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음 11 장 주석 | 신앙의 적, 위선 (누가복음 11:37-54)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70228 370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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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적, 위선 (누가복음 11:37-54)
아침예배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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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 Daum 카페

누가복음 제 11장 =====11:1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 마태복음의 경우 ‘주의 기도’는 산상 수훈에 포 함되어 있어 적어도 그 장소는 어느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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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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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누가복음 1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우리말성경,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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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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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11장 주석

[스크랩] 누가복음 11장 주석 …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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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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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984-누가복음 11장 – 네이버 블로그

우리는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지고,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⑪우리는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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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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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기도와 영성 – Godmade

누가복음 11장: 기도와 영성. 1. 1-13절: 기도에 대한 가르침. 앞에서 본 것처럼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을 거듭 부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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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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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강해 – 옛신앙

성도들은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주석과 … 또 누가복음 11, 18장에는 기도에 대한 비유와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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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ldfaith.net

Date Published: 9/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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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설교말씀] 예수님의 기도 생활(눅 11:1) – 알쓸잡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11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도 항상 한적한 곳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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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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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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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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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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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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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주석

누가복음 제 11장

=====11:1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 마태복음의 경우 ‘주의 기도’는 산상 수훈에 포

함되어 있어 적어도 그 장소는 어느 산 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는 다

소 모호한 표현인 ‘한 곳에서’로 이야기의 서두를 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

수께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3:21;6:12),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제

자들로 하여금 기도에 대한 열심을 지니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

없다.

요한이…가르쳐 주옵소서 – 복음서 안에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서 요청하

는 것은 이 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을 보자 요한이 그

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것이 생각나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다. 당시 어떤 종교 공동체(宗敎共同體)에서 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적

인 것이었다. 랍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고(Farrar,

Plummer), 또한 일반 유대인들도 정시에 일정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였다(행

10:3,9).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공동체를 특징 지워

줄 수 있는 기도를 원했던 것이다(Jeremias).

=====11:2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呪文)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

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

수께서 ‘이것을'(what)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how) 기도하라 하신 것에

서도 잘 드러난다.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

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10:21 주석 참

조). 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

준다(요 20:17;롬 8:14-17). 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

지여”(마 6:9)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

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마 6:9). 성경

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

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祈願)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

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

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레 22:32;시 79:9;사

8:13;29:23).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

여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

(worship)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

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

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終熄)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9:1;10:17).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

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

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

=====11:3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부분은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는 내용이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용할'(* , 에피우

시온)이라는 형용사의 해석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되었기 때

문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범례(凡例)를 참고할 수도 없으며 그 의미도 여러가지로 해

석된다. (1)’내일을 위한’이란 의미. 그러나 문맥상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를

요청하는데 초점이 있는만큼 이 해석은 저녁에 기도하는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단어가 종말론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면 ‘내일’은 종말론적 완

성의 때를 가리키며 ‘양식’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영적인 양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태복음에 기록된 ‘오늘날'(6:11)은 그 미래의 양식을 ‘오늘’ 허락

해 달라는 간구로 이해할 수도 있다(Liefeld). (2)’필요한’ 또는 ‘충분한’이라는 의

미. 이렇게 되면 본문은 “날마다 충분한 양식을 주옵시고”가 되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예수 당시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있어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는다는 것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며(마 20:1-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은(출 16:4;신 8:9)

이 신앙의 근거가 된다. 육체적인 양식이든 영적인 양식이든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은 매우 중요하다.

=====11:4

용서하오니…사하여 주옵시고 – 여기서 ‘죄'(* , 하마르티아)는 아

람어 ‘호바'(hoba)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빚’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에 근거하

건대 ‘죄’란 하나님께 ‘빚’ 또는 ‘부채’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죄를

범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채무’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바 그것은 나에게 빚진 자

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빚진 나의 채무를 필연적으로 탕감되도록 하는 담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

은 하나님께 빚의 탕감을 조심스럽게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여기서 ‘시험'(* , 페이라스모스)

은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

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하는 주체가 하나님

인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1-15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

하기도 하지만(4:1-12;욥 1:12) 본문은 성도가 시험에 부딪쳤을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이것은 마 6: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

다 아멘”이라는 송영구가 있으나 권위있는 마태복음 사본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이것이 본래적인(original)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11:5

밤중에…내게 빌리라 – “너희 중에 누가”라는 양식으로 비유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형식이다(11절;12:25;14:28;15:4;17:7). 한 친구가 찾아

온 시각은 ‘밤중’이다. 7절에 의하면 이 시각은 제법 늦은 밤이었다. 왜냐하면 식구들

이 모두 잠 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구의 방문이 예의를 벗어나는

것임과 따라서 환영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1:6

여행 중에…먹일 것이 없노라 – 이 친구가 밤중에 떡(bread,NIV)을 얻으러 다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시된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 즉 낮의

찌는 더위를 고려하건대 밤에 여행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여행하는 친구

가 밤에 찾아 온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었다(마 2:9). 그런데 친구의 방문을 받은

이 사람은 공교롭게도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이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이 전혀

없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있었으나 당시의 풍습상 손님에게 떡을 부족하게 대접하거나

먹다 남은 떡 조각으로 대접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

다. 아무튼 그는 떡을 필요로하는 여행중의 친구를 위해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자야

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친구의 집을 찾아간 것은 분명하다.

=====11:7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 아마 이 주인은 잠이 들었다가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깨

어나 다소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친구여”라는 말

을 하지 않는 것이다(Manson). 실질적으로 이 집 주인이 괴롭게 생각했던 것은 떡을

주는 것보다는 첫째는 문이 이미 닫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식구들과 함께 자고 있는

데 일어나 움직이면 식구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염려이다. 첫째 것이 문제

가 되는 까닭은 문을 잠그기 위해 문빗장을 걸었을 텐데 그것을 어두움 속에서 찾아

여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Easton). 이집은 온 가족이 한 방 한 이부

자리 밑에서 잠을 자는 팔레스틴의 시골 농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11:8

벗됨을 인하여…강청함을 인하여 – ‘강청'(boldness, NIV)함을 견디지 못해 필요

한 것을 준다. 여기서 ‘강청함'(* , 아나이데이안)은 부정접두어

‘아'(* )와 ‘부끄러움이 없음’을 뜻하는 ‘아이도스'(* )의 합성어로 체면

불구하고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는 두가지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요

청에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으려 했던 집 주인과 하나님의 쾌히 주심을 대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는 것이고(9-13), 둘

째,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살전 5:17).

=====11:9

구하라…주실 것이요 – 본문의 ‘구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테이테'(*

)는 동등한 입장에서 구하는 ‘에로토'(* )와는 달리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도’와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

(10:13;마 18:19;막 11:24;요 11:22;엡 3:20). 본문의 의미는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한다’, ‘구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다’로 이해할 수도 있고(Lagrange), ‘구하면 확실

히 받을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Marshall). 그런데 후자의 의미는 다음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에 본절은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

다. 물론 여기에도 기도할 때 반드시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함

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찾으라…찾을 것이요 – 이 문구의 의미는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

동으로 옮겨야 함을 말해주는 거일 수 있고,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 ‘찾으라'(*

, 제테이테)의 성경적 용버버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도 있다(신 4:29;삼하 21:1;호 5:15;행 17:27).

두드리라…열릴 것이니 –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것에 비유한 예는 랍비들의 가르

침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기도를 함에 있어서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 장면이 하늘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다소 거리가 있다.

=====11:10

구하는…열릴 것이니라 – 본절은 앞의 말씀에 대해 재차 강조 하면서 하나님께 드

린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고취시킨다(시 91:15;사 58:9;슥 13:9;

요 15:7).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자의 끈기와 인내보다는 하나님께서 필히 응답해

주신다는 ‘절대 신뢰’와 구한 것은 틀림없이 받는다는 ‘확신’이다.

=====11:11

생선을 달라하면…뱀을 주며 –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근거를 제시하

는 비유의 말씀이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생선을 주거나 생선이 없다면 적어도 해로운 것을 주지는 않을 것

이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주는 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틀림없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응답해 주시되 선한 것으로 주신다

는 사실이다.

=====11:12

알을…전갈을 – 여기서 알은 떡, 마른 생선과 함께 유대지방의 정식으로 알려진

삶은 달걀을 말하며 전갈은 꼬리로 상대를 찔러 무감각하게 만드는 독을 가진 짐승이

다. 이 전갈(全蝎)은 성경에서 악하고 위험한 것의 상징으로 묘사되며(신 8:15;계

9:3,10), 몸을 구부리면 계란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한편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는

‘떡과 돌이’ 한 쌍을 이루며 서술되어 있어(마 7:9) 누가복음과 차이를 보인다.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 여기서 ‘악한'(* , 포네로스)이라는 형용사는

사람과 그 행위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3:19;6:45). 혹자는 이 표현이 바리새

파 사람들에게 쓰여졌다는 사례에 근거하여(마 12:34), 여기서도 이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도 한다(Marshall). 또한 이 말씀이 인간 일반의 원죄를 지적하는 것이라

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둘 다 정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설사 후자의 견해가 옳다

고 하더라도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을 강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천부께서…성령을 – 누가가 인간이 주는 ‘좋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성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질적인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총 가운데 최고의 선물인 성령이기 때

문이다(요 16:7).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 12:4-11). 실제

로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장 귀한 선물 곧 복음의 물결이 온 세계에

로 확산되어갔다. 한편 마샬(Marshall)의 견해대로 마태의 ‘좋은 것’이라는 표현이 영

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면(롬 10:15;히 9:11;10:1) 누가와 마태는 결국 같은 의미

의 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11:14

한 벙어리 귀신 –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는 귀신 축출에 관한 기사가 없고(막

3:22), 마태복음(마 12:22)에 의하면 이 귀신은 그 사람을 벙어리가 되게 했을 뿐 아

니라 눈까지 멀게 했다. 귀신을 좇아내는 과정은 일체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예

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고 그 사람이 온전해졌다는 기사(奇事)만 간략하게 서술함으로

써 이어지는 바알세불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고 묻는 모습이 나온다(마 12:23).

=====11:15

그 중에 더러는 –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일단의 무리들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라고 되어 있고(마 12:24), 마가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고 되어 있다(막 3:22). 서기관의 대다수는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사실상 마태와 누가의 기록은 일치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 – 바알세불이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기원과 ‘바알세

불’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이 다만 여러가지 해

석들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왕하 1:2에 근거하여 ‘바

알’이 에그론(Ekron)에서 숭배되던 우상인 ‘바알세붑'(Baal-Zebub)으로부터 유래했다

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공동 번역의 ‘베엘제불'(Beelzebull)에서 ‘Beel’은 ‘Baal’ 즉 ‘주’라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뒷 부분인 ‘Zebull’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1)

‘집’, ‘높은 곳’을 뜻한다고 보면(왕상 8:13;사 63:15) ‘거주의 주’ 또는 ‘높은 곳의

주’가 된다(Foerster). (2)발음이 유사한 ‘똥’이라는 의미의 Zebel로 보면 ‘똥의 왕’

의 된다(Hendriksen). (3)이를 ‘파리’로 해석하여 ‘파리의 주’로 보는 견해도 있다

(Bengel, Tyndale). 이 가운데 비교적 많이 인용되는 것은 (1)의 설명이다. 아무튼 본

문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유대인들(좁게는 교권자들)이, 예수가 귀신을 좇아낸 사건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정당하게 평가한 것

이 아니라 자기들의 무능력을 은폐(隱蔽)하기 위하여 진리를 매도하려 했던 것이다.

=====11:16

시험하여…표적을 구하니 – 마가는 여기서도 적대자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으

나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

12:38). 이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마 12:23), 즉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담당할 자격

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귀신 축출 사건을 신적 권위

의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귀신을 축출하는 것이 신적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예수에게 더

무리한 요구를 하여 궁지로 몰아 넣으려는 의도 때문인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

성이 농후하다. 이들이 말하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a sign from heaven, NIV)에 대

해서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류의 이적을 요구한 것이라

고 추측할 수 있다(왕상 18:1).

=====11:17

아시고(* , 디아노에마타) – 이는 ‘깊이 생각하다’, ‘구분하

다’의 의미를 갖는 ‘디아노에오'(* )에서 나온 말로 의도나 목적을 간파

하였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분쟁하는…무너지느니라 – 예수께서는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나라나 집은 없다. 이 단순하고도 명료한 비유 앞에 적대자들의 논리는 산산

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11:18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 앞절에서는 진리에 대한 일반 놀리로 이끌어 내었는데

여기서는 그 일반 논리를 특수한 문제에 적용시키고 있다. 나라와 집이 그러하듯이 사

단도 자기들 끼리 싸우면 그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입은 것

이며, 싸움은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만 있을 뿐이다(고후 10:4).

=====11:19

너희 아들들은…재판관이 되리라 – 적대자들의 비방에 대한 예수의 반대 논리는

매우 철저하며 집요하다. 이제는 적대자들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논리적 모순을 범하

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귀신 축출 행위(逐出行爲)를

사단의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동일하게 그들의 추종자들의 귀신 축출 행위

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기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악마화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재판

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들들'(followers, NIV)로 번역된 ‘휘오스'(* )

는 ‘추종자’, ‘제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히 12:5;벧전 5:13), 예수 당

시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행 19:13).

=====11:20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 여기서 ‘손’으로 번역된 ‘다크튈로스'(* )

는 ‘손가락’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며(46절) 이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구약적

표현이다(출 8:19;31:18;신 9:10). 그러나 더 흔하게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출 7:4,5;9:3,15). 한편 마 12:28에는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기록되어 있

다. 예수의 삶의 초기부터 성령께서 함께하셨다는 의미에서(3:22;4:1,18) 마태의 서술

도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영’

이 의미상 거의 동일하였다고 할 때(대상 28:12,19) 누가와 마태는 같은 이야기를 하

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적대자들의 비

방은 완전하게 부정되며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었다는 사실이 선언되었

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임하였느니라 – 예수의 말씀은 단지 적대자들의 비방을 반

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

서 귀신을 쫓아낸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함을 말

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여

기서 “임하였느니라”로 번역된 ‘에프다센'(* )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동사의 의미는 ‘앞서 오다’의 뜻도 있고(살전 4:15), ‘방

금 도착했다’, ‘도달한다’는 뜻도 있다(Lenski). 이 동사의 의미를 미래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곧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 되고 현재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

니지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귀신이 쫓겨나는 사건이 미래

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 하나님의 권세가 사단의 권세를

물리쳤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배가 시

작되었음을 증거해주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선취(先取)를

보게 된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이 견해를 지지해주는 더 결정적인 단서는 ‘너희에게’

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분명히 지금 예수 앞에 있는 청중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미

래의 청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11:21

강한 자가…안전하되 – 전통적으로 본문의 ‘강한 자'(a strong man, NIV)는 사단

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리고 ‘집’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Lenski). 한편 사단이 지키고 있는 ‘소유’에 대해서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여 갖추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빼앗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단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더 강한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는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강한 자’가 와서 그의 안전을 파괴할 것이다.

=====11:22

더 강한 자가…이길 때 – 일반적으로 ‘더 강한 자’는 예수를 지시한다. 여기서

‘이길 때’가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예수께서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

긴 것을 뜻한다. (2)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켰던 귀신 축출 사건들을 가리킨다(14

절;4:1-13;8:26-39;9:37-45). (3)앞으로 있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성

취될 하나님의 승리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옳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총체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믿던 무장을 빼앗고…재물을 나누느니라 – ‘믿던'(* , 에페포이

데이)은 ‘설득시키다’, ‘믿게하다’는 의미의 ‘페이도'(* ) 제2과거완료 능동

태로 ‘매우 유용하다고 신뢰하던’의 뜻이다. 무장(* , 파노플리안)

은 방패, 검, 창, 투구, 무릅받이, 흉배 등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를 나타낸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고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예수는 사단을 궤멸시켜 그의 무장을 해

제하고 그의 소유를 빼앗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이는 죄와 사망의

포로로 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와 새생명을 누리게

됨을 뜻한다(요 5:24). 바야흐로 인간을 약탈하던(9:39) 사단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의해 도리어 약탈을 당하고 파멸의 종국을 맞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11:23

함께 아니하는…모으지 아니하는 – 이 말씀은 매우 급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즉

예수와 사단과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에서 중립적인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편에 서든지 사단의 편에 서든지 결단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시험

하거나 비방하는 자는(15,16절) 반대하는 자요 사단의 편이요 성령의 훼방하는 자들인

것이다(마 12:31). 마찬가지로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어놓는 자이다. 이것은 양떼

를 모으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10:12), 위급한 상황에서 양떼를 모으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자는 양떼를 죽이는 일에 협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이 9:50

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하나 그것은 문맥, 또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인 이

해에 얽매이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마 12:30 주석 참조). 9:50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대해 중립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셨고 또 하려고 하는 일을 그

가 행했던 것이고, 여기서는 선과 악, 진리와 반(反)진리가 싸우는 상황에서 중립지대

는 없으며 분명히 어느 한편에 서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11:24

더러운 귀신이…돌아가리라 –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긴 했지만 그

속에 성령이 거하시지는 않는 경우이다. 다시말해서 귀신이 나간 이후 한동안 공백 상

태가 지속될 뿐 성령을 영접해 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파탄에 빠

지게 된 경우인 것이다. 도덕적 파국의 심각성은 26절의 ‘거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토이고’가 ‘정착하다’, ‘영구히 거주하다’란 의미를 지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11:25

소제(掃除)되고 수리되었거늘 – 본문의 평행 구절(마 12:44)에는 그 집이 ‘비고’라

는 표현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성령으로 채워져 있지 않음으로 결국 악령의 지배

를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단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틴데일(Tyndale)은 본문

의 의미를 도덕적인 청소가 되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

리되고 그런 결과로 생활이 좋아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1:26

더 악한 귀신 일곱을…거하니 – 집이 소제되고 수리됨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거했

던 한 악령이 들어가기에는 저항력(抵沆力)이 강했다고 본다면 이 악령이 다른 일곱

귀신을 데려온 것이 이해가 된다. 여기 일곱 귀신은 막달라 마리아를 괴롭힌 일곱 귀

신을 연상 시키는데(8:2), 그 숫자도 엄청나게 불었거니와 그 악함이 전에 있던 한 귀

신보다 더 심하다는 묘사는 이 사람이 일곱 귀신이 들었을 때의 상태가 얼마나 극심하

였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악령이

나간 자리를 하나님의 선한 영으로 채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악령이 축출된 자리

는 빈 공간으로 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샬(Marshall)은 이 이야기가 귀신만을 축출해 놓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유대인 귀신 축출자들에(19

절)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이야기가 적대자들과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태는 평행 구절에서

이 귀신들린 자가 바로 ‘이 악한 세대’ 즉 ‘유대인’ 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세례 요한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던 유대 백성들이(마 3:1-6)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완악해져 예수를 거역(마 12:24)했던 상황과 연관될 것이다(Hendriksen,

Lenski).

=====11:27

당신을 밴 태와…복이 있도소이다 – 엘리사벱이 예수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서

찬양한 내용과(1:42) 유사하며, 렌스키는 여기서 1:48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본문의 여인은 단순히 한 선생의 달변(達辯)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

침 배후에 있는 신적인 권위를 발견한 듯하다. 본절의 의미는 “당신의 어머니는 하나

님의 특별한 축복(bless, NIV)을 받았음에 틀림없다”로 보면 될 것이다(Marshall).

=====11:28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 예수는 여인의 찬사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곧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복되다는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

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데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Lenski,

Tyndale). 그러니까 ‘오히려'(* , 메눈)는 여인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

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에 하신 말씀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모친과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는 말씀과(8:21) 동일 선상

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혈육의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신실성의 문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헌신이라는 사실이 다

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는'(* , 퓔라쏜테스)은

‘파수하다’, ‘준수하다’는 의미의 ‘퓔라쏘'(* )의 현재 분사형으로 복있

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임무로 아는 사람임을 뜻한

다.

=====11:29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 마태는 ‘음란한’을 첨가하고 있는데(마 12:39), 구약 시

대에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유할 때(호 1:2) 이스라엘의 완악함

과 우상 숭배는 곧 음란으로 표현되었다. 유대인들의 표적(sign, NIV) 요구가 악한 것

으로 규정되는 까닭은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

며(Marshall), 또한 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키신 여러 가지 이적적인 사건들(14,20

절;4:38-44;8:22-25;40-56)이 하나님의 권능을 밝히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

을 아예 인정치 않으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1:30

요나가…인자도…그러하리라 – 요나가 바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다가

구원받은 것이 곧 예수의 죽음과 사흘 만의 부활을 예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의

평행 본문인 12:40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9:22에 이은 또 하나의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말씀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을 때 회개 운동이 일어났듯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사람들이

회개해야함을 촉구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

한 심판을 알리신 것이기도 하다.

=====11:31

남방 여왕이…정죄하리니 – 여기에 언급된 ‘남방 여왕’은 왕상 10:1-13에 나오는

스바의 여왕(queen of Sheba, NIV)을 말하는데 스바는 남부 아라비아에 있는 오늘날의

예멘(Yemen)을 가리킨다. 이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무려 2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찾아왔다. 이는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땅 끝에서 온 것이다(마

12:42). 이 여왕의 열정에 비하면 유대인들의 태도는 너무도 완악한 것이었다. 그들은

솔로몬 보다 더 위대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솔로몬 보다 ‘더 큰 이’라고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거리상 비교도 안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 인격의 위대함에 있어서도 솔로몬을 능가하는 예수와 접할

수 있는 귀한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모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셈이다.

=====11:32

니느웨 사람들이…정죄하리니 – 같은 논리가 이번에는 니느웨 사람들과 유대인들

의 대조에 적용되고 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창 10:11)로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극심한 죄악을 범하였다(욘 1: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요나

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다(욘 3:5-10). 니느웨 사람들은 일개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도 회개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위대하신 예수의 선포를 듣고

도 회개하지 않았다. 31-32에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

의 구원 받음’과 ‘유대인의 구원 받지 못함’이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과 유

대인의 구원 관계에 관해서는 마 8:1-17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11:33

누구든지…보게 하려 함이니라 – 본절의 의미는 두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등

불이 예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등불이 등경 위에 위치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듯이, 예수께서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항시 생명의 빛을

비추었으나 사람들이 그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2)등불을 복음의 메시지로 간주

하는 견해. 예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말씀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춰주어야 하는

새로운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11:34

몸의 등불은 눈 – 여기서 몸은 전체적인 인격을 뜻하나 등불에 비유된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에 해당한다.

