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창세기 15 장 주석 – [하루 한 장] 창세기15장_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ppa.charoenmotorcycles.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charoenmotorcycles.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홍융희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13,753회 및 좋아요 245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하루 한 장] 창세기15장_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2015년 12월 2일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창세기 15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오늘도 나를 불러주시는 분
내게 말씀하시는 분
그 말씀대로 걸어갈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
그 분이 내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과의 행복한 하루를 엽니다.
그 분의 말씀이 오늘도 나를
힘껏, 열어 가십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아멘!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창세기 제15장 주석(요약자; 라이프) – 네이버 블로그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하나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를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다.(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4/18/2021
View: 9064
호크마 주석, 창세기 15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호크마 주석, 창세기 15장 … 이상 -( , 마하제) ‘묵시'(겔 13:7), ‘환상'(vision)으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자연 영역을 초월한 …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2/22/2022
View: 8064
히브리어 창세기 15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아하르 하데바림 하엘레 하야 데발 아도나이 엘 아브람 밤마하제 레모르 알 티라 아브람 아노키 마겐 라크 세카레카 하르베 메오드 개역개정,1 이 …
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8/5/2021
View: 9325
창세기 제15장 강해 – 횃불 언약 – 다음블로그
창세기 제15장 강해 – 횃불 언약 횃불언약은 이전의 여자의 후손의 언약(창 3:15)에서 이후 다윗 언약(삼하 7:5-16),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8/2021
View: 9592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5장 – HANGL CFC
15:1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1)(창세기 15:1) 여기서는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볼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 조약을 맺은 시기.
Source: cfc.kr
Date Published: 8/26/2022
View: 2945
창세기 15장 –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 – 새벽기도 설교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고령의 나이에, 상속할 자녀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 믿음이 흔들리고 …
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10/16/2021
View: 6696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창 15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귀중했고, 그토록 영예로웠던 것이다(사 43:4). [창세기 히브리어 주석강해] 엘리에셀 상속자 삼은 아브라함(창 …
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10/11/2022
View: 3437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아브라함의 엘샤다이 하나님(창 15 …
이 말의 뜻은 신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매우 약한 분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즉, 홍해를 가를 수 없는 하나님, 물 위로 걸어갈 수 없는 예수님, 떡 5개와 …
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2/26/2021
View: 7545
인생의 염려를 만날 때(창세기 15장) – 유평교회
그러니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에 게시. ← 다음 설교.
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2/27/2022
View: 1083
보드 > 자유게시판 > 창세기 15장 – 16장 주석 – 십자가마을
창세기 15장 – 16장. 약속의 성취가 전쟁을 통해 달성된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접하고 난 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Source: www.crossvillage.org
Date Published: 8/1/2022
View: 8795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하루 한 장] 창세기15장_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창세기 15 장 주석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13,753회
- Likes: 좋아요 245개
- Date Published: 2015. 12. 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hx1xkqgyJ8I
창세기 제15장 주석(요약자; 라이프)
창세기 제15장 주석(요약자; 라이프)
창세기 15장;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다
15: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상 – ‘묵시'(겔 13:7), ‘환상’으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자연 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법을 가리키는데 육체적 감각이 있는 실제 현상이나 혹은 꿈이나 무아 지경 등을 통해 나타난다(민12:6;겔11:24;단8:16). 이같은 이상(異常)은 초대교회에서도 나타나긴 하였지만(행 2:17;9:10;고후 12:1) 대개 구약시대에 나타났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계시서인 성경이 당시에는 미처 완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두려뭐 말라 – 당시 아브람이 영적으로 침체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브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에 대하여선 분명치 않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유추해 볼 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하나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를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다.(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개속 침묵하고 계시자 이를 두려워하였다는 견해이다. 이 중 이어지는 2절을 볼 때 두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나는 너의 방패요 – 그 어떠한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아브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힘과 능력이 되겠다는 뜻이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강조문으로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란 뜻.즉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시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12:2,7;13:15-1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15:2절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 여호와 –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다스림을 강조하는 이름인 ‘아도나이’와 언약에 대한 신실성을 강조하는 이름인 ‘예호와’가 합쳐진 칭호이다(삼하 7:28;겔11:17). 이를 통해 볼 때 아브람은 비록 그 성취 방법에 대하여선 몰랐지만(4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리란 사실은 다시 확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 – 고대 근동에서는 무자(無子)한 부부가 재산 상속을 조건으로 노년의 부양과 사후의 장례를 책임질 양자를 입양하던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그때까지 무자했던 아브람도 이 관습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자기집에서 태어나 자란 가장 신임받는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後嗣)로 추천한 것이다.
15:3절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아브람의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다. 물론 이로써나마 하나님의 악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아브람의 충정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약속을 바라고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없다(약 1:4).
15:4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네 몸에서 날 자가..되리라 –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셋(5:3)->노아(6:9)셈(9:26)->에벧(10:21)->아브람(12:1)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신앙 계보를 이탈하지 않는 자로 구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여자의 후손'(3:15)으로 예언된 바 메시야는 아브람의 직계혈통 중 다윗 가문을 통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
15: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13:16에서 약속하신 것과 같은 말씀으로 장차 아브람의 후손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케 될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약속은 당시로서는 능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기리고 있는(롬4:11) 영적 자손들의 수가 세계 전인구의 32.4%(1985년 기준)를 점유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15: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를 믿으니 – ‘믿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신뢰하다'(대하 20:20;욥 39:12)는 뜻으로 아브람이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했으며 더 나아가 이미 계시된 ‘여자의 후손’ 메시야에 대하여도 신앙하였음을 증거해 준다(요 8:56;히 11:1).
의(義) – ‘차다크'(의로운 상태가 되다)에서 온 말로 간단히 ‘의의 옷’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죄인으로 (3:10;사 20:3;고후 5:3;계 3:17,18)오직 하나닙께서 덧입혀 주시는 ‘의의 옷’으로만 그 죄악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롬 3:23-28;4:7,8;계 19:8).
여기시고 – ‘정하다'(시106:30), ‘계산하다'(레 27:50),’짊어지게 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곧 전가된 ‘의(義)’를 나타낸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전가(轉嫁)의 예를 살펴보면 (1)전인류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롬 5:12) (2)그리스도에게 전가된 인류의 죄(사 53:5,6;고후 5:14,15;히 2:9) (3)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 (롬 4:18-24;빌 3:9) 등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본래 칭의받기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신율(神律) 앞에서 무죄한 상태로 간주됨을 알 수 있는데 본절에 나타난 바 아브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15: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업을 삼게 하려고 – 직역하면 ‘차지하게 하려고’, ‘상속하게 하려고’. 이는 본래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권리나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 로 그를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게획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데에도 역시 분명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깨달아 이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15:8절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무엇으로 알리이까 – 이 질문은 아직껏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신앙의 반문이 아니라,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한 열의에서 나온 요구이다. 이와 동일한 경우로는 기드온의 간구(삿 6:17-24),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8), 마리아의 물음(눅 1:34-38)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필요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증거로 확신을 심어 주시는데 우리들도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과 그에 따르는 확신을 지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 16:17).
15:9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나를 위하여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영원성을 확약하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삼년 된 –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숭 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2-17).
15: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19), 이는 (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 (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떼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꾀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 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즉 비둘기(9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Wordsworth)는 그것이 결코 나뉘일수 없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나(마 3:16;눅 3:22;요 1:32) 실제로는 그것이 쪼갤 필요가 있을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5:11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람이 쫓앗더라 – 솔개와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뭏든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이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15:12절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15: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라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사백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41;갈 3:17) ‘사대'(16절)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
15:14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15: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 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5:16절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사대 만에 – 당시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람의 증손 레위가 일 세더,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롬 2:4,5;벧후3:8,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대하36:15,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고후 6:2).
15:17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혹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뿔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불(출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13:21,22; 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19:18;겔 10:2-4;슥 12:6;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걱인 뜻에 의
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9:8-17)일 뿐임을 강조해 준다.
15:18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애굽강에서부터…유브라데까지 –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이다. 이는 곧 애굽 국경 부근인 가사(Gaza) 남쪽 지방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있던 큰 성읍 딥사(Tiphsa)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던 당시에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뭇했었고(민34:2,3) 홋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에 열거된 국경이 형성되었다(왕상4:41;대하9:26). 따라서 본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뜻 외에 상징적으로 하늘 가나안의 지경이 크고 넓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주노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는 ‘내가 이미 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기업이 될 땅에 대한 반복된 약속(12:7;13:15) 에다 인준(認准)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말을 그리스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께선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천국이 이미 임하였고(마12:28)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 3:36).
15:19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15:20절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15:21절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호크마 주석, 창세기 15장
15:1
이상 -( , 마하제) ‘묵시'(겔 13:7), ‘환상'(vision)으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자연 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법을 가리키는데 육체적 감각이 있는 실제 현상이나 혹은 꿈이나 무아 지경 등을 통해 나타난다(민 12:6;겔 11:24;단 8:16). 이같은 이상(異常)은 초대 교회에서도 나타나긴 하였지만(행 2:17;9:10;고후 12:1) 대개 구약 시대에 나타났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계시서인 성경이 당시에는 미처 완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두려뭐 말라 – 당시 아브람이 영적으로 침체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브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에 대하여선 분명치 않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유추해 볼 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하나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를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다(Jonathan).(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개속 침묵하고 계시자 이를 두려워하였다는 견해이다. 이 중 이어지는 2절을 볼 때 두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나는 너의 방패요 – 그 어떠한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아브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힘과 능력이 되겠다는 뜻이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강조문으로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란 뜻. 즉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시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12:2,7;13:15-1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15:2
주 여호와 -( , 아도나이예호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다스림을 강조하는 이름인 ‘아도나이’와 언약에 대한 신실성을 강조하는 이름인 ‘예호와’가 합쳐진 칭호이다(삼하 7:28;겔11:17). 이를 통해 볼 때 아브람은 비록 그 성취 방법에 대하여선 몰랐지만(4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리란 사실은 다시 확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 – 고대 근동에서는 무자(無子)한 부부가 재산 상속을 조건으로 노년의 부양과 사후의 장례를 책임질 양자를 입양하던 관습이 있었다(Nuzi tablets). 따라서 그때까지 무자했던 아브람도 이 관습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자기 집에서 태어나 자란 가장 신임 받는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後嗣)로 추천한 것이다.
15:3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아브람의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다. 물론 이로써나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아브람의 충정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약속을 바라고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없다(약 1:4).
15:4
네 몸에서 날 자가..되리라 –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셋(5:3)->노아 (6:9)셈(9:26)-> 에벧(10:21)-> 아브람(12:1)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신앙 계보를 이탈하지 않는 자로 구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여자의 후손'(3:15)으로 예언된 바 메시야는 아브람의 직계혈통 중 다윗 가문을 통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
15:5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13:16에서 약속하신 것과 같은 말씀으로 장차 아브람의 후손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케 될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약속은 당시로서는 능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기리고 있는(롬 4:11) 영적 자손들의 수가 세계 전인구의 32.4%(1985년 기준)를 점유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15:6
여호와를 믿으니 – ‘믿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 )은 ‘신뢰하다'(대하 20:20;욥 39:12)는 뜻으로 아브람이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했으며 더 나아가 이미 계시된 ‘여자의 후손’ 메시야에 대하여도 신앙하였음을 증거해 준다(요 8:56;히11:1).
의(義) – ‘차다크'( , 의로운 상태가 되다)에서 온 말로 간단히 ‘의의 옷’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죄인으로(3:10;사 20:3;고후 5:3;계 3:17,18)오직 하나닙께서 덧입혀 주시는 ‘의의 옷’으로만 그 죄악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롬 3:23-28;4:7,8;계
19:8).
여기시고 – ‘정하다'(시 106:30), ‘계산하다'(레 27:50),’짊어지게 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곧 전가된 ‘의(義)’를 나타낸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전가(轉嫁)의 예를 살펴보면(1)전인류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롬 5:12)(2)그리스도에게 전가된 인류의 죄(사 53:5,6;고후 5:14,15;히 2:9)(3)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롬 4:18-24;빌 3:9) 등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본래 칭의받기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신율(神律) 앞에서 무죄한 상태로 간주됨을 알 수 있는데 본절에 나타난 바 아브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15:7
업을 삼게 하려고 – 직역하면 ‘차지하게 하려고’, ‘상속하게 하려고’. 이는 본래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권리나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 로 그를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게획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데에도 역시 분명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깨달아 이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고전 10:31)
15:8
무엇으로 앝리이까. 이 질문은 아직껏 하나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열의이서 나온 요구이다. 이와 동일한 경우로뉼기드온의 간구(삿 6:17-24),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8), 마리아의 물음(눅1:34-38)둥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웅답을 받은 후 더 큰 확신을 갖게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필요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중거로 확신을 심어 주시는테 우리들도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과 그에 따르는 확신을 지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 16:27)
15:9
나를 위하여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영원성을 확약하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삼 년 된 –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승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Murphy).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2-17).
15:10
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 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19), 이는(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때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꾀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즉 비둘기(9절) 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Wordsworth)는 그것이 결코 나뉘일 수 없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나(마 3:16;눅 3:22;요 1:32) 실제로는 그것이 쪼갤 필요가 있을 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Kalisch).
15:11
아브람이 쫓앗더라 – 솔개와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Knobel, Lange, Kalisch).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nathan, Rosenmuller, Bush).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뭏든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이는 형
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15:12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 ) 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 된 단어이다. 이는 솔 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Cavin, Keil, Rosenmuller,Ka-lisch).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15:13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고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사백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41;갈 3:17) ‘사 대'(16절)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
15:14
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15:15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 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5:16
사대 만에 – 당시 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람의 증손 레위가 일 세대,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 )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롬 2:4,5;벧후 3:8,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대하 36:15,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 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고후 6:2).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혹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 )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불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출 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 13:21,22;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19:18;겔 10:2-4;
슥 12:6;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걱인 뜻에 의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9:8-17)일 뿐임을 강조해 준다.
15:18
애굽강에서부터…유브라데까지 –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이다. 이는 곧 애굽 국경 부근인 가사(Gaza) 남쪽 지방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있던 큰 성읍 딥사(Tiphsa)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을 정복하였던 당시에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뭇했었고(민34:2,3) 홋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에 열거된 국경이 형성되었다(왕상 4:41;대하 9:26). 따라서 본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뜻 외에 상징적으로 하늘 가나안의 지경이 크고 넓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주노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 )는 ‘내가 이미 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기업이 될 땅에 대한 반복된 약속(12:7;13:15) 에다 인준(認准)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유
사한 말을 그리스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께선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천국이 이미 임하였고(마 12:28)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 3:36).
15:19-21
아브람 당시를 전후하여 가나안 지경에 흩어져 살던 여러 족속들이다. 훗날 이스라엘이 이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에 기인한 축복이었지만 이들 족속들의 패망 원인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렘 31:29,30).
겐 족속 – 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 살던 족속인데 이스라엘의 가나안정복 이후에도 유다 자손과 함께 그곳에 정착하였다(삿 1:16). 모세의 장인 호밥이 이 겐사람이다(삿 1:16;4:11).
그니스 족속 – 겐족속과 함께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으로 추정된다. 헤브론 땅을 분깃으로 받은 갈렙이 이 그니스 사람이다(수 14:13,14).
갓몬 족속 – ‘갓몬’은 동쪽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들이 판레스틴 동부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 성경 그 어디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이외에 헷 족속과…여부스 족속에 대하여 선 10:15,16;13:7;14:5 을 참조하라.
본장은 아브람에게 제시된 가나안 땅 소유와 후손을 창대케 하리라는 언약(12:1-4;13:14-17)이 공식적으로 조인된는 장면이다. 아브람은 두번에 걸친 후손과 기업에의 약속을 허락받았지만, 가나안의 이주민으로써 점점 늙어만 가는 자신의 현실로 인해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소위 횃불 언약을 체결하심으로써 그에게 땅과 후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역시 인간인지라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힘으로 이뤄보고서 서둘다가 마침내 실수를 범하고 마는 장면이 바로 다음 장(16장)에 제시되고 있다.
한편 본장을 요약하면 1 언약의 진실성 회의를 품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계시하면서 그를 안심시키시는 장면 (1절). 2 뭇별 같은 후사를 주리라는 약속과 더불어 희생을 통해 언약을 확신시키는 장면(2-11절), 3 이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400년간의 애굽 생활을 고지하시는 장면과 가나안 땅의 약속 및 그에 대한 확증으로서 횃불 언약을 세우시는 장면 등이 언급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대해 성급해 하고 불안해 하는 아브람에게 당신의 신실성을 보이시고, 보다 넓은 신앙적 안목을 트이게함으로써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섰던 것이다.
1. 희생을 담보로 한 언약(15:1-11)
신자들 중에는 신앙의 주 관심사를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육신적 은혜’와’물질적 축복’에만 국한시키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스타일(style) 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신앙하는 것으로 엄밀히 따져 ‘우상 숭배’에 해당한다. 또한 하나님이 제공하는 것에만 자기 마음을 둔다면 그 신앙은 상당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본문의 아브람도 초기에는 바로 이러한 신앙 생활을 하였기에 그 약속하신 바가 성취되지 않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2,3절). 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당신만이 복의 원천이자 그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실 분이심을 계시하시고 오직 당신에게 시각을 고정하도록 하셨다. 결국 축복은 신앙에 앞서 선행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음을 알림으로써, 그에게 온전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대해 거듭 의문을 제기하는 아브람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에게 미래의 환(뭇별 같은 후손)과 희생 제물들을 통해 단신의 언약의 신실성을 확인시키셨다.이러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로 인해 아브람은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 아브람을 향하여 하나님은 ‘의롭다’ 선언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신앙의 주체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신앙의 유일한 대상 역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아므’이며, 그 신앙의 열매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이다.
* 아브람의 ‘믿음’과 하나님의 ‘칭의’. 아브람은 나이 들어 하나님의 약속하신 후손과기업에 대한 기대가 점점 희미해져 갈 때에도 재차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맏었다. 이 믿음은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충동적으로 신뢰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충격에도 흔들림없이 지속적으로 의뢰한 전폭적 신앙을 가리킨다.
“여호와계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6절). 여기서 잘못 이해하면 아브람은 스스로의 노력과 순결한 정신에 의해 믿음을 쌓아갔고, 그 경과 하나님께서 그의 탁월한 수준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브람이 의롭게 된 것은 그가 개발한 믿음이나 선한 의지 때문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죄많은 인간에 불과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선물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당신이 의롭다 인정하신 것뿐이다(엡 2:8).
이러한 측면에서 성경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믿음’과 ‘칭의’ 개념이 여기에 처음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문제를 가장 심도 깊게 다룬 사도 바울은 죄인이 구원얻는 것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설명할 때 바로 이 본문(6절)을 언급하였다(롬 4:16-25). 사실 본문에는 아브람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브람의 신앙이 매우 연약했었던 애굽 사건(12:10-12)과 그 이후로 거듭되는 인간적인 실수들(16,20장)을 생각해 보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에 의해서 그의 믿음이 성숙해졌고 의롭다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며, 그 믿음을 가능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죄인을 용납하시고 의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진정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능력이었다.
2. 횃불 언약이 체결되다(15:12-21)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을 함께 할 동역자들에게 능력과 위로를 제공하실 뿐 아니라 앞날의 계획을 계시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며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하도록 인도하신다(수 1:1-9;계 1:9-20).
