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 | 김서택 – 믿음의 사람들 ( 히브리서 11장 8-16 ) 143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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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을 보라! – 벧샬롬교회

믿음의 사람들을 보라! 히브리서 11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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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schurch.net

Date Published: 5/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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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 히브리서 11 장

믿음의 사람들: 히브리서 11 장. 휴스턴 서울교회: 목장 성경 공부 …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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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bcranch.com

Date Published: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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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장에서 만난 그리스도 – 강준민 – 두란노서원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 속 믿음의 영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요셉, 모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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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8/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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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히브리서 11장 8-16절)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

믿음의 사람들(히브리서 11장 8-16절)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Miracle Generation(기적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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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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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 | 김서택

믿음의 사람들(히브리서 11장 8-16절)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Miracle Generation(기적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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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pa.covadoc.vn

Date Published: 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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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 – 믿음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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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0/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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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히11:39-40 – 썹목사

생명길교회 청소년부 겨울 수련회 “여기로 모여” 새벽예배 설교 어제 새벽에 이어 오늘도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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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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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브리서 11장 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 …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세계에 갇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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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7/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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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택 - 믿음의 사람들 ( 히브리서 11장 8-16 )
김서택 – 믿음의 사람들 ( 히브리서 11장 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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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Seo 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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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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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11장. 믿음의 사람들을 보라. (찬 357)

1. 기자는 10:36~39에서 믿음의 인내를 권면한 후에 구약 조상들의 모범을 제시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믿음은 그 말씀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지나가는 순간을 위해 살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1).” 이것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아직 보이지 않아도 확실하게 일어날 소망을 근거로 사는 것이다(1). 믿음은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2). 조상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신다. 믿음의 사람들이 추구한 것은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었다. 또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다(3).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안다. 즉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왔다. 기자는 창조 때의 이야기를 원용하고 있다.

2. 기자가 이제 열거하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을 보자. 먼저 세 사람, 아벨, 에녹, 그리고 노아다(4~7).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인정한 사람이다(4). 아벨은 형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것은 믿음으로 드린 제사였다. 우리가 외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헌금과 봉사가 우리의 사랑과 헌신의 진정한 표현인가? 아벨의 제사는 가장 중요한 제사인 그리스도의 뿌린 피(12:24)를 상기시켜 준다. 예수님은 아벨의 제물과는 달리 자원하는 제물이 되셨다. 둘째로 에녹을 보자(5~6). 그가 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에녹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그와 동행하려면 그분의 존재(계신 것)와 그분의 관대하심(상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세번째는 노아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의 전형이다(7).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경고를 받고 순종했다. 그는 믿음을 통해 온 세상이 그릇된 자리에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써 세상을 정죄한다.

3. 이제 기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을 약간 길게 언급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희생적 믿음이었다. 그는 안전하고 부유하며 평화스럽고 즐길 수 있는 모든 환경으로부터 기꺼이 떠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비록 가는 길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선한 것으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13:21). 또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의 용기는 어떤가?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기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순종에 대한 상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고 그의 용기는 믿음이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에게서 믿음의 끈질김(인내)을 본다. 그가 가나안에 들어가 기업의 약속을 받았을 때에도 그 땅이 즉시 그의 소유가 되지 않았고 그는 평생 소유 없이 살았으며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를 사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신뢰함으로 살았다. 그는 장막에 거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면서, 장막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넘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고 위로를 얻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사라 역시 믿음의 한 요소인 의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뛰어넘어 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철저하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는 못 했지만 믿음으로 죽었다. 그들은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이것은 그들의 목적지가 천국임을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본향을 추구하고 살았고 이 세상은 무상하고 일시적이며 소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분별하고 살았다. 믿음의 사람은 더 나은 것이 있음을 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에 걸맞게 아니 그와 비할 수 없는 영광으로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해 주셨다.

4. 순례자의 삶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증거하는 삶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회계해야 한다는 것은 초대 기독교의 설교에서 두드러진 것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물질주의에 적응된 삶은 어떤가? 탐심은 불경건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생활 방식은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는가?

5.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바치는 순종에서 절정에 이르고 빛을 발한다(17~19).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설령 아들이 죽게 되면 그를 다시 살리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믿는 절대적 복종의 믿음이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할 때 장차 올 일에 관하여 말했다. 비록 야곱의 속임수가 여기 개입되었지만 하나님의 복은 우리가 그것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이삭은 지혜로우시고 주권적이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행동을 지각하게 되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졌을 때, 요셉이 불편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손을 어긋맞겨 축복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둘째인 에브라임을 크게 축복했다. 야곱은 허약했지만 믿음은 강건했다. 요셉은 임종시에 자기 시신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옮길 것을 유언했다. 칼빈은 이 유언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요셉은 백성들의 갈망을 일깨워 자신들의 구속을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게 하고 또 그들이 마침내 해방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소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6. 이제 기자는 모세에게 우리를 인도한다(23~29). 두려움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고질적 문제다. 그가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1세기 로마 황제의 명령 앞에서 살아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적절한 권면이었을 것이다. 신자는 종종 믿음으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모세는 사회적 명예, 육신의 만족, 물질적 풍요를 거절하였다. 이 또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소유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실성있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모세가 상주심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눈을 고정시켰다는 말이다. 마치 예술가가 그림이나 조각으로 재현하려는 물체나 모델에 눈을 고정시키듯이 그는 상주시는 분과 상주심에 눈을 고정하였다. 그는 바로의 분노 대신 하나님의 자비를 묵상함으로써 인내했고 두려움을 이기고 참을 힘을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함으로 유월절을 지켜 구원을 얻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를 히브리서 기자는 바라는 것이다.