눈이 성하면…나쁘면 – ‘성하면'(* , 하플루스)의 본래적 의미는 ‘주

름이 없는’, ‘단순한’, ‘진실한’으로 영적 안목이 단순하고도 진실되게 진리에만 고정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 단어에 ‘일편 단심’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있다

고 보아 “온 몸이 밝을 것이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눈이 건강해서 빛을 받아들

인다면 즉 영적인 눈이 일편 단심으로 복음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전 존재는 빛으

로 가득할 것이다.” 반면 ‘나쁜'(* , 포네로스) 눈은 그 시선이 약한 것

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복음을 거부하는 눈이다.

=====11:35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 누가는 이 말씀을 하나의 권고 형식으

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마태는 경고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마 6:2). “속에 있는

빛”에 관해서는 (1)하나님의 계시를 감지하는 내적 빛 곧 양심(Gilmore) 혹은 (2)청중

들이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는 것을 각각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중 어떤 견

해를 취하든 본절은 본성적으로 진리를 거스리기 쉬운 인간의 무지함과 완악함에 대한

경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

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11:36

온몸이 밝아…온전히 밝으리라 –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누가만의 독

특한 결론이나, 그 의미가 분명치 않아 베자 사본, 고대 라틴역, 수리아역 등에서는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앞의 내용을 반복하는 듯한 본절은 반복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면이나 주제면에서 볼 때 엡 5:13,14와 유사하다. 본절의 의미는 34,35절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해지는 바 믿음의 신령한 눈을 뜨고 있는 자는 복음의 광채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가 그 빛을 주위에까지 비추는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엡 5:8).

=====11:37

한 바리새인이…앉으셨더니 – 여기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것은 모

종의 적대 의식 또는 반감을 가지고 책잡기 위해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짐작된다.

‘점심 잡수시기’에 사용된 동사 ‘아리스테세'(* )는 ‘먹다’는 의미의

‘아리스타오'(* )의 과거형으로 정확하게 말해서 이 말의 뜻은 하루의

첫번째 식사를 가리킨다. 보통의 상류층 유대인들도 평일에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

다. 한 번은 늦은 아침에 가볍게 하고(* , 아리스톤), 또 한 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데 이 것이 주식사이다(* , 데이프논). 안식일에는 세 차

례의 식사를 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을 가장 잘 차린다. 이렇게 볼 때 예

수께서 초대받은 식사는 첫 식사라는 의미에서 ‘아침’이며(요 21:12,15), 시간상 점심

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앉으셨더니'(* , 아나퓨토)는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를 묘사한 것이다.

=====11:38

손 씻지 아니하심을…이상히 – 막 7:2에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

다가 바리새인들과 부딪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 자신이 손을 씻지 않

고 식사에 임함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씻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배티조'(*

)는 ‘담그다’, ‘적시다’의 의미로서 규례에 따라 식사전에 물 그릇에 손

을 담그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는 당시 하나의 예의요 관습이었고,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죄많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결

례(潔禮)였다. 아무튼 이 제의적(祭儀的) 식사 관습은 바리새인 뿐 아니라 일반 유대

인들도 철저히 지켰던 규범이었다(막 7:3-4). 따라서 이 유전을 무시한 예수의 행위는

그 바리새인에게 파격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의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유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저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악습을 질책하기 위한 의

도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11:39

겉은 깨끗이…속인즉 탐욕과 악독 – 예수는 ‘주'(* , 호 퀴리오스)

로서 말씀하시며, 그 대상은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바리새인을 넘어 전체 바리새인들

에게로 확대된다. 예수는 자신을 초청한 사람을 면전에 두고 매우 강한 어조로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는데 마태의 경우는 (마 23:25) ‘화 있을진저’라는 저주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종교적인 거룩함을 보이려고 그릇의 겉을 닦듯이 철저히 예식

을 엄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외양을 포장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위선

자들이라는 것이다. 탐욕(* , 하르파게스)은 ‘채어가다’는 뜻의 ‘하르파

조'(* )에서 온 말로 ‘강탈’, ‘약탈’의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악독'(*

, 포네리아스)은 ‘악한 자’를 뜻하는 ‘포네로스'(* )에서

온 말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종교적 순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 중심

을 얼마나 욕심이 많고 악한 자들인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 겉만 깨끗하게 포장을 하면 속의 추악함이 감추어 질 수 있으리

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

는 일이다. 왜냐하면 창조자의 눈에는 피조물들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

에 없기 때문이다(마 10:26).

=====11:41

그 안에 있는 것 – 이에 관하여 여러 해석이 있다. (1)잔과 접시 속에 있는 것, 곧

호화 음식으로 봄. 그러면 그 의미는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지 말고 그 식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잔 속에 있는 것을 구제물로 주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하리

라”(NEB)가 된다. (2)이를 부사적 대격으로 해석하여 “마음으로부터 자선을 베풀라”의

뜻으로 본다(N.Turner). (3)”네가 모아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즉시 너의 소유물

이 깨끗해 질것이다”(J.Knox). (4)누가가 기록한 ‘구제하라’는 아람어 ‘깨끗이 하다’

(dakki)를 ‘자선을 베풀다'(zakki)로 오역한 것이라는 해석(Wellhausen). 이러한 세가

지 해석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39절과의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합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그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할 뿐 아니라 그러한 마음의 필연적인 결과로 부정한 재물을 축적했음에 틀림없

다. 이렇게 볼 때 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부정한 재물을 모두 되돌려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제’라는 말에 적합하

게 자신들이 정당하게 모은 것에 대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11:42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 – 여기서부터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해서 여섯

가지의 화(禍)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선포되는데, 이 문구에는 ‘저주’ 또는 ‘복

수’의 의미라기보다는 ‘탄식’의 뜻이 들어 있다(10:1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사장(死藏)시킨 채 그 형식에만 집착함으로써 성스러운 하나님의

율법을 박재화시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바판하고 있다. 본래 구약의 율

법은 곡식, 포도주, 기름과 같은 주요 농산물과 가축에 대한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다

(레 27:30-33;신 14:22-29). 물론 여기에는 땅 위에서 소출하는 모든 것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랍비적 규범은 십일조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세

분화하였는데, 심지어는 땔 나무까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요구한다(Mishna). 이런

것 자체가 벌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와 맹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바리새

인들이 바친 십일조의 세 항목이 열거되고 있는데, ‘박하'(* , 헤두오

스몬)는 정원에서 재배하는 식물로 그 향기가 좋으며, ‘운향'(* , 폐가

논)은 회록색의 잎과 노란 꽃을 가진 식물이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23:23) ‘회향’

(* , 아네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논드 향료(anethum graveolens)를

가리킨다. 마지막 항목인 ‘채소'(* , 라카논)는 어떤 특정한 종류를 가

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총칭으로서의 채소를 뜻한다. 마태는 누가와 달리 특정

한 종류인 ‘근채'(* , 퀴미논)로 기록하고 있다.

공의와…사랑은 버리는도다 – 형식적 율법을 준수함에 있어서는 규정 이상으로 열

성적이며 철저했던 바리새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탈색시켜 버렸다.

여기서 ‘공의'(* , 크리시스)는 ‘정의’, ‘의로움’의 뜻으로 사회 정의와

관련된 말이며(Easton),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불의에 억압당하는 사

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사랑'(* , 아가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이신 사랑’에 근거하여 마음과 목숨과 힘, 그리고 뜻을 다해

하가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가리킨다(10:27).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공의와 사랑을 버렸던 것이다. ‘버리다'(*

, 파레르케스데)는 ‘비켜나다’, ‘간과하다’의 의미로 이들의 행위가 중요한 핵

심을 비켜가면서 형식만을 추구하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 예수게서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부정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철저하게 형식을 지키는 만큼 그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가 간과되거나 무시된 채 전자만이 지켜질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자는 정결법의 규절을 파기하신 예수께서(38절) 율법의

준수를 말하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수를

맹목적 율법 파괴자로 오해하는 데서 오는 그릇된 문제 제기이다. 왜냐하면 (1)예수께

서는 율법 자체를 파괴하거나 반대하시지 않고(16:17), (2)결코 예수는 정신이 결여된

율법 준수를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3)을 법이 규정하지도 않은 유전적(遺傳的)

규범을 거부하는 것과 정당한 목적을 가진 십일조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

기 때문이다.

=====11:43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명예

욕이 지적된다. 첫째로 지적되는 것은 교권적 교만으로, 그들은 공식적 예배 종교 교

육 담당 기관인 회당에서 늘상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23:6) 이들이 잔치에서도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높은

자리'(* , 프로토카데드리아)는 ‘가장 높은 자리'(the most

important seats, NIV)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바리새인들이 회

당의 상석에 앉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보다는 특권

적 우월 의식(優越意式)이나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점

이다. 둘째로 지적되는 것은 세속적 명예욕으로 그들은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을 자신

들의 특별한 존재성을 확인받는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은 단순한 문안 인사의 차원을 넘어 존경의 표시였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

들로서 당연히 존경의 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으례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내면과 행위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

에서 바른 것인지를 점검해 봤어야 했던 것이다.

=====11:44

평토장(平土葬)한 무덤 – 바리새인들에 대한 세번째 화(禍)는 그들의 본질적 모습

에 관한 것이다. 즉 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억울한 부

정을 범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게 되는데 평토장한 무덤 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도 닿으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본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부패하고 썩은 무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 중에 부정한 죄를 범하게 하는 자들로 비

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마태의 평행 본문에서는(23:27)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즉 거기서는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 즉 속에는 죽음과 부패함이 있으나 겉은

아름답게 치장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그들의 은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고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의 외부적인 치장에 비판의 초점이 맞

추어져 있는 것이다.

=====11:45

한 율법사가…모욕하심이니이다 – 여기서부터는 비판의 대상이 바리새인에서 율법

사로 바뀌어진다. 마태복음의 경우 이 두 그룹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함께 싸잡아 바

난하고 있다(마 23:13,27,29). 여기서 율법사는 일명 서기관(scribe)으로 불리기도 하

는데(막 12:28), 유대교의 전문적인 율법 해석자나 율법 교사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에 율법사도 함께 있었음을 말해주는데(37절) 이 율법사

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비판을 듣고 있던 중 마치 도둑이 제 발저린다는 격으로

찔림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율법사의 대부분은 바리새인이었으므로 그가 그렇게 받

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 율법사는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

다”는 불만을 드러냄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비판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점

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한편 그가 교만으로 가득차 예수의 비판을

‘모욕'(insult, NIV)으로 받아들인 것은 예수의 비판을 근거 없고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았음을 뜻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의 죄악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11:46

지기 어려운 짐을…대지 않는도다 – 여기서 말하는 ‘지기 어려운 짐’이란 율법 자

체가 아니라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한 율법사들의 해석을 말하는데, 이들은 사실

상 자신들의 해석을 율법 자체보다 우월한 것으로까지 여겼다. 그런데 이들의 해석은

지나치게 세분화 되어 있고 복잡하여(모세의 율법을 제외하고도 613조에 달하는 규범

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일일이 암기하여 지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저들은

이런 부담(burden)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면서도 자기들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마

23:3).

=====11:47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 이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죽임을 당

하여 묻힌 무덤을 다시 쌓고 비석을 세워 선지자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처럼 선전하

지만(마 23:29,30) 그것은 자신들의 악함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

다. 이들은 죽은 선지자를 기념하면서 살아있는 선지자를 죽이는 모순된 자들이며

(9:9;마 14:3-12), 앞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선지자를 합한 것

보다도 더 위대한 한 선지자를 죽일 것이다(23:18,21,23).

=====11:48

너희는 쌓으니 – 47절과 마 23:29에서처럼 무덤을 장식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

나 그 보다는 역설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그 의미는 (1)”너희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죽음을 확인한다. 즉 조상들의 악행을 완성

한다”(Manson, Schweizer). (2)”너희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전하는 말씀을 거부한

너희 조상들 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너희들은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선지자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O.Michel, Schulz). 결국 여기서도

계속 지적되는 것은 외적인 경건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이다.

=====11:49

하나님의 지혜 – 이 문구에 대한 용례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이 문구에 대

한 학자들의 해석도 각양 각색이다. 학자들의 제 해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핍박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대 묵시문학서 중 하나

의 이름이라고 본다(Bultmann). 그러나 이런 제목의 책은 발견된 적은 없다. (2)하나

님의 ‘지혜'(God in his wisdon. NIV)는 예수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Tatian,

Geldenhuys). 바울이 예수를 하나님의 지혜(wisdon from God, NIV)라고 말한 적은 있

으나(고전 1:30), 예수께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경우는 없다. (3)구약을 가리킨다고

이해한다(Godet). (4)예수께서 과거에 하셨던 말씀들로 본다(Meyer). (5)예수의 지혜

속에 있는 하나님 즉 그의 예지와 신적 섭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본다

(Lenski). (6)’하나님이 그의 지혜로’의 의미로 본다(Creed, Manson, Danker). (7)구

약과 유대교에서 지혜를 인격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신적 지혜”로 이해한다

(U.Wilckens, Schulz). 지혜가 인격화되는 예를 보면 잠 1:20-33에서는 인간에게 말을

하며, 7:35에서는 그 자녀들에 관해 언급한다. 이러한 제 견해들 가운데 (6)과 (7)의

견해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11:50

모든 선지자의 피 – 앞서간 세대들이 저지른 과오는 후대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회이고 은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

려 주어진 기회와 은총을 저버릴 때에는 전(前) 세대들로부터 누적된 심판을 받게된

다. 바로 예수 세대의 유대인들이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었다(47-48). 전 세대들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을 더하는 세대들에게 가해질 형벌의 중함과 엄격함

에 대해서는 성경에도 여러 차례 기록이 되어 있다(잠 29:1;렘 7:16;겔 14:14). 한편

본문의 ‘모든 선지자’에 대해서 마태는 ‘의인'(* , 디카이온)으로 표현

하고 있는데 이는 ‘아벧’을 언급함에 있어서 ‘선지자’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을 것

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Marshall). 그러나 본문에서도 ‘선지자’라는 칭호에 초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종들의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그

의미는 동일하다.

=====11:51

아벧의 피…사가랴의 피 – 이것은 유대인들의 성경 분류법상 처음 책인 창세기로

부터 마지막 책인 역대기하에 이르기 까지의 의로운 첫번째 죽음과(창 4:8) 마지막 죽

음(대하 24:20-22)을 표현한 것이다. 아벧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로 칭함을 받았으나 그의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사가랴는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비판하다 죽임을 당한 의인이었다. 한편 마태는 사가랴가 바라갸의 아들

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마 23:35),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스가랴)로

(대하 24:20) 기록하고 잇는 본문과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에 대해 마샬(Marshal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태는 여호야다의 아들과 예언서 스가랴의 기록자인 ‘바라갸’

의 아들 스가랴를 혼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바라갸의 아들 스가

랴도 동일하게 살해당했다는 전승이 있거나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여기서 언급되는

스가랴는 A.D.67년 헤롯당에 의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바라이스의 아들 스가랴로 보

는 견해도 있는데 이럴 경우 선지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전(全) 유대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셈이며 예루살렘의 멸망도 피의 대가로 지불된 하나님의 심판으

로 이해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담당하리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매우 강한 결

의의 표현으로 그 속에는 예수의 신적인 권위가 내포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A.D. 70년경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파멸됨으로써 과연 그 세대는 피의 대가를 담당하였

다.

=====11:52

지식의 열쇠 –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 행위 자체로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행위임을 밝혀지고 있다.

사실상 율법사(律法士)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어서 마치 천국

문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으며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형식만을 남겨둔 채 정신을 사장시켜 버리는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종하여 결과적

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집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말 그대로 진리의 문,

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

다. 이런 행위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부지 중에 부정을 범하게 만드

는 행위(44절) 이상의 것으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11:53

거기서 – ‘거기’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과 율법사들의 위선과 몽매함을 준엄하게 비판하신 후에 그 집에서 나오고 있다. 식사

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식사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맹렬히 달라붙어…힐문하고 – ‘맹렬히'(* , 데이노스)는 ‘두렵게’,

‘무섭게’의 의미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얼마나 결한 감정의 상태로 까지 흥분되어

있는가를 말해준다. ‘달라붙어'(* , 에네케인)는 ‘몹시 분노하다’ ‘누구

에게 분노를 품다’의 의미이다. 이 역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예수의 비판을 겸허하

게 받아들여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批判)하는 선지자들을 죽

인 조상들처럼 예수를 해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1:54

잡고자 하여…지키더라 – 이 표현들은 사냥에서 사용되는 것들로 적대자들의 증오

의 정도가 얼마나 심하며 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잡고자 하여'(*

, 데류사이)는 ‘쫓다’, ‘사냥에서 잡다’의 의미를 가지며, ‘지키더라'(*

, 에네드류온테스)는 ‘-안에’를 뜻하는 ‘엔'(* )과 ‘자리’를 뜻하는

‘헤드라'(* )의 합성어로 사냥감을 포획(捕獲)하기 위해서 매복해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들은 지금까지 행한(39-52절) 예수의 비판에 대해 아무런 반론을 제기

하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의 비판이 정당했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공격할

허점을 찾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명분도 없는 일을 위해 이성

을 잃고 광분하는 모습은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품위를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며 짐승이

나 잡아먹고 사는 추한 모습인 것이다.

헬라어 누가복음 1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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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에게네토 엔 토 에이나이 아우톤 엔 토포 티니 프로슈코메논 호스 에파우사토 에이펜 티스 톤 마데톤 아우투 프로스 아우톤 퀴리에 디닼손 헤마스 프로슈케스다이 카도스 카이 요안네스 에디닼센 투스 마데타스 아우투

개역개정,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새번역,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 예수께서 어느 한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주께서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가톨릭성경,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 One day Jesus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When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영어NASB,1 It happened that while Jesus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after He had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also taught his disciples.”

영어MSG,1 One day he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When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Master,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영어NRSV,1 He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and after he had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εγενετο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ν εν τοπω τινι προσευχομενον ως επαυσατο ειπεν τις των μαθητων αυτου προς αυτον κυριε διδαξον ημας προσευχεσθαι καθως και ιωαννης εδιδαξεν τους μαθητα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 et factum est cum esset in loco quodam orans ut cessavit dixit unus ex discipulis eius ad eum Domine doce nos orare sicut et Iohannes docuit discipulos suos

히브리어Modern,1 ויהי הוא מתפלל במקום אחד ויאמר אליו אחד מתלמידיו אחרי כלותו אדני למדנו להתפלל כאשר למד גם יוחנן את תלמידיו׃

성 경: [눅11: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주기도문]

󰃨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 마태복음의 경우 ‘주의 기도’는 산상 수훈에 포함되어 있어 적어도 그 장소는 어느 산 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는 다소 모호한 표현인 ‘한 곳에서’로 이야기의 서두를 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3:21;6:12),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제자들로 하여금 기도에 대한 열심을 지니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 요한이…가르쳐 주옵소서 – 복음서 안에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서 요청하는 것은 이 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을 보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것이 생각나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당시 어떤 종교 공동체(宗敎共同體)에서 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랍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고(Farrar, Plummer), 또한 일반 유대인들도 정시에 일정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였다(행 10:3,9).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공동체를 특징 지워줄 수 있는 기도를 원했던 것이다(Jeremias).

에펜 데 아우토이스 호탄 프로슈케스데 레게테 파테르 하기아스데토 토 오노마 수 엘데토 헤 바실레이아 수

개역개정,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새번역,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다른 고대 사본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는 ‘성령이 임하여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오며’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가 첨가되어 있음

우리말성경,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여,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영어NIV,2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영어NASB,2 And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영어MSG,2 So he said, “When you pray, say, Father, Reveal who you are. Set the world right.

영어NRSV,2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2 ειπεν δε αυτοις οταν προσευχησθε λεγετε πατερ ημων ο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 αγιασθητω το ονομα σου ελθετω η βασιλεια σου γενηθητω το θελημα σου ως εν ουρανω και επι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2 et ait illis cum oratis dicite Pater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히브리어Modern,2 ויאמר אליהם כי תתפללו אמרו אבינו שבשמים יתקדש שמך תבוא מלכותך יעשה רצונך כמו בשמים כן בארץ׃

성 경: [눅11: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주기도문]

󰃨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呪文)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것을'(what)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how) 기도하라 하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10:21 주석 참조). 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준다(요 20:17;롬 8:14-17). 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마 6:9).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祈願)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레 22:32;시 79:9;사 8:13;29:23).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worship)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終熄)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9:1;10:17).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

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디두 헤민 토 칻 헤메란

개역개정,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새번역,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 ㉣또는 ‘내일 양식’

우리말성경,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가톨릭성경,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영어NIV,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영어NASB,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영어MSG,3 Keep us alive with three square meals.

영어NRSV,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헬라어신약Stephanos,3 τον αρτον ημων τον επιουσιον διδου ημιν το καθ ημεραν

라틴어Vulgate,3 panem nostrum cotidianum da nobis cotidie

히브리어Modern,3 את לחם חקנו תן לנו יום יום׃

성 경: [눅11: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주기도문]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부분은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는 내용이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용할'(*, 에피우시온)이라는 형용사의 해석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범례(凡例)를 참고할 수도 없으며 그 의미도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1)’내일을 위한’이란 의미. 그러나 문맥상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를 요청하는데 초점이 있는만큼 이 해석은 저녁에 기도하는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단어가 종말론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면 ‘내일’은 종말론적 완성의 때를 가리키며 ‘양식’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영적인 양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태복음에 기록된 ‘오늘날'(6:11)은 그 미래의 양식을 ‘오늘’ 허락해 달라는 간구로 이해할 수도 있다(Liefeld). (2)’필요한’ 또는 ‘충분한’이라는 의미. 이렇게 되면 본문은 “날마다 충분한 양식을 주옵시고”가 되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예수 당시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있어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는다는 것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며(마 20:1-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은(출 16:4;신 8:9) 이 신앙의 근거가 된다. 육체적인 양식이든 영적인 양식이든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은 매우 중요하다.