본문은 위의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즉 하나님께서 흑암 중에 아브람에게 계시하셨던 약속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개괄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아브람과 그 후손들이 왜 가나안을 지금은 바로 차지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언급한 것이기도 하다(12-16절). 계속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후손이 당장은 가나안땅의 기업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차지하게 될 기업임을 대망하게 하시고, 그 약속의 신실함을 입증하시기 위해 ‘횃불 언약’을 체결하셨다(17-21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비이성적이거나 독재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이며 당신의 백성과 상호 협조적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알 때 우리는 그릇된 신관(神觀)에서 탈피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수 있으면 견고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호 6:3).
* 400년 간의 애굽 생활 예고.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이 성취되기도 전에 아브람 후손이 받을 고난을 예견한 본문은(13-16절) 그 땅에 대한 약속을 몇 번에 걸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실현시키지 않았던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어느 정도 이해시켜 준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나태함이나 능력 부족에서가 아니라 그 당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만큼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모르는 불신세계마저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반영한다.(단 2:21).
한편 400년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브람의 후손을 애굽의 학정 아래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조처는 매우 불합리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때를 통과한 후에 더욱 풍부한 재산을 얻고 가나안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14절)을 통해 우리는 그 고난의 때가 결코 저주의 순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시초부터 모든 성공과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였으며, 고난과 실패마져도 당신의 은혜로운 경륜 안에서 지행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애굽의 노예 생활도 그들에게는 실망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과정임을 믿고 기뻐할수 있어야 했다.
불완전한 자신을 참으로 완전하신 하나님께 내맡기는 삶에는 두려움이 끼어들 수 없다. 어려운 상황을 보기 전에, 그 상황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는 자에게는 항상 찬송과 감사가 흘러 넘칠 것이다(시 23:3).
* 횃불 언약과 그 의미. 아브람에게 의롭고도 긴 회의와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확신과 기쁨의 순간이 찾아들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출 3:2;13:21)이 아브람의 제단 위에 놓였던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간 것이다. 여기서 쪼개진 재물 사이를 지나감으로 언약이 성립되는 의식이다(렘34:18,19). 이런 특이한 의식이 의미하는 바는 쌍방 중 한쪽에서 그 언약을 파기한다면, 그 사람은 쪼개진 짐승처럼 처참히 죽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 약속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본문의 풀무와 횃불은 이와 동일한 의미에서 주어진 바, 이 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쪼개진 재물들 사이로 지나간 것은 언약 쌍방인 아브람과 하나님이 아니라 횃불 곳 하나님만이 지나갔다는 점이다. 이는 이러한 의식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과, 이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영원불변의 약속을 하신것이다. 특히 이 언약은 인간에게는 약속 이행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성실과 사랑의 집념으로 맺으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며, 이것이 언약의 본질이다. 하지만 본문의 언약은 엄밀히 따져 약속을 확증하시려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었다. 이것은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하시며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지고한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아브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언약의 이행 여부에 대한 가부 결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체결된 언약과 표징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이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에 대한 믿음이다. 실로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이다.
세일하머
3. 아브라함과 언약 (15:1-21)
a. 서론(15:1-4)
나중의 장 속에서(20:7) 아브라함은 명백하게 ‘선지자’로 불린다. 15장에서 저자는 긴 부분에 걸쳐서 선지자로서의 아브라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장의 중심 주제는 먼 미래에 있을 사건의 선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13-16절) 선지자로서의 아브라함의 자격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변호되는 것은 저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후기의 예언서 문학에 있어서 전형을 이루는 문체로 소개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15:1,4, 렘34:12 참고). 여기에 덧붙여야할 사실은 발람 예언자와 같이(민24:6,16) 아브라함이 ‘이상 중에(창 15:1)’ 여호와의 말씀을 보았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모세오경내에서 오직 여기와 민수기 24장(발람의 예언)에서만 나온다.
15장의 사건들에 대한 이러한 서론의 의도는 이들 사건들이 사실상 아브라함이 이상중에 본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의 예언적 이상들과 같이 이들 사건에는 단지 상징적인 가치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특별히 아브라함이 17절에서 본 이상적 현상의 경우에 있어서 사실일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처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하여 말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을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세기의 서술 속에서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 실 때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응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서술의 나머지 부분에서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말할 것이다(15:2-3,8, 17:18, 18:23-33, 22:11). 그러나 15장의 이상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응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하였다. 사실상 아브라함은 이 장에서 너무 많은 질문을 제기하였기 때문에 저자는 독자에게 아브라함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상기시켜 주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15:6).
아브라함의 질문은 이 장의 중심 문제에 필요한 배경을 제공해 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분명한 지연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그 자신의 시대에 있어서 이와 동일한 문제점에 직면하였다. 약속된 축복을 누려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오히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상활에 놓이게 되었다. 약속은 무효화될 것처럼 보였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렘25:11). 그러나 임박한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경고 속에는 또한 궁극적인 축복의 약속도 들어 있었다. 이방 땅에서의 포로의 기간은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라고 말씀하셨다(렘25:12). 그러므로 포로중의 경건한 자들은 다니엘과 같이(9:2) 베벨론에서의 현재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실 것임을 소망중에 기다리고 있었다.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럼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9:2-3). 하나님의 심판의 한계는 70년으로 제한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15장은 조상들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성취에 대한 현재적 증거는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청중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들은 곧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사41:31)요 하박국이 말한바 현재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합 2:4)’살게 될 자들이다. 창세기 15장의 저자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곤경은 하나님의 백성인 다음 세대들의 그것과 결코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아브라함 역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로서(15:6) 그 약속은 먼 미래의 세대에게 주어진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서 그(15:15-16) 약속의 성취를 기다려야만 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히 1l:13) 그러므로 독자에게 주어진 약속은 견고하게 서 있다. 만일 누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라(벧후 3:4,9).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는 말씀은 몇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두려워하였는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상급’은 무엇인가? 14장에서의 군사적 사건이 아직도 아브라함을 위협하고 있는가? 15장은 앞 장과의 단절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창세기의 다른 곳에서 사용된 ‘이 후에’라는 용어의 의미가 항상 그렇다(22:1, 39:7, 40:1)).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은 아마도 인접한 14장의 문맥 속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5장 자체의 주제를 가지고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아브라함은 그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이'(13:16) 많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최종적인 성취에 대하여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서술 안에서 아브라함이 제기한 질문들은 그러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위로의 첫 말씀 뒤에 놓여있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나는 무자하오니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15:2)라고 물은 후에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3절)라고 항의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자손'(5절)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며 그들이 약속의 땅을 상속하리라는 약속을 다시 받은 후에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라고 물었다. 그의 질문들은 그 안에 있는 두려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속된 확인 또한 그와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4절). 그렇다면 서술의 현재 모양 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있는 자로서 묘사되고 있다. 그 주변의 모든 상황으로 볼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다줄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자 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소유는 어느날 ‘다메섹’으로부터 온 자의 손으로 넘어 갈 것이다(2절).
15장에서의 ‘다메섹’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14장에서의 ‘다메섹’ 근처에서의 아브라함의 승리와 연결시킴으로써 15장의 사건들 뒤에 놓여있는 주제와 14장의 주제를 묶어주기 위하여 의도 된 것이다. 15장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아브라함이 네 왕들을 물리친, ‘다메섹’의 힘에 놓여있지 않고 그의 선택된 ‘자손’의 ‘믿음’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선지자는 그 당시의 낙심한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하였다.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대직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7:4-9).
서술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브라함에게는 아직 분명하게 이루어지지 아니한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위로의 근거로서 먼 미래에 대한 이상이 주어진다. 이상 속에서의 사건들은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일어난 사건 곧 출애굽기 1-12장에 기록된 사건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이상의 중요성은 그것이 아브라함 당시에 그에게 가져다준 확신에 놓여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독자에게 가져다줄 확신에 놓여있다. 독자는, 모세오경의 나머지 부분을 읽음으로써 그 이상이 모세 시대에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창세기와 모세오경의 서술 속에서 이 이상과 그것의 성취는 아브라함의 예언적 말에 대한 확인이 된다. 그에게는 참된 이상이 주어졌다. 그가 이상 속에서 본 것은 사실상 성취되어서 모세오경내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그 이상이 진실임을 아는 독자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신명기 18:22의 시험에 의해서 진실한 선지자로 제시된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나중의 예레미야와 같이(렘 22-29장) 아브라함은 비록 그가 축복이 아니라 유배에 대하여 언급했지만 진정한 전지자였다. 그러나 역시 예레미야와 같이(30:33 이후) 아브라함의 이상은 다가오는 유배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고 그들의 압제자를 심판하실 미래의 때까지를 내다보았다.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4).
그렇다면 15장에서의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말씀은 이러한 이상의 배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레미야는 이와 동일한 말로써 그 당시에 유배 앞에 놓여있었던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렘 30:10).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한 다음 말은 혼자 웃으면서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말한 후에 창세기 17:18에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창세기의 서술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말할 때마다 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의문형의 표현을 사용한다. 반면에 서술 속에서 그가 침묵할 때에 그의 행위는 믿음을 보여 준다.
b. 뭇별과 같은 자손(15:5)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숫자에 대한 묘사는 14:22에서의 아브라함 자신의 표현으로 되돌아간 것인데 여기에서 보상에 대한 그의 소망은 오직 ‘천지의 주재’에 근거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하늘의 무수한 별의 창조주시라면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동일한 숫자의 자손들을 주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미래에 있어서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기초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의 숫자와 하늘의 뭇별의 숫자와의 비교는 모세오경에서 여러번 나타난다. 이 약속은 두번에 걸쳐서 이삭에게 반복되었으며(22:17, 26:4)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결정적인 순간에 모세에 의해서 다시 반복되었다(출32: 13). 신명기 1:10은 애굽으로부터 나온 큰 무리와 관련 해서 이 약속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 28:62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이 약속은 아저도 그것이 미래의 세대에 성취될 것으로 남아 있다. 민수기 24:17에서 야곱집으로부터 나올 ‘별’에 대한 부분적인 의미는 조상들에 대한 약속에 있어서의 이러한 특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가능하다.
C. 아브라함이 의로 여김을 받음(15:6)
15:6의 구문은 그것이 7절에서 제시되는 장면을 위한 배경으로 읽혀져야함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미래의 다루심을 위한 근거가 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맺으려고 하신다(15:7-21). 6절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에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분명한 언급과 함께 장면을 시작한다. 언약이 그를 의롭게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기심을 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언약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5장에서의 ‘믿음’이라는 개념의 정확한 위치와 용법은 모세오경의 나머지 부분을 통하여 그것이 사용된 용법만큼이나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경 전체를 통하여 핵심적인 순간마다 것자는 ‘믿음’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다루심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요소로 지적하고 있다.
d. 언약에 대한 설명(15:7,17)
15:18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이 구절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 설정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그러므로 여러 면에 있어서 이 설명은 시내산에서의 언약 설정을 예표해주어야 한다. 15:7에서의 “나는..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는 서언은 실질적으로 출애굽기 20:2에서의 시내산 언약에 대한 서언과 동일하다. “나는 너를 애굽 땀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갈대아 우르’라는 표현은 창세기 11:28, 31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언약의 근거를 과거에 ‘바벨론’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두도록 만든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 20:2이 시내산 었약의 근거를 애굽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두도록 하는 것과 같다. 시내산에서 무서운 불과 암흑 속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는(출 19:18, 20:18, 신 4:11) 아브라함의 눈부신 이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반영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창 15:12, 17).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15:13-16)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산 언약 사이의 관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할 것에 대한 언급과 그에 뒤이은 ‘출애굽’에 대한 언급(‘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4절)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고려는 저자가 아브라함 언약을 묘사함에 있어서 독자들의 시선을 시내산에서의 사건으로 집중시키려고 의도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인도한다.
만일 우리가 왜 저자가 여기에서 시내산의 모습을 도입시키려고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모세오경의 목적 안에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행하신 것은 조상들에게 행하신 행위 속에 이미 들어있는 더 큰 계획의 일부분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모세오경의 전체적인 전략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도 기억시켜준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성취시키기 위하여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수행하실 것이다.
e. 땅의 경계(15:18-21)
저자는 언약의 땅의 지역적 경계에 대한 묘사와 함께 결론지음으로써 또 다시 땅에 대한 약속을 서술 안으로 끌어들인다. 약속의 땅의 경계가 에덴동산의 경계(2:10-14 참고)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2:4b-22에 대한 앞의 주석을 보라).
히브리어 창세기 15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반응형
아하르 하데바림 하엘레 하야 데발 아도나이 엘 아브람 밤마하제 레모르 알 티라 아브람 아노키 마겐 라크 세카레카 하르베 메오드
개역개정,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새번역,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우리말성경,1 그 후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니 네가 받게 될 상이 아주 클 것이다.”
가톨릭성경,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영어NIV,1 After thi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Abram. I am your shield, your very great reward.”
영어NASB,1 After these thing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saying, “Do not fear, Abram, I am a shield to you; Your reward shall be very great.”
영어MSG,1 After all these things, this word of GOD came to Abram in a vision: “Don’t be afraid, Abram. I’m your shield. Your reward will be grand!”
영어NRSV,1 After these thing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Abram, I am your shield; your reward shall be very great.”
헬라어구약Septuagint,1 μετα δε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εγενηθη ρημα κυριου προς αβραμ εν οραματι λεγων μη φοβου αβραμ εγω υπερασπιζω σου ο μισθος σου πολυς εσται σφοδρα
라틴어Vulgate,1 his itaque transactis factus est sermo Domini ad Abram per visionem dicens noli timere Abram ego protector tuus sum et merces tua magna nimis
히브리어구약BHS,1 אַחַר הַדְּבָרִים הָאֵלֶּה הָיָה דְבַר־יְהוָה אֶל־אַבְרָם בַּמַּחֲזֶה לֵאמֹר אַל־תִּירָא אַבְרָם אָנֹכִי מָגֵן לָךְ שְׂכָרְךָ הַרְבֵּה מְאֹד׃
성 경: [창15: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이상 – (*, 마하제) ‘묵시'(겔 13:7), ‘환상'(vision)으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자연 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법을 가리키는데 육체적 감각이 있는 실제 현상이나 혹은 꿈이나 무아 지경 등을 통해 나타난다(민 12:6;겔 11:24;단 8:16). 이같은 이상(異常)은 초대 교회에서도 나타나긴 하였지만(행 2:17;9:10;고후 12:1) 대개 구약 시대에 나타났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계시서인 성경이 당시에는 미처 완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두려워 말라 – 당시 아브람이 영적으로 침체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브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에 대하여선 분명치 않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유추해 볼 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하나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를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다(Jonathan). (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고 계시자 이를 두려워하였다는 견해이다. 이 중 이어지는 2절을 볼 때 두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나는 너의 방패요 – 그 어떠한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아브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힘과 능력이 되겠다는 뜻이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강조문으로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란 뜻. 즉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시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12:2, 7; 13 :15-1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와요멜 아브람 아도나이 아도나이 마 티텐 리 웨아노키 호레크 아리리 우벤 메쉨 베티 후 다메셐 엘리에젤
개역개정,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새번역,2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우리말성경,2 그러자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제가 자식이 없으니 제 재산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영어NIV,2 But Abram said, “O Sovereign LORD, what can you give me since I remain childless and the one who will inherit my estate is Eliezer of Damascus?”
영어NASB,2 And Abram said, “O Lord GOD, what will You give me, since I am childless, and the heir of my house is Eliezer of Damascus?”
영어MSG,2 Abram said, “GOD, Master, what use are your gifts as long as I’m childless and Eliezer of Damascus is going to inherit everything?”
영어NRSV,2 But Abram said, “O Lord GOD, what will you give me, for I continue childless, and the heir of my house is Eliezer of Damascus?”
헬라어구약Septuagint,2 λεγει δε αβραμ δεσποτα τι μοι δωσεις εγω δε απολυομαι ατεκνος ο δε υιος μασεκ της οικογενους μου ουτος δαμασκος ελιεζερ
라틴어Vulgate,2 dixitque Abram Domine Deus quid dabis mihi ego vadam absque liberis et filius procuratoris domus meae iste Damascus Eliezer
히브리어구약BHS,2 וַיֹּאמֶר אַבְרָם אֲדֹנָי יֱהוִה מַה־תִּתֶּן־לִי וְאָנֹכִי הֹולֵךְ עֲרִירִי וּבֶן־מֶשֶׁק בֵּיתִי הוּא דַּמֶּשֶׂק אֱלִיעֶזֶר׃
성 경: [창15:2]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주 여호와 – (*, 아도나이 예호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다스림을 강조하는 이름인 ‘아도나이’와 언약에 대한 신실성을 강조하는 이름인 ‘예호와’가 합쳐진 칭호이다(삼하 7:28;겔11:17). 이를 통해 볼 때 아브람은 비록 그 성취 방법에 대하여선 몰랐지만(4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리란 사실은 다시 확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 – 고대 근동에서는 무자(無子)한 부부가 재산 상속을 조건으로 노년의 부양과 사후의 장례를 책임질 양자를 입양하던 관습이 있었다(Nuzi tablets). 따라서 그때까지 무자했던 아브람도 이 관습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자기 집에서 태어나 자란 가장 신임받는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後嗣)로 추천한 것이다.
와요멜 아브람 헨 리 로 나탙타 자라 웨힌네 벤 베티 요레쉬 오티
개역개정,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새번역,3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우리말성경,3 아브람이 다시 말했습니다. “주께서 제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제 집에서 난 하인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영어NIV,3 And Abram said, “You have given me no children; so a servant in my household will be my heir.”
영어NASB,3 And Abram said, “Since You have given no offspring to me, one born in my house is my heir.”
영어MSG,3 Abram continued, “See, you’ve given me no children, and now a mere house servant is going to get it all.”
영어NRSV,3 And Abram said, “You have given me no offspring, and so a slave born in my house is to be my heir.”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ειπεν αβραμ επειδη εμοι ουκ εδωκας σπερμα ο δε οικογενης μου κληρονομησει με
라틴어Vulgate,3 addiditque Abram mihi autem non dedisti semen et ecce vernaculus meus heres meus erit
히브리어구약BHS,3 וַיֹּאמֶר אַבְרָם הֵן לִי לֹא נָתַתָּה זָרַע וְהִנֵּה בֶן־בֵּיתִי יֹורֵשׁ אֹתִי׃
성 경: [창15:3]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아브람의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다. 물론 이로써나마 하나님의 악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아브람의 충정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약속을 바라고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약 1:4).
웨힌네 데발 아도나이 엘라우 레모르 로 이라쉬카 제 키 임 아쉘 예체 밈메에카 후 이라쉐카
개역개정,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새번역,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4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네 상속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네 몸에서 나온 사람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영어NIV,4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This man will not be your heir, but a son coming from your own body will be your heir.”
영어NASB,4 Then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This man will not be your heir; but one who shall come forth from your own body, he shall be your heir.”
영어MSG,4 Then GOD’s Message came: “Don’t worry, he won’t be your heir; a son from your body will be your heir.”