7.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믿음의 조상들은 어떠했는가? 기자는 히브리인들의 믿음의 끈기(인내)를 강조한다. 여리고성을 6일간 매일 한 바퀴씩 돌고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돈 것은 믿음의 끈기를 보여준다. 또 라합이 스파이들을 자기 집에 들인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라합은 자기가 구원받을 권리가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구원을 간청했다. 이것이 라합이 보여준 믿음이다. 이외에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는 믿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사사 시대에 믿음을 보여준 인물들이다. 이들은 다 결점투성이의 인간들이었다. 기드온은 겁이 많았고 바락은 우유부단했으며 삼손은 경솔했고 입다는 성급했다. 다윗은 감각적이었고 사무엘은 불경건한 자녀들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연약하지만 끝까지 인내하는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8. 믿음은 종종 공격적이다. 믿음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힘이다. 비록 세상은 하나님의 종들을 거부하지만 결국 세상은 신자들을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세상이 받는 형벌이다.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의 복은 신자들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용감한 그리스도인들은 정복하는 능력 대신 고난을 견딜 능력을 받았다. 그들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어려움을 승리의 성취로 바꾸었다. 이들의 믿음은 풍성했지만 옛 언약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믿음은 ‘더 좋은 것’을 얻고자 했고, 그들이 바랐던 온전함은 새 언약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더 좋은 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졌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는 모든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유일한 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구속을 받았다.

9. “하나님 아버지, 흠이 많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인내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여겨주실 뿐 아니라 인내와 순종의 능력까지도 그 믿음 안에 담아주시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이 믿음으로 고난과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기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서 상을 받는 복된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장에서 만난 그리스도

예수님께 기초한 참된 믿음

믿음장에서 만난 그리스도

믿음의 저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참된 믿음을 배우고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최고봉에 오르자.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듯이 믿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소유한 공통된 특징을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추적하고 있다. 기계를 만든 사람이 그 기계를 가장 잘 알고, 책을 쓴 저자가 책 내용을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믿음의 저자이신 예수님이 믿음을 가장 잘 알고 계신다. 또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실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믿는 대상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믿음의 대상이 다르다. 우리는 비인격적인 우상이나 물건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요, 근간이다. 우리가 믿음의 신령한 집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다. 집의 기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면 그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믿음을 세울 때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기초로 믿어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문을 여는 열쇠다.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 속 믿음의 영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등 믿음의 사람들을 예수님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부르심에 순종했고, 안전 대신 모험을 선택했으며, 고난을 자처하고 인내했고, 세상을 초월하는 부활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분의 제자로 사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무수히 만나는 여리고 성과 홍해 같은 문제도 참된 믿음이 있으면 거뜬히 넘어설 수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견디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의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 작은 일에도 믿음이 쉽게 사그라질 때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이끄는 책이다. 다시 견고한 믿음으로 걷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지은이_강준민

말씀 묵상의 목회자요 기도하는 사람인 저자는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다. 이 책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이 소유한 공통된 특징을 통해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추적하고 있다.

믿음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부르심에 순종했고, 안전 대신 모험을 선택했으며, 고난을 자처하고 인내했고, 세상을 초월하는 부활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분의 제자로 사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 초점을 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초월할 수 있다.

강준민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졸업(B. A.) 후 아주사신학대학원(Azusa Pacific University, M. A./ M. Div.)과 탈봇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 Th. M.)에서 학위를 받았다. LA 소재 로고스교회와 LA동양선교교회에 이어 현재 새생명비전교회(New Life Vision Church)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 《목회자의 글쓰기》, 《믿음이 만든 사람》, 《뿌리 깊은 영성》,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이상 두란노),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영성의 뿌리는 묵상입니다》,《기다림은 길을 엽니다》(이상 토기장이), 《Deep-Rooted in Christ》, 《Scripture by Heart》, 《Spirituality of Gratitude》(이상 미국 IVP) 등 다수가 있다.

차례

프롤로그_예수님을 보여 주는 믿음장 사람들

Part 1. 참된 믿음의 기초는 예수님이다

01 예수님을 통해 깨닫는 참된 믿음

02 더 나은 예물을 드린 아벨의 믿음

0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의 믿음

04 구원의 방주를 준비한 노아의 믿음

Part 2. 말씀은 믿음에 물을 준다

05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

06 웃음을 선물로 받은 사라의 믿음

07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

08 장차 있을 일을 축복한 이삭의 믿음

09 꿈 너머 꿈을 꾸는 요셉의 믿음

Part 3. 하나님은 약한 믿음을 키우신다

10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 모세의 믿음

11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의 믿음

12 약함 속에서 용맹을 발휘한 기드온의 믿음

13 훌륭한 이인자의 모범을 보여준 바락의 믿음

Part 4. 믿음의 최고봉에 오르라

14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15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

본문 맛보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실상’이라는 뜻은 ‘아래에 서 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곧 실상은 집을 지을 때 집을 받쳐 주는 기초와 같습니다. 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단어가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 한 채를 새로 샀다고 합시다. 우리가 그 집에 살지 않지만 그 집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 집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그 집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여 줍니까? 집문서입니다. 바로 집문서와 같은 것이 믿음입니다. 집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문서를 근거로 우리가 산 집이 우리 것이 된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믿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근거해서 믿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근거해서 믿어야 합니다.

_27쪽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가장 성경적이고, 건강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대상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믿음과 신뢰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비인격적인 우상이나 물건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물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_36-37쪽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믿음의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됩니다.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 가인보다 더 나은 예물을 드린 믿음이었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넘어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노아의 믿음은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귀한 과업을 성취하는 믿음이었습니다.

_85쪽

사라는 두려워서 자신이 웃었음을 부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키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듭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겨자씨와 같은 믿음에 물을 주심으로 굳세게 키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의심과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신은 좋지 않습니다. 불신은 무조건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심은 믿고 싶은데 아직 정보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을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_125쪽

믿음의 영향력과 축복은 그 후손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라합이 믿음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것은 좁은 길이었습니다.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했던 가나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복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족 전체의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라합은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됩니다.

라합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살몬과 결혼해서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서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_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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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히브리서 11장 8-16절)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Miracle Generation(기적의 세대)

믿음의 사람들(히브리서 11장 8-16절)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Miracle Generation(기적의 세대)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리하였습니다.

