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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믿는다고 하며 남 욕하는 나보다
종교 없다고 하며 다친 아주머니에게 후시딘과 반창고를 주는 내 친구가
더 예수님 향기난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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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시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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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 예화 – 기독정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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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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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1 공의의 하나님 예화 Quick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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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 목회자료 – 기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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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의, 공의, 정의’의 원어와 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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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가? – 그리스도의교회선교회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가 미국 「노드 캐롤라이너」주의 한 농장 주인이 어느 날 건마 두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읍내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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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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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제별 예화모음)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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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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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2016년 09월 김지혁 목사 (사랑의교회). 하나님은 어떤 분?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인가?』(Your God Is Too Small)라는 책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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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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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공의의 하나님 예화
- Author: 예믿청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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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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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31 공의의 하나님 예화 Quick Answer
성경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공의란 무엇인가’ : 정의와 공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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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Article author: godpeopl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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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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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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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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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Vol46 2016년 9월호
(사)사랑플러스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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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Article author: cu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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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었고 지금도 …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설명해준 예화가 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었고 지금도 …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설명해준 예화가 있다. 공의와 사랑의 조화::: 크리스챤연합신문 – 영혼을 살리는 인터넷 신문 – 컵뉴스 :::솔루션,신문,신문솔루션,기독,기독인,기독교,교회,교인,한국교회,교계,교단,초교파,카이캄,독립교단,목사,목회자,예수,하나님,컵뉴스,인터넷신문,신앙,칼럼,사설,오피니언,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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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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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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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 예화
제목 : 공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자료원: 김홍도 목사 금란교회 기감성경본문: 렘 7:1-7,5:1제가 중학생 때 본 서부 활극영화 중에 크게 감명받은 장면이 있습니다.한 총잡이 아버지가 자기 아들과 아들의 적수가 싸우게 되었는데, 공평을기하기 위해서 서로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열발자욱째 둘아서서 총을 쏘기로 하고, 규칙을 어기면 누구든 그 아버지가 총으로 쏘겠다고 했습니다.그런데 하나,둘,셋,넷,세어가는데 열이 되기 전에 자기 아들이 돌아서서 총을 쏘려고 할 때,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아들의 적수를살려 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비록 자기 아들이라도 공의를 저버리고 불법을 행하려고 할 때,사정없이 총으로 쏴 죽이고 아들의 적수를 살려 보낸다는 것은, 공평성보다 정에 치우치기 잘하는 한국 사람의 의식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공평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들의 생명까지 희생시키는 서양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놀라운 감명을 받았습니다. 공의와 공평자들실현한다는 것은 이 세상 생활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과 죄악이 형평성을 잃는데서 비롯됩니다. 예레미야 7장 3절 이하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으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쫓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기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즉, 길과 행위를 바르게하고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여호와의 전이라고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예레미야5장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즉, 수도 예루살렘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왕래하지만 진실되게 살며 공의를 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멸망시켜 버리고 말겠다는 말씀입니다.다 거짓되고 불공평하게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공의나 공평이나 공정함은다 진실함과 정직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거짓과 정직하지 못한데서 불의와 불공평과 온갖 비리 죄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와 공평을 유심히 보시고 귀중히 보시는 것입니다.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무엇이나 생각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므로 참으로중요합니다.1.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고 그 속성을 말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하나님,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드으로 말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공의(Justice)의 하나님이십니다.성경의 진리를 잘 모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지못하는 사람들이 흔히”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합니다. 공의와 질서가 없는 사랑은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앞서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지구와 모든 유성들이 제멋대로 궤도를 벗어나 떠돌아 다닌다든지,해와 달이 제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자리를 옮긴다면 이 우주는 어떻게 되며 지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봄이 오다가 여름이 없이 가을이 오기도 하고, 여름에서 갑자기 겨울이 될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열매도 맺을 수 없고, 생명이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하나님은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때문에,어느 유성 하나도 궤도를 이탈함이 없이 질서있게 운행되고 있으며,봄,여름, 가을, 겨울이 정확하게 찾아오게 되는 것이빈다.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고,새 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기 위해서는, 마지막때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고 별들이 떨어지고 천재지변이 있을 것입니다.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 인간이 공의를 구하고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세계는 질서의 세계 즉 코스모스 (Cosmos)라고 한다면, 사탄의 세계는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 즉 카오스(Chaos)입니다.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공평하신 분이고, 마귀는 거짓말장이고 질서파괴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죄없는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비싼 유리창을 깨고 교장실에 붙들려 왔습니다. 학교 규칙상 벌을 받고 유리창을 끼워야하는 법인데, 그 학생은 가난한 고아였습니다. 변상할 돈이 없으니까, 할수 없이 교장 선생님이 자기 돈으로 물어주고 그 학생을 용서해 주었습니다.이와같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다 멸망할 수밖에 없고, 죄와 값을 치룰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잉태) 오셔서, 우리 위해 피를 다 쏟아주시며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인데 피는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렘 17:11,히9:22).로마서 3장 21-26절에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속=값을 주고 사온다는 뜻)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으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믿기만하면 값없이 공짜로 구원받는다고 하나님의 공의가 없어진것이아닙니다. 예수님의 고귀한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읠보다 하시고, 우리 믿는 사람도 의롭다함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마치 63빌딩에 거대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공짜로 60층가지 올려다 주지만 그 주인은 막대한 돈을 들여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입니다. 우리는공짜이지만 그 엘리베이터 자체는 공짜가 아닙니다.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공의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피흘려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믿기만 하면 전에 지은 죄는 간과하시고 구원해 주시지만,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알고 지은 죄는 하나님이 그냥보아 넘기시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거듭난 후 지은 죄에 대한 징계는 받고야 말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왜나하면 하나님은 변함없이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1장 31-32절에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 (Judge)를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하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것이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예비된 사람입니다.