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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 요셉을 아십니까? 요셉은 성부 하나님과 부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아버지로 부르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마리아의 남편도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목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누구일까요? 저는 아기 예수님의 보호자, 하나님의 보호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묵묵히 헌신하는 여러분 같은 충성된 종이라고 생각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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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누구인가 / 나이 40세, 그러나 … – 아멘넷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이상훈 교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리아와 정혼한 시기 요셉의 나이는 40세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성전에서 열두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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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usaamen.net

Date Published: 9/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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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의 요셉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성 요셉(Saint Joseph) 또는 나자렛의 요셉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키운 양부다. 기독교 전승에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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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2/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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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마리아의 남편 – 네이버 블로그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왕의 후손이며 야곱의 아들(마1:16)이다. 그리고 헬리의 사위(눅4:23)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요셉은 유다지파인 다윗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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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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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 – 다음블로그

오늘날 요셉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영국성공회, 루터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요셉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남편이며 비록 명목상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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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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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JOSEPH), 마리아의 남편(HUSBAND OF MARY)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의 후손(마 1:1~16; 눅 3:23~38)이었으며 나사렛에 살았다. 그는 마리아와 정혼했다. 그들의 결혼 직전에, 마리아는 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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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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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버지가 둘인가?

흥미로운 것은 마태복음의 족보의 거의 끝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마 1:16)라고 기록하며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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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isark.com

Date Published: 6/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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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13세에 예수 출산…남편 요셉은 30대? –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티치아노(1488/90~1576)가 그린 ‘성모 승천’. 로마가톨릭과 정교회는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친 마리아가 아들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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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1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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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의 요셉 – 나무위키:대문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의 양부(養父).[1] 예수는 요셉을 통해 다윗의 후손이 된다. 이름은 나자렛 마을에서 사는 요셉이란 뜻이다.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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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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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누구인가? 마리아의 남편도, 예수님의 아버지도, 목수도 아니다? 하나님을 보호한 요셉
요셉은 누구인가? 마리아의 남편도, 예수님의 아버지도, 목수도 아니다? 하나님을 보호한 요셉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

  • Author: William 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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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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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누구인가 / 나이 40세, 그러나 세상에 물들지 않은 의로움 > 한국ㆍ세계ㆍ정보

▲ 영화 ‘네티비티 스토리 – 위대한 탄생’에 등장하는 요셉은 스무살 청년의 모습이지만 전문가들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의 나이가 중년에 가까운 40세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사진은 영화 ‘네티비티 스토리 – 위대한 탄생’의 한 장면)

21일 개봉될 영화 ‘네티비티 스토리 – 위대한 탄생(감독 캐서린 하드윅)’에는 열여섯살의 마리아와 스무살 요셉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메시아 탄생’이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뜻에 참여해 나가는 이들 어린 부부의 갈등과 역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설교 중에 인용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의 나이가 중년에 가까운 40세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의 나이, 40세로 추정돼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리아에 비해 성경은 요셉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고 설명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성경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며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며, 헤롯왕으로부터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지켜낸 한 가정의 가장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요셉에 대한 성경의 기록도 누가복음 2장에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성전을 찾는 기록으로 끝이 난다.

이후 예수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때까지 어머니 마리아는 등장하지만 요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요셉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일까.

초기 기독교 시절인 2세기에 기록된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에는 요셉은 힘없는 노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록 중에는 마리아와 결혼할 때 이미 나이가 91세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인해 중세 기독교 회화에 등장하는 요셉은 대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마리아와 결혼할 즈음 요셉의 나이가 40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이상훈 교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리아와 정혼한 시기 요셉의 나이는 40세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성전에서 열두 살 예수를 찾던 당시 요셉은 50세를 넘긴 나이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성경에서 요셉의 기록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그가 고령으로 자연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수는 다른 형제들이 성장할 때까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목수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 요셉

또한 성경은 요셉의 성품에 대해 마태복음 1장 19절에 ‘저는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혼이 흔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결혼도 아닌 약혼을 깨면서 이를 드러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풍습을 고려하면 요셉과 같은 행동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보통 이스라엘에서는 혼인을 하기 전에 정혼(定婚)을 하는데,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이 정혼도 공개적으로 했다고 한다. 즉 법적으로 2인 이상의 남자 증인을 세우고 양가집이 모여 정혼식을 엄숙히 치렀던 것이다.