영어NRSV,4 But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This man shall not be your heir; no one but your very own issue shall be your heir.”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ευθυς φωνη κυριου εγενετο προς αυτον λεγων ου κληρονομησει σε ουτος αλλ’ ος εξελευσεται εκ σου ουτος κληρονομησει σε
라틴어Vulgate,4 statimque sermo Domini factus est ad eum dicens non erit hic heres tuus sed qui egredietur de utero tuo ipsum habebis heredem
히브리어구약BHS,4 וְהִנֵּה דְבַר־יְהוָה אֵלָיו לֵאמֹר לֹא יִירָשְׁךָ זֶה כִּי־אִם אֲשֶׁר יֵצֵא מִמֵּעֶיךָ הוּא יִירָשֶׁךָ׃
성 경: [창15:4]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네 몸에서 날 자가..되리라 –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셋(5:3)->노아(6:9)셈(9:26)->에벧(10:21)->아브람(12:1)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신앙 계보를 이탈하지 않는 자로 구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여자의 후손'(3:15)으로 예언된 바 메시야는 아브람의 직계 혈통 중 다윗 가문을 통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
와요체 오토 하후차 와요멜 하베트 나 핫솨마이마 우세폴 핰코카빔 임 투칼 리스폴 오탐 와요멜 로 코 이흐예 자르에카
개역개정,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새번역,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우리말성경,5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과연 셀 수 있겠느냐.”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영어NIV,5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Look up at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if indeed you can count them.” Then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영어NASB,5 And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Now look toward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 if you are able to count them.” And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descendants be.”
영어MSG,5 Then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Look at the sky. Count the stars. Can you do it? Count your descendants! You’re going to have a big family, Abram!”
영어NRSV,5 He brought him outside and said, “Look toward heaven and count the stars, if you are able to count them.” Then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descendants be.”
헬라어구약Septuagint,5 εξηγαγεν δε αυτον εξω και ειπεν αυτω αναβλεψον δη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αριθμησον τους αστερας ει δυνηση εξαριθμησαι αυτους και ειπεν ουτως εσται το σπερμα σου
라틴어Vulgate,5 eduxitque eum foras et ait illi suspice caelum et numera stellas si potes et dixit ei sic erit semen tuum
히브리어구약BHS,5 וַיֹּוצֵא אֹתֹו הַחוּצָה וַיֹּאמֶר הַבֶּט־נָא הַשָּׁמַיְמָה וּסְפֹר הַכֹּוכָבִים אִם־תּוּכַל לִסְפֹּר אֹתָם וַיֹּאמֶר לֹו כֹּה יִהְיֶה זַרְעֶךָ׃
성 경: [창15:5]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13:16에서 약속하신 것과 같은 말씀으로 장차 아브람의 후손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케 될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약속은 당시로서는 능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기리고 있는(롬 4:11) 영적 자손들의 수가 세계 전인구의 32.4%(1985년 기준)를 점유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웨헤에민 아도나이 와야흐쉐베하 로 체다카
개역개정,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새번역,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우리말성경,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가톨릭성경,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영어NIV,6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영어NASB,6 Then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reckon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영어MSG,6 And he believed! Believed GOD! God declared him “Set-Right-with-God.”
영어NRSV,6 And he believed the LORD; and the LORD reckon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επιστευσεν αβραμ τω θεω και ελογισθη αυτω εις δικαιοσυνην
라틴어Vulgate,6 credidit Domino et reputatum est ei ad iustitiam
히브리어구약BHS,6 וְהֶאֱמִן בַּיהוָה וַיַּחְשְׁבֶהָ לֹּו צְדָקָה׃
성 경: [창15:6]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여호와를 믿으니 – ‘믿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신뢰하다'(대하 20:20;욥 39:12)는 뜻으로 아브람이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했으며 더 나아가 이미 계시된 ‘여자의 후손’ 메시야에 대하여도 신앙하였음을 증거해 준다(요 8:56;히 11:1).
의(義) – ‘차다크'(*, 의로운 상태가 되다)에서 온 말로 간단히 ‘의의 옷’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죄인으로(3:10;사 20:3;고후 5:3;계 3:17, 18) 오직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는 ‘의의 옷’으로만 그 죄악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롬 3:23-28;4:7, 8;계 19:8).
여기시고 – ‘정하다'(시 106:30), ‘계산하다'(레 27:50), ‘짊어지게 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곧 전가된 ‘의(義)’를 나타낸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전가(轉嫁)의 예를 살펴보면 (1)전 인류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롬 5:12) (2)그리스도에게 전가된 인류의 죄(사 53:5, 6;고후 5:14, 15;히 2:9) (3)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 (롬 4:18-24;빌 3:9) 등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본래 칭의받기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신율(神律) 앞에서 무죄한 상태로 간주됨을 알 수 있는데 본절에 나타난 바 아브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요멜 엘라우 아니 아도나이 아쉘 호체티카 메우르 카스딤 라테트 레카 엩 하아레츠 하조트 레리쉬타흐
개역개정,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새번역,7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 ㉠또는 ‘갈대아’
우리말성경,7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 것으로 주려고 너를 갈대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다.”
가톨릭성경,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영어NIV,7 He also said to him,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out of Ur of the Chaldeans to give you this land to take possession of it.”
영어NASB,7 And He said to him,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out of Ur of the Chaldeans, to give you this land to possess it.”
영어MSG,7 GOD continued, “I’m the same GOD who brought you from Ur of the Chaldees and gave you this land to own.”
영어NRSV,7 Then he said to him,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from Ur of the Chaldeans, to give you this land to possess.”
헬라어구약Septuagint,7 ειπεν δε προς αυτον εγω ο θεος ο εξαγαγων σε εκ χωρας χαλδαιων ωστε δουναι σοι την γην ταυτην κληρονομησαι
라틴어Vulgate,7 dixitque ad eum ego Dominus qui eduxi te de Ur Chaldeorum ut darem tibi terram istam et possideres eam
히브리어구약BHS,7 וַיֹּאמֶר אֵלָיו אֲנִי יְהוָה אֲשֶׁר הֹוצֵאתִיךָ מֵאוּר כַּשְׂדִּים לָתֶת לְךָ אֶת־הָאָרֶץ הַזֹּאת לְרִשְׁתָּהּ׃
성 경: [창15:7]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업을 삼게 하려고 – 직역하면 ‘차지하게 하려고’, ‘상속하게 하려고’. 이는 본래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권리나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를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게획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데에도 역시 분명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깨달아 이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고전 10:31)
와요말 아도나이 아도나이 밤마 에다 키 이라쉔나
개역개정,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새번역,8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말성경,8 그러자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제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가톨릭성경,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영어NIV,8 But Abram said, “O Sovereign LORD, how can I know that I will gain possession of it?”
영어NASB,8 And he said, “O Lord GOD, how may I know that I shall possess it?”
영어MSG,8 Abram said, “Master GOD, how am I to know this, that it will all be mine?”
영어NRSV,8 But he said, “O Lord GOD, how am I to know that I shall possess it?”
헬라어구약Septuagint,8 ειπεν δε δεσποτα κυριε κατα τι γνωσομαι οτι κληρονομησω αυτην
라틴어Vulgate,8 at ille ait Domine Deus unde scire possum quod possessurus sim eam
히브리어구약BHS,8 וַיֹּאמַר אֲדֹנָי יֱהוִה בַּמָּה אֵדַע כִּי אִירָשֶׁנָּה׃
성 경: [창15:8]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무엇으로 알리이까 – 이 질문은 아직껏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신앙의 반문이 아니라,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한 열의에서 나온 요구이다. 이와 동일한 경우로는 기드온의 간구(삿 6:17-24),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8), 마리아의 물음(눅 1:34-38)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필요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증거로 확신을 심어 주시는데 우리들도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과 그에 따르는 확신을 지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 16:17).
와요멜 엘라우 케하 리 엑라 메슐레쉐트 웨에즈 메슐레쉐트 웨아일 메슐라쉬 웨톨 웨고잘
개역개정,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새번역,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우리말성경,9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새끼 집비둘기를 내게 가져와라.”
가톨릭성경,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영어NIV,9 So the LORD said to him, “Bring me a heifer, a goat and a ram, each three years old, along with a dove and a young pigeon.”
영어NASB,9 So He said to him, “Bring Me a three year old heifer, and a three year old female goat, and a three year old ram, and a turtledove, and a young pigeon.”
영어MSG,9 GOD said, “Bring me a heifer, a goat, and a ram, each three years old, and a dove and a young pigeon.”
영어NRSV,9 He said to him, “Bring me a heifer three years old, a female goat three years old, a ram three years old, a turtledove, and a young pigeon.”
헬라어구약Septuagint,9 ειπεν δε αυτω λαβε μοι δαμαλιν τριετιζουσαν και αιγα τριετιζουσαν και κριον τριετιζοντα και τρυγονα και περιστεραν
라틴어Vulgate,9 respondens Dominus sume inquit mihi vaccam triennem et capram trimam et arietem annorum trium turturem quoque et columbam
히브리어구약BHS,9 וַיֹּאמֶר אֵלָיו קְחָה לִי עֶגְלָה מְשֻׁלֶּשֶׁת וְעֵז מְשֻׁלֶּשֶׁת וְאַיִל מְשֻׁלָּשׁ וְתֹר וְגֹוזָל׃
성 경: [창15:9]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나를 위하여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영원성을 확약하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삼 년 된 –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숭 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Mur-phy).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2-17).
와이카흐 로 엩 콜 엘레 와예바텔 오탐 밭타윀 와이텐 이쉬 비트로 리케라트 레에후 웨엩 하치폴 로 바타르
개역개정,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새번역,10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우리말성경,10 아브람이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 가져왔고 중간을 쪼개어 그 쪼갠 것을 서로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그러나 새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영어NIV,10 Abram brought all these to him, cut them in two and arranged the halves opposite each other; the birds, however, he did not cut in half.
영어NASB,10 Then he brought all these to Him and cut them in two, and laid each half opposite the other; but he did not cut the birds.
영어MSG,10 He brought all these animals to him, split them down the middle, and laid the halves opposite each other. But he didn’t split the birds.
영어NRSV,10 He brought him all these and cut them in two, laying each half over against the other; but he did not cut the birds in two.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ελαβεν δε αυτω παντα ταυτα και διειλεν αυτα μεσα και εθηκεν αυτα αντιπροσωπα αλληλοις τα δε ορνεα ου διειλεν
라틴어Vulgate,10 qui tollens universa haec divisit per medium et utrasque partes contra se altrinsecus posuit aves autem non divisit
히브리어구약BHS,10 וַיִּקַּח־לֹו אֶת־כָּל־אֵלֶּה וַיְבַתֵּר אֹתָם בַּתָּוֶךְ וַיִּתֵּן אִישׁ־בִּתְרֹו לִקְרַאת רֵעֵהוּ וְאֶת־הַצִפֹּר לֹא בָתָר׃
성 경: [창15:10]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 19), 이는 (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 (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때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피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 즉 비둘기(9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Wordsworth)는 그것이 결코 나뉘일수 없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나(마 3:16;눅 3:22;요 1:32) 실제로는 그것이 쪼갤 필요가 있을 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Kalisch).
와예레드 하아이트 알 하페가림 와야쉡 오탐 아브람
개역개정,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새번역,11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우리말성경,11 솔개들이 그 쪼갠 고기들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은 그것들을 내쫓았습니다.
가톨릭성경,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영어NIV,11 Then birds of prey came down on the carcasses, but Abram drove them away.
영어NASB,11 And the birds of prey came down upon the carcasses, and Abram drove them away.
영어MSG,11 Vultures swooped down on the carcasses, but Abram scared them off.
영어NRSV,11 And when birds of prey came down on the carcasses, Abram drove them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τεβη δε ορνεα επι τα σωματα τα διχοτομηματα αυτων και συνεκαθισεν αυτοις αβραμ
라틴어Vulgate,11 descenderuntque volucres super cadavera et abigebat eas Abram
히브리어구약BHS,11 וַיֵּרֶד הָעַיִט עַל־הַפְּגָרִים וַיַּשֵּׁב אֹתָם אַבְרָם׃
성 경: [창15:1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아브람이 쫓았더라 – 솔개와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Knobel, Lange, Kalisch).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nathan, Rosenmuller, Bush).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뭏든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와예히 핫쉐메쉬 라보 웨탈데마 나펠라 알 아브람 웨힌네 에마 하쉐카 게돌라 노펠레트 알라우
개역개정,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새번역,12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우리말성경,12 해가 질 무렵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캄캄해지자 그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가톨릭성경,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영어NIV,12 As the sun was setting, Abram fell into a deep sleep, and a thick and dreadful darkness came over him.
영어NASB,12 Now when the sun was going down, a deep sleep fell upon Abram; and behold, terror and great darkness fell upon him.
영어MSG,12 As the sun went down a deep sleep overcame Abram and then a sense of dread, dark and heavy.
영어NRSV,12 As the sun was going down, a deep sleep fell upon Abram, and a deep and terrifying darkness descended upon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12 περι δε ηλιου δυσμας εκστασις επεπεσεν τω αβραμ και ιδου φοβος σκοτεινος μεγας επιπιπτει αυτω
라틴어Vulgate,12 cumque sol occumberet sopor inruit super Abram et horror magnus et tenebrosus invasit eum
히브리어구약BHS,12 וַיְהִי הַשֶּׁמֶשׁ לָבֹוא וְתַרְדֵּמָה נָפְלָה עַל־אַבְרָם וְהִנֵּה אֵימָה חֲשֵׁכָה גְדֹלָה נֹפֶלֶת עָלָיו׃
성 경: [창15:12]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Cavin, Keil, Rosenmuller, Ka-lisch).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와요멜 레아브람 야도아 테다 키 겔 이흐예 자르아카 베에레츠 로 라헴 와아바둠 웨인누 오탐 알바 메오트 솨나
개역개정,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새번역,13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3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분명히 알아라. 네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가 돼 그들을 섬길 것이며 400년 동안 그들은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가톨릭성경,13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영어NIV,13 Then the LORD said to him, “Know for certain that your descendants will be strangers in a country not their own, and they will be enslaved and mistreated four hundred years.
영어NASB,13 And God said to Abram, “Know for certain that your descendants will be strangers in a land that is not theirs, where they will be enslaved and oppressed four hundred years.
영어MSG,13 GOD said to Abram, “Know this: your descendants will live as outsiders in a land not theirs; they’ll be enslaved and beaten down for 400 years.
영어NRSV,13 Then the LORD said to Abram, “Know this for certain, that your offspring shall be aliens in a land that is not theirs, and shall be slaves there, and they shall be oppressed for four hundred years;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ρρεθη προς αβραμ γινωσκων γνωση οτι παροικον εσται το σπερμα σου εν γη ουκ ιδια και δουλωσουσιν αυτους και κακωσουσιν αυτους και ταπεινωσουσιν αυτους τετρακοσια ετη
라틴어Vulgate,13 dictumque est ad eum scito praenoscens quod peregrinum futurum sit semen tuum in terra non sua et subicient eos servituti et adfligent quadringentis annis
히브리어구약BHS,13 וַיֹּאמֶר לְאַבְרָם יָדֹעַ תֵּדַע כִּי־גֵר יִהְיֶה זַרְעֲךָ בְּאֶרֶץ לֹא לָהֶם וַעֲבָדוּם וְעִנּוּ אֹתָם אַרְבַּע מֵאֹות שָׁנָה׃
성 경: [창15:13]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고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사백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 41;갈 3:17) ‘사 대'(16절)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
웨감 엩 학고이 아쉘 야압보두 단 아노키 웨아하레 켄 예체우 비르쿠쉬 가돌
개역개정,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새번역,14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우리말성경,14 그러나 내가 네 자손들이 섬기던 그 민족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며 그 후 네 자손이 많은 재산을 갖고 나올 것이다.
가톨릭성경,14 그러나 네 후손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그런 다음, 네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영어NIV,14 But I will punish the nation they serve as slaves, and afterward they will come out with great possessions.
영어NASB,14 “But I will also judge the nation whom they will serve; and afterward they will come out with many possessions.
영어MSG,14 Then I’ll punish their slave masters; your offspring will march out of there loaded with plunder.
영어NRSV,14 but I will bring judgment on the nation that they serve, and afterward they shall come out with great possession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το δε εθνος ω εαν δουλευσωσιν κρινω εγω μετα δε ταυτα εξελευσονται ωδε μετα αποσκευης πολλης
라틴어Vulgate,14 verumtamen gentem cui servituri sunt ego iudicabo et post haec egredientur cum magna substantia
히브리어구약BHS,14 וְגַם אֶת־הַגֹּוי אֲשֶׁר יַעֲבֹדוּ דָּן אָנֹכִי וְאַחֲרֵי־כֵן יֵצְאוּ בִּרְכֻשׁ גָּדֹול׃
성 경: [창15:14]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 (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웨앝타 타보 엘 아보테카 베솰롬 팈카베르 베세바 토바
개역개정,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새번역,15 그러나 너는 오래오래 살다가, 고이 잠들어 묻힐 것이다.
우리말성경,15 그러나 너는 복된 노년을 보내다가 평안 속에서 땅에 묻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가톨릭성경,15 너는 평화로이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다. 너는 장수를 누리고 무덤에 묻힐 것이다.
영어NIV,15 You, however, will go to your fathers in peace and be buried at a good old age.
영어NASB,15 “And as for you, you shall go to your fathers in peace; you shall be buried at a good old age.
영어MSG,15 But not you; you’ll have a long and full life and die a good and peaceful death.
영어NRSV,15 As for yourself, you shall go to your ancestors in peace; you shall be buried in a good old ag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συ δε απελευση προς τους πατερας σου μετ’ ειρηνης ταφεις εν γηρει καλω
라틴어Vulgate,15 tu autem ibis ad patres tuos in pace sepultus in senectute bona
히브리어구약BHS,15 וְאַתָּה תָּבֹוא אֶל־אֲבֹתֶיךָ בְּשָׁלֹום תִּקָּבֵר בְּשֵׂיבָה טֹובָה׃
성 경: [창15:15]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 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 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웨돌 레비이 야슈부 헨나 키 로 솰렘 아욘 하에모리 아드 헨나
개역개정,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새번역,16 너의 자손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 벌을 받을 만큼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16 네 자손은 4대 만에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NIV,16 In the fourth generation your descendants will come back here, for the sin of the Amorites has not yet reached its full measure.”
영어NASB,16 “Then in the fourth generation they shall return here, for the iniquity of the Amorite is not yet complete.”
영어MSG,16 Not until the fourth generation will your descendants return here; sin is still a thriving business among the Amorites.”
영어NRSV,16 And they shall come back here in the fourth generation; for the iniquity of the Amorites is not yet complet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τεταρτη δε γενεα αποστραφησονται ωδε ουπω γαρ αναπεπληρωνται αι αμαρτιαι των αμορραιων εως του νυν
라틴어Vulgate,16 generatione autem quarta revertentur huc necdum enim conpletae sunt iniquitates Amorreorum usque ad praesens tempus
히브리어구약BHS,16 וְדֹור רְבִיעִי יָשׁוּבוּ הֵנָּה כִּי לֹא־שָׁלֵם עֲוֹן הָאֱמֹרִי עַד־הֵנָּה׃
성 경: [창15:16]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사대 만에 – 당시 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담의 증손 레위가 일 세대,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 (*)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롬 2:4, 5;벧후 3:8, 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대하 36:15, 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 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 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고후 6:2).
와예히 핫쉐메쉬 바아 와아라타 하야 웨힌네 탄눌 아솬 웨라피드 에쉬 아쉘 아발 베인 학게자림 하엘레
개역개정,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새번역,17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우리말성경,17 해가 지고 어둠이 덮이자 연기 나는 화로와 불붙은 횃불이 그 쪼갠 고기들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가톨릭성경,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영어NIV,17 When the sun had set and darkness had fallen, a smoking firepot with a blazing torch appeared and passed between the pieces.
