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상 8 장 설교 | [하루 한 장] 열왕기상8장_두 돌판 외에 없으니 143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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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8 [하루 한 장]“두 돌판 외에는 없으니” (왕상8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http://sungminch.com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드디어
여호와의 언약궤가 들어와
성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춥니다
다윗 때에 한번 실수해서
베레스 웃사 사건을 겪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솔로몬은
철저하게 율법대로 언약궤를
바르게 메어서 옮겨옵니다
그런데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언약궤에는
만나가 든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같이 들어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둘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두 돌판만 남아있었다는 겁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과 이적은
우리의 마음을 혹하게 하지만
어느덧 다 사라지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끝까지 남습니다
그 말씀의 신실함에 의지해서
말씀이 말씀되시도록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 삶에 꽃피우는 삶으로
오늘도 주를 기쁘시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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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화) “열왕기상 8:1-21” / 작성: 이성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성전으로 옮기고 낙성식을 거행하는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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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8/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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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0월 5일. 열왕기상 8장. – 하늘품은교회

스토리가 흐르는 영감이 있는 예배로, 성경에 충실한 설교와 배움으로, 과업과 행사보다는 신앙의 성품과 인격으로, 지역을 섬기는 따뜻한 이웃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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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1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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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 성경주석

<열왕기상 8장 흐름정리>.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드디어 역사적인 봉헌식을 거행하고 봉헌 기도를 드렸다. 이때 솔로몬이 행한 설교의 요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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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0/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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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열왕기상 8장 – 묵상과 기도 – 나눔과섬김의교회

본문: 열왕기상 8:1-66 제목: 솔로몬의 봉헌식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 짓는 일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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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sumchurch.sg

Date Published: 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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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봉헌식과 솔로몬의 기도 (왕상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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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pccoh.org

Date Published: 4/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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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설교말씀] 성전 봉헌과 솔로몬의 기도(왕상 8:1-66)

열왕기상 8장에서는 성전을 하나님 앞에 봉헌하고 솔로몬은 백성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를 드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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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honsam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0/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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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열왕기상 8장 22-32절(왕상 8:22-32, 왕상 8:22~32)

설교/새벽설교. [설교문] 열왕기상 8장 22-32절(왕상 8:2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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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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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하나님의 목적을 선명하게 알고 사는가?

열왕기상 8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6-10-04. 설교본문; 음성설교; 음성다운 · 설교 내용 PDF 다운로드. 열왕기상8장. 제 8 장; 언약궤를 성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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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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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겸손은 가장 자신감이 있을 수 있는 순간에도 늘 …

1)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를 하고 회중을 위해 축복함. 2)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약속한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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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unmill.tistory.com

Date Published: 4/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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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열왕기 상 8 장 설교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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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2. 1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Z5C8ruyceg

2017/08/29(화) “열왕기상 8:1-21” / 작성: 이성실

본문 열왕기상 8장 1-21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오늘 본문,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성전으로 옮기고 낙성식을 거행하는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언급되었던 솔로몬 성전 이야기가 다시 8장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8장에는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는 장면(1-11)과 언약궤를 옮긴 후 백성들을 향하여 솔로몬이 연설을 하는 장면(12-21),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22-53), 백성들을 축복하는 장면(54-61), 그리고 성전 낙성식 장면(62-66) 등 여러 내용들이 나오는데, 오늘 살펴볼 말씀은 솔로몬이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고 백성들을 향하여 연설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언약궤가 다윗성에서 솔로몬 성전으로 옮겨진 때가 언제였는지 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언약궤를 옮긴 때가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일곱째 달 절기는 유대인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인 초막절을 가리킵니다. 초막절은 장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7월 15일부터 22일까지입니다.

초막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던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언약궤를 옮긴 때를 일곱 번째 달 절기, 곧 초막절로 정한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언약궤를 옮길 때 모세의 율법을 따르고 있음도 보여줍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메어 옮겼다는 것은, 모세의 율법(출 37:5; 민 7:9)에 따라 레위인들 중에서 고핫 자손들이 메어 옮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메고 옮겼던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를 9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언약궤 안에 두 돌판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본래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뿐만아니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출애굽기 16:33절과 민수기 17: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언약궤를 성전 안 지성소에 안치할 때는 두 돌판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두 돌판 즉 말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 두 돌판과 만나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사건에 대한 흔적들입니다. 불순종의 상징을 언약궤 안에 담고 뚜껑으로 덮었습니다. 이 언약궤 뚜껑이 속죄소입니다. 속죄소란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시은좌’라고도 불립니다. 다시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한 죄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덮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궤가 상징하는 바입니다. 언약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할 때는 두 돌판만 있었다고 합니다. 만나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사라지고 두 돌판만 있다는 것은 말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8절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에 와서 베드로 사도에 의해서 다시 증거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24~25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언약궤 안의 모든 내용물이 사라져도, 심지어 두 돌판 마저 다 사라져도 언약궤가 상징하는 것, 즉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영원한 말씀이 바로 복음이고, 복음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언약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두 돌판, 만나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들입니다. 이미 솔로몬 시대에 언약궤에 들어있던 3가지 중 2가지는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3가지 모두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니 언약궤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것, 사라지지 않는 것만이 의미있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눈에 보이게 하려고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우상으로 숭배했습니다. 당시 제사장이면서 사사였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만 앞세우고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마저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인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자들의 허망한 최후를 보여줍니다.

성전에 언약궤를 안치한 후, 솔로몬은 백성들을 향하여 연설합니다. 그 연설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자신이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이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 살펴보시겠지만, 27절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솔로몬도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언약궤를 초막절에 옮김으로서 구원의 은총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언약궤를 옮기는 사람들이 레위인 중 고핫 자손들이 옮김으로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음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낙성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백성들을 향해 일장 연설하는 솔로몬의 말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거창한 일을 한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성전을 지어놓고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큰 공적인양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속에 가둬두려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에 갇혀계실 분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생각 속에 가두려 합니다. 마치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실 영원한 처소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이 성전을 지었다고 백성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매 순간 겸손히 나를 부인하고 성령의 도우심에 나를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가둬두려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주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총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내 생각 속에 주님을 가둬두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해 주옵소서.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옵소서.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주님 중심적으로 생각으로 날마다 변화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언약궤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눈에 보이는 언약궤를 우상처럼 숭배하지는 않았습니까?

3. 하나님을 내 생각속에 가둬두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4. 나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성실)

매일말씀묵상. 10월 5일. 열왕기상 8장. > 매일말씀묵상

열왕기상 8장. 하나님의 목적을 선명히 알고 있는가?

1. 성전이 완공된 것은 솔로몬 통치 제 11 년 8 월이었고 (6:38), 성전을 봉헌한 것은 이듬해 7 월이었습니다 . 왜 성전 봉헌식을 하는데 11 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 그것은 준비가 덜 되었다기보다는 , 솔로몬이 그 날짜를 초막절에 맞추려고 의도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2.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7일 동안 집이 아닌 초막에서 지내며 절기를 지켰을 뿐 아니라, 매 7년의 초막절마다 하나님께 재헌신하는 의식이 행해졌습니다(신31:10~11). 솔로몬은 성전 봉헌을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재헌신의 차원에서 가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성전 봉헌식은 14일 간 치러졌는데(65), 처음 7일은 성전 봉헌의 특별 절기로, 그리고 두 번째 7일은 초막절로 지켜졌던 것 같습니다.

3.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시온산으로 옮겨온 언약궤를 , 완공된 성전의 지성소 안으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옮겨 놓았습니다 .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그 안에 두었던 만나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분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9).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임재를 드러내주셨고, 제사장이 능히 섬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10~11). 이는 그들이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

4. 간단한 기도에 이어서 (12-13), 솔로몬은 백성을 향하여 축복을 빌며 연설을 합니다 (14-21). 이 긴 솔로몬의 기도는 그가 얼마나 영적으로 깨어있었는지 ,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22-40 절 까지는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 의 기도의 집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이 성전에서 들어달라는 간구이고, 41-43 절 에는 이방인 이라 할지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혹은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취급하여 그들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즉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 또 설령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망하여 포로로 잡혀간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성전을 향해 다시 기도하면 들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가 이어집니다(46-52). 이것은 이후에 있을 역사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솔로몬의 축복은 앞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 모든 세상 만민에게도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60). 그는 하나님이 ,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이 모든 축복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될 때 유효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61).

