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 장 | 이사야 6장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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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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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 ·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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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4/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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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이사야 6. 6. 1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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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5/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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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월) “이사야 6:1-13” / 작성: 강요섭

이사야 6장은 이사야가 선지자로 세워지는 소명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어떤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는지. 어떻게 선지자가 되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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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0/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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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 성경주석 – BIBLE STORY

이사야가 받은 첫 번째 사명은 유다 백성의 죄악을 그들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일어었다. <이사야 6장 줄거리>. 1. 이사야가 영광 중에 거하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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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8/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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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 KLB – 하나님이 이사야를 예언자로 – Bible Gateway

하나님이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심. 6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나는 여호와를 보았다. 그분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셨으며 그 옷자락은 성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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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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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 성경말씀]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고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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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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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백성 I 이사야 6장 1-13절 I 매일성경 …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백성 I 이사야 6장 1-1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7. 16. 썸네일-나무-그루터기. 제목: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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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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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
이사야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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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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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hzgpoX9_BJM

이사야 6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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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2019/01/21(월) “이사야 6:1-13” / 작성: 강요섭

본문 이사야 6장 1-13절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이사야 6장은 이사야가 선지자로 세워지는 소명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어떤 사명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는지. 어떻게 선지자가 되었는지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하늘 보좌의 모습(1-4)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 시대에 유다는 경제적으로 부강하였고 정치적으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끝자락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셨다는 사실은 겉으로는 부강했으나 속은 곪아가고 있던 유다의 영적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 해 경제성장률에 민감해하고 스포츠강국이라는 것에 기뻐하며 우리나라의 한류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적으로 보이는 경제, 정치, 문화적 힘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시대인지 분별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겉으로 볼 때 모든 것이 잘 흘러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잘 살아가는 것이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겉으로는 근육질인데 몸 안에 이것저것 병이 있다면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듯이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인 모습이 화려하다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시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런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됩니다. 그 보좌는 높이 들린 보좌였습니다. 이 ‘높이 들린 보좌’는 하나님의 높으신 위엄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할 때 신랑이 신부의 머리 위로 자신의 숄을 펼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는 결혼을 하면서 신랑이 신부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통치는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나가다가 교만하여 제사를 주관하려다 나병에 걸려 죽은 웃시야의 삶과 성전에 대한 묘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줍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과 나라는 사라지나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는 영원하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2-4)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스랍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의 한 종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날개 6개 곧 3쌍을 가지고 있는데 한 쌍의 날개는 얼굴을 가리고 한 쌍은 발을 가리고 나머지 한 쌍의 날개로 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거룩하다고 외치자 그 화답하는 소리로 인하여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연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랍은 날개로 자신의 얼굴과 발을 가렸을까요? 인간 임금도 용안이라 하여 함부로 임금 앞에 얼굴을 마주대지 못합니다. 하물며 스랍이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함부로 내밀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발은 우리의 몸 중 지저분한 곳 중 하나로 유대문화에서 발과 신발은 ‘더러움과 죄’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신을 벗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랍이 발을 가린 것은 하나님을 곁에서 찬양하는 천사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발을 가려야 할 정도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압도적이라는 것입니다. 발을 땅에 잘 딛지도 않는 스랍이 이 정도라면 날마다 세상에 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영광과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는 발가벗겨진 것 같은 두려움과 엄청난 위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후 본문에 바로 그것을 느낀 이사야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사야의 부정을 제하심(5-7)

먼저 이사야의 반응을 보시겠습니다.

