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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19 [하루 한 장]“자기 집을 세우되” (잠14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지혜중의 지혜이신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이루시되
우리와 함께 세워 가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사역에
우리가 동역자로 쓰임받고자
구원받고 부름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자기의 욕망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허무는
미련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내 유익과 내 응답만을 위해서
눈앞의 이익을 좇아 산다면
당장 나는 좀 잘될지 몰라도
여호와의 집을 허물어 버리는
악한 자로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직 안에서 다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로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언어생활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완수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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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목) “잠언 14:1-35” / 작성: 정한조
‘미련한 자, 하나님이 없어서 패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죄를 심상하게(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은혜가 없고, ‘정직한 자, 하나님 앞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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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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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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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장 주석. =====14:1. 주로 개인적인 의를 기술한 전장(前章)과는 달리 본장에서는 좀더 공의적인 대상으. 로서의 가정과 국가의 문제에 주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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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잠언 14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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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자기의 길을 바로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자기가 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길을 잃어 버리게 된다. … 악인은 악을 행하는데 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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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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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지혜로운 여인, 분노, 구제, 의 …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언 15:24, “지혜로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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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잠언 14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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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8. 9.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rHG9rFPnfw
2018/11/29(목) “잠언 14:1-35” / 작성: 정한조
본문 잠언 14:1-35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지혜로운 사람과 거만한 사람 그리고 마음에 대하여(1-14절)
오늘 본문은 10:1-22:16까지에 있는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의 은사로 말한 단편경구(어록) 375개 중에, 117-151번째까지 35개입니다.
오늘 본문도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의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삶에 필요한 깨우침의 말들을 들려줍니다.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집을 세운다’는 의미는 가정을 화목하고 평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여인’의 문자적인 의미는 ‘여인들의 지혜들’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여인’의 문자적인 의미도 ‘미련함’입니다. 솔로몬은 집안을 일으키는 주체를 그 여인들 자신이 아니라 여인들이 가진 지혜라고 표현함으로, 어떤 여인에게 지혜가 있으면 집안을 일으키고, 미련함이 있으면 집안을 무너뜨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남자와 여자의 인권이 평등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집안의 경제적은 부분은 거의 다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왕은 단호하게 집안의 흥망은 남자들의 지혜와 미련함에 달려 있지 않고, 여인들의 지혜와 미련함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왕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많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게는 첩 300명을 제외하고도 왕비(후궁)이 700명이나 있었습니다. 솔로몬왕은 그 아내들 중에서 어떤 여인들은 자기 집을 잘 세워가고, 어떤 여인들은 집을 허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의 중요함은 솔로몬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동일합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좋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의미가 아니다)이면 최상의 남편감, 아내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정보 업체에서 다루는 조건에서 ‘지혜’라는 항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지혜는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빼어난 외모나 많은 봉급을 받는 직장보다 지혜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 있는 항목입니다.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말씀은 정직한 사람이 가져야 할 노동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소로 농사를 짓는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떤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거기에 따른 희생과 어려움은 감수해야 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하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소가 없기에 소를 돌보지 않아도 되고, 소에게 여물을 줄 일도 없고, 소의 배설물도 청소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신 사람이 소만큼 힘을 쓸 수 없기에 그만큼 수확물의 양도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확을 원한다면 반드시 소를 키워야 하고, 소를 키우려면 소의 건강상태도 돌아보아야 하고, 소에게 여물을 준비해서 주어야 하고, 구유도 청소를 자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가 편안함을 느끼고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근면하지 못한 사람은 가난을 면할 수 없고, 근면한 사람이 부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수고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이라는 말도 있고,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미련한 자’는 ‘바보’,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데, 정신연령이 낮고, 뭔가 모자라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둔하고 성격적으로 완고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패역한 성품으로 어그러진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즉 미련한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면서 그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그 가치관에 동의를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이 깨달은 사실은 미련한 사람에게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글을 모르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많은 공부를 했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지식이 없습니다.
또 미련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심상(尋常)하다’는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미련한 자, 하나님이 없어서 패역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죄를 심상하게(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은혜가 없고, ‘정직한 자, 하나님 앞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은 죄를 심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은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노아시대에 사람들은 다 죄를 심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삶은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죄를 심상하지 않게 여긴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심상하지 않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에, 일터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인간이 굉장히 뛰어난 존재인 것 같아도 인간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의 일은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장티푸스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는데, 자신은 머리가 살짝 아픈 것과 콧물흘리는 것을 더 크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또 나는 몹시 즐거워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을 찾기도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언제나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우리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까지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망의 길임에도 사람이 그것을 바른 길로 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기에 바른 것’과 ‘실제로 바른 것’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부자로 보이지만 가난한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부자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행복한 것처럼 보였는데 행복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잘 살고(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잘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닌 사람도 많고,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바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언제나 바릅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 그리고 악인과 의인(15-25절)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는다고 합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팔랑귀’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행동이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말뚝귀’를 가진 것과 같아서 자기 행동을 가볍게 하지 않습니다.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노함과 어리석은 일을 행함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이 결코 현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때에 결정을 하게 되면, 감정이 가라 앉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특히 노함을 ‘속히’하게 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감정이 아주 격해지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 감옥에 갇힌 사람 가운데 다수가 감정이 격해 있을 때에 스스로의 행동을 제어 못하고, 감정을 따라서 행동했다고, 정작 자신의 몸이 제어를 당하게 된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29절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합니다.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사람(교활한 사람)은 반드시 미움을 받습니다. 누구에게요? ‘누구에게’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1차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입니다. 사람들에게가 아니라면 ‘하나님께’ 입니다.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표준새번역성경에는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라고 합니다. 일을 입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손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것이 눈이고, 부지런한 것이 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고서 그 기세에 눌려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못할 것 같다”, “힘들 것 같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세상의 일 중에서 할 줄 모르는 일은 능력이 없기 때문보다,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 훨씬 더 많습니다.
피난처 하나님,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대조(26-35절)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지금도 인구수가 많음이 국력의 강해지는 것과 연결이 될 때가 많습니다. 고대에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백성이 많아지고, 적어지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당시에 전쟁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왕이 전쟁을 치러서 승리하면 적국의 사람들을 끌고 와서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크게 증가되곤 했습니다. 반대로 패전을 하게 되면 자국민이 적국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인구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 민심이 점점 이반될 것이고, 그 왕은 왕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구의 늘어남과 줄어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출산이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어 평안하면 사람들이 많은 출산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나라가 불안정하게 되면, 사람들도 동일하게 불안하여 임신이 어렵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유아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볼 때마다 감동이 됩니다. 그 세례식이 세례를 받는 유아와 그 가족에게 복이 됨은 물론 교회적으로도 큰 복입니다. 교회가 평안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공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나라를 나라되게 하고, 국격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높은 경제력이나 막강한 군사력, 다양한 문화창달에 있지 않고, 신앙적이고 영적인 삶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 백성(민족)을 욕되게 하는 것도 국가가 파산을 하거나, 군사력이 형편없어지거나, 문화가 빈약해 지는 것에 있지 않고, 영적인 문제, 죄를 지으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바른 신앙과 바르지 못한 신앙은 국가를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잠언의 내용은 반복이 많습니다. 같은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이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늘 동일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연륜이 길어질수록,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따라서, 마음상태와 성숙도가 달라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해석이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워지고, 더 성숙해 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 지혜롭고, 슬기로운 길을 걸음으로,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앞에 미련한 사람의 길과 거만한 사람의 길, 어리석은 사람의 길도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길과 명철한 사람의 길, 슬기로운 사람의 길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맺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걷는 길이 사람들에 바르게 보이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의 소리나, 세속적인 가치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을 목적 삼고 걸어가게 하시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미련하고 거만하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가 있는 곳을 작은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여인의 지혜는 집을 세우고, 미련은 집을 허문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집을 더 잘 세우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2. 사람에게는 바르게 보일지라도 사망의 길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의 삶에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른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3.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있습니까? 좀 더 새롭게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시험에 들지 않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잠언 14장 & 성경주석
<잠언 14장 흐름정리>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거만한 자와 명철한 자, 악한 자와 정직한 자, 악인과 의인,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와 마음이 조급한 자 등을 대조시켜, 하나님과 이웃에게 인정받는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본 장의 핵심 주제는 26, 27절에서 발견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결국, 구체적으로 열거된 이 모든 사례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지침들이라 하겠다.
<잠언 14장 개역한글>
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20.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잠언 14장 성경주석>
14:1 여인.
어떤 집도 지혜롭고 부지런한 여인이 관리하지 않으면 튼튼해질 수 없다. 집안의 여인이 어리석으면, 그는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등한할 뿐 아니라 그의 어리석은 행위 때문에 밖에서는 원수들이 생기고 안에서는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참조 24:3; 31:10~31).
14:2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여호와를 존경하는 것을 말한다. 선한 사람을 경외하는 것은, 죄인이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분명히 보는 순간 그를 사로잡는 경악과 공포와는 전혀 다르다.
14:2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우주의 저울에 달릴 때 먼지의 미립자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인간이, 강한 천체들과 궤도를 따라 돌아가는 항성들의 창조주와 유지자를 경멸하거나 그의 거룩한 이름을 헛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14:3 입술.
지혜로운 자의 말은 겸손하고 화목을 도모하고, 친구들을 얻고, 해악을 방지한다(참조 13:3; 15:1).
14:4 깨끗하려니와.
“비어 있다”는 의미이다. 가득 찬 구유와 곡물 창고는 농부 측에 힘든 일을 요구하고 밭을 갈고 곡식을 타작하기 위한 소의 힘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땅을 돌보지 않는 자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참조 12:11; 28:19).
여기서 “깨끗하려니와”로 번역한 낱말 바르(bar)는 비록 “도덕적 순결”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지라도(시 19:8; 24:4), “텅 비어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정결”을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바르는 또한 “곡식”(grain)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corn”, 「제임스왕역」, 창 41:35 등). 앞에 나온 낱말을 약간 바꾸면 “소가 없는 곳에는 곡식이 없다”라는 번역이 용납된다.
14:5 거짓말을 뱉느니라.
문자적으로 “거짓말을 호흡하다.” 의인은 자연스럽게 진실을 내뱉고(참조 12:17 주석)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한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참조 13:5).
14:6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지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와 지혜를 얻는 자의 차이는 찾는 방법에 있다. 경멸하는 자는 교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혜를 찾을 때 “그것이 없다”(문자적 번역). 명철한 사람은 그에게 교훈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다. 그는 그가 듣는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듣고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을 많이 발견한다(시 25:9; 살전 5:21).
