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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 : 16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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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16-18 KRV – Bible.com
데살로니가전서 5:16-18 KRV.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KRV: 개역한글.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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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 기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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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5:16-18 / 범사에 감사하라 : 하나님의 뜻 /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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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5장16절-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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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행복의 근원이다(살전5:16-18) – 당당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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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 유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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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설교)’놀라운 세 가지 약속’
(데살로니가 전서 5 : 16-18절_유기성목사님) 다 알고 있는 이번 본문 말씀이 복음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정말 부담스러운 구절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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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말씀 설교 – 진이늘이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 16- 18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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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헤이워드 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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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kb.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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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16-18 [ Thessalonians 5:16-18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Thessalonians 5:16-18 ]. December 8, 2019 by 소망지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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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G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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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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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두번 기뻐하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한 두번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표정은 기쁨으로 밝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얼굴이 어둡고 늘 우울하게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음이 유쾌하고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 앞에 나가려면 기쁨을 가지고 나가야지 슬픔과 원망과 미움을 가지고 나가면 자신과 공동체의 분위기를 망쳐 놓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바로 기뻐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마음의 풍랑을 다스려 긍정적이게 하고 꿈과 믿음이 활동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기록합니다. 즉 시험을 당할 때도 울고 탄식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기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100%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겪은 환난과 시험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소망과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소망의 전초로서 슬픔과 고통이 먼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다가와서 문을 두드릴 때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소망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얼마 안 있으면 그 환경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것이 삶의 원천이 됩니다. 인생이 지치고 피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이 바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야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어 심신이 다 가라앉을 때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면 힘이 도로 생겨나고 용기가 생겨나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또한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우리 소원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찬양드리는 것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는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보고 어떠한 태도를 취하시는지 보여주시는 구절입니다.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바 아버지’라고 찬미하고 기뻐하고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너무 좋으셔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기록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기쁨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고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 항상 기쁨을 공급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쁨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기쁨을 공급받지 못하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가지고 나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이기지 못하고 눌려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교회는 기쁨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그 마음속에 와 계신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구적으로 기쁨을 주시는 것을 빼앗을 자가 없고, 성령의 기쁨 가운데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실 것이요, 그 후에는 기쁨이 또 충만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은 기쁨의 신앙이요,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인 것입니다.
‘웃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만 카슨스는 원래 미국의 유명한 잡지사의 편집장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갖다 오다가 50세도 안되는 나이에 희귀한 병에 걸려 잡지사를 관두고 웃음의 연구를 통해 그 질병에서 치료받고 미국 UCLA대학교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학을 연구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담은 「질병의 해부」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기록하기를 “웃음은 방탄조끼다.
총을 쏴도 뚫리지 않는 방탄 조끼다. 어떠한 세균이나 병균, 바이러스도 웃는 사람에게는 들어올 수 없다”고 기록합니다. 웃음은 마치 방탄조끼를 입은 것 같아서 세균이나 병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은 약도 되고 빛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는 사람은 밝고 맑고 환하고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기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으로 “기쁘다! 나는 기쁘다!”라고 말하고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은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면 친밀해지지만 일이 바빠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으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즐겁게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로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 먼저 섬기고 모시고 기도해야 되기 때문에 주기도문은 굉장히 중요한 기도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가 간청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를 원하고 모든 민족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찬양을 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원하는 것이 있었으나 자기 소원을 내려 놓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을 따라야 됩니다. 모든 일에 우리의 소원이 있지만 우리의 소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는 것을 항상 우리 기도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는 상달되고 이뤄 주시는 것이니 아버지의 뜻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 탐욕을 채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이요 탐욕과 욕심입니다. 