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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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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 Bible.com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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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
17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
Source: www.akbchurch.org
Date Published: 6/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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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다음블로그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하박국3:16-19절을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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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교 –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한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9/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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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해도 (합 3:13-19) – 푸른교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
Source: thegreen.or.kr
Date Published: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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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복음찬양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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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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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큐티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포도나무에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 … 유지연 집사. 페이지 수. / 1998 /. : 1. 이 찬양은 구약시대의 한 선지자의 아름다운 시이다 …
Source: www.onnuri.org
Date Published: 4/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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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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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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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Author: 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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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8. 3.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0NoBIkMe84Q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KRV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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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1-14-18
본문말씀: 하박국 (Habakkuk) 3:17~19
17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The Sovereign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go on the heights.)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구약의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비밀과 능력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6~700여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서는 세장에 걸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말씀 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중심주제라고 할수 있는 ‘구원 받은자, 의인’ (롬. 1:17) 을 정의하면서 하박국선지자의 글을 인용 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고 말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 누가 의롭다고, 누가 죄없다고 인정함을 받는 자 인가를 선언하고 나서, 그 의인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자라면, 오늘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것인가를 우리는 하박국선지자의 신앙고백을 통해 배워야 할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묵상 가운데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 (17,18) 할수 있는 성도 여러분의 축복된 삶 사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본 론>
하박국서의 저자,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하바크>의 ‘포옹하다, 매달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가지고 마르틴 루터는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껴 안고 포옹한다’ 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했고, 어떤 신학자는 ‘하박국선지자가 한명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 의해 포옹을 받는다’는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었건 모두 일치되는 것은 ‘포옹한다’ 는 것이요, ‘껴 안는다’ 는 것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그의 민족의 허물과 죄를 껴 안았고, 또한 하나님의 폼에 안김을 받았던 것 입니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말 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글이 <하나님의 심판과 예언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선포하는 형태> 라면, 이 하박국서는 <하나님과 선지자 자신과의 대화형태> 가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 남유다의 심각한 죄악상과 이방 강대국의 횡포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셨는지? ’ 를 질문하며, 그분의 선하신 개입과 바르게 하여 주실것을 호소 했습니다.(합. 1:1-4, 12-17) 하나님은 그의 질문과 호소에 침묵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구체적으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합. 1:5-11, 2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악을 다루시고, 그의 온전한 선을 이루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것 입니다.그때 하박국 선지자는 비로소 자신의 무지함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긍휼에 무궁하심을 그의 감겼던 눈을 떠 바라보면서, 구약에서도 가정 아름답다고 인정함 받는 ‘감사의 기도’ 이자 ‘가슴 깊은 곳에서의 찬양’ 을 마지막 3장에서 고백 함으로서 그의 글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절정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 ‘17~19절’이 될 것 입니다.