이렇게 엄중하게 치룬 정혼이 파혼되는 경우는 정혼한 상대 여성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을 때이다. 이 때 이 여성은 신명기 22장에 나타난 것처럼 ‘투석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이 여성에게 처음 돌을 던지는 자는 정혼한 상대 남성이다.

하지만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의 생명을 생각해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파혼하려 한다. 이는 사정을 모르는 주변인들로부터 요셉 자신이 ‘하나님께 불경건한 사람’ 또는 ‘정혼한 상대에게 불충한 사람’으로 판단 받는 억울함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남의 허물을 용서할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자 억울함도 감수하려는 요셉을 가리켜 성경은 ‘의로운 사람’이라 칭한 것이다.

이러한 나이 40세에도 세상에 물들지 않는 요셉의 의로운 모습은 높은 이혼율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영주 기자 © 구굿닷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성 요셉(Saint Joseph) 또는 나자렛의 요셉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키운 양부다. 기독교 전승에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를 처녀잉태했다는 믿음 때문에, 요셉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친부가 아닌 예수의 양부라고 표현된다.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더하다’라는 뜻이며, 가톨릭에서 추앙하는 주요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축일은 3월 19일. 상징물은 꽃이 핀 나무 지팡이·목수의 도구(톱과 망치 등)이다.

행적 [ 편집 ]

복음서 [ 편집 ]

목수 요셉

마태오 복음서에서의 요셉은 다윗 왕의 28대손이며, 야곱의 아들이라고 나오지만, 루카 복음서에서의 요셉은 다윗 왕의 42대손이며, 엘리의 아들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둘 다 다윗 가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되며(마태 1,19) 나자렛에 살던 목수였다고 한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마리아가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가 율법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간음죄를 범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돌팔매질을 당하며 처형당할 것을 우려하여, 남몰래 그녀와 파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 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했으며, 그가 잉태한 아이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말해주며,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명하자 즉각 마음을 돌려먹고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난 후에는 헤로데스 1세의 횡포로부터 예수를 구하기 위해 성가족을 데리고 잠시 이집트로 피신하였다는 전승 다음에 베들레헴의 2세미만의 어린이들이 헤로데스 1세가 보낸 군대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전승이 나오는데, 이러한 전승편집방식은 자신의 복음서의 독자들인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모세의 탄생 설화를 연상시키는 예수의 탄생 설화를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모세와 같은 위대한 예언자라고 주장하려는 그리스도론이 담겨 있다. 헤로데스 1세가 죽었다는 천사의 전갈을 받은 요셉은 다시 성가족을 이끌고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그 후 나자렛에서 얼마나 더 살았는지 알 수 없으나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명절을 지내러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었다. 요셉이 다시 복음서에 등장하는 것은 12살의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애타게 찾아 돌아다녔으나, 예수는 성전에서 어린이를 대화의 상대로 존중하는 참 지식인들인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는 전승이 있는 루카 복음서에서다. 물론 루카가 예수의 어린시절을 언급한 이유는 예수가 우리와 똑같이 유년시절을 경험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외경 [ 편집 ]

외경에서는 예수를 어린시절부터 진흙으로 새를 만들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등 범상치 않은 초능력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외경에 나오는 예수의 유년전승에는 한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던 중에 성가족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몇시간 뒤 기적처럼 그 씨가 자라 여물고 열매를 맺어 수확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후 성가족을 봤냐는 헤로데스 1세 휘하 군사들의 질문에 농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군사들 중 누구도 성가족을 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피신 도중 성가족이 종려나무 그늘 아래 멈춰 휴식을 취할 때 나무가 아기 예수의 명령에 따라 가지를 기울여 성가족이 열매로 배를 채울 수 있게 했고, 뿌리들을 좌우로 갈라 숨겨진 수맥을 드러내 그들의 목을 축여 주었다고 전한다. 그들이 헤르모폴리스에 있는 이집트인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 신전에 있던 365개의 우상들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이것을 본 마을의 수장 아프로도시우스가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성가족에게 경의를 표했다고도 한다.

