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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막15:21-24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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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 다음블로그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면서 채찍과 구타로 찢겨진 예수님의 혈과 육이 자신의 몸에 묻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만큼 예수님의 혈과 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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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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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구레네의 시몬,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

어떤 경위인지는 몰라도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 하는 이가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그는 우연찮게 한 죄수의 십자가 처형 행렬을 목도하게 되었다.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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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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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구레 네 시몬은 누구였습니까? – Also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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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네 시몬은 누구인가? | 생명의 깨달음 | 올바른 크리스찬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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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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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구레 네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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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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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구레네 시몬, 억지의 은혜

이재현목사

하나님말씀 : 마가복음 15:21-32 2019.03.10. 主日禮拜

“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없음)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21-32)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여한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승리하세요.’

구레네 시몬

성경에는 동명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의 출생지 또는 거주지를 표기합니다. 가롯 유다가 대표적입니다. 성경에 유다가 여러 명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예수님을 판 유다를 기록할 때는 그의 출신지가 ‘가리옷’Cariot이기 때문에 지명을 이름 앞에 기록하여, 다른 동명인과 구분하고 있습니다. ‘시몬’Simon,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도 그렇습니다. 이 이름도 많은 사람들의 인명으로 사용되었기에 본문의 시몬 앞에 ‘구레네’Cyrene라는 지역이 기록된 것입니다. 구레네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도시입니다. 헬라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서 B.C. 5세기 이후,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집단 거주했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시몬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마치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후,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오순절 칠칠절로도 불리는 맥추절과 우리의 추수감사주일에 해당하는 초막절은 삼대 절기로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드려야 했습니다(출23:14-17). 이 명절에는 해외에 흩어진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도시인 구레네에 거주하던 시몬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던 것입니다.

명절을 지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음을 알게 됩니다. 소동의 진원지는 성문 밖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여 들었고요. 구레네 시몬은 본문에 ‘시골’로 기록된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다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가 본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이른 아침까지, 세 번의 재판과 가혹한 채찍 그리고 모욕과 고초로 한숨도 자지 못한 체, 십자가가 끌고 가는 것인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는 없었고요.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를 제외하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욕설과 비방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롱하는 말을 쏟아내는 이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넘어졌다 가까스로 일어 섰다를 수차례하시면서, 골고다 덕을 향해 핏자국이 선명한 발걸음을 내디셨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십자가 형 집행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자,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는데요. 이 시간이 되기 전 십자가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부정한 것을 나무 위에 달려있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심한 매질과 먹지도 자지도 못하신 상태에서, 탈진에 가까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고대 연구가 의하면,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전 사형수에게 기절할 정도로 모진 채찍질을 가한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쓰던 형벌용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당 채찍을 휘두르는 병사의 기분에 따라 훨씬 가닥수가 많을 때도 있습니다.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속에는 쇠 구슬, 날카로운 짐승의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의 치명적인 흉기 등이 박혀 있고, 거기다가 이 가죽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가 불려놓아 무게를 무겁게 만듭니다. 이 채찍에 맞게 되면, 멍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요. 상처 난 곳이 벌어지고, 살이 찢겨져 나갑니다. 이런 채찍질이 전부가 아닙니다. ‘린치’Lynch를 가하는데요. 단순히 몇 대 맞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할 정도로 혹독하게 어깨에서 시작하여, 등, 팔, 가슴, 복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 고환까지, 전신을 무자비하게 구타합니다. 이렇게 얻어맞으면, 사형수는 피부 밑의 골격 근육까지 찢어져서, 살은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됩니다. 3세기의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내장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범죄자들은 이 채찍 형을 당할 거라는 말을 듣고 자살할 정도로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채찍질이 상상이 아니라 실제 고증을 통해 연출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채찍질로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사형수에게, 자기가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처형장까지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 형틀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무겁게 보는 학자들은 50-60kg 까지 다양하지만, 확실한 건 빈사상태인 사람이 쉽게 지고, 이동할 만한 무게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도 넘어지거나 하면 채찍질을 당합니다.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겪는 고통도 엄청난데,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당하면, 그만큼 빨리 상처의 괴저가 일어나, 전신이 불로 달구는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중도 사망하는 죄수도 많았는데, 이때 사형수의 가족들은 채찍질하는 집행인에게 뇌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채찍질을 살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찍질 더 심하게 해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덜 고통스럽게 채찍질로 미리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도 감함 없이 모든 채찍과 구타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거반 죽음에 이른 사형수가 십자가를 들고 사형장으로 오면, 십자가에 매달 준비를 합니다. 우선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듭니다. 성화같은 것을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반바지 같은 것을 입고 계신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최대의 고통을 겪는 것이요. 최대의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발가벗기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14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고 시편 22편 6-8절과 14-1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을 모든 준비를 마치면,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에는 최대 18Cm 정도에 사람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대못을 박습니다. 이 못은 인간의 체내의 중추 신경계를 완전히 부숴버립니다. 그 고통은 정신이 완전히 파괴될 정도입니다. 팔꿈치를 벽에 세게 부딪칠 때, 혹은 팔 아래로 뻗어있는 척골신경을 펜치로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고통과 비슷해서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십자가형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드렸는데요.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시다가 쓰러지고 쓰러지셨는지, 그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 병사들은 안식일 저녁이 되기 전 십자가형을 마쳐야 하고, 빈사상태인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요. 이러한 때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로마 병사에게 눈에 띠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 시몬이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주변에 있던 무리들 가운데, 아무나 붙잡아 도우라고 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몬을 시킨 것을 보면, 아마 그 일에 적합한 인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한데요. 시몬의 성장지가 구레네인데요. 이곳은 북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의 해안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이나 영화에서 시몬은 대개 흑인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구레네 사람들은 흑인이 아닙니다. 이곳은 아프리카이지만, 구성원들이 아랍인입니다. 이란이나 이라크 사람들과 같은 인종입니다. 그런데 1965년 영화 「가장 위대한 이야기」에서는 구레네 시몬 역으로 흑인배우가, 2004년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백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둘 모두 사실을 묘사한 배역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돕는 조력자로 로마 병사는 구레네 시몬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병사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자로 구레네 시몬을 택했지만,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로마 병사들이 구레네 시몬을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십자가를 지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병사는 마땅한 자로 여겼지만, 본인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억지로 동참하게 된 사람 구레네 시몬입니다.

