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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4일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내가 친히 가리라\” (출애굽기 33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http://sungminch.com
금송아지 사건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허락하신 땅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며
가나안 족속을 쫓아주시겠으나
내가 함께 가지는 않겠다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진노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신다 해도
하나님이 같이 가시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우리를 망쳐버릴 재앙입니다
하나님만 상급입니다
하나님만 미래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마음을 돌이키사 허락하시는 주님의 임재
내가 친히 가리라, 이 말씀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에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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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제33장 강해 – 하나님의 용서와 동행 허락 –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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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출애굽기 33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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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6. 3. 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RZYCt–0A
하나님의 용서와 동행 허락
출애굽기 제33장 강해.hwp
출애굽기 제33장 강해: 하나님의 용서와 동행 허락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멸시키고 대신 모세의 후손을 언약백성으로 삼으시려고 하실 때에, 생명록에서 지워지는 한이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려는 모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흔들어 일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완전히 거두지 않으시는 가운데,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가도록 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같이 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1-6절) 모세는 결사각오의 심정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동행을 허락받기에 이르렀습니다.(12-16) 이는 중보자로서 헌신한 모세는 확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까지 보여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까지 들어주셨습니다(17-23). 본 장은 용서하시고 힘주시며 인간의 처지를 이해해 주시는 우리 구속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6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동행을 거부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거하고, 생명을 건 중보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쉽게 그 진노를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함께 하셨던 이스라엘과의 가나안 동행을 거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도중에 진노를 받아 진멸당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은 ❶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죄인과는 교제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며 ❷ 죄인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죄를 말끔히 청산하는 것이라는 점이며 ❸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는 죄와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는 점(합 1:5)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랑의 속성을 지닌 분이시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32:33). 그렇지만 그로 인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어색한 관계는 아직 완전한 회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이스라엘을 가리켜 “네가(모세)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상숭배의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언약한 그 약속의 땅입니다(창 12:7; 민 32:11; 시 105:9-12). 이 땅은 가나안 땅으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입니다. 이처럼 가나안 땅이 언급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지만 그 약속은 변질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 싸워 주셨기 때문이지 이스라엘이 강했기 때문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이런 사실은 여리고 정복과 아이 성 함락의 실패에서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사자(말라크:מלאך)’는 대개 ‘하나님의 대리자’나 ‘천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창 19:1; 왕상 13:18). 그러나 이미 성육신 이전의 구약 시대에도 수시로 활동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 의 6부족은 가나안 땅의 ‘후기 원주민’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로, 아브라함 당시의 ‘초기 원주민’(창 15:19,20)과는 구별됩니다.
3: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 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과 맺은 약속의 땅에 대한 언약은 지키시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함께 동행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의 본질,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19:4,5)를 폐기하신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부모 잃은 고아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동행 거부에 대한 이유는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할 경우 이스라엘이 다시 범죄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4: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이 황송한 말씀(하다바르 하라:הדבר הרא)’은 ‘불길한 말씀’ 또는 ‘언짢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는 인도자요 보호자를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선언입니다. 그래서 KJV에서는 ‘악한 소식(evil things)으로, NIV에서는 ’실망시키는 말씀‘(distressing words)으로 번역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을 단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순식간이라도’ 잠간 동안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면 이스라엘의 죄들이 발견되어 그들이 진멸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얼마나 관영(貫盈: 꿰뚫으며 그릇에 가득차다)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항상 타락하여 잠시도 범죄를 멈추지 않는 존재입니다(롬 3:10-18).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이는 이스라엘이 회개의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
호렙 산은 ‘시내 산’과 동일한 산이며 시내 반도 남서쪽 하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 약 2,290m라고 합니다. ‘단장품’을 제하는 것은 고대의 단장품은 그 유래가 우상숭배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죄를 지은 자로서 몸을 꾸미는 것은 회개하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7-13절: 모세의 기도와 간구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동행을 거부하시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사실과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 역사 또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모세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장막을 임시로 만든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함께 동행하시도록 전심전력으로 기도했습니다.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회막(오헬 모에드:אהל מועד)은 ‘모임의 장소’(meeting tent)라는 뜻입니다. 회막이 만남의 장소로 불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셨기 때문입니다(레 1:1). 여기에서 언급된 회막은 26장의 성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임시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모세가 진영 밖에 마련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깨뜨린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다시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갈 동안 이스라엘이 또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하나님 편에 설 뿐만 아니라(32:36),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는 자(신 4:29)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항상 원하시며 또한 이런 자에게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40:31).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이는 모세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과 두려움의 표시로 장막 앞으로 나와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만나는 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딤전 5:17)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13:21) 따라서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가 세운 임시 회막에 임재하신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범죄하였으나 그들이 회개하고 나올 때에, 그 죄를 용서하시고 기꺼이 자녀로 받아들이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하며
경배하며(솨하:שׁחה)는 32:8의 ‘숭배하며’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금송아지 앞에서 추악한 몸짓으로 ‘일어나 뛰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이제 하나님 앞에 ‘일어나 경배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감사의 경배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구와 같이 친밀히 여기셨다는 것을 ‘친구와 이야기 함 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면하여’ 이는 얼굴을 맞대어 라는 뜻이지만,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면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20절; 창 32:30; 신 5:24; 삿 13:22; 사 6:5).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친근하게 교제하였음을 말합니다(민 12:8). 그런데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완전한 헌신을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모세와 더불어 새로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자가 바로 ‘나와 함께 보낼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전에 모세의 동역자로 그의 형 아론을 세워주셨습니다.(7:1). 그러나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동역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좀 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세워 모세의 새로운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민 27:12-23).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이는 ‘모세’라는 이름이 ‘물에서 건져냄’이란 뜻이듯이(출 2:1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기로 계획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름은 상대방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은 자였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12절). 따라서 모세는 이를 하나님 앞에서 한 번 더 상기시키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이는 주님의 온전하신 뜻과 인도하심을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내게 주을 알리시고’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불확실한 상태가 아니라 명확한 상태로 알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금송아지 숭배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네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32:7).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간구할 때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의 백성’임을 강조하였으며, 지금도 그는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친 백성으로 여기사 계속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14-23: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내용으로 마침내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는 장면입니다. 언약에 근거한 모세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회복 응답이 있기 까지 끈기와 인내로 계속되었습니다.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내가 친히’(파니:)는 ‘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인격적 현존으로 나타나시는 여호와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KJV는 이를 ‘나의 현존(My presence)’으로 번역합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켰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는 ‘내가 너에게 휴식을 줄 것이다.’(I will give you rest.)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노정의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모세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참 안식과 휴식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마 11:28) 그리고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광야 노정도 사실은 모세가 인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16: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스라엘 백성이 천하 만민과 구별됨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죄의 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을 향해 당신의 거룩함을 좇아 거룩하게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여기며 또한 가나안을 향한 노정에 함께 해달라는 모세의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들어주시겠다니 이는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모세가 지금까지 본 하나님의 영광들(19:16-19)은 여호와의 본질적인 영광이 아니라 구름, 불, 우뢰 소리 등 간접적으로 나타난 것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중간적인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여호와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직접적인 주의 영광을 보기 원한 이유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소원해진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려는 의도라고 칼빈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내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나의 모든 선한 형상’(콜투비:כל טובי)은 ‘나의 모든 선함’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여러 본질적 속성 중 한 부분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실체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속성을 통해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신다는 것은 여호와의 성품을 보여주심으로써 어떤 분이심을 알려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접한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실체)을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기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의 실체를 목도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모세의 요청을 간접적으로 거절하셨습니다.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 분의 거룩한 성품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고 싶어 하는 모세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이 됩니다(시 89:26). 따라서 이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찾는 자의 의지이며 피난처가 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반석 틈에 두신 것도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하여 화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보호하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상 죄인인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분을 보며 화를 당하지 않도록 친히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등’은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이 투영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실체의 일부만을 보여주신 것은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러나 모세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성경의 위인들 중 하나님의 실체의 일부만이라도 목격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모세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역자임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제33장 주석(요약자; 하나님의 사람)
출애굽기 제33장 주석(요약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출 33장] [내용개요]
시내 산에서의 율법 수여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은 체결되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언약의 공동체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의 죄에 대한 응보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1-11절).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함께 가시기를 간구하였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다(12-23절).
[강 해]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그 은혜가 너무나도 벅찬 것임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쎄서 은혜를 거두신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본장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말할 수 없이 풍성한 것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1. 하나님의 동행 거부
1)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그의 사자를 보내시며 그 땅의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a. 약속의 땅(창12:7)
b. 인도자 되신 하나님(시77:20)
2)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거부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도 들어가기 원했던 가나안 땅을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격스럽고 무척 기쁜 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순식간에 진멸하실까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진멸한다는 사실은 원수들에게 분명 조롱 거리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치 못함에 대한 배려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동행 거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나큰 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a. 죄의 결과(수7:12)
b. 목이 곧은 백성(대하30:8)
3) 단장품을 제한 백성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이 곧 은’이란 말씀은 농사일에서 나온 비유로서, 가축이 주인의 인도와 통제를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습니다. 한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몸을 단장하지 않은 것은 애도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a. 슬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민14:39)
b. 몸을 단장하지 않음(삼하19:24)
2. 회막
1)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
회막은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에 임시로 성막 역할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잠시나마 진 밖에 친 것은 또 하나의 형벌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면서 백성들을 위해 중재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모습에서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회막은 바로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들이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과 가까이 사귈 많은 기회를 범죄 때문에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a. 진 밖으로 분리됨(레6:11)
b. 여호와를 앙모함(시40:16)
2) 눈의 아들 여호수아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 백성들은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멀찍이서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미래의 지도자로 어떻게 준비되는가를 보여 줍니다.
a. 구름 기둥(출40:34)
b. 하나님을 경배함(시33:8)
3. 하나님의 영광
1)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약속
모세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해 온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의 터 위에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시며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와 친히 함께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a. 모세와 하나님의 대면(민12:8)
b. 친히 함께 가시는 하나님(사63:9)
2)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자기와 백성들에게 징표를 보여 줄 것을 구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보고 살아남을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께서 친히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비록 잠시나마 그 영광의 자락을 보았습니다.
a. 하나님의 영광(딤전6:16)
b. 하나님을 봄(창32:30)
결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히 행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자들은 참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 채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함을 고백케 됩니다.
[단어해설]1절. 올라가라. ‘출발하다’라는 뜻을 지닌
는 가나안을 향한 출발을 뜻한다. 4절. 황송한 말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절교 선언을 가리킨다. 문자상 <[r:h; rb;D:h':하다바르 하라>는 ‘악한 말씀’을 의미. 단장하지 아니하니. 장신구를 몸에서 떼어 낸 상태. 이는 이스라엘의 통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6절. 호렙산. 언약의 산으로 ‘시내 산’과 동일.
7절. 회막. 문자상
는 ‘회집의 장소’로서 ‘만남의 장막’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 여겨졌다. 9절. 구름 기둥.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11절. 친구. ‘동료’를 의미하는
는 모세를 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대면하여. 모세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 원어 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라는 뜻. 12절. 나와 함께 보낼 자. 새로운 동역자를 구하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 주셨다.
13절. 주의 길. 여호와의 뜻을 말함. 즉 인간 삶의 기준이 되는 규례를 의미.
14절. 내가 친히 가리라. ‘친히’는 ‘얼굴’이란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나의 얼굴이 가겠다’이다.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 너로 편케 하리라. 안식을 주시겠다는 뜻.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16절. 구별하심이. 구별은 ‘차이를 두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을 드러낸다.
[신학주제]하나님의 동행 거부. 본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는 전장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 때문이다. 이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며 하나님께 동행하시기를 간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슬퍼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동행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같이 가시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자연적인 환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나안 땅은 그 자체의 토양이나 환경보다 언약이라는 측면에서 축복의 땅으로 나타난다. 즉 축복의 기준은 하나님의 임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적교훈]본장에서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며 모든 단장품을 제하고 함께 가시기를 간구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으면 가나안의 풍요로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곳이 축복의 장소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 축복의 조건을 세상적인 부귀 영화에서 찾으려는 태도가 어리석은 것임을 교훈해 준다. 하나님 없는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죄악으로 인도하여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쾌락과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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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출33: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 – 32:7과 동일한 말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시기 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설은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 본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는 친밀한 말씀과는 대조를 이룬다.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 –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약속되어진 가나안 땅을 뜻한다(창 12:7; 13:15; 17:8; 2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 대하여 다시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손상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을 일단 가나안 땅으로는 인도하실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이다(Wycliffe).
