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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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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욥기 19장
19:1 <욥이 빌닷에게 대답하다> 그러자 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9:2 “언제까지 나를 괴롭히고, 말로 나를 박살내려는가? 19:3 자네들은 열 번이나 나를 모욕하고도 …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2/23/2022
View: 3219
욥기 19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욥기 19. 19.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3/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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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금) “욥기 19:1-29” / 작성: 박종호
1장과 2장에서는 하늘에서의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그 이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끝부분인 38장부터 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욥과 그 친구들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5/7/2022
View: 5609
욥19장 해석, 빌닷에 대한 욥의 변론 – 다음블로그
3장 이후 지금까지 욥이 해온 그 어떤 대답들보다도 짧습니다. 그러나 19장은 흔히 <욥기의 절정>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헨델의 저 유명한 메시아 제 3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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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19일. 욥기 19장. – 하늘품은교회
인생의 즐거운 때뿐만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대속자가 …
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9/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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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속자는 하나님 뿐이다, 욥기 19장 23절
나의 대속자는 하나님 뿐이다, 욥기 19장 23절-27절 욥기강해 욥기설교 … 욥은 자신에게 있어서 대속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
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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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장 1-29절 말씀 묵상 – 복음뉴스
욥기 19장 1-29절 말씀 묵상 · 1) 욥은 친구들이 마음을 번뇌 하며 말도 꺽고 열 번이나 자기를 꾸짖고 학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2-3). · 2) 그래서 친구들 …
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6/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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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욥기 19장 – 묵상과 기도 – 나눔과섬김의교회
찬양 : 어지러운 세상 중에 (찬송가 340장) 말씀 : 욥기 19장 1~22 오늘 19장은 빌닷의 공격에 대한 욥의 반론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오늘 …
Source: nasumchurch.sg
Date Published: 7/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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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욥기 19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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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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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
욥의 대답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1)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2)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쉬운성경 욥기 19장
19:1 <욥이 빌닷에게 대답하다> 그러자 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9:2 “언제까지 나를 괴롭히고, 말로 나를 박살내려는가?
19:3 자네들은 열 번이나 나를 모욕하고도, 잘못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군.
19:4 설령 내 잘못이라 해도 그것이 자네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5 자네들이 나를 누르고, 스스로 뽐내며, 나를 수치스럽게 만든다 해도,
19:6 나를 이렇게 만들고 그물로 덮어 씌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네.
19:7 내가 ‘폭력이야!’ 하고 외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고,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지만, 그 곳에 정의는 없구나.
19:8 그분이 내 길을 막고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며, 내 길을 어둠으로 가리셨구나.
19:9 나에게서 영광을 가져가시고, 내 머리의 면류관을 벗기셨구나.
19:10 그가 사방에서 나를 치시니 내가 죽게 되었고 나무를 뽑듯 내 희망을 뽑아 버리시는구나.
19:11 내게 화를 내시고, 나를 마치 원수 대하듯 하시며,
19:12 그의 군대를 내게 보내시니 그들이 내 집 주변을 둘러쌌구나.
19:13 그분이 내 형제들을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 되었구나.
19:14 내 친척들이 나를 외면하고, 내 친구들 역시 나를 잊어 버렸구나.
19:15 내 집에 사는 사람들이나 여종들도 나를 모른 체하고, 낯선 사람처럼 대하는구나.
19:16 내 종을 불러도 대꾸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사정을 해도 소용 없구나.
19:17 아내마저도 내 숨기운을 싫어하고, 내 형제들도 내 옆에 오기를 싫어하며,
19:18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나를 멸시하고, 내가 일어서면 나를 놀리는구나.
19:19 내 모든 친구들이 나를 거부하고, 내가 사랑하는 자들도 등을 돌리는구나.
19:20 뼈와 가죽만 남은 채 잇몸으로 겨우 살아가는 내 신세야.
19:21 나의 친구들이여, 제발,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는 것을 알아 주게나.
19:22 왜 자네들마저도 하나님처럼 나를 괴롭게 하는가? 내 살을 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19:23 아, 내 말들이 모두 기록된다면, 그것들이 책에 기록된다면,
19:24 철필이나 납으로 기록하고 바위에 새겨 영원히 남겨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9:25 내 구세주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결국 그가 땅에 서실 것이네.
19:26 내 가죽이 썩은 후에라도, 이 몸이 썩은 후에라도 내가 하나님을 뵐 것이네.
19:27 내가 그분을 내 두 눈으로 바라볼 걸세. 내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네.
