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복음 4 장 1 11 절 | [Live] 공생애를 위한 시험 (마태복음 4:1-11)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10118 116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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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목) “마태복음 4:1-11” / 작성: 김광욱

마귀가 감히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에게 시험을 할 수 있느냐 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놀라운 일이지만 마귀가 절대 주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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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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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1절(사탄과의 영적전쟁5) – 네이버 블로그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장 1-11절). ​.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유”와 이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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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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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1절

성경본문: 마태복음 4장 1-11절 본문은 예수께서 받은 광야 시험에 대한 마태복음의 증거이다. 마태복음 3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께서는 요단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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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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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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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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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방법 (마태복음 4장 1-11절) – 다음블로그

본문말씀 : 마태복음 4장 1-11절 (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절)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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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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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마태복음 4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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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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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받으시는 예수님(마 4:1-11) – 새벽기도 설교 | 동탄영락교회

… 예수님(마 4:1-11). 페이지정보. 2020-04-03 우인택 목사 마태복음 4:1-11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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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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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1절 말씀 (시험 받을 때에) – 개인의 생각

마태복음 4장 1-11절 말씀 (시험 받을 때에) · 1.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육의 양식이 필요로 합니다. 왕상19장: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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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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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 1~11 – 분당소망교회

배고픔이든지 어떤 형태이든지 절박한 것은 조심해야합니다. 인생인지라 절박한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절박한 일이 생길 때 절박한 것에 지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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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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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목) “마태복음 4:1-11” / 작성: 김광욱

본문 마태복음 4:1-11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성령에게 이끌리어(1절)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사건, 천국 전파의 시작, 갈릴리 어부들을 부르심, 그리고 가르치는 사역과 각종 병든 자들을 고치신 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사건입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 때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어느 시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마귀가 감히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에게 시험을 할 수 있느냐 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놀라운 일이지만 마귀가 절대 주권을 가지고 그것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약 시대에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욥이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승인 하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자신의 욕심으로 시험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시험에 허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하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입니다.

금식하신 후에(2-4절)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셔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40일을 밤낮으로 금식을 하셨다는 것은 한 끼도 드시지 않으시고 하루 종일 금식을 40일 동안 지속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리셨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배가 고프지 않으셨겠습니까? 만약에 예수님께서 배고픔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상에 죽음 역시 헛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우리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동일한 고통이었습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시험하는 자는 곧 마귀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에 빠트리려고 건넨 첫 번째 말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마귀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유혹 전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여 주리신 예수님에게 먹을 것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불가피하게 금식해야 할 때에 금식시간이 길어질수록 먹고 싶은 음식들이 떠오릅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앞에 갖다 두고 먹지 말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음식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악인들이나 할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돌로 떡을 충분히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리신 예수님께서 혼미해서 순간적으로 돌을 떡으로 만드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으로 마귀의 꾀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떡이 주린 육체를 배부르게 할 수 있을지언정 떡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영원히 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고자 한다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5-7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귀가 첫 번째 유혹 전술을 펼쳤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려고 했던 두 번째 유혹 전술은 상대의 강점을 이용하여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갔습니다.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귀가 예수님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 그러면 전능하신 너의 아버지께서 천사에게 명하여 손으로 너를 받아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구약성경 시편 91편 11,12절 말씀을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며, 복음 전도자가 아니며, 의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단들이나 삯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교묘히 이용해서 선한 자처럼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성도의 약점을 건드려 그를 넘어가게 할뿐만 아니라 성도의 장점을 부추겨 교만에 빠트려 그를 넘어뜨리려고도 합니다. 우리의 강함이나 약함으로 교만하거나 열등하지 않도록 항상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악인들의 꾀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시험에 빠트리려고 했던 마귀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으로 마귀의 꾀를 물리쳤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고 살아가는 성도에게 ‘네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무엇을 해 보라’는 식의 꾀로 시험에 빠트리려고 하는 악인들이 접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악인들의 꾀에 의해 그 일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우리에게 감언이설로 꾀를 부릴 때라도 항상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마귀의 통로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8-10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두 번의 꾀에도 예수님이 넘어가지 않자 이번에는 예수님을 천하만국이 다 보이는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지상에서는 시야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빌딩이나 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넓고 먼 곳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높이가 높을수록 더 큰 세계가 보입니다. 세 번째 마귀의 전술은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부와 권력을 미끼로 자신에게 경배를 요구하였습니다. 눈 한 번 딱 감고 마귀를 경배한다면 상상을 초월한 부와 권력이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 세계 최고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섬김의 대상이 아닌 것을 섬긴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천하만국은 아니더라도 개인마다 부와 권력의 허황된 기대치가 있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다.’ ‘이 정도 재산까지 모으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물질이 우상이 되고 사람이 우상이 된다면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직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 마귀의 시험에도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와 같은 악인들이 어리석은 질문이나 꾀로 시험할 때에, 지혜로운 답을 통해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마음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즐거워하여 그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천사들이 나아와서(11절)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가 다양한 꾀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넘어가지 않자 더 이상 예수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마귀가 떠나자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다양한 유혹을 이긴다면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셨듯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합니다.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를 물리치면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시험을 잘 치른 사람에게 내리는 복입니다. 이런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실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죄 없으신 분으로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겠습니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하신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받도록 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믿음을 보기 위함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담의 이후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마귀의 시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험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고, 숙고하는 묵상을 하십시오. 오늘도 새벽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저희들의 주홍 같은 붉은 죄를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해 주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저희의 본이 되어 주심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한 뱀처럼 사람을 시험하고자 하는 마귀가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로 넘어오라고 끊임없이 유혹할 때에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게 하시옵소서. 마귀의 변형체인 악인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로 유혹할 때에나 저희의 약점과 강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유혹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게 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나아가 행함으로 이어지는 묵상의 생활화, 예배의 생활화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는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마귀의 시험일지라도 하나님의 승인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2. 만약에 마귀가 나의 약점을 자극해서 시험한다고 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만약에 마귀가 나의 장점이나 능력을 부추겨 시험한다고 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마귀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허상을 꿈꾸게 하여 사람을 유혹합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가 목적(섬김의 대상)이든 이것들을 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을 섬김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신앙공동체가 시험을 잘 이겨낸 후 천사의 수종을 받는 것과 같은 은혜와 복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작성: 김광욱)

