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잘못 아는 구절 바로잡기23] 마16:19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 물질 풀면 하늘에서 부어준다?)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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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꿀같은 말씀이죠. 무슨 주식 하는 사람들이 기대주를 사듯이 헌금을 내면 부자로 만들어줄 복을 기다리는 것 처럼… 하지만 이 본문은 교회에 주신 권위를 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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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순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번역비교] [유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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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8/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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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매는 것과 푸는 것”의 개념은 마태복음 16:19에 나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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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tquestions.org

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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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림 …

이방인들의 기도는 자기 욕구와 기대치와 자기 생존과 야망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성도의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는 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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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rosslamb.tistory.com

Date Published: 5/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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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기도 응답(마태복음 18:15-20) – 다음블로그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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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3/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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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한국컴퓨터선교회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는 신앙생활의 중심적(中心的)인 장소이요, 성도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피차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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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kr

Date Published: 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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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보스톤 한인교회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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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boston.org

Date Published: 3/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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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18-20 KRV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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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9/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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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교회 – CTS기독교TV

그렇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행한 올바른 결정에 대하여서는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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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3/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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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아는 구절 바로잡기23] 마16:19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 물질 풀면 하늘에서 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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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Author: 창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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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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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

성경에서 ‘매는 것과 푸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답변

“매는 것과 푸는 것”의 개념은 마태복음 16:19에 나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사도 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다른 사도들에게는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천국 열쇠를 소유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일반 권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베드로 자신도 천국 열쇠를 갖게 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하늘의 문을 여는 수단이자 불신자에게는 그 문을 닫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과정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의 설교 (사도행전 2:14-40)를 통해 처음으로 천국의 문을 열었습니다. “매다”와 “풀다”라는 표현은 어떤 것이 금지된 것이고 어떤 것이 허락된 것인지를 선언하는 유대인의 법적인 표현입니다.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해야 했고, 주께서 가지고 계셨던 것과 똑같은 권세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8:18을 보면, 교회 권징의 맥락에서 매고 푸는 것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개인 신자들과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주권과 권세를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권징을 위해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불순종하는 교회 지체를 출교하기 위해 권세를 사용하였습니다.마치 사도들이 땅에서 결정하는 것이 하늘에서도 그대로 이뤄질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해 가면서 하늘에서 세워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땅에서 어떤 것을 “맬” 때에 혹은 그것을 금지할 때에, 그들은 그 일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어떤 것을 “풀” 때에 혹은 허락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19 와 18:18의 헬라어 원문의 구조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그것이 하늘에서도 매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도 풀린 것이다” (마태복음 16:19, Young의 Literal Translation). 또는 확대성경 Amplified Bible이 번역한 것처럼,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금지하면, 부적절하고 불법적이라고 선언하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매인 것이며, 무엇이든지 땅에서 너희가 풀면 (허용하고 적법하다고 선언하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풀린 것이다.”예수님은 사도들이 지상에서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의 서신서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의 권위있는 말씀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교란시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했을 때, 우리는 그 저주가 이미 하늘에서 선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1:8-9 참조).

용서와 기도 응답(마태복음 18:15-20)

용서와 기도 응답

(마음이 하나 되어야 기도가 응답 된다)

마태복음 18:15-20

천국 열쇠

기도 응답의 비결이 있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매고 푼다는 말은 마태복음 16:19절에도 나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합니다.

‘열쇠’는 청지기로 임명된 자에게 주어짐으로 전권을 가지고 창고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장차 반석위에 세워질 주님의 교회와 관련해서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천국 열쇠는 음부의 권세도 이길 수 없는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로마 카톨릭은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베드로 한 사람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그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그 권한이 계속 부여되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천년 왕국이 오면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합니다. 가장 타당한 해석은 이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모든 신약의 성도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다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천국 열쇠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의 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매고 푸는 권세

매고 푸는 권세란 당시 랍비들의 용어 사용법에 의하면 ‘맨다’는 말은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 한다’는 뜻이고, ‘푼다’는 말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매고 푸는 일을 베드로의 절대적 권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매고 푸는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르게 깨닫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성도가 받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매고 푸는 천국 열쇠의 권세가 죄의 용서와 축복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즉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매는 일은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하는 일이고, 푸는 일은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는 일이 됩니다.