19:28 자네들은 ‘문제가 그에게 있으니 어떻게 그를 괴롭힐까?’ 하고 이야기하겠지만,
19:29 칼을 조심하게나. 진노는 칼로 나타나게 되지. 그러면 자네들은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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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찌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찌니라 7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찌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 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18 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008/05/02(금) “욥기 19:1-29” / 작성: 박종호
2008년 5월 2일, 금요일
본문 : 욥기 19장 1절-29절
욥기서는 42장까지 기록되어 있는 성경으로 제법 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구조를 알지 못하고 읽게 되면 쉽사리 읽혀지지 않습니다. 특히 3-37장 사이의 본문은 욥과 욥의 친구들의 긴 대화를 다루고 있는 관계로, 무고하게 고난당하고 있다는 욥의 주장과 잘못이 있어 징계를 받고 있다는 그의 친구들의 주장이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본문 19장을 읽으면서도 이러한 지루함은 계속되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욥기서 전체의 흐름과 문맥을 놓쳐버리고 오늘 욥의 독백을 읽게 된다면 여전히 우리의 응답없는 듯한, 지루한 기도생활과 신앙의 매너리즘처럼 치부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욥기서 전체가 샌드위치 구조처럼 구성되어 있음을 떠올리며 읽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1장과 2장에서는 하늘에서의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그 이후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끝부분인 38장부터 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욥과 그 친구들 앞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즉 욥이 고난을 당하게 된 시발점은 사탄이 하나님에게 욥의 신앙의 동기문제에 대해 시비를 거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탄이 보기에는 욥이 저렇게 신앙이 좋은 것처럼 칭찬받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욥을 축복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만약 욥이 가진 부와 건강, 그리고 여러 좋은 여건들을 욥에게서 거두어가면 욥은 분명히 하나님을 버리고 저주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욥의 신앙에 대한 테스트가 우리의 눈에 보기에는 매우 지루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욥의 눈으로 보면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맞이해야만 했던 자신의 처절한 고난의 현실과 친구들과의 대화 공방전은 그야말로 하나도 자신에게 도움 안되는 소모적인 인생의 나날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현재 신앙의 인생 시간표도 욥기서의 샌드위치 구조 한가운데에 와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욥 자신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그의 친구들은 친구 욥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남의 이야기’인 양 말하고 있기에 이들의 대화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맥락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9장이 시작되기 직전, 18장 끝절인 21절에서 수아 사람 빌닷은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는 자신의 친구 욥을 향해 “너는 불의한 자”라고 규정하며 말은 맺습니다. 그러자 오늘 본문에서는 욥이 그 말을 맞바로 받아치며 이렇게 거친 언어들을 쏟아내며 말을 시작합니다. 2,3절.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표준새번역성경이 좀더 대화체의 어감을 살려주는 것 같아서 인용해보겠습니다. “네가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며, 어느 때까지 말로써 나를 산산조각 내려느냐? 너희가 나를 모욕한 것이 이미 수십 번이거늘, 그렇게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으냐?”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긴장감이 넘치고 좀더 상대방에게 무례하고 날카로운 말들로 오가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친구와의 대화라기보다 논쟁으로 비화되어 갔습니다. 욥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그 섭섭함을 드러내면서 점점 더 자신의 친구들과의 관계가 ‘낯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분명히 오래전부터 친했던 친구인데 어느새 관계가 멀어져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해보시지 않습니까? 심지어 남편과 아내 사이도 아무리 오래 지냈어도 A4 크기 한 장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이후에는 남남과 다를 바 없이 낯설어지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13-19절에서 욥은 자신이 만나는 주변부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와 같이 지독한, ‘관계의 낯설음’에 가슴이 아려서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표준새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내 가족을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시니, 나를 아는 이들마다, 낯선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친척들도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구들도 나를 잊었다. 내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와 내 여종들까지도 나를 낯선 사람으로 대하니, 그들의 눈에,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다. 종을 불러도 대답조차 안 하니, 내가 그에게 애걸하는 신세가 되었고, 아내조차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싫어하고, 친형제들도 나를 역겨워한다. 어린 것들까지도 나를 무시하며,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를 구박한다. 친한 친구도 모두 나를 꺼리며, 내가 사랑하던 이들도 내게서 등을 돌린다.” 욥은 이처럼 ‘낯선 사람’이라는 표현을 13, 15, 27절에서 세 번이나 언급해서 되뇌고 있는데, 자신이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이 이제는 자신에게 그 관계가 아주 먼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세상살이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일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잘 안다고 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매일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욥에게 있어 이보다 훨씬 더 자신의 심정을 칼로 도려내듯이 괴롭힌 것이 있었는데, 바로 낯설게 느껴지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욥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2장 3절 말씀입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일들을 일순간에 다 당해야 했던 욥이었지만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소원하게 느끼게 됩니다. 6-12절에서 욥이 느끼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욥의 길을 막아서고 희망을 나무 뽑듯이 뽑아버리고 심지어 군대를 동원해 욥의 집을 아예 둘러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그런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2절에서 ‘둘러 진쳤다’는 단어는 1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욥의 집과 그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셨다고 하는 단어도 동일한 단어입니다. 