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행전 18 장 주석 | [하루 한 장] 사도행전18장_내 백성이 많음이라 19268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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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15 (수) [하루 한 장]“내 백성이 많음이라” (행18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사도행전 18장은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에 크게 실패한 뒤
혼자 거대한 상업도시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쾌락으로 물든 고린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예비하셔서
함께 살고 일을 같이 하면서
1년 6개월이라 복음을 전하도록
협력하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마게도냐로 보냈던
실라와 디모데도 돌아와 함께하니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백성을 이 고린도에
많이 심어두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동참하는 영광을
허락하셨음을 기뻐합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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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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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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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 행전 18 장 주석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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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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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주석

사도행전 제 18장

=====18:1

바울이…고린도에 이르러 –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이스와 남쪽으로 펠로폰

네수스(Peloponnesus)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했다. 이 도시의 동서쪽에는 각각

항구가 있어 전략상 요충지였다. 한편 이 도시는 B.C. 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

6, 7세기경에는 영화와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B.C. 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B.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

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

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

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

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

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

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

)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

러 이곳은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

른 바울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

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

략을 세웠을 것이다.

=====18:2

18:2 아굴라…브리스길라 –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

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한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다. 롱

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장 헌신

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3, 18, 19, 26절 ; 롬 16 : 3 ; 고전 16 : 19 ; 딤후 4 :

19).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글라우디오 칙령(49년)의 원인인 유대인 폭동의 주동자였는지는 알 수

가 없다. 만일 브리스길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녀는 글라우디

오의 추방령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남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을 것

이다. 본서나 기타 바울 서신서에서도 이들이 바울에 의해 개종된 자들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로 보아 이들은 이미 고린도에 오기전에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Zahn). 누가는 바울을 중심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기때문에 대체로 바울과 관계있

을 경우에만 다른 인물들을 기록한다. 따라서 누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서

는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다.

글라우디오 – 로마 제국의 4대 황제로서 그의 재위 9년(49년 경)에 로마에서 유대

인 추방령(追放令)을 내렸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이 추방령이 내려지

게 된 동기는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으

로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수에토니우스가

언급한 크레스투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고, 그 소동이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를 두고

충돌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년 후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

도를 받고 회심하기도 했다는 본서 28 : 17 – 29의 기록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R.C.H.Lenski).

=====18:3

업(業)이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 크고 번창한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이 새로이 전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생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했다.

바울은 전도 여행중에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20 : 34 : 고전 9

: 1 – 18 : 고후 11 : 7 – 12 : 살전 2 : 9 : 살후 3 : 7 – 10). 당시 천막은 바울의

출신지인 길리기아의 다소 근방에서 산출되었던 염소의 피륙이나 기타 가죽으로 제조

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전통이나 유산을 물려줄 뿐 아니라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 주어 차후에 생계 유지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그런 기술을 어떻게 익히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무

튼 그는 낯선 곳에 당도(當到)하자 그의 기술을 사용하여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사람이나 가죽 기술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물었을 것이고 그런 계기로 아굴라

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을 것이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

인다.

=====18:4

안식일마다 – 바울은 평일에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

였고 안식일이 되면 으례히 그의 습관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했다. 쟈안(Zahn

)의 견해에 따르면 당시 고린도에는 회당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강론하고…권면하니라 –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는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에 의하여 곳곳에 유대교 회당이 설립되었고 또 그들에 의하여 많

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구약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서 구약성경을 배우게 된 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율법의 조항을 부분적으로 준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회당 예배에

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며 회당 예배도 참석하였

지만 유대교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거나 완전한 개종자들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유대교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에 의해 이방 민족을 무시한 데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율법을 배우고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은 유

대교에서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대부분의 유대인들로부터 부정한 자들로 여겨

져 배척당하곤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회당에서 말

씀을 전하고 있다. 한편 이때까지의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그다지 적극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 즉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속히 와서 자신의 사역에 참여할 때까

기는 이곳에서의 사역을 어느 정도 크게 확대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따

라서 현재까지의 사역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의 언급이 없다.

=====18:5

실라와 디모데가…내려오매 – 마침내 바울이 고대하던 두 명의 사역자가 당

도했다. 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거나 아니면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먼

저 도착하고 그 후에 실라가 빌립보에서 도착했을 것이다(Lenski). 디모데는 데살로

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살전 3 : 6),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히 재림과 관련하여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섭섭한 소식도 전하였다(살전 4 : 13 ; 5

: 11). 바울은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나서 이에 대한 답장을 썼는데

이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

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혼란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번

째 서신인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였다. 한편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다(고후 11 : 9 ; 빌 4 : ]4, 15).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

금은 이 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

만 몰두할 수 있었다.

말씀에 붙잡혀 – 실라와 디모데가 온 후 바울의 회당에서의 말씀 증거는 안식일에

만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현금덕분으로 장막 만드

는 일에서 벗어나 말씀 준비에만 몰두했고 또 준비한 말씀을 전하는데만 전력 투구

(全力投球)했다. 특히 ‘붙잡혀’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쉬네나케토'(*

)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이러한 사역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지속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18: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 ‘훼방하거늘’이란 뜻의 헬라어 ‘블라스페문톤’

(* )은 ‘신성 모독’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

대인들의 비난과 대적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신성 모독이었다. 특히 ‘대

적하여’를 나타내는 ‘안티타쏘'(* )는 ‘반대편’이라는 뜻의 ‘안티'(

)와 ‘정돈하다’, ‘배열하다’는 뜻의 ‘타쏘'(* )의 합성어로서 유대인

들이 바울의 반대 입장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게획적으로 대적하며 방해했음을 나타낸

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와 같은 것이었다(13 : 4

6 -52). 바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사악하고 완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향

한 복음 전파에서 방향을 바꿔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옷을 떨어… 너희 피가…돌아갈 것이요 – 성경에서 ‘옷을 떤다’고 했을 때 그것

은 곧 ‘엄숙한 맹세’나 또는 ‘저주의 행동’ 등으로 받아들여졌다(느 5 : 13).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은 이미 비시디아 안디 옥에서 그의 발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

을 통하여서도 비춰졌다(13 : 51). 바울이 이렇게 옷에서 먼지를 떠는 행동은 예수께

서 12제자와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을 향해 발에서 먼

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과 유사하다(눅 9 : 5 ; 10 : 11). 이렇게 발이나 옷에

서 먼지를 떠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마을에 들어갔다 나오면 으

례히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모습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발의 먼

지를 떠는 것은 부정한 모든 것을 거룩한 곳인 자신들의 땅에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행동이다. 즉 종교적으로 종죄되었던 이방인들의 영향력을 제하여

버림과 동시에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행동이었

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역이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복음과 무관(無關)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방법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편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라는 바울의 말은 겔 3 : 18 ; 33 : 4, 8 ;삼하 1 : 16에

나타난 말씀이다. 아울러 이 말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기 위해 예

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면서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마 27 : 25). 이

는 결코 단순한 저주나 악담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자는 죽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

임이 있으며 또 그 책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

서 여기서 이 말씀은 바울이 최선을 다해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으나 유대인들이 이것

을 끝내 거부했으므로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뜻이

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자멸을 초래한 것이다.

=====18:7

디도 유스도 –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

‘(Titus justus)의 집이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

타내 준다. 추측건대 그는 B.C. 44년 로마 황제 가이사(Julius caesar)가 고린도롤

재건할 때 이곳에 정착했던 로마인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한편 람세이(Ramsay)

는, 디도는 그의 둘째 이름이고 유스도는 셋째 이름이며 그의 첫째 이름은 다름아닌

‘가이오'(Gaois)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 디도가 롬 16 : 23의 가이오와 동일

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전 1 : 14에서 바울은 그의 고린도 전도 초기에 개인

적으로 세례를 준 ‘가이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당 옆에 있

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

장소가 되었다.

=====18:8

회당장 그리스보 –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

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하다. 여기서 그리스보가 고

린도 선교 사역의 최초의 열매처럼 보이지만 고전 16 : 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

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렇지만 고린도에서 바울이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다(고전 1 : 14). 바울이 직접 그리스보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그가 회당장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일반개심자들에게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은 이유는 그 사역을

이미 실라와 디모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전 1 : 14 – 17). 아무튼 그

리스보의 걔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수다한 고린도 사람 – 이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받아들인 이방인 개종자들을 제

외한 대부분의 헬라인들과 로마인들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누가는 유대인들이 이방지역에 거주한다고 해서 그들을 ‘고린

도 사람들’이라는 형태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도 슷자상으로 많

지 않으므로 ‘수다한’이란 의미 속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로마인들이 고린도에 거주했고 많은 헬라인들도 경제적인 것

을 비롯하여 기타 이유들로 인해 고린도에 많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또 그들로부터 많은 결실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때의

개심자들로는 유스도와 그리스보를 제외하고도 에배네도와 스데바나(롬 16 : 5 ; 고전

16 : 15) 그리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고전 16 : 17) 등 다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을 것

이다(Pulpit Commentary). 고린도 서신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는 대개가 이방인들로 구

성되었으며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렌스키(Lenski)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게바의 추종 세력들(고전 1 : 12)은 이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

한다.

듣고 믿어 세례톨 받더라 – 원문상 이 부분은 현재 분사와 미완료 과거형으로 구성

된 구절로서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바울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으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

인 부후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은 공동

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

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8:9

주께서 환상 가운데 – 바울은 이미 여러차려에 걸쳐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다메섹(9:4)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때를 위시하여, 드로아(16:9), 예루

살렘(22:17) 등지에서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나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는 차후에도 환상 가운이 예수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된다(23:11;27:

23). 이렇게 때때로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는 바울이 그의 사역을 흔들림없이 굳

건하게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두려워하지 말여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고린도의 유대인들 회당장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급 인사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보고 바울에 대해 보복(報復)을 계획했

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바울은 그로 인해 큰 동요가 생기기 전에, 그리고 유대인들이

핍박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기 전에 조용히 고린도를 떠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16:19-

19;17:13, 14). 바울은 고전 2:3에서, 자신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두러워하며 떨

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심령이 위축되어 영적 위로와 격려가 꼭 필요했던 것만

은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말씀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격려하고 위

로하기 위해주신 것과 유사하다(출 3:12; 신 31:6; 수 1:5, 9: 사 41:10;43:5; 렘 1:

8).

=====18:10

네가 너와 함께 있으매. 이 말씀은예수께서 부활 . 숭천하실 때 이 땅에 있는 그

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다(마28:20).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

든 믿는 자들을 의한 약속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바울이 모르고 있지는 않았

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오랜 선교 여행과 지속적인 말씀 전파 그리고 지속되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위협으로 지치고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약속을

바울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심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리가 없을 것이니 – 이는 앞으로 바울이 전혀 박해를 받지

않거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앞으로도 어려

움에 처할 것이며 고난도 당할 것이지만 그때마다 그와 함께 예수께서 계시사 그 어려

운 상황을 넉넋히 극복하게 할 것이며 아무런 허도 받지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12-17절).

내백성이 많음이라 – 여기서 이르는 백성은 곧 바울의 복음 증거로 구원허야 할 많

은 고린도의 사람들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시기로 택정한 많은 사람

들이 고린도 성 내이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의

권속(券屬)으로 삼으셔서 그의 아들이 되게 할 것을 예정하셨다(롬 8:29; 엡 1:5). 이

러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과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

어진다(엡 1:4 – 11;2:8, 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예정을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예정하셔서 구원하신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개개인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

접해야 하는 결단과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바로 이 고린도 성 내에는 아직까지 바울

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피택된 백성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18:11

일 년 육개월을 유하며 – 1년 6개월의 기간에 대해서나 학자 간에 다소 의견에 차

이가 있다. 즉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해서 그곳을떠날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말

한다는 의견(Zahn, Haenchen, Longenecker)과 바울이 환상을 경험한 후 고린도에 머문

기간만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다(Robertson, Whitelaw). 여기에서 어느 것이 정확한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적어도 1년 6개월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린도에 머물며 참으로 당사역을 수행헹다. 한편 롬 16:1 과 고후

1:1 을 살펴보면 고린도와 인접한 아가야와 겐그레아 항구까지 복음이 전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바울이 그러한 지방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추측할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바울은 주로 고린도 내에서 활동하였고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인

접한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추측이 훨씬 더 타당하다(Lenski). 특히 ‘유하

며’의 헬라어 ‘에카디세'(* ) ‘머물다’, ‘거주하다’는 뜻으로 바울이

고린도를 벗어나지 않고 전도 사역을 지속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가르치니라 – 바울이 고린도 성 내에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라고 되어 있다. 바울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관한 것이었다(17:31

). 이 사실에 근거해 볼 때 화목을 이루신 예수를 전파했고 또 그를 믿는 믿음에 관

해 가르쳤을 것이다.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되었을 때 – 갈리오는 본명이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

(Marcus Annaeus Novatus)로서 코르도바 츨신이고 스페인의 뛰어난 수사학자이며 갑부

인 마르쿠스 안네우스 세네카(M.A. Seneca : B.C.50 – A.D. 40)의 아들이며, 스토아

철학자, 정치가, 희곡작가인 루키우스 안네우세네카(B.C. 4-A.D. 65)의 동생이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통치 기간(A.D.41-54)중에 그는 로마로 가서 로마의 수사학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었으며 A.D.51년 7월

1일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다. A.D. 65년 네로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그는 네로로부터 자살할 것을 강요받고 그로 인해즉게 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갈리오가

부임한 아가야는 B.C.27 15년까지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있고 그후 황시령이 되었다가

다시 A.D. 44년부터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이 당시 아가야는 지방 총

독의 통치를 받았다.

유대인이…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 바울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 약 8, 9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선교사역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A.D.50 년 가

을부터 A.D. 51년 7월 초순까지). 이 기간동안의 바울의 사역에 대해 유대인들은 많은

불만이 있었던 듯하다. 그 즈음에 총독이 새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를 봉

쇄하고 새로운 총독도 시험해 보기 위해서 게략을 꾸몄던것같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

울을 총독에게 데려가 고소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미 빌립보에서 바울을 관원들에게

데려가 고소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16:19 ). 그리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

울을 대적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며 바울을

잡고자 했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한다(17:51). 한편 유대인들이 총독이 바뀌는 상황을

틈타 바울을 고소한 것은 때우 교묘하다. 아마도 이들은 임지(任地)로 처음 부임하는

고관이면 으례히 그 지방 주민들로부터 환심을 얻고자 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새로운

총독을 자신들의 뚱대로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8:13

율법을 어기어…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바울이 불법 종교(religio illicita)를 전한

다는 것이다. 로마법상 로마 정부로부터 공인되지 않은 종교를 전하는 것은 불법 행

위였다. 그런데 유대교는 당국으로부터 승인된 공인 종교(religio illicita)였다. 따

라서 유대교는 자유로운 예배행위를 허유받았고 나아가 로마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

들을 개종시키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신들과는 달리 공인

되지 않은 불법 종교를 로마의 법을 어기민서 전하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2) 바울

이 로마법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형태의 종교를 전파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3) 바울이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의 칙령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

Caligula)의 경우는 자신을 살아있는 상(像)을 예루살렘 성전안에 둠으로써 유대인들

이 깊은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글라우디오가 횡제로 즉위하면

서 그는 칙령을 발표하며 유대인들에게 로마 제국 내의 어느 곳에서든지 그들의 관습

과 율법을 자유릅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유대인들

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자유로은 관습을 간섭하고 훼방하므로 결국 황제의 칙령을 어기

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이들 견해증 14, 15절에 언급된 갈리오의 말을 염두에 둘

때 첫번째 견해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18: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 로마법상 재판은 원고(原告)의 고소와 피고(被告)의

변호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는 마주 서서 재판장을 향해 각자가 자기

주장을 하게된다. 바울도 역시 원고의 고소 내용에 따라 자신을 변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갈리오의 변호 승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갈리오가 이 사건 자체를 기각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부정한 말이나 괴악한 행동 – 이는 갈리오가 재판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를 명확히 나타낸다.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 갈리오가 갖고 있는 법적인 권한이 제시

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의 고소가 법정에서의 판결이 필요한 믿.형사상의 문제라면,

갈리오는 성심껏 판결을 내려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18: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 갈리오는 이 고소 사건이

민.형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 자체 내의 ‘언어와 명칭과 그들의 법’에 관한 것

임을 알았다. ‘언어’는 곧 ‘말씀'(* , 로고스)을 나타내는 것이고 ‘명칭’은

메시야와 관련된 ‘이름'( , 오노마타)을 뜻하는 것이며 ‘법’은 곧 ‘율법

‘( , 노모스)을 나타낸다. 따라서 갈리오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볼때 이

사건은 자신이 재판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왜냐하면 총독이

해야 할 일은 로마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관계 있는 민.형사상의 문제를 재판하는 것

이지 유대의 종교 문제를 중재(仲裁)해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리오

는 개인적으로 민.형사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도 매우 번거롭고 성가셨을 것이

므로 그는 그의 책임 영역 밖의 종교 문제까지 중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갈리오는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문제를 유대인들 스스로 처리할것을

명령함으로써 종결지어 버린다. 한편 이는 A.D. 49년 경에 있었던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의 폭동을 갈리오가 염두에 두어 그러한 폭동이 고린도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갈리오는 그의 재임 기간 초기부터

이러한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하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18:16

저희를…쫓아내니 – 갈리오의 이러한 결정이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해서 내려

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의

를 지닌다. 마게도냐 선교 당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었다

(14:5, 19;16:19;17:5;고후 11:24-27). 따라서 만일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억지 고소

내용대로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면 이 전례를 따라 각 지역의 행정관들은 동일

하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고 바울은 무수한 어려움 속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했어

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그 터무니없는 고소를 물리쳤다. 갈리

오의 명망과 지위를 고려할 때, 이 결정은 훗날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 중요

한 판단 근거로 작용하였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순탄케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Richard N.Longenecker). 한편 유대인들은 갈리오의 기각(棄却) 선

고를 듣고서도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해서든 총독을 설득시키려고 계속 남아 같은 이

야기를 반복했을 것이나 총독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갈리오가 부하들을 시

켜 그들을 쫓아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Lenski,Zahn).

=====18:17

회당장 소스데네를…때리되 – 당시 그리이스-로마 세계에서는 반(反)유대주의 감

정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갈리오도 이러한 반유대주의 감정에서 예외가 아니었고

이 재판정에서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갈리오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군중

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갈리오 앞으로 끌고가 때리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쟈안(Zahn)과 헨헨

(Haenchen)은 그 재판에 실망한 유대인들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롱게네커

(Longenecker)는 이 사람들이 헬라 군중들이라고 본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

가 기각되고 총독이 유대인들을 냉대하는 것을 보자 반유대적 감정을 품고 있던 헬라

인들이 책임자격인 회당장을 무고죄(誣告罪)로 구타한 것 같다. 한편 앞서 고린도에

는 하나의 회당이 있고 그 회당장이 그리스보(8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회당장이 소

스데네로 나와 있다. 그러나 다소 규모가 큰 회당에는 때때로 한 사람 이상의 회당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니면 소스데네는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

게 되자 그의 후임으로 회당장 직분을 맡았을 수도 있다.

얼마 있다가 –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 얼마 동안 체류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롱게네커(Longenecker)는 이 기간 52년 여름부터 53년 봄까지로 추정한

다. 이 기간동안 그는 두 차례의 선교 여행을 돌아보며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숙의(孰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간 여독을 풀면서 3차전도 여행에 대한

게획을 세우며 준비하였을 것이다.

떠나 – 누가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제1차나 2차 전도 여행과는 달

리 바나바나 실라는 데리고 갔다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바울이 이번 여행을

홀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갈리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굳게 하니라 – 이 지역은 아마도 브루기아 방언과 겔

틱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인 갈라디아시 브루기아 지역이나 남부 갈라디아의 어떤 지역

을 의미하는 것으로 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16:1-6). 바울은 이러한 지역을 다니면서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제자’들이 된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의 거짓 교훈

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서도록 격려하며 위로했다.

=====18:18

더 여러 날 유하다가 – 바울의 전도여행을 살펴보면 바울은 항상 자신에게 닥친 여

러 위험한 상황들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곤 하였다(14:6,

20;16:40;17:10;18:;19:8;20:1). 고린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여기서

‘여러 날’ 더 머문 것이 앞서 11절에서 언급된 1년 6개월의 기간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추가되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런데 바울이 갈리오의 뜻하지 않은 옹

호를 받게 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바울은 고린도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한 듯하다(I.H. Marshall).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기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26절;롬 16:3;딤후4:19). 이는 브리스길라가 아굴

라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브리스길라의 신앙이 아굴라의 신앙보다

더 신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바울의 선교에 매우 헌신적으

로 협조한 사람들이었다(롬 16:4).

바울이…게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의 선교 사역과 관련

하여 어떤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 일정 기간의 나실인의 서원(Nazurute viw, 21:17-26

주제 강해 ‘나실인 제도’ 참조)을 하였으며 이제 그 기간이 다 지나갔음을 보여준

다(민 6:2-21). 원래 이러한 서원(誓願)은 예루살렘에서 온전히 마감되는데 그곳에서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다(민 6:13-21). 여기서 바울이 유대의

옛 관습을 좇아 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바울은 스스로 자

기자신을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고(고후 11:22) 또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맺음할

때에도 그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23:6). 한편

혹자(Grotius, Meyer, ieseler)는 머리를 깎은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아굴라라고 주장

한다. 그렇지만 이는 거의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또 저자 누가가 아굴라 같은 인물에

관해서까지 그렇게 세세한 언급을 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한편 겐그레아는 고린도에

서 가까운 곳으로 고린도의 외항(外港)이며 지중해연안의 여러 도시를 잇는 교통의 요

충지였다. 이 도시에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며 전도하여 거둔 열매인 여집사 뵈뵈

가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다(롬 16:1, 2).

=====18:19

에베소에 와서 –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관할 지역의 수도이며 상업 중심지였

다. 아울러 이 도시는 원로원과 시의회를 갖춘 자유헬라 도시였다. 이곳에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은 고대의 칠대 불가사의(七代不可思議)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A.D. 262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는

의미인 듯하며 이들의 체류 기간은 4, 5년 정도로 짐작된다. 이들은 이곳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대접하며 바울의 서신을 통해(고전 16:19) 고린도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

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데메드리오의 공격시에(19:23-41) 이곳에 있었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으며(롬 16:4) A.D. 54년(혹 56년) 글라우디

오 횡제가 죽은 후 로마로 돌아갔다(롬 16:3). 한편 이 때의 실라와 디고테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계속 머물며 그 곳의 사역을 감당했

거나 아니면 바울과 계속 동행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에베소에

돌아왔을 것이다(Longenecker).

회당에 들어가서…변론하니 – 바울이 낯선 땅에 들어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회당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그의 선교 방법이었다(4절;13:5, 14;17:1, 10,

17:19:8). 그런데 바울이 회당을 찾은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회당을 찾으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꼭 안식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또는 토론과 담소

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회당에 모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찾았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회당을 찾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고자 했기때문이었을 것이다.

=====18:20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에베소에서의 사

역은 매우 전망이 좋았고 사람들도 호의적이었다. 바울의 설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에베소사람들이 바울의 체류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 길

을 재촉한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

급이 없다. 그가 왜 이렇게 여행을 서둘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21절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8:21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바울 자신도 어느 정도 에베소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서의 아쉬움을 남긴 채 에

베소의 선교전망과 이곳에 뿌린 씨앗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바울이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22절)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비

잔틴 사본(Byzantine Text)에는 본 구절에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절기

를 지키야 하리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본들의 구절을 참고해 보면 바울

은 아마도 유월절 내지는 오순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서둘러 가려고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의 성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3.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

전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을 것이다(18절;21:26).