2019년 2월 1일, 금요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요기도회

한 번씩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외국에 여행을 가면,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베트남 하노이 가까이 있는 하롱베이에 간 적이 있는데, 해운대 같은 바다에 섬이 3,000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멋있다 이러는데, 저는 그 해운대 같은데 섬이 3,000개나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요. 그런데 그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섬이 그렇게 많으니까, 바다인데 파도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파도가 쳐도 섬에 다 막혀가지고, 호수 같이 물이 항상 잔잔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다금바리라는 생선이 있는데, 이게 제주도에서 한 마리에 몇 십만 원 한다 그래요. 그런데 거기서는 너무 많아가지고, 굉장히 싸다고 그럽니다. 다금바리를 바다 그물에 넣어놓은 것을 이렇게 체로 걸러 내면, 몽둥이로 때려가지고, 기절시키는지 죽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인제 회를 쳐 먹는데, 회를 쳐 먹는데, 정말 너무 잔인한 거 같애요. 저는 회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몽둥이로 때려가지고 기절시켜 놓고 회를 쳐 먹는 게 그게 썩 좋은 게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이 부산 출신이기 때문에 막 회라고 하면 사죽을 못 쓰는 줄 아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그런 거 상상도 못했습니다. 술 찌꺼기나 먹고 이랬던 게 무슨 회를 먹습니까? 서울에 살다가 내려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회를 주면 불에 구워 먹고, 된장에 넣어 먹고, 왜 이거를 생 거로 먹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자꾸 부산 사람들이 회, 회 이렇게 하니까 조금씩은 먹지만, 왜 그리 머리를 몽둥이로 때려가지고 그렇게 잔인해서 기절시켜서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서안에 가면 화청지라는 이런 집이 있는데, 옛날에 그 양귀비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양귀비가 목욕했던 돌로 된 목욕통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마침 간 날이 장안가라는 그 무용을 마지막으로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안 하는 날인데, 우리가 늦게 도착을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 사이를 막 파고 들어가는데, 제 아내가 아는 중국어가 딱 한 마디가 있습니다. 한궈런, 한국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한궈런, 한궈런, 이러면서 막 파고 들어가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굉장히 높은 공산당원인 줄 알고 막 비켜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앉는다고 앉았는데, VIP석에 앉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후레쉬를 딱 비추면서, VIP 표 없는 사람은 다 쫓아내요. 공연 중인데 다 쫓아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 쫓아냅니다. 벌써 폼이 VIP 같이 생겨서 그런지, 우리는 그냥 끝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VIP 석은 먹는 것도 있어요. 음료수도 있고. 제 아내가 그것까지 먹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거는 안된다. 그거 먹으면 공안에 잡혀 간다고 그랬더니 참고, 그냥 구경만 이렇게 했는데, 무용수들이, 장한가가 양귀비하고 현종인가요? 그 사랑 아닙니까? 그래서 그 안록산의 난도 나오고 이러는데, 무용수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춤도 많이 추고, 그리고 무용수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배도 막 움직이고, 땅에서 불도 막 나오고, 달도 뜨는데, 가짜 달도 뜨고, 다음 날 거기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구멍만 뚫려 있는데, 전부 세트였던 것입니다. 세트장에서 뭐 불도 나오고, 배도 움직이고, 공중에서 그네도 타고 이러는데, 그게 다 가짜였습니다.

이 서안에는 병마용 말고도 대안탑이라고 하는, 대안학교가 아니고, 대안탑이라는 탑이 있습니다. 거기 현장이라는 중이 불교가 너무 엉터리이니까, 불경을 구하기 위해서 타클라마 사막을 통과해서 인도까지 걸어갑니다. 9년에 걸쳐서 걸어가 가지고, 거기서 불경을 많이 얻어가지고, 또 타클라마 사막을 돌아와 가지고, 그 탑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구하기 위해서 9년을 걸어가고, 또 9년을 걸어오고, 그리고 한평생에 걸쳐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가, 그런 것을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참, 우리가 너무 편하게 믿는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불경을 구하기 위해서, 그 사막을 걸어서, 그 사막이 죽음의 사막이라는데, 그걸 통과해가지고, 인도까지 가가지고, 불경을 가지고 오는데, 우리는 가까이 있는 이런 성경조차도 읽지도 하지 않고, 연구도 하지 않고, 한평생에 걸쳐서 이 성경 말씀에 헌신해야 되는데, 우리는 너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그 탑 앞에서 제가 했었습니다.

