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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YTN 탐사보고서 ‘기록’은 80년대 5공화국이 만든 대규모 민간인 수용 시설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오늘은 부산 형제복지원의 형제라고 할 수 있는 대전 천성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족벌경영과 세습 문제, 그리고 대규모 수용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합니다.
한동오 기자입니다.
[기자]형제복지원과 같은 문제가 불거졌던 대전 성지원과 세종 양지마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설의 덩치는 더 커졌습니다.
[원용철 / 목사 (대전 노숙인 쉼터 ‘벧엘의 집’ 운영) : 대재벌이라고 보통 표현을 합니다. 복지재벌.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요.]두 시설 운영자였던 노재중 씨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사회복지법인 천성원이라는 이름 아래 대전에선 노 씨의 첫째 부인과 세 아들이 12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천성원 관계자 : (아드님이신 것 같은데 시설장이세요?) 네. 평강의 집 원장님이 노OO 원장님. (노OO 선생님은?) (법인) 학교에 계시고…. 노OO 씨는 (법인) 병원에서….]세종에 있는 4개 시설은 법인 분리를 거쳐 둘째 부인과 두 딸에게 물려줬습니다.
[前 충남 연기군 공무원 (80년대 부랑인 수용 업무) : (천성원) 이사회에서 분리해 주면 돼요. (엄밀히 말하면 천성원이 손해 보는 거잖아요.) 그 이사들이 다 그 사람의 사람이야. (노재중 씨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사람이니까 말이 안 되는 거예요.]천성원 법인은 수익사업에서 적자가 나는데도, 백억 가까운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해왔습니다.
과거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 법인 수익사업을 하며 돈을 차입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 박 원장은 이 과정에서 돈을 빼돌려 시설과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줬습니다.
[이성재 / 변호사 (98년 양지마을 ‘햇볕 작전’ 참여) : 아버지가 잘못했으니 자식도 잘못했어, 그렇게 하면 정말 안 돼요. 저도 그건 반대하는데, 그렇게 접근하기보다, 투명하면 누가 해도 괜찮습니다.]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존재하는 사회복지법인의 세습.
거대한 복지 공룡으로 성장한 형제복지원의 형제들.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우리는 왜 이들을 계속 주목해야 하는지,
오늘 저녁, YTN 탐사보고서 ‘기록’ 5공화국의 강제수용소 3부작 3번째 편에서 방송됩니다.
YTN 한동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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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의 충격적인 근황(+아들) – 살구뉴스
이러한 사건의 주범인 원장 박인근은 대한민국의 사회사업가이자 폭력, 강간, 살인범으로 형제복지원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1930년생 경남 울산에서 …
Source: www.salgoonews.com
Date Published: 5/14/2021
View: 1058
박인근 – 나무위키
형제복지원 원장 … 피해자 중에는 납치된 아들과 딸을 구출하러 찾아온 아버지마저 감금된 후 강제노동에 투입된 사례도 있다.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4/9/2021
View: 8532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충격적인 실체..박인근 원장 아들 근황(+ …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당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
Source: m.post.naver.com
Date Published: 1/9/2022
View: 353
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입니다. … 박인근 아들!! … 복지원 법인(느헤미야)를 청산에 착수했으나 1000억원대로 알려진 박인근원장의 재산은 빼 …
Source: hsj8404.tistory.com
Date Published: 5/19/2022
View: 7050
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우리 아버지도 인권 있다” 발언 재조명 …
7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형제복지원’에 대해 다룬 가운데 원장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도 인권이 있다”는 태도를 보인 모습이 재조명 …
Source: www.joongboo.com
Date Published: 5/27/2021
View: 8019
형제복지원 박인근 아들 사건 형제복지원 박희태 수사외압 – 중계
1987년 3월22일 직원들의 구타로인해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탈출하면서 형제복지원 실체가 드러난것입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형제복지원은 수천명에 …
Source: coconism.tistory.com
Date Published: 5/26/2022
View: 4731
박인근 일가 ‘복지 재벌’로 떵떵거리고 산다 – 시사저널
박 원장의 자녀는 3남4녀로 파악됐다.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재단)는 셋째 아들인 박천광씨가 물려받았다. 박씨는 2011년 1월 …
Source: www.sisajournal.com
Date Published: 4/3/2022
View: 9561
형제복지원 박인근, ‘악행의 말로’를 추적하다 – 한겨레
형제복지원 3부는 원장 박인근의 60살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 박인근과 아들이 검찰 수사를 받던 지난 1월27일, 이 학교 법인의 대표 …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8/14/2022
View: 2222
형제복지원 사건 박인근 아들 – 정보 총정리
형제복지원 원장이 그 사람들ㅇ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개인사업’에도 써먹었다는 것 입니다.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밥한그릇+김치 몇조각 이정도만 …
Source: onepageinfo.tistory.com
Date Published: 6/27/2022
View: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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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 Author: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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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9.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oFUdPFkI9t8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의 충격적인 근황(+아들)
‘꼬꼬무 시즌3’ 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며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박인근 원장과 박씨일가에 대해서 재조명이 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위치한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까지 일어난 인권 유린사건으로, 일반인들을 납치하였고, 불법감금은 물론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살인, 암매장, 시신판매 등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긴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 측은 이들을 불법감금한 뒤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성폭행 등 끔찍한 학대를 가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암매장을 자행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이 운영된 12년의 기간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에 70%가 노숙자가 아닌 가족과, 멀쩡한 직장이 있는 일반인들이였습니다.
