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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금) “시편 69:1-18” / 작성: 정한조
소산님’이 시편의 표제어로 3번(45, 69, 80편)이 나옵니다. … 그런데 오늘 시편이 기록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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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9편 & 성경주석
시편 69편 & 성경주석 ·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 2.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 …
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4/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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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암울한 밤을 지나는 영혼의 기도 (시편 69편을 중심으로) … 바로 이러한 배경이 40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앙인의 탄원이며, 이스라엘의 와디에서 볼 수 있는, …
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6/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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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9:1~18/ 깊은 수렁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 – 라이트하우스
시편 69편은 이러한 억울함 속에 놓인 다윗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 시편 69편의 배경은 잘 알 수 없지만,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압살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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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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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9편 1-36절 말씀 묵상 – 복음뉴스
시편 69:1-36 말씀 묵상 Renewed Every Day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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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시편 69편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 – 빠져들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 들게 되는 늪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심각한 환난이나 죽음의 위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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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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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소서(시편69:1-18절) – 네이버 블로그
우리는 이 시편의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의 수많은 비탄시 가운데 하나인 시편 69편은 다윗이 통치 말년(B.C.979-971년경)에 이르러 압살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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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9편 – 교사용]
시편 69편. 부당한 고난(1-4)/절규 1. 다윗이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었다. 그런데 다윗의 이 부르짖음이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부르짖음이 된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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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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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69편,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 현대인의 성경 ]. 1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백합화’ 곡조에 맞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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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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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가 고난으로 돌아올 때 1(시 69) – 유평교회
시편 69편은 정확히 이런 경험을 기록했다. … 이 시편의 배경은 아니겠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을 때 정확히 다윗은 이런 경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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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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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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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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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금) “시편 69: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69:1-18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고뇌에 찬 부르짖음(1-4절)
오늘 본문의 표제어에는 라고 되어 있습니다. ‘소산님’이 시편의 표제어로 3번(45, 69, 80편)이 나옵니다. 성경 아래에 보시면 ‘백합화 곡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합화’의 꽃말이 ‘순결’,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소산님 곡조였던 시편 45편은 ‘왕의 결혼식’에 연주되었기에 ‘왕의 축가’라고 불리는 시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소산님(백합화 곡조)이지만, 시편 45편이 우아하고 품위 있게 꾸며진 왕궁 뜰에 피는 백합화라면, 오늘 본문 69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가장 처절한 기도를 드렸던 장소인 겟세마네 동산에 피는 백합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이 기록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8절의 ‘내가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며,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사무엘하 15장에 나오는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나, 열왕기상 1장에 나오는 넷째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전능하신 분)이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로 입을 엽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굉장히 위급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일상적으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기도를 시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주 다급한 상황에서는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물들’이 ‘영혼에까지’ 흘러왔다고 합니다. 몇 달 동안 천천히 내려야 할 비가 폭우로 몇 시간 만에 내린다면 강물이 급작스럽게 불어납니다. 그 때에 계곡에 갇혀 있다면 몹시 두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물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점점 차올라온다면 그 두려움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에서 ‘물’이 흘러온 것이 아니라 ‘물들’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다윗의 삶에 크고 작은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서 몰려온 것입니다. 그 물들은 ‘영혼’까지 밀려왔습니다. 계곡물이 계속 불어나서 처음에는 무릎까지 잠기더니, 계속 차올라 배까지, 가슴까지, 턱까지 차오르면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삶에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이 턱까지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1절보다 더 절박한 상황을 호소합니다. 1절에서는 물이 차 오르기는 했지만 턱까지 차올라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입니다. 게다가 지금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오래전에 TV에서 ‘타잔’이라는 외국 드라마를 방영에 주었습니다. 그 때에 종종 나오는 장면 중에 하나가, 타잔을 위협하던 악당이 실수로 늪에 빠져서 자신의 힘으로는 나오지 못합니다. 그 때에 한쪽에서는 큰 악어가 헤엄쳐 와서 먹히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때 어디에선가 타잔이 넝쿨을 타고 날아와 늪으로 뛰어들어서 유일하게 갖고 다니는 단검으로 악어를 죽이고, 악당을 구출해 냅니다. 그와 같은 늪이 ‘수렁’입니다.
다윗은 도저히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크고 작은 악어와 같은 사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 ‘일이라는 악어’에게 먹히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만큼 다윗의 처지는 고통스럽습니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다윗은 이제 도움을 요청할 힘마저도 없습니다. 그의 목은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아 갈라진 논처럼 말라 비틀어져서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디서 영원한 타잔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친한 친구가 3명이 있고, 친구가 30명이 있고, 아는 사람이 300명이 있고, 평생 만나는 사람들이 3000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다윗은 까닭 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자기 머리털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 개수는 약 10만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아는 사람도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모르는 사람도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강해서 빼앗지 않은 것도 물어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억울한 고통을 호소(5-12절)
(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다윗은 참 정직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대적들 앞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을 압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고,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 서면 죄인인 것을 자동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 아직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이거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둘 다이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강조되는 단어는 ‘주는(당신은)’입니다.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자신에게 얼마나 허물이 많은지를,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존재인지를 알고 계시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고백하게 되지 않습니까?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우리가 우리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것은 우리가가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로 인해서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치를 당하거나, 욕을 당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배려심이 참 깊습니다.
(7-8)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비방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자신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사람이 압살롬이든 아도니야이든지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형제(=어머니의 자녀)에게 외면당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다윗이 반란을 당했을 때에 가족들 중에서 다윗의 편을 든 사람이 거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없지만, 9절 서두에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두어가 있습니다. 즉 다윗이 가족들로부터도 외면과 배척을 당했던 것은 ‘주의 집’, 곧 ‘하나님’을 위하는 열성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가족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허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성전을 그렇게 짓기를 원했던 그 마음을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서, 처음 성전으로 올라가셨을 때에, 성전을 시장통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다윗의 이 고백,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을 기억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다윗이 가족들에게 배척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금식하면, 사람들은 금식한다고 망신을 주고, 다윗이 베옷을 입고 슬퍼하면, 사람들은 청승스럽다고 수군거리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빈정거림을 당했는데, 그러한 것들은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건져주심을 바라는 간구(13-18절)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합니다.
(13)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다윗은 외면당하는 자신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많은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진실(신실)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83장 1절 가사가 이러합니다.
나의 맘에 근심 구름 가득하게 덮이고 슬픈 눈물 하염없이 흐를 때
인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사 나를 위로할 이 누가 있을까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밖에 누가 있으랴
슬퍼 낙심될 때에 내 친구되시는 구주 예수 밖에 다시 없도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위로하시고, 세워주시는 분은 하나님,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간구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14-15)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다윗은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 빠지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도 ‘수렁’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2절의 수렁이 ‘늪’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면, 14절의 ‘수렁’은 진흙으로 된 구덩이를 의미합니다. 마치 썰물 때에 서해안 바닷가로 갔는데, 갯벌에 몸이 빠지는데 주변에는 도움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갯벌에 몸이 많이 빠져서 스스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밀물이 시작되어 물이 점점 차 올라가 갑니다. 다윗이 그와 같은 상황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16-18)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얼굴을 자신에게 돌려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기기를 갈망합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자궁’이라는 말에 왔습니다. 여인이 생명을 잉태하면, 목숨을 다해서 지킵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건져 올려 주시기를 갈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압살롬의 반란이었든, 아도니야의 반역이었든지 간에 다윗은 수많은 원수들,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배척과 외면(얼굴을 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한 평생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삶을 살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을 신앙의 사표로 우뚝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가정에, 일터와 학교에, 삶의 자리에 심으심은 우리가 그곳에서 바르게, 신실하게 행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건져 올려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하루도 삶의 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하게 되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속량을 경험하며, 삶의 자리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대책으로 사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은 참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특히 가족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터로 목숨을 걸며 먹을 것을 형들에게 갖다 주었지만 감사의 말이 아니라 핀잔과 욕을 들었습니다. 또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아내 미갈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장인인 사울왕은 군인을 3000명이나 데리고 다니며 사위인 다윗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늘그막에는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고, 아들 아도니야는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아버지로, 아버지를 임금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다윗에게는 몹시도 고통스러웠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를 걷는 것 같고,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했기에 다윗은 자신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얼굴을 보았고, 자신도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삶을 살아, 우리 신앙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다윗과 같은 일을, 그것과 같지 않을지라도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을 때에 그러한 것들 때문에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을 얼굴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대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다윗처럼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수렁에 빠진 것과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그 때에 거기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습니까?
2. 다윗은 주의 집을 사모하는 열성으로 인해서 사람들, 특히 가족들로부터도 비방을 받고 외면을 당했습니다. 당신도 그런 적이 있습니까? 그러했던 것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습니까? 또 어떻게 마무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3. 다윗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했습니다. 당신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시편 69편 & 성경주석
<시편 69편 서론>
다윗의 시, 영장으로 소산님에 맞춘 노래.
시 69편은 고통으로 인해 기가 꺾이고 동료들의 적대행위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부른 애가이다. 그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묘사하고 있지만, 신약 기자들은 이 시의 여러 구절들을 죄 없이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바울은 이 시가 다윗의 작품임을 확증하고 있다(롬 11:9).
<시편 69편 개역한글>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4.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5.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6.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
7.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
8.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10.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11.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13.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14.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15.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16.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18.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19.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20.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22.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저희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로 저희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것이라
32.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찌어다
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리할찌로다
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36.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시편 69편 성경주석>
69:1 나를 구원하소서.
1절은 이 시의 핵심을 보여 준다.
69:1 물들.
큰 고뇌의 표상(참조 시 32:6; 42:7 주석).
69:1 내 영혼.
“나”를 일컫는 관용적 표현(참조 시 16:10 주석).
69:2 깊은 수렁.
참조 시 40:2 주석.
69:2 큰 물.
히브리어 쉽볼레트(s∨ibbolet), “흘러넘치는 시내.” 사 27:12에서는 “창일하는 하수”로 번역되었다. 쉽볼레트는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발음해 보라고 요구했을 때 그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던 단어이다(참조 삿 12:6 주석).
69:3 부르짖음.
히브리어 카라(qara’). 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임.
69:3 마르며.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한 것 때문에(참조 시 22:15 주석).
69:4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예수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셨다(참조 요 15:25).
69:5 내 죄.
시인은 그의 원수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들에 관한 한 자신이 “무고히” 고난당한다고 믿고 있지만(4절),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다.
69:5 숨김이 없나이다.
참조 시 139:1~4.
69:6 나를 인하여.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로 수치를 당케 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서원한다. 여기 선언된 이 원칙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탁월한 좌우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뜻을 훼손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이 절은 두 대구가 근본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의대구법의 탁월한 본보기이다.
69:7 주를 위하여.
적의의 진짜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헌신이었다. 죄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경멸한다(참조 산상보훈, 53).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위가 죄인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69:7 수치.
여기서는 시인에게 수없이 퍼부어대는 중상모략적 비난을 일컫는다(참조 시 44:15, 16).
69:8 내 모친의 자녀.
히브리 사람들의 가족제도에서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을 가진 경우가 매우 흔하였다(참조 시 50:20).
이 절과 9, 20절에서 그리스도는 다윗을 통하여 그분이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셨다(참조 사도행적, 225).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성소는 시인의 열심의 대상이다. 다윗은 시온산으로 언약궤를 가져가는 일에(참조 삼하 6:12~19),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한 영원한 처소를 건축하기를 열망하는 일에(참조 삼하 7:2), 자신이 건축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자재들을 모으는 일에(참조 대상 28:14~18; 29:2~5), 솔로몬에게 성전에 관해서 지시하는 일에(대상 28:9~13) 자신의 열성을 나타내 보였다. 예수께서 환전상들과 장사치들을 성전 경내에서 쫓아내셨을 때 제자들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참조 요 2:17; 시대의 소망, 158; 사도행적, 225)라는 말씀이 그에 관한 것임을 기억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의가 없는 종은 설 자리가 없다.
69:9 훼방.
바울은 이 문장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신 그리스도께 적용시켰다(참조 롬 15:3; 시 89:50, 51; 렘 20:8).
69:10 금식함으로.
시인은 자아 부정을 통하여 자신을 단련하고자 노력하였다.
69:10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원수들은 시인이 신실히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인해 그를 조롱하였다(참조 7~9절).
69:11 굵은 베.
회개와 굴욕의 표시(참조 시 30:11 주석).
69:11 말거리.
히브리어 마샬(mas∨al), “속담투의 말” 또는 “조롱하는 말”(참조 시 44:14).
69:12 앉은 자.
당시에 시인을 조롱하는 무리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던 재판관들(참조 룻 4:1 주석) 또는 성문 주변에서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게으름뱅이들을 일컫는다(참조 시 9:14 주석).
69:12 나를 말하며.
사람들이 시인을 흔히 자신들의 대화 주제로 삼는다.
69:12 취한 무리.
문자적으로 “독주에 취한 자들.” 술에 취한 자들이 시인을 자신들이 부르는 상스런 풍자적 노래들의 주제로 삼고 있다(참조 시 35:15, 16). 그는 그들의 외설스런 희롱의 대상이다(참조 욥 30:9).
69:13 열납하시는 때.
문자적으로 “은혜의 때”(참조 사 49:8). 시인은 자신이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는 바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납하실 만한 때라고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69:14 수렁에서.
참조 2절.
69:15 웅덩이.
참조 시 28:1 주석.
69:16 긍휼.
참조 시 51:1 주석.
69: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참조 시 4:6 주석; 13:1; 30:7.
69:17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인은 자신이 신속히 구원받지 못하면 죽게 될 것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69:18 내 영혼.
“나”의 관용적 표현(참조 시 16:10 주석).
69:18 가까이하사.
시인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69:19 주께서…아시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확신 속에서 위안을 발견한다(참조 욥 23:10).
69:20 훼방.
20, 21절은 메시야에 적용되는 구절들이다(참조 마 27:34, 48; 사도행적, 225).
69:20 긍휼히 여길 자.
참조 사 63:5.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고통 중에 동정을 갈구하셨다(참조 시대의 소망, 687, 688,). 후에 그분은 모든 제자에게 버림을 당하셨다(참조 마 26:56; 막 14:50). 이 절은 극도의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다.
이 절의 마지막 두 구절은 완벽한 동의대구법을 형성하고 있다.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이 절의 애처로운 말들이 의역이 되어 헨델(Handel)의 오라토리오 메시야(The Mes-siah) 중 테너를 위한 서창인 “그대의 훼방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Thy Rebuke Hath Broken His Heart)의 가사가 되었다.
