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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멘이 부른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입니다
남미의 찬양들은 한국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곡들이 많은 듯 합니다
The Almighty God with His power
The Almighty God with His power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There is nothing He can not do
능치 못하실 일이 전혀 없네
All the prayers from us, All the thoughts from us,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All the dreams and hopes in our hearts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My faithful Lord God can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Make my painful toils faded away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God does act; Impossible but He is possible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And raises the dead out of the ground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There is no one who beat him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The Word of the Lord you trust in
주의 말씀 의지하여
With faith throw the net
깊은 곳에 그물 던져
The Word of the Lord you trust in
주의 말씀 의지하여
Now behold the great wonder He has done!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The Word of the Lord you trust in
주의 말씀 의지하여
With faith throw the net
믿음으로 그물 던져
For believers nothing is impossible!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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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 하신 하나님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하나님이 전지하시다(Omniscience)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전지(Omniscience)란 “모든 지식을 가진 상태, 모든 것을 아는 특성”으로 정의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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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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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하신 하나님 – 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불가능이나 어려움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들으시며,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기에 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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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전지 하신 하나님
- Author: Beecompany 비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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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5. 7.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159bJU323k
하나님이 전지하시다(Omniscience)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질문
하나님이 전지하시다(Omniscience)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답변
전지(Omniscience)란 “모든 지식을 가진 상태, 모든 것을 아는 특성”으로 정의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삼위일체 안의 어느 한 인격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 모두 전지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요한1서 3:20).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작은 순간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심지어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우리가 머리카락 한 올 잃어버리는 것까지도 다 아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29-30). 하나님께서는 역사가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어날 일 모두를 아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46:9-10), 우리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우리 속의 생각을 아십니다 (시편 139:4). 하나님께서는 아득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심지어 모태에서부터 우리를 아셨습니다 (시편 139-1-3; 15-16). 솔로몬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열왕기상 8:39).자기를 비워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신 하나님 아들의 그 겸손하심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서 2:7), 아들의 전지하심은 신약성경 여러 저술 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4에 있는 사도들의 첫 번째 기도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는 예수님의 전지하심을 암시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기도를 받으시고 중보해주시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지상에서도 예수님의 전지하심은 명백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많은 경우, 예수님께서 청중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마태복음 9:4, 12:25; 마가복음 2:6-8; 누가복음 6:8). 예수님은 심지어 사람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수가 마을의 우물가에서 물 깃는 여인을 만나셨을 때,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18). 예수님은 또한 나사로의 집과 25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계셨으면서도, 제자들에게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1:11-15).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도록 보내시면서 그들이 만나고 따라가야 할 사람을 자세하게 일러주십니다 (마가복음 14:13-15). 아마도 그러한 이야기들 중 최고는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마음을 아셨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47-48).분명히 우리는 지상에 계셨던 예수님의 전지하심을 보고 알지만, 여기서 또한 역설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비록 주님이 자기 자신보다는 청중들을 위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시기는 하지만, 그 질문들은 지식의 부재를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전지하심과 관련한 또 다른 측면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 본성의 한계를 가장하신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셨다는 것 (누가복음 2:52)과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 (히브리서 5:8)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세상이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셨다는 내용도 읽습니다 (마태복음 24:34-36). 그러므로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신다면, 어떻게 아들이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를 단지 인간의 한계로 간주하기 보다는 세심하게 통제된 지식의 결핍으로 봐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본성을 완전하게 공유하시고 (빌립보서 2:6-11; 히브리서 2:17) 두 번째 아담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택하신 겸손의 행동이었습니다.마지막으로 전지하신 하나님께 너무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 안에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계속 머무는 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심지어 창조 전부터 우리를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를 아셨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언제 나타날 지, 누구와 만나 소통하게 될지 아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모든 추악하고 부패한 죄를 이미 아셨지만, 사랑으로 우리를 인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셨습니다 (에베소서 1:3-6).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절대로 완전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빛살을 쬐면서 전지하신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가고 감사해가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향한 경이와 사랑과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가장 잘 드러내는 3대 특징은 전능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드러내는 3대 특징은 전능(omnipotent), 무소 부재(omnipresence), 전지(omniscent)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불가능이나 어려움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들으시며,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기에 알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행15:18).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다윗과 예레미야는 “다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증거 했고, 사도 요한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했습니다(요일3:20). 주님은 과거의 모든 역사를 아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다가올 미래의 모든 역사를 아십니다. 성경은 주님의 미리 아심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행2:23, 롬8:29, 롬11:2, 벧전1:2).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미리 아심에 근거한 것입니다(행2:23). [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졌거늘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행2:23). 성경의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른 미리 기록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주님은 미리 아십니다. [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음이니 이것은 그분으로 하여금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분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9-30). 이 부분에 대한 오해는 구원 예정론을 낳았습니다. 주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은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택하심은 미리 아심에 따른 것이지 예정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미리 아심과 예정은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습니다. 주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택하셨지, 미리 택하신 자들을 아신 것이 아닙니다.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벧전1:2). 물론 주님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원받을지 다 아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주님이 다 아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은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고레스의 이름을 부르셨고,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에 예레미야를 부르셨으며,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를 예정하셨지,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을 자를 미리 아십니다. [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 ](엡1:5). [ 또한 그분 안에서 모든 일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상속을 얻었으니 ](엡1:11). 하나님의 예정은 전적으로 “미리 아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미리 아시기에 예정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미리 알면 우리는 내일 해야 할 일을 예정(미리 계획, 결정)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알지 못하면 예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예정하십니다. 이는 예정론과 미리 아심에 따른 예정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미리 아심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을 주님이 아시는 것이요, 예정론은 결정권자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지어 지는 것입니다. 이는 정반대입니다.