영어NASB,17 And it came about when the sun had set, that it was very dark, and behold, there appeared a smoking oven and a flaming torch which passed between these pieces.
영어MSG,17 When the sun was down and it was dark, a smoking firepot and a flaming torch moved between the split carcasses.
영어NRSV,17 When the sun had gone down and it was dark, a smoking fire pot and a flaming torch passed between these pieces.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επει δε εγινετο ο ηλιος προς δυσμαις φλοξ εγενετο και ιδου κλιβανος καπνιζομενος και λαμπαδες πυρος αι διηλθον ανα μεσον των διχοτομηματων τουτων
라틴어Vulgate,17 cum ergo occubuisset sol facta est caligo tenebrosa et apparuit clibanus fumans et lampas ignis transiens inter divisiones illas
히브리어구약BHS,17 וַיְהִי הַשֶּׁמֶשׁ בָּאָה וַעֲלָטָה הָיָה וְהִנֵּה תַנּוּר עָשָׁן וְלַפִּיד אֵשׁ אֲשֶׁר עָבַר בֵּין הַגְּזָרִים הָאֵלֶּה׃
성 경: [창15:17]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혹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 (*)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불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출 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 13:21, 22;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19:18;겔 10:2-4;슥 12:6;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9:8-17)일 뿐임을 강조해 준다.
바욤 하후 카라트 아도나이 엩 아브람 베리티 레모르 라자르아카 나탙티 엩 하아레츠 하조트 민네하르 미츠라임 아드 한나하르 학가돌 네하르 페라트
개역개정,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새번역,18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우리말성경,18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 땅을 주었다.
가톨릭성경,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영어NIV,18 On that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with Abram and said, “To your descendants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to the great river, the Euphrates–
영어NASB,18 On that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with Abram, saying, “To your descendants I have given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as far as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영어MSG,18 That’s when GOD made a covenant with Abram: “I’m giving this land to your children, from the Nile River in Egypt to the River Euphrates in Assyria–
영어NRSV,18 On that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with Abram, saying, “To your descendants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εν τη ημερα εκεινη διεθετο κυριος τω αβραμ διαθηκην λεγων τω σπερματι σου δωσω την γην ταυτην απο του ποταμου αιγυπτου εως του ποταμου του μεγαλου ποταμου ευφρατου
라틴어Vulgate,18 in die illo pepigit Dominus cum Abram foedus dicens semini tuo dabo terram hanc a fluvio Aegypti usque ad fluvium magnum flumen Eufraten
히브리어구약BHS,18 בַּיֹּום הַהוּא כָּרַת יְהוָה אֶת־אַבְרָם בְּרִית לֵאמֹר לְזַרְעֲךָ נָתַתִּי אֶת־הָאָרֶץ הַזֹּאת מִנְּהַר מִצְרַיִם עַד־הַנָּהָר הַגָּדֹל נְהַר־פְּרָת׃
성 경: [창15:18]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애굽강에서부터…유브라데까지 –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이다. 이는 곧 애굽 국경 부근인 가사(Gaza) 남쪽 지방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있던 큰 성읍 딥사(Tiphsa)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던 당시에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뭇했었고(민34:2, 3) 홋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에 열거된 국경이 형성되었다(왕상 4:41;대하 9:26). 따라서 본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뜻 외에 상징적으로 하늘 가나안의 지경이 크고 넓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주노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는 ‘내가 이미 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기업이 될 땅에 대한 반복된 약속(12:7;13:15) 에다 인준(認准)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말을 그리스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께선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천국이 이미 임하였고(마 12:28)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 3:36).
엩 핰케니 웨엩 핰케니지 웨에트 핰카드모니
개역개정,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새번역,19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우리말성경,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가톨릭성경,19 이는 카인족, 크나즈족, 카드몬족,
영어NIV,19 the land of the Kenites, Kenizzites, Kadmonites,
영어NASB,19 the Kenite and the Kenizzite and the Kadmonite
영어MSG,19 the country of the Kenites, Kenizzites, Kadmonites,
영어NRSV,19 the land of the Kenites, the Kenizzites, the Kadmonites,
헬라어구약Septuagint,19 τους καιναιους και τους κενεζαιους και τους κεδμωναιους
라틴어Vulgate,19 Cineos et Cenezeos et Cedmoneos
히브리어구약BHS,19 אֶת־הַקֵּינִי וְאֶת־הַקְּנִזִּי וְאֵת הַקַּדְמֹנִי׃
웨엩 하팉티 웨엩 핲페맂지 웨엩 호르파임
개역개정,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새번역,20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르바 사람과
우리말성경,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가톨릭성경,20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라파족,
영어NIV,20 Hittites, Perizzites, Rephaites,
영어NASB,20 and the Hittite and the Perizzite and the Rephaim
영어MSG,20 Hittites, Perizzites, Rephaim,
영어NRSV,20 the Hittites, the Perizzites, the Rephaim,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τους χετταιους και τους φερεζαιους και τους ραφαιν
라틴어Vulgate,20 et Hettheos et Ferezeos Rafaim quoque
히브리어구약BHS,20 וְאֶת־הַחִתִּי וְאֶת־הַפְּרִזִּי וְאֶת־הָרְפָאִים׃
웨엩 하에모리 웨엩 하케나아니 웨엩 학기르가쉬 웨엩 하예부시
개역개정,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새번역,21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을 다 포함한다.”
우리말성경,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다.”
가톨릭성경,21 아모리족, 가나안족, 기르가스족, 그리고 여부스족이 살고 있는 땅이다.”
영어NIV,21 Amorites, Canaanites, Girgashites and Jebusites.”
영어NASB,21 and the Amorite and the Canaanite and the Girgashite and the Jebusite. ”
영어MSG,21 Amorites, Canaanites, Girgashites, and Jebusites.”
영어NRSV,21 the Amorites, the Canaanites, the Girgashites, and the Jebusite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τους αμορραιους και τους χαναναιους και τους ευαιους και τους γεργεσαιους και τους ιεβουσαιους
라틴어Vulgate,21 et Amorreos et Chananeos et Gergeseos et Iebuseos
히브리어구약BHS,21 וְאֶת־הָאֱמֹרִי וְאֶת־הַכְּנַעֲנִי וְאֶת־הַגִּרְגָּשִׁי וְאֶת־הַיְבוּסִי׃ ס
성 경: [창15:19,20,2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아브람 당시를 전후하여 가나안 지경에 흩어져 살던 여러 족속들이다. 훗날 이스라엘이 이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에 기인한 축복이었지만 이들 족속들의 패망 원인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렘 31:29, 30).
겐 족속 – 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 살던 족속인데 이스라엘의 가나안정복 이후에도 유다 자손과 함께 그곳에 정착하였다(삿 1:16). 모세의 장인 호밥이 이 겐 사람이다(삿 1:16;4:11).
그니스 족속 – 겐족속과 함께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으로 추정된다. 헤브론 땅을 분깃으로 받은 갈렙이 이 그니스 사람이다(수 14:13, 14).
갓몬 족속 – ‘갓몬’은 동쪽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들이 판레스틴 동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 성경 그 어디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이외에 헷 족속과…여부스 족속에 대하여선 10:15, 16;13:7;14:5 을 참조하라.
728×90
반응형
창세기 제15장 강해
창세기 제15장 강해 – 횃불 언약
횃불언약은 이전의 여자의 후손의 언약(창 3:15)에서 이후 다윗 언약(삼하 7:5-16),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새 언약(마 26:26-29)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구원을 위한 언약이 각종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인간을 위한 구속 사업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을 알게 합니다. 모세가 이 글을 쓸 당시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을 위한 광야의 여정 중이었습니다. 횃불언약은 바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역사적이며 신적인 소유권의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침략자인 메소보다미아 4개 연합군을 물리치고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 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후에 여호와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람에게 언약(12:1-3;13:14-18)을 재확인시켜 주심으로써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일반적으로 꿈이나 황홀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켜 이상(민 12:6; 삼상 3:1)이라고 합니다. 인류 초기에서부터 족장시대에까지는 일반적으로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꿈이나 비정상적인 상태에서가 아닌, 깨어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전쟁 후에 영적, 육적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에 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안전을 보장하셨습니다. 아직 전쟁으로 인한 위험이나 두려움이 남아 있는 상태요, 가나안을 확실하게 점령하지 못한 나그네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안심시키고 계십니다. 특히 상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상급 그 자체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상급이 된다는 말씀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상급이 주어질 것인지에 대하여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상급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후사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주 여호와’(아도나이 여호와:אדני יהוהד)는 언약의 성취와 관련할 때 사용되는 명칭입니다(삼하 7:28).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급은 곧 언약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다멕섹 출신의 종으로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청지기입니다(24:2-10). 고대 사회에서는 후사가 없을 때에는 충실한 종을 양자로 삼고 재산을 양도해 주는 대신 노후의 삶을 의탁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길리운 자는 집에서 태어난 자로 종의 자식입니다. 아브람은 아직 자신의 혈육으로 후사가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한 집안이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후사를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13:16에서 이미 약속하신 바 있는 아브람의 몸에서 난 아브람의 씨로 후사를 주신다고 다시 한 번 말씀을 하십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의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반복하시면서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많은 별들을 보여주신 이유는 실제적인 육신의 후손이 별들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번성할 것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이며, 또한 이들 후손은 캄캄한 가운데 별처럼 빛나는 삶과 존귀함을 입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6: 아브람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서 아브람에게 후사에 대한 약속을 주시자 아브람은 그것을 ‘믿으니’(아만:אמן) 즉 어떤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의’(체다카:צדקה)는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상태로서, 타락 이전의 인간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완전한 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롬 3:10). 다만 하나님의 ‘칭의(稱義)’로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롬 3:23)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신 것입니다.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업을 삼게 하려고’는 기업을 상속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타락한 이방 땅에서 그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즉 무조건적 은혜입니다(엡 2:8). 이 은혜가 오늘날 내가 죄인이지만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얻게 된 근본적 이유입니다.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확실한 징표를 요구하는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기드온(삿 6:17)이나 마리아(눅 1:34,35)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언약을 확증할 표적을 삼기 위해 제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 제물들로 드려지는 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와 신약의 모든 예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기 위해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희생 제물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보게 놓고 계약자 쌍방이 그 가운데로 함께 지나가는 것은 계약을 반드시 지킬 것에 대한 약속인 동시에 계약 위반자는 쪼개진 제물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렘 34:18-21). 새는 두 마리를 준비하여 쪼개지 않고 각각 한 마리씩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새는 반으로 자를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훗날 모세 율법에서도 희생 제물로 드려진 새를 쪼개지 않게 했습니다(레위 1:17). 이 쪼개진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합니다.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제물을 채가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장차 애굽에서 겪게 될 고난의 예표라고 주장합니다. 시편 105:42(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에서는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은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적, 신앙적 관계가 그의 후손 전체를 사망의 엄습에서 구원, 보존하는 하나님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아브람이 해질 때에 깊은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의 언약 체결을 위한 제물을 드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상’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이상’ 중에 있던 시간은 만 하루 동안 계속 되었을 것이며, 이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이 잠은 초자연적인 수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잠 속에서 아브람은 공포를 느낄 정도로 너무나 캄캄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의 어두움이 아니라 초자연적 수면상태에서의 어두움입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금부터 이르실 말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할 것입니다. 12절에서 아브람에 임하여 너무나 캄캄하여 두려움을 느낀 것이 종살이에 대한 암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징치라는 말은 징계하여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사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 내리 10가지 재앙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 행위입니다.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비록 이스라엘이 400년간의 노예 생활로 애굽의 채찍 아래 머물며 고통을 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마치 전쟁에서의 승리자처럼 많은 전리품을 얻어 당당하게 나올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아브람은 장수한 후에 앞서 간 경건한 신앙의 조상들이 있는 영원한 세상으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종말의 복은 인생의 역경을 믿음으로 승리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꼭 같이 주어질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나님과 영원히 더불어 생존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기쁘고 복된 과정인 것입니다.
16: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대라고 하는 말씀은 당시 인간의 수명을 100년으로 잡을 때에 4대로 400년을 가리킵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에서 제일 막강한 대표적 족속입니다. 이 족속의 이름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통칭하는 호칭으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48:22).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관영하다는 말은 충분한, 가득 찬,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즉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심판을 방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는 400년 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아모리 족속을 철저히 진멸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를 밝혀주는 좋은 근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십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를 거절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지만 진노의 날에는 철저하게 진멸하시는 엄위하신 분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벧후 3:9,10).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2절의 상황 ‘해질 때에’에서 좀 더 진행이 되어 밤이 매우 깊어진 시점입니다. 상징적으로는 지금 제시되고 있는 예언에서 보이듯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이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 짙은 어둠은 머지않아 찬연한 새벽이 곧 다가올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연기 나는 풀무’ 여기에서 ‘풀무(탄누르:תנור)’는 불을 담기 위한 둥근 형태의 항아리로 화로를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장차 당할 고난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이 풀무에서 연기가 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고초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의 시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런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타는 횃불’ 이는 연기 나는 풀무에서 솟아 났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불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호와 인도하심을, 그리고 원수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슥 12:6). 따라서 이 불이 연기 나는 풀무에서 솟아올랐다면 하나님께서 선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것, 곧 이스라엘 압제하는 애굽을 철저히 징치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불꽃으로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이는 아브람과의 계약이 쌍무계약이 아닌 편무계약(片務契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신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당신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이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소망에 대하여 기도하며 기대를 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아브람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이 번성하게 만드시며, 그들에게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강에 이르기까지 넓은 땅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부패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의 당사자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준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지금까지 반복된 아브람의 분깃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한 범위가 언급이 되었습니다. 아브람과 그 후손의 영역은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연토라는 것입니다. ‘애굽 강’은 애굽의 나일강을 말하지 않고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 쪽으로 흐르는 ‘애굽 시내’를 가리킵니다(민 34:5; 수 15:4). 이는 이스라엘 영토의 남단 경계를 말할 때 자주 사용이 됩니다(왕상 8:65; 대하 7:8). 이런 하나님의 언약은 출애굽 직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섰던 여호수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쟁취하지 못하였다가(민 34:2,3), 다윗과 솔로몬 치세 하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왕상 4:21; 대하 9:26).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신 이상 이는 이미 그 계약이 성취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아직 천국에서의 온전한 영생을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의 기쁨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9-21: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장차 아브람의 후손들이 거주할 가나안에 거하는 10족속의 명단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대개 7족속(신 7:1)으로 언급되지만, 여기에서 10족속이 언급되는 이유는 아브람의 후손들이 완전하게 철저하게 이들의 땅들을 차지할 것일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겐 족속’은 가나안 남부에 거주한 산악 족속(삼상 15:6)으로 모세의 장인 호밥이 대표적 인물입니다(삿 1:16). 이들 중 일부는 통일 왕국 시대에도 여전히 가나안 남부 지역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삼상 15:6). ‘그니스 족속’은 겐 족속과 같은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족속들은 모세 시대 이전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갓몬 족속’은 가나안 동쪽, 아마 유브라데 근방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헷 족속’은 메소보다미아와 가나안, 애굽 북부, 지중해 연안 등 소아시아와 근동 지역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강력한 족속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리스 족속’은 성읍 밖의 평야 지대에 촌락을 형성하고 산 것으로 추측합니다. ‘아모리 족속’은 아브람 당시 요단과 사해 서쪽 연안에 거주한 가나안인의 대표적 족속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솔로몬 시대까지 잔존하였습니다(삿 1:35; 왕상 9:20, 21). ‘가나안 족속’은 개별적 특성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의 총칭으로 사용됩니다(12:6). ‘기르가스 족속’은 여리고와 요단 서안을 거점으로 산 족속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수 24:11). ‘여부스 족속’은 가나안 산지에 거한 족속이지만 여호수아 이후로 왕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습니다(수 15:36; 삼하 5:6, 7).
메튜 헨리 주석, 창세기 15장
15:1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1)(창세기 15:1) 여기서는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볼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 조약을 맺은 시기. 그것은 “이 일 후에” 였다. 즉 다음 일들이 있은 후였다. 1. 친구와 이웃들을 그들의 고통에서 구출해 줌으로써 아브람의 관대한 사랑이라는 훌륭한 행동이 있은 후였다. 그것도 값이나 보답을 위한 것이 아닌 행동을 한 후였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 그에게 임하셨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2. 4왕과 싸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였다. 아브람이 그 승리로 인하여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뽐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영적인 축복과의 신앙적인 대화는 지나치게 현세적 기쁨에 탐닉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훌륭한 방법이 됨을 명심하자. 일반 섭리의 은사는 계약의 사랑의 은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친구와 이웃들을 그들의 고통에서 구출해 줌으로써 아브람의 관대한 사랑이라는 훌륭한 행동이 있은 후였다. 그것도 값이나 보답을 위한 것이 아닌 행동을 한 후였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 그에게 임하셨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4왕과 싸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였다. 아브람이 그 승리로 인하여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뽐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영적인 축복과의 신앙적인 대화는 지나치게 현세적 기쁨에 탐닉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훌륭한 방법이 됨을 명심하자. 일반 섭리의 은사는 계약의 사랑의 은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Ⅱ. 하나님이 아브람과 함께 이야기하신 방법.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는 곧 하나님께서 친히 그 뜻을 아브람에게 나타내셨다는 뜻이다)라 했으니, 이는 아브람이 깨어 있었다는 뜻이며, 속죄소에 나타나시는 여호와의 어떤 가견적 모습이 나타났거나 또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어떤 감각적인 현현으로 나타났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계시하시는 방법은 감각 세계에 거하는 우리들의 상황에 맞추어 주신다는 점을 기억하라. Ⅲ.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은혜로운 보증. 1. 하나님은 “아브람아!” 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는 곧 아브람의 큰 영광이었으며, 그 이름을 위대하게 한 것이요, 그 신앙에도 큰 용기와 도움을 준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심중에 올려올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임을 명심하라. 말씀이 “오라, 모든 사람이여!” (사 55:1)라 하시고, 성령은 “오라, 누구이든!” 이라고 하신다.
2. 불안해하고 당황해 하지 말라고 아브람에게 경고하셨다. 즉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아브람은 자기가 괴멸시킨 4왕들이 재 규합하여 자기를 습격하여 망하게 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두려워 말라. 그들의 보복이나 이웃들의 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돌보리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목 해 둘 것이 있다.
(1) 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라도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후 7:5).
(2) 하나님은 지금껏 은밀히 계셨다 하더라도, 자기 백성의 공포심을 감찰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아신다” (시 31:7)
(3)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두려움이든 그 두려움에 좌절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시온에 있는 죄인들을 두려워 할 것이나 아브람은 두려워 말라.