69:21 쓸개.
히브리어 로쉬(ro’s∨), “독초.” 신 32:33에서는 “악독”으로, 욥 20:16에서는 “독”으로, 호 10:4에서는 “독한 인진”으로 번역되었다. 막 15:23에 따르면 예수께 주어진 “쓸개”는 몰약이었다.
69:21 식물.
히브리어 바루트(barut). “위안의 빵.” 애곡하는 자를 동정하는 사람이 그에게 공급하는 음식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들의 위선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69:21 초.
메시야적 예언 성취에 관해서는 마 27:34, 48; 막 15:23; 요 19:29, 30을 참조하라.
69:22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22절에서 일련의 저주들이 시작되어 28절까지 계속된다(저주 시편에 관해서는 74, 75쪽을 참조하라). 바울은 자기 시대의 강팍한 죄인들을 묘사하기 위해 22, 23절을 인용하였다(참조 롬 11:8~10).
69:23 어두워.
혼란을 나타내는 비유(참조 고후 3:14).
69:24 부으시며.
참조 시 79:6; 렘 10:25.
69:25 거처.
히브리어 티라(t.irah). 유목민들이 천막을 쳐서 만든 원형의 숙영지 같은 “야영지” 또는 “울로 둘러막은 땅.” 따라서 이 단어는 거주지, 야영지, 성, 궁궐 등을 나타낸다. 시인은 원수들은 파멸되고,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거처는 황폐한 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 절은 유다가 맡았던 직무에 적용되고 있다(참조 행 1:20).
69:26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즉 그들이 그의 품성을 비방하고 또한 그가 고통 중에 발한 성마른 표현들을 곡해함으로, 고난받는 자의 슬픔을 가중시켰음을 의미한다(참조 시 41:5~8 주석). 이 절은 시인이 저주의 말을 하는 추가적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69:27 주의 의에.
시인은 죄인들이 의인처럼 취급받지 않고, 그들이 받아 합당한 취급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69:28 도말하사.
참조 출 32:32 주석; 시 56:8; 단 12:1; 빌 4:3; 계 3:5; 13:8.
69:29 오직 나는.
시인은 자기 자신과 앞 절들에서 언급된 원수들과를 뚜렷한 대조를 위하여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69:29 가난하고.
즉 “고난을 당하고” 또는 “고통으로 압박받고.” 시인은 교만하고 거만스런 원수들의 자만심을 꺾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더불어, 지금 고난의 늪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은 높여 달라고 기도한다. 시 69편은 시 22편(참조 22~31절)처럼 감사의 서원과 소망에 찬 찬양의 표현으로 끝맺는다.
69:30 노래로.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이 한 찬양의 서원을 이행한 것이다.
69:30 이름.
참조 시 5:11; 7:17 주석.
69:31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
레위법에 따른 아무리 완전한 제사라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69:31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참조 시 40:6~8; 51:16, 17; 삼상 15:22 주석.
69:32 온유한.
(「제임스왕역」에는 “humble”[겸손한]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또는 “온유한”,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이 시인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에 그와 합세한다.
69:32 소생케 할지어다.
즉 용기를 얻고 소생케 할지어다(참조 시 22:26).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시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이 절에 나와 있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참조 29절 주석), 곧 “심령이 가난한 자”(참조 마 5:3)를 돌보신다.
69:33 수금된 자.
그분 때문에 고통받고 포로 된 자들.
69:35 시온.
참조 시 2:6; 9:14; 68:16 주석.
69:35 유다 성읍들.
참조 51:18 주석.
모든 피조물에게 찬양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참조 시 96:11; 148장).
69:36 이름.
참조 시 5:11; 7:17 주석.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복들이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실현될 것이다(참조 삼하 7:13 주석).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시편 69:1~18/ 깊은 수렁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
내 행위와는 관계없이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나쁜 사람으로 오인(誤認)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선의(善意)로 행한 일들이 악의(惡意)처럼 회자(膾炙)되는 억울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한 때에 믿었던 자들이 오히려 내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고 나를 향한 비방과 손가락질을 해오고, 내게서 등을 돌리는 일을 겪게 되면 그 억울함은 극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신실한 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명하거나 항변하지 않기에 그 오해는 더 커져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시편 69편은 이러한 억울함 속에 놓인 다윗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69편의 배경은 잘 알 수 없지만,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압살롬의 반역이나 열왕기상 1장에 나오는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이 배경이 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 겪은 억울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표현한 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윗은 한 사람의 배신과 반역만이 아니라 자신의 충신(忠臣)이었던 이들까지 반역자의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해오는 상황을 겪으면서 더 큰 충격과 배신감과 억울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마치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수렁에 빠진 것으로 묘사합니다(1절, 2절, 14절). 수렁은 질펀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웅덩이로 물보다 헤어나오기 힘든 늪과 같은 곳입니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빠져들어 가는 늪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오기 힘든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15절에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는 것을 볼 때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도록 밀려드는 물결, 혹은 수렁의 입이 닫히는 상황으로 묘사된 것처럼 그 속에 빠져 올라갈 희망마저 막혀진 상황까지 다다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악의 상태까지 이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당하는 고난은 까닭 없는 것이기에 그 마음의 고통은 더욱 컸습니다. 차라리 내가 잘못하여 당하는 고통이라면 명백한 이유가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까닭 없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4절). 오히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하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라면 더욱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7절).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나 모두 자신이 왕이 되려고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왕위를 계승함에 있어서도 제 생각대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왕위를 계승하길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우선적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왕자들은 정치적인 이유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윗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의 정치적 상황을 보고 정황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행하려는 다윗의 정직함과 강직함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토로(吐露)합니다(9절~11절). 주변의 사람들이 다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고 탄식합니다(12절).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대적들 앞에서는 자신이 당당할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기도로 나아갑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종종 억울한 상황을 겪기도 하지만, 그 억울함이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의롭다는 당당함이 되면 안 됩니다. 욥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고백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게 되었는데,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도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죄인 됨을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의(義)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억울한 상황은 분명해도, 완전한 의(義)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내 의가 내세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늘 겸허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라도 내 의(義)를 하나님 앞에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우리의 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기로 말미암아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구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6절은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하는 자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던 자들이 위축되어 그 믿음대로 살아가지 않게 되는 일이 없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저도 이런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들이 잘 되는 축복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감이 헛된 일이 아님을 경험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소망으로 삼는 자들이 늘어가게 하옵소서.”
다윗은 자신의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조차 버림을 받는 고통을 겪습니다(8절).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3절)라고 고백합니다. 목이 마를 정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쇠할 정도로 하나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합니다. 16절부터 18절에서도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로 부르짖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신뢰하며 바라봅니다(16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탄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겪게 될 때가 많습니다. 나를 향해서 기가 막힌 비방거리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그 억울함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리고 그 깊은 수렁 속에서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결국 건져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직 내게 있습니다.
시편 69편 1-36절 말씀 묵상
시편 69편 1-36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0 2019.07.23 07:43
시편 69:1-36 말씀 묵상 Renewed Every Day
<시련과 역경 가운데 구원을 호소함>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시편 69:13).
“But I pray to you, Lord , in the time of your favor; in your great love, O God, answer me with your sure salvation.”(Psalm 69:13).
원수들의 무고한 모함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암담한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하며, 고난 속에서도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함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1)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함(1-9)
다윗은 극심한 고통에 처했음을 깊은 수렁에 빠졌으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덥친다고 말합니다(1-2).
다윗은 어려움에 처한 자신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였는데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3-4).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 때문에 자신이 대적들로부터 수치를 당하고 훼방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을 해하고자 했던 무리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다윗을 시기하여 모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도 냉대하였습니다(5-9).
2) 인자와 진리로 응답하소서(10-13)
다윗을 모욕한 자들은 그가 겸손하게 행동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 때문에 그를 조롱합니다. 굵은 베옷을 입었더니 수근거림의 대상이 되었으며 성문에 앉은 자들과 취한 자들의 가쉽거리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더라도 결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열납하시는 때에 인자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0-13).
3) 구원을 베푸소서(14-21)
다윗은 자신이 수렁과 큰 물과 웅덩이에 이미 빠져 있음을 말합니다. 비록 수렁에 빠져 있지만 완전히 빠져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14-15).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자기에게 숨기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 다음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신다고 고백하였습니다(16-21).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분이시기에 환난가운데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림으로 응답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원수를 저주함(22-25)
다윗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도울 자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한 후 원수를 몰락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악인들의 밥상이 그들의 올무가 되게 하시며 평안이 그들의 덫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희 거처를 황폐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22-25).
5) 생명책에서 도말하소서(26-29)
다윗은 계속해서 악인들이 주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책에서 도말하시어서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26-29).
6) 찬송과 감사(30-36)
다윗은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의식적인 제사보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제사가 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30-33).
천지와 바다와 모든동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되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시인을 구원하시고 유다성읍을 건설하시며 후손들이 그것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 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34-36).
주께서 주신 오늘! 어떠한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구원의 주님께 기도하며 찬양하기를 쉬지 않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어 시편 69편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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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낯체아흐 알 쇼솬님 레다위드
호쉬에니 엘로힘 키 바우 마임 아드 나페쉬
개역개정,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백합화 곡조
새번역,1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목까지 물이 찼습니다.
우리말성경,1 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이 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가톨릭성경,1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영어NIV,1 For the director of music. To the tune of”Lilies.” Of David. Save me, O God, for the waters have come up to my neck.
영어NASB,1 {For the choir director; according to Shoshannim. A Psalm of David.} Save me, O God, For the waters have threatened my life.
영어MSG,1 A David psalm. God, God, save me! I’m in over my head,
영어NRSV,1 To the leader: according to Lilies. Of David. Save me, O God, for the waters have come up to my neck.
헬라어구약Septuagint,1 εις το τελος τω δαυιδ εις αναμνησιν
라틴어Vulgate,1 in finem David in rememoratione eo quod salvum me fecit Dominus
히브리어구약BHS,1 לַמְנַצֵּחַ עַל־שֹׁושַׁנִּים לְדָוִד׃
히브리어구약BHS,1 הֹושִׁיעֵנִי אֱלֹהִים כִּי בָאוּ מַיִם עַד־נָפֶשׁ׃
성 경: [시69:1]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 자신이 곤궁에 처해 있음을 알리며, 그 곤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을 호소하기 위해 사용되는 상투적 표현이다(54:1;55:1;56:1;59:1;61:1).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 이는 물이 자신을 덮고 자신의 목구멍으로 들어가서 숨을 쉬지 못하게 된 것 만큼의 곤궁한 상황에 도달했음을(for the waters have come up to my neck, NIV, RSV)보여주는 상용적 표현이다(18:4;42:7;88:7, 17;욥 22:11;27:20;욘 2:5). 물론 여기서 ‘물’은 2절의 ‘수렁’이나 ‘큰물’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영역이나 그 영향력을 뜻하는 표현이다(Anderson).
타바티 비웬 메출라 웨엔 마오마드 바티 베마아맠케 마임 웨쉽볼레트 쉐타파테니
개역개정,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새번역,2 발 붙일 곳이 없는 깊고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물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으니, 큰 물결이 나를 휩쓸어갑니다.
우리말성경,2 내가 발 디딜 곳 없는 깊은 진[창속에 빠지고 깊은 물속에 들어왔으니 홍수가 나를 집어삼킵니다.
가톨릭성경,2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물살이 저를 짓칩니다.
영어NIV,2 I sink in the miry depths, where there is no foothold. I have come into the deep waters; the floods engulf me.
영어NASB,2 I have sunk in deep mire, and there is no foothold; I have come into deep waters, and a flood overflows me.
영어MSG,2 Quicksand under me, swamp water over me; I’m going down for the third time.
영어NRSV,2 I sink in deep mire, where there is no foothold; I have come into deep waters, and the flood sweeps over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 εις το σωσαι με κυριον ο θεος εις την βοηθειαν μου προσχες
라틴어Vulgate,2 Deus in adiutorium meum intende * Domine ad adiuvandum me festina;
히브리어구약BHS,2 טָבַעְתִּי בִּיוֵן מְצוּלָה וְאֵין מָעֳמָד בָּאתִי בְמַעֲמַקֵּי־מַיִם וְשִׁבֹּלֶת שְׁטָפָתְנִי׃
성 경: [시69:2]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 – 빠져들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 들게 되는 늪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심각한 환난이나 죽음의 위협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는 저자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가중시켜오는 두려운 상황을 가리킨다.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 사람이 본의 아니게 물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큰 물(*, 쉬볼레트)은 ‘넘치다’는 뜻의 동사 ‘솨발'(*)에서 나온 단어로서, 정적(靜的)으로 가만히 있는 물이 아니라 동적(動的)으로 거세게 덮쳐오는 물을 가리킨다. 그리고 ‘넘치나이다'(*, 쉐타파트니)의 기본형인 ‘솨타프'(*)는 ‘질주하다’, ‘창궐하다’, ‘휘말아 삼켜버리다’의 뜻으로서,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 가 버리듯 환난이 급속도로 몰려오는 까서을 가리킨다(Hamilton, Victor P.).
야가티 베카레이 니하르 게로니 칼루 에나이 메야헬 레로하이
개역개정,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새번역,3 목이 타도록 부르짖다가, 이 몸은 지쳤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나는 나의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말성경,3 내가 도와 달라 외치다 지쳤고 내 목은 말라 버렸습니다. 내가 눈이 빠지도록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가톨릭성경,3 소리 지르느라 지치고 저의 목도 쉬었습니다. 저의 하느님을 고대하느라 제 두 눈마저 흐려졌습니다.
영어NIV,3 I am worn out calling for help; my throat is parched. My eyes fail, looking for my God.
영어NASB,3 I am weary with my crying; my throat is parched; My eyes fail while I wait for my God.
영어MSG,3 I’m hoarse from calling for help, Bleary-eyed from searching the sky for God.
영어NRSV,3 I am weary with my crying; my throat is parched. My eyes grow dim with waiting for my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3 αισχυνθειησαν και εντραπειησαν οι ζητουντες μου την ψυχην αποστραφειησαν εις τα οπισω και καταισχυνθειησαν οι βουλομενοι μοι κακα
라틴어Vulgate,3 confundantur et revereantur qui quaerunt animam meam
히브리어구약BHS,3 יָגַעְתִּי בְקָרְאִי נִחַר גְּרֹונִי כָּלוּ עֵינַי מְיַחֵל לֵאלֹהָי׃
랍부 밋사아로트 로쉬 소네아이 힌남 아체무 마체미타이 오예바이 쉐켈 아쉘 로 가잘르티 아즈 아쉬브
개역개정,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새번역,4 까닭도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의 머리털보다도 많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자들, 내게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까지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4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내 머리털보다 많습니다. 까닭 없이 내 적이 돼 나를 멸망시키려는 사람들이 너무 강합니다. 내가 훔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물어 주게 생겼습니다.