자신을 늘 지켜주시던 그 후견인이신 하나님이 이제는 자신을 공격하는 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그 마음상태는 낙담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장에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칭찬하던 욥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정말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단지 주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보시며 예뻐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욥이 비록 절망의 끝에 서서 과거 자신을 지켜오셨던 그 하나님에 대해 낯설어하고 있지만 욥의 기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표준새번역으로 25-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
사랑하는 교우님들. 욥의 독백이 결코 우리의 신앙에 도움은 안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아우성이고 우리들의 부르짖음이기에 참으로 우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욥의 거친 표현들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진정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등의 필요도 없는, 소모전으로만 느껴졌던 우리의 현재 삶의 반복들이 하나님 앞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의 때가 가까워지니까 조금씩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기나긴 수평선을 향해 달리는 외로운 밤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라도 결코 우리가 좌절하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태양의 여명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지루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욥처럼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현실들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욥기 3장에서 시작하여 오늘 본문처럼 19장에 머문 것 같고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38장까지는 열아홉 장이 더 남아있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주님의 응답이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언젠가는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될 것이며 욥기 42장 5절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으로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기도)
주님. 오늘도 우리의 신앙의 샘플이었던 욥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친구들도 낯설어지고 심지어 우리를 늘 지켜주시던 하나님조차 멀어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혀 응답조차 없는 듯한 하나님이시졌지만, 욥 또한 좌절과 비탄에 빠져 있지만 욥의 비탄섞인 탄식의 기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기도가 순도 100%의 기도는 아닐지어도 그 기도 속에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기에 우리 또한 우리의 이 부질 없을 것만 같은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므로 그 반석되신 하나님을 알았기에, 현실은 정직하게 살려 바둥거리면 거릴수록 하나님의 사람에게 냉랭하고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라 하는 시몬’처럼 꿋꿋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으로 순종함으로 인하여 그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고야 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단 한번도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고 오늘도 여전히 울타리와 보호막을 둘러쳐 우리를 지켜주시는, 그 인애와 자비가 한없으신 주님 앞에 오늘 또 감격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작성자 박종호)
냉수한그릇 창고
◈빌닷의 2차 공박에 대한 욥의 변론 욥19장 출처, 정리
*부제: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19:25
◑서론
▶빌닷의 두 번째 발언에 대한 욥의 응답인 19장은
3장 이후 지금까지 욥이 해온 그 어떤 대답들보다도 짧습니다.
그러나 19장은 흔히 <욥기의 절정>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헨델의 저 유명한 메시아 제 3부의 주제로서 뿐만 아니라
찰스 웨슬리가 작사한 우리말 찬송 16장
“내 주는 살아 계시고”의 주제가 모두.. 욥19:25~27절로부터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하게 암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신앙 고백이
빌닷의 과격하기 짝이 없는 발언 뒤에 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18장에서 빌닷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도덕적으로 균형 잡힌 세계로부터
악인은 영구 추방당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했습니다.
악인은 단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일체의 기억과 흔적, 후손마저도 단절되는
완전멸종(멸문지화)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18:15~19
욥의 이 구속자에 대한 희망은
이와 같이 빌닷의 참혹한 공박에 대한 대응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마치 진주조개가, 이물질의 아픔을 인해, 진주를 만들어내듯이,
빌닷을 위시한, 세 친구의 참혹한 공격이.. 욥을 위대한 신학자로 만들어 갑니다.
◑1. 욥의 원수가 되어 핍박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19:1~12
▶빌닷의 가슴 후비는 말을 들은 욥은 2~3절에서 이렇게 대응합니다.
1 욥이 대답하였다.
2 네가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며, 어느 때까지 말로써 나를 산산조각 내려느냐?
3 너희가 나를 모욕한 것이 이미 수십 번이거늘, 그렇게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으냐?
개역 성경에는 10번이라고 되어 있는데, 자주 반복해서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4 참으로 내게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문제일 뿐이고, 너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5 너희 생각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낫겠고, 내가 겪는 이 모든 고난도 내가 지은 죄를 증명하는 것이겠지
‘불 난 집에 부채질 한다’는 말이 있는데,
세 친구들은, 불 끄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욥을 ‘위로’(?)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6~12절에서 빌닷이 제시한 논리를 조목조목 뒤집어 반박합니다.
18장에서 빌닷은 욥이 악인인 까닭에 자기가 만든 그물에 빠지고
함정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친구들의 일관된 주장
욥은 거꾸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물에 얽어 넣으셨다고 주장합니다. ←욥의 일관된 주장
6절을 보세요.