14:7 떠나라.
이 절은 13:20의 교훈을 재차 강조한다. 어리석고 뉘우치지 않는 친구들과 사귐으로써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은 많다.
14:8 속이는 것이니라.
어리석은 자는 남을 속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행동의 결과를 생각하고 평가하기 위하여 번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중한 자는 모든 계획과 행동을 주의 깊이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지혜를 나타낸다. 그는 그가 가고 있는 길이 영생으로 가게 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안팎에서 그를 곁길로 빠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참조 렘 17:9; 엡 5:15).
14:9 심상히 여겨도(make a mock).
히브리어 얄리츠(yalis.). 단수형 주어를 요하는 단수형 동사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죄가 미련한 자를 심상히 여긴다”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미련한 자가 죄를 심상히 여기든지 않든지 간에 죄가 그들을 심상히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행(非行)이 그들을 붙잡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기 때문이다(참조 5:22).
14:10 고통.
첫째 구절은 문자적으로 “마음은 그 영혼의 고통을 안다”로 해석된다. 비록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이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위하여 배울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마음속을 알고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결코 다 경험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의 기쁨에 대하여 나그네와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을 아시고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을 함께 나누신다(참조 시대의 소망, 327).
14:11 장막.
히브리어 오헬(’ohel), “천막.” 이 절에서 “집”과 “장막”을 의도적으로 대조하는 것 같다. 악인은 현세의 삶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안정되고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의인은 그가 이방인과 순례자이며 장막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참조 히 11:9, 20). 악인들의 집은 조만간에 무너지고, 한때 그 집의 주인이었던 자들은 의로우신 심판자 앞에서 떨며 피할 곳 없이 서 있게 될 것이다. 의로운 자는 그의 길을 다 갈 때까지 그의 장막이 기쁨과 평화의 안식처임을 발견한다. 그는 영원하고 영광스런 저택을 갖게 될 영원한 왕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다린다(참조 잠 3:33; 12:7; 마 7:24~27).
14:12 사망의 길.
여기서 말하는 사망의 길은 맹목적으로 혹은 무분별하게 들어가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합당하게 보인다는 확신을 가지고 선택된 것이다. 양심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견주어 보지 않고 따르는 것을 이 절은 경고한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자신이 임의로 변경해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지만 그들은 다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두드러진 본을 보여 준다. 그는 기록된 말씀은 잘 알지 못했지만 살아계신 말씀께서 친히 음성과 모본으로 그를 가르치셨다. 빌라도는 악과 타협해도 재산과 지위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타협은 불명예와 죽음으로 이끌었다(마 27:11~26).
14:13 웃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태평한 웃음을 가장하여 자신의 슬픈 심령을 덮어 보려고 하지만 그러한 잘못된 웃음은 다만 슬픔으로 끝날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말씀이다(참조 전 7:4).
14:14 마음이 패려한 자(the backslider).
마음이 패려한 자는 더 좋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기적인 만족의 길이 신속하게 지겨움과 마음속의 불만족을 가져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불만족이 그를 회개하도록 이끌지는 않는다.
14:14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마치 마음이 패려한 자가 자기의 악한 행위의 열매로 채워지는 것처럼 선인은 그의 선한 행위의 열매로 채워진다(참조 사 3:10). 「70인역」은 이 절을 “완고한 자는 그 자신의 행위로 채워질 것이고 선인은 그 자신의 사상으로 채워질 것이다”라고 번역한다.
14:15 어리석은 자.
히브리어 프티(peti), “단순한.” 아마도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에서 교훈에 대해 열린 것을 말할 것이다. 나쁜 의미로 프티는 쉽게 잘못 이끌리는 자들에 대해서 말한다.
14:16 두려워하여.
지혜로운 자는 모든 길이 원수의 올무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모든 행동과 모든 새로운 사상을 주의 깊이 살핀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미련한 자가 격노하는 것은 그를 사단의 먹이가 되게 하고 원수가 그를 거의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 속으로 이끌어 들이기 쉽게 만드는 오만하고 교만한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참조 22:3; 28:26).
14:17 악한 계교.
히브리어 므짐모트(mezimmot), “근신”이라는 좋은 의미로 이해되거나(1:4; 2:11; 3:21; 5:2), 12:2과 아마도 여기에서처럼 “악한 계교”라는 나쁜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만일 “악한 계교”로 이해된다면, 이 절에는 통상적인 반의대구법이 없다. 「70인역」은 이 절을 “성 잘 내는 사람은 잘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만, 분별 있는 사람은 많은 사정 아래서 참는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 대구법을 보존한다.
14:18 어리석은 자.
참조 15절 주석. 어리석은 자들은 배우기를 거절하고, 그와 같은 고의적인 선택으로 그들 스스로 모든 어리석음의 아비의 후사(後嗣)들이 된다. 슬기로운 자는 지혜를 찾고 지식을 영광과 승리의 면류관으로 받는다.
14:19 문에.
이 절은 반드시 이생에서 성취되지는 않지만 이 땅에서조차도 악인들은 때때로 정세가 역전되어 그들이 의인들 앞에 머리를 숙이도록 강요당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아브라함과 나사로 앞에 머리를 숙이고자 했던 것처럼(눅 16:19~31), 모든 악인이 어느 날 예루살렘 성밖에서 머리를 숙이고 그들이 하늘에서 제외된 것이 공의로운 일임을 인정할 것이다(참조 계 20:9, 12).
14:20 미움을 받게 되나.
너무도 흔히 가난한 자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고 부자는 심술궂고 거만하다. 그러나 전자는 멸시를 받고 후자는 그의 동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다(참조 약 2:1~6; 잠 18:5; 24:23; 28:21).
14:22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질문의 목적은 강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하나님이 없고 영원한 보상이 없었더라도 “선을 도모하는” 데 여전히 경의를 표하고 주변에서 친절과 신임을 얻게 될 것이다. 인자와 진리가 합력한다(시 61:7; 85:10; 잠 3:3; 16:6).
14:24 재물.
분명히 물질적 재물 이상의 것을 여기서 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자는 흔히 비교적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은 재물을 그들의 이름에 영광이 되는 길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지적 재물을 동시에 소유하게 된다.
14:24 소유.
(「제임스왕역」에는 “foolishness”[어리석음]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이웰레트(’iwwelet). 동일한 단어가 이 절의 뒷부분에서는 “미련한 것”으로 번역되었다. 이웰레트는 울(’ul)이라는 말의 어근에서 유래되는데, 그것은 (1) “어리석어지다” (2) “강해지다”, “높아지다”를 의미한다. 솔로몬은 고대에 흔히 있었던 것처럼 말놀이를 하고 있었고 이웰레트의 첫 번째 경우는 (1)의 의미에서 파생되고, 두 번째 경우는 (2)의 의미에서 파생된 것으로 시사되어 왔다. 그와 같은 파생어는 다음과 같이 잠언의 의미를 산출(産出)할 수가 있었다. “지혜로운 자들이 재물을 사용하면 그들에게 장신구가 되지만, 미련한 자들의 승진은 영광이 되기는커녕 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구실을 할 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추측에 속한다. 비록 어근의 두 의미는 실증될 수 있을지라도 어근의 어느 파생어도 본문에서처럼 철자되지 않았고, “승진”의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
14:25 진실한 증인.
거짓 고소로 생명이 위태로울 때 정직한 사람의 용감한 증언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거짓말쟁이의 증거가 철저한 조사 없이 받아들여질 때 공의의 전 체계를 신임할 수 없게 만든다.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참조 8:13; 19:23.
14:28 백성이 많은 것.
왕의 영광은 전쟁과 정복에 있지 않고, 그의 많은 백성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사는 데 있다.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
어순은 자제가 큰 명철을 가져오는 것을 시사하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명철이 크면 클수록 자제심이 더 커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성격은 대부분 유전과 그의 환경에 의해 꼴지어진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마음이 초래한 요인들과 그의 급한 성질을 이해할 때, 우리의 격분은 감소된다. 이것은 사람의 품성이 그의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그의 죄에 대해 핑계할 수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유전과 환경은 때때로 성공적인 성품 계발에 있어서 큰 장애물로 나타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모든 사람 앞에서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그는 그 자신의 명철과 자제의 부족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것들이 어리석은 자의 몇 가지 주요 특징이다. 가장 지혜로운 자도 자제하지 못할 때 지혜를 나타내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어리석은 자가 된다. 지혜롭게 행동하는 습관이 덜 지혜로운 자처럼 어리석지 않도록 막아줄 수는 있지만, 순간적인 분노가 표출될 때는 그도 말과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한다(참조 민 20:7~13).
14:30 생명.
건전한 마음이 건전한 몸을 만든다. 많은 실제적인 질병들과 장애들은 질투와 죄책감과 분노 때문에 생기고, 안정과 신뢰가 심령에 회복될 때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14:31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
궁핍한 사람에 대한 태만과 멸시는 성경의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언제나 공통적인 태도가 되어 왔다. 이 태도는 궁핍한 사람은 하나님이 더 유복한 그의 백성에게 맡기신 위탁물이라는 성경의 주장과는 현저하게 대조를 이룬다(참조 요 12:8). 이스라엘에는 각 가정이 그들의 몫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정해진 토지 소유제도와 불운한 자들의 운명을 중단시키기 위한 많은 규정이 있었다(참조 레 25:10, 23~28; 신 15:7~11).
하나님은 부분적으로 죄와 게으름의 결과에 대한 실증으로, 또한 부분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관대한 마음에 대한 시금석으로 가난이 존재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궁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자들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막 10:21; 14:7; 갈 2:10).
14:32 엎드러져도.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는 “그의 재난에 낙담되어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평안과 번영의 때에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확신 없이 재난을 당하는 죄인과, 평생 지켜온 조용한 신뢰로 확신 있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의인이 대조되고 있다.
14:33 머물거니와.
이 절은 이렇게 바꿔 쓸 수 있다. “지혜는 지혜로운 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거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 속에 지혜가 얼마나 적은지를 큰 소리로 알려 준다.” 「70인역」은 두 번째 구절을,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에서 그것[지혜]이 식별되지 않는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어리석은 자에게도 지혜가 있다는 뜻으로 말하는 이 절의 난제를 피하고 있다.
