였다. 죄악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들은 더욱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었다(참조 5:18). 이사야는 이 문제를 그들과 논의하기 위해 이야기하고자 애쓰면서 그들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따져 물었다. 여기에 묘사된 것은 자신이 행한 나쁜 짓들로 인해 매를 맞고 또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고집 세고 반역적인 아들의 모습이다.

1:5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네가 계속해서 반역하느냐”가 더 나은 번역이다. 이 말은 반역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이사야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악을 고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화를 위한 형벌로 계속하여 그들을 매로 때리셨으며 이로 인해 그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6 성한 곳이 없이.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어느 곳을 바라보든지 이사야는 거기에서 죄악의 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1:6 새로 맞은 흔적.

즉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피가 나고 곪아터진 상처. 죄는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는 역겨운 존재이다. 달리 말해서 죄는 아물지는 않고 곪아터지기만 하는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내는데, 이 상처들은 붕대로 감을 수도 없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연고”로 흔히 사용하던 감람유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병들었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해의 두려운 결과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나라는 지금 위험하고 무질서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 환자는 이러한 역겨운 상태 속에서 지금 죽음에 직면해 있다.

1: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선지자는 이제 그 땅에 대한 상징적 묘사(2~6절)에서 실제적인 묘사로 자신의 말을 바꾼다. 이 묘사는 앗수르 침공 시의 유다의 상황을 적절히 보여 준다. 앗수르 사람들은 자신들의 포학하고 잔인한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화와 약탈과 살육을 일삼으며 온 나라를 휩쓸었다. 많은 견고한 성읍이 함락되고, 작은 마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정복당하였으며, 국토의 상당 부분이 황폐한 땅으로 변하였다. 머지않아 종말이 이를 것 처럼 보였다.

1:7 황무하였고.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중 하나인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부분이 “그 황폐함이 그것을 덮었고”로 되어 있다.

1:8 딸 시온.

즉 예루살렘(참조 애 2:8, 10, 13, 18; 미 4:8, 10, 13). 시온은 본래 고대 여부스 사람들의 요새였다가 다윗성이 된 곳의 지명이었으나(삼하 5:7; 왕상 8:1; 참조 시 48:2 주석), 후에는 이 이름이 성읍 전체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시적 표현에서 성읍들은 그 거민들과 더불어서 종종 여성으로 일컬어진다(사 47:1; 시 45:12; 애 2:15).

1:8 망대.

즉 수확기에 포도원지기나 그의 가족들이 거하는 오두막. 물론 이 같은 데서 사는 사람들은 지역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따로 떨어져서 무방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이 문제의 시기에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다.

1:8 상직막.

동방에는 오이와 그와 유사한 식물들이 흔했다. 종종 들에 오두막을 세우고 관리인이 도둑들로부터 농작물들을 지키기 위해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1:8 에워싸인 성읍.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앗수르 군대에 의해 에워싸였다. 유다의 다른 모든 땅들은 적의 손에 함락되고 오직 그 성읍만 홀로 남아 있었다.

1:9 만군의 여호와.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한 칭호이다(6:3). 이 칭호는 하나님을 하늘 군대의 사령관으로 나타낸다.

1:9 조금.

(「제임스왕역」에는 “적은 수의 남은 자”-역자 주).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모든 땅이 원수의 손에 함락되었다. 오직 수도만이 극도로 불안전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만일 이 “적은 수의 남은 자”가 없었다면 유다 나라는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소돔”이라는 칭호는 유다가 전체적으로 소돔과 유사한 상황 속에 빠져 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으로 그 나라를 지칭해서 쓴 말이다. 여기에서 이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치한다고 공언하는 나라에 대한 끔찍한 기소장 역할을 한다. 이 나라의 통치자들은 여호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서 그 정책과 행위 면에서 이 땅에서 죄를 가장 크게 범한 민족들의 통치자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 따라서 이제 그 지도자들에게 매우 엄숙한 소환장, 곧 회개치 않으면 그 나라 전체가 처하게 될 운명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기별이 주어졌다.

1:11 무엇이 유익하뇨.

유다는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매우 신실한 나라였다. 성전에서 수많은 희생제물들이 드려졌지만 참신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면서 종교의 외형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희생제물은 즐겨 드리고자 했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여호와께 드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의 형식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하였다. 이사야는 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는 일련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통해서 오직 외형만을 갖춘 종교는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였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대변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며 의식이 아니라 의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애썼다(참조 삼상 15:22; 시 40:6; 51:16~19; 렘 6:20: 7:3~12; 14:12; 호 6:6; 암 5:21~24; 미 6:6~8).

1:12 내 앞에 보이러 오니.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다”라는 표현은 대성회 시에 성전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관용구이다(시 42:2; 84:7; 출 34:23). 히브리 사람들은 그들이 성전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는 올바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성전이 여호와가 그들 중에 거하시기 위한 장소로 건축된 것은 사실이다(출 25:8). 하지만 성전을 찾는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는 이사야를 통해서 그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신다(사 57:15)고 선포하신다.

1:13 헛된 제물.

뉘우침과 참된 회개의 마음이 없이 드리는 제사는 헛된 제사였다(삼상 15:22; 마 5:24; 막 12:33). 그 같은 제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1:13 가증히 여기는 바.

여호와는 그에게 드리는 향기로운 향의 제사를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매우 불쾌히 여기셨다. 종교의 형식이 참된 정신을 상실하면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순종이 따르지 않는다면 기도까지라도 가증한 것이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잠 28:9).

1:13 월삭과 안식일.

여기에 언급된 성일들은 왕하 4:23; 대하 8:13; 암 8:5 등과 같은 성경절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성일들을 준수하는 것은 히브리 종교의 핵심적 요소들 중 하나였다. 여호와께서 직접 이날들을 지정하셨으며, 또한 이스라엘에게 이날들을 준수하도록 요구하신 분도 그 자신이시다(출 23:12~17; 레 23장; 민 28, 29장; 신 16:1~17). 하지만 이 같은 종교 형식들에 대한 외형적 준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의가 결여된 의식과 형식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명령에 따라 지키는 성일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순종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를 불쾌히 만드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1:13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악한 삶을 살면서 성회에만 참석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사야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종교의 형식은 “길게” 행하고 의는 “짧게” 행하였다. 많은 사람이 의문(儀文)의 율법이 말하는 의식에 관한 요구들은 철저히 따르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그의 명령들은 공공연하게 범하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행위는 종교에 대한 조롱이요 치욕이었다.

1:14 내 마음이…싫어하나니.

이것은 외적으로는 매우 신실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종교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일들에 관여하였다. 하지만 여호와는 자신이 그들의 행위를 매우 불쾌히 여긴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정해진 절기를 지키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그들의 예배를 거절하셨고, 그들의 외식적 겉치레에 대해 노를 발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을 따라 행하기를 거부함으로 사실상 그를 무시하였다. 어떤 종교적 형식주의의 가면도 그들의 죄를 덮어 줄 수는 없었다.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히브리 사람들은 기도드릴 때 종종 자신들의 손을 하나님을 향해 뻗었다(참조 출 9:29, 33; 17:11; 왕상 8:22; 스 9:5; 욥 11:13; 시 88:9; 143:6).

1:15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시 66:18; 약 4:3과 비교해 보라.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신실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마 6:5; 눅 18:14). 기도를 길게 혹은 자주 드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중언부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마 6:7). 그 손이 피로 얼룩져 있거나 악한 길을 계속 고집하는 악인들의 기도는 은혜의 보좌에 상달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의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매우 신실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버리는 일은 거부하였다. 그들의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입술에서만 나오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 같은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1:15 피가 가득함이니라.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구절 뒤에 “그리고 너희의 손가락에는 죄악이 가득하니라”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부분은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고”를 첫 행으로 하는 2행 연구(聯句)가 된다.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죄는 도덕적 부패와 영적 타락의 결과를 초래한다. 다윗은 범죄 후에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죄로 오염되었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정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10절).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죄인은 누구든지 도덕적 정결을 필요로 한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그의 마음이 깨끗해져야만 한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악한 마음을 씻을 것(렘 4:14)과 죄악에 젖은 손을 깨끗이 할 것(약 4:8)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쓰시고(렘 31:33)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요일 1:9)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는 부정한 자들이 더 이상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사 52:1). 요한은 속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한 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계 21:27).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마음에 심어주고자 애썼던 교훈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그의 백성이 거룩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이었다.

1:16 악행을 그치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죄를 그치라고 요구하셨다. 그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도 거룩해야만 하였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악이 제거되어야만 한다. 하늘의 순결한 환경 속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리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의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1:17 선행을 배우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게(암 5:15)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소극적인 선 곧 악행을 삼가는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건은 능동적 원칙이며 의의 수련은 죄악을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사람이 이전에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었든 관계없이 그는 이제 악을 그칠 뿐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한 신실한 노력까지도 기울이고자 의도할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게 스스로의 단호한 결심과 더불어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성품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서히 그러나 근면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부지런한 연구와 불굴의 인내 그리고 결심과 연습을 통해서 그들은 때가 이르면 바른 삶의 습관을 습득할 수 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하는 법을 배우는 점진적이고 근면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누구라도 바른 삶이 그의 습관이 되기까지는 잘 행하는 법을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1:17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압제를 해결하며” 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가 더 바람직한 번역이다. 이스라엘에 사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동족들에게 압제를 당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의무였다. 압제하는 자들은 더 이상 압제를 못하게 제지되어야 했으며, 압제당하는 자들은 그 압제에서 구원받아야만 하였다.

1:17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정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고아들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공의가 시행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1:17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 곧 불행과 압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이런 불행한 부류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희생의 대가로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하나님이 이 같은 상황을 바로 잡도록 요구하셨다. 참된 사랑과 동정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모든 사람을 위해 공의를 세우는 노력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종교, 또한 사람들을 하늘 왕국의 원칙에 조화된 삶으로 이끌지 않는 종교는 종교로서 가치를 상실한 종교이다. 종교가 엄숙한 의식들만 준수하고 고아들과 과부들의 필요에는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의 의미 자체를 상실한 것이다. 추가적인 설명을 보려면 약 1:27 주석을 참조하라.

1:18 오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토론을 위해 당신께 나아오라고 초청하신다. 그는 남의 일에 무관심한 재판관이나 독단적인 폭군이 아니라 인정 많은 아버지이며 또한 친구이다. 사람의 관심이 곧 그의 관심이며, 사람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다. 그가 주시는 권고의 말씀은 모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는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닫고 믿기를 간절히 소망하신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와 함께 “변론하자”고 하는 이 자비로운 초청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선하심이 더 매력적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사리에 맞게 행하는 분이시다. 그는 사람들이 죄를 버리고 의의 길로 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은 그로 그것을 활용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이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그것을 통해서 순종의 유익들과 죄악의 불행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최악의 죄인들까지라도 이 약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우리의 죄가 아무리 진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시 정결하고 거룩하게 회복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확실히 말씀하신다. 이 약속은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까지도 포함한다. 우리의 삶에서 죄가 완전히 근절되고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죄인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참조 요일 1:9 주석).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이사야는 여기에서 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즐겁고 복된 삶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이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쁨은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독단적으로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그의 요구들을 따른 것에 대한 자연적인 결과로 이르러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의 길을 제시하시는데, 이는 그것이 옳은 길이며 또한 복을 가져다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1:19 먹을 것이요.

이 약속은 현세와 내세 모두에 해당되는 약속이다. 사람은 순종의 결과를 하늘에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수확하게 된다(참조 마 19:29 주석).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길로 행하면 그들의 것이 될 복들에 관해서 말하였다(신 28:1~13). 이사야는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이 복들이 현실화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의의 길로 행한다면 이 복들이 여전히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그들에게 보증하신다.

1:20 너희가 거절하여.

죄인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독단적인 판결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둘 뿐이다. 올바른 삶에 복이 따르는 것처럼 악한 삶에는 불행이 따른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죽음이 이르러 온다. 이것은 단순히 인과율의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을 때 그들은 필할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말하였다(신 28:15~68).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의 율법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스스로 파멸을 초청하는 것이다. 각 사람의 운명은 자기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그의 미래가 행복할 것인가 혹은 불행할 것인가는 오직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백성 앞에 제시한 큰 진리는 죄가 결국에 가서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파멸을 초래하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죄악은 결코 기쁨과 행복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참된 의미에서 보면 죄인은 스스로 멸망하는 것이다.

1:20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죄의 필연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말씀하시긴 하였지만 이것이 그의 독단적인 판결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겔 18:23, 31, 32; 33:11). 하지만 그는 죄의 필연적인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불순종의 결과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사람에게 경고하셨다(참조 호 13:9; 14:1; 롬 6:21, 23; 약 1:15; 벧후 3:9).

1:21 창기가 되었는고.

한때는 신실한 성읍이었던 시온이 지금은 불신실한 성읍이 되어 있다. 그는 한때는 하나님의 참아내였으나 이제는 그에게서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그 자신을 주었다. 그는 지금 창기가 되었다. 호세아(2장, 21), 에스겔(16장)도 이와 동일한 묘사를 하였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사람이 얼마나 깊이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때는 정결하고 올바르며 또한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하나님과 의의 길에서 멀리 떠나 있다. 한때는 충실하고 순종적이며 거룩하고 올바르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께 불충실한 결과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비열하고 부패한 실례가 되었다.

1:21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의는 떠나가고 이제 부패와 타락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성도의 성읍이 이제 살인자들과 타락한 자들의 성읍이 되었다. 호 6:9에서도 이와 유사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대로로 여행하는 사람들과 성읍들에 머무는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로 폭력과 살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같은 일이 사람들이 스스로 거룩하다고 공언하며 종교적 행위들에 큰 열성을 보이고 있던 바로 그 땅에 벌어졌다.

1:22 네 은.

이사야가 두 가지 적절한 표상을 통해 현재를 과거와 대조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품성이 귀한 은에서 쓸모 없는 찌꺼기로 변질되었다. 의와 거룩함의 순전한 포도주가 물이 섞인 포도주가 되었다. 예수께서도 맛을 잃은 소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이와 비슷한 표상을 사용하셨다(마 5:13).

1:23 네 방백들.

호세아는 “그 방백들은 다 패역한 자니라”(호 9:15)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은 여호와께 대하여 완고하고 반역적이었으며, 그 나라의 지도자들은 각종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사 3:12; 9:16; 미 3:11).

1:23 도적과 짝하며.

율법을 집행할 의무를 지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실제로는 그 법을 어기며 살아가는 자들과 비밀스런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관리들은 대로에 횡행하던 약탈자들을 못 본 척하는 대가로 그들에게 수입을 나누어 받았다.

1:23 다 뇌물을 사랑하며.

미가는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미 7:3)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모든 일에 사례를 요구하였다. 당시에는 뇌물을 주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1:23 신원치 아니하며.

재판관들은 고아들과 과부들의 호소에 대하여 아예 자신들의 귀를 막아버리고 듣지 않았다. 이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이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처럼 많은 사례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재판관이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참조 눅 18:2~5).

1:24 이스라엘의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유사한 칭호가 49:26; 60:16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사례를 기대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의 소송이 하늘의 통치자시며 온 땅의 재판관이신 분에게는 상달되었다.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던 자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모든 능력과 권세에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여호와는 이사야를 통해서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겠다(49:25)는 기별을 주셨다.

1:24 내 대적.

의로운 사람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이기도 하다. 여호와는 불법과 압제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반대하신다. 자신들의 동료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적의 위치에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하여 행동하실 수밖에 없는 위치로 신속히 옮겨가는 중이었다.

1:24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하나님이 범죄자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은 보복적인 심판이 아니다. 그의 목적은 죄인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죄에는 언제나 형벌이 뒤따른다. 하나님은 가능하기만 하면 죄인을 그의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렇지만 죄악을 고집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온 땅의 재판관이신 분을 만날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재판관은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약하신 바로 그분이시다(출 34:7; 민 14:18).

1:25 나의 손을 네게 돌려.

온 땅의 재판관이신 그분은 또한 사람들의 구주이시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확실히 심판받을 것이지만 회심하는 자들은 분명히 구원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형벌로 사람을 위협하실 때는 언제나 구원의 약속도 함께 제시하신다. 예루살렘은 분명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성읍은 또한 구원의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긴 하였지만(21절) 아직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계 21:2; 참조 사 62:4).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당신의 백성에게로 “돌려” 그들을 구속하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1:25 찌끼.

용해 작업 후에 남는 찌꺼기(사 1:22; 참조 말 3:2, 3). 만일 이스라엘이 원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축적된 죄악의 찌끼를 제거하실 것이다. 고난의 불이 그 찌끼를 제거할 것이며 그 후에는 오직 정금 같은 거룩한 품성만 남게 될 것이다(욥 23:10).

1:25 혼잡물.

(「제임스왕역」에는 “tin”[주석]-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찌꺼기.” 비열한 성품들은 모두 제거되고 오직 정금만 남게 될 것이다.

1:26 너의 사사들을…회복할 것이라.

선지자는 사무엘과 다윗과 솔로몬 같은 신실한 사사들이 다시 등장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이상적인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1:26 신실한 고을.

천년기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 올 때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이 비로소 의의 성읍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계 21:1, 2). 그때에는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실”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그 성읍을 다스리실 것이며, 또한 그 성읍은 그 왕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릴 것이다(렘 33:15, 16; 참조 겔 48:35).

1:27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제임스왕역」에는 “심판으로 구속이 되고”-역자 주). “공의로 구속이 되고”가 더 나은 번역임. 공의로운 재판관이 공의로운 재판을 통해서 시온을 구속하고 회복시키신다. 그의 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그 성읍에 남아 있는 죄의 찌끼들이 완전히 제거된다.

1:27 그 귀정한 자.

(「제임스왕역」에는 “그녀의 회심자들”-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그녀의 돌아온 자들.” 시온의 “회심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들이다. 오직 그들만이 구원받을 것이며, 또한 오직 그들만이 의롭게 될 것이다. 시온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거룩한 사람들이 거하는 거룩한 성읍이 될 것이다(참조 4:2~4). 그리스도의 의는 구원의 수단인 동시에 또한 구원의 목표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그 거룩한 도성의 거민들도 거룩할 것인데, 이는 그들이 그를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2).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시고 또한 나눠 주신다. 구원은 이전에 그들이 이미 범한 죄들을 속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그들에게 입혀 주시는 의와 그들로 죄를 초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그들에게 나눠 주시는 의를 포함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곧 그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창 1:27).

1:28 패망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며 계속하여 죄를 범하는 자들은 멸망을 당케 될 것이다. 하늘을 대적하여 반역하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도전이기에 그 결과는 불 보듯이 뻔하다. 여기에서 경고된 파멸은 분명하고 완전한 파멸이다.

1:28 멸망할 것이라.

하나님만이 홀로 생명의 원천이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을 버린 악인들이 당할 운명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는 데, 그것은 곧 생명이 멈추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영원한 죽음이 여호와를 버린 자들의 운명이 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겔 18:4) 것이며 “주의 얼굴…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살후 1:9) 것이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20).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니라”(말 4:1). “[그들이]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옵 16절).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

1:29 상수리나무.

히브리어 엘림(’elim). 테레빈 나무를 일컫는 듯하다.

1:29 동산.

65:3; 66:17과 비교해 보라. 이 동산들은 아마도 중앙의 나무나 숲 부근에 있던 경작지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30 상수리나무.

그들이 섬기던 대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멸망할 것이다.

1:30 물 없는.

물이 없이는 어떤 동산도 번성할 수 없다. 생명의 원천은 여호와께 있다(시 36:9). 따라서 그를 버리는 자들은 곧 생수의 원천을 버리는 것이다(렘 2:13). 물 없는 동산이 메마른 불모지로 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황폐한 땅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를 버리므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였다.

1:31 삼오라기.

이것은 삼[麻], 아마(亞麻)의 거친 부분, 대마(大麻), 혹은 실로 가공되기 이전의 황마(黃麻)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것들은 모두 불에 잘 타는 속성이 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꺼지지 않는 불에 삼킴을 당하게 될 것이다.

1:31 그의 행위.

(「제임스왕역」에는 “그 만든 자”-역자 주). “그리고 그의 행위”가 더 나은 번역임. 악인들과 그들의 행위들이 함께 마지막 때의 소멸하는 불에 멸망할 것이다(벧후 3:7, 10).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스크랩] 이사야 1장 주석

이사야 1장 주석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에서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B.C. 740-680년경) 계속된

다. 이 기간은 평화와 전쟁이 교차하는 정치적 격변기이다. 웃기야와 요담 치하에서

남왕국 유다는 번영의 세월을 구가한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은 종교적 외식과 도덕적

부패를 낳고 그것은 다시 전쟁을 낳았다. 아하스는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고(왕하 16:5),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방어해야만 하

였다(왕하 18:13). 이 모든 것은 선지자에 의해 ‘백성들의 죄악에 따른 여호와의 심

판’으로 정식화된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아모츠'(* )라고 발음되며,

선지자 아모스(* )와는 다른 사람이다. 델리취(Delitzsch)는 선지자의 아버지의

이름이 표기된 것은 그 역시 선지자였음을 나타내는 한 증거라고 말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 선지자의 예언은 주로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앗수르와 바벧론 등의 주변 열국들까

지도 예언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13-27장, 34장). 이런 사실로 미루어 어떤 주석

가들은 본절의 표제가 기껏해야 1-12장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

나 바르게 이해한다면, 이들 열방들은 유다와 예루살렘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Alexander), 주제에 있어서 이차적 중요성밖에 갖고 있지 않음(Calvin)을 알

수 있다.

이상(異像)이라 – ‘이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존'(* )은 본래 엑스터시

한 상태에서의 시각적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확대

되어 후에는 예언 일반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구약 예언서 가운데 본서외에 오바댜

와 나훔에서 이와 동일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옵 1:1;나 1:1, ‘묵시’).

=====1:2,3

막(표제)이 오르면 독자의 시선은 말할 수 없이 장중하고 엄숙한 대자연의 법정으

로 인도된다. 대재판관(여호와)이 있고 피고(이스라엘)가 있다. 그리고 증인들(하늘과

땅)이 있다. 이 재판은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 먼저 증인이 호출된다:’하늘

이여…땅이여…'(2a절). 이어서 대재판관이 피고에 대한 기소장을 읽는다(2b, 3절).

그 죄명은 반역죄이다. 선지자는 이 광경을 사람들이 잊을 수 없도록 아름답고도 슬픈

4행시로 노래지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 세계는 그 앞에

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선지자는 특별히 하늘과 땅을 지목

해서 부른다. 그 까닭은 하늘과 당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걸쳐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하면서 그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과 보살핌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증인으로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신 4:26, 36;30:19;31:28;시 50:4, 5).