회심과 변화 그리고 흔적

구레네 시몬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으로 더 이상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이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본문을 보면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면서, 그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누구를 소개할 때 누구의 아들 예를 들면 요한과 야고보를 언급할 때, ‘세베대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마4:21). 그러나 누구의 아버지라는 식으로 특정인을 기술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병행본문인 마태복음 27장 32절과 누가복음 23장 26절에는 구레네 시몬만 기명되어 있는데요.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에만 그의 두 아들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가 이렇게 기록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구레네 시몬에 대한 이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의 아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입니다. 함께 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과 동역했던 인물 가운데 ‘루포’ 즉 구레네 시몬의 아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에게 문안할 것을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구레네 시몬에 대한 말씀은 오늘 본문 이후로 찾아 볼 수 없지만, 구레네 시몬은 오늘 본문에서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것과 달리, 골고다에서 집행된 예수님의 십자형을 보면서 회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과 아내가 훗날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로마서에 기록했던 것이지요. 바울은 수많은 전도 여행에서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교회에서 본이 될 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록하였는데요. 그렇다면 구레네 시모의 아들과 아내가 평범한 성도가 아니라, 로마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는 중진급 성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인물입니다(벧전5:13). 바나바의 생질이기도 했던 마가는 바나바가 사도 바울과 전도 여행을 함께 할 때, 자연스럽게 사도 바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하여 한동안 바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으나, 후에 그는 바울의 신실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골4:10;딤후4:11;몬1:24). 이러한 마가의 이력은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해서도 밝히 알 수 있었고요. 그 바울의 동역자 가운데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과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의 아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회심한 것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초대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기 그의 아들과 그의 아내가 훗날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구레네 시몬의 변화는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본문에 기록된 데로 로마병사에 의해 억지로 예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그에게 있어서, 평생 있지 못할 ‘스티그마’‘στιγμα’,‘stigma’를 갖게 됩니다. 스티그마는 ‘흔적’이란 뜻의 헬라어입니다. 과거 로마시대 때 노예들에게 주인이 자신의 소유물임을 표시하며, 찍어 놓은 낙인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의 흔적’을 자기 몸에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체험을 통한 예수의 흔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 증거하다가 당한 환난을 ‘예수 흔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육체의 흔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은 이미 빈사상태였습니다. 채찍으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고, 찢겨진 살점은 리본같이 매달리고, 살색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피가 온 몸을 덮었습니다. 그 옆에 있던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의 혈과 육이 묻어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기에 예수님의 혈과 육이 자신에게 묻어나는 것이 싫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혈과 육이 베었었다는 사실에 통곡하며,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 예수님의 흔적을 갖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바라본 예수

구레네 시몬은 본문의 기록 그대로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 중에 로마 병사에게 끌려갔습니다. 자기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마지막 예수 십자가의 예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던 자들의 가래침과 돌멩이를 어쩌면 구레네 시몬도 맞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가뜩이나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던 구레네 시몬은 이제 예수에게 무리들이 뱉은 담연痰涎과 투석投石에까지 얻어맞았을 지도 모릅니다. 구레네 시몬은 불쾌하고 화가 치솟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주님은 그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개의치 아니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미칠 지경인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담연과 투석에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장 7절에 예언된 메시아의 고난을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당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본문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무리들이 조롱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같이 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9-31절입니다.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뿐 아니죠. 예수님과 함께 형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도 예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 32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예수님을 공격하는데는 대제사장과 서기관 종교 지도자에서부터, 일반 백성들 그리고 악행으로 법정 최고형을 받은 자들까지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같이 누가복음 23장 34절을 읽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힐난詰難하는 자들에게 응대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 했습니다. 이것이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바라본 모습은 이 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아래 마가복음 15장 39절을 함께 봅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일 백 여명의 로마 병사를 거느리는 영관급 장교입니다. 총독으로부터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라는 명을 받고 집행하는 총 책임자입니다. 그랬건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7절에는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고 고백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7장 54절에는 백부장 뿐만 아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십자가 죽음에서 그를 못 밖은 자들의 변화는 모습을 누구도 지켜 보았겠어요. 예 맞습니다. 구레네 시몬입니다.

이렇게 일생 잊지 못할 예수님의 마지막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된 사람이 구레네 시몬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지만, 그 동참이 주님 최후의 순간에 밀착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은혜는 바로 구레네 시몬이 이후로 감당해야 할 십자가에 대한 소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을 보면서, 자기의 십자가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억지 동침

지금까지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 각 자 이미 억지 동참에 대해서 생각했으리라 믿습니다. 그 안에서 깊은 깨달음과 큰 도전 또한 이미 주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진 억지 동참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는 자원이라는 단어를 교회에서 많이 듣습니다. 자원은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4절에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설명하면서 마게도냐 교회는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물 그리고 헌신에서 자원하여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2절에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이들, 오늘날 목회자들은 주의 일을 하는데,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목회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사역이란 평신도들도 제직으로서, 교사로서, 리더로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물과 헌신 그리고 직임과 봉사에서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원이 어떤 자원인가가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가가 모실 상전이 어떤 위치에 있던 인간이 인간의 종이 되기를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에는 같은 유대 동족이 팔려 종이 되었을 때 규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렸다는 것은 돈으로 샀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돈 때문에 팔려간 사람은 억지로 종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섯 해를 종으로 섬이었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 주게 하였습니다(신15:12). 그런데요 칠 년째가 되었는데도, 자유인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종이 되기를 자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육 년 동안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억지로 종이 되었지만, 주인이 너무나도 잘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년인 일곱째 해가 되어서도, 그대로 종으로 있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러한 종들은 다른 종들과 달리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영구히 그 집안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신15:16). 처음에는 억지로 종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자원하여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것은 저와 여러분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즉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자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점잖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강권입니다. “찍혔다‘는 말은 거친 표현인데요. 요즘 아이들 있지 않습니까? 초등생 중학생 여자 아이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자기를 어떤 남학생이 좋아하면, “나 아무개에게 찍혔어”라며, 그 찍힌 것을 좋아하고 자랑삼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찍어서, 강권하여 예수 믿게 하였다는 사실에 어떤 성도는 너무나 감격하고 기뻐하지만, 어떤 성도 가운데는 “정말 왜 나를 예수 믿게 하셔서 이렇게 믿음대로 살라고 하는지, 나는 신앙생활이 체질이 아닌데” 투덜거리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찍힌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의와 관계없이, 마치 억지로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운 로마 병사 같이, 하나님이 강권하여 자기를 왜! 예수 믿게 한지를 깨달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 같이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강권하여 예수 믿게 하였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기뻐하기보다, “왜! 나를 예수 믿게 하여 교회를 섬기게 하는지”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더라도, 낙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처음에는 억지이지만 깨달아가 회심하고, 그를 따르는 거룩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원의 영적인 뜻입니다. 성도의 자원은 처음부터 자원일 수도 있지만, 억지로 믿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깨달아가면서,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가래침과 돌로 맞으면서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희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의 대적자인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교회를 섬기면서 이러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과 같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는 삶으로 전환 될 것입니다(고전9:19). 여러분 바울의 일대기를 알지 않습니까? 그가 자의로 예수님을 만났나요? 성도들 핍박하려 가는 길에 주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억지로 주의 종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자원한 종이 된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내가 기도 시간을 정하고, 예배 시간을 정하고, 봉사 시간을 정하고, 전도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가고 싶지 않아도, 교회에서 가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원도 억지로 해야 자원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자원만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과정에서 자원하는 분들로 거듭나시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은혜 소명

