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17절 | 베이직교회_20140126_조정민목사_하나님나라의삶_로마서14장17-18절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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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조정민 목사
날 짜: 2014년 1월 26일
제 목: 하나님 나라의 삶
본 문: 로마서 14장 17-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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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로마서 14장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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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7/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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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17절 – 23절 – 다음블로그

당신은 당신 자신의 믿음대로 행하면 된다. 당신 자신의 믿음에 비추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어떤 이유로 그 일을 행한다면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는 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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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0/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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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 (로마서 14장 17~18절) – 네이버 블로그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임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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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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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하나님 나라 (로마서 14장 17절) – 한국기독신문

[은혜의 말씀] 하나님 나라 (로마서 14장 17절) …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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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np.com

Date Published: 8/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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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17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권 박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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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osnlogos.com

Date Published: 3/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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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1/18) 말씀 묵상 (로마서 14장17절, Romans 14:17)

오늘의 (11/18) 말씀 묵상 (로마서 14장17절, Romans 14: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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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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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로마서 14장 13~23절 … 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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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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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로마서 14. 14.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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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5/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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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롬 14:17-18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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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6/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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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로마서 14장 17절

  • Author: svcforh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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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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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OSPEL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

이 구절은 the kingdom of God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의를 내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 문자적인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따위와 같은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부정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the kingdom of heaven과는 다르다. 천국은 물리적인 나라요 문자 그대로 물질적 현실적인 왕국이다. 천국은 지상의 나라요 눈에 보이는 메시아의 왕국이며 실질적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다. 천국은 장차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세우셔서 현실적으로 군림하게 될 국가이지 신비적 형태의 국가 아니다.

지금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신비적 형태의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물질적 형태의 국가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땅 어딘가에 집단 마을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세금을 안 내도 되고, 모범적인 시민들만 이민을 받고, 평화유지를 위해 공동토론을 하고 공해가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전쟁도 없고 범죄도 없는 이상향을 건설하는 따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고 있지만 이런 자들은 모두 정신 나간 자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세우는 나라가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나라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도 아니요, 고전15:50의 말씀처럼 혈과 육은 상속받을 수 없는 나라를 인간이 어떻게 건설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확장하자,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자는 구호를 예사롭게 외치기도 하지만 인간이 세울 수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확장하고 어떻게 앞당긴다는 말인가? “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상속받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는 부정적이지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서술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과 달라 가시적, 물리적, 현실적 국가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형성되는 영적인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밖에서는 결코 형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내적인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내적 의와 내적 평화 내적 기쁨을 누리는 내적인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니라. 또 사람들이 ‘보라, 여기 있다!’ 또는 ‘보라, 저기 있다!’고도 말하지 못하리니, 보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라.”(눅17:20,21)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외부적으로 나타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자들이다.

18 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요,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느니라.

이러한 것들로, 즉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 등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 받으시고 또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인전하고 존경한다. 물론 어떤 자들은 이런 사람을 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평과 기쁨을 가진 사람은 그런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내심으로는 당신을 면밀히 바라보며 부러워한다.

당신이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생각해 봐야할 일들이 숱하게 많다. 그리스도인의 간증 가운데 가장 힘들다고 고백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문제와 환경이 자신을 대적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평과 기쁨으로 그 간증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다. 목사가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는 주제는 가장 진땀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 환경 문제가 자신을 대적하고 괴롭히며 화평치 못하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하면 기쁨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기쁨을 잃어버리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저 친구 나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이웃 사람들의 눈치가 두려워서라도 슬프고 괴로운 것을 함부로 내색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느 자매는 어린 아들을 잃고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서도 전혀 슬픈 내색을 보이지 않고 묘기에 아들을 묻고 와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이 엄청난 슬픔에도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아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일찍 주님 품으로 데려가신 은혜 감사합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는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

다른 사람들과 화평을 유지하고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 하라고 충고한다.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행하는 형제끼리의 행동 지침이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도 받지 못한 세상들과 지내면서 지켜야 할 지침을 아니다. 의와 화평과 기쁨이 성령 안에서 라고 못박고 있다. 엡4:3에서는 화평의 띠 안에서 성령의 하나됨을 지키도록 열심히 노력하라고 바울은 말한다. 성령 안에서, 또 성령의 하나됨이라면 이것은 당연히 그리스도인들끼리의 교제권을 말한다.

20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말라.