소름돋는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이러한 사건의 주범인 원장 박인근은 대한민국의 사회사업가이자 폭력, 강간, 살인범으로 형제복지원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1930년생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직업군인출신으로 근무하다 장인이 운영하는 부산 형제육아원에 드나들며 사회복지사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박인근 원장은 “장애인은 나를 먹여살리는 상품”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까지 고아, 장애인을 돕는 복지사업은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박 원장은 ‘복지사업으로 돈을 버는’ 방식을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이를 가로채는 수법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기 전에 박원장이 운영하던 ‘형제재단’은 생계급여, 교육급여, 운영비, 인건비 등을 부산시로부터 보조받았습니다. 받은금액만 2007년 9억원, 2008년 9억7000만원, 2009년 9억4000만원, 2010년 10억1000만원, 2011년 11억원 등이었습니다.
이후 세상에 알려지게 되며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박인근은 출소한 이후 법인 이름을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재단 등으로 수차례 바꾸면서 복지사업과 수익사업을 병행했습니다.
박 원장의 최측근에 따르면, 생전에 그는 “축적한 재산을 가족들한테 한 개씩을 다 물려줬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재산은 목욕탕 사업을 하는 데 쓰이거나 호주 골프장을 구입하거나 이런 비용으로 지출이 됐습니다. 박인근의 재산을 은닉하고 재산을 불리는 데 쓰였던 부분입니다.
형제복지원 건물은 이 사건 이후 대부분 폐쇄되고 일부만 다른곳으로 활용 되다가 2001년 건설사에 팔아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습니다.
부지가 매각된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는데,공사중 약 40~50여구 유골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찾을 생각도 안하고 죄다 무연고 처리후 납골시설들에 안치시키고 말았습니다.
해당사건이 언론 시사프로그램들을 통해 재조명이 되자 2014년 뒤늦게서야 부산시에서 형제복지원 법인(느헤미야)를 청산에 착수했으나 1000억원대로 알려진 박인근원장의 재산은 빼돌릴때로 빼돌려서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박인근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나,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했습니다.
이후 형제재단은 박인근의 셋째아들은인 박천광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며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재단)을 물려받았습니다.참고로 박천광은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다 구속되어 3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천광은 느헤미야 재단 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재산은 제대로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셀프청산이라 불리우는 적자청산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법인 재산이었던 9개 부동산이 감정가 292억보다 낮은 231억에 처분, 당시 법인부채가 272억으로 43억 원가량의 부채를 남긴 채 적자 처분됨에 따라 국고환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박천광이 형제재단을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장남과 차남은 전처의 자식이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인근 일가와 자녀들의 재산, 근황은?