올라가라(*, 알라) – 원뜻은 ‘깨어나다’, ‘출발하다’, ‘도약하다’ 혹은 ‘복구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 속에는 전장(前章)의 사건으로 인한 침체 상태에서 깨어나 도약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성 경: [출33: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내가 사자를 내 앞서 보내어… 쫓아내고 –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되어짐을 의미한다(23:20; 32:34).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싸움을 싸우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이다(골 1:29). 한편 ‘사자’에 관해서는 23:20 주석을 참조하라.
가나안 사람… 여부스 사람 –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 7족속’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 및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성 경: [출33: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여기서 ‘젖’은 우유를 가리키는데, 양과 염소의 젖까지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흐르다'(*, 주브)는 ‘차고’,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나는…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나대로 하게 하라'(32:10), 즉 일종의 관계 단절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백성만 따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써 이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1절의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애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계약 파기로 인한 불화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목이 곧은 백성 –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성’이란 뜻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순종하거나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억척스런 고집이나 패역한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중로에서 – 단순히 ‘길에서’ 혹은 ‘도중에’라고 번역함이 좋다.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 직역하면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이다.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은 원래 ‘먹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지체없이 ‘먹어치우다’, ‘태워버리다’는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면, 그들이 또다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가 가차없이 그들을 진멸하고 말 것이니,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일종의 자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출33:4]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황송한 말씀(*, 하다바르하라) – ‘나쁜(라) 말씀(다바르)’ 혹은 ‘슬픈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3절)은 광야 지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단장하지 아니하니 – 직역하면 ‘장신구를 몸에 달지 않았으니’이다.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인데(창 37:29;삼하 1:11;욘 3:6-8), 애도의 기간에 몸에서 장신구를 메는 것은 당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nobel). 한편 백성들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고리를 내놓았는데(32:2, 3) 그렇게 하고도 또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다(12:35, 36).
성 경: [출33:5]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목이 곧은 백성 – 하나님 앞에서 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을 뜻하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순식간이라도 – (눈의)’깜박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깐 동안이라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는 하나님이 잠깐만이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성경의 증거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창 6:5).
단장품을 졔하라 – 여기서 ‘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 ‘야라드'(*)의 의미는 ‘내려가다’인데,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아래로)던지다’, ‘끌어내리다’란 뜻이 된다. 따라서 이말은 ‘단장품을 내어 던지라’는 의미이다. 한편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야곱이 옛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12:35, 36), 그것들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상 숭배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과감히 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 정확한 표현은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다'(*, 야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알리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결정하리라'(NEB, I will determine what to do to you;NIV, 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로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이 보다 자연스러워 보인다.
성 경: [출33:6]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호렙 산 – ‘시내 산’과 동일 지명으로(신 4:10-15;왕상 8:9)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19:2).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출33:7]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장막을 취하여… 회막이라 이름하니 –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는 ‘회집(會集)의 장소’, 즉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가견적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받은 성막(25:9)을 짓기 전, 그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Rosenmuller). 한편 이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30:18, 26;39:32;40:2, 34).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진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즉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성 경: [출33:8]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일어나… 서서 –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신 27:12, 13;느 8:5, 7).
성 경: [출33:9]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구름 기둥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상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13: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가 진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25:1-31:18)이 아니고 금송아지 숭배 사건 후 임시로 지은 것인데. 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한 내적신령과 진정부터 갖추어야 하겠다(요 4:20-24).
성 경: [출33:10]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모든 백성이…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 이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13:21, 22).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 구름 기둥이 다시금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 여기서 ‘경배하다’의 ‘솨하'(*)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32:8; 숭배하며). 즉 그들은 하나님(4:31)->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절).
성 경: [출33:1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친구(*, 레에) – ‘친구로서 대우하다’, ‘우정을 맺다’라는 뜻의 ‘라아’에서 온 말로 특히 ‘남자 친구’, ‘동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로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대하 20:7;사 41:8)이때 사용된 ‘벗'(*, 아하브)은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히 3:5)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삼상 28:6)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20절;딤전 6:16). 따라서 이 말은 그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민 12:8).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민 13:8, 16)가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떠나지 않은 사실(삼상 1:1; 3:3)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다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청년 여호수아 – 이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세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수 14:7). 그런데 ‘청년’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를 수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먼저 클라크(Adam Clarke)는 ‘청년’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를 ‘독신’ 또는 ‘미혼자’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해 안스워스(Answorth)는 ‘청년’을 ‘수종자’에 대한 일반적 호칭(24:5;창 14:24)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칼빈 (Calvin)은 나이 많은 장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젊은 여호수아를 회막 관리자로 임명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청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견해 중 가장 타당한 것은 세번째 견해인 듯하다.
성 경: [출33:1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나와 함께 보낼 자( – , 아쉐르 티쉘라흐 임미) – 여기서 ‘쉘라흐’는 ‘보내다’는 뜻 외에 ‘임명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와 함께 (당신이) 임명할 자’ 혹은 ‘나에게 (당신이) 보낼 자’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모세는 출애굽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임명한 동역자였던 아론(4:14-16)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데 따라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 내지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여호수아를 후계자와 동역자로 세워 주셨다(민 27:15-23).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이 여러차례 언급하신 ‘사자'(2절;23:20;32:34)를 보내달라고 간구한 것으로도 이해하는데, 전후 문맥 관계상 전자(前者)의 견해를 취하는 편이 무난하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여기서 ‘지시하다’란 원어 ‘야다'(*)는 ‘대답하다’, ‘알리다'(알게 하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알려주지 아니하시나이다’로 번역하면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이름으로) 너를 안다’이다. 이처럼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전인격적으로 아는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Keil).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특별한 교제를 나누고 계심을 의미한다. 한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0:7 주석을 참조하라.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 직역하면 ‘너 역시 내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로, 여기서 ‘눈’을 뜻하는 ‘아인'(*)에는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틀 나누며 또한 그분에게서 이러한 ‘은혜’까지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노를 발하셨으면서도(4:14), 친구처럼 대면해서 이야기할 만큼(11절) 큰 은혜를 입었다.
성 경: [출33:1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 앞절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길 – 칼빈(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각기 이해하고 있다.
내게 보이사 – ‘내게 알리사’, ‘내게 깨닫게 하사’란 뜻으로 앞 절의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족속(*, 하고이하제) – 정확히 번역하면 ‘이(하제) 민족(하고이)’이다.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이’에 정관사(하)가 붙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조하는데, 특히 방금 전까지 죄를 지었던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 모세를 향해 ‘네 백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하나님(32:7)께 모세는 재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기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고려하다’, ‘숙고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비록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그 민족'(하고이)이지만 다시 고려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재심 청원(再審請願)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성 경: [출33:14]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내가 친히 가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 얼굴이 갈 것이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내 존재가 갈 것이다'(My presence will go)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아름답게 서로 어우러져 다시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너로 편케 하리라 – 직역하면 ‘너를 쉬게 하리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인도해 가심으로써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가나안 입성까지의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성 경: [출33:15, 16]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14절)에 근거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확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표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의 백성을… 구별하심이 – 주의 백성된 자들의 가장 큰 증거는 구별됨이다(롬 1:6, 7).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이며 또한 어두움, 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구별됨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이 가능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요 16:33). 즉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이 덧입혀 주시는 권능 때문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 경: [출33:17]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이 일도… 하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와 같이 언약 백성(32:13)으로 인정하여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 12절 주석 하반부 참조.
성 경: [출33:18]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주의 영광 – 이것은 지금까지 나타난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3:2;24:15, 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된 모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시었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다(20절).
성 경: [출33:19]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모든 선한 형상( – , 콜투비) – 원문상으로는 ‘형상’이란 말이 없고 ‘나의 모든 선함’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리라 – 여기서 ‘반포하다’란 원어 ‘카라'(*)는’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 또는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34:6, 7).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20:7).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헤를 베풀다'(be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Wycliffe). 따라처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 측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이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테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중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앤'(Anna), ‘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라’,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동사 ‘라함'(*)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이다. 따라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사49:15),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시 103:13).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 103:13)과 (2) 본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 경: [출33:20]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 바사르; , 사륵스)을 덧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실(사 6:1-5)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경상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 경: [출33:2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반석(*, 추르) – 본래 의미는 ‘절벽’이며 일반적 의미는 ‘바위’인데 상징적으로 ‘피난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반석’에 두겠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피난처에 숨기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신 32:15;삼상 2:2시 89:26),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구원하는 능력이심을 나타낸다.
성 경: [출33:2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두고(*, 사므티카) – ‘두다’, ‘놓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숨'(*)의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겠다는 의미이다.
덮었다가(*, 사코티) – 기본형 ‘사카크'(*)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25:20), ‘방어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직접적 현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수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성 경: [출33:2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거두리니 – 이에 해당하는 ‘수르'(*)는 ‘떠나다’, ‘피하다’, ‘물러나다’, ‘제거하다’는 의미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잔재를 볼 수 있도록 특별 보호 조치를 잠시 해제하겠다는 뜻이다.
내 등을 볼 것이요 –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反影)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을 볼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인테 이는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 ‘등'(back)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반영(反影)을 표현한 말이다.
[출처] 출애굽기 33장 /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강해 주석)|작성자 하나님의 사람
히브리어 출애굽기 3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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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예다벨 아도나이 엘 모쉐 레크 아레 미제 앝타 웨하암 아쉘 헤에리타 메에레츠 미츠라임 엘 하아레츠 아쉘 니쉬바티 레아브라함 레이츠하크 우레야아콥 레모르 레자르아카 에트넨나
개역개정,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새번역,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을 이끌고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고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우리말성경,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이 백성들은 이곳을 떠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네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맹세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가톨릭성경,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과 함께 이곳을 떠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네 후손들에게 이것을 주겠다.’ 하며 맹세한 땅으로 올라가거라.
영어NIV,1 Then the LORD said to Moses, “Leave this place, you and the people you brought up out of Egypt, and go up to the land I promised on oath to Abraham, Isaac and Jacob, saying, ‘I will give it to your descendants.’
영어NASB,1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Depart, go up from here, you and the people whom you have brought up from the land of Egypt, to the land of which I swore to Abraham, Isaac, and Jacob, saying, ‘To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it.’
영어MSG,1 GOD said to Moses: “Now go. Get on your way from here, you and the people you brought up from the land of Egypt. Head for the land which I promised to Abraham, Isaac, and Jacob, saying ‘I will give it to your descendants.’
영어NRSV,1 The LORD said to Moses, “Go, leave this place, you and the people whom you have brought up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go to the land of which I swore to Abraham, Isaac, and Jacob, saying, ‘To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it.’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προς μωυσην πορευου αναβηθι εντευθεν συ και ο λαος σου ους εξηγαγες εκ γης αιγυπτου εις την γην ην ωμοσα τω αβρααμ και ισαακ και ιακωβ λεγων τω σπερματι υμων δωσω αυτην
라틴어Vulgate,1 locutusque est Dominus ad Mosen vade ascende de loco isto tu et populus tuus quem eduxisti de terra Aegypti in terram quam iuravi Abraham Isaac et Iacob dicens semini tuo dabo eam
히브리어구약BHS,1 וַיְדַבֵּר יְהוָה אֶל־מֹשֶׁה לֵךְ עֲלֵה מִזֶּה אַתָּה וְהָעָם אֲשֶׁר הֶעֱלִיתָ מֵאֶרֶץ מִצְרָיִם אֶל־הָאָרֶץ אֲשֶׁר נִשְׁבַּעְתִּי לְאַבְרָהָם לְיִצְחָק וּלְיַעֲקֹב לֵאמֹר לְזַרְעֲךָ אֶתְּנֶנָּה׃
성 경: [출33: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 – 32:7과 동일한 말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시기 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설은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 본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는 친밀한 말씀과는 대조를 이룬다.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 –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약속되어진 가나안 땅을 뜻한다(창 12:7; 13:15; 17:8; 2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 대하여 다시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손상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을 일단 가나안 땅으로는 인도하실 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이다(Wycliffe).
올라가라(*, 알라) – 원뜻은 ‘깨어나다’, ‘출발하다’, ‘도약하다’ 혹은 ‘복구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 속에는 전장(前章)의 사건으로 인한 침체 상태에서 깨어나 도약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웨솨라흐티 레파네카 말앜 웨게라쉬티 엩 하케나아니 하에모리 웨하히티 웨하프리지 하히위 웨하예부시
개역개정,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새번역,2 내가 한 천사를 보낼 터이니, 그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겠다.