=====18: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탄 배가 수리아 안디옥의 항구 실

루기아(Seieucia)에 정박하고자 했으나 강한 북동풍이 봄철 풍향 사정 때문에 쉬운 항

로를 택하여 그곳보다 약 400KM 남쪽에 있는 가이사랴항에 상륙하였다고 주장한다

(Haenchen).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풍향 사정이 아니었다면 바울이 얼마 후면 곧바

로 다시 돌아갈 안디옥에서 무려 400KM나 떨어진 가이사랴에 굳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

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둔 것이고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목적(21절 주석 참조)을 간과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한편 가이사랴는 헤룻 대왕 이후 예루살렘의 항구 역할을

해왔다.

올라가…내려가서 – 어떤 학자들(Knopf, baurnfeind)은 본 구절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성도들의 안부를 물어보려고 항구에서 가

이사랴 성내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랴 항구까지 온것은 예

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l.H.Marshall). 가이사랴

는 예루살렘에서 약 104KM 떨어겨 있었으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올라가도록 되어 있

다. 사실 팔레스틴의 지형상 헤브론쪽의 방향을 제외하고난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서

든지 윗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헬라어 원문에서 올라가다’를 뜻하는

‘아나바이노'(* )는 뜻의 ‘카타바이노'(* )는 예

루살렘을 중심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에 덧붙여서 ‘교회라는

뜻의 헬라어 ‘여클레시아(* )라는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

문했다는 사실을 더욱 더 확증해 주고 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후 모두 다

섯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으며 이번이 그중 4번째였다(9:26;11:30;15:4

;21:17). 그리고 세차례에 걸친 바울의 선교 여행은 모두 예루살렘 방문으로 마감되

었다고 본다(본절:15:4;21:15).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두번째 선교 여

행의 결과를 보고하고 이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결속(結速)올 다졌을 것이다. 아울러

축제에 참석하여 30일간의 결례기간을 가진 후 성전때 올라가 그의 서원대로 머리카락

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방문 목적이 끌나

자 그의 이방 선교의 전도 기지인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0KM 지점에 있었다.

=====18:24

알렉산드리아 B.C – 332년 알렉산더대왕이 세운 중요한 해양 도시이다. 상업의 중

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

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대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는데, 유대인들이 크게 번성하뗘 당시 인구의 1/3이나 되었다 한다.

따라서 유대적 헬라 설학이발달하였는데 그 철학자들 중 필로(Philo)가 대표적인 인물

이다. 그때까지 필로가 생존해 있었으로 아마 아볼로는 그 필로 학파의 일원이었던것

같다.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성경에 능한자라 – ‘학문이 많고’의 헬라어 ‘로기오스

‘(* )는 ‘유식한’, ‘말 잘하는’이란 뜻이 다나이는 아볼로가 천부적인

언변(言辯)과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또한 아볼로는 이 외에

‘성경에 능하기’까지 했다. 즉 그는 그의 언변과 학식을 성경 연구와 그 연구한 사실

을 다른 사람에게 건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복음의 핵심을 몰

랐다. 한편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한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잠시 머물다 떠난 후

(19:1)부터 그가 제3차 건도 여행 때 다시 에베소롤 방문하기(19:1) 전의 기간이었다.

이 때에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하여 영적 지도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18:25

주의 도를 배워…요한의 세례만 알따름이라 – 아볼로가 어디서 어떻게 주의 도를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가 않다. 추측건대 그는 세례 요한의 몇몇 제자들을 통

해 기독교의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누가의 저서에 있어서’주의 도’나 ‘하나님의 도

‘는 항상 ‘기독교의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했다(Haenchen). 그러나 아볼로가 주의 도

를 아무리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다고 해도 세례 요한이 죽기까지 예수에 관해 이야기

한 것만 부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흘츠만(Holzmann)은 아볼로가 세례 요한히 뒤를 잇는 인물이었다고 주장한, 또한

디벧리우스(Dibelius)는 아볼로를 통해서 혼합적인 반(半)기독교의 모습을 볼 수가 있

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캐제만(Kasemann)은, 아볼로는 사도 중심적 기독교에 대해 독

립적으로 활동했딘 기독교 교사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누가는 그를 불완전한 교사로 묘

사했다고 한다.

=====18:26

브키스길라와 아굴라가…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 본 구절에서도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었다. 이는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에

있어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Haenchen). 이들 부부는 아볼로가 회당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가 복음의

진수(眞髓)에 대해 무지한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강

림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가르쳤다. 여기서 특별히 아볼로가 세례를 받았다

는 언급이 없는데 이씨 대해 혹자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아볼로가 이전에 받은 ‘회개의

세례’를 기독교적 세례로 간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Longennecker)고 주장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많은 학자들은 아볼로가 성령 세례를 밞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서 학자 간에는 이 구절이서 기독교의 성령 세례에 관해서 논하기도 한다.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많은 유익을 주니 – 베자 사본(Codex Bezae)에 따르면 에베소

에 몇몇 고린도 고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아볼로의 이야기를 듣고 아볼로에게 자신들

과 함께 고린도에 갈 것을 부탁했나고 언급되어 있다. 에베소에는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역하고 있었으므로, 또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바 은혜를 전하고

싶어 고린도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볼로의 고린도 사역을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추천장을 써주기도 하였다. 결국 고린도에서의 아볼로의 사역은 후에 큰 결

실을 거두었고 바울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전1-4장).

=====18:28

성경으로써…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 아볼로 역시 바을과 마찬가지로 메시지

의 핵심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집중시켰다. ‘성경에 능한 자'(24절)였던

그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공증 앞에서 그가 알고 있던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

서 메시야이심을 더욱더 설득력있고 확신있게 전하였다. 그의 능슥한 언변과 철학적

학식, 성경시 능통함 등은 그가 복음을 전하는데 뒷받침이 되었고 특별히 유대인을 설

복시키는데 귀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아볼로의 사역을 근거로 마르틴 루터(M,luther)

는 히브리가 아볼로의 성경적 논증의 실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내용이, 예수 그

리스도의 우월성이 유대교를 능가한다는 점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지적하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이사건들을 뒷받침할 만한 분명한 자료들이 없다.

헬라어 사도행전 18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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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타우타 코리스데이스 에크 톤 아데논 엘덴 에이스 코린돈

개역개정,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새번역,1 그 뒤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우리말성경,1 이 일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영어NIV,1 After this,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영어NASB,1 After these things he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영어MSG,1 After Athens, Paul went to Corinth.

영어NRSV,1 After this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헬라어신약Stephanos,1 μετα δε ταυτα χωρισθεις ο παυλος εκ των αθηνων ηλθεν εις κορινθον

라틴어Vulgate,1 post haec egressus ab Athenis venit Corinthum

히브리어Modern,1 אחר כן סר פולוס מאתינס ויבא אל קורנתוס׃

성 경: [행18:1]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바울이…고린도에 이르러 –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이스와 남쪽으로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했다. 이 도시의 동서쪽에는 각각 항구가 있어 전략상 요충지였다. 한편 이 도시는 B.C. 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 6, 7세기경에는 영화와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B.C. 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B.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러 이곳은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바울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 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카이 후론 티나 유다이온 오노마티 아퀼란 폰티콘 토 게네이 프로스파토스 엘렐뤼도타 아포 테스 이탈리아스 카이 프리스킬란 귀나이카 아우투 디아 토 디아테타케나이 클라우디온 코리제스다이 판타스 투스 유다이우스 아포 테스 로메스 프로셀덴 아우토이스

개역개정,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새번역,2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갔는데,

우리말성경,2 그곳에서 그는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본도에서 출생한 사람인데 유대 사람들은 모두 로마를 떠나라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 때문에 얼마 전 자기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가

가톨릭성경,2 거기에서 그는 폰토스 출신의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영어NIV,2 There he met a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who had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Claudius had ordered all the Jews to leave Rome. Paul went to see them,

영어NASB,2 And he found a certain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having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Claudius had commanded all the Jews to leave Rome. He came to them,

영어MSG,2 That is where he discovered Aquila, a Jew born in Pontus, and his wife, Priscilla. They had just arrived from Italy, part of the general expulsion of Jews from Rome ordered by Claudius.

영어NRSV,2 There he found a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who had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Claudius had ordered all Jews to leave Rome. Paul went to see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ευρων τινα ιουδαιον ονοματι ακυλαν ποντικον τω γενει προσφατως εληλυθοτα απο της ιταλιας και πρισκιλλαν γυναικα αυτου δια το διατεταχεναι κλαυδιον χωριζεσθαι παντας τους ιουδαιους εκ της ρωμης προσηλθε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2 et inveniens quendam Iudaeum nomine Aquilam Ponticum genere qui nuper venerat ab Italia et Priscillam uxorem eius eo quod praecepisset Claudius discedere omnes Iudaeos a Roma accessit ad eos

히브리어Modern,2 וימצא יהודי נולד בפונטוס ומשו עקילס אשר בא מקרוב מן איטליא הוא ואשתו פריסקלה מפני אשר צוה קלודיוס את כל היהודים לסור מעיר רומי׃

성 경: [행18:2]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아굴라…브리스길라 –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한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다. 롱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장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3, 18, 19, 26절;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글라우디오 칙령(49년)의 원인인 유대인 폭동의 주동자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브리스길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녀는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남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을 것이다. 본서나 기타 바울 서신서에서도 이들이 바울에 의해 개종된 자들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로 보아 이들은 이미 고린도에 오기전에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Zahn). 누가는 바울을 중심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기때문에 대체로 바울과 관계있을 경우에만 다른 인물들을 기록한다. 따라서 누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다.

󰃨 글라우디오 – 로마 제국의 4대 황제로서 그의 재위 9년(49년 경)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追放令)을 내렸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이 추방령이 내려지게 된 동기는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으로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수에토니우스가 언급한 크레스투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고, 그 소동이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를 두고 충돌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년 후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회심하기도 했다는 본서 28:17 – 29의 기록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R.C.H.Lenski).

카이 디아 토 호모테크논 에이나이 에메넨 파르 아우토이스 카이 에르가제토 에산 가르 스케노포이오이 테 테크네

개역개정,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새번역,3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말성경,3 그들과 함께 일하며 지냈습니다. 바울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영어NIV,3 and because he was a tentmaker as they were, he stayed and worked with them.

영어NASB,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trade, he stayed with them and they were working; for by trade they were tent-makers.

영어MSG,3 Paul moved in with them, and they worked together at their common trade of tentmaking.

영어NRSV,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trade, he stayed with them, and they worked together–by trade they were tentmakers.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δια το ομοτεχνον ειναι εμενεν παρ αυτοις και ειργαζετο ησαν γαρ σκηνοποιοι την τεχνην

라틴어Vulgate,3 et quia eiusdem erat artis manebat apud eos et operabatur erat autem scenofactoriae artis

히브리어Modern,3 ויבא אליהם ויהי בהיתם בני אמנות אחת וישב אתם ויעש מלאכתו ואמנותם עשות יריעות אהלים׃

성 경: [행18:3]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업(業)이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 크고 번창한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없이 새로이 전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생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했다. 바울은 전도 여행중에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20:34;고전 9:1-8;고후 11:7- 2;살전 2:9;살후 3:7-10). 당시 천막은 바울의 출신지인 길리기아의 다소 근방에서 산출되었던 염소의 피륙이나 기타 가죽으로 제조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전통이나 유산을 물려줄 뿐 아니라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 주어 차후에 생계 유지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그런 기술을 어떻게 익히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는 낯선 곳에 당도(當到)하자 그의 기술을 사용하여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천막만드는 사람이나 가죽 기술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물었을 것이고 그런 계기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을 것이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디엘레게토 데 엔 테 쉬나고게 카타 판 삽바톤 에페이덴 테 유다이우스 카이 헬레나스

개역개정,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새번역,4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을 설득하려 하였다.

우리말성경,4 안식일이면 그는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대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성경,4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영어NIV,4 Every Sabbath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영어NASB,4 And he was reasoning in the synagogue every Sabbath and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영어MSG,4 But every Sabbath he was at the meeting place, doing his best to convince both Jews and Greeks about Jesus.

영어NRSV,4 Every sabbath he would argue in the synagogue and would try to convince Jews and Greeks.

헬라어신약Stephanos,4 διελεγετο δε εν τη συναγωγη κατα παν σαββατον επειθεν τε ιουδαιους και ελληνας

라틴어Vulgate,4 ( 놁쓬)

히브리어Modern,4 וידבר בבית הכנסת בכל שבת ושבת ויוכח את היהודים ואת היונים׃

성 경: [행18:4]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안식일마다 – 바울은 평일에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였고 안식일이 되면 으례히 그의 습관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했다. 쟈안(Zahn)의 견해에 따르면 당시 고린도에는 회당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 강론하고…권면하니라 –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는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에 의하여 곳곳에 유대교 회당이 설립되었고 또 그들에 의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구약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서 구약성경을 배우게 된 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이로인해 율법의 조항을 부분적으로 준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회당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며 회당 예배도 참석하였지만 유대교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거나 완전한 개종자들이 되지는 못하였다.그것은 유대교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에 의해 이방 민족을 무시한 데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율법을 배우고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은 유대교에서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대부분의 유대인들로부터 부정한 자들로 여겨져 배척당하곤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한편 이때까지의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그다지 적극적인 형태를취하고 있지 않다. 즉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속히 와서 자신의 사역에 참여할 때까기는 이곳에서의 사역을 어느 정도 크게 확대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사역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의 언급이 없다.

호스 데 카텔돈 아포 테스 마케도니아스 호 테 실라스 카이 호 티모데오스 쉬네이케토 토 로고 호 파울로스 디아마르튀로메노스 토이스 유다이오이스 에이나이 톤 크리스톤 예순

개역개정,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새번역,5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는,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밝혀 증언하였다. / ㉠또는 ‘메시아’

우리말성경,5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오자 바울은 말씀 전하는 데만 전념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

가톨릭성경,5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다.

영어NIV,5 When Silas and Timothy came from Macedonia, Paul devoted himself exclusively to preaching,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was the Christ.

영어NASB,5 But when Silas and Timothy came down from Macedonia, Paul began devoting himself completely to the word, solemnly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was the Christ.

영어MSG,5 When Silas and Timothy arrived from Macedonia, Paul was able to give all his time to preaching and teaching, doing everything he could to persuade the Jews that Jesus was in fact God’s Messiah.

영어NRSV,5 When Silas and Timothy arrived from Macedonia, Paul was occupied with proclaiming the word, testifying to the Jews that the Messiah was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5 ως δε κατηλθον απο της μακεδονιας ο τε σιλας και ο τιμοθεος συνειχετο τω πνευματι ο παυλος διαμαρτυρομενος τοις ιουδαιοις τον χριστον ιησουν

라틴어Vulgate,5 cum venissent autem de Macedonia Silas et Timotheus instabat verbo Paulus testificans Iudaeis esse Christum Iesum

히브리어Modern,5 וכבוא סילא וטימותיוס ממקדוניא היה פולוס נגש ברוח להעיד אל היהודים כי ישוע הוא המשיח׃

성 경: [행18:5]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실라와 디모데가…내려오매 – 마침내 바울이 고대하던 두 명의 사역자가 당도했다. 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거나 아니면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먼저 도착하고 그 후에 실라가 빌립보에서 도착했을 것이다(Lenski).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살전 3:6),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섭섭한 소식도 전하였다(살전 4:13; 5: 11). 바울은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나서 이에 대한 답장을 썼는데 이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혼란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번째 서신인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였다. 한편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다(고후 11:9; 빌 4:]4, 15).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은 이 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 말씀에 붙잡혀 – 실라와 디모데가 온 후 바울의 회당에서의 말씀 증거는 안식일에만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현금덕분으로 장막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말씀 준비에만 몰두했고 또 준비한 말씀을 전하는데만 전력 투구(全力投球)했다. 특히 ‘붙잡혀’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쉬네나케토'(*)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이러한 사역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지속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안티타쏘메논 데 아우톤 카이 블라스페문톤 엨티낰사메노스 타 히마티아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토 하이마 휘몬 에피 텐 케팔렌 휘몬 카다로스 에고 아포 투 뉜 에이스 타 에드네 포류소마이

개역개정,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새번역,6 그러나 유대 사람들이 반대하고 비방하므로, 바울은 그의 ㉡옷에서 먼지를 떨고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멸망을 받으면,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겠습니다.” / ㉡항의하는 표시로

우리말성경,6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바울에게 대들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옷의 먼지를 떨며 단호하게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멸망해도 그것은 여러분들의 책임입니다. 나는 이제 책임이 없습니다. 이제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가겠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영어NIV,6 But when the Jews opposed Paul and became abusive, he shook out his clothes in protest and said to them, “Your blood be on your own heads! I am clear of my responsibility.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영어NASB,6 And when they resisted and blasphemed, he shook out his garments and said to them, “Your blood be upon your own heads! I am clean. From now on I shall go to the Gentiles.”

영어MSG,6 But no such luck. All they did was argue contentiously and contradict him at every turn. Totally exasperated, Paul had finally had it with them and gave it up as a bad job. “Have it your way, then,” he said. “You’ve made your bed; now lie in it. From now on I’m spending my time with the other nations.”

영어NRSV,6 When they opposed and reviled him, in protest he shook the dust from his clothes and said to them, “Your blood be on your own heads! I am innocent.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헬라어신약Stephanos,6 αντιτασσομενων δε αυτων και βλασφημουντων εκτιναξαμενος τα ιματια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το αιμα υμων επι την κεφαλην υμων καθαρος εγω απο του νυν εις τα εθνη πορευσομαι

라틴어Vulgate,6 contradicentibus autem eis et blasphemantibus excutiens vestimenta dixit ad eos sanguis vester super caput vestrum mundus ego ex hoc ad gentes vadam

히브리어Modern,6 ויהי כהמרותם וכגדפם וינער את בגדיו ויאמר אליהם דמכם בראשיכם ואנכי נקי מעתה אלכה לי אל הגוים׃

성 경: [행18:6]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 ‘훼방하거늘’이란 뜻의 헬라어 ‘블라스페문톤'(*)은 ‘신성 모독’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과 대적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신성 모독이었다. 특히 ‘대적하여’를 나타내는 ‘안티타쏘'(*)는 ‘반대편’이라는 뜻의 ‘안티'(*)와 ‘정돈하다’, ‘배열하다’는 뜻의 ‘타쏘'(*)의 합성어로서 유대인들이 바울의 반대 입장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게획적으로 대적하며 방해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와 같은 것이었다(13:46 -52). 바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사악하고 완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서 방향을 바꿔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 옷을 떨어… 너희 피가…돌아갈 것이요 – 성경에서 ‘옷을 떤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엄숙한 맹세’나 또는 ‘저주의 행동’ 등으로 받아들여졌다(느 5:13).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은 이미 비시디아 안디 옥에서 그의 발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을 통하여서도 비춰졌다(13:51). 바울이 이렇게 옷에서 먼지를 떠는 행동은 예수께서 12제자와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을 향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과 유사하다(눅 9:5; 10:11). 이렇게 발이나 옷에서 먼지를 떠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마을에 들어갔다 나오면 으례히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모습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발의 먼지를 떠는 것은 부정한 모든 것을 거룩한 곳인 자신들의 땅에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행동이다. 즉 종교적으로 종죄되었던 이방인들의 영향력을 제하여 버림과 동시에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행동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역이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복음과 무관(無關)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방법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편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라는 바울의 말은 겔 3:18; 33:4, 8 ;삼하 1:16에 나타난 말씀이다. 아울러 이 말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기 위해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면서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마 27:25). 이는 결코 단순한 저주나 악담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자는 죽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또 그 책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씀은 바울이 최선을 다해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으나 유대인들이 이것을 끝내 거부했으므로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자멸을 초래한 것이다.

카이 메타바스 에케이덴 에이셀덴 에이스 오이키안 티노스 오노마티 티티우 유스투 세보메누 톤 데온 후 헤 오이키아 엔 쉬노모루사 텐 쉬나고게

개역개정,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새번역,7 바울은 ㉢거기를 떠나서,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이방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고, 그의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 ㉢회당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디도’

우리말성경,7 그러고 나서 바울은 회당을 떠나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 사람인데 그의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다. 그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영어NIV,7 Then Paul left the synagogue and went next door to the house of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영어NASB,7 And he departed from there and went to the house of a certain man named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whose house was next to the synagogue.

영어MSG,7 He walked out and went to the home of Titius Justus, a God-fearing man who lived right next to the Jews’ meeting place.

영어NRSV,7 Then he left the synagogue and went to the house of a man named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his house was next door to the synagogue.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μεταβας εκειθεν ηλθεν εις οικιαν τινος ονοματι ιουστου σεβομενου τον θεον ου η οικια ην συνομορουσα τη συναγωγη

라틴어Vulgate,7 et migrans inde intravit in domum cuiusdam nomine Titi Iusti colentis Deum cuius domus erat coniuncta synagogae

히브리어Modern,7 וילך משם ויבא אל בית איש ושמו יוסטוס איש ירא אלהים וביתו סמוך לבית הכנסת׃

성 경: [행18:7]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디도 유스도 –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Titus justus)의 집이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 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 준다. 추측건대 그는 B.C. 44년 로마 황제 가이사(Julius caesar)가 고린도를 재건할 때 이곳에 정착했던 로마인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한편 람세이(Ramsay)는, 디도는 그의 둘째 이름이고 유스도는 셋째 이름이며 그의 첫째 이름은 다름 아닌’가이오'(Gaois)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 디도가 롬 16:23의 가이오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전 1:14에서 바울은 그의 고린도 전도 초기에 개인적으로 세례를 준 ‘가이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장소가 되었다.

크리스포스 데 호 아르키쉬나고고스 에피스튜센 토 퀴리오 쉰 홀로 토 오이코 아우투 카이 폴로이 톤 코린디온 아쿠온테스 에피스튜온 카이 에밮티존토

개역개정,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새번역,8 회당장인 그리스보는 그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고린도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믿고 ㉤세례를 받았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8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온 집안이 주를 믿게 됐고 바울의 말을 들은 다른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8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침례를 받았다.

영어NIV,8 Crispus, the synagogue ruler, and his entire household believed in the Lord;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him believed and were baptized.

영어NASB,8 And Crispu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believed in the Lord with all his household,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en they heard were believing and being baptized.

영어MSG,8 But Paul’s efforts with the Jews weren’t a total loss, for Crispus, the meeting-place president, put his trust in the Master. His entire family believed with him. In the course of listening to Paul, a great many Corinthians believed and were baptized.

영어NRSV,8 Crispus, the official of the synagogue, became a believer in the Lord, together with all his household;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Paul became believers and were baptized.

