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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9 KRV – Bible.com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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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 43:18-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 43:18-21) …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잊어라. 지나간 역사에 연연하지 마라. 다만, 깨어 있어라. 현재에 깨어 있어 …
Source: walkingwith.or.kr
Date Published: 6/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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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사 43:18-20) – 이사야 Isaiah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해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18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전의 일들, 과거의 …
Source: robinbox.net
Date Published: 9/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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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 Manna 24 – 만나 24
그런 맥락에서 이사야 43장 “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바벨론의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
Source: www.manna24.com
Date Published: 9/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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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메세지 – 사11강,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가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
Source: zionubf.org
Date Published: 7/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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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 Daum 블로그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고 더 큰 일도 행하실 것임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언제든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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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새로운 희망을 주시고 있습니다. 1)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무능력하고 너희들은 무기력하여 …
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4/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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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 mission.bz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출애굽의 대역사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
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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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보라 내가 새일 을 행 하리라
- Author: poetw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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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1. 1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7qT6cNr-XE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사 43:18-20)
2014.01.03.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승선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43장 18-20절입니다.
18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그것이 나타나리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심지어 내가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들을 내리니
20 들짐승 곧 용들과 올빼미들도 나를 존경하리라. 이는 내가 광야에 물들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들에게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우리는 새해의 첫 번째 채플 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만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인생역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인생역전이란 희망 없이 절망가운데 살아가던 사람들이 놀랍게 변화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인생역전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보다 성경에서 더 자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성경에 가득한 이야기가 죄다 인생역전의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을 것만 같았던 아브라함에게 땅의 티끌같이 많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고,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은 후손들이 태어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들을 하나씩 다 잃어버리고, 기근으로 온 가족이 죽을 것만 같았던 야곱이 어떻게 모든 아들들을 다 찾게 되었습니까? 요셉은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 인생이 완전히 망한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도 인생이 다 끝나버린 것 같았을 때, 인생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다 죽임을 당할 것 같았지만, 더욱 막강한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면서 제자의 삶이 끝난 것 같았지만, 다시 회복하여 놀랍게 주님을 따르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평생을 쫓겨 다니는 것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대대로 이름을 영광스럽게 남긴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생역전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역전의 이야기는 하나님으로 가능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는 아마도 사탄의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의 인생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별로 똑똑하지도 못한 것 같고,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를 가지지도 못한 것 같고, 우리 집은 돈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나는 믿음도 없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노력은 하지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고 죄를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과연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면서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모세보다는 우리가 젊지 않습니까? 요셉과 비교했을 때, 그래도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이나 에스더나 다윗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우리에게는 목숨의 위험까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보다는 덜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말 놀라운 인생역전의 이야기를 살아내었습니다. 그들이 대단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우리 함께 다시 오늘의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18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어떻게 넘어지고 실패하였는지 마음에 두지 말고, 더 이상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함께 25절을 보시겠습니다.
나 곧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네 범죄들을 지워 버리는 자니 내가 네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범죄들을 지우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의 죄들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과거의 잘못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의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작년에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오늘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100살까지 자식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없던 것아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어제 아침까지 감옥에서 하루를 시작하였어도, 오늘부터는 파라오의 왕궁에서 시작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18절 말씀을 주시면서,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정말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을 과감히 잊어버리고 앞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 빌립보서 3장 13-14절을 보시겠습니다.
13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을 잡으려고 나아가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우리 앞서 믿음의 길을 걸었던 사도 바울도 13절에서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것을 밀치면서 전진하여 나아갔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낙담시키려고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여러분, 밀치면서 앞으로 전전하시기 바랍니다.
“니가 언제부터 찬송을 진지하게 불렀다고 그래. 니가 무슨 기도를 제대로 하겠어. 니가 무슨 주님을 섬겨. 넌 이미 망했어.” 사탄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이 집어넣고 있는 사악한 생각들을 밀치면서,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우리 다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그것이 나타나리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심지어 내가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들을 내리니
주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시기 않습니다. 누가 새 일을 행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Behold, I will do a new thing.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은 실제로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되리라.”