이 공의의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죄악으로 관영하고 하나님을 반역할 때는, 그 나라는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재난이 임할때 공의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먹구름 뒤에 찬란한 햇빛이비치듯이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우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그리고 최후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모든 죄인은,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도둑이나 학자나 왕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그가 살아온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상급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죄에 대한 형벌이 결정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사도행전 17장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날을 작정하셨다”고 했고, 로마서 2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있다고 하셨습니다.공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마음에 참 평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2. 공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하나님은 우리가정직하게 공평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평성을 잃어버리면 우리의예배나 제사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공의의 선지자 아모스는 5장 21-24절에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공의와 공법을 버린 거짓된 사람들이 무슨 기도를 하며 찬송을 하며 설교를 하느냐? 다 듣기 싫다는 말씀입니다. 공의와 공평을 잃었기 때문에 온갖불법과 죄악이 만무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오늘 본문 5장 1절에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사람이라도 찾으면”하는 말씀이, 영어성경에 “If you can find but oneperson who deals honestly and seeks the truth”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정직히 행동하면 진리를 찾는 사람”이란 뜻입니다.7장5절에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란 말씀이 영어에는 “… dealWith each other Justly”라고 즉 “이웃들 사이에 똑바르게 거래하면’이라고되어있습니다. 공평하고 정직하게 행하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1) 나라를 공의로 다스릴 때 튼튼해집니다.공의가 춤을 추고 진리가 마음껏 노래하는 나라가 될 때, 하나님이 그나라를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3장 6절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아뢰기를 “… 주의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헤를 베푸셨다”고 했습니다.신명기 32장 4절엔 “.. .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라고 말씀하셨으니, 공평과 공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십니다.시편 33편 5절에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72편 2-3절에 “저가 주의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30장 18절에 “….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무릇 그를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공의와 공평이 이행되는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2) 공평성이 있는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대체로 교회가 시험에 들고 파괴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교회를 치리하는목회자가 형평성을 가지고 치리하지 못하고 인간의 정욕과 사사로운 생각으로 치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역자나 장로의 서열도 정확히 지켜야합니다.시편 15편 1-2절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말하며…”라고 했습니다.미가 3장 5절에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상을 보지 못하고 영계가 캄캄해져서 분별을 못한다고했습니다.3) 가정도 공평이 실현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이 섭리를 제쳐놓고 말한다면 야곱이 요셉만 불공평하게 사랑했기때문에, 다른 아들들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가장의 권리만 지나치게 주장하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쥐잡듯하는 것도 불공평한 처사요, 아내가 남편 머리에 올라앉아 좌지우지하는 것도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공평성이 상실된 가정입니다.특정한 자식만 편애하는 것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잘 할 때는 칭찬하고, 잘못 할 때는 채찍질 해야 공의가 실현되는 가정입니다.4) 사회생활에서도 공평을 기해야 합니다.6.25 전쟁이 끝나기 전 서울수복 후 무더운 여름날 저녁, 길가에서 어름냉차를 팔던 사람이 냉차는 다 팔리고 어름 덩어리는 남아 있으니까, 시커먼도랑물에서 고인물을 퍼다가 물감을 풀어 파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이런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한 그 사람은 물론 그 나라는 복을 못받습니다. 마약 밀매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100배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공평과 공의는 진실과 정직에서 나오는 법입니다.레위기 19장35-36절에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저울이나 자를 속이는 행위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행위인데 거짓의아비인 마귀가 좋아하는 행위입니다.출애굽기 23장 6-7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대화하는데에도, 양심을 속이고 정직하지 못하고 형평을 잃는 자의 말은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입니다.사람들이 안속습니다.항상 정직하고 공평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한국컴퓨터선교회모음
공의의 하나님 (말 02:17)
교회는 일반적인 모임이나 사회단체와 다른 세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 하여 모이고 생각하고 전파하는 곳입니다. 둘째가 정당한 성례의 집행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처럼 옛것이 다 죽고 다시 사는 세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영적 교제와 임제를 뜻하는 성찬식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징계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흐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전되기 위해서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두 가지는 나름대로 바로서는 것 같은데 징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징계가 능사는 아니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위로하는 곳이기에 사랑의 공동체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교회에 무슨 징계가 필요하겠느냐 하겠습니다만 성경의 원리가 상선벌악(賞善罰惡)입니다. 선한 일에는 상을 주고 축복하지만 악을 행하였을 때는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며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천국은 만들었지만 지옥을 만들 수는 없다고 하는 잘못된 자들도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손에는 사랑을 갖고 무한히 베풀어주시겠거니와 또 한 손에는 공의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시행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자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24:12)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악하여져서 깨닫지 못하여 눈앞에 즉석에서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때로는 주의 일꾼들을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핍박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이까'(렘12:1) 라고 했고 하박국 선지자도 ‘왜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공의가 굽게 되었나이까'(합1:2-4)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얕은 인간의 생각일 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라 저희는 풀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라'(시37:1-2)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 같이 경건하게 산 자도 아니요 하나님을 속이고 경멸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이 마비되어 거짓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가상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이라 도둑질하면 손이 잘려지고 욕하면 입이 돌아간다면 겁이 나서 억지로라도 죄짓지 아니할 것인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까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리라'(나1:3) 한 나라의 방탕을 막기 위해 술먹는 자의 눈 두개를 뽑는다고 왕이 공포했는데 그 첫번째로 왕이 사랑하는 왕자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많은 백성 앞에서 왕자의 눈 하나를 뽑게 하였고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서 아버지의 사랑과 법을 지키는 공의를 행하였으니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생각할 때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함께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야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분명 하나님 경외심의 결핍이요, 영적인 무지함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말 몇 마디 탄식이 아니라 죄지음으로 하나님 괴롭게 하는 것이니(사43;24)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6:33)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전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벧전2:9) 그러기에 우리는 결과에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온다고 공의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평하며 하는 소리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묘 아직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진정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은 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라고 하셨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사탄이 성도 공격에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찾아오면 과감히 결단하고 성도의 입에서는 감사와 하나님 찬양만 있어야 합니다. (사43:21) 그리고 더 큰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하20:20-27, 행16:24-31) 3.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없이 회개할줄도 모르고 불신하여 외치는 이 말은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는 믿으면서 사정하는 질문과는 정 반대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이 묵시도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 하셨으니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땅에 이루며 사랑과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깊이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무섭기만 하여 겁이 나서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유 하여 기뻐 섬길 수 있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요, 불평과 불만은 다 제하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믿음으로 주님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자료] ‘의, 공의, 정의’의 원어와 그 개념1. ‘의, 공의, 정의’의 원어(原語) 1) 히브리어 ‘체데크'(qd,x, tsedeq ; 남성형), ‘체다-카-‘(hq;d;x, tsedaqah ;여성형)남성형 117회, 여성형 155회 씌어져 있다. 공평, 정직, 의, 올바름, 의로움, 공정, 번영, 균등한, 전적으로 올바른), 공정한(-함), 의로운, 의롭게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2) 히브리어 ‘미슈파-트'(fP;v]mi, mishpat)이것은 ‘재판, 판결’ 등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말로서, ‘체데크’, ‘체다-카-‘보다 윤리적인 의미가 강한데 대해, ‘미슈파-트’는 법적 의미가 우월하다. 3) 그리스어 ‘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 ‘디카이오-스'(dikaivwsi”, dikaiosis)’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가 10회, ‘디카이오-시스'(dikaivwsi”, dikaiosis)가 2회 씌어져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구약에 있어서의 ‘의’의 개념의 연장으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또는 이에 기초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예컨대 ‘사랑’과 같다) 관계 개념이다. 이 말은 바울서신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신학적 개념인데, 기타의 문서에 있어서는 비교적 나오는 수도 적고(34회), 당시의 유대교의 사상적 공유재산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2. ‘의, 공의, 정의’의 개념(槪念) 1) 의(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라] Justisia [영] Righteousness, Justice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상태(출15:26;시119:142;마6:33;계22:11). 