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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일 주일 오전예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한복음 2장 13~22절)
최성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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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복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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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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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Daum 블로그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오늘은 [ 주(主)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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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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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삼킨다는 뜻은 불태운다, 망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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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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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한복음 2:1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변질은 “성질이 달라지거나 물질의 질이 변함, 또는 그런 성질이나 물질”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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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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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QT3:주의 전을 사모하는 우리의 열심 20200107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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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dagawachurch.com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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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 WhyJesu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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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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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복음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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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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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 주의 전에 대한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소원교회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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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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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1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2:13:22)
21.08.01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2:13:22)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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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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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김연희 목사 0 2019.04.09 07:31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한복음 2:13-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죄로 물든 이 땅에 천국 출장소를 세우시고자 오신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몇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요한복음 1장).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다음 바로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당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자 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에 맞서서 과감하게 성전의 부패와 타락을 척결하시는 예수님의 활약상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의 부패를 척결하시는 모습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시편 69:9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69편은 극심한 곤궁에 빠진 다윗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탄원시 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많은 범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었습니다.(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한 일:삼하 6:12-19, 언약궤를 모시고자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일:대상 28:11-18;29:2-5,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에 관련한 유언을 남긴 일(대상 28:9, 10, 20)등등…) 즉,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몸부림쳤던 다윗이었습니다. 오직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그의 전 생애를 살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신학자 Calvin은 말하기를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다윗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 곧 언약 공동체를 성결하게 지키려는 일까지도 포함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던 다윗의 삶의 근원에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자신을 삼킨 것이라고 다윗 스스로가 시편 69:9에서 고백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물들어가는 교회의 세속화로 인해 안타까워하며 애통해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고 외칩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도가 성도다워야 한다고…교회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까지도 교회가 개혁되어져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들 공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와 달이 빛을 잃은 것과 같이 교회가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아마 이는 우리 안에 다윗과 같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성이 없고, 예수님처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처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킬때, 주의 집을 사모하는 열성이 내 자신을 삼킬때 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결한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 정화가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는 내 심령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인 다윗의 고백,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성전으로 구별된 내 자신이 성결케 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깨끗케하며, 이 지면을 새롭게 하는데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오늘은 343 번째 시간으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말씀 요 2 :13-17 → 유대인의 유월절(逾越節)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聖殿)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바꾸는 사람들의 앉은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羊)이나 소(牛)를 성전(聖殿)에서 다 내어 쫓으시고 돈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床)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弟子)들이 성경말씀에 주(主)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는 열심(熱心)이 나를 삼키리라 한것을 기억(記憶)하더라

교회다니시는 분들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알면서도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일을 본인은 하고 있으면서 이를 알지못합니다

성경말씀이 나를 제외한 다른사람에게 말씀하시는것으로 알고 있는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나(我)에게 하시는 말씀인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남의 말을 하는것이라면 구지 남의 일에 나자신이 참견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남에게 하는 말씀이라면 나자신은 성경말씀을 읽어 볼필요도 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나(我)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는것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서 성경말씀을 읽고 생각하여야 하는것입니다

믿은분들은 주(主)의 전(殿)이라면 교회를 생각할것입니다

그리고 구지 나열을 하지 않아도 목자는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낼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한 행위로 신앙하시는 분을 우리는 믿음이 좋은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먼곳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와서 점과 흠이 없는 비둘기나 양이나 소를 사서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십일조나 각종헌금이 되겠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파는 비둘기, 양, 소 이러한 것들로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개인별로 짐승을 가져오는 것은 모두 흠이 있는것이라고 말하였으므로 성전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관원을 끼고 돈벌이를 하고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온전한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될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시대에 지켜오던 삼대 절기는 ①유월절 ② 맥추절 ③수장절 이 있습니다

(출 23 :15-16)

오늘날은 성탄절 / 부활절 /추수감사절 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점점퇴색(退色)하여 가는데 이는 아무 근거도 없는 날자를 인생들이 날자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신 날자가 없는것이 정상인것을 모르고 인생들이 억지로 날자를 정하여서 12월 25일을 성탄절일라고 행사를 치루고 있는것입니다 이러한 모든일들은 하나의 형식적인 행사가 되어있으며 예수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또한 의미도 없는 일들을 지키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무교병(無酵餠)과 유교병(有酵餠)은 잘알아야 합니다