죄의 처리 과정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형제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죄를 범한 형제와 일대일 상대하여 권고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려고 사랑으로 권고합니다. 만약 권고의 말을 들으면 형제를 얻게 됩니다. 아름다운 결과입니다.

그러나 만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번째로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용서와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만일 두 세 증인의 말도 듣지 않으면 세 번째로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세 단계로 죄를 범한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은 형제의 죄를 용서하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사랑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고 봅니다.

천국 열쇠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용서를 방해하는 권세는 음부의 권세입니다. 천국 열쇠의 권세를 믿는다면 용서를 방해하는 세력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었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이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죄든지 이 권세를 믿고 나아가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교훈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로 나타내려는 것을 좋아합니다.

랍비들은 이웃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3번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제시한 7번은 율법적 용서를 능가하는 베드로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곱 법을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용서의 비유

용서의 교훈을 하신 예수님은 용서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천국은 그 종과 결산하려는 어떤 임금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임금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결산이란 인생 끝을 말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결산할 날이 옵니다. 결산한 결과 어떤 종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갚으라고 했습니다. 종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었습니다. 임금은 그 종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했습니다. 망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까지 망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이요, 큰 고통이었습니다.

종은 임금에게 엎드려 말합니다. 내게 참으로서 다 갚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갚을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 주며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과 모든 소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지옥에 떨어졌다가 천국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인 동료 한 사람을 만납니다. 만나자 마자 그는 그 동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합니다.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겠습니다.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빚을 갚도록 감옥에 넣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임금에게 알립니다. 임금은 그를 불러다가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빌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느냐.”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지옥의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해결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나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고 풀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내가 다른 형제에게 죄를 범할 수도 있고, 그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내가 다른 형제에게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이 나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하면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죄의 용서는 죄를 고백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 용서 받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테텔라스타이’, 다 이루었다. 죄의 갚을 다 갚았다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죄인이고, 내 죄를 예수 이름으로 고백하면 다 용서를 받습니다. 내가 힘으로 갚을 수 없는 죄의 값을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주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용서를 받았습니다.

내가 정말 용서 받았다면 나도 누군가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요 직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 열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열쇠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리는 절대 열쇠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죄라면 바로 이 열쇠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은 누구?

예수님은 19-20절에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의 주제가 용서라면, 여기 나오는 두 세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왜 예수님은 그들 중에 함께 계십니까? 용서는 너와 나의 문제입니다. 때론 너와 우리들일 수 있습니다. 너와 나는 용서를 비는 사람과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모입니다. 왜 예수 이름으로 모입니까? 예수 안에서 죄 용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적극적인 용서를 실천하는 장입니다.

특히 일만 달란트에서 보았듯이 임금의 일방적인 용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용서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오히려 불행해 집니다.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실천할 때 완전한 용서가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질 때에 매고 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때 이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일은 죄의 용서일 것이고, 용서는 더 큰 천국의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용서는 마치 흥부전에서 제비가 날라다 준 박씨와 같아서 합심하여 영차영차 박을 쓸게 되면 하늘 축복이 쏟다져 내려올 것입니다.

마음의 중요성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35절에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33절을 보면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로새서 3:12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죄의 용서가 가장 큰 용서입니다. 이 용서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가 실천된다면 예수님은 그 사람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하는 모든 것,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사랑의 용서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Korean Church of Boston

2015년 이전 설교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날짜 : 2009.07.15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본문 : 마태복음 16:13-2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0712.wmv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audio_master/Sermon_20090712-0.mp3 세 친구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큰 암초에 배가 부닥쳤습니다. 배는 가라 앉고 세 친구는 어느 섬에 간신히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6개월을 보냅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바닷가에서 오래된 램프를 주었습니다. 램프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갑자기 요정 지니(Genie)가 나타났습니다.

지니가 말합니다, “저를 풀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세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여러분이 세분이니 한 분에게 한 소원씩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첫 친구가 말합니다. “너무 잘 됬네요. 저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저는 저의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답니다.”

순간 친구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친구가 말합니다. “나의 아내와 자녀들이 보고 싶습니다. 나를 그들에게 보내주세요.”

