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5장 주석 | 2021년08월03일/화새벽/이사야55:1-13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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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55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55장 … 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새 언약 속에서 가난한 영혼을 위해 마련하신 양식의 혜택을 와서 받으라고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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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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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이사야 55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호이 콜 차메 레쿠 람마임 와아쉘 엔 로 카셒 레쿠 쉬베루 웨에콜루 우레쿠 쉬베루 벨로 케세프 우벨로 메히르 야인 웨할라브 개역개정,1 오호라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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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하나님 구원 잔치 초청(사 55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하나님 구원 잔치 초청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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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이사야 55장

호크마 주석, 이사야 55장 …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 )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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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54-55장은 구원의 약속에 관한 아주 또렷한 말씀인데, 5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55장은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을 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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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1-9절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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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며 … 성서유니온,매일성경,본문주석,묵상과설교,개역개정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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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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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 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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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8월03일/화새벽/이사야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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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55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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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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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55장

55:1

복음적 초대(1) (이사야 55:1-5)

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새 언약 속에서 가난한 영혼을 위해 마련하신 양식의 혜택을 와서 받으라고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 새 언약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다” (54:17). 그것은 미래 기업일 뿐만 아니라 현재 받을 잔이기도 하다(1절).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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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상자, 목마른 자라면 “누구든지” (한글 개역에는 이 말이 생략되었다) 초대 대상이 되고 있다. 구원의 말씀을 맨 먼저 받은 유대인도 초대받지만 가난한 자다가 병신, 소경, 저는 자라고 할 수 있는 이방인들도 그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다. 길과 산울가에서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초대를 받는다(눅 14:21-23). 이 말씀이 시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모든 개개인을 충족시킬 만한 것이 있으며 따라서 그의 사역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을 제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 시대의 초대는 이전 보다 광범위하게 시행되어야 하며 이방인에게도 초대장이 발송되어야 하고 복음의 언약은 스스로 제외되지 않는 자면 누구나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대는 근청(謹廳)이란 말과 함께 공표되고 있다(원문에는 주의를 끄는 간투사가 들어 있음:역주, 다음의 초댓말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환영받는 자의 필요 조건. 이 초대에서 환영을 받으려면 목마르지 않으면 안 된다. 복음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모든 자가 복음의 은혜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세상과 세상의 향락을 분깃으로 만족해하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행복을 구하지 않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이를 이루려고 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 대한 필요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궁핍을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영혼에 대해 아픔을 느끼지도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겸비하여 그리스도께 신세질 생각이라곤 전혀 없다. 그러나 목마른 자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쉼을 위해 그리스도께 초대받듯이 물가로 초대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곳에서는 먼저 은혜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주시며 은혜에 대한 갈급함을 주신 곳에서는 기필코 은혜를 주신다는 점을 명심하자(시 81:10).초대 장소. “물로 나아오라” . 너희는 물가로 나아오라. 상품이 수입되는 항구, 선창, 부두로 나아오라. 그리로 와서 사라. 왜냐하면 그곳은 외국 상품의 판매지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의를 들여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런 상품과는 생소할 뻔하였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그는 열린샘이요 치는 반석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시내 곧 거룩한 예전과 법도로 나아오라. 너희에게는 마치 물처럼 평범하고 흔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포도주와 젖 같아서 풍부한 영양분과 원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너희는 치유하는 물로 나아오라. 생명수로 나아오라. 구주께서는 이점을 언급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초대의 목적.”와서 사라” . 상인은 이득을 노려서 상행위를 벌인다. 그러나 어떤 상인도 그리스도처럼 고객을 끄는 사람은 없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쪽만 이득을 보라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와서 사라. 우리는 너희가 틀림없이 수지 맞는 거래를 하게 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 너희는 이 거래를 후회하거나 이 거래로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와서 사라. 복음의 은혜를 너희들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이것을 너희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리스도의 거래 조건대로 응하여 이것을 너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아니, 어떤 값을 부르든지 너희는 이것을 사서 너희 소유로 만들어라. 값에 대해 망설이지 말고 그 거래 조건에 응할 것인지 아닌지 심사숙고하지도 말라.””와서 먹으라. 너희 자신의 소유를 더욱 증가시켜라. 단지 사기만 하면 무엇하랴! 먹어야 자신의 것이 더 많아진다고 할수 있다.” 우리는 진리를 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열해 두고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진리를 사는 것은 그것을 먹고 즐기기 위해서이며 우리의 영적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을 위해 필요한 양식을 사야 하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의 은혜와 위로를 받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기꺼이 고별할 수가 있어야만 한다. 죄는 그리스도의 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결별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의를 고집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경쟁적 위치에 서려는 것으로 우리는 그런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우리의 이득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우리의 생 그 자체까지도 이별해야 하며 우리에게 극히 필요한 후원물까지도 내던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샀을 때 그 유용한 용도를 썩혀두지 말고 즐겨야 하며, 우리 손이 수고한 소산을 먹어야 한다. “사, 먹으라.”제공되는 음식.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것은 갈증을 덜어 줄 뿐만 아니라 깨끗한 물처럼 신체에 영양분이 되고 생기를 돋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기대에 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그 안에 물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다가 “데마의 떼들” (욥 6:19)처럼 그것에 대해서 실망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대를 능가하신다. 우리는 물가로 가서 물을 보고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포도주와 젖도 발견하게 된다. 포도주와 젖은 유다 족속의 주산품이었다. 유다 지파의 실로는 포도주와 젖을 공급받아서 자기 백성들을 모으고 이를 즐기게 하신다(창 49;10).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창 49:12). 우리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젖을 얻어야만 한다. 갓 중생한 자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그들을 소중히 키우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강한 자들도 그리스도에게서 자기들을 더욱 굳건히 만들 강장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또한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포도주도 마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포도주와 젖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웅덩이 물 아니, 독수(毒水)와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 음식의 무료 전달.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그것을 사라” (1절). 양식을 사는 방법이 이상하다. 준비한 돈도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는 흔히 넉넉한 돈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한 푼도 아니, 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조차도 필요 없는 장사인 것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와서 사라” 는 권면을 주목한 자들에게는 이것이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요했지만 영적으로는 비참하고 가난하였던 것이다(계 3:17, 18). 우리가 돈 없이 물건을 산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우리에게 제공된 선물은 너무나도 귀중해서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지혜는 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시는 분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우리는 그분께 보상할 수가 없다. 그가 이런 제의를 하시는 것은 이것을 팔아야만 할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주시고자 하는 의향 때문이다.제공된 물건들을 이미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값을 온전히 치르시고 그것들을 사셨다. 그것은 돈으로 사신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사신 것이다(벧전 1:19).비록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존재이며 가치 있는 것을 요구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 약속의 은혜로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은 어떤 가치도 없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천국이 우리의 것이라면 우리가 값 없이 주신 은혜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Ⅱ. 우리가 간절한 요청과 설득을 받는 것은 이 초대를 받아들이라는 것과 우리 자신을 위해 이 수지 맞는 거래를 추진하라는 것이다(우리가 설득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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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과 그 분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부지런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한글 개역성서:나를 칭종하라, 2절) 내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시인하고 너희 자신에게 적용하라. 너희 자신이 관심을 갖고 기뻐하는 것에 대해 귀를 기울이듯이 그렇게 “귀를 기울이라” (3절). 귀를 기울여 복음의 겸손한 방법에 거만한 마음을 굴복시키도록 하라. 주의하고 주목할 수 있도록 이쪽으로 귀를 기울이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 와서 나와 교섭할 뿐만 아니라 내게 응하고 내 조건에 따르라. 하나님께서 제의하시는 것들을 매우 유리한 것으로 받아들이라. 아주 적절하고 이치에 맞는 요구라고 여겨 그에 응하라.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논증.만약 우리가 이 초대를 소홀히 하거나 거절한다면 말할 수 없는 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소비하느냐?” 돈 없이도 내게서 포도주와 젖을 얻을 수 있을 때 너희는 어찌하여 마른 떡 아니, 거지의 음식도 나오지 않을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마른 떡보다 “못한 것을 위하여” 애를 쓰며 “수고하느냐?” 여기서 다음 사실을 눈여겨 보자.이 세상 만물의 허무함, 이 세상 것은 영혼의 양식이 되지 못하며 영혼에 대한 적당한 음식도 아니다. 이 세상의 사물은 적절한 자양분을 제공하거나 원기를 회복시켜 줄 능력이 없다. 빵은 생리적 삶을 지탱시켜 주지만 영적인 삶을 위해서는 전혀 뒷받침이 되지 못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와 기쁨은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한 끼의 식사도 되지 못한다.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선과 이성적이고도 죽지 않는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그에게 대한 복종에 있으며 그 분과의 결합과 교통에 있다. 세상의 사물은 전혀 영혼의 친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배부르게 하지 못한다” . 그것들은 영혼에게 확실한 위로와 만족을 주지 못한다. 또한 그것은 “이제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진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그것들은 신체의 욕구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사람들은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할 것이다 (전 1:8). 하만은 자신의 풍요 속에서도 만족하지 못했었다. 세상의 사물은 사탕발림은 하지만 채워 주지는 못한다. 세상 것은 배고픈 자의 꿈처럼 잠시 동안은 즐겁게 해 준다. 그러나 그가 잠에서 깨어 보면 그 영혼이 텅비어 허무함을 느낀다. 그들을 곧 시장하게 만들고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세상 것은 인간을 물리도록 먹이면서 만족시키거나 그를 정말로 편하게 하지는 못한다. 세상 사물은 모두가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이 세상의 자녀들의 어리석음. 그들은 이러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들에게 돈과 수고를 소비한다. 부자는 돈으로 살고 가난한 자는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둘 다 그들의 참 이익을 놓치고 있다. 전자가 세상을 위해 장사하고 후자가 세상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양자는 세상에서 만족과 행복을 얻을 줄로 기대하고 있으나 그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동정적으로 그들을 설득하신다. “무엇 때문에 너는 이와 같이 네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가? 어찌하여 너는 스스로 사서 그렇게 고난을 겪는가?” 우리도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러 보자. 또한 이러한 설득의 결과, “썩은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려는” (요 6:27) 성스러운 결단을 하도록 하자. 우리는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실망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만족을 구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장차 확실하게 될 일을 확보하는 길이다.만약 우리가 이 초대를 수락하고 그것에 응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자선 행위를 베푸는 셈이다.즉, 우리는 현재적 즐거움과 만족을 확보하게 된다. “만약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청종한다면 너희는 좋은 것을 먹게 될 것이다. 그것은 건강에 좋으며 즐겁게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좋을 뿐더러 너에게도 좋다.”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과 약속, 선한 양심, 그리고 선하신 성령의 위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복종하는 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잔치가 된다. 그들의 “마음은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 즉 그들의 마음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고마운 기쁨으로 즐거워할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초대는 “와서 사라” 는 초대가 아니다. 그것은 낙심시키지 않도록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나오는 초대는 “와서 먹으라. 와서 즐기라. 그것은 풍성한 즐거움을 줄 것이다. 친구들이여, 먹으라” 고 하고 있다. 사람들 자신에게 지극한 복이 될 일인데도 사람들에게 이처럼 간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프기 그지없다.우리들은 이로써 영원한 행복을 확보하는 셈이다.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3절). 너희는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축복도 받으리라. 왜냐하면 이 정도의 것이 아니면 불멸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며, 영을 살리는 생명이고 (요 6:33, 63) 또한 생명의 말씀이다(행 5:20). 이 행복은 얼마나 쉬운 조건으로 우리에게 제공되는가! 그것은 바로 “들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3절)는 것이다.크신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 이런 모든 것을 우리에게 확보해 주신다. “나에게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3절). 내 자신이 너희와 계약 관계를 맺고 너희는 계약 약속 하에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3절) 위에 너희를 세우리라.”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첫째,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 분에게로 간다면 그 분은 우리에게 좋은 것과 행복을 베푸시기 위하여 우리와 계약을 맺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들에게 대한 그 분의 겸손이며 우리를 위한 관심이다.