14:34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여기서 의는 모든 관계에서 행해지는 선행을 의미한다. 개인들의 경우에, 선행과 악행의 결과들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선인(善人)들은 궁핍과 불행 속에서 생애를 보내고, 반면에 악인들은 죄악의 낙을 누리면서 지내는 것 같다. 시인은 외관상 하나님의 법칙이 지닌 이 같은 반전(反轉)을 관찰했고, 다만 미래의 보상을 바라봄으로써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시 73편). 그러나 나라들의 경우에서는 비록 그 성취가 늦을 수는 있지만, 이 말이 한층 더 일반적으로 성취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라들에게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지 그렇지 않을지를 보여 주기 위한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 나라들이 하나님의 원칙들을 거절할 때 파멸을 자초한다(참조 선지자와 왕 502, 535,).
14: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
35절에서 말한 진리는 거듭 거듭 예수의 비유들과 다른 교훈들을 향해 가는 길을 발견했다. 이 대조는 특별히 므나의 비유(눅 19:11~17)와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에서 강조된다. 봉사하는 체하면서 분별없이 행동하는 자는 비난을 받고 모욕을 당한다.
14:35 왕의 은총.
비록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이 영생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교훈을 배우도록 어려움에 빠지는 일을 허락하시고, 또 이와는 반대로 어떤 악행자들이 한동안 그들이 한 행동의 결과들을 피해 간다 할지라도, 이 잠언은 일반적인 적용에서 여전히 옳다. 이런 진술들이나 일반적인 진리에 속한 다른 진술이 역으로 이용되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나 민족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정죄하는 데 사용되거나, 의인의 축복들을 누리는 사람을 반드시 의롭다고 판단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히브리어 잠언 14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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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모트 나쉼 바네타 베타흐 웨이웰레트 베야데하 테헤르센누
개역개정,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새번역,1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
우리말성경,1 지혜로운 여자는 자기 집을 짓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
가톨릭성경,1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짓고 미련한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허문다.
영어NIV,1 The wise woman builds her house, but with her own hands the foolish one tears hers down.
영어NASB,1 The wise woman builds her house, But the foolish tears it down with her own hands.
영어MSG,1 Lady Wisdom builds a lovely home; Sir Fool comes along and tears it down brick by brick.
영어NRSV,1 The wise woman builds her house, but the foolish tears it down with her own hands.
헬라어구약Septuagint,1 σοφαι γυναικες ωκοδομησαν οικους η δε αφρων κατεσκαψεν ταις χερσιν αυτης
라틴어Vulgate,1 sapiens mulier aedificavit domum suam insipiens instructam quoque destruet manibus
히브리어구약BHS,1 חַכְמֹות נָשִׁים בָּנְתָה בֵיתָהּ וְאִוֶּלֶת בְּיָדֶיהָ תֶהֶרְסֶנּוּ׃
성 경: [잠14:1]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주로 개인적인 의를 기술한 전장(前章)과는 달리 본장에서는 좀더 공의적인 대상으로서의 가정과 국가의 문제에 주력한다.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 여기서 집을 세우게 하는 주체는 여인 그 자신이 아니라 ‘지혜’이다. 곧 ‘여인의 지혜’가 그 집을 세우는 것이다(9:1;12:4 주석 참조)
호레크 베야쉬로 예레 아도나이 우넬로즈 데라카우 보제후
개역개정,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새번역,2 바른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지만, 그릇된 길을 걷는 사람은 주님을 경멸한다.
우리말성경,2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지만 잘못 사는 사람은 여호와를 무시한다.
가톨릭성경,2 바른길을 걷는 이는 주님을 경외하고 그릇된 길을 걷는 자는 주님을 업신여긴다.
영어NIV,2 He whose walk is upright fears the LORD, but he whose ways are devious despises him.
영어NASB,2 He who walks in his uprightness fears the LORD, But he who is crooked in his ways despises Him.
영어MSG,2 An honest life shows respect for GOD; a degenerate life is a slap in his face.
영어NRSV,2 Those who walk uprightly fear the LORD, but one who is devious in conduct despises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2 ο πορευομενος ορθως φοβειται τον κυριον ο δε σκολιαζων ταις οδοις αυτου ατιμασ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 ambulans recto itinere et timens Deum despicitur ab eo qui infami graditur via
히브리어구약BHS,2 הֹולֵךְ בְּיָשְׁרֹו יְרֵא יְהוָה וּנְלֹוז דְּרָכָיו בֹּוזֵהוּ׃
성 경: [잠14:2]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정직하게…경외하여도 – 원어상 ‘정직하게'(*, 베야쉐로)란 말 속에서 ‘베'(*)는 ‘…안에'(in)라는 불분리 전치사이다. 따라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곧 내적인 의의 정신과 규범 안에서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그러한 내적 양심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발생하는 바, 본절은 주부와 술부를 바꾸어서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잘 살아난다(Delitzsch).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정직하게 행한다’.
패역하게…경멸히 여기느니라 – 이 또한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주부와술부를 바꾸어서 읽는 것이 나으며, 각 사람의 외적 행위가 곧 하나님께 대한 내적 자세의 상태에 따라 상반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벌게이트역은 원전상 하반절에 ‘여호와’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 미루어 본절을 ‘정직하게 행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패역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경멸을 받는다’란 하나의 문장으로 번역했다.
베피 에윌 호테르 가아와 웨시페테 하카밈 티쉬무렘
개역개정,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새번역,3 미련한 사람의 말은 교만하여 매를 자청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그를 지켜 준다.
우리말성경,3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교만해 매를 자청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자신을 지켜 준다.
가톨릭성경,3 미련한 자의 입에서는 교만이 싹트지만 지혜로운 이의 입술은 그를 지켜 준다.
영어NIV,3 A fool’s talk brings a rod to his back, but the lips of the wise protect them.
영어NASB,3 In the mouth of the foolish is a rod for his back, But the lips of the wise will preserve them.
영어MSG,3 Frivolous talk provokes a derisive smile; wise speech evokes nothing but respect.
영어NRSV,3 The talk of fools is a rod for their backs, but the lips of the wise preserve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κ στοματος αφρονων βακτηρια υβρεως χειλη δε σοφων φυλασσει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3 in ore stulti virga superbiae labia sapientium custodiunt eos
히브리어구약BHS,3 בְּפִי־אֱוִיל חֹטֶר גַּאֲוָה וְשִׂפְתֵי חֲכָמִים תִּשְׁמוּרֵם׃
성 경: [잠14:3]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미련한 자는…매를 자청하고 – ‘매'(*, 호테르)는 고대 탈굼역에서 왕의’홀'(*, 호테라)로 번역되어 ‘미련한 자의 입에서 교만의 홀이 있고’로 읽혀졌으나 여기서는 징계와 징책의 매(막대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3:24). 한편 본구절은 그 징계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이견 때문에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1) 징계의 대상을 미련한 자로 보아 그의 교만이 징책의 매를 초래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10:13 주석 참조, Hitzig, Bertheau, Zockler). (2) ‘막대기’나 ‘칼’이 자주 비판과 정죄를 가리키는 ‘입의 혀’를 상징하는 말로 쓰여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련한 자를 징계의 주체로 보아 미련한 자가 자신의 교만으로 타인을 책망하고 징책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Syr, Delitzsch, Fleisher). 그러나 하반절과의 대조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전자의 견해가 더 낫다.
지혜로운 자는…본전하느니라 – 13:3 주석을 참조하라.
베엔 알라핌 에부스 바르 웨랍 테부오트 베코아흐 쇼르
개역개정,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새번역,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가 힘을 쓰면 소출이 많아진다.
우리말성경,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풍성한 수확은 소의 힘에서 나오는 법이다.
가톨릭성경,4 소가 없으면 구유는 말끔하지만 황소의 힘을 빌려야 소출이 많아진다.
영어NIV,4 Where there are no oxen, the manger is empty, but from the strength of an ox comes an abundant harvest.
영어NASB,4 Where no oxen are, the manger is clean, But much increase comes by the strength of the ox.
영어MSG,4 No cattle, no crops; a good harvest requires a strong ox for the plow.
영어NRSV,4 Where there are no oxen, there is no grain; abundant crops come by the strength of the ox.
헬라어구약Septuagint,4 ου μη εισιν βοες φατναι καθαραι ου δε πολλα γενηματα φανερα βοος ισχυς
라틴어Vulgate,4 ubi non sunt boves praesepe vacuum est ubi autem plurimae segetes ibi manifesta fortitudo bovis
히브리어구약BHS,4 בְּאֵין אֲלָפִים אֵבוּס בָּר וְרָב־תְּבוּאֹות בְּכֹחַ שֹׁור׃
성 경: [잠14:4]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소가 없으면…많으니라 – 여기서 ‘구유'(*, 에부스)는 ‘마구간’이라기보다는(Umbreit) 가축의 먹이나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을 가리키는 말이다(Delitzsch,Zockler). 또한 ‘깨끗하려니와'(*, 바르)는 원어상 ‘비어있다’란 뜻인 바, 본절은 ‘소’가 흔히 ‘근면함’의 상징이란 점에서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자의 곳간은 텅텅 빌수 밖에 없는 데 반해 부지런한 자는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될 것임을 비유한 표현이다(12:11).
에드 에무님 로 예캊제브 웨야피아흐 케자빔 에드 솨켈
개역개정,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새번역,5 진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우리말성경,5 믿을 만한 증인은 거짓말하지 않지만 가짜 증인은 거짓말을 쏟아 낸다.
가톨릭성경,5 진실한 증인은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거짓 증인은 거짓말만 내뱉는다.
영어NIV,5 A truthful witness does not deceive, but a false witness pours out lies.
영어NASB,5 A faithful witness will not lie, But a false witness speaks lies.
영어MSG,5 A true witness never lies; a false witness makes a business of it.
영어NRSV,5 A faithful witness does not lie, but a false witness breathes out lies.
헬라어구약Septuagint,5 μαρτυς πιστος ου ψευδεται εκκαιει δε ψευδη μαρτυς αδικος
라틴어Vulgate,5 testis fidelis non mentietur profert mendacium testis dolosus
히브리어구약BHS,5 עֵד אֱמוּנִים לֹא יְכַזֵּב וְיָפִיחַ כְּזָבִים עֵד שָׁקֶר׃
성 경: [잠14:5]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 고대 사회의 법정 제도상 증인의 증언은 재판의 향방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증언에 대한 엄중한 명령이 당시의 모세 율법은(출 20:16) 물론 구약 곳곳과(6:19;12:17) 신약 시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도 명시되고 있다(마 19:19). 또한 거짓 증언은 사단의 중요한 속성가운데 하나로까지 언급된다(계 12:10).