그 친구도 사라졌습니다. 세번 째 친구 혼자 남아 있습니다. “나는 혼자 있으니 너무 외롭군요.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두 친구를 불러 주세요.”

그 이후의 일은 여러분들 상상에 맡깁니다. 제가 어릴 때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중 하나가 요정 지니입니다. 물론 기억나는 이야기는 없지만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매 회마다 어려운 일들을 지니가 극적으로 풀어 가곤 하던 생각이 납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한국에까지 들어 왔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내면에 자신이 할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신비스럽게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이 지니 이야기를 읽었는데 요즘은 한국인들이 지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나 궁금해서 ‘요정 지니’를 구글 검색해 보았습니다. 요정 지니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신발도 ‘요정 지니’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니와 같이 신비한 존재를 그리워 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지니가 삶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구나’ 느껴 보았습니다. 최고로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지만 그 안에서 어찌할 바 몰라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느 웹사이트에서는 지니에게 보내는 소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나는 수학은 잘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못합니다. 영어를 잘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지, 그 내면 세계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느덧 스스로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운명도 좌우할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 정도를 원하시고 계실까요?오늘 본문말씀을 상고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크리스챤의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명한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갑자기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7, 18절 말씀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는데 이 고백으로 인해서 ‘베드로’ 곧 반석이 됩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하나로 인해서 갑자기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신 없이 듣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을 하였더니 천국 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는 이 천국 열쇠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는 두번 째 놀랍니다. 처음 자신이 반석이 된 것에 대해서 놀랬습니다. 자신이 역사의 중심이 된 사실에 대해서 놀란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째 놀라운 말씀을 듣습니다. 이제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영어를 잘 하고 싶습니다” 기도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니에게 말하는 소원과 똑 같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손에 천국 열쇠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천국 열쇠가 주어진 자들이 곧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하늘 역사의 중심 인물들입니다. 어떠한 내용의 기도를 드려도 이 사실을 잊으셔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동안 세상 역사는 인간을 세상 역사 가장자리로 늘 몰아내었습니다. 결국 세상 역사의 중심 인물로 지니를 세워가게 한 사건들이 여럿 있습니다. 잠시 역사 공부 좀 해 볼까요? 대표적인 사건들을 말씀드리면, 첫번째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밝힌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혁명이 있습니다. 1500년도에 와서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니 점점 지구에 사는 인간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며들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세상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첫번째 사건입니다. 물론 그것은 바른 과학적 발견이었긴 하지만….

두번째가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해 왔던 사람들은 원숭이의 사촌이 되어 버립니다. 우연 발생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도 나은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집니다. 그 후 창조론과 진화론은 늘 다투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론은 틀린다고 믿고 있지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번째가 프로이드의 학설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삶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것(무의식)의 자극에 지배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어떤 행동의 책임자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계 역사의 책임자가 되겠습니까?

네번째가 DNA 곧 유전자입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유전자 안에 인간의 운명이 다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유전자 안에 기록된대로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최고봉이라고 할수 있는 DNA발견은 인간을 또 다시 역사의 중심 밖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됨과 아울러 인간은 세상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칼합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과학은 인간들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갔습니다.

교우 여러분,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켰고 또 계속 시키고 있지만,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도리어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 나갈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밀려 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이죠. Terrence Sejnowski 라는 하원드 휴즈 의학연구소 신경 콤퓨터 신경과학자는 “인터넷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2015년이 되면 인터넷이 인간의 뇌의 기능을 능가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번째는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파생된 ‘부’ 곧 ‘돈의 힘’이 인간을 마지막으로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있습니다. 더 큰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 역사의 중심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섯번의 과정을 거쳐서 인간은 세상 역사에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 희생자가 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세상 역사에서 인간이 밀린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지니를 찾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밀린 인간들은 역사의 새로운 중심을 만들은 것입니다. 지니입니다. 그리고 꿈에서 지니와 대화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지니와 대화를 나누며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 여섯 가지 사건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간 것일까요? 그렇다면 역사를 거꾸로 돌려서 이 여섯 가지를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지워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인터넷 사용부터 중지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역사의 중심인 것을 인지하고 그처럼 사신 분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만델라입니다.