요즘은 우리가 이런 여행을 하더라도 여행사에서 다 답사를 했고, 비행기도 있고, 대절하는 버스도 있고, 호텔도 다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편한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은 목표도 없었고, 비행기도 없었고, 대절하는 버스도 없었고, 그냥 정처 없이 떠나는 떠돌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여행을 하는 사람, 목표도 없고, 차도 없고, 그냥 거지 같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자는 곳도 마땅치가 않고, 또 먹는 곳도 마땅치가 않고, 또 동네 마다 가면 개들이 또 짖어대고, 이상한 취급 받으면서 두드려 맞을 때도 있고, 어떤 집에 가서 시 한 수 써주고 밥 한 끼 얻어먹고, 또 침 하나 놔주고 한 번 헛간 같은 데서 자고, 이러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성공할 만큼 성공하고, 그리고 죽어 없어지는 인생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또 다른 하나의 인생은 우리는 이 세상을 잠시 나그네로 머물다가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되는 그런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 세상을 나그네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여기 정착할 수가 없고, 많은 것에 관여를 할 수가 없고, 또 많은 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있다가 좋은 기억이나 추억을 가지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보고 있는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학벌 이게 실체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자고 희망사항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그림자고, 오늘 우리 믿음이 실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이 그림자는 우리는 뒤에 두고, 우리는 약속을 향하여 정처 없이 떠나야 되는 나그네 인생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현실에 정착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그네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됩니다. 직장도 떠나야 됩니다. 동네도 떠나고, 고향도 떠나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전혀 예측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우리는 마치 호랑이 등에 앉아서 막 달리는 사람처럼 어디서 낭떠러지에 떨어질지, 어디서 내팽개칠지, 언제 이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굉장히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믿는다 하면서도 어떻게 하든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좋은 집을 가지고, 좋은 예배당을 가지고, 직책에서 물러나도 막 원로, 원로라고 해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 오래오래 붙어서 살려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모든 걸 다 훌훌 털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나야 될 나그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던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대단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그냥 뜨내기였고, 나그네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고생만 엄청나게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뭐든지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하면 바로 순종이 생각이 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땅 한 평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덤, 아내가 묻힌 무덤 하나 샀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는 하늘나라에서는 어마어마한 큰 성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첫 번째로 믿음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이라는 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임하면, 이거는 문제입니다. 문제. 은혜를 강하게 받으면 이거 왕창 망하는 것입니다. 그냥 대충대충 은혜 받고 사는 것이 나은데, 어느 날 말씀이 강하게 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란을 떠나서 네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모르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면서 무조건 하란을 떠났습니다. 8절 말씀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원래 이 아브라함은 바벨론에 있는 우르라는 곳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르에서 아브라함은 우상숭배를 하는, 잡신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우르에서 하나님을 전도 받게 됩니다.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찾아와서 전도를 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전도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란에서 거기 시민이었습니다. 하란 시민이고, 거기에 땅도 있고, 거기 가축들도 많고, 친척들도 많고, 결혼도 했고,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 아주 강한 은혜가 임하면서 “내가 너에게 하늘의 복을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땅 그리고 너의 친척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이런 삶의 기초를 포기하고, 좌우간 떠나라”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다 이러는데, 어디로 가야 될 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장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요즘도 우리나라 국적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적이 있는 것이. 그리고 가정이 있는 것이 중요하고, 직장이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직장이 없으면, 생활이 안정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한순간에 극빈자가 되어버립니다. 가족이 없으면, 가정이 없으면 그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국적이 없으면 불법 체류자 아닙니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그런 처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거 말고, 완전히 새 인생을 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이거는 너무 실패한 인생이고, 비전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 인생을 살겠다, 그렇게 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시골에서 농사짓던 청년이나 아이들 중에서는 농사가 자기 체질하고 맞지 않고, 또 농사가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밤에 인제 도망을 쳐가지고, 서울이나 대도시에 가서 그 밑바닥에서 죽도록 고생하면서 그러면서 나중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떠날 때, 나이가 75세입니다. 뭐 20세라든지 15세라든지 이러면,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75세이고, 이미 성공을 했습니다. 이미 성공을 해서 부를 가지고 있고, 친척들도 많았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강력한 말씀을 들었을 때, ‘아,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냥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짓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었고, 계속 죄 짓는 생활이었고, 그러다가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다, 섬띵 뉴(something new), 뭔가 새로운 말씀이고,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말씀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꼭 믿어야 될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다.‘ 이게 믿어지면서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야 될 지도 모르면서 떠났습니다.

차가 운전해서 갈라고 하면, 어디로 가는지 인제 목표를 정해야 됩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있으니까 목표를 눌러 놓고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무조건 시동을 걸고 무조건 갔던 것입니다. 무조건 아무데나 갔습니다. 아무데나. 아무데나 가니까, 하나님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이러면서 방향을 인도를 하셨는데, 결국 가다보니까 그게 가나안 땅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안정된 생활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정된 생활을 누가 포기하겠습니까? 그는 아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이 다 하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강력한 말씀을 듣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그냥 무조건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을 누구에겐가 주시고, 그것을 상속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마치 삼성 같이, 삼성은 가족들에게 물려주고, 현대, 전부 자녀들에게 회사나 유산을 물려주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원했는데, 그런 사람이 딱 한 사람 아브라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내가 하늘의 복을 주겠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겠다”, 그 말씀을 믿고 무조건 보따리 싸가지고, 가축들 몰아가지고, 좌우간 무조건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아브라함의 인생은 파란만장의 인생이었습니다. 고생이라고 하는 고생은 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가나안 땅으로 가라’ 이것도 안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무조건 떠나라고 하니까, 무조건 떠났습니다.