현재 박인근의 가족들은 온천, 헬스장, 부동산임대사업과 야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 호주에 골프장이 포함된 대형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에도 호주 골프장을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인근의 재산에는 호주 시드니에 골프장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 박인근은 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골프연습장은 박인근의 셋째 딸과 사위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인근의 자녀와 사위들은 노인요양원·정신과병원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의 첫째 딸은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6년 8월 설립된 신양원은 2008년 8월부터 박인근 원장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다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8월,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박 원장의 큰딸이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신양원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 위치한 대안 위탁 교육기관인 신영중·고등학교와 샘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사인 남편 김 아무개씨도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 딸의 경우 의사인 남편 김씨가 울산에서 정신과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병원은 13층 규모의 빌딩에 들어서 있는데 이 빌딩의 소유주가 김씨였습니다.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씨가 이 빌딩을 매입한 것은 2006년 5월이었는데, 복잡하게 얽혀 있던 채권 관계가 정리돼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것은 2009년 7월 말이었습니다. 형제재단의 대저동 토지 대금 중 일부가 이 빌딩의 상환금으로 쓰였다는 부산시의 특별점검 결과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집니다.
셋째 딸 부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한 레포츠센터를 운영하는 등 해외 부동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넷째 딸은 한동안 실로암의 집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시사저널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기장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실로암의 집 점검 결과’ 문서를 보면 2012년 9월에 실시한 점검에서 ‘법인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를 운영위원회 등을 통한 공개 채용 절차 없이 채용한 점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넷째 딸이 사회복지 관련 전문 지식이나 자격이 없는데 특채로 고용했다가 기장군청의 점검 때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이 인사는 “실로암의 집이 이전하게 되면 넷째 딸이 맡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넷째 딸의 남편은 부산에서 한 사회복지법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 씨로 알려졌습니다. 이 재단은 정신요양원·노인요양원·건강센터·노숙인쉼터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씨의 경우 이 재단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사업의 경우 장인인 박 원장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박인근 일가의 재산들은 상당한 수준이며 그 재산은 고스란히 유지되며 부가 대물림 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이 다시 재조명을 받는 요즘이지만, 정당히 죗값을 한참 더 치러야 마땅할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은 지난 2016년 6월 86세의 나이로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의 가족과 자녀들은 자산들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복지사업, 등을 이어오며 상당한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도 인권을 잃어버린 수많은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박인근 아들!! 재산 1000억원 환수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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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에서는 형제지옥원에 대해 파헤쳐 봅니다.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입니다.
1975~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으로 영화 ‘도가니’의 실존이야기 이자 한국판 아우슈비츠 사건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4,300여 명의 일반인을 납치하여 감금한 후 상해치사와 고문과 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납치된 여성의 경우에는 미성년자 소녀까지 성폭행과 성고문을 통해 노예로 만들어서 강제노동에 투입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6년간 51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형제복지원원장 박인권
형제복지원을 지배하던 독재자 박인권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고아장사를 통해 수 많은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의 재산은 대략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513명 살해가 발각된 이후에도 형제복지원은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3년 2월에 “느헤미야” 로 법인명을 변경하며 법의 제한사항 없이 박인근과 그의 가족들에 의해 멀쩡히 경영해 왔습니다.
온천, 헬스장, 부동산임대사업과 야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 호주에 골프장이 포함된 대형 스포츠센터 등 그 재산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1987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이 형제복지원과 관련에 수사에 착수했으며 징역 15년에 벌금 6억 8천 1백 78만원을 구형했으나 계속되는 재판에서 징역 4년, 징역3년 그리고 1989년 특수감금을 무죄로 판단 최종 벌금없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박인근의 사회사업가로서의 공과에 대한 평가 등 정상을 참작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박인근은 2016년 6월 27일 사망하였고 이미 공소시효도 지나서 어떠한 처벌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최근 수많은 시사고발프로에서 형제복지원사건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박인근의 숨겨진 재산환수 때문 입니다.
2014년 뒤늦게서야 부산시에서 형제복지원 법인(느헤미야)를 청산에 착수했으나 1000억원대로 알려진 박인근원장의 재산은 빼돌릴때로 빼돌려서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박인근의 아들은 재단 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재산은 제대로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셀프청산이라 불리우는 적자청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이 법인 청산과정에서 감정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로 적자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습니다.
느헤미야 법인 재산이었던 9개 부동산이 감정가 292억보다 낮은 231억에 처분, 당시 법인부채가 272억으로 43억 원가량의 부채를 남긴 채 적자 처분됨에 따라 국고환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잔여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함께 박인근 원장 일가의 호주 골프장, 일부 은닉 재산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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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원장 아들 “우리 아버지도 인권 있다” 발언 재조명
사진=뉴스타파M 캡처
7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형제복지원’에 대해 다룬 가운데 원장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도 인권이 있다”는 태도를 보인 모습이 재조명되고 있다.