헬라어신약Stephanos,8 κρισπος δε ο αρχισυναγωγος επιστευσεν τω κυριω συν ολω τω οικω αυτου και πολλοι των κορινθιων ακουοντες επιστευον και εβαπτιζοντο

라틴어Vulgate,8 Crispus autem archisynagogus credidit Domino cum omni domo sua et multi Corinthiorum audientes credebant et baptizabantur

히브리어Modern,8 וקריספוס ראש הכנסת האמין באדון הוא וכל ביתו וגם קורנתים רבים בשמעם האמינו ויטבלו׃

성 경: [행18:8]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회당장 그리스보 –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하다. 여기서 그리스보가 고린도 선교 사역의 최초의 열매처럼 보이지만 고전 16: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렇지만 고린도에서 바울이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다(고전 1:14). 바울이 직접 그리스보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그가 회당장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일반 개심자들에게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은 이유는 그 사역을 이미 실라와 디모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전 1:14 – 17). 아무튼 그리스보의 개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 수다한 고린도 사람 – 이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받아들인 이방인 개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헬라인들과 로마인들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누가는 유대인들이 이방지역에 거주한다고 해서 그들을 ‘고린도 사람들’이라는 형태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도 슷자상으로 많지 않으므로 ‘수다한’이란 의미 속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로마인들이 고린도에 거주했고 많은 헬라인들도 경제적인 것을 비롯하여 기타 이유들로 인해 고린도에 많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또 그들로부터 많은 결실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때의 개심자들로는 유스도와 그리스보를 제외하고도 에배네도와 스데바나(롬 16:5; 고전16:15) 그리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고전 16:17) 등 다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고린도 서신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는 대개가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렌스키(Lenski)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게바의 추종 세력들(고전 1:12)은 이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 원문상 이 부분은 현재 분사와 미완료 과거형으로 구성된 구절로서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바울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으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인 부후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은 공동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펜 데 호 퀴리오스 엔 뉰티 디 호라마토스 토 파울로 메 포부 알라 랄레이 카이 메 시오페세스

개역개정,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새번역,9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우리말성경,9 어느 날 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마라. 잠잠하지 말고 말하여라.

가톨릭성경,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영어NIV,9 One night the Lord spoke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영어NASB,9 And the Lord said to Paul in the night by a vision, “Do not be afraid any longer, but go on speaking and do not be silent;

영어MSG,9 One night the Master spoke to Paul in a dream: “Keep it up, and don’t let anyone intimidate or silence you.

영어NRSV,9 One night the Lord said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but speak and do not be silent;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ιπεν δε ο κυριος δι οραματος εν νυκτι τω παυλω μη φοβου αλλα λαλει και μη σιωπησης

라틴어Vulgate,9 dixit autem Dominus nocte per visionem Paulo noli timere sed loquere et ne taceas

히브리어Modern,9 ודבר האדון היה אל פולוס במחזה בלילה לאמר אל תירא כי אם דבר ואל תחשה׃

성 경: [행18:9]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주께서 환상 가운데 – 바울은 이미 여러차레에 걸쳐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다메섹(9:4)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 때를 위시하여, 드로아(16:9), 예루살렘(22:17) 등지에서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나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는 차후에도 환상 가운이 예수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23:11;27: 23). 이렇게 때때로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는 바울이 그의 사역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고린도의 유대인들 회당장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급 인사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보고 바울에 대해 보복(報復)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바울은 그로 인해 큰 동요가 생기기 전에, 그리고 유대인들이 핍박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기 전에 조용히 고린도를 떠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16:19-19;17:13, 14). 바울은 고전 2:3에서, 자신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두러워하며 떨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심령이 위축되어 영적 위로와 격려가 꼭 필요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말씀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주신 것과 유사하다(출 3:12; 신 31:6; 수 1:5, 9: 사 41:10;43:5; 렘 1: 8).

디오티 에고 에이미 메타 수 카이 오데이스 에피데세타이 소이 투 카코사이 세 디오티 라오스 에스티 모이 폴뤼스 엔 테 폴레이 타우테

개역개정,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새번역,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우리말성경,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가톨릭성경,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영어NIV,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attack and harm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영어NASB,10 for I am with you, and no man will attack you in order to harm you, for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

영어MSG,10 No matter what happens, I’m with you and no one is going to be able to hurt you. You have no idea how many people I have on my side in this city.”

영어NRSV,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will lay a hand on you to harm you, for there are many in this city who are my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0 διοτι εγω ειμι μετα σου και ουδεις επιθησεται σοι του κακωσαι σε διοτι λαος εστιν μοι πολυς εν τη πολει ταυτη

라틴어Vulgate,10 propter quod ego sum tecum et nemo adponetur tibi ut noceat te quoniam populus est mihi multus in hac civitate

히브리어Modern,10 כי עמך אנכי ואיש אל יגע בך להרע לך כי גוי גדול לי בעיר הזאת׃

성 경: [행18:10]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네가 너와 함께 있으매. –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숭천하실 때 이 땅에 있는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다(마28:20).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의한 약속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바울이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오랜 선교 여행과 지속적인 말씀 전파 그리고 지속되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위협으로 지치고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약속을 바울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심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

󰃨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리가 없을 것이니 – 이는 앞으로 바울이 전혀 박해를 받지 않거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앞으로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며 고난도 당할 것이지만 그때마다 그와 함께 예수께서 계시사 그 어려운 상황을 넉넋히 극복하게 할 것이며 아무런 허도 받지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12-17절). 내백성이 많음이라 – 여기서 이르는 백성은 곧 바울의 복음 증거로 구원허야 할 많은 고린도의 사람들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시기로 택정한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 성내에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의 권속(券屬)으로 삼으셔서 그의 아들이 되게 할 것을 예정하셨다(롬 8:29; 엡 1:5).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과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엡 1:4 – 11;2:8, 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예정을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예정하셔서 구원하신 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개개인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결단과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바로 이 고린도 성내에는 아직까지 바울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피택된 백성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에카디센 데 에나이우톤 카이 메나스 엨스 디다스콘 엔 아우토이스 톤 로곤 투 데우

개역개정,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새번역,11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렀다.

우리말성경,11 그래서 바울은 그곳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영어NIV,11 So Paul stayed for a year and a half, teaching them the word of God.

영어NASB,11 And he settled there a year and six months, teaching the word of God among them.

영어MSG,11 That was all he needed to stick it out. He stayed another year and a half, faithfully teaching the Word of God to the Corinthians.

영어NRSV,11 He stayed there a year and six months, teaching the word of God among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1 εκαθισεν τε ενιαυτον και μηνας εξ διδασκων εν αυτοις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1 sedit autem annum et sex menses docens apud eos verbum Dei

히브리어Modern,11 וישב שם שנה וששה חדשים וילמד בהם את דבר האלהים׃

성 경: [행18:11]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고린도 전도]

󰃨 일 년 육개월을 유하며 – 1년 6개월의 기간에 대해서나 학자 간에 다소 의견에 차이가 있다. 즉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해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말한다는 의견(Zahn, Haenchen, Longenecker)과 바울이 환상을 경험한 후 고린도에 머문 기간만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다(Robertson, Whitelaw). 여기에서 어느 것이 정확한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적어도 1년 6개월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린도에 머물며 참으로 많은 사역을 수행했다. 한편 롬 16:1과 고후 1:1을 살펴보면 고린도와 인접한 아가야와 겐그레아 항구까지 복음이 전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바울이 그러한 지방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추측할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바울은 주로 고린도 내에서 활동하였고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인접한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추측이 훨씬 더 타당하다(Lenski). 특히 ‘유하며’의 헬라어 ‘에카디세'(*) ‘머물다’, ‘거주하다’는 뜻으로 바울이 고린도를 벗어나지 않고 전도 사역을 지속했음을 시사한다.

󰃨 하나님의 가르치니라 – 바울이 고린도 성 내에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다. 바울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관한 것이었다(17:31). 이 사실에 근거해 볼 때 화목을 이루신 예수를 전파했고 또 그를 믿는 믿음에 관해 가르쳤을 것이다.

갈리오노스 데 안뒤파투 온토스 테스 아카이아스 카테페스테산 호모뒤마돈 호이 유다이오이 토 파울로 카이 에가곤 아우톤 에피 토 베마

개역개정,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새번역,12 그러나 갈리오가 아가야 주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 사람이 한패가 되어 바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우리말성경,12 갈리오가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었을 때 유대 사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바울을 잡아 법정으로 끌고 가

가톨릭성경,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영어NIV,12 While 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the Jews made a united attack on Paul and brought him into court.

영어NASB,12 But while 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the Jews with one accord rose up against Paul and brought him before the judgment seat,

영어MSG,12 But when Gallio was governor of Achaia province, the Jews got up a campaign against Paul, hauled him into court,

영어NRSV,12 But when 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the Jews made a united attack on Paul and brought him before the tribunal.

헬라어신약Stephanos,12 γαλλιωνος δε ανθυπατευοντος της αχαιας κατεπεστησαν ομοθυμαδον οι ιουδαιοι τω παυλω και ηγαγον αυτον επι το βημα

라틴어Vulgate,12 Gallione autem proconsule Achaiae insurrexerunt uno animo Iudaei in Paulum et adduxerunt eum ad tribunal

히브리어Modern,12 ויהי בהיות גליון שר מדינת אכיא ויקומו היהודים כלם וחדו על פולוס ויביאהו אל כסא המשפט׃

성 경: [행18:12]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되었을 때 – 갈리오는 본명이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로서 코르도바 츨신이고 스페인의 뛰어난 수사학자이며 갑부인 마르쿠스 안네우스 세네카(M.A. Seneca:B.C.50 – A.D. 40)의 아들이며, 스토아 철학자, 정치가, 희곡작가인 루키우스 안네우세네카(B.C. 4-A.D. 65)의 동생이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통치 기간(A.D.41-54) 중에 그는 로마로 가서 로마의 수사학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었으며 A.D.51년 7월 1일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다. A.D. 65년 네로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그는 네로로부터 자살할 것을 강요받고 그로 인해 죽게 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갈리오가 부임한 아가야는 B.C.27 15년까지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있고 그후 황제령이 되었다가 다시 A.D. 44년부터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이 당시 아가야는 지방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 유대인이…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 바울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 약 8, 9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선교사역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A.D.50 년 가을부터 A.D. 51년 7월 초순까지). 이 기간동안의 바울의 사역에 대해 유대인들은 많은 불만이 있었던 듯하다. 그 즈음에 총독이 새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를 봉쇄하고 새로운 총독도 시험해 보기 위해서 게략을 꾸몄던 것같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을 총독에게 데려가 고소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미 빌립보에서 바울을 관원들에게 데려가 고소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16:19 ). 그리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며 바울을 잡고자 했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한다(17:51). 한편 유대인들이 총독이 바뀌는 상황을 틈타 바울을 고소한 것은 때우 교묘하다. 아마도 이들은 임지(任地)로 처음 부임하는 고관이면 으례히 그 지방 주민들로부터 환심을 얻고자 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새로운 총독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레곤테스 호티 파라 톤 노몬 아나페이데이 후토스 투스 안드로푸스 세베스다이 톤 데온

개역개정,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새번역,13 “이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3 “이 사람이 율법에 어긋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라고 고소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13 “This man,” they charged, “is persuading the people to worship God in ways contrary to the law.”

영어NASB,13 saying, “This man persuades men to worship God contrary to the law.”

영어MSG,13 and filed chcrges: “This man is seducing people into acts of worship that are illegal.”

영어NRSV,13 They said, “This man is persuading people to worship God in ways that are contrary to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13 λεγοντες οτι παρα τον νομον ουτος αναπειθει τους ανθρωπους σεβεσθαι τον θεον

라틴어Vulgate,13 dicentes quia contra legem hic persuadet hominibus colere Deum

히브리어Modern,13 ויאמרו האיש הזה מפתה את בני האדם לעבד את אלהים בלא כתורה׃

성 경: [행18:13]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율법을 어기어…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바울이 불법 종교(religio illicita)를 전한다는 것이다. 로마법상 로마 정부로부터 공인되지 않은 종교를 전하는 것은 불법 행위였다. 그런데 유대교는 당국으로부터 승인된 공인 종교(religio illicita)였다. 따라서 유대교는 자유로운 예배행위를 허유받았고 나아가 로마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신들과는 달리 공인되지 않은 불법 종교를 로마의 법을 어기면서 전하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2) 바울이 로마법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형태의 종교를 전파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3) 바울이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의 칙령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 Caligula)의 경우는 자신을 살아있는 상(像)을 예루살렘 성전안에 둠으로써 유대인들이 깊은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글라우디오가 횡제로 즉위하면서 그는 칙령을 발표하며 유대인들에게 로마 제국 내의 어느 곳에서든지 그들의 관습과 율법을 자유릅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관습을 간섭하고 훼방하므로 결국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이들 견해증 14, 15절에 언급된 갈리오의 말을 염두에 둘 때 첫번째 견해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멜론토스 데 투 파울루 아노이게인 토 스토마 에이펜 호 갈리온 프로스 투스 유다이우스 에이 멘 엔 아디케마 티 에 라디우르게마 포네론 호 유다이오이 카타 로곤 안 아네스코멘 휘몬

개역개정,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새번역,14 바울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 사람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 여러분, 사건이 무슨 범죄나 악행에 관련된 일이면, 내가 여러분의 송사를 들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우리말성경,14 바울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크든 작든 무슨 죄가 있어 너희 유대 사람들이 불평한다면 내가 들어줄 만하오.

가톨릭성경,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영어NIV,14 Just as Paul was about to speak, Gallio said to the Jews, “If you Jews were making a complaint about some misdemeanor or serious crime, it would be reasonable for me to listen to you.

영어NASB,14 But when Paul was about to open his mouth, Gallio said to the Jews, “If it were a matter of wrong or of vicious crime, O Jews, it would be reasonable for me to put up with you;

영어MSG,14 Just as Paul was about to defend himself, Gallio interrupted and said to the Jews, “If this was a matter of criminal conduct, I would gladly hear you out.

영어NRSV,14 Just as Paul was about to speak, Gallio said to the Jews, “If it were a matter of crime or serious villainy, I would be justified in accepting the complaint of you Jew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μελλοντος δε του παυλου ανοιγειν το στομα ειπεν ο γαλλιων προς τους ιουδαιους ει μεν ουν ην αδικημα τι η ραδιουργημα πονηρον ω ιουδαιοι κατα λογον αν ηνεσχομην υμων

라틴어Vulgate,14 incipiente autem Paulo aperire os dixit Gallio ad Iudaeos si quidem esset iniquum aliquid aut facinus pessimum o viri iudaei recte vos sustinerem

히브리어Modern,14 ויהי אך בקש פולוס לפתח את פיו וגליון אמר אל היהודים לאמר אם היה דבר פשע או מעשה נבלה כי עתה נשאתי ושמעתי אתכם היהודים כמשפט׃

성 경: [행18:14]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 로마법상 재판은 원고(原告)의 고소와 피고(被告)의 변호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는 마주 서서 재판장을 향해 각자가 자기 주장을 하게된다. 바울도 역시 원고의 고소 내용에 따라 자신을 변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갈리오의 변호 승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갈리오가 이 사건 자체를 기각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 부정한 말이나 괴악한 행동 – 이는 갈리오가 재판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나타낸다.

󰃨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 갈리오가 갖고 있는 법적인 권한이 제시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의 고소가 법정에서의 판결이 필요한 믿.형사상의 문제라면, 갈리오는 성심껏 판결을 내려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에이 데 제테마타 에스틴 페리 로구 카이 오노마톤 카이 노무 투 칻 휘마스 옾세스데 아우토이 크리테스 에고 투톤 우 불로마이 에이나이

개역개정,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새번역,15 그러나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여러분의 율법에 관련된 것이면, 여러분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이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우리말성경,15 그러나 그것이 언어와 명칭과 당신네 유대 사람들만의 율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당신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자가 될 수 없소.”

가톨릭성경,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영어NIV,15 But since it involves questions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settle the matter yourselves. I will not be a judge of such things.”

영어NASB,15 but if there are questions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 look after it yourselves; I am unwilling to be a judge of these matters. ”

영어MSG,15 But it sounds to me like one more Jewish squabble, another of your endless hairsplitting quarrels over religion. Take care of it on your own time. I can’t be bothered with this nonsense,”

영어NRSV,15 but since it is a matter of questions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 see to it yourselves; I do not wish to be a judge of these matter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ει δε ζητημα εστιν περι λογου και ονοματων και νομου του καθ υμας οψεσθε αυτοι κριτης γαρ εγω τουτων ου βουλομαι ειναι

라틴어Vulgate,15 si vero quaestiones sunt de verbo et nominibus et legis vestrae vos ipsi videritis iudex ego horum nolo esse

히브리어Modern,15 אבל אם היא שאלה על מלין ושמות והדת שלכם ראו אתם ואני אין רצוני להיות שפט על דברים כאלה׃

성 경: [행18:15]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 갈리오는 이 고소 사건이 민.형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 자체 내의 ‘언어와 명칭과 그들의 법’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언어’는 곧 ‘말씀'(*, 로고스)을 나타내는 것이고 ‘명칭’은 메시야와 관련된 ‘이름'(*, 오노마타)을 뜻하는 것이며 ‘법’은 곧 ‘율법'(*, 노모스)을 나타낸다. 따라서 갈리오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볼때 이 사건은 자신이 재판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왜냐하면 총독이 해야 할 일은 로마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관계 있는 민.형사상의 문제를 재판하는 것이지 유대의 종교 문제를 중재(仲裁)해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리오는 개인적으로 민.형사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도 매우 번거롭고 성가셨을 것이므로 그는 그의 책임 영역 밖의 종교 문제까지 중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갈리오는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문제를 유대인들 스스로 처리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종결지어 버린다. 한편 이는 A.D. 49년 경에 있었던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의 폭동을 갈리오가 염두에 두어 그러한 폭동이 고린도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갈리오는 그의 재임 기간 초기부터 이러한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하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카이 아펠라센 아우투스 아포 투 베마토스

개역개정,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새번역,16 그래서 총독은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냈다.

우리말성경,16 그리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영어NIV,16 So he had them ejected from the court.

영어NASB,16 And he drove them away from the judgment seat.

영어MSG,16 and he cleared them out of the courtroom.

영어NRSV,16 And he dismissed them from the tribunal.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απηλασεν αυτους απο του βηματος

라틴어Vulgate,16 et minavit eos a tribunali

히브리어Modern,16 ויגרש אתם מלפני כסא המשפט׃

성 경: [행18:16]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저희를…쫓아내니 – 갈리오의 이러한 결정이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해서 내려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마게도냐 선교 당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었다(14:5, 19;16:19;17:5;고후 11:24-27). 따라서 만일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억지 고소 내용대로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면 이 전례를 따라 각 지역의 행정관들은 동일하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고 바울은 무수한 어려움 속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그 터무니없는 고소를 물리쳤다. 갈리오의 명망과 지위를 고려할 때, 이 결정은 훗날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하였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순탄케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Richard N.Longenecker). 한편 유대인들은 갈리오의 기각(棄却) 선고를 듣고서도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해서든 총독을 설득시키려고 계속 남아 같은 이 야기를 반복했을 것이나 총독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갈리오가 부하들을 시켜 그들을 쫓아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Lenski,Zahn).

에필라보메노이 데 판테스 소스데넨 톤 아르키쉬나고곤 에튚톤 엠프로스덴 투 베마토스 카이 우덴 투톤 토 갈리오니 에멜렌

개역개정,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새번역,17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다가 재판정 앞에서 때렸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에 조금도 참견하지 않았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모든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말성경,17 그러자 그들 모두는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 법정 앞에서 그를 마구 때렸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영어NIV,17 Then they all turned on Sosthenes the synagogue ruler and beat him in front of the court. But Gallio showed no concern whatever.

영어NASB,17 And they all took hold of Sosthene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and began beating him in front of the judgment seat. And Gallio was not concerned about any of these things.

영어MSG,17 Now the street rabble turned on Sosthenes, the new meeting-place president, and beat him up in plain sight of the court. Gallio didn’t raise a finger. He could not have cared less.

영어NRSV,17 Then all of them seized Sosthenes, the official of the synagogue, and beat him in front of the tribunal. But Gallio paid no attention to any of these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επιλαβομενοι δε παντες οι ελληνες σωσθενην τον αρχισυναγωγον ετυπτον εμπροσθεν του βηματος και ουδεν τουτων τω γαλλιωνι εμελεν

라틴어Vulgate,17 adprehendentes autem omnes Sosthenen principem synagogae percutiebant ante tribunal et nihil eorum Gallioni curae erat

히브리어Modern,17 ויאחזו כל היונים את סוסתנים ראש הכנסת ויכוהו לפני כסא המשפט וגליון לא שת לבו גם לזאת׃

성 경: [행18:17]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유대인들의 핍박]

󰃨 회당장 소스데네를…때리되 – 당시 그리이스-로마 세계에서는 반(反)유대주의 감정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갈리오도 이러한 반유대주의 감정에서 예외가 아니었고 이 재판정에서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갈리오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군중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갈리오 앞으로 끌고가 때리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쟈안(Zahn)과 헨헨(Haenchen)은 그 재판에 실망한 유대인들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롱게네커(Longenecker)는 이 사람들이 헬라 군중들이라고 본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고 총독이 유대인들을 냉대하는 것을 보자 반유대적 감정을 품고 있던 헬라인들이 책임자격인 회당장을 무고죄(誣告罪)로 구타한 것 같다. 한편 앞서 고린도에는 하나의 회당이 있고 그 회당장이 그리스보(8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회당장이 소스데네로 나와 있다. 그러나 다소 규모가 큰 회당에는 때때로 한 사람 이상의 회당 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니면 소스데네는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게 되자 그의 후임으로 회당장 직분을 맡았을 수도 있다.

호 데 파울로스 에티 프로스메이나스 헤메라스 히카나스 토이스 아델포이스 아포탘사메노스 엨세플레이 에이스 텐 쉬리안 카이 쉰 아우토 프리스킬라 카이 아퀼라스 케이라메노스 엔 켕크레아이스 텐 케팔렌 에이켄 가르 유켄

개역개정,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새번역,18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무른 뒤에, ㉦신도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떠났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동행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서원한 것이 있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18 바울은 얼마 동안 고린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게 됐는데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동행했습니다. 배를 타고 출항하기에 앞서 바울은 전에 서원했던 것이 있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가톨릭성경,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영어NIV,18 Paul stayed on in Corinth for some time. Then he left the brothers and sailed for Syria, accompanied by Priscilla and Aquila. Before he sailed, he had his hair cut off at Cenchrea because of a vow he had taken.

영어NASB,18 And Paul, having remained many days longer, took leave of the brethren and put out to sea for Syria, and with him were Priscilla and Aquila. In Cenchrea he had his hair cut, for he was keeping a vow.

영어MSG,18 Paul stayed a while longer in Corinth, but then it was time to take leave of his friends. Saying his good-byes, he sailed for Syria, Priscilla and Aquila with him. Before boarding the ship in the harbor town of Cenchrea, he had his head shaved as part of a vow he had taken.

영어NRSV,18 After staying there for a considerable time, Paul said farewell to the believers and sailed for Syria, accompanied by Priscilla and Aquila. At Cenchreae he had his hair cut, for he was under a vow.