6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7 (내가) “폭력이다!” 하고 부르짖어도 듣는 이가 없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다.
8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높은 담으로 막으시니, 내가 지나갈 수가 없다.
내 가는 길을 어둠으로 가로막으신다
하나님은 욥의 영광을 거두어 가시고 온 몸을 두들겨 패시며,
나무뿌리를 뽑듯이 일체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9~10절).
9 내 영광을 거두어 가시고, 머리에서 면류관을 벗겨 가셨다.
10 내 온몸을 두들겨 패시니, 이젠 내게 희망도 없다.
나무뿌리를 뽑듯이, 내 희망을 뿌리째 뽑아 버리셨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를 적으로 여기셔서 자기를 치려고 군대를 보내시며
자기를 포위하신다는 것입니다(11~12절).
11 하나님이 내게 불같이 노하셔서, 나를 적으로 여기시고,
12 나를 치시려고 군대를 보내시니 그 군대는 나를 치려고 길을 닦고, 내 집을 포위하였다.
여기서 욥은 자신이 고통을 겪는 것은, 빌닷이 주장한 것처럼
자신이 악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악인의 운명을 자초한 것이 아님을 반박합니다.
이 모든 고통의 진원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것이지요.
◑2. 사회적으로 고립된 욥의 절망적 처지 19:13~22
이제 욥을 절망스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인간들까지도 이러한 적대적 음모에 총 합세해서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킨다고 절규합니다.
▶욥의 고난은, 이제 사회적으로, 총체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19절을 보세요.
욥과 가까운 사이부터 욥을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13 그가 내 가족을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시니, 나를 아는 이들마다, 낯선 사람이 되어 버렸다.
14 친척들도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구들도 나를 잊었다.
15 내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와 내 여종들까지도 나를 낯선 사람으로 대하니,
그들의 눈에,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다.
16 종을 불러도 대답조차 안 하니, 내가 그에게 애걸하는 신세가 되었고,
17 아내조차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싫어하고, 친형제들도 나를 역겨워한다.
18 어린 것들까지도 나를 무시하며,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를 구박한다.
19 친한 친구도 모두 나를 꺼리며, 내가 사랑하던 이들도 내게서 등을 돌린다.
먼저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부터 욥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13절).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도 욥을 버렸습니다(14절).
아내조차도 심한 악취를 풍기며 병을 앓고 있는 욥이
살아 숨쉬는 것을 버거워하며 친형제들조차 역겨워합니다(17절).
친한 친구들도 욥을 꺼려하며,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욥에게서 일제히 등을 돌립니다(19절).
그런데 더욱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동안 지속되어 오던 일상적인 관계가 완전히 뒤집혀버리는
전복의 경험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15~16절을 보세요.
“내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와 내 여종들까지도 나를 낯선 사람으로 대하니,
그들의 눈에,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다.
종을 불러도 대답조차 안 하니, 내가 그에게 애걸하는 신세가 되었고.”
나그네와 여종들이, 욥을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데
거꾸로 욥을 나그네처럼 대하며, 주인과 종의 관계가 역전되어서
오히려 욥이 종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어린 것들까지도 나를 무시하며,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를 구박한다”(18절).
연장자인 자기가,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그동안 누려왔던 관계가 완전히 전복되는
기막힌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욥의 재앙은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것입니다.
단지 육체뿐만 아니라 심신이 다 고통 받고 있으며,
더욱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일체의 관계성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소외당하는, 사회적 죽음입니다.
▶그리하여 욥의 비극적 상황은 20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20 “나는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고, 잇몸으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 잇꺼풀, 즉 잇몸이라는 말은 영어로 ‘the skin of teeth,’
‘잇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이빨이 다 빠져버리고 잇몸만 남은 가운데,
간신히 숨만 헐떡거리고 있는, 한 인간의 비참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지요.
▶이제 이같이 총체적인 소외상황 속에서
욥은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호소합니다.
21 “너희는 내 친구들이니, 나를 너무 구박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이 손으로 나를 치셨는데,
22 어찌하여 너희마저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나를 핍박하느냐? 내 몸이 이 꼴인데도,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느냐?”
욥은 친구들이 도와주기는커녕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자기를 심문하고 정죄하는 태도에, 또 한 차례 깊이 절망합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도 핍박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믿고 의지하던 가족들, 친척들, 지인들, 친구들,
심지어 나그네와 종들, 어린 것들까지 욥을 총체적으로 따돌리는 판에
이제 욥이 기댈 수 있는 구세주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욥의 놀라운 구속자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욥이 완전히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한계상황에 봉착했을 때
구속자에 대한 찬란한 희망을 떠올리게 됩니다.