처음에 억지 동참한 구레네 시몬은 그렇게 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부어주신 은혜를 알고 부르신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물론 아들과 아내까지 그 길을 따르는 성경에 기록된 가정이 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하나님께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 동참하라고 명하실 때는 우리에게 이렇게 부어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부르신 소명이 있을 줄 압니다. 이것을 청아비전교회에서 찾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열흘간의 공사로 이제 숨통이 트이는 공간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현실에서는 웬만한 교회는 개척할 때부터 이 정도 규모로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는 교회에 발을 디딪게 된 것이 어쩌면, 억지 동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에게 부어주시고자 하는 은혜가 있고, 부르신 소명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억지로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이는 누구입니까? 로마 병사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로마 병사를 누가 도구로 사용하신 거예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을 청아비전교회로 인도한 분이 누구이세요? 어떤 성도이고 제직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여러분을 인도한 그 성도님이 아니면 제직되는 분이, 여러분을 교회로 인도 만해 놓고 자기는 다른데로 갔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누구의 섭리에요.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억지 동참에 임하시는 은혜 소명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같은 상황 다른 결과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 27절에 보면 예수님 좌우로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5장 32절을 함께 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 좌우편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들이 ‘예수를 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것과 같이 생각될 수 있습니다. 좌편 강도는 예수님을 욕했지만, 우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거니와 예수님이 행하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눅23:40-41). 그러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나를 기억’해달라고 하였고, 그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눅23:42-43). 누가복음 23장 40-43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마가복음은 잘못 기록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강도 둘 다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서론에 십자가 형을 받은 자들은 집행하기 전, 채찍과 구타로 빈사 상태가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십자가 달렸으니, 악 밖에 남지 않고요. 그것을 옆에 있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쓰인 예수님에게 쏟아 부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우편의 강도는 변한 것입니다. 자기 옆에 고초를 당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도 구레네 시몬과 같은 회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알게 합니까?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이라는 동일한 환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어떤 신앙을 갖는가에 따라 열매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어떤 경우 억지 동참이지만, 그래도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받는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여기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정리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은 북아프리카 리비아 구레네라는 곳에서 살던 유대인입니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다가 얼떨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 억지로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 지면서 채찍과 구타로 찢겨진 예수님의 혈과 육이 자신의 몸에 묻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만큼 예수님의 혈과 육이 묻는다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도중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내뱉는 가래침과 돌도 맞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또한 원치 않는 것이니 화가 치솟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에는 그것이 구레네 시몬에게 육체적인 영적인 예수의 흔적이 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구레네 시몬은 가래침과 돌로 맞으면서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희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의 대적자인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이 변화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교회를 섬기면서 이러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교회를 섬길 때 어떤 경우는 억지 동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원해서 참여하여 하는 것이 맞는데 말입니다. 어느 누구 던 처음 종이 될 때는 억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스스로 종 된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의 주인이 너무나도 자기를 귀하게 대해 주었기에 스스로 종이 된 것입니다. 어떤 성도이던 예수 믿는 것은 자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을 점잖은 표현으로 인도이고, 직설적 표현으로는 강권입니다. 이러함에도 처음부터 그 강권에 감격과 감사하는 성도가 있지만, 어떤 성도는 “왜 나를 예수 믿게 하는지 나는 신앙이 체질이 아닌데”라며 투덜거리는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권하심에 순종하다보면 나중에는 억지에서 자원하며 주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억지로 믿게 되었지만, 믿고 난 이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쏟으신 예수님의 희생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원되지 않더라도, 구레네 시몬가 같이 억지 동참하다가 깨달아가면서 자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레네 시몬 같이 억지 동참이지만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을 보면서, 자기의 십자가 길을 알게 딥니다. 구레네 시몬의 억지 동참이 예수님의 마지막을 까까이서 보았다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어떤 시각과 태도로 섬겨야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어떤 경우는 하고 싶지 않아도,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시간을 정해서 예배드리고, 시간을 정해서 전도를 하고, 시간을 정해서 봉사를 하게 되면, 억지 동참에서도 하나님이 불어주시는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강도에서도 보았듯이 동일한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청아비전교회 공동체 가족이라는 동일한 환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어떤 신앙을 갖는가에 따라 열매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어떤 경우 억지 동참이지만, 그래도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와 부르신 소명을 받는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청아비전교회를 섬긴다면, 이 제단에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소명을 누리고 감당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억지 동참으로 여겨질 때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다짐하고 결단하는 사순절 첫 주간에 참예하는 모든 성도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서인물열전] 구레네의 시몬,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

[성서인물열전] 구레네의 시몬,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람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인 트라폴리 지방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는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 다음으로 제 2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와 그 인근에 위치한 구레네에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어떤 경위인지는 몰라도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 하는 이가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그는 우연찮게 한 죄수의 십자가 처형 행렬을 목도하게 되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의 방식이 그러했듯이 그 죄수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직접 지고 형장까지 가야했다. 형장까지 가는 도중 그 죄수가 지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구경꾼들 틈에 끼어 그 신기한 행렬 과정을 지켜보던 시몬을 한 로마 군인이 잡아다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다.마가는 이 장면을 단 한 구절로 스치듯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구레네에서 올라온 시몬이 지게 된 나무 형틀은 인류 구원의 정점이 된 바로 예수가 지고 가신 십자가였다.알렉산더와 루포가 누구였기에 시몬을 그들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는가?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말한다. 로마서에 소개된 그 이름 ‘루포’는 우리에게 로마서가 기록된 시점으로부터 약 30년 전 십자가 행렬 현장에 있다가 예수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시몬을 기억나게 한다.로마서에 소개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었고 그의 아내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한 세대가 흘러 시몬의 아들 루포는 사도 바울로부터 문안 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즉 시몬의 아내)는 바울이 영적 어머니로 언급할 만큼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당시 예수가 지고 가셨던 그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 채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은 은연중 인류 구속사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 그 구원의 드라마에 그의 아들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니 시몬은 부지중(不知中) 복 받은 자가 아닌가?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제목 :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막15:21-32 13-0324

예나 오늘이나 예수님의 뒤에는 많은 군중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목적은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떡을 얻기 위해서,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진리를 배우고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따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짧은 공생애 기간 동안 메시야에 대한 대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든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때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은혜를 입었던 자들 흩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 많은 여인들이 가슴을 치고 울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못 박기 위해 따르는 로마 군병들도 있었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구레네에서 살고 있는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 구레네 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안면이 있거나 잘 아는 그런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프리카 청년으로 유대인의 명절에 참석 차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온 시골 촌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소문만 풍문으로 들었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와보니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하여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호기심에 사람들을 제치고 군중 맨 앞자리에 나아가서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올라가시다가 넘어지고 또 일어서서 걷기를 반복하시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말로만 듣고 흠모했던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앞에는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들과 불구된 자들을 고쳐주시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화려한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에는 매 맞은 자국에서 흘린 피가 흥건했으며, 오랫동안 고문에 시달려 초죽음 된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두려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을 바라보며 할 수만 있다면 건장한 자기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마침 로마 군병 하나가 구레네 시몬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대신 십자가를 강제로 지게 했습니다. 로마 군병은 한눈에 그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때 구레네 시몬은 사색을 하며 ‘난 안됩니다. 난 절대할 수 없습니다.’하며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할 수 있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할렐루야!

2.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마음에는 지금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신 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할지라도 재수되게 없군. 내가 어쩌다 이런 저주스런 죄인들이나 매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나!” 하는 생각과 또 다른 하나는 “감사합니다. 내가 그렇게 열렬하게 사모하던 예수님 그 주님의 고난에 내가 잠시나마 동참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내 비록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뵈옵는 것은 물론 십자가까지 대신 짊어지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를 계기로 내가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우리 가족 모두가 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이 두 마음 중에 후자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짊어지는 십자가는 없습니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원망하며 무서워하며 그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힘없이 그저 울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여인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교회의 모든 어려움들을 주님의 십자가로 알고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로 주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게 하옵소서.” 하며 주 앞에 나오는 자입니까?