우리말성경,2 내가 네 앞에 천사를 보낼 것이다. 내가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낼 것이다.
가톨릭성경,2 나는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족,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몰아내겠다.
영어NIV,2 I will send an angel before you and drive out the Canaanites, Amorites, Hittites, Perizzites, Hivites and Jebusites.
영어NASB,2 “And I will send an angel before you and I will drive out the Canaanite, the Amorite, the Hittite, the Perizzite, the Hivite and the Jebusite.
영어MSG,2 I will send an angel ahead of you and I’ll drive out the Canaanites, Amorites, Hittites, Perizzites, Hivites, and Jebusites.
영어NRSV,2 I will send an angel before you, and I will drive out the Canaanites, the Amorites, the Hitt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συναποστελω τον αγγελον μου προ προσωπου σου και εκβαλει τον αμορραιον και χετταιον και φερεζαιον και γεργεσαιον και ευαιον και ιεβουσαιον
라틴어Vulgate,2 et mittam praecursorem tui angelum ut eiciam Chananeum et Amorreum et Hettheum et Ferezeum et Eveum et Iebuseum
히브리어구약BHS,2 וְשָׁלַחְתִּי לְפָנֶיךָ מַלְאָךְ וְגֵרַשְׁתִּי אֶת־הַכְּנַעֲנִי הָאֱמֹרִי וְהַחִתִּי וְהַפְּרִזִּי הַחִוִּי וְהַיְבוּסִי׃
성 경: [출33: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내가 사자를 내 앞서 보내어… 쫓아내고 –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되어짐을 의미한다(23:20; 32:34).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싸움을 싸우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이다(골 1:29). 한편 ‘사자’에 관해서는 23:20 주석을 참조하라.
가나안 사람… 여부스 사람 –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 7족속’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 및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엘 에레츠 자바트 할랍 우데바쉬 키 로 에엘레 베킬베카 키 암 케세 오렢 앝타 펜 아켈카 바다렠
개역개정,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새번역,3 너희는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여차 하면 내가 가는 도중에 너희를 멸망시킬지 모르니 말이다.”
가톨릭성경,3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어NIV,3 Go up to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But I will not go with you, because you are a stiff-necked people and I might destroy you on the way.”
영어NASB,3 “Go up to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for I will not go up in your midst, because you are an obstinate people, and I might destroy you on the way.”
영어MSG,3 It’s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But I won’t be with you in person–you’re such a stubborn, hard-headed people!–lest I destroy you on the journey.”
영어NRSV,3 Go up to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but I will not go up among you, or I would consume you on the way, for you are a stiff-necked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εισαξω σε εις γην ρεουσαν γαλα και μελι ου γαρ μη συναναβω μετα σου δια το λαον σκληροτραχηλον σε ειναι ινα μη εξαναλωσω σε εν τη οδω
라틴어Vulgate,3 et intres in terram fluentem lacte et melle non enim ascendam tecum quia populus durae cervicis est ne forte disperdam te in via
히브리어구약BHS,3 אֶל־אֶרֶץ זָבַת חָלָב וּדְבָשׁ כִּי לֹא אֶעֱלֶה בְּקִרְבְּךָ כִּי עַם־קְשֵׁה־עֹרֶף אַתָּה פֶּן־אֲכֶלְךָ בַּדָּרֶךְ׃
성 경: [출33: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가나안 진군 명령]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여기서 ‘젖’은 우유를 가리키는데, 양과 염소의 젖까지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흐르다'(*, 주브)는 ‘차고’,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나는…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나대로 하게 하라'(32:10), 즉 일종의 관계 단절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백성만 따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써 이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1절의 ‘네가…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애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계약 파기로 인한 불화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목이 곧은 백성 –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성’이란 뜻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순종하거나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억척스런 고집이나 패역한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중로에서 – 단순히 ‘길에서’ 혹은 ‘도중에’라고 번역함이 좋다.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 직역하면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이다.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은 원래 ‘먹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지체없이 ‘먹어치우다’, ‘태워버리다’는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면, 그들이 또다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가 가차없이 그들을 진멸하고 말 것이니,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일종의 자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와이쉬마 하암 엩 하다발 하라 하제 와이트압발루 웨로 솨투 이쉬 에드요 알라우
개역개정,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새번역,4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4 백성들은 이 무서운 말씀을 듣고 통곡했습니다. 몸에 장신구를 걸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4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패물을 몸에 다는 사람이 없었다.
영어NIV,4 When the people heard these distressing words, they began to mourn and no one put on any ornaments.
영어NASB,4 When the people heard this sad word, they went into mourning, and none of them put on his ornaments.
영어MSG,4 When the people heard this harsh verdict, they were plunged into gloom and wore long faces. No one put on jewelry.
영어NRSV,4 When the people heard these harsh words, they mourned, and no one put on ornament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ακουσας ο λαος το ρημα το πονηρον τουτο κατεπενθησαν εν πενθικοις
라틴어Vulgate,4 audiens populus sermonem hunc pessimum luxit et nullus ex more indutus est cultu suo
히브리어구약BHS,4 וַיִּשְׁמַע הָעָם אֶת־הַדָּבָר הָרָע הַזֶּה וַיִּתְאַבָּלוּ וְלֹא־שָׁתוּ אִישׁ עֶדְיֹו עָלָיו׃
성 경: [출33:4]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황송한 말씀(*, 하다바르하라) – ‘나쁜(라) 말씀(다바르)’ 혹은 ‘슬픈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3절)은 광야 지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단장하지 아니하니 – 직역하면 ‘장신구를 몸에 달지 않았으니’이다.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인데(창 37:29;삼하 1:11;욘 3:6-8), 애도의 기간에 몸에서 장신구를 메는 것은 당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nobel). 한편 백성들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고리를 내놓았는데(32:2, 3) 그렇게 하고도 또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다(12:35, 36).
와요멜 아도나이 엘 모쉐 에몰 엘 베네이 이스라엘 아템 암 케세 오렢 레가 에하드 에엘레 베킬베카 웨킬리티카 웨앝타 호레드 엗예카 메알레카 웨에데아 마 에에세 라크
개역개정,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새번역,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라.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다.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내가 너희를 아주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너희 몸에서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제 결정하겠다.”
우리말성경,5 여호와께서 전에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내가 잠시라도 너희와 함께 가면 내가 너희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장신구들을 모두 빼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정하겠다.’”
가톨릭성경,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
영어NIV,5 For the LORD had said to Moses, “Tell the Israelites, ‘You are a stiff-necked people. If I were to go with you even for a moment, I might destroy you. Now take off your ornaments and 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
영어NASB,5 For the LORD had said to Moses, “Say to the sons of Israel, ‘You are an obstinate people; should I go up in your midst for one moment, I would destroy you. Now therefore, put off your ornaments from you, that I may know what I will do with you.'”
영어MSG,5 GOD said to Moses, “Tell the Israelites, ‘You’re one hard-headed people. I couldn’t stand being with you for even a moment–I’d destroy you. So take off all your jewelry until I figure out what to do with you.'”
영어NRSV,5 For the LORD had said to Moses, “Say to the Israelites, ‘You are a stiff-necked people; if for a single moment I should go up among you, I would consume you. So now take off your ornaments, and I will decide what to do to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τοις υιοις ισραηλ υμεις λαος σκληροτραχηλος ορατε μη πληγην αλλην επαξω εγω εφ’ υμας και εξαναλωσω υμας νυν ουν αφελεσθε τας στολας των δοξων υμων και τον κοσμον και δειξω σοι α ποιησω σοι
라틴어Vulgate,5 dixitque Dominus ad Mosen loquere filiis Israhel populus durae cervicis es semel ascendam in medio tui et delebo te iam nunc depone ornatum tuum ut sciam quid faciam tibi
히브리어구약BHS,5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אֱמֹר אֶל־בְּנֵי־יִשְׂרָאֵל אַתֶּם עַם־קְשֵׁה־עֹרֶף רֶגַע אֶחָד אֶעֱלֶה בְקִרְבְּךָ וְכִלִּיתִיךָ וְעַתָּה הֹורֵד עֶדְיְךָ מֵעָלֶיךָ וְאֵדְעָה מָה אֶעֱשֶׂה־לָּךְ׃
성 경: [출33:5]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목이 곧은 백성 – 하나님 앞에서 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을 뜻하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순식간이라도 – (눈의)’깜박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깐 동안이라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는 하나님이 잠깐만이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성경의 증거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창 6:5).
단장품을 졔하라 – 여기서 ‘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 ‘야라드'(*)의 의미는 ‘내려가다’인데,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아래로)던지다’, ‘끌어내리다’란 뜻이 된다. 따라서 이말은 ‘단장품을 내어 던지라’는 의미이다. 한편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야곱이 옛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12:35, 36), 그것들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상 숭배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과감히 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 정확한 표현은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다'(*, 야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알리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결정하리라'(NEB, I will determine what to do to you;NIV, 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로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이 보다 자연스러워 보인다.
와이트나체루 베네카 이스라엘 엩 에드얌 에할 호렙
개역개정,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새번역,6 이스라엘 자손은 호렙 산을 떠난 뒤로는 장식품을 달지 않았다.
우리말성경,6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 산에서 그 장신구들을 모두 빼냈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호렙 산에서부터 패물을 벗어 버렸다.
영어NIV,6 So the Israelites stripped off their ornaments at Mount Horeb.
영어NASB,6 So the sons of Israel stripped themselves of their ornaments from Mount Horeb onward.
영어MSG,6 So the Israelites stripped themselves of their jewelry from Mount Horeb on.
영어NRSV,6 Therefore the Israelites stripped themselves of their ornaments, from Mount Horeb onwar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περιειλαντο οι υιοι ισραηλ τον κοσμον αυτων και την περιστολην απο του ορους του χωρηβ
라틴어Vulgate,6 deposuerunt ergo filii Israhel ornatum suum a monte Horeb
히브리어구약BHS,6 וַיִּתְנַצְּלוּ בְנֵי־יִשְׂרָאֵל אֶת־עֶדְיָם מֵהַר חֹורֵב׃
성 경: [출33:6]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단장품을 제하는 백성들]
호렙 산 – ‘시내 산’과 동일 지명으로(신 4:10-15;왕상 8:9)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19:2).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우모쉐 잌카흐 엩 하오헬 웨나타 로 미후츠 람마하네 하르헼 민 함마하네 웨카라 로 오헬 모에드 웨하야 콜 메바케쉬 아도나이 예체 엘 오헬 모에드 아쉘 미후츠 람마하네
개역개정,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새번역,7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칠 때마다, 모세는 장막을 거두어 가지고 진 바깥으로 나가,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 장막을, 주님과 만나는 곳이라고 하여, 회막이라고 하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 밖에 있는 이 회막으로 갔다.
우리말성경,7 그때 모세는 장막을 거두어서 진영 밖 멀리 떨어진 곳에 치고는 ‘회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누구든지 여호와를 찾을 일이 생기면 진영 밖의 이 회막으로 가곤 했습니다.
가톨릭성경,7 모세는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영어NIV,7 Now Moses used to take a tent and pitch it outside the camp some distance away, calling it the “tent of meeting.” Anyone inquiring of the LORD would go to the tent of meeting outside the camp.
영어NASB,7 Now Moses used to take the tent and pitch it outside the camp, a good distance from the camp, and he called it the tent of meeting. And it came about, that everyone who sought the LORD would go out to the tent of meeting which was outside the camp.
영어MSG,7 Moses used to take the Tent and set it up outside the camp, some distance away. He called it the Tent of Meeting. Anyone who sought GOD would go to the Tent of Meeting outside the camp.