마태복음 4장 1-11절(사탄과의 영적전쟁5)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장 1-11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유”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유”에서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묵상하였습니다.

<더 깊은 묵상>

마태복음 4장 1-11절

성경본문: 마태복음 4장 1-11절

본문은 예수께서 받은 광야 시험에 대한 마태복음의 증거이다. 마태복음 3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께서는 요단에 이르러 세례 요한에게세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하늘에서부터 들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장 16-17절)

세례를 받으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장 17절) 전파하면서 본격적인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그가 성령에 의해 이끌리어 광야로 간 것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 그 중요한 구원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만 했는지는 우리가 말할 수없다 하더라도 주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고..이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주께서 친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목적은 두말할 필요없이 그가 이제 구원해야할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은 혈육에 속한 자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혈육에 속하여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 2장 14-15절)

예수의 구원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원수를 사로잡아 자기 발아래 복종시키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서 받은 시험은 하와를 속이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였던 선악과를 아담으로 먹게하여 온 인류를 죄악과 사망의 고통 속에 빠지게 했던 사탄에게 직접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몸소 이겨냄으로써 종국적으로 사탄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멸하여 사람을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하고 하나님이 원래 지으셨던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돌려 회복하려는 거룩한 구원의 목적성에 대한 유형론적 상징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이 시험은 예수의 생애에 단지 우발적으로 생겨난 일시적인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성령에 의해서 친히 이끌려진 시험이었고 예수의 삶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도전해 온 시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탄의 시험의 목적은 다른 아닌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마태가 증거하는 증거를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받은 시험의 깊은 부분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왜나하면 이미 말한 것처럼 이 시험은 예수께서 몸소 받은 시험이었지만 동시에 오늘 이 시간에도 구원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닥쳐오는 시험, 즉삼킬 자를 찾아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는 사탄 마귀의 모든 시험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유형론적 대표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마귀는 시험할 때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이러한 마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귀의 시험은 한편으로는 아주 단순하고 조잡하고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집요하며 끈질기며 교묘하고 때로는 얼마나 인간적인 호소력을 갖는가?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마귀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종국적 목표를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는가를 깨닫게 될것이다.