헬라어신약Stephanos,18 ο δε παυλος ετι προσμεινας ημερας ικανας τοις αδελφοις αποταξαμενος εξεπλει εις την συριαν και συν αυτω πρισκιλλα και ακυλας κειραμενος την κεφαλην εν κεγχρεαις ειχεν γαρ ευχην

라틴어Vulgate,18 Paulus vero cum adhuc sustinuisset dies multos fratribus valefaciens navigavit Syriam et cum eo Priscilla et Aquila qui sibi totonderat in Cencris caput habebat enim votum

히브리어Modern,18 ופולוס ישב שם עוד ימים רבים ויפטר מן האחים וירד באניה ללכת אל סוריא ואתו פריסקלה ועקילס ויגלח את ראשו בקנכרי כי נדר עליו׃

성 경: [행18:18]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안디옥으로의 귀환]

󰃨 더 여러 날 유하다가 – 바울의 전도여행을 살펴보면 바울은 항상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험한 상황들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곤 하였다(14:6, 20;16:40;17:10;18:;19:8;20:1). 고린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여기서 ‘여러 날’ 더 머문 것이 앞서 11절에서 언급된 1년 6개월의 기간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추가되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런데 바울이 갈리오의 뜻하지 않은 옹호를 받게 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바울은 고린도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한 듯하다(I.H. Marshall).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기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26절;롬 16:3;딤후4:19). 이는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브리스길라의 신앙이 아굴라의 신앙보다 더 신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바울의 선교에 매우 헌신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이었다(롬 16:4).

󰃨 바울이…게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의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 일정 기간의 나실인의 서원(Nazurute viw, 21:17-26 주제 강해 ‘나실인 제도’ 참조)을 하였으며 이제 그 기간이 다 지나갔음을 보여준다(민 6:2-21). 원래 이러한 서원(誓願)은 예루살렘에서 온전히 마감되는데 그곳에서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다(민 6:13-21). 여기서 바울이 유대의 옛 관습을 좇아 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바울은 스스로 자기자신을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고(고후 11:22) 또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맺음할 때에도 그는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23:6). 한편 혹자(Grotius, Meyer, ieseler)는 머리를 깎은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아굴라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는 거의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또 저자 누가가 아굴라 같은 인물에 관해서까지 그렇게 세세한 언급을 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한편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으로 고린도의 외항(外港)이며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도시에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며 전도하여 거둔 열매인 여집사 뵈뵈가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다(롬 16:1, 2).

카텐테산 데 에이스 에페손 카케이누스 카텔리펜 아우투 아우토스 데 에이셀돈 에이스 텐 쉬나고겐 디엘렠사토 토이스 유다이오이스

개역개정,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새번역,19 그 일행은 에베소에 이르렀다. 바울은 그 두 사람을 떼어놓고, 자기 혼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 사람과 토론하였다.

우리말성경,19 그들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그곳에 남겨 두고 혼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들은 에페소에 도착하였다. 바오로는 그 두 사람을 그곳에 따로 남겨 두고 혼자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하였다.

영어NIV,19 They arrived at Ephesus, where Paul left Priscilla and Aquila. He himself went into the synagogue and reasoned with the Jews.

영어NASB,19 And they came to Ephesus, and he left them there. Now he himself entered the synagogue and reasoned with the Jews.

영어MSG,19 They landed in Ephesus, where Priscilla and Aquila got off and stayed. Paul left the ship briefly to go to the meeting place and preach to the Jews.

영어NRSV,19 When they reached Ephesus, he left them there, but first he himself went into the synagogue and had a discussion with the Jew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κατηντησεν δε εις εφεσον κακεινους κατελιπεν αυτου αυτος δε εισελθων εις την συναγωγην διελεχθη τοις ιουδαιοις

라틴어Vulgate,19 devenitque Ephesum et illos ibi reliquit ipse vero ingressus synagogam disputavit cum Iudaeis

히브리어Modern,19 ויבאו אל אפסוס ויעזב אתם שם והוא הלך לבית הכנסת וידבר עם היהודים׃

성 경: [행18:19]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안디옥으로의 귀환]

󰃨 에베소에 와서 –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관할 지역의 수도이며 상업 중심지였다. 아울러 이 도시는 원로원과 시의회를 갖춘 자유헬라 도시였다. 이곳에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은 고대의 칠대 불가사의(七代不可思議)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A.D. 262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는 의미인 듯하며 이들의 체류 기간은 4, 5년 정도로 짐작된다. 이들은 이곳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대접하며 바울의 서신을 통해(고전 16:19) 고린도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데메드리오의 공격시에(19:23-41) 이곳에 있었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으며(롬 16:4) A.D. 54년(혹 56년) 글라우디오 횡제가 죽은 후 로마로 돌아갔다(롬 16:3). 한편 이 때의 실라와 디고테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계속 머물며 그 곳의 사역을 감당했거나 아니면 바울과 계속 동행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에베소에 돌아왔을 것이다(Longenecker).

󰃨 회당에 들어가서…변론하니 – 바울이 낯선 땅에 들어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회당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그의 선교 방법이었다(4절;13:5, 14;17:1, 10, 17:19:8). 그런데 바울이 회당을 찾은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회당을 찾으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꼭 안식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또는 토론과 담소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회당에 모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회당을 찾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로토톤 데 아우톤 에피 플레이오나 크로논 메이나이 우크 에페뉴센

개역개정,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새번역,20 그들은 바울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였으나, 바울은 거절하고,

우리말성경,20 좀 더 머물러 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바울은 뿌리쳤습니다.

가톨릭성경,20 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기를 청하였지만 그는 승낙하지 않았다.

영어NIV,20 When they asked him to spend more time with them, he declined.

영어NASB,20 And when they asked him to stay for a longer time, he did not consent,

영어MSG,20 They wanted him to stay longer, but he said he couldn’t.

영어NRSV,20 When they asked him to stay longer, he declined;

헬라어신약Stephanos,20 ερωτωντων δε αυτων επι πλειονα χρονον μειναι παρ αυτοις ουκ επενευσεν

라틴어Vulgate,20 rogantibus autem eis ut ampliori tempore maneret non consensit

히브리어Modern,20 ויבקשו ממנו להאריך ימי שבתו אתם ולא אבה׃

성 경: [행18:20]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안디옥으로의 귀환]

󰃨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매우 전망이 좋았고 사람들도 호의적이었다. 바울의 설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에베소사람들이 바울의 체류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한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가 왜 이렇게 여행을 서둘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21절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알라 아포탘사메노스 카이 에이폰 팔린 아나캄프소 프로스 휘마스 투 데우 델론토스 아네크데 아포 테스 에페수

개역개정,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새번역,21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났다.

우리말성경,21 그러나 그는 떠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 인사를 한 뒤,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났다.

영어NIV,21 But as he left, he promised, “I will come back if it is God’s will.” Then he set sail from Ephesus.

영어NASB,21 but taking leave of them and saying, “I will return to you again if God wills,” he set sail from Ephesus.

영어MSG,21 But after saying good-bye, he promised, “I’ll be back, God willing.” From Ephesus

영어NRSV,21 but on taking leave of them, he said, “I will return to you, if God wills.” Then he set sail from Ephesus.

헬라어신약Stephanos,21 αλλ απεταξατο αυτοις ειπων δει με παντως την εορτην την ερχομενην ποιησαι εις ιεροσολυμα παλιν δε ανακαμψω προς υμας του θεου θελοντος και ανηχθη απο της εφεσου

라틴어Vulgate,21 sed valefaciens et dicens iterum revertar ad vos Deo volente profectus est ab Epheso

히브리어Modern,21 כי אם נפטר מהם באמרו מחיב אני לחג את החג הבא בירושלים ואחרי כן אשובה אליכם אם ירצה יהוה וילך לו באניה מן אפסוס׃

성 경: [행18:21]

주제1: [제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안디옥으로의 귀환]

󰃨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바울 자신도 어느 정도 에베소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서의 아쉬움을 남긴 채 에베소의 선교 전망과 이곳에 뿌린 씨앗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바울이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22절)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비잔틴 사본(Byzantine Text)에는 본 구절에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절기를 지키야 하리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본들의 구절을 참고해 보면 바울은 아마도 유월절 내지는 오순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서둘러 가려고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의 성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3.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전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을 것이다(18절;21:26).

카이 카텔돈 에이스 카이사레이안 아나바스 카이 아스파사메노스 텐 엨클레시안 카테베 에이스 안티오케이안

개역개정,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새번역,22 바울은 가이사랴에 내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문안한 뒤에, 안디옥으로 내려갔다. / ㉧그, ‘올라가’

우리말성경,22 그는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올라가 인사한 뒤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

가톨릭성경,22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

영어NIV,22 When he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and greeted the church and then went down to Antioch.

영어NASB,22 And when he had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and greeted the church, and went down to Antioch.

영어MSG,22 he sailed to Caesarea. He greeted the assembly of Christians there, and then went on to Antioch, completing the journey.

영어NRSV,22 When he had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to Jerusalem and greeted the church, and then went down to Antioch.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κατελθων εις καισαρειαν αναβας και ασπασαμενος την εκκλησιαν κατεβη εις αντιοχειαν

라틴어Vulgate,22 et descendens Caesaream ascendit et salutavit ecclesiam et descendit Antiochiam

히브리어Modern,22 ויבא אל קסרין ויעל וישאל לשלום הקהלה וירד אל אנטיוכיא׃

성 경: [행18:22]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안디옥으로의 귀환]

󰃨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탄 배가 수리아 안디옥의 항구 실루기아(Seieucia)에 정박하고자 했으나 강한 북동풍이 봄철 풍향 사정 때문에 쉬운 항로를 택하여 그곳보다 약 400KM 남쪽에 있는 가이사랴항에 상륙하였다고 주장한다(Haenchen).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풍향 사정이 아니었다면 바울이 얼마 후면 곧바로 다시 돌아갈 안디옥에서 무려 400KM나 떨어진 가이사랴에 굳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둔 것이고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목적(21절 주석 참조)을 간과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한편 가이사랴는 헤룻 대왕 이후 예루살렘의 항구 역할을 해왔다.

󰃨 올라가…내려가서 – 어떤 학자들(Knopf, baurnfeind)은 본 구절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성도들의 안부를 물어보려고 항구에서 가이사랴 성내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랴 항구까지 온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l.H.Marshall).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104KM 떨어겨 있었으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사실 팔레스틴의 지형상 헤브론쪽의 방향을 제외하고난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서든지 윗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헬라어 원문에서 올라가다’를 뜻하는 ‘아나바이노'(*)는 뜻의 ‘카타바이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에 덧붙여서 ‘교회라는 뜻의 헬라어 ‘여클레시아(*)라는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더욱 더 확증해 주고 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으며 이번이 그중 4번째였다(9:26;11:30;15:4 ;21:17). 그리고 세차례에 걸친 바울의 선교 여행은 모두 예루살렘 방문으로 마감되었다고 본다(본절:15:4;21:15).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두번째 선교 여행의 결과를 보고하고 이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결속(結速)올 다졌을 것이다. 아울러 축제에 참석하여 30일간의 결례기간을 가진 후 성전때 올라가 그의 서원대로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방문 목적이 끌나자 그의 이방 선교의 전도 기지인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0KM 지점에 있었다.

카이 포이에사스 크로논 티나 엨셀덴 디에르코메노스 카뎈세스 텐 갈라티켄 코란 카이 프뤼기안 에피스테리존 판타스 투스 마데타스

개역개정,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새번역,23 바울은 얼마동안 거기에 있다가, 그 곳을 떠나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차례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신도를 굳세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3 안디옥에서 얼마 동안 지내던 바울은 그곳을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두루 돌며 모든 제자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23 바오로는 그곳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영어NIV,23 After spending some time in Antioch, Paul set out from there and traveled from place to place throughout the region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ll the disciples.

영어NASB,23 And having spent some time there, he departed and passed successively through the Galatian region and Phrygia, strengthening all the disciples.

영어MSG,23 After spending a considerable time with the Antioch Christians, Paul set off again for Galatia and Phrygia, retracing his old tracks, one town after another, putting fresh heart into the disciples.

영어NRSV,23 After spending some time there he departed and went from place to place through the region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ll the disciples.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ποιησας χρονον τινα εξηλθεν διερχομενος καθεξης την γαλατικην χωραν και φρυγιαν επιστηριζων παντας τους μαθητας

라틴어Vulgate,23 et facto ibi aliquanto tempore profectus est perambulans ex ordine galaticam regionem et Frygiam confirmans omnes discipulos

히브리어Modern,23 וישב שם ימים אחדים וילך למסעיו ויעבר בארץ גלטיא ופרוגיא ויחזק את כל התלמידים׃

성 경: [행18:23]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아볼로의 사역]

󰃨 얼마 있다가 –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 얼마 동안 체류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롱게네커(Longenecker)는 이 기간 52년 여름부터 53년 봄까지로 추정한다. 이 기간동안 그는 두 차례의 선교 여행을 돌아보며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숙의(孰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간 여독을 풀면서 3차전도 여행에 대한 게획을 세우며 준비하였을 것이다.

󰃨 떠나 – 누가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제1차나 2차 전도 여행과는 달리 바나바나 실라는 데리고 갔다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바울이 이번 여행을 홀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 갈리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굳게 하니라 – 이 지역은 아마도 브루기아 방언과 겔틱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인 갈라디아시 브루기아 지역이나 남부 갈라디아의 어떤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16:1-6). 바울은 이러한 지역을 다니면서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제자’들이 된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의 거짓 교훈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서도록 격려하며 위로했다.

유다이오스 데 티스 아폴로스 오노마티 알렠산드류스 토 게네이 아네르 로기오스 카텐테센 에이스 에페손 뒤나토스 온 엔 타이스 그라파이스

개역개정,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새번역,24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에 왔다.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우리말성경,24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로 왔습니다. 그는 학식이 많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영어NIV,24 Meanwhile a Jew named Apollos, a native of Alexandria, came to Ephesus. He was a learned man, with a thorough knowledge of the Scriptures.

영어NASB,24 Now a certain Jew named Apollos, an Alexandrian by birth, an eloquent man, came to Ephesus; and he was mighty in the Scriptures.

영어MSG,24 A man named Apollos came to Ephesus. He was a Jew, born in Alexandria, Egypt, and a terrific speaker, eloquent and powerful in his preaching of the Scriptures.

영어NRSV,24 Now there came to Ephesus a Jew named Apollos, a native of Alexandria. He was an eloquent man, well-versed in the scriptures.

헬라어신약Stephanos,24 ιουδαιος δε τις απολλως ονοματι αλεξανδρευς τω γενει ανηρ λογιος κατηντησεν εις εφεσον δυνατος ων εν ταις γραφαις

라틴어Vulgate,24 Iudaeus autem quidam Apollo nomine Alexandrinus natione vir eloquens devenit Ephesum potens in scripturis

히브리어Modern,24 ואיש יהודי בא אל אפסוס ועיר מולדתו אלכסנדריא ושמו אפולוס איש דברים ותקיף בכתובים׃

성 경: [행18:24]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 – 아볼로의 사역]

󰃨 알렉산드리아 – B.C – 332년 알렉산더대왕이 세운 중요한 해양 도시이다. 상업의 중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대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는데, 유대인들이 크게 번성하뗘 당시 인구의 1/3이나 되었다 한다. 따라서 유대적 헬라 설학이 발달하였는데 그 철학자들 중 필로(Philo)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때까지 필로가 생존해 있었으로 아마 아볼로는 그 필로 학파의 일원이었던것 같다.

󰃨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성경에 능한자라 – ‘학문이 많고’의 헬라어 ‘로기오스'(*)는 ‘유식한’, ‘말 잘하는’이란 뜻이 다나이는 아볼로가 천부적인 언변(言辯)과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또한 아볼로는 이 외에 ‘성경에 능하기’까지 했다. 즉 그는 그의 언변과 학식을 성경 연구와 그 연구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건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복음의 핵심을 몰랐다. 한편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한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잠시 머물다 떠난 후(19:1)부터 그가 제3차 건도 여행 때 다시 에베소를 방문하기(19:1) 전의 기간이었다. 이 때에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하여 영적 지도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후토스 엔 카테케메노스 텐 호돈 투 퀴리우 카이 제온 토 프뉴마티 엘랄레이 카이 에디다스켄 아크리보스 타 페리 투 에수 에피스타메노스 메논 토 밮티스마 요안누

개역개정,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새번역,25 그는 이미 주님의 ‘도’를 배워서 알고 있었고, 예수에 관한 일을 열심히 말하고 정확하게 가르쳤다. 그렇지만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하였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5 그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 열정을 가지고 전도할 뿐 아니라 예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었다.

영어NIV,25 He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he spoke with great fervor and taught about Jesus accurately, though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영어NASB,25 This man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being fervent in spirit, he was speaking and teaching accurately the things concerning Jesus, being acquainted only with the baptism of John;

영어MSG,25 He was well-educated in the way of the Master and fiery in his enthusiasm. Apollos was accurate in everything he taught about Jesus up to a point, but he only went as far as the baptism of John.

영어NRSV,25 He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he spoke with burning enthusiasm and taught accurately the things concerning Jesus, though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헬라어신약Stephanos,25 ουτος ην κατηχημενος την οδον του κυριου και ζεων τω πνευματι ελαλει και εδιδασκεν ακριβως τα περι του κυριου επισταμενος μονον το βαπτισμα ιωαννου

라틴어Vulgate,25 hic erat edoctus viam Domini et fervens spiritu loquebatur et docebat diligenter ea quae sunt Iesu sciens tantum baptisma Iohannis

히브리어Modern,25 הוא היה מלמד דרך האדון והוא מדבר כחם רוחו ומלמד היטב על אדות ישוע ולא ידע כי אם טבילת יוחנן לבדה׃

성 경: [행18:25]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아볼로의 사역]

󰃨 주의 도를 배워…요한의 세례만 알따름이라 – 아볼로가 어디서 어떻게 주의 도를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가 않다. 추측건대 그는 세례 요한의 몇몇 제자들을 통해 기독교의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누가의 저서에 있어서 ‘주의 도’나 ‘하나님의 도’는 항상 ‘기독교의 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했다(Haenchen). 그러나 아볼로가 주의 도를 아무리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다고 해도 세례 요한이 죽기까지 예수에 관해 이야기한 것만 부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흘츠만(Holzmann)은 아볼로가 세례 요한히 뒤를 잇는 인물이었다고 주장한, 또한디벧리우스(Dibelius)는 아볼로를 통해서 혼합적인 반(半)기독교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캐제만(Kasemann)은, 아볼로는 사도 중심적 기독교에 대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기독교 교사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누가는 그를 불완전한 교사로 묘사했다고 한다.

후토스 테 에릌사토 파르레시아제스다이 엔 테 쉬나고게 아쿠산테스 데 아우투 프리스킬라 카이 아퀼라스 프로셀라본토 아우톤 카이 아크리베스테론 아우토 엨세덴토 텐 호돈 투 데우

개역개정,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새번역,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듣고서, 따로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우리말성경,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자 그의 말을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를 집으로 데려다 하나님의 도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영어NIV,26 He began to speak boldly in the synagogue.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invited him to their hom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dequately.

영어NASB,26 and he began to speak out boldly in the synagogue. But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ccurately.

영어MSG,26 He preached with power in the meeting place.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told him the rest of the story.

영어NRSV,26 He began to speak boldly in the synagogue; but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the Way of God to him more accurately.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υτος τε ηρξατο παρρησιαζεσθαι εν τη συναγωγη ακουσαντες δε αυτου ακυλας και πρισκιλλα προσελαβοντο αυτον και ακριβεστερον αυτω εξεθεντο την του θεου οδον

라틴어Vulgate,26 hic ergo coepit fiducialiter agere in synagoga quem cum audissent Priscilla et Aquila adsumpserunt eum et diligentius exposuerunt ei viam Dei

히브리어Modern,26 והוא החל לקרא בבית הכנסת בבטחון לבב וישמעו אתו עקילס ופריסקלה ויקחהו אליהם ויוסיפו להגיד לו את דרך האלהים באר היטב׃

성 경: [행18:26]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아볼로의 사역]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 본 구절에서도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었다. 이는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에 있어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Haenchen). 이들 부부는 아볼로가 회당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가 복음의 진수(眞髓)에 대해 무지한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가르쳤다. 여기서 특별히 아볼로가 세례를 받았다는 언급이 없는데 이씨 대해 혹자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아볼로가 이전에 받은 ‘회개의 세례’를 기독교적 세례로 간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Longennecker)고 주장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많은 학자들은 아볼로가 성령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학자 간에는 이 구절에서 기독교의 성령 세례에 관해서 논하기도 한다.

불로메누 데 아우투 디엘데인 에이스 텐 아카이안 프로트렢사메노이 호이 아델포이 에그랖산 토이스 마데타이스 아포뎈사스다이 아우톤 호스 파라게노메노스 쉬네발레토 폴뤼 토이스 페피스튜코신 디아 테스 카리토스

개역개정,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새번역,27 아볼로는 아가야로 건너가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신도들이 그를 격려하고, 그 쪽 제자들에게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는 거기에 이르러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27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으로 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은 그를 격려해 주면서 그곳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편지를 써서 그를 영접해 주도록 했습니다. 아볼로는 그곳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영어NIV,27 When Apollos wanted to go to Achaia, the brothers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there to welcome him. On arriving, he was a great help to those who by grace had believed.

영어NASB,27 And when he wanted to go across to Achaia, the brethren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to welcome him; and when he had arrived, he helped greatly those who had believed through grace;

영어MSG,27 When Apollos decided to go on to Achaia province, his Ephesian friends gave their blessing and wrote a letter of recommendation for him, urging the disciples there to welcome him with open arms. The welcome paid off: Apollos turned out to be a great help to those who had become believers through God’s immense generosity.

영어NRSV,27 And when he wished to cross over to Achaia, the believers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to welcome him. On his arrival he greatly helped those who through grace had become believers,

헬라어신약Stephanos,27 βουλομενου δε αυτου διελθειν εις την αχαιαν προτρεψαμενοι οι αδελφοι εγραψαν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ποδεξασθαι αυτον ος παραγενομενος συνεβαλετο πολυ τοις πεπιστευκοσιν δια της χαριτος

라틴어Vulgate,27 cum autem vellet ire Achaiam exhortati fratres scripserunt discipulis ut susciperent eum qui cum venisset contulit multum his qui crediderant

히브리어Modern,27 ויחפץ ללכת לאכיא ויכתבו האחים אל התלמידים ויעררו אתם לקבלו ויבא שמה ויעזר הרבה את המאמינים על ידי החסד׃

성 경: [행18:27]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아볼로의 사역]

󰃨 아볼로가 아가야로…많은 유익을 주니 – 베자 사본(Codex Bezae)에 따르면 에베소에 몇몇 고린도 교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아볼로의 이야기를 듣고 아볼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것을 부탁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에베소에는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역하고 있었으므로, 또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바 은혜를 전하고 싶어 고린도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볼로의 고린도 사역을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추천장을 써주기도 하였다. 결국 고린도에서의 아볼로의 사역은 후에 큰 결실을 거두었고 바울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전1-4장).

유토노스 가르 토이스 유다이오이스 디아카텔렝케토 데모시아 에피데잌뉘스 디아 톤 그라폰 에이나이 톤 크리스톤 예순

개역개정,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새번역,28 그가 성경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면서, 공중 앞에서 유대 사람들을 힘있게 논박했기 때문이다. / ㉪또는 ‘메시아’

우리말성경,28 이것은 그가 성경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줌으로써 공중 앞에서 유대 사람들을 향해 강력하게 논증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영어NIV,28 For he vigorous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debate, proving from the Scriptures that Jesus was the Christ.

영어NASB,28 for he powerful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demonstrating by the Scriptures that Jesus was the Christ.

영어MSG,28 He was particularly effective in public debate with the Jews as he brought out proof after convincing proof from the Scriptures that Jesus was in fact God’s Messiah.