사실은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남을 실족케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

먹는 음식 따위와 같은 사소한 일 때문에 분쟁을 일으켜 형제를 망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망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찻잔 속의 태풍이란 말도 있다. 이것은 음식 같은 사소한 일은 사소한 일로 끝내고 넘어가야지 그 작은 일이 무슨 큰일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문제 삼다 보면 큰 일로 번져 부질없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되고 되지 않고 하면서 교회 내에서 분쟁을 일으켜 교회 내에 분열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 다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무어라고 설명할 텐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처럼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그러나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형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인즉 구태여 의견을 무시하면서 보란 듯이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고 말씀한다. 당신이 생각할 때 어떤 음식을 먹어도 양심에 찔리지 않더라도 다른 형제에게는 그것이 거침이 될 경우에는 그것을 먹지 말라는 충고인 것이다.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여기 한 가지 규칙이 또 제시된다. 고기를 먹는 것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만약 “네 형제에게 실족하게” 하는 일이라면 “네 형제를 성나게”하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 무엇이 만약 네 형제를 연약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하지 않는 것이 잘 하는 일이다. 이것이 규칙이다.

그 무엇(any thing)이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입니까? 그 무엇이 당신의 인생에서 별 의미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면 구태여 그것으로 인하여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도 아니하는 것이 좋다.

형제를 실족하게(stumble) 한다는 것은 당신과의 교제에 금이 가게 하여 서로 마음을 열고 지내지 못하는 사이가 됨으로 결과적으로 그 연약한 형제가 당신의 행위에 대해 실망하거나 분노를 느낀 나머지 당신과의 교제를 끊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인 전체를 증오하고 위선시한 나머지 나중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마저 금이 가서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갖지 못하게 되는 수가 많다.

형제를 성나게(offend)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당신을 마치 마귀나 되는 것처럼 악한 사람으로 보게 만든다는 뜻이며 형제를 연약하게(made weak) 한다는 것은 형제가 당신과는 생각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당신을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그의 선한 양심이 무시당한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양심이 그 스스로에게 짓밟히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그 반면 다른 형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치 않은 당신의 언행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당신과의 교제를 끊은 선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인 형제들 전체를 백안시하게 만들고 혼자 고립되어 자기 자신만 옳고 깨끗하고 성별되었다고 자만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그 형제를 연약하게 만든 것이다. 연약한 그리스도인일수록 바리새적 특성으로 나타내기가 쉽다. 거꾸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바리새인 같은 특성을 나타내면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다.

22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당신에게 믿음이 있느냐고 묻는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던 믿음으로 행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계속 행하되 그 믿음으로 남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애쓸 필요없이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고 충고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믿음을 아실 테니까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믿음을 의도적으로 과시하고 영향을 미치려고 하지 말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믿음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다른 형제가 행하는 어떤 일이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데도 그 형제는 또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행한다. 그렇다면 그 형제가 자기 양심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것을 문제삼지 말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도 덩달아서 그 일을 행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믿음대로 행하면 된다. 당신 자신의 믿음에 비추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어떤 이유로 그 일을 행한다면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는 꼴이 된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23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당신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의심하는 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형제를 위한답시고 당신의 양심에 반하여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일을 행한다면 당신은 그것으로 당신 스스로를 정죄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믿음으로 먹거나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짓밟는 행위인즉, 이것은 믿음으로 아니하였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요 따라서 당신 스스로를 정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이 구절은 말씀한다.

믿음의 행위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이든지 당신이 믿는 바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당신이 이럴진대 다른 형제도 그러하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 당신이 당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면서 다른 형제가 그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늙어서 눈이 침침하여 자기 아들들도 누가 누군지 식별할 수 없었던 이삭은 염소 새끼 고기를 갖고 온 야곱을 의심했다.(창27:18)

창27:18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그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청하셨던 대로 행하였나이다. 내가 간구하오니, 일어나 앉으셔서 나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혼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더라.(19절)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두 번째 의심)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았더냐? 하니 그가 말하기를 “주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셨나이다.(20절)

이삭이 야곱에게 말하기를(극도의 의심) 내가 원하노니, 내 아들아 내게 좀 가까이 오너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만져 보리라.(21절)

야곱이 자기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그를 만지며 말하기를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만져보고 의심이 해결되지 않았다. 22절)

