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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 기독정보넷
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 설교자 : 김양인 목사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던 한 백부장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 …
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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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놀라신 백부장의 믿음 (2) – Faithlife Sermons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의 전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조금 다르지만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된 누가복음을 보며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같이 나누어 …
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4/13/2021
View: 5894
[가정예배 365-10월 6일] 백부장의 믿음 – 국민일보
찬송 : ‘성도여 다 함께’ 29장(통 2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7장 1∼10절 말씀 : 백부장에게 사랑하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6/15/2021
View: 861
10. 전능자를 믿은 백부장의 믿음 – 기존글_백업
예수님께 모든것을 믿고 맡긴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칭찬을 크게 하신 로마 백부장의 믿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Source: www.cross91.com
Date Published: 2/22/2021
View: 5506
9월 18일 백부장의 믿음 – 에덴교회
백부장은 종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였고, 유대인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필요와 유익을 …
Source: www.loveeden.net
Date Published: 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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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 다음블로그
백부장은 자기 종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곧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입니다. 어떤 연유로 이 집에 있게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2/2022
View: 1628
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 유평교회
제 목: 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본 문: 누가복음 7장 1-10절. 설교자: 최 종 혁. 성경에는 66권의 책이 있고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
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6/2021
View: 4682
[마태복음 8장 설교말씀] 백부장의 믿음과 신앙(마 8:5-13, 출 15 …
제목: 백부장의 믿음과 신앙 · 1)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 2)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
Source: skh123.tistory.com
Date Published: 4/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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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 온누리 비전교회
백부장의 믿음. 2022.01.24. 상세 본문. 백부장은 오늘날 중대장(규모 100여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숫자는 작았으나 엄청난 기동력과 충성심이 확인이 …
Source: vision.onnuri.org
Date Published: 5/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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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백부장 의 믿음
- Author: 딸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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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4.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_ooXziz5Cs
[가정예배 365-10월 6일] 백부장의 믿음
찬송 : ‘성도여 다 함께’ 29장(통 2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7장 1∼10절
말씀 : 백부장에게 사랑하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병들었나봅니다. 백부장은 하인을 고치기 위해 친분 있는 유대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하인을 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고 로마군인 백부장이었지만 유대인을 사랑해 회당도 지어줬던 사람입니다. 주변에 유대인 장로도 있고, 벗들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인복이 많은 백부장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백부장을 향해 이스라엘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과 병든 하인을 만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지만, 한 사람은 칭찬을 하고 또 한 사람은 죽을병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누가복음은 백부장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그의 믿음이 주는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 한 사람이 기록한 두 권으로 구성된 하나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에서 먼저 어떤 전조(前兆)를 보여주고 사도행전에서 명확한 결말을 맺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백부장 고넬료가 등장합니다. 고넬료를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복음이 널리 퍼지게 되는데 그 전조가 누가복음 7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끝부분인 23장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말한 사람이 백부장입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에서는 바울을 지키는(지켜주는!) 한 로마군인을 소개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믿음’이란 단어가 처음 언급된 곳은 5장 20절입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이 언급된 곳은 7장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말씀에서입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치유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라는 점입니다. 5장과 7장 사이에는 제자선택의 말씀과 안식일에 관한 논쟁, 그리고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같은 평지설교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결론 부분은 6장 후반부인데, 그 내용은 ‘듣고 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란 단지 각 개인의 마음의 다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를 향한 행동까지도 수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7장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뵙지 못했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의 힘을 믿은 것입니다. 말씀 그 자체만으로 큰 권능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곧 믿음이며, 그 믿음은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향한 것이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뵙지 못했지만 말씀의 권능을 믿은 백부장의 믿음처럼 오늘날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살고 있는 우리도 말씀만으로 우리가 변화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굳게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남상준 목사(대전 소망루터교회)
10. 전능자를 믿은 백부장의 믿음
예수님께 모든것을 믿고 맡긴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칭찬을 크게 하신 로마 백부장의 믿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분이 알듯이 당시에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이 예수님이 살고 있던 유대나라에 와서 통치하고 있었다. 이 백부장도 로마 사람인데 유대나라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라는 소위 요즘 군대용어로 하면 중대장쯤 될 것이다.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생겨 난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하인이 병들어서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그 하인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똑같이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믿음이 백부장 마음속에 들어 간 것이다. 백부장의 마음은 예수님이 표현 하신대로 옥토이다. 자갈도 없고 잡초도 없는 그야말로 깨끗한 아주 비옥한 그런 마음 밭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시켜 예수님께 와서 “주님, 제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고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요청을 한다. 그 때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8장 7절에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랬더니 8절,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8절,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고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을 보면, 물론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밑에 있는 부하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때 정확하게 그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명령을 할 때 하인들이 듣듯이 주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됩니다, 한 것이다. 저는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아, 정말 특별한 믿음을 가진 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백부장의 믿음 가운데 말씀에 의지한 믿음을 볼 수 있다.