일반적인 ‘의’는 윤리적인 성질에, 윤리적인 표준에의 일치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표준은 사회 또는 집단의 규범에 의존하며 상대적이다. 하지만, 성경적인 용법에서는 그 표준은 ‘하나님의 의’이지, 사회의 규범은 아니다(시85:11;빌3:9;계22:11). ‘의'(義)는 제1의적으로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이 그 자신의 거룩하심에 적합하도록 인간에게 요구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고, 이 행위의 결과, 즉, 이 의를 이웃 사람에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로운 자’로 여기신다(롬3:25;행13:38;롬4:3).”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119:142).”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2) 공의(公義) [히] fP;v]mi(mishpat)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Justice(Right-) 공명정대하고 의로움.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신16:20;시106:3;창18:25;요7:24;눅11:42). ‘하나님의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고,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시37:28,99:4;사61:8,62:2).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미6:8) 치리자는 공의에 따라야 하고(잠29:4;렘5:1;합1:4;습3:5),사람마다 이것을 행할 것이다(렘7:5;암5:15;미6:8). ‘공의’로 번역된 원어는 수종이나 되는데, 같은 원어가 거의 ‘의’로도 번역되어 있다. 공의로 역된 히브리어 중 주요한 말은 명사 [미슈파-트]로서, 이것은 [심판하다]는 동사[샤-파트 fP’v,;(shaphat)]에서 파생된 것인데, 이 미슈파-트는 인간 상호의 관계를 정하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스어 명사로는 ‘디카이오수네-‘가 ‘공의’, 또는 ‘의’로 번역되어 있는데, 신약에 91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만 하나님의 ‘의’에만 씌어져 있지 않고, 경건한 행위에 대해서도 씌어져 있다(마55:20).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요7:24). 3) 정의(正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righteousness, justice 올바른 도리(렘33:15;암5:24;시33:5). 이 용어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서로 연결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①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하는 말 ② 죄에 의하여 잃어진 인간의 완전성과 의를 가리키기 위하여 ③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정당한 관계.”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렘33:15). [출처:biblenara.org]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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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교회는 일반적인 모임이나 사회단체와 다른 세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 하여 모이고 생각하고 전파하는 곳입니다. 둘째가 정당한 성례의 집행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처럼 옛것이 다 죽고 다시 사는 세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영적 교제와 임제를 뜻하는 성찬식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징계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흐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전되기 위해서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두 가지는 나름대로 바로서는 것 같은데 징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징계가 능사는 아니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위로하는 곳이기에 사랑의 공동체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교회에 무슨 징계가 필요하겠느냐 하겠습니다만 성경의 원리가 상선벌악(賞善罰惡)입니다. 선한 일에는 상을 주고 축복하지만 악을 행하였을 때는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며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천국은 만들었지만 지옥을 만들 수는 없다고 하는 잘못된 자들도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손에는 사랑을 갖고 무한히 베풀어주시겠거니와 또 한 손에는 공의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시행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자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24:12)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악하여져서 깨닫지 못하여 눈앞에 즉석에서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때로는 주의 일꾼들을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핍박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이까'(렘12:1) 라고 했고 하박국 선지자도 ‘왜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공의가 굽게 되었나이까'(합1:2-4)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얕은 인간의 생각일 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라 저희는 풀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라'(시37:1-2)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 같이 경건하게 산 자도 아니요 하나님을 속이고 경멸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이 마비되어 거짓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가상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이라 도둑질하면 손이 잘려지고 욕하면 입이 돌아간다면 겁이 나서 억지로라도 죄짓지 아니할 것인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까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리라'(나1:3) 한 나라의 방탕을 막기 위해 술먹는 자의 눈 두개를 뽑는다고 왕이 공포했는데 그 첫번째로 왕이 사랑하는 왕자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많은 백성 앞에서 왕자의 눈 하나를 뽑게 하였고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서 아버지의 사랑과 법을 지키는 공의를 행하였으니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생각할 때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함께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야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분명 하나님 경외심의 결핍이요, 영적인 무지함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말 몇 마디 탄식이 아니라 죄지음으로 하나님 괴롭게 하는 것이니(사43;24)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6:33)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전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벧전2:9) 그러기에 우리는 결과에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온다고 공의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평하며 하는 소리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묘 아직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진정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은 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라고 하셨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사탄이 성도 공격에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찾아오면 과감히 결단하고 성도의 입에서는 감사와 하나님 찬양만 있어야 합니다. (사43:21) 그리고 더 큰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하20:20-27, 행16:24-31)
3.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없이 회개할줄도 모르고 불신하여 외치는 이 말은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는 믿으면서 사정하는 질문과는 정 반대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이 묵시도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 하셨으니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땅에 이루며 사랑과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깊이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무섭기만 하여 겁이 나서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유 하여 기뻐 섬길 수 있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요, 불평과 불만은 다 제하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믿음으로 주님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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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공의란 무엇인가’ : 정의와 공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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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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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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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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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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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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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공의의 하나님 예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가 미국 「노드 캐롤라이너」주의 한 농장 주인이 어느 날 건마 두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읍내로 들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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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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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의, 공의, 정의’의 원어와 그 개념 : 라이프/북스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Article author: kr.christianity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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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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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2016년 09월 김지혁 목사 (사랑의교회). 하나님은 어떤 분?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인가?』(Your God Is Too Small)라는 책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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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Vol46 2016년 9월호
(사)사랑플러스
하나님의 속성 -사랑과 공의 – 큐틴(Q-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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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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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었고 지금도 …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설명해준 예화가 있다.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공의와 사랑의 조화 – 크리스챤연합신문-컵뉴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었고 지금도 …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설명해준 예화가 있다. 공의와 사랑의 조화::: 크리스챤연합신문 – 영혼을 살리는 인터넷 신문 – 컵뉴스 :::솔루션,신문,신문솔루션,기독,기독인,기독교,교회,교인,한국교회,교계,교단,초교파,카이캄,독립교단,목사,목회자,예수,하나님,컵뉴스,인터넷신문,신앙,칼럼,사설,오피니언,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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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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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의 하나님 (말 02:17)