영어NRSV,7 Now Moses used to take the tent and pitch it outside the camp, far off from the camp; he called it the tent of meeting. And everyone who sought the LORD would go out to the tent of meeting, which was outside the camp.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λαβων μωυσης την σκηνην αυτου επηξεν εξω της παρεμβολης μακραν απο της παρεμβολης και εκληθη σκηνη μαρτυριου και εγενετο πας ο ζητων κυριον εξεπορευετο εις την σκηνην εξω της παρεμβολης
라틴어Vulgate,7 Moses quoque tollens tabernaculum tetendit extra castra procul vocavitque nomen eius tabernaculum foederis et omnis populus qui habebat aliquam quaestionem egrediebatur ad tabernaculum foederis extra castra
히브리어구약BHS,7 וּמֹשֶׁה יִקַּח אֶת־הָאֹהֶל וְנָטָה־לֹו מִחוּץ לַמַּחֲנֶה הַרְחֵק מִן־הַמַּחֲנֶה וְקָרָא לֹו אֹהֶל מֹועֵד וְהָיָה כָּל־מְבַקֵּשׁ יְהוָה יֵצֵא אֶל־אֹהֶל מֹועֵד אֲשֶׁר מִחוּץ לַמַּחֲנֶה׃
성 경: [출33:7]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장막을 취하여… 회막이라 이름하니 –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는 ‘회집(會集)의 장소’, 즉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가견적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받은 성막(25:9)을 짓기 전, 그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Rosenmuller). 한편 이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30:18, 26;39:32;40:2, 34).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진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즉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웨하야 케체트 모쉐 엘 하오헬 야쿠무 콜 하암 웨니츠부 이쉬 페타흐 오홀로 웨힙비투 아하레 모쉐 아드 보오 하오헤라
개역개정,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새번역,8 모세가 그리로 나아갈 때면, 백성은 모두 일어나서 저마다 자기 장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장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았다.
우리말성경,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마다 모든 백성들은 일어나 자기 장막문 앞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8 모세가 천막으로 갈 때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았다.
영어NIV,8 And whenever Moses went out to the tent, all the people rose and stood at the entrances to their tents, watching Moses until he entered the tent.
영어NASB,8 And it came about, whenever Moses went out to the tent, that all the people would arise and stand, each at the entrance of his tent, and gaze after Moses until he entered the tent.
영어MSG,8 It went like this: When Moses would go to the Tent, all the people would stand at attention; each man would take his position at the entrance to his tent with his eyes on Moses until he entered the Tent;
영어NRSV,8 Whenever Moses went out to the tent, all the people would rise and stand, each of them, at the entrance of their tents and watch Moses until he had gone into the tent.
헬라어구약Septuagint,8 ηνικα δ’ αν εισεπορευετο μωυσης εις την σκηνην εξω της παρεμβολης ειστηκει πας ο λαος σκοπευοντες εκαστος παρα τας θυρας της σκηνης αυτου και κατενοουσαν απιοντος μωυση εως του εισελθειν αυτον εις την σκηνην
라틴어Vulgate,8 cumque egrederetur Moses ad tabernaculum surgebat universa plebs et stabat unusquisque in ostio papilionis sui aspiciebantque tergum Mosi donec ingrederetur tentorium
히브리어구약BHS,8 וְהָיָה כְּצֵאת מֹשֶׁה אֶל־הָאֹהֶל יָקוּמוּ כָּל־הָעָם וְנִצְּבוּ אִישׁ פֶּתַח אָהֳלֹו וְהִבִּיטוּ אַחֲרֵי מֹשֶׁה עַד־בֹּאֹו הָאֹהֱלָה׃
성 경: [출33:8]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일어나… 서서 –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신 27:12, 13;느 8:5, 7).
웨하야 케보 모쉐 하오헬라 예레드 암무드 헤아난 웨아마드 페타흐 하오헬 웨디벨 임 모쉐
개역개정,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새번역,9 모세가 장막에 들어서면, 구름기둥이 내려와서 장막 어귀에 서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신다.
우리말성경,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그 문 앞에 머물러 있었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가톨릭성경,9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영어NIV,9 As Moses went into the tent, the pillar of cloud would come down and stay at the entrance, while the LORD spoke with Moses.
영어NASB,9 And it came about, whenever Moses entered the tent, the pillar of cloud would descend and stand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nd the LORD would speak with Moses.
영어MSG,9 whenever Moses entered the Tent, the Pillar of Cloud descended to the entrance to the Tent and GOD spoke with Moses.
영어NRSV,9 When Moses entered the tent, the pillar of cloud would descend and stand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nd the LORD would speak with Moses.
헬라어구약Septuagint,9 ως δ’ αν εισηλθεν μωυσης εις την σκηνην κατεβαινεν ο στυλος της νεφελης και ιστατο επι την θυραν της σκηνης και ελαλει μωυση
라틴어Vulgate,9 ingresso autem illo tabernaculum foederis descendebat columna nubis et stabat ad ostium loquebaturque cum Mosi
히브리어구약BHS,9 וְהָיָה כְּבֹא מֹשֶׁה הָאֹהֱלָה יֵרֵד עַמּוּד הֶעָןָן וְעָמַד פֶּתַח הָאֹהֶל וְדִבֶּר עִם־מֹשֶׁה׃
성 경: [출33:9]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구름 기둥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상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13: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가 진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25:1-31:18)이 아니고 금송아지 숭배 사건 후 임시로 지은 것인데. 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한 내적신령과 진정부터 갖추어야 하겠다(요 4:20-24).
웨라아 콜 하암 엩 암무드 헤아난 오메드 페타흐 하오헬 웨캄 콜 하암 웨히쉬타하우우 이쉬 페타흐 오홀로
개역개정,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새번역,10 백성은 장막 어귀에 서 있는 구름기둥을 보면, 모두 일어섰다. 그리고는 저마다 자기 장막 어귀에서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였다.
우리말성경,10 백성들은 구름 기둥이 회막문 앞에 있는 것을 보면 모두 일어나 각자 자기 장막문 앞에서 경배했습니다.
가톨릭성경,10 구름 기둥이 천막 어귀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서 경배하였다.
영어NIV,10 Whenever the people saw the pillar of cloud standing at the entrance to the tent, they all stood and worshiped, each at the entrance to his tent.
영어NASB,10 When all the people saw the pillar of cloud standing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ll the people would arise and worship, each at the entrance of his tent.
영어MSG,10 All the people would see the Pillar of Cloud at the entrance to the Tent, stand at attention, and then bow down in worship, each man at the entrance to his tent.
영어NRSV,10 When all the people saw the pillar of cloud standing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ll the people would rise and bow down, all of them, at the entrance of their tent.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εωρα πας ο λαος τον στυλον της νεφελης εστωτα επι της θυρας της σκηνης και σταντες πας ο λαος προσεκυνησαν εκαστος απο της θυρας της σκηνης αυτου
라틴어Vulgate,10 cernentibus universis quod columna nubis staret ad ostium tabernaculi stabantque ipsi et adorabant per fores tabernaculorum suorum
히브리어구약BHS,10 וְרָאָה כָל־הָעָם אֶת־עַמּוּד הֶעָןָן עֹמֵד פֶּתַח הָאֹהֶל וְקָם כָּל־הָעָם וְהִשְׁתַּחֲוּוּ אִישׁ פֶּתַח אָהֳלֹו׃
성 경: [출33:10]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모든 백성이…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 이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13:21, 22).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 구름 기둥이 다시금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 여기서 ‘경배하다’의 ‘솨하'(*)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32:8; 숭배하며). 즉 그들은 하나님(4:31)->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절).
웨디벨 아도나이 엘 모쉐 파님 엘 파님 카아쉘 예다벨 이쉬 엘 레에후 웨솹 엘 함마하네 우메솰레토 예호슈아 빈 눈 나알 로 야미쉬 밑토크 하오헬
개역개정,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새번역,11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진으로 돌아가도, 눈의 아들이며 모세의 젊은 부관인 여호수아는 장막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11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보좌하는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1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젊은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천막 안을 떠나지 않았다.
영어NIV,11 The LORD would speak to Moses face to face, as a man speaks with his friend. Then Moses would return to the camp, but his young aide Joshua son of Nun did not leave the tent.
영어NASB,11 Thus the LORD used to speak to Moses face to face, just as a man speaks to his friend. When Moses returned to the camp, his servant Joshua, the son of Nun, a young man, would not depart from the tent.
영어MSG,11 And GOD spoke with Moses face-to-face, as neighbors speak to one another. When he would return to the camp, his attendant, the young man Joshua, stayed–he didn’t leave the Tent.
영어NRSV,11 Thus the LORD used to speak to Moses face to face, as one speaks to a friend. Then he would return to the camp; but his young assistant, Joshua son of Nun, would not leave the tent.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ελαλησεν κυριος προς μωυσην ενωπιος ενωπιω ως ει τις λαλησει προς τον εαυτου φιλον και απελυετο εις την παρεμβολην ο δε θεραπων ιησους υιος ναυη νεος ουκ εξεπορευετο εκ της σκηνης
라틴어Vulgate,11 loquebatur autem Dominus ad Mosen facie ad faciem sicut loqui solet homo ad amicum suum cumque ille reverteretur in castra minister eius Iosue filius Nun puer non recedebat de tabernaculo
히브리어구약BHS,11 וְדִבֶּר יְהוָה אֶל־מֹשֶׁה פָּנִים אֶל־פָּנִים כַּאֲשֶׁר יְדַבֵּר אִישׁ אֶל־רֵעֵהוּ וְשָׁב אֶל־הַמַּחֲנֶה וּמְשָׁרְתֹו יְהֹושֻׁעַ בִּן־נוּן נַעַר לֹא יָמִישׁ מִתֹּוךְ הָאֹהֶל׃ ס
성 경: [출33:1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회막]
친구(*, 레에) – ‘친구로서 대우하다’, ‘우정을 맺다’라는 뜻의 ‘라아’에서 온 말로 특히 ‘남자 친구’, ‘동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로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대하 20:7;사 41:8)이때 사용된 ‘벗'(*, 아하브)은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히 3:5)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삼상 28:6)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20절;딤전 6:16). 따라서 이 말은 그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민 12:8).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민 13:8, 16)가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떠나지 않은 사실(삼상 1:1; 3:3)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다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청년 여호수아 – 이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세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수 14:7). 그런데 ‘청년’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를 수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먼저 클라크(Adam Clarke)는 ‘청년’이라는 히브리어 ‘나아르'(*)를 ‘독신’ 또는 ‘미혼자’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해 안스워스(Answorth)는 ‘청년’을 ‘수종자’에 대한 일반적 호칭(24:5;창 14:24)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칼빈 (Calvin)은 나이 많은 장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젊은 여호수아를 회막 관리자로 임명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청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견해 중 가장 타당한 것은 세번째 견해인 듯하다.
와요멜 모쉐 엘 아도나이 레에 앝타 오멜 엘라이 하알 엩 하암 하제 웨앝타 로 호다타니 엩 아쉘 티쉬라흐 임미 웨앝타 아말타 예다티카 베쉠 웨감 마차타 헨 베에나이
개역개정,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새번역,12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저에게 이 백성을 저 땅으로 이끌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는 저에게 일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저를 이름으로 불러 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며, 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12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들을 이끌라’고 줄곧 말씀해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나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고 너는 내게 은총을 입었다’라고 말입니다.
가톨릭성경,12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뿐더러, 너는 내 눈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영어NIV,12 Moses said to the LORD, “You have been telling me, ‘Lead these people,’ but you have not let me know whom you will send with me. You have said, ‘I know you by name and you have found favor with me.’
영어NASB,12 Then Moses said to the LORD, “See, You say to me, ‘Bring up this people!’ But You Yourself have not let me know whom You will send with me. Moreover, You have said, ‘I have known you by name, and you have also found favor in My sight.’
영어MSG,12 Moses said to GOD, “Look, you tell me, ‘Lead this people,’ but you don’t let me know whom you’re going to send with me. You tell me, ‘I know you well and you are special to me.’