가톨릭성경,4 저를 까닭 없이 미워하는 자들이 제 머리카락보다 더 많습니다. 저를 파멸시키려는 자들, 음흉한 제 원수들이 힘도 셉니다. 제가 빼앗지도 않았는데 물어내라 합니다.
영어NIV,4 Those who hate me without reason outnumber the hairs of my head; many are my enemies without cause, those who seek to destroy me. I am forced to restore what I did not steal.
영어NASB,4 Those who hate me wiYout a cause are more than the hairs of my head; Those who would destroy me are powerful, being wrongfully my enemies, What I did not steal, I then have to restore.
영어MSG,4 I’ve got more enemies than hairs on my head; Sneaks and liars are out to knife me in the back. What I never stole Must I now give back?
영어NRSV,4 More in number than the hairs of my head are those who hate me without cause; many are those who would destroy me, my enemies who accuse me falsely. What I did not steal must I now restore?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ποστραφειησαν παραυτικα αισχυνομενοι οι λεγοντες μοι ευγε ευγε
라틴어Vulgate,4 avertantur retrorsum et erubescant qui volunt mihi mala avertantur statim erubescentes qui dicunt %mihi; euge euge
히브리어구약BHS,4 רַבּוּ מִשַּׂעֲרֹות רֹאשִׁי שֹׂנְאַי חִנָּם עָצְמוּ מַצְמִיתַי אֹיְבַי שֶׁקֶר אֲשֶׁר לֹא־גָזַלְתִּי אָז אָשִׁיב׃
엘로힘 앝타 야다타 레이왈레티 웨아쉬모타이 밈메카 로 니크하두
개역개정,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새번역,5 하나님, 주님은 내 어리석음을 잘 알고 계시니, 내 죄를 주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5 오 하나님이여, 내 어리석음을 주께서 아시니 내 죄를 주께 숨길 수가 없습니다.
가톨릭성경,5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어리석음을 아시며 당신께는 저의 죄악들이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영어NIV,5 You know my folly, O God; my guilt is not hidden from you.
영어NASB,5 O God, it is You who know my folly, And my wrongs are not hidden from You.
영어MSG,5 God, you know every sin I’ve committed; My life’s a wide-open book before you.
영어NRSV,5 O God, you know my folly; the wrongs I have done are not hidden from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5 αγαλλιασθωσαν και ευφρανθητωσαν επι σοι παντες οι ζητουντες σε και λεγετωσαν δια παντος μεγαλυνθητω ο θεος οι αγαπωντες το σωτηρ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5 exultent et laetentur in te omnes qui quaerunt te et dicant semper magnificetur Deus qui diligunt salutare tuum
히브리어구약BHS,5 אֱלֹהִים אַתָּה יָדַעְתָּ לְאִוַּלְתִּי וְאַשְׁמֹותַי מִמְּךָ לֹא־נִכְחָדוּ׃
성 경: [시69:5]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여기서 다윗은 40:12에서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급변하여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 이는, 원수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허물많은 인생에 블과함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 원문대로 하면 ‘하나님이여 당신께서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로 번역된다. 그런데 ‘아시오니'(*, 야다타)라는 동사는 그 자체가 ‘당신께서 아신다’의 뜻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별도의 2인칭 주어 ‘아타'(*)를 첨가함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우매함을’아시되 분명히 아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같은 강조는, 다윗이 자신의 ‘우매함’의 죄를 확실히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한편, ‘우매함'(*, 이웰레트)은 불분명한 판단력에 따른 ‘도덕적 결함'(Goldberg)혹은 ‘죄의 욕구'(Keil)를 뜻한다. 이와 같은 ‘우매함’은 성경 도처에서 죄로 인정되고 있다(롬 1:21,22;갈 3:1). 그리고 ‘아시오니’의 기본형 ‘야다'(*)는 부부가 동침을 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상대에 대해서 잘 파악하듯이 체험적으로 분명하게 아는 것을 가리킨다(겔 15:7).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 하나님께서 저자의 ‘우매함’을 알고 계시되 너무나 분명히 알고 계시므로, 자연스럽게 저자의 ‘죄’ 곧 ‘우매함’은 숨겨질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깨달음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하는 그의 또 다른 시편(139:1-4)과 너무나 잘 부합된다.
알 예보슈 비 코웨카 아도나이 아도나이 체바오트 알 잌칼레무 비 메바크쉐카 엘로헤 이스라엘
개역개정,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새번역,6 만군의 주 하나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을 애써 찾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주님 때문에 내가 욕을 먹고,
우리말성경,6 오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망신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가톨릭성경,6 주 만군의 주님 당신께 바라는 이들이 저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을 찾는 이들이 저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영어NIV,6 May those who hope in you not be disgraced because of me, O Lord, the LORD Almighty; may those who seek you not be put to shame because of me, O God of Israel.
영어NASB,6 May those who wait for You not be ashamed through me, O Lord GOD of hosts; May those who seek You not be dishonored through me, O God of Israel,
영어MSG,6 Don’t let those who look to you in hope Be discouraged by what happens to me, Dear Lord! GOD of the armies! Don’t let those out looking for you Come to a dead end by following me– Please, dear God of Israel!
영어NRSV,6 Do not let those who hope in you be put to shame because of me, O Lord GOD of hosts; do not let those who seek you be dishonored because of me, O God of Israel.
헬라어구약Septuagint,6 εγω δε πτωχος και πενης ο θεος βοηθησον μοι βοηθος μου και ρυστης μου ει συ κυριε μη χρονισης
라틴어Vulgate,6 ego vero egenus et pauper Deus adiuva me adiutor meus et liberator meus es tu Domine ne moreris
히브리어구약BHS,6 אַל־יֵבֹשׁוּ בִי קֹוֶיךָ אֲדֹנָי יְהוִה צְבָאֹות אַל־יִכָּלְמוּ בִי מְבַקְשֶׁיךָ אֱלֹהֵי יִשְׂרָאֵל׃
성 경: [시69:6]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만군의 주 여호와 – 우주 만물의 주(主) 이시며,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며 또한 크신 능력으로써 대적들을 파하는 왕(王)이신 하나님을 암시하는 이 칭호는(VangEmeren)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보호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7:5).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 ‘주를 바라는 자’는, 다른 많은 백성들이 다윗의 대적을 좇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계속 다윗을 추종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곤경에 처해 있었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손을 뻗치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주를 바라는 자’로 불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않으실 경우, 그들은 불의한 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게 되며 또한 그 자신들은 낙심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키 아레카 나사티 헬파 킷세타 켈림마 파나이
개역개정,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새번역,7 내 얼굴이 수치로 덮였습니다. 친척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우리말성경,7 내가 주를 위해 곤욕을 참아 내려니 내 얼굴이 수치로 범벅이 됐습니다.
가톨릭성경,7 당신 때문에 제가 모욕을 당하고 수치가 제 얼굴을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7 For I endure scorn for your sake, and shame covers my face.
영어NASB,7 Because for Your sake I have borne reproach; Dishonor has covered my face.
영어MSG,7 Because of you I look like an idiot, I walk around ashamed to show my face.
영어NRSV,7 It is for your sake that I have borne reproach, that shame has covered my face.
헬라어구약Septuagint,7 (없음)
라틴어Vulgate,7 (없음)
히브리어구약BHS,7 כִּי־עָלֶיךָ נָשָׂאתִי חֶרְפָּה כִּסְּתָה כְלִמָּה פָנָי׃
성 경: [시69:7]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 다윗이 원수들로부터 받았던 고난이 그의 개인적 실수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다윗은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곧 정도(正道)대로 행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탄식어린 고백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잘 드러내어 준다(44:22;렘 15:15 참조).
수치가 내 얼굴에 덮었나이다 – 44:15와 83:16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수치'(*, 켈림마)는 ‘공적인 굴욕으로 인하여 입게 되는 마음의 상처’ 혹은 ‘패배와 속박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가리킨다.(삼상 20:34;사 50:6).
무잘 하이티 레에하이 웨나케리 리베네 임미
개역개정,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새번역,8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마저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말성경,8 내가 내 형제들에게 외면당하고 내 어머니의 아들들에게 소외당했습니다.
가톨릭성경,8 저는 제 형제들에게 남이 되었고 제 어머니의 소생들에게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영어NIV,8 I am a stranger to my brothers, an alien to my own mother’s sons;
영어NASB,8 I have become estranged from my brothers, And an alien to my mother’s sons.
영어MSG,8 My brothers shun me like a bum off the street; My family treats me like an unwanted guest.
영어NRSV,8 I have become a stranger to my kindred, an alien to my mother’s children.
헬라어구약Septuagint,8 (없음)
라틴어Vulgate,8 (없음)
히브리어구약BHS,8 מוּזָר* הָיִיתִי לְאֶחָי וְנָכְרִי לִבְנֵי אִמִּי׃
성 경: [시69:8]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다윗이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심지어 가족들로부터도 소외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혈육의 어머니와 형제들에 의해서까지 오해를 받았던 것과 같다(마 13:57, 58;눅 2:48;요 7:1-10). 예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오해로 인하여 실로 엄청난 고독을 경험하셔야만 했다(마 8:20).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되고 – 여기서 ‘객이 되고'(*, 무자르)의 기본형인 ‘주르'(*)는 원래 ‘고개를 돌리다’의 뜻이며(KB) 여기서는 수동형이므로 ‘고개 돌림을 당한’ 혹은 ‘혐오의 대상이 된’ 등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다윗은 그 형제들, 특히 장형(長兄) 엘리압으로부터 많은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삼상 16:6-13;17:28).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 특히 그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의존성이 유달리 강했던 고대 사회에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은 충격적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Anderson).
키 키느아트 베트카 아칼라테니 웨헤르포트 호르페카 나펠루 알라이
개역개정,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새번역,9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
우리말성경,9 주의 집을 향한 열정이 나를 삼키고 주를 모욕하는 사람들의 욕설이 내게 쏟아집니다.
가톨릭성경,9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불태우고 당신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제 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영어NIV,9 for zeal for your house consumes me, and the insults of those who insult you fall on me.
영어NASB,9 For zeal for Your house has consumed me, And the reproaches of those who reproach You have fallen on me.
영어MSG,9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Because I’m madly in love with you, They blame me for everything they dislike about you.
영어NRSV,9 It is zeal for your house that has consumed me; the insults of those who insult you have fallen on me.
헬라어구약Septuagint,9 (없음)
라틴어Vulgate,9 (없음)
히브리어구약BHS,9 כִּי־קִנְאַת בֵּיתְךָ אֲכָלָתְנִי וְחֶרְפֹּות חֹורְפֶיךָ נָפְלוּ עָלָי׃
성 경: [시69:9]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는 삼키고 – 여기서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은 협의적으로는 (1)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한 일(삼하 6:12-19) (2) 언약궤를 훌륭하고 영구적인 장소에 안치하려는 염원(132:2-5;삼하 7:2) (3) 성전 건축을 위해서 성심 성의껏 그 재료를 수집한 일(대상 28:11-18;29:2-5) (4)성전 건축과 관련해서까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긴 일(대상 28:9, 10, 20)등을 뜻한다(Rawlinson). 그러나 광의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 곧 언약 공동체를 성결하게 지키려는 일까지도 포함된다(Calvin). 여기서 ‘열성'(*, 킨아트)은 ‘짙거나 붉은 빛으로 되다’라는 뜻이 있는 아랍어 동사에서 유래한 ‘카나'(*)에서 파생됐으며,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가리킨다(Keil). 따라서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그 뜨거운 열정이 하나의 불꽃이 되어 다윗의 뼈 속에서 타오르는듯 끊임없이 거세게 일었음을 시사한다(렘 20:9;23:9, Keil).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 문자적으로는 ‘당신을 훼방하는 자들의 훼방이 나에게 떨어졌나이다’의 뜻이다. 이는 다윗이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에 몰두함으로써 불의한 자들로부터 당한 불이익을 가리킨다. 다윗이 이러한 불이익을 예상치 못한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다윗은 다만, 주님의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마땅한 도리임을 알고 그 결과에 개의치 않은 채 그 길을 행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물욕(物慾)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서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히 하는 일이 당위적(當爲的)이므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게 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그 일을 담대히 수행하신 바와 동일하다(요 2:13-16).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그 일에 관한 제자들의 깨달음을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殿)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말하면서, 예수님의 그 열심과 다윗의 열심을 동일시하였다(요 2:17).
와에베케 밫촘 나프쉬 와테히 라하라포트 리
개역개정,10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새번역,10 내가 금식하면서 울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10 내가 울며 금식한 것이 오히려 내게 욕이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0 제가 단식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 저에게는 우셋거리가 되었습니다.
영어NIV,10 When I weep and fast, I must endure scorn;
영어NASB,10 When I wept in my soul with fasting, It became my reproach.
영어MSG,10 When I poured myself out in prayer and fasting, All it got me was more contempt.
영어NRSV,10 When I humbled my soul with fasting, they insulted me for doing so.
헬라어구약Septuagint,10 (없음)
라틴어Vulgate,10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0 וָאֶבְכֶּה בַצֹּום נַפְשִׁי וַתְּהִי לַחֲרָפֹות לִי׃
성 경: [시69:10]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 다윗은 불의한 핍박자들에게 무자비한 무력 공격을 감행하거나 혹은 무절제한 욕설과 비난을 가하지 않았다. 다윗의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은 매우 잘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단하기 그지없는 강철이라도 부드럽게 할 수 있었다(Calvin). 다윗은 다만, 하나님의 집이 당하는 불행에 대하여 애통하며 금식하여 기도 했을뿐이다(Keil). 다윗의 금식에 대해서는 35:13과 109:24 그리고 삼하 12:16, 22을 참조하라. 한편,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나프쉬)는 원문상으로 다만 ‘나의 영혼’의 뜻이다. 따라서 개역 성경은 문맥에 비추어 의역한 것이다. 원문대로 하자면 여기의 ‘나의 영혼’을 본 문구의 주어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본문은 ‘나의 영혼이 곡하고 금식하였더니’로 번역될 수 있다(NIV). 이처럼 ‘나의 영혼’이라는 허다하다(62:1;63:5, 8).