카이 아페스 헤민 타스 하마르티아스 헤몬 카이 가르 아우토이 아피오멘 판티 오페일론티 헤민 카이 메 에이세넹케스 헤마스 에이스 페이라스몬

개역개정,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새번역,4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또는 ‘빠뜨리지’ ㉥다른 고대 사본들은 끝에 ‘우리를 악에서(또는 ‘악한 자에게서’) 구하시옵소서’가 첨가되어 있음

우리말성경,4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가톨릭성경,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영어NIV,4 Forgive us our sins, for we also forgive everyone who sins against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영어NASB,4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ourselves also forgive everyone who is indebted to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영어MSG,4 Keep us forgiven with you and forgiving others. Keep us safe from ourselves and the Devil.”

영어NRSV,4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ourselves forgive everyone indebted to us. And do not bring us to the time of trial.”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αφες ημιν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και γαρ αυτοι αφιεμεν παντι οφειλοντι ημιν και μη εισενεγκης ημας εις πειρασμον αλλα ρυσαι ημας απο του πονηρου

라틴어Vulgate,4 et dimitte nobis peccata nostra siquidem et ipsi dimittimus omni debenti nobis et ne nos inducas in temptationem

히브리어Modern,4 וסלח לנו את חובתנו כי סלחים גם אנחנו לכל החיב לנו ואל תביאנו לידי נסיון כי אם הצילנו מן הרע׃

성 경: [눅11: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주기도문]

󰃨 용서하오니…사하여 주옵시고 – 여기서 ‘죄'(*, 하마르티아)는 아람어 ‘호바'(hoba)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빚’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에 근거하건대 ‘죄’란 하나님께 ‘빚’ 또는 ‘부채’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죄를 범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채무’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바 그것은 나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빚진 나의 채무를 필연적으로 탕감되도록 하는 담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 빚의 탕감을 조심스럽게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여기서 ‘시험'(*, 페이라스모스)은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하는 주체가 하나님인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1-15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기도 하지만(4:1-12;욥 1:12) 본문은 성도가 시험에 부딪쳤을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이것은 마 6: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송영구가 있으나 권위있는 마태복음 사본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이것이 본래적인(original)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티스 엨스 훼몬 엨세이 필론 카이 포류세타이 프로스 아우톤 메소뉰티우 카이 에이페 아우토 필레 크레손 모이 트레이스 아르투스

개역개정,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새번역,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우리말성경,5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가 친구가 있는데 한밤중에 그가 찾아와 ‘친구여, 내게 빵 세 덩이만 빌려 주게.

가톨릭성경,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영어NIV,5 Then he said to them, “Suppose one of you has a friend, and he goes to him at midnight and says, ‘Friend,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영어NASB,5 Then He said to them, “Suppose one of you has a friend, and goes to him at midnight and says to him, ‘Friend, lend me three loaves;

영어MSG,5 Then he said, “Imagine what would happen if you went to a friend in the middle of the night and said, ‘Friend,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영어NRSV,5 And he said to them, “Suppose one of you has a friend, and you go to him at midnight and say to him, ‘Friend,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τις εξ υμων εξει φιλον και πορευσεται προς αυτον μεσονυκτιου και ειπη αυτω φιλε χρησον μοι τρεις αρτους

라틴어Vulgate,5 et ait ad illos quis vestrum habebit amicum et ibit ad illum media nocte et dicit illi amice commoda mihi tres panes

히브리어Modern,5 ויאמר אליהם מי בכם אשר יהיה לו אהב והלך ובא אליו בחצות הלילה ואמר אליו ידידי הלוני שלשת ככרות לחם׃

성 경: [눅11:5]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밤중에…내게 빌리라 – “너희 중에 누가”라는 양식으로 비유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형식이다(11절;12:25;14:28;15:4;17:7). 한 친구가 찾아온 시각은 ‘밤중’이다. 7절에 의하면 이 시각은 제법 늦은 밤이었다. 왜냐하면 식구들이 모두 잠 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구의 방문이 예의를 벗어나는 것임과 따라서 환영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에페이데 필로스 무 파레게네토 엨스 호두 프로스 메 카이 우크 에코 호 파라데소 아우토

개역개정,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새번역,6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우리말성경,6 내 친구가 여행 길에 나를 만나러 왔는데 내놓을 게 없어서 그렇다네’ 할 때

가톨릭성경,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영어NIV,6 because a friend of mine on a journey has come to me, and I have nothing to set before him.’

영어NASB,6 for a friend of mine has come to me from a journey, and I have nothing to set before him’;

영어MSG,6 An old friend traveling through just showed up, and I don’t have a thing on hand.’

영어NRSV,6 for a friend of mine has arrived, and I have nothing to set before him.’

헬라어신약Stephanos,6 επειδη φιλος μου παρεγενετο εξ οδου προς με και ουκ εχω ο παραθησω αυτω

라틴어Vulgate,6 quoniam amicus meus venit de via ad me et non habeo quod ponam ante illum

히브리어Modern,6 כי אהבי בא אלי מן הדרך ואין לי דבר לשום לפניו׃

성 경: [눅11:6]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여행 중에…먹일 것이 없노라 – 이 친구가 밤중에 떡(bread,NIV)을 얻으러 다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시된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 즉 낮의 찌는 더위를 고려하건대 밤에 여행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여행하는 친구가 밤에 찾아 온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었다(마 2:9). 그런데 친구의 방문을 받은 이 사람은 공교롭게도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이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이 전혀 없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있었으나 당시의 풍습상 손님에게 떡을 부족하게 대접하거나 먹다 남은 떡 조각으로 대접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그는 떡을 필요로하는 여행중의 친구를 위해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자야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친구의 집을 찾아간 것은 분명하다.

카케이노스 에소덴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페 메 모이 코푸스 파레케 에데 헤 뒤라 케클레이스타이 카이 타 파이디아 무 멭 에무 에이스 텐 코이텐 에이신 우 뒤나마이 아나스타스 두나이 소이

개역개정,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새번역,7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우리말성경,7 그 사람이 안에서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다 잠겼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벌써 잠자리에 들었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뭘 줄 수가 없네’라고 거절할 수 있겠느냐?

가톨릭성경,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영어NIV,7 “Then the one inside answers, ‘Don’t bother me. The door is already locked, and my children are with me in bed. I can’t get up and give you anything.’

영어NASB,7 and from inside he answers and says, ‘Do not bother me; the door has already been shut and my children and I are in bed; I cannot get up and give you anything.’

영어MSG,7 “The friend answers from his bed, ‘Don’t bother me. The door’s locked; my children are all down for the night; I can’t get up to give you anything.’

영어NRSV,7 And he answers from within, ‘Do not bother me; the door has already been locked, and my children are with me in bed; I cannot get up and give you any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κεινος εσωθεν αποκριθεις ειπη μη μοι κοπους παρεχε ηδη η θυρα κεκλεισται και τα παιδια μου μετ εμου εις την κοιτην εισιν ου δυναμαι αναστας δουναι σοι

라틴어Vulgate,7 et ille de intus respondens dicat noli mihi molestus esse iam ostium clausum est et pueri mei mecum sunt in cubili non possum surgere et dare tibi

히브리어Modern,7 והוא מלפנים יענה ויאמר אל תוגיעני כי כבר נסגרה הדלת וילדי שוכבים עמדי במטה לא אוכל לקום ולתת לך׃

성 경: [눅11:7]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 아마 이 주인은 잠이 들었다가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다소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친구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Manson). 실질적으로 이 집 주인이 괴롭게 생각했던 것은 떡을 주는 것보다는 첫째는 문이 이미 닫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식구들과 함께 자고 있는데 일어나 움직이면 식구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염려이다. 첫째 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문을 잠그기 위해 문빗장을 걸었을 텐데 그것을 어두움 속에서 찾아 여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Easton). 이 집은 온 가족이 한 방 한 이부자리 밑에서 잠을 자는 팔레스틴의 시골 농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레고 휘민 에이 카이 우 도세이 아우토 아나스타스 디아 토 에이나이 필론 아우투 디아 게 텐 아나이데이안 아우투 에게르데이스 도세이 아우토 호손 크레제이

개역개정,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새번역,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우리말성경,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는 그가 일어나 빵을 갖다 주지 않을지라도, 끈질기게 졸라 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가톨릭성경,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영어NIV,8 I tell you,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the bread because he is his friend, yet because of the man’s boldness he will get up and give him as much as he needs.

영어NASB,8 “I tell you, even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anything because he is his friend, yet because of his persistence he will get up and give him as much as he needs.

영어MSG,8 “But let me tell you, even if he won’t get up because he’s a friend, if you stand your ground, knocking and waking all the neighbors, he’ll finally get up and get you whatever you need.

영어NRSV,8 I tell you, even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him anything because he is his friend, at least because of his persistence he will get up and give him whatever he needs.

헬라어신약Stephanos,8 λεγω υμιν ει και ου δωσει αυτω αναστας δια το ειναι αυτου φιλον δια γε την αναιδειαν αυτου εγερθεις δωσει αυτω οσων χρηζει

라틴어Vulgate,8 dico vobis et si non dabit illi surgens eo quod amicus eius sit propter inprobitatem tamen eius surget et dabit illi quotquot habet necessarios

히브리어Modern,8 אני אמר לכם גם כי לא יקום לתת לו על היותו אהבו יקום בעבור עזות פניו ויתן לו ככל צרכו׃

성 경: [눅11:8]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벗됨을 인하여…강청함을 인하여 – ‘강청'(boldness, NIV)함을 견디지 못해 필요한 것을 준다. 여기서 ‘강청함'(*, 아나이데이안)은 부정접두어 ‘아'(*)와 ‘부끄러움이 없음’을 뜻하는 ‘아이도스'(*)의 합성어로 체면 불구하고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는 두가지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으려 했던 집 주인과 하나님의 쾌히 주심을 대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는 것이고(9-13), 둘째,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살전 5:17).

카고 휘민 레고 아이테이테 카이 도데세타이 휘민 제테이테 카이 휴레세테 크루에테 카이 아노이게세타이 휘민

개역개정,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새번역,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우리말성경,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가톨릭성경,9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영어NIV,9 “So I say to you: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영어NASB,9 “So I say to you,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영어MSG,9 “Here’s what I’m saying: Ask and you’ll get; Seek and you’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open.

영어NRSV,9 “So I say to you, Ask, and it will be given you; search,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γω υμιν λεγω αιτειτε και δοθησεται υμιν ζητειτε και ευρησετε κρουετε και ανοιγησεται υμιν

라틴어Vulgate,9 et ego vobis dico petite et dabitur vobis quaerite et invenietis pulsate et aperietur vobis

히브리어Modern,9 וגם אני אמר לכם שאלו וינתן לכם דרשו ותמצאו דפקו ויפתח לכם׃

성 경: [눅11:9]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구하라…주실 것이요 – 본문의 ‘구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테이테'(*)는 동등한 입장에서 구하는 ‘에로토'(*)와는 달리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도’와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10:13;마 18:19;막 11:24;요 11:22;엡 3:20). 본문의 의미는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한다’, ‘구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다’로 이해할 수도 있고(Lagrange), ‘구하면 확실히 받을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Marshall). 그런데 후자의 의미는 다음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에 본절은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기도할 때 반드시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찾으라…찾을 것이요 – 이 문구의 의미는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말해주는 거일 수 있고,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 ‘찾으라'(*, 제테이테)의 성경적 용법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신 4:29;삼하 21:1;호 5:15;행 17:27).

󰃨 두드리라…열릴 것이니 –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것에 비유한 예는 랍비들의 가르침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기도를 함에 있어서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 장면이 하늘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다소 거리가 있다.

파스 가르 호 아이톤 람바네이 카이 호 제톤 휴리스케이 카이 토 크루온티 아노이게세타이

개역개정,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새번역,10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우리말성경,10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가톨릭성경,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영어NIV,10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영어NASB,10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it will be opened.

영어MSG,10 “Don’t bargain with God. Be direct. Ask for what you need. This is not a cat-and-mouse, hide-and-seek game we’re in.

영어NRSV,10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everyone who searches finds, and for every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헬라어신약Stephanos,10 πας γαρ ο αιτων λαμβανει και ο ζητων ευρισκει και τω κρουοντι ανοιγησεται

라틴어Vulgate,10 omnis enim qui petit accipit et qui quaerit invenit et pulsanti aperietur

히브리어Modern,10 כי כל השאל יקבל והדרש ימצא ולדפק יפתח׃

성 경: [눅11:10]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구하는…열릴 것이니라 – 본절은 앞의 말씀에 대해 재차 강조 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고취시킨다(시 91:15;사 58:9;슥 13:9;요 15:7).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자의 끈기와 인내보다는 하나님께서 필히 응답해 주신다는 ‘절대 신뢰’와 구한 것은 틀림없이 받는다는 ‘확신’이다.

티나 데 엨스 휘몬 톤 파테라 아이테세이 호 휘오스 이크뒨 카이 안티 이크뒤오스 오핀 아우토 에피도세이

개역개정,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새번역,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우리말성경,11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가톨릭성경,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영어NIV,11 “Which of you fathers, if your son asks for a fish, will give him a snake instead?

영어NASB,11 “Now suppose one of you fathers is asked by his son for a fish; he will not give him a snake instead of a fish, will he?

영어MSG,11 If your little boy asks for a serving of fish, do you scare him with a live snake on his plate?

영어NRSV,11 Is there anyone among you who, if your child asks for a fish, will give a snake instead of a fish?

헬라어신약Stephanos,11 τινα δε υμων τον πατερα αιτησει ο υιος αρτον μη λιθον επιδωσει αυτω ει και ιχθυν μη αντι ιχθυος οφιν επιδωσει αυτω

라틴어Vulgate,11 quis autem ex vobis patrem petet panem numquid lapidem dabit illi aut piscem numquid pro pisce serpentem dabit illi

히브리어Modern,11 ומי בכם האב אשר ישאל ממנו בנו לחם ונתן לו אבן ואם דג היתן לו נחש תחת הדג׃

성 경: [눅11:1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생선을 달라하면…뱀을 주며 –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근거를 제시하는 비유의 말씀이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생선을 주거나 생선이 없다면 적어도 해로운 것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을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주는 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틀림없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응답해 주시되 선한 것으로 주신다는 사실이다.

에 카이 아이테세이 오온 에피도세이 아우토 스코르피온

개역개정,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새번역,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우리말성경,12 또 자녀가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

가톨릭성경,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영어NIV,12 Or if he asks for an egg, will give him a scorpion?

영어NASB,12 “Or if he is asked for an egg, he will not give him a scorpion, will he?

영어MSG,12 If your little girl asks for an egg, do you trick her with a spider?

영어NRSV,12 Or if the child asks for an egg, will give a scorpion?

헬라어신약Stephanos,12 η και εαν αιτηση ωον μη επιδωσει αυτω σκορπιον

라틴어Vulgate,12 aut si petierit ovum numquid porriget illi scorpionem

히브리어Modern,12 או כי ישאלנו ביצה היתן לו עקרב׃

성 경: [눅11:1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알을…전갈을 – 여기서 알은 떡, 마른 생선과 함께 유대지방의 정식으로 알려진 삶은 달걀을 말하며 전갈은 꼬리로 상대를 찔러 무감각하게 만드는 독을 가진 짐승이다. 이 전갈(全蝎)은 성경에서 악하고 위험한 것의 상징으로 묘사되며(신 8:15;계 9:3,10), 몸을 구부리면 계란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한편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는 ‘떡과 돌이’ 한 쌍을 이루며 서술되어 있어(마 7:9) 누가복음과 차이를 보인다.

에이 운 휘메이스 포네로이 휘파르콘테스 오이다테 도마타 아가다 디도나이 토이스 테크노이스 휘몬 포소 말론 호 파테르 호 엨스 우라누 도세이 프뉴마 하기온 토이스 아이투신 아우톤

개역개정,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새번역,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다른 고대 사본은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하늘에서부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말성경,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가톨릭성경,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영어NIV,13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영어NASB,13 “If you then, being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영어MSG,13 As bad as you are, you wouldn’t think of such a thing–you’re at least decent to your own children. And don’t you think the Father who conceived you in love will give the Holy Spirit when you ask him?”

영어NRSV,13 If you then, who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the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ι ουν υμεις πονηροι υπαρχοντες οιδατε αγαθα δοματα διδοναι τοις τεκνοις υμων ποσω μαλλον ο πατηρ ο εξ ουρανου δωσει πνευμα αγιον τοις αιτουσιν αυτον

라틴어Vulgate,13 si ergo vos cum sitis mali nostis bona data dare filiis vestris quanto magis Pater vester de caelo dabit spiritum bonum petentibus se

히브리어Modern,13 הן אתם הרעים ידעים לתת מתנות טבות לבניכם אף כי האב מן השמים יתן את רוח הקדש לשאלים מאתו׃

성 경: [눅11:1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기도에 대한 교훈]

󰃨 너희가 악할지라도 – 여기서 ‘악한'(*, 포네로스)이라는 형용사는 사람과 그 행위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3:19;6:45). 혹자는 이 표현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쓰여졌다는 사례에 근거하여(마 12:34), 여기서도 이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도 한다(Marshall). 또한 이 말씀이 인간 일반의 원죄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둘 다 정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설사 후자의 견해가 옳다고 하더라도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을 강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천부께서…성령을 – 누가가 인간이 주는 ‘좋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성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질적인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총 가운데 최고의 선물인 성령이기 때문이다(요 16:7).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 12:4-11). 실제로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장 귀한 선물 곧 복음의 물결이 온 세계에로 확산되어갔다. 한편 마샬(Marshall)의 견해대로 마태의 ‘좋은 것’이라는 표현이 영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면(롬 10:15;히 9:11;10:1) 누가와 마태는 결국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카이 엔 에크발론 다이모니온 카이 아우토 엔 코폰 에게네토 데 투 다이모니우 엨셀돈토스 엘랄레센 호 코포스 카이 에다우마산 호이 오클로이

개역개정,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새번역,14 예수께서 귀신을 하나 내쫓으셨는데, [그것은] 벙어리 [귀신이었다]. 그 귀신이 나가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놀랐다.

우리말성경,14 예수께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고 계셨습니다. 그 귀신이 나오자 말 못하던 사람이 말하게 됐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영어NIV,14 Jesus was driving out a demon that was mute. When the demon left, the man who had been mute spoke, and the crowd was amazed.

영어NASB,14 And He was casting out a demon, and it was mute; when the demon had gone out, the mute man spoke; and the crowds were amazed.

영어MSG,14 Jesus delivered a man from a demon that had kept him speechless. The demon gone, the man started talking a blue streak, taking the crowd by complete surprise.

영어NRSV,14 Now he was casting out a demon that was mute; when the demon had gone out, the one who had been mute spoke, and the crowds were amazed.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ην εκβαλλων δαιμονιον και αυτο ην κωφον εγενετο δε του δαιμονιου εξελθοντος ελαλησεν ο κωφος και εθαυμασαν οι οχλοι

라틴어Vulgate,14 et erat eiciens daemonium et illud erat mutum et cum eiecisset daemonium locutus est mutus et admiratae sunt turbae

히브리어Modern,14 ויהי היום ויגרש שד והוא אלם ויהי אחרי צאת השד וידבר האלם ויתמהו העם׃

성 경: [눅11:1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한 벙어리 귀신 –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는 귀신 축출에 관한 기사가 없고(막 3:22), 마태복음(마 12:22)에 의하면 이 귀신은 그 사람을 벙어리가 되게 했을 뿐 아니라 눈까지 멀게 했다. 귀신을 좇아내는 과정은 일체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고 그 사람이 온전해졌다는 기사(奇事)만 간략하게 서술함으로써 이어지는 바알세불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고 묻는 모습이 나온다(마 12:23).

티네스 데 엨스 아우톤 에이폰 엔 베엘제불 토 아르콘티 톤 다이모니온 에크발레이 타 다이모니아

개역개정,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새번역,1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

우리말성경,15 그러나 그중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예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5 But some of them said, “By Beelzebub, the prince of demons, he is driving out demons.”

영어NASB,15 But some of them said, “He casts out demons by Beelzebul, the ruler of the demons.”

영어MSG,15 But some from the crowd were cynical. “Black magic,” they said. “Some devil trick he’s pulled from his sleeve.”

영어NRSV,15 But some of them said, “He casts out demons by Beelzebul, the ruler of the demons.”

헬라어신약Stephanos,15 τινες δε εξ αυτων ειπον εν βεελζεβουλ αρχοντι των δαιμονιων εκβαλλει τα δαιμονια

라틴어Vulgate,15 quidam autem ex eis dixerunt in Beelzebub principe daemoniorum eicit daemonia

히브리어Modern,15 ויש אשר אמרו בבעל זבוב שר השדים הוא מגרש את השדים׃

성 경: [눅11:15]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그 중에 더러는 –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일단의 무리들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라고 되어 있고(마 12:24), 마가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고 되어 있다(막 3:22). 서기관의 대다수는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사실상 마태와 누가의 기록은 일치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 귀신의 왕 바알세불 – 바알세불이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기원과 ‘바알세불’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이 다만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왕하 1:2에 근거하여 ‘바알’이 에그론(Ekron)에서 숭배되던 우상인 ‘바알세붑'(Baal-Zebub)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공동 번역의 ‘베엘제불'(Beelzebull)에서 ‘Beel’은 ‘Baal’ 즉 ‘주’라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뒷 부분인 ‘Zebull’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1)’집’, ‘높은 곳’을 뜻한다고 보면(왕상 8:13;사 63:15) ‘거주의 주’ 또는 ‘높은 곳의 주’가 된다(Foerster). (2)발음이 유사한 ‘똥’이라는 의미의 Zebel로 보면 ‘똥의 왕’의 된다(Hendriksen). (3)이를 ‘파리’로 해석하여 ‘파리의 주’로 보는 견해도 있다(Bengel, Tyndale). 이 가운데 비교적 많이 인용되는 것은 (1)의 설명이다. 아무튼 본문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유대인들(좁게는 교권자들)이, 예수가 귀신을 좇아낸 사건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정당하게 평가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무능력을 은폐(隱蔽)하기 위하여 진리를 매도하려 했던 것이다.