주님의 택하신 백성 유대인들을 주님은 미리 아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중보(仲保)하여 이르되, ](롬11:2). 주님이 미리 아심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부르셨고, 아셨으며, 택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나의 길과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이는, 오 [주]여, 보소서,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이다. ](시139:2~4). 주님은 나의 생각, 나의 길, 나의 눕는 것, 나의 말 등…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주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는 비단 사람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주님 앞에서는 다 벌거벗은 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다 아십니다. [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3). 그래서 누구도 숨길 수 없고, 주님 앞에 알려지지 않는 것이 없으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태어나서 행할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다 아시고, 기록하십니다. [ 내가 은밀한 중에 만들어지고 땅의 가장 낮은 부분에서 묘하게 꾸밈을 받았을 때에 나의 실체가 주께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나의 실체가 아직 불완전할 때에도 주의 눈이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되는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사오니 곧 그 지체들 중에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니이다. ](시139:15~16). 이것이 주님의 전지(全知)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하늘, 땅, 산, 바다, 땅 속의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일과 모든 물질들, 모든 영적 존재들, 모든 피조물 하나 하나, 모든 비밀들, 모든 역사와 미래적 사건들, 발설되지 않는 느낌들, 모든 신비들, 불가사의, 모든 원인과 결과, 모든 욕망들, 개개인의 운명과 한 가족의 운명과 한 민족과 왕조와 국가의 운명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 주님은 어떤 관찰과 실험과 노력과 연구 없이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반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많이 안다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지혜가 출중했던 사람인 솔로몬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적나라하게 말해 줍니다. 이는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이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잠27:1). [ 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그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언제 그 일이 있을지 그에게 말할 자가 누구이랴? ](전8:7).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사회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오늘 우리 교회 성도들이 예배에 누가 나올지, 누가 안 나올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자기 때를 알지 못합니다. [ 이는 사람 또한 자기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사람들의 아들들도 재난의 때에 일이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면 올무에 걸리느니라. ](전9:12). 우리는 미래 예측 능력이 거의 전무합니다. 자신에게 사고가 날지 미리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 또한 어리석은 자는 말도 넘치게 하거니와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하나니 그가 있은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 그에게 알려 줄 자가 누구이랴? 어리석은 자들의 수고는 그들을 각각 다 지치게 하나니 이는 그가 어떻게 도시로 들어가는 줄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전10:14-15).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기도 하고, 저축을 하기도 합니다. 인간적 유대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 두려고 친구를 사귀고, 친척들과 연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하며, 알려 주지도 못합니다.
사람은 무슨 재앙이 땅 위에 임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몫을 나누어 줄지니 이는 무슨 재앙이 땅 위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전11:2). 우리는 이 사실은 매일 뉴스와 신문을 통해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성장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 영(靈)의 길이 어떠하며 아이 밴 여자의 태 속에서 뼈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네가 알지 못하는 것같이 모든 것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일들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네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네 손을 금하지 말라. 그 까닭은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은 그 둘 다 똑같이 좋을는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전11:5-6).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특별 계시가 없는 한 우리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들을 알지 못합니다. [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1). 그래서 사도 바울은 [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인데 우리는 지금 감히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각(understanding)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알게 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의 부류는 늘 무엇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배우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통해, 학습을 통해, 경험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배웁니다. 배움이 있는 사람[learning mind]은 성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셋만 되어도 그 중에 하나는 스승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겸손하라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우리는 배울 것이 많은 부족한 존재란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무식한 부류의 사람들은 열심히 배우지만 정작 배워야 할 것들, 배워야 할 분에게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작 배워야 할 것들은 거의 대부분 성경에 있으며, 우리를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은 성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나를 형성하셨사오니 내게 명철(明哲)을 주사 주의 명령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119:73).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안식을 찾으리니 ](마11:29). 아마 배움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배우지 않습니다. 배움이 필요한 줄을 깨닫고 끊임없이 주를 바라보며, 말씀을 찾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크고 비밀한 놀라운 일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배움이 필요한 사람과는 달리 전혀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분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주님은 완전한 지혜와 지식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전능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이십니다. [ 누가 [주]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어 그분을 가르쳤느냐? 그분께서 누구와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분께 교훈을 주었으며 의의 길로 그분을 가르쳤으며 그분께 지식을 가르치고 명철(明哲)의 길을 보여 주었느냐? ](사40:13~14). 주님은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므로 누구에게, 무엇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전혀 없으시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었느냐? ](롬11:34),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6). 대언자 이사야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결코 무엇인가를 배운 적이 없으신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욥21:22). 아무도 주님을 가르칠 수 없고, 주님은 누구에게도, 무엇으로부터도 배워야 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은 말하기를, [ 다시는 그와 같이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이는 [주]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신즉 /사람의/ 행동을 달아 보시기 때문이로다. ](삼상2:3) 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 구름이 균형을 잡는 것과 지식에 있어 완전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그대가 아느냐? ](욥37:16). 여러분은 지식에 있어 완전하신 지식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지식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거기에 귀를 기울일 때 지식을 얻습니다. [ 네 마음을 훈계에 기울이며 네 귀를 지식의 말씀들에 기울이라. ](잠23:12).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4:1), 구원을 얻게 하는 지식(눅1:37), 진리의 지식(딤전2:4, 딤후3:7)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때로 역으로 생각함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 성경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 아니신가?”를 가르쳐 줌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수단으로 부정어(no, not, never)를 많이 사용하십니다. “없으신”, “아니하시는” 등과 같은 표현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변함이 없으시고(말3:6), 거짓이 없으시고(딛1:2), 어둠이 전혀 없으시고(요일1:5),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고(약1:17), 불가능이 없으시고(눅:37)와 같은 식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주님의 전능하심과 전지(全知)하심을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인식하게 됩니다.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영존하시는 하나님, [주] 곧 땅 끝들을 창조하신 이는 기진(氣盡)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그분의 명철(明哲)은 찾을 길이 없도다. ](사40:28). “아니하시고, …아니하시며…없도다” 란 계속된 부정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강력한 긍정의 인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공부하는 유익한 공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이 반대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때 더 선명한 조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알기 위해 정보를 구하지 않으시며, 알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는 난해한 것이 없고,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홀로 지혜로우신 분”이라고 선포하십니다. [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롬16:27). [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딤전1:17). [ 곧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구원자께 영광과 존엄과 통치와 권능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유1:25).