뱉느니라(*, 야피아흐) – 문자적 의미는 ‘훅 불다’, 또는 ‘숨쉬다.’ 곧 거짓 증인은 그 거짓 증언을 마치 호흡하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삼는 자이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 없이 쉽게 또 무책임하게 발설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25절 ;19:5).
빜케쉬 레츠 호크마 와아인 웨다아트 레나본 나칼
개역개정,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새번역,6 거만한 사람은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지만, 명철한 사람은 쉽게 지식을 얻는다.
우리말성경,6 거만한 사람은 지혜를 구해도 찾지 못하지만 오직 통찰력 있는 사람은 쉽게 지식을 얻는다.
가톨릭성경,6 빈정꾼은 지혜를 찾아도 얻지 못하지만 슬기로운 이에게는 지식이 쉽게 온다.
영어NIV,6 The mocker seeks wisdom and finds none, but knowledge comes easily to the discerning.
영어NASB,6 A scoffer seeks wisdom, and finds none, But knowledge is easy to him who has understanding.
영어MSG,6 Cynics look high and low for wisdom–and never find it; the open-minded find it right on their doorstep!
영어NRSV,6 A scoffer seeks wisdom in vain, but knowledge is easy for one who understands.
헬라어구약Septuagint,6 ζητησεις σοφιαν παρα κακοις και ουχ ευρησεις αισθησις δε παρα φρονιμοις ευχερης
라틴어Vulgate,6 quaerit derisor sapientiam et non inveniet doctrina prudentium facilis
히브리어구약BHS,6 בִּקֶּשׁ־לֵץ חָכְמָה וָאָיִן וְדַעַת לְנָבֹון נָקָל׃
성 경: [잠14:6]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거만한 자는…얻지 못하거니와 – 여기서 ‘거만한 자'(*, 레츠)는 원어상 ‘조롱하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지혜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얻어진다는 점에서(1:7;시 25:9) 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는 아무리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할지라도 얻지 못할 것임을 보여 준다.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1:5 주석을 참조하라.
레크 민네게드 레이쉬 케실 우발 야다타 시프테 다아트
개역개정,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새번역,7 미련한 사람의 앞을 떠나라. 네가 그의 말에서 지식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말성경,7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그 입술에서는 지식을 얻지 못한다.
가톨릭성경,7 우둔한 사람 앞에서 떠나가라. 거기에서는 지식의 말을 배우지 못한다.
영어NIV,7 Stay away from a foolish man, for you will not find knowledge on his lips.
영어NASB,7 Leave the presence of a fool, Or you will not discern words of knowledge.
영어MSG,7 Escape quickly from the company of fools; they’re a waste of your time, a waste of your words.
영어NRSV,7 Leave the presence of a fool, for there you do not find words of knowledge.
헬라어구약Septuagint,7 παντα εναντια ανδρι αφρονι οπλα δε αισθησεως χειλη σοφα
라틴어Vulgate,7 vade contra virum stultum et nescito labia prudentiae
히브리어구약BHS,7 לֵךְ מִנֶּגֶד לְאִישׁ כְּסִיל וּבַל־יָדַעְתָּ שִׂפְתֵי־דָעַת׃
성 경: [잠14:7]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 ‘앞’을 뜻하는 ‘미네게드'(*)가 원어상 ‘…의면전에’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바, 본절은 이 말의 해석 여하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이를 ‘…의 면전으로’라고 해석하여 본절을 ‘미련한 자의 앞으로 가라’로 읽는다(Ewald, Umbreit). 이는 하반절과 연계해 미련한 자에게 가보았자 아무런 유익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역설적 뜻으로 이해된다. (2)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미련한 자의 앞에서(면전에서) 멀리 떠나가라’란 해석이다(사 1:16), 이 견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문맥상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Luther,Wette, Bertheau, Zockler, Delitzsch).
호크마트 아룸 하빈 다르코 웨이웰레트 케실림 미르마
개역개정,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새번역,8 슬기로운 사람의 지혜는 자기가 가는 길을 깨닫게 하지만,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은 자기를 속인다. / ㉠’미련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크씰림’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에빌림’과 함께 도덕적 결함을 지닌 사람을 뜻함. 1:7의 주를 볼 것
우리말성경,8 현명한 사람의 지혜는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음은 자기를 속이게 한다.
가톨릭성경,8 영리한 이의 지혜는 갈 길을 깨닫게 하지만 우둔한 자의 미련함은 속임수일 따름이다.
영어NIV,8 The wisdom of the prudent is to give thought to their ways, but the folly of fools is deception.
영어NASB,8 The wisdom of the prudent is to understand his way, But the folly of fools is deceit.
영어MSG,8 The wisdom of the wise keeps life on track; the foolishness of fools lands them in the ditch.
영어NRSV,8 It is the wisdom of the clever to understand where they go, but the folly of fools misleads.
헬라어구약Septuagint,8 σοφια πανουργων επιγνωσεται τας οδους αυτων ανοια δε αφρονων εν πλανη
라틴어Vulgate,8 sapientia callidi est intellegere viam suam et inprudentia stultorum errans
히브리어구약BHS,8 חָכְמַת עָרוּם הָבִין דַּרְכֹּו וְאִוֶּלֶת כְּסִילִים מִרְמָה׃
성 경: [잠14:8]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슬기로운 자의…아는 것이라도 – 여기서 ‘아는 것'(*, 하빈)은 원어상 ‘분별하다’, ‘주의깊게 살피다’등의 뜻을 가지는 바(7:7;시 5:2), 곧 슬기로운 자는 자신이 소유한 지혜로 말미암아 그 행할 바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향으로 잔신의 삶을 규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13:16).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 혹자는 ‘속이는 것'(*, 미레마)의 대상을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 보고 본 구절을 미련한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을 숙이는 영영적 소경이기에 어리석은 자라고 해석하며(Zockler) 몇몇 고대역본과 학자들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속이는 것’을 자신의 ‘오류'(誤謬)라고 번역했다(Syriac, LXX, Jerome).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 자신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인 용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타인을 향한 일반적인 악의적 속임 기만등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낫다(Delitzsch). 곧 미련한 자는 남을 속이고 그들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하는 모든 행악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면서도(1:18, 19) 그 가증된 행동을 계속하는 자이기에 어리석다는 의미이다.
에윌림 야리츠 아솸 우벤 예솨림 라촌
개역개정,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새번역,9 ㉡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기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 /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빌림’은 잠언 전체와 구약의 여러 곳에서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가리킴. 단순히 ‘둔한 사람’과 구별됨
우리말성경,9 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우습게 보나 의인들 가운데는 은총이 있다.
가톨릭성경,9 미련한 자들은 속죄 제물을 비웃지만? 올곧은 이들은 은혜를 입는다.
영어NIV,9 Fools mock at making amends for sin, but goodwill is found among the upright.
영어NASB,9 Fools mock at sin, But among the upright there is good will.
영어MSG,9 The stupid ridicule right and wrong, but a moral life is a favored life.
영어NRSV,9 Fools mock at the guilt offering, but the upright enjoy God’s favor.
헬라어구약Septuagint,9 οικιαι παρανομων οφειλησουσιν καθαρισμον οικιαι δε δικαιων δεκται
라틴어Vulgate,9 stultis inludet peccatum inter iustos morabitur gratia
히브리어구약BHS,9 אֱוִלִים יָלִיץ אָשָׁם וּבֵין יְשָׁרִים רָצֹון׃
성 경: [잠14:9]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 여기서 ‘심상히 여겨도'(*, 얄리츠)는문자적으로 ‘비웃다’, ‘조롱하다’란 뜻이다. 한편 본 구절을 ‘죄’의 원어적 의미와 문장의 배열 관계에 따라 몇 가지의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1) 대다수의 학자들은 본 구절을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해석한다. 곧 ‘미련한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찮게 여기며 오히려 이를 즐긴다'(10:23). (2) 여기서 ‘죄'(*, 아삼)를 그 원어상 의미 중의 하나인 ‘속죄 제물’로 보아 본구절을 ‘미련한 자의 속죄제물은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는 무용한 것이다’라고 해석한다(Bertheau, Ewald,Elster, Stuart). (3) 주어와 목적어를 도치시켜 ‘죄가 미련한 자를 조롱한다’로 해석한다. 곧 죄가 미련한 자들이 바라던 바를 결코 가져오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을 조롱하며 낙심시킨다는 의미이다(Hodgson). (4) 원전과는 많이 다른 해석으로 하반절의’ 정직한 자 중에는'(*, 베인 예솨림)을 ‘정직한 자의 집'(*, 에일림)를 ‘장막'(*, 에할리)으로 읽어 ‘(미련한 자의) 장막은 형벌로 무너지고, (정직한 자의 집은 은혜가 있을 것이다)’로 해석한다(LXX, Hitzig).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 중 (1)의 해석이 의미의 비약이 없는 가장 무난한 해석을 여겨진다.
은혜가 있느니라(*, 라촌) – 이말은 ‘기쁘게 여기다’, ‘호의를 가지다’란 뜻의 ‘라차'(*)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의 ‘은총’과 ‘은혜’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호의’와 ‘호감’까지를 포괄하는 말이다. 이는 미련한 자가 행악을 즐겨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멸시와 책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레브 요데아 말라트 나프쇼 우베심하토 로 이트아라브 잘
개역개정,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새번역,10 마음의 고통은 자기만 알고, 마음의 기쁨도 남이 나누어 가지지 못한다.
우리말성경,10 마음의 고통은 자기만 알고 마음의 기쁨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가톨릭성경,10 마음만이 제 자신의 아픔을 알고 그 기쁨도 다른 사람은 나누지 못한다.
영어NIV,10 Each heart knows its own bitterness, and no one else can share its joy.
영어NASB,10 The heart knows its own bitterness, And a stranger does not share its joy.
영어MSG,10 The person who shuns the bitter moments of friends will be an outsider at their celebrations.