이삭이 그를 분별하지 못하더라. 이는 그의 손이 그의 형 에서의 손같이 털이 있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이삭이 그를 축복하더라. 이삭이 말하기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하니, 그가 말하기를 그러하니이다.(23-24) 이삭은 의심의 입장이었으면서도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여기서 정죄되었다(is damned)는 15절의 망치다(destroy)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지는 영원한 정죄가 아니라 현세에서 어려움에 봉착하는 일시적인 정죄이다. 15절의 ‘망치다’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파괴시킨다는 뜻이고 여기 23절의 정죄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파괴되어 현실적으로 환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전11:29)라는 말씀에서 저주(damnation)와 맥을 같이 한다. 이 저주로 인하여 당신이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환난은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고전11:30)는 말씀에서 보듯이 질병과 죽음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딤전4:16에서 “네 자신과 가르침에 주의하고 이 일들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바울의 언급에서 구원은 지옥으로부터 구원되어 하늘나라에 간다는 의미에서 구원이 아니라 이 현세에서 당하는 저주로부터 구원을 말한다. 이것은 13:2에서 이미 설명했다.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것은 하나의 규칙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당신의 머리로 생각해 볼 때 지금하고 있는 일에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기준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일을 하도록 허용하고 계신가? 그렇다면 그 일을 하라.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정녕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하고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하라. 당신은 옳은 궤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뭐라고 아우성을 치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 그러나 그 일을 복되게 하고 은총을 내려 달라고 당신이 하나님께 요청할 수 없다면 그 일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다. 이럴 때 당신은 그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이처럼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의 나라 (로마서 14장 17~18절)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로마서 14장 17~1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 왕이신 나의 하나님>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여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주의 사랑 안에 품어주시고 보살펴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올 수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리옵나이다. 일생 살아가면서 주님 은혜 속에 오직 주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로마서 14장 17절과 18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는 나라를 말합니다.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게 되면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저 천국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하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영원하고 완전한 저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 모두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오늘 성경은 세 가지 모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 의의 나라

그 첫 번째가 의의 나라입니다. 의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가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낸 내용 속에 이 내용에 담겨있는데, 당시 로마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 하면, 서로 인간이 자기 의를 갖고 다투었어요. 그것도 뭐 때문에 다투느냐? 음식 때문에 다투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구약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쉽게 예를 들면, “구약 율법에 양고기와 소고기는 먹어도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그랬으니깐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생선 중에서도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으면 안 된다” 그러는 겁니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가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로 먹으면 무엇이든지 못 먹을 것이 없다.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지, 그것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래서 이 문제로 인해서 교회 내에 다툼이 생겨났습니다. 서로가 상대편이 잘못됐다고 비난하고 이로 인해서 교회에 알게 모르게 갈등과 다툼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임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의 희락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내 신앙의 기준에서 자꾸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리다.” 이렇게 되면 교회 내에 끊임없이 다툼이 생겨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좋은 나라입니다. 가난과 저주가 없는 곳이고, 질병과 사망이 없는 곳이고, 죄와 불의, 중상과 모략, 요즈음 그 말도 많은 가짜 뉴스가 없는 곳입니다. 너무나 많은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고 있어서 어느 것이 가짜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 혼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다 죄인이었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의인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나는 죄 덩어리이지만 예수님의 그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때 의인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라고 하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죄악으로 더러운 나의 옷을 벗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그분의 흠 없고 완전한 순종의 삶을, 그분의 거룩한 본성을 나에게 입히십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그분의 의를 입은 나를 보십니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의인이 되었으니 이것은 한평생 감사해야 될 감사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의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나를 위해 살았지마는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늘 변합니다. 권력자가 바뀔 때마다 세상 나라가 변합니다. 세상의 의는 늘 바뀝니다. 내가 할 때는 그것이 옳은 것이었는데, 시대가 바뀌니까 그것이 나쁜 일이 돼갔고 감옥에 가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변하는 세상 나라를 바라보지 말고 변치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 평화의 나라

의의 나라가 임한 다음 둘째로, 우리에게 임하는 나라가 평화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평화인데,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천군 천사가 찬양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이 평화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죄와 불의와 미움과 다툼과 분노와 이 전쟁의 고통으로 끊임없이 절망 속에 몸부림치며 살던 우리에게 평화의 왕 예수님이 오셔서 이 모든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 제껴 주시고 넘치는 평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참 평안을 얻게 된 것입니다. 평화가 넘쳐나게 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됩니다.

요즘은 참 분노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있는 거 같아요.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어저께 뉴스에 나왔잖아요. 결혼하자고 여자를 불러대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칼로 찔러 죽였어요. 요즘 결혼할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봐야 돼요. 아무나 그냥 나 좋다고 쫓아온다고 눈멀어 갔고 이상한 사람 만나면 큰 낭패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PC방에서 게임 하던 청년이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올라서 처음 보는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우리 마음에 있는 분노의 칼을 걷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의 칼을 걷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우리가 무장해야 합니다.