먼저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마귀에게 시험받으로 간다는 도입부분(1절)과 시험을 무사히 이겨내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는 마침 부분(11절)을 제외하면 2절에서 10절까지 9절에 걸쳐서 시험의 종류에 따라서 세절씩 구분해서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시험: 2-4절(3절)

두번째 시험: 5-7절(3절)

세번째 시험:8-10절(3절)

시험의 내용을 보여주는 본문은 2-10절까지 9절인데 그 중 가장 가운데 절인 6절은 마귀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시험하고 있다. 세번의 시험 중에서 두번째 시험 중간이며 동시에 전체 시험의 가장 중심에 마귀는 스스로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를 시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예수를 시험하는 자신의 일도 하나님의 중요한 일이라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의 중간에는 항상 이렇게 마귀의 시험이 우리를 노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럼 이제 예수가 겪은 첫번째 시험부터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험을 당할 때에 시험을 하는 자가 시험하고자 하는 목적과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쉽게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도 출제자는 수험생이 특정한 문제를 풀 때 실수하거나 빠지기를 기대하는 함정을 두고 출제를 하기 마련이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숙지하는 자는 그러한 출제자의 함정을 피해가지만 피상적으로 준비했거나 시험칠 때 신중하지 못하고 덤벙된다면 반드시 출제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그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본인은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하는데 뒤에 점수를 보면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는 것을 다 틀렸다고 말해야 하는 부끄럼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문제를 틀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것이고 시험하는 자의 함정에 걸렸다는 점에서 시험받는 자는 시험하는 자에게 진 것이다. 바로 시험하는 자는 시험받는 자가 넘어지거나 빠지기를 기대하는 장애물이나 함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에서도 우리는 마귀가 시험하면서 어떤 함정을 파두고 예수가 넘어지기를 기대하는가를 우리는 간파해야 할 것이다. 마귀가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시험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의 의도와 목적은 영적인 분별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마귀는 아주 교묘하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고 분명한 질문인 듯하지만 그 안에 아주 복잡한 계획을 심어 두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마귀의 시험도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둔 곡식에다가 마귀는 자기의 가라지를 함께 뿌려둔다. 그래서 완전히 다 자라고 나면 분명히 구별될 일이지만 자라는 중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곡식과 가라지 비유)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일을 결말에 가서야 바르게 깨닫게 되지만 그 도중에는 종종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구별하는게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우리를 시험하는 자가 그 시험으로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며, 여기 예수의 시험에서 마귀는 자신의 모든 시험이 가지는 종국적인 목표와 궁극적 목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마음에 담아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성령의 능력과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럼 마귀가 질문 할때 그 질문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가는 마귀의 질문 자체에서 우리는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언제든지 영적으로 온전한 분별력을 갖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마귀의 요구에서 직접 그 의도를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의 대답에서 긔 의도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항상 마귀를 대적하는 기본적인 정석이다. 마귀가 어떤 의도로 예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예수가 마귀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를 통해서만 분명히 할려진다. 예수는 시험하는 자로서 마귀가 어떤 함정을 파두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 마귀의 요구에 합당하고 효과적으로 대답하여 마귀의 생각을 단번에 일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가 예수에게 어떤 요구를 왜 하는지를 예수가 마귀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알수 있을 뿐이다.

자 그럼 이제 본문의 아키텍쳐를 한번 정확하게 살펴보자. 전체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 부분은 다시 세 부분은으로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각 부분은 또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체는 시험으로 끌어들이는 부분과 시험하는 부분과 시험에서 나오는 부분으로 나뉘고 시험 부분은 세개의 시험으로 나뉘고 각 시험은 설정된 상황과 시험하는 자의 요구와 시험받는 자의 응답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키텍쳐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시험으로 들어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는 광야로 갔다. 그 인도자는 성령이있고 목적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서이다. 광야는 종종 하나님이 자기 성도를 훈련하는 곳이다. 예수도 위대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다. 광야는 사람이 스스로 살아남기 아주 힘든 곳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인도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간을 보냈다. 그 광야길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였으며 아침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고 저녁에는 하나님이 바람으로 몰아오는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생존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법 즉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광야생활이다. 예수도 바로 이러한 광야 생활로 인도되었다. 예수는 이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살도록 요구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를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마귀가 시험하는 자로 기다리고 있었다.

2. 시험 내용

1. 첫번째 시험(2-4절)

설정상황(2절):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첫번째 시험으로 설정된 상황은 예수가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낮에는 불처럼 뜨겁고 밤에는 몸시 추운 그 광야에서 40일 밤과 낮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후 광야을 40년간 방황했던 것처럼 예수는 광야로 이끌려 와서 40일을 주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금식했다. 그 척박한 땅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에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시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설정된 상황이다. 그래서 예수는 몹시 주린 상태였다. 사실 보통 사람에게는 그 광야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도 않고 견딘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진 시험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금식이 요구된 광야 40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사는 삶의 모습이다.