(5)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죄인 된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썩 괜찮고 의롭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다가 하나님의 임재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서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뒤에 자신의 본 모습을 깨닫고 스스로 ‘죄인의 괴수’라 불렀고 베드로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은 죄인이기에 떠나달라고 부탁드린 것입니다. 어둠에 있던 우리가 빛 가운데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위엄과 영광의 빛 가운데 자신의 더러움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실은 그의 마음의 중심이 악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술은 모든 악한 것들이 배출되는 배설구와도 같습니다. ‘불평, 저주, 욕설, 비아냥, 비방, 거짓, 이간질’ 같은 악한 마음이 입으로 표출됩니다. 그렇기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스스로 내면의 부정함을 깨닫고 자신의 입술을 통해 악한 죄를 지었던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말은 ‘나같이 더러운 죄인이 하나님앞에 서다니 이제 죽게 되었구나’라는 뜻입니다. 마치 음주운전 중에 경찰을 만난 사람처럼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6-7)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원래대로 하면 이미 이사야는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아하수에로왕이 에스더에게 금 규를 내밀어 맞아들인 것처럼 천사를 보내어 그의 입술의 부정함을 제단 숯불로 제하여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금이냐 은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능력을 키우고 스펙을 갖추는 것 보다 우선해야 할 사실은 내 중심이, 내 입술이 제단숯불로 거룩하여 졌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제단의 숯불은 희생제물을 태우는 불을 담당합니다. 그 위에는 제물의 피가 흘러 내려 태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희생의 피가 부어진 제단 숯불은 정화의 의미로 이사야의 입술과 중심을 깨끗케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제단의 숯불은 곧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불같이 임하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우리의 내면의 죄악과 더러움을 회개하고 씻음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직 이사야같이 제단의 숯불로 깨끗이 함을 받지 못했다면 불같은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더러움을 제하시는 분이시며 예수님의 보혈이 내 모든 죄를 깨끗이 씻는 능력의 피임을 믿으시고 의지합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이사야의 사명(8-10)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깨끗하여진 이사야 앞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사람이 있는지 찾으시고 이사야는 그 부르심 앞에 믿음으로 자신을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은 일할 자를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37-38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사람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우리는 이 음성을 교역자의 요청에서 주보의 광고에서 벽에 붙어있는 봉사자 모집 벽보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 교사가 부족하고 봉사부서에 일꾼이 부족하여 찾고 계신데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못들은 체 하면 얼마나 마음아파 하시겠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의 그 부르심 앞에 이렇게 화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요청에 귀를 막지 않았고 마음을 막지 않았고 오직 믿음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범죄한 아담은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구체적으로 자신을 부르신 것도 아님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아담과 같이 하나님 앞에 죄의 문제로 두려워하며 부르심에 응답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외치는 이사야입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부르심 앞에 ‘아멘’으로 화답할 때 주님 안에 함께 지어져 갈 것입니다.

(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여기서 우리는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아니, 선지자를 부르신 목적은 그 백성으로 죄를 회개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인데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보아도 알지 못하게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이며 또한 그들이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담긴 내용이란 말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왜 이사야의 소명장이 1장이 아니라 6장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답과 같습니다. 왜 이사야의 소명장이 6장에 나오는 것일까요?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어디 가서 ‘저는 김치를 싫어해요’라고 말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저를 향해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냐? 한국 사람이 김치를 먹어야지, 아직 애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순서를 바꾸어서 이유를 먼저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다섯 살 때 김치를 먹었다가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호흡곤란으로 죽을 뻔 했어요. 그 뒤로 김치 냄새만 맡아도 두통이 오고 땀이 나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김치를 싫어해요’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나 같아도 싫어 하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사야의 소명장을 보고 싶어서 처음부터 6장을 폈다면 이렇게 오해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기껏 이사야를 불러서 주신다는 사명이 유다백성들이 회개할까봐 강퍅하게 만들라는 사명을 주시는 거야? 게다가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까봐 염려하신다고?’ 그러나 1장부터 차근차근 유다백성의 완고함과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사람들은 아니 출애굽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와 가나안땅에서 행한 모든 악행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합니다. ‘내가 하나님 같아도 그렇게 했겠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참지도 못하고 이미 심판해 버렸겠다’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1-5장에 그들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런 사명을 주시고 심판을 경고하게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의 문이 닫아 지면서 감히 열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한없이 넓고 큰 은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엄밀하고 강력한 심판을 통해 공의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고 참아주실 때 돌이켜야 합니다.

심판의 때와 회복의 약속(11-13)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추악한 우상숭배와 죄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 심판을 돌이켜 달라는 간청을 차마 드리지 못하고 대신 그 심판이 언제까지 지속되겠는지에 대하여 여쭤봅니다.