교회는 일반적인 모임이나 사회단체와 다른 세 가지의 특색이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 하여 모이고 생각하고 전파하는 곳입니다. 둘째가 정당한 성례의 집행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처럼 옛것이 다 죽고 다시 사는 세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영적 교제와 임제를 뜻하는 성찬식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징계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흐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전되기 위해서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가 두 가지는 나름대로 바로서는 것 같은데 징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징계가 능사는 아니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위로하는 곳이기에 사랑의 공동체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교회에 무슨 징계가 필요하겠느냐 하겠습니다만 성경의 원리가 상선벌악(賞善罰惡)입니다. 선한 일에는 상을 주고 축복하지만 악을 행하였을 때는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도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며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이 천국은 만들었지만 지옥을 만들 수는 없다고 하는 잘못된 자들도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손에는 사랑을 갖고 무한히 베풀어주시겠거니와 또 한 손에는 공의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시행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자가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24:12)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악하여져서 깨닫지 못하여 눈앞에 즉석에서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때로는 주의 일꾼들을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핍박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이까'(렘12:1) 라고 했고 하박국 선지자도 ‘왜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공의가 굽게 되었나이까'(합1:2-4)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얕은 인간의 생각일 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라 저희는 풀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라'(시37:1-2)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 같이 경건하게 산 자도 아니요 하나님을 속이고 경멸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이 마비되어 거짓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가상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이라 도둑질하면 손이 잘려지고 욕하면 입이 돌아간다면 겁이 나서 억지로라도 죄짓지 아니할 것인데,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까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리라'(나1:3) 한 나라의 방탕을 막기 위해 술먹는 자의 눈 두개를 뽑는다고 왕이 공포했는데 그 첫번째로 왕이 사랑하는 왕자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왕은 많은 백성 앞에서 왕자의 눈 하나를 뽑게 하였고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서 아버지의 사랑과 법을 지키는 공의를 행하였으니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생각할 때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공의가 함께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공의의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야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분명 하나님 경외심의 결핍이요, 영적인 무지함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말 몇 마디 탄식이 아니라 죄지음으로 하나님 괴롭게 하는 것이니(사43;24) 공의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만 이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6:33)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전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벧전2:9) 그러기에 우리는 결과에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온다고 공의를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평하며 하는 소리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묘 아직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진정 감사하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은 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150:6) 라고 하셨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사탄이 성도 공격에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찾아오면 과감히 결단하고 성도의 입에서는 감사와 하나님 찬양만 있어야 합니다. (사43:21) 그리고 더 큰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하20:20-27, 행16:24-31) 3.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없이 회개할줄도 모르고 불신하여 외치는 이 말은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는 믿으면서 사정하는 질문과는 정 반대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이 묵시도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3-4) 하셨으니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땅에 이루며 사랑과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깊이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무섭기만 하여 겁이 나서 억지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유 하여 기뻐 섬길 수 있게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요, 불평과 불만은 다 제하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믿음으로 주님 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독자료] ‘의, 공의, 정의’의 원어와 그 개념1. ‘의, 공의, 정의’의 원어(原語) 1) 히브리어 ‘체데크'(qd,x, tsedeq ; 남성형), ‘체다-카-‘(hq;d;x, tsedaqah ;여성형)남성형 117회, 여성형 155회 씌어져 있다. 공평, 정직, 의, 올바름, 의로움, 공정, 번영, 균등한, 전적으로 올바른), 공정한(-함), 의로운, 의롭게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2) 히브리어 ‘미슈파-트'(fP;v]mi, mishpat)이것은 ‘재판, 판결’ 등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말로서, ‘체데크’, ‘체다-카-‘보다 윤리적인 의미가 강한데 대해, ‘미슈파-트’는 법적 의미가 우월하다. 3) 그리스어 ‘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 ‘디카이오-스'(dikaivwsi”, dikaiosis)’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가 10회, ‘디카이오-시스'(dikaivwsi”, dikaiosis)가 2회 씌어져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구약에 있어서의 ‘의’의 개념의 연장으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또는 이에 기초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예컨대 ‘사랑’과 같다) 관계 개념이다. 이 말은 바울서신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신학적 개념인데, 기타의 문서에 있어서는 비교적 나오는 수도 적고(34회), 당시의 유대교의 사상적 공유재산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2. ‘의, 공의, 정의’의 개념(槪念) 1) 의(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라] Justisia [영] Righteousness, Justice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상태(출15:26;시119:142;마6:33;계22:11). 일반적인 ‘의’는 윤리적인 성질에, 윤리적인 표준에의 일치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표준은 사회 또는 집단의 규범에 의존하며 상대적이다. 하지만, 성경적인 용법에서는 그 표준은 ‘하나님의 의’이지, 사회의 규범은 아니다(시85:11;빌3:9;계22:11). ‘의'(義)는 제1의적으로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이 그 자신의 거룩하심에 적합하도록 인간에게 요구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고, 이 행위의 결과, 즉, 이 의를 이웃 사람에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로운 자’로 여기신다(롬3:25;행13:38;롬4:3).”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119:142).”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2) 공의(公義) [히] fP;v]mi(mishpat)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Justice(Right-) 공명정대하고 의로움.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신16:20;시106:3;창18:25;요7:24;눅11:42). ‘하나님의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고,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시37:28,99:4;사61:8,62:2).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미6:8) 치리자는 공의에 따라야 하고(잠29:4;렘5:1;합1:4;습3:5),사람마다 이것을 행할 것이다(렘7:5;암5:15;미6:8). ‘공의’로 번역된 원어는 수종이나 되는데, 같은 원어가 거의 ‘의’로도 번역되어 있다. 공의로 역된 히브리어 중 주요한 말은 명사 [미슈파-트]로서, 이것은 [심판하다]는 동사[샤-파트 fP’v,;(shaphat)]에서 파생된 것인데, 이 미슈파-트는 인간 상호의 관계를 정하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스어 명사로는 ‘디카이오수네-‘가 ‘공의’, 또는 ‘의’로 번역되어 있는데, 신약에 91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만 하나님의 ‘의’에만 씌어져 있지 않고, 경건한 행위에 대해서도 씌어져 있다(마55:20).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요7:24). 3) 정의(正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righteousness, justice 올바른 도리(렘33:15;암5:24;시33:5). 이 용어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서로 연결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①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하는 말 ② 죄에 의하여 잃어진 인간의 완전성과 의를 가리키기 위하여 ③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정당한 관계.”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렘33:15). [출처:biblenara.org]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공의와 사랑의 조화
기독교는 공의와 사랑의 종교이다. 공의와 사랑은 성경에서 서술된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궁극적인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었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따라서 공의와 사랑은 시대를 넘어 일관된 신의 메시지이다. 바로 기독교는 이러한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도모하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공의와 사랑의 조화를 설명해준 예화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이 새로운 법칙을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왕은 새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비롯하여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말하였다. 새 법칙을 지키지 않다가 잡힌 사람은 누구든지 벌로 두 눈알을 뽑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관원들이 그 법을 어긴 범법자 한사람을 잡아왔다. 잡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왕의 아들이었다. 왕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백성들은 범죄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왕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의 눈알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왕은 자신의 아들의 죄를 특별히 묵인해 주면 백성들이 법을 어길 경우 처벌할 명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왕은 결국 아들의 눈 한쪽과자신의 눈 한쪽을 뽑았다. 아들의 한쪽 눈은 사사로움보다 공적으로 공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한쪽 눈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왕은공의와 사랑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공의와 사랑을 완성하셨다. 그 분은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셨다. 바로 십자가 사건이 그것이다. 십자가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공의의 사건이다. 그것은 어떤 죄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십자가는 자기 아들을 죽음 가운데 내어줌으로써 인간의 죄를 짊어지도록 함으로써 사랑을 완성한 사건이다. 그것은 어떤 죄도 용서해주겠다는 신적인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당신이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마지막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셨고, 계시를 완전히 종결하셨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공의와 사랑을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의 발자취를 묵상해야 한다. 그것은 은혜를 입은 우리 죄인이 마땅히 가져야할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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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 ‘의, 공의, 정의’의 원어와 그 개념
1. ‘의, 공의, 정의’의 원어(原語)
1) 히브리어 ‘체데크'(qd,x, tsedeq ; 남성형), ‘체다-카-‘(hq;d;x, tsedaqah ;여성형)남성형 117회, 여성형 155회 씌어져 있다. 공평, 정직, 의, 올바름, 의로움, 공정, 번영, 균등한, 전적으로 올바른), 공정한(-함), 의로운, 의롭게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2) 히브리어 ‘미슈파-트'(fP;v]mi, mishpat)이것은 ‘재판, 판결’ 등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말로서, ‘체데크’, ‘체다-카-‘보다 윤리적인 의미가 강한데 대해, ‘미슈파-트’는 법적 의미가 우월하다.