과거 2014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고 묻혀버린 부산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쳤다. 형제복지원은 지난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고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3천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은 무연고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납치해 감금, 폭행 및 구타와 강제 노역을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형제복지원 박 원장은 7번의 재판 끝에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 만에 출소했고,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현재는 ‘복지재벌’로 살고 있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게다가 해당 방송에서 형제복지원을 운영해 온 박모 원장의 아들은 인터뷰를 시도하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야, 우리 아버지는 인권 없나? 어? 우리 아버지는 인권 없나?”라고 말하며 멱살을 잡는 등 난폭한 행동을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편 7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형제복지원’ 관리자들의 최초증언을 따라 ‘아동소대’에서 벌어진 해외 입양과 암매장, 시체소각 의혹을 추적했다.
정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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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은 1975년~1987년까지 당시 전국 최대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부산형제복지원에서 12년간 일어났던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1987년 3월22일 직원들의 구타로인해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탈출하면서 형제복지원 실체가 드러난것입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형제복지원은 수천명에 달하는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노숙인등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고 노역 폭행하였습니다. 특히나 형제복지원이 운영되었던 시기는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 이유로 전국 부랑자 단속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사건에 연루된 혐의자들이 공권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월 27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피해자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인권유린 사태가 다신 발생치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당시 왕처럼 군림하였으며 충성만하면 여자 원생들을 강간, 성희롱, 성폭행을 해도 아무도 터치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1989년 9월14일에 2년 6개월형을 받았으나 이미지 세탁후 개신교 집사가 됩니다. 또한 형제복지원을 이름을 바꿔 운영하게 되는데 2014년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형제복지원 박인근 아들이 운영, 셋째아들은 실로암의집을 만들어서 운영했습니다.
또한 지난 4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의혹으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조사했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장이었던 박희태 형제복지원 수사외압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형제복지원 박희태 전 의장은 기억못한다고 잡아뗐었답니다.
박인근 일가 ‘복지 재벌’로 떵떵거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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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처분한 돈 자녀들 유입…첫째·넷째 딸 부부 사회복지 사업, 둘째 사위 정신과병원 운영
최악의 인권 탄압을 저지른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가족은 지금도 부산·경남 지역에서 ‘복지 재벌’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시사저널이 박 원장 일가의 재산을 추적한 결과 가족 대부분이 사회복지 관련 재단이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둘째 딸의 남편이 울산에서 빌딩을 소유한 채 정신과병원을 운영 중인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 넷째 딸의 남편이 사회복지법인 대표이사를 맡아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박 원장의 자녀는 3남4녀로 파악됐다.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재단)는 셋째 아들인 박천광씨가 물려받았다. 박씨는 2011년 1월 사임한 아버지 대신 재단 대표를 맡았다. 해당 법인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재단 운영의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박씨가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내부 사정에 밝은 복수의 인사들에 따르면 첫째와 둘째 아들의 경우 상속 경쟁에서 동생인 셋째 아들에게 밀려 재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박인근 원장의 첫째 딸이 대표를 맡았던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에서 운영 중인 김해시 소재의 대안학교. ⓒ 시사저널 박은숙
느헤미야 재단은 부산을 비롯한 영남 일대에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을 갚지 못해 대부분 가압류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에 위치한 사상해수온천은 재단의 대표적인 수익 사업이었다. 대지 2필지 4006㎡에 5층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재단은 이 온천의 리모델링을 명분으로 2005~2009년까지 부산 저축은행으로부터 118억원을 대출받았다. 현재 142억2000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으며, 부산지방법원이 지난해 10월 임의경매 개시를 결정했다.
재단이 운영 중인 ‘실로암의 집’을 이전하겠다고 밝힌 부산시 북구 덕천동 임야 2만6087㎡와 인근 대지 1252㎡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과 울산지방법원으로부터 가압류된 상태다. 울산시와 경주시에 위치한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울산시 북구 정자동 일대 4필지 6289㎡와 산하동 일대 2필지 4178㎡, 구유동 3003㎡도 울산지방법원에 가압류돼 있다. 경주 양남면 상라리 일대 2필지 8만7339㎡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과 울산지방법원 두 곳에서 가압류 결정을 내린 상태다.