이 노래와 같이, 정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들을 내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한 번 적용을 해보기 원합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불가능한 일을, 그들이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0절도 보시겠습니다.
들짐승 곧 용들과 올빼미들도 나를 존경하리라. 이는 내가 광야에 물들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들에게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에 샘들을 내시고, 강들을 내어 자신의 백성에게 마시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소망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막에 강들을 내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더러 새로운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대되고 마음이 벅차오르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드신 분이십니다. 사막에 강들을 만드는 것이나, 거대한 산을 평지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빌립보서 1장 6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
또한 빌립보서 2장 13절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하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원하게도 하시고, 또한 행하게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고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정리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결심들이 있으셨습니까? 어떤 학생은 새로 중학생이 되고, 또 어떤 학생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고, 더 자라난 것 같습니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새해에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이제 우리 학교도 3년의 시간을 지내고, 이제 4년째 새로운 년도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학교를 보면, 정말 사막에 강이 난 것처럼,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중학생으로 들어왔던 한 학생은 벌써 대학생이 되고, 그것도 사람들이 잘 알아주는 연세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미국에 유학을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지금은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모습이 한 방울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이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는 강물처럼 거대한 흐름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가 인간적인 눈으로 어떤 가능성들을 따져본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과연 사막에 강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사막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솟아나게 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해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18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전의 일들,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까지의 실패한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 있는 새로운 창조물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새해에 우리가 해야할 두 번째 일은, 우리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단정 지으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지난 금요일 미국 45대 대통령 취임식이 평화롭게 거행된 것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과 함께 이제 미국에는 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상 새로운 시작일 뿐 아니라 미국 통치 리더십의 질도 새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패하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기 거의 15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을 예언하며,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실 것임을 약속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사야 43장 “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바벨론의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실제적인 새 일은 바사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 조서가 내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미국 대선을 위하여 기도할 때, 고레스 왕같은 지도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대하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번 미국 새 대통령의 취임에 많은 기대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사 고레스같은 지도자를 세우셨다면 그를 통하여 이 땅에 새 일을 행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은 하나님이 이루실 새 일의 내용을 이렇게 밝힙니다. “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하리라.” 사실 현재 미국의 영적 상태는 뱀과 전갈의 위험이 있는 간조한 땅 광야와 같으며, 성령의 생수가 고갈된 사막과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제도 한쪽에서는 취임식이 은혜가운데 진행되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엄청난 반대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DC 에 갔다가 사방에 길이 막혀 DC 를 헤매다가 그 모든 거센 반항의 물결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새 일을 행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새 대통령의 재임기간, 영적 각성 부흥이 온 미국 땅을 휩쓸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리하여 다시 미국 공립학교에서 기도회가 회복되고 십계명이 학교마다 가르쳐지고 동성 결혼법과 낙태법이 폐지되며 각종 범죄율이 감소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이사야 43장 말씀 중 흩어진 자를 모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 건국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하여 1948년 5월 2차 세계대전 후, 온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모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재건합니다. 나아가 벤 구리온은 또 다른 꿈을 꾸는데 사막에 강을 내사 택한 자로 마시우게 하겠다는 하나님 약속의 현실화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64년 요단강에서 송수관을 열어 네게브 사막까지 끌어오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이에 성공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집단 농장 키부츠 공동체를 건설하였고 그 곳에서 많은 농작물을 수확합니다. 지하수 개발에도 힘을 써서 1000 km 나 되는 땅을 파 물을 끌어올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한 것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여행중 네게브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 물론 아직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사막과 같고 광야와 같지만, 군데 군데 형성된 울창한 삼림과 재배되는 각종 농식물 과수원등을 발견하며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을 절로 찬양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환경이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을지라도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에굽의 노예로 살면서 노예가 운명인 줄 알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애굽을 떠나 광야로 가자는 모세의 제안을 여러 번 거절하였습니다. “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새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2000년간 나라없이 떠돌아다니며 세상에서 멸시받고 따돌림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없는 설움을 운명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의 새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우리 또한 미국의 퇴보하는 영적 상태를 그저 탄식하고 불평으로 일관 하지는 않았나 반성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미국 45대 대통령의 취임과 아울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 미국에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라! “ 이제 우리는 더 간절히 미국의 새 대통령및 새 행정부와 미국의 모든 리더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광야의 소리(윤삼중 목사의 외침)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성경본문: 사43:18-21절
