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행전 5 장 1 11 절 | 사도행전 5:1-11 |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려 하느냐? | 유기성목사 1156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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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11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 복음뉴스

본문말씀: 행5:1-11. 제 목: 성령을 속일 수 없습니다. … 성경에는 세 가지 영적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의 영혼입니다. 영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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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3/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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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절-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의 결과

하나님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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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llagans.blogspot.com

Date Published: 8/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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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5장1~11절 – 다음블로그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온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야 한다. 온유와 절제를 이루어야 한다. 충성과 겸손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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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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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수) “사도행전 5:1-11” / 작성: 조광묵

4장 마지막과 5장 13절은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진술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감싸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아나니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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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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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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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6/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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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사도행전 5장 1절 -11절 ; 아나니아- 삽비라 – 성령을 …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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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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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하는 거짓말(행5:1~11) – 유평교회

제목: 하나님께 하는 거짓말 본문: 사도행전 5장 1절 ~11절 설교자: 조정의. 1. 배경(5:1-2).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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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9/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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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CTM-QT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도행전5장 1-11절) …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사도행전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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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ctm.kr

Date Published: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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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성령은 속일 수 없다 (사도행전 5장 1-11절)

20180413 성령은 속일 수 없다 (사도행전 5장 1-11절) …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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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1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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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1-11 KLB –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 – Bible Gateway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의논하고 땅을 팔아 그 돈에서 얼 마는 감추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가져왔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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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1-11 |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려 하느냐? | 유기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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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 행전 5 장 1 11 절

  • Author: 유기성목사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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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0. 2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2Abjqs56ms

사도행전 5장 1-11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본문말씀: 행5:1-11.

제 목: 성령을 속일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5:3) But Peter said, Ananias, why hath Satan filled heart to the Holy Ghost, and to keep back part of the price of the land? (Act5:3)

성경에는 세 가지 영적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의 영혼입니다.

영적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 존재하며 보이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는 교회를 좀 다니신 분들은 많이 아시는 사건일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나니아의 뜻은 ‘하나님은 자비롭다’(God is merciful), 아람어로 삽비라의 이름 뜻은 ‘아름답다’(beautiful)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자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 본문에 충격적인 사건은, 은혜를 받고 집을 팔아 드리기로 해놓고 일부분을 숨겼다가 그저 벌 받고, 매 몇 대 맞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부가 죽어버린 사건입니다.

이 사람들이 헌금을 안 한 것도 아니고, 내려다가 인간인지라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었는지 조금 떼어 놓고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세 시간 간격으로 부부가 그대로 죽었습니다.

이 본문이야말로 많은 설교자들 또는 부흥사들에 의해 가장 악용된 본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거봐라. 헌금을 제대로 안 하면 죽는다. 그러니까 제대로 헌금하라.’ 고 위협하는 설교본문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에서 이 사건이 갖는 위치는, 단순히 헌금을 내고, 안 내고 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그냥 빨리 읽으면 헌금을 제대로 안 내서 죽었다는 사고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결코 헌금과 관련된 사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건이라고 어느 신학자는 이야기했습니다.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에 가장 처음 만드신 공동체가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죄가 들어와서 에덴동산이 파괴되는데, 그 원인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다시 신약으로 와서, 역사상 유래가 없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인 첫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합니다.

이 교회는 정말 놀랍고 황홀한(fantastic) 공동체였습니다.

위로부터는 강력한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방언을 하는데, 그것도 외국에서 온 이곳저곳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들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해서 부족한 사람이 없고,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구분 없이 서로 다 나누어 쓰는 놀라운 공동체였습니다.

4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족 사람’ 요셉이 있는데, 별명인 바나바로 더 알려진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성령충만함을 받고, 자기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와 헌금을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 전체에 큰 감동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 당연히 그 영광을 드러낸 사람도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나바가 성도들로부터 받는 칭송과 존경과 사랑에 대해 질투가 생겨났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1-2절)

헌금을 한 동기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족한 지체들을 돕기 위해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주된 동기는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막상 땅을 팔고 보니까, 원래부터 감추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아까운 생각이 든 겁니다.

‘바나바가 낸 것보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고 생각했던 것 갔습니다.

다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바나바처럼, 자기들도 가진 것 전부 다 낸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사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는데, 사탄은 결코 큰 죄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겁니다.

큰 거짓말이 아니라, 작은 거짓말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결코 엉터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엉망이고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유혹이 오면 누가 못 이기겠습니까?