마귀의 요구(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0일 금식후에 예수는 몹시 주린 상태였다. 예수의 몸은 죄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므로 그 광야에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감당하는 동안 몹시 주리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럴 때에 마귀가 예수에게 나아와서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면 광야의 돌들을 떡덩이라가 되게 하라고 요구한다. 마귀는 이 요구를 통해서 무엇을 시험하고자 했는가? 우리는 흔히 예수의 배고픔을 시험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40일 금식후 몹시 주린 예수에게 배고픈데 광야에서 먹을 것은 구할 수 없고 예수는 하나님 아들로서 능력도 충분하니 광야의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는 시험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전적으로 틀렸다거나 일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몹시 주린 예수에게 돌이라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요구는 그렇게 황당하지는 않은 요구일 것이다.

배고픈 예수에게 예수의 배고픔을 시험하는 것이 여기서 마귀의 목적인 것인가? 마귀는 여기서 배고픔이 얼마나 어려운 고통이냐 그러니 배고픔을 물리치라고 요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배고픔이 아닌 듯하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마귀가 시험하는 내용의 본질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하는 전제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요구에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배고픔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로서 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 즉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데 마귀의 요구가 있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능력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마귀는 요구한다. 광야의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배고픔은 얼마나 큰 고통이며 배고픈 자들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광야의 돌이 다 떡이 되어서 배고픈 자들이 먹고 배부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실제로 오병이어의 기적도 결코 광야의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서 제공한 기적은 아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결코 광야의 돌덩이로 떡덩이라가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고 배불러서 예수를 잡아서 임금삼으려는 민중들에게 말하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장 26-27절)

예수의 대답(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돌로 떡덩이로 만들어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라는 마귀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는 성경말씀으로 대답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개인적으로 마귀의 시험에 대처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어진 영적질서를 예수는 좇는다. 앞에서는 누차 얘기했지만 마귀의 시험이 요구하는 함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에서 찾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마귀의 시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돌덩이를 떡덩이가 되게라하는 마귀의 요구에 신명기 8장의 말씀으로 대답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장 2-3절)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하시면서 낮추시고 주리게 하면서 만나로 먹인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로 보건데 예수가 광야에서의 40일 밤낮으로 금식한 참된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의 원리를 몸으로 철저하게 그러나 전인류를 대신해서 유형론적으로 숙지하는 데 있음이 자명하다. 마귀가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돌들을 떡덩이라가 되게 하라는 요구는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게 40일을 금식해보니 어떠냐 이제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줄 알겠느냐 인생의 참된 목적은 바로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있고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느냐.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광야의 돌들들 떡덩이로 변하게 하여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라 – 이것이 바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한 함의였고 예수는 마귀의 그 시험을 간파하고 사람이 사는 것은 떡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상기시킴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다. 종종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위대하게 인정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떡으로만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인생이 참된 인생이요 하나님이 인생에게 원하시는 참된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자녀에게 광야라는 척박하고 고달픈 길을 예비하는 것은 바로 이 진리를 몸에 익히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2. 두번째 시험(5-7절)

설정상황(5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첫번째 시험에서 성공하지 못한 마귀는 이제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다.

마귀의 요구(6절):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성전위 꼭대기에 세우고 성전에서 뛰어내려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동안 유대인들로부터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신자임을 거듭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요한복음에서 아주 적극적이고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예수는 세상에서 자신의 사역을 하는동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계속해서 요구받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암시한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2장 38-39절),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마가복음 8장 11-12절),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한복음 2장 18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요한복음 6장 30절)