내가 지식을 양육하였거늘 –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가 부자(父子) 관계에 비유

된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자식이었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셨다(출

4:22;호 11:1). 이러한 관계성은 약속의 씨앗이라는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말씀

에서 암시되었다(창 15:4). 그 씨앗은 자라서 출애굽의 감격과 더불어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는 탐스러운 결실로 이어진다. 여호와는 갓태어난 이스라엘을 ‘자

기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인도했으며 온갖 향기로운 것들로 먹게 하셨다(신 32:8-14).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장성한 성년이 되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신 26:19;28:1) 이

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에 가장 잘 부합되는 시대를 찾는다면 다

윗과 솔로몬 시대, 그리고 웃시야와 요담의 시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식인 이

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지극한 돌보심이 개역 성경에는 ‘양육하였다’는 한 단어로 되

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키우고'(* , 깃달티)와 ‘향상시켰다'(*

, 로마므티)는 두 단어로 되어 있다. ‘깃델’과 ‘로멤’은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

(23:4;겔 31:4).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거역하다’로 번역된 ‘파솨'(* )는 본래 ‘도망치

다’, ‘달아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의지에서 여

호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 이스라엘은 지각이나 통찰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이스라엘이라는 주어에 종속된 ‘알다'(* , 야다)라는 동사에는 목적어가 없다. 그

러므로써 그 표현은 더욱 강력한 것이 되었다. 70인역(LXX)은 그 뒤에 여호와를 가리

키는 ‘나를'(* , 메)이라는 목적어를 삽입하였다. 반면에 혹자는 주인을 가리키는

‘그를'(him)이라는 목적어를 보충하였다(Gesenius, De Wette). 그러나 본문 그대로가

그 기소를 더욱 통렬한 것이 되게 한다(Leupold). ‘알다’와 ‘깨닫다’의 두 동사는 모

두 경험에서 직접 취해진 말이다.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식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출애굽과 같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주어졌다. 언약 관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

시는 여호와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많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다(출 6:7). 그러나 그

지식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는 데 이스라엘의 문제가 있다.

=====1:4

슬프다 – 여호와의 기소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것만큼 이를 반향(反響)이라고 하

듯 그 뒤를 따르는 화답은 ‘슬프다’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슬프다’로 번역된 ‘호'(*

)는 장례식의 애도를 표시하는 비탄의 감탄사(렘 22:18)로서 탄식이나 저주의

표현에 자주 쓰인다(G.E. Wright). 이 말은 다른 곳에서 ‘화로다’ 혹은 ‘화있을진저’

등으로도 번역되었다(5:8;6:5;10:5;28:1 등등).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 – 이스라엘은 정치적, 민족적 공동체로서 자신을 여호

와의 나라(백성)라고 이해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초자연적 약속에 근거하

여 자기를 여호와의 자녀(종자)라고 이해하였다. 자기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이러

한 두 가지 이해는 이스라엘의 삶을 실제적으로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항상 작용하

였다. 여호와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당연히 ‘거룩한 나라'(* , 고이 카

도쉬, 출 19:6)가 되도록 기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범죄한 나라’

(* , 고이 호테)로 전락하였다. ‘호테’는 ‘과녁을 빗나가다'(miss the

mark)는 뜻을 가진 동사 ‘하타'(* )의 능동 분사형으로, 이스라엘이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

(* , 암 카도쉬, 신 7:6)이 되도록 기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

라엘은 ‘허물 진 백성'(* , 암 케베드 아온)으로 전락하였다. ‘케

베드 아온’은 무거운 죄짐을 지고 허덕이는 백성의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다.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 – 여호와의 자녀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씨’

(* , 제라 코데쉬, 6:13)가 되도록 기대되었으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

로 ‘행악의 종자'(* , 제라 메레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말을 속

격으로 받아들여 ‘행악자의 자손’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오히려 동격의 의미에서 ‘행

악자들로 구성된 자손’이라고 애해하는 것이 더 낫다(Gesenius’ Hebrew Grammar, ed.

E. Kautzsch). 여호와께서 양육한 ‘자식'(* , 바님)은 어찌되었는가 ? 그는 ‘행

위가 부패한 자식'(* , 바님 마쉬히팀)이 되었다. ‘마쉬히팀’은

‘타락한'(Gesenius, Henderson), ‘남들을 부패시키는'(Leupold), ‘파괴적으로 행동하

는'(Lange), ‘변질된'(Calvin) 등으로 번역된다. 시적 평행법으로 구성된 이러한 묘사

들은 이스라엘이 상습적이고도 계속적인 범죄 행위로 인하여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악해졌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파괴적인 결과만을 산출하는 지경에까

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물러갔도다 – 먼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렸다. 나아가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경멸하고 업신여겼다. 병행하는 두 구절에서 각기 ‘버

리다’와 ‘경멸하다’로 번역된 ‘아자브'(* )와 ‘나아츠'(* )는 동이가어로서,

두 단어 모두 언약과 관련하여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 신들에게 전향하는 행위를 나

타낸다(민 14:11;신 31:16, 20;32:19;삿 2:12 등). 랑게(Lange)는 ‘버렸다’를 소극적

죄악으로, ‘경멸하였다’를 적극적 죄악으로 분류하였다.

=====1:5

너희가 어찌하여…패역하느냐 –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회개케 할 목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조치들을 취할 때마다 그 결과는 더욱더

악화되었다:’더욱더 패역하느냐.’ 실로 극한점에 이른 저들의 죄악 때문에 주의 징계

로써도 돌이키게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패역하다'(* , 사라)는 ‘진실에서

이탈하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여호와를 배신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불법을 더하다’로 번역하였다.

온 머리는…온 마음은 – ‘머리'(* , 로쉬)와 ‘마음'(* , 레바브)이란 명

사에 관사가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머리와 모든 마음'(every head and every

heart)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Hitzig, Lange). 그러나 관사의

생략은 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자주 허용되었으며(9:12 참조), 또한 이 말이 인간

의 신체에서 취해진 비유임을 고려할 때, ‘온 머리와 온 마음'(the whole head and

the whole heart)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Alexander). 이것들은 일부 주석가들이 주

장하는 것처럼 각각 다른 사회적 계층들(Hendewerk)이나 공동체의 내외적 상태

(Umbreit)를 상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치명적인

두 부분을 의미한다.

=====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 머리와 마음이 병들고 지친 이스라엘의 내

적인 황폐함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좀더 인상적으로 보여주려는 선지자의 의도

에 따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처절한 모습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 – 오래된 상처는 고름을 짜내야 하고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붕대를 싸매야 한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부드럽게 하고 치료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기름을 발라주어야 한다(눅 10:34 참조).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했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피폐함은 심각했다.

=====1:7

선지자의 시선은 병들고 상처입은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로 옮겨간다. 그는 고국

이스라엘의 황폐한 정경에서 율법의 저주를 본다.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자에 대해

서 일찍이 율법은 경고하기를, ‘그 땅과 성읍이 황폐할 것'(레 26:33)이며, ‘알지 못

하는 민족이 그 토지 소산을 먹을 것'(신 28:33)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에 임한 일이

과연 그러하였다. 선지자에게 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

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무시간적이고 영원한 율법의 진리를 확증하는 것에 다름 아

니었다.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이방인에 의해서 생기는 것과 같은 파괴'(Caspari, Lange, Knobel). 이것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해서 채택되고 있으며 이방인을 파멸시키는 자로 명시하고 있는 앞 구절

에서 강력한 근거를 얻고 있다. (2) ‘이방인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파괴’

(Delitzsch). 이것은 ‘파괴됨'(* , 마흐페카)이란 낱말이 옛적에 소돔 성에

임했던 무서운 파멸을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

(13:19;신 29:23;암 4:11). 이중 어느 해석을 취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황폐된 모습에서

율법의 저주를 읽으려는 선지자의 시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1:8

딸 시온 – ‘시온’은 성전의 고귀함 때문에 예루살렘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경에서

‘딸'(* , 바트)은 관용적으로 어떤 민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47:1, ‘바벧론의

딸’;시 45:12, ‘두로의 딸’). 시온과 이스라엘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이룬다. 선지

자는 ‘딸 시온’이란 말로써 사랑스럽고 정결한 이미지를 야기시킨 후 바로 뒤에서 정

반대의 비유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충격을 가중시킨다(Oswalt). 이 같은 기법은

3:17;4:4에서도 사용되었다.

=====1:9

7절에서 암시된 ‘소돔과 고모라와의 유사성’에 의해서, 그리고 8절에서 처음 싹을

틔운 ‘남은 자’ 개념에 의해서(4장 주제 강해, ‘남은 자(The Remmant)에 관한 역사적

이해’ 참조) 본절은 이중적으로 결합된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그 죄악의 격심함과

그에 따른 심판의 철저함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었다. 이 비교는 여호와의 선민

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충격적이며 수치스러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 이스라엘에는 극소수의 남은 자들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돔과 고모라

와는 구별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희망적인 것이었다. 부정과 긍정의 이런

이중적 의미는 사도 바울이 롬 9:29에서 본문을 인용할 때 전혀 손상됨이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즉 바울은 한편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임을 자랑하고 유전만을 내세우는 유

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상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혹독한 심판

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소수의 참된 신자들을 남겨두신다고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 야훼 체바오트). 이는 ‘하늘과 땅과 별

들과 모든 거민들의 주님'(Alexander)이라는 뜻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그 전능하심으

로써 이스라엘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남은 자를 보존하실 수도 있다. 만약 이스라

엘이 그 악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은혜 때문이라

고 말할 수밖에 없다.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 2절과 같은 동사가 사용된다. 그

러나 그 대상은 다르다. 죄악의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죄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

와 거의 동일하다. 그 죄는 겔 16:49에서 ‘불의와 탐욕과 힘없는 자에 대한 착취’로

규정되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는 주저함이 없이 그들을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

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적 병행어로 기술된 ‘관원’과 ‘백성’은 나

라 전체가 한결같이 부패하고 타락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심판의 전달자일 뿐 아니라 율법의 참된 해석가고 부름받

은 선지자는 여호와의 율법(* , 토라)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것은 비난(11-15절)과 교훈(16, 17절)으로 진행되었다.

=====1:11

너희의 무수한 제물 – ‘제물’로 번역된 ‘제바힘'(* )은 ‘살해된 동물의 고

기,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피뿌리는 제물에 대한 포괄적인 명칭으로 언급되었다

(19:21;삼상 2:29;3:14). 이것은 13절에서 역시 ‘제물’로 번역된 ‘미느하트'(*

)와 구별되는데, ‘미느하트’는 피 없는 제사 즉 식물로써 바치는 소제를 말한다. 제

물의 종류와 횟수, 그리고 바쳐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7항을 참조하라.

=====1:12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 ‘너희에게’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너희의 손

에서’이다. 에발트(Ewald)는 ‘너희에게’에 강조점을 두어 ‘그것을 누가 너 같은 사람

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반면에 알렉산더(Alexander)는 ‘그것을’에 강조점을

두어 ‘그따위 헛된 출석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여기서 ‘마당’은 솔로몬 성전 주변의 경내를 가리킨다.

에스겔은 안뜰과 바깥뜰이 있다고 말한다(겔 8:16;10:5).

=====1:13,14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 이 말은 첫째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제사를 혐오

하시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그들이 제사와 더불어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둘째 여호아가께서 혐오하시는 대상이 무엇임을 밝히 보여준다. 그것은 제사 행

위 자체가 아니라 제사의 근본 정신에서 이탈된 외식적인 행위이다. 본래 제사와 행악

은 절대로 양립하지 못한다. 서로 배타적인 이 둘이 결합된 모양을 가리켜 성경은 ‘외

식’이라 부른다. 가짜와 거짓을 싫어하시는 여호와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신다. 진리이

신 그분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위선적인 예배 행위에 대한 여호와의 태도는 14

절에서 세 개의 동사로 보다 구체화된다:’싫다’-‘귀찮다’-‘지겹다’.

=====1:15

손을 펼 때에 – 문자적으로는 ‘손을 뻗칠 때’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는 것은

구약 시대에 가장 일반화된 기도 자세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

근하고자 하는 내적인 열망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믿어졌다.

많이 기도할지라도 – 혹자는 이 말을 ‘중언 부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

적으로는 ‘큰소리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도마저도 하나님께서

는 불쾌할 뿐이다. 참되고 진실한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불의로 얼룩진 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갈구하는 탄원이며,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

하려는 거룩한 열망이다(주기도문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는 헛된 몸짓

과 공허한 울림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경멸하시는 이유가 명

시되어 있다. 붉은 ‘피'(* , 다밈)는 ‘악을 행한다'(13절)의 시각적 표현이다.

즉, 이 ‘피’는 희생 제물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 혹은 상징적 의미에서

의 악행을 의미하는 것이다(Calvin). 사해 사본의 이사야서는 이 말 뒤에 ‘너희 손가

락은 불법으로 물들었다’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1:16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사랑을 기억

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신다. 그것은 먼저

악에서 떠나라는 말로 제시된다. ‘스스로 씻으라'(* , 라하추)는 말은 원래 신

체적, 의학적 의미에서 자신을 세척하라는 말이며, ‘스스로 깨끗케 하라'(* ,

하자쿠)는 도덕적 의미에서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말이다. 이 두 말의 상관 관계에 대

해 델리취(Delitzsch)는 앞의 씻음은 단번의 회개요, 뒤의 씻음은 날마다의 점진적인

성화라고 하였다.

=====1:17

선행을 배우며 – 악을 그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그 필요 충분 조건에 응하기 위해서는 선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해서 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등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처럼 이제라도 선행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힘써 배워야 할 과목은 ‘공

의’이며, 이 과목의 주된 학습 내용은 본절에서 세 가지 실천 사항으로 언급된다.

=====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양털같이 되리라 – 평행으로 이루어진 이 두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다면, 그것이 어떻게 눈

이나 양털처럼 희어질 수 있겠느냐 ?'(Kaiser, Marti, Michaelis 등). 이 해석에 따르

면 하나님은 제사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조롱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것을 의문문으

로 해석해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또 전후 문맥을 고려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다음 해석을 취한다. (2)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눈이나 양털처럼 희어지리라'(Alexander, Delitzsch 등). 죄가 여기

서 붉은색으로 표현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피로 물든 손과의 연관성 때문이지만(15절),

종말론적인 표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흰색의 반대는 검은색이

지만 종말론에서 희색의 반대는 붉은색이다. 흰색은 세마포를 입은 성도의 색이며 성

결의 색으로 간주된다(전 9:8;단 7:9;마 17:2;계 1:14;3:4;7:9;19:8). 반면에 붉은색

은 바벧론의 색이며 지상 나라의 색이며 마귀의 고유한 색이다(계 12:3, 9;17:4). 본

문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사이에 변론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에도 불구하고’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자유이며 사랑이다. 공의

대로만 보자면 이스라엘은 사형을 언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보적 상벌의

법칙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 자유로써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시

며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주려고 하신다. 이러한 가능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

에게 하나님의 자유는 진실로 새로운 삶으로 결실한다.

=====1:19,20

수농과 거역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주제는 율법이 선언된 이래 불변의 주제로서 끊

이지 않고 등장한다(레 26장 ;신 28장). 본문은 그 내용의 대조와 발음의 유사가 어우

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절의 ‘먹다'(* , 토켈루)와 20절의 ‘삼

키우다'(* , 테우클루)는 언어 유희의 대표적인 예다. 19절과 20절은 두운법

(頭韻法)으로 이루어졌다.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창 3:18)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가인이 그 아우를 죽였을

때 그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아니할 것이라'(창 4:12)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땅의 소산을 먹는 것과 인간의 행사가 밀접한 관련

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종종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

되었는데, 이는 참것의 그림자인 현재의 복락을 맛봄으로써 하늘의 영원한 행복을 찾

도록 하시려는 의도에서이다.

=====1:21

신실하던 성읍이…창기가 되었는고 – 원문대로 읽으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

가, 신실하던 성읍이’이다. 2절에서 부자 관계로 표현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

계는 여기서 부부 관계로 표현되었다. 부부 관계의 기초는 ‘신실함'(* , 네에

마나)이다. ‘네에마나’는 ‘받치다’, ‘기초하다’, ‘기대다’는 뜻을 가진 ‘아만'(*

)이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성도들이 기도 끝에 낭송하는 ‘아멘’이란 말도 이

말에서 비롯된 것임). 칼빈(Calvin)은 이 말을 ‘순결함’으로 이해하였다. 부부 관계에

서 순결이 파괴될 때 간음이 되듯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배반할 때

그것은 영적 간음이 된다(출 34:15, 16;신 31:16;호 1:2 이하). 그리하여 한때 순결하

였던 신부 이스라엘은 창녀(* , 자나)가 되었다.

어찌하여(* , 예카). 이 말은 애가(elegy)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이다. 예

레미야 애가는 이 말로 시작하고 이 말로 표제를 삼았다(애 1:1;2:1;4:2). 선지자의

탄식은, 이스라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의 확인이다.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추함이 ‘이제는'(* ,

아타)이란 말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살인자들'(* , 메라츠힘)은 강도나

살인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가장하여 부정직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사

람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자를 의미한다(엠 2:34;요일 3:15). 그 주범은 유다의 지도자

라 자처하는 고관들과 방백들이다.

=====1:22

네 은은…너의 포두주에는 – 비유적으로 표현된 ‘은’과 ‘포도주’는 그 고상함과

귀중함에서 볼 때 높은 계급의 관원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러나 은은 찌끼가 되고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 이 말은 이전 황금 시대에 고관들에 의해 나타났던 덕과 공

의가 쇠퇴하고 지금은 그 찌꺼기와 그림자만 남았음을 뜻한다(Delitzsch). 비록 찌끼

가 은을 대신하여 아직도 반짝이고 포도주가 불그레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순수를 상실한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럴 듯한 가짜를 싫어

하신다(딤후 3:5).

=====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 ‘방백들'(* , 사림)과 ‘패역함'(* , 소레

림)은 두운법에 맞춘 것이다. 선지자는 두운법을 사용함으로써 방백들과 그들의 패역

함을 한층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방백들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패역한 사람들이

다’이다.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 ‘사랑하며'(* , 오헤브)와 ‘구하며’

(* , 로데프)는 모두 분사로 쓰여 그들의 행위가 계속 지속되며 습관적으로 자행

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구하다’는 동사는 원어상 ‘따라가다’, ‘열심히 추구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들이 그처럼 열심히 추구하고 흠모해 마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 그

것은 ‘뇌물'(* , 솰르모님)이었다. ‘뇌물’은 ‘평화’를 뜻하는 ‘솰롬'(*

)과 발음이 비슷하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구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기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뇌물’이었다.

=====1:24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 – 하나님의 성호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처

럼 한데 모아 놓은 곳은 이곳 외에 없다. ‘주'(* , 하아돈)라는 명칭은 본서

에서 ‘만군의 여호와’와 결합되어 위협과 징벌을 가하는 경우에 쓰인다(3:1;10:16,

33;19:4). ‘만군의 여호와’에 대하여는 9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의 전능자’라

는 이름은 하나님의 권위있는 통치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창 49:24;시 132:2, 5 등에

서는 ‘야곱의 전능자’라고도 표현되었다(49:26;60:16). 70인역(LXX)에서는 이것 대신

‘야곱의 전능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선지자는 이 세 가지 이름을 한데 묶음으로

써 여호와의 무한한 엄위와 전능하심을 최고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 뒤에 이어질

말씀들이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씀하시되'(* , 네움)라는 동사에서 한결 분명해진다.

말씀하시되 – ‘네움’은 비밀스럽고 중요한 사실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

(창 22:16에서 처음 나오고 렘, 겔에서 자주 등장함).

=====1:25

나의 손을 내게 돌려 – ‘손을 되돌린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개입, 간섭하실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렘 6:9;겔 38:12;암 1:8). 하나님의 간

섭은 찌끼를 태우고 혼잡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징벌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아쉬바'(* )라는 동일한 동사로 시작되

는 26절과 비교해 볼 때 회복의 의미가 더 강한 듯하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 문자적으로는 ‘잿물처럼 너의 찌끼를 녹이

고’이다. 하나님은 마치 잿물을 가지고 은에서 납 성분을 녹이듯이, 예루살렘의 경건

치 못한 자들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이다.

=====1:26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본래와 같이 – ‘사사들’과 ‘모사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관원들과 방백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정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된 뒤에 예루살렘은 21절 상반절에 기록된 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평화의 구현기요 메시아적 통

치의 예표로서 상징된다. 그러면 이러한 예루살렘의 회복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

가까운 미래에 있어서 어쩌면 그것은 유다 민족이 바벧론 포로에서 풀려나 팔레스틴에

귀환할 때 이들을 지도한 스룹바벧이나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

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완전히 실현되는 미

래에 이루어질 것이다(24:23).

=====1:27

귀정(歸正)한 자 – KJV는 이것을 범죄로부터 돌아선 자라는 뜻의 ‘개종자들

(converts)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랑게(Lange)는 ‘포로에서 귀환하느 자들’에게 이것

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것을 이중적 전망으로 바라

보는 것이다. 즉 가까운 미래에서는 ‘포로에서 풀려난 자들’, 그리고 먼 미래에서는

‘죄로부터 구속된 성도들’로 이해하는 것이다.

=====1:28

그러나 패역한 자와…멸망할 것이라 – 25절과 관련하여 정련 과정의 반대 측면,

즉 찌끼와 혼잡물의 운명이 제시된다(Lange). 그들의 운명을 강조하는 듯이 ‘패망’

(* , 쉐베르)이란 명사가 문장의 맨 앞에 나온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다음

과 같다:’파멸, 패역한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그리고) 여호와를 버린 자들은

종말에 이르리라.’

=====1:29

상수리나무…동산 – 선지자는 부분을 들어 전체를 나타내는 수법으로 ‘상수리나

무'(* , 엘림)와 ‘동산'(* , 가노트)을 들어 당시에 편만해 있던 모든 유

(類)의 거짓된 우상 숭배를 표현한다. 류폴드(Leupold)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이것들은 두 가지 방식의 우상 숭배, 즉 나무 숭배 의식(tree-cult)과 동산 숭배 의식

(garden-cult)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무에 관하여는 57:5;왕하 16:4;렘

2:20;3:6;17:2;겔 6:13;호 4:13을, 동산에 관하여는 65:3;66:17을 참조하라.

=====1:30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물 없는 동산 – 늘 푸른 나무와 물기 어린 동산처럼 그

렇게 번성하기를 꿈구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달려간 그들은 허무한 우상의 결

국만큼이나 자신들도 헛되이 비참함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Alexander). 그러나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를 택하고 그로 즐거워하는 자들의 운명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

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할'(시

1:3) 것이다. 선지자가 종말론적 구원의 표상과 관련하여 동산에서 물이 넘칠 것을 노

래한 구절로는 35:6, 7;41:18;44:3;48:21;66:12 등이 있다.

=====1:31

강한 자는…그의 행위는 – ‘강한 자'(* , 헤하손)는 불법한 통치자(아마도

‘우상 숭배를 조성한 지도자’, Leupold)이며, ‘그의 행위'(* , 포알로)는 인간

의 손으로 빚어진 우상(혹은 ‘안녕을 도모하는 그 수단과 고안물’, Vitringa;’우상 숭

배하는 행위’, Lange)을 의미한다. 우상은 불티와 같아서 그것을 따라가는 자에게 재

앙만을 야기시킨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히브리어 이사야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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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존 예솨야후 벤 아모츠 아쉘 하자 알 예후다 위루솰라임 비메 웆지야후 요탐 아하즈 예히즈키야후 말케 예후다

개역개정,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새번역,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다.

우리말성경,1 이것은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본 이상입니다.