6. 마지막으로 희생을 드리고 제 8 일에 ,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면서 돌아갔습니다 . 제 8일은 두 번째 축제인 초막절의 축제가 끝나고 8일째를 가리킬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돌아갈 때, 다 은혜로 인하여 마음이 기뻤고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 그 은혜를 확인한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 기쁨을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

7.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과 축복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 행복하고 부요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 그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 , 또는 내 사업이나 직장 , 내 미래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 행복만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니 , 우리도 모든 민족을 품어야 합니다 .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구원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 우리의 기도의 지경이 지금보다 훨씬 크고 넓어져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솔로몬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었듯이, 저희도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나만을 위한, 내 행복만을 위한, 내 미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품는, 아버지의 마음 넓이만큼 큰마음으로 기도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의 지경을 넓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열왕기상 8장 & 성경주석

<열왕기상 8장 흐름정리>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드디어 역사적인 봉헌식을 거행하고 봉헌 기도를 드렸다. 이때 솔로몬이 행한 설교의 요지는 성전 건축이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4~16)의 성취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진정한 왕이셨다. 이에 솔로몬은 봉헌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당신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을,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려달라고 간구하였다. 이것은 백성들이 살 길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있음을 각성시켜 저들의 순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열왕기상 8장 줄거리>

1. 성전 봉헌식 .

12. 솔로몬의 송축.

22. 솔로몬의 기도.

62. 솔로몬의 화목제 희생.

<열왕기상 8장 개역한글>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에 솔로몬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긴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9.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2. 그 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섰더라

15.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17. 내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허하신대로 내 부친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21. 내가 또 그곳에 우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저희와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 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1.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대로 갚으시옵소서

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40.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44.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51.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52.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대로 들으시옵소서

53.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

54.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

55.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가로되

56.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5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며 버리지 마옵시고

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옵시며 우리 열조에게 명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59. 여호와의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대로 돌아보사

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찌어다

62. 이에 왕과 왕과 함께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리니라

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 사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

66. 제 팔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 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열왕기상 8장 성경주석>

8:1 솔로몬이…소집하니.

성전 봉헌식에 관한 기사는 성경의 위대한 장들 중의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깊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 시대를 통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배하는 집의 봉헌을 위한 영감과 격려의 말을 이 기사에서 발견했다. 본 장은 앞장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앞장에는 성전의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집과 관계된 사물들의 깊은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게 된다. 이 두 성경 장은 성전의 참되고 온전한 모습과 그 의미를 제시하는 데 각각의 역할을 지니고 있어서, 한 장은 다른 장 없이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주도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제왕다운 위엄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세속 정무에만 종사하는 왕 이상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분명히 종교적인 일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한 업무가 왕의 권위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높여 주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하는 왕의 직무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그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행사 준비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 후에는 분명하게 종교적인 직무는 제사장들에게 맡겨 주도하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는 왕이 직접 성전을 봉헌하고, 봉헌 기도도 드렸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라고 권면하고 하나님의 복도 선포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당신의 사업을 위해 지도자로 임명한 자들에게 요구하는 영적 지도력의 본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지도력은 잠시 동안만 계속되었다. 세속적 및 영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오래지 않아 자기 숭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얼마 가지 않아 겸비와 헌신과 순종은 교만과 야만과 방종에 자리를 내 주었고, 한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였던 재능들은 이기적 목적과 세속적 야망을 위해 악용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총의 징표를 지녀 심히 존경받던 사람이 폭군으로 전락하여 그가 죽을 때 왕국도 함께 와해되었다. 그의 본을 쫓아간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부와 평화를 찾는 비결을 잃었고 한때 융성하던 신정국가는 부패하여 폐허로 변했다.

8:1 언약궤.

봉헌식에서 첫 순서는 법궤를 다윗 성에서 옮겨와 그것의 새 거처인 성전의 지성소에 두는 일이었다. 다윗이 법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자신의 성에 만들어 놓은 회막으로 옮긴 일은 엄숙할 뿐 아니라 심히 기쁜 행사였다(삼하 6:2~19). 율법의 두 돌비를 담은 법궤는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이었다.

8:1 자손의 족장들.

모리아산으로 법궤를 옮겨 오는 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는 각기 맡을 역할이 있었다. 다윗이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법궤를” 아비나답 집에서 다윗 성으로 가져올 때 이스라엘 중에서 뺀 무리가 30,000명으로 계수된 것으로 보아(삼하 6:1~5), 이때도 백성, 장로, 모든 지파의 두목, 족장 등 큰 무리가 모였을 것이다.

8:2 에다님월.

달만 주어져 있고 해는 주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그 해가 성전을 준공한 다음 해였다고 믿는다. 성전은 8월인 불(Bul)월에 준공되었고(6:38), 봉헌식은 7월인 에다님월에 있었으므로 이때는 성전이 필역된 지 열한 달째 되는 달이다. 다른 이들은 몇 년 뒤 희년, 아마도 솔로몬 재위 24년 즉 성전이 준공된 지 13년이 되어서야 봉헌식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벨론 유수 후 일곱 번째 달을 티쉬리(Tishr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악갓어 혹은 초기 바벨론어 타쉬리투(Tashritu) 즉 “시작”이라는 말에서 왔다. 이 이름은 이 달과 함께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을 내포한다. 통일 왕국과 유다 왕국의 민력은 티쉬리월로 시작하였다. 이 달 초하룻날은 새해의 시작인 거룩한 성회의 날이었다. 이 달 10일에는 성소의 정결이 있었던 엄숙한 대속죄일이며(민 29:7; 레 16:29, 30; 23:27), 15일은 장막절이 시작되는 날이었다(민 29:12; 레 23:34; 신 16:13; 느 8:14~18; 겔 45:25). 이 달의 시작은 지금의 9월 혹은 10월의 시작과 거의 같다.

8:3 제사장들.

대하 5:4에 보면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고 되어 있다. 제사장은 모두 레위 사람들이었지만(수 3:3) 레위 자손이라고 다 제사장은 아니었다. 여행 중에 궤를 메는 일은 당연히 고핫 자손 레위인의 책임이었다(민 3:31; 4:15; 대상 15:2~15). 하지만 고핫 자손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행을 위해 법궤를 준비한 후에만 멜 수 있었다(민 4:5, 15).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고성을 돌 때 법궤를 멘 자들은 제사장이었다(수 3:6~17; 6:6). 법궤를 영원한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곧 영원한 거처로 옮길 때도 이 중대한 임무는 제사장 가운데서 몇몇 지도자에게 위탁되었을 것이다.

8:4 회막.

이때 회막은 기브온에 있었지만(대상 16:39, 40; 대하 1:3), 법궤는 예루살렘에, 즉 다윗이 “다윗 성”에 법궤를 위해 친 장막에 있었다(삼하 6:2, 16, 17; 대상 15:1; 대하 1:4). 그러나 이제부터는 국가적 예배의 중심이 하나가 되어야 했으므로 기브온의 회막과 다윗이 친 장막에 있던 성물들은 모리아산의 성전으로 옮겨서 사용하든지 아니면 성전 경내에 보관해야 하였다(참조 선지자와 왕, 38). 각급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저마다 위탁받은 성물들을 가지고 그 엄숙한 행렬에 끼어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고핫 자손들은 진설병상, 등대, 번제단과 분향단, 기타 성소의 기물들을 맡았고,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의 문장과 뜰의 휘장”을 맡았고,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널판과 그 기둥과 받침과 그 모든 기구”를 맡았다(민 3:25~37).

8:5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이 낙성식의 희생제사는 웅장한 규모로 볼 때 다윗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겨 올 때와 맞먹었다(삼하 6:13; 대상 15:26).

8:6 내전 지성소.

법궤는 그룹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날 지성소에 안치되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을 보여 준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그분의 계명 또한 거룩하고 의롭고 순결하다.

8:7 그룹들이…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천군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보여 주는 경외심을 나타낸다.

8:8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출 25:15에 의하면 “채를 궤의 고리에 꿰어 두고 빼지 말”아야 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채를 앞으로 빼내 그 끝을 성소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법궤는 지성소의 남북으로 가로놓였는데, 법궤는 물론 그 채도 그룹의 날개가 덮었다. 회막에서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여(출 26:31~33) 성소에 있는 자가 궤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는 두 칸을 구분 짓는 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참조 왕상 6:16 주석) 거기에 휘장도 있었던 것 같다(대하 3:14). 헤롯 성전에도 휘장이 있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둘로 찢겨진 사실(마 27:51; 막 15:38; 눅 23:45)은 잘 알려져 있다. 법궤를 메는 채는 성소에 있는 사람들이 열린 문을 통해 휘장 끝 너머로 그 일부가 보이도록 놓였을 것이다(참조 6:31 주석).

8:8 오늘까지.

이 표현은 이 기사가 성전이 느부갓네살의 손에 파괴되기 전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열왕기의 편집이 완성되었을 때 성전은 파괴되고 성전 기구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졌다(왕하 14:13, 14; 25:9, 13~17). 지금 열왕기에 나타나는 많은 기사는 바벨론 유수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편집이 끝났을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이다.

