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복음 5 장 9 절 | 말씀위에 머무는 삶 임영수목사님의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 7727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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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의 복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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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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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화평케 하는 자(마태복음 5장 9절) – 두란노 서원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말하는 화평은 복음 안에서 이루어진 화평,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평이다. 둘째 우리가 화평을 만드는 자, 화평의 역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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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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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9 KRV – Bible.com

마태복음 5:9 KRV.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KRV: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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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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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마태복음 5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마태복음 5장 · 1) 살인 · 2) 간음 · 3) 맹세 · 4) 보복 · 5)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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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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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 산상설교(11)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 있다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 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복 있다 – 그 일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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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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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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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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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는 사람(눅 6:20-23) · 소금이요 빛이라(막 9:50; 눅 14:34-35) · 예수와 율법 · 노하지 말라 · 간음하지 말라(마 19:9; 막 10:11-12; 눅 16:18) · 맹세하지 말라 · 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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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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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화해) / 총회교육자원부 – genie – 지니

마태복음 5장 9절(화해) …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오장 구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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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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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 제7복 화평케 하는 자, 팔복설교 산상설교

마태복음 5장 9절 제7복 화평케 하는 자, 팔복설교 산상설교 …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 주변의 언덕에서 여덟가지 복의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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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위에 머무는 삶 임영수목사님의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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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 9 화평케 하는 자의 복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본 절은 팔복 중 일곱 번째인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관한 말씀으로, 이렇게 화평케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을 복으로 약속하고 있다. 역시 동일한 접근 방법으로, 여기서도 “화평케 하는 자”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의 의미를 살피기로 한다.

9절 전반부의 “화평케 하는 자”(οἱ εἰρηνοποιοί)란 흔히 영어로 peacemaker라 한다. 성도는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여, 돌아온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ἀποκαταλλάξῃ)케 되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래서 주님도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라 하셨던 것이다(행 1:8). 과거 우리 역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이 되었다(엡 2:16).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화목케 된 자들 또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 것이다(고후 5:18). 이것이 화평케 하는 자의 태도이다.

물론 좁게는 하나님과 화목을 도모하도록 해야 하겠지만, 넓게는 성도와 성도 간에, 더 나아가 성도와 믿지 않는 자와도 화평케 됨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화평은 당연히 ‘진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세상적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9절 후반 절은 이와 같이 “화평케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이라 한다. 여기서 “일컬음을 받다”(κληθήσονται)라는 말은 bid, call forth, name, invite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다만 “화목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할 때, 이는 그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이렇게 일컬음을 받는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여기서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 된 자들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 된 자들은 “하나님은 사랑ἀγάπη”이시고, “하나님은 평강εἰρήνη”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과 평강을 우리도 동일하게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이럴 때에 진정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히 1:5),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라고 하신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결과로 인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임은 드러내게 하는 표지로 이해함이 옳을 것 같다. 그러기에 위에서 본 “일컬음”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는 복된 말씀이며,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는 과연 저렇게 사는구나”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그들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행동지침인 것이다.

그대는 peace maker인가 아니면 trouble maker인가?(이하 계속/ 구모영씀)

[산상수훈] 화평케 하는 자(마태복음 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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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산상수훈 하나님 말씀 중에서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싸움을 중재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으면 세상에서 화평을 전하게 됩니다. 주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사역에 주님의 화평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마태복음 5장 9절)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본문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화평케 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므로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다른 자가 아니라 오직 화평케 하는 자만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본문은 약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선언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가 화평케 함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화평케 함으로 실제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평케 하는 자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 하나님의 아들 됨을 드러내 보이고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될 때,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큰소리쳐도 화평케 하는 자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제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될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될 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난 자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자란 뜻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Like a father, like a son)-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아들이 그 생김새뿐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나 말씨에 있어서나 행동이며 습관에 있어서까지 그 아버지를 쏙 빼닮았을 때 하는 말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케 하는 그리스도인이 부전자전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를 쏙 빼닮아,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은 화평(평강)의 하나님이요, 화평을 만드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전제하고 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서는 하나님을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한다. 골로새서 1장 19-20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진정 평강의 하나님이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신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심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역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존귀와 위엄을 친히 내어놓으시고 우리를 섬기는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희생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그의 거룩하신 피로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는 죄의 장벽을 제거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와 화평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라면 하나님 아버지처럼 화평을 이루는 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어 증거 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떻게 화평을 만드는 자, 화평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먼저 화목하게 하는 말씀, 화목의 복음을 전함으로 가능하다. 고린도 후서 5장 19-20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 즉 평화의 복음을 부탁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만이 진정으로 화평의 역사를 이룰 수 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함으로 화평의 역사를 이룰 때, 그때에만 진정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나타내 보일 수 있다. 그럴 때에야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불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지는 못한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친구,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평화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 하며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나타내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복음을 전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함이 반드시 육체를 따라 화평을 이루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평화의 복음을 듣고 죄인들이 평화의 왕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화평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영적 싸움, 신앙의 싸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태복음 10장 34-36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이럴 때 불신앙과 타협하는 것은 화평이 아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말하는 화평은 복음 안에서 이루어진 화평,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평이다.