저는 오늘 하박국선지자의 삶과 고백을 통해서 저를 포함한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반드시 배우고 삶에 실천해야할 한가지 자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의 문제를 혼자서 끌어 안고 고민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가서 해결함 받는 자세’ 라는 점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 에게서 진실로 돋보이는 점 입니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흠없이 깨끗하게 살았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고백 (합. 2:4) 을 통해서 그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믿음을 통해 죄 없다고 인정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 는 진리를 붙들었던 의인의 삶을 살았음을 우리는 적어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통한 의인의 삶은 ‘어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바뀔수 없고, 취소될수 없는 축복된 삶’ 이라는 것 입니다. 왜 축복된 삶 입니까? 그것은 돈을 많아서도 아니요, 건강해서도 아니요,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행운의 삶 이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그를 아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품안에 있는 자녀의 삶’ 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왜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시요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19) 라고 고백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인 것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삶을 결코 모른채 하시지 않으시고, 그 삶에 있는 어떤 고통과 악의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지 않으시고,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분의 선하시고 사랑 많으신 뜻데로 그의 자녀를 살리시고 믿음으로 승리케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하신 계획을 그의 구하고 간구하는 자녀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밝히 보여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선지자가 자기 동족 유대민족과 주위의 더 악한 이방 강대국 바벨론 & 갈대아인들의 죄악에 대한 불만과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것 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행하시고, 의의 심판을 이루신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수 있는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의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는가?’ 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입니다. * “ 어떻게 성도들은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뻐할수 있을까요? ” (How are the saints able to rejoice in the Lord, even-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첫째, ‘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we may see the world by the our eyes of faith): 저는 지난시간 성경에서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로 <민수기 21:4-9> 에 나오는 ‘놋뱀사건’ 입니다. ‘놋뱀사건’ 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너희가 마음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살리실것을 믿으면 살게 될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본자는 살것이다” (민. 21:8) 고 말씀 하셨다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를 마음으로 믿음으로 살게 된다’ 는 것을. 그러나, <민수기 21장> 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눈을 들어 봐라 보아야 한다’ 는 사실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너가 나를 믿는다면 눈을 들어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눈을 들어 보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 하신다’ 는 것 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눈을 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줄 하나님은 아시지 않느냐?!’ 고 반문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대위의 놋뱀’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를 반드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눈을 들어 놋뱀을, 아니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일까요?’ 그것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수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현재 내가 심각한 병 가운데 고통 받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힘들어 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인한 고통,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현재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을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볼수 있다면, 나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믿음의 눈이 없이는 세상은 온통 불평과 불만의 거대한 집합소 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좌정하셔서 죄악과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마귀를 반드시 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를 바라볼수 있는 것 입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말 입니다.
둘째, ‘ 하나님께서 대답 하시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the Lord answers our questions (appeal, complain)): 시편에 보면, 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 입니까?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 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뻔 했구나” (시. 73:1,2) 라고 고백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질투 하였다” (3)는 것 입니다. “그들은 평생토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며, ~ 교만을 목걸이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으며 ~ 하나님을 대적하고 ~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간다” (4~12) 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악인이 잘되고, 착한 자가 고통받는 이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진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런 불의하고 불공평한 상황을 수없이 목격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줄 압니까? 문제는 ‘이 시편기자가 세상의 악에 대해, 악인이 잘되는 이 세상의 불공평을 불평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이러한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7) 라고. 무엇을 깨닫았다는 말 입니까? 악인의 심판을 깨닫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이 거하시는 곳에 이르렀을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순식간에 멸망하여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8~19) 고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그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한 그의 영적 상태를 “어리석고 무식하여 주앞에 짐승과 같습니다” (22) 고 고백 했습니다. 시편기자뿐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도 하나님께서 성경에 분명히 대답하여 주시는 말씀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이 어리석게도 불평하고 불만하는 것’ 입니다. ‘왜 악인들이 잘 먹고 잘살고, 의인이 고통받는 것인가요?’ 하고 말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그의 자녀들을 위한 수없이 많은 약속과 속히 임할 최후의 진리를 밝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악인의 잘됨을 부러워 말고, 고난을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말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멸망의 심판으로, 의인을 생명의 심판으로 갚으시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악인의 잘 됨을 부러워 합니까? 기록된 성경말씀을 살펴 봄으로 그의 자녀에게 약속하시는 ‘악인과 의인의 최후’ 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까?