누룩이들어간 빵(말씀)인가?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빵(말씀)인가? 를 말하기 때문인것입니다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교훈의 말씀을 말하므로 오늘날로 말하면 유교병(有酵餠)은 거짓목자들의 설교말씀이고 무교병(無酵餠)은 비유인 성경말씀을 깨달아서 성경말씀을 해석하는것을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은다고 말하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리말씀에 들어가지못하는것은 유교병의 말씀설교를 듣고 신앙을 하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는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유대인의 유월절(逾越節)이 가까운지라

※ 유대인.

유대인이라는 말은 야곱의 4번째아들인 유다에서 나온말인것를 모르고 계신분은 안계실것입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신분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유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던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새웠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 인들의 정략적인 결혼으로 이방인들과 결혼을 많이 하게되어 당연히 혼혈아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의 유다지파와 베야민 지파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구별하여 불렀는데 오늘날은 이와 상관없이 총칭하여서이스라엘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믿음이 좋았다고 하는데 그들 역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들이 되었던것입니다

※ 유월절(逾越節)이 가까운지라

유월절(逾越節 =넘어간다는 뜻) 에 관한 말씀도 전장에서 이미 다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첫번째의 유월절은 출애굽할때의 유월절이고 두번째의 유월절은 예수님이 지키셨으며 세번째의 유월절이 오늘날 우리들이 지켜야할 유월절이 되겠습니다

유월절의 넘어간다는 말의 뜻은 사망을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유월절은 어떻게 지키는것이 사망에서 영생으로 넘어가는것이 되는것인가 ? 를 알면 우리들의 믿음은 사망이라는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유월절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12장을 한번 다 읽어 보시기바랍니다

유월절에 대한 말씀을 모두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린양의 피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집 문 좌우 설주(楔柱 = 집의 문(門)을 세우는기둥을 설주라고 말함) 에 바르라고 하십니다

이말씀은 우리들의 입술에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인 진리말씀이 있는 집(사람) 을 만날때에는 사망이 피하여 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에 예수님의 피 곧 비유인 성경말씀을 깨달아 영생의 말씀이 우리들의 입술에 있는것을 어린양의 피를 집 문(門) 좌우 설주에 바르고 있다는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의 입술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거짓목자의 설교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어린양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입술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애굽의 장자(長子)을 하나님은 다 죽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

오늘날 비유인 성경말씀을 깨닫지못한자 곧 성경의 겉말씀에서 신앙하는자는 어린양의 피가 없으므로 다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인것입니다

오늘날 하루인 이 한밤이 유월절밤인것을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2장을 천천히 읽어보시면서 깨달아 해석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해석하여 알수 있는 말씀입니다

2)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聖殿)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바꾸는 사람들의 앉은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羊)이나 소(牛)를 성전에서 다 내어 쫓으시고 돈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床)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을 말씀하십니다 (슥 8 : 3 )

진리의 성읍이라고 말하는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와 보시니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곳에서 이러한 해괴망측(駭怪罔測 = 말로 할수 없이 이상한짓들을 하는것)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것이었습니다

소,양 ,비둘기를 하나님앞에 제사드리고 하나님의 섬기는 일이라고 지금 성전안에서 이러한 짓들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비유의 성경말씀을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 ,양 , 비둘기는 다 돈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바꾸는자가 누구입니까 성경의 겉말씀으로 설교하고 설교하여준 댓가로 신자들에게 돈을 받아먹고 있는자입니다

다만 예수님 시대와 오늘날 시대와 화폐의 정의를 달리 할뿐인것입니다

오늘날은 십일조와 각종헌금이 이에 해당이 되는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이단(異端)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교파와 교리가 정통이다 아니다 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러한것들은 인생들이 만들어 놓은것이므로 아무 의미가 없는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

예수님 말씀대로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자라는 말씀을 새겨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인생들이 성경말씀에 비추어서 교회에서 돈받은 일을 여러말로 변명하는것 자체가 이단인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 유대인 서기관 바리새인 기타 등등….이 돈을 좋아하던자들입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빙자하여 신자들에게 돈을 받은자는 모두가 악한자가 되는것이며 결국은 사망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유다가 은 30량에 예수님을 팔아먹은것만 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설교말씀을 듣고 그 댓가로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며 예의를 표한다며 거짓목자에게 사례하는자들은 가룟유다보다 죄가 더 큰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야하면 가룟유다를 그림자로 우리에게 보여주신것입니다 이런짓거리 하지 말라는 말씀인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