시험하는 자 마귀는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돌을 떡엉이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됨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이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너가 하나님 아들임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이적을 보여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 모습을 말한다. 마귀의 요구에서 마귀의 뜻을 찾으면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기서도 마귀의 숨겨진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에서 읽는데 실패해서는 안된다.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놀라운 표적을 세상에서 행해서 주목을 받으면서 자기가 진짜 하나님이 아들임을 세상에 보여주라는 의도는 마귀의 아주 피상적인 의도일 뿐이다. 마귀가 처음에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통해서 한 것처럼 이번에는 인간의 명예와 명성에 관한 심리적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예수를 시험에서 함정에 넘어지게 하고자 한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사람의 눈에는 더욱 절실하게 보인다. 그래서 첫시험이 생물학적 배고픔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심리적 배고픔에 관한 것 즉 명예와 명성과 이름에 대한 갈망 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쉽다. 실제로 그러하다. 마귀는 처음에 배고픔이라는 생물학적 육체적 욕구에서 이제는 심리적 정신적 욕구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을 멈추어 버리면 이것은 아직 피상적인 교훈일 뿐이다. 이렇게만 알고 있다는 우리는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마귀는 이런 쉬운 결론으로 우리를 언제나 속이며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귀도 그냥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첫 시험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고 마귀 자신도 성경말씀을 시도한다. 여기서 우리는 혼동해서는 안된다. 혹자는 같은 말이라도 성경말씀 조차도 하나님이 하면 하나님 말씀이고 마귀가 하면 마귀 말이라는 어리석고 지혜없는 주장을 하곤 한다. 여기도 마귀가 인용한 성경말씀은 절대적으로 성경말씀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이 쓰든지 마귀가 쓰든지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인친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사용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를 오용한 댓가를 스스로 치르야 한다. 성경말씀을 마귀가 인용하면 마귀의 말이 된다는게 도대체 말이 되는 말인가? 그런데 가끔 그런 어리석고 분별없는 말을 하는 자들이 더러 있어서 잠시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다.

이번에는 마귀도 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인증하고자 한다. 예수가 성경으로 대응하면 자기도 성경으로 예수를 시험하겠다는 의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마귀는 자기가 예수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코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니고 성경에서 충분히 인증되어지는 그러한 요구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그 말씀을 본래의 목적에 따라 읽지 않고 자기의 뜻이나 사상을 정당화하는 논거나 징검다리로 사용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며 부당한 일이다. 이런 일에 목사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설교자들이 설교하면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먼저 다 정해놓고 그 생각을 이어가는 수단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한다면 그건 바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말씀을 인증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될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단들이나 잘못된 가르침들이 이러한 오류에서 근거하고 있다. 성경의 참된 뜻을 그 성경의 텍스트에서 찾지 않고 미리 자신의 생각을 다 세워놓고 그 생각의 자리에 말씀으로 포장하고 위장하는 악질적인 왜곡으로 가득채워 놓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모독죄에 해당하며 마귀에 속하여 결코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마귀는 성전꼭대기에 뛰어 내리도록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편 91장 11절)말씀을 근거로 내세운다.

예수의 대답(7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의 시험의 숨겨진 의도는 언제나 예수의 대답에서만 찾아진다. 예수는 성경을 통한 시험에 대해서 이는 마귀가 자기가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래서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대답으로 대응하였다. 즉 마귀가 예수를 빠지게 하려는 계획은 예수가 온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도록 심리적 정신적 욕구를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숨은 의도는 하나님의 시험하고 예수로 하여금 친히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려는 것이었음이 예수의 대답을 통해서 명백하게 주어진다. 이와 같이 마귀의 시험은 참으로 교묘하다. 사실 마귀의 종국적인 목적은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함으로써 우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목표로 한다.

욥의 시험이 생겨난 결과도 마찬가지다. 사탄은 욥을 참소함으로써 욥에게 관심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모든 이유를 돌렸다. 욥의 개인적인 경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편애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섬기지 하나님이 욥을 적으로 만들면 욥도 하나님을 적으로 생각하고 저주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사탄은 원래부터 참소하는 자로서 세상의 모든 책임을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리려는 악하고 왜곡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로 사탄의 의도에 잘 맞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전 꼭대기에서 한번 뛰어내리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사자를 시켜 너를 붙들어서 네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해줄거라고 마귀는 말하면서 결국은 진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이 참으로 그러한지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마귀가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예수가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그 표적을 통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실증과 영광을 얻으라는 표면상의 요구 뒤에는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리고 진짜 그 아들에 대해서 성경의 말씀이 참된지 한번 시험해보려는 본래 속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예수는 이 사탄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한마디로 잘라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대답을 통해서 시험을 물리친다. 우리는 므리바의 시험을 기억해야한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출애굽기 17장 7절)

예수는 이 시험에서도 역시 자기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대응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는 참된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증해 주는 것이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진리요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는 참된 첩경이기 때문이다.