박인근 원장의 넷째 사위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노인요양원. ⓒ 시사저널 박은숙 2000년대 들어 부동산 대규모 매각
시사저널이 부산시로부터 확보한 재단의 부동산 목록 가운데 실로암의 집만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 있다. 개인에게 3000만~1억2000만원, 한국전력공사와 부산도시가스에 5000여 만원씩의 채무가 있어 가압류돼 있지만 해당 부동산 가격이 72억원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2011년 11월 한국감정원은 이들 부동산의 총 가치가 221억2000여 만원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재단은 2000년대 들어 상당량의 부동산을 팔아치웠다. 2001년 7월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일대 10필지 1만329㎡ 대지를 울산시 강남교육청에 3억9000여 만원의 보상금을 받고 매각했다. 2001년 12월에는 당시 실로암의 집이 있던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 대지 2만9012㎡와 건물을 한 지역 건설사에 223억8000여 만원을 받고 팔았다. 이어 2009년 6월에서 9월까지 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 일대 8필지를 21억5000여 만원에 매각하고, 2011년 12월에는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5층짜리 레포츠센터를 한 인테리어 업체에 48억2000여 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런데 재단이 이런 식으로 부동산을 매각한 돈이 박 원장의 자녀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시가 2012년 8월에 실시한 특별점검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일부 드러났다. 대저동 토지와 레포츠센터 매각 대금 48억2000여 만원 가운데 박 원장 개인 용도로 3억7000만원이 빠져나갔고, 둘째 사위인 김 아무개씨 소유 빌딩의 상환금을 지원하는 데 10억8000여 만원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박인근 사위들, 노인요양원·정신과병원 운영
박 원장의 첫째 딸은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8월 설립된 신양원은 2008년 8월부터 박인근 원장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다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8월, 2013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박 원장의 큰딸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신양원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 위치한 대안 위탁 교육기관인 신영중·고등학교와 샘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목사인 남편 김 아무개씨도 학교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 딸의 경우 의사인 남편 김 아무개씨가 울산에서 정신과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병원은 13층 규모의 빌딩에 들어서 있는데 이 빌딩의 소유주가 김씨였다.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씨가 이 빌딩을 매입한 것은 2006년 5월이었는데, 복잡하게 얽혀 있던 채권 관계가 정리돼 소유권 이전이 완료된 것은 2009년 7월 말이었다. 재단의 대저동 토지 대금 중 일부가 이 빌딩의 상환금으로 쓰였다는 부산시의 특별점검 결과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다. 셋째 딸 부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한 레포츠센터를 운영하는 등 해외 부동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딸은 한동안 실로암의 집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시사저널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기장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실로암의 집 점검 결과’ 문서를 보면 2012년 9월에 실시한 점검에서 ‘법인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를 운영위원회 등을 통한 공개 채용 절차 없이 채용한 점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넷째 딸이 사회복지 관련 전문 지식이나 자격이 없는데 특채로 고용했다가 기장군청의 점검 때 걸렸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실로암의 집이 이전하게 되면 넷째 딸이 맡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넷째 딸의 남편은 부산에서 한 사회복지법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 아무개씨로 알려졌다. 이 재단은 정신요양원·노인요양원·건강센터·노숙인쉼터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재단의 지난해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시설 4곳의 정부 보조금이 34억3000여 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의 경우 이 재단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업의 경우 장인인 박 원장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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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악행의 말로’를 추적하다
[토요판] 커버스토리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3회 ① 악행의 말로
형제복지원 대하3부작 제3회-박인근 출소, 그 뒤
▶ 형제복지원 3부는 원장 박인근의 60살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1987년부터 국가기록원, 부산시, 기장군청에 남겨진 법인 관련 자료, 박인근의 재산을 추적하기 위한 오스트레일리아와 국내 등기부등본, 시민단체 부산사회복지연대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자료,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인간 박인근의 말로를 입체화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회입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 참회하고 국가가 지나간 과오를 사과하는 날을 기대합니다.