교만은 자기 분수를 뛰어넘어 자기를 높이는 것이고 탐욕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고 섬겨야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이루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욕심으로 하는 것은 잘 되는 것 같으나 결국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같이 하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어느 정도 자기 힘으로 올라가는 것을 자랑해도 나중에 보면 터가 없기 때문에 결국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기도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기도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역대하 20장에는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 군대가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유다의 모든 백성이 합심으로 기도하여 적군을 물리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야훼 앞에 서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모압, 압몬, 마온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멸망케 된 것입니다. 역대하 32장에는 히스기야 왕이 병들고 외적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백척간두에 있을 때 왕과 이사야 선지자가 함께 기도해서 적을 물리치고 히스기야는 몸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에스더 4장에 이스라엘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가 유다 민족과 함께 합심으로 기도해서 그 전멸할 상태에서 죽음을 면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120명 성도가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은총을 얻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함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쇠고리가 다 풀리고 자유를 얻은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은 “작곡하다가 지치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린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샘솟는 열정과 영감을 주셔서 작곡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스스로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기도에 응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응답의 하나님입니다. 안될 것은 “안된다”고 응답해 주시고 되는 것은 “된다”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에 우리가 감사해야 될 것은 환난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편 121편 1절로 2절의 말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항상 보는 방향을 올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인생의 태산을 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 실패와 고통과 괴로움의 태산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고 너무나 쉽게 “나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태산과 같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같이 계신 것입니다. 야훼를 바라봐야 됩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똑같은 광야에 있고 똑같은 군중들이 굶주려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할 때 빌립은 광야만 바라보고 군중만 바라보고 떡을 구할 곳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주님께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자인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나온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인생의 광야 가운데 삽니다. 크고 작은 광야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광야 가운데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가 계십니다. 바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광야만 바라보면 안됩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면 기적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로 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기록합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환경이 어둡고 캄캄해도 이미 예수님이 우리보다 먼저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골짜기도 이미 생명으로 바꿔 놓았고 허물도 거룩함으로 바꿔 놓았고 병도 채찍에 맞으므로 치료로 바꾸어 놓았고 저주도 십자가에서 청산하므로 아브라함의 복으로 바꿔 놓았고 죽음도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영생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어떠한 사망이 다가와도 그 앞길을 주님께서 이미 먼저 지나가셨기 때문에 주님이 같이 계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망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37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므로 이긴다고 생각하고 늘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언제나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희망이요 꿈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희망과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로 17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가장 중요한 양념입니다. 무슨 음식을 해도 간장을 치고 소금을 쳐야 맛있는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감사를 섞어야만 우리 생활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우리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더 주시기 때문에 더 부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학자인 존 헨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자 해독제이며 방부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감사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세 가지를 실천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우리 생활에 큰 복을 받고 현세에서는 참된 평안을 얻고, 내세에서는 영생 복락을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억지로라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기뻐할 수 있는 마음, 평안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마음을 다스려서 이 험난한 세계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감사는 행복의 근원이다(살전5:16-18)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감사는 행복의 근원이다 가. 감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본문은 성도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보여준다. 특별히 감사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최고의 비결이다. 그것은 진정 우리를 위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 여기서 하나님의 ‘뜻’(델레마)은 ‘갈망하다’ 또는 ‘기뻐하다’라는 ‘델로’에서 유래하였다. 즉 감사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요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다. * 무엇을 하든지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 찬양에도 감사가 넘쳐야 한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다(골3:15-16). * 기도도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다(골4:2). 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다(빌4:6). 어떤 일로도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신앙인의 도리가 아니다. 신앙생활을 감사로 시작하여 감사로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나. 감사는 은혜를 선용하는 것이다.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 여기서 ‘감사’(유카리스테오)는 ‘올바르게 행하다’(유)와 ‘은혜’(카리스)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즉 감사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에 따라 올바르게 행하여 은혜를 주신 이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감사는 표현 그 이상이다. 받은 은혜를 헛되이 흘려버리면 진정한 감사가 아니다. *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였다(고후6:1). 여기 ‘헛되이’(에이스 케논)에서 ‘케노스’는 ‘내용이 없는’ 또는 ‘어리석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은혜를 받았으나 은혜를 허비하여 결과가 아무 내용이 없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결국 어리석은 행동임을 보여준다. * 예수님의 비유에서, 탕자는 아버지가 주신 재물을 헛되이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람이 달란트를 받고서 탕진하고 만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면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다. 성도는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 성도는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를 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좋을 때만 아니라 어려울 때에도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일에도 감사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욱이 어려운 일에 감사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일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성숙한 신앙이다. * 범사에 감사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것으로 믿어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고 하였다(롬8:28).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다. * 믿음의 사람이라도 범사에 감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다(17절). 여기서 ‘기도하다’(프로슈케스데, 중수디)는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수동태) 기도를 말한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다 보면 어려운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라.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에게 기쁨이 있다. 16절, “항상 기뻐하라.” * 본문의 단락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이 단락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항상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삶의 양식들이다. 즉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 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복을 받는다. *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런 사람들은 기쁨은커녕 우울, 슬픔, 낙망,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 시편 기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다(시50:23).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 여기서 ‘구원’(예샤)은 ‘야샤’에서 유래하였는데 구원, 안전, 번영, 승리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처럼 감사는 행복의 근원이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주제 :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설교자 : 조성훈