헤테로이 데 페이라존테스 세메이온 엨스 우라누 에제툰 파르 아우투

개역개정,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새번역,16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그에게 요구하였다.

우리말성경,16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할 속셈으로 하늘의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영어NIV,16 Others tested him by asking for a sign from heaven.

영어NASB,16 Others, to test Him, were demanding of Him a sign from heaven.

영어MSG,16 Others were skeptical, waiting around for him to prove himself with a spectacular miracle.

영어NRSV,16 Others, to test him, kept demanding from him a sign from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τεροι δε πειραζοντες σημειον παρ αυτου εζητουν εξ ουρανου

라틴어Vulgate,16 et alii temptantes signum de caelo quaerebant ab eo

히브리어Modern,16 ויש אשר נסוהו וישאלו ממנו אות מן השמים׃

성 경: [눅11:16]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시험하여…표적을 구하니 – 마가는 여기서도 적대자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 12:38). 이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마 12:23), 즉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담당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귀신 축출 사건을 신적 권위의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귀신을 축출하는 것이 신적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예수에게 더 무리한 요구를 하여 궁지로 몰아 넣으려는 의도 때문인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이 말하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a sign from heaven, NIV)에 대해서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류의 이적을 요구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왕상 18:1).

아우토스 데 에이도스 아우톤 타 디아노마타 에이펜 아우토이스 파사 바실레이아 엪 헤아우텐 디아메리스데이사 에레무타이 카이 오이코스 에피 오이콘 핖테이

개역개정,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새번역,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우리말성경,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서로 갈라져 싸우면 망하게 되고 가정도 서로 갈라져 싸우면 무너진다.

가톨릭성경,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영어NIV,17 Jesus knew their thoughts and said to them: “An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will be ruined, and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will fall.

영어NASB,17 But He knew their thoughts and said to them, “An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is laid waste; and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falls.

영어MSG,17 Jesus knew what they were thinking and said, “Any country in civil war for very long is wasted. A constantly squabbling family falls to pieces.

영어NRSV,17 But he knew what they were thinking and said to them, “Every kingdom divided against itself becomes a desert, and house falls on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17 αυτος δε ειδως αυτων τα διανοηματα ειπεν αυτοις πασα βασιλεια εφ εαυτην διαμερισθεισα ερημουται και οικος επι οικον πιπτει

라틴어Vulgate,17 ipse autem ut vidit cogitationes eorum dixit eis omne regnum in se ipsum divisum desolatur et domus supra domum cadet

히브리어Modern,17 והוא ידע את מחשבותם ויאמר אליהם כל ממלכה הנחלקה על עצמה תחרב ובית יפל על בית׃

성 경: [눅11:17]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아시고(*, 디아노에마타) – 이는 ‘깊이 생각하다’, ‘구분하다’의 의미를 갖는 ‘디아노에오'(*)에서 나온 말로 의도나 목적을 간파하였다는 의미이다.

󰃨 스스로 분쟁하는…무너지느니라 – 예수께서는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나라나 집은 없다. 이 단순하고도 명료한 비유 앞에 적대자들의 논리는 산산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에이 데 카이 호 사타나스 엪 헤아우톤 디에메리스데 포스 스타데세타이 헤 바실레이아 아우투 호티 레게테 엔 베엘제불 에크발레인 메 타 다이모니아

개역개정,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새번역,18 그러니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는데,

우리말성경,18 사탄도 역시 서로 갈라져 싸우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니

가톨릭성경,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영어NIV,18 If Satan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can his kingdom stand? I say this because you claim that I drive out demons by Beelzebub.

영어NASB,18 “If Satan also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will his kingdom stand? For you say that I cast out demons by Beelzebul.

영어MSG,18 If Satan cancels Satan, is there any Satan left? You accuse me of ganging up with the Devil, the prince of demons, to cast out demons,

영어NRSV,18 If Satan also is divided against himself, how will his kingdom stand? –for you say that I cast out the demons by Beelzebul.

헬라어신약Stephanos,18 ει δε και ο σατανας εφ εαυτον διεμερισθη πως σταθησεται η βασιλεια αυτου οτι λεγετε εν βεελζεβουλ εκβαλλειν με τα δαιμονια

라틴어Vulgate,18 si autem et Satanas in se ipsum divisus est quomodo stabit regnum ipsius quia dicitis in Beelzebub eicere me daemonia

히브리어Modern,18 וגם השטן אם נחלק על עצמו איככה תכון ממלכתו כי אמרתם שבבעל זבוב מגרש אני את השדים׃

성 경: [눅11:18]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 앞절에서는 진리에 대한 일반 논리로 이끌어 내었는데 여기서는 그 일반 논리를 특수한 문제에 적용시키고 있다. 나라와 집이 그러하듯이 사단도 자기들 끼리 싸우면 그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입은 것이며, 싸움은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만 있을 뿐이다(고후 10:4).

에이 데 에고 엔 베엘제불 에크발로 타 다이모니아 호이 휘오이 휘몬 엔 티니 에크발루신 디아 투토 아우토이 휘몬 크리타이 에손타이

개역개정,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새번역,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의 ㉧추종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 ㉧그, ‘아들들’. 귀신축출자들을 가리킴

우리말성경,19 내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내쫓는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영어NIV,19 Now if I drive out demons by Beelzebub, by whom do your followers drive them out? So then, they will be your judges.

영어NASB,19 “And if I by Beelzebul cast out demons, by whom do your sons cast them out? So they will be your judges.

영어MSG,19 but if you’re slinging devil mud at me, calling me a devil who kicks out devils, doesn’t the same mud stick to your own exorcists?

영어NRSV,19 Now if I cast out the demons by Beelzebul, by whom do your exorcists cast them out? Therefore they will be your judge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ει δε εγω εν βεελζεβουλ εκβαλλω τα δαιμονια οι υιοι υμων εν τινι εκβαλλουσιν δια τουτο κριται υμων αυτοι εσονται

라틴어Vulgate,19 si autem ego in Beelzebub eicio daemonia filii vestri in quo eiciunt ideo ipsi iudices vestri erunt

히브리어Modern,19 ואם אני מגרש את השדים בבעל זבוב בניכם במי הם מגרשים אתם על כן המה יהיו שפטיכם׃

성 경: [눅11:19]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너희 아들들은…재판관이 되리라 – 적대자들의 비방에 대한 예수의 반대 논리는 매우 철저하며 집요하다. 이제는 적대자들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귀신 축출 행위(逐出行爲)를 사단의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동일하게 그들의 추종자들의 귀신 축출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기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악마화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들들'(followers, NIV)로 번역된 ‘휘오스'(*)는 ‘추종자’, ‘제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히 12:5;벧전 5:13), 예수 당시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행 19:13).

에이 데 엔 닼튈로 데우 에고 에크발로 타 다이모니아 아라 에프다센 엪 휘마스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개역개정,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새번역,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 / ㉨그,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우리말성경,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는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온 것이다.

가톨릭성경,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영어NIV,20 But if I drive out demons by the finger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to you.

영어NASB,20 “But if I cast out demons by the finger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

영어MSG,20 But if it’s God’s finger I’m pointing that sends the demons on their way, then God’s kingdom is here for sure.

영어NRSV,20 But if it is by the finger of God that I cast out the demons,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ι δε εν δακτυλω θεου εκβαλλω τα δαιμονια αρα εφθασεν εφ υμας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porro si in digito Dei eicio daemonia profecto praevenit in vos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20 ואם באצבע אלהים מגרש אני את השדים הנה הגיעה אליכם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11:20]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 여기서 ‘손’으로 번역된 ‘다크튈로스'(*)는 ‘손가락’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며(46절) 이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구약적 표현이다(출 8:19;31:18;신 9:10). 그러나 더 흔하게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출 7:4,5;9:3,15). 한편 마 12:28에는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삶의 초기부터 성령께서 함께하셨다는 의미에서(3:22;4:1,18) 마태의 서술도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영’이 의미상 거의 동일하였다고 할 때(대상 28:12,19) 누가와 마태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적대자들의 비방은 완전하게 부정되며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었다는 사실이 선언되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임하였느니라 – 예수의 말씀은 단지 적대자들의 비방을 반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낸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함을 말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임하였느니라”로 번역된 ‘에프다센'(*)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동사의 의미는 ‘앞서 오다’의 뜻도 있고(살전 4:15), ‘방금 도착했다’, ‘도달한다’는 뜻도 있다(Lenski). 이 동사의 의미를 미래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곧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 되고 현재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귀신이 쫓겨나는 사건이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 하나님의 권세가 사단의 권세를 물리쳤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배가 시작되었음을 증거해주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선취(先取)를 보게 된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이 견해를 지지해주는 더 결정적인 단서는 ‘너희에게’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분명히 지금 예수 앞에 있는 청중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미래의 청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호탄 호 이스퀴로스 카도플리스메노스 퓔라쎄 텐 헤아우투 아울렌 엔 에이레네 에스틴 타 휘파르콘타 아우투

개역개정,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새번역,21 힘센 사람이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그의 소유는 안전하다.

우리말성경,21 힘센 사람이 완전 무장을 하고 집을 지키고 있다면 그 재산은 안전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영어NIV,21 “When a strong man, fully armed, guards his own house, his possessions are safe.

영어NASB,21 “When a strong man, fully armed, guards his own house, his possessions are undisturbed.

영어MSG,21 “When a strong man, armed to the teeth, stands guard in his front yard, his property is safe and sound.

영어NRSV,21 When a strong man, fully armed, guards his castle, his property is safe.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ταν ο ισχυρος καθωπλισμενος φυλασση την εαυτου αυλην εν ειρηνη εστιν τα υπαρχοντ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21 cum fortis armatus custodit atrium suum in pace sunt ea quae possidet

히브리어Modern,21 בהיות הגבור שמר את חצרו והוא מזין והיה רכושו שלום׃

성 경: [눅11:2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강한 자가…안전하되 – 전통적으로 본문의 ‘강한 자'(a strong man, NIV)는 사단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리고 ‘집’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Lenski). 한편 사단이 지키고 있는 ‘소유’에 대해서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여 갖추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빼앗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단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더 강한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는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강한 자’가 와서 그의 안전을 파괴할 것이다.

에판 데 호 이스퀴로테로스 아우투 에펠돈 니케세 아우톤 텐 파노플리안 아우투 아이레이 엪 헤 에페포이데이 카이 타 스퀼라 아우투 디아디도신

개역개정,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새번역,22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서 그를 이기면, 그가 의지하는 무장을 모두 해제시키고, 자기가 노략한 것을 나누어 준다.

우리말성경,22 그러나 힘이 더 센 사람이 공격해 그를 이기면 그가 의지하는 무장을 모두 해제시키고 자기가 노략한 것을 나눠 줄 것이다.

가톨릭성경,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영어NIV,22 But when someone stronger attacks and overpowers him, he takes away the armor in which the man trusted and divides up the spoils.

영어NASB,22 “But when someone stronger than he attacks him and overpowers him, he takes away from him all his armor on which he had relied and distributes his plunder.

영어MSG,22 But what if a stronger man comes along with superior weapons? Then he’s beaten at his own game, the arsenal that gave him such confidence hauled off, and his precious possessions plundered.

영어NRSV,22 But when one stronger than he attacks him and overpowers him, he takes away his armor in which he trusted and divides his plunder.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παν δε ο ισχυροτερος αυτου επελθων νικηση αυτον την πανοπλιαν αυτου αιρει εφ η επεποιθει και τα σκυλα αυτου διαδιδωσιν

라틴어Vulgate,22 si autem fortior illo superveniens vicerit eum universa arma eius aufert in quibus confidebat et spolia eius distribuit

히브리어Modern,22 ואם יבוא עליו חזק ממנו ותקפו ישא ממנו את נשקו אשר בטח בו ואת מלקחו יחלק׃

성 경: [눅11:2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더 강한 자가…이길 때 – 일반적으로 ‘더 강한 자’는 예수를 지시한다. 여기서 ‘이길 때’가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예수께서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긴 것을 뜻한다. (2)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켰던 귀신 축출 사건들을 가리킨다(14절;4:1-13;8:26-39;9:37-45). (3)앞으로 있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하나님의 승리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옳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총체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 믿던 무장을 빼앗고…재물을 나누느니라 – ‘믿던'(*, 에페포이데이)은 ‘설득시키다’, ‘믿게하다’는 의미의 ‘페이도'(*) 제2과거완료 능동태로 ‘매우 유용하다고 신뢰하던’의 뜻이다. 무장(*, 파노플리안)은 방패, 검, 창, 투구, 무릅받이, 흉배 등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를 나타낸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고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예수는 사단을 궤멸시켜 그의 무장을 해제하고 그의 소유를 빼앗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이는 죄와 사망의 포로로 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와 새생명을 누리게 됨을 뜻한다(요 5:24). 바야흐로 인간을 약탈하던(9:39) 사단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의해 도리어 약탈을 당하고 파멸의 종국을 맞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호 메 온 멭 에무 캍 에무 에스틴 카이 호 메 쉬나곤 멭 에무 스코르피제이

개역개정,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새번역,23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우리말성경,23 나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영어NIV,23 “He who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he who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영어NASB,23 “He who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he who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영어MSG,23 “This is war, and there is no neutral ground. If you’re not on my side, you’re the enemy; if you’re not helping, you’re making things worse.

영어NRSV,23 Whoever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whoever does not gather with me scatters.

헬라어신약Stephanos,23 ο μη ων μετ εμου κατ εμου εστιν και ο μη συναγων μετ εμου σκορπιζει

라틴어Vulgate,23 qui non est mecum adversum me est et qui non colligit mecum dispergit

히브리어Modern,23 כל אשר איננו אתי הוא לנגדי ואשר איננו מאסף אתי הוא מפזר׃

성 경: [눅11:2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함께 아니하는…모으지 아니하는 – 이 말씀은 매우 급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즉 예수와 사단과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에서 중립적인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편에 서든지 사단의 편에 서든지 결단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시험하거나 비방하는 자는(15,16절) 반대하는 자요 사단의 편이요 성령의 훼방하는 자들인 것이다(마 12:31). 마찬가지로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어놓는 자이다. 이것은 양떼를 모으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10:12), 위급한 상황에서 양떼를 모으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자는 양떼를 죽이는 일에 협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이 9:50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하나 그것은 문맥, 또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인 이해에 얽매이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마 12:30 주석 참조). 9:50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대해 중립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셨고 또 하려고 하는 일을 그가 행했던 것이고, 여기서는 선과 악, 진리와 반(反)진리가 싸우는 상황에서 중립지대는 없으며 분명히 어느 한편에 서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호탄 토 아카다르톤 프뉴마 엨셀데 아포 투 안드로푸 디에르케타이 디 아뉘드론 토폰 제툰 아나파우신 카이 메 휴리스콘 토테 레게이 휘포스트렢소 에이스 톤 오이콘 무 호덴 엨셀돈

개역개정,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새번역,24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하면, 그 귀신은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맨다. 그러나 그 귀신은 찾지 못하고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한다. / ㉩그, ‘더러운’

우리말성경,24 한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으려고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내가 전에 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가톨릭성경,24 “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영어NIV,24 “When an evil spirit comes out of a man, it goes through arid places seeking rest and does not find it. Then it says, ‘I will return to the house I left.’

영어NASB,24 “When the unclean spirit goes out of a man, it passes through waterless places seeking rest, and not finding any, it says, ‘I will return to my house from which I came.’

영어MSG,24 “When a corrupting spirit is expelled from someone, it drifts along through the desert looking for an oasis, some unsuspecting soul it can bedevil. When it doesn’t find anyone, it says, ‘I’ll go back to my old haunt.’

영어NRSV,24 “When the unclean spirit has gone out of a person, it wanders through waterless regions looking for a resting place, but not finding any, it says, ‘I will return to my house from which I came.’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ταν το ακαθαρτον πνευμα εξελθη απο του ανθρωπου διερχεται δι ανυδρων τοπων ζητουν αναπαυσιν και μη ευρισκον λεγει υποστρεψω εις τον οικον μου οθεν εξηλθον

라틴어Vulgate,24 cum inmundus spiritus exierit de homine perambulat per loca inaquosa quaerens requiem et non inveniens dicit revertar in domum meam unde exivi

히브리어Modern,24 הרוח הטמאה אחרי צאתה מן האדם תשוטט במקמות ציה לבקש לה מנוחה ולא תמצא אז תאמר אשובה נא אל ביתי אשר יצאתי משם׃

성 경: [눅11:2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더러운 귀신이…돌아가리라 –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긴 했지만 그 속에 성령이 거하시지는 않는 경우이다. 다시말해서 귀신이 나간 이후 한동안 공백 상태가 지속될 뿐 성령을 영접해 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파탄에 빠지게 된 경우인 것이다. 도덕적 파국의 심각성은 26절의 ‘거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토이고’가 ‘정착하다’, ‘영구히 거주하다’란 의미를 지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카이 엘돈 휴리스케이 세사로메논 카이 케코스메메논

개역개정,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새번역,25 그런데 와서 보니, 집은 말끔히 치워져 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우리말성경,25 그런데 그곳에 이르러 보니 집이 깨끗하게 청소돼 있고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가톨릭성경,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영어NIV,25 When it arrives, it finds the house swept clean and put in order.

영어NASB,25 “And when it comes, it finds it swept and put in order.

영어MSG,25 On return, it finds the person swept and dusted, but vacant.

영어NRSV,25 When it comes, it finds it swept and put in order.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ελθον ευρισκει σεσαρωμενον και κεκοσμημενον

라틴어Vulgate,25 et cum venerit invenit scopis mundatam

히브리어Modern,25 ובבואה תמצא אתו מטאטא ומהדר׃

성 경: [눅11:25]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소제(掃除)되고 수리되었거늘 – 본문의 평행 구절(마 12:44)에는 그 집이 ‘비고’라는 표현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성령으로 채워져 있지 않음으로 결국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단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틴데일(Tyndale)은 본문의 의미를 도덕적인 청소가 되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리되고 그런 결과로 생활이 좋아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토테 포류에타이 카이 파랄람바네이 헤테라 프뉴마타 포네로테라 헤아우투 헾타 카이 에이셀돈타 카토이케이 에케이 카이 기네타이 타 에스카타 투 안드로푸 에케이누 케이로나 톤 프로톤

개역개정,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새번역,26 그래서 그 귀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우리말성경,26 그래서 더러운 영은 나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와 그 곳에 들어가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지막 상황은 처음보다 훨씬 더 나빠진다.”

가톨릭성경,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영어NIV,26 Then it goes and takes seven other spirits more wicked than itself, and they go in and live there. And the final condition of that man is worse than the first.”

영어NASB,26 “Then it goes and takes along seven other spirits more evil than itself, and they go in and live there; and the last state of that man becomes worse than the first.”

영어MSG,26 It then runs out and rounds up seven other spirits dirtier than itself and they all move in, whooping it up. That person ends up far worse than if he’d never gotten cleaned up in the first place.”

영어NRSV,26 Then it goes and brings seven other spirits more evil than itself, and they enter and live there; and the last state of that person is worse than the first.”

헬라어신약Stephanos,26 τοτε πορευεται και παραλαμβανει επτα ετερα πνευματα πονηροτερα εαυτου και εισελθοντα κατοικει εκει και γινεται τα εσχατα του ανθρωπου εκεινου χειρονα των πρωτων

라틴어Vulgate,26 et tunc vadit et adsumit septem alios spiritus nequiores se et ingressi habitant ibi et sunt novissima hominis illius peiora prioribus

히브리어Modern,26 ואחר תלך ולקחה שבע רוחות אחרות רעות ממנה ובאו ושכנו שם והיתה אחרית האדם ההוא רעה מראשיתו׃

성 경: [눅11:26]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알세불 논쟁]

󰃨 더 악한 귀신 일곱을…거하니 – 집이 소제되고 수리됨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거했던 한 악령이 들어가기에는 저항력(抵沆力)이 강했다고 본다면 이 악령이 다른 일곱 귀신을 데려온 것이 이해가 된다. 여기 일곱 귀신은 막달라 마리아를 괴롭힌 일곱 귀신을 연상 시키는데(8:2), 그 숫자도 엄청나게 불었거니와 그 악함이 전에 있던 한 귀신보다 더 심하다는 묘사는 이 사람이 일곱 귀신이 들었을 때의 상태가 얼마나 극심하였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악령이 나간 자리를 하나님의 선한 영으로 채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악령이 축출된 자리는 빈 공간으로 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샬(Marshall)은 이 이야기가 귀신만을 축출해 놓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유대인 귀신 축출자들에(19절)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이야기가 적대자들과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태는 평행 구절에서 이 귀신들린 자가 바로 ‘이 악한 세대’ 즉 ‘유대인’ 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세례 요한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던 유대 백성들이(마 3:1-6)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완악해져 예수를 거역(마 12:24)했던 상황과 연관될 것이다(Hendriksen, Lenski).

에게네토 데 엔 토 레게인 아우톤 타우타 에파라사 티스 포넨 귀네 에크 투 오클루 에이펜 아우토 마카리아 헤 코일리아 헤 바스타사사 세 카이 마스토이 후스 에델라사스

개역개정,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새번역,2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우리말성경,27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을 낳아 젖 먹이며 기르신 어머니는 정말 복 있는 분입니다!”

가톨릭성경,27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영어NIV,27 As Jesus was saying these things, a woman in the crowd called out, “Blessed is the mother who gave you birth and nursed you.”

영어NASB,27 While Jesus was saying these things, one of the women in the crowd raised her voice and said to Him, “Blessed is the womb that bore You and the breasts at which You nursed.”