영어NRSV,10 The heart knows its own bitterness, and no stranger shares its joy.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ρδια ανδρος αισθητικη λυπηρα ψυχη αυτου οταν δε ευφραινηται ουκ επιμειγνυται υβρει
라틴어Vulgate,10 cor quod novit amaritudinem animae suae in gaudio eius non miscebitur extraneus
히브리어구약BHS,10 לֵב* יֹודֵעַ מָרַּת נַפְשֹׁו וּבְשִׂמְחָתֹו לֹא־יִתְעָרַב זָר׃
성 경: [잠14:10]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레브 요데아 마라트나페쇼) – 문자적 의미는 ‘마음은 그 영혼의 고통을 안다’이다. 곧 마음이 인간의 전인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과 요소가 무엇인지를 자신만이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아무리 절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조차 그 고통당하는 자의 아픔에 진정으로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본 구절은 그렇기 때문에 이웃의 아픔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그 아픔을 함께 나누기가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롬 12:15, Zockler).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 상반절과 같은 의미로 고통과 즐거움을 대조시키고 있다. 한편 본 구절은 또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곧 모든 인간은 세상에서 진정으로 의뢰할 대상을 결코 발견할 수 없으며 그렇게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궁극적으로 그러한 인간의 모든 형편을 세심하게 알고 살피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마 10:30).
베이트 레솨임 잇솨메드 웨오헬 예솨림 야프리아흐
개역개정,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새번역,11 악한 사람의 집은 망하고, 정직한 사람의 장막은 흥한다.
우리말성경,11 악인의 집은 망할 것이요, 정직한 사람의 장막은 번성할 것이다.
가톨릭성경,11 악인들의 집은 무너지고 올곧은 이들의 거처는 번성한다.
영어NIV,11 The house of the wicked will be destroyed, but the tent of the upright will flourish.
영어NASB,11 The house of the wicked will be destroyed, But the tent of the upright will flourish.
영어MSG,11 Lives of careless wrongdoing are tumbledown shacks; holy living builds soaring cathedrals.
영어NRSV,11 The house of the wicked is destroyed, but the tent of the upright flourishe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οικιαι ασεβων αφανισθησονται σκηναι δε κατορθουντων στ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11 domus impiorum delebitur tabernacula iustorum germinabunt
히브리어구약BHS,11 בֵּית רְשָׁעִים יִשָּׁמֵד וְאֹהֶל יְשָׁרִים יַפְרִיחַ׃
성 경: [잠14:11]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12:7 주석을 참조하라.
예쉬 데렠 야솨르 리페네 이쉬 웨아하리타흐 다르케 마웨트
개역개정,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새번역,12 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우리말성경,12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길이어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를 뿐이다.
가톨릭성경,12 사람에게는 바른길로 보여도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영어NIV,12 There is a way that seems right to a man, but in the end it leads to death.
영어NASB,12 There is a way which seems right to a man, But its end is the way of death.
영어MSG,12 There’s a way of life that looks harmless enough; look again–it leads straight to hell.
영어NRSV,12 There is a way that seems right to a person, but its end is the way to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στιν οδος η δοκει ορθη ειναι παρα ανθρωποις τα δε τελευταια αυτης ερχεται εις πυθμενα αδου
라틴어Vulgate,12 est via quae videtur homini iusta novissima autem eius deducunt ad mortem
히브리어구약BHS,12 יֵשׁ דֶּרֶךְ יָשָׁר לִפְנֵי־אִישׁ וְאַחֲרִיתָהּ דַּרְכֵי־מָוֶת׃
성 경: [잠14:12]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어떤 길은…사망의 길이니라 – 16:25에 그대로 반복되는 말이다. 곧 ‘사람의 보기에’는 그 길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세속적인 단견(短見)과 편협하고 왜곡된 인간의 생각이라는 말이다(롬 1:28;딤전 4:2). 따라서 절대적인 판단의 준거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판단하여 방종하게 행하는 자의 결국은 그 행위의 가증함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심판적 보응을 받게 되리란 의미이다(5:5).
감 비세호크 이크아브 레브 웨아하리타흐 시므하 투가흐
개역개정,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새번역,13 웃어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고, 즐거워도 끝에 가서 슬플 때가 있다.
우리말성경,13 웃어도 마음은 아플 수 있으며 기뻐도 끝은 슬플 때가 있다.
가톨릭성경,13 웃으면서도 마음은 괴롭고 기쁨이 근심으로 끝나기도 한다.
영어NIV,13 Even in laughter the heart may ache, and joy may end in grief.
영어NASB,13 Even in laughter the heart may be in pain, And the end of joy may be grief.
영어MSG,13 Sure, those people appear to be having a good time, but all that laughter will end in heartbreak.
영어NRSV,13 Even in laughter the heart is sad, and the end of joy is grief.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εν ευφροσυναις ου προσμειγνυται λυπη τελευταια δε χαρα εις πενθος ερχεται
라틴어Vulgate,13 risus dolore miscebitur et extrema gaudii luctus occupat
히브리어구약BHS,13 גַּם־בִּשְׂחֹוק יִכְאַב־לֵב וְאַחֲרִיתָהּ* שִׂמְחָה תוּגָה׃
성 경: [잠14:13]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웃을 때에도…근심이 있느니라 – 본절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그 하나는 웃음과 즐거움 자체에 대한 비관이(전 7:4 비교)아니라 삶의 밝은 면의 이면에는 반드시 고통과 근심이 있음을 알고 그 기쁨과 즐거움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며 고통의 날이 이를 때에도 그때를 기억하며 결코 절망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는 견해이다(마 5:11, 12;벧전 2:19, Delitzsch), 또 다른 의미로는 본절이 12절에 대한 해설로서 악한 길에 빠진 자의 내적 상황을 보여 준다는 견해로 그들은 자신들의 불법과 부정이 가져다 준 말초적 쾌락과 안일 속에서도 그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적 보응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불안과 근심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견해이다(Virgil).
미드라카우 이스바 숙 레브 우메알라우 이쉬 토브
개역개정,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새번역,14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자기가 한 만큼 보응을 받고, 선한 사람도 자기가 한 만큼 보응을 받는다.
우리말성경,14 마음이 타락한 사람은 악한 행위로 가득 찰 것이요, 선한 사람은 자신에게 만족하게 된다.
가톨릭성경,14 마음이 빗나간 자도 제 행실의 결과로 채워지고 착한 사람도 제 행동의 결과로 채워진다.
영어NIV,14 The faithless will be fully repaid for their ways, and the good man rewarded for his.
영어NASB,14 The backslider in heart will have his fill of his own ways, But a good man will be satisfied with his.
영어MSG,14 A mean person gets paid back in meanness, a gracious person in grace.
영어NRSV,14 The perverse get what their ways deserve, and the good, what their deeds deserve.
헬라어구약Septuagint,14 των εαυτου οδων πλησθησεται θρασυκαρδιος απο δε των διανοηματων αυτου ανηρ αγαθος
라틴어Vulgate,14 viis suis replebitur stultus et super eum erit vir bonus
히브리어구약BHS,14 מִדְּרָכָיו יִשְׂבַּע סוּג לֵב וּמֵעָלָיו אִישׁ טֹוב׃
성 경: [잠14:14]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마음이 패려한 자는…만족하겠고 – 여기서 ‘마음이 패려한 자’의 히브리어 ‘수그'(*)는 ‘변절하다’, ‘돌아서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특별히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말로 하나님을 떠나 그 뜻과 명령을 거역하는 ‘배교자’를 가리킨다(backslider, KJV, LB). 한편 원전에는 ‘보응’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보응’은 죄악의 결과로 주어지는 심판적 보응이 아니라 그 범죄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쾌락과 같은 악의적인 파생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31 주석 참조).
선한 사람도…그러하리라 – 12:14 주석을 참조하라.
페티 야아민 레콜 다발 웨아룸 야빈 라아슈로
개역개정,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새번역,15 ㉢어수룩한 사람은 모든 말을 다 믿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행동을 삼간다. / ㉢’어수룩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프타임’은 도덕적 방향감각이 없어서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을 일컬음(22, 32절 참조)
우리말성경,15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말을 믿으나 현명한 사람은 생각하고 그 길을 살핀다.
가톨릭성경,15 어수룩한 자는 아무 말이나 믿지만 영리한 이는 제 발걸음을 살핀다.
영어NIV,15 A simple man believes anything, but a prudent man gives thought to his steps.
영어NASB,15 The naive believes everything, But the prudent man considers his steps.
영어MSG,15 The gullible believe anything they’re told; the prudent sift and weigh every word.
영어NRSV,15 The simple believe everything, but the clever consider their steps.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ακακος πιστευει παντι λογω πανουργος δε ερχεται εις μετανοιαν
라틴어Vulgate,15 innocens credit omni verbo astutus considerat gressus suos
히브리어구약BHS,15 פֶּתִי יַאֲמִין לְכָל־דָּבָר וְעָרוּם יָבִין לַאֲשֻׁרֹו׃
성 경: [잠14:15]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 여기서 ‘어리석은 자'(*, 페티)는 원어상 ‘단순한 자'(a simple man, NIV)를 의미하는 바(1:22), 본절은 그 마음이 극히 단순해서 자신의 주관적 판단없이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쉽게 설득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는 작은 외적 유혹도 견디지 못한다. 혹자는 ‘온갖 말'(*, 레칼 다바르)을 ‘모든 것’으로 해석하나(Elster) ‘어리석은 자’가 주로 말의 유혹에 관련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럽다.
하캄 야레 웨살 메라 우케실 미트압베르 우보테아흐
개역개정,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새번역,16 지혜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줄 알아서 악을 피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자신만만 해서 조심할 줄을 모른다.
우리말성경,16 지혜로운 사람은 두려워 악을 멀리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성급하고 조심할 줄 모른다.
가톨릭성경,16 지혜로운 이는 조심해서 악을 피하지만 우둔한 자는 마음 놓고 굳게 믿는다.
영어NIV,16 A wise man fears the LORD and shuns evil, but a fool is hotheaded and reckless.
영어NASB,16 A wise man is cautious and turns away from evil, But a fool is arrogant and careless.
영어MSG,16 The wise watch their steps and avoid evil; fools are headstrong and reckless.
영어NRSV,16 The wise are cautious and turn away from evil, but the fool throws off restraint and is careless.
헬라어구약Septuagint,16 σοφος φοβηθεις εξεκλινεν απο κακου ο δε αφρων εαυτω πεποιθως μειγνυται ανομω
라틴어Vulgate,16 sapiens timet et declinat malum stultus transilit et confidit
히브리어구약BHS,16 חָכָם יָרֵא וְסָר מֵרָע וּכְסִיל מִתְעַבֵּר וּבֹוטֵחַ׃
성 경: [잠14:16]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 본 구절은 ‘두려움’의 해석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곧 ‘두려움'(*, 야레)의 문자적 의미가 ‘경외하다’란 점에서 본 구절을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악에서 떠난다'(fears the Lord, NIV)로 보는 견해와(시 34:15;37:27, Zockler), 이를 ‘신중하다’, ‘조심하다’란 뜻으로(cautious, LB,RSV)보고 본 구절을 ‘신중하게 처신하기에 악을 피한다’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별다른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으며 본 구절은,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모든 신중함이 그 지혜에서 파생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Delitzsch).