돈을 좋아하는자들이 거짓목자이며 우상들인데 성경말씀을 겉으로는 믿고 신앙하는자들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예물을 드리는것이 마땅하다고 오히려 항변을 합니다

믿은자들은 비유인 성경말씀을 읽고 깨달아서 육에서 령으로 거듭나므로 영생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는것이 믿음인데 거짓목자들은 무슨 돈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연관지어서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령으로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은 신자들이 내는 돈이라는것을 받고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아버지가 자녀에게 돈을 내는것이 아버지를 섬기는 일이라고 자녀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일은 세상의 육적인 아버지도 이러한 일은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령으로 계신 하나님아버지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세상에속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인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주의 전이라는곳에서 거짓목자들에 의하여 악한짓들이 행하여 지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일꾼들이 받은 삯은 돈이아닌 영생인것입니다

마 22 : 17-22 → 그러면 당신(예수) 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 ( 우리 =바리새인 = 오늘날 비유인 성경말씀을 깨닫지못한자 ) 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稅)를 바치는것이 가(可)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惡)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外飾=행위적인 믿음) 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稅)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形像)과 이글이 뉘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 깨달은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 (비유의 말씀을 깨닫는것)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奇異)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여러분 교회에 돈을 받치는것을 예수님은 악(惡)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잘 알아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돈에 적힌 형상과 글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인생들의 것입니다

돈은 하나님의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못한 인생의 거짓목자와 신자들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천국을 빙자한 악(惡)한 짓거리의 거래(去來)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받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긴는 예라고 말하는자들이 유월절에서 말하는 애굽의 장자인것을 알아야 할것이며 자신의 믿음이 악(惡)한자가 된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2 :17-22 만 깨달아 알아도 영생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는것이며 악(惡)에서 떠난자가 되는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상(床)을 엎으셨다는 말은 거짓을 말하는 거짓말장이인 목자의 설교단을 엎어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령적으로 거듭나지못한자들이 말하는 화평 축복 육신의 형통등을 말하는 거짓목자가 설교하는것에 대하여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말씀중에 어려운 말씀은 없습니다 짝의 말씀을 찿아가시면서 천천히 해석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3)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弟子)들이 성경말씀에 주(主)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는 열심(熱心)이 나를 삼키리라 한것을 기억(記憶)하더라

※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시니.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데 오늘날 교회에서 목자와 신자가 장사하고 있습니다

돈이라는것은 세상나라에서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하여 먹고살기위한 노동의 댓가로 이루어지는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는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나라를 말하는 목자들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에서조차 돈이 왔다 갔다하는것입니다

이러한 악한자들과 함께하는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 돈을 내므로 악(惡)한자가 되기보다는 여유가 되시는분은 차라리 이웃이 육적으로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한국 목사님중에 한분이 이러한 말씀하시는것을 듣고 감명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십일조를 왜 교회에만 내려고 하느냐 ? 목사인 내가 어느집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것을 어떻게 다 알고 교회에 십일조로 들어온 돈을 나누어 줄수가 있느냐

그러므로 나자신이 살고 있는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십일조를 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고 목사님의 그릇이 크다는 생각을 한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다름아닌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지가 벌써 30년이 넘은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르반이라는 거짓목자의 말에 속아서 부모형제 이웃을 다 버리고 교회에 돈을 갖다가 받치면 복을 받고 모든일들이 형통하며 천국간다는 거짓목자들의 열린무덤의 목소리를 듣고 행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 제자(弟子)들이 성경말씀에 주(主)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는 열심(熱心)이 나를 삼키리라 한것을 기억(記憶)하더라

주(主)의 전(殿)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킨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