3) 그리스어 ‘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 ‘디카이오-스'(dikaivwsi”, dikaiosis)’디카이오-마'(dikaivwma, dikaioma)가 10회, ‘디카이오-시스'(dikaivwsi”, dikaiosis)가 2회 씌어져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구약에 있어서의 ‘의’의 개념의 연장으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또는 이에 기초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예컨대 ‘사랑’과 같다) 관계 개념이다. 이 말은 바울서신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신학적 개념인데, 기타의 문서에 있어서는 비교적 나오는 수도 적고(34회), 당시의 유대교의 사상적 공유재산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2. ‘의, 공의, 정의’의 개념(槪念)
1) 의(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라] Justisia [영] Righteousness, Justice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상태(출15:26;시119:142;마6:33;계22:11). 일반적인 ‘의’는 윤리적인 성질에, 윤리적인 표준에의 일치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표준은 사회 또는 집단의 규범에 의존하며 상대적이다. 하지만, 성경적인 용법에서는 그 표준은 ‘하나님의 의’이지, 사회의 규범은 아니다(시85:11;빌3:9;계22:11).
‘의'(義)는 제1의적으로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이 그 자신의 거룩하심에 적합하도록 인간에게 요구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고, 이 행위의 결과, 즉, 이 의를 이웃 사람에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로운 자’로 여기신다(롬3:25;행13:38;롬4:3).”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119:142).”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2) 공의(公義) [히] fP;v]mi(mishpat)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Justice(Right-)
공명정대하고 의로움.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신16:20;시106:3;창18:25;요7:24;눅11:42). ‘하나님의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고,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시37:28,99:4;사61:8,62:2).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미6:8) 치리자는 공의에 따라야 하고(잠29:4;렘5:1;합1:4;습3:5),사람마다 이것을 행할 것이다(렘7:5;암5:15;미6:8).
‘공의’로 번역된 원어는 수종이나 되는데, 같은 원어가 거의 ‘의’로도 번역되어 있다. 공의로 역된 히브리어 중 주요한 말은 명사 [미슈파-트]로서, 이것은 [심판하다]는 동사[샤-파트 fP’v,;(shaphat)]에서 파생된 것인데, 이 미슈파-트는 인간 상호의 관계를 정하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스어 명사로는 ‘디카이오수네-‘가 ‘공의’, 또는 ‘의’로 번역되어 있는데, 신약에 91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만 하나님의 ‘의’에만 씌어져 있지 않고, 경건한 행위에 대해서도 씌어져 있다(마55:20).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요7:24).
3) 정의(正義)[히] qd,x,(tsedeq), hq;d;x](tsedaqah) [그] dikaiosuvnh(dikaiosune) [영] righteousness, justice
올바른 도리(렘33:15;암5:24;시33:5). 이 용어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서로 연결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①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하는 말 ② 죄에 의하여 잃어진 인간의 완전성과 의를 가리키기 위하여 ③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정당한 관계.”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렘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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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제별 예화모음)
의(주제별 예화모음)
▣ 정의의 원칙
생명윤리의 마지막 원칙은 정의의 원칙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료자원은 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많은 경우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가령 응급실로 동시에 여러 명의 환자들이 실려왔을 때 누구를 먼저 진료해야 하나? 또는 기증 받은 장기를 누구에게 먼저 이식해야 하나? 이는 매우 쉬운 일 같지만 실은 대단히 복잡해 수많은 법령이 필요할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 한 달 수명연장을 위해 쓰는 의료비를 후진국에 사용한다면 수천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의학연구비와 관련된 윤리적 논쟁도 한창이다. 하지만 오늘날 첨단의학의 혜택은 대부분 가진 자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든 환자가 골고루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의료 공공성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상은(샘안양병원장)
▣ 의는 행복의 요소
나는 한 성도와 신앙 상담을 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부인이 오랜 투병 끝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 깊은 수심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간호한 젊은 간호원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 사람을 끊임없이 유혹했습니다. 결국 그는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간호원의 유혹을 못이겨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를 두고 그 간호원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간호원과 생활한다면 참으로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행복이란 일순간 육체의 쾌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그 뒤에 다가온 벌거벗은 수치로 말미암아 그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제 나이 오십을 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도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순간적인 과오로 말미암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정신적인 고뇌 속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는 참 행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의로움이 없는 곳에는 순간적인 향락이 있을지 몰라도 그 뒤에 다가오는 슬픔과 비애는 순간의 향락을 능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받아 마땅할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시며 돌아가게 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인류의 죄를 다 감당하게 하셨으므로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듯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주님을 구주로 모셔들이면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의로움을 선물로 얻어서 죄악의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죄악을 다 회개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의 모든 죄악의 수치가 벗겨지고 성령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받고 정결하게 된 것을 마음에 깊이 느끼게 된 그는 환한 얼굴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란 의를 동반할 때 가슴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의가 없는 곳에는 결단코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옳은 것의 차이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에 왔을 때 어떤 유태인이 대왕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우리가 가진 금과 은이 갖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금과 같은 보화는 많이 가지고 있어, 그런건 조금도 탐나지 않소. 다만 당신들 유태인들의 전통과 당신들의 정의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오.”하고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두 명의 사나이가 어떤 일을 상담하기 위하여 랍비를 찾아갔다. 내용인즉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넝마더미를 샀는데, 그 넝마 속에서 많은 금화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는 넝마를 판 사람에게, “나는 넝마를 산 것이지 금화까지 산것은 아니요. 그러니 이 금화는 마땅히 당신 것이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넝마를 판 사람은 그것을 산 사람에게, “나는 당신에게 넝마더미 전부를 판 것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도 모두 당신 것이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판정을 내렸다.
“당신들에게는 각기 딸과 아들이 있으니, 그 두 사람을 서로 결혼시킨 후, 그 금화를 그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은 사리일 것이오.” 그리고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어보았다. “대왕님, 당신의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어떤 판결을 내리십니까?”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아주 간단하게 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사람을 함께 죽이고 금화는 내가 갖소.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정의요.”