둘째,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계획되고 영원까지 계속되는 언약이다.

세째, 이 언약의 혜택은 우리들의 경우에 적합한 자비다. 우리들은 비참하기 때문에 자비의 적절한 대상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유래하며 어느모로 보나 우리에게 대한 친절심에서 준비되었다.

네째, 그것들은 다윗의 자비 즉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자비이며(시 89:28, 29) 솔로몬은 “주의 종 다윗” 에게 베푸신 은총이라고 부르며 호소하고 있다(대하 6:42).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만큼 확실한 언약이 될 것이다(렘 33:25, 26). 다윗 왕의 언약은 은혜의 언약에 대한 예표였다(삼하 23:5). 또는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메시야로 이해할 수 있다. 언약의 자비는 모두 메시야의 자비이다. 그는 모든 언약의 자비를 사셨다. 자비는 그에게서만 대망되고 약속된다. 자비는 그의 장중에 비장되어 있다가 우리들에게 시여된다. 그는 중보자이시며 계약의 수탁자다. 사도행전에서도 이것은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다(행 13:34). 그것들은 Ta o?sta(행 13:34 와 70인역 성서의 사 55:3 에는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 —-즉 다윗의 거룩한 은사이다. 왜냐하면 언약의 은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해 확증되고 (시 89:35) 세상에 성결을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니는 때문이다.

다섯째, 그 은혜는 확실한 은혜이다. 언약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제공하심에 있어 진실하시며 성실하시며 간절하시다. 언약은 확실히 모든 사람에게 제의된 것이며 개개의 신자들에게 적용할 때도 확실하다. 하나님은 은사와 부르심은 후회가 없다. 그것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은혜이며 따라서 확실한 은혜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약속들은 전부가 가한 것이요 아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Ⅲ. 우리는 여러 가지 약속을 수락하도록 초대를 받았는데 그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되고 있다(4절). 그는 바로 자신의 은혜가 언약의 축복과 혜택이 되는 다윗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과 약속 가운데서 그를 세우셨고” (원의;주셨고)그를 임명하셨으며, 마치 이미 오신 것처럼 분명히 때가 차면 그를 틀림없이 보내셔서 이런 준비의 혜택을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저 값 없이 주셨다. 값 없이 주는 선물보다 고마운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은총을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약속의 혜택을 입도록 초대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기능인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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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속의 진실성을 입증해 줄 자. 그래서 그리스도는 “증거” 로 세움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이 복음의 조건 위에서 우리를 기꺼이 받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다. 그는 열조에게 하신 약속을 확증하여 우리로 완전한 만족감을 가지고 우리 영혼을 그 약속에 걸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말씀을 보았을 수 있다. 그는 완전한 증인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 계셨고 전체적인 일을 완전히 알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증거하신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그의 증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우리를 그 초대에 응하게 하고 그 거래 조건에 따르도록 도울자. 우리는 물가로 나아가는 길을 어떻게 발견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도자로 제공되셨다. 우리는 자격을 부여받고 분배에 참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할 일을 가르쳐 주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명령자로 주어졌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방해물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우리의 길에 놓여 있다. 우리에게는 맞붙어 싸워야 할 영적 원수들이 있다. 우리가 그 투쟁에서 이기도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같은 대장을 보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대적들을 우리 발 아래 짓밟고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인도자” 요 “명령자” 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훈으로써는 명령자요, 그의 모범으로써는 인도자이시다.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고 따르는 일로 본분을 삼아야 한다.

Ⅳ. 잔치의 주인이 정해졌으므로 그 다음에는 잔치에 청할 손님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 음식은 낭비되어서는 안 되며 헛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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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이 이 잔치에 초대받을 것이며 길과 산울가에서 청함을 입을 것이다(눅 14:23).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지어다(5절). 즉 이들은 전에는 부름을 받지 못했고 네 민족으로 인정되지 않던 자들이다. 네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보내던 것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족들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높이 알고 계셨다. 이방인들은 전에는 결코 은혜받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다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다” (갈 4:9)그들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올 것이다.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이다” (5절). 오랫동안 그리스도에게서 멀이 떨어져 있던 자들이 그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그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있었던 사람들이 극히 신속하고 민첩하게 그에게로 달려올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이 폭주(輻輳)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들리신 뒤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실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왜 이방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께로 모이는가? 그것은 “여호와가 그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권능으로써 그렇게 선포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그의 하나님은 자기들과 관계 있는 분이시며 그의 아들에게 참예하지 않고서는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의 이해 관계를 알게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 그래서 그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오지 못한다.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에게로 이끄시는가?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요 약속에 신실한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교도들을 그의 기업으로 주심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헬라인 몇몇이 그리스도께 대해 묻기 시작하자 그는 “인자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요 12:22, 23)고 말씀하셨다. 그가 부활과 승천으로 영광을 받은 것은 무수한 사람들을 자기에게 달려오게 한 증거였다.

히브리어 이사야 55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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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 콜 차메 레쿠 람마임 와아쉘 엔 로 카셒 레쿠 쉬베루 웨에콜루 우레쿠 쉬베루 벨로 케세프 우벨로 메히르 야인 웨할라브

개역개정,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새번역,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우리말성경,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와서 물을 마시라! 돈 없는 사람들아, 너희도 와서 음식을 사 먹으라! 와서 돈을 내지 말고 음식을 사 먹고 값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우유를 사 먹으라.

가톨릭성경,1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영어NIV,1 “Come, all you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cost.

영어NASB,1 “Ho! Every one who thirsts, come to the waters; And you who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Yout money and wiYout cost.

영어MSG,1 “Hey there! All who are thirsty, come to the water! Are you penniless? Come anyway–buy and eat! Come, buy your drinks, buy wine and milk. Buy without money–everything’s free!

영어NRSV,1 Ho, everyone who thirsts, come to the waters; and you that have no money, come, buy and eat!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price.

헬라어구약Septuagint,1 οι διψωντες πορευεσθε εφ’ υδωρ και οσοι μη εχετε αργυριον βαδισαντες αγορασατε και πιετε ανευ αργυριου και τιμης οινου και στεαρ

라틴어Vulgate,1 o omnes sitientes venite ad aquas et qui non habetis argentum properate emite et comedite venite emite absque argento et absque ulla commutatione vinum et lac

히브리어구약BHS,1 הֹוי כָּל־צָמֵא לְכוּ לַמַּיִם וַאֲשֶׁר אֵין־לֹו כָּסֶף לְכוּ שִׁבְרוּ וֶאֱכֹלוּ וּלְכוּ שִׁבְרוּ בְּלֹוא־כֶסֶף וּבְלֹוא מְחִיר יַיִן וְחָלָב׃

성 경: [사55: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람마 티쉬케루 케세프 벨로 레헴 위기아켐 벨로 레사브아 쉬메우 솨모아 엘라이 웨이켈루 토브 위티트안나그 받데쉔 나프쉐켐

개역개정,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새번역,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우리말성경,2 왜 너희는 음식이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배부르게 하지도 못할 것에 애를 쓰느냐? 들으라. 내 말을 잘 들으라. 그러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것으로 즐길 것이다.