말씀에 의지한 백부장의 믿음
이 말씀을 주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고,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냥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 믿는다면 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어느 교회를 갔다. 그 교회 신자들이 정말 훈련을 잘 받은 신자들이었다. 내가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어 주십시오 라고 하면 먼저 일어서는 분이 읽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들고 한 분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정말로 ‘따아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큰 ‘대’자를 말하는 것이다. 큰 소리이다.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48절입니다!” 앉아서 읽지 않고 더구나 서서 소리를 지르며 읽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이 옛날 중국의 황제가 보좌에 앉아서 앞에 사람에게 뭐라 뭐라 해라, 그러면 그 사람이 그 황제 옆에 서서 큰소리로 “이는 황제의 말씀입니다!” 옛날엔 스피커가 없었다. 목청 큰 사람이 앞에 나와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 앞에 전부 엎드리는 것이다. 복종이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복종하는 것이다.
이 땅의 황제가 아니고 “하늘의 황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멘! 하고 말씀에 순종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냥 보통 소리로 듣는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은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던 믿음이다. 자기 하인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은 것이다.
감히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고 너무나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냥 “말씀만 하시옵소서!”한 것이다. 황제가 말씀하면 100%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 안하면 죽는다.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황제의 말씀은 절대적인데 우리는 그 절대적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 당시 로마의 군인이었던 이 백부장이 자기가 섬기던 황제가 있었지 않겠는가! 예수님 당시의 황제는 티베리우스 황제였다고 한다. 그 티베리우스 황제가 뭐라고, 뭐라고 했다면 다 예, 하고 굴복하는데 티베리우스 보다 훨씬 큰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은 말씀에 의지한 믿음인데 누구의 말씀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생각했던, 하늘의 황제로 생각했던 그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그분이 말씀하시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다. 누구의 말씀인데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이다. 천사들이, 마귀가 모두 다 굴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을 이 사람이 나타냈던 것이다. 이 사람이 군인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이었다. 군대에서 상관이 명령하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로마 황제가 말했다면 그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믿음,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없다. 왜 그런가? 예수님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정 2절에, 평생 죄만 지은 중풍 병자를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병이 아니라 네 죄가 다 용서되었다”했을 때 사람들이 속으로 수군거렸다. 저 사람 제정신인가? 어떻게 사람이 되어 하나님처럼 죄를 용서하는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이 마태복음 9장 6절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누구라는 것인가?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기를 뭐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 해 보이신 것이다.
그 때에 6절 중간에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여기서 예수님이 증명해 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전능하신’이라는 말, ‘전능하신 하나님’ 이 말은 참으로 두려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함부로 쓴다. 여기 ‘전능하다’하는 말은 히브리말로 ‘솨다이’라고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엘 솨다이’라고 한다. 이 ‘솨다이’라는 말의 어원은 여러 학자들이 어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엄마의 젖가슴’이다. 소위 어머니 하나님,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이다.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여자는 연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능한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 엘 솨다이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에 빠졌든지, 어떤 질병에 걸렸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 분이 누구인가? 이 땅에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마태복음 9장 2절에 “내가 네 죄를 사하였다. 걱정 하지마라”하고 말씀하신 그 말씀은 하나님으로서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증명해 보이겠다. 그 죄 때문에 생긴 그 질병을, 중풍병을 내가 고친다. 무슨 이야기인가? 죄의 뿌리가 뽑히면 죄의 나무에 열린 열매는 함께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네 죄를 용서하노라! 하고 말씀하실 때, 그 죄의 나무에 매달린 모든 질병, 고통, 아픔, 슬픔, 눈물, 절망이 다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이 내가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죄를 없애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노라고 믿음을 주신 것이다. 그 믿음에 이 중풍 병자는 새사람이 된 것이다.