지난주 개봉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고 하는 영화의 내용은 6·25전쟁 때 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는데 이 전쟁고아들을 김일성이 동부 유럽 공산권으로 보내서 대신 아이들을 맡아서 양육하게 합니다. 8년간이나 저들을 맡아서 길렀는데, 특별히 1,500명이 폴란드로 보내집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낯선 곳에 갔는데, 이 폴란드에 저들을 돌본 선생님들은 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던 그분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전쟁의 상처가 있는 이분들이 아이들을 자기 애처럼 사랑하고 “나를 엄마라, 아빠라 불러라.” 그러면서 8년 동안 저들을 보살펴줬어요.

8년이 지나고 난 후에 북한이 천리마 운동을 해서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다 애들을 데려갑니다. 애들이 가지 않겠다고 울고, 몸이 아프면 자기들을 안 데리고 갈까 봐 밖에 나가서 추운데 찬물 끼얹고 누워있고, 감기 걸린다고 누워있고, 그렇게 몸부림쳤지만 한 아이도 빠지지 않고 다 북한에 가게 됐습니다. 북한에 가서 계속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편지를 보내옵니다. “엄마, 아빠, 나 좀 제발 데려가 주세요. 저를 데려가서 집에 하인으로 부려도 좋으니까 저를 제발 좀 데려가 주세요.” 그 선생님들이 아이를 생각하면서 울고 또 웁니다. 요번에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안 우는 선생님들이 없었어요. 추상미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한도 많은 분열과 반목 속에 살고 있다. 이런 감정을 극복하려면 한국전쟁의 상처를 돌아보고 그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한다. 한국전쟁에 남긴 분단의 상처가 우리의 증오와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한 것 같다. 지금은 상대를 품고 이해하며 공감해야 하는 시기 아닌가, 하나님께서 결국엔 마음의 진정한 연합과 용서 이런 것을 통해 복음 통일을 일어내실 것 같다.

할렐루야! 우리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베소서 2장 14장 16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통일이 오려면 평화가 먼저 와야 됩니다. 평화가 오려니까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쟁하지 말자고 하면서 뒤에 총을 숨겨가지고 있으면 그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진정성을 증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핵 하나만 서울 상공에 터지면 백만 명이 핵의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평화 통일을 하려면 핵을 완전히 다 포기해야 돼요. 그리고 그 다음에 북한 문을 활짝 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 전역에 교회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북한이 변화될 수 있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허용할 때 진정한 대한민국의 통일이 올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이 평화가 우리 인간이 노력해서 오는 평화가 아닙니다. 위로부터 오는 평화, 하나님의 은혜로 임하는 평화가 임해야 됩니다. 이 평화가 임하면 마음에 미움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지고, 섭섭함도 사라지고, 원망 불평도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게 되고, 치료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로 가득한 사회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그러한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12장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예수를 친구 삼아 참된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님,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게 하여주시고, 우리 교회 가운데 임하게 하여주시고, 우리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주시고, 저 북한에도 이 평화가 임하게 하여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그 참된 평화로 말미암아 남북통일의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모두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마음속에 모든 분노와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섭섭함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미움과 분노를 갖고 있으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참 미국에서 사업을 잘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아프세요. 의사가 석 달을 못 넘길 것이라고 합니다. 일주일째 밥을 못 먹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가서 기도해드렸는데 마음속에 분노가 있어요. 섭섭함이 있어요. 그래서 이 문제 때문에 몸이 아프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절망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간절히 기도해드렸어요. 그 마음에 평안함이 임하면 다시 건강도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분노가 사라지면 다시 온몸에 기능이 회복되어서 병상에서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요, 사람과의 관계. 그 마음을 아프게 해서 그것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병으로 변한 그 모습을 보면서 “주님,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분노를 품고 살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마음 가운데 평화가 임해야 되고 평화가 임하면 그 평화의 결과로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3. 기쁨의 나라

세 번째가 기쁨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기쁨의 열매가 충만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 절제”