주님은 홀로 지혜로우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지혜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주님의 지혜를 무효화하거나 주님을 대적할 수 있는 계략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욥은 이 사실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 지혜와 권능이 그분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분께 있나니 ](욥12:13), [ 권능과 지혜가 그분께 있고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분께 속하였으므로 ](욥12:16). 지혜, 권능, 명철이 다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주님은 뜻대로 그것을 나누어주실 수 있습니다. 힘이 필요하시면 주님께 구하십시오. 주님이 힘이시며,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힘이며,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힘이 됩니다. 지혜가 필요하면 주님께 구하십시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무엇이든지 필요를 주님께 아뢰십시오. 모든 근원은 다 주님이십니다.
가장 지혜로운 대언자 중의 하나였던 다니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다니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지니 이는 지혜와 능력이 그분께 속하였음이로다 .](단2:20). 전지(全知)하신 주님을 믿고 고백할 때 우리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설명하려 하고, 설득하려 하고, 부정하려고 하고, 숨기려 하고, 변명하려고 합니다. 때로 성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힘들다고 불평하듯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한 수 가르치려 드는 웃지 못할 촌극을 자주 벌입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28:9). 주님은 우리의 생각, 마음, 의도를 다 아십니다. 이 사실은 죄인들에게는 공포와 전율이 됩니다. 숨겨둔 은밀한 죄, 아직 버리지 않는 어떤 죄에 대해서 주님은 철두철미하게 다 아시고 계시다는 사실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자신들의 죄를 숨기려고 자신들의 몸을 숨겼듯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나 시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주께서 우리의 불법들을 주 앞에 두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니 ](시90:8). 사람이 깊이 숨긴 죄는 주님 앞에, 주의 얼굴 빛 가운데 있으며, 주님은 그것을 쳐다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이는 내 눈이 그들의 모든 길 위에 있으므로 그들이 내 얼굴로부터 숨지 못하며 그들의 불법이 내 눈에서 숨겨지지 못하기 때문이라. ](렘16:17).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은 진실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이는 원수들의 비난과 소문과 헛된 증거들에 대해 주님이 결코 오해하거나 판단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일들의 숨은 의도까지 다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받는 모든 질시와 오해로부터 참된 자유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신다! 주님은 정확하게 아신다!는 한 가지 사실이 우리에게 진리를 행할 용기와 힘을 줍니다. 주님은 나를 아시는데 결코 사람들의 증거나 증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다 아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요, ](요2:24). 사람들은 나를 오해할 수 있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근거없이 비난할 수 있고, 자신의 판단 착오로, 때로는 정보 부족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해 나를 욕하고 돌아설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모두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아시는가?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얻기 원합니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힘과 위로와 큰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솔직하게 고백할 때 용서하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먼지일 뿐임을 아십니다. [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체질(體質)을 아시며 우리가 /다만/ 먼지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로다. ](시103:14).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강한 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가장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죄성, 반역적인 기질을 잘 아십니다. [ 참으로 네가 듣지도 못하였고 참으로 알지도 못하였으며 참으로 네 귀가 그때부터 열리지도 아니하였나니 이는 네가 크게 반역하여 모태에서부터 범죄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사48:8~9).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특별히 자신의 양떼들을 아시며, 자녀들을 잘 아십니다. 주님은 제가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 머리 가락이 몇 개나 빠졌는지, 오늘은 몇 올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마10:30).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속에 지금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다 살펴보시고 계십니다. 건강이 좋지 않는 분들은 혈압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어제는 몇 시간을 잤으며, 얼마나 뒤척였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오늘 교회에 오는 동안 몇 걸음을 걸었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 그분께서 내 길들을 보시며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욥31:4). [이 는 사람의 길들이 [주]의 눈앞에 있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그의 모든 걸음을 곰곰이 살피시느니라. ](잠5:21). 저는 왜 주님이 저의 걸음을 다 세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모든 걸음을 곰곰이 살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 세시며, 마치 아기들이 처음 걸음마를 배우며 발을 뛸 때 오늘은 몇 발자국을 걸었는지 세는 어머니처럼, 걷는 발을 보면 웃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피십니다. 그래서 미끄러질 때 일으키시고, 딴 길로 갈 때 돌이키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이미 무엇을 기도하실지 다 아십니다. [ 그때에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할 것이요, 그들이 말하는 도중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65:24).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아시는데, 부르기 전에 이미 응답하십니다. 여러분은 아내나 자녀들의 필요를 구해 놓고 필요하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비해 둔 것을 내 놓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구할 필요들을 미리 준비해 두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그때서야 분주하게 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하기도 이미 다 아시고, 예전에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시고 필요한 때에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을 알 때 힘과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다른 어떤 위로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다 아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마6:32). 주님은 “너에게 그것이 필요한 줄 몰랐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옷이 필요한 줄 아시며, 먹을 것이 필요한 줄 아십니다. 아신다는 말씀은 그냥 ‘안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빌4:6,19).