영어MSG,27 While he was saying these things, some woman lifted her voice above the murmur of the crowd: “Blessed the womb that carried you, and the breasts at which you nursed!”

영어NRSV,27 While he was saying this, a woman in the crowd raised her voice and said to him, “Blessed is the womb that bore you and the breasts that nursed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7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λεγειν αυτον ταυτα επαρασα τις γυνη φωνην εκ του οχλου ειπεν αυτω μακαρια η κοιλια η βαστασασα σε και μαστοι ους εθηλασας

라틴어Vulgate,27 factum est autem cum haec diceret extollens vocem quaedam mulier de turba dixit illi beatus venter qui te portavit et ubera quae suxisti

히브리어Modern,27 ויהי כדברו את הדברים האלה ואשה אחת מן העם נשאה את קולה ותאמר אליו אשרי הבטן אשר נשאתך והשדים אשר ינקת׃

성 경: [눅11:27]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복있는 자]

󰃨 당신을 밴 태와…복이 있도소이다 – 엘리사벳이 예수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서 찬양한 내용과(1:42) 유사하며, 렌스키는 여기서 1:48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본문의 여인은 단순히 한 선생의 달변(達辯)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 배후에 있는 신적인 권위를 발견한 듯하다. 본절의 의미는 “당신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bless, NIV)을 받았음에 틀림없다”로 보면 될 것이다(Marshall).

아우토스 데 에이펜 메눈 마카리오이 호이 아쿠온테스 톤 로곤 투 데우 카이 퓔라쏜테스

개역개정,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28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우리말성경,2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가톨릭성경,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영어NIV,28 He replied, “Blessed rather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ey it.”

영어NASB,28 But He said, “On the contrary, blessed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serve it.”

영어MSG,28 Jesus commented, “Even more blessed are those who hear God’s Word and guard it with their lives!”

영어NRSV,28 But he said, “Blessed rather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ey it!”

헬라어신약Stephanos,28 αυτος δε ειπεν μενουνγε μακαριοι οι ακουοντες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και φυλασσοντε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28 at ille dixit quippini beati qui audiunt verbum Dei et custodiunt

히브리어Modern,28 והוא אמר ואף כי אשרי השמעים והשמרים את דבר האלהים׃

성 경: [눅11:28]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복있는 자]

󰃨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 예수는 여인의 찬사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곧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복되다는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데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Lenski, Tyndale). 그러니까 ‘오히려'(*, 메눈)는 여인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에 하신 말씀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모친과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는 말씀과(8:21) 동일 선상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혈육의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신실성의 문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헌신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는'(*, 퓔라쏜테스)은 ‘파수하다’, ‘준수하다’는 의미의 ‘퓔라쏘'(*)의 현재 분사형으로 복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임무로 아는 사람임을 뜻한다.

톤 데 오클론 에파드로이조메논 에릌사토 레게인 헤 게네아 하우테 게네아 포네라 에스틴 세메이온 제테이 카이 세메이온 우 도데세타이 아우테 에이 메 토 세메이온 요나

개역개정,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새번역,29 무리가 모여들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말성경,29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표적 외에는 어떤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영어NIV,29 As the crowds increased, Jesus said, “This is a wicked generation. It asks for a miraculous sign, but none will be given it except the sign of Jonah.

영어NASB,29 As the crowds were increasing, He began to say, “This generation is a wicked generation; it seeks for a sign, and yet no sign will be given to it but the sign of Jonah.

영어MSG,29 As the crowd swelled, he took a fresh tack: “The mood of this age is all wrong. Everybody’s looking for proof, but you’re looking for the wrong kind. All you’re looking for is something to titillate your curiosity, satisfy your lust for miracles. But the only proof you’re going to get is the Jonah-proof given to the Ninevites, which looks like no proof at all.

영어NRSV,29 When the crowds were increasing, he began to say, “This generation is an evil generation; it asks for a sign, but no sign will be given to it except the sign of Jonah.

헬라어신약Stephanos,29 των δε οχλων επαθροιζομενων ηρξατο λεγειν η γενεα αυτη πονηρα εστιν σημειον επιζητει και σημειον ου δοθησεται αυτη ει μη το σημειον ιωνα του προφητου

라틴어Vulgate,29 turbis autem concurrentibus coepit dicere generatio haec generatio nequam est signum quaerit et signum non dabitur illi nisi signum Ionae

히브리어Modern,29 ויקבצו עם רב ויחל לדבר הדור הזה דור רע הוא אות הוא מבקש ואות לא ינתן לו בלתי אם אות יונה הנביא׃

성 경: [눅11:29]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요나의 표적]

󰃨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 마태는 ‘음란한’을 첨가하고 있는데(마 12:39),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유할 때(호 1:2)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우상 숭배는 곧 음란으로 표현되었다. 유대인들의 표적(sign, NIV) 요구가 악한 것으로 규정되는 까닭은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며(Marshall), 또한 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키신 여러 가지 이적적인 사건들(14,20절;4:38-44;8:22-25;40-56)이 하나님의 권능을 밝히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아예 인정치 않으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도스 가르 에게네토 요나스 토이스 니뉴이타이스 세메이온 후토스 에스타이 카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테 게네아 타우테

개역개정,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새번역,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과 같이, 인자 곧 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영어NIV,30 For as Jonah was a sign to the Ninevites, so also will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영어NASB,30 “For just as Jonah became a sign to the Ninevites, so will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영어MSG,30 What Jonah was to Nineveh, the Son of Man is to this age.

영어NRSV,30 For just as Jonah became a sign to the people of Nineveh, so the Son of Man will be to this gener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0 καθως γαρ εγενετο ιωνας σημειον τοις νινευιταις ουτως εσται και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τη γενεα ταυτη

라틴어Vulgate,30 nam sicut Ionas fuit signum Ninevitis ita erit et Filius hominis generationi isti

히브리어Modern,30 כי כאשר היה יונה לאנשי נינוה לאות כן יהיה גם בן האדם לדור הזה׃

성 경: [눅11:30]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요나의 표적]

󰃨 요나가…인자도…그러하리라 – 요나가 바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다가 구원받은 것이 곧 예수의 죽음과 사흘 만의 부활을 예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의 평행 본문인 12:40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9:22에 이은 또 하나의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말씀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을 때 회개 운동이 일어났듯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사람들이 회개해야함을 촉구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알리신 것이기도 하다.

바실리싸 노투 에게르데세타이 엔 테 크리세이 메타 톤 안드론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 카이 카타크리네이 아우투스 호티 엘덴 에크 톤 페라톤 테스 게스 아쿠사이 텐 소피안 솔로모노스 카이 이두 플레이온 솔로모노스 호데

개역개정,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새번역,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우리말성경,31 심판 때에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가톨릭성경,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영어NIV,31 The Queen of the South will rise at the judgment with the men of this generation and condemn them; for she came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listen to Solomon’s wisdom, and now one greater than Solomon is here.

영어NASB,31 “The men of Nineveh will stand up with this generation at the judgment and condemn it, because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behold,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is here.

영어MSG,31 “On Judgment Day the Ninevites will stand up and give evidence that will condemn this generation, because when Jonah preached to them they changed their lives. A far greater preacher than Jonah is here, and you squabble about ‘proofs.’

영어NRSV,31 The queen of the South will rise at the judgment with the people of this generation and condemn them, because she came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listen to the wisdom of Solomon, and see, something greater than Solomon is here!

헬라어신약Stephanos,31 βασιλισσα νοτου εγερθησεται εν τη κρισει μετα των ανδρων της γενεας ταυτης και κατακρινει αυτους οτι ηλθεν εκ των περατων της γης ακουσαι την σοφιαν σολομωντος και ιδου πλειον σολομωντος ωδε

라틴어Vulgate,31 regina austri surget in iudicio cum viris generationis huius et condemnabit illos quia venit a finibus terrae audire sapientiam Salomonis et ecce plus Salomone hic

히브리어Modern,31 מלכת תימן תקום במשפט עם אנשי הדור הזה והרשיעה אותם כי באה מקצות הארץ לשמע את חכמת שלמה והנה יש פה גדול משלמה׃

성 경: [눅11:3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요나의 표적]

󰃨 남방 여왕이…정죄하리니 – 여기에 언급된 ‘남방 여왕’은 왕상 10:1-13에 나오는 스바의 여왕(queen of Sheba, NIV)을 말하는데 스바는 남부 아라비아에 있는 오늘날의 예멘(Yemen)을 가리킨다. 이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무려 2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찾아왔다. 이는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땅 끝에서 온 것이다(마 12:42). 이 여왕의 열정에 비하면 유대인들의 태도는 너무도 완악한 것이었다. 그들은 솔로몬 보다 더 위대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솔로몬 보다 ‘더 큰 이’라고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거리상 비교도 안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 인격의 위대함에 있어서도 솔로몬을 능가하는 예수와 접할 수 있는 귀한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모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셈이다.

안드레스 니뉴이타이 아나스테손타이 엔 테 크리세이 메타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 카이 카타크리누신 아우텐 호티 메테노에산 에이스 토 케뤼그마 요나 카이 이두 플레이온 요나 호데

개역개정,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새번역,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우리말성경,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은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이 세대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가톨릭성경,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영어NIV,32 The men of Nineveh will stand up at the judgment with this generation and condemn it; for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now one greater than Jonah is here.

영어NASB,32 “The men of Nineveh will stand up with this generation at the judgment and condemn it, because they repented at the preaching of Jonah; and behold,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is here.

영어MSG,32 On Judgment Day the Queen of Sheba will come forward and bring evidence that condemns this generation, because she traveled from a far corner of the earth to listen to wise Solomon. Wisdom far greater than Solomon’s is right in front of you, and you quibble over ‘evidence.’

영어NRSV,32 The people of Nineveh will rise up at the judgment with this generation and condemn it, because they repented at the proclamation of Jonah, and see,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is her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ανδρες νινευι αναστησονται εν τη κρισει μετα της γενεας ταυτης και κατακρινουσιν αυτην οτι μετενοησαν εις το κηρυγμα ιωνα και ιδου πλειον ιωνα ωδε

라틴어Vulgate,32 viri ninevitae surgent in iudicio cum generatione hac et condemnabunt illam quia paenitentiam egerunt ad praedicationem Ionae et ecce plus Iona hic

히브리어Modern,32 אנשי נינוה יקומו במשפט עם הדור הזה והרשיעהו כי הם שבו בקריאת יונה והנה יש פה גדול מיונה׃

성 경: [눅11:3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요나의 표적]

󰃨 니느웨 사람들이…정죄하리니 – 같은 논리가 이번에는 니느웨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대조에 적용되고 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창 10:11)로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극심한 죄악을 범하였다(욘 1: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다(욘 3:5-10). 니느웨 사람들은 일개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도 회개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위대하신 예수의 선포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31-32에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의 구원 받음’과 ‘유대인의 구원 받지 못함’이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 관계에 관해서는 마 8:1-17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우데이스 뤼크논 앞사스 에이스 크륖텐 티데신 우데 휘포 톤 모디온 알 에피 텐 뤼크니안 히나 호이 에이스포류오메노이 토 포스 블레포신

개역개정,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33 “아무도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두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한다.

우리말성경,33 등불을 켜서 은밀한 장소에 두거나 그릇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오직 등불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등잔대 위에 얹어 두는 법이다.

가톨릭성경,33 “ 아무도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함지 속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영어NIV,33 “No one lights a lamp and puts it in a place where it will be hidden, or under a bowl. Instead he puts it on its stand, so that those who come in may see the light.

영어NASB,33 “No one, after lighting a lamp, puts it away in a cellar nor under a basket, but on the lampstand, so that those who enter may see the light.

영어MSG,33 “No one lights a lamp, then hides it in a drawer. It’s put on a lamp stand so those entering the room have light to see where they’re going.

영어NRSV,33 “No one after lighting a lamp puts it in a cellar, but on the lampstand so that those who enter may see the light.

헬라어신약Stephanos,33 ουδεις δε λυχνον αψας εις κρυπτον τιθησιν ουδε υπο τον μοδιον αλλ επι την λυχνιαν ινα οι εισπορευομενοι το φεγγος βλεπωσιν

라틴어Vulgate,33 nemo lucernam accendit et in abscondito ponit neque sub modio sed supra candelabrum ut qui ingrediuntur lumen videant

히브리어Modern,33 אין מדליק נר אשר ישימהו בסתר או תחת האיפה כי אם על המנורה למען יראו באי הבית את אורו׃

성 경: [눅11:3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몸의 등불]

󰃨 누구든지…보게 하려 함이니라 – 본절의 의미는 두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등불이 예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등불이 등경 위에 위치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듯이, 예수께서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항시 생명의 빛을 비추었으나 사람들이 그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2)등불을 복음의 메시지로 간주하는 견해. 예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말씀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춰주어야 하는 새로운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호 뤼크노스 투 소마토스 에스틴 호 옾달모스 수 호탄 호 옾달모스 수 하플루스 에 카이 홀론 토 소마 수 포테이논 에스틴 에판 데 포네로스 에 카이 토 소마 수 스코테이논

개역개정,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새번역,34 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도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몸도 어두울 것이다.

우리말성경,34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눈이 좋으면 너희 온몸도 밝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두울 것이다.

가톨릭성경,34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영어NIV,34 Your eye is the lamp of your body. When your eyes are good, your whole body also is full of light. But when they are bad, your body also is full of darkness.

영어NASB,34 “The eye is the lamp of your body; when your eye is clear, your whole body also is full of light; but when it is bad, your body also is full of darkness.

영어MSG,34 Your eye is a lamp, lighting up your whole body. If you live wide-eyed in wonder and belief, your body fills up with light. If you live squinty-eyed in greed and distrust, your body is a dank cellar.

영어NRSV,34 Your eye is the lamp of your body. If your eye is healthy,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but if it is not healthy, your body is full of darkness.

헬라어신약Stephanos,34 ο λυχνος του σωματος εστιν ο οφθαλμος οταν ουν ο οφθαλμος σου απλους η και ολον το σωμα σου φωτεινον εστιν επαν δε πονηρος η και το σωμα σου σκοτεινον

라틴어Vulgate,34 lucerna corporis tui est oculus tuus si oculus tuus fuerit simplex totum corpus tuum lucidum erit si autem nequam fuerit etiam corpus tuum tenebrosum erit

히브리어Modern,34 נר הגוף הוא העין לכן בהיות עינך תמימה גם כל גופך יאור ובהיותה רעה וחשך גם גופך׃

성 경: [눅11:3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몸의 등불]

󰃨 몸의 등불은 눈 – 여기서 몸은 전체적인 인격을 뜻하나 등불에 비유된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에 해당한다.

󰃨 눈이 성하면…나쁘면 – ‘성하면'(*, 하플루스)의 본래적 의미는 ‘주름이 없는’, ‘단순한’, ‘진실한’으로 영적 안목이 단순하고도 진실되게 진리에만 고정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 단어에 ‘일편 단심’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있다고 보아 “온 몸이 밝을 것이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눈이 건강해서 빛을 받아들인다면 즉 영적인 눈이 일편 단심으로 복음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전 존재는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반면 ‘나쁜'(*, 포네로스) 눈은 그 시선이 약한 것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복음을 거부하는 눈이다.

스코페이 운 메 토 포스 토 엔 소이 스코토스 에스틴

개역개정,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새번역,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보아라.

우리말성경,35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보라.

가톨릭성경,35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영어NIV,35 See to it, then, that the light within you is not darkness.

영어NASB,35 “Then watch out that the light in you is not darkness.

영어MSG,35 Keep your eyes open, your lamp burning, so you don’t get musty and murky.

영어NRSV,35 Therefore consider whether the light in you is not darkness.

헬라어신약Stephanos,35 σκοπει ουν μη το φως το εν σοι σκοτο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35 vide ergo ne lumen quod in te est tenebrae sint

히브리어Modern,35 על כן השמר לך פן יחשך האור אשר בקרבך׃

성 경: [눅11:35]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몸의 등불]

󰃨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 누가는 이 말씀을 하나의 권고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마태는 경고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마 6:2). “속에 있는 빛”에 관해서는 (1)하나님의 계시를 감지하는 내적 빛 곧 양심(Gilmore) 혹은 (2)청중들이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는 것을 각각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중 어떤 견해를 취하든 본절은 본성적으로 진리를 거스리기 쉬운 인간의 무지함과 완악함에 대한 경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에이 운 토 소마 수 홀론 포테이논 메 에콘 메로스 티 스코테이논 에스타이 포테이논 홀론 호스 호탄 호 뤼크노스 테 아스트라페 포티제 세

개역개정,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새번역,36 네 온 몸이 밝아서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그 빛으로 너를 환하게 비출 때와 같이, 네 몸은 온전히 밝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6 만약 너희 온몸이 빛으로 가득하고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등불이 너희를 환하게 비출 때처럼 너희 몸도 온전히 빛날 것이다.”

가톨릭성경,36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

영어NIV,36 Therefore, if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and no part of it dark, it will be completely lighted, as when the light of a lamp shines on you.”

영어NASB,36 “If therefore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with no dark part in it, it will be wholly illumined, as when the lamp illumines you with its rays.”

영어MSG,36 Keep your life as well-lighted as your best-lighted room.”

영어NRSV,36 If then your whole body is full of light, with no part of it in darkness, it will be as full of light as when a lamp gives you light with its rays.”

헬라어신약Stephanos,36 ει ουν το σωμα σου ολον φωτεινον μη εχον τι μερος σκοτεινον εσται φωτεινον ολον ως οταν ο λυχνος τη αστραπη φωτιζη σε

라틴어Vulgate,36 si ergo corpus tuum totum lucidum fuerit non habens aliquam partem tenebrarum erit lucidum totum et sicut lucerna fulgoris inluminabit te

히브리어Modern,36 והנה אם גופך כלו אור ואין בו כל דבר חשך אז יאור כלו והיה כהאיר לך הנר בברק נגהו׃

성 경: [눅11:36]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몸의 등불]

󰃨 온몸이 밝아…온전히 밝으리라 –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누가만의 독특한 결론이나, 그 의미가 분명치 않아 베자 사본, 고대 라틴역, 수리아역 등에서는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앞의 내용을 반복하는 듯한 본절은 반복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면이나 주제면에서 볼 때 엡 5:13,14와 유사하다. 본절의 의미는 34,35절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해지는 바 믿음의 신령한 눈을 뜨고 있는 자는 복음의 광채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가 그 빛을 주위에까지 비추는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엡 5:8).

엔 데 토 랄레사이 에로타 아우톤 파리사이오스 호포스 아리스테세 파르 아우토 에이셀돈 데 아네페센

개역개정,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새번역,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바리새파 사람 하나가 자기 집에서 잡수시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들어가서 앉으셨다.

우리말성경,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바리새파 한 사람이 자기 집에서 잡수시기를 청하자 예수께서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기대어 앉으셨습니다.

가톨릭성경,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영어NIV,37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a Pharisee invited him to eat with him; so he went in and reclined at the table.

영어NASB,37 Now when He had spoken, a Pharisee asked Him to have lunch with him; and He went in, and reclined at the table.

영어MSG,37 When he finished that talk, a Pharisee asked him to dinner. He entered his house and sat right down at the table.

영어NRSV,37 While he was speaking, a Pharisee invited him to dine with him; so he went in and took his place at the table.

헬라어신약Stephanos,37 εν δε τω λαλησαι ηρωτα αυτον φαρισαιος τις οπως αριστηση παρ αυτω εισελθων δε ανεπεσεν

라틴어Vulgate,37 et cum loqueretur rogavit illum quidam Pharisaeus ut pranderet apud se et ingressus recubuit

히브리어Modern,37 ויהי בדברו ויבקש ממנו פרוש אחד לאכל אתו לחם ויבא הביתה ויסב׃

성 경: [눅11:37]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리새인의 외식]

󰃨 한 바리새인이…앉으셨더니 – 여기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것은 모종의 적대 의식 또는 반감을 가지고 책잡기 위해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짐작된다. ‘점심 잡수시기’에 사용된 동사 ‘아리스테세'(*)는 ‘먹다’는 의미의 ‘아리스타오'(*)의 과거형으로 정확하게 말해서 이 말의 뜻은 하루의 첫번째 식사를 가리킨다. 보통의 상류층 유대인들도 평일에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다. 한 번은 늦은 아침에 가볍게 하고(*, 아리스톤), 또 한 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데 이것이 주식사이다(*, 데이프논). 안식일에는 세 차례의 식사를 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을 가장 잘 차린다. 이렇게 볼 때 예수께서 초대받은 식사는 첫 식사라는 의미에서 ‘아침’이며(요 21:12,15), 시간상 점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앉으셨더니'(*, 아나퓨토)는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를 묘사한 것이다.

호 데 파리사이오스 이돈 에다우마센 호티 우 프로톤 에밮티스데 프로 투 아리스투

개역개정,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새번역,38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가 잡수시기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우리말성경,38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께서 음식을 들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영어NIV,38 But the Pharisee, noticing that Jesus did not first wash before the meal, was surprised.

영어NASB,38 When the Pharisee saw it, he was surprised that He had not first ceremonially washed before the meal.

영어MSG,38 The Pharisee was shocked and somewhat offended when he saw that Jesus didn’t wash up before the meal.

영어NRSV,38 The Pharisee was amazed to see that he did not first wash before dinner.

헬라어신약Stephanos,38 ο δε φαρισαιος ιδων εθαυμασεν οτι ου πρωτον εβαπτισθη προ του αριστου

라틴어Vulgate,38 Pharisaeus autem coepit intra se reputans dicere quare non baptizatus esset ante prandium

히브리어Modern,38 ויתמה הפרוש בראתו אשר לא נטל ידיו בראשונה לפני הסעודה׃

성 경: [눅11:38]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리새인의 외식]

󰃨 손 씻지 아니하심을…이상히 – 막 7:2에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가 바리새인들과 부딪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 자신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에 임함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씻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배티조'(*)는 ‘담그다’, ‘적시다’의 의미로서 규례에 따라 식사전에 물 그릇에 손을 담그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는 당시 하나의 예의요 관습이었고,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죄많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결례(潔禮)였다. 아무튼 이 제의적(祭儀的) 식사 관습은 바리새인 뿐 아니라 일반 유대인들도 철저히 지켰던 규범이었다(막 7:3-4). 따라서 이 유전을 무시한 예수의 행위는 그 바리새인에게 파격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의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유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저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악습을 질책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에이펜 데 호 퀴리오스 프로스 아우톤 뉜 휘메이스 호이 파리사이오이 토 엨소덴 투 포테리우 카이 투 피나코스 카다리제테 토 데 에소덴 휘몬 게메이 하르파게스 카이 포네리아스

개역개정,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새번역,39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우리말성경,39 그러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너희 속에는 욕심과 사악함이 가득 차 있다.