▣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세요?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세요? 사람들은 말은 안 하지만 내심 스스로 나는 ‘의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비추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인’입니다. 성경 시편 1장에 보면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며 악인은 꾀를 내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대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대의 꾀(수단, 요령)으로 살아가는 오만(傲慢)한 자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즉시로 대답할 수 있다면 ‘의인’이지만, 성경을 펼친 일이 없으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면 ‘악인’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만이 그나마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晝)-오늘 아침 무슨 말씀을 묵상하였나요?
야(夜)-오늘 밤 묵상할 말씀은 어디인가요?
두 말 할 것 없이 얼른 성경을 펼치세요.
ⓒ 최용우
▣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지팡이
당신은 낚시바늘과 지팡이로 성공한다.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나의 설명을 들어보라. 나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고기가 내 배 속으로 뛰어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적극적 사고를 믿는 위대한 신자이다. 노력하고 행동해야 한다. 낚시바늘을 물속으로 던져야한다. 낚시바늘을 던진다는 것은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다음에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지팡이는 양치는 목자의 구부러진 것으로, 양이 멀리 가거나 빠져나오기 어려운 장소에 있으면 목자는 그 지팡이로 양을 구한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낚시바늘과 지팡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에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 생명을 이루는 의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 공산군이 쳐들어와 때마침 예배를 드리고 있던 교회당을 포위했다. 단 한 사람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교회당을 여러 겹의 공산군으로 둘러싸였다. 장교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예배당 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긴장하고 있던 교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것을 깨닫고 모두들 벌벌 떨기만 했다.
“예수를 버릴 사람만 밖으로 나가시오 ! 그리고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은 예배당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시오 !” 예배당 안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공산군 장교의 명령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목소리였다. 한두 사람이 예배당 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저마다 앞을 다투어 문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예배당에는 이들을 지키던 장교와 열댓 명의 신자가 남게 되었다. 장교는 예배당 문을 닫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저들은 죽은 목숨이오. 우리의 계획은 예배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오. 나도 그리스도인이오. 차마 당신들마저 죽일 수는 없었소. 하나님이 살려 주신 목숨이니 어서 뒷문으로 가시오 !”
한편 예배당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의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그야말로 귀중한 것으로, 이생에서 뿐 아니라 내세에까지 그 생명은 우리를 살리게 될 것이다.
▣ 의인은 없다
성경: 롬3:10-1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선행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얼음판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엷은 얼음을 딛고 물에 빠졌습니다. 곁에 있던 소년이 얼른 가서 건져주었습니다. 물에 빠졌던 아이의 어머니가 와서 칭찬했습니다. “정말 너는 용감한 소년이야. 얼음물에 뛰어들어 내 아들을 건져주다니!”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가 내 스케이트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예요.” 웃기는 이야기로만 들을 것이 아닙니다. 양심적으로 따져볼 때 우리가 하는 소위 선행이라는 것이 결국은 나의 유익이나 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눈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는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이 진실한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진실한 믿음 안에서 참된 선행을 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성경: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는 듯한 목마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과 갈증은 이렇게 강렬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과 지식과 명예와 이성은 추구할지언정 가장 중요한 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와 싸워 이겨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의를 추구함으로 영적인 배부름을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의로운 삶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하느니라” (잠 11:4)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던 젊은이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를 두 개의 방에 차례차례 데리고 가셨는데 첫 번째 방은 화려했으며 방에 있는 책상에는 많은 돈이 쌓여 있었으나, 두 번째 방은 전혀 볼품이 없는데다 방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본 첫 번째 방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 날 이후 젊은이는 돈을 쓸 때마다 ‘나는 지금 이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인가’라고 생각한 다음 신중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의리, 즉 죽음을 면케 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 의를 가리킵니다. 행위로써 의롭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의 옷을 입고,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정의로운 교회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종교를 의지하러 가는 곳이라고 비하하며 무시했던 아인슈타인이 활동할 당시에 독일에서 나치스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대학의 지성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즉시 나치즘에 무릎을 꿇고 아첨했다. 그들은 나치즘이 주장하는 잘못된 인종이론을 마치 옳은 것인 양 떠들어댔다. 또 나는 신문과 언론인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신문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필봉을 놓았다. 그런데 오직 교회만이 독재자에 항거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줄지어 감옥으로 향했다. 나는 교회에 한없는 찬사를 보낸다.”
교회가 불의하면 이 사회는 아예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교회조차 불의하다면 이미 다른 집단은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항상 정의롭고 공의롭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를 향해 광야의 소리를 발할 수 있습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의가 있는 나라
중국 춘추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魯)나라의 한 마을에 가난한 여자가 하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웃 제(齊)나라에서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이 마을에도 쳐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한 아기를 안고 한 아기는 손목을 잡은 채 이끌고 난리를 피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적은 점점 가까이 쫓아옵니다. 그러나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느라 도저히 빨리 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잡혔구나 싶었을 때, 여자는 부득불 한 아기를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얼른 내려놓고, 손목을 잡고 있던 아기만 데리고 뛰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손목잡고 있던 아기를 버리고 안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가야 빨리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적의 장군에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조금전에 아기를 버리는 그녀를 보았던 장군은 이상하다는듯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품에 안고 있던 아기는 내려놓고 손목 잡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느냐?” 여자는 조용히 설명했습니다.
“내가 품에 안고 가던 아기는 내 아이요, 손목을 잡고 가던 아기는 내 형님의 아이입니다. 난 내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의입니다. 의를 버리고 사적인 사랑을 택하여 형님의 아이를 버리고 내 자식을 구원한다면 나는 좋겠지요. 허나 그렇게 한다면 우리 집안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꼴은 또 무엇이 되겠습니까?”
제나라 장군은 크게 감동하여 “의를 아는 여자가 있는 도성은 쳐들어갈 수 없다. 의가 있는 나라는 공격하지 못하는 법이다”라며 철수를 했다고 합니다.
▣ 공명정대한 나라
배고픈 것을 참는 것도 힘들지만, 억울함을 참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배고픈 사람보다 억울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정부는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명정대하게 나라를 다스려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입니다. 그동안은 우리가 너무 못 살았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이제는 공명정대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부하는 자는 불법을 저질러도 출세하고, 정직한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무시당한다면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돈 있는 자는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권세를 부리고, 돈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긴다면 그 백성의 억울함은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들 중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명정대, 공정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먼저 정부가 공정하고 깨끗해야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 최용우
▣ 정의의 심판
성경: 잠24: 19- 20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전 보르도 지역 경찰 책임자인 모리스 파퐁(87세)은 반인류적 범죄로 징역 20년을 구형 받았습니다. 파풍은 나치의 프랑스 지배가 끝난 뒤에도 샤를 드골 대통령의 밑에서 파리 경찰국장을 지냈으며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시절에는 예산 장관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려왔습니다. 그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 계기는 81년 한 신문에 의해 유대인들을 대거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 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들이 공개되면서부터 입니다.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살기를 원했던 그였지만 유태인 희생자 가족과 단체들의 고발에 따라 지난 83년 정식으로 기소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반인류 범죄로 프랑스 전직관리가 법정에 선 것은 파퐁이 처음입니다. 악인 중에는 당대에 재앙을 받아 죄 값을 치르는 사람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형통하고 잘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날 그가 평생 누렸던 것들은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는 빈손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드시 악의 실체는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할 것입니다.