가톨릭성경,2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영어NIV,2 Why spend money on what is not bread, and your labor on what does not satisfy? Listen, listen to me, and eat what is good, and your soul will delight in the richest of fare.

영어NASB,2 “Why do you spend money for what is not bread, And your wages for what does not satisfy? Listen carefully to Me, and eat what is good, And delight yourself in abundance.

영어MSG,2 Why do you spend your money on junk food, your hard-earned cash on cotton candy? Listen to me, listen well: Eat only the best, fill yourself with only the finest.

영어NRSV,2 Why do you spend your money for that which is not bread, and your labor for that which does not satisfy? Listen carefully to me, and eat what is good, and delight yourselves in rich food.

헬라어구약Septuagint,2 ινα τι τιμασθε αργυριου και τον μοχθον υμων ουκ εις πλησμονην ακουσατε μου και φαγεσθε αγαθα και εντρυφησει εν αγαθοις η ψυχη υμων

라틴어Vulgate,2 quare adpenditis argentum non in panibus et laborem vestrum non in saturitate audite audientes me et comedite bonum et delectabitur in crassitudine anima vestra

히브리어구약BHS,2 לָמָּה תִשְׁקְלוּ־כֶסֶף בְּלֹוא־לֶחֶם וִיגִיעֲכֶם בְּלֹוא לְשָׂבְעָה שִׁמְעוּ שָׁמֹועַ אֵלַי וְאִכְלוּ־טֹוב וְתִתְעַנַּג בַּדֶּשֶׁן נַפְשְׁכֶם׃

성 경: [사55: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지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지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지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핱투 아즈네켐 우레쿠 엘라이 쉬메우 우트히 나프쉐켐 웨에크레타 라켐 베리티 올람 하세데 다위드 한네에마님

개역개정,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새번역,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우리말성경,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오라. 내 말을 들으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을 텐데, 그것은 내가 다윗에게 약속한 사랑이다.

가톨릭성경,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이는 다윗에게 베푼 나의 변치 않는 자애이다.

영어NIV,3 Give ear and come to me; hear me, that your soul may live. I will mak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you, my faithful love promised to David.

영어NASB,3 “Incline your ear and come to Me. Listen, that you may live; And I will mak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you, According to the faithful mercies shown to David.

영어MSG,3 Pay attention, come close now, listen carefully to my life-giving, life-nourishing words. I’m making a lasting covenant commitment with you, the same that I made with David: sure, solid, enduring love.

영어NRSV,3 Incline your ear, and come to me; listen, so that you may live. I will make with you an everlasting covenant, my steadfast, sure love for David.

헬라어구약Septuagint,3 προσεχετε τοις ωτιοις υμων και επακολουθησατε ταις οδοις μου επακουσατε μου και ζησεται εν αγαθοις η ψυχη υμων και διαθησομαι υμιν διαθηκην αιωνιον τα οσια δαυιδ τα πιστα

라틴어Vulgate,3 inclinate aurem vestram et venite ad me audite et vivet anima vestra et feriam vobis pactum sempiternum misericordias David fideles

히브리어구약BHS,3 הַטּוּ אָזְנְכֶם וּלְכוּ אֵלַי שִׁמְעוּ וּתְחִי נַפְשְׁכֶם וְאֶכְרְתָה לָכֶם בְּרִית עֹולָם חַסְדֵי דָוִד הַנֶּאֱמָנִים׃

성 경: [사55: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들으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헨 에드 레움밈 네타티우 나기드 우므차웨 레움밈

개역개정,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새번역,4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 ㉠또는 ‘왕과’

우리말성경,4 보라. 내가 그를 뭇 백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뭇 백성의 지도자와 지휘관으로 삼았다.

가톨릭성경,4 보라, 내가 그를 민족들을 위한 증인으로, 민족들의 지배자와 명령자로 만들었다.

영어NIV,4 See, I have made him a witness to the peoples, a leader and commander of the peoples.

영어NASB,4 “Behold, I have made him a witness to the peoples, A leader and commander for the peoples.

영어MSG,4 I set him up as a witness to the nations, made him a prince and leader of the nations,

영어NRSV,4 See, I made him a witness to the peoples, a leader and commander for the people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ιδου μαρτυριον εν εθνεσιν δεδωκα αυτον αρχοντα και προστασσοντα εθνεσιν

라틴어Vulgate,4 ecce testem populis dedi eum ducem ac praeceptorem gentibus

히브리어구약BHS,4 הֵן עֵד לְאוּמִּים נְתַתִּיו נָגִיד וּמְצַוֵּה לְאֻמִּים׃

성 경: [사55:4]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 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 증거(*,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 인도자(*,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 명령자(*,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헨 고이 로 테다 티크라 웨고이 로 예다우카 엘레카 야루추 레마안 아도나이 엘로헤카 웨리크도쉬 이스라엘 키 페아라크

개역개정,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새번역,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르면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는 네게로 달려올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르고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오리니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그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신 까닭이다.

영어NIV,5 Surely you will summon nations you know not, and nations that do not know you will hasten to you, because of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for he has endowed you with splendor.”

영어NASB,5 “Behold, you will call a nation you do not know, And a nation which knows you not will run to you, Because of the LORD your God, even the Holy One of Israel; For He has glorified you.”

영어MSG,5 And now I’m doing it to you: You’ll summon nations you’ve never heard of, and nations who’ve never heard of you will come running to you Because of me, your GOD, because The Holy of Israel has honored you.”

영어NRSV,5 See, you shall call nations that you do not know, and nations that do not know you shall run to you, because of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for he has glorified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5 εθνη α ουκ ηδεισαν σε επικαλεσονται σε και λαοι οι ουκ επιστανται σε επι σε καταφευξονται ενεκεν του θεου σου του αγιου ισραηλ οτι εδοξασεν σε

라틴어Vulgate,5 ecce gentem quam nesciebas vocabis et gentes quae non cognoverunt te ad te current propter Dominum Deum tuum et Sanctum Israhel quia glorificavit te

히브리어구약BHS,5 הֵן גֹּוי לֹא־תֵדַע תִּקְרָא וְגֹוי לֹא־יְדָעוּךָ אֵלֶיךָ יָרוּצוּ לְמַעַן יְהוָה אֱלֹהֶיךָ וְלִקְדֹושׁ יִשְׂרָאֵל כִּי פֵאֲרָךְ׃ ס

성 경: [사55:5]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디르슈 아도나이 베힘마츠오 케라우후 비흐요토 카롭

개역개정,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새번역,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우리말성경,6 만날 수 있을 때 여호와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가톨릭성경,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영어NIV,6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on him while he is near.

영어NASB,6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upon Him while He is near.

영어MSG,6 Seek GOD while he’s here to be found, pray to him while he’s close at hand.

영어NRSV,6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upon him while he is near;

헬라어구약Septuagint,6 ζητησατε τον θεον και εν τω ευρισκειν αυτον επικαλεσασθε ηνικα δ’ αν εγγιζη υμιν

라틴어Vulgate,6 quaerite Dominum dum inveniri potest invocate eum dum prope est

히브리어구약BHS,6 דִּרְשׁוּ יְהוָה בְּהִמָּצְאֹו קְרָאֻהוּ בִּהְיֹותֹו קָרֹוב׃

성 경: [사55:6]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야아좁 라솨 다르코 웨이쉬 아웬 마흐쉬보타우 웨야쇼브 엘 아도나이 위라하메후 웨엘 엘로헤누 키 얄베 리셀로아흐

개역개정,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새번역,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우리말성경,7 죄를 지은 사람은 그 길을 버리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그 생각을 버리라. 그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가톨릭성경,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영어NIV,7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evil man his thoughts. Let him 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freely pardon.

영어NASB,7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unrighteous man his Youghts; And let him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compassion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영어MSG,7 Let the wicked abandon their way of life and the evil their way of thinking. Let them come back to GOD, who is merciful, come back to our God, who is lavish with forgiveness.

영어NRSV,7 let the wicked forsake their way, and the unrighteous their thoughts; let them return to the LORD, that he may have mercy on the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헬라어구약Septuagint,7 απολιπετω ο ασεβης τας οδους αυτου και ανηρ ανομος τας βουλας αυτου και επιστραφητω επι κυριον και ελεηθησεται οτι επι πολυ αφησει τας αμαρτιας υμων

라틴어Vulgate,7 derelinquat impius viam suam et vir iniquus cogitationes suas et revertatur ad Dominum et miserebitur eius et ad Deum nostrum quoniam multus est ad ignoscendum

히브리어구약BHS,7 יַעֲזֹב רָשָׁע דַּרְכֹּו וְאִישׁ אָוֶן מַחְשְׁבֹתָיו וְיָשֹׁב אֶל־יְהוָה וִירַחֲמֵהוּ וְאֶל־אֱלֹהֵינוּ כִּי־יַרְבֶּה לִסְלֹוחַ׃

성 경: [사55:7]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 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키 로 마흐쉬보타이 마흐쉬보테켐 웨로 다르케켐 데라카이 네움 아도나이

개역개정,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번역,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말성경,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가톨릭성경,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영어NIV,8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영어NASB,8 “For My Youghts are not your Y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영어MSG,8 “I don’t think the way you think. The way you work isn’t the way I work.” GOD’s Decree.