가톨릭성경,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

영어NIV,1 The vision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that Isaiah son of Amoz saw during the reigns of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영어NASB,1 The vision of Isaiah the son of Amoz,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which he saw during the reigns of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영어MSG,1 The vision that Isaiah son of Amoz saw regarding Judah and Jerusalem during the times of the kings of Judah: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영어NRSV,1 The vision of Isaiah son of Amoz, which he saw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in the days of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헬라어구약Septuagint,1 ορασις ην ειδεν ησαιας υιος αμως ην ειδεν κατα της ιουδαιας και κατα ιερουσαλημ εν βασιλεια οζιου και ιωαθαμ και αχαζ και εζεκιου οι εβασιλευσαν της ιουδαιας

라틴어Vulgate,1 visio Isaiae filii Amos quam vidit super Iudam et Hierusalem in diebus Oziae Ioatham Ahaz Ezechiae regum Iuda

히브리어구약BHS,1 חֲזֹון יְשַׁעְיָהוּ בֶן־אָמֹוץ אֲשֶׁר חָזָה עַל־יְהוּדָה וִירוּשָׁלִָם בִּימֵי עֻזִּיָּהוּ יֹותָם אָחָז יְחִזְקִיָּהוּ מַלְכֵי יְהוּדָה׃

성 경: [사1:1]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 이사야의 예언 활동은 웃시야 왕의 치세 말기에서 히스기야 왕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B.C. 740-680년경) 계속된다. 이 기간은 평화와 전쟁이 교차하는 정치적 격변기이다. 웃기야와 요담 치하에서 남왕국 유다는 번영의 세월을 구가한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은 종교적 외식과 도덕적 부패를 낳고 그것은 다시 전쟁을 낳았다. 아하스는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과 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고(왕하 16:5),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방어해야만 하였다(왕하 18:13). 이 모든 것은 선지자에 의해 ‘백성들의 죄악에 따른 여호와의 심판’으로 정식화된다.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아모츠'(*)라고 발음되며, 선지자 아모스(*)와는 다른 사람이다. 델리취(Delitzsch)는 선지자의 아버지의 이름이 표기된 것은 그 역시 선지자였음을 나타내는 한 증거라고 말한다.

󰃨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 선지자의 예언은 주로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앗수르와 바벨론 등의 주변 열국들까지도 예언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13-27장, 34장). 이런 사실로 미루어 어떤 주석가들은 본절의 표제가 기껏해야 1-12장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르게 이해한다면, 이들 열방들은 유다와 예루살렘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Alexander), 주제에 있어서 이차적 중요성밖에 갖고 있지 않음(Calvin)을 알 수 있다.

󰃨 이상(異像)이라 – ‘이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존'(*)은 본래 엑스터시한 상태에서의 시각적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후에는 예언 일반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구약 예언서 가운데 본서외에 오바댜와 나훔에서 이와 동일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옵 1:1;나 1:1, ‘묵시’).

쉬메우 솨마임 웨하아지니 에레츠 키 아도나이 디벨 바님 긷달티 웨로마므티 웨헴 파쉬우 비

개역개정,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새번역,2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우리말성경,2 하늘아, 들으라! 땅아, 귀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자식들이라고 기르고 키웠으나 그들이 나를 거역했구나.

가톨릭성경,2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영어NIV,2 Hear, O heavens! Listen, O earth! For the LORD has spoken: “I reared children and brought them up, but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영어NASB,2 Listen, O heavens, and hear, O earth; For the LORD speaks, “Sons I have reared and brought up, But they have revolted against Me.

영어MSG,2 Heaven and earth, you’re the jury. Listen to GOD’s case: “I had children and raised them well, and they turned on me.

영어NRSV,2 Hear, O heavens, and listen, O earth; for the LORD has spoken: I reared children and brought them up, but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 ακουε ουρανε και ενωτιζου γη οτι κυριος ελαλησεν υιους εγεννησα και υψωσα αυτοι δε με ηθετησαν

라틴어Vulgate,2 audite caeli et auribus percipe terra quoniam Dominus locutus est filios enutrivi et exaltavi ipsi autem spreverunt me

히브리어구약BHS,2 שִׁמְעוּ שָׁמַיִם וְהַאֲזִינִי אֶרֶץ כִּי יְהוָה דִּבֵּר בָּנִים גִּדַּלְתִּי וְרֹומַמְתִּי וְהֵם פָּשְׁעוּ בִי׃

성 경: [사1:2,3]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막(표제)이 오르면 독자의 시선은 말할 수 없이 장중하고 엄숙한 대자연의 법정으로 인도된다. 대재판관(여호와)이 있고 피고(이스라엘)가 있다. 그리고 증인들(하늘과 땅)이 있다. 이 재판은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 먼저 증인이 호출된다:’하늘이여…땅이여…'(2a절). 이어서 대재판관이 피고에 대한 기소장을 읽는다(2b, 3절). 그 죄명은 반역죄이다. 선지자는 이 광경을 사람들이 잊을 수 없도록 아름답고도 슬픈 4행시로 노래지었다.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 세계는 그 앞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선지자는 특별히 하늘과 땅을 지목해서 부른다. 그 까닭은 하늘과 당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 걸쳐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하면서 그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과 보살핌을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증인으로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신 4:26, 36;30: 19;31:28;시 50:4, 5).

󰃨 내가 지식을 양육하였거늘 –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가 부자(父子) 관계에 비유된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자식이었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셨다(출 4:22;호 11:1). 이러한 관계성은 약속의 씨앗이라는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말씀에서 암시되었다(창 15:4). 그 씨앗은 자라서 출애굽의 감격과 더불어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는 탐스러운 결실로 이어진다. 여호와는 갓태어난 이스라엘을 ‘자기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인도했으며 온갖 향기로운 것들로 먹게 하셨다(신 32:8-14). 그 결과, 이스라엘은 장성한 성년이 되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신 26:19;28:1) 이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에 가장 잘 부합되는 시대를 찾는다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 그리고 웃시야와 요담의 시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식인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지극한 돌보심이 개역 성경에는 ‘양육하였다’는 한 단어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키우고'(*, 깃달티)와 ‘향상시켰다'(*, 로마므티)는 두 단어로 되어 있다. ‘깃델’과 ‘로멤’은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23:4;겔 31:4).

󰃨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거역하다’로 번역된 ‘파솨'(*)는 본래 ‘도망치다’, ‘달아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의지에서 여호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 이스라엘은 지각이나 통찰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이스라엘이라는 주어에 종속된 ‘알다'(*, 야다)라는 동사에는 목적어가 없다. 그러므로써 그 표현은 더욱 강력한 것이 되었다. 70인역(LXX)은 그 뒤에 여호와를 가리키는 ‘나를'(*, 메)이라는 목적어를 삽입하였다. 반면에 혹자는 주인을 가리키는 ‘그를'(him)이라는 목적어를 보충하였다(Gesenius, De Wette). 그러나 본문 그대로가 그 기소를 더욱 통렬한 것이 되게 한다(Leupold). ‘알다’와 ‘깨닫다’의 두 동사는 모두 경험에서 직접 취해진 말이다. 여호와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식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출애굽과 같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주어졌다. 언약 관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여호와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많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다(출 6:7). 그러나 그 지식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는 데 이스라엘의 문제가 있다.

야다 쇼르 코네후 와하모르 에부스 바알라우 이스라엘 로 야다 암미 로 히트보난

개역개정,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새번역,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우리말성경,3 황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가톨릭성경,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영어NIV,3 The ox knows his master, the donkey his own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

영어NASB,3 “An ox knows its owner, And a donkey its master’s manger,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

영어MSG,3 The ox knows who’s boss, the mule knows the hand that feeds him, But not Israel. My people don’t know up from down.

영어NRSV,3 The ox knows its owner, and the donkey its master’s crib; but Israel does not know, my people do not understand.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γνω βους τον κτησαμενον και ονος την φατνην του κυριου αυτου ισραηλ δε με ουκ εγνω και ο λαος με ου συνηκεν

라틴어Vulgate,3 cognovit bos possessorem suum et asinus praesepe domini sui Israhel non cognovit populus meus non intellexit

히브리어구약BHS,3 יָדַע שֹׁור קֹנֵהוּ וַחֲמֹור אֵבוּס בְּעָלָיו יִשְׂרָאֵל לֹא יָדַע עַמִּי לֹא הִתְבֹּוןָן׃

호이 고이 호테 암 케베드 아온 제라 메레임 바님 마쉬히팀 아제부 엩 아도나이 니아추 엩 케도쉬 이스라엘 나조루 아홀

개역개정,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새번역,4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우리말성경,4 아! 어긋나 버린 민족! 죄악을 진 백성! 악행하는 종자! 타락한 자식들! 그들이 여호와를 저버렸구나. 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경멸했구나. 그들이 완전히 등을 돌려 남이 돼 버렸구나.

가톨릭성경,4 아아, 탈선한 민족 죄로 가득 찬 백성 사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 등을 돌리고 말았다.

영어NIV,4 Ah, sinful nation, a people loaded with guilt, a brood of evildoers, children given to corruption! They have forsaken the LORD; they have spurned the Holy One of Israel and turned their backs on him.

영어NASB,4 Alas, sinful nation, People weighed down with iniquity, Offspring of evildoers, Sons who act corruptly! They have abandoned the LORD, They have despis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turned away from Him.

영어MSG,4 Shame! Misguided GOD-dropouts, staggering under their guilt-baggage, Gang of miscreants, band of vandals– My people have walked out on me, their GOD, turned their backs on The Holy of Israel, walked off and never looked back.

영어NRSV,4 Ah, sinful nation, people laden with iniquity, offspring who do evil, children who deal corruptly, who have forsaken the LORD, who have despised the Holy One of Israel, who are utterly estranged!

헬라어구약Septuagint,4 ουαι εθνος αμαρτωλον λαος πληρης αμαρτιων σπερμα πονηρον υιοι ανομοι εγκατελιπατε τον κυριον και παρωργισατε τον αγιον τ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4 vae genti peccatrici populo gravi iniquitate semini nequam filiis sceleratis dereliquerunt Dominum blasphemaverunt Sanctum Israhel abalienati sunt retrorsum

히브리어구약BHS,4 הֹוי גֹּוי חֹטֵא עַם כֶּבֶד עָוֹן זֶרַע מְרֵעִים בָּנִים מַשְׁחִיתִים עָזְבוּ אֶת־יְהוָה נִאֲצוּ אֶת־קְדֹושׁ יִשְׂרָאֵל נָזֹרוּ אָחֹור׃

성 경: [사1:4]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 슬프다 – 여호와의 기소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것만큼 이를 반향(反響)이라고 하듯 그 뒤를 따르는 화답은 ‘슬프다’는 감탄사로 시작된다. ‘슬프다’로 번역된 ‘호'(*)는 장례식의 애도를 표시하는 비탄의 감탄사(렘 22:18)로서 탄식이나 저주의 표현에 자주 쓰인다(G.E. Wright). 이 말은 다른 곳에서 ‘화로다’ 혹은 ‘화있을진저’등으로도 번역되었다(5:8;6:5;10:5;28:1 등등).

󰃨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 – 이스라엘은 정치적, 민족적 공동체로서 자신을 여호와의 나라(백성)라고 이해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초자연적 약속에 근거하여 자기를 여호와의 자녀(종자)라고 이해하였다. 자기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이해는 이스라엘의 삶을 실제적으로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항상 작용하였다. 여호와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당연히 ‘거룩한 나라'(*, 고이 카도쉬, 출 19:6)가 되도록 기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범죄한 나라'(*, 고이 호테)로 전락하였다. ‘호테’는 ‘과녁을 빗나가다'(miss the mark)는 뜻을 가진 동사 ‘하타'(*)의 능동 분사형으로, 이스라엘이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 암 카도쉬, 신 7:6)이 되도록 기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허물 진 백성'(*, 암 케베드 아온)으로 전락하였다. ‘케베드 아온’은 무거운 죄짐을 지고 허덕이는 백성의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다.

󰃨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 – 여호와의 자녀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씨'(*, 제라 코데쉬, 6:13)가 되도록 기대되었으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행악의 종자'(*, 제라 메레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말을 속격으로 받아들여 ‘행악자의 자손’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오히려 동격의 의미에서 ‘행악자들로 구성된 자손’이라고 애해하는 것이 더 낫다(Gesenius’ Hebrew Grammar, ed. E. Kautzsch). 여호와께서 양육한 ‘자식'(*, 바님)은 어찌되었는가 ? 그는 ‘행위가 부패한 자식'(*, 바님 마쉬히팀)이 되었다. ‘마쉬히팀’은 ‘타락한'(Gesenius, Henderson), ‘남들을 부패시키는'(Leupold), ‘파괴적으로 행동하는'(Lange), ‘변질된'(Calvin) 등으로 번역된다. 시적 평행법으로 구성된 이러한 묘사들은 이스라엘이 상습적이고도 계속적인 범죄 행위로 인하여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악해졌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파괴적인 결과만을 산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물러갔도다 – 먼저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렸다. 나아가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경멸하고 업신여겼다. 병행하는 두 구절에서 각기 ‘버리다’와 ‘경멸하다’로 번역된 ‘아자브'(*)와 ‘나아츠'(*)는 동이가어로서, 두 단어 모두 언약과 관련하여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 신들에게 전향하는 행위를 나타낸다(민 14:11;신 31:16, 20;32:19;삿 2:12 등). 랑게(Lange)는 ‘버렸다’를 소극적 죄악으로, ‘경멸하였다’를 적극적 죄악으로 분류하였다.

알 메 퉄쿠 오드 토시푸 사라 콜 로쉬 라홀리 웨콜 레바브 다와이

개역개정,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새번역,5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으며,

우리말성경,5 왜 너희는 계속 반역해 매를 더 맞으려고 하느냐? 머리는 온통 병들었고 마음은 온통 혼미해졌구나.

가톨릭성경,5 너희는 얼마나 더 맞으려고 자꾸만 반항하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마음은 온통 골병들었으며

영어NIV,5 Why should you be beaten anymore? Why do you persist in rebellion? Your whole head is injured, your whole heart afflicted.

영어NASB,5 Where will you be stricken again, As you continue in your rebellion? The whole head is sick, And the whole heart is faint.

영어MSG,5 “Why bother even trying to do anything with you when you just keep to your bullheaded ways? You keep beating your heads against brick walls. Everything within you protests against you.

영어NRSV,5 Why do you seek further beatings? Why do you continue to rebel? The whole head is sick, and the whole heart faint.

헬라어구약Septuagint,5 τι ετι πληγητε προστιθεντες ανομιαν πασα κεφαλη εις πονον και πασα καρδια εις λυπην

라틴어Vulgate,5 super quo percutiam vos ultra addentes praevaricationem omne caput languidum et omne cor maerens

히브리어구약BHS,5 עַל מֶה תֻכּוּ עֹוד תֹּוסִיפוּ סָרָה כָּל־רֹאשׁ לָחֳלִי וְכָל־לֵבָב דַּוָּי׃

성 경: [사1:5]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 너희가 어찌하여…패역하느냐 –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회개케 할 목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들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조치들을 취할 때마다 그 결과는 더욱더 악화되었다:’더욱더 패역하느냐.’ 실로 극한점에 이른 저들의 죄악 때문에 주의 징계로써도 돌이키게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패역하다'(*, 사라)는 ‘진실에서 이탈하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여호와를 배신하고 등을 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불법을 더하다’로 번역하였다.

󰃨 온 머리는…온 마음은 – ‘머리'(*, 로쉬)와 ‘마음'(*, 레바브)이란 명사에 관사가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머리와 모든 마음'(every head and every heart)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Hitzig, Lange). 그러나 관사의 생략은 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자주 허용되었으며(9:12 참조), 또한 이 말이 인간의 신체에서 취해진 비유임을 고려할 때, ‘온 머리와 온 마음'(the whole head and the whole heart)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Alexander). 이것들은 일부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각각 다른 사회적 계층들(Hendewerk)이나 공동체의 내외적 상태(Umbreit)를 상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신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치명적인 두 부분을 의미한다.

밐카프 레겔 웨아드 로쉬 엔 보 메톰 페차 웨합부라 우맠카 테리야 로 조루 웨로 훕바슈 웨로 뤀케카 밧솨멘

개역개정,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새번역,6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난 곳과 매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우리말성경,6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구나. 상한 곳과 멍든 곳과 새로 맞은 상처뿐, 짜내고 싸매고 기름으로 상처를 가라앉히지도 못했구나.

가톨릭성경,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데라곤 없이 상처와 상흔 새로 맞은 자국뿐인데 짜내지도 싸매지도 못하고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영어NIV,6 From the sole of your foot to the top of your head there is no soundness–only wounds and welts and open sores, not cleansed or bandaged or soothed with oil.

영어NASB,6 From the sole of the foot even to the head There is nothing sound in it, Only bruises, welts, and raw wounds, Not pressed out or bandaged, Nor softened with oil.

영어MSG,6 From the bottom of your feet to the top of your head, nothing’s working right. Wounds and bruises and running sores– untended, unwashed, unbandaged.

영어NRSV,6 From the sole of the foot even to the head, there is no soundness in it, but bruises and sores and bleeding wounds; they have not been drained, or bound up, or softened with oil.

헬라어구약Septuagint,6 απο ποδων εως κεφαλης ουτε τραυμα ουτε μωλωψ ουτε πληγη φλεγμαινουσα ουκ εστιν μαλαγμα επιθειναι ουτε ελαιον ουτε καταδεσμους

라틴어Vulgate,6 a planta pedis usque ad verticem non est in eo sanitas vulnus et livor et plaga tumens non est circumligata nec curata medicamine neque fota oleo

히브리어구약BHS,6 מִכַּף־רֶגֶל וְעַד־רֹאשׁ אֵין־בֹּו מְתֹם פֶּצַע וְחַבּוּרָה וּמַכָּה טְרִיָּה לֹא־זֹרוּ וְלֹא חֻבָּשׁוּ וְלֹא רֻכְּכָה בַּשָּׁמֶן׃

성 경: [사1:6]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 머리와 마음이 병들고 지친 이스라엘의 내적인 황폐함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좀더 인상적으로 보여주려는 선지자의 의도에 따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처절한 모습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 – 오래된 상처는 고름을 짜내야 하고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붕대를 싸매야 한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부드럽게 하고 치료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기름을 발라주어야 한다(눅 10:34 참조).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했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피폐함은 심각했다.

알체켐 쉐마마 아레켐 세루포트 에쉬 아드마테켐 레네그데켐 자림 오켈림 오타흐 우쉐마마 케마흐페카트 자림

개역개정,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새번역,7 너희의 땅이 황폐해지고, 너희의 성읍들이 송두리째 불에 탔으며, 너희의 농토에서 난 것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이방 사람들이 약탈해 갔다. 이방 사람들이 너희의 땅을 박살냈을 때처럼 황폐해지고 말았구나.

우리말성경,7 너희 땅은 황폐해졌고 너희 성들은 불태워졌다. 너희 땅은 너희 눈앞에서 이방 사람들에게 삼켜졌으며 이방 사람들에게 파괴된 것처럼 폐허만 남았다.

가톨릭성경,7 너희의 땅은 황폐하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으며 너희의 밭은 너희 앞에서 이방인들이 먹어 치우는구나. 이방인들이 파괴한 것처럼 황폐해졌구나.

영어NIV,7 Your country is desolate, your cities burned with fire; your fields are being stripped by foreigners right before you, laid waste as when overthrown by strangers.

영어NASB,7 Your land is desolate, Your cities are burned with fire, Your fields– strangers are devouring them in your presence; It is desolation, as overthrown by strangers.

영어MSG,7 Your country is laid waste, your cities burned down. Your land is destroyed by outsiders while you watch, reduced to rubble by barbarians.

영어NRSV,7 Your country lies desolate, your cities are burned with fire; in your very presence aliens devour your land; it is desolate, as overthrown by foreigners.

헬라어구약Septuagint,7 η γη υμων ερημος αι πολεις υμων πυρικαυστοι την χωραν υμων ενωπιον υμων αλλοτριοι κατεσθιουσιν αυτην και ηρημωται κατεστραμμενη υπο λαων αλλοτριων

라틴어Vulgate,7 terra vestra deserta civitates vestrae succensae igni regionem vestram coram vobis alieni devorant et desolabitur sicut in vastitate hostili

히브리어구약BHS,7 אַרְצְכֶם שְׁמָמָה עָרֵיכֶם שְׂרֻפֹות אֵשׁ אַדְמַתְכֶם לְנֶגְדְּכֶם זָרִים אֹכְלִים אֹתָהּ וּשְׁמָמָה כְּמַהְפֵּכַת זָרִים׃

성 경: [사1:7]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선지자의 시선은 병들고 상처입은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로 옮겨간다. 그는 고국 이스라엘의 황폐한 정경에서 율법의 저주를 본다.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자에 대해서 일찍이 율법은 경고하기를, ‘그 땅과 성읍이 황폐할 것'(레 26:33)이며, ‘알지 못하는 민족이 그 토지 소산을 먹을 것'(신 28:33)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에 임한 일이 과연 그러하였다. 선지자에게 이 모든 일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무시간적이고 영원한 율법의 진리를 확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이방인에 의해서 생기는 것과 같은 파괴'(Caspari, Lange, Knobel). 이것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해서 채택되고 있으며 이방인을 파멸시키는 자로 명시하고 있는 앞 구절에서 강력한 근거를 얻고 있다. (2) ‘이방인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파괴'(Delitzsch). 이것은 ‘파괴됨'(*, 마흐페카)이란 낱말이 옛적에 소돔 성에 임했던 무서운 파멸을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둔 것이다(13:19;신 29:23;암 4:11). 이중 어느 해석을 취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황폐된 모습에서 율법의 저주를 읽으려는 선지자의 시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웨노테라 바트 치욘 케숰카 베카렘 키멜루나 베미케솨 케이르 네추라

개역개정,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새번역,8 도성 시온이 외롭게 남아 있는 것이 포도원의 초막과 같으며, 참외밭의 원두막과 같고, 포위된 성읍과 같구나.

우리말성경,8 시온의 딸이 포도원의 초막처럼, 오이 밭의 원두막처럼, 에워싸인 성처럼 겨우 남았다.

가톨릭성경,8 딸 시온이 남아 있는 모습은 포도밭의 초막 같고 참외 밭의 원두막 같으며 포위된 성읍 같구나.

영어NIV,8 The Daughter of Zion is left like a shelter in a vineyard, like a hut in a field of melons, like a city under siege.

영어NASB,8 And the daughter of Zion is left like a shelter in a vineyard, Like a watchman’s hut in a cucumber field, like a besieged city.

영어MSG,8 Daughter Zion is deserted– like a tumbledown shack on a dead-end street, Like a tarpaper shanty on the wrong side of the tracks, like a sinking ship abandoned by the rats.

영어NRSV,8 And daughter Zion is left like a booth in a vineyard, like a shelter in a cucumber field, like a besieged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8 εγκαταλειφθησεται η θυγατηρ σιων ως σκηνη εν αμπελωνι και ως οπωροφυλακιον εν σικυηρατω ως πολις πολιορκουμενη

라틴어Vulgate,8 et derelinquetur filia Sion ut umbraculum in vinea et sicut tugurium in cucumerario sicut civitas quae vastatur

히브리어구약BHS,8 וְנֹותְרָה בַת־צִיֹּון כְּסֻכָּה בְכָרֶם כִּמְלוּנָה בְמִקְשָׁה כְּעִיר נְצוּרָה׃

성 경: [사1:8]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 딸 시온 – ‘시온’은 성전의 고귀함 때문에 예루살렘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경에서 ‘딸'(*, 바트)은 관용적으로 어떤 민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47:1, ‘바벨론의 딸’;시 45:12, ‘두로의 딸’). 시온과 이스라엘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이룬다. 선지자는 ‘딸 시온’이란 말로써 사랑스럽고 정결한 이미지를 야기시킨 후 바로 뒤에서 정반대의 비유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충격을 가중시킨다(Oswalt). 이 같은 기법은 3:17;4:4에서도 사용되었다.