와에테나 레부쉬 사크 와예히 라헴 레마솰
개역개정,11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 거리가 되었나이다
새번역,11 내가 베옷을 입고서 슬퍼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는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11 내가 베옷을 입은 것이 오히려 그들의 놀림거리가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1 자루옷을 의복으로 삼은 제가 저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영어NIV,11 when I put on sackcloth, people make sport of me.
영어NASB,11 When I made sackcloth my clothing, I became a byword to them.
영어MSG,11 When I put on a sad face, They treated me like a clown.
영어NRSV,11 When I made sackcloth my clothing, I became a byword to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11 (없음)
라틴어Vulgate,11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1 וָאֶתְּנָה לְבוּשִׁי שָׂק וָאֱהִי לָהֶם לְמָשָׁל׃
성 경: [시69:11]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 10절의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와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굵은 베’는 금식할 때에 혼히 착용했던 옷이기 때문이다(왕상 21:27;느 9:1;단 9:3).
야시후 비 요쉐베 솨아르 우네기노트 쇼테 쉐카르
개역개정,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비난하며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하나이다
새번역,12 성문에 앉아 있는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술에 취한 자들이 나를 두고서 빈정거리는 노래를 지어 흥얼거립니다.
우리말성경,12 성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술주정뱅이들이 나를 두고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가톨릭성경,12 성문 가에 앉은 자들은 저를 헐뜯어 대고 주정꾼들은 조롱의 노래들을 부릅니다.
영어NIV,12 Those who sit at the gate mock me, and I am the song of the drunkards.
영어NASB,12 Those who sit in the gate talk about me, And I am the song of the drunkards.
영어MSG,12 Now drunks and gluttons Make up drinking songs about me.
영어NRSV,12 I am the subject of gossip for those who sit in the gate, and the drunkards make songs about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없음)
라틴어Vulgate,12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2 יָשִׂיחוּ בִי יֹשְׁבֵי שָׁעַר וּנְגִינֹות שֹׁותֵי שֵׁכָר׃
성 경: [시69:12]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 ‘성문’은 재판관에 의해서 재판이 행하여지던 곳이며(창 19:1;룻 4:1) 또한 상인들과의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담(閑談)이나 잡담을 늘어놓는 곳이었다. 그러나 여기의 ‘성문에 앉은 자’는 비록 복수(複數)이기는 하지만, 한가하게 앉아있는 일반 서민들을 가리키지 않는 것 같다. 본 문구 중 ‘앉은 자'(*, 요시베)의 기본형인 ‘야솨브'(*)가 공직(公職) 수행과 관련한 좌정(座定)을 가라킬 때 사용된다는 점에서(왕상 2:12;왕하 13:13), 백성들의 송사를 담당하는 재판관이나 거기에 버금가는 원로(元老)들을 뜻할 것이다. 한편, ‘나를 말하며'(*, 야 시후)의 기본형인 ‘시아흐'(*)는 ‘되풀이하며 험담하다’의 뜻도 내포한다(Gray G. Cohen). 결국 이는 상류 계급의 인사들이 공무(公務) 중에도 다윗을 험담했음을 가리킨다. 추측컨대, 이같은 상류층의 다윗에 대한 험담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압살롬이 불의한 재판을 했던 사실(삼하 15:2- 6)과 일맥 상통할 것이다.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 문자적으로는 ‘폭음을 한 자들의 노래가 있나이다’라는 뜻이다. 본문은 심지어 술주정뱅이들의 입에까지 다윗을 조롱하는 말이 오르내리는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불경건한 조롱의 노래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거룩한 찬송을 드렸던 다윗 자신의 내면 세계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Briggs).
와아니 테필라티 레카 아도나이 엩 라촌 엘로힘 베랍 하스데카 아네니 베에메트 이쉬에카
개역개정,13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새번역,13 그러나 주님, 오직 주님께만 기도하오니, 하나님, 주님께서 나를 반기시는 그 때에,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확실한 구원으로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3 오 여호와여, 그러나 나는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그때 주께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신실하신 사랑으로 내게 응답하셔서 주의 확실한 구원을 보여 주소서.
가톨릭성경,13 그러나 주님, 당신 마음에 드시는 때에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당신 구원의 진실로 제게 응답하소서.
영어NIV,13 But I pray to you, O LORD, in the time of your favor; in your great love, O God, answer me with your sure salvation.
영어NASB,13 But as for me, my prayer is to You, O LORD, at an acceptable time; O God, in the greatness of Your lovingkindness, Answer me with Your saving truth.
영어MSG,13 And me? I pray. GOD, it’s time for a break! God, answer in love! Answer with your sure salvation!
영어NRSV,13 But as for me, my prayer is to you, O LORD. At an acceptable time, O God, in the abundance of your steadfast love, answer me. With your faithful help
헬라어구약Septuagint,13 (없음)
라틴어Vulgate,13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3 וַאֲנִי תְפִלָּתִי־לְכָ* יְהוָה עֵת רָצֹון אֱלֹהִים בְּרָב־חַסְדֶּךָ עֲנֵנִי בֶּאֱמֶת יִשְׁעֶךָ׃
성 경: [시69:13]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여호와여 열납(悅納)하시는 때에…주제 기도하오니 –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호칭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겠다는 언약이 신속히 이해되기를 하나님께 암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열남하시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이때를 현재적으로 보는 해석(Matthew Henry)이며 또 다른 것은, 이를 미래적으로 보는 해석(Calvin)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현재 닥친 위기 상황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위의 두해석 중 첫째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사실,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환난의 때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때’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원수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심하게 당하고 있을수록 그 백성에 대하여 더욱 간절한 동정심을 지니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에게는 고통이 극심하여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기 쉬운 때가 바로 ‘열납하시는 때’요 그래서 ‘기도해야만 하는 때’이다.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 얼핏 생각하기에 본문은 환난을 당하고 있는 지금 당장이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때’임을 말하고 있는 앞 문구와 모순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 문구는 기도 즉시 그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시사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신자들의 기도를 ‘열납하시는 때’와 구쳬적으로 응답하시는 때가 동일하다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기도를 ‘열납하심’으로써 신자들의 곤고한 형편을 파악하신 다음에는, 당신의 선하신 뜻(롬 12:2)에 따라 적절한 때에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자와…진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대표적 동기들이다(57 :3). 그중 ‘인자'(*, 헤세드)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을 향하여 품고 계시는 결코 변할수 없는 사랑을 뜻한다(51:1). 그리고 ‘진리'(*, 에메트)는 당신의 원수들을 징벌하게끔 만드는 공의로운 기준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다(57:3).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좀 다른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 앞에 ‘구원’이라는 한정적 단어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진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공의적 성실성을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이다(54:5;91:4).
하치레니 밑티트 웨알 에트바아 인나첼라 밋소네아이 우밈마아맠케 마임
개역개정,14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새번역,14 나를 이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셔서 그 속에 빠져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를 미워하는 자들과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4 수렁에서 나를 구해 주시고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서, 깊은 물에서 나를 건지소서.
가톨릭성경,14 진창에서 저를 구출하소서, 제가 빠져 들지 않도록. 제 원수들에게서, 물속 깊은 데에서 제가 구출되게 하소서.
영어NIV,14 Rescue me from the mire, do not let me sink; deliver me from those who hate me, from the deep waters.
영어NASB,14 Deliver me from the mire, and do not let me sink; May I be delivered from my foes, and from the deep waters.
영어MSG,14 Rescue me from the swamp, Don’t let me go under for good, Pull me out of the clutch of the enemy; This whirlpool is sucking me down.
영어NRSV,14 rescue me from sinking in the mire; let me be delivered from my enemies and from the deep water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없음)
라틴어Vulgate,14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4 הַצִּילֵנִי מִטִּיט וְאַל־אֶטְבָּעָה אִנָּצְלָה מִשֹּׂנְאַי וּמִמַּעֲמַקֵּי־מָיִם׃
성 경: [시69:14]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 ‘수렁’은 2절에서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극한 환난을 가리킨다. 이처럼 기자는 ‘수렁’이나 ‘물'(15절)과 갈은 이미지를 거듭 사용함으로써 자신에게 닥친 위협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 – 원문에는 복수로 되어 있다. 사실, 다윗을 대적하는 자들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4절).
깊은 물 – 이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알 티쉬테페니 쉽볼렡 마임 웨알 티블라에니 메출라 웨알 테타르 알라이 베엘 파하
개역개정,15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새번역,15 큰 물결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큰 구덩이가 입을 벌려 나를 삼키고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15 홍수가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하시고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저 구덩이가 나를 넣고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15 물살이 저를 짓치지 못하고 깊은 물이 저를 집어삼키지 못하며 심연이 저를 삼켜 그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소서.
영어NIV,15 Do not let the floodwaters engulf me or the depths swallow me up or the pit close its mouth over me.
영어NASB,15 May the flood of water not overflow me, And may the deep not swallow me up, And may the pit not shut its mouth on me.
영어MSG,15 Don’t let the swamp be my grave, the Black Hole Swallow me, its jaws clenched around me.
영어NRSV,15 Do not let the flood sweep over me, or the deep swallow me up, or the Pit close its mouth over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없음)
라틴어Vulgate,15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5 אַל־תִּשְׁטְפֵנִי שִׁבֹּלֶת מַיִם וְאַל־תִּבְלָעֵנִי מְצוּלָה וְאַל־תֶּאְטַר־עָלַי בְּאֵר פִּיהָ׃
성 경: [시69:15]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엄몰(淹沒)하거나 – 히브리어상으로 2절의 ‘넘치나이다’와 동일한 동사이다.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 여기서 ‘깊음’은 본절 앞 부분의 ‘큰 물’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깊음이 나를 삼키지’는 본절 앞부분의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이처럼 저자는 유사 어구의 반복 사용을 통하여, 당면한 상황의 다급성과 기도의 간절성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웅덩이로…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 ‘웅덩이'(*, 베에르)는 파서 만든 우물(창 21:25, 7), 구덩이(창 14:10) 혹은 무덤이나 스올(55:23 참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마치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식욕을 지닌 괴물처럼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Anderson).
아네니 아도나이 키 토브 하스데카 케롭 라하메카 페네 엘라이
개역개정,16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새번역,16 주님, 주님의 사랑은 한결같으시니, 나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주님께는 긍휼이 풍성하오니, 나에게로 얼굴을 돌려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6 오 여호와여, 주께서는 인자하시고 선하시니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신실하신 사랑으로 나를 돌아보소서.
가톨릭성경,16 주님, 당신의 자애가 너그러우시니 저에게 응답하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를 돌아보소서.
영어NIV,16 Answer me, O LORD, out of the goodness of your love; in your great mercy turn to me.
영어NASB,16 Answer me, O LORD, for Your lovingkindness is good; According to the greatness of Your compassion, turn to me,
영어MSG,16 Now answer me, GOD, because you love me; Let me see your great mercy full-face.
영어NRSV,16 Answer me, O LORD, for your steadfast love is good; according to your abundant mercy, turn to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없음)
라틴어Vulgate,16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6 עֲנֵנִי יְהוָה כִּי־טֹוב חַסְדֶּךָ כְּרֹב רַחֲמֶיךָ פְּנֵה אֵלָי׃
성 경: [시69:16]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을 강조하는 명칭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가리키는 ‘인자'(*)와 대단히 잘 어울린다. 시인은 이러한 적절한 표현을 통해서, 당신의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신속히 이행되기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은 절대로 변할 수 없음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을 필연적으로 구원하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긍휼(*,레헴) – ‘깊이 사랑하다’는 뜻의 ‘라함'(*)에서 파생된 것으로 자연적인 유대(紐帶)에 뿌리를 둔 깊은 사랑을 뜻하며 특히 윗 사람의 아랫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심을 가리키는데 주로 사용된다(왕상 8:50;렘 42:12).
웨알 타세텔 파네카 메아베데카 키 차르 리 마헬 아네니
개역개정,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새번역,17 주님의 종에게, 주님의 얼굴을 가리지 말아 주십시오. 나에게 큰 고통이 있으니, 어서 내게 응답해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7 주의 종에게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내가 고통당하고 있으니 어서 내게 응답하소서.
가톨릭성경,17 당신 종에게서 얼굴을 감추지 마소서. 제가 곤경 속에 있으니 어서 저에게 응답하소서.
영어NIV,17 Do not hide your face from your servant; answer me quickly, for I am in trouble.
영어NASB,17 And do not hide Your face from Your servant, For I am in distress; answer me quickly.
영어MSG,17 Don’t look the other way; your servant can’t take it. I’m in trouble. Answer right now!
영어NRSV,17 Do not hide your face from your servant, for I am in distress–make haste to answer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없음)
라틴어Vulgate,17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7 וְאַל־תַּסְתֵּר פָּנֶיךָ מֵעַבְדֶּךָ כִּי־צַר־לִי מַהֵר עֲנֵנִי׃
성 경: [시69:17]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 ‘얼굴을 숨기는 것’ 혹은 ‘외면(外面)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나 미움을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실 뿐더러 곤고한 형편에서 빨리 구출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 ‘내게 응답하소서’가 이미 앞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되었다(13, 16절). 저자는 이러한 반복을 통하여, 또한 ‘속히’라는 단어를 덧불임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곤궁한 형편에 처해 있었는지를 알리며 거기로부터의 구원을 강력히 탄원하고 있다.
카레바 엘 나프쉬 게알라흐 레마안 오예바이 페데니
개역개정,18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새번역,18 나에게로 빨리 오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나의 원수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8 내게 가까이 와서 나를 구원하소서. 내 적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가톨릭성경,18 제게 가까이 오시어 저를 구해 내소서. 제 원수들을 보시고 저를 구원하소서.
영어NIV,18 Come near and rescue me; redeem me because of my foes.
영어NASB,18 Oh draw near to my soul and redeem it; Ransom me because of my enemies!
영어MSG,18 Come close, God; get me out of here. Rescue me from this deathtrap.
영어NRSV,18 Draw near to me, redeem me, set me free because of my enemies.
헬라어구약Septuagint,18 (없음)
라틴어Vulgate,18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8 קָרְבָה אֶל־נַפְשִׁי גְאָלָהּ לְמַעַן אֹיְבַי פְּדֵנִי׃
성 경: [시69:18]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 ‘가까이 하사’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용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열남하고 계시다고 느낄 만큼(13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여기서 다윗은 다만 자신의 기도 응답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그 응답을 촉구할 목적으로 이 표현을 쓴 것이다. 한편, ‘구속하시며'(*, 게알라)의 기본형인 ‘가알'(*)은 속전(贖錢)을 대신 지불하여 억압의 상태에서 구원해 내는 것을 가리킨다(출 6:6;사 52:3;렘 31:11). 이러한 표현은 본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구속 사역을 예표적으로 보여줌을 암시한다.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 ‘내 원수를 인하여’는 ‘원수들의 음모나 흉계 혹은 비난(13:4) 때문에 ‘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awlinson). 시인은 만일 경건한 성도가 대적들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조차 경멸당할 우려가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Anderson). 한편, ‘속량하소서'(*, 페데니)의 기본형 ‘파다'(*)는 앞 문구의 ‘가알’과 것의 동일한 뜻의 동사이다.