성경구절
9월 18일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의 믿음
누가복음 7;1-10 2016. 9. 18 (주일 낮 예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2절에 보니까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백부장은 김부장이나 정부장처럼 성이 백씨인 부장님이 아니라 로마 군사 백 명을 거느린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이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들을 통해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좀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쳐주러 가십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다시 자기 벗들을 보내서 “주여! 여기까지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그러는 거예요. “내 종들도 내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까짓 병이 떠나가지 않겠습니까?” 이 말이지요. 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감탄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백부장의 집에 돌아와 보니까 당연히 종은 다 나았지요.
병이 나은 것도 좋지만 예수님께 인정받은 그 믿음 이 더 귀하지 않습니까? “백부장과 그 종은 좋겠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 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1. (사랑)을 겸비한 믿음
2절 함께 봉독합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아멘. 백부장의 부모나 자녀가 아니고 백부장의 종 이 병에 걸린 겁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당시에 종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사고파는 재산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를 가족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유대인의 장로에게 부탁을 합니다. “같은 유대인이니 장로님이 예수님께 가서 내 종을 좀 고쳐달라고 해주세요.” 대로마 장교가 자존심 상하게 식민지 사람들에게 그런 거 사정할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한 사람에게 말한 것도 아니고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자기 상전도 아니고 (종)을 위해서 그런 수고를 하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 장로들이 또 다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권력이 있는 백부장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간 게 아니에요. 4절에 보니까 장로들이 예수님께 가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종의 병을 고쳐주는 게 합당하다는 거죠. 왜요? 5절 함께 봉독합니다. “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 아멘. 와! 이건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로마 장교들이 집에서 수만리 떨어진 식민지 국가에 가서 근무하는 걸 좋아했겠습니까? 아니면 가족들이 있는 로마에서 근무하는 걸 좋아했겠습니까? 당연히 로마에서 근무하는 게 좋지요. 그런데 로마에 있지 않고 그 멀리까지 올 때에는 뭔가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점령군 장교의 권세를 이용해서 식민지 백성들을 수탈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거죠. 그걸 통해서 진급도 하고. 보통은 그런 낙이라도 있으니까 수만리 이국땅에 와서 근무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오히려 식민지인 ( 유대 )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주었다는 겁니다 . 정말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될 만큼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 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 그래서 두 말씀도 안 하시고 바로 그 집으로 가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 사랑 ) 이시기 때문입니다 .
9절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죠.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너희 중에서 이만한 사랑을 보지 못하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욕심과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믿는구나 . 너희 중에서 이 백부장과 같은 사랑의 믿음 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 이렇게 한탄하고 계시는 건 아닐는지요.
우리의 믿음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특별히 나보다 어렵고,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사랑 하는 믿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믿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내가 돕고 내가 고쳐줄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여러분, 사랑은 희생입니다. 백부장은 종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였고, 유대인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서만 믿었던 아이 같은 믿음에서 벗어나, 백부장 같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수준 높은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겸손)한 믿음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6절 함께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 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멘. 백부장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지요? “ 주여 !” 라고 부릅니다. 8절에도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래요.