가톨릭성경,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영어NIV,39 Then the Lord said to him, “Now then, you Pharisees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dish, but inside you are full of greed and wickedness.

영어NASB,39 But the Lord said to him, “Now you Pharisees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of the platter; but inside of you, you are full of robbery and wickedness.

영어MSG,39 But the Master said to him, “I know you Pharisees burnish the surface of your cups and plates so they sparkle in the sun, but I also know your insides are maggoty with greed and secret evil.

영어NRSV,39 Then the Lord said to him, “Now you Pharisees clean the outside of the cup and of the dish, but inside you are full of greed and wickedness.

헬라어신약Stephanos,39 ειπεν δε ο κυριος προς αυτον νυν υμεις οι φαρισαιοι το εξωθεν του ποτηριου και του πινακος καθαριζετε το δε εσωθεν υμων γεμει αρπαγης και πονηριας

라틴어Vulgate,39 et ait Dominus ad illum nunc vos Pharisaei quod de foris est calicis et catini mundatis quod autem intus est vestrum plenum est rapina et iniquitate

히브리어Modern,39 ויאמר אליו האדון כעת אתם הפרושים מטהרים את הכום והקערה מחוץ והפנימי אשר בכם הוא מלא גזל ורשע׃

성 경: [눅11:39]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리새인의 외식]

󰃨 겉은 깨끗이…속인즉 탐욕과 악독 – 예수는 ‘주'(*, 호 퀴리오스)로서 말씀하시며, 그 대상은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바리새인을 넘어 전체 바리새인들에게로 확대된다. 예수는 자신을 초청한 사람을 면전에 두고 매우 강한 어조로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는데 마태의 경우는 (마 23:25) ‘화 있을진저’라는 저주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종교적인 거룩함을 보이려고 그릇의 겉을 닦듯이 철저히 예식을 엄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외양을 포장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위선자들이라는 것이다. 탐욕(*, 하르파게스)은 ‘채어가다’는 뜻의 ‘하르파조'(*)에서 온 말로 ‘강탈’, ‘약탈’의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악독'(*, 포네리아스)은 ‘악한 자’를 뜻하는 ‘포네로스'(*)에서 온 말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종교적 순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 중심을 얼마나 욕심이 많고 악한 자들인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아프로네스 우크 호 포이에사스 토 엨소덴 카이 토 에소덴 에포이에센

개역개정,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새번역,40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말성경,40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가톨릭성경,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영어NIV,40 You foolish people! Did not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make the inside also?

영어NASB,40 “You foolish ones, did not He who made the outside make the inside also?

영어MSG,40 Stupid Pharisees! Didn’t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also make the inside?

영어NRSV,40 You fools! Did not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make the inside also?

헬라어신약Stephanos,40 αφρονες ουχ ο ποιησας το εξωθεν και το εσωθεν εποιησεν

라틴어Vulgate,40 stulti nonne qui fecit quod de foris est etiam id quod de intus est fecit

히브리어Modern,40 הכסילים הלא עשה החיצון גם עשה את הפנימי׃

성 경: [눅11:40]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리새인의 외식]

󰃨 어리석은 자들아 – 겉만 깨끗하게 포장을 하면 속의 추악함이 감추어 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창조자의 눈에는 피조물들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마 10:26).

플렌 타 에논타 도테 엘레모쉬넨 카이 이두 판타 카다라 휘민 에스틴

개역개정,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새번역,41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우리말성경,41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가톨릭성경,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영어NIV,41 But give what is inside the dish to the poor, and everything will be clean for you.

영어NASB,41 “But give that which is within as charity, and then all things are clean for you.

영어MSG,41 Turn both your pockets and your hearts inside out and give generously to the poor; then your lives will be clean, not just your dishes and your hands.

영어NRSV,41 So give for alms those things that are within; and see, everything will be clean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41 πλην τα ενοντα δοτε ελεημοσυνην και ιδου παντα καθαρα υμιν εστιν

라틴어Vulgate,41 verumtamen quod superest date elemosynam et ecce omnia munda sunt vobis

히브리어Modern,41 אבל תנו לצדקה את אשר בם והנה הכל טהור לכם׃

성 경: [눅11:4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바리새인의 외식]

󰃨 그 안에 있는 것 – 이에 관하여 여러 해석이 있다. (1)잔과 접시 속에 있는 것, 곧 호화 음식으로 봄. 그러면 그 의미는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지 말고 그 식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잔 속에 있는 것을 구제물로 주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하리라”(NEB)가 된다. (2)이를 부사적 대격으로 해석하여 “마음으로부터 자선을 베풀라”의 뜻으로 본다(N.Turner). (3)”네가 모아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즉시 너의 소유물이 깨끗해 질것이다”(J.Knox). (4)누가가 기록한 ‘구제하라’는 아람어 ‘깨끗이 하다'(dakki)를 ‘자선을 베풀다'(zakki)로 오역한 것이라는 해석(Wellhausen). 이러한 세가지 해석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39절과의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합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그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할 뿐 아니라 그러한 마음의 필연적인 결과로 부정한 재물을 축적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볼 때 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부정한 재물을 모두 되돌려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제’라는 말에 적합하게 자신들이 정당하게 모은 것에 대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라 우아이 휘민 토이스 파리사이오이스 호티 아포데카투테 토 헤뒤오스몬 카이 토 페가논 카이 판 라카논 카이 파레르케스데 텐 크리신 카이 텐 아가펜 투 데우 타우타 데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파레이나이

개역개정,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새번역,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우리말성경,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들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정작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무시해 버리는구나. 그런 것들도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성경,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영어NIV,42 “Woe to you Pharisees, because you give God a tenth of your mint, rue and all other kinds of garden herbs, but you neglect justice and the love of God.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leaving the former undone.

영어NASB,42 “But woe to you Pharisees! For you pay tithe of mint and rue and every kind of garden herb, and yet disregard justice and the love of God; but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have don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영어MSG,42 “I’ve had it with you! You’re hopeless, you Pharisees! Frauds! You keep meticulous account books, tithing on every nickel and dime you get, but manage to find loopholes for getting around basic matters of justice and God’s love. Careful bookkeeping is commendable, but the basics are required.

영어NRSV,42 “But woe to you Pharisees! For you tithe mint and rue and herbs of all kinds, and neglect justice and the love of God; it is these you ought to have practiced,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

헬라어신약Stephanos,42 αλλ ουαι υμιν τοις φαρισαιοις οτι αποδεκατουτε το ηδυοσμον και το πηγανον και παν λαχανον και παρερχεσθε την κρισιν και την αγαπην του θεου ταυτα εδει ποιησαι κακεινα μη αφιεναι

라틴어Vulgate,42 sed vae vobis Pharisaeis quia decimatis mentam et rutam et omne holus et praeteritis iudicium et caritatem Dei haec autem oportuit facere et illa non omittere

히브리어Modern,42 אך אוי לכם הפרושים כי תעשרו את המנתא ואת הפיגם ואת כל הירק ותעברו את המשפט ואת אהבת אלהים והיה לכם לעשות את אלה ולא להניח גם את אלה׃

성 경: [눅11:4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 – 여기서부터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해서 여섯가지의 화(禍)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선포되는데, 이 문구에는 ‘저주’ 또는 ‘복수’의 의미라기보다는 ‘탄식’의 뜻이 들어 있다(10:1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사장(死藏)시킨 채 그 형식에만 집착함으로써 성스러운 하나님의 율법을 박재화시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바판하고 있다. 본래 구약의 율법은 곡식, 포도주, 기름과 같은 주요 농산물과 가축에 대한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다(레 27:30-33;신 14:22-29). 물론 여기에는 땅 위에서 소출하는 모든 것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랍비적 규범은 십일조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세분화하였는데, 심지어는 땔 나무까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요구한다(Mishna). 이런 것 자체가 벌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와 맹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바리새인들이 바친 십일조의 세 항목이 열거되고 있는데, ‘박하'(*, 헤두오스몬)는 정원에서 재배하는 식물로 그 향기가 좋으며, ‘운향'(*, 폐가논)은 회록색의 잎과 노란 꽃을 가진 식물이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23:23) ‘회향'(*, 아네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논드 향료(anethum graveolens)를 가리킨다. 마지막 항목인 ‘채소'(*, 라카논)는 어떤 특정한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총칭으로서의 채소를 뜻한다. 마태는 누가와 달리 특정한 종류인 ‘근채'(*, 퀴미논)로 기록하고 있다.

󰃨 공의와…사랑은 버리는도다 – 형식적 율법을 준수함에 있어서는 규정 이상으로 열성적이며 철저했던 바리새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탈색시켜 버렸다. 여기서 ‘공의'(*, 크리시스)는 ‘정의’, ‘의로움’의 뜻으로 사회 정의와 관련된 말이며(Easton),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불의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사랑'(*, 아가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이신 사랑’에 근거하여 마음과 목숨과 힘, 그리고 뜻을 다해 하가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가리킨다(10:27).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공의와 사랑을 버렸던 것이다. ‘버리다'(*, 파레르케스데)는 ‘비켜나다’, ‘간과하다’의 의미로 이들의 행위가 중요한 핵심을 비켜가면서 형식만을 추구하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 예수게서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부정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철저하게 형식을 지키는 만큼 그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가 간과되거나 무시된 채 전자만이 지켜질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자는 정결법의 규절을 파기하신 예수께서(38절) 율법의 준수를 말하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수를 맹목적 율법 파괴자로 오해하는 데서 오는 그릇된 문제 제기이다. 왜냐하면 (1)예수께서는 율법 자체를 파괴하거나 반대하시지 않고(16:17), (2)결코 예수는 정신이 결여된 율법 준수를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3)을 법이 규정하지도 않은 유전적(遺傳的) 규범을 거부하는 것과 정당한 목적을 가진 십일조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아이 휘민 토이스 파리사이오이스 호티 아가파테 텐 프로토카데드리안 엔 타이스 쉬나고가이스 카이 투스 아스파스무스 엔 타이스 아고라이스

개역개정,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새번역,4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우리말성경,4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받기 좋아하는구나.

가톨릭성경,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어NIV,43 “Woe to you Pharisees, because you love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and greetings in the marketplaces.

영어NASB,43 “Woe to you Pharisees! For you love the chief seats in the synagogues and the respectful greetings in the market places.

영어MSG,43 “You’re hopeless, you Pharisees! Frauds! You love sitting at the head table at church dinners, love preening yourselves in the radiance of public flattery.

영어NRSV,43 Woe to you Pharisees! For you love to have the seat of honor in the synagogues and to be greeted with respect in the marketplaces.

헬라어신약Stephanos,43 ουαι υμιν τοις φαρισαιοις οτι αγαπατε την πρωτοκαθεδριαν εν ταις συναγωγαις και τους ασπασμους εν ταις αγοραις

라틴어Vulgate,43 vae vobis Pharisaeis quia diligitis primas cathedras in synagogis et salutationes in foro

히브리어Modern,43 אוי לכם הפרושים כי תאהבו את מושב הראש בבתי הכנסיות ואת שאלות שלומכם בשוקים׃

성 경: [눅11:4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명예욕이 지적된다. 첫째로 지적되는 것은 교권적 교만으로, 그들은 공식적 예배 종교 교육 담당 기관인 회당에서 늘상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23:6) 이들이 잔치에서도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높은 자리'(*, 프로토카데드리아)는 ‘가장 높은 자리'(the most important seats, NIV)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바리새인들이 회당의 상석에 앉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보다는 특권적 우월 의식(優越意式)이나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점이다. 둘째로 지적되는 것은 세속적 명예욕으로 그들은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을 자신들의 특별한 존재성을 확인받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은 단순한 문안 인사의 차원을 넘어 존경의 표시였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로서 당연히 존경의 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으례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내면과 행위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바른 것인지를 점검해 봤어야 했던 것이다.

우아이 휘민 호티 에스테 호스 타 므네메이아 타 아델라 카이 호이 안드로포이 호이 페리파툰테스 에파노 우크 오이다신

개역개정,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새번역,44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게 만든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무덤인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말성경,44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 같아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나 무덤인 줄 모른다.”

가톨릭성경,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영어NIV,44 “Woe to you, because you are like unmarked graves, which men walk over without knowing it.”

영어NASB,44 “Woe to you! For you are like concealed tombs, and the people who walk over them are unaware of it.”

영어MSG,44 Frauds! You’re just like unmarked graves: People walk over that nice, grassy surface, never suspecting the rot and corruption that is six feet under.”

영어NRSV,44 Woe to you! For you are like unmarked graves, and people walk over them without realizing it.”

헬라어신약Stephanos,44 ουαι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εστε ως τα μνημεια τα αδηλα και οι ανθρωποι οι περιπατουντες επανω ουκ οιδασιν

라틴어Vulgate,44 vae vobis quia estis ut monumenta quae non parent et homines ambulantes supra nesciunt

히브리어Modern,44 אוי לכם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החנפים כי אתם כקברים הנסתרים ובני האדם מתהלכים עליהם ולא ידעו׃

성 경: [눅11:4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평토장(平土葬)한 무덤 – 바리새인들에 대한 세번째 화(禍)는 그들의 본질적 모습에 관한 것이다. 즉 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억울한 부정을 범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닿으면 칠일간 부정하게 되는데 평토장한 무덤 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도 닿으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본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부패하고 썩은 무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 중에 부정한 죄를 범하게 하는 자들로 비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마태의 평행 본문에서는(23:27)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즉 거기서는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 즉 속에는 죽음과 부패함이 있으나 겉은 아름답게 치장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그들의 은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고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의 외부적인 치장에 비판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티스 톤 노미콘 레게이 아우토 디다스칼레 타우타 레곤 카이 헤마스 휘브리제이스

개역개정,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새번역,45 율법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45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45 One of the experts in the law answered him, “Teacher, when you say these things, you insult us also.”

영어NASB,45 One of the lawyers said to Him in reply, “Teacher, when You say this, You insult us too.”

영어MSG,45 One of the religion scholars spoke up: “Teacher, do you realize that in saying these things you’re insulting us?”

영어NRSV,45 One of the lawyers answered him, “Teacher, when you say these things, you insult us too.”

헬라어신약Stephanos,45 αποκριθεις δε τις των νομικων λεγει αυτω διδασκαλε ταυτα λεγων και ημας υβριζεις

라틴어Vulgate,45 respondens autem quidam ex legis peritis ait illi magister haec dicens etiam nobis contumeliam facis

히브리어Modern,45 ויען אחד מבעלי התורה ויאמר אליו רבי בדבריך אלה תחרף גם אתנו׃

성 경: [눅11:45]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한 율법사가…모욕하심이니이다 – 여기서부터는 비판의 대상이 바리새인에서 율법사로 바뀌어진다. 마태복음의 경우 이 두 그룹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함께 싸잡아 바난하고 있다(마 23:13,27,29). 여기서 율법사는 일명 서기관(scribe)으로 불리기도 하는데(막 12:28), 유대교의 전문적인 율법 해석자나 율법 교사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에 율법사도 함께 있었음을 말해주는데(37절) 이 율법사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비판을 듣고 있던 중 마치 도둑이 제 발저린다는 격으로 찔림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율법사의 대부분은 바리새인이었으므로 그가 그렇게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 율법사는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는 불만을 드러냄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비판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한편 그가 교만으로 가득차 예수의 비판을 ‘모욕'(insult, NIV)으로 받아들인 것은 예수의 비판을 근거 없고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았음을 뜻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의 죄악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호 데 에이펜 카이 휘민 토이스 노미코이스 우아이 호티 포르티제테 투스 안드로푸스 포르티아 뒤스바스타크타 카이 아우토이 헤니 톤 닼튈론 휘몬 우 프로스프사우에테 토이스 포르티오이스

개역개정,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새번역,4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도 화가 있다! 너희는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말성경,4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율법학자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백성들에게 지기 힘든 어려운 짐을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 하지 않는구나.

가톨릭성경,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NIV,46 Jesus replied, “And you experts in the law, woe to you, because you load people down with burdens they can hardly carry, and you yourselves will not lift one finger to help them.

영어NASB,46 But He said, “Woe to you lawyers as well! For you weigh men down with burdens hard to bear, while you yourselves will not even touch the burdens with one of your fingers.

영어MSG,46 He said, “Yes, and I can be even more explicit.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You load people down with rules and regulations, nearly breaking their backs, but never lift even a finger to help.

영어NRSV,46 And he said, “Woe also to you lawyers! For you load people with burdens hard to bear, and you yourselves do not lift a finger to ease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46 ο δε ειπεν και υμιν τοις νομικοις ουαι οτι φορτιζετε τους ανθρωπους φορτια δυσβαστακτα και αυτοι ενι των δακτυλων υμων ου προσψαυετε τοις φορτιοις

라틴어Vulgate,46 at ille ait et vobis legis peritis vae quia oneratis homines oneribus quae portari non possunt et ipsi uno digito vestro non tangitis sarcinas

히브리어Modern,46 ויאמר אוי גם לכם בעלי התורה כי עמסים אתם על בני האדם משאות כבדים מסבל ואתם בעצמכם אינכם נגעים במשאות גם באחת מאצבעותיכם׃

성 경: [눅11:46]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지기 어려운 짐을…대지 않는도다 – 여기서 말하는 ‘지기 어려운 짐’이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한 율법사들의 해석을 말하는데, 이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해석을 율법 자체보다 우월한 것으로까지 여겼다. 그런데 이들의 해석은 지나치게 세분화 되어 있고 복잡하여(모세의 율법을 제외하고도 613조에 달하는 규범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일일이 암기하여 지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저들은 이런 부담(burden)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면서도 자기들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마 23:3).

우아이 휘민 호티 오이코도메이테 테 므네메이아 톤 프로페톤 호이 데 파테레스 휘몬 아펰테이난 아우투스

개역개정,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새번역,47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세운다.

우리말성경,47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 바로 너희 조상들이 그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이었다.

가톨릭성경,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영어NIV,47 “Woe to you, because you build tombs for the prophets, and it was your forefathers who killed them.

영어NASB,47 “Woe to you! For you build the tombs of the prophets, and it was your fathers who killed them.

영어MSG,47 “You’re hopeless! You build tombs for the prophets your ancestors killed.

영어NRSV,47 Woe to you! For you build the tombs of the prophets whom your ancestors killed.

헬라어신약Stephanos,47 ουαι υμιν οτι οικοδομειτε τα μνημεια των προφητων οι δε πατερες υμων απεκτειναν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47 vae vobis quia aedificatis monumenta prophetarum patres autem vestri occiderunt illos

히브리어Modern,47 אוי לכם כי בונים אתם את קברות הנביאים ואבותיכם הרגו אותם׃

성 경: [눅11:47]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 이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여 묻힌 무덤을 다시 쌓고 비석을 세워 선지자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처럼 선전하지만(마 23:29,30) 그것은 자신들의 악함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죽은 선지자를 기념하면서 살아있는 선지자를 죽이는 모순된 자들이며(9:9;마 14:3-12), 앞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선지자를 합한 것 보다도 더 위대한 한 선지자를 죽일 것이다(23:18,21,23).

아라 마르튀레스 에스테 카이 쉬뉴도케이테 토이스 에르고이스 톤 파테론 휘몬 호티 아우토이 멘 아펰테이난 아우투스 휘메이스 데 오이코도메이테

개역개정,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새번역,48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증언하며 찬동하는 것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48 그래서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저지른 일을 인정하고 찬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영어NIV,48 So you testify that you approve of what your forefathers did; they killed the prophets, and you build their tombs.

영어NASB,48 “So you are witnesses and approve the deeds of your fathers; because it was they who killed them, and you build their tombs.

영어MSG,48 The tombs you build are monuments to your murdering ancestors more than to the murdered prophets.

영어NRSV,48 So you are witnesses and approve of the deeds of your ancestors; for they killed them, and you build their tombs.

헬라어신약Stephanos,48 αρα μαρτυρειτε και συνευδοκειτε τοις εργοις των πατερων υμων οτι αυτοι μεν απεκτειναν αυτους υμεις δε οικοδομειτε αυτων τα μνημεια

라틴어Vulgate,48 profecto testificamini quod consentitis operibus patrum vestrorum quoniam quidem ipsi eos occiderunt vos autem aedificatis eorum sepulchra

히브리어Modern,48 וכן אתם מעידים ורוצים במעשי אבותיכם כי המה הרגו אותם ואתם בונים את קבריהם׃

성 경: [눅11:48]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너희는 쌓으니 – 47절과 마 23:29에서처럼 무덤을 장식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역설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그 의미는 (1)”너희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죽음을 확인한다. 즉 조상들의 악행을 완성한다”(Manson, Schweizer). (2)”너희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전하는 말씀을 거부한 너희 조상들 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너희들은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선지자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O.Michel, Schulz). 결국 여기서도 계속 지적되는 것은 외적인 경건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이다.

디아 투토 카이 헤 소피아 투 데우 에이펜 아포스텔로 에이스 아우투스 프로페타스 카이 아포스톨루스 카이 엨스 아우톤 아포크테누신 카이 디옼수신

개역개정,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새번역,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도 말하기를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겠는데, 그들은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였다.

우리말성경,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도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중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핍박할 것이다.’

가톨릭성경,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영어NIV,49 Because of this, God in his wisdom said, ‘I will send them prophets and apostles, some of whom they will kill and others they will persecute.’