앝타 야다타 헤르파티 우보쉬티 우켈림마티 넥데카 콜 초레라이
개역개정,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새번역,19 주님은, 내가 받는 모욕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받는 수치와 조롱도 잘 알고 계십니다. 나를 괴롭히는 대적자들이 누구인지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말성경,19 주께서는 내가 당한 곤욕과 망신과 수치를 아십니다. 내 모든 적들이 주 앞에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9 당신께서는 제가 당하는 모욕을, 제가 당하는 창피와 수치를 아십니다. 저의 적들이 모두 당신 앞에 있습니다.
영어NIV,19 You know how I am scorned, disgraced and shamed; all my enemies are before you.
영어NASB,19 You know my reproach and my shame and my dishonor; All my adversaries are before You.
영어MSG,19 You know how they kick me around– Pin on me the donkey’s ears, the dunce’s cap.
영어NRSV,19 You know the insults I receive, and my shame and dishonor; my foes are all known to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9 (없음)
라틴어Vulgate,19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9 אַתָּה יָדַעְתָּ חֶרְפָּתִי וּבָשְׁתִּי וּכְלִמָּתִי נֶגְדְּךָ כָּל־צֹורְרָי׃
성 경: [시69:19]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나의 훼방 – ‘훼방'(*, 헤르파)은 ‘비난하다’ 혹은 ‘조롱하다’를 뜻하는 동사 ‘하라프'(*)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상대를 얕잡아 보고 도전적인 언사로서 비웃는 것을 가리킨다(삼상 17:10).
수치(*, 보쉐트) – ‘창피를 주다’ 혹은 ‘부끄러워하다’의 뜻인 동사 ‘보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외부의 모욕적 언행에 따라 극도로 창피한 마음을 느껴는 것을 가리킨다.
능욕(*, 켈림마) – ‘상처를 입히다’라는 뜻인 동사 ‘칼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마음의 상처를 입을 만큼 치욕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삼상 20:34).
내 대적(對適)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본 시편 기자에게 행하는 횡포에 대해서 철저히 알고 게시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즉, 하나님은 ‘대적’의 모든 횡포를 친히 보고 계시므로, 다윗의 고통도 알고 계시는 것이다.
헬파 솨베라 립비 와아누솨 와아카웨 라누드 와아인 웨람나하밈 웨로 마차티
개역개정,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새번역,20 수치심에 갈기갈기 찢어진 내 마음은 아물 줄을 모릅니다. 동정받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없었고, 위로받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말성경,20 조롱으로 인해 내 마음이 상했고 내가 근심으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내가 동정을 구했지만 아무도 없었고 위로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20 모욕이 제 마음을 바수어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동정을 바랐건만 허사였고 위로해 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영어NIV,20 Scorn has broken my heart and has left me helpless; I looked for sympathy, but there was none, for comforters, but I found none.
영어NASB,20 Reproach has broken my heart, and I am so sick. And I looked for sympaYour, but there was none, And for comforters, but I found none.
영어MSG,20 I’m broken by their taunts, Flat on my face, reduced to a nothing. I looked in vain for one friendly face. Not one. I couldn’t find one shoulder to cry on.
영어NRSV,20 Insults have broken my heart, so that I am in despair. I looked for pity, but there was none; and for comforters, but I found none.
헬라어구약Septuagint,20 (없음)
라틴어Vulgate,20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0 חֶרְפָּה שָׁבְרָה לִבִּי וָאָנוּשָׁה וָאֲקַוֶּה לָנוּד וָאַיִן וְלַמְנַחֲמִים וְלֹא מָצָאתִי׃
성 경: [시69:20]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 여기서 ‘훼방’은 대적들이 다윗의 과거 행적을 문제삼아 과장적으로 그에게 인신 공격을 가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 한편, ‘상하여'(*, 솨브라)의 기본형 ‘솨바르'(*)는 ‘산산이 부서지다’ 혹은 ‘산산 조각을 내다’의 뜻이다(출 34:1;신 9:17;10:2;사 21:9). 따라서 본문은 원수들의 ‘훼방’으로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음을 나타낸다.
근심이 충만하니(*, 아누솨) –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동사이다. 기본형 ‘누쉬'(*)는 ‘아프다’의 뜻이며, 이 기본형과 직접 관련있는 어떤 단어도 여기의 ‘아누사’를 제외하고는 성경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본 문맥에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완전히 쇠잔하게 된 상태를 가리킬 것이다.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 ‘긍휼히 여길'(*, 라누드)의 기본형 ‘누드'(*)는 ‘불쌍히 여기다’의 뜻으로서, 다른 사람의 딱한 형편을 동정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가키킨다(Keil). 한편. ‘바라나'(*, 아카웨)의 기본형 ‘카와'(*)는, ‘간절한 기대감으로 고대하다’의 뜻으로서, 끈기있게 참으면서 자신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가리킨다(창 49:18;사 40:31). 따라서이는 다윗이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동정해줄 친구를 찾아 기다렸으나, 발견치 못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과연 다윗에게는 실제로 그러한 친구가 없었을까 ?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다윗의 휘하에는 적지 않은 충성스런 막료(幕僚)들이 있었다(삼상 22:2;삼하 23:8-39).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아주 절친했던 자들로부터까지 모욕당한(8절)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줄 자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일 듯하다. 한편, 본문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한 수난과 고독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Alexander). 예수는 고난당하실 즈음에, 당신을 궁휼히 여길 아무도 없으셨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던 것이다(마 26:56).
와이트누 베바루티 로쉬 웨리체마이 야쉬쿠니 호메츠
개역개정,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새번역,21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을 타서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
우리말성경,21 그들이 나더러 먹으라고 쓸개를 주었고 내가 목마르다고 식초를 마시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을 주고 목말라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영어NIV,21 They put gall in my food and gave me vinegar for my thirst.
영어NASB,21 They also gave me gall for my food, And for my thirst they gave me vinegar to drink.
영어MSG,21 They put poison in my soup, Vinegar in my drink.
영어NRSV,21 They gave me poison for food, and for my thirst they gave me vinegar to drink.
헬라어구약Septuagint,21 (없음)
라틴어Vulgate,21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תְּנוּ בְּבָרוּתִי רֹאשׁ וְלִצְמָאִי יַשְׁקוּנִי חֹמֶץ׃
성 경: [시69:21]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을 주며 – 이러한 다윗 예언적 묘사는, 예수 그리도의 수난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었다(마 27:34). 즉, 무리들은 기진 맥진하신 예수께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이다. ‘쓸개'(*, 로쉬)는 ‘독'(毒)을 가리키기도 하지만(호 10:4), 셈어에서는 ‘독’과 ‘쓴 것’을 동일한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여기서는 ‘쓴 것’ 곧 ‘쓸개’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Keil). 70인역도 ‘쓸개'(*, 콜렘)로 번역하였다.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 이 문구도 예수님에 의해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목이 마르실 때(요 19:28, 29, 무리들은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한 후 그것을 갈대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대어 마시게 하였다(마 27:48). 이 ‘초'(*, 호메츠)는 중근동에서 노예나 죄수들에게 주었던 시큼한 술로서, 최소의 양(量)으로써 그들의 갈중을 해소키 위해 사용되곤 하였다(James Anderson). 따라서 이처럼 ‘초’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예수를 마치 죄수나 노예로 취급한 것과 결코 다를 바 없었다.
예히 슐르하남 리페네헴 레파흐 웨리쉘로밈 레모케쉬
개역개정,22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새번역,22 그들 앞에 차려 놓은 잔칫상이 도리어 그들이 걸려서 넘어질 덫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누리는 평화가 도리어 그들이 빠져드는 함정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22 그들 앞에 차려진 밥상이 덫이 되게 하시고 그들이 누리는 평화로움이 함정이 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2 그들의 식탁이 그들 앞에서 덫이 되고 태평스러운 그들에게 올가미가 되게 하소서.
영어NIV,22 May the table set before them become a snare; may it become retribution and a trap.
영어NASB,22 May their table before them become a snare; And when they are in peace, may it become a trap.
영어MSG,22 Let their supper be bait in a trap that snaps shut; May their best friends be trappers who’ll skin them alive.
영어NRSV,22 Let their table be a trap for them, a snare for their allies.
헬라어구약Septuagint,22 (없음)
라틴어Vulgate,22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2 יְהִי־שֻׁלְחָנָם לִפְנֵיהֶם לְפָח וְלִשְׁלֹומִים לְמֹוקֵשׁ׃
성 경: [시69:22]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여기서부터 28절까지는, 다윗의 독특한 시적 표현으로써 악인들을 징벌해 달라고 간구한 내용이다.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 ‘저희 앞에 밥상’은 악인들의 부요함을 상징한다(겔 23:41;눅 16:19). 따라서 본문은 악인들이 그들이 누리는 부요로 인하여 도리어 절망하게 해달하는 간구이다. 추측컨대, 이 악인들은 자신들의 부요를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멸시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도 않고 부요하게 지냄에 따라, 하나님은 인생의 일에 관여치 않으신다고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의인에 대한 훼방을 그치지 않았을 것이나, 그러한 계속적인 훼방은 결국 그들 자신들에게 임할 진노를 쌓는 꼴이었다(롬 12:20).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 이것도 앞 문구와 동일한 의미이다. 즉, 악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평안’으로 인하여 스스로 교만해졌으니(살전 5:3). 그 결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기에 이르도록 해달라는 뜻이다.
테흐솨케나 에네헴 메르오트 우모트네헴 타미드 하므아드
개역개정,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새번역,23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못 보게 해주시며, 그들의 등이 영원히 굽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23 그들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 등이 영원히 굽어지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3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들의 허리는 늘 휘청거리게 하소서.
영어NIV,23 May their eyes be darkened so they cannot see, and their backs be bent forever.
영어NASB,23 May their eyes grow dim so that they cannot see, And make their loins shake continually.
영어MSG,23 Make them become blind as bats, Give them the shakes from morning to night.
영어NRSV,23 Let their eyes be darkened so that they cannot see, and make their loins tremble continually.
헬라어구약Septuagint,23 (없음)
라틴어Vulgate,23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3 תֶּחְשַׁכְנָה עֵינֵיהֶם מֵרְאֹות וּמָתְנֵיהֶם תָּמִיד הַמְעַד׃
성 경: [시69:23]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 롬 11:10에 인용된 문구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눈을 악행을 일삼을 대상을 찾는 데 사용 하였다. 이에 따라, 저자는 그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그들이 더 이상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문구를,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 자들에게 각종 질병의 저주가(신 28:27,28) 임하게 해달라는 간구로(Anderson), 혹은 그들의 판단력을 상실케 하여 더 이상 흉계를 꾸미지 못하게(사 6:9, 10) 해달라는 간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Rawlinson).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 ‘허리’는 힘이나 능력을 상징한다. 악인들은 그 ‘힘’을 의인을 핍박하는 데 사용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그들이 더이상 그 ‘힘’을 악용하여 의인들을 못살게 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웨파크 알레헴 자메카 와하론 아페카 얏시겜
개역개정,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새번역,24 주님의 분노를 그들에게 쏟으시고, 주님의 불붙는 진노를 그들에게 쏟아부어 주십시오.
우리말성경,24 주의 진노를 그들에게 쏟아 부으시고 주의 격렬한 분노로 그들을 덮치소서.
가톨릭성경,24 그들 위에 당신의 분노를 쏟아 부으소서. 당신 진노의 불길이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영어NIV,24 Pour out your wrath on them; let your fierce anger overtake them.
영어NASB,24 Pour out Your indignation on them, And may Your burning anger overtake them.
영어MSG,24 Let them know what you think of them, Blast them with your red-hot anger.
영어NRSV,24 Pour out your indignation upon them, and let your burning anger overtake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24 (없음)
라틴어Vulgate,24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4 שְׁפָךְ־עֲלֵיהֶם זַעְמֶךָ וַחֲרֹון אַפְּךָ יַשִּׂיגֵם׃
성 경: [시69:24]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주의 분노를 저희 위에 부으시며 – 79:6;겔 21:31;22:31;습 3:8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이는 하나님의 철저한 보응이 악인들에게 임하기를 간구하는 말이다. 한편, 본문은 언약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저주를 연상시킨다(신 28:15, 45).
테히 티라탐 네솸마 베아홀레헴 알 예히 요쉡
개역개정,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새번역,25 그들의 거처를 폐허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천막에는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25 그들이 있는 곳이 황폐하게 돼 그들의 장막에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5 그들이 사는 곳은 황폐해지고 그들의 천막에는 사는 이가 없게 하소서.
영어NIV,25 May their place be deserted; let there be no one to dwell in their tents.
영어NASB,25 May their camp be desolate; May none dwell in their tents.
영어MSG,25 Burn down their houses, Leave them desolate with nobody at home.
영어NRSV,25 May their camp be a desolation; let no one live in their tents.
헬라어구약Septuagint,25 (없음)
라틴어Vulgate,25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5 תְּהִי־טִירָתָם נְשַׁמָּה בְּאָהֳלֵיהֶם אַל־יְהִי יֹשֵׁב׃
성 경: [시69:25]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 고대 중근동에서는, 자신의 집을 파괴당한 사람을 가장 불행한 사람 중의 하나로 여겼다고 한다(Keil). 따라서 본문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박해하여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 악인들도 마땅히 보응을 받아 그렇게 되도록(마 23:38)해 달라는 간구이다. 여기서 ‘거처'(*, 티라)는, ‘둘러싸다’를 뜻하는 동사 ‘투르'(*)에서 파생되었으며, 둥그런 모양의 촌락을 이루는 유목민의 천막(창 25:16)을 가리킨다(Keil). 그 천막에 의해서 둘러싸여진 공간에는 가축들이 방목(放牧)되었다(민 31:9, 10).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 이는 앞 문구와 거의 동일한 뜻이지만, 앞 문구보다 그 의미가 훨씬 강하다. 즉, 여기서는 악인들의 죄에 따른 영향이나 결과가 그 후손들에게까지 미치게 해달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주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라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키 앝타 아쉘 힠키타 라다푸 웨엘 마케오브 할랄레카 예샆페루
개역개정,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새번역,26 그들은, 주님께서 매질하신 사람을 새삼스레 핍박하며, 주님께 맞은 그 아픈 상처를 덧쑤시고 다닙니다.
