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I 김용의Tv I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복음의 진수 로마서08] – 2020 김용의 선교사 229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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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0 – 대한성서공회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ㄱ)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 10 기록한바 ㄴ)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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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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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9-18) – 동탄영락교회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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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7/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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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옥스포드 한인교회

로마서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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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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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양의문교회

이 단락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구약성경을 가장 길게 인용한 단락입니다. 먼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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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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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가?(롬3:9~18)_2017-05-21

그것은 전7:20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롬3:9의 말씀을 인용하면, 이 세상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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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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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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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0 ]

제 3 장

1 그런즉 유대 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시 51: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사람은 모두 죄인이다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 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나으뇨 결코 아니라인이나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혹 저희만 못하뇨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시 5:9 시 140: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시 10:7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사 59:7 이하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시 36:1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혹 정죄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혹 그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홀로 유대 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9-18) – 새벽기도 설교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향하던 책망의 방향을 이제 ‘이 글을 읽는 성도’들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9절).

자신은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성도들 또한 지금껏 자신이 한 책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바울은 왜 처음부터 우리 성도들에게 하고자 하는 교훈의 말씀을 하지 않고, 이방인과 유대인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고 결론부분에 와서야 성도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사도바울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먼저,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을 아프도록 지적하고 나서 자신과 우리 성도의 문제를 거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먼저 보면 자신의 문제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사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여러분 자신을 돌아 볼 때, 여러분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나 자신의 단점과 부족함과 죄인 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약점이나 잘못을 이야기하면 인정하기 보다는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너나 잘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하기에 자기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상대방의 문제점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아주 작은 문제까지 고쳐야 할 점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당사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문제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볼 때는 정확히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본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 7:3).

여러분, 이것은 우리 성도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실제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다 단점과 허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내 눈에 다른 사람의 문제가 들보처럼 크게 보인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나의 문제가 들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볼 때 비판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곧 나 자신의 모습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보는 다른 사람의 단점, 내가 보는 다른 사람의 허물이 곧 나의 단점과 허물인 줄로 깨달아야 합니다.

타인의 죄인 됨을 보면서 나의 죄인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을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함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이나 정죄는 곧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울에 자기모습을 비추어 보고 티를 발견한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향해 비난하고 정죄합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딘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조용히 자기의 잘못을 고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인이라면 타인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보며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조용히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웃은 정죄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보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거울임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면 여러분의 삶이 좀 더 멋진 삶이 될 것입니다.

2. 이어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9절).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거론하고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은 세상의 이름 없는 민족이 아니라, 둘 다 대단한 민족입니다.

먼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율법을 맡고 있다는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민족이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두고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지금 어떻다는 것입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깊은 죄에 빠진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헬라인들은 철학과 문명을 발달시킨 민족입니다.

헬라의 철학과 문명과 법은 헬라인들에게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글을 쓰던 당시 이미 헬라인들이 자랑하던 ‘문명’, ‘철학’, ‘사상’, ‘법’이 세계화 된지 사백 년이 흐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상이 대단한 것이라면, 그 오랜 기간 중에 무언가 인간의 삶이 좀 더 의롭게 변해야 했습니다.

죄인으로서가 아닌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구약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10절).

그리고 인간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죄의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11-18절).

차마 읽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강하게 저주하는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3. 먼저 그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탄식합니다(11-12절).

여러분,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다 죄 아래 있어서 하나님을 찾지도, 선을 행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난 즉시로부터 영적으로는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가 되었고, 도덕적 부패와 타락에 빠져 선을 행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없다’라는 말을 무려 ‘여섯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10-18절).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반복하여 쓴다는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 의인으로 불리는 사람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람이나 국가를 위해 헌신 봉사한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그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들도 그러한 선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기준에 합하는 의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들 역시 죄 아래서 죄의 굴레에 매여 있는 자들입니다.