영어NASB,49 “For this reason also the wisdom of God said, ‘ I will send to them prophets and apostles, and some of them they will kill and some they will persecute,

영어MSG,49 That accounts for God’s Wisdom saying, ‘I will send them prophets and apostles, but they’ll kill them and run them off.’

영어NRSV,49 Therefore also the Wisdom of God said, ‘I will send them prophets and apostles, some of whom they will kill and persecute,’

헬라어신약Stephanos,49 δια τουτο και η σοφια του θεου ειπεν αποστελω εις αυτους προφητας και αποστολους και εξ αυτων αποκτενουσιν και εκδιωξουσιν

라틴어Vulgate,49 propterea et sapientia Dei dixit mittam ad illos prophetas et apostolos et ex illis occident et persequentur

히브리어Modern,49 בעבור זאת גם אמרה חכמת האלהים אשלח אליהם נביאים ושליחים ומהם יהרגו וירדפו׃

성 경: [눅11:49]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하나님의 지혜 – 이 문구에 대한 용례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이 문구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도 각양 각색이다. 학자들의 제 해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핍박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대 묵시문학서 중 하나의 이름이라고 본다(Bultmann). 그러나 이런 제목의 책은 발견된 적은 없다. (2)하나님의 ‘지혜'(God in his wisdon. NIV)는 예수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Tatian, Geldenhuys). 바울이 예수를 하나님의 지혜(wisdon from God, NIV)라고 말한 적은 있으나(고전 1:30), 예수께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경우는 없다. (3)구약을 가리킨다고 이해한다(Godet). (4)예수께서 과거에 하셨던 말씀들로 본다(Meyer). (5)예수의 지혜 속에 있는 하나님 즉 그의 예지와 신적 섭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본다(Lenski). (6)’하나님이 그의 지혜로’의 의미로 본다(Creed, Manson, Danker). (7)구약과 유대교에서 지혜를 인격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신적 지혜”로 이해한다(U.Wilckens, Schulz). 지혜가 인격화되는 예를 보면 잠 1:20-33에서는 인간에게 말을 하며, 7:35에서는 그 자녀들에 관해 언급한다. 이러한 제 견해들 가운데 (6)과 (7)의 견해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히나 에크제테데 토 하이마 판톤 톤 프로페톤 토 엨케퀴메논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아포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

개역개정,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새번역,50 창세 이래로 흘린 모든 예언자들의 피의 대가를 이 세대에게 요구할 것이다.

우리말성경,50 그러므로 이 세대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흘린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영어NIV,50 Therefore this generation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the blood of all the prophets that has been sh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영어NASB,50 so that the blood of all the prophets, shed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may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영어MSG,50 What it means is that every drop of righteous blood ever spilled from the time earth began until now,.

영어NRSV,50 so that this generation may be charged with the blood of all the prophets shed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헬라어신약Stephanos,50 ινα εκζητηθη το αιμα παντων των προφητων το εκχυνομενον απο καταβολης κοσμου απο της γενεας ταυτης

라틴어Vulgate,50 ut inquiratur sanguis omnium prophetarum qui effusus est a constitutione mundi a generatione ista

히브리어Modern,50 למען ידרש מן הדור הזה דם כל הנביאים אשר נשפך למן הוסד הארץ׃

성 경: [눅11:50]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모든 선지자의 피 – 앞서간 세대들이 저지른 과오는 후대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회이고 은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어진 기회와 은총을 저버릴 때에는 전(前) 세대들로부터 누적된 심판을 받게된다. 바로 예수 세대의 유대인들이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었다(47-48). 전 세대들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을 더하는 세대들에게 가해질 형벌의 중함과 엄격함에 대해서는 성경에도 여러 차례 기록이 되어 있다(잠 29:1;렘 7:16;겔 14:14). 한편 본문의 ‘모든 선지자’에 대해서 마태는 ‘의인'(*, 디카이온)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아벨’을 언급함에 있어서 ‘선지자’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Marshall). 그러나 본문에서도 ‘선지자’라는 칭호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종들의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그 의미는 동일하다.

아포 하이마토스 하벨 헤오스 하이마토스 자카리우 투 아폴로메누 메탘쉬 투 뒤시아스테리우 카이 투 오이쿠 나이 레고 휘민 에크제테데세타이 아포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

개역개정,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새번역,51 아벨의 피에서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말성경,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말이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영어NIV,51 from the blood of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who was killed between the altar and the sanctuary. Yes, I tell you, this generation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it all.

영어NASB,51 from the blood of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who was killed between the altar and the house of God; yes, I tell you, it shall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영어MSG,51 from the blood of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who was struck down between altar and sanctuary, is on your heads. Yes, it’s on the bill of this generation and this generation will pay.

영어NRSV,51 from the blood of Abel to the blood of Zechariah, who perished between the altar and the sanctuary. Yes, I tell you, it will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51 απο του αιματος αβελ εως του αιματος ζαχαριου του απολομενου μεταξυ του θυσιαστηριου και του οικου ναι λεγω υμιν εκζητηθησεται απο της γενεας ταυτης

라틴어Vulgate,51 a sanguine Abel usque ad sanguinem Zacchariae qui periit inter altare et aedem ita dico vobis requiretur ab hac generatione

히브리어Modern,51 מדם הבל עד דם זכריהו אשר נהרג בין המזבח ולבית הן אמר אני לכם דרוש ידרש מן הדור הזה׃

성 경: [눅11:51]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아벨의 피…사가랴의 피 – 이것은 유대인들의 성경 분류법상 처음 책인 창세기로부터 마지막 책인 역대기하에 이르기 까지의 의로운 첫번째 죽음과(창 4:8) 마지막 죽음(대하 24:20-22)을 표현한 것이다.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로 칭함을 받았으나 그의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사가랴는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비판하다 죽임을 당한 의인이었다. 한편 마태는 사가랴가 바라갸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마 23:35),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스가랴)로(대하 24:20) 기록하고 잇는 본문과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에 대해 마샬(Marshal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태는 여호야다의 아들과 예언서 스가랴의 기록자인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를 혼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도 동일하게 살해당했다는 전승이 있거나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여기서 언급되는 스가랴는 A.D.67년 헤롯당에 의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바라이스의 아들 스가랴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럴 경우 선지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전(全) 유대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셈이며 예루살렘의 멸망도 피의 대가로 지불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담당하리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매우 강한 결의의 표현으로 그 속에는 예수의 신적인 권위가 내포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A.D. 70년경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파멸됨으로써 과연 그 세대는 피의 대가를 담당하였다.

우아이 휘민 토이스 노미코이스 호티 에라테 텐 클레이다 테스 그노세오스 아우토이 우크 에이셀다테 카이 투스 에이세르코메누스 에콜뤼사테

개역개정,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52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막았다!”

우리말성경,52 너희 율법학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막았다.”

가톨릭성경,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영어NIV,52 “Woe to you experts in the law, because you have taken away the key to knowledge. You yourselves have not entered, and you have hindered those who were entering.”

영어NASB,52 “Woe to you lawyers! For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yourselves did not enter, and you hindered those who were entering.”

영어MSG,52 “You’re hopeless, you religion scholars! You took the key of knowledge, but instead of unlocking doors, you locked them. You won’t go in yourself, and won’t let anyone else in either.”

영어NRSV,52 Woe to you lawyers! For you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you did not enter yourselves, and you hindered those who were entering.”

헬라어신약Stephanos,52 ουαι υμιν τοις νομικοις οτι ηρατε την κλειδα της γνωσεως αυτοι ουκ εισηλθετε και τους εισερχομενους εκωλυσατε

라틴어Vulgate,52 vae vobis legis peritis quia tulistis clavem scientiae ipsi non introistis et eos qui introibant prohibuistis

히브리어Modern,52 אוי לכם בעלי התורה כי הסירתם את מפתח הדעת אתם לא באתם ואת הבאים מנעתם׃

성 경: [눅11:52]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지식의 열쇠 –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 행위 자체로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행위임을 밝혀지고 있다. 사실상 율법사(律法士)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어서 마치 천국 문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으며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형식만을 남겨둔 채 정신을 사장시켜 버리는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종하여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집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말 그대로 진리의 문, 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다. 이런 행위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부지 중에 부정을 범하게 만드는 행위(44절) 이상의 것으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카케이덴 엨셀돈토스 아우투 에릌산토 호이 그람마테이스 카이 호이 파리사이오이 데이노스 에네케인 카이 아포스토마티제인 아우톤 페리 플레이오논

개역개정,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새번역,53 예수께서 그 집에서 나오실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뜩 앙심을 품고서, 여러 가지 물음으로 예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말성경,53 예수께서 그곳에서 나오실 때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격렬하게 적대시하며 여러 가지 질문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성경,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영어NIV,53 When Jesus left there,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began to oppose him fiercely and to besiege him with questions,

영어NASB,53 When He left there,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began to be very hostile and to question Him closely on many subjects,

영어MSG,53 As soon as Jesus left the table, the religion scholars and Pharisees went into a rage. They went over and over everything he said,

영어NRSV,53 When he went outside,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began to be very hostile toward him and to cross-examine him about many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53 λεγοντος δε αυτου ταυτα προς αυτους ηρξαντο οι γραμματεις και οι φαρισαιοι δεινως ενεχειν και αποστοματιζειν αυτον περι πλειονων

라틴어Vulgate,53 cum haec ad illos diceret coeperunt Pharisaei et legis periti graviter insistere et os eius opprimere de multis

히브리어Modern,53 ויהי כדברו להם את אלה ויחלו הסופרים והפרושים לשטם אותו מאד ולהקשות לו בדברים רבים׃

성 경: [눅11:53]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거기서 – ‘거기’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의 위선과 몽매함을 준엄하게 비판하신 후에 그 집에서 나오고 있다. 식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식사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 맹렬히 달라붙어…힐문하고 – ‘맹렬히'(*, 데이노스)는 ‘두렵게’, ‘무섭게’의 의미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얼마나 결한 감정의 상태로까지 흥분되어 있는가를 말해준다. ‘달라붙어'(*, 에네케인)는 ‘몹시 분노하다’ ‘누구에게 분노를 품다’의 의미이다. 이 역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예수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批判)하는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처럼 예수를 해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에네드류온테스 아우톤 데류사이 티 에크 투 스토마토스 아우투

개역개정,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새번역,54 그들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노렸다.

우리말성경,54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트집을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가톨릭성경,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영어NIV,54 waiting to catch him in something he might say.

영어NASB,54 plotting against Him to catch Him in something He might say.

영어MSG,54 plotting how they could trap him in something from his own mouth.

영어NRSV,54 lying in wait for him, to catch him in something he might say.

헬라어신약Stephanos,54 ενεδρευοντες αυτον και ζητουντες θηρευσαι τι εκ του στοματος αυτου ινα κατηγορησωσι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54 insidiantes et quaerentes capere aliquid ex ore eius ut accusarent eum

히브리어Modern,54 ויארבו לו ויבקשו לצודד דבר מפיהו למען ימצאו עליו שטנה׃

성 경: [눅11:54]

주제1: [배척당하신 인자의 질책과 교훈]

주제2: [여섯 가지 화]

󰃨 잡고자 하여…지키더라 – 이 표현들은 사냥에서 사용되는 것들로 적대자들의 증오의 정도가 얼마나 심하며 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잡고자 하여'(*, 데류사이)는 ‘쫓다’, ‘사냥에서 잡다’의 의미를 가지며, ‘지키더라'(*, 에네드류온테스)는 ‘…안에’를 뜻하는 ‘엔'(*)과 ‘자리’를 뜻하는 ‘헤드라'(*)의 합성어로 사냥감을 포획(捕獲)하기 위해서 매복해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들은 지금까지 행한(39-52절) 예수의 비판에 대해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의 비판이 정당했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공격할 허점을 찾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명분도 없는 일을 위해 이성을 잃고 광분하는 모습은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품위를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며 짐승이나 잡아먹고 사는 추한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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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984-누가복음 11장

누가복음 11장

Ⅰ. 기도에 대한 가르침 11:1-13

기도는 자연 종교의 가장 큰 원칙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돕고 의무에 복종케 하며, 기도 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로써 믿음의 진보를 가지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1절).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보다 자주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던 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세례받으실 때(3:21) 기도하셨고, ‘물러가사 한적한 것에서’ 기도하셨으며(5:16),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6:12). 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셨고(9:18),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변화하셨다(9:28,29).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2) 제자들은 예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실 때 그들은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요청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그와같이 여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기도하기를 마치셨을 때 제자 중 하나가 ‘주여…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늘 가르치시는 분이셨으나 특별히 여기서는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계시다.

1)제자들의 요청은 이러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1절).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다운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는 그것 자체로는 하나의 좋은 기도이며 필요한 기도이다. 왜냐하면 기도를 잘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리스도만이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기도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필요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입과 지혜를 주옵소서. 즉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옵소서.”

2)그들은 또한 이렇게 탄원하였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가르쳐 주옵소서. “요한은 이러한 필요한 의무를 그의 제자들에게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들처럼 배우고 싶습니다.” 유대인의 기도는 대체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송영이었지만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간구와 청원의 기도를 가르쳤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요청은 이런 것이라고 하겠다. “주여, 이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찬양과 송영에 덧붙여야 할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스도는 완전히 간구로 된 기도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기도에는 송영과 아멘이 생략되어 있었다.

(3) 그리스도는 전에 산상설교에서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기도를 가르쳤다(마 6:9-13). 그들은 그들이 요구했던 모든 것이 이 몇 마디 말씀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자신의 말로 부연시키거나 더 상세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1)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그 하나가 네 번째 기원이다. 마태복음에는 네 번째 기원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지만, 본문에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다. 즉 “우리에게 우리 몸에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필요한 양식은 오늘, 내일 필요한 양식은 내일 있기를 위해서 간구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날 그날의 필요에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므로 그날 그날 해야할 의무에 새롭게 복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기원에도 차이점이 있다. 마태복음에는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고, 본문에는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용서에 필요한 자격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자격을 주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는 또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다. 즉 일반적으로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다. 본문에는 끝부분에 송영과 아멘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이 부분을 비워 두어서 기독교의 원리에 따리 성부 성자 성령에게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채우도록 했던 것 같다.

2)그러나 두 기도문은 본질적으로 같다. 본문에는 몇 가지 일반적인 교훈들이 들어 있다.

①기도할 때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나아가듯이 우리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②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에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원리인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철저히 계속해서 그 원리에 맞게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③경건한 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④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그의 나라에 권세를 돌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⑤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와 실제는 매우 본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의 원리와 실제가 그 본래적인 것에 일치하기를 기대해야 한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라는 말은 기도문의 처음 세가지 간구에 대한 언급이다.

⑥믿음으로 진실되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다른 모든 일들이 더해 질 것을 겸허하게 소망하며 그것들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첫 번째 소원과 관심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의 나라가 임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⑦현세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절제하며 우리의 능력에 맞게 한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날마다’라는 표현은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과 아주 같은 것이다.

⑧죄는 우리가 매일 지고 있는 빚이다. 그러므로 말나다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 죄는 날마다 쌓인다. 그런데 자비의 기적으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매일 매일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도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보다 더 많이 용서해 주신다.

⑨만일 우리가 언제고 우리를 모요하고 우리에게 해를 입힌 자들을 진실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⑩우리는 죄에 대한 유혹을 죄로 인해서 파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지고,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⑪우리는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악에 빠지지 않고 악을 가져오는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4) 그리스도께서는 다음 내용을 보이심으로 기도할 때 강청할 것과 열심과 끈기를 가질 것을 역설하신다.

1)강청은 사람들은 대할 때 효과를 가져다 준다(5-8절). 어떤 사람이 때아닌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이웃에 떡 한두 덩이를 빌리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이웃은 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문을 두드려 잠을 깨움으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많은 사과를 했을 것이나 그의 이웃은 그 사람의 청을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자기가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 이웃은 그 사람에게 떡을 주어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 사람들은 강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들어주지만 하나님께서 강청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①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친절히 대해주는 이웃이나 친구의 집에 가서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②우리는 양식을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양식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③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이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떡을 구하러 갔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선행을 베풀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사고 구하는 것 이상의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④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부주의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서 곤란을 당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더 담대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떡을 구하러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배려해 주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강청함으로써 화가 난 사람을 이처럼 설복시킬 수 있다면, 무한히 관대하시며 강청함에 화내시지 않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강청할 때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쉬지 않고 기도한다면 합당한 때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하심 뿐 아니라 그의 말씀도 가지고 있다(9,10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9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구할 뿐만 아니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한 것에 대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구하고 찾을 때는 계속해서 강청하고 똑같은 문을 두드려야 마침내 응답을 듣게 될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10절).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믿음으로 구하면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지시하신 것들 즉, 그의 이름이 거룩하여지고 나라가 임하며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강청해야 한다.

(5)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게 하심으로 교훈과 용기를 주신다.

1)세상에서의 아버지의 인자함을 상기시킴: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는 너희 자녀에게 그렇게 몰인정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11,12절).

2)이 말씀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축복에 적용시킴(13절):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에도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 내용을 살펴 보자.

①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 우리가 성령을 구해야 하는 까닭은, 성령께서 기도를 잘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게 될 모든 선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그리스도는 이 기도가 곧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신다. 너희 천부께서 주시지 않겠느냐. 그는 그의 권세로 성령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좋은 것 일체를 가지고 계시며 그것들은 성령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약속된 전부는 아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이 악할지라도 친절하며 빈약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줄 뿐만 아니라 식별하여 가장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Ⅱ. 예수와 바알세불 11:14-26

본문은 마태복음 12:22이하에도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특별히 사단을 다스리는 권세를 증명해 보임으로써 신적인 사명에 대한 일반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계시다.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의 성취를 위한 열심을 보여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벙어리 귀신을 내어쫓으셨다. 마태복음에는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귀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쫓겨나와 그 벙어리는 즉시 말하게 되었다.

(1)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기적을 보고 감동받았다. 무리들은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였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였다(15절). 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확증하고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의 증거에 맞서기 위해서 그리스도에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주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확신시켜 달라고 도전하였다. 그들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라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손을 잡아 귀신을 쫓아내는 것처럼 행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독한 불신자들은 어떤 일을 꾸미든지 절대로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트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답변하신다.

1)사단처럼 교묘한 왕이 자신을 파멸시킬 일을 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17,18절). 예수께서는 그들이 흉증을 감추려고 생각할 때에도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이러한 비난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분쟁하는 자가 결코 서지 못한다는 것은 공인된 격언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나 가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자든지 스스로 분쟁한다면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는 것이 될 것이다.”

2)그들이 그리스도가 사단과 협약을 맺었다고 비난한 것은 매우 편파적이고 심술궂은 태도였다. 다른 사람이 이러한 기적을 행했다면 그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찬미했을 것이다(19절). 너희 아들들은 주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너희 동족인 유대인이나 너희의 제자인 바리새인 중 어떤 자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당한 것같이 가증하게 사단과 용납하면서 책망하는 자를 정죄한다는 것은 크나큰 위선이다.

3)이러한 기적을 확신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원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밀쳐 냈기 때문이다(20절)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따라서 만일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면 멸망할 것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가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광대하신 팔을 다 뻗지 않으셔도 된다. 원하신다면 울부짖는 사자도 나방처럼 손가락 하나로 죽이실 수 있다.

4)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것은 귀신과 그들이 힘을 파괴하는 것이었다(21,22절).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셨을 때, 그는 귀신보다 강했으며, 권능으로 그 일을 하실 수 있었으므로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나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나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지배하시고 이기신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수가 있다.

①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비참한 상태:하나님의 거처가 되어야 할 그의 마음이 귀신의 소굴이 되어 있다. 그리고 영혼의 모든 힘과 능력은 귀신의 재물이 되어 버렸다. 거룩한 심령은 거룩한 것의 거처이지만 성화되지 않은 심령은 귀신의 소굴이다. 강하게 무장된 귀신은 이 소굴을 지키며 그리스도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할 수 있는 무장을 다한다. 마귀는 온갖 그릇된 생각으로 인간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진리와 거룩함을 대적하게 하는데 이 그릇된 생각들은 곧 마귀가 자기의 소굴을 지키기 위한 요새이다. 강하게 무장된 마귀가 지키고 있는 동안 회개치 않은 영혼의 소굴에는 평안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죄인은 자신을 좋게 평가하여 매우 안일해하며 즐거워한다. 그는 자신만만하며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무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한 길만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면 마귀의 소굴의 평안은 소란케 될 것이다.

②회개함으로써 오는 놀라운 변화:사단은 강하게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가 승리하신 방식을 보라. 예수께서는 사단이 자기의 소유가 안전하고 그것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오신다. 이러한 승리의 증거를 보라.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아 버리신다(22절). 즉 예수께서 친히 그 재물을 소유하신다. 이제까지 사단을 위해 사용되었던 마음과 육체의 재산이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쓰여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분배해 주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승리의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적의 목적은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적과 한패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23절).

5)계약에 의해서 귀신이 나가는 것과 강제적으로 쫓겨나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어쫓김을 당한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막 9:25). 반면에 귀신은 스스로 나가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오곤 한다(24-26절). 그리스도께서는 전체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적을 패배시키신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①위선자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그의 마음은 여전히 귀신의 집이다. ㉠그러나 더러운 귀신은 나갔다. 그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동안 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겉으로는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다. ㉡그 집은 부분적인 회개로 어느 정도 소제되었다. 그러나 집은 소제되었지만 깨끗하지는 않았다. 그 집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집이 될 수 없다. 소제함으로 더러운 쓰레기는 치워지지만 죄인을 따라다니던 죄는 그대로 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소제되지만 구석구석에서 눈에 띄지않는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은 채로 있게 된다. 집은 청소되어도 더러운 것은 벽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집은 일반적인 은사와 은혜를 닮은 것들로 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모두 허식이요 눈가림이며 진실된 것도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집은 수리되어도 소유물은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그 집은 그리스도께 복종한 것이 아니다.

②배교자의 최후의 상태는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26절). 그들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들어간다. 그들은 환영받으며 거기서 거한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위선은 배교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죄의 은밀한 장소가 외적인 신앙고백의 가면 속에 감추어지고 양심이 타락한 곳에 배교의 길이 있다. 그러한 자의 나중의 죄와 형벌은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 배교는 인간의 최악의 상태이다.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죄는 극도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서 그들은 더 큰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Ⅲ.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의 복 11:27-28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구절이다.