2003년도말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인 만델라는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자선 콘서트인 ‘46664콘서트’를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비극입니다. 에이즈는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위해 우리는 지금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자금을 모아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을 돕고 경각심을 일깨워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의 확산을 예방해야 합니다. ‘46664’는 제가 모번 섬의 감옥에서 18년을 보내는 동안에 사용했던 수감번호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숫자로만 인식됐습니다. 오늘날 에이즈에 감염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숫자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평생 동안 수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제 수감번호였던 ‘46664’를 이 캠페인에 붙인 이유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 만델라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됩니다. 만델라는 세상 문화는 번호문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번호 곧 숫자를 붙이고 숫자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6664콘서트’를 연 것입니다. 그런데 ‘46664’는 자신이 감옥살이 할 때의 번호였다는 것입니다.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한 콘서트 이름에 자신의 죄수 번호를 붙인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번호를 메기기에 바쁜 세상 문화는 에이즈 환자들을 번호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죄수 생활할 때는 18년간 이름없이 번호로 살았지만 그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에 있는 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숫자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역사의 중심 인물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와 싸웠고 이겼습니다. 드디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명실공히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숫자화시키고 있는 세상문화와 새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델라의 관점에서 조금 전에 열거해 드린 여섯 가지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서 몰아낸 사건들은 모두 인간을 번호화했던 사건들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우주의 항성들에게 번호를 매기기 시작합니다. 지구는 가면 갈수록 작은 번호를 받게 됩니다. 진화론도 어떻게 보면 번호매김입니다. 모든 동물이 아메바로부터 왔습니다. 아메바가 1번입니다. 한참 뒤에 원숭이가 있고 그 다음이 인간입니다. 특히 DNA는 우리 인간을 숫자로 풀이하기 시작한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이 유전자라는 번호 안에 다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은 인간을 도메인(domain) 번호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돈은 정말로 숫자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것은 단지 숫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로 시작했다가 숫자로 마칩니다. 특히 보스톤에 살게 되면 더 그렇습니다.

지난번 한국과 호주를 다녀 온 후 교회에 왔더니 어느 레드삭스 팬(Red Sox fan)이 저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이 보스톤에 안 계시니 레드삭스가 계속 이겼습니다.” 늘 숫자 속에 살아 갑니다. 사실 저도 요즘 밤10시 넘어 집에 들어 오면 레드삭스가 어떻게 됬나 TV를 켜 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숫자 없이는 살수가 없는 삶을 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숫자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숫자입니다. 숫자가 늘 우리에게 잠시 동안 기쁨을 주지만 많은 시간 고통과 눈물을 안겨다 줍니다. 이처럼 숫자 안에 살면서 어떻게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밀어 낸 이 여섯 가지 사건을 뒤엎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섯불리 덤볏다가는 너 죽고 나 죽는 격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은 늘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곤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을 좀 더 잘 풀이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과연 땅에서 맨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또 푼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땅에서 요술방망이를 두드리면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는 것인냥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군인시절 군인 교회를 다녔는데 설날인가 윷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윷을 던지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이름으로.” 얼마나 윷놀이에서 이기길 원했으면 그렇게 합니까? 예수 이름을 요술 방망이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윷이나 모가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천국 열쇠는 요술 방망이가 아닙니다. 이럴 때 주석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딱딱한 말씀은 생략합니다. 신학적으로 ‘매고 푼다’는 것은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곧 사람의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있다고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매고 푸는 권위는 예수님의 권위인데 이 권위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보면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은 천국 열쇠를 소유한 자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 열쇠는 무엇이죠 아니 누구를 위한 열쇠이죠? 이웃을 위한 열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웃의 영혼을 위한 열쇠입니다.