(11-12)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땅이 완전히 황폐하여 질 때까지라고 답변하십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이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나안땅의 백성들에게 동화된 유다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슬프고 처량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아직 한 절이 남아있습니다.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만약 십분의 일이 되는 유다의 백성들이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이 땅이 황폐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잘려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에게 약속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구원자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몸으로 오셔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를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고파 뿌릴 종자를 먹는 다는 것은 스스로 농부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심판을 행하시지만 그 백성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신실하심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의 소명장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부강했으나 서서히 병들어가던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 속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보이셨습니다. 스랍마저 자신을 숨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목도한 이사야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사야를 제단숯불로 거룩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게 하시고 심판을 예언하는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동일하게 서 있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 일꾼으로 부르신 소명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며 그 복음을 전할 때에 고린도후서 2장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어두운 세상가운데 하나님의 선명한 구원과 심판을 전하는 하나님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입술이 부정한 이사야같이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도 죄악이 가득합니다. 제단 숯불 입술에 대어 거룩하게 하셨듯이 불같은 주의 성령님 우리를 충만하게 다스리사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겉은 부요하나 속은 썩어가던 유다를 보시며 탄식하신 아버지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화답했던 이사야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과 충성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표적이 되어 세상가운데 복음에 합당한 언행으로 빛을 비추는 거룩한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나는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사야 6장 1절에서 4절 말씀을 다시 살펴보며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영광을 다시 한 번 묵상해봅시다.

2. 이사야는 스스로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입술은 어떤지 살펴보며 내가 마음과 입술로 지었던 죄악을을 돌이켜보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3.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할 때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거절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며 내가 주님과 함께 지어져가기 위해 부르시는 봉사의 자리는 없는지 찾아봅시다.

4. 그루터기 같은 백성을 거룩한 씨로 남겨놓으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묵상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

이사야 6장 성경주석

<이사야 6장 흐름정리>

본장은 이사야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밝히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실을 첫머리에 밝히지 않고 중간에서 언급하고 있는 점도 본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중대한 것이어서 우선 그것에 관해 경고하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이 환상 중에 이사야를 부른 까닭은 그로 하여금 암담한 세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사야가 받은 첫 번째 사명은 유다 백성의 죄악을 그들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주는 일어었다.

<이사야 6장 줄거리>

1. 이사야가 영광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의 이상을 봄.

5. 이사야가 두려움 중에 자신의 기별에 대한 확증을 받음.

9. 황폐하게 될 때까지 완고한 백성의 모습을 봄.

13. 구원받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임.

<이사야 6장 개역한글>

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장 성경주석>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 해는 BC 740/739년이었을 것이다. 연대는 매우 중요한 항목임이 분명하다. 웃사야가 52년 동안의 긴 치세를 마감하던 해에 여호와께서 젊은 이사야에게 선지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확증하는 이상을 보여 주시고 또한 그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책망의 기별을 주셨다(선지자와 왕, 305~307; 교회증언, V, 749, 750,). 그때는 위난과 난국의 시기였다. 앗수르의 대왕 디글랏 빌레셀 III세(Tiglath-pileser III)는 745년에 보좌에 앉자마자 거의 곧바로 일련의 원정을 시작하여 서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였다(참조 이사야 서론). 그는 745년에는 바벨론을 향해 진군하였고, 744년에는 앗수르의 북동쪽에 있는 나라를 쳤으며, 743년에서 738년까지는 매년 북서쪽으로 원정을 갔다. 디글랏 빌레셀은 그의 연대기에 일반적으로 유다의 아사랴(웃시야)로 여겨지는 야우다(Iauda)의 아즈리아우(Azriau)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웃시야는 앗수르의 공격을 저항하는 일에 지중해 지역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메넴도 언급되어 있다. 웃시야가 죽은 때는 디글랏 빌레셀이 서쪽에 대한 그의 원정을 한창 진행하던 시기였다. 그토록 강력하게 앗수르에 대항하던 그 사람이 죽었다. 이제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세계가 앗수르 군대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인가? 자칭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로 인해서 이미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상실한 가운데 있었다. 앗수르군은 무적의 군대로 보였다. 유다가 정복당하고 온 세계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인 것처럼 여겨졌다.