둘째 우리가 화평을 만드는 자, 화평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겸손과 희생의 정신을 따라 행함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자와 우리를 싫어하는 자와 우리를 공격하고 비난하며 우리를 대적하는 자와 화평할 수 없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서는 이런 자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관용하고 사랑함으로 화평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덧입은 자들이다. 우리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 우리 같은 원수들을 사랑하셔서 자기의 자녀를 삼으셨던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덧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부어진 바 되었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 나는 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기도하고 행하면 우리도 알 수 없는 사랑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여 사랑하며 화목을 이루는 데 나아가게 한다.

십자가의 겸손과 희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 사이의 불화와 다툼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 등 우리의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종의 자리에까지 낮추셨으며 자기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셨다. 때문에 우리가 다툼과 허영으로 행하는 자들 되지 않기 위해, 즉 화평을 이루는 자들 되기 위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겸손과 희생)을 품으라고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명령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삽지가의 사랑과 검손과 희생의 정신을 따라 화평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될 때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루는 화평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화평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 됨을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증거 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아들의 존귀한 신분에 합당하게 사는 자 되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화평케 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구체적 증거를 드러내 보이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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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설교(11)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 있다 –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 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복 있다 – 그 일곱 번째, “화평케 하는 저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제자에게 그들이 복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그 일곱 번째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를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 있다고 하셨으니, 먼저 화평하게 하는 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란 말은 ‘화해시키는 자’, ‘화평하게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 단어는 본문에 단 한 번 나옵니다.

이 ‘화평케 하는 자’에서의 ‘화평’은 다른 말로는 ‘화해’, 또는 ‘평화’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화평’이란 말로 번역되었으므로 이 말로 사용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사용하신 것에서는 일반적인 안녕(평안)의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람의 화해를 증진시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개인간에서나 가족간에서나 또는 사회적이며 국제적인 사이에서 서로 간에 지킬 점을 지키며 불화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에서 평화를 생각하며, 또한 UN과 같은 국제적인 평화 기구에 있으면서 이런 저런 회의를 갖고 전쟁과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하는 것에서 평화를 도모하는 것에서 화평이 있을 것을 생각하며, 또한 기근, 지진 등의 재앙으로 재산상의 피해를 입고 신체상의 고통을 당하며 빈곤의 불행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여 나누며 도움을 주어 해맑은 웃음을 가져다주는 것에서 화평이 있을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화평’의 개념을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온 나라가 일어나 뜻을 함께 하며 손을 잡고 노력할지라도 그런 것에서는 참된 화평이 없습니다.