8:9 궤 안에는…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대하 5:10에도 기록된 이 진술은 법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히 9:4에 언급된 물품들 즉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본래 “증거궤 앞에” 두라고 명하신 것이다(출 16:33, 34; 민 17:2~10). 어떤 이들은 이 표현이 법궤 앞에 있는 어떤 자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지만, “법궤 안 증거 돌판 앞”을 의미할 수도 있다(참조 초기문집, 32). 이런 표현들이 상충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보물들이 이스라엘이 격동기를 지내는 동안 옮겨져 이때는 법궤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두 돌비를 이렇게 특별히 구별한 데는 매우 인상적인 점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만나겠다고 하신 바로 그 법궤 안에 두 돌비를 둠으로써(출 25:22), 율법과 하나님 자신이 불가분적으로 묶인다.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곳은 지성소였고, 지성소에서 가장 거룩한 기물은 하나님의 율법을 담고 있는 법궤였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거룩하고 영원한 것처럼 율법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의 기물들을 통해 그의 자녀들의 마음에 율법의 영원한 신성성을 각인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다. 옛 언약 하에서 율법은 두 돌비에 새겨졌고 새 언약 하에서는 의인의 마음에 새겨진다(렘 31:31~33).

8:10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시내산에서 나타났던 구름(출 24:15~18)과 회막을 봉헌할 때 다시 나타났던 구름(출 40:34~38)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 것처럼, 이 영광의 구름도 마찬가지다. 에스겔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집 안에 가득한 영광을 보았다(겔 10:4). 제사장들이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대하 5:13).

8:11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에 압도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제사장들이 잠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성막이 맨 처음 세워질 때도 그랬다. 모세가 거룩한 장막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출 40:35). 이사야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웠고, 여호와의 임재가 매우 가까이 있어서 자신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하였다(사 6:1~5).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들도 변형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저들을 덮었을 때 두려워 떨었다(눅 9:34). 인간은 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그런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 즉 그분의 위대함과 거룩함, 장엄함과 숭고함, 위엄과 능력 때문이다.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도 인간은 두려워한다. 하늘의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므로 죄 많은 인간은 그분의 숭고한 임재 앞에 나아가 계속 살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과 같아서 거룩하지 못한 인간은 그분의 임재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

성전 안에 있던 구름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자신의 임재를 가린 수단이었다. 성전 봉헌식 때에는 그 영광이 너무나 커서 구름으로 가려졌는데도 직무를 수행하던 제사장들은 거룩한 경외감으로 잠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법궤를 여호와의 장막으로 옮길 때 다윗의 입에서 경탄과 찬양의 말이 터져 나온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의식(意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대상 16:25, 27, 34).

8:12 그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가까이 계심에 관한 장엄한 현시(顯示)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말들은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에게서 엉겁결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말이었다. 그는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말하였다. 그것은 미리 준비된 말이 아니고, 그가 방금 본 장엄한 광경과 함께 터져 나온 경이와 찬양의 말이었다.

8:12 캄캄한 데.

솔로몬은 흑암과 영광, 빛과 어둠이 뒤섞인 광경을 보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겔 48:35)고 확신했다. 그는 분명한 현상으로 목격되었던 과거의 사건들 곧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임재가 빽빽한 구름 속에 나타났던 때, 광야에서 영광의 구름이 성막을 가득 채웠던 때를 회상했으며, 그 결과 구름이 나타난 것을 거룩하신 분의 임재가 자신이 지은 성전에 허락되었다는 징표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발한 첫 말은 목격하고 있던 현상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 영광스러운 행사에 대해 감사할 것으로 가득하다.

8:13 계실 전을.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졌다. 성막을 광야에 처음 세울 때 하나님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 25:8)고 말씀하셨다. 그 성소가 건립되었고, 거기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셨다.

8:13 처소.

이스라엘에는 성소가 있었지만 성소의 자리로 정해진 곳이 없었다. 회막은 광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약속의 땅에서도 성소는 정해진 처소가 없었다. 성소는 300년 동안 실로에 있다가 마침내 죄 때문에 다시 옮겨 다녀야 하였다. 처음에는 놉으로(삼상 21:1~6; 부조와 선지자, 656), 그 다음은 기브온으로(대상 16:39, 40; 대하 1:3) 옮겨 다니다가 이제야 마침내 성전이 완성되어 하나님의 법궤가 안정된 처소 곧 하나님이 영원히 거할 곳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그분의 뜻하신 바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면, 이 영광스러운 건물은 영원히 설 것이었다(선지자와 왕, 46). 여러 해 동안의 준비의 세월과 온갖 근심과 사려를 들여 지은 건물을 돌아보면서, 그의 임무가 완수되었으며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거처를 함께할 집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솔로몬에게 벅찬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8:14 얼굴을 돌이켜.

역대기에 의하면, 솔로몬은 놋으로 높이가 3규빗 되는 단을 만들어 뜰 가운데 제단 앞에 두고(대하 6:12, 13), 거기서 그가 백성들에게 연설하였다. 이때까지 솔로몬은 성전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차는 것을 엄숙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향했고 하나님을 향하여 말했다. 이제 그는 성전에서 돌아서서 자신 앞에 서 있는 백성의 큰 무리를 향하여 말했다.

8:14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섰더라.

백성들은 존경심을 갖고 주목했으며, 기쁘고 엄숙한 행사에 동참하여 왕의 은혜스러운 봉헌사를 열렬히 받아들일 태세로 서 있었다.

8:15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었지만 그의 첫 번째 생각은 다시 홀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했다. 그는 기쁨과 감사로 벅차서 하나님이 부친 다윗을 위해 행한 일, 곧 성전에 관한 그의 뜻을 다윗에게 전하신 것을 언급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아들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셨다(삼하 7:4~13).

8:16 다윗을 택하여.

하나님의 선택은 맹목적 편애나 편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혜와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열국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고,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 중에서 예루살렘을 택하신 것처럼 만백성의 축복과 구원을 위하여 다윗을 택하셨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할 때 보신 것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었다(삼상 16:7).

8:17 다윗이…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다윗의 소원과 목적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을 건축할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자신보다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하는 일에, 인간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다른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다윗의 심중에 하나님을 위한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결과 성전이 건립되었다. 장엄한 성전이라도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서 소박하고 겸허하게 시작된다.

8:18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다윗의 뜻은 비록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선했다. 성전을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으므로 성전 건축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이 아니었다(대하 22:7, 8; 28:3).

8:19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이 다윗의 뜻은 인정하셨지만 다윗이 하고자 했던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을 위한 어떤 사업을 하고자 하는 좋은 뜻이 마음에 일어날 때가 종종 있지만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아마도 경험과 수완 혹은 훈련 부족 등의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지혜로써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신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 것은 그의 지혜와 영적 경험의 깊이를 보여 주었다.

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이제 그분의 뜻이 실행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리에 자신을 고집스럽게 앉혀 둠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가장 큰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짓고 있을 때 솔로몬은 자신을 하늘의 축복의 통로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했을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 솔로몬은 도구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8:21 언약.

여기서 언약이라고 칭한 것은 십계명을 말한다. 왜냐하면 십계명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언약은 율법에 계시된 거룩한 원칙들을 사람 속에 재연하기 위한 설계도였다. 그래서 비유적 표현으로 율법을 언약이라고 일컬었다.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거룩한 율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다.

8:22 솔로몬이…마주 서서.

역대기의 이야기는 더 자세하다. 솔로몬이 봉헌사를 하는 동안에는 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의 연설이 끝나 봉헌 기도를 드리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대하 6:13).

8:24 말씀을 지키사.

기도를 시작하면서 솔로몬은 다윗에게 보좌에 앉을 후계자와 성전 건축에 관하여 하신 약속들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렸으며, 후계자가 끊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계속 이루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성소는 하나님이 거할 처소로 건립되었다. 다윗은 법궤를 옮겨올 때 하나님이 시온을 택하여 그의 거처로 삼고자 하시면서 “이는 나의 영원한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기(시 132:13, 14) 때문이라고 약속하신 사실에 감사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영원히 거하시는 분 곧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신”(사 40:12)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함을 묵상할 때, 그러한 하나님이 땅 곧 솔로몬이 지은 그런 집에 자신의 거처를 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표현된 사상은 계속하여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대조를 보여 준다. 한편에는 영원하며 보이지 않고 불가해(不可解)한 하나님 곧 높고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 여호와의 영원성을 말해 주는 매우 심오하며 변하지 않는 개념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에는 그 무한하신 여호와가 바로 곁에 계신 하나님이며, 사람의 친구요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동반자이고, 사람들과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이며, 지상 성소에 그분의 거룩한 거처를 정한 하나님이라는 생생한 개념이 있다. 그처럼 권능이 탁월하고 무한히 위대한 분이 몸을 낮추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돌아보아, 하잘것없는 나무와 돌로 지은 성소에 거주하고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다는 것은 결코 다함이 없는 경탄의 근원이 될 것이다.

8:28 돌아보시며.