6:1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 이상을 볼 때 이사야는 성전 뜰에 기도하면서 서 있었다(선지자와 왕, 307). 그의 앞에서 성전 문이 열리는 듯이 보였고, 그는 지성소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성전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 헤칼(hekal)은 본래 하늘 대왕의 “성전” 또는 “왕궁”을 의미한다(참조 시 11:4; 29:9; 합 2:20). “옷자락”은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의 두루마기이다. 요한은 이 이상을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다(요 12:41).

6:2 스랍들.

히브리어 스라핌(serapim), 문자적으로는 “불타는 [존재들]” 또는 “빛나는 [존재들].”

6:2 여섯 날개.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는 생물들도 여섯 날개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계 4:8과 비교해 보라. 하지만 에스겔이 본 생물들은 네 날개가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겔 1:6). 이사야는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태도로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는 나는 데 사용하는 천사들을 보았다. 에스겔은 두 날개로는 몸을 가리고, 다른 두 날개는 위를 향해서 뻗은 생물들을 보았다(겔 1:11).

6:3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천사들은 그분의 놀라운 속성, 곧 그분의 완전한 거룩성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요한이 본 보좌 주변에 있던 생물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외쳤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마음에 당신의 거룩성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길 원하셨다. 이는 그 선지자가 그분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의 이 속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또한 그로 인해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가로되”가 빠져 있고, “거룩하다”라는 단어도 두 번만 나온다.

6:3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0:5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깨닫게 되면 사람은 겸손히 그분 앞에 설 수밖에 없다. 흑암이 땅을 뒤덮고 큰 암흑이 그 백성을 휩싸고 있을 바로 그때에(60:2) 이사야는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일 날을 바라보았다.

6:4 문지방의 터.

(「제임스왕역」에는 “문의 기둥”-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문지방의 중심.” 이는 곧 문짝이 세워져 있는 구멍을 뜻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해 성전의 기초 자체가 흔들린 것 같다.

6:4 연기.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드러내는 향의 연기. 시내산이 연기에 휩싸인 채 크게 흔들린 출 19:18과 비교해 보라.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전이 연기로 가득 차 있는 계 15:8과도 비교해 보라.

6:5 화로다 나여.

이사야는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는 죄인들에게 화를 선포한 적이 있었다(5:8~30). 이제 그는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가운데 있음을 알고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이와 동일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이르러 올 것이다.

6:5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심과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상은 이사야로 사람이 죄되고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 영원하신 분 앞에서의 자신의 무가치함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5:24) 앞에서의 자신의 죄됨을 깨닫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얼굴을 가렸으며(출 3:6), 욥은 자신을 증오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였다(욥 42:6).

6:6 단.

곧 금향단(참조 출 30:1~5 주석). 이것은 본래 중보의 단이었다(참조 출 30:6~9 주석). 요한은 회개한 죄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들이 향과 함께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되는 것을 보았다(계 8:3, 4).

6:7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제단에서 꺼낸 숯은 더러움을 제거하고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상징하였다. 이것은 또한 품성의 변화를 뜻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그의 백성을 향한 이사야의 가장 큰 갈망 중 하나는 그들도 이와 동일한 정화와 변화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꺼낸 불을 우리의 입술에 갖다대는 것이다.

6:8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였다. 바울처럼 이사야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큰 소망, 곧 그들의 구원을 위한 소망이 있었다(참조 롬 10:1). 그는 이 죄된 백성에게 심판이 곧 이르러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는 모습을 보고자 갈망하였다. 이후로 이사야의 삶의 오직 한 가지 임무는 하나님의 경고와 희망의 기별을 이스라엘에게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그 결과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6:9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많은 다른 선지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앞에도 매우 어려운 임무가 놓여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람들이 그가 전하는 기별에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가 행하는 모든 사역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여전히 죄악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그는 외견상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불행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실패가 분명 그리스도(마 13:14, 15; 요 12:37~41)와 바울(행 28:26, 27)이 그들의 사역에서 맛본 실패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사야의 이 말은 신약 시대에 적용되는 말로도 여러 차례 인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그의 사역이 완전히 헛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받을 한 남은 무리가 있음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었다(1:9; 6:13; 10:21). 하지만 바울은 그의 시대에 유대인들이 이미 자신들의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으며, 그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알고 있었다(행 28:26~28; 롬 9~11)