왜 그러겠는지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왜 그런 것에서는 예수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신 화평이 없는 것인지요. 우선, 사람의 마음이란 화합을 이루었다가도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득실 관계에서 불리하며 손실을 입으면 언제든지 분리되는 것이며, 마음이 상하면 언제든지 바뀌어 깨져 분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입으로는 화평을 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가득한 법입니다(시 28:3). 그러니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항상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는 한에는 참된 화평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에게서 완전한 화평이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peacemakers, 곧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되어서 화평에 있을지라도 그런 것으로는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임하게 한 화평이 아니기 때문에 화평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사람들이 화평을 만들어 화평에 있는 것으로는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주신 화평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자‘에 있지 못하며,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화평케 하는 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복 있다고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앞에서의 경우에서와 같이 구약의 예언을 근거로 화평케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이 성취된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평의 의미와 화평케 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면 구약에서 예언해 주신 말씀에로 가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성취로 있는 복을 선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라고 하였습니다. 화평을 가져다주어서 영원히 안정 있고 안락하게 사는 것은 ‘의’(공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또한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0)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산들이 제자리를 떠나며 언덕들이 몹시 요동쳐 흔들려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사랑>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며 그들과 맺은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볼찌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찌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말하였습니다(나 1:15).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적 앗수를 멸망시킴으로써 산들을 넘어와 전하는 전령의 소식은 유다를 화평에 있게 함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절기 –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을 지칭 – 와 하나님께 자원하여 지키기로 약속한 바인 서원 – 유다가 앗수르의 압제를 받는 가운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 어떤 서원을 하였음을 시사하고 있음 – 을 지키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하셨으며, 실로 이것을 또 다시 악한 자가 범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말이죠. 대적자 원수를 멸망시킴으로써 마침내 화평에 있게 하신 좋은 소식을 전령이 산을 넘어 숨가삐 달려와 전해주며 시온을 향해 구원이 이르렀다며 “네 하나님이 왕이 되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몇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의한 구약의 예언에서 나타내신 화평은 하나님이 왕이 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심으로,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심으로써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악한 대적자가 감히 범접하지 못합니다. 범접하였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받을 재앙<심판>의 화가 되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에서 화평이 있으며 또한 그 화평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왕인 한에는 영원히 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화평의 실현을 이스라엘과 맺은 ‘화평의 언약’을 통해서 하십니다. 사람에게 참된 화평이 없는, 언제나 자신을 다스릴 왕이 없음으로 화평하지 못한 불행의 고통에 있음을 이스라엘은 죄 아래 있는 자신들에게 임하는 심판으로 항상 겪는 전쟁과 재앙에 의해서 겪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불화로부터 화평에 있게 할 왕을 ‘화평의 언약’을 통해서 예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화평에 있게 하시는 왕이 되심은 ‘화평의 언약’을 통해서 드러나시게 되는 ‘언약자’ 메시야에 의해서 실현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그들과 맺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는 관계성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하신 ‘왕과 그 백성’의 관계를 맺으심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화평을 이루시는 분이 오심으로써 실현되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그분이 불려지는 여러 이름 중에서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란 이름과 함께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9:6)

이 ‘화평하게 하는 자’, 곧 ‘평강의 왕’은 구약 예언에서 계시되고 있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심으로 더 이상 죄의 무서움과 그로 인한 죽음의 심판의 두려움에 있지 않게 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죄로부터의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죽음>의 권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빼앗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보살핌을 받고 있는 화평에 있게 하심으로 그리스도는 ‘화평의 실현자’가 되십니다. 그런 까닭에 ‘화평하게 하는 자’란 말은 ‘구원자’란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자’의 또 다른 말이 ‘화평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들에게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는 일의 작정하심을 이루시기 위한 준비 속에 있게 하신 자들로 열 두 사람을 불러 자신을 따르게 함으로써 제자 삼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게 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인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악한 자들에게 팔아 그들의 손에 넘기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던 사람으로 우리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곳인 악한 자의 처소로 그에게 합당한 곳으로 갔습니다만, 악한 자는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서 그는 그에게 맡겨진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하여 하나님 나라가 하는 일을 그 또한 드러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섬김으로써 자신들에게 임한 그분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 곧 화평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들은 화평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화평을 다스리는 것 속에 있기에 ‘화평을 누리는 자’로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권세가 있는 분이심을 그분의 천국 복음 전파와 가르침과 이적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러 오신 십자가의 구속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재림이 가져올 것에서 낱낱이 아주 여실히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는 ‘화평을 위해서 일하는 자’, ‘화평을 이루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를 통해서 이미 그들이 어떤 자로 있게 될 것인지를 예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화평케 하는 자’로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할 자로서 예수께로부터 받아 맡는 사도의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복음, 곧 화평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은 가장 위대한 화평케 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그들이 유대인으로 있건 또는 이방인으로 있건 간에 하나님과 막힌 담을 무너뜨려 완전히 헐어버림으로써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가 되게 하셨듯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도 그들 간에 막힌 담을 무너뜨려서 완전히 헐어버려 그들 사이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선민의식’과 ‘율법을 받은 자’라는 것으로 ‘율법을 행하여 지킴으로 구원 받는다’란 ‘특권의식’으로 있게 되는 다툼과 그 불화로부터 그 모두를 불식시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를 화평에 있게 하시는 것은 일반적 개념에서의 아무런 근심 걱정 염려가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이 그들이 믿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하나 됨’, ‘믿음의 하나 됨’인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의 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지어져 올라가고 그 집을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 세상 끝날까지 지속 되어가는 화평에 있습니다. 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전파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요, 이들이 곧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로 세우신 자신의 제자 삼은 자가 전하는 예수님 자신을 터로 제공하시고 그 위에 ‘화평케 하는 자’인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위하여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와 우리가 그 피에 가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롬 3:25).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외에도 많은 성경 구절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져서 죽음을 당하신 대속의 피를 통해 우리가 ‘화평(화목)한 자’요 또한 ‘화평(화목)케 하는 자’에 대하여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예수님은 이 ‘화평한 자’요 또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복 있는 자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여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45)라고 말하였습니다. 유대의 산악과 언덕을 넘어 화평에 있게 하신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셨다!”라고 알리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말하였는데,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 소식을 전하는 ‘화평케 하는 자’를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말함으로써 그들을 지칭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부름을 받은 것에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몸의 연합에 있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제자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복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에게서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복이 성취되었다면,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움을 받는 우리의 존재가 어떤 정체성에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해 나가시는 화평케 하는 일입니다. (*)