지금 로마군대 백부장이 일개 식민지 국가의 30대 초반의 청년에게 “주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건 마치 일제강점기 헌병대장이 동네 청년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게다가 로마시대에는 로마 황제 외에 다른 사람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이미 예수님을 로마황제보다도 더 존귀하고 지고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은 것임 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가 겸손 했기에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보는 안목이 열린 거죠 . 교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면서 멸시했습니다.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그랬지요. ‘가문으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내가 너보다 훌륭하지’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메시아를 보고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정치적으로 바리새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겸손 했기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믿음은 ( 겸손 ) 한 것입니다 . 왜냐하면 내가 잘 나서 잘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잘된 것을 알기에 잘 되면 잘 될수록 “이건 정말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반대로 ( 교만 ) 은 불신앙입니다 .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했다.”고 하니까 교만한 겁니다. 그 마음에는 벌써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만 있습니다. 그래서 잘 되면 우쭐하다가 넘어지고, 안 되면 낙심하다가 무너집니다. 잠언 18:12에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함께 봉독.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아멘.
주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 주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예수 믿으면 믿을수록 겸손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점점 교만해진다 그러면 뭔가 잘 못된 겁니다.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믿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주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친히 행하십니다.
3. (온전)한 믿음
7절, 8절 말씀 함께 봉독할까요?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아멘.
“나는 주님을 감당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자인데, 이 구차한 곳까지 오실 필요 없이 그냥 거기서 말씀만 하시면 여기 있는 내 종이 나을 줄 믿습니다.” 그 말이죠. “내 종들도 내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데, 온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까짓 병이 당연히 떠나가지 않겠습니까?” 이 말입니다. 와! 이 믿음의 말 을 듣고 예수님이 감탄을 하신 겁니다.
백부장은 말로만 “주여! 주여”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진짜 믿었습니다 . 정말 겸손하고 온전한 믿음인지 아닌지는 순종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할 때, 온전히 믿을 때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문둥병이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갔던 아람의 군대장관 아시지요? 예. 나아만 장군 입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어라.” 그랬더니 기분이 나빴어요. “우리나라에는 요단강만한 강이 없어서 여기서 씻으라는 거냐? 환부에 손을 얹고 안수라도 해줘야 도리가 아니냐?” 화를 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국의 군대장관인데…”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엘리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하면 믿을 수가 없고 ,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고 , 순종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주님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나아만 장군이 “안수라도 해 줘야지 무슨 요단강에 씻으라는 거냐?”고 불평하듯이 말입니다.
그저 내 방식대로 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내 생각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 방법 ) 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게 진짜 믿음입니다 . 주님이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게 온전한 믿음입니다.
“근데요 목사님, 순종하기 너무 어려워요.” 이런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순종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허리가 아파서 어제 병원에 갔어요. 의사 말은 물론이고 나이가 어린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말도 제가 얼마나 잘 듣는지 몰라요. 누우라면 눕고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혹시라도 잘못 들을까봐 집중을 해서 듣고 하라는 대로 착착 해요. 의사가 약 처방해 주면 그 약 봉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믿고 먹잖아요. 하루에 세 번 먹으라면 세 번 먹고, 식후에 먹으라면 식후에 먹고, 식전에 먹으라면 식전에 먹고, 정말 순종 잘합니다. 어떻게 내 머리로 다 이해가 안 되고, 내 생각하고 다른데도 그렇게 말을 잘 듣지요? 그래야 내 병이 나을 줄로 믿으니까 .