이 세상에 목표도 없이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목표도 없습니다. 방향도 모릅니다. 그냥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떠났던 것입니다. 그가 간 곳은 결국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악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가나안 땅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로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강을 건너라, 산을 넘어라, 들판을 건너라, 가다보니까, 거기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가나안 땅으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 때부터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임하느냐, 가나안 땅이 무대가 되게 됩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배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연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편안한 생활 하고 있는 데서 무대로 불러내셨습니다. 여러분, 무대에 나온다는 것은 참 긴장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래 좀 부른다 하더라도 무대에 서면 막 떨리고, 목이 잠겨가지고, 노래를 잘 못 불러요. 사람들 꽉 차 있는 데서 헌금송 하는 것은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보통 실력이 아니고, 보통 연습을 많이 한 게 아니에요. 무대에 선다고 하는 것은 이거는 정말 이거는 어려운 일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무대로 불러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고, 이걸 소화를 해가지고, 연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도 없어요. 하나님의 의도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갔더니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 살라고 했는데, 가보니까 살 수가 없어요. 가축들에게 먹일 풀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뭔가 잘못 됐는가보다 싶어서 애굽으로 인제 내려갑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내리막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인제 생각을 해보니까, 자기 부인이 너무 이쁜 겁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사라를 뺏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자기를 오빠라고 불러라고, 오빠라고 불러라고, 그러니까 사라도 그렇게 그 말을 듣고 오빠라고 부릅니다. 요즘도 보면 사귀는 남자를 ‘오빠’ 이렇게 부르는데, 우리 때는 그걸 상상을 못했어요. 사귀는 남자가 어떻게 내 오빠가 될 수 있습니까? 오빠가 될 수가 없죠. 꼭 ‘누구 씨’ 이렇게 불러라 그러는데, ‘오빠’ 이렇게 합니다. 사라가 제일 먼저 했던 겁니다. 그런데 오빠라 이러니까, 그 애굽의 왕이 ‘아, 좋다’면서 사라를 후궁으로 뺏어가 버렸습니다. 이게 내리막길입니다. 약속의 땅에 갔는데, 먹고 살 수가 없어요. 무대에 굶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살려고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부인 뺏겨버려요. 어떻게 아브라함이 바로하고 싸워서 그 부인을 뺏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의 궁궐에 병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 병이 안 나으니까, 벌써 사라가 하루 이틀 있은 게 아닌 겁니다. 하루 있은 게 아니고, 벌써 몇 달 있은 거예요. 그리고 거기 점쟁이들도 있고, 거기 애굽에 제사장들도 있고, 불러가지고 점도 쳐보고 이러니까, 새로 들어온 여자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아브라함을 불러 가지고, 재수 없다고 이렇게 하면서 데리고 가라고 이렇게 합니다. 재수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좌우간 부인을 도로 찾아가지고, 나오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아브라함이 인제 원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 드렸던 곳으로 갑니다. 그거 참 잘 한 거예요. 옛날에 자기가 은혜 받았던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 곳이 너무 협소하고, 물도 부족하고, 풀도 부족하니까, 아브라함의 가축 치는 사람들하고 롯의 가축 치는 사람들하고 대판 싸워가지고, 롯이 떠납니다. 롯이 있으면, 나중에 롯을 아들로 삼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너무 구석에 처박혀 있어가지고, 전쟁이 난 줄도 몰랐어요. 그 전쟁 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사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롯이 포로로 붙들려가고, 그 소돔성에 있던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가지고 롯이 붙들려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목동들 데리고 밤에 따라와 가지고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기습을 해가지고, 결국 전쟁에 이기고, 롯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뺏겼던 물건도 다 찾아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소돔의 재물에 손을 안 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은 다 소돔 물건이다’ 이런 소리 듣기 싫어가지고, 신발 한 짝 가지지 않고, 실 한 올 가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손해죠.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겁니다. 조카 롯이라도 있으면, 롯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을 텐데, 롯은 인제 헤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창세기 14장 22절: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창세기 14장 23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데리고 밤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의 별을 헤아려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별을 헤아려 보니까, 별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또 생기고 또 생겨가지고 도저히 별을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저 별들이 처음에는 한 개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 별을 수도 없이 만드셨다.’ 지금 하늘에 있는 별들은 수천 억 개가 넘습니다. 수천 억 개. 하나님은 별이 하나도 없는 데서 별을 수천 억 개를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조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주신다 하시면 주신다, 만드신다 하면 만드신다, 이걸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의롭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그의 모든 죄는 다 용서 받았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우리는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 많아서 열심히 세상을 향해서 달려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좋은 공부, 이 세상에 좋은 직장, 좋은 백화점, 이 세상에 좋은 여행하는 곳, 세상에 좋은 것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똑 같은 일의 반복에 불과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좀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좀 더 풍족한 삶을 사는데 그치는 것이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도서 1장 9절: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이 곳에서 새로운 것이 뭡니까? 새로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부흥, 하나님의 축복이 새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산다고 그러면 사는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죽고 그 시신이 썩어도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기 때문에 우리를 또 새로 만드십니다. 이걸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또 살 겁니다. 또 살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많은 유산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돈 한 푼 없어도 됩니다. 진짜 부자는 돈 안 가지고 다닙니다. 진짜 부자는 그냥 카드 하나 가지고 다닙니다. 카드도 안 가지고 다닐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무지무지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삶을, 죄를 이기는, 절망을 이기는 아름다운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음 때문에, 절망 때문에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철학 공부 안 해도 됩니다. 철학 공부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하는 병’, 아, 그런 책들 막 팔리는데, 그 책 사보지 마세요. 그 책 사보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 안 하셨으면 상관이 없는데, 약속 했으면 반드시 지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고 안 지키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삽니다. 다시 다 삽니다. 그 때 못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때 못 살고 그냥 미이라 같이 썩은 몸으로 있는 사람들, 안 믿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재산을 주십니다.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혓바닥에 물 한 방울 할라고 그래도 그것도 안 돼요. 그것도 거절 당합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이기는, 절망을 이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절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안 믿기 때문에.

저도 이 세상에 청소년 때, 시험에 떨어져보기도 하고, 참 학교도 못 다녀보기도 하고 이래도 절망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절망은. 절망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린이들, 청소년들, 이 시기에 예수 믿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학 문제 좀 더 풀고, 영어 좀, 어차피 미국 사람 만나면 말 못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거 필요 없어요. 교회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교회. 할 수 있으면 교회 앞자리에 나와 가지고, 아, 설교를 필기하는 겁니다. 설교를 필기해. 설교를 필기해가지고, 모든 설교를 다 필기해가지고, 중고등부 때, 제일 중요한 게 그겁니다. 그래가 책으로 딱 만들어가 앞으로, 앞에 ‘자기 저’ 이러면 안 됩니다. 김서택 목사님이 설교했고, 자기는 적었다 이렇게 해야죠. 하나님이 그 사람을 희한하게 길을 열어주세요. 희한하게. 유학 가고 싶으면 유학 갈 길을 열어주시고, 영어 공부를 원하면 정말 이 혓바닥이 감길 정도로 영어만 하는 데 집어넣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삶을 주십니다. 그리고 굉장히 멋있어져요. 멋있어집니다.

여러분들, 여자 아이들이 어릴 때 못 생긴 아이들이 크면 굉장히 이쁜 거 알죠? 가끔은 그대로 못생긴 애들도 있지만, 어릴 때 못생겼던 애들이 크면 굉장히 이쁩니다. 그리고 오히려 어릴 때 예쁜 애들이 크면 좀 못 생겨져요. 크면 못 생겨집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는 못 생겨도 나중에는 막 굉장히 잘 생겨져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믿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그냥 믿으면 되는 겁니다.

2.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걸 믿었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이라고 해서 갔지만, 거기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자기 땅이 없는 그냥 떠돌이 신세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마 하란에 있을 때는 돌집에 살았던 거 같애요. 나무집, 돌집에서 살았던 거 같은데, 가나안 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떠돌이였기 때문에. 9절에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 9절: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가나안 족속들 좀 밀어내고 성 한 개라도 주시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 너희들이 그동안 여기 가나안 땅에서 산다고 고생 많았지만, 지금 주인공이 왔다. 주인이 왔으니까 너희들 이 성을 비워내라’ 이렇게 해 가지고 아브라함이 성을 하나 가지고 사는 것이 이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 한 개도 주시지 않고, 땅 한 평도 주시지 않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끝까지 천막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이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하면서, 이 성이 굉장히 많은데, 집들도 무지무지하게 많은데, 왜 하나님은 계속 천막에서 살게 하실까?