6:10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이스라엘은 그 영적 지각력이 너무나도 둔해져서 하늘에서부터 오는 가장 감동적인 기별까지도 듣지 않게 될 것이었다. 마음이 강퍅해져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보내신 기별에 따르기를 거절한 바로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였다(참조 출 4:21 주석). 이사야의 시대에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거나 혹은 그들의 마음을 둔하게 한 것 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 아니었다. 이 같은 상황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신 경고들을 거절함으로 그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었다. 진리를 거절할 때마다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영적 지각력은 점점 더 둔해지다가 결국에는 영적인 것들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죽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악의 길로부터 돌이키시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신다. 이는 그들로 죽지 않고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겔 18:23~32; 33:11; 딤전 2:4; 벧후 3:9).

6:11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사야는 전혀 가망이 없는 전망에 직면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묘사하신 상황이 무한정 계속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기별을 받아들일 것이었다. 이 질문은 이 같은 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6:11 성읍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이 같은 상황이 유다가 스스로 멸망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슬픈 대답을 주셨다. 회개할 희망도, 또한 생존할 희망도 전혀 없었다. 한 남은 무리만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이사야가 그의 구원의 기별을 선포하는 것은 바로 이 신실한 무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체 나라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거절할 것이었다. 바로 이 거절로 인하여 그 나라는 마침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당케 될 것이었다. 성읍들에는 거민들이 없을 것이며 그 땅은 완전히 황무하여 버려진 땅이 될 것이었다. 죄는 행복이 아닌 재앙을, 번영이 아니 파멸을, 생명이 아닌 사망을 가져다 준다. 이는 하나님의 대변자들이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이 세상에 제시한 위대한 교훈이다(참조 레 26:31~33; 사 1:20; 5:9; 14:17, 20; 렘 4:7, 20, 23~27; 7:34; 9:11; 26:6, 18; 미 3:12 등).

6: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것은 곧 다가올 사로잡힘을 일컫는 말이다. 첫 번째로는 이사야의 시대에 앗수르에 의해서, 그 다음에는 한 세기 후에 바벨론에 의해서 백성이 이국 땅으로 옮겨질 것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에 대하여 조건적으로 예언하였다(레 26:33; 신 4:26~28; 28:64).

6:12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하나님께서 장미꽃을 피우고자 하셨던 땅이 황폐한 땅이 될 것이며, 그 거민들은 버린 바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번영은 없고 파멸만 있을 것이었다.

6:13 십분의 일.

히브리 성경의 13절에 세부적으로 명확치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절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이 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즉 그 땅; 참조 12절] 안에 아직도 10분의 1이 있을 것이요 그[그 땅, 또는 그 십분의 일]가 돌아올 것이라[또는 남아 있을 것이라] 그가 테레빈나무, 상수리나무처럼 태워질 것이나 그 나무들이 베임을 당하여도 그[그 땅 또는 10분의 1; 혹은 테레빈나무와 상수리나무] 안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거기에도 거룩한 씨가 남아 있을 것이라.” 이 절의 근본 의미는 명확하다. 11, 12절에서 바벨론 유수 동안의 유다의 황폐함이 묘사되었다. 비록 그 땅이 완전히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이것이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었다(참조 렘 4:27; 5:10, 18; 30:11; 46:28). 그 나라가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전하는 기별에 대하여 완전히 망하여 사로잡히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계속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비관적인 백성의 모습이 여기에서 그 땅이 완전히 버림을 당한 상태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결국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는 모습과 뒤섞인다(선지자와 왕 309, 310,). 문자적으로 “남은 무리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사야의 첫 아들의 이름 스알야숩과 비교해 보라. “남은 무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사상은 이사야서 전체를 통해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4:2, 3; 10:12 등). 남은 무리가 원래 있던 사람들의 “십분의 일”이라는 사실에 어떤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10은 작은 숫자이며, 때로는 막연한 숫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열 번째 부분은 수효가 매우 적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6:13 밤나무.