영어NRSV,8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or are your ways my ways, says the LORD.

헬라어구약Septuagint,8 ου γαρ εισιν αι βουλαι μου ωσπερ αι βουλαι υμων ουδε ωσπερ αι οδοι υμων αι οδοι μου λεγει κυριος

라틴어Vulgate,8 non enim cogitationes meae cogitationes vestrae neque viae vestrae viae meae dicit Dominus

히브리어구약BHS,8 כִּי לֹא מַחְשְׁבֹותַי מַחְשְׁבֹותֵיכֶם וְלֹא דַרְכֵיכֶם דְּרָכָי נְאֻם יְהוָה׃

성 경: [사55:8]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키 가베후 솨마임 마아레츠 켄 가베후 데라카이 미다르케켐 우마흐쉬보타이 밈마흐쉬보테켐

개역개정,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새번역,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우리말성경,9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고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가톨릭성경,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영어NIV,9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영어NASB,9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Youghts than your Youghts.

영어MSG,9 “For as the sky soars high above earth, so the way I work surpasses the way you work, and the way I think is beyond the way you think.

영어NRSV,9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헬라어구약Septuagint,9 αλλ’ ως απεχει ο ουρανος απο της γης ουτως απεχει η οδος μου απο των οδων υμων και τα διανοηματα υμων απο της διανοιας μου

라틴어Vulgate,9 quia sicut exaltantur caeli a terra sic exaltatae sunt viae meae a viis vestris et cogitationes meae a cogitationibus vestris

히브리어구약BHS,9 כִּי־גָבְהוּ שָׁמַיִם מֵאָרֶץ כֵּן גָּבְהוּ דְרָכַי מִדַּרְכֵיכֶם וּמַחְשְׁבֹתַי מִמַּחְשְׁבֹתֵיכֶם׃

성 경: [사55:9]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키 카아쉘 예레드 하게셈 웨핫쉘레그 민 핫솨마임 웨솸마 로 야슈브 키 임 히르와 엩 하아레츠 웨홀리다흐 웨히츠미하흐 웨나탄 제라 랒조레아 웨레헴 라오켈

개역개정,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새번역,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말성경,10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리면 땅을 적셔 싹이 나고 자라서 뿌릴 씨와 먹을 음식을 주기 전까지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가톨릭성경,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영어NIV,10 As the rain and the snow come down from heaven, and do not return to it without watering the earth and making it bud and flourish, so that it yields seed for the sower and bread for the eater,

영어NASB,10 “For as the rain and the snow come down from heaven, And do not return there wiYout watering the earth, And making it bear and sprout, And furnishing seed to the sower and bread to the eater;

영어MSG,10 Just as rain and snow descend from the skies and don’t go back until they’ve watered the earth, Doing their work of making things grow and blossom, producing seed for farmers and food for the hungry,

영어NRSV,10 For as the rain and the snow come down from heaven, and do not return there until they have watered the earth, making it bring forth and sprout, giving seed to the sower and bread to the eater,

헬라어구약Septuagint,10 ως γαρ εαν καταβη υετος η χιων εκ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ου μη αποστραφη εως αν μεθυση την γην και εκτεκη και εκβλαστηση και δω σπερμα τω σπειροντι και αρτον εις βρωσιν

라틴어Vulgate,10 et quomodo descendit imber et nix de caelo et illuc ultra non revertitur sed inebriat terram et infundit eam et germinare eam facit et dat semen serenti et panem comedenti

히브리어구약BHS,10 כִּי כַּאֲשֶׁר יֵרֵד הַגֶּשֶׁם וְהַשֶּׁלֶג מִן־הַשָּׁמַיִם וְשָׁמָּה לֹא יָשׁוּב כִּי אִם־הִרְוָה אֶת־הָאָרֶץ וְהֹולִידָהּ וְהִצְמִיחָהּ וְנָתַן זֶרַע לַזֹּרֵעַ וְלֶחֶם לָאֹכֵל׃

성 경: [사55:10]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켄 이흐예 데바리 아쉘 예체 미피 로 야슈브 엘라이 레캄 키 임 아사 엩 아쉘 하파츠티 웨히츠리아흐 아쉘 쉘라흐티우

개역개정,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새번역,11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말성경,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내가 보낸 사명을 성취하지 않고는 허사로 내게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영어NIV,11 so is my word that goes out from my mouth: It will not return to me empty, but will accomplish what I desire and achieve the purpose for which I sent it.

영어NASB,11 So shall My word be which goes forth from My mouth; It shall not return to Me empty, WiYout accomplishing what I desire, And wiYout succeeding in the matter for which I sent it.

영어MSG,11 So will the words that come out of my mouth not come back empty-handed. They’ll do the work I sent them to do, they’ll complete the assignment I gave them.

영어NRSV,11 so shall my word be that goes out from my mouth; it shall not return to me empty, but it shall accomplish that which I purpose, and succeed in the thing for which I sent it.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ουτως εσται το ρημα μου ο εαν εξελθη εκ του στοματος μου ου μη αποστραφη εως αν συντελεσθη οσα ηθελησα και ευοδωσω τας οδους σου και τα ενταλματα μου

라틴어Vulgate,11 sic erit verbum meum quod egredietur de ore meo non revertetur ad me vacuum sed faciet quaecumque volui et prosperabitur in his ad quae misi illud

히브리어구약BHS,11 כֵּן יִהְיֶה דְבָרִי אֲשֶׁר יֵצֵא מִפִּי לֹא־יָשׁוּב אֵלַי רֵיקָם כִּי אִם־עָשָׂה אֶת־אֲשֶׁר חָפַצְתִּי וְהִצְלִיחַ אֲשֶׁר שְׁלַחְתִּיו׃

성 경: [사55:1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키 베시메하 티체우 우베솰롬 투발룬 헤하림 웨학게바오트 이프체후 리페네켐 린나 웨콜 아체 핫사데 이므하우 카프

개역개정,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새번역,12 참으로 너희는 기뻐하면서 바빌론을 떠날 것이며, 평안히 인도받아 나아올 것이다. 산과 언덕이 너희 앞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다.

우리말성경,12 그렇다. 너희는 기뻐하면서 그곳을 떠나고 평안히 안내를 받으면서 돌아올 것이다. 산과 언덕이 너희 앞에서 환호성을 터뜨리고 들의 나무가 모두 손뼉을 칠 것이다.

가톨릭성경,12 정녕 너희는 기뻐하며 떠나고 평화로이 인도되리라. 산과 언덕들은 너희 앞에서 기뻐 소리치고 들의 나무들은 모두 손뼉을 치리라.

영어NIV,12 You will go out in joy and be led forth in peace; the mountains and hills will burst into song before you,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will clap their hands.

영어NASB,12 “For you will go out with joy, And be led forth with peace; The mountains and the hills will break forth into shouts of joy before you,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will clap their hands.

영어MSG,12 “So you’ll go out in joy, you’ll be led into a whole and complete life. The mountains and hills will lead the parade, bursting with song. All the trees of the forest will join the procession, exuberant with applause.

영어NRSV,12 For you shall go out in joy, and be led back in peace; the mountains and the hills before you shall burst into song,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all clap their hand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ν γαρ ευφροσυνη εξελευσεσθε και εν χαρα διδαχθησεσθε τα γαρ ορη και οι βουνοι εξαλουνται προσδεχομενοι υμας εν χαρα και παντα τα ξυλα του αγρου επικροτησει τοις κλαδοις

라틴어Vulgate,12 quia in laetitia egrediemini et in pace deducemini montes et colles cantabunt coram vobis laudem et omnia ligna regionis plaudent manu

히브리어구약BHS,12 כִּי־בְשִׂמְחָה תֵצֵאוּ וּבְשָׁלֹום תּוּבָלוּן הֶהָרִים וְהַגְּבָעֹות יִפְצְחוּ לִפְנֵיכֶם רִנָּה וְכָל־עֲצֵי הַשָּׂדֶה יִמְחֲאוּ־כָף׃

성 경: [사55:1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되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녀의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타하트 한나아추츠 야아레 베로쉬 타하트 웨타하트 핫시르파드 야아레 하다스 웨하야 아도나이 레쉠 레오트 올람 로 잌카레트

개역개정,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새번역,13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잣나무가 자랄 것이며, 찔레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화석류가 자랄 것이다. 이것은 영원토록 남아 있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할 것이다.

우리말성경,13 가시나무 대신 잣나무가 자라고 찔레나무 대신 화석류가 자랄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표가 돼 여호와의 명성을 드높일 것이다.”

가톨릭성경,13 가시덤불 대신 방백나무가 올라오고 쐐기풀 대신 도금양나무가 올라오리라. 이 일은 주님께 영예가 되고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표징이 되리라.

영어NIV,13 Instead of the thornbush will grow the pine tree, and instead of briers the myrtle will grow. This will be for the LORD’S renown, for an everlasting sign, which will not be destroyed.”