* 묵상: 혹시 당신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공의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까?
▣ 정의와 믿음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난다고 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꼭 그렇게 도식적이고 기계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가령 약하고 소박하지만 양심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든지,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반면에 알게 모르게 부정을 저지르거나 부실공사를 한 사람은 편안하게 더 오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이 하나님한테 항의했습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통을 받느냐고….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노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일시적으로 어둠의 권세가 지배한다고 해서,선한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성수 <성공회대학교 총장>
▣ 진리와 정의를 위해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야훼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16:2)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의 작품 중 ‘민중의 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르웨이 남부의 해안 거리에 스토크만 형제의 힘에 의해 온천이 개발되고, 그 온천은 그 거리를 발전시킬 것이 확실했으므로 시민 모두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 실험실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온천에 독물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결과를 전했습니다. 토마스는 형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 서너 명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로부터 배척을 당했습니다. 점차 소동의 진폭이 커지자 진상을 가려내기 위한 시민대회가 열렸고, 토마스는 여지없이 온천과 거리를 파괴하려는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생매장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다수자로부터 갖가지 압력을 당하면서 끝까지 진리와 정의를 위해 맞서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고 공정하며 정확한 하나님의 자를 가지고 우리를 재십니다. 우리가 행위에 대해 재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 즉 심령을 꿰뚫어 보십니다. 과연 정의에 서서, 진리에 서서, 거룩함에 서서 행하였는가를 보십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입장을 변명하고 자신의 의와 깨끗함을 주장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 바른 길
가을 한 철에만 농어낚시가 허용되는 호수에 아버지와 열 살 배기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농어잡이가 허용되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밤이 으슥할 무렵 드디어 아들의 낚싯대 끝이 둥그렇게 구부러지며 큼직한 놈이 한 마리 걸려들었습니다. 농어였습니다. 아버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밤 10시 30분, 농어잡이는 내일부터 허용되었고 지금은 농어 이외의 고기만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호수엔 낚시꾼도 배도 없었습니다.
“얘야, 그 농어는 풀어주고 우리 다른 것을 잡도록 하자꾸나” 안돼요 아버지,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이예요” 하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에 아들은 농어를 놓아주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뒤 사업가가 된 아들은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힌 자리에서 열 살 때의 그 사건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정직’을 배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정의는 바른 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에 입각해서 살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의 바른 길을 따라 정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불의는 굽은 길이요, 불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 사람다워지기를 거부하고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 의로운 재물
“곰쓸개는 쓸개 빠진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이 먹는답니다.” 몇 년 전 ‘신바람 건강학’이란 강의로 세인의 주목을 받은 황수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을 하곤 그도 같이 웃더군요. 그분의 강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황 교수가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진리입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은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로 자녀를 교육시키면 자녀가 사기꾼이 되고, 의롭지 못한 재물로 음식을 사 먹으면 몸에 해가 됩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로 아내에게 옷 사주고 차 사주면 그 옷 입고 그 차 타고 딴 남자 만나러 다닙니다. 그 돈으로 자녀를 결혼을 시켜요? 그럴 순 없지요. 의로운 재물은 유익합니다. 땀 흘려 얻은 재물은 유익합니다. 정직한 재물은 유익합니다. 누가 밥 사준다고 해서 생각 없이 얻어먹지 마세요. 어떤 돈으로 사는 밥인지 알아보고 먹어야지요. 노름해서 딴 돈으로 한턱내는 음식 먹으면 몸에 해롭습니다. 도적질한 돈으로 차린 진수성찬은 독입니다. 김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그 음식을 마련한 돈이 정직하고 의로운 돈이라면 가장 좋은 약이 됩니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음식을 마련한 돈이 어떤 돈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파이프 행복론」/ 조현삼
▣ 기독교인들의 정의 실천
일제의 억압 속에서 독립을 얻으려는 몸부림은 신앙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때문에 일제는 기독교인들을 몹시 핍박했습니다. 80여 개의 교회가 파괴 혹은 전소되었으며 기독교 계통의 학교 8곳이 폐교를 당했습니다. 3.1운동 때에 옥에 갇힌 신도는 3,373명이었으며 목사는 54명, 전도사는 127명, 장로는 6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총독부의 기록이기 때문에 실제의 수는 더욱 많으리라 추정됩니다. 독립 선언서에는 이런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새 문명의 사관이 인류의 역사 위에 던져지기 시작하구나….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고 거리낄 것이 없도다.”
하늘에 소망을 두었던 신앙의 선배들은 이 땅에서도 그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희생될지라도 정의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된 빛의 임무는 춥고 어두운 시대에서 더욱 밝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 정의의 여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케(Dike)는 ‘정의의 여신’이라 불립니다. 디케는 한 손에 칼을 들고 있는데 나중에 정의의 상징이 되면서 공평의 의미를 부여 받아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의 여신의 형상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정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주관적 판단을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권력을 쥐었거나, 힘없는 서민이거나 상관없이 공정한 판결을 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과오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주관을 배제하고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냉정한 비판을 하기 쉽지 않고 원수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사회의 정의란 사심을 버리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불평등한 판단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게 되고, 결국 그 사회는 불평등한 정의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가 뿌리내리는 사회를 위해 사심의 눈을 가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류중현 / 사랑의 편지 발행인
▣ 정의는 국경이 없다
1919년 2월 8일, 동경의 시내에서 조선의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낭독하며 일본의 침략에 항거했습니다. 이 사건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임시정부 수립에 기초를 제공한 선언으로 평가됩니다. 2.8 독립선언으로 잡혀 들어온 유학생들의 변론을 맡은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스지’는 이들의 애국심과 정의감에 감동을 받아 무료로 변호하면서 이들 대부분을 석방시켰습니다. 이후, 동경에서 애국지사들이 재판에 서게 될 때면 나서서 변호해 주었으며, 정부의 가혹한 처사에는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의감은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떤 일본인도 그에게 변호를 맡기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두 번이나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너무 늦은 감은 있었으나 한국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는 정의와 진실은 인간이 갖는 최고의 덕목이며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국민의 질시와 극심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후세 다스지’의 명언이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를 기대해 봅니다.