지난 과거 수많은 무리들이 오병(五餠)이어(二漁)를 먹고, 각종 병을 고치고,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 뒤를 따름에 있어 기복적인 모습을 많이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며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울 때 진정으로 교회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소수 중에 소수일지라도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복 있는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소수 속에 하나인 나 일지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시지 마십시오. 이 길이 주님 걸어가신 길이요, 눈물 없이는 못 가는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리교회가 당면한 이 어려움의 길이 곧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고난의 길이요 아픔의 길일지라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길이요 함께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3. 억지로 십자가를 진 순교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고난의 행렬에도 나란히 참석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구레네 시몬의 헌신적인 십자가는 도망자였던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놀라운 도전과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에 「나는 뭔가? 예수님의 수제자라 하며 예수님을 쫓았던 내가 지금 도망자가 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두 번 다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남은 생명을 다 받쳐 주님께 헌신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헌신을 통해서 크게 회개한 사도 베드로는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두 번 다시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후 오순절 성령 충만 함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들고 소아시아와 사마리아, 로마까지 들어가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에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대대적인 처형을 하고자 흉악한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베드로의 제자들이 “선생님, 로마 성을 피하십시오, 선생님은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두려워서 로마 성을 피하여 이른 아침 언덕을 넘어 로마를 뒤로하고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를 향해 그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쿼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살겠다고 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로마로 들어간다.”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 다시금 발걸음을 돌이켜 ‘이제 내가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의 길에서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로마에 돌아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베드로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원형 극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수자라고 하면서도 나 살기 위해 내 주인을 배반하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제자입니다. 그러한 내가 어찌 예수님과 동일하게 십자가에 매어달릴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죽을 자격도 없습니다. 제발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주시오” 그리하여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하늘가는 밝은 길을 알았기에 비록 늦게나마 담대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고난의 길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이렇게 부흥되지 않은 교회에 꼭 다녀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조그마한 계기라도 주어진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겁고 흉악한 십자가를 지기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자기가 그 십자가를 지기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구레네 시몬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레네 시몬이 본의 아니게 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였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경배한 결과 온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 많지 않은 우리 성도님들일지라도 이 교회와 이 지역과 이 민족을 뒤엎을 참다운 영적 지도자가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을 끝까지 따른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을 통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그의 가정과 가족들에게 임한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넘쳐나리라 확신합니다.

4.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축복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에게 영광과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의 보상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일에 동참함으로 인해 그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과 함께 후손들에게까지 놀라운 축복을 남겨 주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마10:40) 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마10:41) 그렇다고 볼 때 시몬은 상을 받기에 충분한 일을 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그 당시에는 잘못 걸려들어 억지로 진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보상과 축복의 대상으로 영원토록 인류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3:2절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세계로열린교회를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축복하시고 보상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2)자손이 받은 복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시몬이 신자가 되었고 또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에 명성을 떨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러 줍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알렌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한 것을 보아 구레네 시몬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 기자는 알렉산더와 루포에 대한 소개가 없이 이름만 밝힌 것으로 보아서 이미 그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저명인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문안 인사 중에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한 말입니다.(롬16:13)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다른 성경에도 나오지만(행19:33, 딤전1:20), 이는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시몬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루포가 시몬의 아들이라는 데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훗날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낸 글인 마가복음이나 바울 서신에 루포의 이름이 기록되고 바울로부터 문안 받을 만한 인물이라면 신약교회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불렀다면 그들은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시몬은 어쩌다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 중에도 잠시 동안 그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는 후대에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자손손 경건하고 복된 인물들로 기록에 남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우리교회 개척시절에 함께 했던 사람은 한 분도 없지만 그러나 새 성전건축의 어려운 시절을 지나 입당예배 때부터 세계로열린교회와 신앙의 길을 함께하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이 분들과 자녀들이 받을 복이 무엇인가를 성경은 구레네 시몬의 가정을 통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후대에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구레나 시몬의 헌신이 그와 그 자손들에게 복이 된 것처럼 부모님들의 억지로 하는 헌신까지도 그 자손들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중 대다수가 믿는 자들의 후손이요 그중 절반 이상이 목사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헌신이 자신과 가정과 자손들에게 큰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 커다란 종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종탑이 높아서 그런지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하여 교회당 종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궁금하여 묻습니다. “형제들이여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저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래서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다름 아닌 십자가 종탑을 수리하는 수선공이 그 십자가에 매달려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 평소에는 십자가를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어찌 수선공이 올라가 십자가를 수리한다고 저 난리를 피우며 꼼짝도 않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때 한 사람이 기발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그렇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어야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쳐다본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누군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있을 때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냥 일꾼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 죽도록 십자가를 지며 충성할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많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곧 구레네 시몬과 같은 한 사람의 순종과 헌신만 있으면 교회 부흥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사 산책-구레네 시몬

구레네 출신의 시몬(Simon of Cyrene)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쓰러진 예수를 대신하여 강제로 십자가를 운반했던 사람이었다(마 27:32, 막 15:21, 눅 23:26). 그의 출생이나 나이 등은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약 7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한 마을인 구레네(Cyrene, 리비아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 매년 열리는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가 재판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의 행렬을 구경하게 되었고 운명적으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시몬은 나무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시몬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다 오른 후에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지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간 그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히셨다. 시몬은 우뚝 세워진 십자가 밑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저 십자가에 달린 것이 나였다면?” 아마도 그는 몸서리치면서, 죽어가고 있는 예수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순절이 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했다. 그러던 그는 오순절에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기웃거리도록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지난 날 정말 재수(?) 없게도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던,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의 제자들이 비장한 어조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제자들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지역 사람들이 각기 그들의 방언으로 설교를 알아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도 구레네 출신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구레네 시몬은 사도 베드로의 연설을 들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베드로의 설교는 구레네 시몬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구레네 시몬, 그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이 달려 죽었어야 했을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향해 가던 그, 영생을 알지 못하던 그는 예수의 죽음으로 생명을 건진 것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것은 예수였으나 그 예수와 함께 시몬의 몸도 십자가에 달린 것이었다. 파피아스(Papias, 약 130년경에 사망)에 의하면, 마가는 그의 복음을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 공동체에 보냈다고 한다.

이 공동체에서 알렉산더와 루포(Alexander & Rufus)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는데 마가복음 15:21(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에 의하면 그들이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 사건 후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그 신앙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경험을 수없이 들어왔던 알렉산더와 루포는 로마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따라서 마가는 로마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며 굳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또한 바울도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루포를 언급하며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히폴리투스는 후일 루포가 테베 지역의 주교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과 구레네 사람, 시몬

[시몬] 이름의 의미 : 들음, 갈대, 응답하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소설입니다]

십자가 형을 선고받으면 죄인은 양 팔에 못을 박을 약 20Kg [횡목]을 들고 처형장으로 간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구타와 채찍질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기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가 없었다.

횡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 쓰러졌다.

그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횡목을 지고 가는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로마 군인은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막 15:21, 새번역)

예수님은 자신의 첫 제자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 요한의 아들인 시몬을 부르셨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부르셨던 시몬은 아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버지인 시몬이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은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왜 그는 로마 병사의 명령에 도망가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어주었을까?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결혼식장에서 하인들에게 쏟아부은 물을 떠서 갖다 주어라고 말하셨다.

갑작스럽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한잔 달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에게 시장에 묶여있는 ‘나귀를 데리고 오라’라고 하시고 누가 말하면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하라라고 하셨다.