테레빈이 열리는 테레빈나무를 일컫는 듯하다. 그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서 그 그루터기 외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그루터기에서 새 나무가 나서 자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기별은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기별이었다. 이사야의 사역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종국에 가서 한 남은 무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6:13 거룩한 씨.

“그루터기” 안에 생명이 남아 있을 것이며, 마침내 이 생명이 다시 피어나서 새로운 나무가 될 것이었다. 구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으로 흔히 쓰인다(참조 사 65:22; 렘 17:8; 단 4:14, 23). 이 “거룩한 씨”에서 새롭고 영광스런 이스라엘이 일어날 것이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이사야 6장 성경말씀]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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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6장 성경말씀 중에서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선지자로 소명을 주시는 환상입니다. 유다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사 6:1-13)

1-7절, 이사야의 환상

[1절]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 . . .

이사야는 말한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유다 왕국의 열 번째 왕이었다(주전 790-739년경에 통치). 역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졌을 때 그는 마음이 교만해졌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즉석에서 나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러하였다(대하 26:5, 16, 19, 21).

교만하여 범죄했던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엄한 징벌로 죽었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두려우심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간 왕은 실패하고 죽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은 자이다.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2:41에서 이사야가 주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거한다. 주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믿는 우리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곧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가 본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것은 그가 왕이심을 나타낸다. 이사야는 그를 ‘왕’이라고 불렀다(5절). 또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은 그가 제사장이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신 동시에 제사장이시다.

[3-4절]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 . . .

이사야는 말한다.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는 천사들이 그 영광의 주를 모셔 선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천사들을 ‘스랍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천사 개인의 이름이고, 그룹과 스랍은 천사 부류의 이름이라고 보인다. 이사야 6장에만 나오는 스랍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인 것 같다.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고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면서 서로에게 외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다.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다른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그들의 겸손과 하나님 경외함을 나타낼 것이다. 또 그들이 다른 두 날개로 난 것은 그들이 민첩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을 온전히 순종한다.

스랍들의 찬송 소리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거룩함이란 유한한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심과 도덕적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로 인해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표시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도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었다(출 19:16, 18). 이와 같이,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는, 비록 웃시야 왕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벌로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으나, 영원하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아계시며 지극히 거룩하시고 온 세상에 그의 영광이 충만하신 신이심을 보았던 것이다.

[5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대조하여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입술의 더러움을 깨닫고 고백하였다. 사람의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말을 한다(마 12:35). 특히 사람의 죄성은 그의 말로 나타난다. 죄인의 특징은 악한 말을 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첫 번째 표는 말의 성결에서 나타날 것이다. 변화된 인격은 말의 변화로 증거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했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었다(눅 5:8).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었다(계 1:17).

[6-7절]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제단 숯불을 입에 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으로 이루신 속죄로 정결케 됨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온 몸을 깨끗케 한다. 죄사함 곧 더러운 악의 제거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며 특히 말씀의 봉사자인 선지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오늘날도 말씀의 봉사자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의 입이 정결하지 않다면, 우리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은 죄사함의 길이다. 죄사함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죄사함받은 자들만 말씀의 봉사자가 될 수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깨닫자.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을 알며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며(잠 1:7; 10:9),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요 17:3).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영광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죄성(罪性)을 깨닫자.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자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주 앞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었고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었다(눅 5:8; 딤전 1:15).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히 부족함과 죄악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몸과 입술을 정결케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으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얻자(딤후 2:21). 우리는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8-13절, 나를 보내소서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 . . .

이사야는 말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자신의 추함과 입술의 부정함을 깨달았고 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을 정결케 하심도 보았다. 그는 이런 일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그런 후, 그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하신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몇 번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창 1:26; 3:22; 11:7).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심을 보인다. 그것은 성경 역사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에 사람을 사용하신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실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음을 보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은 어려운 일이며 그의 일을 수행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 이런 헌신의 용기가 났을까? 그것은 분명히 그가 본 사죄(赦罪)의 환상에서 났을 것이다. 죄책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머물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죄사함을 확신할 때 힘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게 될 것이다. 죄는 영원한 멸망의 원인이며 거기에는 두려움밖에 없지만, 죄사함은 영생의 길이며 거기에는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할 수 있을 것이다.