이와 같은 것이 맺어지게 되는데, 내 힘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바로 기쁨입니다. 내가 지금 성령충만하냐 충만하지 않느냐 금방 판단해볼 수 있어요. 마음속에 분노가 있고 미움이 있고 속상하고 그러면 성령충만하지 않은 겁니다. 늘 기쁘고 감사가 넘쳐나면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마음속의 분노와 미움을 다 몰아내 버리고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항상 기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해야 됩니다. “주여,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하여주옵소서.” 그 기쁨은 마음속으로부터 주님의 그 은혜가 임할 때 기쁨이 넘쳐납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여러분 마음이 늘 기쁘고 감사가 넘쳐나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분노하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고 살아서 그것이 자기를 병들게 하고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왜 모릅니까? 그렇게 살다가 인생을 마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분노를 함부로 폭발시켜서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할렐루야! 본인은 감옥 안에 있는데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뻐하라, 기뻐하라’ 한 거예요. 그가 감옥 안에서 쓴 편지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 네 권의 서신인데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 빌립보서 마지막에 가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라, 기뻐하라.” 할렐루야! 주님 주신 기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면 그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게 됩니다. 로마서 14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교회에 봉사할 때 기쁨으로 해야 되요. 그 무엇을 하더라도 기쁨으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스스로 시험에 들고 상처를 입고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봉사자들의 기본적인 자세는 넘치는 기쁨과 감사입니다. 남여선교회로 봉사하든지,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든지, 찬양 대원으로 봉사하든지, 오케스트라로 봉사하든지, 어디서 무엇으로 봉사하든 기쁨이 충만해서 봉사하면 그것이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일생동안 주님이 함께하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교회를 짓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를 지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참 성도들이 다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교회 건축헌금을 하지 아니하고 그냥 기도로 옥합을 깨뜨리면서 교회 건축을 마쳤습니다. 땅을 한 삼천 평을 사고 한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를 잘 지었는데, 교회를 짓고 나서 그 다음에 교회 내에 비품이 필요한데 교회 비품은 영구히 그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귀한 성물이기 때문에 리스트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나눠주고 그때는 비품 헌금을 작정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음 주일에 오실 때 여기 있는 이 비품 중에 감당할 수 있으신 것을 가족이 상의해서 가족별로 하나씩 작정을 해서 제출해주세요.” 그래서 그 비품 목록 1번이 슈타이너 그랜드 피아노, 2번이 알렌 전자 오르겐 그리고 뭐 강대상 등등 여러 비품들하고 마지막에 장의자, 장의자 하나에 700불이었는데요. “가족들이 작정을 해서 다음 주일날 교회 헌금할 때 제출해주세요.” 해서 성도들이 그 작정서를 다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시간에 작정서를 다 헌금함에 넣었는데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집사님 한 분이 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툭 꿇더니 눈물을 뚝뚝 흘려요. 그러면서 저한테 이렇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아이고, 집사님 왜 그러세요?” 하니까, “목사님, 제가요, 몸도 아프고 우리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비품 헌금을 아무리 작정하려고 해도 작정할 능력이 안 되서 제가 여기 편지를 썼는데 목사님 봐주세요.” 그 편지에 뭐라고 썼냐면 본인이 주님 앞에 드릴 헌금이 없어서 “일 년 동안 자기가 시간과 자기 몸을 헌신해서 교회 모든 화장실을 청소하겠습니다.” 이렇게 썼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이 몸이 좀 아파요. 일주일에 한 2, 3일은 좀 아파서 쉬고 계시고. 그 당시 한 달에 한 천 불정도 수입밖에 없는 그런 분이시니까 뭘 작정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을 청소하겠다고 써서 올리셨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해드릴게요, 집사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작정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드렸는데 그 다음 주일부터 토요일날 새벽예배가 끝나고 나면 화장실에서 찬송 소리가 납니다. 이 집사님이 와서 화장실 변기 하나하나를 다 닦고 바닥을 물걸레질을 하고 깨끗이 청소하는데, 교회가 새로 짓고 교회가 크니까 화장실이 많거든요. 모든 화장실을 들어가서 다 닦고 유아 화장실까지 다 청소를 하고 그러고 서너 시가 되면 집에 들어가는데 너무 몸이 힘들어가지고 오후 내내 누워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토요일만 되면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서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니까 여선교회 집사님이 한 분, 두 분, 그 청소하는데 같이 참여하셔가지고 토요일 아침이 되면 화장실이 찬양대 연습실이 되어가지고 찬양 소리가 울려 나옵니다. 여러 분이 찬양을 불러요. 그래서 화장실 변기가 반짝반짝반짝 그냥 일 년 내내 얼마나 화장실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는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이 분이 열심히 열심히 토요일날마다 나와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집에만 들어가면 막 힘들어갖고 누워있고. 그래서 그랬대요. 속으로. ‘아, 일 년 안지나가나 왜 이 일 년이 이렇게 나한테 십 년처럼 긴가.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아, 그래가지고 일 년이 되었어요. “야, 나 자유 얻었네.” 그래가지고 이제 다음 주부터 두 다리 뻗고 쉬겠다 그랬는데 새벽에 기도하는데 주님이 물으시더랍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사랑하죠.” “네가 의무로 했느냐, 기쁨으로 했느냐.” 아, 그 말에 그냥 답변이 막혔대요. 