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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 [하루 한 장]“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38편)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시편 38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기념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희망의 내용은
하나도 없고 온통 자신의 죄를
아파하고 슬퍼하는 애도의 시로
첫 절부터 끝 절까지 가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빛내주시고
높여주셨던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장 깊은 죄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을 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내 죄를 씻을
유일한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고백하지 않은 죄로 아파하는
무거운 우리의 마음을 보며
주님께 나아가 주께 피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합시다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시편 38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기념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희망의 내용은
하나도 없고 온통 자신의 죄를
아파하고 슬퍼하는 애도의 시로
첫 절부터 끝 절까지 가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빛내주시고
높여주셨던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장 깊은 죄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을 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내 죄를 씻을
유일한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고백하지 않은 죄로 아파하는
무거운 우리의 마음을 보며
주님께 나아가 주께 피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합시다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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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수) “시편 38:1-22” / 작성: 정한조

그 중에서 6편, 32편, 51편과 더불어 오늘 본문이 모두 그 배경이 ‘밧세바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다윗의 기념하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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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38편 배경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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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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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수) “시편 38:1-22”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38:1-22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고난 중의 회개(1-10절)

시편 150편 중에서 ‘참회시’라고 불리는 시편이 7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8편과 더불어 6편, 32편, 39편, 51편, 103편, 그리고 143편입니다. 그 중에서 130편을 제외한 나머지 6편이 다윗의 시입니다. 그 중에서 6편, 32편, 51편과 더불어 오늘 본문이 모두 그 배경이 ‘밧세바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입니다. ‘다윗의 기념하는’이라는 표현이 모호한데, 시편 70편의 표제어에서 좀 쉽게 풀어 놓았습니다. 로 그 설명이 명확합니다. 다윗이 지은 이 시편을 참회와 관련된 절기 행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의 고백으로 노래로 불렀다는 의미입니다. 즉 다윗의 개인의 고백의 시편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고백의 시편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지금 다윗은 온 삶이 짓눌려 견딜 수 없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누르고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의 노하심’, ‘주의 분노하심’, ‘주의 화살’, ‘주의 손’, ‘주의 진노’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화내심을 ‘주의 노하심’, ‘주의 분노하심’, ‘주의 진노’라는 말로 점점 상승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노여워하심이 증폭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화내심을 ‘주의 화살’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대에 활은 다른 무기들보다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칼이나 창을 아주 잘 쓰는 검객이 있다할지라도, 그 사람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가 휘두르는 칼날이나 창날을 피할 수 있고, 맞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살은 다릅니다. 화살은 멀리서 날아오기에 맞설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멀리 숨어서 화살을 날리면 어디서 날아오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화내심을 ‘화살’로 표현하는 것은 지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것이 고통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분명하기에 더욱 눌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의 화내심을 ‘주의 손’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일반인을 눕혀놓고, 유도선수나 레슬링 선수가 ‘누르기’를 시작하면, 아마 저는 꼼짝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훈련 받은 선수가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을 눌러도 그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주의 손이십니다. 그 손이 눌렀다고 하는 것은 정말 고통이 큼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왜 진노하시는 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4-8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1-3절의 주체가 하나님이어서 ‘주의 진노’, ‘주의 손’, ‘주의 화살’이었다면 4-8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대상이 ‘나(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내가 감당할 수 없고’, ‘내 상처가’, ‘내가 우매한 까닭이고’, ‘내가 아프고’,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고’, ‘내가 피곤하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번 주일예배 설교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이라는 수수께끼를 말씀드렸습니다. 정답은 ‘눈꺼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눈꺼풀’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죄, 죄의 무게’입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졸릴 때의 눈꺼풀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자고 일어나면, 또 한없이 가벼운 것이 눈꺼풀입니다. 천하장사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눈꺼풀은 아주 가볍고, 어린 아이에게도 가볍습니다. 심지어 태어나 몇 달되지 않은 아기에게도 눈꺼풀은 그지없이 가볍습니다.

그러나 죄의 무게는 다릅니다. 눈꺼풀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가벼워지지만, 죄의 무게는 그 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 온 삶을 짓누릅니다. 아니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서 짓눌려 잠을 잘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9-10절입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소원이 주님 앞에 있다고 합니다. 소원은 본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있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 소원을 다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탄식도 주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다고 합니다.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을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뛰고, 기력이 다 빠지고, 눈앞이 흐려진다는 것은 기진맥진할 상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배반의 고통(11-14절)

다윗이 자신 아픔을 이렇게 처절하게 고백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11-1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시비가 있어서 다투게 되면 속은 상하지만 이내 괜찮아지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친척’들은 다릅니다. 배우자나 부모자식처럼 깊은 관계일수록, 친구라도 친할수록, 친척들 중에서도 자주 왕래할수록 작은 일이나 부주의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가 깊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관계의 고통, 정서의 고통 및 영적인 고통도 함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는 그 무게가 가벼워서 충분히 자신이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의 무게는 우리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그 내용도 아주 날카로워서 우리의 속과 관계를 다 찢어 놓습니다. 그것이 죄의 무서움입니다. 죄의 그 무거움과 날카로움, 무서움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을 것이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구원의 간구(15-22절)

다윗의 기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16-20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다윗은 여전히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길이 고통스럽습니다. 16절의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를 예전에 사용했던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망자존대(妄自尊大)’는 ‘앞뒤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함부로 잘난 체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보다 훨씬 더 다윗이 당한 상황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겪는 고난과 고통을 내용이나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서 그저 비난하는 말로만 지껄이기만 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18절에서 자신의 죄악을 아뢰고, 자신의 죄를 슬퍼한다고 고백합니다. 죄된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은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죄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슬퍼하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걱정하게 하다’, ‘근심하게 하다’입니다. 죄는 짓는 순간에는 아주 달콤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은 걱정, 근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당의정(糖衣錠)’이라는 알약이 있습니다. 약의 맛이 아주 쓰거나 약의 냄새가 불쾌할 때 또는 약물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표면에 당분을 입힌 알약입니다. 죄는 ‘당의통(糖衣痛)_단 맛을 입힌 고통’과 같고, ‘당의공(糖衣恐)_단 맛을 입힌 공포’와도 같습니다. 죄가 ‘당의통’과 같고, ‘당의공’과 같다는 것을 깊이 인식할 때에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이 다윗이 밧세바 사건 후에 겪었던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이고도 관계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다윗의 삶을 돌아보면, 다윗의 몸이 아팠을 때에 정신이 고통스러웠을 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함으로 가진 즐거움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아주 길었습니다.

다윗의 몸이 아팠을 때는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심하게 아팠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다윗은 그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다윗은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꿇어 엎드려 있기만 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신하들이 다윗을 찾아서 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 아들이 일주일만에 죽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을 일어나 몸을 씻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더 아파합니다. 부모가 죽어 자식의 가슴에 남는 상처도 크지만, 자식의 먼저 죽어 부모의 마음에 남는 상처는 더 큽니다. 다윗은 그 아들이 죽음으로 인해서 그의 몸에 살이 성한 곳이 없고, 온 뼈마디가 다 아팠던 것입니다.

다윗이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무너졌을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였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방법으로 4년 동안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반란은 일으켰던 것입니다. 아들이 역모를 일으켰다는 사실만 해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 압살롬에게 향하여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증오의 눈길과 거친 말들이 다윗을 짓눌렀던 것입니다.

다윗의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그가 의뢰할 곳은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막이 이렇게 내려옵니다. 21-2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다윗에게 하나님은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오른쪽 문은 잠겨있고, 왼쪽은 벽일 때, 바라볼 곳은 하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때에 바라볼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 가장 비참하고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계셔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짧은 세속적인 즐거움과 긴 육체적.관계적.영적인 고통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디딤돌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그 고통을 겪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자기 소망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소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시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고통으로 가득했던 이 시편을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지 않았다가 저처럼 패가망신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께 매인 것보다 더 복된 것은 없습니다.”라고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심어주신 우리의 가정과 일터(학교)에서, 삶의 자리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으로 삼고, 주님께 매인 하루를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들을 소망의 주님께 매어주는 연결고리로 살아가십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에게 쾌락의 달콤함은 짧았지만, 그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관계적, 영적인 고통은 참 길었습니다. 다윗의 이 시편을 통해서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죄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각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라옵나니 우리는 이런 시편을 기록하지 않고서도, 한평생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고 살게 하시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소망이 우리 삶의 기쁨과 의미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주님께 매여 있는 것을 불편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부심과 은혜로 여기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를 감당해야 할 때에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게 하여 주시고, 그 과정이 우리의 삶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디딤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주님만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오, 우리의 구원이심을 알아,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시고, 또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매여 주는 연결고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혹 지난날, 자신의 허물과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누르시며, 징계를 하신다고 생각되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2. 나의 욕심이나 실수 등으로 인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3. 자신의 지난날의 삶이 슬펐던 적은 언제였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며, 소망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매인 자유인으로 살아가시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시편 38편 주석 및 해설 고통에서의 구원을 간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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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인하여, 큰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통 중에서 괴로워 하고 있으나,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또 시인은 적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지만 그들에게 보복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심으로써,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있습니다.

목차

■ 본문의 구조

1-10 :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징벌하시고,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한다

11-15 : 친구가 자신을 배반하고 원수는 자신을 저주하고 있다. 하지만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본다.

16-22 : 죄로 인한 고통과 적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한다.

■ 시편 38:1-7, 여호와께 대한 회개

저녁 무렵, 하루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본 시편은 시편에 나오는 유명한 7대 회개 시 중의 하나입니다(6, 32, 38, 51, 102, 103, 143). 이 시는 단순한 회개의 시 라기보다는, 다윗이 현재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도 벗어나게 하실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시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죄를 먼저 자복하고 깊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2).

근엄한 부모는 자식이 조금만 잘못하여도 징계의 채찍으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성도가 곁길로 행하였을 때 사랑의 마음으로 아파하시며 채찍을 가하십니다. 그는 성도에게 채찍을 가하시지만 그 자신도 마음 아파하십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치시는 채찍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채찍을 가하시지만 나중에는 싸매어 주시고 더욱 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치나이다(4).

다윗은 자신의 죄를 철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가 완전히 차고 넘쳐서 머리까지 올라왔다고 자신을 신랄하게 매질하며 스스로 자복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진정한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누구 때문에라고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나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요 이러한 회개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궁극적으로 용서해 주시는 진정한 회개의 자세입니다.

내가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6).

다윗은 죄를 지은 결과로 육체적으로 상하였고 심령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게 됩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자신의 슬픈 상태를 토로하며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죄 지은 사실을 철저히 파헤쳐내어 그것을 인하여 다윗처럼 종일토록 슬퍼하며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할 때 구원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 시편 38:15-22, 고난이 닥칠 때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들은 고난에 부딪히게 되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불평하고 어떤 사람들은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수긍하기는 하지만 쉽게 체념해 버리고 맙니다. 이 외에도 갖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은 다가옵니다. 과연 그럴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 대처의 자세를 본문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야 한다(15-16).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통과 도움을 호소하는 심정과 신앙을 간구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을 확실히 믿고 확신하였습니다. 이런 다윗의 태도는 자신이 어려운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신앙의 자세입니다(합 3:2).