유월절을 준비해야 하는 제자에게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에게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유월을 준비하여라’라고 말하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쩌면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구레네 사람 시몬은 하나님께서 그전에 준비시켰던 또 다른 [시몬]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가진 시몬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시몬 베드로는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시몬 베드로는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이 들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신이 짊어지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몬 베드로는 감옥과 죽음까지도 같이 하겠다고 했던 제자였으며, 예수님도 그와 항상 동행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시몬 베드로는 나중에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을 만나서 인사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이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인사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형제님들, 저는 구레네에서 온 시몬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신의 옛 이름과 같은 구레네 사람 시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기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어준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빠, 시몬에게 자신을 베드로라고 소개했을까? 아니면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했을까?

그들은 그(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막 15:21, 새번역)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황당한 사건을 당하기도 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재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저주를 받은 것일까?

내가 믿는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돕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왜 이런 상황에 나를 보호하지 않으신 것일까?

이런 일을 당할 때, 알렉산더와 루퍼의 아버지인 시몬을 생각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도 황당했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자기 아들의 이름을 유대식 이름이 아닌 [알렉산더]와 [루퍼]라고 지었다.

구레네 시몬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던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구레네 시몬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바로 그 현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으며,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었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미움을 받았고,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정말로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우리의 아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5 그러나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흩어져 제 갈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든 죄짐을 그에게 지게 하셨다. 7 그는 매를 맞고 고난을 당했으나,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털을 깎이는 양과 같이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사 53:3-7, 쉬운 성경)

하나님께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했을까?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언제 어떻게 예비된 사람일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우리는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숨겨져 있다.

기괴한 명령 때문에 물을 가져다주는 하인처럼

물을 달라고 하는 예수님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갑자기 나귀를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나귀를 풀어주는 주인처럼

유월절을 준비하라는 말에 허둥지둥 음식을 만드는 사람처럼

그리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이런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난다.

그때 우리는 [순종] 해야 한다.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명령하심에 우리의 대답은 [예] 뿐이다.

그분의 명령은 이해할 수 없고 우리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무익한 종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모세처럼 혹은 바울처럼 불러주시길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막 15:21, 새번역)

그들은 강제로 …. 강제로 … 시몬에게 하나님의 일을 시켰다.

하나님께서 로마 병사를 통해서 강제로 우리에게 자신의 일을 시키거나, 부탁하거나 그리고 동참시킬 수 있다.

13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14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빌 2:13-14, 쉬운 성경)

구레네 사람, 시몬

1.

“그런데 이 사람은 당신 친구인가요?” 여관 주인은 피범벅이가 된 사람의 옷을 벗기면서 말했다. 거의 죽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피 흘린 이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니요… 친구는 아닌데…. 그런데 오늘 친구가 되었어요.”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름을 그 사람의 깨진 머리에 발라 주었다.

“상처가 너무 심하죠.” 그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이만하길 다행이죠, 아마 들판에 이런 상처로 하루를 지냈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여관 주인은 가지고 온 더운물로 그의 발을 닦아 주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관 주인은 다시 물었다.

“어….. 이쪽으로 오다가 뭐라고 하던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예? 그럼 친구가 아닌가요?” 여관 주인은 놀라면서 다시 물었다.

“음…. 지금 친구가 되었네요.”

“뭐요? 그럼 이 사람과는 모르는 사람이라고요?” 여관 주인은 닦던 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관 주인의 손에 있는 수건을 받아서 다시 발을 닦아 주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오는데 이 분이 강도에게 당해서 피 흘린 체 누워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지금 여기로 데리고 온 것입니까?” 여관 주인은 더욱 놀라면서 말했다.

“네” 그는 눈을 껌벅이면서 여관 주인을 바라보았다.

“뭐요?”이제야 여관 주인은 자기 앞에 누워있는 사람이 강도 만나서 모든 재산을 털려 죽어가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관 주인이 너무나 놀란 표정을 했기에 그도 당황해서 여관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데리고 오면 어떡합니까?” 이제야 여관 주인이 놀란 이유를 말했다.

“여기가 무슨 ……” 여관 주인이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그는 주머니에서 한 데나리온을 꺼내서 여관 주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여관 주인 앞에 놓았다.

“이 사람을 오늘 치료해주고 3일 정도 묶게 하는데 이 정도의 가격이면 충분하죠?” 여 관중인은 돈을 본 다음에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뭐…. 이런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누군 줄 알고 데리고…..”

“죽어가는 사람이죠.” 그는 수건을 다시 여관 주인에게 주었고 여관 주인은 따뜻한 물에 담가서 다시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정강이 부분에 있는 피딱지를 천천히 닦아 주었다.

“거기에 있는 포도주를 주시겠습니까?” 그는 여관 주인에게 자신의 배낭을 가리켰다. 여관 주인은 은으로 만든 진귀한 술병을 들어서 맞냐고 흔들어 보였다. 그는 술병의 마게를 열어서 찢어진 정강이 부분에 포도주를 부어 주었다. 포도주는 흐르면서 이불을 적시었고 그 달콤한 향기는 여관 2층의 작은 구석방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냄새를 타고 들어온 것은 햇빛이었다. 지금까지 비가 내려서 어둠 침침했지만 하늘은 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햇빛은 작은 창문을 타고 들어와 누워있는 사람의 발에서 시작해서 어깨까지 번져갔다. 여관 주인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아주 느리지만 정성의 동작으로 상처를 닦아 주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저기 앞에 있는 기름병도 주시겠습니까?” 여관 주인은 고개를 돌려서 그의 가방에 있는 금박과 여러 색깔로 무늬를 만든 작은 병을 보았다. 여관 주인은 그 병을 건네주면서 포도주병을 다시 받았다. 향긋한 포도주 냄새가 여관 주인의 코끝을 자극했다. 여관 주인은 단숨에 자기가 들고 있는 포도주가 최고의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최고의 포도주임을 알았다. 어쩌면 이 포도주 냄새는 예전에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예수라는 분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하인들이 법석을 떨면서 가져왔던 그 포도주의 냄새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여관 주인은 술병을 막지 않고 들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침이 고였다.

“한 모금 드셔 보세요.” 술병을 들고 있는 여관 주인에게 그는 말했다. 그는 기름병으로 정강이의 찢어진 곳을 바른 다음에 헝겊으로 감싸주면서 여관 주인을 보고 한번 마셔보라는 눈짓을 하였다.

“냄새가 좋습니다. 하하” 여관 주인은 어색한 표정을 하면서 술병을 입에 대어 물을 마시듯 입에 크게 한 모금을 담았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포도주 맛이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아까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으로 상처를 감싸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최고군요.”

“구레네에서 최고는 세계에서 최고죠.”

“예? 이 포주도가 구레네 포도주라고요, 이 귀한 것을” 이 귀한 것을 먹다니 고맙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상처에 붓는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다시 그는 여관 주인의 손에 있는 포도주병을 가져와서 다른 한쪽의 정강이 상처에 부으려고 했다.

“저기요…” 여관 주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예?”

“음….. 저의 집에 좋은 포도주가 있는데…. 그것도 가져올까요?”

“아니요, 이거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는 다시 정강이에 포도주를 부으려고 하자 여관 주인은 그의 배낭에 다른 포도주 병이 없음을 슬쩍 쳐다본 다음에 급하게 말했다.

“어,,,,,선생님, 저희 집에 술이 있는데…. 그 술로 쓰시고 그 술은 그냥 보관하시죠.”

그는 여관 주인을 본 다음에 한번 웃고 다시 술을 그의 정강이 상처에 부어 주었다.