곧 이웃의 영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숫자의 노예된 삶에서 해방됩니다. 이 때 하늘문을 여는 자가 되어 갑니다. 하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의 고민 거리는 풀렸습니다. 말씀 드렸던 6가지 역사적 사건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몰아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천국 열쇠를 포기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6가지 역사적 사건은 하등 천국 열쇠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보는 눈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역사의 주변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는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섯가지 말씀드린 문화의 발전 단계가 필요합니다. 물론 진화론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문화의 발전이 또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발전이 생겨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늘 살수 있습니다.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천국 열쇠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역사의 주인공은 거창한 삶의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권위자가 아닙니다. 큰 숫자의 사람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천국 열쇠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숫자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함을 늘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부르클라인의 38%가 유대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 거의 예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숫자에 얼마나 밝은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이들이 마치 세상역사의 중심된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들을 위한 천국열쇠를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그 천국 열쇠는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할 때 이들은 언젠가 예수를 믿고야 말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천국 열쇠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역사의 주변에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역사의 중심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들의 한 영혼을 사랑하십시요. 함께 하늘 역사의 주인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은 시골 소녀이지만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고 있었던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있습니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군을 이끌며 영국군에 맞서 싸울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어느 날, 도시를 향해 진군하던 프랑스 군대는 저 멀리 수만명의 영국 병사가 언덕마다 장벽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지금 바로 저들을 무찔러야 합니다” 라고 지휘관에게 말했습니다. 잔 다르크는 숙련된 전사와 맞서 이번 전투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이런 열정과 대담함 앞에서 지휘관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찌됐든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오합지졸 군대를 이끄는 시골 소녀일뿐이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말했습니다.

“나는 저 장벽의 중심부를 칠 겁니다.”

“네가 저들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누구 하나 네 뒤를 따르지 않을 거다.”

“난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잔 다르크가 단호하게 대답했고, 이 어린 소녀의 확신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잔 다르크는 자신이 역사의 중심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의 쟌다르크는 누구일까요? 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브루클라인은 잔다르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보스톤은 잔다르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은 잔다르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 Bookmark the permalink ← Older posts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18-20 KRV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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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용서해야 할까요? (2)

방송일 : 2005-07-17

조회 : 2452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용서에 관하여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첫 시간 마18:21절과 22절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용서는 제한이 없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합니까? 일곱 번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용서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커트라인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무제한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합니다.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가 여럿있는데 대표적인 의미가 바로 “보내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 아사셀 양을 광야로 내어 보내듯이 그 죄와 관련된 일체의 것들을 당신의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리십니다. 사43:25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기억하지 않을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잊혀지지 않습니다. 잊어야지 잊어야하지 하는데 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그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할 때 우리의 죄만이 아니라 그 죄와 관련된 것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하나님이 더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합니다.

그리고 23절부터 35절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하여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가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을 받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누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는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 때문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는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할 축복은 바로 용서의 축복입니다.

또 우리가 용서해야 또 하나의 이유는 용서가 바로 내 자신의 축복과 회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을 때의 감격으로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었다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30절)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를 요구하시는지 아십니까?

따지고 보면 저와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축복하고 회복시키기 전에 욥에게 세 친구들에 대한 용서를 요구하셨습니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세 친구들은 자기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들입니다.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며 욥을 위로하기 보다 욥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으로 하여금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세 사람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10)

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친구들을 받아 들이고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었을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욥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욥을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청년들이 쓰는 농담 중에 용서에 관한 애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성질 나쁜 여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 생긴 여자는 용서 못한다󰡓아무리 성질이 나쁘더라도 얼굴만 예쁘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철없는 애기입니까?

그런데 요즘은 한술 더 떠서 “얼굴이 못생긴 것은 용서해도 장인이 돈 없는 것은 용서 못한다.” “얼굴이 못생긴 것은 용서해도 장모님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용서 못한다.”는 말을 쉽게 하고 있습니다. 농담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입니까?

또 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머리카락이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머릿 속에 든게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과거가 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귀 뚫은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귀가 꽉막힌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눈 작은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쌍꺼풀 수술을 한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밥 많이 먹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반찬투정하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월급이 적은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몰래 비자금 만드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외박은 용서할 수 있어도 속옷을 뒤집고 들어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농담이지만 이렇게 용서라는 말을 아주 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농담이니까 그렇지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말이 그렇지 실제로 성질 나쁜 여자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은 등한히 하고 허구한날 싸 돌아다니기만 하고 고스톱만 치는 아내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외박하는 남편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밥하고 반찬 만드는 것 싫어서 아침은 인디언 밥, 점심은 사또 밥, 저녁은 고래밥으로 해결하려는 부인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말은 쉽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왜 용서가 그렇게 어려운지 아십니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거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복수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한쪽 눈이 뽑히면 좇아가서 두 눈을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픈 것입니다. 보복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하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계속하여 왜 우리가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왜 용서하며 살아야 할까요? 18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교회의 권징을 말합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주님은 이 말씀에 앞서서 형제가 죄를 범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한번 다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15절)