인간의 말로에는 생의 지나간 시간들이 퇴적돼 있다. 1980년대 대통령 표창을 받고 전국 최대의 부랑아 시설을 이끌며 복지계 영웅으로 전성기를 보낸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1987년 추락한다.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돼 2년6개월을 보낸 박인근은 1989년 7월 교도소를 나와 달라진 세상을 목격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며 경제가 호황에 접어들었고 1990년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산업의 축은 경공업을 지나 중공업, 전자, 서비스 산업으로 선진화되고 있었다. 감금된 원생의 노동력을 착취해 봉제공장 등을 가동하던 박인근은 바뀐 세상에서 새로운 복지왕국을 꿈꾼다. 복지시설을 줄여 수익사업을 다각화하고 원장에서 사업가로 변신한다. 한 차례 추락했을 뿐, 형제복지원 대표이사로 쉽게 재기한 박인근은 자신의 성공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친구가 부회장으로 있는 부산상호저축은행의 화수분 같은 대출 창고는 쉽게 돈을 내주었다. 돈과 인맥, 거짓말과 술수로 사람을 움직이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박인근은 머리 위로 폭우를 머금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돌아오지 못할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email protected] 화려한 부활, 브레이크 없는 질주의 끝
출소 이후 박인근의 행적을 추적하다 등장인물 원생 감금·착취 대신 새로운 술수로 사람들을 죽이다 민가를 벗어나 좁은 길을 따라 산턱으로 2㎞쯤 걸어 갔을까. 단감 밭과 야산이 둘러싼 어둠 속 폐교는 철조문으로 막혀 있었다. 철조문 너머 1642평 대지에 들어선 학교의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교실과 기숙사, 식당으로 쓰이던 5층짜리 건물 세 동에 학생들이 오지 않은 지 오래다. 언제 닦았을지 모를 교실의 창문들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운동장 왼쪽에 자리한 건물의 창문 한곳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학교 정문을 두드렸지만 소리가 운동장을 넘어 빛이 새나오는 건물까지 전달될 리 없었다. 2014년 9월25일, 시계는 오후 7시10분을 가리켰다.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의 수익사업인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사상해수온천. 5층짜리 건물과 붙어 있는 교회도 재단 소유다. 이 교회 목사는 지난 2~5월 느헤미야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유리 기자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빛은 사고 당시 이 학교를 소유한 복지법인 신양원의 대표이사 박아무개(49), 학교장이자 박씨의 남편인 김아무개(54)의 거처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들은 폐교에 살고 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2008년 8월29일부터 신양원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0년 12월14일 첫째딸인 박씨에게 넘겨주었다. 박인근은 배아무개씨로부터 이 법인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근과 아들이 검찰 수사를 받던 지난 1월27일, 이 학교 법인의 대표이사는 허아무개(54)씨로 바뀌었다. 박인근의 지인인 허씨는 두 차례 김해시장에 출마했다 낙마한 인물로 형제복지원(형제복지원은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재육원, 욥의 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로 줄곧 법인명을 바꾼다)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왔다. 김해시 생림면 신영중고교
학생 2명이 물에 빠져 죽은
비극적 사건 뒤부터 폐교가 된
이곳서 산다는 박인근 딸 부부
“박인근도 부근서 요양” 소문 군수와 주민 반대 뚫고 추진한
중증장애인 시설 ‘실로암의 집’ 공사
산허리 깎아 만들어 경사 40도
2002년 폭우 4명 파묻혀 죽자
박인근 “내가 죽였냐?” 악을 써 “저 불빛 보이지? 교장 부부만 사는데, 저래 보여도 한때는 건물 세 동 있는 멀쩡한 학교였어. 내가 학교 경비를 했는데 참, 경비가 쉬워 보이지? 아냐. 아이들이 도망갈까봐 밤마다 문이란 문, 틈이란 틈은 다 확인해. 아이들은 늘 도망칠 궁리를 했거든. 학교는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으려 했어. 애들이 나가면 정부 보조금이 줄잖아. 박인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사일에 한번은 이 학교에 왔어. 와서는 직원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면서 1987년 구속이 됐지만 자기가 힘이 세서, 무죄여서 감옥에서 나왔다고 했어. 박인근 아들은 비엠더블유인가, 벤츠인가 외제차 타고 다녔고. 몇 년 전이었던가, 김해의 공무원이 감사를 나왔지. 그 여자 공무원이 1987년 사건을 입에 올리자 박인근, 딸, 사위 셋이서 난리, 난리를 쳤어. ‘당장 사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 쉽게 말해서 좀 별난 가족이었어. 요즘 박인근은 보지 못했고, 딸 부부는 시커멓게 선팅이 된 봉고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데 동네에 걸어다니는 걸 본 적은 없어. 그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과 교류도 안 하고, 차로 왔다 갔다만 해. 왜 그런지 알아?” 