죽음 [ 편집 ]

요셉의 죽음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없지만, 전승에 따르면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에 죽었다고 한다. 작가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나 영화 《가든 오브 에덴》에서도 그리스도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죽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성 요셉의 위치 [ 편집 ]

로마 가톨릭 [ 편집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3월을 요셉의 성월로 지정해 신자들에게 요셉을 본받고 그의 전구를 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1841년 8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한 마리아를 한국의 공동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요셉은 캐나다와 중국, 베트남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이 밖에 교황 레오 13세는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였으며, 교황 베네딕토 15세와 교황 비오 11세는 각각 요셉에게 노동자의 수호자와 사회 정의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1955년에 교황 비오 12세는 제2차 인터내셔널에서 미국의 노동 운동이 평화 시위로 실천된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한 것에 즉,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노동해방을 이루려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대응으로 역시 같은 날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요셉의 이름을 로마 가톨릭 미사 전문에 실리도록 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특별히 요셉의 도움을 위탁하였다. 미사에 사용되는 본기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성 요셉에게 구세주를 충실히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 구원 사업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공회 [ 편집 ]

성공회에서는 요셉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예수를 돌본 수호 성인으로 존경하고 있다. 2007년 교회력에서는 3월 19일자에 요셉을 수호 성인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성서정과에는 이날 마태 1:18-25, 로마 4:13-18, 시편 89:27-36, 사무엘하 7:4-16을 읽도록 되어 있다. 감사성찬례즉, 성공회 미사때 선언되는 본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하느님, 주님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요셉을 선택하시어, 육신으로 나신 성자 예수의 보호자이며 성모 마리아의 배우자로 삼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그의 바른 생활과 순종을 본받아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개신교 [ 편집 ]

개신교에서는 성 요셉을 동정녀인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믿어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으로 존중한다.

외부 링크 [ 편집 ]

요셉 마리아의 남편

요셉!

그는 어떤 사람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있어서 엑스트라 역할을 가장 잘 한 사람일 것이다,

엑스트라는 주인공을 가장 돋보이게 하고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다.

그가 바로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인 요셉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왕의 후손이며 야곱의 아들(마1:16)이다.

그리고 헬리의 사위(눅4:23)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요셉은 유다지파인 다윗왕의 가문에 속한 헬리의 딸인 마리아와 정혼하게 된 것이다.

정혼하다( μνηστεύω )라는 것은 약혼하다 ( Betroth)는 뜻인데 혼례식을 하기 전에 10개월에서 1년정도 기간을 두고 결혼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이 기간중에 만약 상대방중에 하나가 성실하지 못했을 때(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맺었거나 임신을 했을 때) 간음으로 간주를 하고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시도록 돕는 유일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즉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하여 달콤한 허니문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사건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요셉은 다윗왕의 가문에서 같은 가문에 속한 마리아라는 어여쁜 처녀를 만나 신혼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실상 마리아는 정숙하고 순결한 여인이었고 요셉도 역시 순결을 지킨 흠이 없는 청년이었다.

서로 정통적인 가문에서 서로에 대해 전혀 의심할 것이 없는 집안에서 맺어진 두 청춘남녀이기에 마리아의 임신소식은 더욱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 동거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사랑을 키워가는 순진무구한 밀월의 시간이 곧 약혼기간인 것이다.

요셉은 순결한 처녀 마리아를 그리면서 마음속으로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 내 사랑 마리아 당신은 오늘도 내 꿈속에 나타나 나와 함께 들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였소!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이하는 그날을 그리며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오!”

이렇게 마음속에 마리아를 그리워하며 하루 하루 결혼식을 기다리던 요셉에게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기가막힌 소문이 들려 온 것이었다.

마1:19에는 요셉은 의로운( δίκαιος righteous) 사람이라고 했다. 의롭다는 것은 결백하고 죄에 대해서 철저하다는 뜻이다. 그렇게면 당연히 법으로 해결해야 할것이다. 유대인의 법으로 한다면 마리아는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너무나 마리아를 사랑했으므로 그냥 없던 일로 덮어두려 했던 것이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요셉은 마리아의 허물을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고 베드로가 말했던 것을 요셉은 이미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했다.

요셉은 정혼녀 마리아의 허다한 죄를 다 덮어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약혼의 관계는 완전히 없었던 일로 할 마음이었던 것이다.