하박국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죄를 자복해야 한다(17-20).

다윗은 고난의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자기에게 닥치는 고난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오히려 고난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그 범죄를 슬퍼 하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 핑계나 변명으로 돌리지만(창 3:12) 다윗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자복합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도 다윗과 같이 자신에게 펼쳐진 인생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주위 환경에 돌리지 말고 죄가 있는 자신에게 고정시켜 하나님께 자복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성도는 그 고난 후에 임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 나가면서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태도가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성도의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시며 회복시켜 주십니다.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고난 가운데 있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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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8편 & 성경주석

<시편 38편 서론>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시 38편은 회개의 기도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몸과 마음 모두로 느끼는 강렬한 고통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은 고통으로, 자신의 마음은 번민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고통과 번민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정죄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원수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친구들의 이해와 위로를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에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음을 깨닫자 고통은 더욱 증가한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세 부분 모두 각기 하나님께 탄원하며 시작한다. 그가 당하는 고통의 크기(1~8절), 고통당하는 자의 인내력(9~14절), 악인들이 그의 재앙을 바라보며 기뻐할 이유를 찾지 못하도록 도움을 호소함(15~22절). 이 시는 생소한 동사형태, 뚜렷한 대구법, 말놀이, 주의를 기울여 맞춘 운율 등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 기념케 하는 시 : 제사드릴 때 이 일이 수행되는 시간에 노래 부르기 위하여 지어진 시라고 추측한다.

<시편 38편 개역한글>

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13.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20.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편 38편 성경주석>

38:1 나를 책하지 마시고.

참조 6:1.

38:2 주의 살.

하나님의 징계의 상징(참조 시 7:13).

38:2 심히 누르시나이다.

참조 시 32:4.

38:3 성한 곳.

참조 사 1:6. 여기에 묘사된 증상들과 환자의 친구들이 그를 홀로 내버려 둔 사실로 미루어 볼 때(참조 7, 11절) 이 병은 몹시 혐오스런 질병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38:3 나의 죄로 인하여.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자기가 범한 죄의 형벌로 생각한다. 모든 고통은 죄가 이 우주 가운데로 들어온 결과이다. 또한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개인이 고통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연 법칙을 범한 결과로 당하는 고통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지는 않으신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29).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이 범한 죄의 비참한 결과에서 보호를 받는다면 죄인들은 죄악을 범하는 일에 크게 담대해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전부 다 고통당하는 사람의 개인적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다. 고대의 많은 사람은 모든 고통을, 고통당하는 당사자나 그의 부모가 범한 죄의 결과로 여겼다(참조 요 9:2). 그들은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서 사람이 당하는 고통의 양을 근거로 그 사람의 죄의 정도를 판단하였다. “죄와 죄의 모든 결과의 장본인인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과 죽음은 죄 때문에 당하는 독단적인 형벌로서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시대의 소망, 471).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들은 하늘 아버지를 엄격하고 가혹한 공의의 집행자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도 이와 동일한 오해를 하고 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욥기의 교훈들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들(참조 눅 13:16; 행 10:38; 고전 5:5; 고후 12:7)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질병을 초래하는 분으로 여긴다.

다음의 말씀에서 고통의 참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은 사단이 가한 것이며 자비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에게 역이용되었”다(시대의 소망, 471).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항상 지켜 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만일 그가 그렇게 하신다면 사단이 욥의 경우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공정치 못하게 그의 종의 주변을 산울로 두르신다는 비난의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욥 1:10). 하나님은 사단에게 의인들을 괴롭힐 기회를 허락해야만 하는데, 이는 그 결과로 하나님이 불공정하다는 모든 비난이 결국 아무 근거가 없는 것임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당하는 사람은 비록 “사단의 사자”가 친다 할지라도(참조 고후 12:7) 하나님이 자비의 목적으로 그것을 역이용하시며 또한 그 고난을 바꾸어 행복이 되게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참조 롬 8:28).

38:3 평안함.

히브리어 샬롬(s∨alom), “평화.” 즉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함.

38:4 내 죄악.

3절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

38:4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죄를 바다 물결처럼 머리에 넘쳐나는 것으로 여겼다가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그 비유를 바꾼 것은 질병으로 인해 생각이 혼미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참조 8, 10절 주석).

38:5 악취가 나오니.

문자적으로 “곪다”, “썩다.”

38:6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참조 욥 1:20; 2:8; 시 35:14.

38:7 열기.

(「제임스왕역」에는 “loathsome disease”[혐오스런 질병]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병의 증상으로 보아 심한 열을 동반한 혐오스런 질병인 것으로 보인다.

38:7 성한 곳.

참조 3절 주석.

38:8 내가 피곤하고.

곧 “내가 감각을 잃고.”

38:8 신음하나이다.

참조 시 22:1. 영혼의 깊은 고뇌를 토해내는 소리이다. 시인은 이 절에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신체적 증상을 기술한 부분을 마무리한다.

38:9 주의 앞에.

시인은 하나님이 용서와 치료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반복해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두어야만 한다. 하늘은 가장 연약한 기도까지라도 다 들으신다. 말을 많이 한다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마음에 품은 목적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진실한 기도는 심령에 활력을 보증해 주고 생애에 영향을 준다”(교회증언, Ⅳ, 535).

이 절은 1~14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위로의 광선이다. 시인에게는 그를 알고 돌보아주는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8:10 내 심장이 뛰고.

합병증으로 심장이 뛰고, 몸이 약해지고, 부분적 실명(失明)이 왔다. 이 환자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로 체력이 다 소진되어 사실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38:11 나의 사랑하는 자.

참조 시 31:11. 이들은 환자에게 가까이 가기를 꺼려한다. 이는 아마도 병이 전염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인 듯하다(참조 욥 19:13~20). 이처럼 소외당하는 것도 2절에 언급된 살 중 하나였을 것이다.

38:11 상처.

히브리어 네가(nega‘), “천벌”, “재앙.” 재난이나 심판을 나타내는 데 쓰임(참조 창 12:17; 출 11:1).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 때문에 생긴 고통에서부터 그를 저버린 친구들과 그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는 원수들의 행위로 인해 더욱 심화된 고통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38:13 귀먹은 자.

시인은 원수들의 중상모략을 무시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침묵을 지켰다.

38:15 주를 바랐사오니.

세 번째로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 탄원(참조 1, 9절).

38:18 내 죄악을 고하고.

죄를 완전히 고백함. 시인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고통이 유익이 되었다(참조 3절 주석). 시인은 참된 회개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체험하고 있다.

38:19 내 원수가.

시인은 악인들이 계속 번성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혹감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38:20 내가 선을 쫓는 연고로.

그의 원수들이 그렇게 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선을 행하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죄는 선을 용납하지 못한다. 전적인 타락은 의를 증오한다(참조 요일 3:12).

38:21 나를 버리지 마소서.

참조 시 22:11, 19.

38:22 주 나의 구원이시여.

참조 시 27:1. 이 시의 마지막 말을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고통이 그에게 유익을 가져다주었음을 알 수 있다. 시련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열렬히 부르짖었고, 오직 그분 안에만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솟아나는 샘물

# 시편 38편은 ‘분향하기 위한 다윗의 노래’라는 표제를 가진 시인의 수난을 중심으로 한 “개인 탄식시” 또는 “참회시”로 분류한다. 이 시는 어거스틴(Augustine)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스스로 고민하고 있을 때 즐겨 외우던 것이라고 한다.

시38:1-22

고통을 겪을 때 깨달으라

차인태 씨는 한국 방송사가 낳은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로 TV 브라운관에서 완벽한 표준말을 구사하고, 중저음의 맑음 음색, 그리고 빈틈없는 몸가짐으로 대중의 신뢰를 한 몸에 얻었던 방송인입니다. 그는 2009년 “B세포 미만성 림프종양”이라는 암을 진단 받았습니다. 의사가 “쉽게 나을 병이 아니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라는 말을 듣고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런데 왜, 지금, 나여야 하느냐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구순(九旬)의 노부모를 떠올리자 심장이 비틀어지는 듯 아픔이 다가왔습니다.

항암치료를 9차례나 걸치면서 투병생활로 밤마다 울어야만 했고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서 중환자실에 들어가 2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딸들이 병원에 왔을 때는 연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삶의 자세가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침 식사 때마다 “맨손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월남 피난민으로…”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기도로 자신이 이 자리까지 왔다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 신앙적으로 보면 내게 또 다른 소명이 있어서 이런 연단을 주시지 않았나 싶다. 내려놓음, 나눔, 섬김…, 그런 단어들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인간은 고난을 겪을 때에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처절한 고통의 시간들에 대하여 대처하는 삶의 자세가 바르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인 다윗은 엄청난 질병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몸이 성한 곳이 없다‘(4, 7절), ”내 뼈에 평안이 없다“(4절),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난다“(5절), ”심장이 뛰고 기운이 없어졌다“(10절), ”내 눈도 흐려졌다“(10절), ”내가 넘어지게 되었다“(17절)고 호소했습니다. 그리하여 지치고 희망까지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8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중병으로 인한 고통도 괴로운 일인데, 가까이해야 할 친구, 친척들까지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멀리 외면하는 외로움, 즉 소외감의 고통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믿었던 이웃이 원수가 되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공격하므로 절망적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까지도 자기를 버리고 멀리하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감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다윗처럼 이중, 삼중, 사중고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 망가지는 인생이 될 것이 아니라 고난이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정화의 과정으로 삼는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하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1. 고통을 겪을 때,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항의하거나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항변하는 태도를 취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무슨 죄인지도 밝히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자기를 돌아보는 사이렌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1) 그는 자신이 우매한 까닭이라고 했습니다(5절).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의 어리석음(foolish) 때문에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미리 알았다면 예방할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만 신중했다면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인데, 내가 곁에서 하는 충고, 하나님의 음성과 감동하심을 주의하여 들었다면 이런 처절함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모두 나의 어리석음, 우매함 때문입니다.

(2) 그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평안이 없다고 했습니다(3절).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형벌로서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고통의 때에 자신의 잘못을 성찰해 보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리하여 내 고통이 나의 어리석음과 죄악들을 벗겨내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침내 자신의 죄악을 아뢰고 죄를 슬퍼한다고 고백했습니다(18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발견했다면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을 외면치 않으십니다. 회개하여 돌이키면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호6:1-2).

2. 고통을 겪을 때, 주변의 인간들에게 너무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이웃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바라며 그들의 위로를 받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 사랑하는 자,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또한 친척들의 방문과 위로, 도움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당하는 것을 알면서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고,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이 없으면 섭섭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렵고 힘들 때에 인간들의 본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그 인격이 어떠한지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1)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외면으로 소외감의 고통으로 시달렸습니다(11절).