영어NRSV,28 for he powerful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showing by the scriptures that the Messiah is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υτονως γαρ τοις ιουδαιοις διακατηλεγχετο δημοσια επιδεικνυς δια των γραφων ειναι τον χριστον ιησουν

라틴어Vulgate,28 vehementer enim Iudaeos revincebat publice ostendens per scripturas esse Christum Iesum

히브리어Modern,28 כי בחזקה התוכח עם היהודים לפני כל העם ויראם מן המקראות כי ישוע הוא המשיח׃

성 경: [행18:28]

주제1: [제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한 바울]

주제2: [제3차 전도 여행-아볼로의 사역]

󰃨 성경으로써…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 아볼로 역시 바을과 마찬가지로 메시지의 핵심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집중시켰다. ‘성경에 능한 자'(24절)였던 그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공증 앞에서 그가 알고 있던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더욱더 설득력있고 확신있게 전하였다. 그의 능슥한 언변과 철학적 학식, 성경시 능통함 등은 그가 복음을 전하는데 뒷받침이 되었고 특별히 유대인을 설복시키는데 귀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아볼로의 사역을 근거로 마르틴 루터(M,luther)는 히브리가 아볼로의 성경적 논증의 실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이 유대교를 능가한다는 점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건들을 뒷받침할 만한 분명한 자료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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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사도행전 18장

18:1 바울의 고린도 방문(사도행전 18:1-6) 우리들은 바울이 아덴에서 그렇게 많은 박해를 받은 사실을 발견할 수는 없다. 또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거나 그들과 이해 관계가 있던 그러한 장소에서 바울이 당했던 것과 같은 심한 대우를 받고 쫓겨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바울에 대한 태도는 냉랭한 편이었으며 또 거기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어떤 전망도 거의 없었으므로 디오누시오와 함께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의 보살펴 줌을 뒤로 하고 그는 아덴을 출발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교회를 세우는 도구 역할을 하였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중심 도시였고 당시는 로마 제국의 속령으로써 부유하고 찬란한 곳이였다. 그러므로 Non cuivis homini contingit adire Corinthum – 즉 고린도는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허용된 곳은 아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당시 그 주변의 지역은 펠로포네스라고 불리웠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의 자신의 생계를 위한 노동(2, 3절). 1. 바울은 비록 학자로서 자랐지만 또한 그는 수공업 기술자였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으며 또한 실내 장식품 제조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천이나 피륙 혹은 가죽이나 짐승의 껍질을 가지고 군인들이나 양치기들이 사용할 천막을 만들었다(어떤 이들은 당시는 일반적으로 천막을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전해 준다). 즉 천막의 겉 덮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천막 안에서 사는 것을 sub pellibus – 즉 짐승 가죽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였다.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학식이나 유산을 물려 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기술 한 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음을 말해 준다. 랍비인 유다(Judah)는 “그의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울타리로 잘 보호된 포도원을 지닌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인간이 그것에 의해 그의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술은 구 누구도 결코 경멸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비록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었고 또 그 기술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기술을 망각해 버리지 않았다.

2. 비록 바울은 그가 설립한 교회나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생계 문제를 의뢰할 권리가 있었지만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직업을 가지고 일했다. 이러한 점은 더욱 그의 위대한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바울이 얼마나 겸손했는가는 생각해 보자. 사실 바울은 이 겸손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으로부터 배웠다. 바울이 얼마나 부지런하였으며 얼마나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정신적인 측면에서 뛰어날 만큼 우수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그였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가 손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것도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너는 빵을 먹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로부터 면제된 것은 아닌 것이다. 바울이 가장 부적당하고 터무니없는 정황 속에서도 그의 전도 사업을 잘 추진하였고 또 복음에 대적하는 온갖 편견을 얼마나 주의 깊게 극복하였는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에게 “짐스러운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일을 하여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고후 11:7; 살후 3:8, 9).

3. 우리는 바울이 그의 기술에 있어 대가였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돌아다니며 삯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왔는데 그들도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수 있는 일당에 불과한 돈을 벌었다. 가난한 기능인들은 비록 부유한 상인들같이 그들의 직업으로 재산을 늘릴 스는 없지만 만일 그들의 직업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으면 감사히 여겨야 한다.

4. 비록 그 자신이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후에 알 수 있듯이(26절)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매우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예수 rfltm도 안에서 그의 동역자였었음을” 인정한다(롬 16:3). 이 사실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돕기 위한 섬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는 좋은 본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이다. 반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증진시켜 줄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 사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듯이 우리들도 그러한 영향 아래 살게 하려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이 아굴라에 관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전해 준다.

(1) 그는 유대 사람이었으나 본도에서 태어났다(2절). 베드로 전서 1장 1절에 나타나 있듯이 흩어진 많은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 정착하여 살았다.

(2) 그는 최근에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그의 거주지를 옮겼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거할 곳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그러한 자유 세상은 아니다.

(3) 그가 이달리야를 떠나게 된 이유는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부터 추방한다는 굴라우디우스 황제의 최근의 칙령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았고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는 치욕과 곤경이 안기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유산은 “무늬있는 매와 같은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매들이 그를 에워쌌다”(렘 12:9). 아굴라는 기독교도였지만 그는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추방을 당했다. 사실 이방인들은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를 구별할 줄을 몰랐다. 클라우디우스 당시에 생존했던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이칙령이 클라우디우스 통치 7년에 발령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유대인들은 “소날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소요가 impnlsore Christo – 즉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어떤 무리는 그리스도에게 열성적이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렬하게 반대하였다. 이것이 과열되어 로마 당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황제까지 분격케 하였다. 이 황제는 소심하고 신경이 과민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였다면 이방인들이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다 박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바울은 비록 학자로서 자랐지만 또한 그는 수공업 기술자였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으며 또한 실내 장식품 제조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천이나 피륙 혹은 가죽이나 짐승의 껍질을 가지고 군인들이나 양치기들이 사용할 천막을 만들었다(어떤 이들은 당시는 일반적으로 천막을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전해 준다). 즉 천막의 겉 덮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천막 안에서 사는 것을 sub pellibus – 즉 짐승 가죽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였다.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학식이나 유산을 물려 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기술 한 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음을 말해 준다. 랍비인 유다(Judah)는 “그의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울타리로 잘 보호된 포도원을 지닌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인간이 그것에 의해 그의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술은 구 누구도 결코 경멸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비록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었고 또 그 기술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기술을 망각해 버리지 않았다.비록 바울은 그가 설립한 교회나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생계 문제를 의뢰할 권리가 있었지만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직업을 가지고 일했다. 이러한 점은 더욱 그의 위대한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바울이 얼마나 겸손했는가는 생각해 보자. 사실 바울은 이 겸손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으로부터 배웠다. 바울이 얼마나 부지런하였으며 얼마나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정신적인 측면에서 뛰어날 만큼 우수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그였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가 손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것도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너는 빵을 먹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로부터 면제된 것은 아닌 것이다. 바울이 가장 부적당하고 터무니없는 정황 속에서도 그의 전도 사업을 잘 추진하였고 또 복음에 대적하는 온갖 편견을 얼마나 주의 깊게 극복하였는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에게 “짐스러운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일을 하여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고후 11:7; 살후 3:8, 9).우리는 바울이 그의 기술에 있어 대가였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돌아다니며 삯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왔는데 그들도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수 있는 일당에 불과한 돈을 벌었다. 가난한 기능인들은 비록 부유한 상인들같이 그들의 직업으로 재산을 늘릴 스는 없지만 만일 그들의 직업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으면 감사히 여겨야 한다.비록 그 자신이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후에 알 수 있듯이(26절)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매우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예수 rfltm도 안에서 그의 동역자였었음을” 인정한다(롬 16:3). 이 사실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돕기 위한 섬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는 좋은 본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이다. 반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증진시켜 줄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 사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듯이 우리들도 그러한 영향 아래 살게 하려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이 아굴라에 관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전해 준다.그는 유대 사람이었으나 본도에서 태어났다(2절). 베드로 전서 1장 1절에 나타나 있듯이 흩어진 많은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 정착하여 살았다.그는 최근에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그의 거주지를 옮겼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거할 곳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그러한 자유 세상은 아니다.그가 이달리야를 떠나게 된 이유는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부터 추방한다는 굴라우디우스 황제의 최근의 칙령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았고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는 치욕과 곤경이 안기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유산은 “무늬있는 매와 같은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매들이 그를 에워쌌다”(렘 12:9). 아굴라는 기독교도였지만 그는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추방을 당했다. 사실 이방인들은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를 구별할 줄을 몰랐다. 클라우디우스 당시에 생존했던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이칙령이 클라우디우스 통치 7년에 발령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유대인들은 “소날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소요가 impnlsore Christo – 즉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즉 어떤 무리는 그리스도에게 열성적이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렬하게 반대하였다. 이것이 과열되어 로마 당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황제까지 분격케 하였다. 이 황제는 소심하고 신경이 과민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였다면 이방인들이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다 박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Ⅱ. 바울의 유대인들에 대한 설교. 바울은 유대인들과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유대교에 개종하여 유대인들의 집회에 드나드는 희랍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하려고 했다. 1. 바울은 공개적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 우리는 사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는가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힘이나 폭력으로 하지 않았으며, 불이나 칼로 하지도 않았고 절대 수락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정정당당한 논리에 의해 복음을 선포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복음으로 이끌어 들였고 조리있게 강론했으며 그것에 반대할 자유도 허용했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로 와서 그와 변론하자고 초청하신다(사 1:18). 그리고 조인들에게 그들의 변명을 해보라고 도전하신다. 그리고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사 41:21) 고도 전하신다. 바울은 성서에 입각한 설교자였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설교가였다.

2. “바울은 그들을 권면했다”(e;peiqe,). 그가 권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 한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들이 속히 믿어야 된다는 절박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논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권면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위해 또 그들 자신의 영혼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된 구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2) 아니면 그가 복음을 권면한 것은 복음을 지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권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그가 그들을 설복시켰다는 말로 이해한다. In sententiam suam adducbat – 즉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의견에 따르게 하였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그의 조리있는 강론에 의하여 믿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굴복한 것이다.

3. 바울은 그의 동역자요 보조자들이 그에게 오자 더욱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실리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그곳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바울에게 주고 또 즉시 고린도에서 바울을 돕게 되자 바울은 전보다 더욱 “말씀에 붙잡혀” 말씀 전하는 일에 바울의 힘과 능력을 진력하였다. 바울은 그의 동포인 유대인들의 완고한 고집과 불신앙을 비탄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열심을 내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후 5:14). 앞의 인용한 내용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증거하였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기에 바울은 모든 가능한 권위와 진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또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거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신실한 자세로 그들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이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바울은 공개적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 우리는 사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는가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힘이나 폭력으로 하지 않았으며, 불이나 칼로 하지도 않았고 절대 수락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정정당당한 논리에 의해 복음을 선포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복음으로 이끌어 들였고 조리있게 강론했으며 그것에 반대할 자유도 허용했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로 와서 그와 변론하자고 초청하신다(사 1:18). 그리고 조인들에게 그들의 변명을 해보라고 도전하신다. 그리고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사 41:21) 고도 전하신다. 바울은 성서에 입각한 설교자였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설교가였다.”바울은 그들을 권면했다”(e;peiqe,). 그가 권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 한 이유 때문이었다.그들이 속히 믿어야 된다는 절박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논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권면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위해 또 그들 자신의 영혼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된 구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고 간청했다.아니면 그가 복음을 권면한 것은 복음을 지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권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그가 그들을 설복시켰다는 말로 이해한다. In sententiam suam adducbat – 즉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의견에 따르게 하였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그의 조리있는 강론에 의하여 믿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굴복한 것이다.바울은 그의 동역자요 보조자들이 그에게 오자 더욱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실리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그곳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바울에게 주고 또 즉시 고린도에서 바울을 돕게 되자 바울은 전보다 더욱 “말씀에 붙잡혀” 말씀 전하는 일에 바울의 힘과 능력을 진력하였다. 바울은 그의 동포인 유대인들의 완고한 고집과 불신앙을 비탄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열심을 내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후 5:14). 앞의 인용한 내용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증거하였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기에 바울은 모든 가능한 권위와 진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또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거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신실한 자세로 그들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이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Ⅲ. 그 후 바울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단념하고 그가 다른 장소에서 했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6절). 1. 많은 유대인들 아니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고집했고 가장 강력한 논증에도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권면에 대해서도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본문을 직역한다면). 그들은 복음에 반대하기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복음의 전진을 막기 위하여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으며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조리있는 말로 격퇴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을 조리있는 말로 전도자들을 대항할 수 없게 되자 폭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훼방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독적인 언사를 말하였다. 또한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계 13:5, 6). 그들의 불신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2. 그러므로 바울은 그 자신이 그들에게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을 하고 그들이 그들의 불신앙 속에서 멸망하도록 방임해 버린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그들에게 증거했었다”(5절). 그러나 그들이 바울의 증언을 반대하고 그들의 반대를 고집하고 그들이 전도자들을 반증하는 악령에 사로잡히자(6절) 바울은 그의 열심을 그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냈다. 즉 그는 “그 의복을 흔들어” 그 먼지를 떨어버렸다(전에도 그들은 “발에 묻은 티끌을 털어 버렸었다.” 행 13:51). 이같이 바울이 옷의 먼지를 털 것은 그들을 대적하는 증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같이 바울은 그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그 다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빌라도가 그의 손을 씻음으로써 그 상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 전가시켰듯이 바울은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림으로써 만일에 있을 그들의 심판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1) 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으며 그들 영혼의 피에 대하여 그는 깨끗하였다. 비록 그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충실한 파수군과 같이 그들에게 경고를 하였고 또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믿게 하려고 하였으나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피에 대하여 바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과 20장 26절의 내용은 바울이 에스겔 33장 8, 9절을 참조한 것임이 명백하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을 경고하는데 자기 책임을 다했노라고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역자의 마음에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2) 만일 그 유대인들이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저주는 바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너희가 자신들의 파괴자가 될 것이며, 이 땅에서 너희 나라가 멸망할 것이요 하늘 나라에 가서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하리라”고 하였다.

3. 그들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마저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이스라엘을 도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도 가리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맨 처음 복음에 대한 초청을 받았고 또 그들에게 응당한 대우가 취해졌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하여 불평할 수가 없었다. 처음 초대된 손님들이 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준비된 음식을 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본문은 다음가 같은 뜻의 말씀이다. “우리들은 유대인들을 모아들이려고 하였다(마 23:37).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몸이 없는 머리가 되실 수 없으며 기초없는 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거부와 소수의 회심이 이방인들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정면에서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 위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롬 11:12, 14). 많은 유대인들 아니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고집했고 가장 강력한 논증에도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권면에 대해서도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본문을 직역한다면). 그들은 복음에 반대하기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복음의 전진을 막기 위하여 손을 잡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으며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조리있는 말로 격퇴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을 조리있는 말로 전도자들을 대항할 수 없게 되자 폭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훼방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독적인 언사를 말하였다. 또한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계 13:5, 6). 그들의 불신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그러므로 바울은 그 자신이 그들에게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을 하고 그들이 그들의 불신앙 속에서 멸망하도록 방임해 버린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그들에게 증거했었다”(5절). 그러나 그들이 바울의 증언을 반대하고 그들의 반대를 고집하고 그들이 전도자들을 반증하는 악령에 사로잡히자(6절) 바울은 그의 열심을 그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냈다. 즉 그는 “그 의복을 흔들어” 그 먼지를 떨어버렸다(전에도 그들은 “발에 묻은 티끌을 털어 버렸었다.” 행 13:51). 이같이 바울이 옷의 먼지를 털 것은 그들을 대적하는 증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같이 바울은 그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그 다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빌라도가 그의 손을 씻음으로써 그 상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 전가시켰듯이 바울은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림으로써 만일에 있을 그들의 심판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냈다.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으며 그들 영혼의 피에 대하여 그는 깨끗하였다. 비록 그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충실한 파수군과 같이 그들에게 경고를 하였고 또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믿게 하려고 하였으나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피에 대하여 바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과 20장 26절의 내용은 바울이 에스겔 33장 8, 9절을 참조한 것임이 명백하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을 경고하는데 자기 책임을 다했노라고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역자의 마음에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만일 그 유대인들이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저주는 바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너희가 자신들의 파괴자가 될 것이며, 이 땅에서 너희 나라가 멸망할 것이요 하늘 나라에 가서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하리라”고 하였다.그들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마저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이스라엘을 도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도 가리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맨 처음 복음에 대한 초청을 받았고 또 그들에게 응당한 대우가 취해졌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하여 불평할 수가 없었다. 처음 초대된 손님들이 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준비된 음식을 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본문은 다음가 같은 뜻의 말씀이다. “우리들은 유대인들을 모아들이려고 하였다(마 23:37).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몸이 없는 머리가 되실 수 없으며 기초없는 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거부와 소수의 회심이 이방인들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정면에서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 위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롬 11:12, 14).

18:7 고린도에서의 바울(1)(사도행전 18:7-11)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Ⅰ. 바울의 장소 이동.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파견할 때 그들에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눅 10:7) 지시하셨다. 그러나 본문의 바울의 경우처럼 장소를 변경해야 할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사악함에 의해 축출당하였으므로 회당을 나갔다. 그리고 바울은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7절). 바울이 이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것은 그곳을 숙소로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울로 하여금 평화스럽게 그들의 회당에서 그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자 착한 사람인 유스도는 바울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고 그가 자기 집에서 전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방주가 개인의 집에 정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을 때 바울은 개인 집에서 전도함으로 그의 가르침에 손실을 보지 아니하였다. 이 사람과 그의 집에 한 본문의 설명을 고찰하여 보자. 1. 그 사람은 유대인들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으며 고넬료와 같이 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비록 유대인들을 단념하였지만 이 사람의 집에서 모임을 시작하므로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비록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야 할 수밖에 없었을 때일지라도 그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2. 그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 집이 회당 옆이라” 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바울이 회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그들의 모임으로 끌어들이려는 계획 아래서 이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바울이 그가 할 수 있는 한 그들 가까이 있으려 한다는 것과 만일 그들이 그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전처럼 그의 메시지를 반박하고 모독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그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사라의 정신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유대인들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으며 고넬료와 같이 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비록 유대인들을 단념하였지만 이 사람의 집에서 모임을 시작하므로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비록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야 할 수밖에 없었을 때일지라도 그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그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 집이 회당 옆이라” 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바울이 회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그들의 모임으로 끌어들이려는 계획 아래서 이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바울이 그가 할 수 있는 한 그들 가까이 있으려 한다는 것과 만일 그들이 그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전처럼 그의 메시지를 반박하고 모독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그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사라의 정신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Ⅱ. 바울이 즉석에서 거둔 그의 수고의 결실. 이러한 결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수확한다. 1. 저명인이요 또난 유대인인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8절). 교회나 국가의 고관들이나 통치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복음에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 유대인들의 회당의 최고 책임자가 즉 성서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나 그들의 신앙에 대한 열심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그가 복음을 믿었는데도 나머지 유대인들은 복음을 반대하고 모욕을 가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로 변명의 여지가 없게 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그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 가족이 믿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 회당장과 함께 바울에 의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고전 1:14).

2. 이방인이었던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고전 6:11 의 “너희 중에 어떤 자들”이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나쁜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처음에 그들은 들었다. 왜냐하면 “신앙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들 중 혹 어떤 사람들은 아마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이 옳지 않다고 하는 어떤 양심의 확신에 의해서 바울의 말을 들으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몰려 온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파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듣고”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음을 정하고 그리스도교를 신앙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부여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다. 저명인이요 또난 유대인인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8절). 교회나 국가의 고관들이나 통치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복음에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 유대인들의 회당의 최고 책임자가 즉 성서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나 그들의 신앙에 대한 열심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그가 복음을 믿었는데도 나머지 유대인들은 복음을 반대하고 모욕을 가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로 변명의 여지가 없게 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그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 가족이 믿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 회당장과 함께 바울에 의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고전 1:14).이방인이었던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고전 6:11 의 “너희 중에 어떤 자들”이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나쁜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처음에 그들은 들었다. 왜냐하면 “신앙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들 중 혹 어떤 사람들은 아마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이 옳지 않다고 하는 어떤 양심의 확신에 의해서 바울의 말을 들으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몰려 온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파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듣고”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음을 정하고 그리스도교를 신앙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부여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다. Ⅲ. 바울은 환상을 통하여 고린도에서 그의 일을 계속하라는 격려를 받았다(9절). 그러므로 본문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의 일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즉 침상에 누워서 골똘히 그가 여기에서 계속해서 전도 일을 할 것인가, 혹은 이곳에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좋은 성과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가 등에 관해서 심사숙고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적절한 시기에 바울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즉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에 골똘하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위로로 기쁨을 맛보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1.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위임과 책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주님은 그에게 “유대인들을 두려워 말라. 비록 그들이 난폭하고 더욱이 그들 회당의 총관리자가 전향을 하였으므로 더욱 광분할 지라도 두려워 말라. 또한 그 도시의 행정장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위에서 주어진 것 이외에는 너에 대하여 반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외치는 것을 하늘을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담대히 행동하라.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주시함에 대하여 당황하지 말라.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말라.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라. 그들이 두려워서 말하는 것을 중단하지도 말고 숨어서 말할 필요도 없다. 소심하게 또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 말고 분명하게 확신을 갖고 그리고 용기있게 말하다. 크게 외치라.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답게 자유롭게 행하라”고 하신다.

2. 바울은 주님이 그와 맘께 하심을 확신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활기를 주었다.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너를 보호하고 네가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내게 하고 너의 모든 두려움에서부터 너를 이끌어낼 것이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내가 인정할 것이며 너와 함께 일할 것이며 기적을 통하여 너의 말을 확증하리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는 제자들에 대한 위임시에 주어진 약속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움추려들어도 안 되는 것이다.

3. 주님은 바울에게 그를 아무런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보증을 하신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네가 악하고 분별 없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며 다른 곳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다녔듯이 쫓겨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어떠한 사람도 바울에게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않았다[사실 우리는 다음의 본문에서 바울이 대적함을 받아 “재판하는 자리에 끌려 왔다는”(12절)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아무 사람도 너를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절제될 것이다. 또한 너는 빌립보에서 당했던 것과 같이 여기서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그의 전도 사업 후기에서 보다 처음에 혹심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고난을 당하던 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시련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시 66:10-12). 또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내적인 의미의 말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어느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tou kkw/sai se) 영혼에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어떠한 괴로움을 주더라도 그것이 네 영혼을 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를 죽이더라도 그들이 참으로 너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시 23:4; 사 41:10).