주(主)의 전(殿)인 교회를 열심히 사모(思慕)하며 나가는데 그 열심이 오히려 나를 죽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가 금방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문을 열심히 드나들어야 믿음이 좋은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새벽기도부터 시작하여 철야기도까지 휴식을 취할수 있는 시간조차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주의 전은 모두가 거짓목자인 장사꾼들로 득실거리며 생명의 말씀은 없고 세상에속한 교훈의 설교말씀만이 있는곳에가서 열심을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는 상관도 없는 일이되므로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이 없는곳에서 나자신이 그러한 주의 전을 사모하며 열심을 내는 일은 곧 나자신이 사망으로 간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시편 69 : 9 → 주(主)의 집을 위하는 열성(熱誠)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譭謗)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막 11 :17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예수께서) 기록된바 내집은 만민(萬民)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稱)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强盜)의 굴혈(窟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그당시에 성경말씀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킨다는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던것입니다

주님의 전이 결국은 장사꾼들이 장사하는곳이 될줄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알지 못하였다가 비로서 나중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뜻을 알게 된것입니다

※ 주를 훼방(譭謗)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믿은자들이 주님을 훼방하였다는 말이 이해가 잘 안가실것입니다

훼방한다는 말의 의미는 오늘날도 교회나오라고 전도를 하는 전도단을 만들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채워야 한다는 구실로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전도를 합니다 또한 유명하다는 목사를 초빙하여서 대대적인 부흥회를 하곤 합니다 겉으로 보면 얼마나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열심을 하며 믿음이 좋아보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모든일들은 주를 믿고 신앙하는자들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자들에게 덫을 놓은 일이 되는것이며 비유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예비하여 놓으신 영생을 아는 지혜를 알지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것이며 결국은 주(主)님의 진리말씀으로 신앙하고자 하는자들의 앞을 막아버리는 일이 되므로 주를 훼방하는 일이 되는것이며 악한자가 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가(비유의 성경말씀을 깨닫지못한자) 하나님의 백성을 다 잡아먹은다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이렇게 거짓목자를 섬기며 그를 따르는것이 우상을 섬기는것이며 주님이 마련하여 놓으신 영생으로 가고자 하는 자들의 길을 막아놓은것을 일컬어서 주(主)를 훼방하는 일을 하였다고 말을 하는것입니다

결국은 주를 훼방(譭謗)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라는 말은 심판날에 보니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오히려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자들을 훼방한일이 되는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훼방한 죄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말을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하시는 일을 보고 비로서 깨닫게 된것입니다주의 전을 사모하며 열심을 내는것이 곧 생명의 말씀이 없는 비진리말씀에서 세상에속한 설교를 듣고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것이며 내자신이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것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쁜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리말씀은없고 장사꾼들만이 모여서 육적인 세상에속한 말씀만이 있으므로 결국은 나자신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육신은 죽음으로 끝나고 한평생을 믿음이 허무하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설교말씀) 만을 따먹고 가짜믿음으로 주님을 훼방하는 일만을 한평생하고 있으면서 천국을 소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달아 해석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뜻을 알지못하고 신앙하던자들이 마지막날 하나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 27 : 46 → 제 9시쯤 즈음에 크게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뜻이라

이말씀이 하나님이 아들인 예수를 버리셨다는 말씀으로 알고 계시면 깨달음이 없는것입니다

주(主)님이 계시다는 교회를 위하는 열성(熱誠)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譭謗)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다고 생각하는 마지막날 울부짓으며 성경말씀을 깨닫지못한 죄인들이 하나님에게 하는 말씀인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

같은 성경말씀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있으면서 여전히 생명의 말씀이 없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지고 신앙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강도의 굴혈인 교회의 넓은길을 찿아가서 육신에 속한 열심을 내고 있는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많은 직책들은 우리가 영생하는 일과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령으로 계신 예수님의 친구로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천국길을 안내하여 주시며 영생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난자들에게 하나님이 권세를 나누어 주시는것입니다

이럴때에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난자들이 영광을 올려드리는것입니다

때와시도없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영광을 드린다는 망말을 하는자가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지 않는자들이 말하는 영광은 받지 않습니다

주(主)의 집을 위한다는 나의 열성은 나를 죽이는 일이며 또한 주님을 훼방(譭謗) 하고 있는일이며 주님을 헐뜯고 비방하고 있었다는 일을 깨닫지못하고 세상에속하여 육적인 신앙하고 있으면서 천국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의 신앙한것이 주님의 일을 훼방한것이 되며 그 악한일을 한것이 나에게 심판으로 돌아왔다고 말을하고 있는것입니다