루레 아도나이 체바오트 호틸 라누 사리드 키메아트 키세돔 하이누 라아모라 다미누

개역개정,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새번역,9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

우리말성경,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몇몇을 살아남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소돔같이, 고모라같이 됐을 것이다.

가톨릭성경,9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존자들을 조금이나마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으리라.

영어NIV,9 Unless the LORD Almighty had left us some survivors, we would have become like Sodom, we would have been like Gomorrah.

영어NASB,9 Unless the LORD of hosts Had left us a few survivors, We would be like Sodom, We would be like Gomorrah.

영어MSG,9 If GOD-of-the-Angel-Armies hadn’t left us a few survivors, we’d be as desolate as Sodom, doomed just like Gomorrah.

영어NRSV,9 If the LORD of hosts had not left us a few survivors, we would have been like Sodom, and become like Gomorrah.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ει μη κυριος σαβαωθ εγκατελιπεν ημιν σπερμα ως σοδομα αν εγενηθημεν και ως γομορρα αν ωμοιωθημεν

라틴어Vulgate,9 nisi Dominus exercituum reliquisset nobis semen quasi Sodoma fuissemus et quasi Gomorra similes essemus

히브리어구약BHS,9 לוּלֵי יְהוָה צְבָאֹות הֹותִיר לָנוּ שָׂרִיד כִּמְעָט כִּסְדֹם הָיִינוּ לַעֲמֹרָה דָּמִינוּ׃ ס

성 경: [사1:9]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배은 망덕한 유다의 비참한 실태]

7절에서 암시된 ‘소돔과 고모라와의 유사성’에 의해서, 그리고 8절에서 처음 싹을 틔운 ‘남은 자’ 개념에 의해서(4장 주제 강해, ‘남은 자(The Remmant)에 관한 역사적 이해’ 참조) 본절은 이중적으로 결합된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그 죄악의 격심함과 그에 따른 심판의 철저함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비견되었다. 이 비교는 여호와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충격적이며 수치스러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 이스라엘에는 극소수의 남은 자들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돔과 고모라와는 구별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희망적인 것이었다. 부정과 긍정의 이런 이중적 의미는 사도 바울이 롬 9:29에서 본문을 인용할 때 전혀 손상됨이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즉 바울은 한편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임을 자랑하고 유전만을 내세우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상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혹독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소수의 참된 신자들을 남겨두신다고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 만군의 여호와(*, 야훼 체바오트) – 이는 ‘하늘과 땅과 별들과 모든 거민들의 주님'(Alexander)이라는 뜻이다. 만군의 여호와는 그 전능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남은 자를 보존하실 수도 있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 악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쉬메우 데발 아도나이 케치네 세돔 하아지누 토랕 엘로헤누 암 아모라

개역개정,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새번역,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 ㉠또는 ‘사사들아’ ㉡또는 ‘가르침’ 또는 ‘교훈’

우리말성경,10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소돔의 지도자들아! 우리 하나님의 율법에 귀 기울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가톨릭성경,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영어NIV,10 Hear the word of the LORD, you rulers of Sodom; listen to the law of our God, you people of Gomorrah!

영어NASB,10 Hear the word of the LORD, You rulers of Sodom; Give ear to the instruction of our God, You people of Gomorrah.

영어MSG,10 “Listen to my Message, you Sodom-schooled leaders. Receive God’s revelation, you Gomorrah-schooled people.

영어NRSV,10 Hear the word of the LORD, you rulers of Sodom! Listen to the teaching of our God, you people of Gomorrah!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ακουσατε λογον κυριου αρχοντες σοδομων προσεχετε νομον θεου λαος γομορρας

라틴어Vulgate,10 audite verbum Domini principes Sodomorum percipite auribus legem Dei nostri populus Gomorrae

히브리어구약BHS,10 שִׁמְעוּ דְבַר־יְהוָה קְצִינֵי סְדֹם הַאֲזִינוּ תֹּורַת אֱלֹהֵינוּ עַם עֲמֹרָה׃

성 경: [사1:10]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 2절과 같은 동사가 사용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다르다. 죄악의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죄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와 거의 동일하다. 그 죄는 겔 16:49에서 ‘불의와 탐욕과 힘없는 자에 대한 착취’로 규정되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는 주저함이 없이 그들을 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적 병행어로 기술된 ‘관원’과 ‘백성’은 나라 전체가 한결같이 부패하고 타락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심판의 전달자일 뿐 아니라 율법의 참된 해석가고 부름받은 선지자는 여호와의 율법(*, 토라)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비난(11-15절)과 교훈(16, 17절)으로 진행되었다.

람마 리 로브 지베헤켐 요말 아도나이 사바티 올로트 엘림 웨헤렙 메리임 웨담 파림 우케바심 웨아투딤 로 하파츠티

개역개정,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새번역,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우리말성경,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 많은 너희 제물을 무엇하려고 내게로 가져오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도 지겹다. 나는 황소와 어린 양과 염소의 피도 기쁘지 않다.

가톨릭성경,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영어NIV,11 “The multitude of your sacrifices–what are they to me?” says the LORD. “I have more than enough of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fattened animals; I have no pleasure in the blood of bulls and lambs and goats.

영어NASB,11 “What are your multiplied sacrifices to Me?” Says the LORD. “I have had enough of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fed cattle. And I take no pleasure in the blood of bulls, lambs, or goats.

영어MSG,11 “Why this frenzy of sacrifices?” GOD’s asking. “Don’t you think I’ve had my fill of burnt sacrifices, rams and plump grain-fed calves? Don’t you think I’ve had my fill of blood from bulls, lambs, and goats?

영어NRSV,11 What to me is the multitude of your sacrifices? says the LORD; I have had enough of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fed beasts; I do not delight in the blood of bulls, or of lambs, or of goat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τι μοι πληθος των θυσιων υμων λεγει κυριος πληρης ειμι ολοκαυτωματων κριων και στεαρ αρνων και αιμα ταυρων και τραγων ου βουλομαι

라틴어Vulgate,11 quo mihi multitudinem victimarum vestrarum dicit Dominus plenus sum holocausta arietum et adipem pinguium et sanguinem vitulorum et agnorum et hircorum nolui

히브리어구약BHS,11 לָמָּה־לִּי רֹב־זִבְחֵיכֶם יֹאמַר יְהוָה שָׂבַעְתִּי עֹלֹות אֵילִים וְחֵלֶב מְרִיאִים וְדַם פָּרִים וּכְבָשִׂים וְעַתּוּדִים לֹא חָפָצְתִּי׃

성 경: [사1:11]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너희의 무수한 제물 – ‘제물’로 번역된 ‘제바힘'(*)은 ‘살해된 동물의 고기,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피뿌리는 제물에 대한 포괄적인 명칭으로 언급되었다(19:21;삼상 2:29;3:14). 이것은 13절에서 역시 ‘제물’로 번역된 ‘미느하트'(*)와 구별되는데, ‘미느하트’는 피 없는 제사 즉 식물로써 바치는 소제를 말한다. 제물의 종류와 횟수, 그리고 바쳐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7항을 참조하라.

키 타보우 레라오트 파나이 미 비케쉬 조트 미예드켐 레모스 하체라이

개역개정,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새번역,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우리말성경,12 너희가 내 얼굴을 보려고 나올 때 누가 너희에게 이것을 달라고 요구하더냐? 내 뜰만 밟을 뿐이다.

가톨릭성경,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영어NIV,12 When you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has asked this of you, this trampling of my courts?

영어NASB,12 “When you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requires of you this trampling of My courts?

영어MSG,12 When you come before me, who ever gave you the idea of acting like this, Running here and there, doing this and that– all this sheer commotion in the place provided for worship?

영어NRSV,12 When you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asked this from your hand? Trample my courts no mor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ουδ’ εαν ερχησθε οφθηναι μοι τις γαρ εξεζητησεν ταυτα εκ των χειρων υμων πατειν την αυλην μου

라틴어Vulgate,12 cum veneritis ante conspectum meum quis quaesivit haec de manibus vestris ut ambularetis in atriis meis

히브리어구약BHS,12 כִּי תָבֹאוּ לֵרָאֹות פָּנָי מִי־בִקֵּשׁ זֹאת מִיֶּדְכֶם רְמֹס חֲצֵרָי׃

성 경: [사1:12]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 ‘너희에게’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너희의 손에서’이다. 에발트(Ewald)는 ‘너희에게’에 강조점을 두어 ‘그것을 누가 너 같은 사람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반면에 알렉산더(Alexander)는 ‘그것을’에 강조점을 두어 ‘그따위 헛된 출석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로 해석한다.

󰃨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여기서 ‘마당’은 솔로몬 성전 주변의 경내를 가리킨다. 에스겔은 안뜰과 바깥뜰이 있다고 말한다(겔 8:16;10:5).

로 토시푸 하비 미느하트 솨웨 케토렡 토에바 히 리 호데쉬 웨솹바트 케로 미케라 로 우칼 아웬 와아차라

개역개정,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새번역,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우리말성경,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제물 타는 냄새도 역겹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집회의 선포를 견딜 수 없다. 악을 행하면서 성회를 여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가톨릭성경,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영어NIV,13 Stop bringing meaningless offerings! Your incense is detestable to me. New Moons, Sabbaths and convocations–I cannot bear your evil assemblies.

영어NASB,13 “Bring your worthless offerings no longer, Incense is an abomination to Me. New moon and sabbath, the calling of assemblies– I cannot endure iniquity and the solemn assembly.

영어MSG,13 “Quit your worship charades. I can’t stand your trivial religious games: Monthly conferences, weekly Sabbaths, special meetings– meetings, meetings, meetings–I can’t stand one more!

영어NRSV,13 bringing offerings is futile; incense is an abomination to me. New moon and sabbath and calling of convocation–I cannot endure solemn assemblies with iniquity.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ου προσθησεσθε εαν φερητε σεμιδαλιν ματαιον θυμιαμα βδελυγμα μοι εστιν τας νουμηνιας υμων και τα σαββατα και ημεραν μεγαλην ουκ ανεχομαι νηστειαν και αργιαν

라틴어Vulgate,13 ne adferatis ultra sacrificium frustra incensum abominatio est mihi neomeniam et sabbatum et festivitates alias non feram iniqui sunt coetus vestri

히브리어구약BHS,13 לֹא תֹוסִיפוּ הָבִיא מִנְחַת־שָׁוְא קְטֹרֶת תֹּועֵבָה הִיא לִי חֹדֶשׁ וְשַׁבָּת קְרֹא מִקְרָא לֹא־אוּכַל אָוֶן וַעֲצָרָה׃

성 경: [사1:13,14]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 이 말은 첫째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제사를 혐오하시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그들이 제사와 더불어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둘째 여호아가께서 혐오하시는 대상이 무엇임을 밝히 보여준다. 그것은 제사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제사의 근본 정신에서 이탈된 외식적인 행위이다. 본래 제사와 행악은 절대로 양립하지 못한다. 서로 배타적인 이 둘이 결합된 모양을 가리켜 성경은 ‘외식’이라 부른다. 가짜와 거짓을 싫어하시는 여호와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신다. 진리이신 그분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위선적인 예배 행위에 대한 여호와의 태도는 14절에서 세 개의 동사로 보다 구체화된다:’싫다’-‘귀찮다’-‘지겹다’.

호드쉐켐 우모아데켐 사네아 나프쉬 하이우 알라이 라토라흐 닐르에티 네소

개역개정,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새번역,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우리말성경,14 너희 초하루와 정한 절기들, 나는 그것들이 싫다. 그것들이 내게는 짐만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 내가 지쳐 버렸다.

가톨릭성경,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영어NIV,14 Your New Moon festivals and your appointed feasts my soul hates. They have become a burden to me; I am weary of bearing them.

영어NASB,14 “I hate your new moon festivals and your appointed feasts, They have become a burden to Me. I am weary of bearing them.

영어MSG,14 Meetings for this, meetings for that. I hate them! You’ve worn me out! I’m sick of your religion, religion, religion, while you go right on sinning.

영어NRSV,14 Your new moons and your appointed festivals my soul hates; they have become a burden to me, I am weary of bearing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τας νουμηνιας υμων και τας εορτας υμων μισει η ψυχη μου εγενηθητε μοι εις πλησμονην ουκετι ανησω τας αμαρτιας υμων

라틴어Vulgate,14 kalendas vestras et sollemnitates vestras odivit anima mea facta sunt mihi molesta laboravi sustinens

히브리어구약BHS,14 חָדְשֵׁיכֶם וּמֹועֲדֵיכֶם שָׂנְאָה נַפְשִׁי הָיוּ עָלַי לָטֹרַח נִלְאֵיתִי נְשֹׂא׃

우베파리세켐 캎페켐 아림 에나이 미켐 감 키 타르부 테필라 에넨니 쇼메아 예데켐 다밈 말레우

개역개정,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새번역,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우리말성경,15 너희가 아무리 손을 펼쳐 기도해도 나는 눈을 가리고 너희들을 보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려도 나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구나.

가톨릭성경,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영어NIV,15 When you spread out your hands in prayer,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even if you offer many prayers, I will not listen. Your hands are full of blood;

영어NASB,15 “So when you spread out your hands in prayer,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Yes, even Though you multiply prayers, I will not listen. Your hands are covered with blood.

영어MSG,15 When you put on your next prayer-performance, I’ll be looking the other way. No matter how long or loud or often you pray, I’ll not be listening. And do you know why? Because you’ve been tearing people to pieces, and your hands are bloody.

영어NRSV,15 When you stretch out your hands,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even though you make many prayers, I will not listen; your hands are full of blood.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οταν τας χειρας εκτεινητε προς με αποστρεψω τους οφθαλμους μου αφ’ υμων και εαν πληθυνητε την δεησιν ουκ εισακουσομαι υμων αι γαρ χειρες υμων αιματος πληρεις

라틴어Vulgate,15 et cum extenderitis manus vestras avertam oculos meos a vobis et cum multiplicaveritis orationem non audiam manus vestrae sanguine plenae sunt

히브리어구약BHS,15 וּבְפָרִשְׂכֶם כַּפֵּיכֶם אַעְלִים עֵינַי םִכֶּם גַּם כִּי־תַרְבּוּ תְפִלָּה אֵינֶנִּי שֹׁמֵעַ יְדֵיכֶם דָּמִים מָלֵאוּ׃

성 경: [사1:15]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손을 펼 때에 – 문자적으로는 ‘손을 뻗칠 때’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는 것은 구약 시대에 가장 일반화된 기도 자세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하고자 하는 내적인 열망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믿어졌다.

󰃨 많이 기도할지라도 – 혹자는 이 말을 ‘중언 부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큰소리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기도마저도 하나님께서는 불쾌할 뿐이다. 참되고 진실한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불의로 얼룩진 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갈구하는 탄원이며,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려는 거룩한 열망이다(주기도문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는 헛된 몸짓과 공허한 울림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경멸하시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붉은 ‘피'(*, 다밈)는 ‘악을 행한다'(13절)의 시각적 표현이다. 즉, 이 ‘피’는 희생 제물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 혹은 상징적 의미에서의 악행을 의미하는 것이다(Calvin). 사해 사본의 이사야서는 이 말 뒤에 ‘너희 손가락은 불법으로 물들었다’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라하추 힞자쿠 하시루 로아 마알레켐 민네게드 에나이 히델루 하레아

개역개정,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새번역,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우리말성경,16 손을 씻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리라. 악한 일을 그만두고

가톨릭성경,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영어NIV,16 wash and make yourselves clean. Take your evil deeds out of my sight! Stop doing wrong,

영어NASB,16 “Wash yourselves, make yourselves clean; Remove the evil of your deeds from My sight. Cease to do evil,

영어MSG,16 Go home and wash up. Clean up your act. Sweep your lives clean of your evildoings so I don’t have to look at them any longer. Say no to wrong.

영어NRSV,16 Wash yourselves; make yourselves clean; remove the evil of your doings from before my eyes; cease to do evil,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λουσασθε καθαροι γενεσθε αφελετε τας πονηριας απο των ψυχων υμων απεναντι των οφθαλμων μου παυσασθε απο των πονηριων υμων

라틴어Vulgate,16 lavamini mundi estote auferte malum cogitationum vestrarum ab oculis meis quiescite agere perverse

히브리어구약BHS,16 רַחֲצוּ הִזַּכּוּ הָסִירוּ רֹעַ מַעַלְלֵיכֶם מִנֶּגֶד עֵינָי חִדְלוּ הָרֵעַ׃

성 경: [사1:16]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사랑을 기억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신다. 그것은 먼저 악에서 떠나라는 말로 제시된다. ‘스스로 씻으라'(*, 라하추)는 말은 원래 신체적, 의학적 의미에서 자신을 세척하라는 말이며, ‘스스로 깨끗케 하라'(*, 하자쿠)는 도덕적 의미에서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말이다. 이 두 말의 상관 관계에 대해 델리취(Delitzsch)는 앞의 씻음은 단번의 회개요, 뒤의 씻음은 날마다의 점진적인 성화라고 하였다.

리메두 헤테브 디르슈 미쉬파트 앗쉐루 하모츠 쉬페투 야톰 리부 알마나

개역개정,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새번역,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 ㉢또는 ‘억압하는 자들을 꾸짖어라’

우리말성경,17 좋은 일 하기를 배우라! 정의를 추구하고 압제하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라. 고아를 위해 변호하고 과부를 위해 싸워주라.

가톨릭성경,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영어NIV,17 learn to do right! Seek justice, encourage the oppressed. Defend the cause of the fatherless, plead the case of the widow.

영어NASB,17 Learn to do good; Seek justice, Reprove the ruthless; Defend the orphan, Plead for the widow.

영어MSG,17 Learn to do good. Work for justice. Help the down-and-out. Stand up for the homeless. Go to bat for the defenseless.

영어NRSV,17 learn to do good; seek justice, rescue the oppressed, defend the orphan, plead for the widow.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μαθετε καλον ποιειν εκζητησατε κρισιν ρυσασθε αδικουμενον κρινατε ορφανω και δικαιωσατε χηραν

라틴어Vulgate,17 discite benefacere quaerite iudicium subvenite oppresso iudicate pupillo defendite viduam

히브리어구약BHS,17 לִמְדוּ הֵיטֵב דִּרְשׁוּ מִשְׁפָּט אַשְּׁרוּ חָמֹוץ שִׁפְטוּ יָתֹום רִיבוּ אַלְמָנָה׃ ס

성 경: [사1:17]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책망]

󰃨 선행을 배우며 – 악을 그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그 필요 충분 조건에 응하기 위해서는 선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해서 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초등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처럼 이제라도 선행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힘써 배워야 할 과목은 ‘공의’이며, 이 과목의 주된 학습 내용은 본절에서 세 가지 실천 사항으로 언급된다.

레쿠 나 웨니와케하 요말 아도나이 임 이흐우 하타에켐 캇솨님 캇쉘레그 얄비누 임 야에디무 카톨라 캋차메르 이흐우

개역개정,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새번역,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우리말성경,18 자! 와서 우리 함께 판가름해 보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너희 죄가 주홍빛 같더라도 눈처럼 희게 될 것이다. 비록 그 죄가 지렁이처럼 붉어도 양털처럼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영어NIV,18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영어NASB,18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as scarlet, They wi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like crimson, They will be like wool.

영어MSG,18 “Come. Sit down. Let’s argue this out.” This is GOD’s Message: “If your sins are blood-red, they’ll be snow-white. If they’re red like crimson, they’ll be like wool.

영어NRSV,18 Come now, let us argue it out,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like snow; though they are red like crimson, they shall become like wool.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δευτε και διελεγχθωμεν λεγει κυριος και εαν ωσιν αι αμαρτιαι υμων ως φοινικουν ως χιονα λευκανω εαν δε ωσιν ως κοκκινον ως εριον λευκανω

라틴어Vulgate,18 et venite et arguite me dicit Dominus si fuerint peccata vestra ut coccinum quasi nix dealbabuntur et si fuerint rubra quasi vermiculus velut lana erunt

히브리어구약BHS,18 לְכוּ־נָא וְנִוָּכְחָה יֹאמַר יְהוָה אִם־יִהְיוּ חֲטָאֵיכֶם כַּשָּׁנִים כַּשֶּׁלֶג יַלְבִּינוּ אִם־יַאְדִּימוּ כַתֹּולָע כַּצֶּמֶר יִהְיוּ׃

성 경: [사1:18]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회개의 촉구]

󰃨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양털같이 되리라 – 평행으로 이루어진 이 두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다면, 그것이 어떻게 눈이나 양털처럼 희어질 수 있겠느냐 ?'(Kaiser, Marti, Michaelis 등).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은 제사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조롱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것을 의문문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또 전후 문맥을 고려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다음 해석을 취한다. (2)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눈이나 양털처럼 희어지리라'(Alexander, Delitzsch 등). 죄가 여기서 붉은색으로 표현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피로 물든 손과의 연관성 때문이지만(15절), 종말론적인 표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흰색의 반대는 검은색이지만 종말론에서 희색의 반대는 붉은색이다. 흰색은 세마포를 입은 성도의 색이며 성결의 색으로 간주된다(전 9:8;단 7:9;마 17:2;계 1:14;3:4;7:9;19:8). 반면에 붉은색은 바벨론의 색이며 지상 나라의 색이며 마귀의 고유한 색이다(계 12:3, 9;17:4). 본문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사이에 변론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에도 불구하고’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자유이며 사랑이다. 공의대로만 보자면 이스라엘은 사형을 언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보적 상벌의 법칙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 자유로써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시며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주려고 하신다. 이러한 가능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유는 진실로 새로운 삶으로 결실한다.

임 토부 우쉐마템 투브 하아레츠 토케루

개역개정,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새번역,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9 만약 너희가 기꺼이 순종한다면 너희는 그 땅에서 좋은 것을 먹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영어NIV,19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will eat the best from the land;

영어NASB,19 “If you consent and obey, You will eat the best of the land;

영어MSG,19 If you’ll willingly obey, you’ll feast like kings.

영어NRSV,19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shall eat the good of the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εαν θελητε και εισακουσητε μου τα αγαθα της γης φαγεσθε

라틴어Vulgate,19 si volueritis et audieritis bona terrae comedetis

히브리어구약BHS,19 אִם־תֹּאבוּ וּשְׁמַעְתֶּם טוּב הָאָרֶץ תֹּאכֵלוּ׃

성 경: [사1:19,20]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회개의 촉구]

수농과 거역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주제는 율법이 선언된 이래 불변의 주제로서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레 26장 ;신 28장). 본문은 그 내용의 대조와 발음의 유사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절의 ‘먹다'(*, 토켈루)와 20절의 ‘삼키우다'(*, 테우클루)는 언어 유희의 대표적인 예다. 19절과 20절은 두운법(頭韻法)으로 이루어졌다.

󰃨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아담이 범죄했을 때 그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창 3:18)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가인이 그 아우를 죽였을 때 그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아니할 것이라'(창 4:12)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땅의 소산을 먹는 것과 인간의 행사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종종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참것의 그림자인 현재의 복락을 맛봄으로써 하늘의 영원한 행복을 찾도록 하시려는 의도에서이다.

웨임 테마아누 우메리템 헤렙 테우켈루 키 피 아도나이 딥벨

개역개정,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새번역,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우리말성경,20 그러나 만약 너희가 거역하고 반항한다면 칼이 너희를 집어삼킬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입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가톨릭성경,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영어NIV,20 but if you resist and rebel, you will be devoured by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영어NASB,20 “But if you refuse and rebel, You will be devoured by the sword.” Truly,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영어MSG,20 But if you’re willful and stubborn, you’ll die like dogs.” That’s right. GOD says so.