①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은 내 고통을 외면하고 멀리했습니다.

② 친척들까지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2)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었습니다(12, 19-20절).

① 그들은 올무를 놓아 넘어지게 하려했습니다.

② 그들은 괴악한 일을 말하므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③ 그들은 내가 선을 행한다는 이유로 대적하였습니다.

믿었던 사람들, 친구와 친척들은 모두 모르는 척하고,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오히려 적이 되어 악의에 찬 말과 저주와 중상모략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세상이 싫어졌고, 이런 인간쓰레기 같은 존재들이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과 담을 쌓고 듣기도 말하기도 또한 어울리기도 모두 포기하고 자기만의 외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3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14절)

그렇습니다.

인간은 믿을 게 못 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고 내 곁에서 아양과 아첨을 떨던 인간들이 냉혈 인간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인간들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려고 하면 오히려 마음의 상처만 생기고 나 자신만 불평과 분노의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고통을 겪을 때, 바라볼 것은 주님 밖에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에게는 위기의 때에 내리는 처방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인간적 방법과 세속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신앙의 회귀(回歸)로 처절한 고통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까지도 자신을 멀리하고 버리신다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1절)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자신의 사정을 아뢰며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9절).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나이다”

여기 ‘소원’(אוה, 아와)이란 자신이 ‘바라는 목적’(object of desire)을 말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 건강을 회복하는 것, 인간들의 배신적 행동에서 역전되기를 바라는 것, 이 모든 소원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했습니다(15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여기 ‘바란다’(יחל, 야할)라는 말은 ‘기대하다’(to expect), 또는 ‘희망하다’(to hope)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 외로움 속에서 신음하며 울며 지내는 사람에게 희망은 하나님뿐입니다. 괜히 인간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응답하실 분은 나의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모든 고통을 호소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7절)

그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인간들로 인한 버림받음과 외로움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하나님께 호소하며 아뢰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실족 때문에 원수들이 기뻐하고 교만에 빠지지 말게 해 달라고까지 아뢰었습니다(16절).

인간 붙들고 불쌍한 척, 외로운 척, 궁상맞게 행동할 필요 없습니다. 오직 모든 사정을 아뢰고 호소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4)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2절).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나의 도움, 나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구원의 희망을 걸고 고통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온 고통과 질병의 아픔, 배신과 억울함 속에 있을 때에 마음 자세를 바르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게 왜 이런 고통이 왔느냐고 하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이웃에게 도움과 위로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없다고 억울해 하고 씩씩거리지 마십시오. 인간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십시오. 오직 바라보고, 희망하고 호소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고 매달리십시오. 그리하여 고난의 때를 잘 극복하고 승리하는 날 멋지게 거듭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 목회멘토링연구소 김성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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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 [하루 한 장]“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38편)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시편 38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기념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희망의 내용은

하나도 없고 온통 자신의 죄를

아파하고 슬퍼하는 애도의 시로

첫 절부터 끝 절까지 가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빛내주시고

높여주셨던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장 깊은 죄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을 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내 죄를 씻을

유일한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고백하지 않은 죄로 아파하는

무거운 우리의 마음을 보며

주님께 나아가 주께 피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합시다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시편 38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기념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희망의 내용은

하나도 없고 온통 자신의 죄를

아파하고 슬퍼하는 애도의 시로

첫 절부터 끝 절까지 가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빛내주시고

높여주셨던 하나님보다

자신이 가장 깊은 죄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을 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내 죄를 씻을

유일한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고백하지 않은 죄로 아파하는

무거운 우리의 마음을 보며

주님께 나아가 주께 피하고

주님께 도우심을 구합시다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 6편, 32편, 51편과 더불어 오늘 본문이 모두 그 배경이 ‘밧세바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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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9/13/2022

View: 6628

16-22 : 죄로 인한 고통과 적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한다. □ 시편 38:1-7, 여호와께 대한 회개. 시편 38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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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8/8/2021

View: 854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내리셨던 징계들을 종종 회상하는 것이 대단히 유익한 행위라는 권면을 받고있다.” – 칼빈 주석 시편 38편 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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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venantbpc.org

Date Published: 12/29/2021

View: 4239

(시편 38편) 처절한 고통의 때 깨달으라 · 1. 고통을 겪을 때,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 2. 고통을 겪을 때, 주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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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28/2022

View: 8250

학자들은 시편 38편을 시편 6, 35, 51편과 함께 다윗의 밧세바 간은 사건(삼하 11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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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ychurch.org

Date Published: 7/8/2022

View: 2180

설교제목, 시편 38편 :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본문말씀, 시편 38:1-22. 설교자, 황현석 목사. 설교일, 2014-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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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ngcheon.net

Date Published: 1/21/2022

View: 2761

내 죄를 슬퍼합니다! 본문말씀: 시편 38편 제 장인 어른께서 제게 매우 존경스러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일들이 있으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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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spch.net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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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모르 레다위드 레하제킬 아도나이 알 베케츠페카 토키헤니 우바하마테카 테얏세레니 개역개정,1 [다윗의 기념하는 시]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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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4/11/2022

View: 7609

[시편 38:1 ]. 책갈피. 개역개정 제 38 편 다윗의 기념하는 시 1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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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skorea.or.kr

Date Published: 11/30/2022

View: 7895

제목: 죄와 징계_죄로 인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녀의 기도 본문: 시편 38편 설교자: 최종혁.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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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0/7/2022

View: 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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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모르 레다위드 레하제킬

아도나이 알 베케츠페카 토키헤니 우바하마테카 테얏세레니

개역개정,1 [다윗의 기념하는 시]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새번역,1 주님, 주님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님의 진노로 나를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말성경,1 오 여호와여, 진노해 나를 꾸짖지 마시고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소서.

가톨릭성경,1 주님, 당신 진노로 저를 꾸짖지 마소서. 당신 분노로 저를 벌하지 마소서.

영어NIV,1 A psalm of David. A petition. O LORD, do not rebuke me in your anger or discipline me in your wrath.

영어NASB,1 {A Psalm of David, for a memorial.} O LORD, rebuke me not in Your wrath; And chasten me not in Your burning anger.

영어MSG,1 A David psalm. Take a deep breath, GOD; calm down– don’t be so hasty with your punishing rod.

영어NRSV,1 A Psalm of David, for the memorial offering. O LORD, do not rebuke me in your anger, or discipline me in your wrath.

헬라어구약Septuagint,1 εις το τελος τω ιδιθουν ωδη τω δαυιδ

라틴어Vulgate,1 in finem Idithun canticum David

히브리어구약BHS,1 מִזְמֹור לְדָוִד לְהַזְכִּיר׃

히브리어구약BHS,1 יְהוָה אַל־בְּקֶצְפְּךָ תֹוכִיחֵנִי וּבַחֲמָתְךָ תְיַסְּרֵנִי׃

성 경: [시38:1]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기념케 하는 시 – 동일한 표제어가 70편에도 나온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대적자들의 어떤 시도들과 목적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다윗에계 임했던 다른 형태의 시련들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동질성을 찾을 수 없다. 한편, 라틴 벌게이트역(Vulgate)과 70인역(LXX)은 유사하게 ‘안식일을 기념하기 위한 다윗의 시’라고 수정 번역된 표제어를 붙이고 있다. 본 표제어의 원어는 ‘르하즈키르'(*)로서 문자적인 뜻은 ‘기억케 하기 위하여’이다. 즉, 이 표제어하의 시편 내용은 기억케 하는 목적을 위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 시편 저자 다윗은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었던 바 독특한 체험, 본 시편이 밝히고 있는 경험의 기억을 되 살려 전달함으로써 다른 독자들도 유익한 교훈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본 시편을 기록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창 40:14 왕상 17:18 겔 21:24). 그리고 본 표제어에 대한 이와 같은 번역은 다른 학자들의 번역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즉, ‘하나님과 자신과의 기억을 전하기 위하여'(gesenuius)라는 것과 ‘본 시편은 다윗과 그의 범죄와, 그리고 용서 구함의 기억이 주는 교훈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Grotus)라는 번역이 이러한 견해를 입증해 주고 있다.

󰃨 주의 노 – ‘노’는 히브리어로 ‘케채프'(*)인데 이 단어가 새로 사용된 것 외에는 본절과 6:1은 그 사용된 단어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이와같은 현상은 다윗이 본 시편을 저작함에 있어서 6편의 때와 그 저작 상황이 유사하므로 먼저 저작했었던 6편의 기억을 더듬되 심지어 그때 사용했던 용어까지 회상하면서 본 시편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키 힟체카 니하투 비 왙틴하트 알라이 야데카

개역개정,2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새번역,2 아, 주님의 화살이 나를 꿰뚫으며, 주님의 손이 나를 짓누릅니다.

우리말성경,2 주의 화살이 나를 깊이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하게 눌렀습니다.

가톨릭성경,2 당신의 화살들이 제게 내리쏟아지고 당신의 손이 저를 누릅니다.

영어NIV,2 For your arrows have pierced me, and your hand has come down upon me.

영어NASB,2 For Your arrows have sunk deep into me, And Your hand has pressed down on me.

영어MSG,2 Your sharp-pointed arrows of rebuke draw blood; my backside smarts from your caning.

영어NRSV,2 For your arrows have sunk into me, and your hand has come down on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 ειπα φυλαξω τας οδους μου του μη αμαρτανειν εν γλωσση μου εθεμην τω στοματι μου φυλακην εν τω συστηναι τον αμαρτωλον εναντιον μου

라틴어Vulgate,2 dixi custodiam vias meas ut non delinquam in lingua mea posui ori meo custodiam cum consisteret peccator adversum me

히브리어구약BHS,2 כִּי־חִצֶּיךָ נִחֲתוּ בִי וַתִּנְחַת עָלַי יָדֶךָ׃

성 경: [시38:2]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주의 살…주의 손 – 비록 화살을 맞는 듯한 아픔과 중한 짐에 눌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묘사하면서 계속 그 아픔의 고통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없는 호소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Perowne).즉, 이 토로로 보아 본 시편 저자는 비록 고통을 당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감당할 능력밖의 고통을 주시지는 않는 분이라는 사실(저자는 이 사실을 그의 선조들의 경험을 통하여 알았으며,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아왔던 그 경험의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약속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급 속에는 고통으로부터의 빠른 회복에 대한 기대가 더불어서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의 토로는 불평이라기 보다는 화(禍)를 내리신 하나님의 자비에의 호소이다. 한편 ‘주의 살’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마치 궁수(弓手)로 묘사하는 듯하다(7:12 ;욥 6:4). 허스트(Horst)에 의하면 고대 근동에 있어서 심한 피부병은 신적인 저주와 사단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으로 흔히 간주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절에서 하나님의 화살을 맞은 저자도 피부병의 일종인 문등병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주의 살이 찌른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당시 본 시편 기자가 어떤 구체적인 범죄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그리고 그 고통은 실제적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어떤 성경 시대 당시의 근동의 역사 및 고증, 그리고 설화도 성경적 권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실 하나님의 화살, 하나님의 손은 분명히 성경에서 신적 심판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7:12 ; 삼상 63:5 ;욥 19:21). 따라서 우리는 본절을 보면서 그 죄악으로 인해 본 시편 기자에게 분명하고도 실제적인 심판이 임했으며 따라서 저자는 실제적으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나친 상상의 전개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불식시켜야 한다고 본다.