주의 집을 위한다고 행위적인 어떠한 일을 하기앞서서 비유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달아 아는것이 하나님의 일을 충실히 순종하며 하는 일이라는것을 명심하여 아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도 주의 전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들이 있는것이 아니라 강도(거짓을 말하며 돈을 갈취하는자) 들만 득실거리며 강도의 굴혈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못하는것입니다

마귀의 굴혈(교회)에 한번 들어가면 결단이 없이는 나오지 못합니다(요 8 :44 )

육적인 생명이 살아있을때에 육(肉)에서 령(靈)으로 거듭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골방에 홀로앉아 예수님과 친구가 되어 비유의 성경말씀을 예수님과 함께 나누며 천국길을 인도받기를 바랍니다

육(肉)에서 육(肉)으로 끝나는 한평생을 의미 없는 신앙을 하며 살다가 육신의 목숨이 다하는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하나님의 물음에 한마디도 대답을 못하고 유구무언( 有口無言) 이 되는자가 되어 음부로 떨어져서 사망으로 가는 신앙을 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오늘은 [ 주(主)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 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 달아놓고 유형적인 어떠한 건물이 주의 전이 아니며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생명이 살아있는 영생으로 거듭난 나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집이 되는것입니다

비유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달아서 해석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알게 되므로 나의 생명이 영생하는자가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居)하는자로 나타나야 할것입니다 (요 14장)

하나님과 예수님이 안계시는 장사꾼들이 모여있는 강도의 굴혈을 찿아가서 주의 전이라고 착각하고 열심을 내므로 오히려 나자신이 사망의 음부로 떨어지는 신앙을 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세상에서 육적인 생명이 태어남을 하나님은 한번밖에 안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근신하여야 할것이며 비유로 기록된 성경말씀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이 숨어 있습니다

숨어있고 감추어져있는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구하고 두드리고 찿아내어서 육신의 생명에서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과 연결이 되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지혜가 부족한자들과 함께하시며 영생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이 글을 읽고 깨닫는 모든분들에게 몇천배 더 깨달음을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감사합니다