욥이 최고조의 믿음에까지 올라간 것은
이렇게 처절한 밑바닥 체험에서 부터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친구의 공격을 통해.. 구속자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한 욥 19:23~29
▶사회적으로 고립된, 고독한 욥이 탄식합니다.
23 아,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하여 주었으면!
24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비망록에 기록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한 말이 영원히 남도록 바위에 글을 새겨 주었으면!
▶이제 우리는 욥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사람들로부터도 완전히 버림을 받은 욥은
참 신기한 고백을 합니다. 25~27절을 보세요.
25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엘)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26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27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
구원자, 즉 구속자에 대한 희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폭력적이시다!” 하고 부르짖어도,
“(나를)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하늘도 땅도 다 침묵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의 핍박과 공격은 더해져만 갔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욥은 또다시
하나님이 구속자 되셔서 자기를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비전을 봅니다!
살갗이 다 뭉그러지고 뼈가 다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지요.
욥의 그 희망의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욥은 본연의 믿음으로 되돌아갑니다.
사방으로 포위당해서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기막힌 상황 속에서
자기의 희망은 역시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구속자(가엘)라는 말에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해서 이 구절의 말씀을
흔히 기독교의 부활 신앙과 연관시켜서 해석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대개 동의하는 요점은
본문의 구속자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것은
욥기 자체의 문맥과 배경을 무시한 채
기독교적 부활 신앙의 입장에서의 일방적인 덮어씌우기 해석이 될 수 있다며
경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신학적인 논란을 떠나서
저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이 구절은 얼마든지
부활 신앙의 예표(豫表)로서 해석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김흥규 목사는 욥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세 친구들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율법주의자와 일맥상통하고
욥은 신기하게도 예수님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말씀을 욥이 극도의 신고 끝에,
다시 말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소외당한 인생의 밑바닥에 이르게 되었을 때
믿음의 절정, 즉 자기를 대속해 주실 구속자에 대한
궁극적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기에
부활 신앙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구속자는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요?
구속자는 히브리말로 “가엘”인데 경제적 법적 용어입니다.
가엘은 어떤 사람이 빚을 지거나 이로 인해 종살이를 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토지나 몸값을 주고 건져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25:47~9, 룻2:20, 렘32:6이하)
자유와 생명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가장 가까운 혈족이 도와주는 속량제도를 일컫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고엘은 반드시 ‘친족 구속자'(kin~redeemer)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 이 친족 구속자의 개념을, 하나님께 확대시킬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셔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십니다.
(출6:6, 시72:14, 사41:14, 43:14, 44:24)
결국 구속자는 내가 종이 되거나 죽을 지경에 처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내 대신 몸값을 주고, 나를 구출해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몸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시고, 나를 구출해 주셨습니다.)
욥은 아무 죄도 없이 죽게 되었을 때,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눈을 들어
자기를 이 위기로부터 속량해 주실 구속자를 대망합니다.
불의와 소외와 절망 속에 그냥 내팽개쳐두시지 않고
구속해주실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지요!
욥은 죽더라도 간장이 다 녹더라도
그 구속자 하나님을 반드시 보고야 말리라고 다짐합니다!
욥의 마음속에 구속자에 대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삼단계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9:33절의 ‘중재자’ 개념으로부터 시작해서,
16:19~21절의 ‘증인’ 혹은 ‘변호자’의 개념을 거쳐,
마침내 19:25의 ‘구속자’ 개념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친구들이 들어줄 수 없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따지기로 작정합니다.
마치 법정에서 재판을 걸듯이, 자기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고 싶은 데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그 중재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참 사정을 알아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욥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속사정을 증언해줄 수 있는 증인이자 변호인이 필요했는데
그 역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욥은 자신을 이 불의한 죽음의 위기로부터 건져내실 가엘,
즉 구속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결코 무고한 고통을 당하는 욥을 방치하시지 않고
반드시 건져내시고야 말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욥의 믿음과 희망은
‘중재자’→’증인’→’구속자’ 순으로 단계적으로 성장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9:33 →16:19~21→19:25
▶구속자가 자기를 도울 것이라는 대한 확신을 가진 욥은, 친구들을 반격합니다.
28 나는 너희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내게 고통을 줄 궁리만 하고 있다.
너희는 나를 칠 구실만 찾고 있다.
29 그러나 이제 너희는 칼을 두려워해야 한다. 칼은 바로 죄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분노다.
너희는, 심판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훈 및 적용
▶지금까지 욥기를 읽어오면서 한 가지 곤혹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인식함에 있어서의 이중성과 모순입니다.