엔 메톰 비베사리 미페네 자메카 엔 솰롬 바아차마이 미페네 핱타티

개역개정,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새번역,3 주님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나의 뼈에도 성한 데가 없습니다.

우리말성경,3 주의 진노 때문에 내 몸에 멀쩡한 곳이 없고 내 죄 때문에 내 뼈가 성하지 못합니다.

가톨릭성경,3 당신의 노여움으로 제 살은 성한 데 없고 저의 죄로 제 뼈는 온전한 데 없습니다.

영어NIV,3 Because of your wrath there is no health in my body; my bones have no soundness because of my sin.

영어NASB,3 There is no soundness in my flesh because of Your indignation; There is no health in my bones because of my sin.

영어MSG,3 I’ve lost twenty pounds in two months because of your accusation. My bones are brittle as dry sticks because of my sin.

영어NRSV,3 There is no soundness in my flesh because of your indignation; there is no health in my bones because of my sin.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κωφωθην και εταπεινωθην και εσιγησα εξ αγαθων και το αλγημα μου ανεκαινισθη

라틴어Vulgate,3 obmutui et humiliatus sum et silui a bonis et dolor meus renovatus est

히브리어구약BHS,3 אֵין־מְתֹם בִּבְשָׂרִי מִפְּנֵי זַעְמֶךָ אֵין־שָׁלֹום בַּעֲצָמַי מִפְּנֵי חַטָּאתִי׃

성 경: [시38:3]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 자신이 지금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7절)을 나타낸 언급이다. 사 1:6에서 이 구절은 전 민족 실존의 위태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런데 ‘살’은 때때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즉, 히브리어로 ‘바사르’ (*)인간과 동물의 신체를 이루는 물질을 의미한다(창 40:19). 그러므로 이 용어는 전체로서의 몸(79:2 ; 109:24)혹은 인간 및 인류를 가리키는 제유법적 용어(136 :25 ; 145:21 ; 창 6:12 ; 사 40:5, ‘모든육체’)이다. 때때로 이 용어는 하나님과 대비되는 관점에서 연약한, 그리고 다양한 한계에 종속되는 인간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78:39 ; 사 31:3). 그리고 가끔 이 ‘바사르’는 인칭 대명사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쓰여 혈족을 암시하기도 한다(창 2:23 ; 사 58:7).

키 아오노타이 아베루 로쉬 케맛사 카베드 이크베두 밈멘니

개역개정,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새번역,4 내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4 내 죄들이 무거운 짐처럼 나를 짓눌러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4 저의 죄악들이 제 머리 위로 넘쳐흐르고 무거운 짐처럼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영어NIV,4 My guilt has overwhelmed me like a burden too heavy to bear.

영어NASB,4 For my iniquities are gone over my head; As a heavy burden they weigh too much for me.

영어MSG,4 I’m swamped by my bad behavior, collapsed under gunnysacks of guilt.

영어NRSV,4 For my iniquities have gone over my head; they weigh like a burden too heavy for me.

헬라어구약Septuagint,4 εθερμανθη η καρδια μου εντος μου και εν τη μελετη μου εκκαυθησεται πυρ ελαλησα εν γλωσση μου

라틴어Vulgate,4 concaluit cor meum intra me et in meditatione mea exardescet ignis

히브리어구약BHS,4 כִּי עֲוֹנֹתַי עָבְרוּ רֹאשִׁי כְּמַשָּׂא כָבֵד יִכְבְּדוּ מִמֶּנִּי׃

성 경: [시38:4]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무거운 짐 같으니 – 죄 및 죄책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묘사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의 가인도 이와 유사하게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 4:13)라고 자신의 죄책을 언급한 바 있다.

히브이슈 나맠쿠 합부로타이 미페네 이왈티

개역개정,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새번역,5 내 몸의 상처가 곪아터져 악취를 내니 이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5 내 어리석음 때문에 내 상처가 곪아 터져 악취가 납니다.

가톨릭성경,5 저의 미련함 때문에 제 상처는 냄새 피우며 썩어 갑니다.

영어NIV,5 My wounds fester and are loathsome because of my sinful folly.

영어NASB,5 My wounds grow foul and fester. Because of my folly,

영어MSG,5 The cuts in my flesh stink and grow maggots because I’ve lived so badly.

영어NRSV,5 My wounds grow foul and fester because of my foolish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5 γνωρισον μοι κυριε το περας μου και τον αριθμον των ημερων μου τις εστιν ινα γνω τι υστερω εγω

라틴어Vulgate,5 locutus sum in lingua mea notum fac mihi Domine finem meum et numerum dierum meorum quis est ut sciam quid desit mihi

히브리어구약BHS,5 הִבְאִישׁוּ נָמַקּוּ חַבּוּרֹתָי מִפְּנֵי אִוַּלְתִּי׃

성 경: [시38:5]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나의 우매 – 이 용어는 잠언서에서 자주 언급된다(22번 정도). 본 문맥에서는 적어도 이’우매’가 어떤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죄’와 동등한 그 무엇을 의미한다(3절 하반절 참조). 이와 유사하게 잠언24:9은 미련한 자의 생각은’죄’라고 말함으로써 이 주장을 지지해 준다.

나아웨티 솨호티 아드 메오드 콜 하욤 코델 힐라케티

개역개정,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새번역,6 더 떨어질 데 없이 무너져 내린 이 몸, 온종일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우리말성경,6 내가 괴로워서 심히 굽어진 채 하루 종일 신음하며 돌아다닙니다.

가톨릭성경,6 저는 더없이 꺾이고 무너져 온종일 슬피 떠돌아다닙니다.

영어NIV,6 I am bowed down and brought very low; all day long I go about mourning.

영어NASB,6 I am bent over and greatly bowed down; I go mourning all day long.

영어MSG,6 And now I’m flat on my face feeling sorry for myself morning to night.

영어NRSV,6 I am utterly bowed down and prostrate; all day long I go around mourning.

헬라어구약Septuagint,6 ιδου παλαιστας εθου τας ημερας μου και η υποστασις μου ωσει ουθεν ενωπιον σου πλην τα συμπαντα ματαιοτης πας ανθρωπος ζων διαψαλμα

라틴어Vulgate,6 ecce mensurabiles posuisti dies meos et substantia mea tamquam nihilum ante te verumtamen universa vanitas omnis homo vivens diapsalma

히브리어구약BHS,6 נַעֲוֵיתִי שַׁחֹתִי עַד־מְאֹד כָּל־הַיֹּום קֹדֵר הִלָּכְתִּי׃

성 경: [시38:6]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짐]

󰃨 구부러졌으며…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 ‘슬픔 중에 다니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슬퍼하면서 가다’이다. 저자는 죄악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 때문에 길을 갈 때에 곧게 펴지 못하고 부정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마치 슬픔을 당한 자기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기 위하여 불결하고 천한 의복을 걸치고 다니듯 말이다(욥 1:20 ; 2:8). 이러한 표현은 전인적인 슬픔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키 케살라이 말레우 니클레 웨엔 메톰 비베사리

개역개정,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새번역,7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니, 이 몸에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말성경,7 내 등이 지글지글 타는 것처럼 아프며 내 몸에 멀쩡한 곳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7 저의 허리는 염증으로 가득하고 저의 살은 성한 데 없습니다.

영어NIV,7 My back is filled with searing pain; there is no health in my body.

영어NASB,7 For my loins are filled with burning; And there is no soundness in my flesh.

영어MSG,7 All my insides are on fire, my body is a wreck.

영어NRSV,7 For my loins are filled with burning, and there is no soundness in my flesh.

헬라어구약Septuagint,7 μεντοιγε εν εικονι διαπορευεται ανθρωπος πλην ματην ταρασσονται θησαυριζει και ου γινωσκει τινι συναξει αυτα

라틴어Vulgate,7 verumtamen in imagine pertransit homo sed et frustra conturbatur thesaurizat et ignorat cui congregabit ea

히브리어구약BHS,7 כִּי־כְסָלַי מָלְאוּ נִקְלֶה וְאֵין מְתֹם בִּבְשָׂרִי׃

성 경: [시38:7]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 일반적으로 ‘허리’는 인간의 힘 그리고 자손을 낳는 능력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Johnson). 따라서 그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다는 것, 즉 그 허리가 상처를 입어 고장이 났다는 것은 재난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의 모든 힘과 생명력이 박탈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열기(*, 칼라)는 ‘불타다’의 명사인데 흔히 ‘질병’, ‘상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이 ‘카라’가 수동태로 사용되면 `…부터 멸시를 당하다’의 뜻이 되기도 한다.

네푸고티 웨니데케티 아드 메오드 솨악티 민나하마트 립비

개역개정,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새번역,8 이 몸이 이토록 쇠약하여 이지러졌기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신음하며 울부짖습니다.

우리말성경,8 내가 힘이 없고 심하게 깨졌으며 마음이 괴로워 신음합니다.

가톨릭성경,8 저는 쇠약해지고 더없이 으스러져 끙끙 앓는 제 심장에서 신음 소리 흘러나옵니다.

영어NIV,8 I am feeble and utterly crushed; I groan in anguish of heart.

영어NASB,8 I am benumbed and badly crushed; I groan because of the agitation of my heart.

영어MSG,8 I’m on my last legs; I’ve had it– my life is a vomit of groans.

영어NRSV,8 I am utterly spent and crushed; I groan because of the tumult of my heart.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νυν τις η υπομονη μου ουχι ο κυριος και η υποστασις μου παρα σου εστιν

라틴어Vulgate,8 et nunc quae est expectatio mea nonne Dominus et substantia mea apud te est

히브리어구약BHS,8 נְפוּגֹותִי וְנִדְכֵּיתִי עַד־מְאֹד שָׁאַגְתִּי מִנַּהֲמַת לִבִּי׃

성 경: [시38:8]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피곤하고 – 이에 대한 히브리어 원형은 ‘푸그'(*)로서 문자적인 뜻은 ‘힘이 없다’,’연약하다’, ‘기진하다’ 등이다. 좀더 구체적로 말하면 열기가 없어 싸늘해 졌다는 것인데 더 나아가 무감각 상태까지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야곱이 그 아들 요셉이 애굽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졸도할 뻔했을 때에도 사용되었다(창45:26).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 용어를 ‘내가 신경이 마비된 사람과 같다’로 번역하기도 한다(Anderson).