어리석은 자는…믿느니라 – 원전상 ‘스스로’란 의미는 없다. 한편 여기서 ‘방자하여'(*, 보테아흐)는 ‘확신하다'(자만하다)란 뜻과(Zockler) ‘조심성 없는’이란 뜻을(Hitzig) 함께 함축하고 있으며 ‘믿는니라'(*, 미트아베르)는 ‘지나치다’, ‘건너가다’란 의미를 가지는 바, 곧 어리석은자는 교만하여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전적으로 확신하든가 아니면 그의 단순한 성격대로 신중하지 못해서 자신의 상황을 헤아리지 않은 채 그 악을 간과해 버린다는 의미로볼 수 있다. 한편 KJV와 Delitzsch는 이를 17절과의 자연스러운 문맥적 연결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원어상 매우 다양한 뜻을 함의하고 있는 ‘미트아베르’를 ‘격노하다'(rageth)로 보고 본 구절을 ‘어리석은 자는 쉽게 노를 발하며 교만하다’라고 해석한다.
케차르 아파임 야아세 이웰레트 웨이쉬 메짐모트 잇사네
개역개정,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새번역,17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하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우리말성경,17 쉽게 화내는 사람은 어리석게 행동하고 악한 일을 꾸미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가톨릭성경,17 화를 잘 내는 자는 미련한 짓을 하고 음흉한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영어NIV,17 A quick-tempered man does foolish things, and a crafty man is hated.
영어NASB,17 A quick-tempered man acts foolishly, And a man of evil devices is hated.
영어MSG,17 The hotheaded do things they’ll later regret; the coldhearted get the cold shoulder.
영어NRSV,17 One who is quick-tempered acts foolishly, and the schemer is hated.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οξυθυμος πρασσει μετα αβουλιας ανηρ δε φρονιμος πολλα υποφερει
라틴어Vulgate,17 inpatiens operabitur stultitiam et vir versutus odiosus est
히브리어구약BHS,17 קְצַר־אַפַּיִם יַעֲשֶׂה אִוֶּלֶת וְאִישׁ מְזִמֹּות יִשָּׂנֵא׃
성 경: [잠14:17]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노하기를…행하고 – 15:18 주석을 참조하라.
악한 계교를…미움을 받느니라 – 12:2 주석을 참조하라.
나할루 페타임 이웰레트 와아루밈 야케티루 다아트
개역개정,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새번역,18 ㉣어수룩한 사람은 어수룩함을 유산으로 삼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면류관으로 삼는다. / ㉣’어수룩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프타임’은 도덕적 방향감각이 없어서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을 일컬음(22, 32절 참조)
우리말성경,18 우둔한 사람은 어리석음을 유산으로 받으나 현명한 사람은 지식의 면류관을 쓴다.
가톨릭성경,18 어리석은 자들은 미련함을 제 몫으로 삼지만 영리한 이들은 지식으로 꾸며진다.
영어NIV,18 The simple inherit folly, but the prudent are crowned with knowledge.
영어NASB,18 The naive inherit folly, But the prudent are crowned with knowledge.
영어MSG,18 Foolish dreamers live in a world of illusion; wise realists plant their feet on the ground.
영어NRSV,18 The simple are adorned with folly, but the clever are crowned with knowledge.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μεριουνται αφρονες κακιαν οι δε πανουργοι κρατησουσιν αισθησεως
라틴어Vulgate,18 possidebunt parvuli stultitiam et astuti expectabunt scientiam
히브리어구약BHS,18 נָחֲלוּ פְתָאיִם אִוֶּלֶת וַעֲרוּמִים יַכְתִּרוּ דָעַת׃
성 경: [잠14:18]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 여기서 ‘면류관을 삼느니라'(*, 야크티루)는 말은 원어상 ‘(포옹을 위해) 에워싸다’, ‘기다리다’, ‘관을 씌우다’ 등의 의미를 가지는 바, 본절은 ‘지식을 안는다'(Noyes), ‘지식을 끈기있게 기다리다'(Vulgate) 등으로도 번역되나 여기서는 면류관이 영광과 영예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지식을 통해서 영예를 얻는다(붙잡는다)는 의미에서의 ‘관을 씌우다’란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같다(Delitzsch, Zockler).
솨후라임 리페네 토브 우레솨임 알 솨아레 차디크
개역개정,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새번역,19 악인은 선한 사람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사람은 의인의 문 앞에 엎드린다.
우리말성경,19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 앞에서 엎드리고 불의한 사람은 의인의 문 앞에 엎드려 절한다.
가톨릭성경,19 악한들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악인들은 의인의 문 앞에 엎드린다.
영어NIV,19 Evil men will bow down in the presence of the good, and the wicked at the gates of the righteous.
영어NASB,19 The evil will bow down before the good, And the wicked at the gates of the righteous.
영어MSG,19 Eventually, evil will pay tribute to good; the wicked will respect God-loyal people.
영어NRSV,19 The evil bow down before the good, the wicked at the gates of the righteous.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ολισθησουσιν κακοι εναντι αγαθων και ασεβεις θεραπευσουσιν θυρας δικαιων
라틴어Vulgate,19 iacebunt mali ante bonos et impii ante portas iustorum
히브리어구약BHS,19 שַׁחוּ רָעִים לִפְנֵי טֹובִים וּרְשָׁעִים עַל־שַׁעֲרֵי צַדִּיק׃
성 경: [잠14:19]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
엎드리고(*, 솨후) – 이는 문자적으로 ‘몸을 굽혀 절하다’란 의미이다. 곧악인은 궁극적으로 의인에게 동정을 구하거나 구걸하게 되는 위치로 전략하게 되리란 의미이다(시 37:25 비교).
의인의 문 – 8:34 주석을 참조하라.
감 레레에후 잇사네 라쉬 웨오하베 아쉬르 랍빔
개역개정,20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새번역,20 가난한 사람은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지만,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따른다.
우리말성경,20 가난한 사람은 이웃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지만 부자는 친구가 많다.
가톨릭성경,20 빈곤한 이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지만 부유한 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따른다.
영어NIV,20 The poor are shunned even by their neighbors, but the rich have many friends.
영어NASB,20 The poor is hated even by his neighbor, But those who love the rich are many.
영어MSG,20 An unlucky loser is shunned by all, but everyone loves a winner.
영어NRSV,20 The poor are disliked even by their neighbors, but the rich have many friends.
헬라어구약Septuagint,20 φιλοι μισησουσιν φιλους πτωχους φιλοι δε πλουσιων πολλοι
라틴어Vulgate,20 etiam proximo suo pauper odiosus erit amici vero divitum multi
히브리어구약BHS,20 גַּם־לְרֵעֵהוּ יִשָּׂנֵא רָשׁ וְאֹהֲבֵי עָשִׁיר רַבִּים׃
성 경: [잠14:20]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가난한 자는…받게 되나 – 이는 곧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꺼려하며 회피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19:4, 7;눅 11:5-8). 혹자는 ‘미움을 받게 되나’란 말을 ‘불쾌함을 받게 되나’로(말 1:3) 해석하여 가난한 자가 당하는 모멸과 천대를 부각시키기도 한다(Zockler).
바즈 레레에후 호테 우메호넨 아나임 아나윔 아쉐라우
개역개정,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새번역,21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말성경,21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은 죄짓는 자요, 가난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다.
가톨릭성경,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사람이고 가난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영어NIV,21 He who despises his neighbor sins, but blessed is he who is kind to the needy.
영어NASB,21 He who despises his neighbor sins, But happy is he who is gracious to the poor.
영어MSG,21 It’s criminal to ignore a neighbor in need, but compassion for the poor–what a blessing!
영어NRSV,21 Those who despise their neighbors are sinners, but happy are those who are kind to the poor.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ο ατιμαζων πενητας αμαρτανει ελεων δε πτωχους μακαριστος
라틴어Vulgate,21 qui despicit proximum suum peccat qui autem miseretur pauperi beatus erit
히브리어구약BHS,21 בָּז־לְרֵעֵהוּ חֹוטֵא וּמְחֹוןֵן [כ= עֲנָיִים] [ק= עֲנָוִים] אַשְׁרָיו׃
성 경: [잠14:21]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20절에 계속되는 내용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세 여하에 따른 결과를 보여 준다. 한편 여기서 ‘그 이웃’은 20절의 ‘가난한 자’, 그리고 하반절의 ‘빈곤한 자’와 병행으로 사용된 동의어이다.
할로 이테우 호르쉐 라 웨헤세드 웨에메트 호르쉐 토브
개역개정,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새번역,22 악을 꾀하는 사람은 길을 잘못 가는 것이나, 선을 계획하는 사람은 인자와 진리를 얻는다.
우리말성경,22 악을 꾀하는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지만 선을 계획하는 사람은 자비와 진리를 얻는다.
가톨릭성경,22 악을 꾸미는 자들은 반드시 길을 잃게 되지만 선을 꾸미는 이들에게는 자애와 진실이 따른다.
영어NIV,22 Do not those who plot evil go astray? But those who plan what is good find love and faithfulness.
영어NASB,22 Will they not go astray who devise evil? But kindness and truth will be to those who devise good.
영어MSG,22 Isn’t it obvious that conspirators lose out, while the thoughtful win love and trust?
영어NRSV,22 Do they not err that plan evil? Those who plan good find loyalty and faithfulness.
헬라어구약Septuagint,22 πλανωμενοι τεκταινουσι κακα ελεον δε και αληθειαν τεκταινουσιν αγαθοι ουκ επιστανται ελεον και πιστιν τεκτονες κακων ελεημοσυναι δε και πιστεις παρα τεκτοσιν αγαθοις
라틴어Vulgate,22 errant qui operantur malum misericordia et veritas praeparant bona
히브리어구약BHS,22 הֲלֹוא־יִתְעוּ חֹרְשֵׁי רָע וְחֶסֶד וֶאֱמֶת חֹרְשֵׁי טֹוב׃
성 경: [잠14:22]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악을…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 곧 악을 꾀하는 것이(3:29) 크게 잘못된 행위임을 의문의 형식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혹자는 ‘그릇 간다’란 뜻의 원어 ‘이트우'(*)를 ‘악한 행동’을 뜻하는 ‘예르우'(*)로 읽어 본절을 ‘악을 도모하는 자들과 그 악한 행동을 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Hitzig).