우리말성경,26 그들이 주께 맞은 사람들을 다시 핍박하고 주께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다시 말하고 있으니
가톨릭성경,26 그들은 당신께서 때리신 이들을 뒤쫓고 당신께서 치신 이들의 상처를 헤아립니다.
영어NIV,26 For they persecute those you wound and talk about the pain of those you hurt.
영어NASB,26 For they have persecuted him whom You Yourself have smitten, And they tell of the pain of those whom You have wounded.
영어MSG,26 They gossiped about the one you disciplined, Made up stories about anyone wounded by God.
영어NRSV,26 For they persecute those whom you have struck down, and those whom you have wounded, they attack still more.
헬라어구약Septuagint,26 (없음)
라틴어Vulgate,26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6 כִּי־אַתָּה אֲשֶׁר־הִכִּיתָ רָדָפוּ וְאֶל־מַכְאֹוב חֲלָלֶיךָ יְסַפֵּרוּ׃
성 경: [시69:26]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여 – ‘주의 치신 자’는, 다윗이 자신에게 닥친 시련이 하나님의 허용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미 다윗은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다는 뜻을 표한 바있다(5, 7절) ‘주의 치신 자’는 인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대신 형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요 1:29). 아무튼 다윗 시대의 악인들이나,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악인들 모두, 하나님의 징벌을 당해 고통을 당하는 자를 동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애매히 ‘핍박’함으로써 그 고통을 가중시켰다.
테나 아온 알 아오남 웨알 야보우 베치데카테카
개역개정,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새번역,27 그들이 저지른 죄악마다 빠짐 없이 벌하셔서, 그들이 주님의 사면을 받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27 그들의 죄 위에 죄를 더해 그들이 주께 용서받지 못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7 그들의 죄에다 죄를 더하소서. 그들이 당신 구원에 들지 못하게 하소서.
영어NIV,27 Charge them with crime upon crime; do not let them share in your salvation.
영어NASB,27 Do You add iniquity to their iniquity, And may they not come into Your righteousness.
영어MSG,27 Pile on the guilt, Don’t let them off the hook.
영어NRSV,27 Add guilt to their guilt; may they have no acquittal from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7 (없음)
라틴어Vulgate,27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7 תְּנָה־עָוֹן עַל־עֲוֹנָם וְאַל־יָבֹאוּ בְּצִדְקָתֶךָ׃
성 경: [시69:27]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 ‘더 정하사'(*, 테나)의 기본형 ‘타나'(*)는 단순히 ‘주다’의 뜻이다. 본 문구는 악인들을 타락한 심령 그대로 방치하여(롬 1:24, 28)). 그들도 하여금 계속적으로 죄악을 범하면서 살게끔 내어버려 두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그들로 하며금 선을 행치 못하게 하거나 또는 그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조장하시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할 경우, 스스로의 타락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죄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 26:10).
주의 의(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셔서 – 악인들이 계속적으로 악행 가운데 있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뜻이다(Anderson).
임마후 밋세페르 하이욤 웨임 찯디킴 알 잌카테부
개역개정,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새번역,28 그들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로운 사람의 명부에 올리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말성경,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려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못하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8 그들이 생명의 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영어NIV,28 May they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life and not be listed with the righteous.
영어NASB,28 May they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life, And may they not be recorded with the righteous.
영어MSG,28 Strike their names from the list of the living; No rock-carved honor for them among the righteous.
영어NRSV,28 Let them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the living; let them not be enrolled among the righteous.
헬라어구약Septuagint,28 (없음)
라틴어Vulgate,28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8 יִמָּחוּ מִסֵּפֶר חַיִּים וְעִם צַדִּיקִים אַל־יִכָּתֵבוּ׃
성 경: [시69:28]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塗抹)하사 – ‘생명책’이란 의인의 이름이 기록된 천상의 명부를 가리킨다(출 32:32;사 4:3;단 12:1;계 3:5;13:8). 이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구원과 온갖 축복들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영원히 멸망당하고 만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듸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백성 중 악인들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바 되고, 이에 따라 그들은 구원받은 자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와아니 아니 웨코엡 예슈아테카 엘로힘 테삭게베니
개역개정,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새번역,29 나는 비천하고 아프니, 하나님, 주님의 구원의 은혜로 나를 지켜 주십시오.
우리말성경,29 나는 지쳤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이 나를 높은 곳으로 건지게 하소서.
가톨릭성경,29 저는 가련하고 고통 중에 있습니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영어NIV,29 I am in pain and distress; may your salvation, O God, protect me.
영어NASB,29 But I am afflicted and in pain; May Your salvation, O God, set me securely on high.
영어MSG,29 I’m hurt and in pain; Give me space for healing, and mountain air.
영어NRSV,29 But I am lowly and in pain; let your salvation, O God, protect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9 (없음)
라틴어Vulgate,29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9 וַאֲנִי עָנִי וְכֹואֵב יְשׁוּעָתְךָ אֱלֹהִים תְּשַׂגְּבֵנִי׃
성 경: [시69:29]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대적들에 대한 징계를 호소]
여기서 다윗은 악인과는 대조적인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 ‘가난하고'(*, 아니)는 ‘괴롭히다’ 혹은 ‘압제하다’를 뜻하는 동사 ‘아나'(*)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약한’, ‘고생하는’, ‘겸손한’ 등의 뜻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결핍 상패를 강조하는 ‘에브욤'(*)과는 좀 다르다. 즉, ‘아니’라는 단어에는 자신의 무능과 그로 인한 비통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Leonard J. Coppes). 한편, ‘슬프오니'(*, 코에브)는 ‘아프다’ 혹은 ‘슬프다’를 뜻하는 동사 ‘카아브'(*)에서 파생되었으며, 육신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막룐하고 그로 인하여 느끼게 되는 비통함을 가리킨다(욥 33:19;셀 28:24). 이처럼 다윗은 현저히 낮아져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 스스로 자고(自高)하여 의인들을 모해하려는 악인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22절).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 높아지고자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아지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주님의 교훈(마 23:12)에 비춰 볼 때 이러한 기도는 지극히 합당하다. 어쨌든 이는 원수들의 훼방에서 벗어나게 하심으로써, 더 이상 그들에 의해 짓밟히는 비천한 지경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이다.
아할렐라 쉠 엘로힘 베쉬르 와아갇델렌누 베토다
개역개정,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새번역,30 그 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련다. 감사의 노래로 그의 위대하심을 알리련다.
우리말성경,30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주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가톨릭성경,30 나는 하느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송가로 그분을 칭송하리라.
영어NIV,30 I will praise God’s name in song and glorify him with thanksgiving.
영어NASB,30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song, And sha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영어MSG,30 Let me shout God’s name with a praising song, Let me tell his greatness in a prayer of thanks.
영어NRSV,30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a song; I wi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헬라어구약Septuagint,30 (없음)
라틴어Vulgate,30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0 אֲהַלְלָה שֵׁם־אֱלֹהִים בְּשִׁיר וַאֲגַדְּלֶנּוּ בְתֹודָה׃
성 경: [시69:30]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여기서부터 마지막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이 의인을 구원하시리라는 확신과 그에 따른 찬양이 나오고 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 다윗은 비록 여전히 악인들의 핍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리라는 선취적(先取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히 11:1).
웨티타브 아도나이 미숄 파르 마케린 마프리스
개역개정,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새번역,31 이것이 소를 바치는 것보다, 뿔 달리고 굽 달린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게 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1 여호와께서는 소 한 마리보다, 뿔과 발굽 달린 황소 한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1 이것이 주님께는 더 좋다네, 수소들보다 뿔 달리고 굽 갈라진 황소들보다.
영어NIV,31 This will please the LORD more than an ox, more than a bull with its horns and hoofs.
영어NASB,31 And it will please the LORD better than an ox Or a young bull with horns and hoofs.
영어MSG,31 For GOD, this is better than oxen on the altar, Far better than blue-ribbon bulls.
영어NRSV,31 This will please the LORD more than an ox or a bull with horns and hoofs.
헬라어구약Septuagint,31 (없음)
라틴어Vulgate,31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1 וְתִיטַב לַיהוָה מִשֹּׁור פָּר מַקְרִן מַפְרִיס׃
성 경: [시69:31]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 하나님께 드릴 제물로서 전혀 흠이 없는 ‘소’임을 말해준다(레 11:3, 4).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 하나님께서는 값비싼 제물을 드리는 의식적(儀式的) 제사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의 제사를 더 좋아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의식적 제사를 무가치하게 본 것은 결코 아니였다. 다만 그는 만일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아니한 의식적 제사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의식이 없되 감사하는 마음의 제사를 더 기뻐하신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듯하다. 다윗이 환난을 당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행한 서원에서 자주 번제 혹은 감사제를 말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54:6;56:12;68:29). 추측컨대 다윗은 환난에서 구출함을 받았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의 제사뿐만 아니라 의식적 제사도 함께 드렸을 것이다.
라우 아나윔 이스마후 도레쉐 엘로힘 위히 레바베켐
개역개정,32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새번역,32 온유한 사람들이 보고서 기뻐할 것이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아, 그대들의 심장에 생명이 고동칠 것이다.
우리말성경,32 겸손한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아, 너희 마음이 살아나리라!
가톨릭성경,32 가난한 이들이 이를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느님을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 기운 차려라.
영어NIV,32 The poor will see and be glad–you who seek God, may your hearts live!
영어NASB,32 The humble have seen it and are glad; You who seek God, let your heart revive.
영어MSG,32 The poor in spirit see and are glad– Oh, you God-seekers, take heart!
영어NRSV,32 Let the oppressed see it and be glad; you who seek God, let your hearts revive.
헬라어구약Septuagint,32 (없음)
라틴어Vulgate,32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2 רָאוּ עֲנָוִים יִשְׂמָחוּ דֹּרְשֵׁי אֱלֹהִים וִיחִי לְבַבְכֶם׃
성 경: [시69:32]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 ‘온유한 자'(*, 아나윔)는 29절의 ‘가난하고’와 동족(同族)의 단어로서 복수이다. 이는 다윗과 같이 자신의 무능력을 알며 그럼으로써 애통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을 가리킨다. 한편,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는 ‘온유한 자’들이 다윗이 구원받은 일로 말미암아 다윗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그 일로 인하여 기뻐한 것이다(64:10).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 – 더 이상 의기소침하지 말고 세상에 대하여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권면이다. 앞 문구는 다윗이 악한 자들의 훼방에서 구출됨을 보고 의인들이 기뻐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반면, 본 문구는 의인들이 그 예인을 실제로 성취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예언된 바를 선하게 실현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다.
키 쇼메아 엘 에브요님 아도나이 웨엩 아시라우 로 바자
개역개정,33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새번역,33 주님은 가난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므로, 갇혀 있는 사람들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우리말성경,33 여호와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 사로잡힌 백성들을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
가톨릭성경,33 주님께서는 불쌍한 이들의 소리를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영어NIV,33 The LORD hears the needy and does not despise his captive people.
영어NASB,33 For the LORD hears the needy, And does not despise His who are prisoners.
영어MSG,33 For GOD listens to the poor, He doesn’t walk out on the wretched.
영어NRSV,33 For the LORD hears the needy, and does not despise his own that are in bonds.
헬라어구약Septuagint,33 (없음)
라틴어Vulgate,33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3 כִּי־שֹׁמֵעַ אֶל־אֶבְיֹונִים יְהוָה וְאֶת־אֲסִירָיו לֹא בָזָה׃
성 경: [시69:33]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히브리 원문에는 초두에 ‘왜냐하면’을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어서, 본절이 32절의 이유임을 말해준다.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 ‘궁핍한 자'(*, 에비오님)는 일반적으로 경제적으로 곤란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가리킨다(29절). 여기서는 32절의 ‘온유한 자’와 동일하게 ‘의인'(28절)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32절의 ‘온유한 자’가 심령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여기의 ‘궁핍한 자’는 삶의 현장에서 당하는 빈곤을 강조한다. 아마도 이 의인들의 이러한 경제적 빈곤은 (1) 권세를 잡은 악인들에 의한 수탈이나 (2) 불의한 방법에 의한 돈 벌기를 기피하였기 때문에 발생하였을 것이다. 한편, ‘들으시며’는, (1) 하나님이 의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며 (2) 더 나아가 그 기도에 응답하며 구원할 채비를 하고 계심을 암시한다.
자기를 인하여 수금(囚禁)된 자 –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마 5:10)로 표현될 수 있다.
예할렐루후 솨마임 와아레츠 얌밈 웨콜 로메스 밤
개역개정,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새번역,34 하늘아,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와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우리말성경,34 하늘과 땅이 그분을 찬양하고 바다와 그 안에 움직이는 모든 것도 그분을 찬양하라.
가톨릭성경,34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과 땅아 물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아.
영어NIV,34 Let heaven and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all that move in them,
영어NASB,34 Let heaven and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moves in them.
영어MSG,34 You heavens, praise him; praise him, earth; Also ocean and all things that swim in it.
영어NRSV,34 Let heaven and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moves in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34 (없음)
라틴어Vulgate,34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4 יְהַלְלוּהוּ שָׁמַיִם וָאָרֶץ יַמִּים וְכָל־רֹמֵשׂ בָּם׃
성 경: [시69:34]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의인들이 그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것을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이다. 즉, 의인들은 구원받은 벅찬 감격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다윗은 그 감격을 나누고 싶어서 심지어는 지각이 없는 자연계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대열에 참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연 만물은 결코 찬양의 대열에 끼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능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암시적으로 찬양을 드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8편;148:3 등 참조). 결국 본문은 위대하신 하나님께 드이는 찬양은 우주적인 성격을 띠고도 남음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사 44:23;55:12). 만일 이처럼 지각 없는 자연 만물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대열에 끼어야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창 1:26, 27), 특별히 구원받은 백성 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키 엘로힘 요시아 치욘 웨이베네 아레이 예후다 웨야쉬부 솸 위레슈하
개역개정,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새번역,35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다시 세우실 것이니,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면서, 그 곳을 그들의 소유로 삼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실 것이요, 유다의 성들을 다시 지으시리라. 그러고 나면 백성들이 거기 정착해 그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
가톨릭성경,35 하느님께서는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영어NIV,35 for God will save Zion and rebuild the cities of Judah. Then people will settle there and possess it;
영어NASB,35 For God will save Zion and build the cities of Judah, That they may dwell there and possess it.