19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욥은, 하나님을, 자신을 무자비하게 공격하시는 원수라고 한탄하다가,
갑자기 자기를 이 위기에서 건져내실 가엘(원형은 가엘, 고엘과 같은 말), 즉 구속자라고 또 말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욥에게 참혹한 고통을 안겨주시는 동시에
이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실 속량주가 되실 수 있을까요?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원수인 동시에
친구, 즉 중재자요 증인이요 구속자가 되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욥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욥의 결백을 입증하는 변호자가 되실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이중성의 물음 언저리에는
욥의 위대한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고통의 궁극적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실히 안 동시에
자신의 무죄를 다 밝혀내고 최종적으로 이 고통으로부터 구출해내실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양면성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거꾸로,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찬 욥의 상황적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욥은 현재를 바라보면 고통 때문에 견딜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겪는 고통의 부당성을 하나님을 향하여 항의합니다.
그러다가 이 지긋지긋한 고난으로부터 빠져나올 출구를 찾아보니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소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욥의 영적 갈등과 투쟁은
욥으로 하여금 점점 더 성숙한 믿음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결국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핍박자이신 동시에
구속자라는 사실은 고통의 기원과 종결이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굳센 신앙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이 고통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자해지(結者解之=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말) 라는 말도 있듯이
오직 하나님만이 풀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까닭이지요.
▶욥을 이런 위대한 신학자로 만든 일등공신은,
빌닷을 위시해서, 그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목적으로, 하나님은,
세 친구들의 공격이, 3바퀴나 돌도록, 허용하셨을 것입니다.
욥이 좀 더 강인하고, 굳센 신학자요, 성자가 되라고요!
오늘날에도, 이런 예는,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랜드그룹 회장이신 박성수 장로가 창업 10년쯤 된 어느 날, 지난 10년을 회고하다가,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10여 년 동안 자기를 몹시도 괴롭히던 직원 세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세 사람과 동거동락을 했습니다.
시일이 지나서, 그 세 사람은 차츰 많이 변화되어 지금은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물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성수 회장은, 자신이 이러한 인내와, 오래 참음과 본을 보인 일에 대해서 늘 뿌듯함과 자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이렇게 질문하시더랍니다. ‘너는 그 세 사람 중에, 누가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을 받은 박성수 장로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변화된 사람은, 그 세 사람 중에 누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많이 변화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 사람을 변화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세 사람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매일말씀묵상. 2월 19일. 욥기 19장. > 매일말씀묵상
(아래 관련링크 클릭하여 드라마바이블을 들으면서 묵상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
욥기 19장. 절망의 때에 선포하라.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1. 욥은 언제까지 친구들이 자신을 고소할 것인지 ,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도 왜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3 절 )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빌닷의 말은 다시 욥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욥은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2)고 부르짖습니다. 그렇게도 나의 허물을 드러내서 증명하고 싶냐고 묻는 것입니다(4~5). 그러함에도 지금 자기를 억누르고 묶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욥의 인식은 여전히 분명합니다(6~12).
2. 지금까지 보았듯이 , 하나님은 욥의 소망을 나무처럼 뽑아버리셨습니다 (10). 큰 고난을 당하자, 사람들도 자기를 버렸다고 욥은 말합니다(13~19). 가족과 친척들이 등을 돌렸고(13,14), 자기 집에 있던 일군들과 계집종들조차 자기를 모른다고 하고(15,16), 아내조차 자기의 숨소리 듣기를 싫어한다고 말합니다(17). 어린 아이들은 자기를 조롱했고 가까운 친구들도 자기를 미워하여 대적하는 자리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18,19). 그 친구들이 바로 이 세 친구들입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것은 피부와 살이 뼈에 붙어버린 몸뚱이 하나일 뿐입니다(20). 그러한 중에 욥은 세 친구에게 더 이상의 비난은 멈추고, 이제는 자기를 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욥은 사정하고 있습니다(21,22).
3. 그런데 놀랍게도 절망이 이토록 깊어지는 가운데서도 , 욥의 믿음은 오히려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 자기가 이렇게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살아서 ( 욥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었던 것 같다 ) 땅 위에 서실 “ 나의 대속자 ” 를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25,26). 욥은 그날을 너무나 갈망합니다. 너희는 나를 괴롭힐 궁리만 하고 있지만, 그래서 나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러한 행위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욥은 말을 마치고 있습니다(28,29).
4. 욥이 기다린다고 말하는 “ 대속자 ” 는 히브리어로 ‘ 고엘 ’ 인데 , 가족의 권리인 기업을 보존해야 할 책임을 가진 친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잃어버린 기업이나 권리를 회복해주어야 할 책임을 가진 가장 가까운 친족입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를 통하여 보았던, 고엘, 대속자, “ 기업 무를 자 ” 입니다. 이 대속자를 출애굽기 6:6에서는 “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대속자가 되신다 .” 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출 6:6).”