가만히(λάθρα secretly) 끊고자(απολύω release) 하여라고 했다.

즉 조용히 비밀리에 자유롭게 해주려고 했다.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 당시 목수의 직업은 어떤 수준이었을까?

물론 천한 직업이었다.

직업이 천하다고 사람이 천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직업이 귀하다고 사람이 존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귀하고 천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달려 있다.

요셉은 비록 비천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품은 다윗왕 가문의 자손답게 의로울 뿐 아니라 자비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셉은 고귀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예수그리스도의 법적인 아버지로 선택하셨던 것이다.

요셉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약혼한 처녀 마리아의 뱃속에 성령으로 잉태한 충격적인 사건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만약 성질이 급하고 까발리기를 좋아하는 남자와 마리아가 약혼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아마 노발대발하며 마리아를 창녀취급했을 것이다.

물론 상상을 해볼뿐이지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인류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시절을 맡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품을 수 있는 인품을 지닌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혹시 마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요셉은 조용히 덮어주고 끝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주의 천사가 꿈속에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기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되어진 것이며 그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라는 사실을 고지했을 때 요셉은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에 의문을 달지 않고 그의 약혼녀 마리아를 힘을 다해 보호하고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마리아의 거룩한 태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마1:20-21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그 당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황제의 명령을 따라 그가 살던 나사렛에서 본적지인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갔다.

그 당시 로마황제는 식민지민들에게 세금을 걷어내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요셉은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를 출산하게 된 것이다.

요셉은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는 것을 눈으로 지켜 보았다.

요셉은 꿈속에서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지시를 받고 어린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다.

그의 아내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생명의 보호자로 멀리 애굽으로 피하여 타향살이를 하며 헤롯의 위협으로부터 피해있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사악한 헤롯은 불타는 열병과 온몸이 견딜수 없는 가려움증과 그의 발은 부종으로 퉁퉁붓고 그의 배아랫부분은 염증이 생기고 그의 성기는 썩고 벌레들이 생겨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요셉은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는 고지를 받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동네에 와서 살았다.

요셉은 예수님이 12살때 유월절을 당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함께 동행한 기록 이후에는 성경에 그의 관한 기록이 사라졌다.

아마도 예수님이 12세 이후 소년시절에 요셉이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셉은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소년시절에 본받을 만한 아버지로써 목수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장차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장남으로서의 능력과 인품을 가르쳤을 것이다.

예수님은 법적인 아버지인 요셉의 가업을 이어받아 30세까지 목수로써 생업에 열심을 다했고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잘 돌보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린시절의 예수님에게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인자함과 의로움으로 가족을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존경하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성경에 요셉에 대한 기록은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크고 중요하다.

왜냐면 위험에 빠진 마리아를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버리고 지켜주었으며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소년시절의 멘토로써 듬직한 기둥과 언덕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사명을 다하고 소리없이 무대에서 사라져서 예수님의 광채가 역사속에 찬란하게 빛나도록 했던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다고 확신한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아버지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족보는 물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일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언젠가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신약의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호적상 아버지라고 하는 목수 요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의 생애에 대하여는 기록이 부실하다. 하기야 그나마 마리아에 대하여는 몇 차례 언급이 되고 있지만 마리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다. 복음서의 저자들이 마리아에게 좀 물어서 기록 으로 남겨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궁금증을 잠재울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요셉에 대하여는 두어번 이름만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요셉의 부모는 누구이며 역시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등에 대하여는 일체 기록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예수님의 호적상 아버지인데 복음서의 저자들이 너무 무심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요셉이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갔을 때에 새로 결혼한 마리아와 새로 태어난 아들 예수를 호적에 올렸을 것이다. 아무튼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저 유명한 성모마리아의 남편이 아니던가?