주님은 우리의 생각, 상상들을 다 아십니다. [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으니 이는 너희 생각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다 알기 때문이라. ](겔11:5). 주님은 우리의 생각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아시기 때문에 결코 그분 앞에 숨기거나 감추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한 무지(無知)는 하나님을 마치 사람과 같이 여기거나 전적으로 자기와 같은 줄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 주님은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 화 있을진저, 자기 계획을 [주]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이여! 그들의 일들은 어둠 속에 있은즉 그들이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나니 ](사29:15).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상상과 생각을 아시는 주님을 인정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숨겨진 의도까지 낱낱이 다 고백하고 회개할 때 주님은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과 생각이 성경으로부터 너무나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생생한 인식과 믿음이 마음 속에 생기지 않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죽은 신을 섬기는 듯이 종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 [주]께서는 사람의 생각들을 아시며 그것들이 헛된 줄 아시느니라. ](시94:11).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 속에 불법을 생각할 때 주님은 정확히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입증해 주십니다. [ 내가 마음 속으로 불법을 중히 여기면 {주}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66:18).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아시는 주님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주의 말씀을 담아두고, 묵상함으로 생각을 정결케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합시다. [ 오 나의 능력이시요, 나의 구속자(救贖者)이신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想)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시19:14). 하나님은 여러분이 간밤에 무슨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는지, 운전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예배를 드리면서, T.V를 보면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다 아십니다.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지만 육신적인 생각은 사망입니다. 주님은 생각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심으로써 중간 성적표를 때때로 제시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를 다 아십니다. 우리가 꾸미거나, 계획한 은밀한 일은 주님 앞에는 조금도 비밀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아십니다. 나는 나의 아주 어린 시절에 한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 살 때 무엇을 했는지, 두 살 때는 무엇을 했는지, 세 살 때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들을 아십니다. 어떤 이는 술 마신 후에 한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한 일도 자신이 다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행위를 다 아십니다. 잠을 자면서 무엇을 했는지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 말하기를, 보라,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어찌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시겠느냐? 또 네 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분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각 사람에게 보응하시지 아니하겠느냐? ](잠24:12). 우리는 이런 주님을 생각할 때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아십니다. 일반적으로 “안다”는 말은 친밀한 관계성에 근거해서 쓰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 누군지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분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아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라고 하며 안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주님은 불신자들을 모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7:23).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주님은 아신다고 하십니다. [ [주]는 선하시고 고난의 날에 강한 요새가 되시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1:7). 주님에게 욥을 아시느냐?고 물어 본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요셉, 다윗, 바울을 아시느냐?고 물으면 주님은 “내가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들었을 때, “물론 알기는 알지만 요즘은 말(기도)도 없고, 말을 해도 잘 안 듣고, 딴 짓만 해 대고 있어서…”라고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아십니다. 사랑은 서로를 깊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아시느니라. ](고전8:3). 하나님을 잘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 역시 우리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고, 일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연약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연약함을 아셨고, 슬픔을 아셨고, 채찍에 맞는 고통을 아셨고, 죽음이 무엇인지 아셨고, 우리가 당하는 시험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 그러므로 그분께서 모든 일에 자기 형제들과 같게 되심이 마땅하니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에서 친히 긍휼 많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사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 ](히2:17~18).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셔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셔서(빌2:17), 우리가 받은 모든 시험을 받으신 것은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 느끼시는 앎을 겪으셨습니다. [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라. ](히4:15).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님은 아실 뿐만 아니라 느끼십니다.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심으로 고통을 잘 아는 자가 되셨습니다. [ 그는 멸시를 당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 ](사53:3). 생명이신 주님께서 죽음을 아시고, 전능하신 능력의 주님께서 연약함을 아시고, 강하신 주님께서 고통을 아시고, 슬픔을 아신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할뿐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것을 느끼십니다.
우리는 감정도 없고, 인간사에 완전히 초월한 채 관조(觀照)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되 우리의 모든 것을 느끼시고, 아시는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거듭난 성도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신앙의 확신과 담대함을 잃게 됩니다. [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도 /그리하실 것/임이라. ](요일3:20). 우리가 바르게 하나님을 알고, 진리의 지식에 이를 때 큰 확신, 담대함과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늘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알려진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전지하신 하나님 ( 시편 139 편 )
서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통! 소통 ! 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그런데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이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갑니다 .
그리고 현시대는 사람들끼리 살을 비비고 이야기하면서 사는 시대라기 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이모티콘이나 인터넷의 용어들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양식을 더욱 간단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
때론 이모티콘이 우리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모티콘이나 단순한 대화로 서로를 소통하는 것은 종종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 가운데 신앙생활하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 ” 는 것을 느낄 때 라고들 합니다.