그 때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따라갈 때,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항상 따라 붙는다는 것을, 앞장서서 간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나중에 늙어가지고, 자기 종에게 이삭의 신부를 데리고 오라 그러면서, 절대로 가나안 여자는 안 되고, 이삭을 데려가면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러냐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다는 겁니다. 천사가 너 앞에 가서 준비를 해 놓을 거라고, 천사가 준비를 해 놓을 것이고, 그 여자가 안 오겠다 그러면 관두라는 겁니다. 관둬라. 관둬라. 하나님의 천사가 설득을 해도 안 되면, 관둬라, 그 여자는 아니니까, 네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돈 한 몇 백만 원 가지고 있거나 또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항공모함이 있으면 훨씬 안심이 되죠. 핵 항공모함. 그러면 쳐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천사 한 명이 항공모함 한 대입니다. 핵 항공모함 한 대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너무 잘 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냥 알아보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보면 돼요. 알아보면, 좋다 그러면 하면 되고, 싫다 그러면 안 하면 되고요. 결혼 한 번 해 볼까요? 좋다 그러면 하고, 싫다 그러면 안 하면 돼요. 왜냐하면, 천사 말도 안 듣는 놈이니까,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나중에 애 엄청 먹일 거예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력서 한 번 냈는데, 안 뽑아주면 안 가면 돼요. 안 가면 돼요. 이 천사도 없는 회사에 갈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천사가 있어야지 직장 생활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천사를 붙여주시고, 어떤 때는 하나님과 천사 둘이 나타날 때도 있고, 아, 천사들이 막 수시로 수시로, 수시로 수시로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아브라함과 이야기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 이 세상에 성이나 돈 이런 게 없는 게 훨씬 낫구나, 천사 한 명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 훨씬 낫고, 여호와와 같이 다니는 것이 훨씬 낫지, 집 하나가지고 맨날 도둑 걱정하고, 그리고 비상벨 같은 거 그런 거나 만들고 말이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 가나안 땅에서 집도 안 주시고, 땅도 안주시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뭘 알았을까요? 지금 하늘에 성을 하나 만들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성을, 큰 성을 짓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큰 집을 하나 짓는다고 하면요, 그 집을 다 짓는 동안 천막에 살든지 움막에 살든지, 대충 삽니다. 왜냐하면 지금 큰 집을 짓고 있는데, 또 집을 가질 필요가 없잖아요. 어차피 글로 이사를 갈 건데,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기서 천막에 오래 살면서,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뭘 느꼈습니까? ‘저 하늘에 성이 크구나, 엄청 크구나.’ 바르셀로나에 가면 지금도 짓고 있는 성당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100년 넘게 짓고 있는 성당이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여기서 내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큰 겁니다. 큰 거. 굉장히 큰 성을 하나님이 만들고 계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집이 어딥니까?’ 이렇게 물었다가는 망신당합니다. 성이 어디냐고요? 캐슬이 어딥니까? 아브라함의 캐슬 어디 있습니까? 스카이 캐슬, SKY 캐슬 어디 있습니까? 그래 물으면 쫓겨납니다. 아브라함을 줄여가 에이브 캐슬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물으면, 딱 알죠. 에이브? 아브라함의 약자인데, 아, 무지무지하게 큰 겁니다. 왜냐하면 땅에서 너무 오래 기다렸는데, 그동안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겁니다. 10절에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브리서 11장 10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집이 없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큰 걸 짓고 있는데, 어차피 이사 갈 거니까요. 어차피 그 큰 성에 이사 갈 거니까, 여기 아무 것도 없는 천막 생활 하는 이게 진짜 좋은 거라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야곱에게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절대로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무대를 너무 쉽게 떠나면 안 됩니다. 전에 어떤 여자 배우는 암에 걸렸지만, 계속 끝까지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죽었어요. 자기는 연기가 최고라는 겁니다. 연기가 최고고, 자기는 연기를 위해서 태어났고, 연기를 끝까지 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는 무대를 떠나면, 배우는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말씀이 임하는 무대를 떠나면 죽은 것입니다. 그 삶은 의미가 없어요. 돈을 벌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성공을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대가 있어야 되니까요. 말씀의 무대.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믿어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머리를 써가지고, 잔머리를 굴려가지고, 젊은 여종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니까 당장 아기가 생겼습니다. 말씀으로는 그렇게 10년 기다려도 애가 안 생기는데, 인간적인 방법 쓰니까 당장 애가 생기는 겁니다. 애를 잘 키워가지고, 열 서너 살 됐는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얘는 진짜 아들이 아니니까 내보내라고. 다 키웠는데, 잘 키웠는데, 열서너 살 되니까, 얼마나 청소년이 좋습니까? 아브라함은 참 이스마엘을 좋아했습니다. 내보내라고, ‘이거는 진짜 아들이 아니다.’ 또 내보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는 89세가 됩니다. 99세와 89세는 무슨 나이입니까? 돌아가실 나이입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89세에 돌아가셨으면 ‘아유, 오래 사셨네요.’ 9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유, 1년만 더 채우면 좋겠는데, 100 살에 돌아가시지.’ 지금 89세, 99세는 돌아가실 나이입니다. 애는 무슨 애입니까? 지금.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라가 낳는 자식이 진짜 자식이라고. 아브라함이 믿습니다. 99세에 믿습니다. 사라가 아기를 낳을 것을 믿고, 사라도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그 말씀을 믿는 순간 사라의 속이 막 화끈거리면서 젊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라가 막 젊어지기 시작해요. 임신이 가능한 그 여자의 몸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 이 할배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근육이 막 생기고, 힘이 막 생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늙은이들을 치료를 해가지고, 젊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히브리서 11장 11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와가지고 사라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젊어지게 할 수 있고, 늙게 할 수도 있고, 아름답게 할 수도 있고, 안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왜야하면,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면 지키시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창세기 18장 14절: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젊어지도록, 사라 같이 젊어지도록, 너무 젊어지면 또 곤란합니다. 임신이 돼 버리면 이게 또 골치 아프니까요. 되면 또 되는 거지 뭐, 못 될 거 뭐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고, 사라가 90살이 되었을 때, 이삭을 주셨을까요? 믿음의 자손 얻는 게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진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100살 되어가지고 믿음의 자손 한 명 딱 낳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거는 기적을 수도 없이 만드신 것입니다. 수도 없이.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무슨 사람인가 하면, 기적의 사람입니다. 기적의 사람. 우리 기적이,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예수 믿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이게 불가능한 것입니다. 12절과 13절 보면,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 12절: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아브라함과 사라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숨은 붙어있었지만, 지금 쭈글쭈글한 거나 지금 근육 퍼센트나 나이나 이거는 죽은 사람과 똑 같애요. 죽었어요. 그렇지만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믿으니까, 그들은 젊어져가지고, 기적의 아이, 이삭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이런 일들이 엄청 많이 일어나가지고, 하늘에 별보다 더 많은, 바다에 모래보다 더 많은 믿음의 자손들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미러클, 기적의, 기적의 할머니, 기적의 할머니, 기적의 할배, 기적의 어린이, 그걸 가르쳐 줘야 된다고요. 여러분, 교회 와서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비록 잠깐이지만, 설교 듣고, 그거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기들 오래 듣기 힘들죠. 어른도 오래 듣기 힘든데 어떻게 아기가 그냥 다 들을 수 있습니까? 조금 듣다가 그냥 놀아야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약속을 못 받았다는 거예요. 멀리서 환영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영받았다가 아니고, 자기들이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게 인제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들은 못 본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직접 약속을 못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올 것을 저 멀리서, 3,000년 전에 보고서 환영을 했다는 겁니다. ‘아,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구나, 신약에 이래 많은 성도들이 생기는구나.’ 막 환영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그네로서, 떠돌이로서 살다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직접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1장 25-26절)” 예수님이 이 말씀 안 하셨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직접 우리는 들었습니다. 직접 들었어요.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한복음 14장 1-2절)” 천국에, 천국에 거할 곳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우리들도 성을 하나님이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큰 성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3.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