율법이 그들을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들로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의로써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다 불의한 자로 취급되어 마침내는 멸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 우리의 본래 운명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정죄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본래 의인은 아니지만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는 의인들이 되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은 자들로서 ‘세상에서도 의로운 자로 나타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이러한 삶을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스스로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이러한 저희들에게 상대방의 삶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겸비하라 교훈했습니다. 또한 저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더욱 겸손하게 엎드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 장

9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절: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절: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절: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절: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절: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말씀요약 —-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변론을 주고받을 때에 만일 어느 한쪽이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유대인들과 일종의 논쟁을 벌이면서, 복음의 중요한 한 논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9-18절)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논지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9절). 바울은 10-18절에서 이러한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구약의 대표적인 구절들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이 단락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구약성경을 가장 길게 인용한 단락입니다.

먼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0-12절). 이 구절은 시편 14:1-3과 53: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죄의 증거가 제일 먼저 사람의 지성과 의지에서 발견됨을 말합니다. 인간의 악은 겉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과 가치관과 판단과 관점에 있어서 부패하고 치우쳐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들을 굽어 살피실 때에 지각이 있어 깨닫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생들 중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신의 죄와 비참을 스스로 깨닫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의지는 다 삐뚤어져 있고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죄악은 입으로도 잘 나타납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13-14절). 이 구절은 시편 5:9과 시편 140:3의 인용입니다. 유대인들은 “열린 무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동굴이나 묘실이었습니다. 따라서 묘실의 입구가 열리면 거기에서는 온갖 악취와 모든 흉한 것들이 올라왔습니다. 사람의 입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혀로 사람을 속이며 그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악독와 불평과 비방과 온갖 누추한 말이 가득합니다(14절, 시 10:7 참조). 심지어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13절). 사람은 입술의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죄악은 행동으로 잘 나타납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5절). 이는 이사야 59:7-8과 잠언 1:16의 인용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죄 짓는 자리로 빠르게 움직여서 부지런히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죄는 이 세상에서 버젓이 살아서 활보하고 있으며, 악인들은 처처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죄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갈 5:19-21). 그리하여 죄의 증거는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죄라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려고 합니다. 만일 그들의 말이 옳다면 이 세상에는 죄가 정말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은 죄로 넘칩니다.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요 인류 최악의 거짓말입니다. 나에게 죄가 있든지 죄가 없든지, 이 세상에 죄가 있든지 죄가 없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정말 죄가 전혀 없습니까? 이 세상에는 정말 죄가 전혀 없습니까? 죄의 엄연한 실체가 있고, 죄의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부패한 본성, 죄악된 성향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의 결국은 파멸과 고생(비참)이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16-17절).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18절; 시 36:1 참조). 악인들은 이 세상에서 온갖 죄악을 저지르며 살면서도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시 73:11)고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선언은 단순히 성경의 공허한 선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현실이요 참 모습입니다. 성경이 사람을 죄인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을 죄인이라고 증거하여 우리를 일깨워준 것입니다(시 143:2; 전 7:20; 렘 17:9; 요일 1:10).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줄을 모르고, 또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다(19-20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우리의 모든 변명하는 입을 막기 위함입니다(19절). “율법 아래 있는 자들”, 곧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가졌지만,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죄인”이라는 선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ESV, NAS, RSV, 개역한글 성경에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기 때문입니다(20절). 유대인들은 온 세상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이 율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물론이요 모든 이방인들은 이 율법의 심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율법은 모든 인생들을 향해서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어떤 인생도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완전함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20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율법이 있으니 자신들은 의로우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진단용이지 치료용이 아닙니다. 진단은 우리의 질병 여부를 확인시켜주고 치료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질병 자체를 막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많이 알고 율법을 열심히 지키면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꺼내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사람 앞에서조차도 우리 자신이 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깊이 후회되고 부끄러운 일들도 많고, 어리석고 경솔하게 행동했던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 앞에서 이미 죄인입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율법을 잘 알고 심지어 율법을 모두 암송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 율법을 가지고 율법 앞에 한번 서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율법 앞에 선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고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이 주어진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모든 입을 막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입을 막고 이렇게 부르짖으며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하더라도 율법을 가지고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겠습니다. 이 율법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죄인인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살 길을 주십시오. 저에게 구원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행 2:37 참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가?(롬3:9~18)_2017-05-21