누구도 내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무리 표현하려 해도 내 마음이 표현되지 않을 때 , 그 분 앞에 잠잠히 기도할 때 ” 내가 네 마음을 안다 …”: 하는 감동을 느낄 때 …… 우리는 소위 그런 특별한 은혜를 받습니다 .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평안을 느낍니다 .
본론)
가)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
오늘 본문에 보니까, 1 절부터 4 절까지 그 분께서 ‘나를 아신다’ 는 표현이 매절마다 적어도 한 번씩, 다섯 번이나 걸쳐서 나옵니다 .
어떻게 아신다 했습니까?
1 절에 보니까 ”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다 ” 고 하십니다 . 과학자가 어떤 사물을 매우 골똘히 연구를 하듯 신학자가 말씀을 아주 자세히 공부하듯 …… 주께서 날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보시는 것이 아니라 자세 ~ 히 살펴 보신다는 것입니다 .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 내가 눕는 것 , 내가 가는 길을 살펴보신다는 것입니다 .
외적으로만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2 절에 보니까 ” 멀리서도 내 생각을 아시고 ”, 3절에 보니까 “내 모든 행위를 아시고”, 4절에 보니까 “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
어원을 들여다보면 더 의미가 깊어집니다. ” 오 주여 주가 나를 계속적으로 살펴보심으로
나를 속속들이 아십니다. 주님은 내가 언제 넘어지는지 언제 일어서는지도 아시고 먼 곳에서도 나의 생각을 아십니다 . 주님께서는 내가 진행하는 것과 내가 무엇 때문에 주저앉는 지를 분별하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사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
주께서는 내 생각을 입술로 내뱉기 전에 이미 그것을 완전히 아십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내 생각과 내 입술의 말을 알 수 있을까요? 13 절에 그 이유가 있지요 .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즉 나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나를 너무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날 나아준 부모도 날 모를 수 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의 소우자가 그것을 늘 다루어도 , 자기가 쓰는 부분만을 쓰기 때문에 그 제품을 다 알지 못합니다 . 그 제품을 완전히 아는 사람은 그것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입니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나를 나의 부모보다 , 나보다 더 날 잘 아십니다 .
자기를 알아보는 것에 감동해서 예수님의 제자 되었던 자가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에게 예수께서는 ”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너를 알았느니라 ” 고 하십니다 .
또 삭개오는 자기도 처음 본 예수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돌 무화과 나무에서 내려 오라 하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회개 하였음을 봅니다.
나) 전지하심의 양면성
그렇다면 과연 그 분의 전지하심이 좋기만 한가요?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서면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왜? 나를 속속들이 아시니까… 내 죄악이 다 드러나니까… ㅡ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섰을 때에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가장 큰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반대 편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죄를 지은 구약의 아간,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에겐 공포 그 자체요 심판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꾸만 숨기려고 합니다. 아담도 범죄하자 바위 뒤에 숨습니다. 아담이 정말 영이신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바위 뒤로 가면 과연 하나님이 못 찾을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무화과 나무 잎으로 옷을 지어 입으면 육체의 죄를 가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물론 아니지만 한 순간만이라도 가리고자 한 행위들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을 때면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경험하며 살지만, 하나님을 등지면…… 내가 하나님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 감출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 죄인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면 하나님을 피할 것으로 생각하고 배를 타고 잠을 자면 하나님의 시선에서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죄인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도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감찰해 달라고, 자기를 판단해 달라고 기도했던 다윗도…… 어느 순간 하나님을 피하고자 했던 때가 있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는 깨닫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라고 합니다. 스올에 내 자리를 편다는 것은 지옥에 숨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 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한 번 택한 자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꽉 붙잡고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은혜 받을 때는 더 없는 할렐루야인데, 신앙적으로 비뚤어져 있을 때에는 정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나려 계속 나아가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빠져 들어가듯이, 가룟 유다가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면 결국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성도들과 다툴 수도 있습니다. 성도와 목사가 의견이 안맞아 다툴 수도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신실한 자들이었지만 다툼으로 길을 달리합니다. 그런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다투는 자는 정말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정말 그릇된 것을 보아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교회 지도자들이나 영성가들은 교회 안에서 누군가와 혹은 교회의 제도가 정말 그릇되어서 충돌할 때 ,이것이 신앙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분별할 수 있는 길은 그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는가를 살피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평신도가 때로는 심지어 목사와 다투더라도 기도할 때에 정말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진정 하나님께서 날 지지해주고 인정해주신다면 그 다툼은 거룩한 다툼이 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 가톨릭에 대항해서 종교개혁을 할 때에…교회에게 맞서는 것은 그야말로 저주받을 짓, 종교적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되거나 사형에 처해지게 될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그가 맞설 수 있었던 이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해결책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니, 다윗은 하나님 앞에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가리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없으니까 거꾸로 자기를 적극적으로 내어 보여 드립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아갈 때에 정말 하나님의 깊은 은혜, 마지막 절에서 표현한 대로 나의 모든 인생길에서 악한 행위를 버리고 영원한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십니다. 그 분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분의 전지하심은 내가 주님 안에 있을 때에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고 능력이 됩니다. 그런데 그 분의 전지하심을 망각할 때에 죄가 일어나고 교만이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납니다. 우린 늘 전지하신 하나님께 더욱 나 자신을 살피주십사 아뢰며, 하나님 앞에 나를 열어드리고 그분을 온전히 모셔 들이기를 기뻐할 때, 나의, 모든 삶 속에서 그의 구원이, 평안이, 영광이 내 삶에 온전히 임하게 될것입니다. 할렐루야! 062118 안익선 목사/ 참고: 로고스 교회
15. 하나님의 전지성
하나님의 전지성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15:3)
무한하신 하나님만이 항상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모든 것을 파악하실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 omniscience)이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지식에 완전하신 분(욥37:16, 36:4)이시라고 했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요일3:20)이시라고 했다. 하나님의 눈은 모든 곳을 감찰하시며(욥24:23, 시33:13-15, 139:13-16, 잠15:3, 렘16:17), 모든 사람들의 중심을 보시고, 모든 사람들의 길을 살피신다(삼상16:7, 왕상8:39, 고전28:9, 시139:1-6,23, 렘17:10, 눅16:15, 롬8:27, 계2:23)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항상 자신에 관한 모든 것과 모든 실제적이고 가능한 일들과 사람들에 관한 모든 것을 온전히 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통달하신다(고전2:10-11, 요일1:5).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와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아신다(히4:13, 마10:29-30). 일어나는 모든 실제적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발생한 적이 없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까지도(삼상23:11-13, 마11:21,23, 눅12:6) 동시에 다 아신다. 또한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완전히 아신다(사44:7-8, 46:9-10). 물론 인간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행할 수 있는 자발적 자유를 보장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미리 정하신 대로 되어질 장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신다(행2:23, 롬9:16, 엡1:11, 주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을 참고).