󰃨 심히 상하였으매 – 원래의 뜻은 ‘산산조각이 났다’이다. 이것은 마음이 상한 상태이거나 고통과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이 오그라 들었을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51:8 사 19:10 ; 53 ; 57:15).

󰃨 신음하나이다 – 이 구절을 ‘내가 사자처럼 포효하나이다’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는데, 이는 ‘신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아그'(*)가 흔히 사자들의 신음 소리를 가리킬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은유적으로 이 단어는 지성소에서(74:4) 혹은 땅 위에서(렘 2:25) 소동하는 침략군을 묘사할 때, 욕심 많은 관원들(슥3 3) 그리고 포효하는 대적들(22:13)을 사자에 비유할 때에도 사용된다. 또한 심지어 여호와의 음성을 묘사할 때에(렘 25:30 ; 암 1:2),그리고 본절에서처럼 고통자의 고뇌에 찬 신음소리를 묘사할 때에도 사용된다(22:1 ; 욥 3:24).

아도나이 넥데카 콜 타아와티 웨안하티 밈메카 로 니스타라

개역개정,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새번역,9 아, 주님, 나의 모든 탄원,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나의 모든 탄식, 주님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말성경,9 오 여호와여, 내가 바라는 것이 다 주 앞에 있습니다. 내 한숨 소리를 주께 숨기지 않겠습니다.

가톨릭성경,9 주님, 당신 앞에 저의 소원 펼쳐져 있고 저의 탄식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영어NIV,9 All my longings lie open before you, O Lord; my sighing is not hidden from you.

영어NASB,9 Lord, all my desire is before You; And my sighing is not hidden from You.

영어MSG,9 Lord, my longings are sitting in plain sight, my groans an old story to you.

영어NRSV,9 O Lord, all my longing is known to you; my sighing is not hidden from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9 απο πασων των ανομιων μου ρυσαι με ονειδος αφρονι εδωκας με

라틴어Vulgate,9 ab omnibus iniquitatibus meis erue me obprobrium insipienti dedisti me

히브리어구약BHS,9 אֲדֹנָי נֶגְדְּךָ כָל־תַּאֲוָתִי וְאַנְחָתִי מִמְּךָ לֹא־נִסְתָּרָה׃

성 경: [시38:9]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짐]

󰃨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 하나님만이 자신의 모든 필요와 요구하는 바를 아신다는 고백이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요구를 반복하지 않는데 이는 자신의 모든 경우를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소원'(*,타아와)은 이와 동일한 단어가 10:17 ; 잠 11:23 ; 19:22 ; 사 26:8)등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용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흔히 ‘슬픔’으로 번역되기도 한다(G. R. Driver).

󰃨 나의 탄식이…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탄식을 확실히 듣고 자신의 모든 경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셨으리라는 기대를 저자 편에서 강조하는 표현(Bar-nes)이다. 이처럼 본 시의 저자 다윗은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중재를 해주시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립비 세하르할 아자바니 코히 웨오르 에나이 감 헴 엔 잍티

개역개정,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새번역,10 심장은 거칠게 뛰고, 기력은 다 빠지고, 눈조차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말성경,10 내 가슴이 뛰고 내 힘이 다 빠져 내 눈빛마저도 흐려졌습니다.

가톨릭성경,10 제 심장은 팔딱거리고 기운도 제게서 사라졌으며 저의 눈조차 빛을 잃었습니다.

영어NIV,10 My heart pounds, my strength fails me; even the light has gone from my eyes.

영어NASB,10 My heart throbs, my strength fails me; And the light of my eyes, even that has gone from me.

영어MSG,10 My heart’s about to break; I’m a burned-out case. Cataracts blind me to God and good;

영어NRSV,10 My heart throbs, my strength fails me; as for the light of my eyes–it also has gone from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εκωφωθην και ουκ ηνοιξα το στομα μου οτι συ ει ο ποιησας με

라틴어Vulgate,10 obmutui %et; non aperui os meum quoniam tu fecisti

히브리어구약BHS,10 לִבִּי סְחַרְחַר עֲזָבַנִי כֹחִי וְאֹור־עֵינַי גַּם־הֵם אֵין אִתִּי׃

성 경: [시38:10]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 심장이 뛰고 – ‘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하르'(*)로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하다’, ‘여기저기 여행하다’, ‘물건을 팔기위해 여행하다’, ‘헐떡거리다’ 등의 뜻이 있다(창 23:16 ; 37:28 ; 42:34). 그런데 여기서와 같이 심장, 즉 마음이 적용될 때에 이 용어는 ‘심장이 두근거리다’, ‘뛰다’, ‘맥박이 빨라지다’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심장의 고동을 의미하는데 이 점에 치중하여 혹자는 본 구절을 ‘나의 가슴이 맹렬히 뛰다'(Boylan) 혹은 조금은 지나치게 ‘마음이 …에게 흘리다’로 번역하기도 한다(Thomas).

󰃨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 이 구절은 ‘하팍스 레고메논'(ahpax iegomenon), 즉 구약에서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 부분으로서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다(Anderson). 보통 성경에서 ‘…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이 소생되었다’는 것을 뜻함을 고려할 때(13:3 ; 삼상 14:29), 본절은 저자의 활력과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앞 부분의 증상들로 인하여 본 시편 저자의 생명이 거의 꺼져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분명하다(Barnes).

오하바이 웨레아이 민게드 니그이 야아모두 우케로바이 메라홐 아마두

개역개정,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새번역,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내 상처를 바라보곤 비켜섭니다. 가족들마저 나를 멀리합니다.

우리말성경,11 내 상처 때문에 내 친구들과 동료들도 나를 피하고 내 이웃들도 나를 멀리합니다.

가톨릭성경,11 제 동무들과 이웃들은 저의 재앙을 보고 물러서 있으며 제 친척들도 멀찍이 서 있습니다.

영어NIV,11 My friends and companions avoid me because of my wounds; my neighbors stay far away.

영어NASB,11 My loved ones and my friends stand aloof from my plague; And my kinsmen stand afar off.

영어MSG,11 old friends avoid me like the plague. My cousins never visit, my neighbors stab me in the back.

영어NRSV,11 My friends and companions stand aloof from my affliction, and my neighbors stand far off.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αποστησον απ’ εμου τας μαστιγας σου απο της ισχυος της χειρος σου εγω εξελιπον

라틴어Vulgate,11 amove a me plagas tuas

히브리어구약BHS,11 אֹהֲבַי וְרֵעַי מִנֶּגֶד נִגְעִי יַעֲמֹדוּ וּקְרֹובַי מֵרָחֹק עָמָדוּ׃

성 경: [시38:11]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상처 – 원어는 ‘네가'(*)로서 문자적인 뜻은 ‘한번 내려치기’, ‘한번 바람이 불기’이다. 여기의 ‘한번 내려치기’란 하나님이 인간 위에 내리신 재앙이나 심판이란 의미이다(창 12:17 ; 출 11:1). 그래서 여기 일반적인 의미의 재앙이나 심판을 구체화시켜서 ‘문등병'(레 13:2 ; 신 24:8)혹은 그와 유사한 ‘피부병’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Jerome, Anderson). 이에 대한 근거로는 그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까지도 그를 멀리했다는 문맥에 의거한다. 그런데 이 주장이 참고는 될 수 있으나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명백한 성경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와예나케슈 메바크쉐 나프쉬 웨도레쉐 라아티 딥베루 하요트 우미레모트 콜 하욤 예흐구

개역개정,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새번역,12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올무를 놓고, 내 불행을 바라는 자들이 악담을 퍼부으며, 온종일 해칠 일을 모의합니다.

우리말성경,12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덫을 놓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들이 악담을 퍼부으며 하루 종일 속일 궁리만 합니다.

가톨릭성경,12 제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덫을 놓고 제 불행을 꾀하는 자들은 파멸을 이야기하며 온종일 간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영어NIV,12 Those who seek my life set their traps, those who would harm me talk of my ruin; all day long they plot deception.

영어NASB,12 Those who seek my life lay snares for me; And those who seek to injure me have threatened destruction, And they devise treachery all day long.

영어MSG,12 My competitors blacken my name, devoutly they pray for my ruin.

영어NRSV,12 Those who seek my life lay their snares; those who seek to hurt me speak of ruin, and meditate treachery all day long.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ν ελεγμοις υπερ ανομιας επαιδευσας ανθρωπον και εξετηξας ως αραχνην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πλην ματην ταρασσεται πας ανθρωπος διαψαλμα

라틴어Vulgate,12 a fortitudine manus tuae ego defeci in increpationibus propter iniquitatem corripuisti hominem et tabescere fecisti sicut araneam animam eius verumtamen vane %conturbatur; omnis homo diapsalma

히브리어구약BHS,12 וַיְנַקְשׁוּ מְבַקְשֵׁי נַפְשִׁי וְדֹרְשֵׁי רָעָתִי דִּבְּרוּ הַוֹּות וּמִרְמֹות כָּל־הַיֹּום יֶהְגּוּ׃

성 경: [시38:12]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 이것은 본 시편 기자가 약해지고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아, 도움 받을 사람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린 사실을 이용하여 대적들이 자신을 해(害)하려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여기의 대적들을 기자의 친구 및 친척들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Kraus, Anderson), 이는 문맥상 맞지 않는다.

󰃨 괴악한 일을 말하여 – 문자적인 뜻은 ‘불행스러운 것들을 말하여’이다. 이것은 기자의 대적들이 그에 대한 증상 모략의 말을 했던 것을 가리킨다. 욥의 세 친구가 그랬듯이 그의 대적들은 기자가 아픈 것은 죄로 인한 징벌이라고 다그쳤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가 만날수 없는 자들에게까지 그에 대한 헛된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다(Anderson).

와아니 케헤레쉬 로 에쉐마 우케일렘 로 이프타흐 피우

개역개정,13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새번역,13 그러나 나는 아예 귀머거리가 되어 듣지 않았고, 벙어리가 되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성경,13 그러나 내가 귀머거리같이 듣지도 못하고 벙어리같이 입도 벙긋하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러나 저는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합니다.

영어NIV,13 I am like a deaf man, who cannot hear, like a mute, who cannot open his mouth;

영어NASB,13 But I, like a deaf man, do not hear; And I am like a mute man who does not open his mouth.

영어MSG,13 But I’m deaf and mute to it all, ears shut, mouth shut.