[요한복음 2:1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요한복음 2:12-17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데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을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돋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변질은 “성질이 달라지거나 물질의 질이 변함, 또는 그런 성질이나 물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본래의 것에 무엇인가가 추가되거나 본래의 것이 무언인가의 영향을 받아서 본래의 성질이 변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본래 그 자체로서 성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변질은 자연 속에서 일어날 때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인간의 사상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대체로 변질이 일어났다면, 무엇인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거나 무엇인가 부정적인 측면이 더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사상에 일어나는 변질이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과 사고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죄로 인하여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것에 다른 것들을 부가시키는 행위를 통해서 본래의 것을 서서히 변질시킵니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화될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변질을 가장 옹호하는 말은 적응이란 말일 것입니다. 적응하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의 옹호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 사랑의 감격을 잊어버리고 적응이란 말을 남발하며 본래의 초심을 잊어버리고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확실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음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했을 때, 그들의 신앙은 경건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들은 서서히 변질되었습니다. 사시기의 역사가 바로 그 변질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시대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처음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을 때나 이스라엘 왕정시대가 개막을 했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방 문화와 교류를 하게 됨에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서서히 변질되었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부패한 본성 때문입니다.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것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본래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변화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의 풍경이 그 한 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사람들,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양과 소와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행태의 시초는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인 예루살렘에 모여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양과 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야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드릴 소와 양을 샀을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 보면, 아주 먼 지역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더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먼 지역 유월절 양이나 소를 몰고 오다가 도리어 하나님께 드릴 예물에 흠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근처에 와서 흠이 없는 양과 소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성전의 장사치들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런 좋은 의도가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양과 소를 몰고 오는 사람들이 적고 도리어 양과 소를 사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그러한 장사가 더 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 의도는 경건한 의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들의 정신은 변질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수요의 많음을 이용하여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없는 양과 소를 팔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서서히 장사꾼들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질은 비단 그 시대의 현상이 아닙니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고 명백히 보이는 현상입니다. 사도시대의 경건한 신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서서히 변질되어 중세와 같은 혐오스런 모습으로 변해버렸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초대교회의 경건한 때의 신앙을 본받자고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첫 유월절, 하나님의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았던 사람들이 보였던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밖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불신앙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경건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성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고, 노하셨겠습니까? 성전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던 사람들의 물건을 팔기 위한 외침, 또 물건을 사기 위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외침, 소와 양의 울음소리 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 시장의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가 보십시오. 수많은 소리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이곳은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시장의 모습과는 달랐겠지만, 역시 그곳에도 수많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참 경건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외식이 그곳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도 온전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되는 양의 질도 떨어지는 것처럼 장사꾼들은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소와 양과 비둘기도 팔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순수하게 흠이 없고 온전한 제물만을 공급했겠습니까? 참 경건이 변질되어 외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곳에는 참된 감사와 기쁨이 있지 않았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명절로서 형식적인 날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노하신 예수께서는 성전 안에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습니다. 아마 그들이 사용하던 노끈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채찍의 재료로 사용하신 노끈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노끈 하나 하나를 모으시고 그것을 합쳐서 채찍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6)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본래 목적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본질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예수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요 2:18) 이런 그들의 반응을 보니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들이었다면,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성전에서 있었던 제자들에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뜻을 더 자세히 알아 보려면 시편 69편을 읽어 보아야 합니다. 이 말뜻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시인의 마음의 모든 것들을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의례 훼방을 받을 될 때 강렬하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69편의 시인도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령께서 자신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치시는 지를 알려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이 이전에 읽었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셔서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하셨는지를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간혹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열심을 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우리를 교훈시키시기 위해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성전에서 하시는 일을 목격하고 시편 말씀을 기억했다는 것은 그 상황에 맞게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떠올려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떠오르는 성경 말씀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일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난처한 일을 선택해야 할 때 역시 우리에게 떠오르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은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한 것이 진정한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날마다 묵상하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홍수는 우리의 참된 경건을 변질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지식의 홍수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도 역시 변질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단이 왜 그렇게 된 줄 아십니까?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 철학이나 세상의 지식을 섞으므로 말미암아 본래 그 차제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거나 그 차체의 의미가 흐미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면 그들의 말에 현혹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단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그들의 사상에 빠져들어갑니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변질되지 않고 온전하게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깊이 읽고 묵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마귀들이 끊임없이 혼란스런 생각을 집어넣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변질되어 넘어지게 됩니다.

중세의 암흑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말을 더 우선시 했습니다. 그 당시 성경도 일반 성도들이 알기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경건하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들도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처럼 같은 생각을 하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중세의 경우 교황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방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보급되니까 경건한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세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변질을 막는 유일한 길입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경 말씀은 성령과 함께 우리에게 떠오르거나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이란 구호를 마음 속에 담아 두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안에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QT3:주의 전을 사모하는 우리의 열심 20200107

요한복음 2:13-25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2: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은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경우 2장 초반부에 이 사건이 나오지만 공관복음 중에서도 특히 비교적 시간순으로 배열되었다고 하는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미 십자가의 시간이 눈 앞으로 다가온 때였습니다.

이 사건이 대제사장을 자극해서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입니다. 대제사장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점점 커지는 정치적 입지와 종교적 영향력은 참아 본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이 재정적 손실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기득권을 위협하는 개혁적 세력입니다. 당시 성전에서 일어나던 부조리는 정치와 경제와 종교가 유착했던 결과였고 예수님은 급진적인 방법으로 그 세력을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라는 종교의 영역에서 이러한 부조리가 일어났던 배경은 이렇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명절입니다. 지중해 사회에 넓게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야하는데 성전에 내는 돈은 반드시 성전 안에서 통용되는 은화여야만 했습니다. 환율을 조작하여 부정한 환차익을 취할 수도 있었고 필요 이상의 수수료를 징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독점적인 환전소가 생겼습니다.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키우던 짐승 중에 깨끗한 것을 골라 끌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기 위한 짐승은 흠도 점도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흠이 없는 짐승을 가져왔더라도 검역관들이 이를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예루살렘에서 다시 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근처인 감람산에 짐승을 살 수 있는 가축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제사장과 상인들 사이에 거래가 생겼습니다. 돈이 생기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은 더 커집니다. 대제사장은 종교 권력을 이용하여 또 하나의 시장을 성전 내부에 증설했습니다. 공항 안에 있는 면세점 같은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이 독점적 상권의 판매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뇌물과 상납을 받고 판매 이익을 취했습니다.