그런데 아주 교묘합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아나니아의 사건은 물질문제가 아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 영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과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거짓된 인생으로 추락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거짓과 변명으로, 타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지만 사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사탄의 이름의 뜻이 바로 ‘거짓말 하는 자’ 입니다.

처음에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꼬이던 때부터 사탄은 거짓말하는 자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안 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쓸 데 없는 거짓말을 섞어서 농담도 하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의 뿌리가 마귀요.

거짓은 마귀에게 속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저도 그동안 설교를 솔직히 피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중에 놀라운 신앙의 본질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무엇을 드리고 안 드리고 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믿음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사도행전의 역사가 바로 이런 성령행전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주체가 되어서 모든 것을 움직여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거짓말 한 것인데 성경에는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속 였 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사람관계 인 것 같으나, 하나님 관계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고, 신앙을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육체로 마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헌신을 결단하고 소유를 팔아 헌신하기로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결단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1절)

아마 초대교회에 가장 거부로 나타날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큰 불행에 빠졌습니다.

성령이 주신 감동을 소멸하고 하나님께 거짓된 행동이 큰 충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신앙은 세 가지 감동이 옵니다.

설교를 듣다가,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다가, 삶 속에 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첫 번째 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두 번째 오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유혹의 마음입니다.

첫 번째 감동이 올 때 마음을 뒤집어 놓습니다.

세 번째 마음은, 첫 째와 두 번째 온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합니다. (감동=> 부정 => 타협)

첫 번째 마음을 붙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 사탄의 생각에서, 영육의 갈등을 하면서 이럴 때 인간적인 결정을 하기가 쉽습니다.

성도에게 첫 번째 오는 마음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첫 번째 오는 감동을 따를 때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돼, 이런 짓 하면 안 돼, ……….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면 절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긴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그러면, 아나니아 부부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이들은 헌신을 약속했고, 믿음을 약속했습니다.(2-3절)

1) 거짓이 문제였습니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2절)

아나니아의 잘못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짓입니다.

헌신의 약속에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드리느냐? 안 드리느냐? 적게 드렸느냐? 많이 드렸냐? 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하는 본질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네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느냐?

이것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약해져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감추면 안 됩니다.

감추는 것은 신앙적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 제 믿음이 약해졌어요.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제 신앙이 약해져서 일부만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럴 때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비결입니다.

“감추매” 라고 하는 게 문제가 되고, 또 하나는, “아내도 알더라.”거짓말을 하는데 공범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일에 공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담도 하와와 공범이 되어서 선악과를 따 먹고 쫓겨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거짓된 행위에 공범이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부부는 한쪽이 믿음이 약해져서 신앙 없는 행동을 할 때, 당신답지 않게 왜 어리석게 살려고 하느냐?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깨우쳐 주는 게 지혜로운 아내요. 지혜로운 남편입니다.

지혜로운 부부는 은쟁반의 금 사과 같다고 했습니다.(잠25:11)

이것이 믿음이요, 함께 사는 길입니다.

2) 그런데, 아나니아 부부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3절)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속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였느냐?

사탄이 아나니아 부부의 마음에 들어가 감출 수 있다는 거짓된 마음을 넣었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거짓된 마음을 사단이 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거짓의 출발은 사탄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요8:44)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 텐데 왜 감췄을까?

초대교회에 가장 큰 갑부로 귀하게 쓰임 받았을 텐데…..

그 속에 진리가 없기에 거짓된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거짓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를 단절시킵니다.

마귀의 속성은 거짓에서 나왔기 때문에, 거짓은 마귀에게 속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왜 아간이 망했습니까?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아이성 앞에서 전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그곳에서 전리품을 탈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장막 뒤에 전쟁에서 탈취한 것을 숨겼습니다.

아간의 범죄로 여호수아 군대는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작은 아이성 앞에서 전쟁에 패했습니다.(수7;24-26)

12지파를 확인했더니 유다지파에 속한 아간이었습니다.

적이 멀리 있는 것 아닙니다. 아간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간을 죽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왜! 사울이 망했나요? 거짓 때문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겼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짐승을 왕궁 뜰에다 감췄습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 사울을 이때부터 버리셨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는 일이요, 하나님과의 은혜와 축복이 막히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실수 할 수도 있습니다.

죄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감추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 때, 있는 대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십일조를 적당히 드리는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를 기도해 보세요.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신실한 약속 그 약속을 놓치지 마세요.