셋째, ‘ 성령께서 증거하시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the Holy Spirit testifies us our Sonship): 저는 그동안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절대적인 역활’ 이 무엇인지를 강조 드린바 있습니다. 저는 비록 예수 믿고 영으로 거듭난 성도라 할찌라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도우심이 없을때 불행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수 있음을 강조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떻게 불행한 그리스도인이 있을수 있는가?’라고 질문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떤 삶일 것인가?’ 를 우리 각자가 심각하게 물어보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도전하기 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의 삶은 ‘영생을 소유한 삶’ 일 것 입니다. ‘ 영생을 소유 했다는 것 ’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 17:3) 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우리 믿는 자는 어떻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나가는 영생’의 삶을 살아 나갈수 있을까요? 이 마지막 질문을 답하는 가장 중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이렇게 선언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롬. 8:2) 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될때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의 법’ 에서 해방되게 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는 것을 사실 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출발점 입니다. 거듭난 자는 이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영역에서 성령님에 의해 은혜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옮겨진 것 (롬. 5:21) 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영적 출생인 것 입니다. 이제 그는 자라나야 합니다. 반드시 영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성령의 증거하심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양자의 영을 통하여 증거하실 뿐 아니라 ~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롬.8:15,16) 을 받는 것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의 인격적인 믿음의 반응을 통해서 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각자의 성령님을 향한 이런 인격적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격적인 반응 입니까?성령을 사모하고, 순종함을 통해 충만한 성령의 증거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충만한 증거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나고, 그 분의 뜻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3장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1) 라고.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박국 선지가 하나님께 ‘이 수년 내에 부흥케 되기를 간구하는 주의 일’ 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입니다. 진노하시는 심판 입니다. 그 진노의 심판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합. 3:16) 같다고 하박국은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속히 임하시길 간구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악인의 번영보다 참된 희망을 가져오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우리를 치시는 혹독한 징계가 악인이 누리는 안락함보다 우리를 진정으로 살리는 은혜가 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는 무엇 입니까? 바라건데,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의 아픔을 넘어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할찌라도, 내 삶이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신뢰 함으로서 이 모든 상황 가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아멘.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하박국3:16-19절을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메타포[metaphor]
성경은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말씀에는 그 안에 은유와 비유가 담겨져 있고 그 안에 있는 메타포를 발견하지 못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자기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영혼까지도 멸망의 길로 가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글을 올리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 글을 보고 만약에 그 영혼이 사망의 길로 갔다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악한 자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카페만 13만개입니다
그 외에 블로그나 소셜커뮤니티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말씀을 드리면 죄송하지만 그 말씀들이 복음과는 너무 동떨어진 말씀이고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고 있는 글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사람의 생각과 열심을 가지고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하고 또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어제도 설교를 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목사라고 하는 그 사람이 본문을 정해서 설교를 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말씀만 가지고 빙빙 돌다가 설교를 마치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 교회에서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메타포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예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예수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 그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메타포를 모르면 성경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게 됩니다. 예수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지 못하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그저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고자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성경을 상고하면서도 예수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있는데 단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늘 강조를 합니다.
아니 지겹더라도 저 목사는 예수만 전한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예수만 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성경에서 예수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다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입에 바른 말로 예수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에 대한 비밀을 찾아서 정확히 그 말씀에서 어떻게 예수를 전하고 있는가를 깨닫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전하는 곳에 얼마나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제가 가끔 신앙상담을 하는데 그 분들이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말씀을 다 읽고 나서는 자기가 다닐 수 있는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오직 예수만 전하는 그런 교회를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 역시도 그런 교회를 아직 찾지를 못했습니다. 없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오직 예수만 전하는 교회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교회를 보면 결코 그런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는 점점 율법주의와 은사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들의 믿음을 내 보이려고 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을 못 합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을 보면서 마치 영의 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영의 일이 아니라 육의 일이고 그 육에 일에 정신이 팔려 버리는 순간 그 영혼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자기들은 영의 일을 한다고 했지만 모두가 육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모르고 그저 열심으로 가득 차 있는 교인들을 보면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감추어져 있는 메타포를 모르면 결국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알려 하기 보다는 행위에 빠지게 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행위에 빠진 사람이 다시 믿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불가능 합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불가능 하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성경을 오해를 하게 되면 다 행위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 그냥 대충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부로 조금 안다고 해서 해석을 하려고 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은 한 단계의 메타포를 찾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세 단계의 메타포를 찾아야 예수를 찾을 수 있는데 그런 말씀을 너무도 쉽게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누가 방해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을 방해를 합니까?