내가 혹시 의무로 한 것이 아닌가 기쁨으로 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 토요일날 또 나오셨더라고요. 찬송소리가 나요. 그래서 내가 찬송소리를 듣고 가서 “집사님, 왜 또 나오셨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그 말을 하는 거예요. “사실 제가 두 다리 뻗고 자려고 했는데 주님이 네가 의무로 했느냐 기쁨으로 했느냐 물으셔가지고 제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화장실에서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고 계속 은혜 가운데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니까 하나님께서 건강도 회복시켜주시고, 가정이 또 물질로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복도 내려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이 간증을 하고 나면 교회 화장실이 깨끗해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때에 복이 임합니다. 이분은 비록 몸도 약하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자기의 시간과 자기의 정성을 다 바쳐서 변기를 닦으면서 찬송 부르는 가운데 기쁨과 은혜가 임해서 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주님을 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그 사랑의 마음을 갖고 주님을 기쁨으로 섬길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사 복의 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서 한평생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 가운데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임하여 넘치는 기쁨을 갖고 한평생 주님을 섬기며 주님 영광 위해 살다가 주님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은혜의 말씀] 하나님 나라 (로마서 14장 17절)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천국 시민권자입니다. 성도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성도의 삶의 목표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백성들은 이 땅에서 가난해도 애통해도 슬퍼도 아파도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나라는 끊임없이 이기적인 무한 경쟁이며 모순과 갈등과 문제투성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부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가난해도 애통해도 슬프고 핍박을 당해도 그 중심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서럽게, 의롭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가슴에 깊은 고요가 있었던 것은 천국이 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관심과 선택과 집중입니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나라의 풍조를 바라보면 결국은 헛된 일을 따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달라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천국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지 지옥에 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은 썩을 것들을 구하고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그런 것들 중심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관심사항과 중심이 달라야 됩니다. 먹고 마시는 선에서 멈추면 안 되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깊은 고요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뭐라 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세상 풍파에 요동치지 않는 부평초처럼 흔들리지 않고 주님 주신 평강을 가지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세상이 뒤집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외부적인 것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남들이 뭐라 한다고, 세상이 뭐라 한다고 떨지도 쫄지도 말고 우린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천국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처럼 외부적인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화 근심 없는 축복 뒷골 안 땡기는 복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땀 흘림이 없이는 성공이 없고 눈물의 기도가 없이는 응답이 없고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세상의 나라를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내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중심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삶 하늘이 두 쪽이 나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의 반열에 서서, 의의 길을 걸어가고 반듯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붙잡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병들고 가난하고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적이 와서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우리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고 풍성케 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며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이 철철 넘치고 희락, 구원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기쁨을 샘솟듯, 은사를 불 일듯, 청춘을 독수리 날개 치는 것 같이 시온의 대로를 활보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로마서 14:17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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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나라연구(2)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에서 언급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논리적으로나 주석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낸다. 이 구절은 현재가 아닌 미래적 실체, 미래적 소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로마서 14장 17절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연구논문이 있어 소개한다.