오늘 세 번째로,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야 됩니다. 만약 우리가 나그네라고 하면, 어느 동네나 도시에 정착을 할 수가 없고, 많은 것을 가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먹어야 되니까, 일을 하고, 또 그곳 사람을 도와줄 길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러면서 뭔가 얻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 인생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완전히 정착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야 될 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브리서 11장 14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우리는 나그네다, 앞으로 메시아의 시대가 올 텐데, 우리는 대환영입니다.” 그렇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인생의 방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생의 방향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니고, 저 본향이 있습니다. 그 쪽으로 가야 됩니다. 저 본향이 있는 분은 어떻게 합니까? 장사를 해도 막 끼워줍니다. 인심을 막 씁니다. 떡볶이를 하면서도 좀 더 끼워주기도 하고, 오뎅을 또 몇 개 주기도 하고, 그리고 붕어빵을 만들면서도 하나 끼워주기도 하고, 왜냐하면, 어차피 기계 다 팔고 천국으로 가야 될 거니까요. 이 사람들은 인생의 방향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참 멋있게 삽니다. 신나게 삽니다. 신나게 살아요. 그리고 떠날 때도 신나게 떠나는 것입니다. 막 집착을 하고, 돈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영원히 돈을 헤아리고, 안 죽으려고 몸부림치고, 죽기 전에 모든 것 다 먹어봐야 되고, 다 구경해 봐야 되고, 그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사람들입니다. 15절과 16절 보면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5절: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브리서 11장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믿음의 사람들이 옛날 고향으로 돌아갈려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란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삭이나 야곱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수 믿는 것 때려치우고 세상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참 그게 놀라운 것이죠. 청년들이요. 청년들. 세상에 좋은 게 얼마나 그렇게 많습니까? 좋은 학교도 많고, 좋은 옷들도 많고, 명예도 있고, 좋은 회사도 많고, 그래도 교회 나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놀라워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십자가가 있어서 세상도 우리에게 오지 못하고, 우리도 세상으로 가지 못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막 헌신하고 나니까, 진짜 너무 가난해졌어요. 가난해지고 참 미래 소망이 없었습니다. 세상으로 돌아갈려고 하는데 돌아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의 무의미함을 벌써 알았습니다. 그 무의미한 웃음들, 사람들이 막 웃는데, 진짜 기뻐서 웃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냥 웃는 거예요. 웃어야 된다 하니까, 막 웃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농담들, 무의미한 시기 질투들, 무의미한 돈들, 무의미한 공부들, 무의미한 말장난들, 다 너무나 무의미한 것들입니다.

차라리 가난해도 하나님 믿는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우리는 다 떠날 겁니다. 훌훌 떠날 겁니다. 우리는 미래를 걱정합니다. 돈이 없어서 굶어죽을 것을 걱정하고, 돈이 없어서 집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직장이 없어서 너무 비참해질 것을 걱정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으라고. 이 세상 이것도 다 너희들의 것이다, 다 너희들의 것이고, 하나님은 또 저 하늘에 우리를 위해서 큰 성을 짓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으면서 이 세상 사람들처럼 막 싸우면서, 아웅다웅하면서 돈 더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병든 사람 있으면 고쳐주고, 낙심한 사람 있으면 축복해주고, 그리고 자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틀림없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으셨으면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그냥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이 가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난해서 지옥 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너무 많아서 지옥 갑니다. 너무 많아서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입니다.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 앞에서 최고로 멋진 나그네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멋진 천사와 함께 사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함정에 빠지지 아니하고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면서

나그네로서 출발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간적인 머리로는 저 천국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셨으면,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세상과 내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을 믿고 갈 바를 모르지만, 무조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료출처: 대구동부교회 김서택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 2019년 2월 1일, 금요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요기도회>

대구동부교회 홈페이지

http://dongbu.org/sub02/sub02_1.php

성경 66권을 모두 설교하시고 책으로 엮어내신

김서택 목사님의 강해설교집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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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53-780-8000 (교회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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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제사

시편의 세계 안에서 뛰놀자

시편강해 2집: 시편 51편-100편

Miracle Generation (기적의 세대)

대구동부교회 홈페이지

http://dongbu.org/sub02/sub02_4.php?keyword=&field=all&mode=view&code=special_event&id=462&no=458&page=

Miracle Generation (기적의 세대)