이스라엘도 자기들 스스로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 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 문을 막고 있고 그들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거절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라도 잘못 가고 있지는 않은가를 늘 내 자신을 점점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 신앙에 대해서 성경을 살피면서 확증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혜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닥칠 환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치러 오는 가를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로 인하여 내 영혼이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자들을 분명히 보호해 주시겠지만 그러나 사단의 무리는 할 수만 있다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을 미혹해서 죽이기 위해 틈틈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무리가 치러 오는 소리에 내 창자가 흔들렸고 내 입술이 떨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진짜다 가짜다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또 자기를 치러 오는 무리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뼈가 썩는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복음을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 뼈가 썩어 들어가도 그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아는 성도는 늘 자기 자신의 믿음을 확증을 하고 있고 그것을 지킨다는 것이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바로 뼈가 썩는 고통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는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다수는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바로 아는 성도는 아주 적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늘 그래왔듯이 믿음이 없는 자가 더 많았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한번 잡으신 그 손을 놓지는 않지만 자기가 정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가에 대해서는 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기 믿음에 대해서 확증을 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성경을 잘못알고 있지는 않은가를 늘 생각해 보아야 하고 그것을 알려면 성경을 많이 읽으면서 그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메타포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지켜 주실 것이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나를 분명히 지켜 주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확증을 해야 하고 이 말씀이 정말 성경적인가를 스스로 분별이 될 때까지 자기의 신앙에 대해서 점점 또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지막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교회를 나가고 남들보다 그래도 자기가 잘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행위에 취하게 되면 멸망의 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했습니다. 무성하다는 말씀은 그들의 행위가 좋았다는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했지만 그들에게서 영생을 얻는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저주를 하셨습니다.
마치 이런 것을 식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먹는 그런 식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의 자기 고백입니다 자기의 의가 이스라엘과 같이 의가 뛰어 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면 그 안에 열매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무성해지면 사람들은 그 무성함을 보고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고백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다른 사람들 보다 의가 나빠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안 되는 자신의 의를 보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기를 소개할 때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율법의 의로는 바리새인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아니 내 자신을 볼 때 무화과나무가 무성한 것 같아도 그것을 보는 순간 사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율법의 의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설령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좋게 보인다 해도 그것을 보면 안 되고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한가를 보지 마시고 내가 늘 죄인임을 인정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무화과나무가 무성한 그것을 보고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장 미련한 자가 바로 자기의 율법의 의를 보고 믿음이 있다고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싱그런 무화과나무 잎이 무성하게 있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게 해 준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를 보고 감탄을 하고 또 자기도 그렇게 무성해 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현대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모르고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는 죽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고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한 사람입니다
만약 무화과나무가 무성해지기 시작을 하고 그것을 보고 좋아하다가는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와 같이 말라 죽게 됩니다. 진노를 누가 받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서 그렇게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그것을 따라가는 자들이 받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구약의 육신의 문제는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이스라엘은 구원의 열매를 자기가 맺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율법에 열심을 다 했고 그런 자신들의 겉모습을 보고 마치 포도나무에 열매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내가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요 하나님의 선민이요 또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비록 내가 맺은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셨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런 믿음을 가지려 하기 보다는 이스라엘보다 더 겉으로 보이는 포도나무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맺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노력을 해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맺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사단에게 미혹이 돼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스스로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포도나무의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육적인 포도나무의 열매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말씀이며 그 뜻을 모르면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쁨이 우리 심령에서 넘치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감람나무는 성전에서 등을 켤 때 사용하던 기름입니다.
그 열매로 찧어서 기름을 내서 성전의 등을 밝히는데 사용했습니다.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으면 성전의 불을 밝힐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됩니다.