4. 주님은 바울에게 성공의 전망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으로 너의 일을 방해하려는 어느 누구도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의 일을 보살필 것이다. 그러기에 너는 그 일을 즐거움을 가지고 원기있게 행하라. 이 성중에는 너의 전도에 의해 실제적으로 따라 나설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서 너의 영혼이 산고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la,oj epimoi polmj – 즉 이곳에는 나를 위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과 또 앞으로 그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아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의 백성이 도는 것은 그가 그들에게 역사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한 그는 그의 하실 모든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비록 나를 아직 모르고 지금까지 그의 의지대로 사탄에 붙잡혀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들을 나에게 주셨으며 나를 섬기는 자손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기로 내가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기를 “그가 예정한 자를 또한 부르셨다”고 하였다. 비록 “이 성에 매우 불경스러운 악한 성이고 불순한 것으로 가득 찼으며 그곳에 비너스의 신전이 있어 사람들이 그곳을 자주 찾아 갔지만 이같이 쭉정이만 쌓인 것 같은 무더기 가운데도 알곡이 있었던 것이다. 쓸모 없는 것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석 속에도 금(金)은 있었다. 고린도 같은 곳에서까지 그리스도께서 많은 그의 백성들을 소유하고 계셨다면 우리는 어떠한 장소에 대하여서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위임과 책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주님은 그에게 “유대인들을 두려워 말라. 비록 그들이 난폭하고 더욱이 그들 회당의 총관리자가 전향을 하였으므로 더욱 광분할 지라도 두려워 말라. 또한 그 도시의 행정장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위에서 주어진 것 이외에는 너에 대하여 반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외치는 것을 하늘을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담대히 행동하라.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주시함에 대하여 당황하지 말라.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말라.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라. 그들이 두려워서 말하는 것을 중단하지도 말고 숨어서 말할 필요도 없다. 소심하게 또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 말고 분명하게 확신을 갖고 그리고 용기있게 말하다. 크게 외치라.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답게 자유롭게 행하라”고 하신다.바울은 주님이 그와 맘께 하심을 확신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활기를 주었다.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너를 보호하고 네가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내게 하고 너의 모든 두려움에서부터 너를 이끌어낼 것이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내가 인정할 것이며 너와 함께 일할 것이며 기적을 통하여 너의 말을 확증하리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는 제자들에 대한 위임시에 주어진 약속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움추려들어도 안 되는 것이다.주님은 바울에게 그를 아무런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보증을 하신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네가 악하고 분별 없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며 다른 곳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다녔듯이 쫓겨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어떠한 사람도 바울에게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않았다[사실 우리는 다음의 본문에서 바울이 대적함을 받아 “재판하는 자리에 끌려 왔다는”(12절)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아무 사람도 너를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절제될 것이다. 또한 너는 빌립보에서 당했던 것과 같이 여기서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그의 전도 사업 후기에서 보다 처음에 혹심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고난을 당하던 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시련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시 66:10-12). 또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내적인 의미의 말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어느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tou kkw/sai se) 영혼에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어떠한 괴로움을 주더라도 그것이 네 영혼을 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를 죽이더라도 그들이 참으로 너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시 23:4; 사 41:10).주님은 바울에게 성공의 전망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으로 너의 일을 방해하려는 어느 누구도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의 일을 보살필 것이다. 그러기에 너는 그 일을 즐거움을 가지고 원기있게 행하라. 이 성중에는 너의 전도에 의해 실제적으로 따라 나설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서 너의 영혼이 산고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la,oj epimoi polmj – 즉 이곳에는 나를 위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과 또 앞으로 그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아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의 백성이 도는 것은 그가 그들에게 역사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한 그는 그의 하실 모든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비록 나를 아직 모르고 지금까지 그의 의지대로 사탄에 붙잡혀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들을 나에게 주셨으며 나를 섬기는 자손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기로 내가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기를 “그가 예정한 자를 또한 부르셨다”고 하였다. 비록 “이 성에 매우 불경스러운 악한 성이고 불순한 것으로 가득 찼으며 그곳에 비너스의 신전이 있어 사람들이 그곳을 자주 찾아 갔지만 이같이 쭉정이만 쌓인 것 같은 무더기 가운데도 알곡이 있었던 것이다. 쓸모 없는 것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석 속에도 금(金)은 있었다. 고린도 같은 곳에서까지 그리스도께서 많은 그의 백성들을 소유하고 계셨다면 우리는 어떠한 장소에 대하여서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Ⅳ.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 바울은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게 된다(11절). 그는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유하였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편안히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일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서 즉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 도시는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으므로 바울은 그곳에서 낯선 이국 사람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여러 다른 지방까지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울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 1.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그곳에 많은 사람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 그가 처음 복음을 선포했을 때 한 번 그물을 던져 수 천의 사람들을 이끌어 들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한 달 혹은 한 주일만에 그들 모두를 회개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일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고린도에서 예정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복음에 귀의하였다. 어떤 자는 이러한 설교로 또 다른 자는 저런 설교로 그들은 복음에로 하나씩 나아왔다. “우리는 아직까지 만물이 그리스도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일이 한꺼번에 이루워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이룩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의무를 계속해야 한다.

2.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성숙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개종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 자신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그 곳에 좋은 씨를 뿌리자마자 적들이 와서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게 위해서였다. 즉 이들 적들은 거짓 사도들이나 속임수를 쓰려는 일군들로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들에 대하여 많은 비난을 하였다. 복음에 대한 자타가 인정하는 적인 유대인 박해자들의 손이 묶여지자 바울과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가장한 기독교를 유대화시키려는 전도자들의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어 버리려는 수작에 의해 바울은 많은 고통을 겪었고 또 교회도 많은 불명예스러운 피해를 당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자마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첫 편지를 쓴 것이 보인다. 그것은 영감에 의하여 그가 쓴 여러 서신 중 첫 번째 편지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같은 교회에 두 번째 편지가 씌여졌다. 사역자들은 좋은 설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좋은 편지를 씀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고 그들 사역의 위대한 목적을 추진해야 한다.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그곳에 많은 사람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 그가 처음 복음을 선포했을 때 한 번 그물을 던져 수 천의 사람들을 이끌어 들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한 달 혹은 한 주일만에 그들 모두를 회개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일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고린도에서 예정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복음에 귀의하였다. 어떤 자는 이러한 설교로 또 다른 자는 저런 설교로 그들은 복음에로 하나씩 나아왔다. “우리는 아직까지 만물이 그리스도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일이 한꺼번에 이루워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이룩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의무를 계속해야 한다.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성숙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개종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 자신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그 곳에 좋은 씨를 뿌리자마자 적들이 와서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게 위해서였다. 즉 이들 적들은 거짓 사도들이나 속임수를 쓰려는 일군들로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들에 대하여 많은 비난을 하였다. 복음에 대한 자타가 인정하는 적인 유대인 박해자들의 손이 묶여지자 바울과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가장한 기독교를 유대화시키려는 전도자들의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어 버리려는 수작에 의해 바울은 많은 고통을 겪었고 또 교회도 많은 불명예스러운 피해를 당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자마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첫 편지를 쓴 것이 보인다. 그것은 영감에 의하여 그가 쓴 여러 서신 중 첫 번째 편지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같은 교회에 두 번째 편지가 씌여졌다. 사역자들은 좋은 설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좋은 편지를 씀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고 그들 사역의 위대한 목적을 추진해야 한다.

18:12 고린도에서의 바울(2)(사도행전 18:12-17) 우리는 여기서 바울과 고린도에 있는 그의 동료들이 당한 약간의 고난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해를 당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곳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에는 많은 방해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Ⅰ.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 앞에 고소를 당한다(12, 13절). 그곳 통치자는 고린도 성이 있는 “아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였다.” 아가야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갈리오는 식민지의 총독이었다. 이 갈리오는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형이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노바투스(Novatus)라고 불리웠는데 그가 쥴리우스 갈리오의 집안에 양자가 되었으므로 갈리오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는 그의 동생인 세네카에 의해서 매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좋은 성품 때문에 그는 Dulcis Galliol – 즉 선량한 갈리오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세네카는 전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바울이 난폭하게 체포되어 갈리오 앞에 끌려온 사실을 생각해 보자.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였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당한 모든 곤경을 주도한 주모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바울에게 해를 입히려고 결속하였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는 만장일치였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이 악한 일에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은 그것을 분노와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고 평화를 어지럽히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둘러서 바울을 “재판 자리로” 끌고 갔다. 본문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바울에게 그의 재판을 위해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2. 바울이 갈리오 앞에서 거짓 고소를 당한 사실을 고찰해 보자(13절). 그들은 그에 대하여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 말라고 권하였다거나 또는 다른 신을 공경하라고 한다고(신 13:2) 고소할 수는 없었다. 다만 율법에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한다고 고소하였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을 허용했다고 해서 그들과 같은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기소할 권한까지 그들에게 준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거짓 증언을 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고소는 그들의 율법의 측면에서 볼 때도 정당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율법에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세우실 한 선지자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들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바울은 그로 하여금 이 선지자를 믿고 또 그의 말을 들으라고 권면했다. 그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왔기 때문이다.” 고린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하라는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자신이 이미 이렇게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들의 회당에서 예배를 일부라도 어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령으로 그를 예배하라고 가르친 것뿐인데 마치 그가 율법에 저촉되게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백성들을 가르친 것처럼 모함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가르침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난폭하게 체포되어 갈리오 앞에 끌려온 사실을 생각해 보자.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였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당한 모든 곤경을 주도한 주모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바울에게 해를 입히려고 결속하였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는 만장일치였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이 악한 일에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은 그것을 분노와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고 평화를 어지럽히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둘러서 바울을 “재판 자리로” 끌고 갔다. 본문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바울에게 그의 재판을 위해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바울이 갈리오 앞에서 거짓 고소를 당한 사실을 고찰해 보자(13절). 그들은 그에 대하여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 말라고 권하였다거나 또는 다른 신을 공경하라고 한다고(신 13:2) 고소할 수는 없었다. 다만 율법에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한다고 고소하였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을 허용했다고 해서 그들과 같은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기소할 권한까지 그들에게 준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거짓 증언을 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고소는 그들의 율법의 측면에서 볼 때도 정당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율법에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세우실 한 선지자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들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바울은 그로 하여금 이 선지자를 믿고 또 그의 말을 들으라고 권면했다. 그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왔기 때문이다.” 고린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하라는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자신이 이미 이렇게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들의 회당에서 예배를 일부라도 어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령으로 그를 예배하라고 가르친 것뿐인데 마치 그가 율법에 저촉되게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백성들을 가르친 것처럼 모함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가르침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Ⅱ. 갈리오는 그들의 고소를 듣자마자 아니면 처음부터 전혀 듣지 않고 있다가 그 기소를 기각하고 그 문제를 심리(審理)하려고 하지도 않았다(14, 15절). 저들에 대해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여 자신이 율법에 반대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재판관은 이 소송은 재판으로 다룰 문제가 못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문제를 심의하는 번거로움에 자신이 끼어들고자 하지 않았다. 1. 갈리오는 그가 심리해야 할 사건이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을 집행할 태세가 갖추어졌음을 보여 준다. 갈리오는 고소자인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 있으면, 즉 너희들이 도둑질이나 사기, 혹은 살인이나 약탈 혹은 부도덕한 어떤 행위로 사람을 고소하였으면 너희가 소란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너희의 불평을 들어야 마땅하다고 내가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원자들이 무례하더라도 그들의 소송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들의 소송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곧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해자에 대하여는 책망을 하는 것이 행정관들이 의무이다. 그리고 만일 고소자들이 갖추어야할 모든 예절을 갖추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그들의 고소를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2. 갈리오는 그들이 그의 사법권 밖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한 너희 가운데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들은 내가 그것을 인내하고 들어야 하는 짐을 지우지도 말고 그것에 관해 재판함으로써 내 양심에 부담을 주지도 말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청원을 들어 주도록 간청하고 압력을 가하자 그는 “저희를 재판자리에서 쫓아 내어 버렸다”(16절). 그리고 다른 소송건을 처리하게 가져 오라고 명령했다.

(1) 갈리오의 행동에는 정당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재판하려 하지 않은 태도는 칭송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 자신의 종교에 관한 일에 대하여는 유대인 스스로 그 일을 처리하도록 버려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허위 주장을 가지고 그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능욕하게 버려두고자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자기가 바울에게 불리한 심판을 내림으로 그들의 악의의 도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갈리오는 그 일이 그의 사법권 안에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간주했고 그러기에 그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2) 그러나 그에게 그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또 그것으로 그가 자신을 아는데 이용해야 할 율법과 신앙을 그렇게 가볍게 말하였다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예배되어져야 하며 예수는 메시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혹은 복음이 과연 신의 계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자신이 비웃고 경멸하여 칭했듯이 단순한 “언어와 명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써 만일 그러한 질문들을 그가 올바르게 이해하였다면 그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갈리오는 마치 성서에 대한 그의 무지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하였고 그것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마치 하나님의 율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는 그것에 관해서 탐구를 하는 것은 그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그는 생각하였다. 갈리오는 그가 심리해야 할 사건이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을 집행할 태세가 갖추어졌음을 보여 준다. 갈리오는 고소자인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 있으면, 즉 너희들이 도둑질이나 사기, 혹은 살인이나 약탈 혹은 부도덕한 어떤 행위로 사람을 고소하였으면 너희가 소란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너희의 불평을 들어야 마땅하다고 내가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원자들이 무례하더라도 그들의 소송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들의 소송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곧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해자에 대하여는 책망을 하는 것이 행정관들이 의무이다. 그리고 만일 고소자들이 갖추어야할 모든 예절을 갖추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그들의 고소를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갈리오는 그들이 그의 사법권 밖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한 너희 가운데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들은 내가 그것을 인내하고 들어야 하는 짐을 지우지도 말고 그것에 관해 재판함으로써 내 양심에 부담을 주지도 말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청원을 들어 주도록 간청하고 압력을 가하자 그는 “저희를 재판자리에서 쫓아 내어 버렸다”(16절). 그리고 다른 소송건을 처리하게 가져 오라고 명령했다.갈리오의 행동에는 정당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재판하려 하지 않은 태도는 칭송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 자신의 종교에 관한 일에 대하여는 유대인 스스로 그 일을 처리하도록 버려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허위 주장을 가지고 그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능욕하게 버려두고자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자기가 바울에게 불리한 심판을 내림으로 그들의 악의의 도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갈리오는 그 일이 그의 사법권 안에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간주했고 그러기에 그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에게 그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또 그것으로 그가 자신을 아는데 이용해야 할 율법과 신앙을 그렇게 가볍게 말하였다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예배되어져야 하며 예수는 메시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혹은 복음이 과연 신의 계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자신이 비웃고 경멸하여 칭했듯이 단순한 “언어와 명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써 만일 그러한 질문들을 그가 올바르게 이해하였다면 그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갈리오는 마치 성서에 대한 그의 무지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하였고 그것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마치 하나님의 율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는 그것에 관해서 탐구를 하는 것은 그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그는 생각하였다. Ⅲ. 소스테네에게 가해진 능욕과 그 문제에 대한 갈리오의 무관심(17절). 1. 희랍인들이 소스테네를 잡아다가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린 것은 사실 재판정을 모욕하는 행위였다(역주:흠정판에는 희랍인들로 되어 있음). 이 일에 관하여는 많은 가정들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소스테네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그를 능욕한 희랍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가설로는 소스테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의 특별한 친구로서 갈리오가 그 소송을 기각시켜 버리자 바울을 위해 앞장 서서 그의 안전을 도모하여 그를 피신시켰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를 보호한 소스데네에게 덤벼들었던 것 같다. 고린도의 저명 인사로 바울의 친구인 소스데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사역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그를 그의 형제라고 불었으며 또한 그와 연명으로 편지를 띠우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1).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디모데를 취급하였던 것과 같이 소스데네를 취급하였다. 그리고 본문의 소스데네가 고린도 전서의 소스데네와 동일 인물인 것이 사실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회당장이였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그리스도보와 공동 회당장이라는 말이든가 아니면 그리스보의 관할 회당이 아닌 다른 회당의 회당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희랍인들이 소스데네를 학대하였다고 하였는데 (역주:한글 개역에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라고만 되어 있음)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는 일에 유대인들과 합세한 그리스계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희랍인들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4, 6절). 그리고 본토 유대인들은 이들로 폭행을 가하게 함으로 자기들이 받을 비난을 다소나마 모면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소스데네를 때린 것은 바울에 대하여 매우 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갈리오에 대해서도 격분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갈리오가 그들의 고소를 고려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재판 자리 앞에서 스소테네를 때린 것은 그것을 통하여 사실 그들이 갈리오를 무시한다는 것을 갈리오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였다. 만일 갈리오가 그들의 기소를 집행자이기를 원치 않으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2. 법정만 그 일로 인하여 모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재판관도 역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였다.” 만일 이러한 그의 태도가 악한들의 도전을 무시한다는 의미였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법률과 통치의 공정성을 착실하게 견지하면서 그러한 그의 태도에 대한 악인들의 모욕은 무시한 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내가 생각한 바 대로) 만일 그가 선량한 사람이 치욕을 겪고 있는데도 자신이 개입하기를 꺼린 것을 의미한다면 그가 대범하다기 보다는 그가 나쁜 인물이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재판정에서 악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하였다(솔로몬은 이러한 사태를 개탄하였다; 전 3:16). 그런데 그러한 일을 제지하거나 제압하는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갈리오는 재판관으로서 소스데네를 보호해야만 했으며, 그를 폭행한 희랍인들을 제어하고 처벌해야만 옳았었다. 사실 누가 거리에서나 시장에서 폭행을 당한다면 쉽게 도움을 베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재판하는 곳 즉 바로 법정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재판관이 앉아서 방관만 하고 있다면서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라고 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 59:14, 15).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듣고도 그들에게 아무런 동정도 베풀지 않으며 관심도 갖지 않으며 동정도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는 자들은 그들이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그들은 선한 사람이 그의 면전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 일에 관계치 아니한” 본문의 갈리오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시온에 편히 앉아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들”과 같으며(암 6:6) “수산 성은 어지러운데도 앉아서 술만 마시는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과 같은 자들인 것이다(에 3:15). 희랍인들이 소스테네를 잡아다가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린 것은 사실 재판정을 모욕하는 행위였다(역주:흠정판에는 희랍인들로 되어 있음). 이 일에 관하여는 많은 가정들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소스테네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그를 능욕한 희랍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가설로는 소스테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의 특별한 친구로서 갈리오가 그 소송을 기각시켜 버리자 바울을 위해 앞장 서서 그의 안전을 도모하여 그를 피신시켰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를 보호한 소스데네에게 덤벼들었던 것 같다. 고린도의 저명 인사로 바울의 친구인 소스데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사역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그를 그의 형제라고 불었으며 또한 그와 연명으로 편지를 띠우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1).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디모데를 취급하였던 것과 같이 소스데네를 취급하였다. 그리고 본문의 소스데네가 고린도 전서의 소스데네와 동일 인물인 것이 사실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회당장이였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그리스도보와 공동 회당장이라는 말이든가 아니면 그리스보의 관할 회당이 아닌 다른 회당의 회당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희랍인들이 소스데네를 학대하였다고 하였는데 (역주:한글 개역에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라고만 되어 있음)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는 일에 유대인들과 합세한 그리스계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희랍인들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4, 6절). 그리고 본토 유대인들은 이들로 폭행을 가하게 함으로 자기들이 받을 비난을 다소나마 모면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소스데네를 때린 것은 바울에 대하여 매우 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갈리오에 대해서도 격분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갈리오가 그들의 고소를 고려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재판 자리 앞에서 스소테네를 때린 것은 그것을 통하여 사실 그들이 갈리오를 무시한다는 것을 갈리오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였다. 만일 갈리오가 그들의 기소를 집행자이기를 원치 않으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법정만 그 일로 인하여 모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재판관도 역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였다.” 만일 이러한 그의 태도가 악한들의 도전을 무시한다는 의미였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법률과 통치의 공정성을 착실하게 견지하면서 그러한 그의 태도에 대한 악인들의 모욕은 무시한 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내가 생각한 바 대로) 만일 그가 선량한 사람이 치욕을 겪고 있는데도 자신이 개입하기를 꺼린 것을 의미한다면 그가 대범하다기 보다는 그가 나쁜 인물이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재판정에서 악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하였다(솔로몬은 이러한 사태를 개탄하였다; 전 3:16). 그런데 그러한 일을 제지하거나 제압하는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갈리오는 재판관으로서 소스데네를 보호해야만 했으며, 그를 폭행한 희랍인들을 제어하고 처벌해야만 옳았었다. 사실 누가 거리에서나 시장에서 폭행을 당한다면 쉽게 도움을 베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재판하는 곳 즉 바로 법정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재판관이 앉아서 방관만 하고 있다면서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라고 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 59:14, 15).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듣고도 그들에게 아무런 동정도 베풀지 않으며 관심도 갖지 않으며 동정도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는 자들은 그들이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그들은 선한 사람이 그의 면전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 일에 관계치 아니한” 본문의 갈리오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시온에 편히 앉아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들”과 같으며(암 6:6) “수산 성은 어지러운데도 앉아서 술만 마시는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과 같은 자들인 것이다(에 3:15).

18:18 바울의 에베소와 예루살렘 방문(사도행전 18:18-23)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얼마간 휴식을 취한 후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을 매우 분주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조용히 앉아 있거나 바쁘게 움직이거나 간에 그것은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도록 하자. Ⅰ. 바울의 고린도 작별(18절). 1. 바울은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한 후 얼마간 기간이 지나기까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소에서는 폭풍(박해)이 일어나면 즉시 떠났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고린도에서는 폭풍이 일어나다 곧 가라앉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우리에게 이때 갈리오는 사적으로 바울과 면대하였고 또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전해 준다. 또 몇몇 고대 교부들은 이러한 교제가 계기가 되어 바울과 갈리오의 형제인 세네카 사이의 서신 왕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이 일 후에”즉 소송 사건이 있은 후에는 “바울이 더 여러 날을 유하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체류를 앞서 언급한 “일년 육개월”을 초과한 여러 날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1절). 이제 바울은 그의 노고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더욱 계속해서 노력하였다.

2. 바울이 떠날 때, 그는 그의 형제들과 진지하고도 많은 사랑과 적절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누면서 작별을 하였다. 또한 작별 기도를 하고 좋은 것은 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권계하면서 또한 거짓 사도들의 간계에 대하여 필요한 주의 사항을 그들에게 전하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별 설교는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을 것이다.

3.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함께” 데리고 갔다. 그것은 그들이 바울과 동행할 의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고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꺼려한 것은 그들의 선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는 것처럼 나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과 바울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정이 맺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떠나갈 때 그들은 바울과 함께 동행하기를 간청했다.