5. 욥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그 대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 그가 자기 사정을 아시고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 그분은 후일 사람으로 나셨는데 ,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십자가에서 그는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 그가 욥을 변호하시며 , 오늘 우리를 변호하실 것입니다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6. 욥이 가장 깊은 절망 속에 들어갔을 때 , 25-26 절과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요 ? 인생의 희노애락 모든 순간에 우리의 대속자를 , 구원자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 욥이 과연 우리만큼 메시아에 대해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았을까요 ? 단연코 그렇지 않습니다 . 비록 너무나 희미하게 알고 있었지만, 욥은 놀랍게도 메시아에 대한 , 대속자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반면 대속자에 대하여 , 메시아에 대하여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 성경을 통하여 너무나 많이 아는 ( 욥에 비해 ) 우리는 얼마나 희미하게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 인생에서 억울한 일을 만날 때 , 고통스러운 일과 마주칠 때 , 우리도 대속자가 살아계심을 그리고 그분이 억울함을 풀어 주실 것을 믿고서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 욥은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 이제 오늘 우리가 더욱 분명히 고백해야 할 신앙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즐거운 때뿐만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대속자가 오늘도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이 우리를 복된 곳으로 이끌어 가실 것을 바라보며, 소망의 닻을 우리 주님께 내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대속자는 하나님 뿐이다, 욥기 19장 23절-27절 욥기강해 욥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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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자신에게 있어서 대속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비록 친구들과 사람들의 비난과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속이 상하고 괴롭지만, 욥은 하나님만을 붙듭니다. 우리의 대속자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욥기강해 욥기설교를 대속자이신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어 전합니다.
1. 나의 대속자이신 하나님(욥기 19:25)
욥기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기억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찾아온다
욥이 자신의 문제와 고통, 어려움을 바라볼 때에는 전혀 그에게 소망이 없었습니다. 욥의 친구들마저도 그들에게 아무런 소망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해 내었을 때,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시며 사랑이 넘치시고 도움을 요청하며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욥은 하나님만이 자신을 도우실 수 있는 대속자이심을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가서는 반드시 자신을 대속하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어두움과 고독을 느끼고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신뢰할 때 반드시 백성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죽게 될 때에도 우리의 구원자요 대속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속자이신 하나님 안에서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기억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찾아온다.
욥이 했던 말들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말들입니다. 욥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우리의 대속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속자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대속자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지금 버리시고 떠나실까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캄캄한 미래를 느끼고 괴로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 자신과 문제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오. 소망은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분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에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 죽음 이후의 나의 생명(욥기 19:26-27)
욥기 19:26-27,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만일 욥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다면, 욥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고통 속에서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의 대속자이시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욥이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살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비록 욥은 지금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있지만, 언젠가 그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신약성경은 욥이 멀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으로부터 모두를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든 성도들은 보게 될 것이며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과 같이 변화할 것입니다. 모든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는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자이심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고통과 고난을 겪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속자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더 큰 고통과 고난이 찾아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즉시 대속자이신 예수님께 달려 가십시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자이심을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소망이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문제들은 너무나도 하잖은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그 때가 되면 모두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욥의 현실은 괴롭고 캄캄합니다. 언제 끝이 날지, 언제 해결될지를 모르는 상황입니다. 끝이 없는 터널을 걷고 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줄기 소망의 빛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대속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대속자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욥을 모든 고통에서 구원해 주실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을 욥기강해설교를 통하여 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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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장 1-29절 말씀 묵상
욥기 19:1-29 말씀 묵상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5-26).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that in the end he will stand on the earth. And after my skin has been destroyed, yet in my flesh I will see God”(Job 19:25-26)
빌닷의 맹렬한 비난(18장)대한 욥의 답변(19장)
1) 욥은 친구들이 마음을 번뇌 하며 말도 꺽고 열 번이나 자기를 꾸짖고 학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2-3). 욥의 친구들은 위로해 주기는커녕 죄인으로 몰아 똑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욥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2) 그래서 친구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그물로 욥을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6).
3)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자기의 첩경에 흑암을 두셨다고 하였습니다(8).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벗기실 뿐만 아니라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였다고 했습니다(9).
4)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 위에 인간적인 사랑과 동정마저 빼앗아 갔다고 비탄해 하였습니다. 형제도 롤 떠나도 친척도 자신을 버리고 가까운 친구도 자신을 입었고 정글을 불러도 그들이 외면한다고 한탄합니다(13-16).
5) 설상가상으로 아내도 내 숨을 싫어하고, 동포들도 혐오하며, 어린아이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조롱한다고 하였습니다(17-18). 그리고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고 대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19).