이 말씀은 짧으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하기도, 범사에 감사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보면 기뻐할 때가 많습니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기뻐할 일들이 사라집니다. 저는 곧 태어날 손녀를 생각할 때 안쓰럽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공부해야 할 것을 준비해놓습니다. 직장생활을 생각할 때 어떻습니까? 그렇게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가정을 보면, 사회를 보면 기뻐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정치인들을 보면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 잠시 기뻐할지라도 대체로 그렇게 기뻐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 자신을 보고 기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시선을 여러분의 환경을 보지 말고 여러분의 내부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어떻습니까? 더욱 탄식할 일이 많습니다. 실망하고 싶으면 환경을 보라, 절망하고 싶거든 내 자신을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들여다볼 때 더욱 절망스럽습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누군가가 미국에서 1조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전혀 마음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지만 여러분이 1조원에 당첨되었다고 할 때 기쁠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내부로 향해 보면 기뻐할 일이 더욱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육체에서 해방되기를 더욱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절망스러운 일 뿐인데 왜 기뻐하라고 말할까요?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안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할 때,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기쁨이 없는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쁨이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기뻐했던가요? 그렇습니다. 다른 편지들을 보면 그는 계속해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그런 찬양을 불렀던 것은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았던 환경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환경, 더욱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환경과 자신이 아닌, 주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경을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두들겨 맞고 강도의 위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향했을 때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하게 될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의 삶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삽니까? 많은 분들이 여러분의 시선을 기뻐할 수 없는데 두고서 기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광주에 내려갈 때 3시간 거리를 7시간 걸려서 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목숨을 걸고 갔습니다. 제가 그 위험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요? 환경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뻐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직장이 나아지면, 월급이 많아지면,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 되면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골로새서를 보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고 말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나요?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위에 있는 성을 바라보고 땅에서는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많은 믿음의 신앙인들이 그들의 시선을 하늘에 두고 이 땅의 삶을 살았습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시선을 하늘에 두고 이 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항상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특별히 기도에는 사단의 방해가 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많은 것들을 쌓아두시고 원할 때마다 하나씩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를 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도하시지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삶을 살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무릎을 꿇습니까?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삶에 어려움이 별로 없는 사람은 무릎 꿇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면 예컨대 갑자기 자녀가 사고를 당하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별 어려움이 없으면,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싸움입니다. 기도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시면 이 땅에서 가장 복된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중요합니다. 주님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늘 주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기도를 해도 집에 가서는 기도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낮 기도가 다르지 않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과 집에서 기도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세 번째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할 때 기쁨의 요소를 찾을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월급을 남들보다 더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사에”라는 말은 모든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동네이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나무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데 살면서도 불평한다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불평을 했을까요, 안 헀을까요?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불평이 많았습니다. 환경이 좋아도 환경이 우리를 기쁘게 만들고 감사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미얀마에서 형제들이 와서 저희 집에 와서 지내는데 매 끼마다 달걀을 먹었습니다. 미얀마에서 달걀을 못 먹은 한이 있어서 매일 그렇게 먹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마 이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불평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왕들처럼 잘 먹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감사하지 못할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외국에 가서 풍족하고 화려한 환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한국에 와서는 그것과 비교해서 자꾸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굶지 않고 먹을 것이 있다는 것, 건강이 있다는 것,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환경이 얼마나 풍족한지 매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광주에 갔을 때 치과 치료를 받았는데 정말 싫은 일이었습니다. 치아를 기계로 갈면서 주님을 믿을 것인가 핍박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참 제가 감사할 일입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 멋진 사람, 돈 많은 사람, 근사한 사람들을 두고 자신을 비교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부한 자이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하늘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을까요?여러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안다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안다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과 생각이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속였듯이 말입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계속해서 세상이 우리에게 심어주는 생각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여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환경은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기대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늘에 붙잡아 매지 않으면 이 말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고 감사의 제목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백성인 것이 나타나고 주님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기뻐할 수 있기에 기뻐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시선을 환경이나 여러분 자신에게 고정시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이유는 한 시도 주님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구속하신 은혜와 하늘나라의 영광을 생각하고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설교)’놀라운 세 가지 약속’
놀라운 세 가지 약속
(데살로니가 전서 5 : 16-18절_유기성목사님)
다 알고 있는 이번 본문 말씀이 복음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정말 부담스러운 구절처럼 느껴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 십자가의 복음 = 나는 죽고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것 → 이것은 허락이라고 볼수 있슴. 항상 기뻐해도 된다. 항상 기도해도 된다. 모든 일에 감사해도 된다. 라고 허락해 주신 것 → 예수 믿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이기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이자 약속.
