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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성경학교 면목중앙교회 유치부 챈트 – 고린도후서 5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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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 되는 길.. (고린도후서 5장 17절 ~ 21절) > 은혜로운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에 새 것이 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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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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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고린도후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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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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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 복음뉴스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합니까? (고린도후서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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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6/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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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7절 – 알찬 정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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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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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후서 5장 15~17절 말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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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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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의미(고후 5:15-17) –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고린도후서 5장 15-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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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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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성경학교 면목중앙교회 유치부 챈트  - 고린도후서 5장 17절
2022년 여름성경학교 면목중앙교회 유치부 챈트 – 고린도후서 5장 17절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고후 5 장 17 절

  • Author: Mcckings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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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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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 되는 길.. (고린도후서 5장 17절 ~ 21절) > 은혜로운 말씀

서 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짐승들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 론

1.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변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바깥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3절은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구원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된 새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 밖에 살게 된다면 변함이 없는 짐승들과 같습니다. 쾌락과 정욕을 쫓아 살게 되며 죄를 짓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나를 새롭게 비치게 되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삶 보다 더 빛이 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과거의 삶을 정리해야 새 사람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에 새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을 지나지 못한다면, 새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정리해야 할 부분과 변화 되어야 할 부분이 정리 되지 않는다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과감하게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나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화목하며 살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미련한 사람의 대표적인 현상은 싸움입니다.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언 18장 6절은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화목을 이루셨듯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화목을 이루는 길은 십자가 희생과 같은 희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고후 5:19).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고후 5:20).

결 론

새 사람이 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 사람이 됩니다. 둘째, 과거의 삶을 정리해야 새 사람이 됩니다. 셋째, 화목하며 살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이 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합니까?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입니다. 이 말은 “나중에”를 의미하는 ‘메타’와 “지각하다, 분별하다, 혹은 의식하다”를 의미하는 ‘노에오’로 구성된 말입니다. 따라서 ‘메타노에오’는 나중에 잘못을 알아 고치는 행동 양식 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이미 깊이 깨달아 알아버린 마음의 상태에 기인하는 것에 따른 생각이나 태도 혹은 방향, 목적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며는 예전 보다는 더 나은 삶과 미래의 희망을 위하여 새롭게 하고자 하는 많은 계획들과 구상들을 세웁니다. 주변 분위기를 바꾸어 보는 것도, 의상을 바꾸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계획을 새롭게 세우는 것도….. 특히 올해는 이 땅 모든 사람들이 함께 꾸는 소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떨게하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평범한 일상을 찾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원합니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안을 바라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고…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회개하라~”고…그래야 만이 하늘로 부터 내리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덧입어 이 땅의 공포와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환난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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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주변 환경이나 이웃이 아닙니다. 내 생각, 내 태도, 내 삶의 목적이 바꾸어져야 합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와 삶의 가치관과 목적이 바뀌어지길 원합니다. 힘으로 능으로 안되기에 겸손히 주께 나아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시며,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것을 채우실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며, 우리 모두가 은혜의 주님을 경험하는 올 한 해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옛 방식은 과감히 버리고, 내가 인생에 행하는 모든 일을 네가 포용하기를, 그리고 오직 내 안에서만 안전함으르 누리기를 원한다.

삶 주변에 경계를 쳐두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면서 일상을 우상으로 만들기는 쉽단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매일매일의 24시간은 일련의 독특한 환경으로 이루어지지. 어제의 틀에 오늘을 끼워 맞추려고 애쓰지 마라. 대신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함으로 귀한 하루인 오늘,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모든 일들을 발견하렴.

고린도 후서 5장 15~17절 말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

고후5:15-17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늘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는데, 영어로는 크리스찬이라고 합니다.

이를 번역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삶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우리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려 함에 있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던 것 또한 이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롬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이번 주일 가운데, 감사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볼 때에, 내게 좋지 않는 일들마저도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되나? 라는 물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기에, 원망과 불평의 말보다는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함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감사를 말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새해를 맞이 할 때에 감사함으로 주를 위해 살아가겠다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사람이나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사람을 바라 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에도 육체적 기준으로 판단하였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계획을 가지고서 누군가를 판단하려 했었고, 내 기준에 빗대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이것을 알게 하신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임을 말씀하시며,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와같은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그가 목수의 아들이었다는 육의 관점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육의 관점을 버리지 못하였기에, 그들은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큰 목사님을 높게 보는 것은 그가 나보다 낫다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보다 낫지 아니한 자들은 낮게 여기려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때로는 믿는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이 육의 생각을 가지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말할 때에도 이 감사의 기준이 세상의 가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시말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육의 기준을 가지고서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누군가를 바라 볼 때에 이와같이 육의 판단으로 살아간다면, 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자들과 믿는 자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자의 삶이 육신의 생각이면 이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기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구주가 되어주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로서, 이제는 사람도, 그리스도도, 육의 생각을 가지고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믿는 자는 여전히 세상의 관점을 가지고서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영의 삶을 말할 때,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말하며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말하는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새로운 피조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며, 위의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은 스스로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고백하십니까?