영어NRSV,12 Moses said to the LORD, “See, you have said to me, ‘Bring up this people’; but you have not let me know whom you will send with me. Yet you have said, ‘I know you by name, and you have also found favor in my sight.’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ιπεν μωυσης προς κυριον ιδου συ μοι λεγεις αναγαγε τον λαον τουτον συ δε ουκ εδηλωσας μοι ον συναποστελεις μετ’ εμου συ δε μοι ειπας οιδα σε παρα παντας και χαριν εχεις παρ’ εμοι
라틴어Vulgate,12 dixit autem Moses ad Dominum praecipis ut educam populum istum et non indicas mihi quem missurus es mecum praesertim cum dixeris novi te ex nomine et invenisti gratiam coram me
히브리어구약BHS,12 וַיֹּאמֶר מֹשֶׁה אֶל־יְהוָה רְאֵה אַתָּה אֹמֵר אֵלַי הַעַל אֶת־הָעָם הַזֶּה וְאַתָּה לֹא הֹודַעְתַּנִי אֵת אֲשֶׁר־תִּשְׁלַח עִמִּי וְאַתָּה אָמַרְתָּ יְדַעְתִּיךָ בְשֵׁם וְגַם־מָצָאתָ חֵן בְּעֵינָי׃
성 경: [출33:1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나와 함께 보낼 자( – , 아쉐르 티쉘라흐 임미) – 여기서 ‘쉘라흐’는 ‘보내다’는 뜻 외에 ‘임명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와 함께 (당신이) 임명할 자’ 혹은 ‘나에게 (당신이) 보낼 자’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모세는 출애굽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임명한 동역자였던 아론(4:14-16)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데 따라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 내지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여호수아를 후계자와 동역자로 세워 주셨다(민 27:15-23).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이 여러차례 언급하신 ‘사자'(2절;23:20;32:34)를 보내달라고 간구한 것으로도 이해하는데, 전후 문맥 관계상 전자(前者)의 견해를 취하는 편이 무난하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여기서 ‘지시하다’란 원어 ‘야다'(*)는 ‘대답하다’, ‘알리다'(알게 하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알려주지 아니하시나이다’로 번역하면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이름으로) 너를 안다’이다. 이처럼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전인격적으로 아는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Keil).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특별한 교제를 나누고 계심을 의미한다. 한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0:7 주석을 참조하라.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 직역하면 ‘너 역시 내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로, 여기서 ‘눈’을 뜻하는 ‘아인'(*)에는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틀 나누며 또한 그분에게서 이러한 ‘은혜’까지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노를 발하셨으면서도(4:14), 친구처럼 대면해서 이야기할 만큼(11절) 큰 은혜를 입었다.
웨앝타 임 나 마치티 헨 베에네카 호디에니 나 엩 데라케카 웨에다아카 레마안 엠차 헨 베에네카 우레에 키 암메카 학고이 하제
개역개정,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새번역,13 그러시다면, 제가 주님을 섬기며, 계속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주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성경,13 주께서 나를 기쁘게 여기신다면 제발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셔서 내가 주를 알게 하시고 계속해서 주께 은총을 입게 해 주십시오. 또 이 민족이 주의 백성들임을 생각해 주십시오.”
가톨릭성경,13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영어NIV,13 If you are pleased with me, teach me your ways so I may know you and continue to find favor with you. Remember that this nation is your people.”
영어NASB,13 “Now therefore, I pray You,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let me know Your ways, that I may know You, so that I may find favor in Your sight. Consider too, that this nation is Your people.”
영어MSG,13 If I am so special to you, let me in on your plans. That way, I will continue being special to you. Don’t forget, this is your people, your responsibility.”
영어NRSV,13 Now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show me your ways, so that I may know you and find favor in your sight. Consider too that this nation is your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ει ουν ευρηκα χαριν εναντιον σου εμφανισον μοι σεαυτον γνωστως ιδω σε οπως αν ω ευρηκως χαριν εναντιον σου και ινα γνω οτι λαος σου το εθνος το μεγα τουτο
라틴어Vulgate,13 si ergo inveni gratiam in conspectu tuo ostende mihi viam tuam ut sciam te et inveniam gratiam ante oculos tuos respice populum tuum gentem hanc
히브리어구약BHS,13 וְעַתָּה אִם־נָא מָצָאתִי חֵן בְּעֵינֶיךָ הֹודִעֵנִי נָא אֶת־דְּרָךֶךָ וְאֵדָעֲךָ לְמַעַן אֶמְצָא־חֵן בְּעֵינֶיךָ וּרְאֵה כִּי עַמְּךָ הַגֹּוי הַזֶּה׃
성 경: [출33:1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 앞절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길 – 칼빈(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각기 이해하고 있다.
내게 보이사 – ‘내게 알리사’, ‘내게 깨닫게 하사’란 뜻으로 앞 절의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족속(*, 하고이하제) – 정확히 번역하면 ‘이(하제) 민족(하고이)’이다.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이’에 정관사(하)가 붙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조하는데, 특히 방금 전까지 죄를 지었던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 모세를 향해 ‘네 백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하나님(32:7)께 모세는 재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기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고려하다’, ‘숙고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비록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그 민족'(하고이)이지만 다시 고려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재심 청원(再審請願)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와요말 파나이 예레쿠 와하니호티 라크
개역개정,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새번역,14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
우리말성경,14 여호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내가 너를 무사하게 할 것이다.”
가톨릭성경,14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
영어NIV,14 The LORD replied,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
영어NASB,14 And He said, “My presence sha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
영어MSG,14 GOD said,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I’ll see the journey to the end.”
영어NRSV,14 He said, “My presence wi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λεγει αυτος προπορευσομαι σου και καταπαυσω σε
라틴어Vulgate,14 dixitque Dominus facies mea praecedet te et requiem dabo tibi
히브리어구약BHS,14 וַיֹּאמַר פָּנַי יֵלֵכוּ וַהֲנִחֹתִי לָךְ׃
성 경: [출33:14]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내가 친히 가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 얼굴이 갈 것이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내 존재가 갈 것이다'(My presence will go)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아름답게 서로 어우러져 다시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너로 편케 하리라 – 직역하면 ‘너를 쉬게 하리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인도해 가심으로써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가나안 입성까지의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와요멜 엘라우 임 엔 파네카 올레킴 알 타아레누 미제
개역개정,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새번역,15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우리말성경,15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15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영어NIV,15 Then Moses said to him, “If your Presence does not go with us, do not send us up from here.
영어NASB,15 Then he said to Him, “If Your presence does not go with us, do not lead us up from here.
영어MSG,15 Moses said, “If your presence doesn’t take the lead here, call this trip off right now.
영어NRSV,15 And he said to him, “If your presence will not go, do not carry us up from her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λεγει προς αυτον ει μη αυτος συ πορευη μη με αναγαγης εντευθεν
라틴어Vulgate,15 et ait Moses si non tu ipse praecedes ne educas nos de loco isto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אמֶר אֵלָיו אִם־אֵין פָּנֶיךָ הֹלְכִים אַל־תַּעֲלֵנוּ מִזֶּה׃
성 경: [출33:15, 16]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14절)에 근거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확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표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의 백성을… 구별하심이 – 주의 백성된 자들의 가장 큰 증거는 구별됨이다(롬 1:6, 7).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이며 또한 어두움, 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구별됨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이 가능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요 16:33). 즉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이 덧입혀 주시는 권능 때문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밤메 이와다 에포 키 마차티 헨 베에네카 아니 웨암메카 할로 베레크테카 임마누 웨니프레누 아니 웨암메카 미콜 하암 아쉘 알 페네이 하아다마
개역개정,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새번역,16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말성경,16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들이 주께 은총을 입었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들이 지면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겠습니까?”
가톨릭성경,16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만 저와 당신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주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까?”
영어NIV,16 How will anyone know that you are pleased with me and with your people unless you go with us? What else will distinguish me and your people from all the other people on the face of the earth?”
영어NASB,16 “For how then can it be known that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I and Your people? Is it not by Your going with us, so that we, I and Your people, may be distinguished from all the other people who are upon the face of the earth?”
영어MSG,16 How else will it be known that you’re with me in this, with me and your people? Are you traveling with us or not? How else will we know that we’re special, I and your people, among all other people on this planet Earth?”
영어NRSV,16 For how shall it be known that 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I and your people, unless you go with us? In this way, we shall be distinct, I and your people, from every people on the face of the earth.”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πως γνωστον εσται αληθως οτι ευρηκα χαριν παρα σοι εγω τε και ο λαος σου αλλ’ η συμπορευομενου σου μεθ’ ημων και ενδοξασθησομαι εγω τε και ο λαος σου παρα παντα τα εθνη οσα επι της γη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16 in quo enim scire poterimus ego et populus tuus invenisse nos gratiam in conspectu tuo nisi ambulaveris nobiscum ut glorificemur ab omnibus populis qui habitant super terram
히브리어구약BHS,16 וּבַמֶּה יִוָּדַע אֵפֹוא כִּי־מָצָאתִי חֵן בְּעֵינֶיךָ אֲנִי וְעַמֶּךָ הֲלֹוא בְּלֶכְתְּךָ עִמָּנוּ וְנִפְלֵינוּ אֲנִי וְעַמְּךָ מִכָּל־הָעָם אֲשֶׁר עַל־פְּנֵי הָאֲדָמָה׃ ף
와요멜 아도나이 엘 모쉐 감 엩 하다발 하제 아쉘 딥바르타 에에세 키 마차타 헨 베네이 와에다아카 베쉠
개역개정,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새번역,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우리말성경,17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 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영어NIV,17 And the LORD said to Moses, “I will do the very thing you have asked, because I am pleased with you and I know you by name.”
영어NASB,17 And the LORD said to Moses, “I will also do this thing of which you have spoken; for you have found favor in My sight, and I have known you by name.”
영어MSG,17 GOD said to Moses: “All right. Just as you say; this also I will do, for I know you well and you are special to me. I know you by name.”
영어NRSV,17 The LORD said to Moses, “I will do the very thing that you have asked; for you have found favor in my sight, and I know you by nam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προς μωυσην και τουτον σοι τον λογον ον ειρηκας ποιησω ευρηκας γαρ χαριν ενωπιον μου και οιδα σε παρα παντας
라틴어Vulgate,17 dixit autem Dominus ad Mosen et verbum istud quod locutus es faciam invenisti enim gratiam coram me et te ipsum novi ex nomine
히브리어구약BHS,17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גַּם אֶת־הַדָּבָר הַזֶּה אֲשֶׁר דִּבַּרְתָּ אֶעֱשֶׂה כִּי־מָצָאתָ חֵן בְּעֵינַי וָאֵדָעֲךָ בְּשֵׁם׃
성 경: [출33:17]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이 일도… 하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와 같이 언약 백성(32:13)으로 인정하여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 12절 주석 하반부 참조.
와요말 할에니 나 엩 케보데카
개역개정,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새번역,18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우리말성경,18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부탁입니다만, 내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18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영어NIV,18 Then Moses said, “Now show me your glory.”
영어NASB,18 Then Moses said, “I pray You, show me Your glory!”
영어MSG,18 Moses said, “Please. Let me see your Glory.”
영어NRSV,18 Moses said, “Show me your glory, I pray.”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λεγει δειξον μοι την σεαυτου δοξαν
라틴어Vulgate,18 qui ait ostende mihi gloriam tuam
히브리어구약BHS,18 וַיֹּאמַר הַרְאֵנִי נָא אֶת־כְּבֹדֶךָ׃
성 경: [출33:18]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주의 영광 – 이것은 지금까지 나타난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3:2;24:15, 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된 모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시었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다(20절).
와요멜 아니 아아빌 콜 투비 알 바네카 웨카라티 베쉠 아도나이 레파네카 웨하노티 엩 아쉘 아혼 웨리함티 엩 아쉘 아라헴
개역개정,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새번역,19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우리말성경,19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가톨릭성경,19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베푼다.”
영어NIV,19 And the LORD said, “I will cause all my goodness to pass in front of you, and I will proclaim my name, the LORD, in your presence. I will have mercy on whom I will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 I will have compassion.
영어NASB,19 And He said, “I Myself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you, and will proclaim the name of the LORD before you; and I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will show compassion on whom I will show compassion.”
영어MSG,19 GOD said, “I will make my Goodness pass right in front of you; I’ll call out the name, GOD, right before you. I’ll treat well whomever I want to treat well and I’ll be kind to whomever I want to be kind.”
영어NRSV,19 And he said, “I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you, and will proclaim before you the name, ‘The LORD’; and I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ειπεν εγω παρελευσομαι προτερος σου τη δοξη μου και καλεσω επι τω ονοματι μου κυριος εναντιον σου και ελεησω ον αν ελεω και οικτιρησω ον αν οικτιρω
라틴어Vulgate,19 respondit ego ostendam omne bonum tibi et vocabo in nomine Domini coram te et miserebor cui voluero et clemens ero in quem mihi placuerit
히브리어구약BHS,19 וַיֹּאמֶר אֲנִי אַעֲבִיר כָּל־טוּבִי עַל־פָּנֶיךָ וְקָרָאתִי בְשֵׁם יְהוָה לְפָנֶיךָ וְחַנֹּתִי אֶת־אֲשֶׁר אָחֹן וְרִחַמְתִּי אֶת־אֲשֶׁר אֲרַחֵם׃
성 경: [출33:19]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모든 선한 형상( – , 콜투비) – 원문상으로는 ‘형상’이란 말이 없고 ‘나의 모든 선함’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리라 – 여기서 ‘반포하다’란 원어 ‘카라'(*)는’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 또는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34:6, 7).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20:7).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헤를 베풀다'(be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Wycliffe). 따라처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 측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이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테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중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앤'(Anna), ‘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라’,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동사 ‘라함'(*)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이다. 따라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사49:15),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시 103:13).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 103:13)과 (2) 본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와요멜 로 투칼 릴오트 엩 파나이 키 로 이르아니 하아담 와하이
개역개정,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새번역,20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0 그분께서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
가톨릭성경,20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영어NIV,20 But,” he said,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one may see me and live.”