1. 항상 기뻐해도 된다
어느 누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해도 된다고 약속하며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수 있슴.
우리는 살면서 항상 기뻐할수만 없는 순간들도 많음. 하지만 정확한 주님의 원리를 알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슴.
ex)남편을 보면 짜증날때. 남편을 보면 짜증나는데 주님을 보면 마음이 기쁠수 있슴, 환경을 보면 기쁠수 없는데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때에 기쁠수 있슴. 마치 다윗과 요셉, 다니엘 등의 성경 인물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마음이 기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 이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
빌립보서 4 :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야고보서 1 :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전제가 되지않으면 절대 기뻐할 수 없슴. 시험들이 어떻게 기쁨이 될수 있겠는가
여러가지 문제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계시다는 결정적 증거.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때 모든 문제 속에서 기뻐할 수 없슴.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때, 문제가 해결될때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심을 바라볼때 기쁨이 먼저 오고 문제도 해결되어 나갈 것.
2. 언제든지 기도해도 된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시고 반드시 좋은 것을 얻고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는지(예배 자리에)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언제든지 기도해도 된다는 약속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걱정없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함.
→ 주님이 내 안에 오셨는데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실까? 내 기도를 안 들으실 수가 없슴
로마서 8 :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는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가 이것을 기도해야하나 기도를 해야하나 할 필요가 없슴.
그냥 부르짖으면 주님은 다 들으시고 다 알고 계심
ex) 유니스 선교사의 일화 영상 – (아프리카에 아이들이 자신을 보면 선교사인줄 알고 “유니스~”라고 부르면서 달려옴. 그때마다 ‘어 쟤네들 신발이 없내? 신발이 필요하겠구나, 밥을 하루에 한끼밖에 안먹내? 밥도 돈이 많으면 제공해줘야지 등등’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듦. 그저 그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것 밖에 하지않았는데도. 하물며 사람이 그러한데 주님의 마음도 이러하실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됨. 우리가 부르짖는 것 많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필요를 다 알고 계시는 주님. 우리에게 다 주고 싶은 하나님. 하지만 부르짖지 않으면 안됨. 우리는 필요를 부르짖어야 함)
빌립보서 2 :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우리의 마음에 소원이 생기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기도하게 되는 것.
우리는 기도 잘하고 못하는 것에 신경쓰지 말고 아들,딸이 아버지에게 나아가듯이 기도하기
3. 범사에 감사해도 된다(=무조건 감사해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사가 안될때가 많음. (ex)사람을 잘못만난것같고, 질병, 가난 등등의 문제들)
→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실 것 “모든 것에 감사해도 되” “너 반듯이 그거 나중에 가면 감사 제목이야. 반드시 그것 합력하여 선을 이룰거야” → 절망 가운데 있어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믿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모든 일이 다 감사 제목이 된다는 것.
→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이 감사 거리가 되게 하실 것. → 우리의 믿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 표정에 있슴.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
암 환자들은 생각과 삶이 바뀌고 중요하지않은 것에 신경쓰지 않게 되는데 우리는 건강하더라도 그러한 암 환자들처럼 살아간다면 모든 것들이 감사하지 않을 것들이 없고 삶 또한 알차며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다는 것을 어떤 목사님의 일화를 통해 알수있슴. → 이런 기적같은 일이 죽을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지 않겠는가
항상 기뻐해도 돼. 늘 기도해도 돼. 늘 감사해도 돼 →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안될 것 = 예수 믿는 성도의 힘
다음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 과거 전쟁 때는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 해서 교회를 왔고 그 이후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해서 교회를 왔지만 지금 세대는 복받는게 뭐 그렇게 갈급한지를 모르는 세대들. 전혀 와닿지 않고 왜 믿어야하는지 모르게 되었슴.
But 그들의 수많은 sns 등의 삶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 많나는 사람은 많은데 진정한 사랑이 결핍된 그들이 원하는 것. ‘누가 나를 사랑해주나?’ ‘진짜 사랑은 어디에 있나?’ 하는 것.
사람이 중독이나 권력, 쾌락 등등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종교지도자가 때로는 이런 부분들에 빠지기까지도 함.