4.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떠난 자들이 기항하는 항구인 겐그레아에서 바울 또는 아굴라 둘 중의 한 사람이(한글 개역에는 바울로 되어 있지만 희랍어 사본대로 하면 누구인지 구분이 되어져 있지 않다) 머리를 깎았다.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본문에 보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고 하였다. 이는 유대 땅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그 일을 성전 안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도 그 일을 이행할 수가 있었다. 나실인의 머리는 그의 구별됨이 우연히 더럽혀졌을 때 그러한 경우에 그는 다시 시작해야만 하므로 머리를 깎아야 했다(민 6:9). 또는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즉 그 기간이 만료 됐을 때도 그의 머리를 밀었다(민 6:13-18). 우리는 본문에서 머리를 깎은 것이 바로 후자의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깎은 것이 아굴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2절) 유대교를 쉽게 떠나는 것아 아쉬워서 관례보다 특별히 그러한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본다(역주:즉 유대교인으로서의 아굴라의 서운이 그 때 끝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바울에 관계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어떤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가 또 한번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21:24, 26). “그것은 유대인을 얻기 위하여는 유대인이 된다”(고전 9:20)고 하는 바울 자신의 방침에 따라 그가 유대인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실인의 서원이 비록 제의적인 것이고 또 폐하여질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도덕적이며 경건한 의미를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머리를 깎은 것은(나실인의 기간이 끝나면 머리를 밀었듯이) 유대의 모든 제의적인 율법이 종식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실인들은 선지자들과 관계가 밀접하였다(암 2:11). 그들은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애 4:7). 그러므로 바울이 잠시 동안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고 또 머리를 깎으므로 유대인들에게도 자신이 호감을 얻으려 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동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이 서원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한 후 얼마간 기간이 지나기까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소에서는 폭풍(박해)이 일어나면 즉시 떠났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고린도에서는 폭풍이 일어나다 곧 가라앉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우리에게 이때 갈리오는 사적으로 바울과 면대하였고 또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전해 준다. 또 몇몇 고대 교부들은 이러한 교제가 계기가 되어 바울과 갈리오의 형제인 세네카 사이의 서신 왕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이 일 후에”즉 소송 사건이 있은 후에는 “바울이 더 여러 날을 유하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체류를 앞서 언급한 “일년 육개월”을 초과한 여러 날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1절). 이제 바울은 그의 노고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더욱 계속해서 노력하였다.바울이 떠날 때, 그는 그의 형제들과 진지하고도 많은 사랑과 적절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누면서 작별을 하였다. 또한 작별 기도를 하고 좋은 것은 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권계하면서 또한 거짓 사도들의 간계에 대하여 필요한 주의 사항을 그들에게 전하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별 설교는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을 것이다.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함께” 데리고 갔다. 그것은 그들이 바울과 동행할 의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고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꺼려한 것은 그들의 선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는 것처럼 나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과 바울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정이 맺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떠나갈 때 그들은 바울과 함께 동행하기를 간청했다.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떠난 자들이 기항하는 항구인 겐그레아에서 바울 또는 아굴라 둘 중의 한 사람이(한글 개역에는 바울로 되어 있지만 희랍어 사본대로 하면 누구인지 구분이 되어져 있지 않다) 머리를 깎았다.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본문에 보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고 하였다. 이는 유대 땅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그 일을 성전 안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도 그 일을 이행할 수가 있었다. 나실인의 머리는 그의 구별됨이 우연히 더럽혀졌을 때 그러한 경우에 그는 다시 시작해야만 하므로 머리를 깎아야 했다(민 6:9). 또는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즉 그 기간이 만료 됐을 때도 그의 머리를 밀었다(민 6:13-18). 우리는 본문에서 머리를 깎은 것이 바로 후자의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깎은 것이 아굴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2절) 유대교를 쉽게 떠나는 것아 아쉬워서 관례보다 특별히 그러한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본다(역주:즉 유대교인으로서의 아굴라의 서운이 그 때 끝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바울에 관계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어떤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가 또 한번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21:24, 26). “그것은 유대인을 얻기 위하여는 유대인이 된다”(고전 9:20)고 하는 바울 자신의 방침에 따라 그가 유대인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실인의 서원이 비록 제의적인 것이고 또 폐하여질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도덕적이며 경건한 의미를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머리를 깎은 것은(나실인의 기간이 끝나면 머리를 밀었듯이) 유대의 모든 제의적인 율법이 종식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실인들은 선지자들과 관계가 밀접하였다(암 2:11). 그들은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애 4:7). 그러므로 바울이 잠시 동안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고 또 머리를 깎으므로 유대인들에게도 자신이 호감을 얻으려 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동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이 서원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Ⅱ. 바울의 에베소 방문.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대도시요 항구였다. 1.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거기 머물러 두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의 여행에 단순히 짐스러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복음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그곳에 잠시 동안만 체류해 있기로 즉시 작정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가 없는 동안 그곳에 남겨 두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어느 곳이나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사도를 파견하여 그의 길을 예비시킨 것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사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매우 분별력이 있고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돌아올 때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 바울을 친절히 영접하고 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여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동역자”라고 부른 것이다(롬 16:3).

2. 에베소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비록 바울이 여행 도중 그곳을 잠시 들린 것이었으나 그들에게 아무런 설교도 없이 지나쳐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청중으로서가 아니라 설교자로서 “회당에 들어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19절). 비록 바울이 그를 반대하고 모욕하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포기해 버렸으나 그들 때문에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아직도 그들을 복음선포의 첫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단체의 일부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 전체 집단이나 한 종파를 다 비난해서는 안 된다.

3.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그렇게 몰아내지 않고 그에게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다(20절). 본문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그에게 더 오래 있으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주기를 청했다. 그곳 유대인들은 고린도나 다른 곳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기품이 있었고 잘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두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4. 바울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울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였다”(19, 20절)고 하였다. 그는 갈 길이 멀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서였다”(한글 개역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음:역자 주). 그것은 바울이 그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바울은 절기를 규정하는 율법이 더 이상 그를 결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이 (그것이 어떤 일이었든지 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각처에서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그 절기에 수행되어야 최선의 득이 있었다. 그 절기가 어떤 절기인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5. 바울은 이 여행이 끝날 후에 다시 에베소에 와서 얼마간 머물겠다는 그의 의도를 말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그들의 친절한 초청에 격려를 받아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선한 사업을 끝낸 후 다른 일을 모색함에 있어서 미리 비축시켜 놓은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라는 필수적인 단서를 삽입한다. 우리들의 시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다.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허락한다는 전제 아래서 약속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일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 저것고 하리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일 영이 허락한다면”(행 16:7) “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면 오리라는 것이 바울이 취한 입장이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거기 머물러 두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의 여행에 단순히 짐스러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복음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그곳에 잠시 동안만 체류해 있기로 즉시 작정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가 없는 동안 그곳에 남겨 두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어느 곳이나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사도를 파견하여 그의 길을 예비시킨 것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사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매우 분별력이 있고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돌아올 때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 바울을 친절히 영접하고 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여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동역자”라고 부른 것이다(롬 16:3).에베소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비록 바울이 여행 도중 그곳을 잠시 들린 것이었으나 그들에게 아무런 설교도 없이 지나쳐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청중으로서가 아니라 설교자로서 “회당에 들어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19절). 비록 바울이 그를 반대하고 모욕하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포기해 버렸으나 그들 때문에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아직도 그들을 복음선포의 첫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단체의 일부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 전체 집단이나 한 종파를 다 비난해서는 안 된다.에베소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그렇게 몰아내지 않고 그에게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다(20절). 본문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그에게 더 오래 있으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주기를 청했다. 그곳 유대인들은 고린도나 다른 곳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기품이 있었고 잘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두었다는 증거인 것이다.바울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울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였다”(19, 20절)고 하였다. 그는 갈 길이 멀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서였다”(한글 개역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음:역자 주). 그것은 바울이 그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바울은 절기를 규정하는 율법이 더 이상 그를 결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이 (그것이 어떤 일이었든지 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각처에서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그 절기에 수행되어야 최선의 득이 있었다. 그 절기가 어떤 절기인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바울은 이 여행이 끝날 후에 다시 에베소에 와서 얼마간 머물겠다는 그의 의도를 말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그들의 친절한 초청에 격려를 받아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선한 사업을 끝낸 후 다른 일을 모색함에 있어서 미리 비축시켜 놓은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라는 필수적인 단서를 삽입한다. 우리들의 시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다.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허락한다는 전제 아래서 약속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일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 저것고 하리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일 영이 허락한다면”(행 16:7) “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면 오리라는 것이 바울이 취한 입장이었다. Ⅲ.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그것은 매우 짧은 방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모(母) 교회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데 기여하였다. 1. 바울은 바다를 건너서 예루살렘 곁에 있는 항구에 당도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21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였다”(22절)고 하였다. 바울은 바다 여행을 선택했다. 그것은 안전과 신속을 위해서였고 “주님의 역사와 깊은 곳에서의 그의 행하시는 기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본래는 욥바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항구였다. 그러나 헤롯은 욥바 항구가 사용하는 데 위험스러웠으므로 가이사랴 향을 개설하였고 그 후 이곳이 일반적으로 이용되었다.

2. 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여기 언급된 교회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라고 강조하여 부른 것은 예루살렘에 그리스도 교회가 시작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행 15:4).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룩한 성공을 계기로 그가 그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그들과는 독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영예를 안겨 주었으므로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진 신세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 바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은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순수한 심정으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을 향한 그의 진심어린 선의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간다고 하여 옛날 친구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전에 맺은 우의를 다시 상기시켜 다짐한다.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훌륭한 사람들을 사역자들이 기쁨으로 여겨야 할 일이다. 예루살렘의 사역자들은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고 바울은 끊임없이 지방을 순회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므로 그가 떠나 있을 때도 그들이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그가 그들과 합류할 때 그들을 반갑게 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이 서로 상대방의 평안과 성공을 축하하고 또 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2) 그것은 잠시 동안의 방문에 불과하였다. 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아마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곧 그들을 떠났다. 그것이 일시적인 방문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바울은 그럼에도 이것을 위하여 기나긴 여행을 하였다. 이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그러한 곳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흩어지고 분산된 “세상의 소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때로 서로를 만나서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비록 잠간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며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영적 교제를 더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더 열심히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바다를 건너서 예루살렘 곁에 있는 항구에 당도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21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였다”(22절)고 하였다. 바울은 바다 여행을 선택했다. 그것은 안전과 신속을 위해서였고 “주님의 역사와 깊은 곳에서의 그의 행하시는 기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본래는 욥바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항구였다. 그러나 헤롯은 욥바 항구가 사용하는 데 위험스러웠으므로 가이사랴 향을 개설하였고 그 후 이곳이 일반적으로 이용되었다.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여기 언급된 교회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라고 강조하여 부른 것은 예루살렘에 그리스도 교회가 시작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행 15:4).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룩한 성공을 계기로 그가 그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그들과는 독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영예를 안겨 주었으므로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진 신세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바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은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순수한 심정으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을 향한 그의 진심어린 선의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간다고 하여 옛날 친구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전에 맺은 우의를 다시 상기시켜 다짐한다.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훌륭한 사람들을 사역자들이 기쁨으로 여겨야 할 일이다. 예루살렘의 사역자들은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고 바울은 끊임없이 지방을 순회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므로 그가 떠나 있을 때도 그들이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그가 그들과 합류할 때 그들을 반갑게 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이 서로 상대방의 평안과 성공을 축하하고 또 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그것은 잠시 동안의 방문에 불과하였다. 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아마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곧 그들을 떠났다. 그것이 일시적인 방문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바울은 그럼에도 이것을 위하여 기나긴 여행을 하였다. 이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그러한 곳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흩어지고 분산된 “세상의 소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때로 서로를 만나서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비록 잠간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며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영적 교제를 더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더 열심히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Ⅳ. 바울은 먼저 그가 복음을 전파했던 여러 지방들을 거쳐서 돌아 온다. 1.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얼마간 머물렀다”(23절). 바울은 그곳에서 그의 옛 친구들을 만나 보았다. 그곳으로 바울은 낸 처음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었다(행 13:1).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사역자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자신이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하였다. 신실한 사역자가 그의 친구들과 휩싸여 얼마 동안 같이 있는다고 하는 것은 기분전환에 더없이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쇠는 쇠붙이에 의해서 날카롭게 되듯이 사람은 그의 친구들을 대함으로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바울의 안디옥 방문은 지난 날을 회고하게 하였으며 그것은 바울에게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2.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녔다.” 그곳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파하였고 교회를 설립하였었다. 이곳들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행 16:6) 갈라디아서 4장 14, 15절에서 나타난 대로 그곳에서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가 처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과 그리고 그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받아들였음을 말한다. 바울은 이들 시골 교회들(이 교회들이 시골 교회들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갈라디아 지방의 어느 도시에 교회가 있다는 말을 성경에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을 바울은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그가 심기 위해 수고를 하였던 교회들에 물을 주고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바울이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과 그들의 사역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바울의 그들과의 접견은 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다. 바울은 그들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설교를 또한 그들에게 하였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각오와 그를 향한 그들의 경건한 애정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제자들은 허약한 약점들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힘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사역자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회중 모두를 강건하게 해야 한다. 즉 그들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도록 그들을 이끌므로 그들을 강건케 해야 한다. 그들의 허약함 속에서 그들의 힘이 온전하여지고 또한 사역자 자신이 그들의 힘이요 노래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얼마간 머물렀다”(23절). 바울은 그곳에서 그의 옛 친구들을 만나 보았다. 그곳으로 바울은 낸 처음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었다(행 13:1).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사역자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자신이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하였다. 신실한 사역자가 그의 친구들과 휩싸여 얼마 동안 같이 있는다고 하는 것은 기분전환에 더없이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쇠는 쇠붙이에 의해서 날카롭게 되듯이 사람은 그의 친구들을 대함으로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바울의 안디옥 방문은 지난 날을 회고하게 하였으며 그것은 바울에게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녔다.” 그곳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파하였고 교회를 설립하였었다. 이곳들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행 16:6) 갈라디아서 4장 14, 15절에서 나타난 대로 그곳에서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가 처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과 그리고 그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받아들였음을 말한다. 바울은 이들 시골 교회들(이 교회들이 시골 교회들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갈라디아 지방의 어느 도시에 교회가 있다는 말을 성경에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을 바울은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그가 심기 위해 수고를 하였던 교회들에 물을 주고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바울이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과 그들의 사역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바울의 그들과의 접견은 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다. 바울은 그들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설교를 또한 그들에게 하였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각오와 그를 향한 그들의 경건한 애정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제자들은 허약한 약점들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힘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사역자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회중 모두를 강건하게 해야 한다. 즉 그들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도록 그들을 이끌므로 그들을 강건케 해야 한다. 그들의 허약함 속에서 그들의 힘이 온전하여지고 또한 사역자 자신이 그들의 힘이요 노래가 되어야 한다.

18:24 전도자 아볼로(사도행전 18:24-28) 거룩한 역사서인 본서는 여행 중에 있는 바울의 문제를 감간 떠나 본문에서는 에베소에 있는 아볼로에 대하여 몇 가지 언급하고 있다. 본문은 바울 서신의 몇몇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Ⅰ. 에베소에 당도한 아볼로의 특성이 소개되고 있다. 1. 그는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의 양친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진 이래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시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리라”고 전해 예언되었던 그대로(신 28:68) 그 도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방신의 이름의 하나인 아폴로(Apollos)고 아니라 아볼로스(Apollos)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가 로마서 16장 10절에 나오는 아벨레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2. 그는 재간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공적인 봉사 활동을 위하여 매우 적합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그는 “학문이 많고 (구약)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약 성경을 늘 접촉하며 성장하였다.

(1) 그는 언변이 좋았다. 그는 “구변이 좋은”사람이었다(역주:한글 개역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 하였으나 흠정판은 구변이 좋은 사람으로 나옴. 공동 변역 성경 또한 흠정판 영어 성경과 동일함). 희랍어 본문은 avnhb lo,gioj – 즉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historiarum peritus – 즉 훌륭한 역사가라고도 생각한다. 여하간 이러한 자질은 전도에 유익한 자질이었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도 적절하고 상세하고 또 충분하며 유창하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2) 그는 또한 성경에 능한 자였다. 이것은 특히 그에게 있어서 뛰어난 점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에베소에 이르렀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성서 해석의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과 또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널리 알려진 장소인 에베소에 와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려고 하였다. 그는 성경에 정통해 있어서 본문을 찾아 보지 않고서도 즉석에서 인용하거나 그것들을 암송하고 또 그런 말씀은 어느 곳에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많은 육에 속한 유대인들이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리켜 “지식의 형태”나 “율법의 문자”에나 정통한 자들이라고 일컬어졌었다) “성경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하여 강력하게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다. 그의 성서 주석과 응용에는 확신시키고 복종하게 하며 진리를 수호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는 많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성경에 대한 지식을 입증하고 성경에 대한 그의 능력을 입증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3.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복음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과 기독교의 근본 원리,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이 세상에 오신 선지자이다”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이 근본 개념은 아볼로와 같이 성경에 능한 자들은 쉽게 용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때의 징조”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모나 또는 사역자들에 의해서 복음에 대하여 “배웠다.” 또는 “kathchmeoj”라는 원어의 뜻대로 한다면 “교리 문답식으로” 복음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에 의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얼마간 가르침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이 주의 말씀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배워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의 입으로 주의 말씀을 외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그의 가던 길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

4. 그럼에도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요한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였다. 즉 그는 주의 길 자체보다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주의 길에 대한 준비 단계”밖에는 몰랐다.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또한 성령이 강림한 이후 어떤 사도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였었다. 또한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을 뿐이고 제자들이 오순절에 받은 것처럼 성령으로 세례받지는 못하였다. 그는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의 양친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진 이래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시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리라”고 전해 예언되었던 그대로(신 28:68) 그 도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방신의 이름의 하나인 아폴로(Apollos)고 아니라 아볼로스(Apollos)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가 로마서 16장 10절에 나오는 아벨레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그는 재간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공적인 봉사 활동을 위하여 매우 적합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그는 “학문이 많고 (구약)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약 성경을 늘 접촉하며 성장하였다.그는 언변이 좋았다. 그는 “구변이 좋은”사람이었다(역주:한글 개역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 하였으나 흠정판은 구변이 좋은 사람으로 나옴. 공동 변역 성경 또한 흠정판 영어 성경과 동일함). 희랍어 본문은 avnhb lo,gioj – 즉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historiarum peritus – 즉 훌륭한 역사가라고도 생각한다. 여하간 이러한 자질은 전도에 유익한 자질이었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도 적절하고 상세하고 또 충분하며 유창하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그는 또한 성경에 능한 자였다. 이것은 특히 그에게 있어서 뛰어난 점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에베소에 이르렀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성서 해석의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과 또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널리 알려진 장소인 에베소에 와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려고 하였다. 그는 성경에 정통해 있어서 본문을 찾아 보지 않고서도 즉석에서 인용하거나 그것들을 암송하고 또 그런 말씀은 어느 곳에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많은 육에 속한 유대인들이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리켜 “지식의 형태”나 “율법의 문자”에나 정통한 자들이라고 일컬어졌었다) “성경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하여 강력하게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다. 그의 성서 주석과 응용에는 확신시키고 복종하게 하며 진리를 수호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는 많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성경에 대한 지식을 입증하고 성경에 대한 그의 능력을 입증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복음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과 기독교의 근본 원리,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이 세상에 오신 선지자이다”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이 근본 개념은 아볼로와 같이 성경에 능한 자들은 쉽게 용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때의 징조”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모나 또는 사역자들에 의해서 복음에 대하여 “배웠다.” 또는 “kathchmeoj”라는 원어의 뜻대로 한다면 “교리 문답식으로” 복음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에 의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얼마간 가르침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이 주의 말씀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배워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의 입으로 주의 말씀을 외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그의 가던 길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그럼에도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요한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였다. 즉 그는 주의 길 자체보다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주의 길에 대한 준비 단계”밖에는 몰랐다.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또한 성령이 강림한 이후 어떤 사도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였었다. 또한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을 뿐이고 제자들이 오순절에 받은 것처럼 성령으로 세례받지는 못하였다. Ⅱ. 우리는 본문에서 그의 재능이 에베소에서 받아들여지고 또 증진된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는 선을 행하고 또 선한 것을 얻을 기회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었고 그는 이 두 가지를 다 발견하였다. 1. 아볼로는 그곳에서 그의 재능을 공개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그는 아마 유대인의 회당의 교사로서 적임자라는 추천을 받은 것 같고 또 그는 그가 받은 재능과 “주어진 은사의 분량에 따라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25절). 그리하여 그는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말하며 가르쳤다.” 비록 그는 사도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갖지 못했어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그 분량은 각각 다르더라도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맞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는 비유로써 그의 사역자들에게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아볼로가 지식과 언변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성경에 능한 자였다.” 아볼로는 유용한 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다음에 우리는 그가 어떻게 하여 설교자로서의 더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되는가 보기로 하자. 그의 본은 모든 설교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다.

(1) 그는 생기발랄한 열정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머리도 좋았고 또한 성품도 훌륭했다. 그는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신의 광채뿐만 아니라 신의 빛을 열(熱)도 가진 사람으로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태우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귀중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충만하였다. 그의 이러한 점은 그가 “회당의 지도자들에게 부름을 받았을 때 서슴없이 말씀을 전하였고 또 열정적으로 설교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설교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그의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품인가! 열심히 많은 사마들은 지식에는 약하다. 그들은 성서의 지식이 모자라 적당한 말씀을 찾아 내지도 못하며 또 부적당한 인용문으로 설교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하며, 많이 배웠고 현명한 사람들은 생명력과 열심이 없다. 그러나 아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그의 일을 위하여 완전무결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말솜씨나 열심을 다 갖추었으며 신에 대한지식과 신에 대한 사랑도 충만하였다.

(2) 그는 근면하게 노력하는 전도자였다. “그는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쳤다.” 그는 전도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했다. 또한 그는 상세하게 말씀을 전했다. 그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 또는 그의 희생이 깃들지 않은 것은 회당이나 하나님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그가 전할 말씀을 자신이 음미해 보고 그리고는 그의 전도를 받을 사람들에게 힘을 기울여 그들의 인상에 남도록 말씀을 전했다. “그는 근면하게 가르쳤다.” 또한 a,kribwj”라는 어의대로 하면 “정확하게, 엄밀하게 가르쳤다. 그는 말씀을 전하기 전이네 꼭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3) 그는 복음적인 설교자였다. 비록 그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복음의 시초였고 또한 그는 복음에 근접해 있었다. 왜냐하면 아볼로는 주에 관한 것 즉 주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가르쳤고 주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또한 주를 높이게 할 그런 경향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한 주제는 메시야의 왕국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비록 그가 제의적 율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의 유대 청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이방 철학에 관한 것을 주제로 매우 잘 얘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주에 대한 것들만을 가르쳤다.

(4) 그는 용기있는 전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였다”(26절). 그는 그가 말한 진리를 알고 또 그것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의 가치를 알고 또 그것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권력자들도 있었던 “회당에서” 아볼로는 하나님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그들이 그가 전하는 내용에 대하여 편견을 지닌 것도 알고 있었다.

2. 아볼로는 그곳에서 사사로이 그의 은사(지식)을 더 많이 증가시켰다. 그는 연구를 통해서 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만일 에베소에 바울이나 혹은 다른 사도나 설교자가 있었다면 그가 아볼로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조력자가 없었기 때문에 “천막 만다는 사람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의 회당에서의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볼로는 그들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적었지만 공적인 섬김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그 모임에 근면하고 충실하게 참석함으로써 그들은 아볼로의 사역을 격려하였다. 이같이 장래가 있는 젊은 사역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격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이 의(義)로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아볼로의 기독교에 관한 지식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그들과 같은 집에 유숙시키고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일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길을 “더욱 완전히” 가르쳤다. 그들은 그에게서 발견한 결함을 아볼로를 비난하는 데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헐뜯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볼로를 강단에 서기에 적당치 않은 애숭이 전도자라 칭하지 않았고 그가 다만 요한의 세례에 대한 지식만 지녔다고 하여 그가 일하기에는 부적당한 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과의 오랫 동안의 친밀한 대화에 의해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전하고 그가 전에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제시하고 방법론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1]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실례를 보게 된다. 가진 자 또 가진 것을 활용하는 자는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그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하게 장사한 사람은 곧 그것을 두 배로 늘렸던 것이다.

[2]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례를 우리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서 보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능력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하였다. 아굴라는 사실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회당에서 이야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볼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공적인 일을 위한 그러한 재능을 그는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볼로에게 지식을 제공하였고 그 지식을 그의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전하도록 하였다. 사적인 대화에 의해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신진 사역자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복음으로 잘 성장하고 또 그 사역을 잘 수행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나 교회에 다같이 유익한 것이다.