나사렛의 성요셉교회 내부(Credit)

초대교회 시절에는 다른 복음서, 즉 경외서에 요셉의 생애와 마리아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목수 요셉의 역사’(Carpenter Joseph History)라는 문서였다. ‘목수 요셉의 역사’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한 것으로 특히 요셉이 임종할 때의 기도문과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기술되어 있다. 교회가 이런 경외서를 복음서의 하나로 인정하느냐 또는 인정하지 않느냐는 것은 순전히 각 교회의 사정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들은 신약의 4복음서만을 복음서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신약경외서들을 인정하고 있는 종파들도 있으니 과연 세상을 넓다. 요셉에 대한 기록인 ‘목수 요셉의 역사’는 크게 믿을만한 문서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오늘날 교회에서는 요셉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귀도 레니(Guido Reni) 작품의 성요셉. 상당히 늙으셨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베들레헴은 그의 선조인 다윗의 고향일 뿐이며 요셉이 태어난 곳이라는 근거는 없다. 오늘날 서방교회는 요셉의 축일을 3월 19일로 삼고 있다. 3월 19일이 무슨 날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동방교회는 예수께서 태어나신후의 첫 주일을 요셉의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요셉은 여러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다. 성가족(聖家族)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서는 성가족(Holy Family)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등장한다.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기 때문에 목수를 상징하는 도구(자)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어린 예수와 함께 있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지만 성모 마리아와 둘이서만 함께 있는 그림이나 조각은 미안하지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신에 요셉은 일반적으로 백합송이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백합은 마리아에 대한 정절을 의미한다. 정혼은 하였지만 아직 혼인식을 치루지 않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한 것을 알고 이를 문제 삼지 않았으며 더구나 마리아가 계속 동정녀로 남아 있도록 협조해주었기 때문이다.

수태고지. 엘 그레코 그림

요셉은 만인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1870년 교황 비오9세가 그렇게 선포했다. 요셉은 또한 아직 태중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수호성인이며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야 했던 이민자들,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 의심을 품은 사람들,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다.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한 것은 요셉이 가족들과 함께 애급으로 이민을 가서 몇 년 동안을 살다가 고향으로 역이민하여 왔기 때문이다.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처음에는 심히 의심하여 가만히 파혼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며 나중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설명해 주자 그때서야 믿었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사람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수호성인인 것은 마침내 요셉이 의심을 풀로 마리아를 정식 아내로 맞아 들였으며 예수가 태어나자 그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요셉은 신실한 유태교도였다. 그래서 유태교의 절기들을 충실하게 지켰다. 요셉이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데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서 제사를 지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신실한 유태교인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처사이다. 오늘날 요셉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영국성공회, 루터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요셉은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남편이며 비록 명목상이지만 예수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사렛에서 성모 마리아가 물을 길었다는 마리아의 우물

[요셉에 대한 호칭]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목수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좀 어정쩡하다는 견해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인 것은 만인이 알고 있는 사항인데 또 무슨 아버지란 말이냐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 육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도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막말로 말하여 목수 요셉과는 피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이인데 무슨 아버지냐고 생각할수 있다. 그렇다고 요셉은 육의 아버지요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라고 구분하여 얘기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독생자)이라고 분명히 표현하였다. 사도신경에는 마리아의 이름은 나오지만 요셉의 이름은 그림자도 볼수 없다. 정말로 너무 푸대접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요셉을 예수님의 계부(Step father) 또는 양아버지(Foster father)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실제로 어떤 학자들은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 논문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양아버지라니? 예수님이 고아원 출신이어서 양자로 들어갔단 말인가?

성요셉과 아기 예수. 귀도 레니 작품

요셉은 일반적으로 ‘다윗 가문의 요셉’ ‘정혼한 요셉’ ‘노동하는 요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표현도 있다.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 요셉은 비록 예수님의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친부처럼 행동하였다. 그리고 누구든지 요셉을 성가족의 가장으로 인정하였다. 기독교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요셉의 아들로서 설명되었다. 다만,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아들’(마가복음 6:3)이라고 일컬어졌음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논란이 있다.

로마의 프리실라 카타콤(지하묘지)에 있는 ‘아기 예수를 보살피는 성모 마리아’ 벽화. 2세기경. 가장 오래된 성모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다.