이는 경외심과 겸손이 뒤섞인 감정으로 매우 고양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온 우주의 창조주를 친구로 삼을 자격이 없는 존재다. 지상의 성소는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신”(사 40:22),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높은 분이 임재할 만한 곳이 못 된다. 비록 인간이 무가치하고 성전은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솔로몬은 “하나님이 당신의 참 거처인 하늘에서 주야로 지상의 이 건물을 보시고 사람들의 열렬한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

8:30 사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은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나 사유하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솔로몬이 자신과 백성들을 위하여 드린 열렬한 기도에 줄곧 나타난다(34, 36, 39, 59절). 솔로몬은 죄의 용서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소망임을 알았다. 그는 탄원이 응답받을 수 있는 희망은 주로 죄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8:31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이는 연속되는 일곱 가지 특정 경우를 위해 하나님의 사유하는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 가운데 첫 번째이다. 첫 번째 것은 이웃에게 개인적으로 과실을 범한 경우와 관련된다.

8:32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솔로몬은 악한 행실과 의의 길이 각각 관련된 자들의 삶에서 그에 마땅한 결과를 맺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선이나 악은 모두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는데, 각각 그 종류에 따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갈 6:7) 된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지만 “악은 죄인을 패망케”한다(잠 13:6; 참조 14:34; 11:5, 19). 이스라엘이 패망했을 때,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호 13:9; 14:1)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8:33 이스라엘이…적국 앞에 패할 때.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여호와는 범죄의 결과가 어떠할지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백성들은 저들의 대적 앞에서 패할 것이었다(레 26:14, 17; 신 28:15, 25). 하나님의 보호하는 은혜가 거두어질 것이며, 저들의 대적들이 저들을 멸망시키도록 허용될 것이었다.

8:33 주께로 돌아와서.

징계는 종종 회개를 낳는데, “세계의 거민들이 의를 배우는 것은”(사 26:9)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계속 반역하고 죄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의 사유하는 은혜를 간구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만 그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런 모든 사람에게는 용서가 확실하게 주어진다(요일 1:9).

8:35 하늘이 닫히고.

하나님이 보호의 손길을 거두실 때 자연의 힘은 흔히 심판의 대리자가 된다. 솔로몬은 모세가 말한 한발의 심판(레 26:19; 신 28:23, 24)이 미구에 현실로 나타날 때를 상정(想定)한다.

8:37 기근.

계속하여 열거되는 재앙들은 모세의 율법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레 26:16, 20, 25; 신 28:22, 35, 38, 42). 사람들이 의의 길을 버릴 때 그런 심판은 증가하며, 도처에서 그런 일을 목격할 때 억제하시는 주의 손길이 거두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38 재앙.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재앙”을 아는 것은 곧 자신의 죄됨을 인정하고, 땅을 황폐케 하고 있는 재난을 초래한 책임의 일부가 자신의 죄됨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땅에 있는 재앙의 원인은 마음의 재앙에 있다. 죄의 재앙이 진짜 재앙이며 다른 모든 재앙의 근본 원인이다. 죄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고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세상을 재앙에 빠뜨리고 황폐케 하는 기타 수많은 병폐를 처리할 희망이 없다.

8:39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을 제대로 아신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악뿐 아니라, 저들의 마음에 잠복하고 있는 죄의 결과로 자신과 주변 세상에 초래된 재난들에 대해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며, 따라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시 51:10) 방법을 아신다.

8:41 이방인이라도.

이것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일련의 사항을 언급하다가 주제에서 눈에 띄게 벗어난 부분이다. 먼 이방 나라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을 높여 경배할 것이었다.

8:42 저희가…소문을 듣고 와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었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 도처의 사람들이 그분의 선함과 은혜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스라엘과 함께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8:43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이때 솔로몬이 가졌던 정신은 이어지는 시대에 히브리 백성을 움직였던 정신과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의 언약에는 한 국가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관련된다. 그분의 언약은 히브리 민족뿐만 아니라 그분을 기꺼이 인정하는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다. 성전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 솔로몬은 타국의 이방인들을 기억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듣고 성전으로 올라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스라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였다. 그들이 이 거룩한 사명에 충실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나라를 아우를 때까지,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될 때까지, 성전이 온 세상에 건강과 치료를 전해 주는 생명강의 근원이 될 때까지 계속 성장했을 것이다(슥 14:8).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솔로몬은 육신의 연약함을 알았으며,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범죄하지 않는 나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통탄스러운 죄를 저질러 하나님의 임재가 저들에게서 거두어지고 저들이 원수의 손에 빠져들 수 있다는 생각이 솔로몬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는 그러한 비극의 시간에 하나님께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시기를 열렬히 기도했다. 영광과 파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지! 완성된 성전과 훼파된 성전, 영광의 날과 운명의 날은 얼마나 가까운지! 솔로몬은 이 봉헌의 시간에 죄가 가져다줄 비극적인 결과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집을 여호와의 영원한 거처로 삼아 주시기를 목소리를 높여 열렬히 간구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 속에 기쁨과 슬픔, 영광과 굴욕, 영예와 수치가 묘하게 뒤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성전 봉헌식의 이 순간만큼, 드높은 희망을 품고 백성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일찍이 없었고, 사람이 그처럼 겸손한 정신으로 기도를 발한 적도 없었다. 그것은 약속과 예언의 기도였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죄 많은 인간의 비열함에 관한 이상(異像)의 기도였다.

8:46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이것은 솔로몬의 마지막 탄원이다. 그의 생각은 선지자적 통찰력으로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여호와께 버림받아 대적의 손에 망하여 낯선 나라로 끌려 갈 미래의 한 날로 향하였다. 모세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하게 예언하였다(신 28:45, 49~52, 63, 64).

8:47 스스로 깨닫고.

가장 처참한 비극의 시간에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저들이 스스로 깨달아 자신들의 잘못과 사악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길을 선택하기만 한다면 저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8:48 그 열조에게 주신 땅.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기도할 때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8: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바벨론 유수가 있기 350년 전쯤에 드린 솔로몬의 이 기도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 가던 때에 드린 다니엘의 기도(단 9:2~19)와 매우 흡사하다. 성전이 봉헌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감받은 예지로 솔로몬은 화려한 성전이 폐허가 되는 때, 약속의 땅이 고난과 비탄의 땅이 되는 때, 이스라엘 자손이 낯선 땅으로 쫓겨나는 때를 그려보았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영광의 시간에 솔로몬이, 가장 비참한 국치(國恥)의 시간에 다니엘이 드렸던 기도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에 비애감이 서려 있다. 이 두 기도는 다 필요했고 다 응답을 받았다. 솔로몬의 기도는 단순히 기도만이 아니라 죄가 몰고 올 운명을 피하도록 돕는 경고의 기별이기도 하였다. 다니엘의 기도는, 그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되돌리기 전에 저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것이다.

8:51 저희는…주의 백성.

구별된 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여호와가 저들을 열국 중에서 택하여 언약의 땅에 세웠다는 것이다(출 19:29 삼하 7:23 시 135:4).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셔서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줄 것이므로 가장 혹심한 고통의 시간에도 두려할 이유가 없다(신 33:26, 27; 사 41:8~14; 43:1~6)는 보증이 있었다. 주의 백성의 행복과 안녕이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이므로, 그의 자녀들은 탄원을 올릴 때 그의 소유된 백성을 버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들의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적이며, 따라서 축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8:51 애굽에서.

애굽에서 구원받은 일은 역사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쇠풀무 같은 애굽에서 구원해 낸 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이 또다시 다른 나라 군주의 말발굽 아래 멸망되는 신세가 될지라도 솔로몬은 또 다른 구원을 위한 강력한 논거(論據)를 바로 그 사실에서 발견하였다. 훗날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과 비교하면서 다가오는 더 큰 회복에 비추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라고 말했다(렘 16:14, 15, 23:7, 8)

8:53 주의 산업.

솔로몬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기억해야 할 이유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종적 근거였다. 하나님 자신의 거듭된 주장과 약속에 근거해 볼 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기업이다.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상 만인 중에서 택하여 그의 특별한 백성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다(출 19:5, 6; 신 14:2). 그들은 “기업의 백성”으로 알려질 것이었다(신 4:20; 참조 9:26, 29). 이제 와서 여호와가 저들을 거절한다면 그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태롭게 하는 격이 될 것이다(출 32:12, 13; 민 14:13, 14).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주의 이름의 영광과 주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과 백성을 위하여(시 79:9, 10; 단 9:19)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고 여호와께 열렬히 탄원하였다. 에스겔 시대에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그처럼 강한 힘으로 구원해 낸 것은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다”(겔 20:9, 14; 참조 20:22)라고 천명하였다.

8:54 아뢰기를 마치고.