* 이 글은 목회 현장에 직접적으로 소개되진 않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들의 깊은 고민과 애정이 담긴 매우 가치 있는 소중한 연구 결과물이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면서 본지 독자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일부 정리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연구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권연경 박사의 <바울과 하나님 나라:로마서 14:17>, 한국신약학회, ‘신약논단’, 제28권(제1호/2021년 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권연경 박사는 “고린도전서 4: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과 더불어 로마서 14:17의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 중 하나로 간주되는 등 대부분의 학자들이 두 구절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언급한 구절로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로마서 14:17은 미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라고 주장한다.

‘아직’과 ‘이미’의 하나님 나라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특히 권 박사는 “하나님 나라라는 단일 개념을 ‘현재’이자 ‘미래’인 이중적 실제로 규정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라며 “하나님 나라는 조작 가능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도래하고, 신자들이 상속할 구체적 실체다. 논리적으로 이런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으면서 동시에 ‘아직’ 와야 할 무엇이 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적어도 상식적 논리는 그렇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에서 현재와 미래는 공존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 나라가 정말 현재도 되고 미래도 되는 초시간적 실체라면, 학자들의 임무는 이 신비로운 존재 방식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둘 다 성경에 나온다’는 주장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모순처럼 보이는 그 표현이 어떤 식으로 ‘말이 되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

“바울은 언급한 적 없다”

권 박사는 “이미, 그러나 아직이란 논리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전형적 방식은 현재와 미래를 부분적 성취와 최종적 완성으로 연결하는 것이지만 막상 바울의 글에서는 이에 대한 실질적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라며 “학자들의 글에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바울 자신은 그 어디에서도 현재 부분적으로 구현된 하나님 나라가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진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이어 “하나님 나라가 ‘이미’와 현존한다는 말도, 아직은 ‘미완성’인 그 나라가 미래 ‘완성’을 향해 발전 중이라는 말도 없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완성’이나 ‘최종적 성취’ 등의 표현은 설명을 위해 고안된 학자들의 용어이지 바울의 글 자체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미래의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in some manner) 현존한다는 말은 그 현존의 구체적 ‘방식’을 해명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진술이다. 사고의 모호함을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전히 모호한 언어로 덮는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며 “미래와 현재를 한 호흡으로 말하려는 시도 자체가 논리적 무리수라는 것이다”라고 피력한다.

* 권연경 박사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언급한 글도 소개한다.

하나님 나라,

혈과 육은 상속할 수 없다

권 박사는 “바울은 합당한 삶(살전 2:12)을 팽개치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결코 상속하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다(갈 5:21; 고전 6:9-10; 엡 5:5)”라며 “상식적으로나 수사적으로, 이런 서슬 퍼런 경고는 이 나라가 신자들 중에 이미 현존한다거나,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미 그 나라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라는 발상을 막는다”라고 주장한다.

이어 “하나님 나라의 시기와 관련하여 가장 강력하고 선명한 진술은 고린도전서 15:50이다. 미래 부활을 논하면서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라며 “하나님 나라는 현재의 ;혈과 육’을 벗어난 몸,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만 상속할 수 있는 나라다”라고 강조한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현재이자 미래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다는 것. 그는 “지금 혈과 육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가 구현된다는 말은 바울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라며 “하나님 나라는 현재이자 미래라고 말하는 것은 깔끔한 설명이 아니라 혼란을 야기하는 수수께끼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

신자들은 구현할 수 없다?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권 박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은 신자들이 실천해야 할 윤리적 덕목들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권 박사는 하나님 나라란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행동이 아니라, 신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실천하는 정의, 평화 및 기쁨의 삶을 통해 구현된다고 주장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물음들은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방식과 무관하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함으로써, 무의미한 논란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 곧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자태가 망가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라고 설명한다.

권 박사에 따르면 롬 14:17절에서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 ‘의와 평화와 기쁨’은 처음부터 신자들의 실천 이야기다. 애초에 바울의 관심 자체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신자들의 구체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일들을 먹고 마시는 문제로 비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삶은 ‘의로움과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권 박사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를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과 연결시키면 먹고 마시는 문제로 갈등 겪는 신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드러나지 못한다”라며 “이런 상황 가운데 바울이 언급한 세 덕목을 현재적 하나님 나라로 연결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나라가 되고, 신자들의 무책임 탓에 미완의 나라가 되는 등 하나님 나라는 부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헬라어 해석 주의하라

“현재가 다 현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언급한 바울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권 박사는 “바울은 바람직한 현재 삶의 덕목들과 동일시하는(identify) 것일까? 오히려 이런 사고의 혼란은 우리가 바울의 쉬운 진술을 무리하게 비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그에 따르면 바울은 ‘의와 평화와 기쁨’을 하나님 나라와 연결한다. 여기에 사용된 연결동사는 ‘~이다, ~있다, ~존재한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 εἰμί(에이미)의 현재 직설법 3인칭 단수 ἐστιν(에스틴)이다.

권 박사는 “학자들은 이 동사가 현재시제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명백하게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과 이 사례를 엮어, ‘현재이자 미래’인 하나님 나라에 관해 이야기한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하지만 사건이나 묘사의 실제 시점은 동사의 ‘시제’와 무관할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 시간을 말하려면, 동사의 ‘현재 시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지만 유독 신약성서의 구원론이나 종말론에 관한 논의에서는 이런 상식이 무시될 때가 많다. 그저 동사의 시제에만 기대어,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라고 결론짓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권 박사는 마태복음 5:3(“~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에 사용된 동사를 예를 들면서 “많은 이들이 이 동사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읽어내지만 연결동사의 기능은 현재의 삶의 자태와 미래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것이지 천국의 시점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연결동사(copula) εἰμί는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표현하는 느슨한 연결사다. 주어와 술어를 특정 관계로 묶지만, 그 관계의 구체적 속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보다

종말, 심판 관점으로 해석해야

권연경 박사는 심판과 미래 종말론의 관점에서 현재의 먹고 마시는 것과 의와 평강과 희락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한다.