집 앞 흰 가로등 아래 선 노인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옅게 웃었다.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크고 비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리니까. 뒤가 막, 구리니까.” 형제복지지원재단이 소유한 수익사업 가운데 하나인 부산 사상구 괘법동 사상해수온천과 맞붙은 건물 5층에 살았던 박인근은 최근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서 요양 중이라고 그의 측근이 말했다. 건강이 악화돼 딸의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박인근 일가는 그러나 폐교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인근과 아들은 법인 자산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3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들 박천광(38)만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검찰을 통해 뇌경색 진단서 등 의료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한 여든다섯살의 박인근은 법정에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박인근은 아들과 사건이 분리됐고 재판이 중지돼 있다. 1975~1986년 원생 513명 숨진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영원히 심판받지 않을 자로 삶의 끝을 맺을지 모른다. ② 투기적 인간, 박인근
③ 그해 여름의 폭우
④ 욕망의 끝
⑤ 심판과 구원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전편 다시보기]
글 박유리 기자 [email protected]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형제복지원 사건 박인근 아들
형제복지원 사건, 처음 듣는 분들은 에이 울나라서 이런일이??? 라고 하실 것 입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 한 이런일이 한국에서도 있었다니.. 하신다면 우리나라는 당시에 인권 후진국이었고 지금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 입니다.
그리고 형제 복지원 사건은 아직 진행중인 비극입니다. 아래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전라도 염전노예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합닏.
당시 정부는 길거리의 부랑자들.. 그리고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건물들도 빨리 치워야 했기 때문에.. 빗자루로 쓰레기 쓸어담듯 3500여명의 사람을 납치나 다름 없는 방법으로 데려가서 노예처럼 부려 먹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공식적으로만 500명입니다. 비공식적으로 한다면 훨씬 많아지겠지요..
세월호로 인해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총 295명인데.. 2배에 가까운 인원이 죄도 없이 착취당하다 갔습니다.. 형제복지원 이야기는 우리가 알아야하는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역사 중 일부 입니다.
노예처럼 살다가 과자봉지 처럼 버려진 형제복지원 사람들…
형제복지원은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랑자 수용시설이었습니다. ‘수상하거나’, ‘거지같은 사람’은 모조리 잡아들여다가 강제 노역을 시키고, 반항 및 도주시 잡아서 심각하게 폭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본보기를 보여야 ‘다른 노예’들이 도망을 못가니까요.
왜 형제복지원은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잡아들였고.. 그런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우선 당시에 신나게 사람들을 잡아들여다가 노역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가 허용했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엄청난 ‘예산’을 지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1년 지원받은 예산이 20억인데.. 그때 20억이면 지금 얼마나 될까요..
검색해보니 1980년대 버스가 200원 미만이었고, 88올림픽 즈음에 짜장면 한그릇에 600~700원이었다고 합니다.
1988년에 대치동 아파트가 1억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얼마? –_-;;
대충 5~6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만 가정해봐도 지금으로 치면 한해에 100억이 넘는 돈을 예산으로 형제복지원이 받았던 것 입니다.
원래 형제복지원이 처음에 만들어진 목적은 꽤나 거창했습니다. 오갈곳도 없고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을 모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도 가르쳐줘서 사회로 복귀시키겠다는 명분이었으니까요.
형제복지원에 그 큰 뭉탱이 돈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대통령과 짝짝꿍이 맞았거나 그들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한마디로 형제복지원은 한 개인이 저지른게 아니라 나라가 저지른 사건 입니다.
‘생지옥’이었던 그곳!
그리고 철저하게 비밀이 쌓여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나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형제복지원에서 지원 사건이 알려지게 된 이유도, 그곳에서 어렵게 탈출한 사람이 이걸 밝히면서 알려졌지요.