성수기에는 밖에서 사는 값의 16배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식민지하에 있는 백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가난한 백성들은 이미 로마 정권에 의해 수탈당하고 또 그 정권에 기생하는 세리들에 의해 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부패한 성전 귀족들은 한술 더 떠서 예배를 빌미로 더 악랄한 착취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형 노점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한 성전에 짐승을 들여왔다고 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경제를 위해 종교를 사용하는 부패한 종교에 대해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종교마저도 신뢰할 수 없다면 부패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격양된 어조로 아버지 집인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성수기라는 것은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유월절이었으니 그 성수기에 성전의 장사를 철거시켜버리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마음에 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진노하신 또 하나의 이유를 읽어야 합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성전 안에도 이방인을 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렀는데 성전 권력이 이 뜰을 성전 내부의 시장으로 용도 변경해 버린 것입니다. 이방인의 뜰은 이방인이 들어올 수 있는 최전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장사를 하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를 뻇은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로 예배가 닫혀있던 이방인들이 겨우 들어올 수 있었던 곳, 그 뜰마저 종교 권력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횡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신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장사하라고 있는 성전이 아니고 누구라도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두 가지에 근거해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돈벌이를 하는 불의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런 구조 안에서 믿음조차도 속고 착취당하는 백성들에 대한 슬픔의 분노입니다. 예배하겠다고 시골에서 양을 끌고 소를 끌고 올라와 성전입구에 줄 서있는 백성들은 갖은 바가지와 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난하고 순수한 예배자들 보기에 미안했던 분노였습니다.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46년 걸려 만든 성전을 3일 만에 만드신다는 말에 유대인들은 웃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깨닫았듯이 우리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곧 십자가에서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니다. 성전을 허는 것과 3일만에 다시 세우는 것은 역사에서 이미 실현된 예언입니다.

다윗이 준비히고 솔로몬이 지었던 제1성전은 BC 586년 바벨론이 침공했을 때 파괴되었고, 바벨론이 망한 후 돌아온 스룹바벨에 의해 제2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있던 성전은 다시 헤롯이 증축했던 성전입니다. 그마저 예수님의 예언대로 30여년 뒤 AD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철처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2천년을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해야하는 18가지 기도제목이 있답니다. 그 17번째 기도가 2천여년전에 로마제국에 의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기어이 유대인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고 1967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이유는 제3의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설계도까지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세워져야 하는 자리는 1300년전부터 이슬람의 황금 사원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고 황금사원을 파괴한다면 끔직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위해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살육과 전쟁을 통해서 땅을 빼앗고 건물을 세우려는 계획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유대민족운동 시오니즘(Zionism)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생각하고 이스라엘이 중동의 전쟁에서 이슬람을 상대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웃의 가정과 사회에서 평화가 지켜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는 두려운 것이지만 미국의 반미인사 암살은 두려운 테러가 아닙니까? 수천년을 싸워온 이유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십시오.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것은 그들의 가족이 기독교에 의해 죽임당했던 슬픔과 원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오니즘이 말하는 제3성전은 기독교 신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전의 의미는 구약의 성전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던 금단의 성전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성전은 왕궁같은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구원의 유일한 방도로서 고백하는 성도가 곧 교회이며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예배당 구입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전이 아니고 예배당입니다. 건물을 신격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메시아로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짐승을 죽여 예배드릴 계획을 세우고 그 예배를 통해 메시아를 기다리기 위해서 제3성전을 지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중에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화평과 화해의 의미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쳐서 우물가에 앉으셨을 때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는 사마리아에서 예배하는데 유대는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군요라고 물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들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에 앗수르의 혼합정책으로 이방과 혼혈되고 종교적으로도 이교와 혼합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에서 제사드렸습니다. 그런데 남유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드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당시 유대의 종교로서는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장소가 아니고 때가 이른다고 했습니다.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언제입니까? 우리도 그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령과 진정은 영과 진리입니다. 영은 그리스도의 보내신 성령이고 진리는 하나님의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가 말씀가운데 모인 것이 참 예배입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지 않아도 어린 생명들을 전쟁에 희생시키면서 그 땅에 건물을 짓지 않아도 다시 짐승을 죽이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개정)요한복음 2장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시편 69편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ㅡ> 1. 먼저 본 성경구절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2. 요한복음과 시편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요?