요셉(JOSEPH), 마리아의 남편(HUSBAND OF MARY)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다윗의 후손(마 1:1~16; 눅 3:23~38)이었으며 나사렛에 살았다. 그는 마리아와 정혼했다. 그들의 결혼 직전에,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에게서 방문을 받았으며, 천사는 마리아가 구주의 어머니가 되도록 택함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눅 1:26~35). 요셉 또한 이 신성한 탄생에 관한 계시를 받았다(마 1:20~25).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지상에서 유일한 예수의 어버이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요셉을 예수의 아버지로 생각하였으며, 예수는 그를 그렇게 대하였다(눅 2:48, 51). 하늘에서 준 꿈에 의해 경고를 받아, 요셉은 애굽으로 피신하여 젖먹이 예수의 생명을 보전하였다(마 2:13~14). 헤롯이 사망한 후, 한 천사가 요셉에게 어린 그리스도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지시하였다(마 2:19~23).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버지가 둘인가? – Association For Creation Truth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른 이유

창조과학 사역은 단지 창조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결국 성경의 무오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 영역뿐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친 질문을 받을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다룰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의 예수님 족보가 다른 이유에 대한 질문은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두 족보는 겉보기에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중복되지 않는다. 특별히 이 두 족보를 보면 얼듯 보기 에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아버지가 두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먼저 족보 전체를 보자면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하향식으로 내려가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로 끝을 맺는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가르치심 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 시작해서 상향식으로 올라가 “아담 그 위는 하나님”으로 마무리한다. 아브라함부터 두 족보를 비교하면 다윗까지는 서로가 맞아 떨어지지만 다윗 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족보가 이어진다. 마태복음은 다윗 다음으로 솔로몬이 등장하며 왕들이 이어지지만, 누가복음에는 나단이 등장하며 왕 이 아닌 사람들로 이어진다. 마태복음에서 왕들의 이름은 여고냐(=여호야긴, Jeconiah)를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마 1:11). 이는 여고냐의 악한 행동 때문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시 없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그대로 사용 한 것이다.“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는 그(여고냐)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렘 22:30). 그러므로 여고냐 다음 사람 부터는 왕은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복음의 족보의 거의 끝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마 1:16)라고 기록하며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 면에 누가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 3:23)라고 하며 요셉의 아버지 가 헬리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두 족보에서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아버지가 둘 인것처럼 보인다. 마태복음 족보에서는 야곱, 누가복음에서는 헬리인 것이다.과연성경은 왜 이렇게 기록한 것일까? 실제로 헬리는 2명의 딸을 두고 있었다. 한 딸은 예수님의 육신 어머니인 마리아였고, 다른 딸은 세베대의 부인이었다(마 27:56, 요 19:25). 그런데 모세의 법 (민 27:1–11, 36:1–12)에서 기업을 물려 줄 아들이 없을 때는, 사위가 결혼 후에 가계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했을 때, 모세의 법에 따라 헬리의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족 보에 합법적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 보면 요셉의 진짜 아버지는 야곱이며 헬리는 자신의 장인, 즉 마리아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마리아 뿐 아니라 다말, 라합, 룻 등과 같은 여성들이 포함 되고 있는 반면에 누가복음에는 엄격하게 남자만 기록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만약에 누가가 예수님의 족보에 여성을 넣을 생각을 했었다면 마리아를 적어야 했었을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철저하게 남자만을 가지고 예수님의 족보를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면서도 사위인 요셉의 이름을 넣어야했을것이다. 또한 형태로 볼 때 두 족보는 차이를 보여준다. 마태복음은 ‘누가 누구의 아버 지’가 되는지(begot, 그리스어로 gennao)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누가복음에서는 그곳에서 ‘그 위는 ’ 으로 표현되어 있다(영어로 son으로 번역되어있기도 하지만 실 제로 헬라어에는 son이란 단어가 없음). 헬라어 성경 안에서 족보 상 ‘son(아들)’ 이 사용된 곳은 23절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son)’이니” 라는 한 구절 뿐이다. 즉 누가는 요셉이 헬리의 아들이라고 결코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여기서도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였으며, 마태복 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왕의 족보를 통해 누가복음은 사람의 족보를 통해 다윗의 두 아 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결국 모두 아브라함까지 이어진다. 즉 마태는 다윗을 통 해 내려온 왕의 계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누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 아담을 넘어 하나님까지 이르게 하 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첫 아담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즉 아 담 때문에 창조 세계 안으로 죄와 죽음이 들어왔고, 그래서 구원자로 하나님이 신 예수님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두 족보는 모두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태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 게서(야곱이 아니라)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 가는 좀 더 분명하게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as was supposed) 요셉의 아들이니…” 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가 아닌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족보는 아슬아슬한 두 가지 예언이 모두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왕 (의 족보)으로 오심과 동시에 동정녀(마리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한 절묘 한 성취이다. 즉 이 족보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됨과 동시에 성경이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시고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짐을 확인하는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딤후 3:15)