기도하면 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일 년을 결산해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해 주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아나니아 부부는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절)

하나님이 감동한 것을 소멸하고 거짓으로 포장할 때,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은 우연한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릇을 키우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시간이 많고, 소유가 많고, 여유로 와서 헌신하는 것 아닙니다.

깨닫고 보면 성령이 주신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주신 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부부는 인간적인 생각을 할 때, 사단이 마음을 점령했습니다.

사단이 점령 할 때 마음이 황폐해졌습니다.

사단의 속성은 파괴자입니다.

은혜를 파괴하고 축복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과 동행해야 하며 성령의 감동을 민감하게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기에 본 사건은 사람관계나 물질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할 일이 없는 (백수가 되어야 주의 일을 하는 것 아닙니다.

텔렌트 정영숙 권사님은 간증시간에 자투리 시간, 화장실 갈 때도 성경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지에 시간이 많아 가는게 아니고 시간을 쪼개어 봉사한답니다.

내가 여유가 있어 헌신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첫 번째 주신 마음이라 했습니다.

사단의 유혹이 많이 있었지만 단호하게 물리치고 사역을 하고 있답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민감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할 때 사단이 점령했습니다.

2.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합니다.

베드로의 탄식입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4절)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다는 마음은 어리석은 인간의 현 주소입니다.

어떻게든 사람의 눈만 적당히 숨기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내 소리를 듣고 계시고, 나를 보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언어와,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바로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한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하세요. 이것이 코람데오 신앙입니다.

인생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안 보는 것 같으나 다 보고 계시고,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의 손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것도 내 손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억울하고 분하여 더 이상 억울함을 이기지 못 할 때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대신 손을 대 주시고, 원수도 갚아 주십니다.

2) 시험에 빠진 자에게 동조하지 마세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9절)

베드로의 탄식입니다. 거짓을 함께 동조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할 일이 있는가 하면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1) 함께 할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은혜는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도도 함께, 믿음도 함께, 칭찬도 함께 해야 합니다.

사랑도 함께. 감사도 함께. 협력도 함께. 주의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2) 반면에,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죄는 함께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범이 됩니다.

불평하는 일도 함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염이 됩니다.

시험에 빠진 자와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이 시험에 전염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나니아 부부의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 관계의 문제도 아닙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함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거짓된 인생으로 추락합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거짓과 변명과, 타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베드로에게 한 말인데 성령을 속였고,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사람관계 같으나 하나님 관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정직한 기도, 정직한 예배, 헌신 감사, 구제(선교)을 하세요.

주님의 보혈은 기억도 없이 지워 주십니다.

흰옷을 입은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진 자들입니다.

셀 수 없는 흰무리가 누구냐 물을 때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5장 1절-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의 결과

초대교회가 성령의 은혜로 부흥해 갈 때 성도들은 서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타산지석이 되는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교회에 바쳤습니다. 하지만 반면교사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를 팔았지만 그 중에 일부를 감추어 성령과 교회를 속이려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의 결과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여러분!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라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둘 다 다른 사람의 경우를 보고 교훈을 얻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쓰임새는 정반대입니다. 타산지석은 중국의 ‘시경’이라는 책의 소아편에 나오는 말로, ‘다른 산의 돌이라도 귀한 옥돌을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군자가 되어 학문을 쌓는데 있어서 소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하여 교훈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교사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경우를 통하여 내가 배운다”는 뜻으로 타산지석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우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타산지석은 ‘나는 저렇게 되어야지’이고, 반면교사는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입니다. 같은 뜻이지만 쓰임새는 정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타산지석”일까요 아니면 “반면교사”일까요?

본문의 앞부분인 4장 마지막 부분에는 바나바가 한 일이 나옵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인하여 모두가 서로 나누고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의 밭을 팔아서 교회에 헌금을 하였습니다.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본문인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바나바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소유를 팔아서 그 값을 교회에 헌금합니다. 이 모습은 타산지석일까요, 반면교사일까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기에 타산지석입니다.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바나바처럼 교회에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사람이 그 판 돈의 일부를 감추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한 돈의 일부를 감추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죄의 결과

이들의 죄는 무엇이며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첫 번째 죄 : 명예를 추구하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첫 번째 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명예를 추구하였다는데 있습니다.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바나바와 같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믿을 보신 하나님은 이들과 교회 위에 축복하셨고, 교회는 더욱 부흥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동일하게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얼마를 감추었다”는 점입니다. 소유를 팔되, 하나님께 바칠 만큼만 팔면 됩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소유를 팔고 그 중에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이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칭찬을 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다른 이들에게 칭찬 받고 싶어하고 그들이 주는 명예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외식하였습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나 다른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입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께 받을 칭찬이 남지 않게 됩니다.