[3] 아볼로의 진실된 겸손의 실례를 우리는 보게 된다. 그는 여러 가지 재능이 많고 학식이 있는 매우 총명한 젊은이였다. 그는 이제 막 대학 과정을 마치고 새로 사회에 배출되었고 또 인기있는 설교자였으며 또 능력있게 외침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현명하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임을 발견하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경험적으로나 거시적으로 많은 것을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록 그들이 기술자로 가난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지만 그는 그들에게서 기꺼이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결점과 잘못에 대한 그들의 지적을 받아들였으며 또 그들에 의해 그것을 수정하고 그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 젊은 학생들이 원숙한 실천가들에 의하여 정통하게 되듯이 신입 교인들은 오래 믿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도록 해야 한다. 아볼로는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웠지만” 그가 전에 획득했던 지식에 머물러 있으려 하거나 그가 누구 못지 않게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러한 결점은 교만하고 속기 쉬운 젊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그는 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므로 완전하게 되기를 기꺼이 원했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알기를 갈망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더 잘 알고자 노력하여 완전에 이르기까지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4] 본문에서 우리는 비록 회당이나 교회에서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적인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지식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한 훌륭한 부인의 실례를 보게 된다. 바울은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다(딛 2:3, 4). 아볼로는 그곳에서 그의 재능을 공개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그는 아마 유대인의 회당의 교사로서 적임자라는 추천을 받은 것 같고 또 그는 그가 받은 재능과 “주어진 은사의 분량에 따라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25절). 그리하여 그는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말하며 가르쳤다.” 비록 그는 사도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갖지 못했어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그 분량은 각각 다르더라도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맞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는 비유로써 그의 사역자들에게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아볼로가 지식과 언변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성경에 능한 자였다.” 아볼로는 유용한 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다음에 우리는 그가 어떻게 하여 설교자로서의 더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되는가 보기로 하자. 그의 본은 모든 설교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다.그는 생기발랄한 열정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머리도 좋았고 또한 성품도 훌륭했다. 그는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신의 광채뿐만 아니라 신의 빛을 열(熱)도 가진 사람으로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태우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귀중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충만하였다. 그의 이러한 점은 그가 “회당의 지도자들에게 부름을 받았을 때 서슴없이 말씀을 전하였고 또 열정적으로 설교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설교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그의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품인가! 열심히 많은 사마들은 지식에는 약하다. 그들은 성서의 지식이 모자라 적당한 말씀을 찾아 내지도 못하며 또 부적당한 인용문으로 설교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하며, 많이 배웠고 현명한 사람들은 생명력과 열심이 없다. 그러나 아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그의 일을 위하여 완전무결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말솜씨나 열심을 다 갖추었으며 신에 대한지식과 신에 대한 사랑도 충만하였다.그는 근면하게 노력하는 전도자였다. “그는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쳤다.” 그는 전도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했다. 또한 그는 상세하게 말씀을 전했다. 그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 또는 그의 희생이 깃들지 않은 것은 회당이나 하나님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그가 전할 말씀을 자신이 음미해 보고 그리고는 그의 전도를 받을 사람들에게 힘을 기울여 그들의 인상에 남도록 말씀을 전했다. “그는 근면하게 가르쳤다.” 또한 a,kribwj”라는 어의대로 하면 “정확하게, 엄밀하게 가르쳤다. 그는 말씀을 전하기 전이네 꼭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였다.그는 복음적인 설교자였다. 비록 그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복음의 시초였고 또한 그는 복음에 근접해 있었다. 왜냐하면 아볼로는 주에 관한 것 즉 주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가르쳤고 주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또한 주를 높이게 할 그런 경향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한 주제는 메시야의 왕국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비록 그가 제의적 율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의 유대 청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이방 철학에 관한 것을 주제로 매우 잘 얘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주에 대한 것들만을 가르쳤다.그는 용기있는 전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였다”(26절). 그는 그가 말한 진리를 알고 또 그것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의 가치를 알고 또 그것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권력자들도 있었던 “회당에서” 아볼로는 하나님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그들이 그가 전하는 내용에 대하여 편견을 지닌 것도 알고 있었다.아볼로는 그곳에서 사사로이 그의 은사(지식)을 더 많이 증가시켰다. 그는 연구를 통해서 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만일 에베소에 바울이나 혹은 다른 사도나 설교자가 있었다면 그가 아볼로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조력자가 없었기 때문에 “천막 만다는 사람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의 회당에서의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볼로는 그들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적었지만 공적인 섬김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그 모임에 근면하고 충실하게 참석함으로써 그들은 아볼로의 사역을 격려하였다. 이같이 장래가 있는 젊은 사역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격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이 의(義)로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아볼로의 기독교에 관한 지식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그들과 같은 집에 유숙시키고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일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길을 “더욱 완전히” 가르쳤다. 그들은 그에게서 발견한 결함을 아볼로를 비난하는 데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헐뜯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볼로를 강단에 서기에 적당치 않은 애숭이 전도자라 칭하지 않았고 그가 다만 요한의 세례에 대한 지식만 지녔다고 하여 그가 일하기에는 부적당한 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과의 오랫 동안의 친밀한 대화에 의해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전하고 그가 전에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제시하고 방법론적으로 설명해 주었다.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실례를 보게 된다. 가진 자 또 가진 것을 활용하는 자는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그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하게 장사한 사람은 곧 그것을 두 배로 늘렸던 것이다.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례를 우리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서 보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능력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하였다. 아굴라는 사실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회당에서 이야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볼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공적인 일을 위한 그러한 재능을 그는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볼로에게 지식을 제공하였고 그 지식을 그의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전하도록 하였다. 사적인 대화에 의해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신진 사역자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복음으로 잘 성장하고 또 그 사역을 잘 수행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나 교회에 다같이 유익한 것이다.아볼로의 진실된 겸손의 실례를 우리는 보게 된다. 그는 여러 가지 재능이 많고 학식이 있는 매우 총명한 젊은이였다. 그는 이제 막 대학 과정을 마치고 새로 사회에 배출되었고 또 인기있는 설교자였으며 또 능력있게 외침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현명하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임을 발견하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경험적으로나 거시적으로 많은 것을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록 그들이 기술자로 가난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지만 그는 그들에게서 기꺼이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결점과 잘못에 대한 그들의 지적을 받아들였으며 또 그들에 의해 그것을 수정하고 그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 젊은 학생들이 원숙한 실천가들에 의하여 정통하게 되듯이 신입 교인들은 오래 믿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도록 해야 한다. 아볼로는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웠지만” 그가 전에 획득했던 지식에 머물러 있으려 하거나 그가 누구 못지 않게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러한 결점은 교만하고 속기 쉬운 젊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그는 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므로 완전하게 되기를 기꺼이 원했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알기를 갈망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더 잘 알고자 노력하여 완전에 이르기까지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본문에서 우리는 비록 회당이나 교회에서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적인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지식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한 훌륭한 부인의 실례를 보게 된다. 바울은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다(딛 2:3, 4). Ⅲ. 이제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를 섬기는 일에 승진 발탁된다. 그곳은 당시의 에베소보다 그가 더 유용하게 일할 수 있는 장소였다. 바울은 복음의 수래를 특별히 아가야의 시청 소재지인 고린도에서 활발히 움직이게 하였다(역주:복음의 수래는 아볼로를 말함). 고린도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에 의해 마음이 감동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확신시키는 일이 필요하였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 때문에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을 설파시킬 필요도 있었다. 바울은 다른 일로 부름을 받아 그곳에 가고 거기 있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제 아볼로로 이 공백을 메꾼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는 심는 것보다 물을 주는 데 적합한 사람이었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교회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설립되어 있는 교회들을 튼튼히 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더 살펴 보자. 1. 그가 이 일에로 부름을 받은 것은 바울이 마게도냐에로 부름을 받을 때와 같이 환상에 의해서도 아니고 그가 가려고 작정한 곳 사람들의 초청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1) 아볼로는 자신이 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라고 하였다. 그는 그곳 교회의 상황을 듣고 그가 그들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할 결심이 그에게 생겼다. 비록 그곳에는 영적인 은사로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볼로는 그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2) 그의 친구들이 그곳에로 가고자 하는 아볼로를 격려했고 그의 목적을 찬성하였다. 아볼로는 그곳 아가야에 대해서는 전혀 낯선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은 아가야에 있는 제자들에게 아볼로를 받아들이고 그를 채용하기를 권하는 추천서를 그에게 지참시키었다. 사역자들이 본문의 아볼로의 경우처럼 교회를 옮길 의향이 있을 때는 교인들과 사역자들이 그를 서로 추천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고 이렇게 함으로 교회 간의 교제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에베소 사람들이 아볼로가 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지만 그들은 아가야 사람들이 받게 될 이익을 시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고린도 교회를 잘 안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그를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비록 그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사실 하나이기 때문이다.

2. 아볼로는 그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의 의도와 기대는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충족되었다.

(1) 신자들은 대단히 교화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믿음이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저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27절)고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

[1]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믿게 된 것이 온전히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려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이다.

[2] 은혜로 말미암아 믿게 된 사람들도 계속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기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그들 안에 불신의 요소는 남아 있게 마련이며 또한 온전케 되어야 할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의 결함이 있으며 성취되어야 하는 신앙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3] 신실한 사역자들은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들을 많이 돕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그들은 신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불신자들은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그들의 반대 의견은 충분히 답변되었고 그들 주장의 어리석음과 괴변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기들의 입장을 수호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입은 닫혔고 그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28절). “그는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셨다.” 그는 euvtonwj – 즉 열심히 또는 대단한 열정으로 그 일을 하였다. 그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 일을 수행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또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참으로 열망하는 사람답게 오직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그는 그 일을 levi neqptio – 즉 능수능란하게 하였다.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그의 입장이 분명했고 또 그를 위한 논거가 확고했으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에 반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을 좌절시키는 것은 쉬웠다. 비록 그들이 사나왔다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떳떳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거리낌없이 그들의 반대를 무찔러 버렸다. 이제 그가 그들을 확신시키려고 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또한 그들의 조상들에게 오리라고 약속된 메시야이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들은 이 다른 사람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만 한다면 그들 자신의 율법까지도 그들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사역자들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아볼로가 그들을 확신시킨 방법은 “성경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는 논쟁이 있어서 기선을 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룩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성경에 능한 그가 성경으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사역자들은 다만 진리를 설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증명하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온순함으로 그러나 능력있게 반대자들을 확신시키고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진정한 섬김인 것이다.

그가 이 일에로 부름을 받은 것은 바울이 마게도냐에로 부름을 받을 때와 같이 환상에 의해서도 아니고 그가 가려고 작정한 곳 사람들의 초청에 의해서도 아니었다.아볼로는 자신이 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라고 하였다. 그는 그곳 교회의 상황을 듣고 그가 그들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할 결심이 그에게 생겼다. 비록 그곳에는 영적인 은사로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볼로는 그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다.그의 친구들이 그곳에로 가고자 하는 아볼로를 격려했고 그의 목적을 찬성하였다. 아볼로는 그곳 아가야에 대해서는 전혀 낯선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은 아가야에 있는 제자들에게 아볼로를 받아들이고 그를 채용하기를 권하는 추천서를 그에게 지참시키었다. 사역자들이 본문의 아볼로의 경우처럼 교회를 옮길 의향이 있을 때는 교인들과 사역자들이 그를 서로 추천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고 이렇게 함으로 교회 간의 교제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에베소 사람들이 아볼로가 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지만 그들은 아가야 사람들이 받게 될 이익을 시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고린도 교회를 잘 안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그를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비록 그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사실 하나이기 때문이다.아볼로는 그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의 의도와 기대는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충족되었다.신자들은 대단히 교화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믿음이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저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27절)고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믿게 된 것이 온전히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려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이다.은혜로 말미암아 믿게 된 사람들도 계속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기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그들 안에 불신의 요소는 남아 있게 마련이며 또한 온전케 되어야 할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의 결함이 있으며 성취되어야 하는 신앙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신실한 사역자들은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들을 많이 돕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그들은 신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불신자들은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그들의 반대 의견은 충분히 답변되었고 그들 주장의 어리석음과 괴변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기들의 입장을 수호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입은 닫혔고 그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28절). “그는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셨다.” 그는 euvtonwj – 즉 열심히 또는 대단한 열정으로 그 일을 하였다. 그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 일을 수행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또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참으로 열망하는 사람답게 오직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그는 그 일을 levi neqptio – 즉 능수능란하게 하였다.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그의 입장이 분명했고 또 그를 위한 논거가 확고했으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에 반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을 좌절시키는 것은 쉬웠다. 비록 그들이 사나왔다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떳떳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거리낌없이 그들의 반대를 무찔러 버렸다. 이제 그가 그들을 확신시키려고 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또한 그들의 조상들에게 오리라고 약속된 메시야이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들은 이 다른 사람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만 한다면 그들 자신의 율법까지도 그들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사역자들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아볼로가 그들을 확신시킨 방법은 “성경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는 논쟁이 있어서 기선을 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룩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성경에 능한 그가 성경으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사역자들은 다만 진리를 설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증명하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온순함으로 그러나 능력있게 반대자들을 확신시키고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진정한 섬김인 것이다.

사도행전 18장 1-28절 말씀 묵상

사도행전 18:1-28 말씀 묵상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사도행전 18:26).

“He began to speak boldly in the synagogue.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invited him to their home and explained to him the way of God more adequately.”(Acts 18:26)

아덴과 고린도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아덴은 문화와 지식을 대표하는 장소였으며, 고린도는 상업과 방탕의 도시였습니다. 해상 무역이 동서로 교류되고 육상 무역은 고린도를 통하여 남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고린도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예배하는 중심지로 정치적으로 로마의 식민지였고,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글라우 디오가 내린 칙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옮겨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함께 머물며 함께 장막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학자이면서도 육체 노동을 천대하지 않고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자신이 설립한 교회나 전도한 사람들에게 생계를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직업을 갖고 손수 일함으로써 겸손한 전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1-3).

바울은 훼방자들을 향하여 옷을 떨며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6)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회당을 떠나 회당 옆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가서 그 곳을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장소로 삼았습니다. 그것에서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의 가족이 믿었습니다.

환상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환상 가운데 들려온 격려의 말씀으로 바울은 용기를 얻고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9-10).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바울을 배척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단결하여 바울을 재판의 자리로까지 데려갔습니다.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고소가 그들이 신봉하는 교리나 명칭, 율법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였으며 바울이 전하고 있는 내용도 유대교 분파의 하나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재판을 거절했습니다(15).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을 사역한 다음 자기를 파송한 교회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에 서원한 일이 있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아굴라와 브기스길라는 에베소까지 동행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들러 안디옥으로 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2차 선교여행은 마치게 된 것입니다(18).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학식 있는 아볼로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요한의 세례는 알았으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지냄과 부활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령 세례는 몰랐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이 새로운 설명을 듣고 아가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성경 말씀으로 예수는 메시야라고 증거하여 유대인들을 설복시켰습니다(24-28).

주께서 주신 오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유익하게 바꾸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사도행전 18장 설교말씀]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행1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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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8장 설교말씀 중에서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행 18:5-11)

● 명제 :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두렵고 떨렸을 때 주님이 나타나셨다.

● 목적 :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침묵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구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사람을 불러 사용합니다. 그중에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그릇으로 불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전도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복음을 지켜나가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단지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 드러내면 됩니다. 복음은 원래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면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 주셨는데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이런 교만은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해 나가는 데 있어서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반드시 복음을 지켜나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셔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도구로 나를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복음을 세상을 향하여 전파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에 바울도 안식일에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바울에게 오게 됨으로 힘을 얻게 됩니다. 바울이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구원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붙잡혀: συνεχω쉬네코 4912 결합하다, 포위하다, 억압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결합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포위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처럼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붙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붙잡혀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재물에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까? 세상의 쾌락과 향락에 빠져 술의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까? 바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는데 정말 자신의 의지로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성경은 수동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계속해서 붙잡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강권적인 은혜로 십자가 복음에 붙잡혀야 합니다. 복음에 붙잡히면 세상의 쾌락이 중요하지 않고 물권과 권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더 중요하고 나의 영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말씀에 붙잡힐 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십자가 복음에 붙잡히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행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랬더니 바울을 대적하여 비방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이 옷을 털면서 말하기를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깨끗함으로 너희에게 가려고 했던 복음이 이방인에게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옷을 터는 것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으로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집에서 나올 때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렸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갈 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막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복음을 전파하러 갈 때 어느 곳에 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나올 때는 발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증거를 삼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저주가 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바울이 유대인에게 전해주었는데 이 복음을 받지 않으니 이방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πορευω포류오 4198 가다, 여행하다, 나아가다, 걷다, 행하다) 바울은 주님처럼 잃어버린 양인 유대인에게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해주었지만 유대인들이 받지 않으니 이방인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이방인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이방인의 사역을 확장시켜 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그릇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구원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행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이 준비시킨 선택자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하여 다른 일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핍박을 받음으로 이방인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름 내가 하는 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이 있다는 것도 믿기 바랍니다. 내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행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바울이 지금까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핍박하고 대적하니 이방인에게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고 하는 자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의 집은 회당 옆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쪽에서 막히니 다른 한쪽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쓰임 받을 뿐입니다.

행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을 했는데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그 열매가 회당장 그리스보입니다. 현재 회당장이 아니라 전직 회당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집안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는 엄청난 열매가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회당장 그리스보의 믿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를 믿으며: πιστευω피스튜오 4100 믿다, 신뢰하다, 순종하다) 그리스보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할 때 그리스보도 들었습니다. 이미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대적했지만 그리스보는 비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도 선택받은 자가 있습니다. 그리스보의 개종을 통해서 바울은 더 비난을 받고 핍박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 당시 회장장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 때문에 고린도에 있었던 로마인과 헬라인들의 개종이 일어나게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행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바울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주님이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말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도 어떤 일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나에게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지키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해도 주님이 지켜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도 마음만 내려놓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침묵하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주님은 바울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바울과 함께 하고 있으니 그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성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바울이 죽게 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통해서 복음을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위대하고 잘나서 주님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시려고 지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만과 오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내가 잘나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고 나를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면 교만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면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나 비행기도 운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겉모습이 아름답고 능력이 있고 재물이 많아도 주님이 나의 인생에서 빠져버리면 나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인생이 껍데기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주님이 나의 인생에 가운데 함께 하시고 나와 동행하여 주시니 인생이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복음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많습니다. 그 사람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행18: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지내면서 십자가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말씀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다른 세상적인 것을 가르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은 오직 복음밖에 없습니다. 세상 학문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윤리 도덕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겉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속사람을 깨우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파한 것처럼 나도 십자가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는 침묵하고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세상에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다시 복음으로 깨어나 속사람을 살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 복음을 침묵하지 말고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의 정치 놀음에 휘말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구원의 복음 말씀을 세상에 전파할 때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복음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바꾸어 주십니다.

인간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 바뀌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사가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오직 십자가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교회의 힘은 무리가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을 전할 때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이제 한국교회여! 깨어나 세상을 향해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담대히 외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여! 이제 깨어나 세상에 흡수되는 자가 되지 말고 복음을 전하여 주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복음에 침묵하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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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는 동역자, 말씀에 사로잡힌 전도자 (사도행전 18:1~8)

2018.07.20 생명의 삶 이기원 목사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생각은 행동을 결정하고 그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죠

지금의 나는 바로 수많은 생각이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었고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그가 생각했던 것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을 증거하며 살아온 전도자였습니다

오늘 하루 사도바울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행하고 시고 자 하는 그 일을 행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이 되는 동역자, 말씀에 사로잡힌 전도자

사도행전 18장 1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사도바울은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에 마지막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시작합니다

아덴이 문학, 과학, 예술의 도시 라면 고린도는 무역과 상업에 도시였습니다

아덴에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면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은 음란과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사람들은 물질이 풍요하고 상업으로 인해서 벌은 모든 돈들을 방탕하고 사치하고 음란한 곳에 사용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귀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바로 유명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보통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알려져 있는 귀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 브리스길라 아굴라는 그들의 직업이 천막을 이렇게 만드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바울은 고린도에서 직접 자기도 함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천막 텐트 메이커로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주 중에는 텐트 메이커로 살아가고 천막을 치면서 돈을 벌고 그리고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왜 어느 도시 어느 사람들에게는 헌금을 후원을 받고 또 고린도에서는 왜 스스로 자기가 벌어가면서 자기의 생업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사도 바울의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폐가 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이 사도 바울의 이 원칙은 지금도 많은 선교지에서 많은 선교사들에게 모범적인 그런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겠죠

여러분들 내가 그리스도인이면서 혹은 선교사 하면서 혹은 목회자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거나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부담을 준다면 그것은 복음을 오히려 방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분명하게 고린도에서는 자신이 돈을 벌어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이죠

여러분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진정 복음이 증거 되고 복음이 누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감을 바울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동역자들을 만나면서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말씀을 가리키며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때 사도 바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5절입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이것을 원문에 다른 또 다른 성경에 보면 ‘성령에 붙들려’라고 기록한 본문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그 사람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에게 맞는 말씀으로

그리고 고린도에 와서는 이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는 말씀을 복음을 증거하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함이

복음의 말씀에 오로지 붙들려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고린도와 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한복판에서 단 한가지 생존할 수 있는 필요한 도구 가 있다면 그것은 말씀이요

우리가 날마다 주고 해야 될 삶 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에 붙들린 삶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죽어 가는 이 도시를 살리고, 우상을 섬기며, 쾌락을 추구하며, 음란한 삶을 일삼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와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처럼 오직 주님의 붙잡혀 말씀에 붙들려 성령에 붙들려 살아가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굴라 부부와 바울은

서로에게 어떻게 힘이 되나요? 신앙 여정이나 사역을 함께하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며, 그들과 어떻게 협력하면 좋을까요?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물들어 있었고 물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세속적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한 바울이 복음을 증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6절에 보면 사도바울을 대적하여 비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세상 속에 빠져 있게 되면 생명이 들어와도 그것이 생명인지를 알지 못하고

복음의 진리의 말씀이 들어와도 그것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너희가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구원을 받지만 너희가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심판이 이를 것이라고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결단합니다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나는 깨끗하다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사도바울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을 너무나 사랑했고 자기 동족을 사랑한 사도 바울이 얼마나 열심을 다해서 유대인을 증거하려고 노력했는지

내가 복음을 증거하고 유대인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유대인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 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수치심과 어떠한 잘못도 앞으로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저조하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발길을 고린도에서부터 천천히 돌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여러분들 이 바울의 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이 사명

사명을 붙들고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을 받게 하려고 했던 바울의 열정을 우리는 이 6절에서 찾아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우리 주위에 있는 회사에 있는 혹은 가족에 있는 내 주위에 있는 이웃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바울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였는가 돌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에 거기서 또 다른 동역자들을 만나는데

그 사람은 디도유스도라고하는 사람과 8절에 보면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지방과 더불어 주를 믿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렇게 유대인들을 증거하기 위해서 4절에 안식일마다 가서 유대인을 증거했지만

유대인들은 다 떠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오히려 핍박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 이방인 헬라인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의 문을 열어 가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러분들 하나님은 우리가 뜻하는 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이방에 문을 열어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당신에 계획을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마찬가지로

내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이 끝났거나 당신의 계획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을 향한 소명이 사라지거나 비전이 사라지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당신에게 가장 좋은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바울을 들어 쓰시며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를 들어서 우리도 바울처럼 사용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나의 뜻과 계획이 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디도 유스도와 그리스보는 고린도 지역의 복음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사회와 주변에 어떤 영향력을 어떻게 끼칠 수 있나요?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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