따라서 하나님은 새로운 그 무엇과 그 어떤 사실에 의해서도 결코 놀라지 아니하신다(왕하13:19, 시81:14-15, 사48:18). 컴퓨터가 어떤 파일을 찾아내는 때처럼, 하나님은 어떤 것에 대한 정보를 호출해야만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듣고 읽고 보아서 비로소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미리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지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마음에 항상 즉각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 저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경외 속에서 찬양하고 있다(시139:1-6, 147:5, 사40:13-14, 28, 롬11:33-36).
하나님의 지식은 항상 창조주로서의 자신의 주권적 능력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로서 그 만물의 각자를 그 자체와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히 파악하고 계신다(히4:13).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자신의 탁월한 지혜를 통하여 모든 우주를 친히 연구하신 후에야 비로소 아시는 것이 아니고, 그 우주를 친히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지금도 자신의 선한 계획을 따라(엡1:11) 최상의 방법으로 친히 운행하시는 주권적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그 본질까지 꿰뚫어 다 아시는 지식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상호 의존적이다. 전지하심이 전능하심을 조정하고 통제하며 전능하심은 전지하심을 온전케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욥9:4),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욥12:13), “하나님은 전능하시고…지능이 무한하사”(욥36:5), “주께서는…그의 능력이 강하므로…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사40:26,28),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단2:20)라고 하여 항상 전지성과 전능성을 연결시켜 증거하고 있다. 사실상 전능하심이 없는 전지하심은 감상적인 말장난일 뿐이며, 전지하심이 없는 전능하심은 전율하는 공포일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무한한 지혜와 끝없는 능력이 항상 연합되어 있어 우리의 완전한 신뢰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되신다.
하나님의 전지성은 인간에게 양면성을 가지고 나타난다. 불신자에게는 무서운 심판과 형벌의 근거가 된다. 즉 그들의 모든 죄악은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장차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정확한 근거가 될 것이다(시139:7-12, 94:11, 요1:1-12). 그러나 기독 신자들에게는 안정과 확신의 근거가 된다. 즉 우리는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존재들이 되지 않을 것이며(욥23:10),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준다(롬8:28, 사40:27-31).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롬16:26-27).
[#09]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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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1. 하나님의 전지하심 – 지식과 정보
※ 전지하신 하나님(God of Omniscience) – 지식에 있어서 완전, 무한하심(시 147:5, 요일 3:20)
(1) 과거의 일들을 처음부터(태초부터) 아시는 하나님(사 46:10, 48:3,5)
(2) 미래의 일들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행 2:23, 롬 8:29, 롬 11:2, 벧전 1:2)
(3) 자연의 일들을 완전하게 아시는 하나님(욥 37:16, 시 147:4, 마 10:29,30)
(4)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삼상 2:3, 시 94:11, 시 103:14, 시 139:1,2, 겔 11:5, 행 1:24, 15:8)
→ 고난과 수고를 아심(출 3:7, 욥 23:10, 마 6:4,6) ─┬─ 공정한 보상(감사와 평강)
→ 필요와 부족을 아심(마 6:8,32) ─┘
→ 은밀한 죄들을 아심(왕상 8:39, 시 90:8, 히 4:13) ── 정의의 심판(두려움)
(5) 알지 못하심/기억하지 않으심(사 43:25, 렘 31:34, 히 10:17 / 마 25:12, 7:23
2. 하나님의 지혜 – 목적과 계획
※ 삼위 하나님의 지혜
(1) 아버지(성부) – 마 6:9,32, 10:30
(2) 아들(성자) – 마 23:28, 요 2:25, 6:64, 고전 1:24,25
(3) 성령 – 사 11:2, 엡 1:17
*삼위의 특별한 구분 없이 언급된 구절들
욥 9:4, 욥 12:13, 시 104:24, 잠 3:19, 사 40:14,28, 55:8,9, 렘 10:12, 단 2:20, 롬 11:33, 16:27, 약 1:5, 계 7:12
3. 지식과 지혜
지식 지혜 아는 것 분별과 적용(활용/응용) 머리로 아는 것 마음으로 느끼는 것 이론적 실천적 아는 것이 목적 사는 것이 목적 마음/의지와 분리 마음/의지와 연합
하나님
→ 우리의 죄를 알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구원하시려는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세우심
→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은 모두 아실뿐 아니라 친히 느끼시고 긍휼히 여기심
사람
→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아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사는 것임, 이론이 아닌 실천의 믿음!