영어MSG,35 For God is out to help Zion, Rebuilding the wrecked towns of Judah. Guess who will live there– The proud owners of the land?
영어NRSV,35 For God will save Zion and rebuild the cities of Judah; and his servants shall live there and possess it;
헬라어구약Septuagint,35 (없음)
라틴어Vulgate,35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5 כִּי אֱלֹהִים יֹושִׁיעַ צִיֹּון וְיִבְנֶה עָרֵי יְהוּדָה וְיָשְׁבוּ שָׁם וִירֵשׁוּהָ׃
성 경: [시69:35]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이 예언은 1차적으로는 다윗 당시의 예루살렘 구축 혹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부터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귀환함으로써 성취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적 섭리에 따라 구원받게 됨으로써 성취되어가고 있으며 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 여기의 ‘시온’은 구약적 관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고 신약적 관점에서는 영적 이스라엘(롬 9:6, 30)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항상 보호하셨고 또한 지금도 보호하고 계신다.
웨제라 아바다우 이느할루하 웨오하베 쉐모 이쉬케누 바흐
개역개정,36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새번역,36 주님의 종들의 자손이 그 땅을 물려받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36 그 종들의 씨가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 살게 되리라.
가톨릭성경,36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상속하여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서 살아가리라.
영어NIV,36 the children of his servants will inherit it, and those who love his name will dwell there.
영어NASB,36 And the descendants of His servants will inherit it, And those who love His name will dwell in it.
영어MSG,36 No, the children of his servants will get it, The lovers of his name will live in it.
영어NRSV,36 the children of his servants shall inherit it, and those who love his name shall live in it.
헬라어구약Septuagint,36 (없음)
라틴어Vulgate,36 (없음)
히브리어구약BHS,36 וְזֶרַע עֲבָדָיו יִנְחָלוּהָ וְאֹהֲבֵי שְׁמֹו יִשְׁכְּנוּ־בָהּ׃
성 경: [시69:36]
주제1: [역경에 대한 탄원]
주제2: [확신과 찬양]
그 종들의 후손이…이를 상속하고 –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영원히 소유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팔레스틴을 소유하였으며, 신약 시대에는 그 땅의 실체인 하나님 나라를 영적 이스라엘이 소유하고 있다. 더구나 영적 이스라엘은, 세상 끝날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자신의 영원한 기업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벧후 3:13).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 이는 어떤 자가 기업을 누릴 수 있게 될지를 말한다. 즉,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 곧 (1)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마 10:32) (2) 하나님만을 구원자로 의지하는(잠 16:20) 자가 그 기업을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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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소서(시편69:1-18절)
본문 : 시편 69:1-18절
제목 : 나를 구원하소서.
1. 고난이 없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여행하면서 어려움이 없고 고난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크고 작은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 수많은 실패들, 그리고 나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런 고난들은 근본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위장된 축복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필 시편 69편 역시 다윗은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들어왔다고 노래합니다.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목이 마르고 눈이 쇠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어려움이 그에게 닥친 것입니까?
우리는 이 시편의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의 수많은 비탄시 가운데 하나인 시편 69편은 다윗이 통치 말년(B.C.979-971년경)에 이르러 압살롬이나(삼하15장) 아도니야에게 반역당한 때에(왕상1장) 자신의 곤고한 처지를 하나님께 호소하며 구원을 간구한 시로 보입니다. 무게 중심은 아도니야의 반역 때에 지은 시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듯합니다. 만약 배경이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면 우리는 열왕기상 1장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은 수많은 정략결혼으로 많은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이 후궁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은 이미 후계자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가운데 압살롬은 잘난 자식의 대표적인 아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너무 잘난 사람은 그 잘남 때문에 교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 왕이 되고자 한 때는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었을 때입니다. 이불을 덮어도 따듯하지 않아 수넴 여자 아비삭으로 몸을 따뜻하게 했던 때라는 것입니다. 그때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로서 용모가 심히 준수한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스스로 높였습니다. 항상 잘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스스로 높이려는 마음을 가진 교만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아도니야의 편에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요압이 누구입니까? 다윗과 함께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불굴의 용장이 요압입니다. 그러나 그는 손톱 밑의 가시처럼 다윗을 늘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참모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요압은 노년에 다윗 편에 서지 못하고 아도니야와 함께 반역을 꾀한 것입니다. 이 후계자 전쟁의 핵심은 솔로몬이 후계자로 정해진 상황에 대한 불만을 품은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반역 사건은 헤프닝으로 끝나고 마지막까지 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도니야는 끝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달라고 밧세바에게 청탁했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노년에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만약 이 사건이 배경이라면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압살롬으로 부족해서 또 잘난 아들이 반역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돈과 권력의 그늘에는 늘 이렇게 욕망에 사로잡힌 피의 수레바퀴가 흐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저주 부분에 해당하는 19-28절을 보면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는 배경에 쉽게 수긍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 시편은 뒷날 주님이 여러 구절을 인용하심으로 메시아 시편으로도 유명합니다. 어쩌면 다윗이라는 영감 받은 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뒷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해 말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시편 69편은 36절이라는 다소 긴 시편이지만 단락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1-18절까지가 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호소입니다. 19-29절까지가 원수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30절부터 마지막 까지는 항상 그런 것처럼 찬양입니다. 아직 응답되지 않았지만 먼저 찬양하는 믿음의 찬양입니다.
시편 69편은 몇몇 중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셨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4절에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 보다 많다는 말씀은 요 15:25에서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편 69:4절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9절에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는 구절은 요2:17에서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고 쓰고 있습니다.
21절에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은 마27:34절에서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씀과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다윗이 자신이 당한 고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대속적인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기록한 시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이 그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썼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다윗이 당하는 고난의 잔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 속에서 다윗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여…
자, 그럼 이제 다윗이 느끼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표현들을 묵상할 때가 되었습니다. 소산님은 이 시편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나타냄 말과 같은 것입니다. 백합화를 뜻하는 말이라서 백합화 곡조라고 부릅니다.
1절과 2절은 물과 깊은 수렁으로 다윗이 처한 상황을 3-4절은 신체적인 측면과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다고 할 때 영혼은 몸과 마음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물은 상징적으로 그가 처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영혼까지는 완전히 물에 잠겨버리다 못해 영혼까지 잠겼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많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위기 상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편이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면 요압과 아도니야의 반역이야 말로 커다란 충격이 되어 찾아왔을 것입니다. 요압이 누구입니까? 자신과 평생을 전투한 군대장관이 아닙니까?
정말 이럴 때면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목회 현장에서도 늘 가까운 사람이 어려움을 줄 때가 많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제 목회 철학을 잘 이해하고 살펴야 할 사람들이 외면하고 고통을 줄 때 그 외로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아마 늙어서 체온 유지조차도 어려운 다윗에게 요압과 아비아달의 반역은 아도니야의 반역보다도 큰 충격이었을 수 있습니다.
14-15절을 여기서 살피는 것은 중요해 보입니다.
나를 수렁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입니다. 깊은 물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수렁과 깊은 물은 나를 미워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큰물이 나를 휩쓸거나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2절이 상황이라면 14-15절은 그 상황에 대한 간구입니다. 그렇다면 3-13절까지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겠습니까? 물론 시 이기 때문에 다소 상징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타나지만 구원해 달라는 근거 구절들이 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3-4절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눈이 쇠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 말랐다는 말은 나무가 불에 타는 것을 의미하는 마입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의미입니다. 눈이 쇠했다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치명적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목이 마른 장작처럼 될 때까지 눈이 쇠할 때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라는 표현은 다윗이 이 반역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다윗에게 반기를 들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윗의 생각일 것입니다. 요압과 아도니야에게 물으면 다른 대답이 돌아오겠지요. 그러나 이 말은 다윗이 그들이 반역할 만큼 잘못 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느끼는 감정도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고 평생을 변함없이 순전하게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불평하고 본질이 아닌 것으로 이유를 제기합니다.
5절부터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5-6절은 죄에 대한 자백입니다.
우매함은 종종 ‘지혜’와 반대되는 도덕적 무감각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죄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다윗은 지금 원수들 앞에서는 자신이 무죄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매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숨길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체적인 간구를 하기에 앞서 먼저 죄를 자백하는 것은 다윗이 죄의 고백과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을 증거 해 줍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나로 인해 주를 바라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지 말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도입니다. 먼저 죄를 자복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을 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다 늙어서 이런 반역의 현장, 그것도 평생 함께 전장을 누벼온 요압의 반역이 얼마나 다윗을 힘들게 하겠습니까? 아들이야 철이 없어 그런다지만 요압과 아도니야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수치를 당하게 될까 두려운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옛날처럼 힘 있게 정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자신은 늙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주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바란다는 말 카바(hw:q;)는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갈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다윗의 묵상은 과거로 나아갑니다.
압살롬의 반역, 아도니야의 반역, 그리고 사울에게 당한 고통 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이런 고난의 시간들이 주를 위한 비방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수치는 공개적인 모욕이나 부끄러움, 마음의 상처를 의미합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볼 때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올바르게 살아온 것뿐인데 끊임없이 반역하고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도 외면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기대 받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런데요? 9절이 더 마음이 아픕니다. 원래 9절 앞에 접속사 키(yKi)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에게 외면당한 이유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집을 위한 다윗의 열성이 왜 형제들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은 죽을 때까지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만약 왕상 1장의 아도니야의 반역이 맞는다면 이때 다윗은 거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만큼 늙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을 성전 건축을 위한 열심에 대해 형제들은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해 지는 대목입니다. 곡하고 금식하는 것이 나의 욕이 되었다고 씁니다.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굵은 베옷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을 살았는데 그게 말거리가 되고 반역의 빌미가 되었다는 성찰입니다. 성문에 앉은 자가 비난하고 독주에 취한 무리가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땅에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3. 주의 인자와 진리로(13-18절)
13절부터는 다윗의 간구입니다. 13절과 16절을 보면 인자라는 공통 단어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애가 필요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응답해 달라는 다윗의 간구가 가슴을 움직이는 것은 주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인자와 긍휼로 속량해 달라고 합니다.
18절에서 구원하시며는 고엘의 원형입니다. 가알(la’G:)이라는 이 말은 본래 채무 때문에 종으로 팔려간 자를 위하여 대가를 대신 지불해 줌으로써 종의 상태에서 풀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말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이 어려움, 물이 영혼까지 덮여 있는 어려움입니다. 그ㅡ 어려움에서 구원해 달라는 간구를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사용하셨던 단어를 사용함으로 또 다시 메시아에 대한 예표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파다(hd;P;)로 ‘구속하다’와 거의 동일한 의미입니다. 다만 ‘구속하다’가 얽매인 자에 대한 구원의 방법과 관련된 단어라면 ‘속량하다’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얽매인 자를 풀어주는 구원 행위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속량을 직역하면 몸값을 주다, 구속하다, 구출하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생각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인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 영혼을 덮고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가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자초하는지 말입니다. 아도니야는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가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요압은 다윗이 죽을 때 편히 죽게 하지 말라고 유언합니다.
정작 다윗은 늙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못할 때까지 몹쓸 꼴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에게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배웁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했던 다윗에게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는 것입니다.
욕심은 늘 자신과 주변 사람을 해치는 주범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욕심 때문에 고통의 현장에 내 던져진 다윗의 이 시편이 얼마나 마음을 움직이는지… 이제는 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윗! 그의 기도가 더 간절하게 들리는 것은 그의 믿음이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윗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믿음의 원리를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시편 69편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본문주석 및 새벽설교 준비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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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고 모함을 하여 생명을 해치려고 합니다. 빠져 나가고 싶지만 허우적 거릴수록 더 깊은 웅덩이로 들어갑니다. 의지할 사람이 없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통독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먼저 고백하고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엎드리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석을 참조하면서 새벽설교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시편 제69편,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 현대인의 성경 ]1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백합화’ 곡조에 맞춰 부른 노래) 하나님이시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이 내 목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2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가나 발을 디딜 곳이 없습니다. 내가 깊은 물에 빠졌는데 큰 물결이 나를 덮칩니다.
3 내가 부르짖다가 지쳐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내가 하나님을 찾다가 눈마저 쇠약해졌습니다.
4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죄 없는 나를 죽이려는 내 원수들의 세력이 막강하므로 내가 훔치지도 않은 것을 물어 주게 되었습니다.
5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나의 어리석음을 아시므로 내 죄를 주께 숨길 수 없습니다.
6 전능하신 주 여호와여, 주를 신뢰하는 자들이 나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주를 찾는 자들이 나 때문에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7 내가 주로 인해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뒤집어썼습니다.
8 내가 내 형제들에게 나그네가 되고 내 가족에게 이방인처럼 되었습니다.
9 주의 성전을 위하는 열심이 내 속에 불타오르므로 주께 던지는 모욕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10 내가 울고 금식하였더니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11 내가 굵은 삼베 옷을 입었더니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12 성문에 앉은 자들이 나를 조롱하고 술주정꾼들이 나에 대하여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13 그러나 여호와여, 나는 주께 기도합니다. 이제는 주께서 들으실 때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진리로 나에게 응답하소서.
14 진흙탕 속에 빠져들어가는 나를 건지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지키시며 깊은 물에서 나를 건지소서.
15 홍수가 나를 덮치거나 대양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고 내가 웅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16 여호와여, 주의 놀라운 사랑으로 나에게 응답하시며 주의 크신 자비로 나를 돌아보소서.
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숨기지 마소서. 내가 큰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속히 나에게 응답하소서.
18 가까이 와서 나를 구하시며 내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19 주는 내가 당하는 모욕과 조롱과 수치를 아십니다. 나의 대적들이 다 주 앞에 있습니다.
20 내가 그들의 모욕으로 마음이 상하여 근심하고 있습니다. 내가 동정을 바라지만 얻을 수 없고 위로를 바라지만 나를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21 그들이 음식 대신에 나에게 쓸개를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초를 주었습니다.
22 그들 앞에 놓인 식탁이 그들에게 덫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평안이 그들에게 함정이 되게 하소서.
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 쏟으시고 주의 맹렬한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집이 폐허가 되게 하여 그 곳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그들이 주께서 벌하신 자를 핍박하고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들의 고통을 들어 말합니다.
27 그들의 죄를 낱낱이 기억하셔서 그들이 주의 구원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시고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29 하나님이시여, 내가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나를 높이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라.
31 이것이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를 더 기쁘게 할 것이다.
32 가난한 자가 이것을 보고 기뻐하리라. 하나님을 찾는 자들아, 용기를 가져라.