권 박사는 “로마 공동체의 상황 재구성과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든, 바울의 논증이 종말론적 지평을 넘나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라며 “먹고 마시는 문제는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된 하나님 나라의 속성 차원에서가 아니라, 종말과 궁극적 멸망의 가능성, 미래의 심판과 결산, 그리고 이를 통해 상속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강조한 사도 바울의 의도와 관련해서 “바울의 간절한 호소 배후에는 미래를 향한 소망이라는 신념이 자리한다. 그가 신자들에게 양보와 배려의 삶을 권했던 것은 그런 삶만이 미래를 향한 소망을 잇고 키우는 제대로 된 믿음의 삶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미래 구원 보증하는

의로움과 평화

권 박사는 “로마서에서 구원론적 의미의 ‘의로움/정의'(δικαιοσύνη)는 현재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기도 하다”라며 “칭의와 관련해서도 바울은 칭의의 현재성을 강조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재적 ‘의로움’은 궁극적 구원의 미래를 확인하고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리적 디딤돌로 작용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아브라함의 믿음을 언급한 로마서 4장을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의 ‘의로움’도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벌어지는 언약 드라마의 결론이 아니라,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가는 징검다리였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바울은 의로움과 평화를 말할 때, 애초부터 ‘미래의 구원’을 궁극적 목표로 뒀다는 말이다. 권 박사는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조성된 의로움과 평화라는 현실을 가리키며 미래 구원의 확실함을 말한다. 이미 시작된 구원의 현재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장차 주어질 구원의 소망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로 의와 평화를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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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소망 자라게 하는

‘기쁨과 평화’라는 양식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권 박사는 “바울은 신자들의 ‘기쁨과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 참여자로 누리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어서가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자라게 하는 오늘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도했던 기쁨과 평화는 현재적 구원의 열매나 증거가 아니라, 소망이 자라는 데 필요한 현재 삶의 토양이다”라고 강조한다.

로마서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은 현저히 미래종말론적 소망의 맥락에서 다루어진다고 주장한 그는 “이런 현재 삶의 참 가치는 미래 구원의 소망의 빛 아래서 제대로 드러난다.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읽으면, 이 하나님 나라를 현존하는 어떤 것에 간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른 모든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본래적 의미, 곧 미래 도래할 것으로 기대된 그 하나님 나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라고 설명한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해석

“필연적 근거는 없다”

연구의 결론 부분에서 권 박사는 “로마서 14:17에 언급된 하나님 나라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 구절에 관한 현재적 해석은 논리적으로나 주석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낸다. 독립된 진술로 읽으면 현재적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래야만 할 필연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바울은 다른 편지들에서 미래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거론하며 경고한다. 로마서에서 당면 상황을 바라보는 종말론적 관점도 동일하다”라며 “또한 ‘의와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 주로 종말론적 맥락에서 등장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한다.

이어 ‘현재적’ 안경은 바울의 실제 논증에 관한 일관된 이해를 방해한다고 주장한 그는 “바울은 시종일관 구원과 영생에 관한 소망과 기다림을 말하고, 진노와 심판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미래의 지평으로부터 현재 신자들의 삶을 바라본다”라며 “로마서 14:17의 하나님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결론짓는다.

[권연경 박사의 연구논문 목차]

I. 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II. “아직”이면서도 “이미”인 하나님 나라?

1. 논리적 모순, 주석적 공백, 혹은 사고의 모호함

2. 혈과 육이 상속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

III. 신자들이 구현하는 하나님 나라?

1.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

2.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못한 하나님 나라?

IV.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정의(definition)?

V. 종말론적 동기부여와 하나님 나라 상속: 갈라 디아서와 고린도전서의 경우

VI. 종말론적 심판과 현재의 먹고 마심

1. 심판을 바라보는 삶

2. 소망 중의 인내

VII. 소망의 토대로서의 새로운 삶

1. 미래 구원을 보증하는 의로움과 평화

2. 평화와 기쁨으로 지탱되는 구원의 소망

VIII. 나가는 말

권 박사의 연구논문 RISS 검색 – 국내학술지논문 상세보기

* 하나님 나라에 관해 포괄적으로 해석한 글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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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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