마태복음5장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성경 : 마태복음5장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강 즉 샤롬의 공동체를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개인 신앙의 간증을 보더라도 우리의 심령에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주님을 영접한 자에게는 평화와 평강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14장에서 예수님께서 죽으러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의 권세나 재물보다는 평강을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신약에 평강이란 말이 88번 나오고 있는 것과 같이 신약은 평강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소망의 삶일까? 본문에서와 같이 화평케 하는 자 즉 평강을 베풀며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평화를 추구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평강을 만드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요새와 같이 복잡하고 각박하고 어려운 시기에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의 샤롬에는 2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상황과 환경을 만족스럽게 즉 Perfect하게 만드는 것이고, 두번째는 인간 관계를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범사가 만족스럽게 완전하게 이루는 것이 샤롬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샤롬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불평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란이나 불만을 야기시키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분란보다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서로 만날 때마다 평안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평강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고 자신을 낮추고 죽일 때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평강을 이룬 것 같이 평강을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가정이나 국가나 사회나 교회에서 의인이 있어야 평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한 심령 속에 복된 삶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

복이 있는 사람(눅 6:20-23)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소금이요 빛이라(막 9:50; 눅 14:34-3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와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노하지 말라 21 ㄱ)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1)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간음하지 말라(마 19:9; 막 10:11-12; 눅 16:18) 27 ㄴ)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ㄷ)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맹세하지 말라 33 ㄹ)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2)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눅 6:29-30) 38 ㅁ)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음악, 그리고 설레임

마태복음 5장 9절(화해) – 01:38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오장 구절 아멘

마태복음 5장 9절 제7복 화평케 하는 자, 팔복설교 산상설교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 주변의 언덕에서 여덟가지 복의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혁신적인 복음의 소식, 즉 위로의 소식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제7복,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피스메이커이며 어디를 가든지 공동체를 살려 내고자 기도하며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러한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이제 우리도 주님을 따라 피스메이커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의 이유는 우리도 주와 같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므로, 오늘도 성실하게 복음을 전하며 화평케 하는 자로서 살아갑시다.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트러블메이커 : 문제에만 집중 : 차이점과 문제를 키우고 분쟁을 만들고 다툼 일으킴

물풀 쓰다가 딱풀을 처음 썼을 때는 혁신이었다. 피스메이커는 접착제와 같다

피스메이커 : 문제 해결법을 찾아 해결하다 : 한 가지 공통점이라도 있으면 친구로 삼음

제자들 : 먹을 것이 없으며 돈이 이백 데나리온 필요하며 오병이어 뿐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우리와 우리 사이를, 우리와 자연 만물 사이를 회복시키고 화평케 하셨음을 경험한 자, 그리고 그 경험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인간과 자연 만물 사이를 회복시키고 화평케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죄인이었을 때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가? 지금 구원 받고 은혜 속에 살고 있다

화평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깨어진 삶을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평화의 삶을 경험하였기에

그들은 피스메이커,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

구약 시대의 피스메이커 : 화목제에 드려지는 제물, 소 양 염소 비둘기 : 죄로 인하여 깨어진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존재

그러나 죽음, 완전히 불태워 죽음으로써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킴

어린양 예수 :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생명을 버리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심

에베소서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즉 피스메이커가 되라고 명령하신다 : 화평케 하시는 예수님을 전함으로써,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해 주는 자가 된다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현대인의 성경 :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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