영어NASB,20 But He said,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man can see Me and live!”
영어MSG,20 GOD continued, “But you may not see my face. No one can see me and live.”
영어NRSV,20 But,” he said,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one shall see me and live.”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ειπεν ου δυνηση ιδειν μου το προσωπον ου γαρ μη ιδη ανθρωπος το προσωπον μου και ζ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0 rursumque ait non poteris videre faciem meam non enim videbit me homo et vivet
히브리어구약BHS,20 וַיֹּאמֶר לֹא תוּכַל לִרְאֹת אֶת־פָּנָי כִּי לֹא־יִרְאַנִי הָאָדָם וָחָי׃
성 경: [출33:20]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 바사르; , 사륵스)을 덧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실(사 6:1-5)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경상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와요멜 아도나이 인네 마콤 이티 웨니칩타 알 하출
개역개정,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새번역,21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우리말성경,21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 가까운 곳에 바위가 있으니 그 위에 서 있어라.
가톨릭성경,21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영어NIV,21 Then the LORD said, “There is a place near me where you may stand on a rock.
영어NASB,21 Then the LORD said, “Behold, there is a place by Me, and you shall stand there on the rock;
영어MSG,21 GOD said, “Look, here is a place right beside me. Put yourself on this rock.
영어NRSV,21 And the LORD continued, “See, there is a place by me where you shall stand on the rock;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ιδου τοπος παρ’ εμοι στηση επι της πετρας
라틴어Vulgate,21 et iterum ecce inquit est locus apud me stabis super petram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אמֶר יְהוָה הִנֵּה מָקֹום אִתִּי וְנִצַּבְתָּ עַל־הַצּוּר׃
성 경: [출33:21]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반석(*, 추르) – 본래 의미는 ‘절벽’이며 일반적 의미는 ‘바위’인데 상징적으로 ‘피난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반석’에 두겠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피난처에 숨기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신 32:15;삼상 2:2시 89:26),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구원하는 능력이심을 나타낸다.
웨하야 바아볼 케보티 웨삼티카 베니크랕 하추르 웨사코티 갚피 아레카 아드 오브리
개역개정,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새번역,22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우리말성경,22 그러면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 틈새에 두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덮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2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영어NIV,22 When my glory passes by, I will put you in a cleft in the rock and cover you with my hand until I have passed by.
영어NASB,22 and it will come about, while My glory is passing by, that I will put you in the cleft of the rock and cover you with My hand until I have passed by.
영어MSG,22 When my Glory passes by, I’ll put you in the cleft of the rock and cover you with my hand until I’ve passed by.
영어NRSV,22 and while my glory passes by I will put you in a cleft of the rock, and I will cover you with my hand until I have passed by;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ηνικα δ’ αν παρελθη μου η δοξα και θησω σε εις οπην της πετρας και σκεπασω τη χειρι μου επι σε εως αν παρελθω
라틴어Vulgate,22 cumque transibit gloria mea ponam te in foramine petrae et protegam dextera mea donec transeam
히브리어구약BHS,22 וְהָיָה בַּעֲבֹר כְּבֹדִי וְשַׂמְתִּיךָ בְּנִקְרַת הַצּוּר וְשַׂכֹּתִי כַפִּי עָלֶיךָ עַד־עָבְרִי׃
성 경: [출33:22]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두고(*, 사므티카) – ‘두다’, ‘놓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숨'(*)의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겠다는 의미이다.
덮었다가(*, 사코티) – 기본형 ‘사카크'(*)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25:20), ‘방어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 직접적 현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수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와하시로티 엩 캎피 웨라이타 엩 아호라이 우파나이 로 예라우
개역개정,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새번역,23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3 그러고 나서 내가 내 손을 뗄 것이니 너는 내 뒷모습만 보고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3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영어NIV,23 Then I will remove my hand and you will see my back; but my face must not be seen.”
영어NASB,23 “Then I will take My hand away and you shall see My back, but My face shall not be seen.”
영어MSG,23 Then I’ll take my hand away and you’ll see my back. But you won’t see my face.”
영어NRSV,23 then I will take away my hand, and you shall see my back; but my face shall not be seen.”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αφελω την χειρα και τοτε οψη τα οπισω μου το δε προσωπον μου ουκ οφθησεται σοι
라틴어Vulgate,23 tollamque manum meam et videbis posteriora mea faciem autem meam videre non poteris
히브리어구약BHS,23 וַהֲסִרֹתִי אֶת־כַּפִּי וְרָאִיתָ אֶת־אֲחֹרָי וּפָנַי לֹא יֵרָאוּ׃ ס
성 경: [출33:23]
주제1: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
주제2: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거두리니 – 이에 해당하는 ‘수르'(*)는 ‘떠나다’, ‘피하다’, ‘물러나다’, ‘제거하다’는 의미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잔재를 볼 수 있도록 특별 보호 조치를 잠시 해제하겠다는 뜻이다.
내 등을 볼 것이요 –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反影)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을 볼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인테 이는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 ‘등'(back)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반영(反影)을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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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출애굽기 33장
===33:1
네가…인도하여 낸 백성 – 32:7과 동일한 말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시기 보다는 마치 인간 지도자 모세가 한 것처럼 말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이고 낯설은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 본절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는 친밀한 말씀과는 대조를 이룬다.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 –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약속되어진가나안 땅을 뜻한다(창 12:7; 13:15; 17:8; 28: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땅에대하여 다시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관계가 손상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을 일단 가나안 땅으로는 인도하실것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이다(Wycliffe). 올라가라( , 알라) – 원뜻은 ‘깨어나다’, ‘출발하다’, ‘도약하다’ 혹은’복구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속에는 전장(前章)의 사건으로 인한침체 상태에서 깨어나 도약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33:2
내가 사자를 내 앞서 보내어…쫓아내고 –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 의해 되어짐을 의미한다(23:20; 32:34).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세상과 영적 싸움을 싸우나 우리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 싸울 뿐이다(골 1:29). 한편 ‘사자’에 관해서는 23:20 주석을 참조하라. 가나안 사람…여부스 사람 –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 7족속’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3:8 주석 및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족속들’을 참조하라.
======33: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여기서 ‘젖’은 우유를 가리키는데, 양과 염소의 젖까지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흐르다'( , 주브)는 ‘차고’, ‘넘치는’ 것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3:8 주석을 참조하라. 나는…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나대로 하게 하라'(32:10), 즉 일종의 관계 단절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백성만 따로 올라가라고 하심으로써 이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1절의 ‘네가…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애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계약 파기로 인한 불화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목이 곧은 백성 – ‘목을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성’이란 뜻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순종하거나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억척스런 고집이나 패역한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중로에서 – 단순히 ‘길에서’ 혹은 ‘도중에’라고 번역함이 좋다.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 직역하면 ‘너희를 진멸하지 않도록’이다.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 )은 원래 ‘먹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지체없이 ‘먹어치우다’, ‘태워버리다’는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면, 그들이 또다시 범죄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가 가차없이 그들을 진멸하고 말것이니,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일종의 자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33:4
혹은 ‘슬픈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을 하신 것(3절)은 광야 지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해야 할 백성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단장하지 아니하니 – 직역하면 ‘장신구를 몸에 달지 않았으니’이다. 이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에 대하여 통회(痛悔)하고 있음을 외적으로 나타낸 행위인데(창 37:29;삼하 1:11;욘 3:6-8), 애도의 기간에 몸에서 장신구를 메는 것은 당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nobel). 한편 백성듸은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금고리를 내놓았는데(32:2,3) 그렇게 하고도 또다른 장신구가 있었음을 볼때 출애굽시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패물을 받아 나왔음을 알 수 있다(12:35,36).
=====33:5
목이 곧은 백성 – 하나님 앞에서 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을 뜻하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순식간이라도 – (눈의)’깜박임’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잠깐 동안이라도’로 번역하는것이 좋다. 이는 하나님이 잠깐만이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있으면 이내 그들의 죄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성경의 증거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창 6:5). 단장품을 졔하라 – 여기서 ‘제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 ‘야라드'( )의 의미는 ‘내려가다’인데,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아래로)던지다’, ‘끌어내리다’란 뜻이 된다. 따라서 이말은 ‘단장품을 내어 던지라’는 의미이다. 한편 장신구는 당시 고대 근동에서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다. 따라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야곱이 옛생활을 청산하고 벧엘로 올라갈 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이방 신상과 함께 땅에 묻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창 35:1-4).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장신구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았는데(12:35,36),그것들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그들은 알게 모르게 우상 숭배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를 과감히 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비록 하찮아 보이는것이라도, 그것이 죄와 연결될 때에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 정확한 표현은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알 것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다'( , 야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알리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너희에게 무엇을 할지 결정하리라'(NEB,I will determine what to do to you;NIV,I will decide what to do with you)로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이 보다 자연스러워 보인다.
======33:6
호렙 산 – ‘시내 산’과 동일 지명으로(신 4:10-15;왕상 8:9)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거주하였던 장소를 가리킨다(19:2).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33:7
장막을 취하여…회막이라 이름하니 –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 )는 ‘회집(會集)의 장소’, 즉 하나님과 백성이 만나는 장막이란 뜻이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의 신으로서 어떤 가견적 형상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영향받은 이스라엘 민족도 눈에 보이는 어떤 신앙의 상징물을 절실히 요구했을 것이다. 금송아지 숭배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성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후 모세는 시내 산상에서 계시받은 성막(25:9)을 짓기 전, 그 성막의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긴급히 느꼈는데, 이에 그는 이스라엘 진 바깥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일컬어 회막이라 명명한 것이다(Rosenmuller). 한편 이 명칭은 후에 세워진 정식 성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30:18,26;39:32;40:2,34). 여호와를 암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 회막이 진 바깥에 있게 됨에 따라 진은 회막과 구별되는 세속적인 곳, 즉 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진으로부터 나와 회막으로 나아가야 하는 수고가 요구되었다.
======33:8
일어나…서서 – 이것은 존경과 경외를 나타내는 동작으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이를 듣는 백성들이 모두 일어섰다(신 27:12,13;느 8:5,7).
=====33:9
구름 기둥 –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상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13: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세가 진 밖에 설치한 회막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지시하신 정식 성막(25:1-31:18)이 아니고 금송아지숭배 사건 후 임시로 지은 것인데.여기에도 구름 기둥이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시로 지은 회막 가운데라도 임재하셨음을 나타낸다.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섬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장소를 막론하고 찾아와 함께 해주심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 한 내적신령과 진정부터 갖추어야 하겠다(요 4:20-24).
=====33:10
모든 백성이…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 이 구름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앞서가며 인도하던 것이다(13:21,22). 따라서 백성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 구름 기둥이 다시금 회막 위에 나타난 것올 보았다는 것은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 여기서 ‘경배하다’의 ‘솨하'( )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에도 똑같이 사용된 말이다(32:8; 숭배하며).즉 그들은 하나님(4:31)->금송아지->다시 하나님의 순으로 경배의 대상을 달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며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절).