3. 세번째 시험(8-10절)

설정상황(8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제 마귀는 세번째로 예수를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준다. 처음에 광야에서 시작하여 성전 꼭대기로 마지막으로 높은 산으로 데로고 간다. 낮은 광야 땅에서 높은 성전으로 그 다음 지극히 높은 높은 산으로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시험의 단계도 생물학적 육체적 단계에서 심리적이고 정신적 단계로 마지막으로 영적인 믿음의 단계에까지 올라간다. 즉 마귀의 시험은 처음에는 생물학적인 육체나 물질적인 세상에서 출발하는 듯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점차 인간의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세계로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신앙의 단계로 부딪쳐오게 된다. 알고보면 육체적인 욕구인듯 보이는 문제가 마지막에는 결국 영적인 신앙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마귀의 요구(9절):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여기서 마귀는 모든 시험들에 숨어있는 본래의 목적을 드러낸다. 마귀가 모든 시험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궁극적 결과물이다. 마귀의 모든 시험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 자신을 경배하라는 메시지가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진리로서 성도들은 마음 속에 깊이 아주 철저하게 새기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시험에서라도 우리가 굴복한다면 결국 최후의 결과적 요구는 바로 마귀 자신을 경배하라는 데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모든 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주면서 이 모든 것을 줄테니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예수를 시험한다. 누가복음의 증거에 따르면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누가복음 4장 5-7절)

사실 이 천하만국을 마귀가 자기 임의대로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준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다. 만물 위에서 만물 가운데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요,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참칭하면서 마귀는 만국의 영광이 마치 자기 것인양 내세우며 예수에게 마귀를 경배하도록 시험한다. 참으로 참람한 배도요 모독이다. 마귀의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데살로니가 후서 2장 4절) 마귀의 본래 의도는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서 스스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그의 시험의 궁극적 요구도 다름아닌 자신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에게 스스로 만국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경배하면 그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한다.

이미 말한 것처럼 여기서도 마귀의 시험의 겉모습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의 목적은 우리의 권력욕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경배하게 만들려는 영적인 맹목성이다.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본질이요 이런 점에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을 하나님인양 섬기려는 피할 수없는 충동을 가진 존재로서 이른 바 누구 말처럼 우상제조기이며 우상제조공장이다. 마귀는 여기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우상숭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책임은 다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자기가 취하려는 극히 불순하고 악독한 도둑놈 내지는 강도 심보가 바로 마귀의 본심이라는 걸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의 대답(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터놓고 요구하는 마귀의 시험에 대해서 예수는 아주 강경하게 대응한다. 왜냐하면 이는 마귀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낸 배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감히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주장하면 마귀를 경배하라고 말하는 마귀의 불경스러운 시험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아주 단호하고 강경하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하면서 마귀의 본래실체를 드러낸다. 시험자 마귀는 다른 아닌 참소자 사탄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고 거짓을 꾸며내고 하와를 유혹해서 아담으로 함께 선악과를 먹게 만들고 거짓의 아비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바로 사탄이다. 그래서 예수는 진리를 듣지 않는 유대인에게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한복음 8장 44절) 마귀는 본래부터 거짓말하는 자라서 진리 위에 서지 못하고 그 안에도 진리가 없고 무엇을 말하든지 하나님의 것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고 항상 자기 것으로 거짓을 꾸며내어서 말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시험하면서 제공하는 만국의 영광도 자기것이 아니며 마귀의 모든 목표와 목적은 어떤 거짓말을 지어내서라도 사람을 유혹하여 결국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사탄을 섬기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말씀으로서 사탄을 강하게 물리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은 성도를 시험하는 마귀로서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면 삼킬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삼킴을 당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게 되면 종국적으로 사탄의 종으로 살게된다. 예수는 친히 마귀에게 이 모든 시험을 당하였지만 말씀으로 이겨내고 우리 모두 믿는 자의 구주가 되어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이 시험에서 구원해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처음에는 삭막한 광야에서 배고픔이라는 육체적인 대상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성전 꼭대기에서 보다 높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이용해서 마침내는 지극히 높은 산에서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영적으로 맹목이 되어 사탄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도록 하는데까지 그 마수를 뻗친다.

우리 성도의 삶은 살아가면서 보통 고난에서부터 시작해서 보다 높은 내적인 가치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나아간다. 광야의 훈련에서 시작하여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나아가서 온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삶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일반적 삶의 일련의 이러한 과정 가운데는 반드시 마귀의 시험이 때로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심리적이고 정신적 내적 가치로(여기에는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는 성도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는 영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것도 때로는 마귀의 모습으로 때로는 광휘의 천사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면서까지 성도를 시험하러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대처하다가는 결국 사탄의 교묘한 숨은 술책에 걸려들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탄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서 사탄의 모든 휼계를 담대하게 물리쳐야 할 것이다.