이유는 하나. 안다고 안넘어갈 수가 없슴. 그 마음의 중심에 진짜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
ex) 쥐를 가둬두고 물과 마약이 있는 것을 함께 두니 마약만 먹으며 말라죽어감. 전기충격을 줘서 못먹게 했는데도 마약으로 감
하지만 많은 쥐들이 있는 곳에 풀어줬더니 마약을 줘도 한 두번 먹다가 먹지않고 다른 쥐들과 같이 음식도 먹고 하면서 지내는 모습.
→ 그것을 실험한 사람의 결론. Q.왜 쥐는 마약에 빠져들었는가? 다른 기쁨이 없으니까. 마약이 주는 힘보다더 더 강한 관계, 사랑의 기쁨이 없었기 때문. 사람도 마찬가지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구나를 진짜 깨달은 사람은 세상의 많은 돈, 쾌락, 음란 등에 빠지지않음.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안빠져들수가 없슴(세상의 쾌락, 권력, 돈, 음란 등)
→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름.
→ 주님을 바라보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정말 사랑을 나눠줄 줄 아는 공동체를 만들수 있어야 함.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 마귀가, 세상이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써 성장해 갈 것. 너무 좋은게 있으니까.
주님 안에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합해야 함.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런 사람이 내 주변에 생기길 기다리면 안됨. 평생 못만날수도 있슴. →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될수 있도록 섬겨주어야 함.
우리는 가족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인지, 가족이라서 신뢰해 주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슴.
우리는 가족이니까 믿어주는 것. 똑같음. 우리 주변에 있는 그 사람이 영적인 가족.
주변 사람들을 끈임없이 섬길때에 어느 순간에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엄청나게 도움을 받게 될 것.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말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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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 16- 18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런던의 에그리컬쳐홀에서는 어느 날 15,000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자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께 설교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 목사님은 여러 가지로 시간이 바쁘다며 사양을 하자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15,000명이나 모입니다. 이 많은 군중이 모이는데 설교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에 스펄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15,000명이 모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순복하겠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달면 받아들이고 쓰면 뱉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간에, 설혹 손해가 나고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절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뜻을 내려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곧 내 자신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자기 뜻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 뜻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착각합니다. 십자군 전쟁 때 모슬렘 교도를 죽이는 것이 교황의 명령… 그저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Jesus Chri st’ 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슬렘 사람을 찔러 죽이면서 “for Chri st” 라 외치며 찔러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내 뜻이 주의 뜻인 양 확신하고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대학 입시… 저는 사범대학교에 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내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좌절시키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뜻을 버리고 포기하고 주의 뜻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철저하게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배워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분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이나 체념, 정당화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분부요, 명령이요, 권고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마음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고상한 척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자기 삶이 변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문제입니까? 요즘 설교를 어떻게 듣는 줄 아십니까? 감상합니다. 설교가 잘 짜여진 한 폭의 그림인 양 감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 뜻이 내 마음 속에 선명해지고 확정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수련회에서 울고불고 하는데 돌아올 때 내 마음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 기독교는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상한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나오기를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했을 때 주께서 밝히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아버지를 좇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이요, 참 종교인입니다. 여러분,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 삶이 진정한 제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을 때, 그분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온전히 아버지 뜻대로 사셨습니다. 항상 아버지 뜻에 전적으로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내 결심, 내 뜻이 아닌 날 향한 아버지의 뜻이 뭔가 알려고 노력하고,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뜻은 향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변하고 흥망성쇠가 교차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뜻은 영원합니다. 그 뜻을 행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세 가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인 ‘항상 기뻐하라’를 생각해 봅시다.. 그 개념이 무엇인가 막상 생각하자면 내 삶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열매 없는 나무일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나무,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여기서의 기쁨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기쁨은 어느 조건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 그것이 항상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 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이 내린 기쁨의 정의는? 기쁨의 정의는 여러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기쁨이 채워져야만 비로소 그 기쁨은 강화됩니다. 그때에야 그 어느 것도 당신을 실망시키거나 망 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느헤미야도 이것을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강한 믿음은 주를 기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기쁨의 정의는 – 예수가 첫째, 타인이 둘째, 그 다음이 당신 자신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기쁨의 정의이다. 개인적인 행복의 열쇠는 이타심입니다. joy라는 영어의 첫째는 제일 먼저 jesus, 둘째, other, 셋째는 yourself의 약자라고 이야기 하는 분도 있습니다. 동물은 웃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도서3:12-13)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지칭합니다. 원래 기도라는 것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기 생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힘의 능력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을, 사람을,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진정 의지해야 하는 한 분, 언제든지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언제든지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나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나와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 주님께 내 모든 것을 아뢰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기도속에 기쁨이 있고, 기도할 때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기도와 간구를 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엡6:1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질병과 잘못된 길에서 바로 잡아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부요한 자와의 만남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이 부요해지고 생활이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며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야말로 모든 것을 함께하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를 빼앗아갑니다. 새뮤얼 차드위크는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없는 성경공부,기도없는 봉사, 기도없는 종교의식에 안심한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슬픈 일, 아픈 일을 당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서 보면 감사의 조건이 보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피 터지고 감옥에 갇혔을 때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았을 때, 감사할 조건을 발견하여 감옥 안에서도 찬양했습니다. 주님이 감동하셔서 문 열어 주셨습니다.