33 여호와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갇혀 있는 자기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34 하늘과 땅이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아, 그를 찬양하라.
3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고 유다성들을 재건하실 것이니 그의 백성이 거기 정착하여 그 땅을 소유할 것이며
36 그들의 자녀들이 그 땅을 상속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거기서 살리라.
1. 이 시편의 수신인
– 다윗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2. 이 시편의 음악적 특징
– 쇼샨님(쇼샨님은 백합이라는 뜻)의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시편
3. 이 시편의 저자
–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주석가들은 다윗이 저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 이 시편의 본질
– 시편 69편은 “메시아적 시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편 69편의 모든 내용들이 메시아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 내용들은 시편의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시편의 신약성경 인용
– 시편 22편을 제외한다면, 신약성경에서 많이 인용되는 시편입니다.
6. 이 시편의 주제
– 부당한 학대로 인한 고통
7. 이 시편의 개요
– 다윗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69:1-4).
A. 도움을 요청하는 부르짖음
하나님이여, 구원하여 주소서(69:1a)
B.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이유(69:1b-4)
그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69:1b, 2). 목까지 흘러 들어오는 물, 깊은 수렁 그리고 깊은 물결은 다윗을 죽음으로 끌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다윗의 적들로 인하여 찾아오는 박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쓰러질 것 같습니다(69:3).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울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적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69:4). 다윗의 원수들은 많으며 강하고 악합니다. 그들이 이유 없이 다윗을 미워하고 다윗에게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파괴하려고 하는 살인자와 같습니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구절은 요한복음 15장 25절에서 인용되고 이루어졌습니다.
– 다윗의 죄의 고백(그의 어리석음을 고백하다)(69:5, 6)
A. 다윗의 고백(69:5)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보다 자신의 죄를 훨씬 더 잘 알고 계시다고 말합니다(요일 3:20). 그리고 현재 자신의 고통은 자신의 죄악의 결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다윗은 모든 죄가 무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적들이 다윗에 대하여 중상모략한 것들이 모두 근거 없는 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B. 다윗의 청원(69:6)
“주여, 내 고난에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내가 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내버려 두심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 다윗은 자신이 겪는 고난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9:7-12)
A.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책망을 당하고 수치를 겪고 있습니다(69:7)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다윗은 자신의 죄 때문에 당연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5절).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위하여 부당하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7절).
B. 그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 때문에 소외를 당합니다(69:8, 9b)
그의 직계 가족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다윗을 소외시킵니다. 요한복음 2장 17절이 관련 있는 구절입니다.
C.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비난을 받습니다(69:9b)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악한 자들은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우리까지도 미워하며 비난을 일삼습니다(요 15:21). 로마서 15장 3절에서 이같은 내용들이 이루어졌습니다.
D. 그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금식함으로 인하여 조롱과 비난을 받습니다(69:10-12).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에 대한 사람들의 조롱으로 인하여 다윗은 공개적으로 슬퍼하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있으나, 사람들은 다윗의 그 모습을 보며 또다시 비난합니다. 지나 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 구원을 위한 다윗의 간구(69:13-18)
A. 그의 기도에 의해 표현되는 대조적 모습(69:13)
남들이 하나님을 비난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B. 그의 순종의 기도(69:13b)
그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시간” 즉,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때”에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응답 역시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때를 정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인내할 수 있겠습니까?
C. 기도의 기초(69:13, 16)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영원하심, 변함없으심과 그분의 사랑과 친절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를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D. 기도의 내용(69:13-18)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을 바라보시며 인도해 주실 것임을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E. 기도의 긴급함(69:17)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말을 속히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소서”라며 간곡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13절의 내용과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우선이며, 자신의 현재 괴로움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사실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자신의 문제들에 대한 반복(69:19-21)
A. 다윗은 자신의 적들로부터 책망과 수치와 비난을 당하고 있습니다(69:19)
B. 그는 마음이 아프고 무겁습니다(69:20)
C. 위로를 찾지 못하였습니다(69:20b).
D. 적들은 다윗을 잔인하게 대합니다(69:21).
– 다윗이 적들에 대하여 복수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습니다(69:22-28)
원수들이 박해하고 있기 때문에, 다윗은 그들에게 속히 복수해 주시고 보응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강력한 어조로 복수를 요청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원수가 심판을 받고 다윗의 무죄함이 입증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절과 23절은 로마서 11장 9절과 10절에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 미래에 대한 다윗의 확신(69:29-35)
A.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69:29-31).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실 때,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올려 드릴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입니다(시 50:8-15; 시 51:16, 17).
B. 모든 의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뻐할 것이라고 다윗은 확신합니다(69:32, 33). 의인들은 다윗처럼 자신들도 하나님께서 원수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땅과 백성들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69:34-36).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재건하시며 이스라엘의 의인들이 영원히 이 성읍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고 다윗은 확신합니다.
8. 이 시편의 교훈
– 우리는 죄를 하나님께 반드시 고백해야 합니다(69:5).
– 우리는 의를 지키기 위하여 당하게 되는 고통을 예상하며 살아야 합니다(69:7-12).
–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때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69:13-18).
–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69: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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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가 고난으로 돌아올 때 1(시 69)
제목 : 의가 고난으로 돌아올 때 Part 1
본문 : 시편 69편
설교자 : 최종혁
착하게 사는게 쉽지 않다.여기에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그보다도 힘든 일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착한 것 이상으로 살아야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다를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른빰을 맞고 가만히만 있어도 세상에서는 성인군자라고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왼뺨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셨다. 오 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오리를 같이 가면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셨다. 속옷을 원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기준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의로움과 사랑이었다.
또 그러면서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 살아야하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원하는 모습도 있고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는 것이다. 사회 봉사나 구제, 자선과 같은 것은 세상도 원하는 것이지만, 동성애나 낙태를 반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동시에 사랑을 선포해야 한다.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사랑은 원하지만 진리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도 정확히 이런 경험을 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먹을 것을 주셨을 때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찾아다녔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고 말씀을 듣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을 떠나갔다. 예수님 당시의 세상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도 그렇게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자가 예수님을 따를수록, 예수님을 닮을수록 더 그러할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세상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해서 사랑과 진리로 그들을 대할 때, 세상은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더 분명히 알게 되고 따라서 그들 중 하나가 아닌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예수님 이후의 성도들만 경험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시편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최근의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 익히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정상이다.
시편 69편은 정확히 이런 경험을 기록했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으로 인해 고난을 받으며 이 시편을 기록했다. 사적인 경험이지만, 다윗은 이 고난을 사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6절의 기도를 보면 자기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다른 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구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시편도 68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구한다. 68편은 축제로 들뜬 분위기에서 그렇게 했다면 69편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무겁게 가라 앉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탄식하고 간구하면서 결국 찬양과 기대로 나아간다. 의로운 동기로 행한 의로운 일이 결국 삶의 고난으로 돌아올 때, 다윗은 탄식했고 간구했고 그리고 찬양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을 함께 살펴보자.
탄식(1-12절)
다윗은 마치 물에 빠져가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다급하게 외쳤던 것처럼(마 14:30),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며 시를 시작한다. 상황도 비슷하다.
시 69:1-2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표현 때문에 저자를 예레미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표제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의 시가 아니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는 없다. 우리는 시편의 다른 곳에서도 다윗이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시 18:4,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40:2,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 다윗은 실제로 물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깊은 물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상황이 절박함을 표현한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 밖에 없다. 베드로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다윗도 그렇게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윗을 구할 수 있는 구조요원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고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다. 한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을 3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시 69: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다윗은 피곤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이 말라버릴 정도였다. 구원해 줄 하나님을 너무 오랫동안 쳐다봐서 눈도 아플지경이다. 우리식 표현으로 바꾸자면 눈이 빠지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정말 물에 빠져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 그래서 함부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만큼 물에 빠진 사람은 절박하다. 다윗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살다보면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한두번씩, 혹은 자주 마주하게 된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된다. 자연 재해나 개인의 질병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 여러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특정하고 있는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다. 4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있는 이유를 말한다.
시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다윗은 “까닭 없이”, “부당하게”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 쪽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그저 그를 미워하는 자가 머리털보다도 많고, 또 그의 원수가 되어 그를 끊으려고 하는 자, 즉 그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가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수적으로도 많고 힘도 강하다. 다윗이 그들의 공격을 ‘큰 물’로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다윗이 느끼기에 거대한 홍수, 강한 파도와 같았다.
다윗은 빼앗지도 않은 것을 물어주어야 하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것을 꼭 다윗의 대적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훔쳤다고 누명을 씌운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표현은 단순히 하지도 않은 일,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해서 억울하게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혹은 실제 사실에 대한 왜곡된 오해가 있음을 말한다.
쉽게 말해 다윗은 잘못한게 없다. 그의 대적들이 비난하면서 그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이런 상황에 대한 죄책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구원을 구한다.
물론 자신이 모든 일에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시 69: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죄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의 죄에 대한 정당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욥이 친구들에게 반복했던 주장과 같다. 내가 어떤 죄도 범하지 않은 의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죄악된 책임이 나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여 오해를 풀고 하는데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편 7편에서는 다윗은 억울함에 이렇게 기도했었다.
시 7:3-5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원수들의 말처럼 정말 자신이 죄를 범한 것이 있다면, 원수에게 죽임을 당하고 수치를 당해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억울하고, 무고함을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받고 있는 비방, 오해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7-12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시 69: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또한 그 수치로 인해 그의 형제들도 그를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한다고 말한다.
시 69: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이 시편의 배경은 아니겠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을 때 정확히 다윗은 이런 경험을 했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자신이 나가서 싸우려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는데, 그의 형은 다윗을 비방했다.
삼상 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자기 할 일은 제쳐두고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면서 비방한 것이다. 다윗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고자 했지만 돌아온 것은 조롱과 비방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런 경험들을 그 후에도 했었다. 특히 그가 언약궤를 가져오면서 힘써 춤을 추었을 때 그의 아내였던 미갈은 그 모습을 보고 업신여기면서 조롱했었다.
삼하 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윗 시대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다윗의 가족 중에도 있었고 그의 관원들 중에도 있었다. 여기서 다윗을 비방하던 사람들은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께 헌신된 모습을 보며 비방을 했던 것이다.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다윗만큼 주의 집, 즉 성막과 성전을 위하는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 없었다.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예배와 삶의 중심으로 다시 가져왔던 사람이 다윗이었고, 그런 예배의 장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장소를 임시 장막이 아닌 영원한 집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도 다윗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의 마음만 받으시고 성전을 짓는 것은 그의 역할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을 때,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했지만 성전을 위한 모든 준비는 스스로 했다. 건축 재료를 준비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드려질 예배를 위해 사람들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그런 열심에 다윗은 사로잡혀 있었고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비방을 그 스스로 받았던 것이다.
시 69:10-11 10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11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 거리가 되었나이다
여기 곡하고 금식하는 것, 굵은 베로 옷을 입는 것은 모두 예배의 행위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 이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바탕에 있는 예배의 행위다. 주로 회개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문맥 상 자신의 죄 때문에 드리는 회개의 예배는 아니다. 9절 말씀이 신약에서 예수님께 적용되었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행해지던 잘못된 예배를 바로 잡으셨다. 아마 다윗이 여기서 언급하는 회개의 예배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예배가 그의 통치 아래서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열심이 그에게 가득했기에, 그는 잘못된 예배, 예배자들로 인해 슬퍼하며 하나님께 예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그의 대적들은 이용했고 조롱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이 어떤 ‘죄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그를 비방했을 것이다. 12절을 보면 이런 일이 양지와 음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시 69: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비난하며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하나이다
성문에 앉은 자는 지도자들이다. 독주에 취한 무리는 술을 마시면서 가십거리를 나누는 일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을 비방하는 자들이 많고 강하다는 4절의 말씀처럼, 다윗은 공적으로 사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던 것이다. 다윗은 확실히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고 있었고, 어쩌면 넓은 의미에서는 그 비방하는 자를 위하여 회개의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이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비방은 피할 수가 없다. 막을 수가 없다. 다윗 자신이 그의 원수들처럼 되거나 혹은 그의 원수들이 그와 같이 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고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하셨던 말씀도 같은 이치다. 제자들이 세상과 같이 되거나 세상이 제자들과 같이 되지 않는 이상, 고난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구하는 것은 자신의 구원 뿐 아니라(1절), 자신처럼 주를 향한 열심이 가득한 자들의 구원도 있다.
시 69: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다윗은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두 차례 직접적으로 부른다. 만군의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능력에 있어 이 기도를 들으실 수 있는 분이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 관계에 있어 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하나님께서 주를 바라는 자들, 주를 찾는 자들을 위하여 일해주실 것을 구한다. 그들이 다윗 때문에 수치를 당하거나 욕을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구한다.
다윗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고, 특히 다윗은 그 공동체의 리더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바라고 찾는 사람이 수치를 당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다윗은 어떻게든 그런 일이 하나님을 바라고 찾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한다. 첫째로는 자신이 구원을 얻을 때 그렇게 될 것이고, 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조롱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구한다. 다윗이 가장 원하는 것은 13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구원하시고 원수들은 심판하시는 일이다. 이 간구는 다음 시편 말씀을 나눌 때 함께 실펴보자.
도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두가지만 함께 생각해 보자.
첫째,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욥과 친구들은 고난의 이유는 언제나 죄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도 있고 죄와 상관없이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와 관련된 고난은 어떨까? 의와 관련된 고난은 우리가 당해야하는 고난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오늘날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난 자체가 없다면 내가 세상과 너무 비슷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봐야할 것이다. 세상이 나를 자기 편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고난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고난이 없는 삶은 정상적이지 않다. 우리에게는 고난과 탄식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의 때문이어야 한다. 때로는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겠지만, 의를 추구하는 우리는 그 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많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리에 따라 살아가며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기억하라. 다윗과 같은 경험, 즉 의가 고난으로 돌아오는 일을 가장 극한으로 경험했던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셨던 예수님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다윗의 상황처럼 예수님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계속해서 좇아 다녔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역시 베드로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승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의가 고난으로 돌아올 때, 정말 기운이 빠진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쉽지 않은 일을 했을 때 그 결과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내를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내로서 남편을 더 존경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상대방은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것 같을 수 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려고 나름 최선을 다 했지만, 자녀가 어떤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직장에서 힘들고 귀찮은 일은 먼저하고, 정직하게 주께 하듯 최선을 다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순진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히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의가 고난으로 돌아올 때, 주님을 생각하라. 우리 삶의 결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결국 승리할 것이고, 주께서 그 승리를 바라보시며 고난을 견디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주님 안에 있는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지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를 행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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