혹시 나도 믿음 생활을 하면서 명예와 칭찬을 앞세우지는 않습니까? 다른 이들에게 칭찬 받기 위하여 예배 생활하며 기도 생활하며 헌금 생활하지는 않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두 번째 죄 : 성령을 속였다

믿음보다 명예를 추구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또한 성령을 속였습니다.

사도행전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남편인 아나니아는 소유를 판 것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였지만, 사실은 모두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삽비라가 남편인 아나니아의 계획을 알고 그를 말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나니아는 그 기회를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내인 삽비라 역시 남편과 똑같은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삽비라는 베드로가 “이것뿐이냐”라고 질문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을 속이듯이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욕심 때문에 두 사람은 베드로를 속이고 교회를 속이며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의도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행동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동에 불과합니다.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이들 부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진실한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3. 죄의 결과 :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치려 하였지만, 명예를 추구하고 성령을 속임으로써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들었던 교회와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바나바의 모습은 타산지석이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습은 반면교사였습니다. 모두가 이 부부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명예보다는 믿음을 선택해야만 하며 성령을 속여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온 교회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까지 큰 교훈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지금도 활동하시며 우리를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우리의 모든 삶을 지켜 보고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회의 성장

초대 교회 안에는 바나바와 같은 믿음의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나님을 속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교회는 부흥해 나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도 똑같이 범죄하며 반면교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의 가정에 역사하시며 우리 교회에 부흥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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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2009(주일)

5장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묵상 1~11절: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얘기이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마다 두려움과 아쉬움이 많고, 그리고 순결함을 얼마나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앞의 4장에서부터 이어진다. 4장 후반부에 모든 사람들이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가진 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앞에 가지고 오고, 사도들은 그 재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상호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나누기를 힘쓰매, 궁핍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을 예로 들고 있다. 바나바 이다. 이는 아마도 후에 바울의 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고, 함께 하였던 인물이 것 같다. 그 아름다운 하나됨의 공동체 안에서 안타가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아마 재산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한 것처럼 자신들도 재산을 팔아서 함께 나누어 쓰기를 원했던 것 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기이다. 그런데 사탄은 그 순간에 이들을 유혹했고, 이들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재산을 팔고 보니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순간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했다. 그리고 판 대금의 일부를 사도들에게 주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 순결함을 보신다. 하나님은 재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셨다. 그녀의 전 재산을 헌금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마음의 온전한 헌신을 중요하게 보신다. 순결한 헌신을 중요하게 보신다. 그리고 크게 보시고, 기뻐 받으신다. 하나님을 재물을 탐내는 신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 아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모든 재산을 팔지 않고 일부의 재산을 팔아서 그 판 금액을 모두 드렸다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았을 것으로 나는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시작이 좋은 동기였다 할지라도 모든 과정에서 온전함이 결여되면, 순전함이 결여되면 주님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얼마나 순결한가? 아마 나도 이 부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아있음은 주님의 은혜이다. 온전히 회개하고 이제 순결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의 재산은 하나도 없다. 나의 물질은 하나도 없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날의 온전하지 못함을 어떻게 다 회개할까? 이제 주님의 품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온전히 순결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온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야 한다. 온유와 절제를 이루어야 한다. 충성과 겸손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도우실 것이다. 오늘도 승리하며 나아가자.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자.

기도 주님! 사랑합니다.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온전하기를 기다려주신 주님께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제 온전함을 이루게 하옵소서. 순결함을 이루게 하옵소서. 순종을 온전히 드리게 하옵소서. 온전한 믿음을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 배를 드립니다. 나와 우리가족을 오늘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 온전히 받으시고, 주님의 은혜를 베푸소서. 주님 품 안에서 주님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짐을 오늘도 주님께 드립니다. 물질 문제, 신분 문제 모두 드립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0/09/16(수) “사도행전 5:1-11” / 작성: 조광묵

[본문] 사도행전 5:1-11

[찬송가] 620 ‘여기에 모인 우리’