우리의 옛말이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하기만 하면 그 일을 이루어가기 때문에 시작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그제는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었습니다. 설날은 한 해의 시작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가족끼리 모여 하나님께 첫 예배를 드리며, 좋은 덕담을 나누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애찬을 나누는 민족의 명절입니다. 한 해는 “해를 품은 여인”처럼 좋은 일이 넘치며, 형통하며, 건강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이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얻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새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을 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때 신바람 나는 미래가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환상을 가질 때 그들 앞에는 꿈을 꾸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에 일본의 북해도에 있는 삿뽀르 제국 대학에서는 당시 일본 청년들을 교육시키던 미국인 식물학 교수 월리암 크라크
(William Clark)박사가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일본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철저한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8개월 후에 그가 다시 일본을 떠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전송하려고 모여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교문에 모여선 학생들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Boys, be ambisious)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과 비젼을 깨달았던 젊은이들은 후일에 일본을 근대화 시키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했으며, 일본을 세계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상황이 어떻습니까? 본문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애굽입니다. 그곳에서 무려 430년을 살면 75명이던 일가족이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부터인지를 모르지만 애굽에서 큰 고통을 당하며, 노예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의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자 모세를 보내사 그들을 애굽의 고통에서, 노예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두번째 포로생활은 바벨론을 건국한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왕국이 침공을 받은 멸망을 당하였고,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왕족과 귀족 자제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바벨론의 문물을 가르쳐 인재로 등용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그들은 70년 이상을 노예의 신분으로 고난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포로생활 후기에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려고 하나님의 비전을 약속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하였고, 노예의 신분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할 수도 없고, 꿈꿀 수도 없는 새 일을 준비하셨고, 친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 일을 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고 행하실 새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실 새 일은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해 주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메시야의 왕국에 대한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히 쇠하거나 폐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실 영원한 나라요, 사단과 죄가 없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그 나라를 친히 만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리라” 이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며, 좋은 일을 꿈꿀 수 있는 귀한 희망이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행하실 새 일을 무엇입니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상황을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 새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행하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로서 대표적인 출애굽사건과 홍해에서의 구원사건을 상기시키신 후에 너희는 더 이상 실패하였던 일, 고통당하였던 일,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과거의 실패와 상처가 더 이상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가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과거에 얽매어 사는 자는 큰 비전을 향하여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늪에 빠져 있는 자들은 미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실 것인데, 먼저 이전 일의 기억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 일을 생각하는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간혹 과거의 일에 집착하기 때문에 미래에 다가올 축복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상처와 슬픈 일들은 잊어야 합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일에 얽매여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히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메마른 우리의 마음에 생명수가 흐르는 강을 내고, 광야 같은 인생에 새 길을 내신다고 하십니다. 믿음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도전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고 또 그 일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과거의 병에서 우리를 치유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역사를 과거에만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제라도 행할 수 있는 역사로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와 능력을 옛날에만 속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 하며 마치 오늘날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고 더 큰 일도 행하실 것임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언제든 출애굽과 같은 사건, 홍해에서의 구원과 같은 사건, 아니 그보다도 더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실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지 70년이 되어 가던 때에 하신 말씀으로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있던 백성들을 해방시켜 조국인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장차 새롭게 하실 이 일이 옛적에 홍해를 가르시며 인도하신 기적보다 더 크고 새로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이나 역사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은 과거의 출애굽을 단순히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앗수르에게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가 절대 절망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새 일에 대한 희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과거의 버릴 것은 버리고, 회개할 것은 회개한 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면 올 한해는 분명 하나님으로 인해 새 일이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힘들고 메마릅니까? 여러분의 삶에 활기가 없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생명이 약동하지 못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광야에 길을 내리라. 사막에 강을 내리라.” “아멘, 주여, 새 일을 행하소서.”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새 일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2.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 일을 행하는 하나님께 모든 기대와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우리의 인식구조는 한계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나 손이나 다른 촉각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들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이성을 초월하는 것들을 알지 못합니다. 시간이라는 벽에 갇혀서 현재라는 시간 너머에 있는 미래적인 것들을 잘 보지 못합니다. 경험이라는 벽에 갇혀서 현실 너머에 있는 다가오고 있는 실재를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이 한계를 넘어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또한 믿어야 합니다.