시편은 한 죄인에 불과한 다윗의 고백인데 예수님의 성전 정결 행동에 대해 제자들이 시편의 말씀을 기억한 의미가 무엇인지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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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판을 뒤엎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한복음 2 : 17]

이 말씀은 소름돋을 정도로 이 땅의 교회들, 아니, 교회학교가 갖고있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내용을 정조준 하고 있다.

교회학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유치부나 유년부, 또는 초등부까지는 별다른 봉사부서가 없기에 대부분 성가대를 많이 한다. 이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엄마의 등쌀에 밀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이 과정 중 엄마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 아이는 찬양을 너무 좋아해요.”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다. 다만, 실상은 아이들이 BTS의 노래와 춤은 복제인간 수준으로 따라하면서도, 교회에서 찬양과 율동을 하자고 하면 다들 유치하다는 눈빛으로 초점없이 인도하는 교사를 처다보고 있다. 이것이 실상인데, 엄마들은 자신의 자녀들의 신앙상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성가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자녀의 신앙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고 오해한다.

BTS 멤버가 찬양인도 하고 율동하면 무대로 뛰쳐나가 함께 눈물 흘리며 목청껏 찬양하고 어깨가 탈골될 때 까지 율동을 하지 않을까? 찬양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끼리 성가대를 하다보니, 결국 남는 것은 인맥이다. 즉, 성가대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같이 중등부로 진급하면서, 아이들의 봉사부서가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학생회, 성가대, 악기팀, 연극이나 뮤지컬부, 신문이나 문서를 만드는 봉사처도 있을 수 있다. 이미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아닌, 친구들을 만나는 곳인 사교클럽이 되어있는 상태이니, 가능한 봉사부서를 여러개 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 중에 교회학교 교사들이 이를 부추긴다. 왜냐하면, 교사들이 밟아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기간동안 다양한 봉사처를 거치며 교회 인맥은 탄탄하게 형성이 되고, 교회 내에서 인싸로 성장하게 된다. 대부분 이 상태가 고등부까지 이어진다. 그러면서 자신이 인싸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교회에 대한 애착이 형성된다.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 : 8]

이 말씀은 교회학교를 거치면서 다음과 같이 탈바꿈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도 교회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교회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교회의 것이로다”

학창시절을 교회에서 다 보내며 친목도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세상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이런 패배감을 교회에 와서 패배자 동지들끼리 만나서 위로 받고, 더욱 더 교회생활에 열심을 낸다. 이 과정 중에 이 패배자의 삶을 먼저 걸어갔던 교사들이 이 아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결국 교회의 열매로써 세상에서 패배하는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교회를 향한, 다시 말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만 심겨진 사람들을 향해 ‘나를 삼키리라’ 라고 경고하고 있다. 성전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이유는 46년간 정성껏 건축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는 성전은 앙꼬없는 찐빵인 것이다.

이 경고의 말씀은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든 이들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의 고백이다. 이 고백이 대한민국 교회학교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교회학교와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이 동급이라는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던 자로써 아이들에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만 심겨준 것을 회개하고자 한다. 성가대 아이들에게 찬양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찬양하는 이들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선포하지 않았던 것, 율동이 단순한 춤이 아닌 온 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학생회와 악기팀으로 봉사하는 이들에게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간의 차이를 좁히라고 알려주지 않았던 것, 학생의 본분인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임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교회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한 곳임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성경말씀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곱씹으면서 고민하고 알려주지 않았던 것, 너희들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이기는 자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는 것을 선포하지 않았던 것, 이 모든 것들을 회개하고자 한다.

그 동안 성전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청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장사꾼들을 욕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조명된 것은 ‘그런 장사꾼과 같은 이들을 길러낸 교사로써의 나의 모습’ 이다. 이런 큰 회개거리를 알게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마지막 때인 지금, 회개할 거리가 있다면 즉각즉각 회개합시다.

올바른 교회학교가 되기를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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