영어NRSV,20 but if you refuse and rebel, you shall be devoured by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εαν δε μη θελητε μηδε εισακουσητε μου μαχαιρα υμας κατεδεται το γαρ στομα κυριου ελαλησεν ταυτα

라틴어Vulgate,20 quod si nolueritis et me provocaveritis ad iracundiam gladius devorabit vos quia os Domini locutum est

히브리어구약BHS,20 וְאִם־תְּמָאֲנוּ וּמְרִיתֶם חֶרֶב תְּאֻכְּלוּ כִּי פִּי יְהוָה דִּבֵּר׃ ס

예카 하예타 레조나 키르야 네에마나 멜레아티 미쉬파트 체뎈 야린 바흐 웨앝타 멜랓체힘

개역개정,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새번역,21 그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습니까? 그 안에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이 판을 칩니다.

우리말성경,21 그 신실했던 성이 어쩌다가 창녀가 됐는가? 정의가 가득하고 그 안에 공의가 깃들어 있더니 지금은 온통 살인자들뿐이구나.

가톨릭성경,21 충실하던 도성이 어쩌다 창녀가 되었는가? 공정이 가득하고 정의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살인자들만 가득하구나.

영어NIV,21 See how the faithful city has become a harlot! She once was full of justice; righteousness used to dwell in her–but now murderers!

영어NASB,21 How the faithful city has become a harlot, She who was full of justice! Righteousness once lodged in her, But now murderers.

영어MSG,21 Oh! Can you believe it? The chaste city has become a whore! She was once all justice, everyone living as good neighbors, And now they’re all at one another’s throats.

영어NRSV,21 How the faithful city has become a whore! She that was full of justice, righteousness lodged in her–but now murderer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πως εγενετο πορνη πολις πιστη σιων πληρης κρισεως εν η δικαιοσυνη εκοιμηθη εν αυτη νυν δε φονευται

라틴어Vulgate,21 quomodo facta est meretrix civitas fidelis plena iudicii iustitia habitavit in ea nunc autem homicidae

히브리어구약BHS,21 אֵיכָה הָיְתָה לְזֹונָה קִרְיָה נֶאֱמָנָה מְלֵאֲתִי מִשְׁפָּט צֶדֶק יָלִין בָּהּ וְעַתָּה מְרַצְּחִים׃

성 경: [사1:21]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유다의 패역]

󰃨 신실하던 성읍이…창기가 되었는고 – 원문대로 읽으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가, 신실하던 성읍이’이다. 2절에서 부자 관계로 표현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여기서 부부 관계로 표현되었다. 부부 관계의 기초는 ‘신실함'(*, 네에마나)이다. ‘네에마나’는 ‘받치다’, ‘기초하다’, ‘기대다’는 뜻을 가진 ‘아만'(*)이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성도들이 기도 끝에 낭송하는 ‘아멘’이란 말도 이 말에서 비롯된 것임). 칼빈(Calvin)은 이 말을 ‘순결함’으로 이해하였다. 부부 관계에서 순결이 파괴될 때 간음이 되듯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배반할 때 그것은 영적 간음이 된다(출 34:15, 16;신 31:16;호 1:2 이하). 그리하여 한때 순결하였던 신부 이스라엘은 창녀(*, 자나)가 되었다. 어찌하여(*, 예카). 이 말은 애가(elegy)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이다. 예레미야 애가는 이 말로 시작하고 이 말로 표제를 삼았다(애 1:1;2:1;4:2). 선지자의 탄식은, 이스라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의 확인이다.

󰃨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추함이 ‘이제는'(*, 아타)이란 말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살인자들'(*, 메라츠힘)은 강도나 살인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가장하여 부정직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자를 의미한다(엠 2:34;요일 3:15). 그 주범은 유다의 지도자라 자처하는 고관들과 방백들이다.

카셒페크 하야 레시김 사베에크 마훌 밤마임

개역개정,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새번역,22 네가 만든 은은 불순물의 찌꺼기뿐이고, 네가 만든 가장 좋은 포도주에는 물이 섞여 있구나.

우리말성경,22 네 은은 찌꺼기가 됐고 네 포도주는 물이 섞여 묽어졌구나.

가톨릭성경,22 너의 은은 쇠 찌꺼기가 되고 너의 술은 물로 싱거워졌다.

영어NIV,22 Your silver has become dross, your choice wine is diluted with water.

영어NASB,22 Your silver has become dross, Your drink diluted with water.

영어MSG,22 Your coins are all counterfeits. Your wine is watered down.

영어NRSV,22 Your silver has become dross, your wine is mixed with water.

헬라어구약Septuagint,22 το αργυριον υμων αδοκιμον οι καπηλοι σου μισγουσι τον οινον υδατι

라틴어Vulgate,22 argentum tuum versum est in scoriam vinum tuum mixtum est aqua

히브리어구약BHS,22 כַּסְפֵּךְ הָיָה לְסִיגִים סָבְאֵךְ מָהוּל בַּמָּיִם׃

성 경: [사1:22]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유다의 패역]

󰃨 네 은은…너의 포도주에는 – 비유적으로 표현된 ‘은’과 ‘포도주’는 그 고상함과 귀중함에서 볼 때 높은 계급의 관원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러나 은은 찌끼가 되고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다. 이 말은 이전 황금 시대에 고관들에 의해 나타났던 덕과 공의가 쇠퇴하고 지금은 그 찌꺼기와 그림자만 남았음을 뜻한다(Delitzsch). 비록 찌끼가 은을 대신하여 아직도 반짝이고 포도주가 불그레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순수를 상실한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럴 듯한 가짜를 싫어하신다(딤후 3:5).

사라이크 소레림 웨하베레 간나빔 쿨로 오헤브 쇼하드 웨로데프 솰레모님 야톰 로 이쉬포투 웨리브 알마나 로 야보 알레헴

개역개정,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새번역,23 너의 지도자들은 주님께 반역하는 자들이요, 도둑의 짝이다. 모두들 뇌물이나 좋아하고, 보수나 계산하면서 쫓아다니고,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지 않고, 과부의 하소연쯤은 귓전으로 흘리는구나.

우리말성경,23 네 귀족들은 반역자들이요, 도둑들과 한패로구나. 그들은 모조리 뇌물을 좋아하고 사례금을 쫓아다니는구나. 고아를 변호하지도 않고 과부의 송사는 받아 주지도 않는구나.

가톨릭성경,23 네 지도자들은 반역자들이요 도둑의 친구들. 모두 뇌물을 좋아하고 선물을 쫓아다닌다.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지도 않고 과부의 송사는 그들에게 닿지도 못한다.

영어NIV,23 Your rulers are rebels, companions of thieves; they all love bribes and chase after gifts. They do not defend the cause of the fatherless; the widow’s case does not come before them.

영어NASB,23 Your rulers are rebels, And companions of thieves; Everyone loves a bribe, And chases after rewards. They do not defend the orphan, Nor does the widow’s plea come before them.

영어MSG,23 Your leaders are turncoats who keep company with crooks. They sell themselves to the highest bidder and grab anything not nailed down. They never stand up for the homeless, never stick up for the defenseless.

영어NRSV,23 Your princes are rebels and companions of thieves. Everyone loves a bribe and runs after gifts. They do not defend the orphan, and the widow’s cause does not come before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οι αρχοντες σου απειθουσιν κοινωνοι κλεπτων αγαπωντες δωρα διωκοντες ανταποδομα ορφανοις ου κρινοντες και κρισιν χηρων ου προσεχοντες

라틴어Vulgate,23 principes tui infideles socii furum omnes diligunt munera sequuntur retributiones pupillo non iudicant et causa viduae non ingreditur ad eos

히브리어구약BHS,23 שָׂרַיִךְ סֹורְרִים וְחַבְרֵי גַּנָּבִים כֻּלֹּו אֹהֵב שֹׁחַד וְרֹדֵף שַׁלְמֹנִים יָתֹום לֹא יִשְׁפֹּטוּ וְרִיב אַלְמָנָה לֹא־יָבֹוא אֲלֵיהֶם׃ ף

성 경: [사1:23]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유다의 패역]

󰃨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 ‘방백들'(*, 사림)과 ‘패역함'(*, 소레림)은 두운법에 맞춘 것이다. 선지자는 두운법을 사용함으로써 방백들과 그들의 패역함을 한층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방백들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패역한 사람들이다’이다.

󰃨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 ‘사랑하며'(*, 오헤브)와 ‘구하며'(*, 로데프)는 모두 분사로 쓰여 그들의 행위가 계속 지속되며 습관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구하다’는 동사는 원어상 ‘따라가다’, ‘열심히 추구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들이 그처럼 열심히 추구하고 흠모해 마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뇌물'(*, 솰르모님)이었다. ‘뇌물’은 ‘평화’를 뜻하는 ‘솰롬'(*)과 발음이 비슷하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구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기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뇌물’이었다.

라켄 네움 하아돈 아도나이 체바오트 아비르 이스라엘 호이 엔나헴 및차라이 웨인나크마 메오예바이

개역개정,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새번역,24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대적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겠다. 내가 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한을 풀겠다.

우리말성경,24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아! 내가 내 대적들에게서 받은 한을 풀어버리겠다. 내 원수들에게 앙갚음하겠다.

가톨릭성경,24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사 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아아, 나의 적들에게 복수하고 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리라.

영어NIV,24 Therefore the Lord, the LORD Almighty, the Mighty One of Israel, declares: “Ah, I will get relief from my foes and avenge myself on my enemies.

영어NASB,24 Therefore the Lord GOD of hosts, The Mighty One of Israel declares, “Ah, I will be relieved of My adversaries, And avenge Myself on My foes.

영어MSG,24 This Decree, therefore, of the Master, GOD-of-the-Angel-Armies, the Strong One of Israel: “This is it! I’ll get my oppressors off my back. I’ll get back at my enemies.

영어NRSV,24 Therefore says the Sovereign, the LORD of hosts, the Mighty One of Israel: Ah, I will pour out my wrath on my enemies, and avenge myself on my foes!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δια τουτο ταδε λεγει ο δεσποτης κυριος σαβαωθ ουαι οι ισχυοντες ισραηλ ου παυσεται γαρ μου ο θυμος εν τοις υπεναντιοις και κρισιν εκ των εχθρων μου ποιησω

라틴어Vulgate,24 propter hoc ait Dominus exercituum Fortis Israhel heu consolabor super hostibus meis et vindicabor de inimicis meis

히브리어구약BHS,24 לָכֵן נְאֻם הָאָדֹון יְהוָה צְבָאֹות אֲבִיר יִשְׂרָאֵל הֹוי אֶנָּחֵם מִצָּרַי וְאִנָּקְמָה מֵאֹויְבָי׃

성 경: [사1:24]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 – 하나님의 성호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처럼 한데 모아 놓은 곳은 이곳 외에 없다. ‘주'(*, 하아돈)라는 명칭은 본서에서 ‘만군의 여호와’와 결합되어 위협과 징벌을 가하는 경우에 쓰인다(3:1;10:16, 33;19:4). ‘만군의 여호와’에 대하여는 9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의 전능자’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권위있는 통치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창 49:24;시 132:2, 5 등에서는 ‘야곱의 전능자’라고도 표현되었다(49:26;60:16). 70인역(LXX)에서는 이것 대신 ‘야곱의 전능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선지자는 이 세 가지 이름을 한데 묶음으로써 여호와의 무한한 엄위와 전능하심을 최고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 뒤에 이어질 말씀들이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하시되'(*, 네움)라는 동사에서 한결 분명해진다.

󰃨 말씀하시되 – ‘네움’은 비밀스럽고 중요한 사실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다(창 22:16에서 처음 나오고 렘, 겔에서 자주 등장함).

웨아쉬바 야디 알라이크 웨에체로프 캅보르 시가이크 웨아시라 콜 베디라이크

개역개정,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새번역,25 이제 다시 내가 너를 때려서라도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너를 씻고, 너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겠다.

우리말성경,25 내가 네게로 손을 돌려 네 찌꺼기를 녹여 깨끗하게 하고 네 모든 불순물들을 걷어낼 것이다.

가톨릭성경,25 그러고 나서 나의 손을 너에게 돌려 잿물로 씻어 내듯 너의 쇠 찌꺼기를 걸러 내고 너의 불순물을 모두 없애 버리리라.

영어NIV,25 I will turn my hand against you; I will thoroughly purge away your dross and remove all your impurities.

영어NASB,25 “I will also turn My hand against you, And will smelt away your dross as with lye, And will remove all your alloy.

영어MSG,25 I’ll give you the back of my hand, purge the junk from your life, clean you up.

영어NRSV,25 I will turn my hand against you; I will smelt away your dross as with lye and remove all your alloy.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επαξω την χειρα μου επι σε και πυρωσω σε εις καθαρον τους δε απειθουντας απολεσω και αφελω παντας ανομους απο σου και παντας υπερηφανους ταπεινωσω

라틴어Vulgate,25 et convertam manum meam ad te et excoquam ad purum scoriam tuam et auferam omne stagnum tuum

히브리어구약BHS,25 וְאָשִׁיבָה יָדִי עָלַיִךְ וְאֶצְרֹף כַּבֹּר סִיגָיִךְ וְאָסִירָה כָּל־בְּדִילָיִךְ׃

성 경: [사1:25]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나의 손을 내게 돌려 – ‘손을 되돌린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개입, 간섭하실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렘 6:9;겔 38:12;암 1:8). 하나님의 간섭은 찌끼를 태우고 혼잡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몇몇 주석가들은 이것을 징벌의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아쉬바'(*)라는 동일한 동사로 시작되는 26절과 비교해 볼 때 회복의 의미가 더 강한 듯하다.

󰃨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 문자적으로는 ‘잿물처럼 너의 찌끼를 녹이고’이다. 하나님은 마치 잿물을 가지고 은에서 납 성분을 녹이듯이, 예루살렘의 경건치 못한 자들을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웨아쉬바 쇼페타이크 케바리쇼나 웨요아차이크 케밭테힐라 아하레 켄 잌카레 라크 이르 핯체데크 키르야 네에마나

개역개정,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새번역,26 옛날처럼 내가 사사들을 너에게 다시 세우고, 처음에 한 것처럼 슬기로운 지도자들을 너에게 보내 주겠다. 그런 다음에야 너를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이라고 부르겠다.”

우리말성경,26 옛날처럼 내가 네 사사들을 다시 세우고 처음처럼 네 모사들을 다시 세울 것이다. 그런 후에야 너는 의의 도성, 신실한 고을이라고 불릴 것이다.”

가톨릭성경,26 너의 판관들을 처음처럼 돌려 놓고 너의 고문들을 시작처럼 돌려 놓으리라. 그런 다음에야 너는 ‘ 정의의 도읍’ ‘ 충실한 도성’이라 불리리라.”

영어NIV,26 I will restore your judges as in days of old, your counselors as at the beginning. Afterward you will be called the City of Righteousness, the Faithful City.”

영어NASB,26 “Then I will restore your judges as at the first, And your counselors as at the beginning; After that you will be called the city of righteousness, A faithful city.”

영어MSG,26 I’ll set honest judges and wise counselors among you just like it was back in the beginning. Then you’ll be renamed City-That-Treats-People-Right, the True-Blue City.”

영어NRSV,26 And I will restore your judges as at the first, and your counselors as at the beginning. Afterward you shall be called the city of righteousness, the faithful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και επιστησω τους κριτας σου ως το προτερον και τους συμβουλους σου ως το απ’ αρχης και μετα ταυτα κληθηση πολις δικαιοσυνης μητροπολις πιστη σιων

라틴어Vulgate,26 et restituam iudices tuos ut fuerunt prius et consiliarios tuos sicut antiquitus post haec vocaberis civitas iusti urbs fidelis

히브리어구약BHS,26 וְאָשִׁיבָה שֹׁפְטַיִךְ כְּבָרִאשֹׁנָה וְיֹעֲצַיִךְ כְּבַתְּחִלָּה אַחֲרֵי־כֵן יִקָּרֵא לָךְ עִיר הַצֶּדֶק קִרְיָה נֶאֱמָנָה׃

성 경: [사1:26]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본래와 같이 – ‘사사들’과 ‘모사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관원들과 방백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정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된 뒤에 예루살렘은 21절 상반절에 기록된 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평화의 구현기요 메시아적 통치의 예표로서 상징된다. 그러면 이러한 예루살렘의 회복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 가까운 미래에 있어서 어쩌면 그것은 유다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팔레스틴에 귀환할 때 이들을 지도한 스룹바벨이나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완전히 실현되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24:23).

치욘 베미쉬파트 팊파데 웨솨베하 비체다카

개역개정,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새번역,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회개한 백성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얻고 돌아온 사람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얻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7 시온은 공정으로 구원을 받고 그곳의 회개한 이들은 정의로 구원을 받으리라.

영어NIV,27 Zion will be redeemed with justice, her penitent ones with righteousness.

영어NASB,27 Zion will be redeemed with justice, And her repentant ones with righteousness.

영어MSG,27 GOD’s right ways will put Zion right again. GOD’s right actions will restore her penitents.

영어NRSV,27 Zion shall be redeemed by justice, and those in her who repent, by righteous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μετα γαρ κριματος σωθησεται η αιχμαλωσια αυτης και μετα ελεημοσυνης

라틴어Vulgate,27 Sion in iudicio redimetur et reducent eam in iustitia

히브리어구약BHS,27 צִיֹּון בְּמִשְׁפָּט תִּפָּדֶה וְשָׁבֶיהָ בִּצְדָקָה׃

성 경: [사1:27]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귀정(歸正)한 자 – KJV는 이것을 범죄로부터 돌아선 자라는 뜻의 ‘개종자들(converts)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랑게(Lange)는 ‘포로에서 귀환하는 자들’에게 이것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것을 이중적 전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즉 가까운 미래에서는 ‘포로에서 풀려난 자들’, 그리고 먼 미래에서는 ‘죄로부터 구속된 성도들’로 이해하는 것이다.

웨쉐베르 포쉐임 웨하타임 야흐다우 웨오제베 아도나이 이켈루

개역개정,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새번역,28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패망하고, 주님을 버리는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8 그러나 반역자들과 죄인들은 함께 부숴질 것이며 여호와를 저버린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8 그러나 반역자들과 죄인들은 다 함께 파멸하고 주님을 버린 자들은 멸망하리라.

영어NIV,28 But rebels and sinners will both be broken, and those who forsake the LORD will perish.

영어NASB,28 But transgressors and sinners will be crushed together, And those who forsake the LORD shall come to an end.

영어MSG,28 But it’s curtains for rebels and GOD-traitors, a dead end for those who walk out on GOD.

영어NRSV,28 But rebels and sinners shall be destroyed together, and those who forsake the LORD shall be consumed.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και συντριβησονται οι ανομοι και οι αμαρτωλοι αμα και οι εγκαταλειποντες τον κυριον συντελεσ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28 et conteret scelestos et peccatores simul et qui dereliquerunt Dominum consumentur

히브리어구약BHS,28 וְשֶׁבֶר פֹּשְׁעִים וְחַטָּאִים יַחְדָּו וְעֹזְבֵי יְהוָה יִכְלוּ׃

성 경: [사1:28]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그러나 패역한 자와…멸망할 것이라 – 25절과 관련하여 정련 과정의 반대 측면, 즉 찌끼와 혼잡물의 운명이 제시된다(Lange). 그들의 운명을 강조하는 듯이 ‘패망'(*, 쉐베르)이란 명사가 문장의 맨 앞에 나온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파멸, 패역한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그리고) 여호와를 버린 자들은 종말에 이르리라.’

키 예보슈 메에림 아쉘 하마드템 웨타흐페루 메학간노트 아쉘 베하르템

개역개정,29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새번역,29 너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우상 숭배를 즐겼으니,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가 동산에서 이방 신들을 즐겨 섬겼으므로 창피를 당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9 “너희가 쾌락을 일삼던 상수리나무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너희가 선택한 그 동산 때문에 수치를 당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9 너희가 좋아하는 그 참나무들 때문에 너희는 정녕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가 선택한 그 정원들 때문에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영어NIV,29 “You will be ashamed because of the sacred oaks in which you have delighted; you will be disgraced because of the gardens that you have chosen.

영어NASB,29 Surely, you will be ashamed of the oaks which you have desired, And you will be embarrassed at the gardens which you have chosen.

영어MSG,29 “Your dalliances in those oak grove shrines will leave you looking mighty foolish, All that fooling around in god and goddess gardens that you thought was the latest thing.

영어NRSV,29 For you shall be ashamed of the oaks in which you delighted; and you shall blush for the gardens that you have chosen.

헬라어구약Septuagint,29 διοτι αισχυνθησονται επι τοις ειδωλοις αυτων α αυτοι ηβουλοντο και επησχυνθησαν επι τοις κηποις αυτων α επεθυμησαν

라틴어Vulgate,29 confundentur enim ab idolis quibus sacrificaverunt et erubescetis super hortis quos elegeratis

히브리어구약BHS,29 כִּי יֵבֹשׁוּ מֵאֵילִים אֲשֶׁר חֲמַדְתֶּם וְתַחְפְּרוּ מֵהַגַּנֹּות אֲשֶׁר בְּחַרְתֶּם׃

성 경: [사1:29]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상수리나무…동산 – 선지자는 부분을 들어 전체를 나타내는 수법으로 ‘상수리나무'(*, 엘림)와 ‘동산'(*, 가노트)을 들어 당시에 편만해 있던 모든 유(類)의 거짓된 우상 숭배를 표현한다. 류폴드(Leupold)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이것들은 두 가지 방식의 우상 숭배, 즉 나무 숭배 의식(tree- cult)과 동산 숭배 의식(garden-cult)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무에 관하여는 57:5;왕하 16:4;렘 2:20;3:6;17:2;겔 6:13;호 4:13을, 동산에 관하여는 65:3;66:17을 참조하라.

키 티흐유 케엘라 노벨레트 알레하 우케간나 아쉘 마임 엔 라흐

개역개정,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새번역,30 기어이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될 것이며,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를 것이다.

우리말성경,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처럼, 물 없는 동산처럼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30 너희는 정녕 잎이 시든 향엽나무처럼 되고 물이 없는 정원처럼 되리라.

영어NIV,30 You will be like an oak with fading leaves, like a garden without water.

영어NASB,30 For you will be like an oak whose leaf fades away, Or as a garden that has no water.

영어MSG,30 You’ll end up like an oak tree with all its leaves falling off, Like an unwatered garden, withered and brown.

영어NRSV,30 For you shall be like an oak whose leaf withers, and like a garden without water.

헬라어구약Septuagint,30 εσονται γαρ ως τερεβινθος αποβεβληκυια τα φυλλα και ως παραδεισος υδωρ μη εχων

라틴어Vulgate,30 cum fueritis velut quercus defluentibus foliis et velut hortus absque aqua

히브리어구약BHS,30 כִּי תִהְיוּ כְּאֵלָה נֹבֶלֶת עָלֶהָ וּכְגַנָּה אֲשֶׁר־מַיִם אֵין לָהּ׃

성 경: [사1:30]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물 없는 동산 – 늘 푸른 나무와 물기 어린 동산처럼 그렇게 번성하기를 꿈구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달려간 그들은 허무한 우상의 결국만큼이나 자신들도 헛되이 비참함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Alexander). 그러나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를 택하고 그로 즐거워하는 자들의 운명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할'(시 1:3) 것이다. 선지자가 종말론적 구원의 표상과 관련하여 동산에서 물이 넘칠 것을 노래한 구절로는 35:6, 7;41:18;44:3;48:21;66:12 등이 있다.