주후 30년에 중동의 작은 도시 예루살렘에는 비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일들에 대해 베드로는 2장에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 설명했습니다(2:19). 요엘을 비롯한 이사야, 에스겔과 같은 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날’에 대해 예언했고, 베드로는 바로 지금이 그 날이다고 설교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은 성령이 오시는 구원의 날과 마지막 심판의 날을 함께 가르켰습니다(암8:9, 사1:12, 겔39:29, 슥12:32). 사도행전에서는 지금이 그 날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계속해서 표적이 나 타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할 때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게(기네스코) 해달라고’ 기도하고(4:30), 또한 사도들의 손에 의해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43, 5:12).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둠 (1)]

본문을 들어가기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은 표적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오늘 본문에서 죽는데, 이는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와 같은 일이 일반적으로 일어난다면, 오늘날의 교회에는 살아남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일어났던 많은 표적과 기사가 그 후로는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표적과 기사의 문맥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적은 영어로는 싸인(sign)이고 헬라어 원어로는 ‘세메이온’입니다. 그 뜻은 ‘어떤 것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이렇듯이 사도행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표적은 어떤 영적인 일이 있어났다는 표시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유무상통하며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 또한 표적의 맥락에서 보겠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도래한 것은 교회였다”고 말합니다(한스 큉). 이 말처럼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정작 남은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초기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 입니다.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또한, 한 개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적 사건입니다. 또한 문단의 구조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4장 마지막과 5장 13절은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진술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감싸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오늘 본문은 바나바의 일에 뒤따라 일어난 일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소유한 밭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본문은 바나바의 신분을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족으로 이름이 요셉이라는 것까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뒤따라 등장하는 아나니아는, 신상에 대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단지 아나니아라고 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방법의 의도에서 볼 때, 아나니아는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 믿는 많은 무리 중 한 사람으로 일반 보통사람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볼 때,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이 됩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은 그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가진 것을 팔았습니다. 부부가 더불어 팔았다는 것은, 둘이 같은 뜻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나니아가 얼마를 감춘 것을 삽비라도 알았습니다. 소유는 원어 ‘크테마’로 주로 토지 혹은 밭을 의미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바나바와 같이 밭을 판 것입니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두 외적인 행동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짓말함(2-4)]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러나 이 부부는 바나바와 달리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처음부터 밭을 팔지 않았어도 됩니다. 재산을 모두 바쳐야 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밭을 팔고 나서도 그 값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는 일부만 바쳐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감추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추었다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부를 냈지만, 일부는 가져간 것입니다. 모두 다 드린다고 하고, 일부만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가 알고, 아나니아를 질책했습니다.

[(3~4A)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아나니아가 전부 인체 하지만, 일부를 감춘 것을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 지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그 사실을 알고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전부를 내든 일부를 내든 내지 않든, 베드로가 간섭할 일은 아니었지만, 베드로는 그들이 속이고 있는 것을 잡아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4절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재산을 팔고 안팔고는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오. 그리고 판 후에 그 돈의 얼마를 남에게 주는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당신 자유의사에 달린 것이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시오? 당신은 우리를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베드로가 문제 삼는 것은 액수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고 바로 ’속이는 행위‘입니다. 아나니아의 속임은 욕심에 의한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그 배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베드로는 지적합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질책했습니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다고 할 때, 가득하다는 원어 ‘플레로오’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온 집에 가득하다’고 할 때 그 가득함과 같은 말이고, 13:52에서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할 때 ‘충만’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아니아는 ‘성령 충만’이 아니라 ‘사탄이 충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사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과거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항변한 사건에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는 질책을 베드로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탄이 생각하는 사람의 일’은, 십자가가 아닌 인간적인 영광을 취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나니아 또한 인간적인 영광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당시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예루살렘의 초기 교회에서 바나바와 같은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4B)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동기를 모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아시는데,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삼상 16:7).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의 중심도 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함(5-11)]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베드로가 말한 후,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죽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즉시로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아나니아가 왜 죽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나니아가 한 일과 그 일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다 보고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아무도 손댄 사람이 없는데 엎드려져 혼이 떠났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재 교회를 다스리고 감독하고 계십니다. 베드로와 사도는 그 대리자로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후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들어왔지만, 그녀도 아나니아와 같이 거짓말을 했고 엎드려져 혼이 떠나, 장사되었습니다.