※ 칼빈주의 예정론(운명론)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
내용 :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전지하심 가운데 미리 결정하셨다는 주장(롬 8:29-30, 엡 1:4,5,11).
적용 : 복음 전파/전도를 하지 않음(선교사역 필요 없음)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이므로(운명) 수동적으로 살아감
*사탄의 계략 – 사람의 수동성(윤회설과 카스트 제도)
*다윗의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 삼상 23:11-13
*바른 이해 – 영원하신 하나님 vs 오늘을 사는 나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책임인가? 잘못 선택한 나의 책임인가?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지혜와 지식
(1) “알지어다, 이해하라.”(시 34:8, 100:3, 잠 4:5-7, 엡 5:17, 딤후 3:1, 벧후 1:20, 요일 4:2)
(2) “지식 없음”(무지함)의 위험(호 4:6, 롬 10:2, 잠 11:9)
(3) “지혜가 없는 지식”의 위험(고전 8:1,11, 딛 1:16)
(4) 지혜와 지식의 근원(시 111:10, 잠 1:7, 삼상 18:14, 엡 1:17, 고전 1:30)
(5) 가장 뛰어난 지식 – 주님을 아는 것(빌 3:8, 요 17:3, 딤후 2:15, 엡 4:13, 골 1:10, 벧후 1:8, 3:18)
(6) “무계획”은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인가? – 창 50:20, 시 33:11, 사 46:10, 행 20:27, 엡 1:11
(7) 우리의 계획에 대한 지혜로운 자세 – 잠 15:22, 16: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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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전성경공부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하나님론> 하나님의 속성 – 지혜와 전지성(공유적 속성)
이승선
Opening
안녕하세요? 오늘도 계속해서 조직신학, <하나님론>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의 속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지혜와 전지하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쪽에 요약 프린트를 챙겨주시고요. 잠시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전지하심 – 지식과 정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전지라는 말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고 완전하게 알고 계시며, 그분의 지식은 무한하십니다. 우리 함께 요한일서 3장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진대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시편 147편 5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권능이 크시며 그분의 명철은 무한하시도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에서 완전하시고 무한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구체적인 언급들을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셨기에, 태초부터, 처음부터 있었던 모든 일들을 완전히 아시는 분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미래의 일들 또한 완전히 아시는 분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신 온 우주와 자연 만물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고 계심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 37절 16절을 읽어드리면, 이러한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구름이 균형을 잡는 것과 지식에서 완전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그대가 아느냐?”
지식에서 완전하신 그분,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지식에서 완전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아시며,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세상에 대하여 완전하게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함께 시편 139편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앉고 일어서는 외적인 동작에 대해서 아시며,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내적인 생각까지도 이해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어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모르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정보와 지식은 완전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 함께 사람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빠르게 몇 군데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린트 1번 박스의 4번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중에 있을 때에, 자기 자신은 왜 이런 일들을 당하는지 알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나를 단련하시는 중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십니다. 또한 우리 함께 마태복음 6장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4-6절을 보시겠습니다.
4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5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6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수고에 대하여 정확히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칭찬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제와 기도와 섬김에 대하여 정확히 아실뿐만 아니라, 드러나게 갚아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는데, 바로 우리의 고난과 수고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 함께 8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교도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이미 그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그분께 나아와 구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지만,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의미 없이 반복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한 내용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우리 함께 시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90편 8절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불법들을 주 앞에 두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법과 모든 은밀한 죄들도 아십니다. 나의 가족도, 친구도 모르는 나만의 모든 은밀한 죄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4장 13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눈앞에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아무것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수고를 아시며, 필요와 부족을 아시고, 또한 모든 은밀한 죄들을 아십니다.
우리가 전지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한 면에서는 위로와 감사와 평강을 가질 수 있지만, 또 한 면에서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못하시겠다, 알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외면하시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보혈 아래 들어온 우리들의 모든 죄와 불법에 대해서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심판의 자리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행하였다고 말하였을 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주님과 관계가 없는 자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프린트의 1번 박스 5번 항복의 끝부분에 보시면 마태복음 25장까지만 적혀있는데, 마태복음 25장 12절이라고 적어주시고, 또한 마태복음 7장 23절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실 때 한 번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이렇게 우리는 간략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며, 특별히 우리들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계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2. 하나님의 지혜 – 목적과 계획
이제 우리 프린트의 두 번째 박스를 보시겠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지혜라고 된 부분은 특별히, 성부 아버지 하나님, 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의 전지하심과 지혜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나눠본 것입니다.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한 아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복음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6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현재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정말 믿는 자인지, 믿지 않는 자인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겉으로는 그들 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아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제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다가 알게 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모습에 대해서 실망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실수를 할지 몰랐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패할 것을 이미 모두 알고 계셨고, 미리 아시는 가운데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고린도전서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되신다고 언급되고 계십니다.