솔로몬은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기도를 드렸다. 그는 자신의 기도에 이스라엘은 물론 멀리 있는 이방인들까지 포함시켰다. 그 기도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을 위한 기도였고, 그때 성전 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기도였으며, 주의 사업을 신실하게 받드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을 뿐 아니라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다. 이 기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호와께 거슬러 범죄하여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한 깊고도 진정한 관심을 나타낸 점이다. 그러한 기도는 동정과 사랑의 마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따뜻해진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다. 솔로몬의 이 기도에는 웅변적 효과를 꾀한 흔적이 없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과시하고자 하는 시도도 없으며, 사람들의 갈채를 받지만 하나님의 귀에는 이르지 못하는 말들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엿보이지 않는다. 이 기도는 순전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도가 끝났을 때 여호와는 능력과 광채의 특별한 현시를 통해 그분이 인정하시는 표를 보여 주셨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희생제물을 사르고 성전을 영광으로 가득 채웠다(대하 7:1~3).

8:55 온 회중을…축복하며.

이 공식적인 축도를 드린 것은 분명하게 예식적인 행위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특별한 의무와 특권이 주어졌었다(민 6:23~26).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이 축복을 선포한 사실은 그가 영적인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준다. 왕으로서 그는 일반 국사(國事)뿐 아니라 신민(臣民)의 영적 안녕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8:56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하였다(수 21:45; 23:14). 하나님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의 백성에게 많은 약속을 하셨고, 그것들을 신실히 이행하신다(히 10:23).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 편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태만히 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7; 13:15; 17:8). 그러나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들은 여호와께 범죄하여 그 유업을 잃고 말았다(왕하 17:7~23; 렘 7:3~15; 25:4~9).

8:57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백성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성전이 건립된 것은 그분이 저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이었다(출 25:8; 왕상 6:12, 13). 예수님은 이 땅에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마 1:23)으로 오셨고, 그분이 떠나가실 때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참된 자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는 것보다 더 높은 소망이나 더 깊은 갈망은 없다(시 42:1, 2; 계 22:20, 21).

8: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주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은 하나님이 심어 놓은 거룩한 충동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끊임없이 역사하여 사람들을 진리와 순종의 길로 인도하신다. 사람이 여호와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땅에 속한 죄된 것들은 더욱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인도하여 순종케 하고 그들을 이끌어 계명을 지키도록 하지만 사람의 의지를 거스르면서까지 이 일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즐겨 순종하려 하면 더욱 더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람이 여호와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사상은 그의 사상이 되고 하나님의 길은 그의 길이 된다. 사람이 그분의 길을 배워 그 안에서 행하고자 하여 겸손하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여호와께 나아가면(시 119:26, 27, 30, 32~26),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의무라기보다는 즐거운 일이며 하나님의 율법이 멍에라기보다는 자유의 법(시 119:45, 47, 97; 약 1:25; 2:12)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8:60 세상 만민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며, 따라서 세상 만민이 여호와를 알고 교제와 예배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그 나라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속에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목적이다.

8:61 완전케 하여.

성경은 품성의 완전이 천국에 들어가는 필요 조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완전의 표준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나타나 있는 의와 사랑의 원칙들에서 찾을 수 있다(마 19:16~21; 눅 10:25~28; 신 5:2~22, 29~33; 6:3~5). 구약에서는 표상을 통해, 신약에서는 완전히 투명하게 계시된 복음은 솔로몬이 말한 그 완전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8: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솔로몬이 이 희생을 드릴 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일반인들이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제물을 드리고 있었다(레 2:1; 3:7, 12). 여기에 언급된 희생제물은 화목제로 밝혀진다. 화목제 희생은 제물의 일부만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레 3:3~5, 14~17)로 번제단에서 태웠다. 나머지 부분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그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먹었다(레 7:15~21). 이것은 속죄제물이 아니고, 받은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제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참여한(삼하 6:18, 19; 대상 16:2, 3) 즐거운 축제 행사였다. 성전 봉헌식 때 제물로 드린 짐승이 엄청난 수였지만,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 큰 회중이 모여”(왕상 8:65) 14일 동안 거기 함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8:64 놋단.

열왕기에는 이 제단을 만들었다는 말이 없지만 대하 4:1에는 언급돼 있다. 이 단은 길이가 10.2미터, 폭이 10.2미터, 높이가 5.1미터로 상당히 컸다. 하지만 제물이 너무나 많아 제물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사장들은 전의 “뜰 가운데”를 구별하여 거대한 제단으로 쓰게 하고, 어느 부분에서든지 여러 종류의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게 하였다(참조 대하 7:7).

8:65 절기.

절기는 14일 동안 계속되었고, 7월 23일에 백성들을 돌려보냈다(대하 7:10). 따라서 이 절기는 7월 10일에 시작되었고, 이날은 엄숙한 대속죄일이었다(레 16:29, 30: 23:27; 민 29:7). 이 달에 들어 있는 초막절은 7월 15일에 시작하여 7일간 계속되었다(레 23:24, 39).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에 거하였다(레 23:34, 40~42).

8:65 하맛 어귀.

하맛은 성지(聖地)의 최북단 한계선을 이룬다(참조 민 13:4; 34:8; 수 13:5; 삿 3:3; 왕하 14:25; 대상 13:5; 암 6:14). “하맛 어귀”의 위치에 대해서는 민 34:8과 수 13:5 주석을 참조하라. 레바논 산맥과 동 레바논 산맥 사이에 있는 큰 계곡, 곧 헬라인들에게는 코엘레-수리아(Coele-Syria)로 알려진 지역이 북방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를 이룬다. 이 계곡을 통해 침략군들이 북방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왔다.

8:65 애굽 하수까지.

여기서 “하수”(river)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보통 “강”을 나타내는 단어 나하르(nahar)가 아니라 나할(nah.al)이다. 이것은 건기(乾期)에는 말라 버릴 수도 있는 시내 혹은 급류로, 욥기에는(6:15) “시냇물”(brooks)로 번역되어 있다. 이 시내는 팔레스타인 남단 경계에 있던 와디 엘-아리쉬(Wadi el-Arish)일 것이며(민 34:5; 수 15:4, 47; 왕하 24:7; 사 27:12), 가사(Gaza)에서 남서쪽으로 8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참조 347쪽 지도).

8:66 장막.

“집”(수 22:4, 6~8; 삿 7:8; 20:8; 삼상 4:10; 13:2; 삼하 18:17; 20:1; 왕상 12:16)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식 표현.

8:66 즐거워하였더라.

참 종교는 기쁨의 종교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은, 다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정한 행복과 조용한 만족감을 마음에 지니고 있다. 성전 봉헌 예배는 참석자들에게 영감과 기쁨의 근원이 되었다. 상호간에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그분의 축복을 돌이켜 보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동안, 저들은 세상의 어떤 쾌락도 가져다줄 수 없는 충만한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평화롭고 기쁜 마음으로 매일의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이 예배자들은 여호와께서 저들뿐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에게 베푸신 은혜로 인해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했다고 말한다(대하 7:10). 통치자와 백성들이 서로를 위해 복을 빌고 서로의 번영과 기쁨을 기뻐하는 땅,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땅의 복됨이여!(참조 시 85:9~12).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10월 30일] 열왕기상 8장

본문: 열왕기상 8:1-66

제목: 솔로몬의 봉헌식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 짓는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린 은과 금과 여러 기구들을 성전으로 가져가서 성전의 창고에 넣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라고 시작을 합니다. 솔로몬이 이 일들을 마친 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8장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무리하고 난 후에 백성들과 함께 성 전 봉헌식을 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을 위해 시온에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였으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 궤를 멨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규례에 따라 제사장과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왕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언약궤 앞에 모여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양과 소를 제물로 바쳤을 뿐입니다. 그것이 1-11절의 내용입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백성에게 연설을 시작합니다. 연설의 서두인 12-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어두운 곳에 계시기를 원하셨지만, 솔로몬은 주가 계실 수 있는 성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캄캄한 데 계시는 여호와를 성전으로 모시고 왔다고 하였지만, 결국 성전에서도 주님이 거하시는 곳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가 어떤 곳입니까? 사면이 가려진 캄캄한 곳입니다. 인간이 볼 수 없는 곳입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곳입니다. 철저히 감추어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는 감추어진 곳. 가려진 곳에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 주신 것. 계시를 통해 조금 맛 볼 뿐입니다. 하나님을 조금 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특별 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워야 하고, 자연을 통해 그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애 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기도를 합니다. 22-53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솔로몬의 기도인데, 왕조를 위한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54-61절에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솔로몬과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62-6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 본문은 성전 봉헌식을 위해 백성들 을 불러모으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는 것으로 끝을 낸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성들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봉헌을 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거기서 끝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삶 속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자입니다. 예배자라는 것은 주일에 모여 주일예배를 드린 것으로 끝내는 자가 아닙니다. 주의 부활을 기념하고, 또한 죄가 가득한 삶의 현장 속에서 힘겹게 싸우는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주일’이라고 하는 정해진 날에 함께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삶으로 돌아가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삶의 예배가 무엇입니까? 61절의 말씀처럼 온 마음을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는 것입 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회를 마치고 삶으로 돌아가 우리의 온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면 오늘도 우리는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서는 오늘 이 모임이 끝이나면 회사로, 학교로, 사역지로 돌아가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때로는 고국을 떠나 싱가포 르 까지 왔는데 ‘이렇게 있어야 하나? 지금 뭐하고 있지?’라고 하는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내 삶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 분은 오늘도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오늘 하루. 어느 곳에 있든지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다 알 수 없지만 오늘도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게 하루가 되게 하소서.