구약은 보이는 성전입니다
이제는 그 성전이 다 허물어 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성전이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 감람나무의 소출은 성전의 불을 밝히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육적으로 꼭 필요한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이는 성전에 불을 밝히는 그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더라도 예수님께서는 팔복을 듣고 받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분명히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음 안에 있는 성도는 빛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육적인 감람나무의 소출은 필요치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선언을 해 주셨기에 그것이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을 따라가지 마시고 그 구약에서 예수를 발견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밭에 식물이 없으며…
아직도 이 시대는 밭에 식물을 너무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 식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참 식물을 찾기 보다는 밭에 눈으로 보이는 식물을 보고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식물과 영적인 식물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육적인 식물을 먹다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식물을 탐하고 있고 그 식물을 어떻게 해서든지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밭에 비록 율법의 식물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얼마든지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밭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비록 그 밭에 남들이 보기에는 식물이 없는 것 같이 율법의 의가 없을지라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으로 기뻐하기 보다는 밭에 식물을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구약의 사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 양이 없으며…
양은 내 죄를 대신 전가하고 대신 죽어주는 동물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록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지만 그 양이 없어도 이제는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굳이 성전에서 양과 비둘기를 바꾸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0:18절을 보면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제사를 계속해서 드려야 한다면 양이 없다는 것은 한 마디로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양이 없는데 어떻게 즐거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아직도 그 제사를 드리고 있고 자기에게 수 많은 양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제사를 드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매일 회개를 하고 있고 자기 죄가 아직도 남아 있어 늘 양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회개를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양이 필요하다는 뜻과 같습니다. 고백을 하는 것과 회개를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도 다시 제사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살렸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소는 일의 대명사입니다 소가 없다는 뜻은 내가 한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비록 내가 복음을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으로 기뻐해야 하는데 지금 이 시대는 외양간에 소를 너무 많이 넣어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가 하는 일을 보고 아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의 기초는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합니다.
비록 구원에 있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을지라도 은혜를 받는 성도는 지금도 묵묵히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지 못하면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일을 맡아서 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오직 예수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고 즐거워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예배로 인하여 기도로 인하여 찬양으로 인하여 봉사로 인하여 내가 드리는 연보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뻐하고 있는 가를 냉정하게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오직 예수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보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모르고 오직 예수가 아니라 행위가 포함되어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구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음으로 기뻐하기 보다는 자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무화과나무의 무성함을 보고 포도나무의 열매를 보고 감람나무의 소출을 보고 밭에 식물을 보고 우리에 양을 보고 외양간에 있는 소를 보고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모르면 그런 것으로 기뻐하게 되어 있고 예수를 알면 그런 것을 아주 하찮게 여기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고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입니다
다윗도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그런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오직 예수만 있으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힘을 얻었고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미 천국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데 믿음이 없어서 아직도 천국을 가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게 되면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국어 성경 Holy-Bible
개역개정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원문보기
개역한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원문보기
공동번역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데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원문보기
새번역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원문보기
현대인의성경 비록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나지 않고 밭에서 농작물이 나지 않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원문보기
新共同譯 いちじくの 木に 花は ¿かず /ぶどうの 枝は 實をつけず / オリ ― ブ は 收穫の 期待を 裏切り /田畑は 食物を 生ぜず /羊はおりから 斷たれ /牛舍には 牛がいなくなる. 원문보기
NIV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원문보기
KJV Although the fig tree shall not blossom, neither shall fruit be in the vines; the labour of the olive shall fail, and the fields shall yield no meat; the flock shall be cut off from the fold, and there shall be no herd in the stalls: 원문보기
NASB Though the fig tree should not blossom And there be no fruit on the vines, Though the yield of the olive should fail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 flock should be cut off from the fold And there be no cattle in the stalls, 원문보기
新改譯 そのとき, いちじくの 木は 花を ¿かせず, ぶどうの 木は 實をみのらせず, オリ ― ブ の 木も 實りがなく, 畑は 食物を 出さない. 羊は 圍いから 絶え, 牛は 牛舍にいなくなる. 원문보기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Audio]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 복음찬양베스트 | 한국인이 좋아하는 복음성가 256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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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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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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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green.or.kr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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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 … 유지연 집사. 페이지 수. / 1998 /. : 1. 이 찬양은 구약시대의 한 선지자의 아름다운 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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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nnuri.org
Date Published: 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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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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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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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llel Verses · Korean Translation.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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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knowing-jesus.com