“입에 좋은 술은 상처에도 좋습니다. 구레네 포도주가 최고죠, 입이나 상처나…. 술은 마시고 취하지만 상처는 치료를 해주죠, 나중에 제가 갖다 드리겠습니다.”

“아…. 예…..”여관 주인은 마지막까지 쏟아 버리는 포도주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데 언제 의사가 옵니까?” 그는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갔다.

“아, 곧 올 것입니다. 저녁식사는 여기서 항상 하니깐요….. 그 친구의 의술은 믿을만합니다. 그런데 요즘 예수라는 사람이 완전히 이 동네는 휩쓸어서 대부분의 환자는 모두 예수만을 쫓아다니죠.”

“그래요?”

“난리도 아니에요, 그 예수라는 사람이 장님, 문둥병, 귀신 걸린 사람…. 일단 그가 손만 얻으면 모두 나아진다고 이스라엘 전체가 시끄럽죠, 처음 들었나요?”

“아…. 저는 구레네에서 왔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으로 와서 예배드리죠… 그런데 성전에서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이 없던데.”

“그것은 바리 세파와 제사장들이 회당에서 절대로 예수라는 이름을 말하지도 말라는 공포를 했거든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제요? 뭐 그렇죠, 그쪽 친구들이야 하나님을 독점하는 사람들이니깐 사람들이 모두 예수라는 사람으로 쏠리니깐 은근히 시기하는 것이 아닙니까?”

“시기라뇨?”

“예수라는 사람이 한 번은 회당에서 제사장을 비롯해서 바리 세파와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크게 야단친 적이 있었죠, 제가 보기에 이제 갓 삼십이 넘어 보이는 친구에게 혼이 났으니 기분이 오죽 좋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요? 그 예수라는 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어려울 것입니다. 거의 수 만 명이 그를 따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어요. 언제까지 예루살렘에 계실 것인가요?”

“아, 저는 여기서 유월절을 보내서 다시 구레네로 갑니다. 잠시 시골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요? 가끔 예수가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를 만날 수도 있겠군요.”

“한번 보고 싶군요, 저는 오늘 저녁에 성전에 갔다가 시골로 내려갈 것입니다. 혹시 오늘 올라가다가 예수라는 분을 보았으면 좋겠군요.” 그는 정신을 잃은 사람의 모든 상처를 깨끗하게 씻기고 기름으로 닦아 주었다. 여관 주인은 다시 근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여관 주인이 걱정하는 것은 한데 나리 온으로 3일 치의 숙박은 가능하지만 만약에 의식이 계속 없을 때의 비용에 대한 난감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급해서 서로 인사도 하지 못했군요, 제 이름은 시몬입니다.” 그는 악수를 청했고 여관 주인도 엉겁결에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했다.

“저는 살 로리 암이라고 합니다.”

시몬은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가서 하늘을 보았다.

“곧 어두워지겠군요, 저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바로 시골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두 개의 달란트를 꺼내서 여관 주인 살 로리 암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두 개의 달란트를 주면서 말했다.

“시골에서 올 때까지 이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4일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저의 전부입니다. 혹시 이 사람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비용이 더 들었다면 제가 시골에서 올라와 나머지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당신 친구도 아니잖아요?” 여관 주인 살 로리 암은 건네주는 2개의 달란트를 받으면서 눈을 껌뻑이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다.

“오늘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와 친구로 사귀게 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혹 불안하시다면 저의 나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여기다가 묶어 놓고 가겠습니다.”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자, 저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성전에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에는 강도가 득실거리지 않습니까?”

2.

구레네 시몬은 성전 근처까지 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안식일 저녁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수많은 제사장들과 종교학자 그리고 그들의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있었다.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레네 시몬도 궁금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갔다. 모두가 바라보는 곳에는 젊은 청년이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진지했고 주변 율법학자와 제사장의 얼굴은 무거웠다.

젊은 청년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레네 시몬은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사람이요” 시몬에게 말해 준 사람은 아주 짧게 말하고 다시 예수를 바라보았다.

예수의 건너편에 의자에 앉아 있는 율법 교사가 일어나서, 예수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는 그에게 말씀하였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이 정답을 말한 것에 대해서 의기양양했다.

예수는 그를 바라본 후에 천천히 말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살 것입니다.”

율법 교사는 자신이 묻고 말한 대답에 대해서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자 의기양양해졌다.

율법 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다시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다시 예수를 쳐다보았다. 예수는 질문을 받고 자신을 둘러싼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그 눈은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예수의 눈이 머문 곳은 바로 구레네 시몬의 눈이었다. 시몬은 깜짝 놀라서 예수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자신의 주변을 쳐다보았다. 구레네 시몬이 다시 예수를 보았을 때 예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수는 구레네 시몬에게 아주 짧은 미소를 보이면서 웃어 주었다. 그 미소는 아주 짧았지만 구레네 시몬의 심장은 고동치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심장의 울림으로 인해서 구레네 시몬도 당황했다.

예수는 자신에게 질문했던 율법 교사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습니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고,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율법 교사의 대답은 길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그것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는 다시 구레네 시몬을 보았다. 그리고 율법 교사를 보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가서, 당신도 이와 같이 하십시오.”

구레네 시몬도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행한 일을 예수가 말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란 것은 자신이 그토록 숨기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가 자신의 비유를 들면서 말했기 때문이었다.

3.

구레네 시몬은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너무나 조용했다. 아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구레네 시몬이 불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깐 시골에서 올라오면서 지금까지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상해서 다시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여관뿐만 아니라 마을의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유월절이라서 모두 성전에 올라갔나? 그런데 유월절이 오늘인가? 아닌데…. 모두 어디 간 거야?” 구레네 시몬은 자신이 데리고 왔던 강도 만난 사람을 찾으려고 왔는데 그 여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누구시죠?” 누군가 뒤에서 구레네 시몬을 불었다.

“아, 계시는군요? 여관 주인은 어디 가셨습니까?”

“아, 여관 주인이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구경하러 골고다 동산에 올라간 것 같은데요.”

“예? 무슨 구경이요?”

“예수가 오늘 처형되잖아요?”

“예? 예수가 누구죠?”

“아, 이 고향 사람이 아닌가요?”

“아, 저는 구레네에서 온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유월절을 보내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가만있어보자.. 혹시?”

“그런데 혹시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분입니까?” 이번에는 시몬에게 말 시킨 사람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했다.

“예!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계시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신 분을 드디어 만났군요. 제가 바로 당신이 구해준 사람입니다. 이름은 라엘라스라고 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어, 그렇군요, 이제 보니 그 사람이 맞군요, 얼굴이 달라 보여서 누군지 몰랐습니다. 상처는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저야, 보신 것처럼 완전히 다 나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너무나 기쁘군요, 악화된 것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저는 시몬 님의 도움으로 이 여관에서 완전히 치료가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아가지고 완전히 저는 완쾌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3일 정도 늦었군요.”

“예, 시골에서 부모님이 좀 편찮아서…. 지금은 완쾌하였습니다.”

“저도 4일 동안 기다렸습니다. 오신 날짜에 오지 않아서 걱정을 했죠, 꼭 얼굴을 뵙고 떠나려고 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저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군요.”

“어, 문제가 있었나요? 여관 주인에게……”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셨더군요, 그것을 갚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엘라스는 시몬과 잡은 손은 계속 흔들고 있었다.