3.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안전과 행복을 보증하셨으니,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는 안전이다. “나는 너의 방패라.” 또는 보다 강조하여 “나는 네에게 방패이니라” 고 말씀하시니 그와 함께 하시고 돌보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신 분이다(대상 17:24 참조).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에게 대항하는 온갖 파괴적인 죄악에서 그들을 안보하는 방패요, 그들에게 준비가 되는 방패이며,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패이시니, 장래에도 그리할 것이며,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당혹케 하고 괴롭히는 모든 공포를 잠잠케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2) 하나님께서 친히 배푸시는 행복이다. 즉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라고 했다. 상급을 주시는 자일 뿐 아니라 상급(자체)이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소돔 왕이 제의한 보상을 기꺼이 거절했으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때문에 그의 상급이 상실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의미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1] 신앙의 순종과 극기에 대한 상급은 지극히 큰 것이다(고전 2:9). [2]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영혼들의 선택되고 약속된 행복이 되니, 이 세상에서 택하여 내고 보다 나은 곳을 약속해 주는 행복이 되신다. 그가 곧 “그들의 상속과 잔은 분깃” 이시다.하나님은 “아브람아!” 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는 곧 아브람의 큰 영광이었으며, 그 이름을 위대하게 한 것이요, 그 신앙에도 큰 용기와 도움을 준 것이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심중에 올려올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임을 명심하라. 말씀이 “오라, 모든 사람이여!” (사 55:1)라 하시고, 성령은 “오라, 누구이든!” 이라고 하신다.불안해하고 당황해 하지 말라고 아브람에게 경고하셨다. 즉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아브람은 자기가 괴멸시킨 4왕들이 재 규합하여 자기를 습격하여 망하게 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두려워 말라. 그들의 보복이나 이웃들의 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돌보리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목 해 둘 것이 있다.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라도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후 7:5).하나님은 지금껏 은밀히 계셨다 하더라도, 자기 백성의 공포심을 감찰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아신다” (시 31:7)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두려움이든 그 두려움에 좌절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시온에 있는 죄인들을 두려워 할 것이나 아브람은 두려워 말라.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안전과 행복을 보증하셨으니, 다음과 같다.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는 안전이다. “나는 너의 방패라.” 또는 보다 강조하여 “나는 네에게 방패이니라” 고 말씀하시니 그와 함께 하시고 돌보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신 분이다(대상 17:24 참조).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에게 대항하는 온갖 파괴적인 죄악에서 그들을 안보하는 방패요, 그들에게 준비가 되는 방패이며,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패이시니, 장래에도 그리할 것이며,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당혹케 하고 괴롭히는 모든 공포를 잠잠케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하나님께서 친히 배푸시는 행복이다. 즉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라고 했다. 상급을 주시는 자일 뿐 아니라 상급(자체)이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소돔 왕이 제의한 보상을 기꺼이 거절했으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때문에 그의 상급이 상실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의미한다. 다음을 주목하자.신앙의 순종과 극기에 대한 상급은 지극히 큰 것이다(고전 2:9).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영혼들의 선택되고 약속된 행복이 되니, 이 세상에서 택하여 내고 보다 나은 곳을 약속해 주는 행복이 되신다. 그가 곧 “그들의 상속과 잔은 분깃” 이시다.
15:2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2)(창세기 15:2-6) 여기에는 아브람에게 수많은 자손이 계승될 것을 허락하신다는 확증이 있다. Ⅰ. 거듭되는 아브람의 불평(2,3절). 이것이 그 약속에 대한 한 계기가 된다. 아브람을 몹시 괴롭히는 고통은 그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불평을 여호와 앞에 토하며 자기의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한다” (시 142:2). 하나님께 불평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그에게 불평을 호소하고 우리 슬픔을 자세히 아뢸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신의가 두텁고 인정 깊은 친구에게 불평의 사유를 털어놓은 것은 무거운 짐진 영혼에게 다소간 마음에 편안을 준다. 그와 같은 친구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의 귀는 항상 열려 있다. 아브람의 불평은 4가지였다. 1. 지식이 없다는 것(3절).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아들 뿐 아니라 “아무런 씨도” 주시기 아니하셨다는 뜻이다. 만일 그에게 딸이라도 있었다면 그 딸로부터 약속된 메시야가 오셨을 것이며, 메시야는 그 여인의 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도 딸도 전혀 없었다. 그는 “내게”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이웃에는 자녀들이 많고, 자기 종들도 자기의 집에서 낳은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주께서 아무 것도 주시지 아니하셨나이다” 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아브람을 총애한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자녀가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보아야 함을 기억하자. 또한 하나님께서는, 흔히 하나님께 낯선 다른 사람들에게는 풍성히 주시는 현세적 즐거움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허락지 아니하시기도 하신다.
2. 자기에게는 앞으로도 자식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평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내가 자식 없이 가오니, 점점 늙어가고, 언덕을 급히 내려가는도다. 오히려 그보다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모든 길을 가고 있도다. 나는 자식 없이 죽는구나.” 70인역 성격에 기록된 대로 “나는 세상을 떠나지만 내 뒤에는 자식을 남기지 않는도다.”
3. 지금으로서는 자기에게 있는 종들이 아들을 대신해야 할 형편이라는 불평이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집의 청지기는 다메섹의 엘리에셀이었다.” 아브람은 그에게 자가 가정일과 재산을 위임하였고, 그 종은 신실했을 것이니 그의 충성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충성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집에서 길리운자” 가 그의 후사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 위하여 수고했던 모든 것을 그가 다스리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위하여 수고했던 모든 것을 그가 다스리게 될 처지였다.(전 2:18, 19, 21).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람으로 “큰 민족” 을 이루게 하시리라는 것(12:2)과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13: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란 것은 그가 낳은 씨일 것인지, 양자 삼은 씨일 것인지 즉 자기가 난 아들에 의해서일지 단지 그의 집안 중의 한 아들에 의해서일지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아브람은 “이제 여호와여, 만일 그가 양자에 불과하다면 내 종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 틀림없으니, 그로부터 계승됨을 약속된 씨에 대한 불명예가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속된 자비가 지연되는 동안, 우리들의 불신앙과 초조가 그 약속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하자.
4. 아들이 없는 것이 굉장히 큰 고통이라는 불평이다. 즉 그것이 그가 향유했던 온갖 즐거움을 앗아가고 만다는 불평이다.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셨나이까? 내게 아들이 없다면 모든 것이 내게는 무의미합니다.
(1) 만일 아브람이 현세의 즐거움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불평은 비판받을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좋은 것을 주셨다. 그리나 약속을 통해 더욱 좋은 것은 그에게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고 말씀하신 직후에, 신앙의 조상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無子)하나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극히 큰 잘못이라 하겠다. 하나님과 계약적 관계에 있다는 것의 이점과 하나님께 관심하는 일의 이점이 모든 세상적 위안의 결여를 능히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그 계약관계와 관심의 이점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2) 그러나 아브람이 여기서 약속된 씨에 유의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의 욕망이 간절함은 매우 본받은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위대한 축복에 대한 보증과 자기와 메시야와의 관련에 대한 확증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에 대한 기대를 품으라고 이미 아브람에게 격려해 주신 바 있었다. 그는 부귀와 승리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요한 문제가 회의로 남아 있는 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 했다. 그리스도와 새 계약에 관한 우리들의 관심에 어떤 충분한 증거를 얻기까지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이것도 저것도 내게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 나아간다면, 그 모든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그것은 그 불평의 저변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소간의 불신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권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권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는 종종 신앙인 마저도 그것을 조화시키기 어려움을 알게 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지식이 없다는 것(3절).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아들 뿐 아니라 “아무런 씨도” 주시기 아니하셨다는 뜻이다. 만일 그에게 딸이라도 있었다면 그 딸로부터 약속된 메시야가 오셨을 것이며, 메시야는 그 여인의 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도 딸도 전혀 없었다. 그는 “내게” 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이웃에는 자녀들이 많고, 자기 종들도 자기의 집에서 낳은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주께서 아무 것도 주시지 아니하셨나이다” 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아브람을 총애한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자녀가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보아야 함을 기억하자. 또한 하나님께서는, 흔히 하나님께 낯선 다른 사람들에게는 풍성히 주시는 현세적 즐거움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허락지 아니하시기도 하신다.자기에게는 앞으로도 자식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평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내가 자식 없이 가오니, 점점 늙어가고, 언덕을 급히 내려가는도다. 오히려 그보다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모든 길을 가고 있도다. 나는 자식 없이 죽는구나.” 70인역 성격에 기록된 대로 “나는 세상을 떠나지만 내 뒤에는 자식을 남기지 않는도다.”지금으로서는 자기에게 있는 종들이 아들을 대신해야 할 형편이라는 불평이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집의 청지기는 다메섹의 엘리에셀이었다.” 아브람은 그에게 자가 가정일과 재산을 위임하였고, 그 종은 신실했을 것이니 그의 충성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충성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집에서 길리운자” 가 그의 후사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 위하여 수고했던 모든 것을 그가 다스리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위하여 수고했던 모든 것을 그가 다스리게 될 처지였다.(전 2:18, 19, 21).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람으로 “큰 민족” 을 이루게 하시리라는 것(12:2)과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13: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란 것은 그가 낳은 씨일 것인지, 양자 삼은 씨일 것인지 즉 자기가 난 아들에 의해서일지 단지 그의 집안 중의 한 아들에 의해서일지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아브람은 “이제 여호와여, 만일 그가 양자에 불과하다면 내 종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 틀림없으니, 그로부터 계승됨을 약속된 씨에 대한 불명예가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속된 자비가 지연되는 동안, 우리들의 불신앙과 초조가 그 약속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하자.아들이 없는 것이 굉장히 큰 고통이라는 불평이다. 즉 그것이 그가 향유했던 온갖 즐거움을 앗아가고 만다는 불평이다.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셨나이까? 내게 아들이 없다면 모든 것이 내게는 무의미합니다.만일 아브람이 현세의 즐거움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불평은 비판받을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좋은 것을 주셨다. 그리나 약속을 통해 더욱 좋은 것은 그에게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고 말씀하신 직후에, 신앙의 조상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無子)하나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극히 큰 잘못이라 하겠다. 하나님과 계약적 관계에 있다는 것의 이점과 하나님께 관심하는 일의 이점이 모든 세상적 위안의 결여를 능히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그 계약관계와 관심의 이점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그러나 아브람이 여기서 약속된 씨에 유의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의 욕망이 간절함은 매우 본받은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위대한 축복에 대한 보증과 자기와 메시야와의 관련에 대한 확증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했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에 대한 기대를 품으라고 이미 아브람에게 격려해 주신 바 있었다. 그는 부귀와 승리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요한 문제가 회의로 남아 있는 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 했다. 그리스도와 새 계약에 관한 우리들의 관심에 어떤 충분한 증거를 얻기까지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이것도 저것도 내게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 나아간다면, 그 모든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그것은 그 불평의 저변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소간의 불신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권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권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는 종종 신앙인 마저도 그것을 조화시키기 어려움을 알게 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Ⅱ. 이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 그 불평의 첫 부분에 대하여는(2절),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았다. 그 불평 속에는 조급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이 다소 보다 침착하게 자기 말을 고쳤을 때에는(3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로이 응답하였다. 끊임없이 기도를 힘쓰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간구함이 헛된 일로 끝남을 기억해 두자. 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들의 약속을 분명히 해 주셨다(4절). 네가 가장 염려하듯이, 너의 집에서 길리운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고 했다.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는 후사를 만드신다. “이것은 아니되리라. 이것은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하여 어떤 궁리와 계획을 하든,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2)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자하시며, 오래도록 우리가 단념해 버렸던 긍휼을 다시 베풀어 주신다.
2. 이 같은 약속에 대한 보다 큰 확증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으며(이것을 목적케 한 것은 낮이 오기 전의 이른 아침이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5절0고 말씀해 주셨다. 즉 다음과 같이 되리라는 말씀이다.
(1) 그렇게 엄청나게 많게. 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아브람은 자기가 전혀 자식이 없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서 나는 자손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되리라고 보증해 주셨다.
(2) 그렇게 빛나게. 곤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영광이 주어지기” (롬 9:4) 때문이다. 아브람의 육신을 좇아 난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과도 같았으나(13:16), 그의 영적인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엄청난 수효가 될 뿐 아니라 영광스럽고 매우 귀중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들의 약속을 분명히 해 주셨다(4절). 네가 가장 염려하듯이, 너의 집에서 길리운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고 했다. 살펴보자.하나님께서는 후사를 만드신다. “이것은 아니되리라. 이것은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하여 어떤 궁리와 계획을 하든,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명심하자.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자하시며, 오래도록 우리가 단념해 버렸던 긍휼을 다시 베풀어 주신다.이 같은 약속에 대한 보다 큰 확증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으며(이것을 목적케 한 것은 낮이 오기 전의 이른 아침이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5절0고 말씀해 주셨다. 즉 다음과 같이 되리라는 말씀이다.그렇게 엄청나게 많게. 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아브람은 자기가 전혀 자식이 없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서 나는 자손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되리라고 보증해 주셨다.그렇게 빛나게. 곤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영광이 주어지기” (롬 9:4) 때문이다. 아브람의 육신을 좇아 난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과도 같았으나(13:16), 그의 영적인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엄청난 수효가 될 뿐 아니라 영광스럽고 매우 귀중하게 된 것이다. Ⅲ. 하나님께서 지금 세우신 그 약속을 아브람은 확고히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열납하신다(6절). 1. 아브람의 “여호와의 믿으니라” 고 했다. 즉 계약을 주신 이의 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범할 수 없는 신성을 의지하여 지금 자기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이루지 아니하겠는가?” 약속으로 위안을 받고자 하는 자는 그 약속을 신앙과 잘 조화시켜야만 함을 명심하자. 바울 사도가 이와 같은 아브람의 믿음을 그 얼마나 찬미했으며 표본으로 삼고 있었던가를 살펴보자(롬 4:19-20). 그의 믿음은 약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 그는 믿음에 강하였다. 그는 전적으로 확신에 찼었다. 여호와에게 그와 같은 믿음이 우리 각자 속에 역사하도록 하신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여호와에 대한 그의 신앙은 약속을 주시는 여호와뿐만 아니라, 새 계약의 중보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곧 약속된 주님에 대한 신앙이기도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곧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깨달아, 비록 매우 요원한 일이었지만, “여호와의 때를 보고 싶어하였다” (요 8:56)
2.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곧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고, 다른 족장들처럼 “믿음으로써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 (히 11:4).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율법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역설하는 바이다(롬 4:3; 갈 3:6). 아브람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에도 그처럼 의로왔기 때문이다. 선행을 그렇게 많이 한 아브람이 그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와졌다면, 그런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한 우리들이야 더욱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아브람에게 의를 가져다 준 이런 믿음도 전에는 불신앙과 애써 싸웠으나(2절), 이제는 승리자가 되어 면류관과 명예를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바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확고히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일은, 세 계약의 대의에 따르면, 그 약속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축복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아브람처럼, 모든 믿는 자들은 의로와진다. “또한 그를 의롭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인 때문이다. 아브람의 “여호와의 믿으니라” 고 했다. 즉 계약을 주신 이의 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범할 수 없는 신성을 의지하여 지금 자기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이루지 아니하겠는가?” 약속으로 위안을 받고자 하는 자는 그 약속을 신앙과 잘 조화시켜야만 함을 명심하자. 바울 사도가 이와 같은 아브람의 믿음을 그 얼마나 찬미했으며 표본으로 삼고 있었던가를 살펴보자(롬 4:19-20). 그의 믿음은 약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 그는 믿음에 강하였다. 그는 전적으로 확신에 찼었다. 여호와에게 그와 같은 믿음이 우리 각자 속에 역사하도록 하신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여호와에 대한 그의 신앙은 약속을 주시는 여호와뿐만 아니라, 새 계약의 중보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곧 약속된 주님에 대한 신앙이기도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곧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깨달아, 비록 매우 요원한 일이었지만, “여호와의 때를 보고 싶어하였다” (요 8:56)”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곧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고, 다른 족장들처럼 “믿음으로써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 (히 11:4). 그러므로 신약성서는 율법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역설하는 바이다(롬 4:3; 갈 3:6). 아브람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에도 그처럼 의로왔기 때문이다. 선행을 그렇게 많이 한 아브람이 그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와졌다면, 그런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한 우리들이야 더욱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아브람에게 의를 가져다 준 이런 믿음도 전에는 불신앙과 애써 싸웠으나(2절), 이제는 승리자가 되어 면류관과 명예를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바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확고히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일은, 세 계약의 대의에 따르면, 그 약속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축복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아브람처럼, 모든 믿는 자들은 의로와진다. “또한 그를 의롭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인 때문이다.
15:7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3)(창세기 15:7-11) 여기서는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유업으로 보증해 주시는 기사를 볼 수 있다. Ⅰ. 가나안 땅에 관한 하나님 자신의 의도를 선언하신다(7절). 아브람이 자식이 없음을 불평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불평치 않았음을 주목하라. 약속의 씨에 분명한 관심을 두고 있는 자는 약속된 땅에 대한 자격을 의심해야 할 까닭이 없음을 명심하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라면, 하늘 나라도 우리의 것이다. 또한 앞서 준 약속을 믿었을 때(6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설명해 주시고 확인해 주셨음을 재삼 주목하라. 가진 가가(그것을 늘이어) 더 많이 갖게 됨을 주목하라. 이 좋은 땅에 관하여 아브람에게 용기를 많이 갖게 됨을 주목하라. 이 좋은 땅에 관하여 아브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에게 3가지 일을 상기시킨다. 1. 하나님 그분은 누구이냐? “나는 여호와로다.”
(1) 그러므로 “그것을 내가 네게 주나니, 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여호와이므로, 그리하여 모든 땅을 처리할 권리 또한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2)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아낙의 아들들도 말미암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네게 줄 수 있느니라.” 흔히 있는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3) “내가 나의 약속을 네게 이루게 하리라.” 여호와는 거짓말을 하는 인간 따위의 존재가 아니다.
2.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해 행하셨던 일.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 혹자는 “그를 갈대아 불에서” 이끌어 냈다고 한다. 이것은 저들의 우상숭배(갈대아 사람들은 불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에서 끌어내셨던 것이든지 또는 저들이 핍박에서 이끌어내셨다는 뜻이다. 아브람은 우상 숭배를 거절했기 때문에 불길이 심한 화로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는 전설이 유대 저작자들에게는 전해지고 있다. 그 곳은 아마 그런 이름에 합당한 곳이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효력 있는 소명을 주어 그를 거기서 이끌어내셨고, 은혜로운 강권으로 이끌어내셨으니, 타나 남은 그루터기 같이 불 속에서 낚아채 주신 것이다.
(1) 이것은 특별한 자비였다. 즉 “내가 너를 이끌어내고 수천의 다른 자들은 그 곳에서 멸망하도록 남겨 두었느니라” 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사 51:2).
(2) 그것은 영적인 자비로서, 그의 영혼에 대한 자비요, 죄와 죄의 치명적인 결과에서의 구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면, 우리들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할 것이 없다.
(3) 이것은 새로운 자비이다. 최근에 주신 자비이다. 그러므로 더욱 감동적인 자비였다. 10계명의 서두에, 최근에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는 말씀이 있음과 같다.
(4) 기초가 되는 자비요, 자비의 시작이요, 아브람에게 특정된 자비이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 있을 자비에 대한 공약이요 보증이다(사 66:9).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라. “나는 너를 이끌어낸 여호와로다.” 이것은 권능의 행동인 동시에 은혜의 행동이라고 하나님께서 자랑하신 것이다. 오랜 후에 자랑한 것과 비교해 보라(사 29:22 참조). “그러므로” 아브람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고”, 그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다.