영어NASB,13 “Instead of the thorn bush the cypress will come up; And instead of the nettle the myrtle will come up; And it will be a memorial to the LORD, For an everlasting sign which will not be cut off.”

영어MSG,13 No more thistles, but giant sequoias, no more thornbushes, but stately pines– Monuments to me, to GOD, living and lasting evidence of GOD.”

영어NRSV,13 Instead of the thorn shall come up the cypress; instead of the brier shall come up the myrtle; and it shall be to the LORD for a memorial, for an everlasting sign that shall not be cut off.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αντι της στοιβης αναβησεται κυπαρισσος αντι δε της κονυζης αναβησεται μυρσινη και εσται κυριος εις ονομα και εις σημειον αιωνιον και ουκ εκλειψει

라틴어Vulgate,13 pro saliunca ascendet abies et pro urtica crescet myrtus et erit Dominus nominatus in signum aeternum quod non auferetur

히브리어구약BHS,13 תַּחַת הַנַּעֲצוּץ יַעֲלֶה בְרֹושׁ [כ= תַחַת] [ק= וְתַחַת] הַסִּרְפַּד יַעֲלֶה הֲדַס וְהָיָה לַיהוָה לְשֵׁם לְאֹות עֹולָם לֹא יִכָּרֵת׃ ס

성 경: [사55:1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

주제2: [여호와의 초대]

󰃨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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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하나님 구원 잔치 초청(사 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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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5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하나님 구원 잔치 초청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잔치를 배설해 놓고 초청하게 됩니다. 모든 자가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공평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적인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구원 잔치 초청(사 55:1-5)

1절 호이 콜 차메 레쿠 라마임 바아쎄르 에인 로 카세프 레쿠 쉬브루 베에콜루 우레쿠 쉬브루 베로 케세프 우베로 메히르 야인 베할라브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1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이’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 63:1; 143:6; 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아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 43:20; 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이’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아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명령법을 사용하여 반드시 물로 나와야 할 것을 말한다. 죄인은 반드시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 요 7:37).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새 언약 속에서 가난한 영혼을 위해 마련하신 양식의 혜택을 와서 받으라고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 새 언약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다” (54:17). 그것은 미래 기업일 뿐만 아니라 현재 받을 잔이기도 하다(1절).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초대 대상자, 목마른 자라면 “누구든지” (한글 개역에는 이 말이 생략되었다) 초대 대상이 되고 있다. 구원의 말씀을 맨 먼저 받은 유대인도 초대받지만 가난한 자다가 병신, 소경, 저는 자라고 할 수 있는 이방인들도 그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는다. 길과 산울가에서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초대를 받는다(눅 14:21-23). 이 말씀이 시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모든 개개인을 충족시킬 만한 것이 있으며 따라서 그의 사역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구원을 제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 시대의 초대는 이전보다 광범위하게 시행되어야 하며 이방인에게도 초대장이 발송되어야 하고 복음의 언약은 스스로 제외되지 않는 자면 누구나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대는 근청(謹廳)이란 말과 함께 공표되고 있다(원문에는 주의를 끄는 간투사가 들어 있음:역주, 다음의 초댓말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2절 라마 티쉐켈루 케세프 베로 레헴 비기아켐 베로 레사브아 쉬므우 솨모아 엘라이 베이켈루 토브 베티트아나그 바데센 나프쉐켐

사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55:2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찌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찌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아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환영받는 자의 필요조건. 이 초대에서 환영을 받으려면 목마르지 않으면 안 된다. 복음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모든 자가 복음의 은혜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세상과 세상의 향락을 분깃으로 만족해하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행복을 구하지 않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이를 이루려고 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 대한 필요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목마르지 않은 자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궁핍을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영혼에 대해 아픔을 느끼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겸비하여 그리스도께 신세 질 생각이라곤 전혀 없다. 그러나 목마른 자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쉼을 위해 그리스도께 초대받듯이 물가로 초대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곳에서는 먼저 은혜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주시며 은혜에 대한 갈급함을 주신 곳에서는 기필코 은혜를 주신다는 점을 명심하자(시 81:10).

초대 장소. “물로 나아오라”. 너희는 물가로 나아오라. 상품이 수입되는 항구, 선창, 부두로 나아오라. 그리로 와서 사라. 왜냐하면 그곳은 외국 상품의 판매지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의를 들여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런 상품과는 생소할 뻔하였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그는 열린 샘이요 치는 반석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시내 곧 거룩한 예전과 법도로 나아오라. 너희에게는 마치 물처럼 평범하고 흔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포도주와 젖 같아서 풍부한 영양분과 원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너희는 치유하는 물로 나아오라. 생명수로 나아오라. 구주께서는 이점을 언급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

3절 하투 오즈네켐 우레쿠 엘라이 쉬므우 우테히 나프쉐켐 베에케르타 라켐 베리트 올람 하세데 다비드 하네에마님

사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55:3

들으라…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 6:33; 20:31; 계 2:8-10).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아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 시 89:2-4,28,29,34-36; 고후 1:8-20). 여기 ‘은혜'(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써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아의 대속 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아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아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 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아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 등).

4절 헨 에드 레움밈 네타티브 나기드 우메차베 레움밈

사 55: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55:4

그 – 다윗 혹은 메시아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 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사실을 증거 한다(렘 30:9; 겔 34:23,24; 37:24,25; 호 3:5).

증거(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아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인도자(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아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아의 직분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명령자(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아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약속을 수락하도록 초대를 받았는데 그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되고 있다(4절). 그는 바로 자신의 은혜가 언약의 축복과 혜택이 되는 다윗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과 약속 가운데서 그를 세우셨고” 그를 임명하셨으며, 마치 이미 오신 것처럼 분명히 때가 차면 그를 틀림없이 보내셔서 이런 준비의 혜택을 얻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저 값 없이 주셨다. 값 없이 주는 선물보다 고마운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그런 은총을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약속의 혜택을 입도록 초대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기능인을 요구한다.

그 약속의 진실성을 입증해 줄 자. 그래서 그리스도는 “증거”로 세움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이 복음의 조건 위에서 우리를 기꺼이 받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증거 하는 증인이다. 그는 열조에게 하신 약속을 확증하여 우리로 완전한 만족감을 가지고 우리 영혼을 그 약속에 걸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말씀을 보았을 수 있다. 그는 완전한 증인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 계셨고 전체적인 일을 완전히 알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증거 하신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그의 증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를 그 초대에 응하게 하고 그 거래 조건에 따르도록 도울자. 우리는 물가로 나아가는 길을 어떻게 발견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도자로 제공되셨다. 우리는 자격을 부여받고 분배에 참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할 일을 가르쳐 주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명령자로 주어졌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방해물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우리의 길에 놓여 있다. 우리에게는 맞붙어 싸워야 할 영적 원수들이 있다.

우리가 그 투쟁에서 이기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같은 대장을 보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대적들을 우리 발아래 짓밟고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인도자” 요 “명령자” 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훈으로써는 명령자요, 그의 모범으로써는 인도자이시다.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고 따르는 일로 본분을 삼아야 한다.

5절 헨 고이 로 테다 티크라 베고이 로 예다우카 엘레이카 야루추 레마안 아도나이 엘로헤이카 베리크도쉬 이스라엘 키 페아라크

사 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55:5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아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아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아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잔치의 주인이 정해졌으므로 그다음에는 잔치에 청할 손님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 음식은 낭비되어서는 안 되며 헛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5절).

이방인들이 이 잔치에 초대받을 것이며 길과 산울가에서 청함을 입을 것이다(눅 14:23).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지어다(5절). 즉 이들은 전에는 부름을 받지 못했고 네 민족으로 인정되지 않던 자들이다. 네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보내던 것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족들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높이 알고 계셨다. 이방인들은 전에는 결코 은혜받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다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다”(갈 4:9)

그들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올 것이다.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이다” (5절). 오랫동안 그리스도에게서 멀이 떨어져 있던 자들이 그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그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있었던 사람들이 극히 신속하고 민첩하게 그에게로 달려올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이 폭주(輻輳)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들리신 뒤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실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왜 이방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께로 모이는가? 그것은 “여호와가 그의 하나님” 이 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권능으로써 그렇게 선포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그의 하나님은 자기들과 관계있는 분이시며 그의 아들에게 참예하지 않고서는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의 이해관계를 알게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 그래서 그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오지 못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에게로 이끄시는가?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요 약속에 신실한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교도들을 그의 기업으로 주심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헬라인 몇몇이 그리스도께 대해 묻기 시작하자 그는 “인자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요 12:22, 23)고 말씀하셨다. 그가 부활과 승천으로 영광을 받은 것은 무수한 사람들을 자기에게 달려오게 한 증거였다.

[마태복음 14장 헬라어 주석 강해] 세례 요한 순교 사건(마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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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본절은 원문에 의하면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 ‘호'( )로 시작되고 있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 원문 직역은 ‘목마른 모든 자들아’이다. 여기 ‘모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칼'( )은 빈부 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바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그렇게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42:2;63:1;143:6;요 7:37).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마 5:6).

물로 나아오라 –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다(35:6;43:20;44:3).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 )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둔다.

포도주와 젖 –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한다(아 5:1;요 7:37).