====33:11
친구( , 레에) – ‘친구로서 대우하다’, ‘우정을 맺다’라는 뜻의 ‘라아’에서 온 말로 특히 ‘남자 친구’, ‘동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당신의 동료로 대하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이 ‘친구’로 칭하신 사람으로서는 모세 외에 아브라함이 있으나(대하 20:7;사 41:8)이때 사용된 ‘벗'( ,아하브)은 ‘애정을 갖다’, ‘좋아하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랑스런 친구’, ‘애인’ 등의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스런 벗으로 대한데 반해, 모세는 동료로서 대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환'(히 3:5)이라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면하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 )의 문자적 뜻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face to face)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실제로 모세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한 것을 가리키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우림 혹은 선지자를 통해(삼상 28:6)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데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과 같은 손발이나 얼굴 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20절;딤전 6:16). 따라서 이 말은 그 만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눴다는 뜻이다. 실로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들도 누리지 못할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하나님과 누린 자였다(민 12:8).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롤 담당하지 않고 이처럼 여호수아가 관리한 까닭은 회막이 임시 성소이기 때문이며 (1) 아론은 금송아지 숭배의 직접적인 책임자(32:1-6)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책으로 당분간 제사장직을 맡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이끈 에브라임 사람 여호수아(민 13:8,16)가 회막을 떠나지 않고 봉사한 일은, 엘리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에브라임 출신의 사무엘이 성소를 나지 않은 사실(삼상 1:1; 3:3)과 유사하다. 이처럼 두 사람이 다 같이 성소를 떠나지 않고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의 자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부터 훈련되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청년 여호수아 – 이 무렵 여호수아의 나이는 39세 가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수 14:7). 그런데 ‘청년’이라는 말이 굳이 ‘여호수아’를
=====33:12
나와 함께 보낼 자( – ,아쉐르 티쉘라흐 임미) – 여기서 ‘쉘라흐’는 ‘보내다’는 뜻 외에 ‘임명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나와 함께 (당신이) 임명할 자’ 혹은 ‘나에게 (당신이) 보낼 자’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모세는 출애굽 역사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임명한 동역자였던 아론(4:14-16)이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데 따라 하나님께 새로운 동역자 내지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여호수아를 후계자와 동역자로 세워 주셨다(민 27:15-23). 그런데 혹자는 이 말을 하나님이 여러차례 언급하신 ‘사자'(2절;23:20;32:34)를 보내달라고 간구한 것으로도 이해하는데, 전후 문맥 관계상 전자(前者)의 견해를 취하는 편이 무난하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여기서 ‘지시하다’란 원어 ‘야다'( )는 ‘대답하다’, ‘알리다'(알게 하다), ‘자신을 나타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알려주지 아니하시나이다’로 번역하면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이름으로) 너를 안다’이다. 이처럼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전인격적으로 아는 친숙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Keil).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특별한 교제를 나누고 계심을 의미한다. 한편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20:7 주석을 참조하라.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 직역하면 ‘너 역시 내 눈에서 은혜를 찾았다’로, 여기서 ‘눈’을 뜻하는 ‘아인'( )에는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좋게 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틀 나누며 또한 그분에게서 이러한 ‘은혜’까지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향해 노를 발하셨으면서도(4:14), 친구처럼 대면해서 이야기할 만큼(11절) 큰 은혜를 입었다.
======33:13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 앞절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길 – 칼빈(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각기 이해하고 있다. 내게 보이사 – ‘내게 알리사’, ‘내게 깨닫게 하사’란 뜻으로 앞 절의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이 족속( , 하고이하제) – 정확히 번역하면 ‘이(하제) 민족(하고이)’이다. ‘민족’ 또는 ‘나라’를 뜻하는 ‘고이’에 정관사(하)가 붙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조하는데, 특히 방금 전까지 죄를 지었던 민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 모세를 향해 ‘네 백성’이라고 하여 이스라엘과 관계 단절을 선언한 하나님(32:7)께 모세는 재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여기다’에 해당하는 ‘라아'( )는 ‘고려하다’, ‘숙고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비록 죄를 지어 계약을 파기한 ‘그 민족'(하고이)이지만 다시 고려해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재심 청원(再審請願)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33:14
내가 친히 가리라 – 문자적으로는 ‘내 얼굴이 갈 것이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내 존재가 갈것이다'(My presence will go)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아름답게 서로 어우러져 다시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너로 편케 하리라 – 직역하면 ‘너를 쉬게 하리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백성들을 인도해 가심으로써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가나안 입성까지의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33:15,16
하나님의 약속(14절)에 근거해 모세가 백성들 전체를 확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표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의 백성을…구별하심이 – 주의 백성된 자들의 가장 큰 증거는 구별됨이다(롬 1:6,7).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이며 또한 어두움, 사망,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구별됨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이 가능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요 16:33). 즉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이 덧입혀 주시는 권능 때문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33:17
이 일도…하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와 같이 언약 백성(32:13)으로 인정하여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 12절 주석 하반부 참조.
======33:18
주의 영광 – 이것은 지금까지 나타난바 있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영광의 모습3:2;24:15,16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과 본체의 모든 것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영광된 모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단지 그 영광의 잔영만을 보여 주시었다(23절).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성을 감안한 은혜스런 조치였다(20절).
=====33:19
모든 선한 형상( – , 콜투비) – 원문상으로는 ‘형상’이란 말이없고 ‘나의 모든 선함’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본체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을…반포하리라 – 여기서 ‘반포하다’란 원어 ‘카라'( )는’선언하다’, ‘선포(공포)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다’는 의미이다.따라서 본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거룩성 또는 속성을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34:6,7). 왜냐하면성경에 기록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때문이다(20:7).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은헤를 베풀다'(begracious)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하난'( )은 ‘호의를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는 뜻으로 윗 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는 아랫 사람에게 ‘자발적으로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Wycliffe). 따라처 은혜를 받는 사람보다는 은혜를 베푸는측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이 동사의 주어가 대부분 하나님으로 나와있다. 한편 이 동사로부터 많은 사람의 이름들이 파생되었는테 대표적인 것이 ‘요하난'(남자 이름)과 ‘한나'(여자 이름)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름중 ‘죤'(John), ‘요한'(Johann), ‘쟝'(Jean), ‘얀'(Jan), ‘후안'(Jaan) 등은 ‘요하난’으로부터, ‘앤'(Anna),’낸시'(Nancy)등은 ‘한나’로부터 파생한 것이다. 긍휼히 여길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라’,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동사 ‘라함'( )의 기본 의미는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이다. 따라서 선지사 이사야는 젖먹이에 대한 어미의 사랑을 언급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고(사49:15),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시 103:13). 이 단어는기본적으로 (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맺고 있는 강한 결속의 개념(시 103:13)과 (2) 본절과 같이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을 합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3:20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즉 타락 후 죽을 수 밖에없는 육신( , 바사르; ,사륵스)을 덧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 거룩하신 영광의 빛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딤전6:16).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스스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실(사 6:1-5)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경상 하나님을 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 혹은 그 상징적 형태를 보았다는 뜻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체(18절)를 보았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3:21
반석( , 추르) – 본래 의미는 ‘절벽’이며 일반적 의미는 ‘바위’인데 상징적으로 ‘피난처’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세를 ‘반석’에 두겠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피난처에 숨기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성경에서 ‘반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신 32:15;삼상 2:2시 89:26),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구원하는 능력이심을 나타낸다.
======33:22
두고( , 사므티카) – ‘두다’, ‘놓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숨'( )의 미래형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겠다는 의미이다. 덮었다가( , 사코티) – 기본형 ‘사카크'( )는 ‘울타리를 두르다’,’뚜껑을 덮다'(25:20), ‘방어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비록 모세가 하나님의직접적 현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형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손수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33:23
거두리니 – 이에 해당하는 ‘수르'( )는 ‘떠나다’, ‘피하다’, ‘물러나다’,’제거하다’는 의미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잔재를 볼 수 있도록 특별 보호 조치를 잠시 해제하겠다는 뜻이다. 내 등을 볼 것이요 –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사람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는 볼 수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반영(反影)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을 볼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인테 이는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 ‘등'(back)은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반영(反影)을 표현한 말이다.
32장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었던 언약을 무의미하 게 만들어 버린 중대한 범죄였다. 물론 레위인들에 의해서 민족 청결 작업이 진 행되기는 했으나(32:25-28) 하나님 편에서는 그 범죄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 으셨던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본장에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치 않을 것이 천명되어 있다(1-6절). 그러자 택한 자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던 모세가 동행 거부 명령의 철회를 위해 진 밖에다 장막을 치고 거기서 끈덕지게 간구하는 장면이 묘삭되어 있다(7-16 절). 그리고 이러한 간절한 중보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동행을 재허락하시고 또한 언약의 회복을 약속하시는 은혜스런 모습이 그려져 있다(17-2 3절).
결론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동행 거부 선언은 그들을 향한 영원한 포기 선언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동행 거부는 그들 의 죄악을 반성하고 청산하라는 경고의 표현이지 결코 그들에 대한 사랑의 포기 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시 고 그들의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시며 끝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사랑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게 하신다. 이같은 하나님의 집념 때문에 허물로 짐철된 우리 도 끝끝내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1. 동행을 거부하시다(33:1-6)
우상 숭배의 여파는 동족에 의해 동족이 살해되는 비참함 외에(32:25-35)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출애굽때부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동행 거부 선언이라는 최악의 상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단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동행할 경우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1-3절). 그와 더불어 그들이 지닌 우상의 흔적인 장신구<5절 주석>를 제할 것을 명하셨다(4-6절).
이러한 본문의 결별 선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1)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있는 인간과는 결코 교제하지 않으신다. (2) 범죄 한 영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서의 죄를 청산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을 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회개시켜 당신의 품에 두시려는 것이다(히 12:5-13).
2. 만남의 장막에 들어간 모세(33:7-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진노의 표시로써 그들과의 동행을 거부하셨다(1-6절). 따라서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애굽 에서 시내 산까지 인도되었으나 이제부터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 는 고독한 무리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모세는 본문에서 보듯이 성막(25:8,9)과는 별개의 것으로 진 밖에 희망을 마련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기에 이른다. (7,9절). 그런데 이 기도는 모세 혼자만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뢰하는 자들과 더불어 행한 합심기도였다.(8,10,11절). 그리고 그 합심 기도 의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동행 거부의 철회라는 은혜로운 응답을 받게 된다(17절).
이처럼 모세와 경건한 무리들은 비록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일 이었지만 그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더불어 사는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동행과 가나안 땅에의 약속 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 다. (1)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문제는 하나님과의 동행(교제)이다. 이것 없이 얻어지는 복과 번영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를 해롭게 한다. (2) 뜻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합심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마 18:19; 약 5:16).
*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
모세는 하나님의 의견을 끊임없이 묻기 위 해 진 밖에 장막을 쳤다. 즉 성막 건설에 대한 규례가 이미 주어져 있긴 하지만(25-27,30) 아직 성막을 건설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임재할 임시 장막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화스럽지 도 않으며, 백성들이 거주하는 장막과 별다를 것이 없는 이 장막을 기쁘게 받 으시며 당신과 백성과의 만남의 처소로 인정하셨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신령과 진정으로예배하는 곳'(요 4:24)이 성전이라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당신 앞에 무릎꿇는 겸손한 마음으로 세운 장막을 기뻐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절대성 등을 반영하는 복잡한 구조의 성소가 몇날후 세워졌지만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성소에 서 원하신 것도 역시 인간과 친구처럼 대면하는 진실한 교제였다.
한편 이러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최대로 반영된 것이 임마누엘(마 1:23)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Incarmation)하 셔서 이 땅에 거하시면서(요 1:14) 천한 자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또한 범죄한 인류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가교 (架橋)를 위해 당신 의 몸을 친히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그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긴밀히 친교할 수 있다 (히 7:23).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통로인 기도.
다정한 벗과의 만남은 스스럼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없이 편하다. 즉 불신의 장벽이 제거되고 따뜻한 친분만이 있기에 이 만남은 어느 누구나 기다려지는 만남이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 하나 님과의 교제를 스스럼 없이 맺는 것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대하는 바이 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간 위에 초월해 계신 두려운 존재, 인간과 교제할 수 없는 절대자로만 이해하는 인간은 결단코 그 같은 친밀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감각적이고, 실체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실증적 사고를 가진 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단순한 독백으로 여겨질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 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인식이나 체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가 기복적이고 주술적 인 독백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대화이며, 영혼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에너지 원(源)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영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입술만의 놀림이 아니라 마음으로 호소하고 이해하며 영으로 수납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내용을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표면적 이해보 다는 깊은 내면의 교류에 의해 관계가 깊어지듯이 기도는 영혼 깊숙히에서 울려 나오는 진실한 언어이어야 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 또한 기도는 이론적이거나 학술적인 대화가 아니라 진실한 고백이며 체험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자가 그 기쁨을 논할 수 없다. 하나님과 직접 주고 받는 대화임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 아무리 기도의 필요성을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을 알아도 그것은 지식적인 것일 뿐이지 전인 격적이고 경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대화, 곧 기도이 다.
3. 모세의 인내와 하나님의 회복 선언(33:13-23)
본문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회막에서(7-11절) 모세가 드린 간절한 중 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응답이 그려져 있다.