3. 시험에서 나옴(11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의 이런 모든 시험을 이기고 관문을 통과한 예수를 이제 천사들이 와서 수종을 든다. 이는 시험을 통과한 자의 영광이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왜내하면 마귀가 예수를 떠난 것은 잠시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누가복음 4장 13절)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마지막 최후의 일전을 치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예수의 시험을 통해서 마귀의 시험이 얼마나 교묘한가 살펴보았다. 마귀의 시험은 겉으로 보기에는 배고픔이나 정신적 명성이나 만국의 영광에 대한 권력을 주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보면 하나님의 말씀에따라 살지 않고 자신의 배를 따라 살게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여 마침내는 사탄에게 엎드려 절하게 만들려는 본래적인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든지 마귀의 시험에 영합한 자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된다는 진리를 반드시 성도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이나 사회적 성공이나 자랑스런 정신적 가치 뒤에서 사탄은 광휘의 천사로 자신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시험하고 마치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게 만드는 영적 맹목성의 본래적인 목적을 배후에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목적에 있어서나 방법에 있어서나 무슨 일이든지 그 전체적 과정에까지 오직 진리인 순전한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여 살면서 예수께서 한 것처럼 사탄의 모든 시험을 단호하게 말씀으로 물리쳐야 할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시험에서 사탄의 모든 숨의 의도를 드러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시험에서도 사탄의 악한 계교를 드러내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가르침 안에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 가운데서 교묘히 이루려는 모든 사탄의 악한 시험은 저절로 물리가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며 범사에 악한 것은 가려 그 모양이라도 흉내내지 말고 지혜에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 선을 행해고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를 배우며 산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글에 대한 권리는 ‘ 은능사’님에게 있습니다.

마태복음 4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시험받으시는 예수님(마 4:1-11) – 새벽기도 설교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에 필요한 마지막 준비 단계로서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마귀, 곧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1절)

여기서 ‘그 때’는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는 놀라운 선포가 있고 난 직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받지 못한 영광과 사명이 주어졌을 그때에 성령에 이끌리어 사탄의 시험대 앞으로 인도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성도들은 생각하기를 믿음이 부족하면 시험도 많고, 믿음이 좋으면 시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믿음이 적으면 시험도 적고, 극단적으로 믿음이 전혀 없는 불신자들에게는 시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사탄 자신의 소유물이기에 사탄이 시험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영혼을 영원한 지옥불로 끌고 가려고 사탄이 복을 줍니다.(마 24:24)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보시기 바랍니다.

초신자들은 그리 큰 시험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앙을 지킬 만큼의 수준의 시험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이 주어지고 맡은 책임이 중해지면 그만큼 시험거리도 많아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명이 작은 자와 큰 자에게 주어지는 시험과 연단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였기에 오히려 사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욥 1:6-12)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셨기에 더욱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크기와 시험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서, 시험이 클수록 더욱 큰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그리하여 하나님이 크게 쓰임 받는 그릇으로 나날이 성장해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사탄의 첫 시험은 육체적 욕망을 이용한 시험이었습니다(2-4절).

더욱이 예수께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2절).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광야’와 ‘주리셨다’는 표현인데, ‘광야’는 이 땅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배경을, 그리고 ‘주렸다’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근본 문제인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예수님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들이 직면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있던 예수님에게 사탄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절)

사탄은 먼저 40일을 금식한 후 그야말로 극도의 배고픔을 느끼고 계시던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기 위하여 굶주림이라는 육체적 욕망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탄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탄은 우리들을 시험할 때 생소한 것으로 시험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붙잡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은혜가 깊은 곳에 시험도 많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시험 앞에서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기록되었으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4절).

예수님은 성경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에 대처하셨습니다.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와는 달리 예수님은 사탄과의 일체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으시고,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만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우리들도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섣부른 생각이나 경험 등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믿음은 배고픔을 위한 도구가 아님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그 이상의 것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사탄의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왜곡하여 시험이었습니다(5-6절).

여기에서 우리는 사탄의 시험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5절에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성’ 이란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마 27:53).