참 조 Contradictions: What’s in a Father’s Name? Bodie Hodge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timeline/genealogy/whats-in-a-fathers-name

On the genealogies of Jesus http://www.christian-thinktank.com/fabprof4.html

Some supplemental points on the genealogies of Jesus http://www.tektonics.org/gk/jesgen.html

The Curse of Jeconiah and the Signet Ring http://messianicart.com/chazak/yeshua/jeconiah.htm

마리아, 13세에 예수 출산…남편 요셉은 30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티치아노(1488/90~1576)가 그린 ‘성모 승천’. 로마가톨릭과 정교회는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친 마리아가 아들 예수가 있는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또 천사가 말하길 마리아여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사 청결케 했으며 너를 모든 여성들 위에 두셨노라.” 이슬람 경전 코란의 제3장(Sura) 이므란 42절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마리아는 특별한 존재다. 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신자 40억 명이 그들의 경전을 통해 마리아의 존재를 알며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전개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사도 시대(apostolic age)’부터 신자들의 공경을 받았다. 서구 역사에서 마리아는 가장 많은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된 여성이다. 마리아를 빼놓고 서양 음악사와 미술사도 논할 수 없다. 종교를 떠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구노의 ‘아베 마리아’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듣고 뭉클해지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00년 동안 2만 번 ‘발현’

아무리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라도 오늘날 발현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없다. 마리아는 중요한 예외다. 마리아는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발현(apparition)’하고 있다.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한 마리아는 ‘소련의 회심’을 예고했다. 일부 발현 사례는 교회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리아가 발현한 사례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2만 건이 넘는다.

역사적으로 마리아만큼 중요하면서도 생애가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드물다. 마리아는 신약성경의 4복음서에서 13번 나온다. 마리아는 갈릴레아에 있는 나자렛에서 출생했다. 인구가 4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마리아(아람어로는 미리암)는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의 이름이 마리아였다. 당시 풍습을 고려하면 마리아는 아마도 12세에 결혼해 13세에 예수를 낳았다.

남편 요셉은 30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남성의 평균 수명이 45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요셉은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공생활(公生活)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당시 여성은 6명 정도의 자식을 뒀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에게도 ‘형제자매’가 있었다. 아우가 4명, 여동생이 2명 이상 있었다. 그들을 마리아가 낳았는지, 요셉의 전처 소생들인지는 알 수 없다. 사촌 형제들일 수도 있다.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를 낳고 길렀으며, 예수가 행한 최초의 기적 현장, 십자가의 현장,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다. 예수의 ‘승천’ 이후 마리아가 나자렛으로 돌아갔는지, 예루살렘에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마리아를 애제자 요한에게 맡겼다. 마리아는 사도 요한과 더불어 지금 터키에 있는 에페수스로 갔을 가능성도 있다. 19세기 어떤 수녀가 마리아가 살았던 집의 환영을 보았다. 수녀가 환영에서 본 마리아의 집과 비슷한 유적을 에페수스에서 발굴했다. 그 집을 마리아가 거처했던 곳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리아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약간 풀어주는 것은 서기 145년께 집필된 외경(外經)인 『야고보 복음서』다. 이 문헌에 따르면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 마리아의 부모들은 아주 늦은 나이에 마리아를 낳았다. 마리아는 성전(聖殿)에 바쳐져 성전에서 자랐으며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했을 때 홀아비였다. 예수의 형제자매들은 전처 소생이었다.

마리아에게는 수천 개의 호칭이 있다.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과 같은 것들이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그리스어 ‘테오토코스(Theotokos)’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의역한 말이다. 테오토코스는 ‘하느님을 잉태한 자’라는 뜻이다.

에페수스 공의회(431)에서 확정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4~5세기 그리스도론의 논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도론(Christology)은 그리스도의 성질·인격·행위를 다루는 신학의 한 분야다. 그리스도교 일각에서는 21세기를 ‘성령의 세기’라고 부른다. 지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특히 초기 수백 년은 예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컸다. 예수는 하느님인가, 인간인가 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인가라는 논란에 주류 혹은 정통파 그리스도교가 내린 결론은 예수가 동시에 ‘100% 하느님이자 100% 인간’이라는 것이다.