2. 온 마음을 주께 향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3. 3일 앞으로 다가온 이웃초청잔치에 알 수 없는 큰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7 (10/21/15)

2015년 10월 21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7 ✦

“성전 봉헌식과 솔로몬의 기도”

(열왕기상 8장 1-11절, 62-66절)

1. 언약궤를 옮겨오다

7년여의 기간에 걸쳐 성전 건축을 완성한 솔로몬은 전 국민을 다 모아 놓고 감격적인 성전 봉헌식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그때 솔로몬은 역사에 남을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이 감동적인 성전 봉헌식이야말로 솔로몬 통치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 지은 성전으로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새 성전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가장 먼저 언약궤를 새 성전의 지성소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모든 리더들을 비롯해서 온 백성이 함께 모인 가운데 봉헌식이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1-3절)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있는 지도자들까지 다 불러서 성전 봉헌식에 참석하도록 합니다. 장로들이 다 모였을 때 제사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온 백성들이 다 모여서 드리는 감동의 예배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리더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자신들의 최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결단하면서 나아간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이렇게 함께 모이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리더들의 공 예배 참석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자꾸 모여서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리더들의 마음이 하나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회가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둘째,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과 소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4-5절)

이 제사는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데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먼저 우리 죄를 정결케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으로 희생하며 죽으심으로써 이제 그분을 믿는 사람은 다른 희생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그 피의 능력을 묵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드디어 언약궤가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되고,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0-11절)

이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게 임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옛날 모세 때도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너무 강하게 임재해서 모세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 40:34-35)

이처럼 아무리 훌륭한 영적 리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모세처럼 훌륭한 사람도 그랬다면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하나님은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항상 우리를 돌봐주는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함부로 막 대해도 괜찮은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앞에 꿇어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예배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 가운데 우리는 두 가지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대개 자유로운 형식으로 예배하는 교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가톨릭처럼 엄숙하게 예전 중심으로 예배하는 교회일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배 형식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예전 중심으로 엄숙하게 예배한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늘 기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둘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나아가는 동시에,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 형식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함부로 대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거룩에 경외심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태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공 예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생각하며 드려야 하고, 목장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게 됩니다.

2. 솔로몬의 기도

이제 솔로몬은 제단 앞에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2절)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라고 하면 적어도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새벽기도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어떤 목사님들이 “새벽기도는 누가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라고 한 것을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새벽기도가 목회자를 살립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인 제가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옆 교회 목사님이 기도해주겠습니까?

교회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기도가 리더들 자신을 살립니다. 교회의 리더인 장로, 권사, 집사들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목자 목녀 목부가 자기 목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자기를 위해,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누구나 기도하겠지만, 교회의 리더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이 매일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하시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특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영적 리더는 사무엘이 말한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이렇게 기도를 하면, 중보기도를 받는 사람이 더 유익일까요, 하는 사람이 더 유익일까요?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받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하는 사람에게 더 유익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복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놀라운 기도 응답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이제 솔로몬의 기도의 내용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다윗 왕실에 대한 기도 (22-26절)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 중 하나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대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5절)

다윗 같은 믿음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축복입니다. 솔로몬에게 가장 큰 축복은 그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것도 아니고,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그의 아버지였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지난번 이스라엘과 유럽을 가보니까, 대부분의 나라들이 조상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하여 그들 덕분에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미국도 조상들을 잘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우리가 자녀 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 명예? 아닙니다. 요즘 한국의 모 대기업에서 형제끼리 싸우는 것 좀 보십시오. 돈이 너무 많고 권력도 많으니까 형제끼리 소송을 걸고 싸웁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우리를 보며 “믿음의 아빠 엄마 덕분에, 믿음의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되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왕과 백성을 위한 기도 (27-30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7-29절)

이 내용은 성전 봉헌 기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29)라고 한 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임재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성전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예수님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성전인 성도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0절)

여기서 끝 부분에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은, 죄를 지었을 때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제목이 바로 죄 사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십시오. 사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죄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회개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내려오는 하늘의 복입니다.

3) 맹세에 대한 기도 (31-32절)

31절부터는 성전을 두고 하는 특별한 기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31-32절)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문제가 일어났는데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을 경우, 죄를 범했다는 혐의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전에서 결백을 맹세하게 한 법을 근거로 한 기도입니다. 어떤 문제를 두고 성전에서 맹세했을 때 그 맹세가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밝혀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서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식과 법의 한계에 부닥쳤을 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한 사람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밝혀 주시기를 구합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거나 사실이 아닌데도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정확히 심판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주시라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니라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이 땅에서는 그것을 못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는 다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말을 듣더라도 흥분하거나 가서 맞받아칠 필요가 없습니다.

4) 전쟁에서 패할 때를 위한 기도 (33-34절)

33절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서 재앙을 당한 경우에 대한 기도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뭐라고 합니까? “싸다, 싸.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여전히 불쌍하게 여겨 주십니다. 솔로몬은 범죄에 대한 징계로 재앙을 당한다 해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회개하면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여기 8장에는 죄로 인해 당하는 세 가지 재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3-34절)

가장 먼저 죄로 인하여 적국에게 패하는 경우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나라의 장래를 좌우하는데, 이스라엘이 적국에게 패하는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패하는 것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해주십니다.

5) 죄로 인해 비가 오지 않을 때를 위한 기도 (35-36절)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5-36절)

둘째로, 죄를 범함으로 가뭄이 닥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닥치면 그야말로 죽음의 위기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즉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비를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6) 기근과 전염병에 대한 기도 (37-40절)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7절)

또한 범죄하게 되면 기근이나 전염병이 일어납니다. 사실 요즘 이상한 병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류 독감, 구제역, AIDS, SARS, 이제는 MERS 등 많습니다. 자연 재해 역시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이 구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너희는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정죄하면 안 되지만,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며 돌아봐야 합니다.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8절)

이 말씀을 보면, 재앙과 관련하여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게 다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모두가 그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인도에서 한 유명한 힌두교 수도사가 물 위를 걷는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자, 몇 월 며칠에 어느 수영장에서 물 위를 걷는 시범을 보이겠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도를 많이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물 위를 걷는 수도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마침내 그 수도사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수도사는 겉옷을 벗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그 수도사가 물속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 그대로 물에 풍덩 하고 빠졌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물 위를 걸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도사가 물속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가 이제 과연 뭐라고 말할 것인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온 몸이 젖은 채로 막 화를 내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니들이 기도를 안 해서 그래!”

굉장히 유치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지요? 그런데 우리 삶이나 교회에도 어떤 어려움이 생길 때 그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됐어.” “당신 때문에 이게 안 된 거야.” 그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 인도의 수도사처럼 유치하고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아닙니다. 공동체의 문제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말할 힘이 있으면 회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직접적으로 자신의 죄가 아니더라도 비참한 상황을 온 맘으로 끌어안고 공동체를 위하여 ‘대신 회개’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 (겔 22:30, 새)

다른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나라가 멸망하는 상황 속에서, 그 성벽 틈을 막고 멸망을 막을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중보기도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특히 직접적으로 자신의 죄가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잘못을 놓고 ‘대신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39절)

사실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기도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기도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고 진실한 회개가 없이는 용서도, 회복도, 치유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마음의 진실함을 보시고 응답하십니다.

7) 이방인을 위한 기도 (41-43절)

계속해서 솔로몬은 이방인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응답해주실 것을 구합니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41-43절)

여기서 ‘이방인’은 이스라엘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참되신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와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영적으로도 미숙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 이방인들과 같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8) 출전을 위한 기도 (44-45절)

솔로몬이 이 성전 봉헌식을 하고 있을 때의 상황은, 태평성대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평화롭고 가장 강력한 국력을 가졌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미리 불행한 미래를 예상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먼저는 전쟁에 나갈 경우에 대해 기도를 합니다.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44-45절)

9) 포로를 위한 기도 (46-51절)

다음으로 솔로몬은 포로로 끌려갈 경우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6절)

사실 이 솔로몬의 기도와 같은 불행한 상황이 몇 백 년도 안 되어 이스라엘에게 닥칩니다. 이처럼 한창 잘 나가는 때에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이 리더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지도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영적 위기의식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때만큼은 솔로몬에게 그러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잘되기만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반쪽짜리 기도입니다. 정말 성숙한 기도는 실패와 고통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하나님 앞에 비추어보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며, 정신을 차려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준비하는 기도입니다.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7-48절)

여기를 보시면 솔로몬은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48)이라고 합니다. 기도 응답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49절)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은 성전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것을 솔로몬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성전은 몇 번씩 비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무너지신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지,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과 예배 의식 자체를 중요시하여, 자기들의 삶은 함부로 살아도 성전 예식만 제대로 드리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순종했을 때 결국 무서운 징계가 임하여 이방 군대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48)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온 마음과 온 뜻으로 하는 회개, 생명을 건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를 사해주셔야 눈에 보이는 상황도 풀리면서 포로로 있던 땅에서 본토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간절하고 정직한 회개에 있습니다.