사도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의인들이 여럿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나 욥과 다니엘 등은 의인이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의인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종교개혁자들은 의인의 반댓말을 악인이라고 해석해 버렸다. 즉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도 못하는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에 휩싸여 있는 자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려고도 하지 않고,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도 아니하고 있다. 큰 일이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오늘 그 실마리를 찾아서 떠나보자.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롬3:10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이라고 기록된 자들이 나온다. 구약성경에는 적어도 4사람이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3사람이 나온다. 족장시대에는 노아과 욥과 롯이 의인이었고(창6:9,겔14:14, 창18:23), 선지자들로서는 다니엘이 의인이었다(겔14:14).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세례요한의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의인이었고(눅1:6), 이방인으로서는 고넬료가 의인이었다(행10:22).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한 것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이 틀린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은 통전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배경과 문맥을 잘 살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인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의인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정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인지, 의인이 있다면 어떤 자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믿는 이들도 주님 앞에 어떤 각오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정말 이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는가?

사도바울은 롬3장 10~18절을 통해서, 유대인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으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 더욱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는데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정말일까? 정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가? 우리는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관하여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면, 우리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 바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전적 부패에 빠져 있으며,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종교개혁자들의 전적 타락의 교리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 정말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도리나 책임은 아주 없는 것일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으려고 나와야 한다고 하셨고,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도 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하는 것인가?

3.인용성경구절에 대해서, 관주가 잘못 연결되는 바람에 빚어진 놀라운 진실

먼저, 우리는 롬3:10에서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 이 본문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이렇게 이해한다. 롬3:10에 나오는 의인과 반대되는 자는 11~12절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전혀 찾지도 아니하며 선을 전혀 행하지도 않는 자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롬3:10~12의 말씀은 시편14:1~3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성경에 자그맣게 기록된 관주 때문 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거기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우선 롬3:10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렇다. 그런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에 대한 관주를 보면, 이 말씀이 구약에 있는 시편14:1이하를 인용한 것 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니 모든 독자들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구약성경 시편 14:1이하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시편14편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없다. 다만, 그 다음구절인 롬3:11~12의 말씀이 시편14:2~3에서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은 어디에 있는 말씀일까? 구약성경을 전부 뒤져보면, 이 말씀에 가장 가까운 말씀은 전도서 7장 20절인 것을 알 수 있다. 전7:20은 이렇다. ”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롬3:10의 말씀과 롬3:11~12의 말씀은 한 본문에서 따온 말씀이 아니다. 또한 롬3:13~18의 말씀도, 시편14편에 나오는 말씀들이 아니다. 이 말씀들은 여러 군데의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복합인용성경구절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롬3:10~18의 말씀이 시편14편 1절이하에서 인용한 말씀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롬3:10의 관주에 이 본문이 시14:1이하를 인용한 것이라고 쓰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의 각주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누군가가 달아놓은 것일 뿐 정확무오한 해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적어도 롬3:10~12의 말씀은 만큼은 시14:1~3에서 왔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아니다.