[(10-11)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반복된 삽비라의 죽음은, 아나니아의 행위가 불법임을 확증합니다. 논란의 여지를 없에며, 믿음으로 가장한 불순한 동기는 불법임을 확정케 합니다. 이 일은 믿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외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속에 있는 마음이 다 탈로나고 그 문제로 인해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이 사건 이후로 교회는 세상과 구분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체하며 교회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초기 교회가 더욱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 되도록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믿음 외에는 들어갈 수 업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다(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교회의 일원이 되고, 어떻게 거듭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3,25B)고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행하신 일과 그 일이 우리에게 미친 결과가,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는 세상과 구분됩니다. 교회는 기업이나 비영리단체 혹은 복지기관과 혼동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선교단체도 교회와 혼동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그 자체이지,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와 같습니다.

교회가 지키고 회복해야 할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랑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며 정의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가장된 다른 동기와 목적들을 교회는 끊임없이 분별하며, 교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이며,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마땅한 일입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세상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이 시기를 통과하며,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예들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자신의 영광을 목적 삼는 본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께서 피흘려 세우신 교회 조차도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도구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로 새롭게 하셔서, 교회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교회가 되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일반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순절 이후 나타난 표적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데, 이 표적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2. 아나니아는 재산을 팔아서 바칠 의무가 없음에도, 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는지 나는 그렇게 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엎드려져 혼이 떠나갔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왜 어떻게 하나님을 속였는지, 나는 그런적이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4.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후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였으며 감히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상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는 사람의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고 교회에 적용해 봅시다.

(작성 : 조광묵)

사도행전 5

아나니아와 삽비라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들이 표적을 일으키다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1)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묵상> 사도행전 5장 1절 -11절 ; 아나니아- 삽비라 – 성령을 속이고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

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나님께 하는 거짓말(행5:1~11)

제목: 하나님께 하는 거짓말

본문: 사도행전 5장 1절 ~11절

설교자: 조정의

1. 배경(5:1-2)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아마 이 부부의 이름이 익숙하신 분들은 이름을 듣자마자 부정적인 생각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이 부부는 남편 그리고 아내 순서대로 한 날 한 장소에서 교회에서 헌금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인물입니다. 어떻게 이런 괴상하고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히브리어로 아나니아의 이름 뜻은 “하나님은 자비롭다”(God is merciful), 아람어로 삽비라의 이름 뜻은 “아름답다”(beautiful)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자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1절을 보시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재산이 무엇인지 3절에 나오는데 바로 “땅”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땅을 판 돈의 일부를 떼어 자기 것으로 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와 바쳤습니다. 아내 삽비라 역시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나중에 그녀의 죽음에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2절에 누가가 사용한 표현 중 한 가지 거슬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감추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종종 재산을 팔고 그 일부를 헌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돈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감추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산을 팔아 그 중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합니다. 판 것의 일부를 드리는 것엔 문제가 없습니다. 헌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즐겨 내는 것”(고후 9:7)이지 “무조건 판 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누가는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특별히 이 표현은 70인역 성경에서 여호수아 7장에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유다 지파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다(감췄다)”라고 기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수 7:1).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의 첫 성 여리고를 쳤을 때, 하나님은 그 성에 속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그 명령을 어기고 재물의 일부를 취하여 자기 장막 밑에 감췄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작은 성 아이를 칠 때 패배하게 하셨고 36명의 백성이 도망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리고 전쟁의 대승으로 백성의 기세가 등등하고 군사의 사기가 절정에 올랐을 그 때 한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백성 전체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 아들, 딸들, 가축들,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범죄자가 제거됐을 때, 그제서야 여호와의 맹렬한 진노가 멈췄습니다(수 7:26).

누가는 아간의 사건이 지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치기 전에 길갈에 서 하나님의 백성, 언약의 백성의 징표인 할례를 받은 것처럼,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이 성령의 강림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그날 더해진 성도만 삼천명이었습니다(행 2:41).

그 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정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선포했는데, 남자만 오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행 4:4).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는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성도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 어떤 성도는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집과 회당에서 쫓겨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뒷짐지고 가만히 이를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4장 32절을 보시면 그들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네 물건 내 물건 하는 것 없이 그리 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을 때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고 밭과 집을 팔아 그 판 것을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행 4:32-37). 사도들은 그의 이름을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이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이런 교회의 자발적인 헌신과 섬김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소유를 팔아 전부 사도들 발 앞에 바친 이들처럼 자신들도 그런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바나바처럼 “위로의 아들”이란 말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들 이름의 뜻처럼 “아나니아, 당신은 참 자비롭습니다”, “삽비라,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런 평가를 받되 땅을 판 값을 다 드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땅 판 값의 일부만 드리되 사람들로부터는 모든 돈을 다 바친 자비롭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만이 이 일을 알고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 이 일을 드러내셨습니다.