예수를 믿는 형제가 간음의 죄를 지었다던지 사기를 쳤다든지 윤리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형제의 범죄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말고 조용히 그 형제게 찾아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제가 자기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권면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이번엔 한 두 사람의 증인을 데리고 가서 권고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16절)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7절)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은 공동체 밖의 사람들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의 출교를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교회의 거룩과 순결을 위해서 주신 권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권징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만 해도 교회에 권징이 있었습니다. 성도가 남의 돈을 떼어 먹었다든지 간음을 행하면 반드시 교회에서 징계를 내렸습니다. 30일간 교회에 출석하지 말라든지, 아니면 1년동안 직분을 박탈한다든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 안에 이런 징계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왜 사라졌지요? 성도들이 징계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여기만 교회냐?며 교회를 옮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형제가 죄를 범하였을 때 조용히 찾아가 권면하고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을 때 증인들을 데리고 찾아가 권면하고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교회에 말하고 나중에 교회의 권면마저 거부했을 때 그를 공동체 밖의 사람으로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곧 바로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님은 이 땅에서 교회가 결정한 일에 대하여 주님께서도 인정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행한 올바른 결정에 대하여서는 그것을 인정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내린 모든 결정을 주님이 인정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린 적이 많이 있었습니까?

1562년, 교황 비오 4세는 군대를 보내며 이단자들을 남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도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57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파리에서 성 바돌로매의 축제일에 카톨릭 교도들이 십만 명의 위그노 즉 개신교도들을 학살했다는 소식에 기쁨으로 성 루이스 성당에 감사 드리러 갔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저 베이컨’이나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학자들이 종교재판으로 고통을 받았고, 프랑스의 애국 소녀 ‘잔다르크’도󰡐마녀’로 지목되어 산채로 화형 당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바르지 못한 교회의 결정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교회의 거룩과 순결을 위해서 이 땅에서 교회가 내린 온전한 결정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둘째는, 용서의 기도를 말합니다.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는 것은 바로 용서를 말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내 자신을 묶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맺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묶임을 당합니다. 영혼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우리의 마음과 육체까지도 묶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 주변에 보면 용서핟지 못하며 마음의 병을 얻고 육체의 병까지 얻어 고통 가운데 사시는 분들이 참 많이 계십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분노의 독소는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까지 죽이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애기를 들어보면 이유없이 가끔 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게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또 육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손과 발이 마비되는 사람도 바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암세포가 꾸준히 생성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 속의 분노의 문제,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신경통, 위궤양, 밥만 먹으면 이유없이 설사하는 사람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멸시를 당하고, 손해를 보고, 상처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마음의 병을 얻고 육체의 질병을 얻어 그 사람 보다 일찍 죽게 된다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 내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 땅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도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그 분노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도 하늘의 문을 닫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용서가 곧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 5:9)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를 맺고 사는 것은 하늘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까지라도 용서하며 사는 것은 곧 하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을 열고 닫음이 우리의 용서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은 몰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날마다 하늘의 문이 닫히면 살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되었어도 숨쉬는 공기와 물과 태양이 없다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땅을 쳐다보며 살아가는 짐승과는 달리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직립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늘 문이 닫히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오는 생수를 마시며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인데 하늘의 문이 닫히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먼저 기도의 문이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면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기도생활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은 반드시 통로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상수원의 물이 수도관을 통하여 우리의 가정에까지 주어지고 여러 오수와 폐수가 하수관을 통하여 버려지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도 통로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통로가 막히면 안됩니다. 우리 몸도 혈관이 막히면 뇌졸중에 걸리거나 생명을 잃게 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막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아무리 많은 복을 내려 주신다 할지라도 사람과의 관계 속의 통로가 막히면 그 은혜와 축복이 나에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묶여 있는 것들을 풀어야 합니다.