즉 경건한 무리를 대표한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 거부에 대해,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구별하신 구원 행동과는 정면 배치된다는 사실을 들어 동행 거부 선언을 철회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12,13,15,16절). 이에 대해 하나님은 동행에의 약속(14절)과 언약 백성으로서의 회복(17절)을 약속하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심을 확신했던 모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실 것을 요청하게 된다(18절).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품성을 스스로 계시하신 후 그 영광의 광채를 목격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19-23절).
이처럼 하나님과 모세는 중보 기도를 통해 더욱 성숙한 관계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에 언급된 모세의 항변은 인간적인 항의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신앙 고백이며 확신의 표현이다. 또 모세는 하나님의 대답이 있기 까지 간구했으니 이러한 끈기는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깊이 인식하 고 있었음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이처럼 모세의 기도는 생명을 돌보지 않은 이타적인 기도이며,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생명력 넘치는 기도였다. 이러한 끈질긴 기도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총이 찾아들었다. 멸망으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 새 희망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참된 신앙에 기초한 인내의 기도는 인간의 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약 5:7-11).
*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
죄로 오염된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의 실체를 목격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써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당신의 실존을 계시하신다. 이에 대해 하 나님의 실체를 보길 원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드러난 영광을 온갖 인위적 표현 으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성(神性)을 묘사할 수 있을 만큼의 사고와 언어를 지니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인간이 본 가 장 완벽한 실체인 인간 스스로의 신체적 특징에 하나님을 동일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이를 ‘신인 동형 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 현이라고 한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묘사로써 얼굴, 손바닥, 그리고 감정 등 인간의 이해와 언어 감각으로 표현한 것들이 성경에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의 실체를 사실적으 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한 인간의 신앙 고백이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란 점에서, 각 부분에 묘사된 이러한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전제하지 않을 수는 없다. 즉 하나님은 제한된 이성을 지닌 인간도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끔 스스로를 인간적 언어를 빌어 계 시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와 그분을 향한 인간의 열정이 빚어 낸 이러한 문학적 표현은 영광의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린 신앙의 소유자들에게 하나님 이해에 대한 운신(運身)의 폭을 넓혀 준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하나님에 관하여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사항을 이해시켜 줄 뿐이다. 결국 표현 할 길없는 하나님의 더욱 크신 신비에 관해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이해와 결단이 촉구될 뿐이다.
출애굽기 33장, 하나님의 등을 보이시다 – 구조와 해설, 새벽설교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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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숭배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가 죄로 인하여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의 범죄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재자 모세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용서하셨으며,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등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등을 보여 주시다
출애굽기 33장의 구조와 해설, 새벽설교 주제
출애굽기 33장의 구조
1절-3절, 계속해서 나아가라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4절-11절,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막 설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치장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회막을 치고 여호와께서 그 회막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12절-23절, 모세의 중보기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해 주시고 직접 인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해 주셔야만 한다는 모세의 중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의 해설
1절-23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간구함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 이후에(32:1~35),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지 않으실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33:1~6)으로 빚어지는 긴장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임시로 존재하는 회막은 성막의 미래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합니다(33:7~11).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세는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간구합니다(33:12~23. 참조, 32:9~14), 이와 같이 언약을 대표하는 자로서, 모세는 점점 더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1절-6절, 목이 곧은 백성
여호와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올라가라고 지시하십니다(1절). 그러면서 그들보다 앞서 한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2절, 참조, 23:20). 하지만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5절, 32:9, 34:9)이기 때문에 여호와 자신은 그들 가운데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가시지 않음으로, 여호와는 그들을 한순간에 없애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여호와에게 간구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근거해서(참조, 34:8~9), 모세는 여호와 자신이 그 백성과 함께 가실 것을 간청합니다.
7절-11절, 구름 기둥
여기서 회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 밖에 쳤기 때문에, 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7절). 이것은 성막이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할 성소'(25:8)라고 언급되는 것과 대조됩니다. 이 절들의 이야기는 중요한 줄거리에서 잠시 벗어납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깨뜨린 사건(32장)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33:1-6)으로 말미암아 긴장감이 빚어졌으며, 또한 그 긴장감은 이전에 묘사된 성소의 위치(25:1-31:17)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가 회막에 구름 기둥(9, 10절)으로 임재하시는 것과 관련하여, 이 단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직도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암시됩니다. 또한 여호와와 모세 사이에는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곧 여호와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십니다(33:8-11). 한편 모세가 진 밖으로 나가서 회막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주목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그들을 위해서 간구합니다(12-18절, 34:8-9)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줍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를 통해서, 여호와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한가운데 임재하실 것입니다.
11절, 하나님의 얼굴
본절은 여호와께서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수기 12장 8절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들은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세는 회막에서 무슨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구름기둥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만나서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상징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그의 영광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12절-16절,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또다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 간청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자기 자신과 여호와의 특별한 관계에 근거해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13절)라고 호소합니다. 앞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곧바로 없애 버리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도록 한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모세에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가 몸소 그들과 함께 가시도록 간청합니다(15절).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하시겠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입증해 주십니다. 곧 33:17~34:28에서 개별적으로 모세에게, 또한 35~40장에서 공적으로 성막을 짓는 것을 통해서 입증해 주십니다.
17절-18절, 여호와의 영광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18절). 이와 같은 경험이 개인적인 복으로서 아무리 사모할 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세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의 대표자로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간청하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언약이 맺어질 때(참조, 24:9~11, 15~18)와 마찬가지로, 모세는 여호와의 임재를 보여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세는 특별히 여호와가 자기 백성과 함께 성막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약속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막과 이스라엘 백성이 ‘영광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29:43~46)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9절,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모세는 주의 길(13절)을 자신에게 보여 주시고, 또한 주의 영광(18절)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모세의 간청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절의 말씀, 곧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는 여호와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선언하시는 사건을 미리 가리켜 줍니다(참조, 34:5~6). 롬 9:15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또한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3장의 새벽설교 주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하는 모세(1-11절)
금송아지 숭배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진노를 돌이키셨지만, 이미 깨어진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면, 이스라엘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께 하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백성들과 올라가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올라가지 않으시겠다(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진영 바깥에 임시로 설치한 회막에서 모세를 만나시며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모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갈 때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여호수아(1-11절)
회막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합니다(9절).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끝이 나면 모세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진영 밖에 설치된 회막을 지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 사람이 여호수아라고 말씀합니다(11절). 이 회막은 공식적으로 완성된 회막이 아니라 임시로 설치된 회막이지만, 여호수아는 이 회막을 아끼고 사랑하며 책임지고 지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랑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같이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며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을 다해 충성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등을 보여 주신 하나님(17-23절)
이미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보고 들었던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18절). 이스라엘의 범죄는 이처럼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모세 역시 죄인이기에 함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20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긍휼히 생각하시고 그에게 “등을 보여 주시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특별하게 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감사의 찬송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참고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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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의 온새기&월새기
출애굽기 33장 1-11절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절)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절)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4절)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6절)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7절)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절)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절)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절)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97) 여호수아처럼 되십시오 (출 33장 1-11절)
< 마음의 건축이 중요합니다 >
금송아지 사건 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산을 떠나 약속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1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4-5절). 당시 장신구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새겨져 있어서 알게 모르게 우상숭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것을 제거하라고 한 것입니다. 죄와 관련된 것을 과감하게 제거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급속히 회복되고 은혜와 축복도 급속히 회복됩니다.
그처럼 회개하는 마음으로 장신구를 떼어냈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거리감이 단번에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하면 이스라엘이 그 죄악으로 진멸될 수도 있었기에 하나님을 따로 만날 거룩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 필요성을 느끼고 모세가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장막을 치고 그곳을 회막이라고 이름 짓고 하나님을 앙모하고 추구하는 자는 그 회막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7절).
고대에는 대개 눈에 보이는 형상이나 건축물을 통해 신을 섬겼습니다. 금송아지 사건도 그런 관습의 영향으로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는 성막 건축에 시간이 걸렸기에 성막을 짓기 전에 성막 역할을 대신할 임시 장막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진 밖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회막이라 부른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가면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8절). 그리고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하나님이 모세와 말씀했습니다(9절). 회막이 정식 성막도 아닌 임시 장막인데도 거기에 구름 기둥이 선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장소와 상관이 없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의 예입니다.
화려한 성전 건축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전 건축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위선입니다. 속은 썩었는데 겉만 화려한 것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형식과 외형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형식이 미숙해도 좋고 외형은 부족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진실한 모습에 반응하십니다.
< 여호수아처럼 되십시오 >
그때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선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했습니다(10절). 그때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진으로 돌아왔지만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11절). 이 장면은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였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호수아의 충성스런 모습을 잘 묘사합니다. 또한 이 장면은 위대한 공동체의 위대한 리더가 되려면 말씀을 가진 모세와 기도하는 여호수아의 동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밤낮으로 회막을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 가장 많이 했던 것은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는 가까이 지켜보던 모세처럼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면하고 싶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싶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와 더 있고 싶고, 더 대화하고 싶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 증거가 있지만 교회에 자주 나와 기도하는 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특히 모세가 진으로 돌아왔어도 여호수아가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때 모세보다 여호수아가 더 많이 기도했다는 뜻도 됩니다. 물론 많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모세도 한때는 40일간의 시내산 기도 등을 비롯해 그 전에 정력적으로 오래 기도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기에 참된 기도자는 현재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리더를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다. 말년 병장보다 초년 이병이 더 군기가 들어있듯이 노년의 지도자보다 젊은 후학의 기도생활이 더욱 정력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훈련받는 후학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정력적인 기도 자세를 가졌기에 모세의 후임 리더가 될 수 있었고, 또한 나중에 가나안 정복전쟁을 할 때 태양을 멈추게 해달라는 기도까지 응답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훌륭한 기도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됩니다. 기도 없이 머리가 되는 축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에서 본보기가 되어야 성공과 축복에서도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이제 여호수아처럼 되십시오. 묵묵히 헌신하고 기도하면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알아주시고 기억해주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출애굽기 33장. 성공 보다 더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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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33장 성공 보다 더 중요한 것 (찬 435)
1. 신자에게 가장 무서운 상황은 하나님의 부재다. 물론 하나님은 신자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나 범죄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거절하는 삶은 가장 무서운 상황이다. 하나님은 금송아지로 반역한 백성과 동행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시고(만일 동행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을 진멸하지 않을 수 없다) 천사를 보내서 약속한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문제가 무엇인가? 문제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 곧 ‘우리를 (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신’(출 32:1)을 주신다는 것이 문제다. 그 신이 누구냐,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하나님 없는 성공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장해 주신다. 시편 106:15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무서운 말씀이다. 이것은 확실하게 망하는 길이다.
2.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슬퍼했다(4). 이것이 은혜다. 모세는 습관대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진 밖에 설치한 회막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엎드렸다. 이것을 본 자들 중,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밖 회막으로 모세와 함께 나아갔고(7) 그와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8). 하나님의 역사는 거창한 캠페인이나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앙모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시작된다. 모세는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을 만나던 사람이다(11).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고 그 축복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성공-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해 주셨지만, 하나님 없는 성공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구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5~26).” 모세를 수종들던 여호수아 역시 이 하나님 임재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모세가 회막을 떠나도 그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11)!
3. 모세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는가? 모세는 하나님 없는 성공을 거부했다. 그는 그렇게는 한 걸음도 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모세는 먼저 자신과 함께 하시는 은혜를 구했고(12~13) 이어서 자기만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가시는 은혜를 구했다(15~16).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다 허락하셨다(14,17). 16절에 모세의 기도를 보라.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오직 하나님 자신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것,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 외에는 아무 것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신앙을 증명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동행만이 하나님 백성의 증거요 표지다. 모세는 하나님의 응답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구한다(18). 이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다. 그는 이미 40일 40야를 하나님 앞에서 십계명과 율법과 계시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가 이렇게 더 풍성하고 충만한 계시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어떤 부분을 보았고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금이라도 맛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갈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혜를 맛본 사람이 더 큰 은혜를 구한다. 주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선한 것’을 지나게 하여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다(19). 선하심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속성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죄성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는 살 수 없다. 또 인간의 인식의 한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한 완전함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할지라도 그 완전한 충만을 조금이라도 보고 감당할 수 있는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우리는 하나님 없는 성공을 추구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 없는 성공은 저주다. 성공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요,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세가 그랬듯이 더 큰 은혜를 구할 필요가 있다. 주의 말씀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보고 살아가는 은혜 말이다(고후 3:18).
5.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 없이 성공하기 보다 차라리 실패할지언정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인생에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주의 말씀 속에서 주의 영광을 보게 하사 주의 형상으로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성령의 역사를 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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