“아,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런 것을 바라고 하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저희 종들도 여기에 와있습니다. 저희는 당신이 오면 큰 잔치를 하려고 이 여관뿐만 아니라 건너편 여관도 모두 잡아 놓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것… 좀 부담스럽군요….”

라엘라스는 이제야 시몬의 손을 풀어 주었다.

“자, 시장하시죠? 짐을 풀고 ….”

“주인님, 주인님, 저기 지나갑니다…. 예수라는 자가 저기 지나갑니다.” 라엘라스의 종은 허겁지겁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디로 가느냐?”

“건너편 길로 지나갈 것입니다. 나와 보세요.”

“아… 이제 기억납니다, 예수라는 사람은……선지라라고 말하는 그분을 말하는 것인가요?”

시몬은 라엘라스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라엘라스는 종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저는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죠….”

“그래요? 그를 잘 아시나요?” 라엘라스는 물었다.

“아니요, 그가 나를 잘 아는 것 같더군요, 잠시 좀 보고 오겠습니다.”

4.

예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서 앞쪽으로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시몬은 예수가 가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채찍 소리와 함께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범벅이 되어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 예수인가?>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들고 가는 사람을 분간할 수 없었다. 얼굴이 피범벅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성전에 만났던 예수인지는 얼굴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의 눈을 따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땅만 보고 있었던 예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구레네 시몬을 쳐다보았다. 아주 천천히 쳐다보았다. 그들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숨이 멎는 듯한 감정에 의해서 구레네 시몬은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예수 쪽으로 가고 있었다. 예수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어떤 죄를 지어서 이토록 처참한 죽음을 맞이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레네 시몬은 예수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봐, 너!” 로마 병사는 채찍으로 구레네 시몬을 지목했다.

“예?”

“너, 뭐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나요?”

“뭐야? 너 누구야?” 로마 병사는 흥분되어 있었다. 그냥 단순히 흥분이 아니었다. 이것은 피의 축제를 향하는 그 어떤 이교도들의 축제 속에서 광기의 눈에서 보는 그런 축제였다.

“저 사람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구레네 시몬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예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이 작자가 불쌍하면 네가 대신 십자가를 지면 되잖아! 그래 시간도 없으니 네가 지도록 해.”

“예? 저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요.”

“그래? 지금 너는 이 작자를 동정했으니 잘못한 거야, 자, 십자가를 들어!”

예수는 고개를 흔들면서 다시 십자가를 들고일어나려고 했다. 구레네 시몬에게 짐을 지우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무게로 인해서 예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구레네 시몬에 윽박지르던 로마 병사의 채찍은 다시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쒝하는 소리와 함께 예수의 어깨를 쳐 내렸다. 다시 예수는 쓰러졌다.

“이 더러운 유대인, 일어나! 빨리 일어나!” 다시 한번 로마 병사의 책 찍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내려오려고 할 때 구레네 시몬은 소리쳤다.

“그만해요! 이제 그만해요, 제가 들어주면 될 거 아니에요!” 너무나 큰 소리이고 간절했기에 순간 모든 사람은 구레네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도 자신의 큰 소리에 놀라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제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가 아니라 구레네 시몬을 바라보았다. 구레네 시몬은 에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눈을 감았다.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번도 권위와 권세의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던 예수, 보이지 않은 장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를 구원하였던 예수, 수만 명의 사람들의 눈을 모두 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알았던 예수. 그 예수의 눈은 구레네 시몬의 눈을 피하여 땅을 바라보았다.

“제가 중심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자기 오른편에 어깨로 걸매 메었다. 그제야 예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서 구레네 시몬을 바라보았다. 구레네 시몬은 겸연쩍은 얼굴로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제 십자가에 약간 기대어 걷도록 해보세요, 너무 많이 피 흘렸어요… 이러다가는…” 시몬은 말을 멈추었다. 이러다가는 가다가 죽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골고다까지 가다가 죽는 것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이 더욱 편한 하늘의 축복이기에 구레네 시몬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십자가는 예상대로 무거웠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들어 올리기 위해서 전심을 다해서 올려보았다. 십자가를 들어 올릴 때 옆에 있던 예수는 누군가 던지는 돌에 맞아서 다시 쓰러지려고 했다. 그러자 로마 병사는 다시 채찍을 들어 올리면서 예수를 내리치려고 했다. 구레네 시몬은 쓰러지는 예수를 잡으려고 했지만 십자가를 들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예수가 땅에 곤두박질하는 동시에 채찍은 쒸익 소리를 내면서 구레네 시몬의 귀가에 뱀과 같은 소리를 내면서 예수의 등을 후려치었다.

“읍” 예수의 비명이었다. 큰 고통에 비해서 아주 작은 비명이기에 예수의 얼굴을 더욱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잠깐만요! 이렇게 자꾸 때리면 언제 갑니까? 그만하세요! 나리, 제발 부탁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큰 소리로 인해서 다시 로마 병사는 두 번째 내리치려는 채찍을 멈추었다.

“너는 빨리 움직여” 로마 병사는 예수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예수는 다시 구레네 시몬을 쳐다보았다.

예수는 다시 십자가 쪽으로 다가왔고 구레네 시몬이 잡고 있는 왼편의 십자가로 가서 어깨로 그 십자가를 올려 메었다.

“시몬아, 미안하구나.” 예수는 시몬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예수, 시몬은 너무나 놀라서 예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수는 다시 하늘을 쳐다보고 십자가에 힘을 실어서 십자가를 움직였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들면서 예수를 바라보았다.

“저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들은… 자신들이 ….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아버지.. 베드로에게 …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요한에게는 …. 절제의 영을 … 더하여…”

예수는 한 걸음씩 발을 옮기면서 한 문장씩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골고다가 보일 때쯤 구레네 시몬은 예수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지금까지 땅을 바라보면서 걸어오다가 그때서야 앞을 바라보면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예수는 십자가를 고쳐 메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저…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이제 곧 십자가에 달립니다. 잠깐 여기서 저에게 십자가를 넘겨주시고 쉬는 것이…..” 구레네 시몬은 이번에도 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죽으러 가는 사람에게 쉼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구레네 시몬은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위로도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는 과연 어떤 죄를 지었을까?>

<분명 저번에 성전에서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눈을 보면서 내가 구해준 사람에 대해서 마치 나의 일을 어디서 본 것처럼 자세하게 율법학자들과 제사장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우연인가!>

<집에 가서 사형수의 십자가를 들어주었다면 아내가 황당하다고 말하겠지, 이것은 비밀로 해야겠군>

<이분은 전혀 강도 같아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골고다에 도달하자 기다리고 있었던 로마 병사 중 하나가 갑자기 채찍을 들어서 예수를 내리쳤다. 그가 쓰러지면서 구레네 시몬도 넘어질 뻔했다.

“야, 여기다가 내려놔!”

구레네 시몬은 주변에 제사장들의 군인과 로마 군인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있기에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그는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 가운데 내려놓았다. 그러자 로마 군인 두 명은 예수로 다가가 채찍으로 두 번 내리친 다음에 그의 팔을 잡고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들의 팔에 끌려 오면서 예수는 고개를 돌려서 구레네 시몬을 뒤돌아 바라보았다. 예수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냥 질질 끌려갔다.

“내가 미쳤지, 저런 사람을 내가 믿고 3개월 동안 따라다녔는데….” 구레네 시몬의 뒤편에서 어떤 남자가 침을 땅에 뱉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을 고쳤잖아.” 그 옆 사람의 말 같았다.