웨하야 헤하손 리네오레트 우포알로 레니초츠 우바아루 쉬네헴 야흐다우 웨엔 메캅베

개역개정,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새번역,31 강한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1 강한 사람은 삼 부스러기가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둘이 함께 불에 타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끌 수 없을 것이다.”

가톨릭성경,31 강자는 삼베 조각이 되고 그의 행적은 불티가 되어 둘 다 타 버리는데도 꺼 줄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영어NIV,31 The mighty man will become tinder and his work a spark; both will burn together, with no one to quench the fire.”

영어NASB,31 And the strong man will become tinder, His work also a spark. Thus they shall both burn together, And there will be none to quench them.

영어MSG,31 ‘The Big Man’ will turn out to be dead bark and twigs, and his ‘work,’ the spark that starts the fire That exposes man and work both as nothing but cinders and smoke.”

영어NRSV,31 The strong shall become like tinder, and their work like a spark; they and their work shall burn together, with no one to quench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και εσται η ισχυς αυτων ως καλαμη στιππυου και αι εργασιαι αυτων ως σπινθηρες πυρος και κατακαυθησονται οι ανομοι και οι αμαρτωλοι αμα και ουκ εσται ο σβεσων

라틴어Vulgate,31 et erit fortitudo vestra ut favilla stuppae et opus vestrum quasi scintilla et succendetur utrumque simul et non erit qui extinguat

히브리어구약BHS,31 וְהָיָה הֶחָסֹן לִנְעֹרֶת וּפֹעֲלֹו לְנִיצֹוץ וּבָעֲרוּ שְׁנֵיהֶם יַחְדָּו וְאֵין מְכַבֶּה׃ ס

성 경: [사1:31]

주제1: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주제2: [심판 후의 구속]

󰃨 강한 자는…그의 행위는 – ‘강한 자'(*, 헤하손)는 불법한 통치자(아마도 ‘우상 숭배를 조성한 지도자’, Leupold)이며, ‘그의 행위'(*, 포알로)는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우상(혹은 ‘안녕을 도모하는 그 수단과 고안물’, Vitringa;’우상 숭배하는 행위’, Lange)을 의미한다. 우상은 불티와 같아서 그것을 따라가는 자에게 재앙만을 야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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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묵상 및 설교를 위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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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개역개정성경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 1장, 본문 주석

1:1-12:6 이사야가 … 본 계시라

이사야 1-39장에 포함된 일련의 본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무서운 심판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판 예언 다음에는 심판 후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말씀이 뒤따라 옵니다. 이 약속들은 2:2-4; 4:2-6; 9:2-7, 11:1-9에 나와 있습니다. 심판 뒤에 희망이 뒤따라 오는 이와 같은 도식(pattern)은 이사야서의 구조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 안에 정의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에 걸맞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는 신학적 원칙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4명의 유다 왕들의 명단은, 성경적인 믿음이 결코 진공 상태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적인 영역에서와 같이 다툼이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당대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들과 대응하는 것이 선지자적 신앙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1:2 양육하였거들

자라게 하였거늘(겔 31:4)로 번역 가능합니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이사야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소 또는 나귀와 주인의 관계에 비유하는 강력한 은유로 시작합니다. 하물며 소와 나귀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첫 부분은(1-12장) 하나님을 거부할 때 치르는 대가와 다가올 위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1:9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저자는 예루살렘이 모든 도시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악한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창 19장). 이 은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종교적인 관습과 확신에 대해 돌아보게 합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곧 우리의 가장 좋은 신앙도 선지자적 관점으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1:10 법

교훈 으로 번역 가능합니다.

1:12-17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선지자는 두 종류의 종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12-15절에서 종교 의식들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보장한다고 여기는 조작적인 종교는 배척 되고 있습니다. 16-17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순종으로 소환하는, 일련의 명령들에 초점을 맞추는 종교는 칭찬받고 있다. 특히 압제받는 자들, 과부들, 고아들,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한계 상황에 놓여 연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의를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종교 역시 칭찬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여전히 너무도 중요하게 연결시켜 주는 신앙 전승(traditions)에로의 부르심입니다.

1:21-26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불리리라

저자는 신실한 도시로 출발했으나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곧 파괴될 예루살렘성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그리한 후에야라는(afterward, 26절) 단어인데, 이 단어는 파괴된 후에야 그 도시에 새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선지자적 기대감입니다. 이 단순한 단어 그리한 후에야는 심오한 선지자적인 신앙을 대변하면서, 하나님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끝장내시거나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일도 생각할 수 없을 때 그분이 어떻게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가를 숙고하게 합니다.

이사야 1:26 묵상하기

당신이 가진 직업 기술에 적합한 일자리가 없을 때 당신의 삶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상황이 당신의 개인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그것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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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1절-20절(메튜 헨리주석)

이사야 1:1-20 매튜헨리 주석

예언자 이사야와 그 시대(이사야 1:1)

Ⅰ. 이 예언자의 이름을 보자. 그는 이사야(Isaiah) 또는 예사햐후(Jesahiahu)(히브리 원전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 했고, 신약 성서에서는 에사야스(Esias)로 적혀 있다. 그 뜻은 “여호와의 구원”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구원의 지식을 주시는” 도구로 쓰이는 예언자에게 적합한 이름이며, 이 예언자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는 구주 예수에 대해 그리고 구주에 의해 역사된 그 큰 구원에 대해서 매우 많은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모스(Amoz)의 아들” 이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예언자 아모스(Amos)가 아니라(히브리어에서 이 두 단어가 영어에서보다도 더욱 다르다) 유대인들의 견해대로, 유다왕 아마시아의 형제이거나 아들인 아모스(Amoz)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자의 아버지 이름이 나와 있을 때는 그 아버지도 역시 예언자일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규정처럼 애매 모호한 전승에 의한 것이다. 예언자들의 생도와 후계자들은 실상 흔히 그들의 “아들” 이라 불리우고 있으나, 우리는 예언자들의 친아들들이 그들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Ⅱ. 예언의 성격을 찾아보자. 그것은 이상(異象. Vision)가운데 그에 계시된 것이므로, 하나의 이상이다. 즉 그때 그는(발람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 24:4) “눈을 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자의 이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6장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은 처음에는 그리 뚜렷한 이상(환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언자는 “선견자” (Seer) 곧 보는 사람이라 불리웠으므로 그들의 예언은 이상(Visions)이라 일컬어지기에 적합하다. 그것은, 그가 마음의 눈으로써 보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육안으로 사물을 보듯이 선명히 예견하고 확신했으며, 충분히 알고 매우 감동받았던 그런 내용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자신이 믿고 확신했던 것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요 6:69; 요일 1:1).

2.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행 4:20; 고후 4:13).

Ⅲ. 예언자의 주제를 보자. 그것은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곧 두 지파의 지역과 그들의 중심지인 그 성읍에 대해 “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에브라임이나 열 지파(이스라엘)에 관한 것이 거의 없다. 그것에 관한 것은 호세아의 예언 안에 많이 언급되어 있다. 이사야서에는 바벨론, 애굽, 두로, 그리고 다른 이웃 족속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이 몇 장(章) 있다. 그러나 그 주요 내용이 되고 있는 것에서부터 그 예언의 표제를 따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라 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것은 유대 민족에 관련된 한에서만 언급된다.

1. 이사야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신탁에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2. 책망과 위협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알려진 유다에서, 또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나타난 살렘에서 불의가 발견된다면, 그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문책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환란의 때에 위로와 격려를 주고 있다. 왜냐하면 시온의 자손들이 그들의 왕을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Ⅳ. 예언의 시기를 보자.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다. 이 사실을 통해 다음을 알 수 있다.

1. 그가 오랫동안 예언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만일 그가(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듯이) 결국 므낫세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게 되는 잔인한 죽음을 당했다면 특히 그러하다. 혹자는 바울 사도가 히브리서에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히 11:37) 추측하고 있다.

웃시야 왕이 죽은해(6:1)에서 히스기야 왕이 병들고 회복된 해까지는 47년이었다. 이사야가 그 전후로 해서 얼마동안 예언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떤 사람은 60년으로, 또 어떤 사람은 도합 80년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며 그의 나라에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젊었을 때부터 예언하기 시작하여 노년까지 계속했다고 추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제사장들처럼 사역을 시작하고 끝내는 연령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가 여러 시대를 걸쳐서 예언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요담은 선한 왕이었고 히스기야는 그보다 더 선한 왕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이 예언자에게 격려를 주고 그로부터 충고를 받아들였으며, 그의 지지자가 되고, 그는 그들에게 자문원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그리고 이사야가 한창이었던 때, 아하스 왕은 매우 불경하고 사악했다. 그 때에 이사야는 물론 왕궁에 대해 얼굴을 찌푸렸고,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선한 사람과 선한 사역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세대를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 당시의 종교는 여호와의 집 문들이 닫혀지고 우상의 제단이 예루살렘 각 곳에 세워질 정도로 타락했다. 그리고 모든 거룩한 웅변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소식을 가지고 있던 이사야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 가장 훌륭한 사역자들이라도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선을 다 행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죄악됨(이사야 1:2-9)

우리는 이 책이 끝나기 전에 좀 더 밝고 즐거운 광경을 보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여기에 전개되는 서론에서는 모든 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매우 나쁘고 어둡게 보인다. 교회 곧 포도원이 이처럼 암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광야같은 이 세상은 어떠하겠는가?

Ⅰ. 그 예언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했으나, 그의 백성들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게 말하면서 그들의 주목을 청하고 있다(2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 이리석고 무감각한 백성들보다는 저 무생물이 더 빨리 들을 것이다. 그것들은 창조의 법을 지키고 있는 그 창조의 목적에 따르고 있다. 하늘의 빛들로 하여금 그 어두움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땅의 풍성함으로 하여금 그 불규칙적인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라. 모세도 여기서 예언자 이사야갸 한 그런 말로 시작했다(신 32:1). 모세가 예언했던(신 31:29)것이 이제 실현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또한 그 귀절이 하늘과 땅에 대한, 천사들에 대한, 그리고 나서 위와 아래 세상의 거민들에 대한 호소일 수도 있다. 그들로 “하나님과 그의 포도원 사이를 판단” 하게 하라. 그들의 어느 편이 이처럼 배은망덕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를 살피자.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으실 것이며, 하늘과 땅도 그의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미 6:1, 2; 시 50:6).

Ⅱ. 그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곧 야비한 배은망덕에 대해 그들을 책망하고 있다. 사람을 배은망덕한 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1. 하나님께서 이들처럼 하나님의 혐오와 격노를 자극시키는 백성에게도 은혜롭게 대하시는 것을 듣고 놀라게 하라. “내가 그들을 자녀처럼 양육하고 키워왔다. 그들은 잘 먹고 잘 배워왔도다” (신 32:6). “나는 그들을 존귀케 하고 높였다(어떤 자는 이렇게 본다).” “그들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훌륭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부양했을 뿐만 아니라 영달을 주었다. 그들을 훈육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높이 일으켜 세웠다.” 우리의 생명과 즐거움이 존속되고 우리가 발전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보시고 친절을 베푸시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2.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그처럼 그들에게 온유하신 하나님에 대해 그들은 얼마나 사악하게 대하는가를 보고 놀라게 하라.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또는(일부의 해석대로) 그들이 내게서 반기를 들었도다. 그들은 나의 면류관과 권위에 대한 탈주자, 아니 반역자였도다.” 우리의 본성과 교육을 담당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모든 은총이 우리가 패역하게도 하나님을 떠나며 그에게 무례히 행하는 일체의 행동으로 하여금 더욱 가중한 죄가 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반역자가 되어 버렸다.

Ⅲ. 이것은 그들의 무지와 생각이 모자란 탓이라고 이사야는 말한다(3절). “소는 그 임자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도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소와 나귀의 영리함. 그들은 짐승 둥에서도 가장 무딘 종자이다. 그러나 소는 그 주인을 알고 섬기며 그 멍에에 복종하여 그 멍에를 멜 정도로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자기가 먹이를 먹고 머물던 장소인 그 주인의 구유나 여물통을 알 정도로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풀어놓아졌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돌아 갈 것이다. 아주 훌륭한 지위에 있던 어떤 사람도 지식과 총명에 있어서는 미련한 짐승들만 못해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자, 그것은 그들에게서 그 짐승들에게로 보내어졌다. 배우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잠 6:6, 7), “땅의 짐승보다 더 많이 배웠으나” (욥 35:1)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들의 본을 받기 위해서이다(렘 8:7).

2. 이스라엘의 망령됨과 어리석음,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며 소유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지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가축이 우리의 것인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의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며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은 채 이렇게 묻는다. “전능자가 무엇이관대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그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간구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에게는 우리를 양육할 구유가 없도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집스러운 의지를 원망했다(2절).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알지 못하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역하였도다.” 총명이 어두워지므로 온 마음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다(엡 4:18). “이스라엘은, 비록 그들의 땅이 빛과 지식의 땅이지만, 알지 못하는도다. 유다에 하나님이 알려지셨지만,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실상 그들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경우에 적용시키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것에 유념하지도 않는다.” 다음을 기억하자.

(1)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유익을 얻고 그의 백성의 계약 관계 아래 놓여있는 자들 중에도, 자기 영혼의 문제에는 매우 부주의한 자들이 많이 있다.

(2)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의 큰 적이다.

(3)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거역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모르고 있으며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의무감도 감사한 마음도 유익을 분별하는 마음도 없다.

Ⅳ. 이사야는 그들의 교회와 나라가 보편적으로 타락되고 부패된 것을 탄식하고 있다. 죄라는 병이 전염되었고, 모든 지위와 신분의 사람들에게 감염되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4절) 이 예언자는 자기 자신들을 탄식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슬퍼하고 있다. “애석하도다.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그는 그들의 부패함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품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그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한가를 알고 있으며, 그 죄악의 치명성을 보여 주고 있다(4절).

(1) 그 사악함은 전반적이었다. 그들은 사악한 민족이었다. 그 백성의 대다수가 부도덕했고 불경스러웠다. 그 민족의 수용 능력도 또한 사악했다. 대외적으로 공적인 약정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나 대내적으로 공의를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은 부패했다. 죄가 그 나라 전체에 퍼지면, 백성들에게도 해롭다.

(2) 그들의 죄악은 그 성질상 매우 중하고 극악했다. 그들은 “허물을 졌다.” 즉 범죄와 그 범죄로 인한 저주가 그들 위에 매우 무겁게 놓여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드러난 것은 가혹한 책망이었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책망이었다. 그들의 사악함이 “납 조각” 처럼 그들에게 얹혀 있었다(슥 5:7, 8). 그들의 죄는 그들을 얽어매기 쉽고, 또 그들은 그 죄를 범하기 쉬웠다. 뿐만 아니라 그 죄는 그들에게 하나의 짐이었다(히 12:1).

(3) 그들은 나쁜 혈통의 출신으로서 “행악의 종자” 였다. 패역함이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본성적으로 패역했고, 이 사실이 그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고, 하나님을 더욱 분노케 했으며 구제책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열조를 대신하여 일어나, 그 열조의 전철을 밟아 “죄악의 그릇(한도)을 가득 채웠다” (민 32:14). 그들은 반역자들의 혈통이요 가문이었다.

(4) 자기 자신을 더럽힌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다. 그들은 “부패한 자손,” 즉, 더럽혀진 채 태어난 자손 일뿐만 아니라 “행위가 부패한 자식” 으로서 악을 번식시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에 물들게 했다. 그들은 죄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혹자였다. 사탄에 의해 조정될 뿐만 아니라 그의 대리자가 되었다. “자녀들” 곧 “하나님의 자녀” 로 불리워지며 그의 가족에 속해 있는 자로 간주받는 자들이 악하고 부도덕해지면, 그들의 본보기는 가장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5) 그들의 죄는 그들이 패역스럽게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충성에서 이탈한 자였다. “그들이 그들 자신을 연합시켰던 여호와를 버리고,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그와 분리되어 그에게서 돌아섰으며, 그들의 깃발을 버리고 해야할 봉사를 중단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 때도, “완강한 암소처럼” “어린양처럼” 뒷걸음질 쳤다(호 4:16).

(6) 그들의 죄는 건방지고 대담하게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다” 고 했다. 그들은 무엇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행했다. 신앙과 또 하나님과 저들의 관계를 고백한 자들이 뒷걸음질 치는 것은 하나님을 특별히 격노케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그는 문둥병이 온 몸에 퍼졌거나 또는 욥의 경우처럼 심한 종기가 퍼진 병든 몸을 비유로 들어 그들의 죄악상을 설명했다(5, 6절).

(1) 질병이 활력소를 포위했으므로,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머리와 마음의 병은 매우 위험하다. 이제 머리, 온 머리가 병들고, 마음, 온 마음이 피곤해졌다. 그들의 판단력이 부패했다. 문둥병이 그들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전히 부정결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열정과 신앙은 식어 없어졌다. “그 남은 것도 죽게 되었다” (계 3:2).

(2) 병이 온 몸에 퍼져 극히 불결하게 되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즉 가장 낮은 소작인에게 가장 큰 귀족까지 “성한 곳이” 즉 훌륭한 원칙이나 신앙이(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없이” 오직 “상한 것과 터진 것,” 즉 범죄와 타락, 거룩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지각있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슬픈 결과들뿐이었다. 다윗에게 있어서도 그가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시 38:5) 하고 호소했을 때 그러했었다(시 32:3, 4 참조). 개혁을 위한 시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할지라도 효과적인 것이 못되었음이 판명되었다. 그 상처는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다” 고 했다. 죄가 회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상처는 보살핌과 씻김을 받지 못하여, 그 속에 있는 교만한 살이 잘려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죄가 사함받지 못하는 한, 상처는 기름으로 유하게 되거나 싸매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치료하거나 그 치명적인 결과를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행해지지 않는다.

Ⅴ. 그는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 아래에서도 그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것을 슬프게 탄식하고 있다.

1. 그들의 나라는 거의 다 멸망했다(7절). 그들의 사정은 매우 비참했으므로, 그들의 마음과 땅도 황폐케 되었고, 그들이 너무 어리석었으므로 이런 것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자. 너희 성읍들은 황무하였다. 밭은 주민의 부족으로 인해, 마을은 버려짐으로 인해 경작되지 않았다(삿 5:7). 그리고 이처럼 들과 포도원은 황야같이 그 위에 가시덤불이 퍼졌다(잠 24:31). 너희 성읍들은 너희를 침입한 대적들에 의해 불에 탔고(불과 칼은 보통 함께 한다) 너희 가족들의 양식이 되어야 할 너희 땅의 열매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그리고 너희들을 더 분노케 하는 것은 그 참상이 너희 목전에 있으나 너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의 생계가 되었어야 할 음식으로 너희 원수들이 포식하는 동안 너희는 굶주린다. 너희 땅의 멸망은 이방인의 멸망과 같다. 그 땅을 침입자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장차는 이방인들이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온의 딸 같았던(시온에 세워진 성진은 예루살렘에게 어머니요 유모였다) 예루살렘 자체나 딸처럼 하나님께 귀중했던 거룩한 산 시온 자체는 이제 잃어 버려졌고 버림 당했으며, “포도원의 망대같이” 내버려졌다. 포도원의 수확이 끝났을 때, 그 망대에는 아무도 거하지 않거나 돌보지 않으며, “원두막의 상직막 같이” 또는 오두막 같이 그것은 천하고 보잘 것 없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마치 것이 “포위된 성읍” 인 것처럼(8절), 그 근처에 오기를 두려워하여, 거기에서 자기의 재산을 끌어내어 오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병든 몸으로 표현된 것은 그 왕국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6절). 아마도 이 설교는 아하스 통치 시대에, 즉 유다가 아람과 이스라엘 왕들에 의해, 그리고 에돔 사람과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침입당하던 때에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던 것이다(대하 28:5, 17, 18). 나라의 불경과 부도덕은 국가적인 황폐함을 초래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온 땅의 영광인 가나안과 온 세상의 기쁨인 시온산은 모두 조롱거리가 되고 멸망되었다. 그들에게 이 큰 참화를 불러들인 것은 바로 죄이다.

2. 그러나 그들이 전혀 개심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과정을 취하시려고 경고하신다(5절). “너희가 반역을 계속하여 책망 받을 일을 계속 되는 때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랴? 그렇게 된들 너희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지금까지 행한대로, 앞으로도 더욱 더욱 패역하려느냐?” 특히 아하스왕이 그러했다. 그는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던” 자이다(대하 28:22). 이와 마찬가지로, 의사는 환자의 경우와 절망적임을 알 때, 더 이상 그를 약으로 괴롭히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의 자식이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음을 발견하여 상속권을 박탈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났을 때는, 더 이상 그를 훈계하려 하지 않는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훌륭하게 만들려고 택하셨지만 바로 그 방책에 의해 더 나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를 맞을수록 더욱 패역해진다. 환란을 당하면 그들의 타락성이 제거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극되고 악화되며, 그들의 마음도 완악해진다.

(2) 하나님은 때로 오랫동안 고쳐질 수 없었던 자들을 징계하는 길을 중단하신다. 이 자체그 하나의 의로운 심판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는 것이다. 내어버려진 은은 풀무 속이 아니라 쓰레기 속에 던져질 것이다(렘 6:29, 30; 겔 24:13; 호 4:14 참조). “부정한” 자는, “여전히 부정하도록 버려두라.”

Ⅵ. 이사야는 이러한 전반적인 타락과 황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기념비가 될 남은 자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써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9절). 여기에서 다음을 보라.

1. 그들이 완전히 근절당하게 될 운명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가! 그들은 죄와 멸망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거의 소돔과 고모라와도 같았다. 즉 그들은 “그들 중에 10인의 의인” 도 없을 정도로 점점 악한 상태에 빠져들어갔고, 마치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그들은 비참했고 그들의 땅은 유황 못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을 아드마같이 놓고 스보임같이 두라” 고 말했으나, 긍휼은 “내가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고 말했다(호 11:8, 9).

2. 그들을 그것에서 구원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조금 남겨 두셨다.” 즉 그 소수의 남은 자들은 저 일반적인 배교 때에도 순결을 지켰고, 저 일반적인 참화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 남은 자들이다. 이것은 바울 사도에 의해 인용되어 있다(롬 9:27). 즉 바울 시대에 백성의 무리가 기독교를 거부했을 때도, 그것을 받아들였던 유대 민족 중의 극소수에게와 그리고 열조에게 한 약속이 그들 속에서 이루어졌던 그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되어 있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최악의 시대에도, 대홍수에서의 노아와 그의 가족들처럼, 소돔의 멸망에서의 롯과 그의 가족들처럼, 불의로부터 지켜지고 긍휼을 위해 보존된 남은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인 절대 행위에 의해서 그 빛을 떨친다.

(2) 이 남은 자는 거역하여 멸망당한 죄인들의 거대한 수효에 비해 극히 그 수가 매우 적다. 다수는 참 교회의 표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과녁은 적은 무리이다.

(3)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불결함 속에서 멸망하도록 버림을 당하나, 또 어떤 사람들은 성별시켜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로서 그의 권능의 역사인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 조금 남겨 두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행위가 부패한 자들은(4절) 모든 사람을 더럽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집어삼키는 자들은(7절) 그들을 멸하기 위해 온 수단을 다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어 당신을 위해 남은 자를 예비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승리했을 것이다. 따라서 남은 자들은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한다.