3. 장차 그를 위해 행하실 바, “이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하여 저 뿐만 아니라, 유업으로 이 땅을 네가 주기 위하여, 내가 너를 여기까지 이끌어 내었으니, 이것은 가장 친절하고 확실한 권리 부여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1) 선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속에는 은밀하나 은혜스러운 계획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모든 자비와 영광 속에서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온갖 일 속에서 계획하시고 있는 위대한 일, 바로 그것은 그들을 안전하게 하늘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저들은 “구원을 얻도록 선택되었고” (살후 2:13),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부름 받았고” (살전 1:3-4), “기업을 잇게 하셨고” (벧전 1:3-4), 모든 것으로 그것에 “합당하게 되었느니라” (골 1:12, 13; 고후 4:17). 하나님 그분은 누구이냐? “나는 여호와로다.”그러므로 “그것을 내가 네게 주나니, 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여호와이므로, 그리하여 모든 땅을 처리할 권리 또한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아낙의 아들들도 말미암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네게 줄 수 있느니라.” 흔히 있는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내가 나의 약속을 네게 이루게 하리라.” 여호와는 거짓말을 하는 인간 따위의 존재가 아니다.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해 행하셨던 일.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 혹자는 “그를 갈대아 불에서” 이끌어 냈다고 한다. 이것은 저들의 우상숭배(갈대아 사람들은 불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에서 끌어내셨던 것이든지 또는 저들이 핍박에서 이끌어내셨다는 뜻이다. 아브람은 우상 숭배를 거절했기 때문에 불길이 심한 화로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는 전설이 유대 저작자들에게는 전해지고 있다. 그 곳은 아마 그런 이름에 합당한 곳이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효력 있는 소명을 주어 그를 거기서 이끌어내셨고, 은혜로운 강권으로 이끌어내셨으니, 타나 남은 그루터기 같이 불 속에서 낚아채 주신 것이다.이것은 특별한 자비였다. 즉 “내가 너를 이끌어내고 수천의 다른 자들은 그 곳에서 멸망하도록 남겨 두었느니라” 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사 51:2).그것은 영적인 자비로서, 그의 영혼에 대한 자비요, 죄와 죄의 치명적인 결과에서의 구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면, 우리들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할 것이 없다.이것은 새로운 자비이다. 최근에 주신 자비이다. 그러므로 더욱 감동적인 자비였다. 10계명의 서두에, 최근에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는 말씀이 있음과 같다.기초가 되는 자비요, 자비의 시작이요, 아브람에게 특정된 자비이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 있을 자비에 대한 공약이요 보증이다(사 66:9).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라. “나는 너를 이끌어낸 여호와로다.” 이것은 권능의 행동인 동시에 은혜의 행동이라고 하나님께서 자랑하신 것이다. 오랜 후에 자랑한 것과 비교해 보라(사 29:22 참조). “그러므로” 아브람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고”, 그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다.장차 그를 위해 행하실 바, “이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하여 저 뿐만 아니라, 유업으로 이 땅을 네가 주기 위하여, 내가 너를 여기까지 이끌어 내었으니, 이것은 가장 친절하고 확실한 권리 부여이다.” 다음을 주목하자.선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속에는 은밀하나 은혜스러운 계획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모든 자비와 영광 속에서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다.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온갖 일 속에서 계획하시고 있는 위대한 일, 바로 그것은 그들을 안전하게 하늘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저들은 “구원을 얻도록 선택되었고” (살후 2:13),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부름 받았고” (살전 1:3-4), “기업을 잇게 하셨고” (벧전 1:3-4), 모든 것으로 그것에 “합당하게 되었느니라” (골 1:12, 13; 고후 4:17). Ⅱ.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 무엇으로 알리리까?” 하였다. 아브람은 어떤 표적을 바랐다(8절). 이는 사가랴의 불신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불신하는 것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것을 바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1.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굳세게 하기 위하여. 그는 믿고 있었다(6절). 그러나 그가 간절히 빌고 바랐던 것은 “여호와여, 나의 불 신앙을 도우소서”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가 믿었으나, 자기의 믿음이 앞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당하여 충격과 시험을 받을지도 모르므로, 그 유혹의 때를 대비하여 간직해 둘 어떤 표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바랄 필요가 있으며, 또 그래야겠다. 그 같은 목적을 위하여 세워진 표적인 바 성례전을 행해야 하겠다(삿 6:36-40; 왕하 20:8-10; 사 7:11, 12 참조).
2. 자기 후손에 대한 약속에 승인을 얻기 위하여. 그래서 그들도 이것을 믿게 하기를 원했다. 자신은 스스로 만족하더라도 남들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보냈던 것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마 11:2, 3). 가나안은 하늘 나라의 모형이다. 우리들이 하늘의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일, 즉 그 행복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한다는 것, 그래서 하늘의 가나안을 계승할 우리의 권리의 점점 더 명백히 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굳세게 하기 위하여. 그는 믿고 있었다(6절). 그러나 그가 간절히 빌고 바랐던 것은 “여호와여, 나의 불 신앙을 도우소서”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가 믿었으나, 자기의 믿음이 앞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당하여 충격과 시험을 받을지도 모르므로, 그 유혹의 때를 대비하여 간직해 둘 어떤 표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바랄 필요가 있으며, 또 그래야겠다. 그 같은 목적을 위하여 세워진 표적인 바 성례전을 행해야 하겠다(삿 6:36-40; 왕하 20:8-10; 사 7:11, 12 참조).자기 후손에 대한 약속에 승인을 얻기 위하여. 그래서 그들도 이것을 믿게 하기를 원했다. 자신은 스스로 만족하더라도 남들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보냈던 것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마 11:2, 3). 가나안은 하늘 나라의 모형이다. 우리들이 하늘의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일, 즉 그 행복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한다는 것, 그래서 하늘의 가나안을 계승할 우리의 권리의 점점 더 명백히 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Ⅲ. 하나님은 희생 제물을 준비하라고 아브람에게 명령하신다. 그것으로써 그에게 표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그것을 준비한다(9-11절). “나를 위하여 암소를 취하라” 하신다. 아브람은 아마 하늘에서 오는 어떤 특별한 표적을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희생 제물 위에다 표적을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증을 얻고자 하는 자들, 또 자기들을 믿음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자들은 지정된 의식을 따르고 그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날 것을 기대해야 함을 유념하라.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은 이 의식에 쓰일 각 짐승은 3년 된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셨다. 그 때가 되어야 짐승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역시 우리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짐승과 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별 지시를 하신 말씀이 없다. 이는 아브람이 제사법과 관습에 조예가 있어서 다른 특별 지시가 필요치 않았든지,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고, 그는 그대로 주의 깊게 지켰을 것이다. 최소한 여기에 암시되어 있는 바는 아브람은 계약 승인을 위한 의식 때문에서라도 제물을 준비해야 했고, 그는 그것을 준비하는 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3. 아브람은 비록 이것이 어떻게 되어 표적이 될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랐다. 이것이 그의 묵종의 첫 실례는 아니다. 계약 확증의 의식을 따라 아브람은 짐승의 중간을 쪼개었다(렘 34:18, 19). 그 성경 구절에는 “그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둘 사이로 지나갔다” 고 기록되어 있다.
4.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제물을 준비하고 난 다음, 파수대 위에 섰던 예언자와 같이(합 2:1), 이런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제사를 받으시려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브람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지체된 것은 아브람의 기대심을 불러일으켰다. “솔개가 그 시체 위에 내려와서” 쪼아먹으려 할 때, 흔히는 이런 일을 소홀히 여기고 마는 일이지만, “아브람은 그들을 쫓아 버렸다” (11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라도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거짓말하지 않으리라” 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우 조심성 있는 눈은 우리의 영적 제물을 경계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을 쪼아먹도록 버려두거나 하나님 받으시기에 불합당한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함을 기억하자. 이런 솔개들처럼 헛된 생각이 우리들의 제물 위에 내려올 때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쫓아 버려 우리 안에 깃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이 의식에 쓰일 각 짐승은 3년 된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셨다. 그 때가 되어야 짐승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역시 우리의 최선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짐승과 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별 지시를 하신 말씀이 없다. 이는 아브람이 제사법과 관습에 조예가 있어서 다른 특별 지시가 필요치 않았든지,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고, 그는 그대로 주의 깊게 지켰을 것이다. 최소한 여기에 암시되어 있는 바는 아브람은 계약 승인을 위한 의식 때문에서라도 제물을 준비해야 했고, 그는 그것을 준비하는 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아브람은 비록 이것이 어떻게 되어 표적이 될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랐다. 이것이 그의 묵종의 첫 실례는 아니다. 계약 확증의 의식을 따라 아브람은 짐승의 중간을 쪼개었다(렘 34:18, 19). 그 성경 구절에는 “그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둘 사이로 지나갔다” 고 기록되어 있다.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제물을 준비하고 난 다음, 파수대 위에 섰던 예언자와 같이(합 2:1), 이런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제사를 받으시려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브람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지체된 것은 아브람의 기대심을 불러일으켰다. “솔개가 그 시체 위에 내려와서” 쪼아먹으려 할 때, 흔히는 이런 일을 소홀히 여기고 마는 일이지만, “아브람은 그들을 쫓아 버렸다” (11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라도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거짓말하지 않으리라” 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우 조심성 있는 눈은 우리의 영적 제물을 경계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을 쪼아먹도록 버려두거나 하나님 받으시기에 불합당한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함을 기억하자. 이런 솔개들처럼 헛된 생각이 우리들의 제물 위에 내려올 때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쫓아 버려 우리 안에 깃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15:12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4)(창세기 15:12-16) 아브람의 자손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이 완전하고 상세한 발표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Ⅰ. 이러한 발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그 때. “해 질 때에” 또는 “기울 때” 이었다. 이것은 “저녁 소재 드릴” 무렵을 뜻한다(왕상 18:36; 단 9:21).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아직 별이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사에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5절). 생각건대, 그 제사를 준비하여 차려놓는 것은 적어도 아침에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저녁때가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규례를 굳게 지켰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가 베풀 위로를 그 백성들이 오래 기다리도록 하신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또 기도의 응답이나 약속의 실현이 늦어지는 수가 있지만 필경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울러 명심하자. 저녁이면 새벽도 오리라. Ⅱ. 이 발표를 위한 예비적 일들. 1. “아브람은 깊이 잠들었다.” 이것은 피곤이나 부주의로 인한 보통 수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것” (2:21)과 같이 하나님께서 준 무아경이며, 감각적인 사물의 시계(視界)가 완전히 차단되고, 온전히 영적 사물만 묵상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육체의 문을 폐쇄하고, 영혼을 은밀하고 한적케 하여 영혼만이 홀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신 것이다.
2. 이 잠으로 “캄캄함이 임하여 심히 두려워하였다.” 이 얼마나 돌발적인 변화인가! 잠시 전에는 하나님의 계약이 주는 위안과 그와의 교제로 인하여 자위하고 있었는데, 이제 “캄캄함이 임하여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의 자녀라고 하여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 주위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공포를 몰고 온 이 큰 어두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었다.
(1) 아브람의 영에 경외하는 심정을 지니게 하고 거룩한 숭앙을 지니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하신 허물없는 친교가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거룩한 두려움은 영혼에 거룩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속박된 영(the spirit of bondage)은 택함 받은 영(the spirit of adoption)에 이르는 길을 예비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하나님께서는 먼저 상처를 주고 나서 고쳐주시며, 낮추신 후에야 높이 올리신다(사 6:5, 6 이하).
(2)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들을 상대하시는 그 방법의 표본을 삼고자 함이었다. 아브람의 자손들은 먼저 애굽인의 노예라는 공포와 어두움에 처한 후에야 기쁨으로 복된 땅에 들어갔다. 따라서 아브람은 자손들의 행복을 예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고난을 미리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3) 이제 곧 아브람과 세울 특별 계약의 성실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기 계약에 기초하여 있는 것이 구약 성서의 율법이니, 그 율법은
[1] 어두움과 불분명한 율법이며(고후 3:13, 14). [2] 두려움과 공포의 율법이었다(히 12:18 이하). “아브람은 깊이 잠들었다.” 이것은 피곤이나 부주의로 인한 보통 수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것” (2:21)과 같이 하나님께서 준 무아경이며, 감각적인 사물의 시계(視界)가 완전히 차단되고, 온전히 영적 사물만 묵상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육체의 문을 폐쇄하고, 영혼을 은밀하고 한적케 하여 영혼만이 홀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신 것이다.이 잠으로 “캄캄함이 임하여 심히 두려워하였다.” 이 얼마나 돌발적인 변화인가! 잠시 전에는 하나님의 계약이 주는 위안과 그와의 교제로 인하여 자위하고 있었는데, 이제 “캄캄함이 임하여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의 자녀라고 하여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 주위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공포를 몰고 온 이 큰 어두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었다.아브람의 영에 경외하는 심정을 지니게 하고 거룩한 숭앙을 지니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하신 허물없는 친교가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거룩한 두려움은 영혼에 거룩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속박된 영(the spirit of bondage)은 택함 받은 영(the spirit of adoption)에 이르는 길을 예비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하나님께서는 먼저 상처를 주고 나서 고쳐주시며, 낮추신 후에야 높이 올리신다(사 6:5, 6 이하).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들을 상대하시는 그 방법의 표본을 삼고자 함이었다. 아브람의 자손들은 먼저 애굽인의 노예라는 공포와 어두움에 처한 후에야 기쁨으로 복된 땅에 들어갔다. 따라서 아브람은 자손들의 행복을 예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고난을 미리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이제 곧 아브람과 세울 특별 계약의 성실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기 계약에 기초하여 있는 것이 구약 성서의 율법이니, 그 율법은어두움과 불분명한 율법이며(고후 3:13, 14).두려움과 공포의 율법이었다(히 12:18 이하). Ⅲ. 그 자체가 예언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거기에 예고되어 있다. 1. 장기간에 걸칠 아브람의 자손의 고난상(13절). 아브람은 자기 식구들의 영예와 번창만을 자랑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된 자손들이 핍박의 씨가 되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것을 먼저 보내 주신다는 것을 주목하자. 우리들은 고난을 당한 후에야 지배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최악의 것에 도달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게 하여, 그 일에 닥칠 때 당황하지 않게 해 주신다(요 16:4). 여기서 다음을 알 수 있다.(1) 그들이 받을 고난의 구체적 내용.
[1] 그들은 나그네 되리라. 처음에는 가나안에서 그랬고(시 105:12). 나중에는 애굽 땅에서 그러하였다. 자기들의 땅에서 주인이 되기 전에, 그들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야 했다. 불안정의 불편은 즐거운 정착을 보다 큰 기쁨으로 맞도록 해 준다. 이와 같이 하늘 나라의 상속자들은 먼저 그들의 땅이 아닌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 되는 것이다. [2] 그들은 종이 되리라. 애굽인들의 종이 되었다(출 1:13). 가나안인들의 운명이 아브람 자손들의 고통을 어떻게 드러냈는가를 살펴보라. 그들도 남을 섬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가나안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즉 가나안들을 저주로 인하여 남을 섬기나,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받아 남을 섬긴다는 차이점이다. “정직한 자는 아침이 오면 다스리리라” (시 49:14). [3] 고난받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섬기는 자들이 그들은 괴롭힐 것이라 했다(출 1:11 참조).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사랑 받는 자들이 흔히 악한 자들에게서 심한 괴로움을 당한다는 사실은 명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견하시고 인정하고 계심을 또한 알아두자.(2) 그들의 고난은” 400년 간” 계속되리라. 이러한 핍박은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하였을 때의 조롱으로 시작되어(창 21:9; 갈 4:29), 히브리인과 애굽인의 상호적 혐오심으로 계속 되었다. 히브리인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애굽인들에게는 부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시 43:32). 그리하여 마침내는 애굽인들의 새로 태어난 자녀를 죽이는 잔인한 살인에까지 이른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닐지 모르나, 400년간 핍박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은 오랜 기간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기간이었다.
2. 아브람의 자손들의 원수들이 받을 심판. “그 섬기는 나라 곧 애굽인들까지도 내가 응징하리라” 고 했다(14절). 이것은 애굽의 재앙을 의미한다. 이 재앙 때문에 애굽인들은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었던 온갖 고생에 대한 벌이되었던 것이다. 다음을 알아두자.
(1) 하나님은 비록 핍박자와 압제자들이 지극히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리하도록 허락하시지만, 필경 그들을 헤아리신다는 명백한 사실. “그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시 36:12, 13).
(2) 핍박자들을 벌하시는 일은 곧 심판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재난으로 보응하시니,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요 정의의 구체적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원수들을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내가 심판하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심판하실 수 있으니, 그것은 그가 여호와의 시기 때문이다. 또 그의 백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것이다. “보수(報讐)는 내 것이니, 내가 보응하리라” 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름의 방법과 때를 따라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3. 아브람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리라는 사실. 그 위대한 일이 여기에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아오리라” 고 하신다. 다음의 것이 약속되어 있다.
(1) 그들이 해방되리라는 것. “후에 네 자손이 나오리라” 고 했다. 이것은 곧 400년 간 그들이 괴로움을 받고 예속이 끝난 후든지 애굽인들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받은 그 후에, 그들에게 해방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압제자의 멸망은 피압제자들의 구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들의 강압을 받기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하라.
(2) 부유하게 되리라는 것.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했다.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출 12:35, 3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된 땅으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저들 많은 재물을 함께 가지고 나오도록 돌보아 주셨다.
4. 가나안 땅에서는 복된 정착(16절).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뿐아니라 “그들이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했다. 가나안 땅으로, 곧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그 땅으로 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그 땅을 잠시 동안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권리 폐기는 아니다. 우리에게서 잠시 동안 위안이 중단된다고 하여 영원히 위안을 상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제 4대에 이르기까지는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었는데, 그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아모리 족속들이 가나안 땅을 내어 놓기까지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들의 멸망의 때가 아직 이르기 아니했었기 때문이다. 의의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조악 가운데 버려두어 그 죄악의 한계에 이르게 하신다. 그것은 그들의 죄악과 멸망 사이에 어느 정도 공평한 균형이 드러날 때까지는, 폐망시키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때가 이르기까지는 아브람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1) 죄악의 분량은 점차적으로 가득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회개하지 않고 길을 계속 걷는 자기의 진노를 저축하고 있는 셈이 된다.
(2) 또 어떤 사람들의 죄의 분량은 서서히 가득 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었던 소돔 사람들은 즉시 그들의 분량을 채웠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의 분량을 즉시 채웠다. 그러나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의 분량이 다 차기까지는 오랜 기일이 걸렸다.
(3) 이것이 사악한 자들이 번창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들의 죄악의 분량이 아직 가득하지 아니했음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자녀들에게 갚기 위하여 쌓아 두시는” 동안, 악인들이 “살고 수(壽)를 누르고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욥 21:7, 19; 마 23:32; 신 32:34 참조)
5. 이런 일이 이르기 전에 아브람은 평안하고 조용히 죽고 장사되리라는 것(15절). 그는 생전에 그 복된 땅이 자기 가족의 소유지가 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야 했던 일과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생전에는 자손의 고난을 보지 않게 하였고, 또 그 고난을 함께 당하지도 않게 하였다. 이런 일은 요시야에게도 약속되었던 바이다(왕하 22:20). 의인이 때로 “재앙이 이르기 전에 데려감을” 받는 것은 큰 은총이라는 것을 유의하자(사 57:1). 아브람은 다음과 같은 일로 만족하였다.