하늘의 불 내린 엘리야의 기도

사자도 굴복한 다니엘의 믿음

순종의 횃불로 승리한 기드온

마른 뼈를 다시 살릴 기적의 세대

풀무불 이겨 낸 다니엘의 세 친구

여리고 점령한 여호수아 세대

유혹을 이겨 낸 저 순결한 요셉

순종으로 세상 바꾼 기적의 세대

원수들의 공격에도 움츠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적의 문 열어 놓을 세대

I believe I believe

일으키소서 Miracle Generation

I believe I believe

We are the Miracle Generation

물살을 가르는 힘찬 연어처럼

세상의 유혹을 다 거스릴 세대

하나님 나라와 주신 사명 위해

불가능을 가능케 할 기적의 세대

잠시 잠깐 세상 낙에 안주하지 않고

두렴 없이 하늘 상급 향하는 세대

I believe I believe

일으키소서 Miracl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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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Miracl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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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소서 Miracl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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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소서 Miracl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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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 | 김서택 – 믿음의 사람들 ( 히브리서 11장 8-16 ) 166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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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1)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ㄱ)네 2)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히1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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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모여” 새벽예배 설교

어제 새벽에 이어 오늘도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다.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믿음 장”이라는 애칭으로 더 익숙하다. 이 애칭은 너무나도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 어느 본문 보다 “믿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과연 믿음장 답다.

(히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굳게 믿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선진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벨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런 사람(불특정 다수)’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의 발자취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읽어 보기만 해도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도전이 된다.

그런데 동시에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고, 고난과 역경을 동반한 인생을 살았다. 사실 세상 사람들도 삶 속에서 여러가지 고생을 맞닥뜨리며 살아간다. 하물며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왜 고난이 없겠는가? 왜 시험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고난을 당연하게 여기고 의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권면했다.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시험과 고난을 이겨냈을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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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아벨이다. 아벨은 형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 보다 더 나았던 오직 한가지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에녹은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 에녹이 이토록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다(창 5:21-24)

노아 역시 하나님의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고향 땅을 떠났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한 평생 동안 불임이었지만,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낳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다. 또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믿음으로 붙잡고 자손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다.

모세의 부모는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모세를 숨겼고, 모세 역시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와 맞서 싸웠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납게 출렁이는 홍해를 믿음으로 건넜고, 여호수아는 아무런 무기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본문에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여자, 라합도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대접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예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도록 하겠다(히11:32).

방금 말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모두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믿음 때문에 시련을 당했고, 동시에 믿음으로 그 시련들을 이겨냈다. 일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잠시 잠깐 누리게 될 부와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았다.

(히11:25-26)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어떻게 낙(즐거움)보다 고난을 더 좋아할 수 있는가?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수모를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선택, 이런 태도를 보이게 했는가? 그 비결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천국과 보이지 않는 구원을 마치 보는 것 처럼 믿으며 사는 것이었다(히11:27). 그래서 성도들에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1절).

계속 이어서 보도록 하자.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다. 죄악된 세상 속에서 의로운 삶을 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렸다. 또 물밀듯이 덤벼드는 온갖 시험과 유혹을 막아내기도 했다(33절). 뿐만 아니라 악한 세력을 멸하고, 그들의 공격을 피하고, 더욱 강성해지고, 마침내는 원수들을 물리치기도 했다(34절).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심한 고문을 당하고 손가락질 당했다.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당했다. 또 돌에 맞아 죽고, 톱으로 잔인하게 죽임 당하고, 날카로운 칼날 앞에 피 흘려 죽은 사람도 있다. 또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거적을 뒤집어 쓴 채 거처도 없이 사막과 산과 동굴, 땅굴 등 여기저기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그래서 더욱 환난과 확대를 받게 되었다(35-38절).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온갖 좋은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기도 했지만, 반면에 그 믿음으로 온갖 시련과 유혹과 환난을 견뎌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토록 성도를 모질게 핍박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 세우던 이 세상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이런 사람(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11:38) 하고 감탄을 담아 선포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는가? 믿음으로 온갖 좋은 혜택을 받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하는 중인가?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순전히 신앙 때문에 채찍에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돌에 맞거나 칼에 찔리는 등 물리적인 폭행을 당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극단적이고 잔인한 시험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성도들에게는 저마다의 시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도에게 시험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시련과 괴로움이고.

둘째는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유혹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시험을 당하고 있다. 그 시험은 사탄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때로는 자신의 옛 본성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지금 여러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시험은 무엇인가? 여러분을 자꾸만 넘어뜨리고, 제자리에 머물게 하고, 낙심하고 주저앉게 만드는 시험은 무엇인가? 믿음의 선조들 역시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더 큰 시험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켰다.

어쩌면 여러분들 중에는 오늘 본문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 하면서 자신의 믿음이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을 마치 우리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인양 여기는 것 만큼 안타까운 생각도 또 없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조들은 ‘신’이 아니다. 심지어 ‘천사’나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약 5:17). 그러므로 그들이 시험을 이기고 승리 했다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모든 시험과 영적 전쟁에 앞장 서서 승리하신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히 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시험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시험에 넘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치열한 투쟁 한번 해보지 않고 무너져서는 안 된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고 거북한 일이다. 오히려 우리는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내야 한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 믿음을 더욱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나의 자존심과 체면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 이전에 즐기던 취미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크든 작든 경제적인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믿음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 것이 더 유익하고 좋은 일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목숨마저 버리고 믿음을 지킨 것이다.

말씀을 맺겠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유익과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것 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진실로 믿는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보상을 받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지 말라. 실망과 상처, 서운함만 남을 뿐이다. 모든 보상은 오직 하나님께만 기대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 주시는 분’ 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상을 내려 주실 것이다. 또 이 세상에서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기대하지 말라. 이것 역시 씁쓸한 뒷맛만 남을 것이다. 믿음의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기쁨과 평안과 위로는 바로 하나님 그분이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그분의 발 아래에 내려 놓는 것이다. 세상 끝 날에 영원한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 많은 이 세상, 험난한 이 세상, 어렵고 고달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 잃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오직 주 예수만 바라보라. 고난과 시험을 견뎌내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굳게 지켜 나가는 사람 되기 바란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이런 사람-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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