[9-1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 말씀은 슬프고 이상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달려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진리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은혜 주실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그가 버려두신 자들에게서는 그의 은혜를 거두신다.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고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참된 의와 선을 행하지도 못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이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로마서 9:16, 18,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것이 개혁주의이며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11-13절]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 . . .

이사야는 말한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유다의 성읍들은 다 황폐할 것이다.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다. 불순종하는 유다는 결국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이처럼,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의 사역은 전망 없는 사역같이 보였다. 하나님의 일은 때때로 그러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41년간 사역했지만, 유다는 결국 멸망하였다.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하였다(렘 5:1).

이런 사실들은 인간이 심히 부패되어 있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배우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러나 전도자는 고난을 각오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딤후 4:3-5).

그러나 사람이 무지하고 완악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루터기는 나무를 벤 후에 남은 나무둥치를 가리킨다. 유다가 멸망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의 ‘거룩한 씨’는 메시아를 암시한다. 그것이 이사야서 전체에 흐르는 메시아 진리이다. 이사야는 또 ‘남은 자’에 대해 많이 말한다. 그들은 메시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처음에는 적은 수효일 것이지만(눅 12:32), 마지막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수가 될 것이다(계 7:9). 하나님의 일은 결국 실패치 않고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고 지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씨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주셨다. 그가 우리의 거룩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보내신 인류의 구주이시다. 그는 멸망할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둘째로, 중생한 신약성도들, 즉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다. 그들은 육신적 이스라엘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이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그 표는 믿음과 순종과 거룩의 삶이다. 우리는 이 배교적인 말세지말에 남은 자들이 되자.

셋째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종들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실 때, 이사야는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바른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 보내실 사람들을 찾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죄사함을 확신하고 그 죄사함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즐거이 헌신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자.

[에스더 3장 성경말씀] 하만이 유다인들을 멸하려 함(에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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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백성 I 이사야 6장 1-1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제목: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백성

본문: 이사야 6:1-13

<본문>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해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강력한 통치자였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환상을 통해 참되고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았는데 피조물에 불과한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만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높임 받으신 주님이십니다.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곁에는 스랍 천사들이 서 있었습니다. 스랍들은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그대로 바라볼 수 없고 그 몸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기에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두 날개로 날고 있었습니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큰 소리로 찬양으로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다.” 찬양하는 소리는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는 것을 경험합니다(사 6:1-4).

이사야 선지자는 완전하고 거룩하신 만국의 주 하나님을 보았기에 이제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와 악으로 인해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높이기 바빴던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속에 거하는 이사야 선지자 자신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죄와 함께 하실 수 없고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에게 아무 소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사 6:5).

그런데 그때 스랍 천사 중 하나가 제단에서 부젓가락으로 집은 타는 숯을 손에 들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로 와서 이사야 선지자의 입에 대며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죄 사함을 구하지도 않았고 죄 사함을 받을 자격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누가 갈 것인지를 물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자 합니다(사 6:6-8).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선포는 그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악한 백성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감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돌이켜 회복할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성읍들이 황폐해져서 주민이 모두 없어지고 모든 집이 빈집이 되고 모든 밭이 황무지가 되며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먼 나라로 흩어지게 하셔서 약속의 땅이 모두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유다 백성들 중 십분의 일이 그 땅에 남게 되어도 그들조차 모두 불에 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 그루터기가 남듯이 유다 백성 중 거룩한 자손들이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입니다(사 6:9-13).

<메시지>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자신의 입술이 부정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스랍을 통해 이사야의 죄를 사해주셨을 때 기꺼이 하나님께 삶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아무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억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며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고 전능하신 분인지를 깨닫고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소망 없는 죄인이었는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의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오히려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와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입술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그루터기로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기꺼이 주를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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