(1) 그는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친구요 그의 은총을 입을 자들까지도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람보다 우리가 더 위대한가?(요 8:53). [2] 선한 사람은 기꺼이 죽음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끌려가는 것도 아니요, 강요당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그들이 가는 것뿐이다. 그들의 영혼은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처럼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눅 12:2) 그들 자신이 기꺼이 맡긴다. 그들은 언제든지 살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3] 죽으면 우리는 조상들에게로 간다. 즉 우리보다 앞서 죽음의 상태로 가신 모든 우리 조상들에게로 간다(욥 21:22, 23). 또 우리보다 앞서 축복의 상태로 가신 우리들의 경건한 조상들에게로 가는 것이다(히 12:23). 전자는 죽음의 공포를 제거해 주고, 후자는 죽음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 [4] 경건한 자는 언제나 평안히 죽는다는 것을 알아두자. 그의 길이 경건하다면, 그의 종말도 평안일 것이다(시 37:37). 결국 분명한 평화가 아브람에게 약속되었으니, 이후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 그의 생전에는 평화와 진리가 깃들 것이다(왕하 20:19). 하나님과의 화해와 영원한 평화가 모든 그의 자손들에게 있을 것이 확실하다.(2) 그는 “장수하고 장사되리라.” 이것은 아마 그가 그 곳에 묻힐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가나안 땅은 그에게 약속된 곳이다. 왜냐하면 그가 장사될 곳은, 그가 가나안에서 처음에 소유했던 그 땅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평안히 죽게 될 뿐 아니라, 명예롭고 고상하게 죽을 것이며 예모 있게 장사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안히 죽을 뿐 아니라 알맞은 때에 죽으리라는 것이다(욥 5:26). 다음을 주목하라.
[1] 장수는 축복이다. 그것은 제 5계명에 약속되어 있고 인간의 본성에도 즐거운 것이며, 또한 유용한 일을 위한 것이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 [2] 행복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아브람은 행복하게 장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생애 염증을 주는 심신의 질병 따위가 없이, 나이 들었고 건강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연로하나 거룩했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제자(행 21:16)이었으며, 그의 백발은 “의로운 길에서 얻은” 것이며(잠 16:31). 나이 들었으나 쓸모 있었고, 경건의 유서 깊은 모범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장수라 하겠다.장기간에 걸칠 아브람의 자손의 고난상(13절). 아브람은 자기 식구들의 영예와 번창만을 자랑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된 자손들이 핍박의 씨가 되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것을 먼저 보내 주신다는 것을 주목하자. 우리들은 고난을 당한 후에야 지배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최악의 것에 도달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게 하여, 그 일에 닥칠 때 당황하지 않게 해 주신다(요 16:4). 여기서 다음을 알 수 있다.그들이 받을 고난의 구체적 내용.그들은 나그네 되리라. 처음에는 가나안에서 그랬고(시 105:12). 나중에는 애굽 땅에서 그러하였다. 자기들의 땅에서 주인이 되기 전에, 그들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야 했다. 불안정의 불편은 즐거운 정착을 보다 큰 기쁨으로 맞도록 해 준다. 이와 같이 하늘 나라의 상속자들은 먼저 그들의 땅이 아닌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 되는 것이다.그들은 종이 되리라. 애굽인들의 종이 되었다(출 1:13). 가나안인들의 운명이 아브람 자손들의 고통을 어떻게 드러냈는가를 살펴보라. 그들도 남을 섬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가나안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즉 가나안들을 저주로 인하여 남을 섬기나,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받아 남을 섬긴다는 차이점이다. “정직한 자는 아침이 오면 다스리리라” (시 49:14).고난받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섬기는 자들이 그들은 괴롭힐 것이라 했다(출 1:11 참조).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사랑 받는 자들이 흔히 악한 자들에게서 심한 괴로움을 당한다는 사실은 명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견하시고 인정하고 계심을 또한 알아두자.그들의 고난은” 400년 간” 계속되리라. 이러한 핍박은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하였을 때의 조롱으로 시작되어(창 21:9; 갈 4:29), 히브리인과 애굽인의 상호적 혐오심으로 계속 되었다. 히브리인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애굽인들에게는 부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시 43:32). 그리하여 마침내는 애굽인들의 새로 태어난 자녀를 죽이는 잔인한 살인에까지 이른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닐지 모르나, 400년간 핍박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은 오랜 기간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기간이었다.아브람의 자손들의 원수들이 받을 심판. “그 섬기는 나라 곧 애굽인들까지도 내가 응징하리라” 고 했다(14절). 이것은 애굽의 재앙을 의미한다. 이 재앙 때문에 애굽인들은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었던 온갖 고생에 대한 벌이되었던 것이다. 다음을 알아두자.하나님은 비록 핍박자와 압제자들이 지극히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리하도록 허락하시지만, 필경 그들을 헤아리신다는 명백한 사실. “그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시 36:12, 13).핍박자들을 벌하시는 일은 곧 심판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재난으로 보응하시니,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요 정의의 구체적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원수들을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내가 심판하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심판하실 수 있으니, 그것은 그가 여호와의 시기 때문이다. 또 그의 백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것이다. “보수(報讐)는 내 것이니, 내가 보응하리라” 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름의 방법과 때를 따라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아브람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리라는 사실. 그 위대한 일이 여기에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아오리라” 고 하신다. 다음의 것이 약속되어 있다.그들이 해방되리라는 것. “후에 네 자손이 나오리라” 고 했다. 이것은 곧 400년 간 그들이 괴로움을 받고 예속이 끝난 후든지 애굽인들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받은 그 후에, 그들에게 해방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압제자의 멸망은 피압제자들의 구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들의 강압을 받기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하라.부유하게 되리라는 것.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했다.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출 12:35, 3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된 땅으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저들 많은 재물을 함께 가지고 나오도록 돌보아 주셨다.가나안 땅에서는 복된 정착(16절).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뿐아니라 “그들이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했다. 가나안 땅으로, 곧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그 땅으로 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그 땅을 잠시 동안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권리 폐기는 아니다. 우리에게서 잠시 동안 위안이 중단된다고 하여 영원히 위안을 상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제 4대에 이르기까지는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었는데, 그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아모리 족속들이 가나안 땅을 내어 놓기까지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들의 멸망의 때가 아직 이르기 아니했었기 때문이다. 의의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조악 가운데 버려두어 그 죄악의 한계에 이르게 하신다. 그것은 그들의 죄악과 멸망 사이에 어느 정도 공평한 균형이 드러날 때까지는, 폐망시키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때가 이르기까지는 아브람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죄악의 분량은 점차적으로 가득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회개하지 않고 길을 계속 걷는 자기의 진노를 저축하고 있는 셈이 된다.또 어떤 사람들의 죄의 분량은 서서히 가득 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었던 소돔 사람들은 즉시 그들의 분량을 채웠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의 분량을 즉시 채웠다. 그러나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의 분량이 다 차기까지는 오랜 기일이 걸렸다.이것이 사악한 자들이 번창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들의 죄악의 분량이 아직 가득하지 아니했음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자녀들에게 갚기 위하여 쌓아 두시는” 동안, 악인들이 “살고 수(壽)를 누르고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욥 21:7, 19; 마 23:32; 신 32:34 참조)이런 일이 이르기 전에 아브람은 평안하고 조용히 죽고 장사되리라는 것(15절). 그는 생전에 그 복된 땅이 자기 가족의 소유지가 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 땅에서 나그네로서 살아야 했던 일과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생전에는 자손의 고난을 보지 않게 하였고, 또 그 고난을 함께 당하지도 않게 하였다. 이런 일은 요시야에게도 약속되었던 바이다(왕하 22:20). 의인이 때로 “재앙이 이르기 전에 데려감을” 받는 것은 큰 은총이라는 것을 유의하자(사 57:1). 아브람은 다음과 같은 일로 만족하였다.그는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는 것이다.하나님의 친구요 그의 은총을 입을 자들까지도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람보다 우리가 더 위대한가?(요 8:53).선한 사람은 기꺼이 죽음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끌려가는 것도 아니요, 강요당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그들이 가는 것뿐이다. 그들의 영혼은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처럼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눅 12:2) 그들 자신이 기꺼이 맡긴다. 그들은 언제든지 살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죽으면 우리는 조상들에게로 간다. 즉 우리보다 앞서 죽음의 상태로 가신 모든 우리 조상들에게로 간다(욥 21:22, 23). 또 우리보다 앞서 축복의 상태로 가신 우리들의 경건한 조상들에게로 가는 것이다(히 12:23). 전자는 죽음의 공포를 제거해 주고, 후자는 죽음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경건한 자는 언제나 평안히 죽는다는 것을 알아두자. 그의 길이 경건하다면, 그의 종말도 평안일 것이다(시 37:37). 결국 분명한 평화가 아브람에게 약속되었으니, 이후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 그의 생전에는 평화와 진리가 깃들 것이다(왕하 20:19). 하나님과의 화해와 영원한 평화가 모든 그의 자손들에게 있을 것이 확실하다.그는 “장수하고 장사되리라.” 이것은 아마 그가 그 곳에 묻힐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가나안 땅은 그에게 약속된 곳이다. 왜냐하면 그가 장사될 곳은, 그가 가나안에서 처음에 소유했던 그 땅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평안히 죽게 될 뿐 아니라, 명예롭고 고상하게 죽을 것이며 예모 있게 장사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안히 죽을 뿐 아니라 알맞은 때에 죽으리라는 것이다(욥 5:26). 다음을 주목하라.장수는 축복이다. 그것은 제 5계명에 약속되어 있고 인간의 본성에도 즐거운 것이며, 또한 유용한 일을 위한 것이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행복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아브람은 행복하게 장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생애 염증을 주는 심신의 질병 따위가 없이, 나이 들었고 건강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연로하나 거룩했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제자(행 21:16)이었으며, 그의 백발은 “의로운 길에서 얻은” 것이며(잠 16:31). 나이 들었으나 쓸모 있었고, 경건의 유서 깊은 모범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장수라 하겠다.
15:17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계약(5)(창세기 15:17-21) Ⅰ. 그 계약은 승인되었다(17절). 드디어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에 아브람이 바라던 표적이 주어졌다. 구약의 율법은 어두운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1. “연기나는 풀무” 는, 애굽에서 그의 자손들이 당할 고생을 의미한다. 곧 그들은 불 가운데서 고생하면서, “쇠풀무 가운데” (신 4:20), “고난의 풀무 가운데” (사 48:10) 거하였었다. 그들이 그 곳의 연기 속에 있었고,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고생이 언제 끝날는지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바를 깨달을 수 없어 당황했다.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2. “타는 횃불” 은 이러한 고난 속에서 주어진 위안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연기나는 풀무” 를 보여 주시는 것과 동시에 이 “타는 횃불” 도 보여 주신 것이다.
(1) 빛은 풀무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들의 구원은 “타는 횃불” 과 같았다(사 62:1).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시려고 내려오셨을 때, 하나님은 “불이 붙었으나 소멸되지 아니하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나셨었다(출 3:2).
(2) 횃불은 연기 속에서의 지시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횃불이요, 아브람에게 주신 이 말씀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움 속에서 빛나고 있는 빛이었다. 아마 이 불타는 횃불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예시해 주신 것일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기둥이다.
(3) 타는 횃불은 그들을 오래도록 풀무 가운데 던져 놓았던 그 원수들이 멸망됨을 뜻한다(슥 12:6 참조). 이스라엘 사람을 빛나게 한 바로 그 구름이 애굽 사람들을 번민 속에 불타게 하였다.
3.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계약을 확증하는 것이요, 약속하신 바는 분명히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확실히 믿게 하여 그에게 확고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아마 쪼개진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그 풀무와 횃불은 그 제물을 불태워 소멸시킴으로써 그 제사를 완전케 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제시를 열납하셨음을 입증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기드온의 제사(삿 6:21), 마노아의 제사(삿 18:19, 20), 그리고 솔로몬의 제사(대하 7:1)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다음을 의미해 준다.
(1)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은 제사로, 곧 위대한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며, 속죄함이 없이는 어떠한 계약도 있을 수 없다.
(2) 우리들의 영적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은, 앞으로 계속 우리에게 내려질 선하고 신실한 은총이 표적이다(삿 13:23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 영혼 속에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거룩한 불길을 붙이셨다면, 그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 제사를 열납하셨음을 알 수 있다. “연기나는 풀무” 는, 애굽에서 그의 자손들이 당할 고생을 의미한다. 곧 그들은 불 가운데서 고생하면서, “쇠풀무 가운데” (신 4:20), “고난의 풀무 가운데” (사 48:10) 거하였었다. 그들이 그 곳의 연기 속에 있었고,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고생이 언제 끝날는지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바를 깨달을 수 없어 당황했다.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타는 횃불” 은 이러한 고난 속에서 주어진 위안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연기나는 풀무” 를 보여 주시는 것과 동시에 이 “타는 횃불” 도 보여 주신 것이다.빛은 풀무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들의 구원은 “타는 횃불” 과 같았다(사 62:1).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시려고 내려오셨을 때, 하나님은 “불이 붙었으나 소멸되지 아니하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나셨었다(출 3:2).횃불은 연기 속에서의 지시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횃불이요, 아브람에게 주신 이 말씀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움 속에서 빛나고 있는 빛이었다. 아마 이 불타는 횃불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예시해 주신 것일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기둥이다.타는 횃불은 그들을 오래도록 풀무 가운데 던져 놓았던 그 원수들이 멸망됨을 뜻한다(슥 12:6 참조). 이스라엘 사람을 빛나게 한 바로 그 구름이 애굽 사람들을 번민 속에 불타게 하였다.”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계약을 확증하는 것이요, 약속하신 바는 분명히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확실히 믿게 하여 그에게 확고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아마 쪼개진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그 풀무와 횃불은 그 제물을 불태워 소멸시킴으로써 그 제사를 완전케 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제시를 열납하셨음을 입증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기드온의 제사(삿 6:21), 마노아의 제사(삿 18:19, 20), 그리고 솔로몬의 제사(대하 7:1)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다음을 의미해 준다.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은 제사로, 곧 위대한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며, 속죄함이 없이는 어떠한 계약도 있을 수 없다.우리들의 영적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은, 앞으로 계속 우리에게 내려질 선하고 신실한 은총이 표적이다(삿 13:23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 영혼 속에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거룩한 불길을 붙이셨다면, 그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 제사를 열납하셨음을 알 수 있다. Ⅱ. 그 계약은 반복해서 설명된다. “그 날에” 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세운” 그 날은 결코 잊지 못할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었다” 고 말씀하심으로써(18절) 아브람에게 약속을 주신 날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타나 있다. 1. 허락한다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12:7; 13:15)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것을(이미) 주었다” 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약속을 주었고, 그 계약서에 노장을 찍어서 나누어 가졌으니,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 땅의 소유권은 마치 실제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서, 때가 오면 그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분명하다. 그리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고 했다(요 3:36). 믿는 자는 이미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이 분명히 거기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2. 허락하는 세부 사항의 진술. 이런 일은 땅을 양도할 때는 흔히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의 경계를 일일이 이름을 들어 나열했다(18절). 땅의 양도 때에는 흔히 그리하듯이, 보다 명백히 하기 위하여 그 땅의 현재 소유자와 점유인을 또한 언급하신다. “아브람의 자손” 에게 내어주기 위하여 쫓겨나야 할 수십 민족이나 족속들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19-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을 당시는 이 모든 땅이 그들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 때의 경계는 훨씬 더 협소하게 정해져 있었다(민 34:2, 3 이하).
(1)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는, 그들의 관할 경계가 최대로 확장되었다(대하 9:26).
(2) 또한 그들이 그 모든 지역을 보다 속히 그리고 보다 오래도록 소유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과오 때문이었다. 그들은 죄악과 태만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빼앗겼고, 비겁하여 그 권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고만 것이다.
(3) 여기서 허락된 그 땅은 충분한 여유가 있는 하늘 나라 상속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허락의 경계가 최대한의 범위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현재 소유자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수효와 권세와 오랫동안의 취득 시효는 알맞은 때에 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 민족에게 많은 민족들의 소유지를 내어 주심으로써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데에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귀중했고, 그토록 영예로웠던 것이다(사 63:4).
허락한다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12:7; 13:15)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것을(이미) 주었다” 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뜻이다.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약속을 주었고, 그 계약서에 노장을 찍어서 나누어 가졌으니,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그 땅의 소유권은 마치 실제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서, 때가 오면 그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분명하다. 그리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 고 했다(요 3:36). 믿는 자는 이미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이 분명히 거기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허락하는 세부 사항의 진술. 이런 일은 땅을 양도할 때는 흔히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의 경계를 일일이 이름을 들어 나열했다(18절). 땅의 양도 때에는 흔히 그리하듯이, 보다 명백히 하기 위하여 그 땅의 현재 소유자와 점유인을 또한 언급하신다. “아브람의 자손” 에게 내어주기 위하여 쫓겨나야 할 수십 민족이나 족속들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19-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을 당시는 이 모든 땅이 그들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 때의 경계는 훨씬 더 협소하게 정해져 있었다(민 34:2, 3 이하).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는, 그들의 관할 경계가 최대로 확장되었다(대하 9:26).또한 그들이 그 모든 지역을 보다 속히 그리고 보다 오래도록 소유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과오 때문이었다. 그들은 죄악과 태만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빼앗겼고, 비겁하여 그 권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고만 것이다.여기서 허락된 그 땅은 충분한 여유가 있는 하늘 나라 상속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허락의 경계가 최대한의 범위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현재 소유자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수효와 권세와 오랫동안의 취득 시효는 알맞은 때에 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 민족에게 많은 민족들의 소유지를 내어 주심으로써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데에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귀중했고, 그토록 영예로웠던 것이다(사 63:4).
창세기 15장 –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 – 새벽기도 설교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고령의 나이에, 상속할 자녀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상속자 없는 기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공식화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희생 제물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1. 먼저, 1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방패’란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은 가나안 복부 동맹군을 공격하여 승리한 이후 그들의 보복의 두려움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주셨듯이 오늘날에도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세상 가운데서 악인들에게 우겨 쌈을 당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그 누가 우리를 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들의 행복과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복되게 사는 비결 입니다.
2. 이어지는 6절에 아브라함은 한때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지만 4, 5절에서 하나님께서 재차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시자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자신의 조건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그의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결코 자신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보시고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비록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가 곧바로 아무런 허물이나 죄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여전히 불완전하고 허물 많은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는 오직 믿음으로 인한 ‘칭의’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성화의 노력을 부단히 계속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대한 표징을 구하는 아브라함을 위해 공식적으로 언약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시고 아브라함에게 그 준비를 지시하셨습니다(9절).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11절의 내용입니다.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라함은 그가 준비한 제물이 더럽혀지지 않은 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오늘날 형식적이고도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을 반성하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솔개가 끈질기게 방해 했듯이, 사탄 또한 우리의 예배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음을 기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에 참으로 힘써야 할 것입니다.
4.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400년간을 이방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또한 그들이 섬기던 이방나라를 징벌하신 후에 큰 재물을 이끌고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그리고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를 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애굽에서 종살이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의 공로로 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즉위하자 이스라엘은 4백여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실로 엄청난 박해와 시련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본향인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애굽으로 상징되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사탄이 임금으로 있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찌 박해를 받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기까지 4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인고의 눈물을 흘리며 인내했듯이 우리 성도들도 비록 세상이 주는 고통이 크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날까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듯이, 성도들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광된 천국을 차지하기까지는 이 땅에서의 시련과 고통을 필연적으로 통과해야만 합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당하는 성도의 시련은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당한 시련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감사하며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영원히 썩어지지 아니할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5. 끝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17절).