=====55:2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찌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빵이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찌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한다. 나를 … 먹을 것이며 – 원문 직역은 ‘부지런히 나를 들으라 그리고 좋은 것을 먹으라’이다. 동등한 두 개의 명령문으로 보이나, 후자는 전자의 결과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번역이 이 의미를 잘 드러낸 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창 27:28;시 65:11).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富)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시 63:5).

=====55:3

들아라 …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약속들을 포용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신앙은 흔히 영생을 얻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요 5:40;6:33;20:31;계 2:8-10).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다윗을 그 모형으로 하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킨다. 그 약속은 취소될 수도, 실패하게 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삼하 7:15,16;시 89:2-4,28,29,34-36;고후 1:8-20). 여기 ‘은혜'( ,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로서 인애, 긍휼, 연민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기서는 메시야의 대속사역, 그중에서도 메시야의 부활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전도 여행 중 안디옥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이것을 증명하였다 :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행 13:34).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시편들에서 메시야의 부활 사상을 암시한 바 있다(시 16편등).

=====55:4

그 – 다윗 혹은 메시야로 볼 수 있는데,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주인공(3절) 되신 메시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느느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시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사실을 증거한다(렘 30:9;겔 34:23,24;37:24,25;호 3:5).

증거( , 에드) –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Rosenmuller)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한다(잠 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인도자( , 나기드) – 갈대아역은 ‘왕’으로 번역한다. 메시야가 가르치고 전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백성과 통치와 피통치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분임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메시야의 직분중 중요한 한 가지는 왕직이다.

명령자( , 메차웨) –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이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55:5

네가 –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Whybray),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Delitzsch, G.W. Grogan).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55:6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하고 있다. 영적 축복을 얻는 문제에 따르는 조건과 제한성에 대한 권고이다(시 32:6;마 25:1-13;요 7:34;8:21;고후 6:2;히 2:3;3:13,15). 물론 이 권고를 받을 대상은 포로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이다.

부르라 –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다(롬 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이다(Fausset).

=====55:7

악인 … 불의한 자 – 이 둘은 그 정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동의적 평행구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그 원어적 의미가 ‘범죄의 사람’이므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죄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롬 3:23). 굳이 의미를 구분해보면 전자는 그 ‘행실’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이고, 후자는 스스로는 범죄자로 생각하지 않으나 그 내면적 실상이 죄악된 자를 가리킨다.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55:8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시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시 25:11;롬 5:19).

=====55:9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 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고 덧붙이는 본문은 다음과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된다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 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 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55:10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하고 이쓴다 것이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다.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 –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이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이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55:12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지도자된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 “야곱아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 산들과 … 손바닥을 칠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녕니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이다(시 98:8;롬 8:19-22).

=====55:13

잣나무 –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킨다(60:13).

가시나무 –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23:6;미 7:4).

화석류 –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 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느 8:15).

질려 –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다(5:6).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킨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초정장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본장은 수난받는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

하고 있는 40-55장의 결론부(epilogue)에 해당된다. 저자는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자는 참된 민족을 얻으며 열방 중에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사

야는 본장에서 포로 생활로 인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을 제시하고 응답

을 요구함으로써 위대한 구원 사역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이스

라엘을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1-5절)와 (2) 온 인류를 향한 초청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6-13절)로 나눌 수 있다. 특별히 두 부분은 세 차례에 절박한 초청의 명

령, 즉 ‘나아오라’, ‘오라’, ‘사라'(1-3절), ‘찾으라’, ‘부르라’, ‘돌아오라'(6, 7절)

등을 서두로 한다. 그런데 동일한 명령의 반복이면서도 전자(1-3절)는 의도적 이탈의

우매성이 강조된 반면 후자(6, 7절)는 악함이 강조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40-55장을 제2의 이사야가 기록하였다고 주장하는 비평적인 학자들은 본장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주제가 다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의 장들에서도 여전

히 새 하늘과 새 땅(12, 13절)에 대한 예언과 계속된 반역과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할 때(65:17;66:22) 타당성이 없다. 본서 전체는 일관성 있는 흐름을 가

지고 하나님의 인격과 구원 서역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초천이다. 저자는 먼저 흑심한 포로 생활로 육과 영이 아울러 곤고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한다(1절). 이어서 하나님을 모른 체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인류에게도 초청

의 손길을 확대한다(6, 7절). 그런데 이러한 초대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막 1:2;눅 4:17-21).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래서 잔치는 들어오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개방되었

다(마 22:1-14;눅 14:15-24). 이와 같은 초청(행 10:34, 35, 43;13:38)과 회개에 대한

요구(행 20:21)는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온 땅에 편만

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이미 오래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복음의 전파 사역을 예고하셨다.

이제 위대한 구원의 초청이 울려퍼지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자세히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초청(55:1-5)

53장에서는 종의 구속 사역이 드러나 있고, 54장에서는 종의 사역으로 인한 이스라

엘의 영광의 회복이 나타난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앞에서 예비된 구원의 영광에 동참

하도록 호소한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언약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강력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 초

청(1, 2a절), (2)응답에 따르는 축복(2b절), (3) 초청(3a절), (4) 응답에 따르는 축복

(3b절-5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피초청자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이 그냥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1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독생자의 죽음을 통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53장;엡 2:8, 9). 저자는 이 사실을 물뿐만 아니라 생필품인

포도주와 우유를 거저 나누어 주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눅 14:15-24).

(2)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격을 지닌다:금전을

지불하고 얻은 육적 양식과 음료는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

은 한번 먹거나 마시면 다시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는 영적 양식이며 음료이다(2

절).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도 죽은

만나와 같지 않으며(요 6:47-51) 자신이 주는 물은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4:13, 14).

(3)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영원하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반드시 구원할 것

이라고 다윗과 굳게 약속을 맺으셨다(42:6;44:8;54:10;렘 31:31;32:20;호 2:18-20).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탄생하고(삼하 7:12) 그의 보

좌에 앉되 영원히 그 권세를 누리며(시 89:2-5, 19-37) 백성들에게 평강과 행복을 준

다는 것이다(시 132:15-18). 하나님은 당신의 양속을 어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취하

신다.

(4) 하나님의 축복은 백성들의 자의적인 선택을 요구한다:본 단락에서는 ‘오라’라

는 초청 명령이 1절에 3번, 3절에 1번 나오고, ‘들으라’는 명령은 2, 3절에 각각 1번

씩 나온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축복의 수납 여부는 피초청자의 자발적 응답에 근거

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라’ 혹은 ‘들으라’라는 명령없이 하나님이 모든 인

간은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인간

을 로보트로 만들지 않았냐는 항변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스스로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만드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존

엄하며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것이다.

2. 열방에 대한 초청(55:6-13)

전 단락(1-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초청한

선지자는 이제 본 단락에서 시야를 확대하여 온 인류를 향한 초청으로 나아가고 있

다. 특히 전 단락의 마지막 절(5절)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락한 은혜의 약속(3, 4절)이

온 인류에게까지 파급됨을 암시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열방의 초청(6, 7절), (2) 믿을 만한 초청의 내용(8-11절), (3) 초청에 응

한 자를 위한 처소(12, 1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본 단락은 동일하게 초

청의 명령을 담고 있지만 전 단락과 비교할 때 몇가지 독특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1) 초청의 시기가 제한적임을 언급한다(6절):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기회

가 주어지지 않는다(61:2). 그러므로 은혜받을 만한 때를 놓치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마 9:15;24:42-51;막 13:33;눅 12:35;요 3:29;히

10:37;계 19:7).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초청의 기회가 무산되고 오직 심판만이 전

개될 것이다. 이사야는 복음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호소하고

있다.

(2) 구원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은혜로운 종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어야 함을

강조한다(6, 7절):저자는 구원이 과거의 악한 행실과 생각의 처분과 같은 행위로 되어

지지 않고 오직 은혜에 근거한 선물로 주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엡 2:8, 9), 회개를 요

구하는 구절(7절)에 앞서 구속 사역의 은혜를 소개하는 것이다(6절).

(3) 축복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8-11절):저자는 이러한 사

실을 확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까)하나님은 인간의 상상

을 초월하는 탁월한 지혜를 소유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제한할 수 없다(8, 9절). (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아루어진 현실과 동일하다. 하나

님은 자신의 뜻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실현하신다. 그러므로 용서해 주시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은 가장 확실한 축복의 증거이다(10. 11절).

(4) 구속 사역의 절정은 자녕 세계의 회복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12, 13절):저

자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자들의 기쁨과 평안 가운데서 살게 됨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황폐된 자연 세계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다. 구속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피조계에 적용된다.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나온 가시와 엉겅퀴(창 3:18)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식물로 대치되고, 산들과 나무조차 기쁨의 합창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에덴 동산의 상태를 연상케 하면서 종말론적 왕국의 모습을 암시해 준다. 결국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의 포괄성을 강조하면서 영광스러운 미래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제시하면서 회개하고(렘 3:12;욜 2;12;행 2:38;3:19) 참된 구원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선입견과 고집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에 줄 수 없는 참된 축복과 놀라운 구원을 소유하게 된다(25:6;시 36:8;63:5;고후 1:3;엡 1:3).