삼단논법으로 전개하면 “예수는 하느님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스도교회 중 로마가톨릭·정교회·루터교·성공회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일컫는다.

그리스도론에서 파생했다고 볼 수 있는 마리아론(Mariology)은 계속 새로운 교의를 낳았다. ‘동정녀 마리아 탄생설(Virgin Birth)’에 따르면 예수의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이 교의는 2세기께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사도신경’에 포함됐다. 오늘날 로마가톨릭·정교회와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가 믿고 있는 교리다.

4세기 이후 보편화된 평생 동정녀설에 따르면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했을 때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도 전 생애에 걸쳐 영원히 순결했다. 출산할 때도 고통을 겪지 않았다. ‘마리아의 평생동정(Perpetual Virginity)’은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의가 됐다. 마르틴 루터도 지지한 교의지만 다른 종교개혁가들은 이 교의에 반대했다. 오늘날에는 로마가톨릭, 정교회, 일부 성공회와 루터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교의다.

개신교는 ‘마리아 숭배’ 경계

루터는 루가복음서 1장 46~55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讚歌·Magnificat)’에 대한 논문을 썼고 장 칼뱅은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관점은 16세기 종교개혁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멀어진 요인으로 작용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가톨릭교회는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교의를 확정했다. 교회일치를 바라는 개신교 신자에게는 근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를 선포했다. 마리아는 잉태됐을 때 아담이 지은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5세기께부터 발전한 오랜 믿음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마리아의 승천(Assumption)’을 교의로 발표했다. 이 역시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믿음이다.

개신교회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마리아 숭배(Mariolatry)’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한다. 마리아의 무염시태나 승천에도 반대한다. 개신교 신학에 따르면 마리아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죄가 있는 죄인이다. 죽은 후에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의 호칭 중에는 ‘평화의 여왕(Queen of Peace)’이라는 것도 있다. 마리아는 다문화 시대의 평화와 갈등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다종교 사회이기도 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이질적 그룹들의 접촉이 많아지면 종교와 관련된 접촉도 많아진다. 종교적으로 공통점이 많고 차이점이 적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점이 더 심각한 갈등을 부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그리스도교는 교단이 달라도 대체적으로 공존 시대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다. 코란에는 예수도 나오고 마리아도 나온다. 이슬람도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 마리아는 코란에 34회 나온다. 한 이슬람 문헌은 네로 황제 시대에 요한과 마리아가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슬람은 선지자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존중하지만 예수와 마리아를 무슬림이라고 본다. 개신교는 가톨릭이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지만, 이슬람 입장에서는 예수 또한 인간일 뿐 ‘하느님의 아들’도 ‘성자(聖子) 하느님’도 아니다. 코란의 5장인 ‘마이다’의 116절을 보면 하나님이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나님을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라 하였느뇨”라고 묻자 예수는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했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라고 답한다.

이브 때문에 타락, 마리아 덕분에 구원

다문화 사회에서는 종교와 페미니즘도 상호작용을 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는 현장에도 있다. 전통 사회에서 마리아론은 이중적인 역할을 했다. 마리아는 부권사회에서 억압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독일어 표현을 쓰자면 여성이 해야 할 일과 있을 곳은 ‘Kinder, K<00FC>che, Kirche(아이들, 부엌, 교회)’로 요약됐다. 마리아는 육아와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됐다. 마리아의 순종과 정결성은 웬만해선 도달하기 힘든 족쇄였다.

마리아는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는 기능도 했다. 2세기에 활동한 신학자 에이레나이오스는 이브와 마리아를 대비시켰다. 하느님을 거역한 이브 때문에 인류가 타락했으나, 하느님에 순종한 마리아 덕분에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미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은 마리아의 공로라고 주장한다. 1980~90년대 일부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는 성령을 여성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를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마리아 위상의 강화와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반인은 감지하기 어려운 기류가 있다. 교회가 예수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가톨릭이 예수와 마리아를 ‘공동구원자’로 내세우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개신교 측의 시각을 불식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 상당수 가톨릭 신학자는 마리아가 예수 외에 다른 자식들을 낳았다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이끈 야고보는 예수의 친동생이라는 것이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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