묶여 있는 것들이 풀어져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오늘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이 사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땅에서 풀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하늘에서도 풀려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용서하지 못하여 다른 형제에 대하여 닫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 사람과 가정에 복을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께서 오늘 나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시지 않으시는가? 만 생각하지 말고 󰡐아직 땅에서 풀려지지 않는 것은 없나󰡑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립니다. 푸는 것이 곧 용서입니다.

□ 합심기도

19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합심기도에 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

예수님은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합심기도에 관하여 이보다 더 분명한 약속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합심 기도하기 이전에 그보다 먼저 전제 되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땅에서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하면 아버지께서 저희를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두 사람이 과연 누구이냐는 것입니다. 18절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은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은 그 화해의 모습으로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드리는 모든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처럼, 땅에서 서로 용서하고 모든 것을 푼 상태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이미 모든 닫혀졌던 것이 풀려졌기 때문에, 그 때 드린 기도는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합심기도란 ‘마음을 합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합심기도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심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쉼포네소신󰡑(σνμφων?σωσιν)인데 󰡐쉼포네소신󰡑 여기에서 교향곡이라는 뜻의 심포니(Symphony)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 연주자 모두가 마음을 합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것처럼 합심으로 기도할 때는 마음을 합하여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까? 합심기도 때문입니다.

통성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합심기도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합심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합심기도는 용서하고 용서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합심기도에 앞서 먼저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의 기도의 특징은 합심기도였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요한의 어머니 마리의 집에서 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옥중에 보내어 자는 베드로를 깨우고, 쇠사슬을 풀어 주고, 띠를 띠고, 옷을 입게 한 다음 경비가 지키고 있는 옥문을 열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얼마든지 하남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하였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착고에 매였던 쇠사슬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권능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1907년에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도 1903년 선교사들이 원산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함으로 점화가 되었고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를 비릇한 성도들이 새벽마다 보여 합심으로 기도하였기에 1907년의 놀라운 대부흥의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천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함께 기도하면 이렇게 놀라운 기적과 능력과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혼자 홀로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온가족이 합심으로 기도하고 부부가 서로 손을 마주잡고 합심으로 기도하고 순모임의 지체들과 목장 모임의 지체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여 손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역자와 교사들이 장로님들이 중보의 기도팀들이 손에 손을 마주잡고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천사들이 동원되어지고 하늘문이 열려지고 닫혀 있는 것들이 열려지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가족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가정의 삼겹줄은 더 돈독해져 가고 부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합심으로 기도하면 부부지간에 사랑도 더욱 깊어집니다. 합심의 기도는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 교회-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신앙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십니까?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에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기업이고 회사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교회 안에서 점점 예수님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는지 아십니까? 예수는 없고 오직 나만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은 없고 자기 이익만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없고 미움과 분쟁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교회는, 가장 건강한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입니다. 가장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의 조건은 건물이 아닙니다. 숫자의 많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세 사람은 소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을 말합니다. 가장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는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성도의 숫자가 많고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할 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았다면 그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이란? 바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 모임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까? 동창회 모임도 있습니다. 계모임도 있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대 모임도 있습니다. 노사모, 요즘에는 박사모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들아가보면 별아별 모임이 다 있습니다. “결준녀” 결혼을 준비하는 여자들의 모임도 있고 “숟갈하나”라고 해서 자취생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에는 무엇이 중심입니까? 자기 이익, 자기 야망, 감정, 생각들이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임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 중심의 모임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좌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분을 높여 드리면, 우리의 모임의 중심이 예수님이 되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고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이에 놀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생명은 모임에 있습니다. 다시한번 20절을 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

우리가 모일 때에 주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모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모여야 합니다. 교회의 권능과 역사와 신비는 모임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수 있는대로 모여야 합니다. 공적인 예배에 빠지지 말고 모여야 합니다. 모일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독불장군처럼 나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그런데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모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0:25절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곳에 모여 있다면 주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의 육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실지라도 주님은 지금 영으로 지금 이곳에 계십니다. 교회의 생명은 모임에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바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십시오. 그래야 주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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