지구촌 교회가 성전 건축을 위하여 특별헌금을 하는데 한 집사님이 이동원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목사님, 이런 집사님도 있대요,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큰 헌금을 작정하였다고 하니까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웃듯이 목사님, 말 듣고 해 봐야 나중에 후회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집사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물었더니 그 분의 대답이 정말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동원 목사의 설교를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희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놀라운 비전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을 때 놀라운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큰 복이 되지만 사람의 말로 들리면 그냥 즐기거나 스쳐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메시지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일은 포로에서 자유를 얻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잘 믿기지 않는 일이고,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새 일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볼때에 메데와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했습니다. 바사의 고레스가 즉위하면서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황제의 조서를 내렸습니다. 믿기지 않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동안에 새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곧 나타날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이제 곧 나타낼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가려면 광야에 길이 필요하고, 사막을 지날 때 물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물이 흘러 넘치게 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세계를 뛰어넘는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새 길을 내시고, 새 강을 내시며 우리를 만족케 하실 수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에 죽어가는 곳에 명을 살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곳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찮은 들짐승들도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보고 하나님을 존경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새 일은 위대하고, 그 일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인생을 살며 주위의 환경 즉 상황만을 바라보고 살면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언제나 입을 벌리고 우리를 삼킬 듯이 다가옵니다. 우리 가 주위 환경만을 바라보는 것은 낙심만 가져다줍니다. 예를들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어느날 배를 타고 가다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처럼 물위를 걷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도 물위를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는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걸어보니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나게 걷다가 갑자기 옆을 보니 검푸른 파도가 덮쳐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환경 즉 덮쳐오는 파도를 바라보고는 물에 빠졌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시며, 물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시선을 예수님에게 고정시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에는 바다위를 기적처럼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면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칠전팔기의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상황, 고통,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야 합니까?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절망속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고, 세상의 환경에 갇힌 자가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우리에게 세계가 놀라는 큰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찬송받으시려고 반드시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3.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은 겉으로 볼때에는 고난의 가시밭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시온의 대로입니다. 비록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여건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고,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일은 잘 된다. 내일에 태양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내일에 소망을 둘 때 승리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눈을 가지고 내일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맥아더 원수가 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을 받았을 때 그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상륙작전이라는게 배 한 척만 침몰하면 그것으로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그가 상륙작전들을 연구해 보니 지구상에 500번 정도의 상륙작전이 있었는데 그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제외하고는 499번이 실패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하들이 그 작전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맥아더 원수는 대답했습니다. “1/500의 확률의 아니라 1/1000의 확률이라 할지라도 이 작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이 작전과 함께 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노르만디 상륙작전이 성공했다고 하면 인천 상륙작전도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런 승리의 확신이 결국에 인천상륙 자전을 성공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앞에 넘실대고 있는 요단 강이 무엇입니까? 홍해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전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합니까? 21절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지은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찬송할 백성을 지으셨습니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찬송 부를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될 일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은 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죄책감이나 노예의 근성에 얽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고통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축복의 잔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수치와 비방대신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잃어버리고 낙심과 절망가운데 있던 백성들, 강가에 모여서 녹슨 거문고를 닦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상처를 주고 받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격려하였고, 서로 축복했습니다. 이제는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사라지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송 받으시려고 찬송할 수 있는 자리에 올려놓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지 종국에는 주님을 찬송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새 일에 대한 비전이 있는 사람, 가슴에 내일을 품은 사람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현실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찬란한 미래는 내일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는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사야 43:18-21
“고민과 황홀”이라는 소설을 쓴 어빙스턴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인 골리앗에게 도전한 씩씩하고 용감한 조각상을 성서의 모형에서 땃다”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언제 다윗이 거인이 되었는가? 골리앗을 죽인 다음인가? 혹는 자기가 반드시 처치하겠다는 결단을 하는 순간인가?”라고 물으며, 다윗이 거인이 된 것은 골리앗을 죽인 이후가 아니라 그를 처치하겠다고 결단을 내렸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연한 결단은 가장 약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듭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다메섹이나 안디옥이나 로마에서가 아니라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뒤 사막에 들어가 무더운 모래지열에 시달리면서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장래 일의 승패는 어느 한 순간의 결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링컨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최선이 방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혜를 다 짜내도, 주변사람들의 지혜를 다 모아 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대책이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도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대책없이 살아가다가 해외로 도피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이 체험한 절망감은 이보다 더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책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로 생활은 장기화되었고, 조국의 자유를 회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스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래의 꿈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단 뿐입니다.