마귀가 성경을 인용하며 시험하기 위해 예수님을 성전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마귀는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인용하며 응수하자, 자기도 곧 그 흉내를 내며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시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성경 본래의 취지, 즉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보호하시리라’는 시편 말씀을(시 91:11-12) 자기가 유혹하는데 적합하도록 적당히 조작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여러분, 이처럼 마귀는 말씀을 교묘하게 자기의 목적을 위해 가감하면서 유혹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속임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천지,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들이 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합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미혹하는데 성경말씀을 인용했듯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알되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말씀을 읽되 그 뜻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는 말이 있듯 서툰 성경 지식은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못합니다.

왜냐하면 서툴게 아는 자가 더 교만하고 올바른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미혹하던 마귀가 지금 우리들도 똑같이 미혹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사탄의 세 번째 시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려는 유혹이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정체성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관계의 문제이며, 이러한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는 곧 신뢰의 문제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사탄이 이것을 노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관계에서 예외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도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진 관계이고, 우정 관계 역시 친구 사이의 신뢰 관계이며, 기타 모든 사회관계 역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기초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깨어지면, 그 어떤 관계도 온전하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언제나 인간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 온갖 미혹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관계란 믿는 만큼 강해지고, 의심하는 만큼 약해집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강한 부부는 그 무엇으로도 깨어지지 않으나, 일단 의처증이나 의부증과 같이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누가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깨어지지 않습니까?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미혹했던 마귀의 집요한 미혹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의 모든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사탄 마귀의 미혹을 잘 분별함으로써,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절) 선포하며, 믿음 잃지 않고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하며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4장 1-11절 말씀 (시험 받을 때에)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에 믿음이 생기며, 들을 때에 듣고 깨닫는 삶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려고 할 때에, 말씀을 받아 들일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아니하려는 마음이 내게 있다면, 이시간 드려지는 예배의 의미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선포할 때에 외친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듣는 마음,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의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시험 받을 때에”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잠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마귀의 시험은 육의 떡과 이적, 세상의 영광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셨음을 볼 수 있듯이 내게 시험이 있을때에, 우리는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함으로서, 우리 또한 예수님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볼 때에 수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삶의 문제 가운데 어떠한 삶이 되어져야 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육의 양식이 필요로 합니다.

왕상19장:5-8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 수많은 능력과 기적을 행하였지만, 그 또한 결국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자이기에 연약한 존재이며, 육의 양식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철저하게 인간의 모습을 오신 것입니다.

본문 1-2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이때에 주리셨다는 것은 단순한 시장기가 아니라, 우리가 배가 고프면 돌도 떡처럼 보인다는 말을 하듯이 온몸이 먹을 것을 갈구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본문 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때에 시험하는 자라는 것은 마귀가 잘나서 또는 예수님보다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귀의 속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시험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굉장히 주리신 상태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마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할뿐 아니라,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여 주리신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요6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후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이때에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은 단지 먹고 배부르기에 주님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 말씀이 어렵다라고 말하며, 모두가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요6:67-69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먹고 배부름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기억함으로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삶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 하여도, 우리는 그 순간에 사람이 떡이 아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함으로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 가운데 시험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를 위시하여 여리고성을 정탐 할 때에도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것입니다.

민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출17장에 보게 되면,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이때에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음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였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출 17: 2-3, 7절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7절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시험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수요예배 가운데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때로는 원망과 불평으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망과 불평이 감사로 바뀌지 못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7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의 시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입니다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너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가운데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

이때에 사단은 뛰어내려서 그 사랑을 확인 해 보라고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그들이 풀무불 가운데에서도 고백했던 신앙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비록 평소나 칠배나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내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원망함과 불평함이 아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본문 8-9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성도는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두마음을 품은채 하나님도 섬기는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마귀는 시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방하는 자입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도 섬기며 라고 말하며, 세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단호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 가운데에서 하나님만 섬기는 삶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을 말한다면, 우리는 돌아서야 하며 예수님과 같이 말씀 안에서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엘리야가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을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열왕기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우리는 섬김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군대 훈련소 가면 첫날은 교회에 가니 초코파이를 주더라 하며 우르르 가더니

다음날에는 절에서 초코파이 두개를 주더라 하더니 그리로 우르르가버립니다. 그러면서 오늘은 절에 가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내가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예배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은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주의 삶을 또 살아가실때에,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가운데 본문 가운데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함으로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마태복음(4)-마태복음 4: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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