2. 아나니아의 죽음(5:3-5)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묻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3-4절)

베드로의 말을 잘 살펴보면 절대로 땅을 판 것과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린 점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땅을 팔기 전에도, 팔고 나서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아나니아가 자기 뜻대로 땅을 팔 수도 있고, 판 값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아나니아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거짓말이죠? 자기가 땅을 판 값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마음에 사탄이 가득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속이는 자입니다(요 844). 아나니아의 마음에 속이려는 욕구가 가득하여 성도들을 속인 것입니다.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전부를 바친것처럼 속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너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은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심판이 일어납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즉시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자리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을까요? 아나니아는 잠시 기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죽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여러분, 주일 말씀이 끝나고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저랑 악수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사람이 저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참 기괴하고 무서운일 아닙니까?

왜 죽었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지?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행동, 거짓된 행동을 해서 죽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무서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을 감히 속이려 들지 말아야겠다” 그런 경고를 받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은 그런 경각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정직해야겠다는 교훈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이런 일 이후에 그 누가 사도들 발 앞에 나와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 이 일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그녀는 바로 아나니아의 아내, 함께 돈을 감췄던 여인, 삽비라였습니다.

3. 삽비라의 죽음(5:7-11)

세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지 겨우 세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아나니아는 아직 땅에 묻히기 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삽비라는 아무것도 모른채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목숨이 달린 예/아니오 질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편과 합심하여 일부를 감추었다 할지라도 이 직접적인 질문에 양심이 찔려, “사실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다를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이 그녀의 마음도 거짓으로 사로잡았습니다. “네 이것뿐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9절)

너도 똑같구나? 너도 다 알고 의도적으로 속인 것이구나? 남편이 그리할지라도 아내가 말리고, 아내가 그리할지라도 남편이 말려야 할 것을, 서로 하나가 되어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하나님도 모르시겠지…하고 주의 영을 시험한 것. 그 대가로 베드로는 너도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9절)

남편을 묻은 사람들이 문 앞에 왔는데 곧 너도 죽어서 너의 시신을 그들이 메어 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기하죠? 문 앞에 젊은 이들이 왔다는 것도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말처럼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 남편처럼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녀의 시신을 보고 메어다가 남편의 곁에 장사지냈습니다.

부부가 세 시간 간격으로 죽어 나간 이 교회, 무섭지 않습니까? 금실 좋은 부부가 서로 한 날 한 시에 죽자고 말하는데, 이런 죽음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온 교회 그리고 교회 밖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합니다(11절).

하나님 앞에서 정직, 하나님을 속이지 않는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일을 들은 사람은 모두 확실하게 알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쩌면 이 사건을 보면서 베드로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자기도 세 번 주를 부인하는 크나큰 죄를 저질렀지만 주의 자비로 회복을 했던 사람인데, 두 부부를, 물론 잘못은 했지만, 회개할 기회 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한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아간이 금 한덩이와 은, 외투 한 벌을 감춘 대가로 온 가족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 지나친 형벌이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이해하지 못할 사건을 볼 때 사도 바울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자세입니다(롬 15:4). 바울은 과거에 기록된 사건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이것이 오늘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시험하다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하나님은 교회의 정직을 원하십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교회를 원하십니다. 수천명의 성도가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기에 힘쓸 때 그 교회 한 부부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범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사람을 제거하여 모든 교회를 두렵게 함으로 교회의 거룩, 교회의 정직을 지키십니다.