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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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1-14-18
본문말씀: 하박국 (Habakkuk) 3:17~19
17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The Sovereign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go on the heights.)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구약의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비밀과 능력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6~700여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서는 세장에 걸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말씀 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중심주제라고 할수 있는 ‘구원 받은자, 의인’ (롬. 1:17) 을 정의하면서 하박국선지자의 글을 인용 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고 말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 누가 의롭다고, 누가 죄없다고 인정함을 받는 자 인가를 선언하고 나서, 그 의인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자라면, 오늘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것인가를 우리는 하박국선지자의 신앙고백을 통해 배워야 할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묵상 가운데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 (17,18) 할수 있는 성도 여러분의 축복된 삶 사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하박국서의 저자,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의 ‘포옹하다, 매달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가지고 마르틴 루터는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껴 안고 포옹한다’ 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했고, 어떤 신학자는 ‘하박국선지자가 한명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 의해 포옹을 받는다’는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었건 모두 일치되는 것은 ‘포옹한다’ 는 것이요, ‘껴 안는다’ 는 것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그의 민족의 허물과 죄를 껴 안았고, 또한 하나님의 폼에 안김을 받았던 것 입니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말 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글이 라면, 이 하박국서는 가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 남유다의 심각한 죄악상과 이방 강대국의 횡포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셨는지? ’ 를 질문하며, 그분의 선하신 개입과 바르게 하여 주실것을 호소 했습니다.(합. 1:1-4, 12-17) 하나님은 그의 질문과 호소에 침묵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구체적으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합. 1:5-11, 2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악을 다루시고, 그의 온전한 선을 이루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것 입니다.그때 하박국 선지자는 비로소 자신의 무지함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긍휼에 무궁하심을 그의 감겼던 눈을 떠 바라보면서, 구약에서도 가정 아름답다고 인정함 받는 ‘감사의 기도’ 이자 ‘가슴 깊은 곳에서의 찬양’ 을 마지막 3장에서 고백 함으로서 그의 글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절정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 ‘17~19절’이 될 것 입니다.
저는 오늘 하박국선지자의 삶과 고백을 통해서 저를 포함한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반드시 배우고 삶에 실천해야할 한가지 자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의 문제를 혼자서 끌어 안고 고민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가서 해결함 받는 자세’ 라는 점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 에게서 진실로 돋보이는 점 입니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흠없이 깨끗하게 살았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고백 (합. 2:4) 을 통해서 그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믿음을 통해 죄 없다고 인정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 는 진리를 붙들었던 의인의 삶을 살았음을 우리는 적어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통한 의인의 삶은 ‘어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바뀔수 없고, 취소될수 없는 축복된 삶’ 이라는 것 입니다. 왜 축복된 삶 입니까? 그것은 돈을 많아서도 아니요, 건강해서도 아니요,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행운의 삶 이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그를 아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품안에 있는 자녀의 삶’ 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왜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시요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19) 라고 고백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인 것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삶을 결코 모른채 하시지 않으시고, 그 삶에 있는 어떤 고통과 악의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지 않으시고,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분의 선하시고 사랑 많으신 뜻데로 그의 자녀를 살리시고 믿음으로 승리케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하신 계획을 그의 구하고 간구하는 자녀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밝히 보여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선지자가 자기 동족 유대민족과 주위의 더 악한 이방 강대국 바벨론 & 갈대아인들의 죄악에 대한 불만과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것 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행하시고, 의의 심판을 이루신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수 있는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의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는가?’ 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입니다. * “ 어떻게 성도들은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뻐할수 있을까요? ” (How are the saints able to rejoice in the Lord, even-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첫째, ‘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we may see the world by the our eyes of faith): 저는 지난시간 성경에서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로 에 나오는 ‘놋뱀사건’ 입니다. ‘놋뱀사건’ 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너희가 마음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살리실것을 믿으면 살게 될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본자는 살것이다” (민. 21:8) 고 말씀 하셨다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를 마음으로 믿음으로 살게 된다’ 는 것을. 그러나, 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눈을 들어 봐라 보아야 한다’ 는 사실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너가 나를 믿는다면 눈을 들어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눈을 들어 보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 하신다’ 는 것 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눈을 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줄 하나님은 아시지 않느냐?!’ 고 반문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대위의 놋뱀’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를 반드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눈을 들어 놋뱀을, 아니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일까요?’ 그것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수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현재 내가 심각한 병 가운데 고통 받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힘들어 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인한 고통,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현재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을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볼수 있다면, 나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믿음의 눈이 없이는 세상은 온통 불평과 불만의 거대한 집합소 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좌정하셔서 죄악과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마귀를 반드시 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를 바라볼수 있는 것 입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말 입니다.