오늘날 처럼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새로운 결단을 하여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적 속에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애굽의 집권자인 바로 왕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 셋을 건축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원하였는데, 그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번성하고 창성하였습니다.
이를 불안하게 여긴 바로는 산파들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 여인들이 남아를 낳으면 죽이고, 여아는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출애굽의 대역사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셨고,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으며 반석에서 생수는 내는 등 놀라운 일들을 통해 그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급기야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철퇴를 가하여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성전은 무너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자녀들에게 철저히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치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오늘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
여기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와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강조를 위해 동의어를 두 번 사용하는 것을 “동의적 평행법”이라고 하는데, 이와같은 방법으로 강조하면서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한 ‘이전 일’ ‘옛적 일’은 바로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도 모자를 정도인데, 어째서 이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반어적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의 놀라운 사건과 현재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옛적에는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대역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아무 일도 없는 것인가?’라며 한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한탄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져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지나간 과거에 얽매어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는…”하면서 화려했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부족함을 변명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옛날에는 참 봉사 많이 했는데…” “옛날에는 신앙생활 잘 했는데…” 하면서 자신의 식어버린 열정을 한탄만 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 간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결과를 바꿀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했건 실패했건 그 안에서 무엇인가 깨닫고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가끔 배우자를 잃고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매일 울면서 방황하는 이들을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에도 배우자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기에게 남겨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찾아 그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이범석 외무장관이 있었습니다. 남편 품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그 분의 부인이 겪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신앙 안에서 그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남편 품에서 행복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남편이 못다한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해야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고 봉사활동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어 살면 안됩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매여 살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
바벨론 포로의 고달픈 삶 속에서 과거만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보다 더 큰 역사를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전 일, 옛적 일은 기억나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 때는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길을 통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향할 것이고, 그 사막길을 가는 동안 목마름이 없도록 사막에 강물이 흐르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같은 어두운 현실에 포로로 잡혀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해 새 일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 일은 모든 들짐승들 조차도 찬양할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또한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실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저는 예루살렘에 가서 “야드바샘”이라는 전쟁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6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전쟁 기념관은 그들의 아픈 기억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독일 사람들을 향해 보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다시는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새 일’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라도 당장 결단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새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그의 마지막 생일에 확신과 기쁨에 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늙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늙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밝은 희망과 멋진 미래를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는 한참 자라고 있는 늙은이일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는 항상 밝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에 싸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무신론자 토마스 홉스는 인생을 마치면서 “이제 암흑 속으로 들어가는구나”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너무 밝습니다. 주께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이유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었고 이번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귀환 목적도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장로교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이 사는 제 일 목적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핵심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요 4:24). 예배에는 진실이 있어야 하고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는 예배하러 가실 때 시골에서 목욕탕 같은 것이 없는데도 부엌에서 목욕을 하시고 깨끗한 옷과 헌금을 준비하셔서 주일 하루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님을 보고 배운 것이 정성어린 예배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일에 자기가 나타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서도 결코 인간의 공적이 나타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나타나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고레스’라는 바사 왕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였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진 것 뿐입니다.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광 돌리는 도구로써 만족해야 합니다. 그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영광과 자랑, 혹은 실패와 좌절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롭게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일에 나도 한 몫 끼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축복된 삶, 위대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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