영어NRSV,13 But I am like the deaf, I do not hear; like the mute, who cannot speak.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εισακουσον της προσευχης μου κυριε και της δεησεως μου ενωτισαι των δακρυων μου μη παρασιωπησης οτι παροικος εγω ειμι παρα σοι και παρεπιδημος καθως παντες οι πατερες μου

라틴어Vulgate,13 exaudi orationem meam Domine et deprecationem meam auribus percipe lacrimas meas ne sileas quoniam advena sum apud te et peregrinus sicut omnes patres mei

히브리어구약BHS,13 וַאֲנִי כְחֵרֵשׁ לֹא אֶשְׁמָע וּכְאִלֵּם לֹא יִפְתַּח־פִּיו׃

성 경: [시38:13]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짐]

󰃨 듣지 아니하고 – 대적들의 헛된 자극에 반응을 보이거나 분노하지도 않고 그들이 아무 말도 안한 것처럼 조용히 인내했다는 말이다. 이를 좀더 영적으로 말하면 죄를 인식함으로써 변명도, 논쟁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처분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그의 무죄성을 주장하였던 욥과 다르다. 즉, 본 시편 기자는 자신의 고난 속에서도 계속 침묵을 유지했는데 그 까닭은 자신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는 상태지만 죄가 있다면 그것을 징벌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Anderson).

와에히 케이쉬 아쉘 로 쇼메아 웨엔 베피우 토카호트

개역개정,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새번역,14 참으로 나는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었고, 입은 있어도, 항변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14 이렇게 나는 듣지 못하고 입은 있으나 대답할 수 없는 사람처럼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4 저는 듣지 못하고 입으로 대꾸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어NIV,14 I have become like a man who does not hear, whose mouth can offer no reply.

영어NASB,14 Yes, I am like a man who does not hear, And in whose mouth are no arguments.

영어MSG,14 I don’t hear a word they say, don’t speak a word in response.

영어NRSV,14 Truly, I am like one who does not hear, and in whose mouth is no retort.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ανες μοι ινα αναψυξω προ του με απελθειν και ουκετι μη υπαρξω

라틴어Vulgate,14 remitte mihi ut refrigerer priusquam abeam et amplius non ero

히브리어구약BHS,14 וָאֱהִי כְּאִישׁ אֲשֶׁר לֹא־שֹׁמֵעַ וְאֵין בְּפִיו תֹּוכָחֹות׃

성 경: [시38:14]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변박(辨駁)이 없나이다 – 문자적인 뜻은 ‘반응이 없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변호를 위한 변론이 없었다는 것이다(욥 23:4 참조, Perowne). 칼빈(Calvin) 은 본 시편 저자가 자신을 반응이 없는 자에 비유한 이유를 두 가지 드는데. 그 하나는 그의 대적들의 불공정성에 강압을 당하여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자발적 굴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후자의 경우만을 옳다고 본다(Perowne). 왜냐하면 그가 응답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롬 12:19 참조). 한편, 여기서 다윗은 고뇌하며 고통당하는 자의 모형으로 나타나 있다(사 53:7 ; 벧전 2:23). 그러나 이 모형론적인 해석은 1-4절의 문맥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고통 당하는 자이신 그리스도 역시 고통 중에서 침묵하신 것은 사실이나 그분은 죄가 있어서 그 고통을 당하신 것은 아니므로 죄를 언급하고 있는 1-4절은 메시야적 해석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키 레카 아도나이 호할티 앝타 타아네 아도나이 엘로하이

개역개정,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새번역,15 주님, 내가 기다린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친히 대답하여 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말성경,15 오 여호와여, 내가 주를 갈망하니 주께서 들어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께 바랍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 대답해 주시리이다.

영어NIV,15 I wait for you, O LORD; you will answer, O Lord my God.

영어NASB,15 For I hope in You, O LORD; You will answer, O Lord my God.

영어MSG,15 What I do, GOD, is wait for you, wait for my Lord, my God–you will answer!

영어NRSV,15 But it is for you, O LORD, that I wait; it is you, O LORD my God, who will answer.

헬라어구약Septuagint,15 (없음)

라틴어Vulgate,15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5 כִּי־לְךָ יְהוָה הֹוחָלְתִּי אַתָּה תַעֲנֶה אֲדֹנָי אֱלֹהָי׃

성 경: [시38:15]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 당신에게 내가 소망을 두어왔기 때문입니다’이다. 문장 맨 앞에 놓인 ‘키'(*,왜냐하면)는 12-14절에 언급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저자가 인내하였던 이유를 밝히는 원인 접속사이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당하게 모략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실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는 그의 대적들로 인한 수모와 억울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 같은 아름답고도 완전한 모범을 벧전 2: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키 아말티 펜 이스메후 리 베모트 라그리 알라이 힉딜루

개역개정,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새번역,16 내가 재난에 빠져 있을 때에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내 원수들이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발이 힘을 잃고 비틀거릴 때에도, 그들이 나를 보고 우쭐거리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우리말성경,16 내가 말하기를 “내 말을 들어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할 것입니다. 내 발이 미끄러질 때 그들이 우쭐거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6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 그들이 나를 두고 기뻐하는 일이 없고 내 발이 흔들릴 때 내게 우쭐대는 일이 없었으면.’

영어NIV,16 For I said, “Do not let them gloat or exalt themselves over me when my foot slips.”

영어NASB,16 For I said, “May they not rejoice over me, Who, when my foot slips, would magnify themselves against me.”

영어MSG,16 I wait and pray so they won’t laugh me off, won’t smugly strut off when I stumble.

영어NRSV,16 For I pray, “Only do not let them rejoice over me, those who boast against me when my foot slips.”

헬라어구약Septuagint,16 (없음)

라틴어Vulgate,16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6 כִּי־אָמַרְתִּי פֶּן־יִשְׂמְחוּ־לִי בְּמֹוט רַגְלִי עָלַי הִגְדִּילוּ׃

성 경: [시38:16]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가 말하기를 – 개역 성경의 번역은 원문 ‘키 아마르티'(*)를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AV는 이 구절을 쉽게 풀이해 놓았다. ‘(저희가 네게 대하여 즐거워하지 못하도록) 제가 기도하였나이다’ 흑은 ‘(저희가 나로인하여 계속해서 즐거워하지 못하도록) 나의 탄원을 아뢰었나이다.’

󰃨 망자 존대(妄自尊大) – ‘저자에 대항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자’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저자의 과거 및 현재의 경험을 언급하는 말이다. 이것은 욥 19:5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로 패역 무도한 자가 스스로 존귀하고 큰 자로 착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키 아니 레첼라 나콘 우마크오비 네게디 타미드

개역개정,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새번역,17 나는 곧 쓰러질 것 같으며, 고통은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7 내가 지금 넘어지게 됐으며 고통이 내 앞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7 저는 곧 넘어질 지경이며 저의 고통은 늘 제 앞에 있습니다.

영어NIV,17 For I am about to fall, and my pain is ever with me.

영어NASB,17 For I am ready to fall, And my sorrow is continually before me.

영어MSG,17 I’m on the edge of losing it– the pain in my gut keeps burning.

영어NRSV,17 For I am ready to fall, and my pain is ever with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없음)

라틴어Vulgate,17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7 כִּי־אֲנִי לְצֶלַע נָכֹון וּמַכְאֹובִי נֶגְדִּי תָמִיד׃

성 경: [시38:17]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키 아니 레첼라 나콘) – 문자적인 뜻은 ‘내가 이제 막 중단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무엇을 의지하려고 하면서 (예를 들면 담벽 같은 것) 한편으로는 자꾸 넘어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면서 자꾸 넘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할수 있다. 본절에서 저자는 자신의 힘이 거의 고갈되어서 계속되는 죄악 속으로 넘어질 위험에 처했든지 아니면 가중되는 짐 때문에 자꾸 가라앉고 있는, 그래서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승리의 쾌재를 부를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Barnes). 그로 인한 고통은 거의 죽음으로 인도하는 고통이기도 하다(Anderson).

키 아오니 악기드 에드아그 메핱타티

개역개정,18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새번역,18 진정으로 나는 나의 잘못을 털어놓고, 나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우리말성경,18 내가 내 죄를 고백하겠습니다. 또 내가 내 죄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가톨릭성경,18 정녕 저는 제 죄악을 고백하며 저의 죄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영어NIV,18 I confess my iniquity; I am troubled by my sin.

영어NASB,18 For I confess my iniquity; I am full of anxiety because of my sin.

영어MSG,18 I’m ready to tell my story of failure, I’m no longer smug in my sin.

영어NRSV,18 I confess my iniquity; I am sorry for my sin.

헬라어구약Septuagint,18 (없음)

라틴어Vulgate,18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8 כִּי־עֲוֹנִי אַגִּיד אֶדְאַג מֵחַטָּאתִי׃

성 경: [시38:18]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 죄막을 고하고 – 본절에서도 역시 ‘키'(*, 왜냐하면)가 나오므로 15절에서부터 본절 서두까지 계속해서 이 접속사가 나온 셈이된다. 이것은 15-18절의 내용들이 일련의 사상의 흐름을 공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들 절들은 11-14절에서 계속된 대적들의 음모와 그로 인한 수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묵묵 부답이었던 이유를 밝힌다(Perowne). 먼저 15절은 하나님께서 저자 자신에게 응답하시리라는 기대를, 16절은 문제를 저자 자신의 수중으로 돌려 해결하려 할때는 대적들이 쾌재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17절은 자신의 연약함을 그리고 본절은 자기 속에 고백해야만 하는 죄가 있음을, 그 각각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한편, 여기의 ‘키’는 ‘참으로’, ‘진실로’ 등을 뜻하는 강조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 시편 저자는 그의 심각한 상황속에서 그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선포하는 일임을 강조해서 밝힌다(32:1). 하나님의 자녀들도 땅 위에 살면서 갖가지 역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중요한 한가지는 죄가 그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웨오예바이 하이욤 아체무 웨랍부 소네아이 솨켈

개역개정,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새번역,19 강력한 나의 원수들은 점점 많아지기만 하고, 나를 까닭 없이 미워하는 자들도 점점 불어나기만 합니다.

우리말성경,19 그런데 내 적들은 활기차고 힘이 넘치며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가톨릭성경,19 제게 까닭 없이 대적하는 자들은 기세등등하고 저를 부당하게 미워하는 자들은 그 수도 많습니다.

영어NIV,19 Many are those who are my vigorous enemies; those who hate me without reason are numerous.

영어NASB,19 But my enemies are vigorous and strong; And many are those who hate me wrongfully.

영어MSG,19 My enemies are alive and in action, a lynch mob after my neck.

영어NRSV,19 Those who are my foes without cause are mighty, and many are those who hate me wrongfully.

헬라어구약Septuagint,19 (없음)

라틴어Vulgate,19 (없음)

히브리어구약BHS,19 וְאֹיְבַי חַיִּים עָצֵמוּ וְרַבּוּ שֹׂנְאַי שָׁקֶר׃

성 경: [시38:19]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내 원수가 활발하며 – ‘활발하며'(*, 하이임)는 ‘생기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문자적인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본절을 ‘나의 대적들은 활기차고 강하며’로 잘 번역하고 있다(De Wett).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저자 자신이 연약하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때 그의 대적들은 생기가 왕성하고 육체적으로도 아주 건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적들은 그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추진력 있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저자의 연약함을 그들의 유일한 점으로 삼았으며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저자는 그들과 겨를 수도 없었다. 어떤 면으로 봐도 불리한 그는 이제 하나님의 중재 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Barnes).