인자와 진리 – 3:3 주석을 참조하라.
베콜 에체브 이흐예 모탈 우데바르 쉐파타임 아크 레마흐소르
개역개정,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새번역,23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
우리말성경,23 열심히 일하면 유익이 있지만 말만 하면 가난해질 뿐이다.
가톨릭성경,23 모든 노고에는 이득이 생기는 법이지만 입술만 놀리면 궁핍해질 뿐이다.
영어NIV,23 All hard work brings a profit, but mere talk leads only to poverty.
영어NASB,23 In all labor there is profit, But mere talk leads only to poverty.
영어MSG,23 Hard work always pays off; mere talk puts no bread on the table.
영어NRSV,23 In all toil there is profit, but mere talk leads only to poverty.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εν παντι μεριμνωντι ενεστιν περισσον ο δε ηδυς και αναλγητος εν ενδεια εσται
라틴어Vulgate,23 in omni opere erit abundantia ubi autem verba sunt plurima frequenter egestas
히브리어구약BHS,23 בְּכָל־עֶצֶב יִהְיֶה מֹותָר וּדְבַר־שְׂפָתַיִם אַךְ־לְמַחְסֹור׃
성 경: [잠14:23]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 여기서 ‘수고'(*, 에체브)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노동’을 가리켜며, ‘이익'(*, 모타르)은 그러한 힘든 노동 끝에 얻어지는 ‘풍성한 소득’을 말한다(10:4, 5).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원어상 ‘입술의 말'(*, 다바르 세파타임)이 ‘헛된 말’이나 ‘어리석은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욥 11:2;15:3;사 36:5). 곧 본 구절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그러한 말은 결국 무익할 뿐이며 오히려 고통만을 수반할 뿐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마 12:36, Delitzsch, Bertheau, Zockler).
아테레트 하카밈 오쉐람 이웰레트 케실림 이웰레트
개역개정,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새번역,24 ㉤지혜는 지혜 있는 사람의 면류관이지만 ㉥어리석음은 ㉦미련한 사람의 ㉧화환이다. / ㉤히, ‘부요함’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빌림’은 잠언 전체와 구약의 여러 곳에서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가리킴. 단순히 ‘둔한 사람’과 구별됨 ㉦’미련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크씰림’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에빌림’과 함께 도덕적 결함을 지닌 사람을 뜻함. 1:7의 주를 볼 것 ㉧히, ‘어리석음’
우리말성경,24 지혜로운 사람의 재물은 그에게 면류관이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음은 어리석음만 낳는다.
가톨릭성경,24 지혜로운 이들의 면류관은 부유함이고 우둔한 자들의 화관은 미련함이다.
영어NIV,24 The wealth of the wise is their crown, but the folly of fools yields folly.
영어NASB,24 The crown of the wise is their riches, But the folly of fools is foolishness.
영어MSG,24 The wise accumulate wisdom; fools get stupider by the day.
영어NRSV,24 The crown of the wise is their wisdom, but folly is the garland of fools.
헬라어구약Septuagint,24 στεφανος σοφων πανουργος η δε διατριβη αφρονων κακη
라틴어Vulgate,24 corona sapientium divitiae eorum fatuitas stultorum inprudentia
히브리어구약BHS,24 עֲטֶרֶת חֲכָמִים עָשְׁרָם אִוֶּלֶת כְּסִילִים אִוֶּלֶת׃
성 경: [잠14:24]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곧 재물의 소유주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재물의 효용 가치와 씀씀이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곧 지혜로운 자는 정당한 수고의 대가로 얻은 재물을 의롭고 유용하게 사용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영예를 얻게 한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재물을 자신의 정욕과 쾌락을 위해 탕진해 버린다는 의미이다.
마칠 네파쇼트 에드 에메트 웨야피아흐 케자빔 미르마
개역개정,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새번역,25 증인이 진실을 말하면 남의 생명을 건지지만, 증인이 위증을 하면 배신자가 된다.
우리말성경,25 진실한 증인은 영혼을 구해 내지만 가짜 증인은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가톨릭성경,25 진실한 증인은 여러 목숨을 구하지만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는 속임수만 일삼는다.
영어NIV,25 A truthful witness saves lives, but a false witness is deceitful.
영어NASB,25 A truthful witness saves lives, But he who speaks lies is treacherous.
영어MSG,25 Souls are saved by truthful witness and betrayed by the spread of lies.
영어NRSV,25 A truthful witness saves lives, but one who utters lies is a betrayer.
헬라어구약Septuagint,25 ρυσεται εκ κακων ψυχην μαρτυς πιστος εκκαιει δε ψευδη δολιος
라틴어Vulgate,25 liberat animas testis fidelis et profert mendacia versipellis
히브리어구약BHS,25 מַצִּיל נְפָשֹׁות עֵד אֱמֶת וְיָפִחַ כְּזָבִים מִרְמָה׃
성 경: [잠14:25]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5절 주석을 참조하라.
베이르아트 아도나이 미브타흐 오즈 우레바나우 이흐예 마흐세
개역개정,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새번역,26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
우리말성경,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강한 믿음이 있고 그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다.
가톨릭성경,26 주님을 경외함에 확고한 안전이 있으니 자손들에게도 피신처가 된다.
영어NIV,26 He who fears the LORD has a secure fortress, and for his children it will be a refuge.
영어NASB,26 In the fear of the LORD there is strong confidence, And his children will have refuge.
영어MSG,26 The Fear-of-GOD builds up confidence, and makes a world safe for your children.
영어NRSV,26 In the fear of the LORD one has strong confidence, and one’s children will have a refuge.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εν φοβω κυριου ελπις ισχυος τοις δε τεκνοις αυτου καταλειπει ερεισμα
라틴어Vulgate,26 in timore Domini fiducia fortitudinis et filiis eius erit spes
히브리어구약BHS,26 בְּיִרְאַת יְהוָה מִבְטַח־עֹז וּלְבָנָיו יִהְיֶה מַחְסֶה׃
성 경: [잠14:26]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여호와를…있나니 – 여기서 ‘견고한 의뢰'(*, 미브타흐 오즈)는 ‘강하고 확실한 안전’이란 뜻이다. 또한 본절은 주어(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앞에 특별히 어떠한 자를 강조하여 지칭하는 불분리 전치사 ‘베'(*)가 첨가되어 있어 그 확고한 안전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다(사26:4, Hitzig, Delitzsch).
그 자녀들 – 이들이 누구의 자녀인가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하나님의 자녀란 표현이 구약에서도 종종 쓰여진 바 있다는 점에서(시 73:15;호 11:1) 이는 곧 상반절에 나타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는 견해이다(LXX, Hitzig). (2)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녀’들로 본다(출 20:6;시 103:17). 곧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확고한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3) (1)과 (2)의 절충적인 견해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물론 그들의 혈통적 자손 대대로까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신다는 의미로 본다(창 17:7;출 34:7;왕상 11:12). 여기서는 (3)의 견해가 종교적 보응의 구약적 용례와 잘 어울린다.
이르아트 아도나이 메코르 하이욤 라수르 밈모크쉐 마웨트
개역개정,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새번역,27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말성경,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으로 사람을 죽음의 덫에서 건져 낸다.
가톨릭성경,27 주님을 경외함은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영어NIV,27 The fear of the LORD is a fountain of life, turning a man from the snares of death.
영어NASB,27 The fear of the LORD is a fountain of life, That one may avoid the snares of death.
영어MSG,27 The Fear-of-GOD is a spring of living water so you won’t go off drinking from poisoned wells.
영어NRSV,27 The fear of the LORD is a fountain of life, so that one may avoid the snares of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27 προσταγμα κυριου πηγη ζωης ποιει δε εκκλινειν εκ παγιδος θανατου
라틴어Vulgate,27 timor Domini fons vitae ut declinet a ruina mortis
히브리어구약BHS,27 יִרְאַת יְהוָה מְקֹור חַיִּים לָסוּר מִמֹּקְשֵׁי מָוֶת׃
성 경: [잠14:27]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10:11;13:14 주석을 참조하라.
베랍 암 하드라트 멜렠 우베에페스 레옴 메힡타트 라존
개역개정,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새번역,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지만, 백성이 적은 것은 통치자의 몰락이다.
우리말성경,28 인구가 많은 것은 왕에게 영광이 되지만 백성들이 없는 것은 통치자의 멸망이다.
가톨릭성경,28 백성이 많은 것은 임금의 영광이고 국민이 적은 것은 제후의 멸망이다.
영어NIV,28 A large population is a king’s glory, but without subjects a prince is ruined.
영어NASB,28 In a multitude of people is a king’s glory, But in the dearth of people is a prince’s ruin.
영어MSG,28 The mark of a good leader is loyal followers; leadership is nothing without a following.
영어NRSV,28 The glory of a king is a multitude of people; without people a prince is ruined.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εν πολλω εθνει δοξα βασιλεως εν δε εκλειψει λαου συντριβη δυναστου
라틴어Vulgate,28 in multitudine populi dignitas regis et in paucitate plebis ignominia principis
히브리어구약BHS,28 בְּרָב־עָם הַדְרַת־מֶלֶךְ וּבְאֶפֶס לְאֹם מְחִתַּת רָזֹון׃
성 경: [잠14:28]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백성이…영광이요 – 고대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특성상 백성의 증가와 번성은 국가의 강대함과 더불어 그 치리자인 왕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 외적 표식이었다(왕상 4:20). 특별히 이스라엘에 있어 자손의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진 바 있다(창 12:2;15:5).
백성이…패망이니라 – 상반절의 내용으로 볼 때 백성이 적다는 것은 곧 국력의 쇠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패망이니라'(*, 메히타트)는 원어상 ‘소멸하다’, ‘폐허가 되다’란 뜻을 가지는 바, 역사적으로 그러한 나라는 강대한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에렠 아파임 랍 테부나 우케차르 루아흐 메림 이웰레트
개역개정,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새번역,29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명철한 사람이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만을 드러낸다.
우리말성경,29 조급하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큰 통찰력이 있지만 성질이 급한 사람은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가톨릭성경,29 분노에 더딘 이는 매우 슬기로운 사람이지만 성을 잘 내는 자는 제 미련함만 드러낸다.