범사’란 의미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이란 말입니다.성공 할 때뿐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며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고파 합니다.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를 하십니다.
‘축사’라는 말을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드린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축사’란 말은 빌 축(祝)자에 사례 혹은 감사할 사(謝)자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불평과 원망을 하는 상황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까짓 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라고 원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어 몸이 썩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낙담하고 있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감사해야 될지를 주님께서는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로빈슨이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그는 교통사고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40일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눈이 치료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소망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마귀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골 3:15).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명이 미대륙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 180 톤밖에 안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했음을 감사했고, 둘째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였으며, 셋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고, 넷째 큰 파도에 밀려 여자 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였으며, 다섯째 신대륙 접근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 한달 만에 플리머스에 안착하게 됨을 감사하였고, 여섯째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브래드포드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만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채소를 가꾸고 사냥을 하며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지켜 주시며 질병에서 건져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은 전원이 모여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 이들 미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무덤을 팔 수밖에 없었던 첫 겨울, 하루에 옥수수 5개씩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던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1863년 남북전쟁이 극렬한 때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국경일로 선포하며 말했습니다.“모든 미국인은 이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관례가 생겼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절 메시지에서 “오늘날 미국의 문제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고 윌슨 대통령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덕에 대해 미국인은 감사를 드리자”고 외쳤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가을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위대한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과거보다 여건이 좋은데도 불평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100년 전의 미국인들은 꼭 바라는 것으로 16개를 꼽았는데 지금은 92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바네트 깁슨의 저서 ‘행복한 하루’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라.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그대는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
주님이 우리 삶의 주관자임을 바라볼 때, 우리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바로 서길 원합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말고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열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수고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등대교회 중고등부가 잎사귀만 무성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 신앙,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능한,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우리의 영적 거품을 빼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견고하게,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이 세워져 있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결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해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며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건만,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므로 해서 성령을 근심케 하고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드린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그 크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항상 언제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기뻐함으로써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귀한 역사가 있어지게 하옵소서. 너무나 이기적인 우리 삶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등대교회 중고등부 예배(2001.9.2)
한 태 완 목사 설교 요약
* 묵상 및 토의
0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내 몸을 바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가?
0 나는 어떤 일에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0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주의 뜻을 따르는가?
0 나는 어려울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하는가?
0 나는 내 몸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려 힘쓰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가?
0 나는 불순종의 결과가 주는 교훈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겨 재앙 당한 일은 없는가?
0 나는 주의 뜻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뜻에 순종하는가?
0 나는 주님의 뜻에 역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0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안의 부정한 것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습니까?
0 나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경우에도 나는 담대히 행할 수 있습니까?
* 찬송: 377장 예수 따라가며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 하나님의 뜻으로 상황을 판단하라
너무 쉽다고 생각될 때, 이것쯤은 내 경험과 상식으로도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방심할 때 우리는 덫에 걸리고 만다. 당신의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당신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당신의 처세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신은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다. 파일럿들 가운데서도 가장 숙달된 파일럿들이 뜻밖에 평이한 비행 중 사고로 죽는 비율이 높은 원인을 아는가?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계기판을 보지 않으므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일럿들을 훈련시킬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기판을 철저히 바라보고, 자신의 감을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으라고 가르친다. 당신은 영리하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그 영리함이 오히려 당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당신의 인생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경솔하게 결정해 버린 일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라고 여겨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신속하게 처리해 버린 일들이 뜻하지 않게 당신의 덜미를 잡는 치명적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지 말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판단하시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자꾸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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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16-18 [ Thessalonians 5:16-18 ] – Korean Hope Presbyterian Church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키워드에 대한 정보 살전 5 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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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김형준 목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 살전 5:16-18 | CGNTV 말씀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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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준 목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 살전 5:16-18 | CGNTV 말씀강해 | 살전 5 16 18,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