우메솰레메 라아 타하트 토바 이스테누니 타하트 레도피 라데피 토브

개역개정,20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새번역,20 나의 선을 악으로 갚는 저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유익을 도모할 때, 오히려 나를 대적합니다.

우리말성경,20 내 적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선한 것을 따른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0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 제가 선을 추구한다고 저를 공격합니다.

영어NIV,20 Those who repay my good with evil slander me when I pursue what is good.

영어NASB,20 And those who repay evil for good, They oppose me, because I follow what is good.

영어MSG,20 I give out good and get back evil from God-haters who can’t stand a God-lover.

영어NRSV,20 Those who render me evil for good are my adversaries because I follow after goo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없음)

라틴어Vulgate,20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0 וּמְשַׁלְּמֵי רָעָה תַּחַת טֹובָה יִשְׂטְנוּנִי תַּחַת [כ= רְדֹופִי] [ק= רָדְפִי]־טֹוב׃

성 경: [시38:20]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 본 구절이 묘사하는 상황의 역설은, 그의 대적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가 아주 공평하게 대해 주었던 자들이라는 것이다. 유사한 상황이 35:12 ; 109:3 등에 묘사에 묘사되어 있다.

󰃨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 ‘연고'(*, 타하트)의 본래의 뜻은 ‘아래 부분, 아래, 그리고 기초가 되는 부분’ 등이다. 본 구절의 의미는 본 시편 기자의 대적들이 그에게 악행했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의로운 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대적을 당하거나 고난을 받는 출발이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를의 죄를 고백하고 언행심사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악인들이 그들을 미워하고 넘어뜨리게 하는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알 타아즈베니 아도나이 엘로하이 알 티르핰 밈멘니

개역개정,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새번역,21 주님,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말성경,21 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오 내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가톨릭성경,21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영어NIV,21 O LORD, do not forsake me; be not far from me, O my God.

영어NASB,21 Do not forsake me, O LORD; O my God, do not be far from me!

영어MSG,21 Don’t dump me, GOD; my God, don’t stand me up.

영어NRSV,21 Do not forsake me, O LORD; O my God, do not be far from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1 (없음)

라틴어Vulgate,21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1 אַל־תַּעַזְבֵנִי יְהוָה אֱלֹהַי אַל־תִּרְחַק מִמֶּנִּי׃

성 경: [시38:21]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짐]

󰃨 나를 버리지 마소서 – 11-14절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말로 풀어볼 수 있겠다. ‘나를 나의 고통, 아픔, 고뇌 속에 버려 두지 마소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마소서. 중얼중얼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맡겨 두지 마소서. 나의 대적의 비난에 나를 남겨 두지 마소서'(Barnes). 그런데 저자가 이같이 절규하는 이유는 하나님 고통하는 자에 대해 잠정적로 ‘외면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22:1 ; 27:9 ; 71:9, 18, Anderson ).

후솨 레에즈라티 아도나이 테슈아티

개역개정,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새번역,22 빨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

우리말성경,22 오 여호와여, 내 구원이시여, 어서 와서 나를 도우소서.

가톨릭성경,22 주님, 저의 구원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영어NIV,22 Come quickly to help me, O Lord my Savior.

영어NASB,22 Make haste to help me, O Lord, my salvation!

영어MSG,22 Hurry and help me; I want some wide-open space in my life!

영어NRSV,22 make haste to help me, O Lord, my salvation.

헬라어구약Septuagint,22 (없음)

라틴어Vulgate,22 (없음)

히브리어구약BHS,22 חוּשָׁה לְעֶזְרָתִי אֲדֹנָי תְּשׁוּעָתִי׃

성 경: [시38:22]

주제1: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함]

주제2: [고통의 무거운 짐]

󰃨 속히 나를 도우소서 – 즉각 하나님이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기도로서 저자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엿볼 수 있다(22:20 ; 40:14 ; 71:12 ; 141:1).

󰃨 주 나의 구원이시여 – 그의 시련은 하나님 앞으로 그를 인도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고통과 시련이 의도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시련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시련은 괴로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시련의 종국적인 목적도 달성치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련과 고통의 본 목적을 상기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여러 종류의 역경들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역경들로 인해서 죄를 멀리할수 있고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늘에 준비된 것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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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38편 1~22절

제목 : 나를 버리지 마소서

일자 : 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1. 학자들은 시편 38 편을 시편 6, 35, 51 편과 함께 다윗의 밧세바 간은 사건 ( 삼하 11 장 ) 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다윗은 중병을 얻어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책망과 징계를 하지 말아주시길 간구했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가 화살처럼 자신을 찌르고 , 강한 손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2). 자신의 살은 성한 곳이 없고 , 이제는 뼛속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을 느꼈는데 ,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3). 다윗은 자신의 죄악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아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4). 그는 밧세바 사건을 통해 가볍게 여긴 죄가 눈덩이와 같이 커지면서 또 다른 죄를 낳고 , 그 죄가 또 다른 죄를 낳는 그래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됐음을 경험했습니다 .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 그의 죄는 그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했고 ,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은 죄의 무거움을 언제 느껴보셨습니까 ? 가볍게 여긴 죄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

2. 다윗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5).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단순히 이해력과 같은 지적 차원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행동 , 즉 죄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 그의 몸은 고통으로 인해 아프고 구부러지고 뒤틀린 상태였고 , 허리와 살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6~7). 몸은 피곤함에 지쳐있고 , 마음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8).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 점점 기력이 쇠하여 지면서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20). 그는 하루 종일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 다윗은 “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9) 라고 기도합니다 . 다윗이 기도는 차라리 절규와 울부짖음에 가까웠습니다 . 자신을 괴롭게 하는 질병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 그러나 이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갔던 것입니다 . 죄의 문제는 결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형벌입니다 . 진정으로 죄를 해결 받기 원한다면 주님께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 나 혼자 끙끙 앓고 고민하며 아무리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사죄의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 무거운 죄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 눈보다 희게 씻어주실 것입니다 .

3. 죄로 인해 건강을 잃어버리자 다윗의 주변에 있던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그를 떠나갔습니다 (11). 다윗을 위로할 자는 없었습니다 . 아니 되려 악한 자들이 일어나 다윗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12). 원수들의 악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지만 , 다윗은 못 듣는 자와 말 못하는 자와 같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13~14).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 다윗은 “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랏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5) 라고 간구합니다 . 적들이 온갖 거짓된 험담과 악한 말로 비난하며 조롱하고 , 심지어 생명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 다윗은 그들과 맞서지 않고 침묵을 지켰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다윗에게 있어서 중한 질병보다 더 큰 고통은 대적이 자신으로 인해 기뻐하며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16). 다윗을 미워하는 원수들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고통을 가중 ( 加重 ) 했습니다 (19). 그들은 악을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었습니다 . 다윗은 선을 따르기 원했지만 , 그들은 그러한 다윗을 대적했습니다 (20). 물론 다윗이 범죄함으로 징벌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악한 자들이 그 일을 즐거워하며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 죄로 인해 슬퍼했습니다 (17~18).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마시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그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와 질병의 치유와 원수의 핍박에서 놓임 받는 것을 포함한 총체적인 구원입니다 .

4.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깊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 그의 몸과 마음은 상했고 , 함께했던 자들은 떠나갔습니다 . 원수들은 조롱했고 , 심지어 생명을 빼앗으려고까지 했습니다 .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 우리 역시 다윗과 같이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비통함과 처절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는 그러할 때 ,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 우리를 죄에서 , 고통 중에서 , 원수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 물론 우리의 모든 고통이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 혹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 그리고 자신의 죄를 돌이키려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라고 멀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은총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 꼭꼭 숨겨두고 있는 죄가 있다면 , 겸손히 하나님께 가지고 나갑시다 . 그리고 용서를 구합시다 .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될 것입니다 !

5. 찬양 : 정결한 마음주시옵소서

6. 기도

“ 하나님 아버지 , 죄의 무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 저희는 여전히 죄에 둔감한 자들이오니 주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여 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알게 하시고 , 돌이켜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

그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갔습니다 .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뿐만 아니라 질병과 원수들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

시편 38편 – 통회하는 자의 간구와 소망

시편 38 편

찬송가 177 장 ( 새찬송가 190 장 )

0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0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03.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0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0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0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0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0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0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13.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8.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19.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20.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1.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편 38편 – 통회하는 자의 간구와 소망”

본시는 시편의 7대 참회시(6, 32. 38. 39. 51, 130, 143편) 중의 하나로서 32. 51편과 동일하게 다윗의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삼하 11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본시는 다른 참회시들에 비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엄중함과 그로 말미암은 고통을 집중적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즉 시인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극도의 고통뿐만 아니라, 그런 시인의 연약함을 틈타 원수들이 대적하고 친구와 친척들마저 떠나버린 사회적인 소외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유적 표현들을 통해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러한 하나님의 징계의 엄중함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중한 징계가 전적으로 자신의 죄 때문임을 고백하면서, 이러한 죄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통회 속에서 하나님께 사죄의 은총을 간절하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 시편에는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 시편이 나중에 후대 사람들에게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의 엄중함에 대해서 기억하게 하는 시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자복의 기도로 많이 사용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여호와의 징계와 통회(1-8절)

【1-2절】시인은 전형적인 탄식시의 시작으로,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부른 후에 즉시 탄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진노로 그를 징계하시기를 그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화살이 자기를 찌르고 주의 손이 누르신다는 표현은 아주 심한 고뇌를 표현합니다.

[3-8절】시편 기자는 그의 죄에 대한 징벌로 당하는 고통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그가 당하는 고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의 영혼이 죄에 민감하여 자기 살과 영혼에 저주를 받았다고 느끼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육체적 질병에 대한 묘사들은 욥이 당했던 질병의 고통을 연상시킴으로써, 시인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이 호소하는 질병의 고통들은 실제로 그가 죄로 인하여 몸에 심한 병이 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는 실제로 그런 육체적인 병이 없더라도 그렇게 느낀다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즉 시인은 지금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뼈저리게 뉘우치며 가슴 아프게 후회하면서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디거나 진실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죄를 짓고서도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거나 이런 통회의 과정을 겪지 않지만, 실제로 죄는 거듭난 영혼에게는 이러한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원수들에 대한 고소(9-20절)

【9-12절】죄는 단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리적인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괴로움을 표현할 뿐 아니라, 자기 친지들이 자신을 피하고 원수들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3-16절】다윗은 여기서 주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를 구하실 것이라는 그의 확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자기 원수들의 공격에 대해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귀먹은 자같이, 벙어리와 같이 행동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상황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임을 자인하는 행동으로서, 이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한 것이기도 합니다.