그런데 예수님 믿는 건 이상하게 내 고집대로 하려고 해요.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묻기라도 하면 좋은데 묻지도 않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예수님,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 주세요.” 오히려 예수님이 내 말대로 해주기만 바래요. 여러분, 의사가 환자 말대로 해야 병이 낫습니까? 환자가 의사 말 들어야 병이 낫습니까? 당연히 환자가 의사 말을 들어야 병이 낫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말 들어야 우리 인생이 잘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말씀 들어야 우리 인생이 잘 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거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게 아니라 예수님 보고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게 훨씬 많아요. 그건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환자가 의사보고 내 말 들으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환자는 의사에게 증세만 이야기하고 의사가 처방해 주는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나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주님, 어떻게 할까요? 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순종 하는 게 중요합니다 . 그렇게 할 때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9절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인데도 겸손한 믿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유대인들은 좀 안다고 교만했거든요. 사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유대인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겁니다 . 그래서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똑같은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12 함께 봉독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아멘.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이방인들은 오히려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 보좌에 앉아있는데 정작 본 자손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 쫓겨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좀 안다고 ( 교만 ) 하여서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 이 유대인들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연륜이나 어떤 직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과 같이 오직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함으로서 주님께 칭찬받고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의 믿음 누가복음 7:1-10 백부장의 믿음 (마태8:5-13,) 박수길목사
리차드 범브란트목사님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수감된 어두운 방이 열리면서 한사람이 발길에 채이면서 들어와 앉았답니다. 잠시후 어둠 속에서 서서히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크리스챤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하던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감옥에 들어왔는가 입니다. 크리스챤을 박해하던 그 장교에게 어느 소녀가 꽃다발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소녀는 대위님 이 꽃다발을 드리니 사랑하는 부인에게 전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 장교는 왜 내게 이 꽃다발을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말하기를 제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인데 지금은 감옥에 있어서 만날 수가 없어요. 오늘이 바로 어머니 생일인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려고 꽃을 준비했지만 전해드리질 못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늘 제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이렇게 꽃다발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을 대위님께 드리면 집에 가서 부인에게 전해줄 때 아이들도 기뻐하며 행복한 순간을 지내리라 봅니다. 너무 진지한 소녀의 말과 눈길에 그만 대위는 그 소녀를 끌어안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후 크리스챤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다가 발각이 되어 감옥에 들어왔다는 얘기입니다. 이 어린 소녀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공산치하의 어느 루마니아 장교 이야기입니다.
성경 안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켜 칭찬을 받은 자가 제법 많습니다. 그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백부장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병자를 고쳤다는 소문이 가버나움의 백부장에게 들려 왔습니다. 그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에 마음 문을 열고 오늘 본문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인생길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로마 군대 백부장에게도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자기 집의 하인 종이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에서 가버나움으로 파견된 군대의 장교로 “백명의 지휘관”을 말합니다. 신약에 소개된 대부분의 백부장들은 모두 좋은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책임자도 백부장이었는데 눅23:47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을 비롯해 백부장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까지 이송당할 때 동행하던 백부장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어떤 신앙의 사람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백부장은 사랑이 앞서는 믿음을 가진 자 입니다. 2절에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의 종들은 짐승 취급도 받지 못하였지만 백부장은 그 하인이 병들어 눕자 안타깝게 여깁니다. 자기 하인의 질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참으로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좋은 인격의 그릇입니다.
그 당시 하인만 무시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유대인이기에 무시를 당할 수 있는데 그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인의 치료를 부탁한 것은 하인을 뜨겁게 사랑을 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7장 5절에 보면 백부장이 유대인을 사랑했는데 이는 아가페의 즉 하나님과 같은 이타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위해서도 회당을 세우고 이방인이면서 유대인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으며 그들에게 존경 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인종적,종교적인 편견을 뛰어 넘은 자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유대인 장로들이 간절히 구하기를 이 백부장에게는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즉 은혜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배타적인 유대인들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이방인과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신앙의 친구, 동역자가 있는지요? 여기서 백부장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요청에 수긍하여 백부장의 집을 찾아 갑니다.