(4) 철저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얼마나 아슬아슬하게도 자기들이 그 멸망 가까이에 있었던가를 깨닫는 것이 좋으며, 또 자기들은 그 멸망의 틈바구니 속에 서 있었던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것은 이처럼 선한 사람들을 그들에게 남겨둔 선하신 하나님의 덕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좋다.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함은 오직 여호와의 자비하심 덕분이다.”

형식만 남은 종교(이사야 1:10-15)

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부르고 있다(그러나 그 부름은 헛되었다 10절).

1. 하나님이 그들에게 붙인 호칭은 매우 이상하다. “소돔과 관원들(rluers)” 이라 했다. 또 “고모라의 백성” 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죄에 대해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시키는 것이 얼마나 의로운 일이겠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 이었는데(창 13:13), 유다 사람들도 그러했다. 지도자들이 나쁠 때 백성들도 그러할 것은 당연하다. 악이 덕을 제압했다. 왜냐하면 악이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덕을 능가했는데, 그것은 그 악이 그 편에 백성 곧 다수의 사람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추세가 이처럼 강했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남은 자를 안전케 할 수 없었다(9절).

지도자들은 여기에서 소돔의 지도자들처럼 예언자에게 강한 공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아첨하는 칭호를 붙일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이 때문에, 그 신들을 저주하고, “그의 백성의 관원들을 헐뜯었다” 하여 오랜 후까지도 비난을 당했고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2. 그들에 대한 그의 요구는 매우 합당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해야 할 말씀에 주목하고 그의 말씀을 너희 법으로 삼을지어다.” 그들의 제물을 싫어한다는 다음의 선포는 – 실상 그것이 옛법에 대한 해설에 불과할지라도 – 그들에게 일종의 새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경우에 요구되어지듯이(시 50:7, 8) 특별한 배려가 여기에 따라야 한다. “이것을 듣고 떨지어다. 그것을 듣고 조심할지어다.”

Ⅱ. 정당하게도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는 것과 그들의 봉사와 제물과 번제를 받아들이기를 버구하셨다. 즉 그것들의 기름과 피(11절), 그들이 그의 전 뜰에 참예하는 것(12절), 그들의 봉헌, 분향 그리고 그들의 엄숙한 집회(13절), 그들의 월삭과 정해진 절기(14절), 그들의 가장 열렬한 말을 받으시기를 거절하고 계신다. 그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거절당한 것이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믿음의 권능에 대해서는 이방인, 아니 원수들이지만, 믿음의 외양과 그림자와 형식에는 매우 열심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사악한 민족, 이 행악의 종자, 이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만큼 많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제물들을 거짓된 신들의 제단이 아니라(여기에서 그들은 이런 우상에 대한 책망을 받고 있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에 가져왔다. 즉 그들이 자기들의 몫을 얻게 되는 화목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 모두 불태우는 번제도 가져왔다. 또한 그들은 찢어진 것이나, 절름거리는 것이나, 병든 것이 아닌 살찐 짐승과 그 기름등 가장 좋은 종류의 것으로 가져왔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제물을 바치도록 다른 사람들을 보내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가서 하나님 앞에 현신(現身)했다. 그들은 법으로 제정된 장소(산당이나 숲이 아닌 하나님의 전 뜰)와 제정된 때 즉 월삭과 안식일과 정해진 절기 등 그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지켰다. 아니 그들은 특별한 집회를 소집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이외에도 예배를 위해 성회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즉 그들은 의식 절차만이 아니라 헌신의 실행으로써 하나님께 전념했다. 그들은 많이 말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자주 또 많이 기도했다. 아니 그들은 열렬하고 끈질기게 기도했고, 간절한 사람처럼 손을 쳐들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경건하고 신앙적인 백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 그들의 마음속에는 참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보이러,” 즉(난외에 적혀있는 것처럼) 그 앞에 “보여지기 위해” 왔다. 그들은 그 의무의 한계 밨에서 휴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원했고, 사람들이 보는 장소 이외에는 가려하지 않았다.

(2) 그들의 손은 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과 공의라는 구실 아래 살인과 약탈과 압제를 자행했다. 백성들은 피를 흘렸고, 관원들은 그런 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관원들은 피를 흘렸다. 그런데 나봇의 피를 흘린 이 세벨에게 이스르엘의 장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은 그들을 돕고 선동했다.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실상 그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2.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면, 먼저 죄를 버리고 생활을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예배 행사에 참여하려고 달려간다. 그들의 땅은 이제 황무해졌고, 그들의 성읍은 불탔다(7절). 그러자 그들은 전능자 하나님께 뇌물을 드려, 그 형벌을 제거하고, 그로 하여금 자기들이 계속 범죄하게 내버려 두도록 반들려는 것처럼 예전보다도 더 꾸준히 하나님께 희생물과 제물을 바치게 되었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 그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였다” (시 78:34). “여호와여 백성이 환란 중에 주를 앙모하였나이다” (26:16). 제물을 쾌히 바치려는 자들도 죄에서 떠나는 것은 싫어하는 자들이 많다.

3. 마음과 생활의 철저한 개혁이 없이는, 사악한 백성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것이 결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에게 실로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순종하는 것이 제물을 드림보다 낫다” 는 사실을 매우 다양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아니, 복종함이 없는 제물은 희롱, 즉 하나님을 모욕하고 격노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의식적 행사를 대단히 무시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의식적 행사가 결국에는 모두 제거되고 말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무언의 암시이다. 지금 경시되는 것은 때가 이르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 – 또 그것에 힘입어 드리는 기도 – 을 원치 않으시리로다. 보시옵소서 “여기 내가 왔나이다(히 10:5; 7).”

그들의 제물이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1)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11절). 그것은 “헛된 제물” 이다(13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 15:9) 그들이 하나님의 법령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모두 헛된 수고였고, 어떤 훌륭한 의도에도 부합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1] 그것은 어떤 의무의 행위로나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12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령을 부인하거나 그 명령대로 지키기를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행할 때, 그것을 요구한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께서는 실상 그 손이 피로 가득하고 계속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이다.

[2] 그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총에 부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의 피를 기뻐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통해 당신 자신이 영예롭게 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3] 그것은 그들을 위해 어떤 위안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것이다(시 66:18). 그는 그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많은 기도를 할지라도 그 어느 기도도 순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종교적 예식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도 돌려주지 않았다.

(2) 나아가 추악하고 불쾌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받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몹시 싫어하고 혐오하셨다. “그것들은 너희의 제물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이 풍부하며 물리기까지 했다.” 하나님은 그것들이 필요치 않았고(시 50:10), 원하지도 않았으며, 그것들을 충분히 그리고 충분한 것 이상으로 지니고 계셨다. 그들이 그의 뜰로 오는 것을 “그의 마당만 밟는,” 또는 마당만 짓밟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부르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에 참예하는 바로 그 행위가 그 규례에 대한 경멸로 해석되어졌다. 그들의 분향은, 아무리 향기로울지라도, 그에게는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선 속에서 그리고 악한 의도와 함께 태워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엄숙한 집회도 하나님은 “견딜 수” 없었다. 즉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에게 준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성회가 불의하였다” . 비록 성회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성회를 열면 그 성회는 불의해진다.

이처럼 하나님의 규례가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될 뿐만 아니라 사악한 목적에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께는 “분한 일” (어떤 사람은 그렇게 읽고 있다), 격노케 하는 일이다. “내 마음이 그것을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 부담스러운 일이도다. 나는 그것에 완전히 넌더리가 나 있으며, 그것을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기에는 결코 곤비함이 없으시나, 악인의 호화스러운 제물에는 곧 곤비함을 느끼신다. 하나님은 싫어하고 분노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당신의 눈을 감추진다.

이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1] 죄는 하나님이 매우 미워하시는 것이다. 그는 죄를 매우 미워하시므로 사람들의 기도와 그들의 경건한 봉사마저도 미워하신다.

[2] 그들의 가장된 경건은 이중적인 악이다. 종교적인 위선은 하늘의 하나님께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것이다. 제롬(Jerome)은 이 귀절을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그들은 율법과 성전에 대해 매우 열심인 척 했으나, 그들의 손을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의 피로 채움으로써, 그들의 죄악의 그릇을 가득 채웠고, 따라서 그들 자신과 그들의 모든 봉사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개와 복종의 요청(이사야 1:16-20)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고집하는 한은 예배가 그들의 죄를 속하기에 불충분한 것으로 여기시어 거절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절망적인 상태에도 거절하시지는 않으셨다. 즉 여기에서 그는 그들의 예배가 상달되는 것을 방해했던 그들의 죄를 버리라고 요청하고 계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트집을 잡으셨다고 말하지 않게 하라. 아니 하나님은 화해의 방법을 제안하신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관찰토록 하자.

Ⅰ. 회개와 개심을 요구했다. “만일 너희 제물이 열납되고, 너희 기도가 응답 받게 되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올바른 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느니라. 나의 법도로 전향하라(갈대아 역은 이 권유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율법판 제2면에 기록되어 있는 너희의 의무를 유념하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너희 믿음의 행위가 상달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 공의와 자선이 결코 무신앙와 불경스러움을 속죄해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와 제물이 결코 사기와 압제를 속죄해 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에 대한 의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보편적인 의의 한 가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결한 믿음의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악행을 그쳐야” 한다. 더 이상 잘못을 행하지 말고 더 이상 무죄한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들을 씻으며 “스스로를 깨끗케 하라” 는 것을 의미한다(16절). 그것은 그들이 범한 죄를 슬퍼할 뿐 장차 그 행실을 끊어버리고, 그것으로 기울어지는 모든 부도덕한 감정과 취향을 없애는 것이다. 죄는 영혼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업은 죄를 회개하고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써 우리 자신을 씻는 일이다. 우리의 악행 – 이것은 세상 사람의 눈에 나타난다 – 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죄의 온갖 더러운 행실 – 이것은 하나님의 눈 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 곧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뿌리와 습관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악행이나 죄악들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

2. 그들은 “선행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회개를 완성하는 데 필요했다. 악행을 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선행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1) 우리는 실행해야 한다. 악행을 그칠 때 또 다시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선을,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리고 유익을 가져올 선을 행해야 한다.

(3) 우리는 그것을 잘 행해야 한다. 올바른 태도로 올바른 목적을 위해 선을 행해야 한다.

(4) 그리고 우리는 선행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 의무에 관한 지식을 얻고 그것에 관해 조사하고, 그것을 돌보는 수고를 기울여야 하며, 우리 자신을 그것에 익숙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일에 쉽게 다가서게 되고 선을 행하는 이 거룩한 일의 숙련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지금까지 실패해 왔던 것, 곧 율법판 제 2 면의 의무를 잘 이행할 것을 특별히 강권하고 있다. “공의(심판)을 구하라. 옳은 것을 조사하여, 그것을 행하도록 하라. 너희 의무의 길을 지키고, 부주의하게 행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선행할 기회를 찾으라.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라. 바로 너희 자신들이 학대했던 그들을 도와 주라. 그들의 짐을 덜어 주라(58:6). 너희 손에는 권력이 있으니,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학대하는 자들을 돕는 데 사용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너희 과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해를 당한 자들의 원통함을 갚아 주라. 고아와 과부는 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은 그들을 짓밟고 학대한다. 법정에서 재판석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을 위해 옹호하라.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리고 너희의 친절에 대해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을 위해 말해 주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정의와 자선의 행위는 모든 번제와 제물들보다도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Ⅱ. 올바로 이치를 따지는 법정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의롭게 대하셨다는 것에 대한 논증을 펴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8절).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한 한, 비록 너희가 무수한 제물을 가져올지라도, 나는 너희와 상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가 자신들을 씻고 깨끗이 한다면, 너희가 내게 가까이 오는 것을 환영하겠다. 오라,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죄와의 맹약을 끊어버리는 자들, 그리고 그러한 자들만이 하나님과의 언약과 교제 안에 들어오도록 환영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전에는 그들이 당신의 전에 오는 것을 금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오라” 하고 말씀하고 있다(약 4:8 참조). 아니 오히려 이러했다. 즉 그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고 말하는 자들처럼(58:3), 하나님께서 그 숫한 제물들을 경홀히 여기심으로써 자기들이 모욕을 당한 것으로 간주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냉혹한 주인으로서, 즉 즐겁게 해드리기에는 불가능한 자로서 진술했다. “오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 문제를 공정하게 토론하자. 나는 내 길은 공평하나 너희 길이 공평치 않다는 것이(겔 18:25) 밝혀지리라는 것만큼은 의심치 않는다.” 신앙은 이성(理性)을 자기편으로 삼고 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해야 할 모든 이유가 있다. 하늘의 하나님은, 당신을 반박하며 당신의 처사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이치를 따질 만큼 스스로를 낮추신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의로우시기” 때문이다(시 51:4). 그 송사는 단지(여기에서 처럼 매우 공정하게) 진술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스스로 결정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에스겔서에서와 같이. 겔 18:21-24; 33:18, 19) 보이시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조건이 올바른지 합당치 않은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신다.

1. 변론해보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회개하고 개심한다면 이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너희는 기대해도 좋다” 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니, 그것은 매우 친절한 일이다. 그 누가 다른 어떤 조건에서 그것을 바랄 얼굴을 가질 수 있겠는가?

(1) 요구 조건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즉 “단지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일부의 해석대로) 너희가 순종하기로 동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너희 뜻을 하나님의 뜻에 종속시키고 그것에 순응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너희 자신을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분에 의해 다스림을 받도록 맡기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는 이전의 완강함에 대한 형벌이 없으며, 멍에가 더 무거워지거나 그들 목의 속박이 더 가해지는 일이 없다. 단지 “여지껏 너희가 사악하고 순종치 않았고, 또 너희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따르려 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순종하면서 다스림을 받으라.”

하나님은 “만일 너희가 완전히 복종하면” 이라 말씀하시지 않고, “만일 너희가 즐겨 그리하면” 이라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즐거이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용납되기 때문이다.

(2) 이에 대해 약속되어 있는 것은 매우 크다.

[1] 그들의 모든 죄는 용서될 것이며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주홍과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비록 너희가 피의 범죄 아래 놓여 있을지라도, 너희가 회개하면 그것마저도 용서될 것이며, 너희는 하나님 보시기에 눈같이 희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아무리 중한 죄인들도, 만일 진실로 회개하면, 그 죄를 사함받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양심도 평정을 얻고 정결케 될 것이다. 우리의 죄는 주홍빛과 진홍빛, 짙게 물들고 2 중으로 물든 물감과 같았다. 즉 처음에는 원죄라는 것이 직물에 물이 들었고, 나중에는 실행죄가 옷에 물이 든 것이다. 또 비록 우리가 여러 번 뒷걸음질 쳐서 죄로 빠져들어갔을지라도, 그리고 옷감을 주홍빛으로 염색하듯이 그 속에 오래 젖어 있었을지라도, 용서의 긍휼은 완전히 그 얼룩을 없앨 것이며, “우슬초로” 정케하는 것처럼 자비에 의해 정결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정케 될 것이다” (시 51:7). 우리가 회개와 개심으로써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한다면(16절) 하나님은 완전한 사면으로써 우리를 희개 만들 것이다.

[2] 그들은 그들이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오직 즐겨 순종하기만 하라. 그러면 너희가 약속의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다. 너희는 새 언약의 천국인 가나안의 모든 축복을, 그 땅의 모든 유익을 얻을 것이다.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은, 비록 훌륭한 땅에 거할지라도 위로와 함께 그 소산을 먹을 수 없다. 범죄는 모든 것을 쓰라리게 한다. 그러나 죄가 사해진다면, 피조물이 주는 위로도 참된 위로가 될 것이다.

2. 변론을 해 보더라도 계속 고집을 부려 불복종한다면, 멸망하도록 버림당하고 율법 판결이 그들을 처형하리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무엇이 이 보다 더욱 공정하겠는가?(20절)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배반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들을 거절한다면, 너희가 칼에, 너희를 멸하도록 명령받은 너희 원수들의 칼에 – 너희에 대적할 하나님의 공의, 진노, 복수의 칼에 삼키우리라. 왜냐하면, 이것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며 그가 그 자신의 영예를 보전하기 위해 이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은 분명히 그리고 마땅히 그의 칼에 삼키울 것이다.

” 그리고 이제 생명과 죽음, 선과 악이 이처럼 너희 앞에 놓여 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가 이 공의를 반대하거나 하나님의 조건에 순종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이사야 서론 중 일부 발췌

저자와 제목

이 책은 첫 절에서 이 책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본 계시”라고 설명한다(1:1). 내적인 사생활의 여러 측면ㅇ르 드러내는 예레미야와 달리(예컨대 렘20:7~12) 이사ㅑ는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사6장은 이사야의 예언의 소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사건에 대한 이사야의 가장 내밀한 생각을 공개적을 ㅗ드러낸다. 7~8장, 20장, 37~39장은 이사야의 공적인 사역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왕하 19~20장의 평행 기사도 약간 보탬이 된다. 신약은 이사야의 선지자적 선견지명(요12:37~41)과 담대함(롬10:20)을 증언한다. 이 외에도 성경의 유일한 관심사가 이사야의 메시지 속에 있으며 이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이사야의 이름의 의미 속에 요약되어 있다.

이사야의 아버지는 아모스였지만(사1:1) 성경은 아모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유대 전승에서는 아모스가 유다 왕 아마샤의 형제였다고 주장하며 이사야를 왕족에 포함시킨다. 이사야가 결혼한 남자였고 아버지의 한 사림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7:3, 8:3, 18) 이사야는 예루살렘 주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7:3) 히11:37(“톱으로 켜는 것과”,)은 이사야가 유다 왕 므낫세(주전 687~642년)의 박해를 받아 죽었다는 전승(참조, 선지자의 생애 1.1, 이사야의 순교 5.1~14)을 암시할 수도 있다.

웃시야 왕의 치세에 대한 이사야의 기록(대하26:22)을 성경의 이사야서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

책 제목은 이 책을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본 계시”(사1:1)로 제시한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사실 보는 자였다.*왕하 6:15~17, 17:13, 사29:10, 30:10) 이사야는 직접 “주”를 보았지만(6:1) 이사야의 환상을 통한 통찰은 기록된 메시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말씀”(2:1)으로 옮겨짐으로써 공유될 수 있게 되었다. 이사야서는 상징과 논리 정연한 사고, 하나님 중심적인 인식과 삶의 방식을 통해 계시한다는 점에서 통찰(vision)이다. 이사야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의 거짓된 외양에 대한 참된 대안을 제공한다.

주제

이 책의 핵심적 주제는 자신을 위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48:11). 이사야는 다른 모든 것을 그것과 하나님과의 관계로, 그것이 모든 실재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께 그 초점이 올바르게 맞춰져 잇는지의 여부로 규정한다(45:22~25).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1:4), 높고 거룩하시지만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자들 가운데 거하시는 분(57:15), 그 진노가 맹렬하지미나(9:12, 17, 21, 10:4) 그 깨끗하게 하시는 손길은 죄를 없이하며(6:7) 그 구원이 끝없는 공급원에서 흘러나오며(12:3) 그 복음은 “복된 좋은 소식”이며(52:7),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방향으로 역사를 움직이시며(43:3~7) 유일하게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2:2~4) 온 세상의 주관자(13:1~27:13)이시다. 하나님ㅇ느 유일한 구주이시며(43:10~13)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49:26) 이 하나니의 약속 안에서 안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일한 능력이고(30:15)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은 그들의 힘을 북돋는 잔치이며(55:1~2) 하나님의 대의에 봉사하는 것은 그들의 합당한 헌신이지만(62장)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은 끝없는 죽음이다.(66:24)

이사야서의 메시지 축소판은 1:2~2:5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백성에 대해 기본적인 죄목을 공표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너무 많은 특권을 받았고 감사하는 자녀가 되어야 했지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겼다(1:2~4). 하나님은 그들이 겪는 여러 가지 심판의 목적을 설명하신다. 그 목적은 곧 그들을 회개하게 하는 것, 또는 적어도 회개할 남은 자를 보존하시는 것이다(1:5~9). 유다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를 준수하는 데는 매우 부지런하지만 백성의 마음은 그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지체들을 보호하기를 꺼려 하는 모습이 잘 보여 주듯이 하나님에게서 멀다.(1:10~20)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이 세상에서 신실함의 전형이 되기를 요구하셨지만 그들은 이제 모든(개인적,종교적, 사회적) 차원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불성실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시온에서 악한 자들을 깨끗이 제하고, 시온을 온 세상을 위한 등대로 세우고자 하신다. 이사야의 동시대인들은 이런 영광스런 미래를 바라보며 새롭게 “여호와의 빛에” 행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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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V 스터디바이블

이사야 1:1-20 해설

1:1~31 유다의 죄에 대한 고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왜 위기에 처해 있는지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예배를 허무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1:1 책 전체의 표제.

본 계시. 상징적인 형식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삼상3:!; 겔7:26)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웃시야(아사랴) 주전 767~740년

요담. 주전 750~735년

아하스. 주전735~715년

히스기야. 715~686년

1:2~9 이사야는 하나님께 대한 유다의 지각없는 반란을 고발한다.

1:2 하늘…..땅.이사야는 온 우주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증인으로 요청한다.(신30:19, 31:28, 시50:4)

자식을…. 그들이. 이 단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백성들의 배은망덕과 극명한 대비를 강조한다. 요컨대 이사야는 자기 시대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한다. 이스라엘 전체는 하나님의 “아들”(출4:22~23)이며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도 “아들들”이다(신14:1). 이러한 특권이 배은망덕을 불러와선 안 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4 슬프다. 이는 고통과 분노의 부르짖음이다.

범죄한. 이사야는 다양한 어휘로 백성에게 그들의 참된 성격을 알려 주는(여기서는 허물과 부패한으로 번역된) 죄를 연상시키는 여러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이사야서에 25회 등장하는(그리고 구약의 다른 데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사야의 특징적인 호칭이다.

이 말은 이사야의사상에 있어서 한 핵심적 주제를 반영한다. 아마도 이는 “구럭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는 스랍 천사들의 외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6:3). 이사야가 무한한 거룩함. 가운데 높이 들리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 광경은 의로우시고(5:16) 비교할 수 없고(40:25) 구속을 베푸시며(47:4) 존귀하시며(57:15)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주신 거룩한 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 자신의 지식을 규정했다. 거룩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경멸하는 것이다.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의 물러감은 스스로 치유하기가 불가능하다.

1:5 어찌하여. 고통스런 경험조차 그들에게 영향을주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닫혀 있다.

1:7~8 이 비유적 묘사는 이사야의 생애 동안 있었던 외국의 침략으로 현실이 되었다.

딸 시온. 예루살렘 성(37:22).

1:9. 만군의 여호와의 능력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했다(왕상19:18). 롬9:29를 보라. 거기서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남은 자를 보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을 가르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한다.그들 자신의 본성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최악의 이교 신앙과 그에 대한 적절한 심판에서 지켜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창13:13, 18:16~19:28; 벧후2:6; 유 7절; 계11:8을 보라).

1:10~20 이 구절들은 백성의 예배에 숨은 위선을 강조한다. 이사야는 제사 관행에 대해 논평하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예배 제도를 정하셨고, 중앙 성소에 권위를 부여하셨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규례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참된 경건을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그들을 감동시켜 겸손히 순전한 마음을 갖고 정력적으로 타인의 행복을 촉진하게 할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이 이 규례들을 그 올바른 목적에서 유리시킨 방식을 고발한다. 그들은 예배를 하나님을 조종하는 한 방법으로 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또한 가나안 종교의 요소들을 혼합했다(29절). (암4:4~5 참고)

1:10~17 하나님은 제 아무리 풍성한 예배라도 이 백성의 예배를 거부하신다. 그들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요구에 대한 경건한 회피 수단으로 예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참조, 약1:27) 기도하며 손을 드는 행위조차 아무 소용이 없다.