【17-20절】시인은 자기 죄를 고백하며 그 죄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인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원수는 활발하며 무수하고, 악을 행하며 자기를 대적하기를 빈번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자기를 치는 원수들에 대하여 고소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며 시인이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공격하는 자들로서 사실은 하나님의 대적들이기 때문으로서, 비록 그 자신이 죄를 범하였지만 이런 악인들과는 차별적으로 대해 주실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나의 구원이시여(21-22절)

【21-22절】이 시편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노래나 하나님을 찬양함이 없이 다급한 간구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간절한 호소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기의 구원이라는 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여호와가 자기 하나님이시며 자기 구원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이미 의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이 시편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까?

2. 본시의 시인이 ‘죄를 회개하는 의인’이라면 그의 원수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나의 지은 죄를 심상히 여기지 않고, 통회하며 자복하게 하소서!”

◈ 믿음의 글 ◈ “ 통회가 없는 값싼 죄 용서의 교리 ”

시편 38편은 다윗이 지은 참회시의 하나로서 다른 참회시보다도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의 엄중함이 집중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시에는 다른 참회시처럼 마지막에 구원을 확신하는 내용과 찬양이 없어서, 51편이나 32편의 기록 시점보다 더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며, 어쩌면 다윗이 아직도 죄 사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죄의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확신을 얻기 전까지 그가 겪어야만 했던 하나님의 징계와 그로 말미암은 고통과 함께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진실로 아파하며 자백한 내용이 본시의 주된 주제로서, 그런 면에서 본시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기까지 죄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아파하며 통회(痛悔)를 해야 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 ‘값싼’ ‘기계적인 용서’의 교리를 믿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즉,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통회하는 과정이 없이 그저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이라는 것만 죄 용서의 조건으로 제시하면 자동적으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런 천박한 죄 용서의 개념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본 시편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과 피와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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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징계(시 38)

제목: 죄와 징계_죄로 인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녀의 기도

본문: 시편 38편

설교자: 최종혁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랑은 그 대상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신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 12:5-10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징계하신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육신의 부모도 우리에 대하여 그렇게 했고, 우리도 우리의 자녀에 대하여 그렇게 한다. 자녀의 유익을 위해서 자녀를 유익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사랑과 징계를 함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올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징계에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징계를 당할 때는 그것이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유익을 위한 일은 즐거운 일일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개념과 고통의 개념을 함께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랑과 고통은 함께 있으면 안 될 말들 같은데, 사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우리는 시편 38편에 기록된 다윗을 말을 통해 그 고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징계의 고통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다윗이 경험한 징계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사실, 그 고통의 크기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녀의 삶 가운데 있는 죄를 미워하시는 지를 보여준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셔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다윗이 죄로 인한 고통 가운데서 드리는 탄식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런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배우기 원한다.

표제에 [다윗의 기념하는 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기록한 시로서 기념 혹은 기억하는 시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확실치 않다. 레위기에 나오는(레 5:12-13) 기념 제물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단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을 기억하기 위한 시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시편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제목이다. 그런데 같은 제목이 시편 70편에도 나온다. 두 시편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인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라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금의 상황이 너무 고통스럽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상황에 두신 것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드는 그런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1-14절에서 볼 수 있다.

징계와 탄원(1~14절)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탄원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1절)

이 탄원은 시편 6편 1절과 거의 같다. 비슷한 상황에서 기록한 시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시편을 보면 때론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시편에서 다윗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고 있고 징계를 당하고 있다.

원인은 자신의 죄다.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3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4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5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18절)

어떤 죄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다윗은 분명히 자신이 죄를 지었고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죄가 항상 그렇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무엇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인지 안다. 다윗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에는 죄를 택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죄를 범하는 그 순간에는 그 ‘정신’이라는 것이 없다. 순간의 쾌락을 원하는 감정이 있고, 이건 어쩔 수 없고 뭐 나라고 대단한 그리스도인이냐는 자기 합리화가 있고, 누구나 이런 죄는 가지고 살아간다는 변명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나를 책망하셔서 죄를 죄로서 보게 하시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된다.

다윗은 지금 그런 상황에 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로 인한 죄책감이 자신을 짓누른다(4절).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에 다윗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다윗이 이렇게 자신의 죄의 무게를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하셨을 뿐 아니라, 징계하셨기 때문이다. 이 징계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었고 다윗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2절)라고 표현한다. 찌르는 듯한 고통, 압사될 듯한 압박감이 그에게 있었다. 그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었고 뼈에 평안함이 없다(3절). 그의 상처가 썩어서 악취가 난다(5절). 다윗은 몸을 펼 수조차 없었다(6절). 고통 중에 평안히 쉴 수 없었고 슬픔 중에 다녀야 했다. 그의 허리에는 열기가 가득했다(7절). 아마 타는 듯한 고통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다윗은 고통 중에 기운을 잃었고 상했다(8절). 몸이 부서졌다는 말이다. 그의 마음은 불안했고 신음했다(8절). 여기 신음은 시름시름 앓는다는 의미보다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으로 몸부림치며 소리치는 모습에 더 가깝다.

다윗이 말한 이런 고통의 하나만이라도 내 삶의 어느 순간에 지속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마 심한 두통으로 고생하거나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다윗의 이런 표현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보이지 않는 곳만 아팠던 것이 아니고 보이는 살까지도 엉망이 되어 몸에서 악취가 날 정도였다. 그 상처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멀리할 정도였다.

이것이 다윗이 처한 상황이었고 그가 당하고 있는 징계였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지만 또한 동시에 그 직접적인 책임은 자신의 죄 때문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이런 징계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다윗을 버린 것처럼, 다윗을 진노 가운데 심판하실 것처럼 대하셨다. 다윗의 죄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 비로소 다윗은 자신의 죄를 바로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럼 왜 다윗은 1절에서 “책망하지 마시고, 징계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할까? 마땅히 당할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견디지 않고 왜 이런 탄식을 하고 기도를 할까? 9절에서도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 지금 제 상황을 잘 아시고 제가 무엇을 구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재차 1절의 탄원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유여하를 떠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씀을 보면 다윗은 책망과 징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주의 ‘노하심’으로 책망하시는 것, ‘분노하심’으로 징계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주의 노하심, 분노하심의 결과는 징계가 아니라 형벌이다. 징계와 형벌은 다르다. 형벌은 죄에 대한 대가를 모두 치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원칙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의 상태와는 관계가 없다. 죄를 짓게 된 상황이나, 그 후의 뉘우침 등에 관계없이 죄 자체를 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형벌이다.

하지만 징계는 죄를 깨닫고 돌이켜서 회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재판관은 죄수에게 형벌을 내리지만, 부모는 자녀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한다. 단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재판관은 죄수가 형을 다 치르고 다시 죄를 지으면 또 형벌을 내리면 그만이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징계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상황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징계하고 계시다면 이젠 그만 멈춰달라는 것입이다. 물론 징계의 끝은 징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징계를 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그에게 합당한 것은 죄에 대한 대가이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그것을 거둬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재판관이 아닌 아버지로서 자신을 대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다윗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다. 그의 유일한 희망이 지금 그를 징계하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10절부터의 말씀이 이것을 말한다.

그 스스로도 무능력하다(10절). 심장은 빨리 뛴다. 고통과 불안으로 초조해 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력이 없고 눈의 빛이 없다. 구약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에 대한 묘사와 유사하다. 다윗 자신은 마치 죽은 자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를 도울 만한 사람도 주변에는 없다(11절). 다윗의 상태가 그와 가까운 자들을 그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자들이 다윗이 이런 상황에 처하자 그를 떠나갔다.

TV나 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을 돌봐야 할 사람들이 그러지 않고 떠나는 경우를 본다. 그런 것을 보면서 쉽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지만, 사실 사람이 그렇다.

그의 주변에서 그를 해하려는 자만 있다(12절). 다윗의 원수들은 기회를 잡았다. 그들은 그저 다윗의 죽음을 원하지는 않았다. “괴악한 일”은 파멸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완전히 다윗이 파멸에 이르기를 원했고 그렇게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않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13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14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돌보시는 것이지 다윗이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의 상황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주위에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없고 오히려 이 기회에 자신을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윗이 왜 이런 상황에 있느냐다. 다윗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의 어리석은 죄 때문이다. 그가 그 죄를 범할 때 그는 죄를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 죄를 심각하게 보셨다. 그냥 두면 그 사랑하는 자녀가 더 좋지 않은 길로 갈 것을 아셨다.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보다 죄를 사랑하게 두실 수는 없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 고통 중에 자신의 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 깨닫고 돌아오기를 하나님은 원하셨고, 정확히 지금 다윗이 그 과정 중에 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구원과 확신(15~22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15절)

다윗의 기도는 탄식에서 확신으로 바뀐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유 1 – 하나님의 이름(평판)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16절)

먼저 다윗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결국 다윗의 대적들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면 그들이 다윗을 향하여 스스로 교만하여 질 것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이 수치 당하는 것을 곧 하나님의 수치로 생각했다. 왕이 되기 전 골리앗과 싸울 때도 그는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 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 이름을 그 백성에게 두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더 기고만장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유 2 – 다윗의 급박함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17절)

다윗은 넘어지게 되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스라엘의 군대가 모욕당하는 것을 자신이 모욕당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유 3 – 다윗의 회개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18절)

다윗이 회개하고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한 또 다른 이유는 징계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데 있다. 징계는 죄인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죄에 대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죄책감이 컸지만 그것에 억눌리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죄를 가져와 자백했다.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그 징계를 끝내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유 4 – 하나님의 공의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19~20절)

마지막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다. 다윗이 비록 죄를 범하긴 했지만, 그는 궁극적으로는 선을 따르는 자다.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확신’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다윗 입장에서의 확신이다.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다. 하지만 다윗은 여러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셔야 함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간구한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21~22절)

결국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 죄로 인한 징계 가운데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가 속히 임하기를 구한다.

죄는 죄다.

우리는 죄를 가볍게 보는 죄들이 있다. 이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죄들이 있다. 삶의 윤활유라고 생각하는 죄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께 하신 일을 보라. 주님께서 그 몸으로 친히 담당하셨던 고통이 바로 우리 죄의 무게다. 결코 가벼운 죄는 없다. 구원 받은 자는 죄의 짐을 벗었지만, 그렇다고 죄의 무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다. 다윗의 상처에서 악취가 나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자들이 그를 멀리 했던 것처럼,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다시 한번 괴롭고 수고로운 일을 하신다.

그렇다고 모든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여기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시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렸다고 해서,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다고 해서 다 죄의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징계로서 그런 일들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죄는 죄다. 하나님은 죄를 언제나 죄로서 다루신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결국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분께 구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 고통스럽고 어려운 그런 징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이끄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이것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복될 뿐 아니라 더 연단되어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 더 달려가기를 원하신다.

히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 중에 있다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 그러니 피곤한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 하나님께서 다시 힘을 주시고 달리게 하실 것이다. 연약함에 익숙해지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을 내라.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고 우리의 구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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