여러분 중에도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을줄 압니다. 쉰들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살려내기 위해 한가지 생각을 해냈습니다. 그는 수용소의 독일군 장교에게 뇌물을 주어 유대인들을 자기 공장에서 일을 시키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나치의 수용소에서 자기의 공장으로 빼내어 살려 냈다는 실화입니다. 전쟁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대인들이 쉰들러를 의로운 이방인으로 인정해주고 그의 기념비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쉰들러도 배타적인 유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영접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종을 헬라어로는 둘로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이 종을 하인을 헬라어 파이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파이스는 어린아이 소년이란 뜻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종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곧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입니다. 어떤 연유로 이 집에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종의 신분인 이 하인은 상당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이 백부장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는 하늘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가진 것을 인해 사람을 차별하는 교만이 없습니다. 노예로서 가치가 없는 상태의 병이 들었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어떤 병인가를 마태는 중풍병(마8:6)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죽게 되었다고 기록함으로 그의 병이 심각한 상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끼리끼리 주파수가 맞는 사람만 사귀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탈무드에 장사할 때 물건을 먼저 팔려고 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 사랑을 주고 받는 복을 누리시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백부장은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 간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사랑이 앞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종을 위해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있습니다. 백부장이 장로들을 대신 보냈던 것은 아마도 로마 군인의 신분으로 예수께 다가가는 것이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중한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 “주여 내 하인이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간구하였습니다. 자기의 부모나 자신의 문제, 자기 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집의 종, 노예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는 큰 믿음이 아니고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실로 백부장은 겸손함이 앞서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루는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 받는 성 어거스틴에게 제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어찌해야 선생님처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때 어거스틴은 겸손이라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제자들이 둘째는 무엇이냐 물었을 때에 어거스틴은 둘째도 겸손이라 답했답니다. 그럼 세번째는 무엇입니까? 결국 세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겸손해 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됩니다. 모세의 겸손도 그렇습니다. 나는 부족하다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이 바울 즉 작은 자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마태11장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실려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나는 주님을 만나기에 부족하다고 표합니다. 내집에 들어오는 것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누가18장에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중 누구의 기도를 들었다고 주님은 말하시고 계십니까?
6절에 유대인 장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함께 가실새 백부장은 이 집에 거의 도착을 했을 때쯤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7절에 있는 말씀처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입니다. 자신은 이방인 군인이고 예수께서는 메시야인데 감히 자신이 예수님께 다가 나설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세째, 백부장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예수께서 백부장의 소문을 듣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말에 대한 권세와 복종을 압니다.
백부장의 이 고백은 예수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즉 주님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믿은 것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나을 줄 믿습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히브리서11:1의 말씀대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공간을 초월하여 나을 줄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혼까지 깨끗해집니다. 7절 말씀만 (에이페 로고)은 [말씀으로 명령하소서]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실 때도 모두 명령으로 고치셨습니다. 자신의 하인의 병도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이런 믿음으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9절에 예수께서 이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즉 놀라다”로 기대 밖의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예수님이 감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께서 과연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실 만한 분이 이자리에도 계실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정도로 감동시킨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는 이 부분에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는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명령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이는 “뒤돌리다, 원래대로”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이미 병이 낳았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으로 인해 병들고 죽어가는 종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이 사건에도 편견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나 칭찬받는 믿음이 있다면 그 결과 이런 기적을 체험하며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구약에도 믿음으로 요단강에 법궤를 메고 들어갔더니 강물이 멈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여리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요한복음2장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러 가니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신 즉시 하인의 병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런 백부장의 편견없는 사랑과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주님을 감동시켜 칭찬받은 백부장의 믿음이 오늘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7:9)”
여기 예수님을 놀라게 했던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놀라게’ 했다면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믿음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눅7:1-10)”