둘째, ‘ 하나님께서 대답 하시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the Lord answers our questions (appeal, complain)): 시편에 보면, 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 입니까?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 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뻔 했구나” (시. 73:1,2) 라고 고백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질투 하였다” (3)는 것 입니다. “그들은 평생토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며, ~ 교만을 목걸이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으며 ~ 하나님을 대적하고 ~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간다” (4~12) 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악인이 잘되고, 착한 자가 고통받는 이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진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런 불의하고 불공평한 상황을 수없이 목격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줄 압니까? 문제는 ‘이 시편기자가 세상의 악에 대해, 악인이 잘되는 이 세상의 불공평을 불평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이러한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7) 라고. 무엇을 깨닫았다는 말 입니까? 악인의 심판을 깨닫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이 거하시는 곳에 이르렀을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순식간에 멸망하여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8~19) 고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그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한 그의 영적 상태를 “어리석고 무식하여 주앞에 짐승과 같습니다” (22) 고 고백 했습니다. 시편기자뿐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도 하나님께서 성경에 분명히 대답하여 주시는 말씀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이 어리석게도 불평하고 불만하는 것’ 입니다. ‘왜 악인들이 잘 먹고 잘살고, 의인이 고통받는 것인가요?’ 하고 말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그의 자녀들을 위한 수없이 많은 약속과 속히 임할 최후의 진리를 밝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악인의 잘됨을 부러워 말고, 고난을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말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멸망의 심판으로, 의인을 생명의 심판으로 갚으시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악인의 잘 됨을 부러워 합니까? 기록된 성경말씀을 살펴 봄으로 그의 자녀에게 약속하시는 ‘악인과 의인의 최후’ 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까?
셋째, ‘ 성령께서 증거하시기 때문 ’ 입니다 (Because the Holy Spirit testifies us our Sonship): 저는 그동안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절대적인 역활’ 이 무엇인지를 강조 드린바 있습니다. 저는 비록 예수 믿고 영으로 거듭난 성도라 할찌라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도우심이 없을때 불행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수 있음을 강조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떻게 불행한 그리스도인이 있을수 있는가?’라고 질문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떤 삶일 것인가?’ 를 우리 각자가 심각하게 물어보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도전하기 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의 삶은 ‘영생을 소유한 삶’ 일 것 입니다. ‘ 영생을 소유 했다는 것 ’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 17:3) 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우리 믿는 자는 어떻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나가는 영생’의 삶을 살아 나갈수 있을까요? 이 마지막 질문을 답하는 가장 중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이렇게 선언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롬. 8:2) 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될때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의 법’ 에서 해방되게 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는 것을 사실 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출발점 입니다. 거듭난 자는 이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영역에서 성령님에 의해 은혜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옮겨진 것 (롬. 5:21) 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영적 출생인 것 입니다. 이제 그는 자라나야 합니다. 반드시 영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성령의 증거하심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양자의 영을 통하여 증거하실 뿐 아니라 ~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롬.8:15,16) 을 받는 것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의 인격적인 믿음의 반응을 통해서 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각자의 성령님을 향한 이런 인격적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격적인 반응 입니까?성령을 사모하고, 순종함을 통해 충만한 성령의 증거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충만한 증거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나고, 그 분의 뜻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3장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1) 라고.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박국 선지가 하나님께 ‘이 수년 내에 부흥케 되기를 간구하는 주의 일’ 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입니다. 진노하시는 심판 입니다. 그 진노의 심판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합. 3:16) 같다고 하박국은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속히 임하시길 간구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악인의 번영보다 참된 희망을 가져오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우리를 치시는 혹독한 징계가 악인이 누리는 안락함보다 우리를 진정으로 살리는 은혜가 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는 무엇 입니까? 바라건데,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의 아픔을 넘어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할찌라도, 내 삶이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신뢰 함으로서 이 모든 상황 가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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