– 사랑의 편지 편집부
▣ 공의
본문: 잠21:15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미국 연방 대법원장을 지낸 호레이스 그레이 대법관이 어느 날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무죄석방을 받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범법자를 알아본 그레이 판사는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유죄인 것은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에게 꼭 일러둘 말이 있소. 후일에 당신은 인간보다 현명하시고 뛰어나신 재판장 앞에 설 것이오. 거기서는 세상의 법률이 아니라 공의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어둠이 판치지만, 빛이 비치면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공의가 없어지면 죄인이 판치는 세상이 되지만, 공의가 이루어지면 죄인은 설 곳을 잃습니다. 의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공의를 행하기를 싫어하고, 공의가 이루어지면 두려움 가운데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에 그리스도인은 항상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의를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 묵상: 당신은 공의를 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까?
* 성경: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 공의의 재판관
1990년, 미식축구 선수이자 영화배우이며 국민 영웅이었던 O. J. 심슨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죄목은 ‘전처와 그 애인 살해.’ 그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현장에서 채취한 DNA로서 심슨의 것과 일치했다. DNA가 일치할 확률은 1만분의 1. 검사는 심슨이 99.99퍼센트 살인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반면에 변호사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인구 300만 명 중에 300명이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심슨이 살인자라는 결론은 99.7퍼센트 오판이라고 했다. 진실은 하나다. 심슨이든지, 검사든지 누구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세상 법정은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때로 법정은 권력과 돈에 의해 ‘가진 자의 전당’이 되기도 한다. 정의는 땅에 밟히고, 악은 공중에 사무친다.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들의 피는 제단 밑에 흐르고, 그 영혼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갚아 달라고 부르짖는다.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지혜로운 심판자가 계셔야 한다.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심판자가 오셔야 한다. 역사의 오심(誤審)을 밝히기 위해 정의의 재판이 열려야 한다. 간음자, 불신앙자, 고아와 과부를 학대한 자가 내세에서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세상에 희망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나님은 공평한 재판관이 되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심판의 날에
정확한 응보가 이뤄질 것이며, 세상의 부당함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내 영혼의 정원사」/ 황병철
▣ 의로운 삶
우리는 성 프란시스를 잘 압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게 된 것은 “평화의 기도”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제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부터 모든 소유를 버리고 평생을 수도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짐승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참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닮은 사람을 살려고 노력을 남들 보다 많이 한 자로 여겨집니다.
“의로운 사람의 길에는 생명이 있지만,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으로 이끈다”(잠12: 28)
천로역정 가운데 보면 기독도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해가다가 갈보리 언덕에까지 왔을때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십자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때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 졌도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미약한 힘에 의지하여 의로운 삶을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없는 부담과 실패뿐일 것입니다.
하나님 기준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은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힘에 연결될 때에만 얻어집니다. 매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 간구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던 젊은이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를 두 개의 방에 차례차례 데리고 가셨는데 첫 번째 방은 화려했으며 방에 있는 책상에는 많은 돈이 쌓여 있었으나, 두 번째 방은 전혀 볼품이 없는데다 방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본 첫 번째 방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 날 이후 젊은이는 돈을 쓸 때마다 ‘나는 지금 이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인가’라고 생각한 다음 신중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의리, 즉 죽음을 면케 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 의를 가리킵니다. 행위로써 의롭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의 옷을 입고,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고 은총으로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창15:6, 엡2:8)
/한태완 목사
▣ 의로운 삶
중국 제나라가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접경 마을로 쳐들어갔습니다. 이 때 급하게 피란 가는 사람들 중에 한 부인이 등에 업고 있던 젖먹이를 내려놓고, 손목을 잡고 걷던 큰 아이를 등에 업은 뒤 다시 뛰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적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행동을 시종 지켜본 적의 장군은 “어찌하여 그대는 젖먹이는 내려놓고 크고 무거운 아이를 업고 도망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등에 업고 가던 젖먹이는 내 아이고, 걸어가던 아이는 내 형님의 자식입니다. 내 자식을 구하고 형님의 아이를 버린다면 우리 집안은 의가 없는 집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나라 장군은 크게 감동하여 그날로 철군을 명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지켜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는 옳은 일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옳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존경을 받기도,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옳은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와 반대로 옳지 못한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자신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남에게 비난받을 일도,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하지도 않겠지요. 우리는 한번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옳은 일인지 되짚어보아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 먼 훗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태완 목사
▣ 정의와 공의
정의와 사랑의 위선을 경계하십시오. 정의만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정의가 잘못되었거나 틀려서가 아닙니다. 정의는 하수같이 흘러야 하고 공의는 강물처럼 흘러야 합니다. 정의 없는 세상은 공기 없는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공기가 깨끗하면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공기가 더러우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만을 부르짖는 사람도 경계하십시오. 정의가 빠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감정이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누구든지 정의를 부르짖을 만큼 의로운 사람이 없으며, 사랑을 말할 만큼 희생과 헌신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의는 다른 사람을 고발할 수 있고 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의 덫에 가장 먼저 걸려드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분노하거나 욕을 해서는 안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음모나 술수를 써서도 안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온순한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요, 용서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정의는 사랑과 용서가 동반될 때 참된 가치가 나타납니다. 정의만을 외치는 사람을 경계하십시오.
그것은 정의라는 이름의 위선일 뿐입니다. 사랑만을 외치는 사람도 경계하십시오.
그것은 자기만족과 감정의 겉치레일 뿐입니다. 정의와 함께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사람을 찾으십시오. 진실한 사랑은 정의를 만들어 가고 진리를 찾아갑니다.
/ 하용조 목사
▣ 묵상 및 토의
0 그리스도로 옷 입은 당신은 오늘 어떻게 살았습니까?
0 나는 공평의 원리를 따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까?
0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가?
0 나는 공의를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가?
0 나는 이웃을 구원할 소돔의 10명의 의인인가?
0 나는 현재 죄악된 세상에서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내 생활도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0 나는 잠깐의 이익을 위해 공의를 굽게 하지는 않았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 의, 공의, 정의에 관한 성경말씀
0 (시편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0 (시50:6)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0 (시편 99:4)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 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시나이다
0 (시편 106:3)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0 (잠2:9)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0 (잠언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0 (잠21:15)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0 (잠언 28:1)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0 (잠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0 (이사야 59: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0 (이사야 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0 (하박국 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0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0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0 (요한복음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0 (로마서 3: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0 (로마서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0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0 (요한복음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0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의, 공의, 정의에 관한 금언
0 의인은 양처럼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를 말한다.(김장환)
0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흠 없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얼굴을 거울로 본듯 본다.(성 클레멘트)
0 의와 선을 행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주신다.(한태완)
0 정의는 미덕의 최상의 영광이다.(시세로)
0 정의는 사회의 질서다.(아리스토텔레스)
0 정의가 갖다주는 최대의 열매는 마음의 평강이다.(에피쿠루스)
0 정의 없는 힘은 무력이고, 또한 힘없는 정의는 무효하다(파스칼)
0 신은 정의를 지킨다.(영국 격언)
0 정의는 힘에 앞선다.(독일 경언)
0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프랑스 격언)
/한태완 목사 30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키워드에 대한 정보 공의의 하나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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