이와같이 고백한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에, 한주의 삶도 믿음 안에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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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의미(고후 5:15-17)

* 설교 일시 : 2011.01.26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인생의 의미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니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분을 더 이상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인생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의 말씀은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을 때 본문으로 삼았던 말씀입니다. 그 동안 잊고 지내다가 요즘 다시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되면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6월이 되면 아빠가 됩니다.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잘 모르지만, 아빠가 되면 제 개인적인 좌우명이자 제 아이의 좌우명, 그리고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바로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 제 아이가 “아빠 저는 왜 태어났어요?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여지없이 이 말씀을 보여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바로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며, 생명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죽음이 들어온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로마서 5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다함께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죄를 알지 못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을 당할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죄가 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목적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인 생명을 지불하시면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셔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또 다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귀한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를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면서 자신의 온 일생을 죄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다시 창조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 있는 이유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위하는 인생을 살 때에, 그것이 당장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잠언 16장 25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 때에는 사망의 길들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 때에는 생명과 화평과 기쁨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 – 살아 있는 자들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하여 제한되게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용서와 구원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육신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내가 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내어드릴 때에 우리의 삶에는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일을 진행하고, 책임지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으시고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만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며 감사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위하여 고생하고 근심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자격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신학교를 졸업한 자들”, “특별히 믿음이 좋은 자들”, “성경을 많이 아는 자들”, “구원 받은 지 10년 이상 된 자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자들”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숨을 쉬고 계십니까? 같이 한 번 숨을 크게 쉬어 보실까요? 네, 모두 살아 계시군요. 그렇다면 오늘의 이 말씀을 함께 읽을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이렇게 되겠죠? 그럼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우리는 다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고 이미 죽었어야 하는 목숨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으면 사라져버릴 돈과 명예를 이 땅에 더 쌓기 위한 것일까요? 죽기 전까지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한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의 모든 인생의 목표는 다 부질없고 허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50살부터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부터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에서는 “이제부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지금부터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5분 뒤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교육할 때 장차 커서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오늘부터, 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10살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11살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대학교 때부터 주님을 위해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오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그렇다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 교회 청소를 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며,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 함께 골로새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3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 남편이라는 호칭이 남편이 내 편은 안 들어주고 남편만 든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내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무엇인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이전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또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며 모질게 대하지 말라.” 남편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남의 편만 들지 말고 아내 편도 좀 들어주면서 아내를 사랑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듯이 남편은 아내의 약함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저와 우리 어린이들이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자녀들아, 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 아직 어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살고, 어떻게 주를 매우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게 될 때에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그들이 낙담할까 염려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부모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잘 사용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 자녀들을 향한 특별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향한 우리 자신의 모든 뜻과 계획과 욕심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부모는 자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얻도록 훈련하는 부모이지, 세상의 돈과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훈련하는 부모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제부터, 지금부터, 오늘부터,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가르치며 훈련해야 합니다.

이제, 22절부터 2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2 종들아,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것이 세상일이라고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가림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님께 하듯이 그렇게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하는 모든 일들이 곧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나의 위치에 따라 주님께 신실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교회 중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삶의 중심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모이는 일에 힘쓰는 삶입니다. 혼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교회로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은 더욱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교회 중심의 삶으로 훈련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에 임하는 준비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교육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는 절대 지각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모임 시간에는 지각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보다 학교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결혼식에는 가장 깔끔하고 멋진 옷을 입고 가면서 주일날 교회에는 아무렇게나 입고 온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모임보다 결혼식이 더 크고 중요한 행사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스포츠입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시라면, 우리는 교회 중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 내가 인도한 사람, 나랑 잘 맞는 사람, 나랑 가까운 사람, 나랑 잘 통하는 사람, 나와 함께 섬기는 사람, 나와 같은 소속의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나 중심적인 사랑, 분파적인 사랑, 편을 가르는 사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반갑게 맞아주고, 인사하고,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형제자매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고, 형제자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또 때로는 형제자매를 기다려주며 침묵 가운데 기도해 주는 것도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나와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먼저 다가서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다함께 마태복음 25장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4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니

37 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성경은 형제자매들을 먹이고 입히고 받아주고 찾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물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부터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성경은 누구든지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선호도, 나의 스타일, 나의 장단점, 나의 원래 모습,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 만한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지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을 섬기는 조건은 오직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던 일들은 무엇입니까? 이제부터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 내려놓고, 다 버리고, 다 포기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없지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힘입어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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