3. 솔로몬의 축복

솔로몬은 기도를 마친 후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55절)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66절)

솔로몬이 만약 ‘야, 이 패역한 백성아! 말 좀 잘 들어라.’ 하는 식으로 막 야단을 쳤으면 백성이 솔로몬을 축복했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백성을 축복하고, 백성은 솔로몬 왕을 축복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처럼 지도자는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얼마나 성도들을 축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질책보다는 격려하며 축복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장로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성도님들을 축복하고 계십니까?

권사님, 집사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목자님, 목녀님, 목부님, 어떻습니까? 얼마나 목장식구를 축복하고 계십니까?

부모님들, 어떻습니까? 얼마나 자녀를 축복하고 계십니까?

성도님들, 어떻습니까? 다른 형제자매들을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축복을 얼마나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왜 직분과 사역을 맡겨주셨겠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영적 리더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도 아니고, 교우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누가 주인이냐의 문제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실 때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서로를 축복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고 축복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열왕기상 8장 설교말씀] 성전 봉헌과 솔로몬의 기도(왕상 8: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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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에서는 성전을 하나님 앞에 봉헌하고 솔로몬은 백성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와서 성도로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심에 감사하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성전 봉헌과 솔로몬의 기도(왕상 8:1-66)

[1-11절]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 . . .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다. 성전 기구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언약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과 장로들이 다 7월 절기에 왕에게 모였고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갔고,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은 궤 앞에 있어 셀 수 없고 기록할 수 없이 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로 메어 들였다. 그룹들은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장대]를 덮었다. 채가 긴 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그 채는 열왕기를 기록할 당시까지 그곳에 있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두 돌판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었다.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출 16:33-34)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 17:10)는 없었다. 아마 엘리 때에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을 때 분실된 것 같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였고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해 서서 섬길 수 없었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이었다.

[12-21절] 그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 . . .

그때에 솔로몬은 말했다.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솔로몬은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해 축복하였다. 그때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서 있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고 말하였다. 그는 자기가 성전을 지었다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이루셨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내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대로 내 부친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내가 또 그곳에 우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저희와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22-26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 . . .

솔로몬은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말하였다. 54절에는 그가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를 아뢰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대하 6:12-13에 의하면, 그는 길이가 약 2.3미터, 너비가 약 2.3미터, 높이가 약 1.4미터 되는 놋단을 만들어 그 위에서 기도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하지(上天下地)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그는 또 말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30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 . . .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기도를 들으시기를 구하며 아뢰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1-34절]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 . . .

구체적으로, 솔로몬은 일곱 가지의 예를 들어 간구하였다. 첫째로, 그는 이웃에 대해 범죄하고 맹세하는 일에 대해 그 옳고 그름을 보응하시기를 구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판단]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으시옵소서.”

둘째로, 그는 전쟁에서 패할 때 하는 기도에 대해 말한다.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40절]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 . . .

셋째로, 그는 가뭄이 들 때의 기도에 대해 말한다.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넷째로, 그는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기타 재앙 때의 기도에 대해 말한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고난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41-45절]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 . . .

다섯째로, 솔로몬은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것은 이방인이 구원받는 신약시대를 암시한다.

여섯째로, 그는 전쟁에 나갈 때 드리는 기도에 대해 말한다.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46-53절]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 . . .

일곱째로, 그는 범죄하여 적국에 포로로 잡혀가서 드리는 회개의 기도에 대해 말한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성전은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이다. 또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의 처소이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다.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한 기도는 곧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기도이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십자가 대속 공로를 의지하며 드리는 기도와 같다고 하겠다.

[54-56절]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 . . .

솔로몬은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펴고 하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를 나타낸다. 솔로몬은 기도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말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무릇 허락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안식]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해 무릇 허락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57-60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 . . . .

솔로몬은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마시고 늘 함께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그에게로 향하게 하셔서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시기를 간구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며 버리지 마옵시고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옵시며 우리 열조에게 명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여호와의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절]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 . . .

또 그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권면하였다.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 그가 간구한 내용도 그러하였고 권면한 내용도 그러하였다.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62-66절] 이에 왕과 왕과 함께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 . . .

솔로몬 왕과 그와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은 다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은 화목제를 드렸는데, 여호와께 드린 소가 2만 2천이요 양이 12만이었다.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준공식]을 행하였다.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는데,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놋단은 길이 20규빗(약 9미터), 너비 20규빗(약 9미터), 높이 10규빗(약 4.5미터)이었다(대하 4:1). 그때에 솔로몬은 7일 7일 합 14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하였고 제8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니 백성이 왕을 위해 축복하고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해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며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고 또 앞으로도 다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부친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를 다 이루셨다(15, 24절). 그것은 성전 건립의 일이다. 솔로몬은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이루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받으셨음을 구름의 임재로 증거하셨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또 그의 속죄사역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신약교회를 상징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성령을 받아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이것은 큰 특권이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전에서의 기도나 성전을 향한 기도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때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을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모든 계명대로 살아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며 사는 것이다(40절).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땅의 만민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43절).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그와 화합하여 완전케 되어 그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계명만 지키며 살자.

[출애굽기 4장 히브리어 원어 강해] 모세와 아론이 호렙산에서 만남(출 4: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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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열왕기상 8장 22-32절(왕상 8:22-32, 왕상 8: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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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 이야기의 후반부에 속합니다. 8장은 7장을 잇고 9장으로 이어지며 7장과 8장, 그리고 9징에 이야기의 연속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8장을 읽어보면 앞뒤 이야기들을 이으면서도 7장. 9장과 별개로 읽어도 괜찮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8장이 독자적인 시작과 종결을 갖기 때문입니다. 8장은 솔로몬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솔로몬이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열왕기상 8장은 모두 66절로, 다른 장들에 비해 분량이 꽤 많은 편입니다. 그만큼 8장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열왕기상 8장은 읽고 듣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얼핏 읽어도 8장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성전에 들인 다음, 하나님께 봉헌하는 예식을 들려줍니다. 성전봉헌식은 매우 성스럽고 영광스러운 예식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을 비롯해서 그 예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가슴 벅찬 감격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또, 이를 듣는 자들도 본문을 읽으면서 그러한 감격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면 22절에 솔로몬은 기도를 시작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성전 건축을 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며 자신이 다윗의 적법한 후계자임을 천명한 후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성전 마당에 놓인 여호와의 제단 앞에 서서 백성들과 마주한 상태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하늘을 향해 손을 펴는 행동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며, 이사야 1장 15절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23절부터는 솔로몬의 기도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해 하나님의 유일성과 탁월성을 고백합니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는 표현은 하나님만이 신적 세계인 하늘과 인간의 세계인 땅에서 유일한 신이라는 고백입니다. 고대는 신들이 많은 세상이었기에 이렇게 하나님만이 신이라는 고백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앙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언약과 은혜를 지속적으로 지키시는 분이라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찬양으로 언약은 시내산에서 맺었던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입니다. 은혜는 이스라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롭고 자비하신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어도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잊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런 언약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떠난 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딴 길로 가는 자는 그분의 종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주도권과 우선권은 분명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언약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24절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고 이루어주신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앞서 백성들에게 이야기한 것에서 보면 두 가지인데 다윗의 아들이 왕위를 이은 것과 성전 건축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통해 솔로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신실성을 바탕으로 솔로몬은 다윗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우리 역시도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신실성에 기대어 기도하고 신뢰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아 분노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유일한 신이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신실한 분이시고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르짖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를 보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27절에서 30절에서는 솔로몬이 성전에 대해 기도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땅 위에 거하시겠습니까?’라는 수사의문문으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거하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란 표현은 구약 세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공간을 표현한 것인데 인간 세상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품을 수 없는 크신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성전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궤 안에 갇혀 있거나 성전에 묶여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대신 29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둔 이곳에 하나님의 눈을 주야로 두신다는 표현과 30절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신 곳은 성전이 아니라 하늘임을 분명히 합니다. 다만 성전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고 계신 곳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곳입니다. 29절은 ‘이 성전을 향하여’ 혹은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좀 더 구체적인 기도를 합니다. 성전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솔로몬 성전의 가장 핵심되는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성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임을 분명히 합니다. 28-29절까지가 솔로몬 자신이 기도하는 것에 응당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30절은 기도하는 사람이 주의 백성 이스라엘로 확대된다. 그리고 간구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솔로몬은 제일 먼저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사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31-51절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으면 하는 구체적인 분야 일곱가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 31-32절은 첫 번째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정의로운 심판입니다. 이웃들 간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맹세를 한 경우 성전의 제단 앞에서 다시 맹세를 시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다는 것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이들이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이것을 들으시고 판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악한 자는 그의 행위를 따라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고 의인은 그의 의로운 행위를 따라 의로 갚아주는 것이 솔로몬과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일 먼저 기도한 것은 백성들을 공의롭게 재판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공의로운 재판은 솔로몬이 가장 원하던 것으로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공의로운 재판이 바로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초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무질서하고 강자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 왕국이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을 우리가 머리로 익혀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삶의 언어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감탄을 내듯이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기 바랍니다. 오늘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시작하는 이 시간 기도로 나아갑니다. 오늘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달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도 그렇게 고백하러 나왔습니다. 오늘 마음속에 간절한 무언가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이 마음을 주님 들어주시옵소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 것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압도되길 원합니다.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고 간혹 흔들리더라도 우리를 일으키시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솔로몬의 기도처럼 정의를 간구합니다. 오늘날 가장 공정해야 할 곳이 무너졌음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너져 내린 정의와 공의가 다시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하여 보여지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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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하나님의 목적을 선명하게 알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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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8장 하나님의 목적을 선명히 알고 사는가? (찬 209)