이 언약체결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준비한 희생 제물 사이틀 지나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당시 근동의 언약체결 관습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언약 체결은 언약 당사자 쌍방이 함께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쪽이 언약을 파기하면 쪼개진 짐승과 같이 처참히 죽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쪼개진 짐승사이를 지나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쪼개진 짐승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인간의 태도 여하에 관계없이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실 불완전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쪼개진 짐승사이를 지나갔다면 언약체결 이후에도 아브라함이 불신앙의 모습을 보였기에 오래지 않아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항상 일방적으로 맺으시고 홀로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우리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명백하게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아무 조건없이 축복의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과도 예수님 안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나라의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우리의 행위에 관계없이 그 약속들이 반드시 성취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하루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창 15:12-21)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횃불 언약을 받으면서 자신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데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다가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하여 나오게 되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면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천국에 반드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도 아브람이 횃불 언약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의 언약을 받았으니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횃불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창 15:12-21)
12절 바예히 하쎄메쉬 라보 베타르데마 노플라 알 아브람 베힌네 에마 하셰카 게돌라 노펠레트 알라이브
창 15: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5:12절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 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 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 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Cavin, Keil, Rosenmuller,Ka-lisch).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13절 바요메르 레아브람 아도아 테다 키 게르 이흐예 자르아카 베에레츠 로 라헴 바아바둠 베이누 오탐 아르바 메오트 솨나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5:13절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고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문법은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2인칭 단수이다. 칼형을 쓴 것은 아브람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미완료 시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잊지 말고 간직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사백 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41; 갈 3:17) ‘사 대'(16절) 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
14절 베감 에트 하고이 아쎄르 야아보두 단 아노키 베아하레 켄 예체우 비르쿠쉬 가돌
창 15: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14절
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 (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손이 나온다고 했는데 야차 3318 동사이다. 문법은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이다. 칼형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사대 만에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을 말한다. 미완료 시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나오는데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관영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온다는 의미다. 남성 3인칭 복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말한다.
15절 베아타 타보 엘 아보테이카 베솰롬 티카베르 베셰바 토바
창 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5:15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 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 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브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6절 베도르 레비이 야쓔부 헨나 키 로 솰렘 아온 하에모리 아드 헨나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5:16절
사대 만에 – 당시 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람의 증손 레위가 일 세대,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 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 롬 2:4,5; 벧후 3:8,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 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대하 36:15,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 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 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 고후 6:2).
17절 바예히 하쎄메쉬 바아 바알라타 하야 베힌네 타누르 아솬 베라피드 에쉬 아쎄르 아바르 베인 하게자림 하엘레
창 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5:17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흑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불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출 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 13:21,22; 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 19:18; 겔 10:2-4; 슥 12:6; 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 9:8-17) 일뿐임을 강조해 준다.
18절 바욤 하후 카라트 아도나이 에트 아브람 베리트 레모르 레자르아카 나타티 에트 하아레츠 하조트 미네하르 미츠라임 아드 하나하르 하가돌 네하르 페라트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5:18절
애굽강에서부터…유브라데까지 –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이다. 이는 곧 애굽 국경 부근인 가사(Gaza) 남쪽 지방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있던 큰 성읍 딥사(Tiphsa)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던 당시에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었고(민 34:2,3) 훗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에 열거된 국경이 형성되었다(왕상 4:41; 대하 9:26). 따라서 본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뜻 외에 상징적으로 하늘 가나안의 지경이 크고 넓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주노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는 ‘내가 이미 주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기업이 될 땅에 대한 반복된 약속(12:7;13:15) 에다 인준(認准)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말을 그리스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께선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천국이 이미 임하였고(마 12:28)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 3:36).
19절 에트 하케니 베에트 하케니지 베에트 하카드모니
창 15: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절 베에트 하히티 베에트 하페리지 베에트 호르파임
창 15: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절 베에트 하에모리 베에트 하케나아니 베에트 하기르가쉬 베에트 하예부시
창 15: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15:19,20.21절
허락하는 세부 사항의 진술. 이런 일은 땅을 양도할 때는 흔히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의 경계를 일일이 이름을 들어 나열했다(18절). 땅의 양도 때 흔히 그렇게 하듯이, 보다 명백히 하기 위해 그 땅의 현재 소유자와 점유인을 또한 언급하신다. “아브람의 자손”에게 내주기 위하여 쫓겨나야 할 수십 민족이나 족속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19-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을 당시는 이 모든 땅이 그들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때의 경계는 훨씬 더 협소하게 정해져 있었다(민 34:2, 3 이하).
(1)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는, 그들의 관할 경계가 최대로 확장되었다(대하 9:26).
(2) 또한 그들이 그 모든 지역을 보다 속히, 보다 오래도록 소유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과오 때문이었다. 그들은 죄악과 태만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빼앗겼고, 비겁하여 그 권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여기서 허락된 그 땅은 충분한 여유가 있는 하늘나라 상속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허락의 경계가 최대한의 범위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현재 소유자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수효와 권세와 오랫동안의 취득시효는 알맞은 때에 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 민족에게 많은 민족들의 소유지를 내주심으로써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귀중했고, 그토록 영예로웠던 것이다(사 43:4).
[창세기 히브리어 주석강해] 엘리에셀 상속자 삼은 아브라함(창15:1-11) [창세기 부활절 히브리어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표 에녹”(창 5:21-24)반응형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아브라함의 엘샤다이 하나님(창 15:1-11)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5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아브라함의 엘샤다이 하나님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아직 아들이 없어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씨에 나오는 자가 상속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람과 횃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엘샤다이 하나님(창 15:1-11)
1절 아하르 하데바림 하엘레 하야 데바르 아도나이 엘 아브람 바마하제 레모르 알 티라 아브람 아노키 마겐 라크 세코르카 하르베 메오드
•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후에는 14장의 사건 후, 즉 아브람이 318명을 거느리고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파한 일과 소돔왕이 주는 재산을 거절한 후를 말한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돌라오멜의 4대 연합군이 패하여 도망했으나 그들이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아브람을 침공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브람이 몇 명 안 되는 군사로 자기들을 쳐서 이겼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다시 연합군을 결성하여 아브람을 치러 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라고 위로와 힘을 주신 것이다.
나는 너의 방패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적의 화전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신다고 말씀했다. 아브람이 평소에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자에게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격퇴한 것은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만약 하나님을 방패로 삼지 않았더라면 4대 연합군의 큰 세력과 싸우기 위해 318명의 적은 인원으로 감히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싸움에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고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방패로 삼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그 사람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스가랴 7:13에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또 시편 18:26에는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였다. 역대하 15:2에는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라고 했다. 에스겔 2:6에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라고 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전갈과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신다.
예레미야 1:18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했다. 아무리 핍박하는 세력이 크고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해 줄 터이니 두려워말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믿지 않는 신신학자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해 주지 않는다. 최유선 선교사는 “신신학자들의 하나님은 매우 약한 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신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매우 약한 분으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즉, 홍해를 가를 수 없는 하나님, 물 위로 걸어갈 수 없는 예수님,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일 수 없는 예수님으로 그들은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자는 아브람처럼 전능한 하나님으로, 능력의 방패로 믿고 어떠한 역경에도 담대히 나아간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믿은 증거는
① 아브람이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고 갈 곳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만 따라갔다.
② 자기 목자와 롯의 목자가 싸울 때에도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세상 것을 양보하였다.
③ 소돔왕이 약탈당했던 소돔성의 모든 재산을 아브람에게 다 가지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믿고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극강 담대하게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삼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큰 상급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두려워하는 것과 근심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믿으면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해도 두려울 것이 없고,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후사에 대한 문답(2-4)
2절 바요메르 아브람 아도나이 아도나이 티텐 리 베아노키 홀레크 아리리 우벤 메쎄크 베티 후 다메세크 엘리에제르
3절 바요메르 아브람 헨 리 로 나타타 자라 베힌네 벤 베티 요레쉬 오티
4절 베힌네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브 레모르 로 이라세카 제 키 임 아쎄르 예체 미메에이카 후 이라쎄카
• 15:2-4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아브람은 일찍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과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12:2-3). 또 이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12:7, 13:15)는 약속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늙도록 자녀를 생산치 못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그 말씀 성취가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 양자로 인하여 그 말씀이 성취되겠는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 되겠는가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자손이 된다는 말씀을 받지 못한 때였다. 아브람은 아직까지 무자(無子) 한 것만 생각하여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자기 집에서 길러서 상속자로 삼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아브람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한 소치이며, ② 너무 조급한 생각이요, ③ 자기가 늙어서 생산치 못할 것만 생각한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람이 일시적으로 실족한 것이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자손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늙은 아브람에게서도 능히 자녀를 생산케 해 주실 수 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방인은 너의 후사가 될 수 없고 네 몸에서 나야 되고, 네 정성과 노력과 희생을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후사도 이와 같이 사랑과 피땀이 들어가고 정성과 수고로 길러야 후사가 될 수 있다.
이신득의 (以信得義)(5-7)
5절 바요체 오토 하후차 바요메르 하베트 나 하솨마예마 우세포르 하코카빔 임 투칼 리세포르 오탐 바요메르 로 코 이흐예 자라에카
•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문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네 자손이란 장차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했다. 아브람의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자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의미이다.
6절 베헤에민 바아도나이 바야헤쉐베하 로 체다카
•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정식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 전에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서 구속해 주겠다는 약속은 하셨으나 누구의 자손 중에서 나게 하시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비로소 네 자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브람의 자손이요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롬 4:11).
누가복음 16:22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은 나사로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고, 아브라함이 믿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아브람이 오실 그리스도를 말로만 믿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믿고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곧 그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에게는 생명과 권세가 있다.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아브람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의인으로 간주(看做) 하시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제 아브람은 여호와 앞에 의인이 되었다. 그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된 것이다. 아브람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가 사죄와 칭의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심령으로 영접하여 그로 말미암아 살면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게 된다.
7절 바요메르 엘라이브 아니 아도나이 아쎄르 호체티카 메우르 카세딤 라테트 레카 에트 하아레츠 하조트 레리쉐타흐
•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것은 아브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즉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아브람이 제사 드림(8-11)
8절 바요마르 아도나이 아도나이 바마 에다 키 이라쎄나
9절 바요메르 엘라이브 케하 리 에겔라 메슐레쎄트 베에즈 메슐레쎄트 베아일 메슐라쉬 베토르 베고잘
• 15:8-9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증거를 여호와께 보여 달라고 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해서 제사하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응답해 주실 것을 암시하셨다. 과연 여호와께서 그 제사를 불로 응답하셨다(17절) 여호와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된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주실 증거이다.
삼 년 된 소가 3년이 되면 논밭을 갈 수 있고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장성한 소가 된다. 그러므로 삼 년 된 것을 잡아 제사드리라는 뜻은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을 드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예표하기도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흠 없는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 예배 시간에 늦거나 졸거나 하는 것은 흠 있는 제사가 된다. 성도가 하나님께 흠 있는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
10절 바이카흐 로 에트 콜 엘레 바예바테르 오탐 바타베크 바이텐 이쉬 비트로 리케라트 레에후 베에트 하치포르 로 바타르
•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아브람이 짐승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해 놓았다. 이런 의식은 만일 계약을 위반하면 그 짐승을 쪼개는 것처럼 쪼갬을 당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의식이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로써 그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한 것은 그 계약 성취를 확증한 것이다(17절). 그 계약 내용은 그리스도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5-7절). 이것이 8절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새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솔개가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솔개는 매과에 속하는 새의 일종이며 여기서는 마귀를 상징한다.
레위기 1:17과 5:8에 새는 제물로 드릴 때 아주 쪼개지 말라고 했으므로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17절).
11절 바예레드 하아이트 알 하페가림 바야셰브 오탐 아브람
•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온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마귀가 삼키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마귀가 와서 늘 방해한다. 그때에는 마귀를 쫓아야 된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마귀를 물리쳐야 마귀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합당한 제사가 된다. 기도할 때도 마귀가 방해하는 생각을 넣어 준다. 이럴 때에는 즉시 그 마귀의 방해를 물리쳐야 한다. 처음에는 독수리보다 작은 솔개가 와서 방해하며 제물을 가로채려고 한다. 작은 것이 올 때는 쫓기가 쉽다. 그러나 작은 마귀의 역사(방해물)를 용납하면 나중에는 점점 큰 것들이 날아와서 더 큰 방해를 한다.
아가 2:15에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헌다고 했다. 작은 여우나 솔개는 얼마든지 쫓을 수 있고 넉넉히 물리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용납하면 더 큰 것이 오므로 쫓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를 처음부터 쫓아내야 한다.
[마가복음 4장 주석 성경말씀]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 비유(마 4:1-41)반응형
인생의 염려를 만날 때(창세기 15장)
주제 : 인생의 염려를 만날 때
본문 : 창세기 15장
설교자 : 이병권
저는 오늘 인생의 염려를 만날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015년이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갑니다. 올 한해는 어떠셨습니까?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해마다 연말이 되어서 한 해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고백하며,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내년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새로운 한 해를 생각하면 염려되는 일은 없으십니까?
내년에도 직장생활 잘 할 수 있을까? 경기가 어렵다는데 회사는 괜찮을까? 먹고 사는데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고, 자녀들로 인해 걱정하기도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바람대로 잘 커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녀가 어려도 염려되는 일이 있고, 자녀가 커도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을 해도 걱정이고, 결혼을 안 해도 걱정입니다. 아마도 아무런 염려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 할 수 있고, 또 염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염려에 대한 주제를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은 우리들만의 특별한 문제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살펴보고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아브람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조카 롯에게 아무 조건 없이 비옥한 땅을 양보했으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 아브람은 왜 염려하고 있었을까요? 15장은 “이 후에”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14장의 전쟁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조카 롯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밤중에 적을 기습해서 거둔 승리였습니다. 갑작스런 공격으로 패배한 적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다면 어떨까요? 아브람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에게 말 못할 염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말씀을 ‘언제’ 하시냐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염려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절) 아브람은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람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위험과 불안 가운데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방패”라는 말은 특별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패! 하나님이 그에게 방패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 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브람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염려와 불안을 느낄 때 많은 경우에 뭔가 바뀌기를 바랍니다.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염려와 불안요소, 그 자체가 없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염려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그 속에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상황을 바꾸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현재 상황이 아니라 나를 보라고,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나를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아브람은 크게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시큰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며 대답합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2절)
아브람이 지금 현실을 보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별로 와 닿지 않는 겁니다. ‘큰 상급을 주신다구요? 지금 저에게는 자식도 없습니다.’ 아브람은 푸념처럼, 종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이 당시에는 자식이 없을 경우 종을 상속자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들을 안주신 것에 대해서 상한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3절) 마치 하나님께 삐쳐있는 듯한 아브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큰 민족은커녕 아들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람은 약속이 지연될 때, 우리가 흔히 그러는 것처럼 약속에 대해 의심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속에 속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예들이 약속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쉽게 깨뜨리고, 거짓 약속으로 서로를 속이기에 약속을 순진하게 믿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은연중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겉으로는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고, 계속 죄책감에 매여 괴로워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니까, 기도를 잘 안하게 되고 기도가 형식적으로 메마르게 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먹고 입는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먼저 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뜻밖에 걸림돌을 만나게 될 때 불안과 염려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제쳐두고 내 방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어려운 상황에 아브람이 처해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자녀의 약속과 땅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랜 기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염려로 인해 아브람은 하나님께 두 번씩이나 “상속자”라는 말을 하며 마치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다는 듯이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약속하셨지만, 약속을 잊으시고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으니 제 종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4절)
하나님은 아브람의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를 없애시며 그의 믿음을 다시 회복시키려 하십니다. 그분은 먼저 엘리에셀이 아브람의 상속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엘리에셀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으시며, 그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한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아브람아 네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다. 내가 약속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다. 너의 상속자는 반드시 네가 낳은 자가 될 것이야!’ 이 말씀이 아브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게 하십니다. 청명한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는 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아브람이 마치 쏟아질 듯 온 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 말씀을 지금 우리가 보는 밤하늘로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이 본 것은 사천년 전의 밤하늘입니다. 얼마나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얼마나 자상하신지, 시각자료까지 사용하셔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6절)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였고 그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한 아브람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은 그 아브람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이 6절의 말씀은 신약에서 사도 바울에 의해 두 번, 야고보에 의해 한 번 인용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삶의 염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이 불안스럽고 두려운 세상에서, 이 부패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
때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때로 그분이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아브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아시고 그 가운데 말씀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동시에 그 믿음은 우리 마음의 염려를 없애줄 것입니다.
혹시 염려 가운데 계십니까? 그러면 방패 되시는 하나님께 숨어 그분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은 회복되고 염려는 확신으로 바뀔 것입니다.
다음으로 7절부터는 하나님과 아브람의 두 번째 대화가 이어집니다. 두 번째 대화는 앞의 첫 번째 대화와 병행을 이룹니다. 비슷하게,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있고 그것에 대한 아브람의 질문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으로 대화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땅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이 언급됩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7절)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브람은 여전히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그 약속을 반복하시니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 질문에 대해서 자신의 말씀을 보증하는 언약식을 준비하도록 하십니다. 동물을 죽여서 언약을 확증하는 것은 고대에 있었던 엄숙한 예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반으로 쪼개놓고 그 사이로 지나갔는데 그것은 만약 둘 중 누군가가 그 약속을 깰 경우 저 쪼개진 동물과 같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약속을 보증하시기 위해서 당시 사람들이 하는 언약식의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입장에서 아브람에게 익숙한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와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는 것처럼 상대방의 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믿음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괜히 더 어렵게 만들고, 일부러 더 혼란스럽게 하고, 복잡하게 일을 꾸미는 분이 아닙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두고 무조건 믿어! 라고 강요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의심과 의문이 생길 때, 언제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믿음 없음을 고백하며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어서, 하나님은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의 후손이 이방에서 노예가 되어 사백년 동안 그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백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징계하시고 아브람의 자손은 해방될 것입니다. 그 후 아브람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사백년이 지나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기 수를 다 누리고 평안히 죽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사백년은 이유가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족속 가운데 하나인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때로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은 그분이 약속을 잊었거나 약속을 깨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지연이 취소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우리의 시간표와 다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두르며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하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전체 그림을 보고 계시고,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사건들이 어떻게 다 맞아 들어가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우직하게 믿고 인내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의 말씀을 마치시고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햇불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절) 타는 연기와 불은 구약에서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 불타는 햇불 만이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언약의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보증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그 어떤 것보다 크신 하나님 자신을 두고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내가 이 약속에 대해서 나를 두고 보증하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만 이런 약속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염려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우리 인생을 지도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삶의 기본적인 필요들을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약속이 지연된 것처럼, 더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둠의 시간이 있을 수 있고, 고난의 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염려할 수 있습니다. 걱정할 수 있습니다.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 앞에 있는 소망을 가리지는 못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염려의 늪에 빠져서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거나,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계십니까? 눈앞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약속을 신뢰하기가 불안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에게 당신 자신을 걸고 약속을 보증해주셨던 하나님이 그 무엇보다 귀한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신대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었고 우리의 속사람은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약속하신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염려 가운데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행해지던 언약 예식을 통해 당신 자신을 걸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분명하게 보증해주셨습니다.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그 약속의 하나님은 예수님 피로써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보증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수고와 희생에 대해서 결코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생의 염려를 만날 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은 우리 주 예수님이 그분의 십자가로 영원히 보증한 약속입니다. 절대 깨어지지 않는, 절대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창세기 15 장 주석
다음은 Bing에서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하루 한 장] 창세기15장_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 분홍목사
- 홍융희
- 하루 한 장
- 부산성민교회
- 창세기15장
YouTube에서 창세기 15 장 주석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한 장] 창세기15장_나는 네 방패요 상급이니라 | 창세기 15 장 주석,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