탈출한 사람이 늦게서야 한명 생긴것은, 그만큼 경비가 철저했다고 해요. 개까지 풀어서 도망가는 사람을 잡았다고 하니까요. 미국 영화 노예12년 보면 아마 그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검찰이 지금보다 나았나 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두달간이나 망원렌즈(멀리 있는 곳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렌즈)로 자료 수집하고 사건 준비해서 형제복지원을 덮치면서 관계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에서 고통받은 사람이 그린 그림..
어린 나이에 이런것을 보고 자랐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저렇게 묶어놓고 학대했던 모양 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쓴 일기.
형제복지원에 대해 수사를 하면 할수록 감자 캐듯 하나둘씩 계속 나왔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 원장이 그 사람들ㅇ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개인사업’에도 써먹었다는 것 입니다.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밥한그릇+김치 몇조각 이정도만 줬다고 하네요 ㅜ 단체로 데려가서 일을 시키면서 숙박도 필요하게 되니.. 노예들을 위해 기숙사 건물을 마련하는건 말이 안되고.. 축사 대충 개조해서 거기서 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이름이 ‘박인근’ 입니다.
정부에서 준 지금돈으로 치면 100억~백 수십억 하는 그 보조금을 몰래 빼돌려서 아파트, 골프, 콘도 등 온갖 사치를 누렸는데.. 처벌은 커녕 ‘훈장’을 받았습니다. 만세!!! 대한민국 만세!!!!!!
국가 기록원의 형제복지원 사건 기록
주민등록증 검사해서 없으면 바로 끌고갔습니다. 말안들으면 암매장도 했구요.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죽은 사람은 공식적으로만 531명.. 일부 시신들이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고 하니 얼마나 죽었는지 정확히 알기도 힘들듯..
형제 복지원 원장 박인근 당시 모습
이 사람 1989년 9월 14일에 2년 6월형 받았습니다.
거의 학살를 해놓고 이정도. 우리나라 짱이죠. 재산만 해도 수백억일텐데..
우리나라는 사건 크게 저지른놈들이 교회에서 이미지 세탁하는거 아시죠?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은 개신교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형제복지원을 다시 되찾아서 이름을 바꿔 운영하게 됩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느헤미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형제복지원의 원장 아들이 운영을 했고. 셋째아들은 ‘실로암의 집’을 만들어서 운영
첫째가 예전 형제복지원 법인을 가져간 모양인데, 예전에 기사를 보니 법인 규모가 1천억원대라고 ㅋㅋ
아들들아 아빠를 쏙 뺴닮아서, 셋째는 보조금 횡령으로 걸려서 징역 3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버릇 개 못주듯.. 박인근이도 또 한번 그 죄에 연루되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뇌출혈에 걸려서 재판은 받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형제복지원을 나온 사람이 쓴 일기 입니다.(이왕이면 컴퓨터로 크게 보세요)
자 이게 한국의 과거 일까요?
전라남도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기억하시나요?
영등포 역에 있는데, 재워주고 먹여주고, 일자리도 주겠다고 해서 목포로 갔더니.. 3개월만 일하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연락도 못하게 잡혔다고..
전라도 염전노예 피해자들 중에서는 지적장애인, 시각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
하루 다섯시간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소금일은 물론이고, 벼농사도 지어야 했고, 건물공사, 잡일 거기다가 ‘주인님’들의 집안일도 했다고 합니다.
그 섬은 진짜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섬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누구네집 노예가 도망가면 바로 전화해서 잡아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4년동안 노예처럼 부려먹고 돈 떼먹은 염전 업주가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감방에 가지 않고 그냥 일상생활 하면서 2년동안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됩니다.
뒤늦게 뉘우쳤고.. 밀린돈을 다 줬고.. 피해자가 합의를 해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합의를 했다면 참작해주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줘야 할돈을 뒤늦게 줬을 뿐이니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그간 노예처럼 학대하고 가둬놓은 죄는 왜 묻지 않는건가요?
이런 중범죄를.. 줄돈 줬다고 이렇게 집행유예로 끝내는 나라라니..
작년 7월달에는 ‘광주지검 해남지청’에서 무려 십년동안이나 장애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업주를.. ‘증거 불충분’이라며 불기소 처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들은 63명..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형제복지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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