6) 욥은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이 꺼풀뿐이라고 탄식하며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치셨기 때문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습니다(20-21).
7) 그러나 욥은 심한 고통 가운데서 친구들에게 동정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말이 책으로 기록될 것을 바란 후에 자신이 육체를 떠나 구속자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25). 이 고백은 욥에게 부활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헛된 것을 믿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참조, 고전15:19).
8) 욥은 구속자를 기다리면서 이제 그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자신이 직접 보겠다고 말합니다(26). 그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 뵐 때 자신의 마음이 조급하겠다고 하였습니다(27). 그리고 욥은 자신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무죄한 고난을 겪고 있는 자신을 향해 계속 비난과 조소를 하며 정죄했던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28-29).
주께서 주신 오늘! 부활의 소망으로 어떤 고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6월 18일] 욥기 19장
찬양 : 어지러운 세상 중에 (찬송가 340장)
말씀 : 욥기 19장 1~22
오늘 19장은 빌닷의 공격에 대한 욥의 반론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오늘 드러나 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그 사람의 과거를 쉽게 판단합니다. 또 그 사람의 미래까지도 쉽게 예단합니다. 성공한 사업가를 보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은 항상 부요하고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업가들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재판을 받는 범죄자를 보면 어려서부터 그 사람은 싹수가 노랬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러나 지금 범죄자이어도 그의 학창시절에 그도 청운의 푸른 꿈을 꾸며 살았던 사람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을 보며 손쉽게 그의 과거를 거짓과 위선이 가득찼을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빌닷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로 욥을 정죄했습니다. 지금 네가 고통받는 것은 과거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런 단순 논리는 욥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육체의 고통보다는 가까운 친구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통입니다. 어쩌면 믿었던 친구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내가 이정도 사람 밖에 안되는가? 욥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욥 19: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욥 19: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욥 19: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욥은 빌닷의 말 때문에 자신이 학대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어서 정죄하고 비난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상처를 줍니다. 육체의 폭력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만 정신적 폭력, 언어 폭력은 쉽게 낫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황폐화시킵니다.
심각한 상처를 받은 욥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욥 19: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 19: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빌닷은 욥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빌닷의 말을 듣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사람의 신앙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섣불리 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우리 말, 언어는 흉기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따뜻한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뱉는 말이 흉기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치료약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고난 중에 욥이 겪은 1차적인 고통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죽었습니다. 아내가 떠나갔습니다. 가족과 재산이 사라졌다는 것이 욥의 일차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차적인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욥과 교제하고 욥과 관계 맺던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속했던 공동체에서 버림받는 것이 그에게 찾아온 이차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욥 19: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욥의 형제,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형제들이 욥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욥 19: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들이 욥을 외면했습니다.
그다음 15절과 16절을 보면 심지어 욥의 종들이 욥을 외면합니다.
예전에 욥을 주인으로 여기고 존경했던 종들이 욥을 무시합니다.
(욥 19: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종에게 도리어 애걸하고 부탁하는 신세가 되니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더욱 기가막힌 것은 아이들이 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욥 19: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해도 나이 든 사람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조차 조롱을 받게 되는 극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믿음 생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기능 중에 하나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플 때 누가 위로해 준다면 그 아픔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욥은 공동체에서 버림받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됩니다. 철저하게 버림을 받습니다.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욥은 신비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사방으로 포위 당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막힌 상황 속에서 자기의 희망은 역시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원하는대로 팥죽 한그릇에 형 에서를 장자권을 자기것으로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형 에서가 죽이겠다고 해서 집을 떠나 도망쳐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갑니다. 거기서 꾀를 써서 아내를 얻고 수많은 재산을 얻어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또 다시 형에서 좇아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종들 모두 떠나 보내고 홀로 얍복강에서 기도합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남았을 때는 그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질투해서 미워하고 심지어는 노예로 팔아버릴 만큼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팔려가 가족에게 버림 받았을 때,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그는 하나님만 의지 합니다.
모두가 떠나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만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시간은 축복된 시간입니다.
인생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따뜻한 공동체에 들어가 있더라도 인간은 고독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사랑이 없어! 우리 가정교회는 사랑이 없어!
이렇게 불평하지 마세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족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렇게 실망만 하고 있지 마세요.
욥처럼 진정한 친구는 하나님 밖에 없다. 나의 진정한 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밖에 없다. 놀라운 진리를 깨달아 아는 복된 인생,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나의 말이 흉기가 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치료약이 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떠나고 내편이 없다는 고독함을 느낄 때 도리어 기도의 자리에 더 나아가 하나님만이 진정한 위로자, 구원자가 되심을 깨닫는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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