4. 사도바울은 무슨 뜻으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가?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7:20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롬3:9의 말씀을 인용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죄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롬3장10절이하에서 말하는 의인의 반대는 죄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좀 다르다. 구약성경에는 의인의 반대어구로 대부분 쓰인 것은 악인이다 . 다시 말해, 구약성경에서는 의인의 반대는 악인이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을 지칭하고, 악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저주를 받을 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시편과 잠언에 보면, 의인과 비교되는 사람이 거의가 다 악인으로 나온다. 시편에서는 13번을, 잠언에서는 무려47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성경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약 78번이나 나온다. 그렇다면 왜 구약성경의 기록자들은 의인의 반대개념으로 악인을 언급할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은 복을 받지만 한 사람은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전부 다 구약에 나오는 성경구절로서, 의인이 아닌 악인들의 경우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도바울이 롬3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아래 놓여있는 죄인인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려주려하다보니 구약성경에 기록된 자들 중에서 악인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 바울의 의도와는 잘못 나가버린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이 본문을 이용하고 있는가? 이 본문을 전적 타락 내지는 전적인 무능력의 증거구절로 인용한다. 모든 사람은 의인이 아니며, 전적으로 타락해 있고 전적으로 부패해 있으며, 전적인 무능력의 상태에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롬3:10에서 말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의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 아래 놓여 있으므로 죄를 범하는 죄인이라는 뜻일 뿐, 모든 사람들이 다 전적인 부패와 전적인 무능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 이다.

6. 롬3:11~12에 나오는 악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롬3:11~12에 나오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다 치우쳐 무익한 일만을 일삼으며, 선을 전혀 행하지 않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시편14:1에 나온다. 시편14:1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 이 이와같은 자라는 것이다. 그럼, 시14:1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어리석은 자’ 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 이다. 그래서 그는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지도 아니한다. 한 마디로 그는 악인인 것 이다. 그러므로 롬3:11~12에 말하고 있는 자는 시편14:1에 나오는 악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자기마음대로 악을 저지르고 있는 자는 대체 누구일까? 시편14편은 다윗의 시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는 다윗이 익히 알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압살롬이 아닌가 말하기도 하는데 압살롬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시편14편에서 그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할 뿐더러 아주 부패한 자요 선을 전혀 행하지도 않으며, 악을 행하는 자이며,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시14:1~6). 하지만 그가 누군지를 히브리어 본문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발’이기 때문 이다. 그의 아내 아비가일도 다윗에게 자신의 남편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했다. “원하옵나니 내 주(다윗)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은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어리석은) 자니이다(삼상25:26)” 그렇다. 미련하다는 히브리어 단어가 바로 ‘나발’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14편에서 다윗이 말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는 나발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였던 모든 일들이 시편14편에 나오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나발은 유다지파의 갈렙족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땅히 베풀어야 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했으며, 자신이 받은 은혜마저도 갚을 줄을 몰랐으며,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괴롭혔고, 자기에게 주어진 물질을 자신의 육체만을 위해 썼다 . 그러므로 롬3:11~12에서 말하고 있는 자는 나발과 같은 자인 것이다. 결국 롬3:11~12에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악행만을 일삼는 나발과 같은 자 를 가리킨다.

하지만 성경주석가들은 의인이 아닌 자들은 모두 나발과 같은 자라고 해석해버렸다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해있으며, 선을 행하기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만을 살펴보아도, 예수믿지 않는 자들 중에도 많지는 않지만 선을 행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불치병이나 위급한 일이 발생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죄인은 될지언정 악인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지, 악인을 회개시키러 오지 않았기 때문 이다(마9:13). 악인이란 누군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으며, 자기 맘대로 행하는 자다. 이런 자는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다. 나중에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도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진다고 하셨다(마13:49~50). 의인 중에서 죄인을 갈라내어 불못에 던진다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 곧 악인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7. 나오며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우리는 나발과 같은 악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성령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면 즉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잠28:13에서도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고 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은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받을 수 없고, 다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속죄의 방법을 통해서만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선만을 행하고, 아주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없다 .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나발과 같은 악인은 아니다 . 여기서 ‘악인’이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도 아니하며, 부패하여 온갖 악행만을 일삼는 자를 가리킨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해준 속죄를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속죄를 받아 죄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용서받은 죄인이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겸손한 시인과 회개 그리고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용서받는 죄인이 되고 칭의인이 되어,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 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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