교회의 정직이 지켜졌을 때, 사도행전 5장 12-16절의 기록을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고, 믿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으며, 백성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무리가 많아지고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질병을 가졌던 이들이 사도들 앞에 나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분이 없기를 원합니다. 아간과 같은 사람이 없기를 원합니다. 성도들에겐 정직하고 좋아보이는 성도이지만, 실상은 거짓으로 하나님과 성도를 속이고 있는 분이 없기를 원합니다. 부정직은 정직한 크리스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서운 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절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거짓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거짓된 이들을 드러내어 꾸짖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는 거짓의 아비 사탄의 목소리에 귀를 막으십시오. 사람에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좋게 하는 정직한 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끔 저는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이런 생각으로 죄를 물리칩니다. 유평교회 귀한 성도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가 이런 죄를 선택하고 즐긴다면 하나님은 분명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 내 죄의 결과를 물게 하실 거야. 그러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고 나서 그 죄의 결과로 백성이 고통받을 때 심히 괴로워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런 건강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부정직함으로 교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속이는 죄,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 정직하지 못한 죄를 강력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영광을 깨끗한 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포하기 원하십니다. 세상이 그 부도덕함을 염려하는 교회들이 무수히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 유평교회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는 정직한 교회가 되는 데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20180413 성령은 속일 수 없다 (사도행전 5장 1-11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려고 하면 반드시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물건을 가방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놓아도, 엑스레이를 통과하게 되면 훤히 다 들여 보이기 마련입니다. 엑스레이 앞에 감출 수 있는 물건이 없듯이, 하나님의 눈 앞에서 감출 수 있는 마음은 없습니다. 아무리 겨울 옷과 같이 두꺼운 옷을 입고 우리 마음을 꽁꽁 감싸보아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벌거벗은 것처럼 들여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가 교묘한 말과 그럴듯한 제스처로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동기와 생각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기를 “(시 139:2)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시고 (시 139:3)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지어 우리의 머리털이 몇 개가 있는지 그 숫자까지 다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모르는 내 자신의 모습까지도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감추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한 한 부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아나니아, 아내의 이름은 삽비라 입니다.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초대교회 안에서는 몇몇의 성도들이 자신의 집이나 밭과 같은 소유물을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성도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자신의 소유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귀해서, 거저 주신 주님의 사랑을 따라 자신의 것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선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섬김과 사랑은 뭇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는 이런 귀한 희생적 사랑을 선택한 자들을 우러러 보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도 중에 아나니아가 있었습니다. 그 역시 앞에 자신의 소유를 팔았던 이처럼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아나니아도 앞선 사람들의 선행에 감동하여 자신의 소유를 팔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러한 희생에 대해서 강요하거나 강제성을 둘 수 없고, 다만 자발적인 섬김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막상 집도 팔고, 부동산도 팔고 보니, 그 값이 상당합니다. 이 전부를 교회에 헌금으로 내자니 왠지 모르게 아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그 값 중에서 얼마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돈을 가지고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자, 여기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문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전 재산을 팔아 그 중 반만 드려도 그것은 대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 중 십 분의 일만 드려도 여전히 대단한 것입니다. 헌금이나 헌물은 강요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양을 얼마나 내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지만, 헌금을 내라고 억지로 끌거나 강요하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게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오늘 본문의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헌금을 드린 양이 문제가 아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 앞에 드리기는 하되 얼마를 감추어 두고도 이것이 마치 소유물의 전체인냥 거짓으로 교회를 속이고 헌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내는 헌금이 전체인 것처럼 말했을까요? 그래야지 더 멋있어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야지 교회 내의 사람들에게 더 인정 받지 않겠어요? 사도행전 4장에 등장한 바나바 같은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어 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도 그런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 앞에 나온 아나니아는 자신 있게 지금 이 소유가 자신의 전부인 냥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은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하나님 모르시겠지?” 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까? 아나니아가 소유를 판 값 중 얼마를 숨기고도 이것이 전재산인 냥 속이고 헌금하자 베드로는 성령으로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아나니아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가 한 말을 자세히 주목하십시오. 땅을 가지고 헌금 하든지 그대로 소유 하든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나니아의 자유 입니다. 그가 자기 임의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4절 마지막에 보니 베드로가 무엇을 책망합니까?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꼐로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이려 한 행위에 대해서 책망한 것입니다. 시편 5편 6절을 보면 “(시 5:6) 주께서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멸망시키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 되시는 하나님은 거짓을 행하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이려 하자, 하나님은 그를 치시고 즉시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진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 세 시간 즈음 지나자, 아내 삽비라가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사도들 앞에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말해 보아라. 너와 아나니아가 땅을 팔아 받은 돈이 이것뿐인가?” 삽비라가 대답했습니다. “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째서 서로 짜고 주의 영을 시험하려고 하느냐? 보아라. 네 남편을 묻은 사람들이 문 앞에 있으니 이번에는 너를 메고 나갈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삽비라도 그 발 앞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엄청난 헌신을 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남을 돕는 것이 어찌 쉬운 선택이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들의 죽음이 지나친 심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행위가 선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동기가 선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의 잘못된 행위를 드러내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위한 큰 희생을 치루고 있다하더라도 교회를 섬기는 동기가 잘 못 되거나 불순 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드러내시고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까? 교회를 섬기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혹시 정직하지 못한 부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 가운데 정직한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도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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