1:17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행에는 사회의 올바른 역할 수행을 추구하는 일이 포함된다.(이와 대조적으로 23절을 보라).

1:18~20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몰이해에 머물러 있기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실제적 위치를 사려 깊게 생각해 보도록 촉구하신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피로 가득

한 그들의 손(15절)은 깨끗해질 수 있다(시51:7). 그러나 그들은 사려 깊은 선택을 해야 한다.(1:19~20)

[이사야 1장 설교말씀] 이사야서 서론과 이스라엘의 죄악됨(사 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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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1장 설교 말씀 중에서 이사야서의 서론과 이스라엘의 죄악 된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읽을 성경 : 사 1 : 1 – 17

제 목 : 이사야서 서론과 이스라엘의 죄악 됨

1. 이사야와 그 시대

1)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구원’

2) 예언자들의 특징

@ 예언자들은 그들의 말하는 내용을 보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믿고 확신했던 것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한다.

@ 그들은 자기가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언의 대상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이다.

4) 시기는 웃시야 왕이 죽은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다 60-80년 정도 활동했다.

2. 1:2-9 / 이스라엘의 죄악 됨

1)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했다. 왜냐하면 저들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이다. (3절)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큰 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함에 있습니다.

2) 저들의 죄악은 치명적이었다. 그 죄악상을 문둥병으로 비유했다.(4-6)

@ 머리는 병들고 마음은 피곤해졌다. 즉 문둥병 곧 썩어지는 것이 그 머릿속에 있음으로 그들은 판단력이

부패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 치를 못했다.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하고 터졌다 즉 빈부귀천 없이 범죄와 타락했다.

3) 행위가 부패한 자들은 모든 사람을 더럽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집어삼키는 자들은 저들을

멸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했다. 그러한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패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받은 무리로 삼으신 것에 감사하면서 구원받은 자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3. 1:10-15 / 형식만 남은 종교

1) 저들은 형식상의 종교적 행위에는 거의 흠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책망하신다. 왜냐하면

@ 저들 마음속에 참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하나님께 아닌 사람에게 보이러 오는 외식적인 삶이었다.

@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 율법과 공의라는 구실 아래 살인과 약탈과 압제를 자행했다.

2)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면 먼저 죄를 버리고 생활을 개혁하기보다는 예배 행사에 참여

하려고 달려간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 있도록 요구한다.

마음과 생활의 철저한 개혁 없이는 아무리 화려하고 값 비싼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은 복종함이 없는 재물은 하나님을 희롱하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격노케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범죄의 자리에서 떠나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된 경건은 이중적인 악이 됩니다.

4. 결심과 기도

주여 우리를 죄악의 자리에서 지켜주시고 하나미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범죄의 두려움을 알게 하시고 위의 신앙하는 삶이 주안에서 진실하게 하시고 삶과 신앙이 하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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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주석강해 설교말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사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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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주석 강해 설교말씀 중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율법과 성막이라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멸망시켜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계약을 했음에도 불고하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을 얻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긴 왕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 유다도 마찬가지로 선왕이 나올 때는 여호와를 섬겼지만 악한 왕이 나올 때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심판 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심판 예언(사 1:1-31)

1-9절,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

[1절]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 . . .

본문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異像)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80년 사이에 남쪽 유다 나라에서 사역한 선지자이었다. 그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이며 다른 선지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인용되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하였다. 그들이 전한 내용은 모세의 율법과 일치하며 그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한 내용의 요지는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또한 회복의 예언들이며 그 회복의 예언들 중에는 메시아 예언도 포함된다.

[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 . . .

이사야는 말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 됨을 지적하셨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그 지적을 전달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배려하고 양육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효 막심하고 배은망덕한 자식같이 하나님을 거역했다. ‘거역하다’는 원어(파솨)는 ‘배반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수없이 많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더라면 하나님께 순종했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었다. 소와 나귀가 그 정도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들은 주인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4-9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 . . .

이사야는 말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한 나라이며 허물 진 백성이며 행악의 종자이었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모하고 귀히 여겨야 할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버렸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는 ‘거역하다, 변절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배교하며 변절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패역했다. 그것은 인간 본성 속에 있는 치료 불가능한 죄성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9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심히 부패했다’는 원어(아누쉬)는 ‘절망적이게 악하다’(KJV), ‘치료 불가능하다’(NIV)는 뜻이다.

이사야는 또 말한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 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징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을 빼앗으셨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다. 하나님의 징벌은 이스라엘의 높은 지도자들로부터 비천한 평민들까지 미쳤고, 그것은 육신적 질병과 정신적 피곤을 포함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중한 병에 걸렸으나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적절하고 좋은 약의 처방을 받지 못한 환자와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받지 못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또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였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하나님의 징벌은 사회적, 경제적 재앙으로 임했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오이밭–KJV, NASB)의 상직 막[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그들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로 조금 남겨 두셨다. 이사야서에는 ‘남은 자,’ ‘남는 자,’ ‘남아 있는 자’ 등의 말이 약 13번 나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효 막심한 자식 같고 배은망덕한 자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이신 하나님을 버렸고 매를 맞으면서도 더욱 거역하며 변절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치료 불가능한 죄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배반하지 말자.

둘째로 ,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육신적 건강과 정신적 평안을 빼앗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치료와 회복의 처방을 주지 않으셨다. 그는 또 그들에게서 사회적 평안과 경제적 평안도 빼앗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자.

셋째로 ,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음을 알자 . 하나님께서는 징벌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조금 남겨두셨다. 그것은 포도원의 망대 같고 오이밭의 원두막 같았다. 하나님께서 만일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으면 이스라엘은 옛날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그러하다. 구원의 본질은 의(義)의 회복이다. 우리에게 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사도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했다(롬 3:21-24).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과 그의 의(義)만 믿고 의지하자.

10-20절, 헛된 종교의식

[10절]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옛날 멸망당한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과 다를 바 없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성들이었지만, 심히 죄악되었고 불경건하고 음란했고 이웃 사랑이 없었다(창 13:13; 18:20; 19:1-13; 겔 16:49-50).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경건한 도덕적 사회를 세우는 데 무관심하고 해이하고 안이하고 부도덕했던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1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 . . .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을 드렸고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드렸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들을 드렸고 헌금들을 바쳤다. 그러나 그런 예배와 그런 제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다.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밟는다’는 원어(라마스)는 ‘짓밟는다’는 뜻이다(BDB, NASB).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은 형식적으로 성전을 드나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멸시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라고 그들에게 요구한 적이 없으셨다.

[13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 . . .

하나님께서는 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많은 제물들을 ‘헛된 제물’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마음에 없는 것들, 즉 형식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물들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분향과 월삭과 안식일과 정한 절기들의 모임들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미워하셨다. 왜 그러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종교의식이 아니고 그들이 악을 떠나는 것이었다. 악을 버리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헛된 일이며 가증한 일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악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겨야 하며, 그렇지 않은 형식적 예배나 기도나 헌금, 형식적 예배회들과 기도회들은 헛된 일이며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14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 . . .

하나님께서는 또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정기 집회들은 헛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일이며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이며 그가 지시기에 곤비한 일이었다. 그런 형식적 종교의식은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제발 그런 예배, 그런 헌금, 그런 기도, 그런 찬양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는 참된 경건과 순종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15절]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 . . .

하나님께서는 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는 응답을 받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기도는 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손에 가득한 피는 살인의 피이며 미움의 피이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일 3:15). 그들에게 미움과 살인이 가득한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16-17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책을 가르쳐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그 대책은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모든 악을 버리고 선과 의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에서 표현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구주를 믿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우리는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가?

[18-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 .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많은 죄를 씻는 길은 한마디로 회개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 곧 마음의 순종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였지만, 이제는 그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말했다(행 2:38).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 우리는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 형식적 교회생활이란 악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모양만 가지고 교회에 드나드는 생활이다. 형식적인 교인에게는 진실한 마음, 진지한 마음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 그런 기도, 그런 헌금, 그런 집회들을 헛되고 가증하며 그가 지기에 곤비한 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형식적 교회생활을 하지 말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진지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지적하신 바를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자가 되지 말자.

바른 교회생활은 악을 버리고 계명을 순종하면서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모든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지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악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음란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계명의 내용은 의와 선이며 사랑이다. 우리는 범사에 올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동정하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에 대해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21-31절, 예루살렘의 타락과 회복

[21-23절]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의 타락한 현실을 지적한다. 예루살렘 성은 본래 ‘신실하던 성읍’이었으나, 지금은 육신적 음행과 영적 음행 즉 우상숭배가 있다. 공평과 의가 충만했던 그 성은 지금 살인자들이 가득하다. 거기에는 의에 대한 이성과 양심의 판단이 없다. 경건의 변질은 도덕적 부패를 가져온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난다(잠 16:6). 선지자는 또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고 말한다. 찌끼가 섞인 은이 가치가 떨어지며 물이 섞인 포도주가 맛이 떨어지듯이, 그 성은 무가치하여졌고 더 이상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못하였다.

또 유다의 방백들은 패역하였다. ‘패역하다’는 원어(사라르)는 ‘완고하고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다. 방백들 즉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해 완고하고 반항적이었다. 그들은 도둑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도둑들과 단짝이 되었다. 그들은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고아나 과부 같은 소외 계층의 사람들의 억울한 송사를 정당하고 의롭게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 구약 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다.

[24-27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아비르)[권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救贖)이 되고 그 귀정(歸正)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선지자는 자기의 말과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구별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서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며 말씀을 선포할 때도 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선포하는 자이었다. 이사야는 타락한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함께 전한다. 그것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마음을 함께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 성을 징벌하시고 깨끗게 하시고 이전과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24, 25, 26절에서 ‘내가,’ ‘내가,’ ‘내가’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것이다.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며 또한 구원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인가? 그는 악인들을 제거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대적과 원수는 바벨론 사람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 악인들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로로 삼은 바벨론 나라를 징벌하실 것이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지만, 그는 또한 이스라엘 중의 모든 악인들도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찌끼와 혼잡물을 온전히 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실 것이다. 한 사회가 바르게 되려면 그 사회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없을 것이다. 참된 교회 안에도 드러나게 죄를 짓는 악인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예루살렘은 다시 경건하고 의로운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 교회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은 의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의인 되게 하시며(롬 1:17; 3:21-26) 또 실제로 의와 거룩을 행케 하실 것이다. 구원받고 회복된 새 세계는 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참된 교회와 천국에서 그것을 볼 것이다.

[28-31절]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행한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이 택한 동산으로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말은 그들이 거기서 행했던 우상숭배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말했고(렘 2:20), 호세아는,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라고 말했다(호 4:13). 그들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며 물 없는 동산 같을 것이다.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악인들은 물 없는 동산에 잎사귀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완전히 불타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 우리는 과거의 잘한 점을 자랑하지 말고 현재의 부족을 살피자 . 예루살렘 성은 신실하고 공평이 충만하며 의가 있는 성이었고 은과 같이 가치가 있고 포도주같이 맛이 있고 즐거움을 주는 도시이었으나, 지금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찌끼가 섞인 은 같고, 물이 섞여 맛이 떨어진 포도주같이 되었다. 과거의 잘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가 어떠한지 물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와 부족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둘째로 , 우리는 구주 하나님만 의지하자 .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찌끼를 청결케 하고 그들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실제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줄 바로 깨닫고, 사람을 자랑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찬송하며 항상 구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자.

셋째로 , 우리는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자 .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와 방향은 의와 거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를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법적으로 이미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도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불경건하고 불의하고 불결한 자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자.

[시편 1편 주석강해 설교말씀] 복 있는 사람(시편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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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주석 (양장본)

“이 책은 오늘날 사용할 수 있는 단권으로 된 최고의 복음적인 이사야 주석서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 가운데서, 탁월한 문체와 은유,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 관한 묵시, 하나님이 장차 이스라엘과 세계를 회복하실 것에 관한 만화경 같은 다채로운 묵시로 구성된 이사야서에 필적한 만한 것은 없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서의 목소리는 시편 다음으로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곳곳에서 아주 강력하게 울려 퍼진다. 신약성경의 기자들과 히에로니무스 이래의 기독교 주석자들이 인정해왔듯이,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의 전승들을 활용해서 복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최근에 이사야서에 대한 복음적인 석의를 기반으로 한 주석서들은 아주 드물게 나와서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이제 30년 넘게 이사야서를 연구하며 가르쳐온 저자가 이사야서에 대한 풍부한 주석과 관점을 담은 주석서를 내놓았다. 모티어의 강조점은 이사야서 본문의 문법적이고 역사적이며 구조적이고 문학적이며 신학적인 차원들에 두어져 있지만, 그는 이사야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서 그런 차원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사야서의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해서 이 주석서를 썼지만, 영역 성경인 NIV을 활용함으로써, 성경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설교자들과 교사들과 온갖 유형의 진지한 성경 연구자들은 이 주석서가 이사야의 예언에대한 지혜롭고 매력 넘치며 반가운 지침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0

약어표 12

저자 서문 14

서론 19

1. 문학작품으로서의 이사야서 21

2. 저자로서의 이사야 46

3. 이사야서 57

4. 이사야서의 본문 64

왕의 책(이사야서 1-37장) 67

A. 서문. 유다: 진단과 예후(1:1-5:30) 75

1. 표제(1:1) 78

2. 죄와 경험(1:2-31) 79

a. 민족적 상황(1:2-9) 79

b. 종교적 상황(1:10-20) 85

c. 사회적 상황(1:21-26) 93

d. 설명: 위협과 소망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함(1:27-31) 97

3. 죄와 선택(2:1-4:6) 102

a. 표제(2:1) 103

b. 이상적인 예루살렘(2:2-4) 104

c. 현실의 예루살렘(2:5-4:1) 107

d. 새 예루살렘(4:2-6) 130

4. 죄와 은혜(5:1-30) 136

a. 포도원: 심혈을 기울여 완벽하게 만들어놓았으나 완벽하게 실패함(5:1-7) 137

b. “악취나는 열매”: 이 백성이 수확해낸 것, 다가올 수확기(5:8-30) 142

B. 은혜의 승리(6:1-12:6) 152

1. 프롤로그: 화해와 위임(6:1-13) 153

a. 이사야의 부르심(6:1-8) 154

b. 원론적인 수준에서 계시된 미래(6:9-13) 161

2. 왕과 그의 백성(7:1-11:16) 165

a. 유다를 향한 말씀(7:1-9:7[6]) 166

b.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9:8[7]-11:16) 224

3. 에필로그: 개인과 공동체, 구원, 기쁨, 선포(12:1-6) 274

C. 전 세계적인 나라(13:1-27:13) 282

1. 첫 번째 목록의 예언의 말씀들. 여호와의 약속들의 실체(13:1-20:6) 289

a. 바벨론: 세계 역사의 겉모습과 실제(13:1-14:27) 290

b. 블레셋: 다윗 왕조와 다윗 약속(14:28-32) 318

c. 모압: 멸망에 앞선 교만과 이방 나라의 소망의 조건들(15:1-16:14) 322

d. 다메섹과 에브라임: 멸망과 보존,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17:1-18:7) 336

e. 애굽: 한 하나님, 하나의 세계, 한 백성(19:1-20:6) 354

2. 두 번째 예언 모음집. 그림자들로 된 세계(21:1-23:18) 373

a. 해변 광야(바벨론): 신들의 몰락(21:1-10) 374

b. 침묵(에돔): 때의 길어짐(21:11-12) 384

c. 광야 저녁(아라비아 부족들): 곤경에 처해 있지만 해결책이 없음(21:13-17) 386

d. 환상의 골짜기(예루살렘): 용서받을 수 없는 죄(22:1-25) 391

e. 두로: 교만과 거룩함(23:1-18) 411

3. 세 번째 모음집. 대비되는 두 성읍: 인내를 거쳐 영광으로(24:1-27:13) 423

a. 공허의 성읍: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계획된 세계사(24:1-20) 428

b. 기다림의 끝: 왕이 통치할 것임(24:21-23) 446

c. 세계가 구원을 즐거워함: 시온 산의 복들(25:1-12) 450

d. 견고한 성읍: 소망 가운데서 기다림(26:1-21) 460

e. 최종적인 모여옴: 전 세계적인 이스라엘(27:1-13) 480

D. 역사의 주(28:1-37:38) 493

1. 단 하나의 유일한 토대(28:1-29) 496

a. 에브라임: 끝과 시작(28:1-6) 497

b. 믿음이 없이는 안전도 없다(28:7-22) 501

c. 씨뿌림과 거둠에서 진정한 구별(28:23-29) 513

2. 문제의 해결과 문제의 제기(29:1-14) 516

a. 징계와 구원(29:1-8) 517

b. 위기: 눈멂과 조명(29:9-14) 521

3. 영적인 변화(29:15-24) 526

a. 첫 번째 변화: 이성의 전복(29:15-16) 528

b. 두 번째 변화: 다가올 세계의 갱신(29:17-21) 529

c. 세 번째 변화: 야곱의 변화된 운명(29:22-24) 531

4.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30:1-33) 534

a. 동시대의 사건들: 애굽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30:1-7) 536

b. 다가올 사건들: 말씀의 거부, 죽음의 길(30:8-17) 541

c. 다가올 사건들: 기다리는 하나님, 확실한 영광(30:18-26) 547

d. 동시대의 사건들: 앗수르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음(30:27-33) 551

5. 구원과 갱신(31:1-32:20) 556

a. 서언: 재앙과 구원(31:1-5) 558

b. 변화의 역사(31:6-32:18) 561

c. 결어: 굴욕과 축복(32:19-20) 574

6. 승리, 선포, 순례(33:1-35:10) 575

a. 궁극적인 실체들: 구원과 진노(33:1-12) 577

b. 첫 번째의 전 세계적인 선포: 새로운 시온과 그 백성과 그 왕(33:13-24) 584

c. 두 번째 전 세계적인 선포: 최종적인 몰락(34:1-17) 591

d. 시온으로 돌아옴(35:1-10) 600

7. 역사의 반석(36:1-37:38) 608

a. 앗수르의 첫 번째 사절단(36:1-37:7) 609

b. 앗수르의 두 번째 사절단(37:8-35) 618

c. 피날레: 앗수르의 몰락(37:36-38) 629

종의 책(이사야서 38-55장) 635

A. 역사적 서언: 히스기야의 치명적 선택(38:1-39:8) 639

a. 히스기야가 병에 걸림(38:1-8) 640

b. 히스기야의 시편: 죽음과 삶에 관한 묵상(38:9-20) 644

c. 히스기야의 치유(38:21-22) 651

d. 결정의 순간(39:1-8) 651

B. 말씀의 위로(40:1-42:17) 656

1. 시온에 대한 위로(40:1-41:20) 656

a. 위로의 세 목소리(40:1-11) 657

b. 비할 데 없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창조주(40:12-31) 665

c. 비할 바 없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세계의 주관자(41:1-7) 679

d. 위로에 관한 세 가지 묘사(41:8-20) 686

2. 이방인들에 대한 위로(41:21-42:17) 693

a. 법정 장면: 우상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세계의 곤경이 분명해짐(41:21-29) 694

b. 치유: 세계의 곤경에 대한 여호와의 대답인 종(42:1-9) 701

c. 새 노래: 세계가 여호와의 승리를 기뻐함(42:10-17) 712

C. 이스라엘의 구속(42:18-44:23) 718

1. 종살이로부터의 해방(42:18-43:21) 719

a. 눈먼 종 이스라엘(42:18-25) 719

b. 재난이 역전됨: 구속받은 이스라엘(43:1-7) 727

c. 여호와가 약속한 것의 확실성(43:8-13) 733

d. 바벨론에서의 구속: 새로운 출애굽(43:14-21) 739

2. 죄 사함(43:22-44:23) 744

a. 죄를 드러냄(43:22-24) 744

b. 잊혀진 과거, 복된 미래(43:25-44:5) 749

c. 여호와의 약속의 확실성(44:6-20) 756

d. 구속하시는 여호와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복된 삶(44:21-23) 771

D. 큰 구원(44:24-48:22) 776

1. 고레스의 소임(44:24-45:8) 778

a. 여호와의 목자인 고레스: 재건될 시온(44:24-28) 778

b.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 서로 맞물려 있는 목적들(45:1-8) 784

2. 용납될 수 없는 질문들: 주권적인 여호와(45:9-13) 795

a. 토기장이와 부모(45:9-11) 796

b.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여호와의 역사들(45:12-13) 799

3.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 그 중심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45:14-25) 800

a. 이방인들의 굴복, 이스라엘의 영광(45:14-17) 802

b. 이방인들의 구원, 이스라엘의 영광(45:18-25) 804

4. 패역한 백성: 변함없는 여호와(46:1-13) 812

5. 고레스의 승리(47:1-48:22) 819

a. 몰락 앞에서의 교만: 바벨론의 파멸(47:1-15) 820

b. 한 문제가 해결되고, 한 문제가 제기됨(48:1-22) 830

E. 더 큰 구원(49:1-55:13) 848

1. 종의 이중적인 소임: 이스라엘과 세계(49:1-6) 849

2. 여호와의 확증: 종의 성공(49:7-13) 861

3. 다수와 하나: 무응답과 응답(49:14-50:11) 869

4. 구원의 전망과 실제(51:1-52:12) 891

a. 들으라는 명령, 구원의 약속들(51:1-8) 893

b. 호소와 재확인(51:9-16) 904

c. 응답하라는 명령들: 구원의 경험(51:17-52:12) 917

5. 여호와의 목표: 종의 승리(52:13-55:13) 941

a.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 승리하는 종에 대한

하나님과 인간의 증언들(52:13-53:12) 942

b. 온 세계를 위한 복된 소식: 온 세계를 향한 선포와 초대,

“오라,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54:1-55:13) 989

기름 부음 받은 승리자의 책(이사야서 56-66장) 1025

A. 이상과 현실: 여호와의 백성의 곤경과 죄(56:1-59:13) 1030

a. 세계적인 백성, 안식일 백성, 기도하는 백성(56:1-8) 1030

b. 두 부류: 문제점과 해결책(56:9-57:21) 1040

c. 드러나고 고백되는 죄(58:1-59:13) 1065

B. 기름 부음 받은 승리자의 도래(59:14-63:6) 1090

a. 상황과 반응: 여호와가 구원과 보복에 착수함(59:14-20) 1092

b. 언약 중보자(59:21) 1097

c. 도래할 영광: 여호와의 성, 온 세계의 성, 아브라함의 복의 완성(60:1-22) 1099

d. 현재와 미래의 변화시키는 권능(61:1-9) 1113

e.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서약과 여호와의 맹세(61:10-62:12) 1124

f. 보복의 날과 기름 부음 받은 정복자의 승리(63:1-6) 1135

C. 기도와 응답: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걸음들(63:7-66:24) 1143

1. 여호와에게 기억을 상기시키는 자의 기도(63:7-64:12) 1143

a. 중보기도의 토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63:7-14) 1144

b. 고백과 중보기도(63:15-64:12) 1151

2. 확실한 약속들: 최종적인 결산과 새 예루살렘(65:1-66:24) 1166

ISBN 9788982555695

쪽수 1219쪽

판형 162*233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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