[마태복음 8장 설교말씀] 백부장의 믿음과 신앙(마 8:5-13,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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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8장 설교말씀 중에서 백부장의 믿음과 신앙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보다 믿음이 더 좋았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집에서 누워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의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고쳐 주신다고 했을 때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기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말씀으로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워하시면서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우리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백부장의 믿음과 신앙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마태 8:5-13, 출 15:22-27
요 절: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셨을 때 놀라워하시고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안에서 이렇게 큰 믿음을 발견한 적이 없노라” (마 8: 10)
주 제: 이방인 백부장은 주님께 향한 믿음이 주님을 감동시켰다
나병환자를 만져서 고쳐주신 주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북 갈릴리 지방의 회당이 있는 마을로 훗날 예수님 사역의 센터 역할을 한 곳입니다. 예전부터 선지자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으로 북방 상인들로 말미암아 무역과 세금 직업이 성했던 곳이고 비교적 일찍 개방화된 마을입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백부장이 거주하였습니다. 100명의 로마 군대 병력이 주둔한 것입니다. 이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이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는 백부장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나온 사실은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근간을 이루는 중추적인 존재였습니다. 로마의 1개 군단은 6,000명이었습니다. 이 인원은 다시 100명씩 60개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100명을 백부장이 관할했습니다. 그래서 1개 군단에는 모두 60명의 백부장이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주님 저의 종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스러워하나이다” 자기 아들이나 가족이 아니라 자기가 총애하는 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에 대한 백부장의 동정과 사랑도 당시 문화상황으로 볼 때는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종에 대한 묘사에 대해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이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우정도 정의도 있을 수 없다. 실로 말이나 소에게도 그러하며, 노예를 향해서도 우정이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과 노예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구가 생명이 없는 노예인 것과 꼭 같이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예수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동정이 많은 상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자기 노예가 병에서 낫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남다른 인격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하인이 풍(stroke)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음을 주님께 고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은 뇌성 색전증으로 뇌가 막혀 거동이 불편합니다. 이 부하는 심한 중풍병으로 위기 상황에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적극적인 태도에 백부장은 무척 고마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주님의 심방을 사양합니다. 비단 당시 이방인의 집에 유대인이 방문하면 여러 가지 청소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결 예식대로 청소와 정돈을 해야 하며 대접할 음식도 코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원래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의 구전 전승을 모은 <미슈나>는 “이방인의 거주지는 불결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깨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관심과 호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백부장은 이것 때문에 심방을 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굳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백부장이 대답하기를 ‘주님, 주님께서 제 지붕 아래로 오심을 제가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남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부하들이 있으니 제가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오고 제 종에게 이것을 하라 하면 그가 그것을 하나이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명령 한 마디면 그 중풍병도 고칠 수 있음을 믿고 다만 명령만 하시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그는 탁월한 인격만이 아니라, 탁월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두 가지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관례를 깨고, 이방인인 나에게도 관대함과 사랑을 베푸심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그러한 관대함과 사랑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가 받을 만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나에게 베푸십니다라고 고백하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기꺼이 주시고자 하는 놀라운 하늘의 축복을 받으시되 듬뿍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8장까지를 보면, 예수님은 어떠한 병에 걸린 사람이든지 깨끗이 낫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과 만나거나, 예수님이 친히 만지거나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거나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들 예수님의 권능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만나거나 접촉하지도 않고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크신 권능을 놀라울 정도로 믿은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천지 만물도 말씀만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말씀으로만” 구속을 받았습니다. “말씀으로만” 가지고 성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말씀의 위대성,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말씀에 대한 존경과 순종이 따를 것입니다. 베드로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때 상상을 초월한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 백부장은 말씀의 위력을 굳게 믿었습니다. 명령만으로 군대를 움직이는 장교는 예수님께서도 명령 한 마디로 병마는 물러간다고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마치 수도꼭지를 트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바로 파이프까지 와 있는데 잠그고 있으면 아무것도 받지 못합니다. 반쯤 틀면 반 정도의 물이 나옵니다. 온전히 틀면 물이 콸콸 흘러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은혜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로 100% 여십시다. 지금 이 백부장은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워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이히 여긴다’(thaumazo)는 말은 ‘놀라다'(to marvel, to wonder)라는 뜻입니다. 처음에 백부장의 인격은 예수님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을 그는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0절 후반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안에서 이렇게 큰 믿음을 발견한 적이 없노라”라고 하십니다. 진실한 믿음, 확실한 믿음이 주님을 감동시킵니다.
찬송 544장(통 343장)에 보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는 말씀에 기초에서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찬양합니다.