2019/03/19(화) “이사야 55:1-13” / 작성: 정한조

본문 이사야 55:1-13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구원의 은혜로의 초청(1-5절)

66장으로 된 이사야는 1-35장, 36-39장, 40-66장으로 3등분이 되는데, 셋째 부분은 이사야 선지자가 사역했던 때로부터 약 100-160년 후에 있을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가 되고, 그리고 거기에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한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의 셋째 부분, 40-66장은 모두 27장인데, 9장씩 3등분이 되어, 40-48장, 49-57장, 58-66장으로 나눠집니다. 그 중에서 둘째 부분인 49-57장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건져 올려, 회복시켜주심에 대해 증거합니다. 특히 54-55장은 구원의 약속에 관한 아주 또렷한 말씀인데, 5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55장은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즉, 54장이 미래에 대한 그림이라면, 55장은 현재에 대한 그림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인 55장은 ‘초청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그 중에서도 1-5절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풍성한 구원에 값없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현재 모습을 보시고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당시 유다 백성들 가운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 중에는 매일 산해진미를 먹고, 큰소리치며 사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본질적으로 모두 목마른 존재입니다. 단지 차이는 무엇에 목이 마른지 그 종류만 다를 뿐입니다. 사람의 대부분은 양식과 돈으로 대별되는 세속적 가치관에 목말라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의 유무와 과다에 일희일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 하지 않으면 그 무엇으로도 그 목마른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는 것은 목마를 때에 바닷물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먹을 때는 물이지만 금방 목마름을 더 심해지고, 더 강렬한 것을 찾다가 세속에 중독되고 맙니다.

본질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돈 없는 사람’도 오라고 하십니다. ‘돈’은 ‘은(silver)’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은이 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도주와 젖을 사는데도 돈이 없어도,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아도 사라고 합니다. ‘물’이 ‘생명의 상징’이라면, ‘포도주’는 ‘기쁨’을, 그리고 ‘젖’은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소해 주실 때,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땅이 풍요한 땅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1절에서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사람도 오라’, ‘돈 없이도, 값 없이도 오라’, ‘젖을 사라’ 등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문에는 그 명령을 내리는 분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쉬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결코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면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시겠다고 언약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전에 누려보지 못했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해 주시겠다고 다짐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본질적인 목마름은 결코 해갈될 수 없을 것이고, 순간의 쾌락은 있을지 모르나 영원한 기쁨은 영원히 누리지 못할 것이며, 생명의 풍성함을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목이 터져라고 호소했지만,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먹고 마실 것, 영원한 생명의 양식과 영원한 생명수를 준비해 주시고, 오기만 하면 돈이 없어도,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먹고 마시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양식이 아닌 것’을 사기 위해서 은(돈)을 달아서 주며,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못할 것을 사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엄마가 자녀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최고의 재료로 만든 음식, 자녀가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흔히 맛있는 음식을 말할 때에 하는 표현으로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고 하듯이, 최상의 요리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자녀가 그것을 먹으러 집으로 오직 않고,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식품에 영양소는 하나도 없고, 먹으면 배가 아플 것이 틀림없을 음식입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바가지를 씌운 가격입니다. 그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다. 그것을 수십, 수백 배를 확대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참된 배부름을 결코 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얻지 못하면 애타해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참된 만족, 참된 배부름, 영원한 즐거움은 나에게 있으니, 그것을 얻으려면 나에게 와서 듣고 또 들으라고 하소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와서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 외에는 유한한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라고 하는 것은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자손이 영원히 왕위에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조선왕조가 순종황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듯이, 유다는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게 결박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죽음을 맞이함으로 표면적인 다윗왕조는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어주신 언약이 영원히 유효한 것은, 그 언약이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분,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어짐으로 영원한 언약이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은혜가 되었기 때문이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순복 촉구(6-13절)

하나님께서 값없이 영원한 생명과 풍성함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반응하라고 외칩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초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라고 호소합니다. ‘찾으라’, ‘부르라’고 하는 것은 찾으면 만나주시고, 부르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날 만한 때’와 ‘가까이 계실 때’라고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뒤집으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고,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숙이면 곁에 계신 것이 또렷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또 기도를 드리면 다 듣고 계심이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늘 그렇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모든 말씀이 은혜가 되고, 설교를 들으면 전부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피부로 느껴질 때에,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나누셔야 합니다. 그때가 우리 각자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고, ‘가까이 계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교제는, 혹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여겨질 때에도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과도 같습니다.

이런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때, 또 들어주실 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자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곳이고, 용서 받지 못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르다고 합니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냐 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다. 우주와 지구의 차이는 5대양에 있는 모든 바닷물과 한모금의 물과의 차이보다 더 큽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사람은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차이가 나야 하나님은 하나님,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사람, 피조물이 됩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를 가장 바르게 또 온전히 해결하는 방법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래끼리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문제가 더 커져, 해결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도둑질을 한다든지, 가출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오히려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한계를 가진 사람의 부모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 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0-1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비는 땅을 적셔 땅은 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심긴 식물은 그 물을 먹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역시 반드시 그 결과물을 내시고야 만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굳은 결심으로 말해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호언장담을 할지라도 말 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은 말뿐인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에서의 귀환도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간 후에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말씀이 곧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12-13)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때에 누리게 되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께 슬픔과 눌림, 불안함을 가지고 나아갔는데 이제는 기쁨과 평안을 갖고 나아가며, 이전에는 산과 언덕이 짓누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노래하는 것 같고, 이전의 식물은 가시나무와 찔레만 보였는데 이제는 잣나무와 화석류가 난다고 합니다. ‘가시나무와 찔레’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형벌인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8)”을 연상하게 합니다. 반면에 ‘잣나무’는 ‘향나무’나 ‘전나무’를 연상하게 하는데,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념’ 앞에 작은 숫자⑴이 쓰여 있고, 아래에 보면 ‘이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을 결코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존재 자체를 드려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사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르신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길보다 높은 하나님의 길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은,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물과 영원한 포도주과 젖을 값없이 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는 돈 없이 받았지만, 하나님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가슴에 바르게 새기는 것은 그 하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어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안겨서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즐거움보다 우리 인생의 주어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한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목마른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고,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돈 없이,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생각과 다르신 하나님의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고, 우리의 길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길이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원한 양식과 영원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주어로 삼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증명되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돈 없이,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서 기쁨과 만족을 누렸거나, 하나님 밖에서 양식이 아닌 것,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샀다가 낭패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2.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대로 순종하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적은 언제이었습니까?

3. 당신의 생각과 다르며, 당신의 길과 달라서, 당신의 것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을 경험했던 것은 언제이었습니까?

4. 하나님의 초청에 바르게 응답하며, 당신의 길보다 높은 길을 제시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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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농부가 저에게 달걀을 깨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순간에 망치로 부술 수 있고 또는 따뜻한 암탉 밑에 며칠 동안 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와 믿음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이키라 아니면 불에 따라”라는 설교로 죄인을 부술 수 있고 아니면 “돌이키라 그리고 살아라” 라고 그녀를 초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눅 13:1-9)에서 예수님은 첫 번째 같은 설교를 하십니다. 사람들이 뉴스에서 최근 몇 가지 재난을 지적하고 희생자들이 어떤 지독한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암시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무서운 어조로 “내가 말하노니, 아니다. 그러나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멸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서 55장에서는 하나님은 두 번째 같은 종류의 설교를 하시며 바벨론 포로들을 향해 회개하고 살라고 부르십니다. 아마도 두 설교의 차이점은 예수님의 청중은 죄로 인해 방금 형벌을 받은 “그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인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향한 것이고 한편 이사야가 설명하는 청중은 그들의 많은 죄들로 인해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가난하고 궁핍하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작은 하나님의 은혜의 한 모금 혹은 하나님의 긍휼의 한 조각이라도 죽도록 간절히 바라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버리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들입니다.

이번 대림절 3번째 주일에 어떤 본문을 선택하느냐는 당신의 회중이 사순절 여정에서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죄로 완고해져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돌리키라 아니면 불에 따라”는 설교로 부서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간신히 매달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이사야서 55장의 “돌이키라 그리고 살아라”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이사야는 분명히 죄를 회개하라는 외침입니다. 6절과 7절은 틀림이 없습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것은 항상 사순절의 어두운 면의 일부였습니다. 당신의 죄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러나 사순절과 회개에는 또 다른 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죄로부터의 부정적인 전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의 긍정적인 전환을 말합니다. 그것이 이사야가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를 부르라… 주님께로 돌아오라 …” 이것이 중요한 구별입니다. 오늘 관심있게 집중하는 것으로 인해 사순절이 도덕적 성찰의 암울한 시간이 될지 아니면 영적인 방향 전환의 밝은 때가 될지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초점은 회개에 대한 부르심을 덜 긴급하거나 심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6절은 “찾을 수 있을 때”와 “가까울 때”라는 신비한 말씀으로 돌이키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계시지 않으실때, 은혜의 제안을 철회하실 때,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때가(곧?)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일부 주석가와 설교자는 그런 식으로 정말 말합니다. 회중이 그 자리에서 지금 회개하도록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에게서 멀어져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때가 있습니까?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믿음이 없어 죽을 때에만 그런 순간이 온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보다 진보적인 설교자들은 죽어서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종말론적 추측에 빠져들기보다는, 이사야의 바벨론 포로로 있는 청중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좋을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집과 성전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이 지금 여기 있다. 미루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설교는 회중을 위해서 하는 것이며 다른 시간, 당신 인생의 다른 장, 다른 교회, 다른 설교자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곳에 계시므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라”는 회개하라는 이 부름에서 압도적인 말씀입니다. 돌아서지 말고 오라고 다섯 번 말씀하십니다. “오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와서 사 먹고, 와서 포도주와 우유를 사러 나에게 오라.” 첫 3절은 명령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명령이라기 보다는 초대인 것처럼 들립니다.