1. 성전은 솔로몬 통치 제 11년 8월에 완공되었고(6:38), 봉헌은 이듬해 7월이었다. 봉헌식까지 11개월이 걸린 것은 준비가 덜 되어서가 아니라 초막절에 맞추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의 은혜를 기억하며 7일간 초막에서 절기를 지켰으며 매 7년의 초막절에는 하나님께 재헌신하는 의식이 행해졌다(신 31:10~11). 솔로몬은 성전 봉헌을 이스라엘 백성의 재헌신의 차원에서 갖기를 원했을 것이다. 봉헌식은 14일 간 치러졌는데(65) 처음 7일은 성전 봉헌의 축제로, 다음 7일은 초막절로 지켜졌을 것이다.

2.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시온산으로 옮겨온 언약궤는 이제 완공된 성전의 지성소 안으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의해서 옮겨진다.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되어있다는 말은 그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분실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9).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이 전에 가득하게 하심으로써 제사장이 능히 섬길 수 없을 정도로 그 임재를 드러내주셨다(10~11).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제사장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3. 간단한 기도에 이어(12~13) 솔로몬은 백성을 축복하며 연설을 한다(14~21). 솔로몬의 기도는 그의 영적 각성의 상태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2~40절까지는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의 집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간구이고, 41~43절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혹은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여겨 그들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기도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설령 이스라엘이 망하여 포로로 잡혀간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성전을 향해 다시 기도하면 들으사 그들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가 이어진다(46~52).

4. 솔로몬의 축복은 앞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 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 만민에게도 주어진 것임을 보여준다(60). 솔로몬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다. 초막절 희생을 드린 백성들은 초막절 축제의 마지막날인 제8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돌아갔다(68).

5.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아브라함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는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임을 바르게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와 연설에서는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지 않았다. 당신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분명히 알고 의식하고 살아가는가? 그것을 기도하는가?

6. “하나님 아버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었듯이, 저희도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모든 주의 백성들이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복된 역사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조금씩 성경 알아가며 나도 변하려고 :: 열왕기상 8장. 겸손은 가장 자신감이 있을 수 있는 순간에도 늘 당신 곁에 두세요.

열왕기상 8장은 66절까지 있는 긴 장이네요. 이럴 때 당황하고 겁 먹으면 안됩니다. 그냥 하는 것입니다. 너무 세부적으로 들어가지 말고 큼지막하게 덩어리를 나누어서 하고, 보통 성경에 나와 있는 문단 나누기 된 것을 그냥 이용하셔도 됩니다. 일단 시작하시고, 시간이 부족하시면 장 요약하는 것까지만 오늘하시고(저도 장 요약하는 것만 한 50분 소요된 것 같습니다) 다음은 내일하셔도 됩니다. 이 많은 양을 어찌하나? 걱정하면 어렵습니다. 대략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세요.

[정리1. 내용정리…이렇게 긴 장은 좀 어렵지요?^^]

1.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고자 함.

1)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

2) 제사장들이 궤를 메고,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레위인들이 메고 올라감.

3) 솔로몬과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서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냄(무수히 많은 제물로)

4) 제사장들이 궤를 성전이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둠.(궤 안에 두 돌판있음)

5)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2. 솔로몬의 연설

1) 이 성전은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다.

2)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3) 애굽에서 나오신 이후 성전을 위해서 성읍을 정하지 않으시고 오직 다윗만 택하셨다.

4) 다윗이 성전을 지을 마음을 가졌으나,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낳을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셨다.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졌도다. 말씀하신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 궤를 넣어 두었도다.

3. 솔로몬의 기도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성전을 지었으니,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다윗 처럼 행하기만 하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2) 여호와께서 이 땅의 성전에 계신다는 것이 감당이 되겠나이까? 그러나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주십시오.(그곳은 주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니…)

3) 만일 주의 백성이 범죄하여 적국 앞에서 패하게 되어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4)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 벌을 받을 때,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죄를 사하시고… 비를 내리시옵소서.

5) 만일 이 땅에 무슨 기근이나 전염병이 돌거든, 재앙을 깨닫고 기도나 간구를 하면 주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소서. 그러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6) 주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이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 기도대로 이루사, 만민이 주를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소서.

7) 주의 백성이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할 때,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돌보아 주소서.

8) 범죄로 인해 적국에게 넘기시고 적국으로 끌려간 후에 그들이 사로잡힌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면, 주님은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아 주소서.

(1) 이들은 주께서 철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이고 소유이십니다.

(2) 모세를 통해 말씀하심같이 이들은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을 삼으셨다.

4. 솔로몬의 축복

1)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를 하고 회중을 위해 축복함.

2)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약속한 것을 이루지 않은 것이 없으시다.

3)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주의 말씀을 지키겠나이다.

4) 너희 백성들은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그의 법도를 행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라.

5. 성전 봉헌식

1)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는데, 그 제물의 양이 방대하다.(소 22000,양 120,000)

2) 솔로몬이 14일간을 여호와의 절기로 지키게 했고, 전국에서 그 절기를 지킴

[정리2. 내용의 재정리…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의외로 1번 작업이 잘되면 2번 작업이 수월합니다.]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은 성전으로 언약궤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성막에 있던 기물들을 성전으로 옮겨온다.

솔로몬은 모인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맡기신 일을 이제 주의 뜻을 따라 완성하게 되었고 본인이 언약궤를 옮겨 놓으므로 그 일이 완성되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제 완성된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가 이어진다. 죄로 말미암아 기근이나 전염병이 돌든지, 적국에게 패하게 되었든지 더나아가 적국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땅으로 잡혀갔더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기대하고 이곳으로 나와 기도하면 이루어지게 하사 그들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백성이고, 세상 만민 가운데 구별하신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향한 기도를 마치고 회중을 향해 축복한다. 이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다. 더불어 이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요청한다.

솔로몬은 회중과 함께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리고 솔로몬은 14일간의 여호와의 절기로 전국적으로 지키게 하였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출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아이폰으로 아이디어만 기록하고 사무실 출근해서 내용을 채웠습니다.]

1. 하나님의 함께하심.

언약궤가 솔로몬의 성전 내소(지성소)에 들어가고 나서 그 위에 구름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모습은 모세가 성막을 짓고 그 위에 하나님의 임재하며 나타났던 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 솔로몬의 성전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솔로몬이 왕이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2. 율례와 계명을 지킴

언약궤의 안치와 그 안에 모세의 돌판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이스라엘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더불어 성전 봉헌식을 하면서 솔로몬이 회중을 향해서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지키도록 요청한 것은 실제적인 실천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순종에 있는 것이다. 그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는 그 법에 대해 순종할 것을 결단하여야 한다. 그 법을 지키면 그 나라는 견고해 지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나라는 어수선해질 것이다.

3. 혹 범죄하였을 때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사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소망함.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긴 기도의 제목들을 다룬다. 기도의 내용이라는 것은 혹 범죄하여 잘못해서 기근을 만나거나 적에게 패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하는 고통을 당할 때, 이 민족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죄를 사해 주시고 용서해 달라고 청원하는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잘 할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형편과 인간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죄에 대해서 겸손했고 자신이 그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했다. 모든 것이 완전한 것 같은 순간에도 겸손하여 구원의 통로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마, 솔로몬의 이 기도에 근거해서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기도하지 않았겠는가? 후대의 선지자들도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회복을 소망하지 않았겠는가? 겸손을 한 켠에 늘 준비해 두자.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한 켠에 늘 마련해 놓으신 숨통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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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에 대한 정보 열왕기 상 8 장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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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하루 한 장] 열왕기상8장_두 돌판 외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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