1)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2)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해도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3)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4)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후렴)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믿어야 구원을 얻고 문제가 해결되며 병이 낫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늘 왕국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을 것이다. 그러나 왕국의 자녀들은 바깥 어두움 속에 내던져지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 8:11-12)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지만 사실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의 믿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 왕국의 많은 자리가 이와 같이 믿음이 좋은 이방인들로 채워질 것이며,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1-12)
그리고서는 주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네 길을 가라 네가 믿은 대로 그것이 그렇게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하니 그 순간부터 하인이 중풍병에서 나음을 얻었습니다. 고통 중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를 괴롭힌 병마에서 놓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돌아갈 것을 명령하셨고, 그가 믿은 것처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하나님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까? 사업과 직장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신앙의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불가능에 직면해 있습니까? 백부장은 말씀만으로도 병든 하인이 깨끗이 나을 줄로 믿을 때에, 하인의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그의 인격은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백부장처럼 아름다운 인품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킬 만큼 위대한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눈앞에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사업의 문제가, 직장의 문제가, 건강의 문제가, 자녀의 문제가, 신앙의 문제가, 미래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독실한 크리스천 부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결혼한 지 10여 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가정에 아이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드디어 열 달이 지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심각한 장애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어떻게 아내에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고 확신했는데….’ 이렇게 고민하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지요. “여보!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애쓰는지 알아요.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이 생명을 세상에 보내시려고 생각하시다가, 생각하시다가… 우리 가정에 보내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아서 바로 우리 가정에 보내셨다고요.” 참으로 감동적인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읽어보니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는데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이 곧바로 모여들어 그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을 정도였고 문 근처에서조차 앉을 곳이 없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침대 그대로 메워 가지고 그 집에 도착했으나 군중들로 만원이 되어 예수님께로 접근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께서 계신 곳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침대를 달아 내렸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 가옥은 대개 흙벽돌로 된 옥상을 활용할 수 있는 단층집으로 외부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하여 구멍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결례를 무릅쓰고 이런 행동을 감행한 것은 먼저 중풍 병자에 대한 사랑도 컸지만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 병자를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며 고쳐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4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네 죄들을 용서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냥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지적하시며 근본 치유를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환자가 고통받게 된 원인이 죄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중풍병을 포함한 모든 병이 죄로 인해 발병하였다고 보아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중풍병이 건강관리 소홀이나 불의의 사고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중풍병이 죄와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 않아서 자기 마음속으로 따져보는 어떤 서기관들이 있었으니 “곧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하나님을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죄들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따져보는 줄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안에서 아시고 즉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으로 따져 보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들을 용서받으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침대를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사람의 아들[인자]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대를 들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이에 즉시 그가 일어나 곧 침대를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모두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말하기를 “우리가 이런 식으로 된 것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했습니다. (막 2:1-12)
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막 2장의 치유 기적을 통해 나의 주변에 힘든 고통과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분들을 예수님 앞으로 모시고 와야 합니다.
찬송 287장(통 205장)
1)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후렴)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
충분히 기도하고 구체적으로 내 친구들이 구원을 받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해답이십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죄 사함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백부장의 “말씀으로만” 믿음을 가지시며 나의 영적인 중풍병을 치료받기 위해 오직 예수님에게 나와야 합니다. 주여, 저의 병든 몸과 마음과 생각과 두뇌를 치유해 주소서!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종이 낫겠나이다. 주님, 죄를 용서하시고 온전케 회복시켜 주옵소서! 아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영원성(히 7: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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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온누리교회
상세 본문
백부장은 오늘날 중대장(규모 100여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숫자는 작았으나 엄청난 기동력과 충성심이 확인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로
급여도 많았고 오히려 천부장 보다도 인정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성경에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이야기 임에도 이방인이자 점령군의 장교인
백부장은 모두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피지배 민족인 유대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서울에 부임한 일본군 장교가
조선 백성들을 위해 많은 좋은 일을 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백부장의 종 하나가 병이들어 죽어가자
그는 유대인 장로들에게 부탁해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백부장의 종은 그냥 종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가 그 종을 가치있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백부장은 점령지역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부탁을 받은 유대장로들이 그렇게 불편하게 여기는 예수님에게
백부장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백부장은 예수와 대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도움은 필요하지만 내가 로마의 장교인데
굳이 만날것 까지야 있겠는가 하는 태도를 가졌던 것일까요?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보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저는 주를 제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
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7:6-7)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도(믿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믿음은 보지 못했다’며 적쟎이 놀라셨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자신의 위에 상관이 있고 자신의 아래에 부하가 있어 나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하고
내 부하도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인식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자신은 예수님을 천부장 보다 더 크고 높으신 분으로 믿고
말씀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 고백은 실로 위대한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관계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이 자신의 직업과 자신의 자리를 통해 예수를 믿은 것처럼,
과학자는 연구와 결과를 통해,
음악인은 연주와 노래를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자신의 삶속에서 나온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오늘 나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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