“결국 자신의 목숨도 지키지 못할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

“그런데 죽을 만한 죄는 아니었는데.”

“자기가 성전을 헐면 3일 만에 세우겠다고 해서… 성전 모독 죄지, 아마”

“그런데 죄인이 장님이나 문둥병도 고칠 수 있나?”

“고친 척할 수 있지.”

“그건 아니야, 저번에 평생 장님이었던 그 바디메오라는 친구도 나았잖아. 저기.. 저기에 그 친구가 있잖아.”

“하여간 너무 잘난 척을 했어, 제사장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그래, 저번에는 성전에 있는 비둘기 장사들을 내몰았지, 대제사장들의 돈줄을 완전히 말라버리게 했지.”

“그래, 그들에 눈에는 완전히 가시였지.”

“그렇다고 십자가에 달리게 할 정도는 아닌데….”

“말조심해, 지금 사방이 귀야.” 그들은 속삭이면서 말했지만 구레네 시몬은 똑똑히 들었다.

구레네 시몬은 다시 예수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채찍이 아니라 망치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예수의 손에 내리쳤다.

5)

“아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구레네 시몬이 도와주었던 사람이 여관 문밖에 나와서 구레네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온몸에는 피투성이었다.

“다치셨나요? 아니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했습니까?” 그는 놀라서 구레네 시몬을 부추겼지만 구레네 시몬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예?” 삽시간에 종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사람들이 구레네 시몬을 에워쌌다.

“아닙니다. 잠깐 누구를 도와주었습니다.”

“누구를…”

구레네 시몬은 골고다 쪽을 바라보았다. 십자가 3개가 보였다.

“저기에…. 달려 있는 예수라는 분이죠.”

구레네 시몬은 북아프리카 구레네(현재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디아스포라 시몬이었다고 한다. 그는 누구일까? 아니 어떤 사람이었을까?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그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동산까지 올라가서 어깨에 메었던 십자가를 내팽겨 치고 침을 땅에 뱉으면서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순한고 순한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로마 군인이 자신을 잡아서 십자가를 지우려고 할 때 우물쭈물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을까? 혹시 천사가 아닐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갑자기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눈길이 갔던 것은 내가 어떤 착한 사람을 만난 후에 일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은 그저 호기심은 갔지만 깊은 묵상까지 나를 초대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이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기쁘고 진심으로 헌신하는 마음을 받으신다. 예배 또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착하고 진실한 마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구레네 시몬은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약한 자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나 들 수 없는 하나님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구속을 위한 십자가 계획,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들고 가는 예수님의 어깨를 위해서 순간적으로 구경꾼 중에 아무 나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를 택하지 않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지만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던 사람을 택하지 않았고, 예수님께 치료를 받았던 문둥병자를 택하지 않았다. 택함을 받은 사람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로마 병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측과 좌측에 달렸던 사람들의 대화를 기록했던 성경 저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구레네 시몬의 불평에 대해서는 적지 않았다. 불평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들은 구레네 시몬을 특별한 사람 혹은 천사라고 생각한 것일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 저자들이 기록할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레네 시몬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십자가에 달린 우측 사람에게 말했던 것처럼 <낙원 입장 특별사면권>을 주었을까? 아니면 그의 눈을 보면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사람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묵묵히 그의 일을 하게 놔두었을까? 아니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에 대해서 너무 미안해서 축복의 기도라도 했을까? 역시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이후에 가장 괴로웠던 그리고 가장 끔찍했던 십자가의 행렬 중에 일어났던 사건 중 구레네 사람의 사역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그 비밀이 봉인되어 있다. 분명 하나님이 사람을 의지했던, 사람의 힘을 도움을 받았던 그 사건은 성경을 통틀어서 딱 한번 나온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힘을 의지하다.

지금까지 나는 비전을 외치는 사람보다는 착하고 순전하게 외치는 비전을 묵묵히 이루는 사람들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는 제일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당시 지구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구레네에서 시몬을 불렀던 것 같다. 구레네 시몬은 죄인의 십자가를 어떻게 들었을까? 그냥 어깨에 걸친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온 힘을 다해서 십자가를 들어주었을 것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 죄인의 십자가였지만 기꺼이 온 힘을 다해서 들어주었던 그가 예수님을 믿었는지는 모른다. 사도행전에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백 부장 고넬료의 경우를 본다면 분명 그에게 예수님은 다시 찾아갔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나머지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은 사람을 보고 추측한다면 빛도 없이 그리고 이름도 없이 묵묵히 남을 도우면서 살아갔으리라 본다.

주님이 보는 사람과 행복의 기준은 분명 우리와 다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나는 심령이 가난한가? 나는 애통하고 있는가? 나는 온유한가? 나는 이에 주려있는가? 나는 긍휼히 여겨본 적이 있는가? 나는 마음이 청결한가? 나는 화평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 때문에 누군가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는가? 부끄럽지만 이 모든 물음에 나는 얼굴을 붉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번쩍 번쩍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원한다. 내게 능력 주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는 믿음으로 수식어는 세계 최고를 달고 멋진 사역을 하다가 그분에게 가서 멋진 면류관을 받고 싶어 한다. 일단 나부터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어주는 사역도 있다. 이름도 없다. 그냥 망원동에 살고 있는 형제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런 사역이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떨까? 나의 성향과 신앙 수준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분명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한다. 드러내기 좋아하고 칭찬과 인정받기 좋아하는 나에게 망원동 형제 정도의 삶은 아마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아직도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 지구 상에는 수많은 구레네 사람 시몬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구레네 사람 시몬도 비슷하다. 그는 누군가와 다투지 않는다. 왜만 하면 다투는 사람의 원하는 것을 준다. 그는 높은 비전도 없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그는 겸손하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그들을 자신보다 최고로 섬긴다.

이사를 할 때 가장 큰 짐을 지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거기에 있고, 어려운 사람이 생기면 먼저 그를 돕고….. 나는 그의 움직임을 보고 난 뒤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직급으로 나이로 그리고 믿음을 결단한 시간면에서 내가 선배일지라도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은 왜일까? 나는 비전을 꿈꾸지만 그는 사람을 돌보고, 나는 큰 소리로 기도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돕고, 나는 높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는 예수님이 찾는 사람을 주님과 같이 찾는다.

두 명의 사람이 십자가를 들고 지나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깐 한 사람은 바로 나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들어주는 것일까?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어주는 것일까? 양심의 소리는 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들어주고 있다고 나에게 탄식을 하고 있다. 나의 욕심, 야망, 탐심, 분노, 교만, 음란, 상처…. 구체적으로 열거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다행히도 나는 교묘히 이런 단어를 열거하면서 그 단어 뒤에 또 숨어 버리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나의 이런 구질구질 거리는 십자가를 예수님은 들어주고 있다. 나는 언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의문도 또 다른 사역의 비전의 연장선에 있는 나의 욕심일 것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 주님은 나에게 비전을 묻기 전에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너는 망원동 사람, 시몬으로 살 수 있나?”

“예? 주님, 어떤 사역을 하는 것인가요?”

“어떤 사역이 아니라 망원동 사람 시몬으로 살 수 있냐?”

“그러면 무엇을 합니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원동 사람 시몬으로 나를 위해서 살 수 있냐는 말이다.”

“음……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좀….”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정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구레네 시몬을 구경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아직도 나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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