(1) 한 다정하고 정직한 여인이 예수의 훌륭한 말씀을 듣고 찬사를 보냈다. 이 선한 여인은 그의 말씀을 찬미하였다. 이 말씀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기뻐하며 이렇게 외쳤다. 당신을 밴 태가 복이 있도소이다(27절). “즉 당신을 아들로 나은 여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 땅에 매우 복된자가 되며, 결코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크신 자의 어머니였다면 나는 참으로 복된 자가 되었을텐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격은 귀중한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낳고 길러 준 자보다 그의 신실하고 순종적인 제자들이 더 복된 자라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8절). 예수께서는 한편으로는 육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찬사를 보내는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만일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의 어머니처럼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격려해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다. 즉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만이 진정으로 복된 자이다.

Ⅳ. 선지자 요나의 표적 11:29-36

(1) 우리가 우리 믿음을 확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유력한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1)예수께서 이미 많은 표적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자들을 책망하셨다. 무리가 모였다(29절). 많은 무리가 모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많은 무리가 왜 모였는지를 아셨다. 즉 그들은 표적을 구하기 위해서 왔고 구경하기 위해서 왔으며 집에 돌아가서 할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2)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이제까지 본 표적과는 다른 한 가지 표적을 보여 줄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곧 선지자 요나의 표적으로, 마태복음에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을 보고서도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극도의 파멸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자는 이 세대의 표적이니라(30절).

3)예수께서는 이러한 표적을 믿으라고 경고하셨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31절). 남방의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생소했으나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다. 그너는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예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 있었음에도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에 조금도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32절).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설교는 요나의 설교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듣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니느웨 백성처럼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았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해 우리에게서 기대하시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1)그들은 등불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석에서 전파하지 않으셨다. 복음의 빛이 등경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은 큰 특혜이다. 그러므로 들어오는 자마다 그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볼 수 있다.

2)등불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보는 것이었다. 사물을 아주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만약 몸의 기관이 건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라(34절). 영혼의 등불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의 계시의 등불이 우리에게 비치면 그것이 곧 축복이다. ①만일 영혼의 눈이 성실하고 분명하게 보며 오로지 진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자체를 추구한다면, 온 몸 즉 온 영혼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충만한 빛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영혼을 채운다. 우리의 영혼이 복음의 빛으로 채워져서 어두운 부분이 없다면 모든 영혼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영혼은 어두움 그 자체였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36절). 복음은 그것을 받기 위해 대문과 창문을 열어 놓은 자의 영혼으로 들어올 것이다. ②영혼의 눈이 약하다면 온 몸, 온 영혼이 어두움으로 가득찰 것이다(34절).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5절). 성실함과 진리를 탐구하고 거기서 사랑, 빛, 능력을 받을 준비를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그것을 행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 세대의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 그들이 어둠 속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Ⅴ.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11:37-54

그리스도께서는 본문과 한 바리새인과 그의 손님에게 식사중에 사적인 대화로 많은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후에 이 말씀을 성전에서 공적인 설교룰 통해서 하셨다(마 23장). 예수께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과 사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일치한다.

1. 바리새인 집에 식사하러 가심(37)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정중하게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한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하러 갔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기를 청하므로(37절). 우리는 이 바리새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나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만일 그가 좋지 못한 의도를 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선한 의도를 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선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들어가 앉으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에게서 무뚝뚝하지 않고 사교적인 태도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조심해야 되지만 경직될 필요는 없다.

2. 바리새인의 범죄(38)

그 바리새인은 그리스도께서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보고 좋지 않게 여겼다. 그는 거룩한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식사하시기 위해 앉으시고서 먼저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상하게 여겼다. 바리새인과 다른 손님들은 물론 손을 씻었다. 의식법에는 씻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손을 씻는 규정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손을 씻지 않으면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으셨다.

3. 그리스도의 책망(39-44)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였다.

(1) 그리스도께는 바리새인들이 신앙을 의식적이며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것으로 대치하고, 반면에 영혼에 관한 것이나 하나님의 눈에 잘 보이는 일은 미루거나 아주 잊어버리는 데 대해 책망하셨다(39,40절). (1) 그들은 어리석음을 범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39절). “너희는 물로 손은 씻지만 너희 마음의 사악함은 씻지 않는다.” 잔이나 대접의 겉만 깨끗이 하고 속은 깨끗이 하지 않는 자는 결코 청결한 종이 될 수 없다. 모든 신앙적인 헌신에 있어서 마음의 상태는 잔과 대접의 속과 같다. 마음이 더러우면 예배를 더럽힌다. 영적인 죄악의 지배하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큰 모욕이다. 그것은 마치 종이 잔 겉의 먼지는 씻었으나 속은 거미집과 거미로 찬 잔을 그의 주인의 손에 쥐어주는 것과 같다. 원한과 사악은 더 크고 더럽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음란의 죄등을 잔의 겉에서 씻어낸 자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한 죄이다. (2)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가 본문에 나와 있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0절). 즉 모세의 율법에 여러 가지 씻는 일들을 지시해 주신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정화시키지 아니하시겠느냐. 밖을 위해서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속을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것을 만들지 않았겠는가. 이 육체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더욱 놀랍고도 기이하게 만들어진 이 영혼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겠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다 만드셨다면, 그는 당연히 우리가 그 둘 다 돌보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씻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영혼도 씻어 마음의 문둥병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다 우리 음식물이 우리를 깨끗케 하는 규정을 추가하고 있다(41절). “먹기 전에 너희 손을 씻는 대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여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몫을 가지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할 것이며 너희도 그것들을 안전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의 분명한 의미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들의 소산물의 일정한 양을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에게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깨끗한 것이 되었다(신 26:12-15). 우리가 예비치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편안히 누릴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을 취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가진 것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품으로써 음식을 사용할 우리의 자유를 유리 자신에게 분명히 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두면서 율법의 중요한 부분은 소홀히 하는데 대해 책망하셨다(42절). 바리새인들은 신앙의 수단에 관계되는 율법은 아주 정확하게 지켰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즉 종류대로 완전하게 드렸다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는 일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데 대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앙에 관계되는 율법을 무시하였다. 너희가…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몫을 주면서도 하나님께는 너희 마음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다.”

(3)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허영을 책망하셨다.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43절).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자리에 앉거나 문안받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기뻐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다.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44절). 이 바리새인들의 내부는 부패한 무덤처럼 혐오, 교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은 예배라는 미명하에 교묘하게 그것을 감춘다. 그러므로 그들과 얘기하고 그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은 죄로 더럽혀지고, 그들의 부패상과 악한 교훈에 감염되게 된다. 전염병은 서서히 침투하여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고 만다. 그러나 병에 걸린 자들은 결코 자신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 율법사와 서기관들에 대한 책망(45-54)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율법사와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지만, 율법사와 서기관들의 임무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1)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분개한 율법사 한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5절). 충실하고 우정깊은 충고를 악용하는 것은 죄와 영합하여 거기서 떠나지 않으려는 자들의 어리석은 소행이다. 그들은 충고자들이 자기들을 비난하려 한다며 화를 내고 자신들을 합리화시킨다. 이 율법사는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지지하면서 그의 죄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화 있을 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46절). 그리고 또 ‘화 있을 진저 너희 율법사여’라고 말씀하셨다(52절).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좋은 평판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일에 대해서 그것이 자기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항의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화를 자초할 뿐이다.

1)율법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시키신 것보다 더 부담이되게 신앙의 봉사를 하게 하고 자신들에게는 더 가벼운 짐이 되게 한 것에 대해 책망받았다.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절). 다시 말해서, ①”너희는 그들과 함께 짐을 지지도 않을 것이며 너희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그 속박에 구속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②”너희는 너희가 다스리는 자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지 않을 것이며 손을 대지도 않을 것이다. 즉 너희는 무겁고 어려운 짐을 진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짐을 없애 주거나 덜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두 손을 가지고 나오나 장로들의 엄격한 전통을 완화시키는 일에는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2)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죽였던 선지자들을 존경하는 척 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들의 조상들은 똑같은 임무를 띠고 그들에게 보내진 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였다(47-49절). ①이 위선자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았다'(47절). 즉 그들은 선지자들을 찬양하며 그들의 무덤에 비문을 세웠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유물을 무덤 속에 넣거나 순교자들의 무덤을 경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신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선지자들의 자손인 양 그들의 경건을 추모하고자 그 무덤들을 수선하고 아름답게 꾸며 신성하게 하였다. ②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선지자들의 영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온 당시의 사람들에 대해 철저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에게 보내진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죽이고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것이다. “내가 선지자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저희는 선지자들을 모함하고 반대할 뿐만 아니라 죽이고 핍박할 것이다.” ③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일을 아주 다르게 해석하실 것이다. 즉 그 일은 그들이 자기 조상들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45절):그들의 조상들이 이곳에 매장된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일은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다. ④그들의 박해가 다하면 그들은 심판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50,51절).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박해한 죄는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어떤 죄보다 더한 것이므로 진노가 그들에게 가장 심하게 내려질 것이다. 사실 로마인에 의한 그들의 멸망은 너무 가공할 만한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선지자들을 박해한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보복으로 여겨졌다.

3)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한 것에 대한 책망을 받았다(52절). 그들은 자기들의 임무에 따라, 메시야를 예언한 구약성경을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사람들을 혼돈시켰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 열쇠를 사용하거나 그들로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그것을 그들에게서 감추었다. 이러한 일을 마태복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문을 닫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마 23:14). 그들은 구약의 지식을 통해 때가 찼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들어가고자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안내나 도움을 받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더 나쁘다.

끝으로 본 장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사악하게 그리스도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는가를 볼 수 있다(53,54절). 그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책망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책망이 심하기 때문에 그를 저지시키기 위해 격분하여 대든다는 듯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또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밉게 보거나 정부가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만한 것을 책잡고자 ‘목을 지켰다.’ 죄를 충실하게 책하는 자는 많은 대적들을 예상해야 한다. 인내로써 이러한 종류의 시험을 견디고 신중하게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죄인들의 반대를 견디셨던 그리스도를 생각하자.

#1-4 “Lord, teach us to pray,” is a good prayer, and a very needful one, for Jesus Christ only can teach us, by his word and Spirit, how to pray.

Lord, teach me what it is to pray; Lord, stir up and quicken me to the duty; Lord, direct me what to pray for; teach me what I should say.

Christ taught them a prayer, much the same that he had given before in his sermon upon the mount.

There are some differences in the words of the Lord’s prayer in Matthew and in Luke, but they are of no moment.

Let us in our requests, both for others and for ourselves, come to our heavenly Father, confiding in his power and goodness.

#5-13 Christ encourages fervency and constancy in prayer.

We must come for what we need, as a man does to his neighbour or friend, who is kind to him.

We must come for bread; for that which is needful.

If God does not answer our prayers speedily, yet he will in due time, if we continue to pray.

Observe what to pray for; we must ask for the Holy Spirit, not only as necessary in order to our praying well, but as all spiritual blessings are included in that one.

For by the influences of the Holy Spirit we are brought to know God and ourselves, to repent, believe in, and love Christ, and so are made comfortable in this world, and meet for happiness in the next.

All these blessings our heavenly Father is more ready to bestow on every one that asks for them, than an indulgent parent is to give food to a hungry child.

And this is the advantage of the prayer of faith, that it quiets and establishes the heart in God.

#14-26 Christ’s thus casting out the devils, was really the destroying of their power.

The heart of every unconverted sinner is the devil’s palace, where he dwells, and where he rules.

There is a kind of peace in the heart of an unconverted soul, while the devil, as a strong man armed, keeps it.

The sinner is secure, has no doubt concerning the goodness of his state, nor any dread of the judgment to come.

But observe the wonderful change made in conversion.

The conversion of a soul to God, is Christ’s victory over the devil and his power in that soul, restoring the soul to its liberty, and recovering his own interest in it and power over it.

All the endowments of mind of body are now employed for Christ.

Here is the condition of a hypocrite.

The house is swept from common sins, by a forced confession, as Pharaoh’s; by a feigned contrition, as Ahab’s; or by a partial reformation, as Herod’s.

The house is swept, but it is not washed; the heart is not made holy.

Sweeping takes off only the loose dirt, while the sin that besets the sinner, the beloved sin, is untouched.

The house is garnished with common gifts and graces.

It is not furnished with any true grace; it is all paint and varnish, not real nor lasting.

It was never given up to Christ, nor dwelt in by the Spirit.

Let us take heed of resting in that which a man may have, and yet come short of heaven.

The wicked spirits enter in without any difficulty; they are welcomed, and they dwell there; there they work, there they rule.

From such an awful state let all earnestly pray to be delivered.

#27,28 While the scribes and Pharisees despised and blasphemed the discourses of our Lord Jesus, this good woman admired them, and the wisdom and power with which he spake.

Christ led the woman to a higher consideration.

Though it is a great privilege to hear the word of God, yet those only are truly blessed, that is, blessed of the Lord, that hear it, keep it in memory, and keep to it as their way and rule.

#29-36 Christ promised that there should be one sign more given, even the sign of Jonah the prophet; which in Matthew is explained, as meaning the resurrection of Christ; and he warned them to improve this sign.

But though Christ himself were the constant preacher in any congregation, and worked miracles daily among them, yet unless his grace humbled their hearts, they would not profit by his word.

Let us not desire more evidence and fuller teaching than the Lord is pleased to afford us.

We should pray without ceasing that our hearts and understandings may be opened, that we may profit by the light we enjoy.

And especially take heed that the light which is in us be not darkness; for if our leading principles be wrong, our judgment and practice must become more so.

#37-54 We should all look to our hearts, that they may be cleansed and new-created; and while we attend to the great things of the law and of the gospel, we must not neglect the smallest matter God has appointed.

When any wait to catch something out of our mouths, that they may insnare us, O Lord, give us thy prudence and thy patience, and disappoint their evil purposes.

Furnish us with such meekness and patience that we may glory in reproaches, for Christ’s sake, and that thy Holy Spirit may rest upon us.

누가복음 11장: 기도와 영성

누가복음 11장: 기도와 영성

1. 1-13절: 기도에 대한 가르침

앞에서 본 것처럼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을 거듭 부각시킵니다. 기도는 그분의 매일 일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제자들이 청합니다(1절). 기도는 한 사람의 신학의 요약이고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그렇기에 영적 지도자들은 자신의 신학과 사상을 담은 기도문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곤 했습니다.

그 요청에 예수님은 모범 기도문을 만들어 주십니다(2-4절). 이것을 우리는 ‘주기도’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주기도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독자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의 핵심은 그대로 유지하되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마태는 유대적으로,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맞게 만든 것입니다. 주기도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도의 전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에서 주목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먼저 나온다는 것입니다(2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도가 기본적인 필요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3절). 정화되지 않은 욕망을 쏟아내는 우리의 기도와 다른 점입니다. 셋째는 우리 자신의 영적 필요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제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세적인 부와 성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제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비유(5-8절)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친구는 친구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친구가 간청하는데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서 청을 거절하는 사람은 친구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을 하면 결국 일어나 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가장 못된 인간과 가장 선하신 하나님을 대조시킵니다. 이렇게 못된 인간도 계속 간청하면 들어 주는데, 가장 선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잘 들어 주시겠느냐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비유를 잘 못 해석하여, 하나님이 이 못된 친구처럼 귀찮을 정도로 간청해야 들어 주시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을 뒤집어 놓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줄 것이다”(9절)라고 권하시면서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10절)라고 덧붙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꺼이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십니다.

안심이 안 되셨던지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를 드십니다.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줄 아버지가 없고 달걀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못된 친구의 비유와 못된 아버지의 비유를 해석하는 열쇠는 13절(“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에 숨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신 것이 아니라 넉넉한 신뢰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한 기도로써 구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14-36절: 마음의 눈을 떠라

그 후에 예수께서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을 내어 쫓으시자 어떤 사람이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을 모함했습니다. 당시에 악한 영의 우두머리인 사탄을 부르는 말이 여럿 있었는데, 바엘세불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무당이나 영매들이 귀신을 무마시켜 내보내는 것처럼 예수님이 사탄과 내통하여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는 모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은 사탄과의 협잡이 아니라 사탄의 본영을 무너뜨리고 그 세력을 패퇴시키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 동일하다고 하여 그 내용도 같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20절).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할 일에 대해 말씀을 주십니다(24-26절). 귀신에게서 해방된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만일 내면이 비어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보면 과거보다 더 심한 상태로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실 때 어떤 여인이 ‘저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27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28절)고 답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육신적인 조건과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 곁으로 많은 무리가 몰려들자 그분은 표징을 구하는 세대에 대해 탄식하십니다(29절). 그들은 예수님에게 더 놀라운 표징을 보여 달라고 구했습니다.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이미 충분히 드러났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결정적인 표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보여 줄 표징은 요나의 표징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29절). 그것은 부활의 사건을 뜻하는 것입니다. 실상 부활이야말로 표징 중 가장 큰 표징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솔로몬보다 큰 이”(31절)이며 “요나보다 더 큰 이”(32절)라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은 지혜자의 대표이고 요나는 예언자의 대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직분(제사장, 왕, 지혜자, 예언자 등)을 합친 것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표징이 드러나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닫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34절)입니다. 몸에 대해 눈이 하는 역할을 마음이 담당합니다. 마음이 밝아야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뎌지면 표징을 보아도 알아 보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3. 37-54절: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

그 때 어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절차를 무시하고 식탁에 앉으십니다. 의도적으로 도발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들의 허위와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더러운 것이 가득한 속은 그냥 두고 겉만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39-41절). 또한 그들은 물질의 십일조는 철저히 지키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42절)은 소홀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당 같은 곳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했습니다(43-44절). 종교적인 행위는 많았지만 그로 인해 맺혀야 할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율법교사 한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45절)라고 말합니다. 율법교사는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서 율법에 대해 철저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율법 준수를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게을리 하고(46절), 예언자들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당대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47-51절), 율법을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52절)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걸어 넘길 구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53-54절).

묵상:

오늘 기억할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실천할 한 가지 일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1장 설교말씀] 예수님의 기도 생활(눅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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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11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도 항상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영적으로 항상 충만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성도인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영적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눅 11:1)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이 한 곳에서 기도를 마치시자 한 제자가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하고 청하였습니다. 필요한 질문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바로 하려면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해 알아보며 나의 기도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은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라”(막 1:35).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라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물에 계시다가”(막 6:46,47).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는데 그전날은 가버나움에서 병자도 고치시고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사람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셨고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사정에 따라 다르겠으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는 새벽기도가 좋습니다. 또 저녁에 아무리 피곤하시더라도 기도하셨습니다. 하루 생활을 하나님께 보고하였으며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저녁에도 기도를 잊지 말고, 하루 생활을 하나님과 같이 해야 합니다. 하루 생활의 계획은 하나님 앞에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일을 꼭 같이 힘쓰셨는데 우리도 낮에는 일을 아침과 저녁에는 기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며, 기도하고 일하며 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사 사도라 칭하시고 “(눅 6:12,13) 열두 제자를 택하기 전에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눅 9:18) 자기의 메시아됨을 나타내시기 전에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는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했다. 메시아로 오신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시고 다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에, 새 계획을 세울 때에, 중요한 작정을 할 때에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조직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이루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3.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성령이 크게 임하셨습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노라”(눅 3:21,22).

기도하실 때에 성령이 충만하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순절에도 제자들이 전혀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이 충만했으며 개인도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하고 교회도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내려올 때에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성령충만, 성령의 역사,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4. 예수님은 큰 위기, 큰 고난 곧 죽음을 당면할 때에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놓으시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맡기시고 그리고는 침착한 태도로 담대히 원수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로 정신을 무장하신 것처럼 우리도 위기를 당할 때에 기도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위험합니다. 누구나 일생에 몇 번 위기를 맞는데 기도의 비결을 배울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은 기도로 최후를 마치셨습니다.

십자가 칠언 중 세 말씀이 기도이고 첫 말씀 마지막 말씀이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우리는 무슨 말로 최후를 마쳐야 합니까? 기도로 마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평생을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랑이십니다. 인간적 견지에서 그 생활을 살펴볼 때에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시면서도 기도하셨는데 죄 있는 우리는 더더욱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옛날부터 오늘까지 기도 없는 성결, 고전, 고귀한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밀레의 저녁종 그림은 부부가 일하다가 저녁 종소리가 나니 일손을 놓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참인간의 모습, 행복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일어나시고, 기도로 주무시고, 기도로 일하시고, 기도로 목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교훈을 배워 실천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강해설교말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딤전 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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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누가복음 11장 흐름정리>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기도문이 언급되어 있다. 마태복음에도 나오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기도문을 가르치신 동기가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13절까지 기도의 원리가 나타나 있으니 잙 읽어보자. 한편 11장이 끝날 때까지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트집과 비난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

<누가복음 11장 줄거리>

1. 그리스도가 기도를 가르침.

11.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고 보증함.

14. 그가 한 벙어리 귀산을 쫓아내고, 불경한 바리새인들을 책망함.

28. 누가 복 있는 자인지 일러 줌.

29. 무리들에게 전파함.

37. 겉으로 거룩한 척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꾸짖음.

<누가복음 11장 도움말>

* 1절 :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당시 랍비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주곤하였다. 이런 이유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 5절 : 밤중에.

중동 지방에서는 낮의 열기를 피해서 밤에 여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 11, 12절 : 생선, 알.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식은 떡, 생선, 계란이었다.

* 12절 : 전갈.

독전갈과의 곤충. 길이는 6cm 정도이며 독침이 있다. 고문용으로도 사용했다. 원수에게 당하는 고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 15절 : 바알세불.

사단에 대한 별칭.

* 27절 : 태, 젖.

유대인들은 흔히 신체의 일부를 언급하여 인격 전체를 가리켰다.

* 38절 : 손 씻지 아니하심.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 오는 규례였다.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었으며, 식사 도중에 다른 음식으로 바꾸어 먹을 때에도 손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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