흥미롭게도 회개에 관한 이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 즉 음식과 음료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입니다. 그러므로 오라,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예수님이 자신을 생수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요 4:14, 6:51, 7:37). 오라, 당신이 배고프다면 와서 사 먹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당신의 기본적인 생계인 떡과 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값진 것”인 풍성한 포도주와 우유입니다. 당신이 풍부하고 충만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라는 부르심은 지옥을 피하라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 천국을 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설교자는 지옥에 대한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아름다운 잔치(예수님이 말씀하신 메시아적 잔치?)의 그림을 그리면서 회개하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우리 설교자들이 하려고 애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그의 은혜가 세상의 기쁨보다 훨씬 더 즐겁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2절에 있는 이사야의 질문은 우리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멈추게 합니다. “어찌하여 떡이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을 주지 못한 데 수고를 하느냐?” 정말 왜 그렇습니까? “떡이 아니라…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보다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돈과 수고의 낭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받는 축복이 공짜라는 말을 들을 때 더욱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약 돈이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 드릴 것이 없더라도 와서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사실 주머니에 돈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가져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음식과 음료는 값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당신이 모은 평생의 돈으로 그것을 사려고 하는 것은 그것을 값없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 삶은 부요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공짜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돌이키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열방이 당신에게 돌아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내게로 돌이킬 때에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내 충성된 사랑이 다윗에게 (그리고 너희들도) 만민에게 증인이 되고…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바벨론 포로들과 오늘날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 생명,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다윗에게(다윗보다 오래 전부터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 즉 열방의 빛이 되는 사명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명과 동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삶을 다시 좋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해 쇠약해 져서, 우리는 삶이 다시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어떤 일도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로자들, 심지어 이전의 반역자, 심지어 최악의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 돌이켜 살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특히 당신이 포로 중인 이스라엘 사람인 경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소리입니다. 70년 동안 당신은 죄로 말미암아 갑절을 받고(이사야 40장), 당신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진노하시고 완고하신 하나님께서 이사야서 55장에 약속된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사야는 7절에서 하나님의 결론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세게 내려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포로 생활 중에도 자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풍부히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죄는 마지막 말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처벌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용서가 합니다. 포로 생활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집 입니다. 마귀는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십니다. “그가 풍부히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으로 설교를 끝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비평가들이 이사야 2서(40-55장)라고 부르는 것의 초점이 되어온 종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 바로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통해 약속한 분이십니다. 종의 사역에서 다윗에게 약속된 긍휼이 성취 되었습니다. 또한 이사야서 53장의 유명한 종의 노래로 표현하자면, 그 종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제공하시는 새 생명의 값을 지불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느니라.” 우리의 생명으로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서 요약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경멸하는 교양 있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요 평생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문이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는 새로운 삶, 풍요로운 삶,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을 생각해 낼수 없습니다. 은혜는 결코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겸손히 돌이키고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뿐입니다. 겸손하게 “오라”는 초대를 받아들이십시오. 돌이키고 사십시오.

예화 아이디어

누가복음 14장 15-24절에서 예수님은 한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하셨습니다. 많은 손님을 위해 풍성한 잔치를 베풀었지만 모두가 ‘정말 좋은’ 변명으로 거절하였습니다. 초대받은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가장 작은 자, 나중 자, 잃어버린 자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풍성한 잔치에 그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에 대해 너무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종들에게 “그들을 들여보내서 내 집이 가득 차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설교자들을 위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큰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할 때, 긴박함과 열정과 사랑으로 설교하십시오. “돌이키고 사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너무 집착한 자들은 초대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며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마스터 카드 “Priceless” 광고가 TV에서 큰 인기를 얻은 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이 광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농담같은 세 마디 말 후에 획기적인(펀치 라인)말을 합니다. 몇몇 불운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세 장면 이후의 펀치라인은 “고맙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위해 마스터 카드가 있습니다.” 그 광고는 너무 길어서 매력을 잃고 불쾌한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Priceless” 아이디어는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격이 없으며 가격 이상입니다.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값은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자: Stan Mast

이사야 55장 1절-13절, 매일성경본문에 따른 묵상 및 설교를 위한 본문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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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묵상에 앞서, 본문의 내용을 통독하고 관련된 IVP 성경 주석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이사야 5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며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를 값없이 주시겠다는 약속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13절, 개역개정성경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55장 1절-13절 본문 주석

구조

영원한 언약, 55장 1절-3절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들과 계획하심들, 55장 4절-9절 주님의 말씀, 55장 10절-11절 영원한 표징, 55장 12절-13절

55장 1절-13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서의 중앙에 해당되는 40-55장은 이제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그들을 고토로 복귀시키실 여호와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롭고 자비로운 선물을 누리라고 초청하는 위대한 소환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위대한 소환을 통해 바벨론의 위세와 바벨론의 신들에게 매료되고 매혹당 한 지난 날의 삶을 모두 버리라고 촉구하고 계십니다. 55장을 시작하는 이 소환은 마치 예루살렘이나 다메섹의 거리에서 물을 팔며 손님을 불러들여 무엇인가를 사라고 초청하는 거리의 상인이 외치는 구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호와의 입을 대변하는 거리의 상인이 외치는 외침은 청중들로 하여금 와서 사 먹되 값없이 공급되는 포도주와 젖과 빵을 즐기라는 초청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빵, 포도주 그리고 젖은 하나님의 아낌없이 베푸시는 사랑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마도 성만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신학적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포로들이 살고 있던 바벨론에서는 빵, 포도주 그리고 젖은 아주 비싼 물건들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는 이런 물품들이 너무 비싼 가격으로 팔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엄청나게 분투했으나 결국 얻은 것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이 본문은 BC 6세기 포로들에게 들려진 말씀이지만, 이러한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살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소비재들은 결코 만족할 만큼 풍요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주어진 복된 소식은 대안적인 삶의 질서가 복음 안에 제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마 11:28 -30).

55장 8절-11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스라엘 포로들의 ‘생각들'(thoughts)과 여호와의 ‘생각들’ 사이에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8-9절). ‘생각’이라고 번역된 말은 ‘계획'(plan) 또는 ‘의도'(intention)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포로살이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들의 포로살이가 영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에 의하여 예고된 기쁜 소식은 다른 계획, 곧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즉각 고토로 귀환시키려는 여호와의 계획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장엄한 신앙고백은 흔히 염려와 근심 속에 기획되는 인간의 계획들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미래 계획’이 있다고 믿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의 확신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로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는 그들의 절망감을 상쇄해 버리고도 남습니다. 또한 여기서 피조물을 소생시키고 결실케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표현하는 비와 눈의 이미 지는(10절) 얄팍한 꾀와 심리적 조작으로 움직이는 인간적인 생각이나 방법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 룹니다.

55장 12절-13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이사야 40-55장에서 절정을 이루는 이 두 구절은 희락, 평강 그리고 승리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하나의 강력한 개선 행진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들은 이사야 40-55장의 서론에 나오는 40장 3절-5절과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 본문 다 위대한 승리를 기리며 돌아오는 고토로의 귀환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찔레를 대신하는 잣나무와 화석류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저주받은 땅에 대해서 말하는 창세기 3장 18절을 암시하는 말일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연결시키는 것이 옳다면,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새로운 종류의 평화와 번영으로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피조 세계 전체를 원래의 생산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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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5장

1. 돈없이 값없이 사라? 그저 준다는 얘긴가? 그러면 ‘준다’고 하지 왜 ‘사라’고 하나?

2. 목은 마른데 돈이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3.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값을 주고 수고하는 사람에게 물과 포도주와 젖을 무료로 주겠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는가?

4.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은 구절이 있는가?

5.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물대신 포도주와 젖은 괜찮다. 이 물이 상징하는 것은?

6. 명령형 동사를 다 찾아보자(1-3). 공통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7. 목마른 자가 하나님께 나아오면 어떻게 될까?

8. 목마른 자에게 ‘영혼이 살리라’고 하면 달려올까?

9. 하나님께서 새로 세우시는 영원한 언약이란? (아래 두 질문을 포함함)

10. 다윗이 언제 만민의 증거가 되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가 되었는가?

11. 신약시대를 생각해보면서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세 음절 단어로 표현한다면?

12.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다고? 만날만한 때가 있다고?

13. 8-9, 10-11, 12-13절을 말씀하시는 이유를 6-7절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14.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15. 비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닮았는가?

16. 악인이 그 길을, 불의한 자가 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 외에 또 누가 기뻐하고 환영하는가?

17.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고 화석류(팔레스틴 지역의 상록수)가 질려를 대신하는 것은 원상회복의 의미가 있다. 어느 시대를 돌아가는 것인가?

18. 본장은 40-55장의 총 결론이다. 핵심이 무엇인가?

19. 다음과 같은 칼빈주의의 5대 강령(교리)가 본문과 어떻게 관계되는지 찾아보자. (영문 첫글자를 따 모으면 Tulip이 된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이사야 55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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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2021년08월03일/화새벽/이사야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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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08월03일/화새벽/이사야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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