또한 성경은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와 지식과 계시의 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사야 11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우리는 이 구절에서 성령님에 대하여 설명하는 가운데, 지혜와 지식이라는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은 지혜와 명철의 영이며, 지식의 영입니다.
프린트 2번 박스의 오른쪽 부분에서 우리는 특별히 삼위 하나님에 대한 구분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이라든지, 주라는 단어로 언급된 구절들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함께 로마서 11장 3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너무나 깊어서 사람이 그것을 헤아리거나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작품인 창조물들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들을 통하여, 역사 속에 나타나고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조금 알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3. 지식과 지혜
이제 우리 함께 프린트의 세 번째 박스를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시고, 지혜에 있어서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지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그분의 지혜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은 머리로 어떠한 정보를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그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바르게 분별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마음으로, 실제 삶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이론적이지만, 지혜는 실천적입니다. 지식은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지혜는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지식은 마음이나 의지와 분리되어 있지만, 지혜는 마음과 의지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 모든 것을 아시는 완전한 지식은 결코 지식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지혜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낱낱이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단지 알고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성품으로는 모든 죄를 심판하시려는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고, 또 한 면으로 사랑의 성품으로는 구원하려는 완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의 감정에 대해여 지식적으로 완전하게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시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며 동정하시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 또한 단지 어떠한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단순히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말씀이나, 성경의 이야기들을 또 듣고, 또 배우는 이유는 지식적으로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가 이제 프린트의 세 번째 박스 아래 부분에 있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아신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결말,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아신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칼빈주의 예정론, 또는 운명론에 빠지게 됩니다.
예정론, 운명론이라는 것은 영원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결말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에 있어서 예정론은, 구원을 받을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할 자가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택하셨다, 라는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8장 29-30절을 보시겠습니다.
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정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미리 아신 자들,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될 자들을,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지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자들이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되어서, 독생자 예수님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 첫 아들이 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4-6절을 보시겠습니다.
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네,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바로 칼빈주의 구원 예정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구절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4절을 잘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범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을 보면 택하시고 예정하신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셔서,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신 내용은 누가 아담 안에서 아담 밖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인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을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내용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실 것을 예정하셔서,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1-12절도 보시겠습니다.
11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12 이것은 그리스도를 먼저 신뢰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내용은 우리가 그분의 아이로 입양되어,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얻게 된 그러한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예정론과 칼빈주의자들이 기록하는 예정론은 다른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다 아시고, 미래의 시점에서는 그것이 이미 결정된 것이므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그 운명대로 갈 수밖에 없다, 라고 주장하는 운명론, 예정론을 믿게 되면 우리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제로 칼빈주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복음 전도나 선교사역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전도를 열심히 해 봤자, 지옥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지옥가기로 되어 있고, 천국에 가기로 결정된 사람은 전도 안해도 선택받았으니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정론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창세전에 무작위 랜덤으로 선출된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사람의 구원이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보혈, 십자가, 믿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 관계로 함께 찾지는 못하지만, 사무엘상 23장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미래를 알고 계셨고, 대답을 해주셨지만, 실제 역사는 하나님께서 미리 대답해 주신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숨었는데, 사울 왕이 찾으러 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그일라로 내려오겠느냐고 하나님께 여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일라에 올 것이라도 대답하셨습니다. 다윗은 두려워서 하나님께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넘겨주겠느냐고 여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넘겨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에 의하면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사울 왕에게 넘겨지고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그일라를 떠나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물음에 대하여 미래의 일들을 대답해 주셨지만, 그것은 변경이 불가능한 결정된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미 다 벌어지기로 결정되었던 일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그 무엇을 하더라도 이미 결정된 운명대로 가게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전생에 무엇을 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노예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잘못했기 때문이며, 이생에서는 그 업보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살고 있는 요인을, 오늘 나의 삶의 태도에서 찾지 않고, 나와 상관없는 그 무엇에 넘겨버리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자만, 사탄은 우리가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역행하여, 도전하며 전진하기를 원하시지만, 사탄은 자신이 세워놓은 세상 체계와 문화에 순응하여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하심, 미리 아심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지혜와 지식
이제 우리 함께 프린트의 마지막 박스를 살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총 7가지 요점으로 정리를 해 보았는데,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고, 간단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요점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알라”, “알지어다”, “이해하라”, “깨달으라”라고 명령하시는 많은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선하심을 맛보다 알지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알거니와”, “연구하라” 이러한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에게 공유된 속성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요점처럼, 성경은 지식에 대해서 권장사항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필수사항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대언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여 망한다고 대언하였습니다. 지식이 불충분해서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 번째 요점처럼, 성경은 지혜가 빠진 단순한 지식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빠진 지식은 사람을 우쭐대게 하고, 교만하게 만들며, 형제자매들을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요점에서 우리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동 출신의 다윗은 어떻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사랑스러울 만큼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17세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은 어떻게 40세가 되어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을 때, 지혜롭게 파라오 앞에서 행동하며,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요점처럼, 우리에게 가장 뛰어난 지식은 바로 우리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요점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것과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면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은 무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주님과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삶입니다. 다만 일곱 번째 요점처럼,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 또한 지체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프린트에 함께 찾지 못한 많은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제가 나름대로 선별해서 적어놓은 것인데, 시간이 되실 때 한 구절씩 찾아보시고, 묵상해 보시면 큰 은혜가 되실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일하심”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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