영어NIV,29 A patient man has great understanding, but a quick-tempered man displays folly.
영어NASB,29 He who is slow to anger has great understanding, But he who is quick-tempered exalts folly.
영어MSG,29 Slowness to anger makes for deep understanding; a quick-tempered person stockpiles stupidity.
영어NRSV,29 Whoever is slow to anger has great understanding, but one who has a hasty temper exalts folly.
헬라어구약Septuagint,29 μακροθυμος ανηρ πολυς εν φρονησει ο δε ολιγοψυχος ισχυρως αφρων
라틴어Vulgate,29 qui patiens est multa gubernatur prudentia qui autem inpatiens exaltat stultitiam suam
히브리어구약BHS,29 אֶרֶךְ אַפַּיִם רַב־תְּבוּנָה וּקְצַר־רוּחַ מֵרִים אִוֶּלֶת׃
성 경: [잠14:29]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에레크 아파임) – 문자적 의미는 ‘콧구멍이 긴자’이다. 곧 ‘콧구멍’은 히브리어 관념상 분노의 감정이 표출되는 곳으로 인식되어 졌다는 점에서 이 말은 그 분노를 급하게 발하지 않는 자, 다시 말해서 성급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자신의 감정 표출을 절제하는 신중한 자를 가리킨다. 한편 70인역 등은 이와 유사한 의미로서 ‘오래 참는 자'(patient man, NIV)로 번역했다.
조급한 자(*, 케차르 루아흐) – 문자적 의미는 ‘짧은 숨’으로 상반절의 원어적 의미와 비교하라.
하예 베사림 레브 마르페 우레카브 아차모트 키느아
개역개정,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새번역,30 마음이 평안하면 몸에 생기가 도나, 질투를 하면 뼈까지 썩는다.
우리말성경,30 평온한 마음은 육체에 생명이 되지만 질투심은 뼈를 썩게 한다.
가톨릭성경,30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고 질투는 뼈의 염증이다.
영어NIV,30 A heart at peace gives life to the body, but envy rots the bones.
영어NASB,30 A tranquil heart is life to the body, But passion is rottenness to the bones.
영어MSG,30 A sound mind makes for a robust body, but runaway emotions corrode the bones.
영어NRSV,30 A tranquil mind gives life to the flesh, but passion makes the bones rot.
헬라어구약Septuagint,30 πραυθυμος ανηρ καρδιας ιατρος σης δε οστεων καρδια αισθητικη
라틴어Vulgate,30 vita carnium sanitas cordis putredo ossuum invidia
히브리어구약BHS,30 חַיֵּי בְשָׂרִים לֵב מַרְפֵּא וּרְקַב עֲצָמֹות קִנְאָה׃
성 경: [잠14:30]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 여기서 ‘마음’은 히브리 관념상 전인격의 중심을 가리키며, ‘화평'(*, 마르페)은 ‘건강하’, ‘건전한’이란 뜻을 가지는 바(asound heart, KJV), 본 구절은 전인격이 건전할 때 그의 육체 또한 원기와 생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육체적인 병의 근원이 바로 마음의 근심과 부패에 있음을 암시해주는 말이다. 한편 학자들은 ‘화평’을 ‘고요한’, ‘온유한’이란 뜻으로 번역해(전10:4) 하반절과의 의미상 대조를 더욱 좋게 했다(LXX, Delitzsch, Zockler).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 ‘시기'(*, 키느아)는 원어상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열정적인 열심’을 뜻하는 말인바, 이는 상반절에 나타난 ‘시기’나 ‘질투’의 의미보다는 보편적인 감정에 있어서의 ‘격렬한 흥분 상태’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인 듯하다(욥 5:2, Zockler). 한편 본절의 세부적 의미는 12:4 주석을 참조하라.
오쉐크 달 헤레프 오세후 우메캅베도 호넨 에브욘
개역개정,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새번역,31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지만, 궁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우리말성경,31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은 그를 지으신 분을 비난하는 것이요, 궁핍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다.
가톨릭성경,31 약한 이를 억누름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고 불쌍한 이를 동정함은 그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영어NIV,31 He who oppresses the poor shows contempt for their Maker, but whoever is kind to the needy honors God.
영어NASB,31 He who oppresses the poor reproaches his Maker, But he who is gracious to the needy honors Him.
영어MSG,31 You insult your Maker when you exploit the powerless; when you’re kind to the poor, you honor God.
영어NRSV,31 Those who oppress the poor insult their Maker, but those who are kind to the needy honor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ο συκοφαντων πενητα παροξυνει τον ποιησαντα αυτον ο δε τιμων αυτον ελεα πτωχον
라틴어Vulgate,31 qui calumniatur egentem exprobrat factori eius honorat autem eum qui miseretur pauperis
히브리어구약BHS,31 עֹשֵׁק־דָּל חֵרֵף עֹשֵׂהוּ וּמְכַבְּדֹו חֹןֵן אֶבְיֹון׃
성 경: [잠14:31]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본절은 빈부 귀천(貧富貴賤)을 무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격적인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곧 가난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고 학대하는 것은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자란 사실에 비추어 하나님 자신과 그 섭리를 멸시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Delitzsch). 한편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와 호의는 본서에 나타난 지혜의 중요한 실천 원리 중의 하나이며(21절;10:2;11:24,25) 성경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주요한 신앙적 지침의 하나이다(출 22:21-27;신 15:11;마 25:35-40;약 1:27;2:5-9).
베라오토 읻다헤 라솨 웨호쉐흐 베모토 차디크
개역개정,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새번역,32 악한 사람은 자기의 악행 때문에 넘어지지만, 의로운 사람은 죽음이 닥쳐도 피할 길이 있다.
우리말성경,32 악인은 자기 악함 때문에 쓰러지지만 의인은 죽음이 닥쳐도 소망이 있다.
가톨릭성경,32 악인은 제 악함 때문에 망하지만 의인은 죽음에서도 피신처를 얻는다.
영어NIV,32 When calamity comes, the wicked are brought down, but even in death the righteous have a refuge.
영어NASB,32 The wicked is thrust down by his wrongdoing, But the righteous has a refuge when he dies.
영어MSG,32 The evil of bad people leaves them out in the cold; the integrity of good people creates a safe place for living.
영어NRSV,32 The wicked are overthrown by their evil-doing, but the righteous find a refuge in their integrity.
헬라어구약Septuagint,32 εν κακια αυτου απωσθησεται ασεβης ο δε πεποιθως τη εαυτου οσιοτητι δικαιος
라틴어Vulgate,32 in malitia sua expelletur impius sperat autem iustus in morte sua
히브리어구약BHS,32 בְּרָעָתֹו יִדָּחֶה רָשָׁע וְחֹסֶה בְמֹותֹו צַדִּיק׃
성 경: [잠14:32]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의인은…소망이 있느니라 – 혹자는 바벨론 포수기 이전에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영생과 부활에 대한 사상이 없었다고 보고 ‘그의 죽음에도'(*, 베모토)란 말을 ‘그의 신뢰할 수 있는 행실로'(*, 베툼로)라고 해석한다(LXX, Hitzig).그러나 영생의 사상이 희미하나마 포로기 이전의 문서 속에서도 보여지고 있다는 점에서(11:7;12:28;욥 27:8;시 31:5) 본절은 의인의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그 믿음에서 비롯되는 영생의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고 이해되어도 무방하겠다(12:28 주석 참조, Delitzsch, Zockler).
베렙 나본 타누아흐 호크마 우베케레브 케실림 티와데아
개역개정,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새번역,33 지혜는 명철한 사람의 마음에 머물고, ㉨미련한 사람 마음에는 ㉩알려지지 않는다. / ㉨’미련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크씰림’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된 ‘에빌림’과 함께 도덕적 결함을 지닌 사람을 뜻함. 1:7의 주를 볼 것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히, ‘알려진다’
우리말성경,33 지혜는 통찰력 있는 사람의 마음에 머물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은 다 드러나게 된다.
가톨릭성경,33 지혜는 슬기로운 마음에 깃들지만 우둔한 자의 마음속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영어NIV,33 Wisdom reposes in the heart of the discerning and even among fools she lets herself be known.
영어NASB,33 Wisdom rests in the heart of one who has understanding, But in the bosom of fools it is made known.
영어MSG,33 Lady Wisdom is at home in an understanding heart– fools never even get to say hello.
영어NRSV,33 Wisdom is at home in the mind of one who has understanding, but it is not known in the heart of fools.
헬라어구약Septuagint,33 εν καρδια αγαθη ανδρος σοφια εν δε καρδια αφρονων ου διαγινωσκεται
라틴어Vulgate,33 in corde prudentis requiescit sapientia et indoctos quoque erudiet
히브리어구약BHS,33 בְּלֵב נָבֹון תָּנוּחַ חָכְמָה וּבְקֶרֶב כְּסִילִים תִּוָּדֵעַ׃
성 경: [잠14:33]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지혜는…머물거니와 10:14;12:23 주석을 참조하라.
체다카 테로멤 고이 웨헤세드 레움밈 핱타트
개역개정,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새번역,34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
우리말성경,34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
가톨릭성경,34 정의는 나라를 드높이지만 죄악은 민족의 치욕이 된다.
영어NIV,34 Righteousness exalts a nation, but sin is a disgrace to any people.
영어NASB,34 Righteousness exalts a nation, But sin is a disgrace to any people.
영어MSG,34 God-devotion makes a country strong; God-avoidance leaves people weak.
영어NRSV,34 Righteousness exalts a nation, but sin is a reproach to any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34 δικαιοσυνη υψοι εθνος ελασσονουσι δε φυλας αμαρτιαι
라틴어Vulgate,34 iustitia elevat gentem miseros facit populos peccatum
히브리어구약BHS,34 צְדָקָה תְרֹוםֵם־גֹּוי וְחֶסֶד לְאֻמִּים חַטָּאת׃
성 경: [잠14:34]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 여기서 ‘의’는 윤리적 측면에만 적용되는 것이(Umbreit, Hitzig)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측면에 대한 포괄적인 ‘올바름’을 가리킨다(Zockler). 또한 ‘나라'(*, 고이)는 원어상 ‘이방 국가’를 가리키는 말인바, 본 구절은 그 교훈의 대상이 단지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함한 보편적인 국가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곧 한 나라의 진정한 번영은 경제력,군사력과 같은 외형적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에 따른 공의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 여기서 ‘백성'(*, 레움밈)은 ‘공동체’, ‘백성’을 뜻하는 ‘레움'(*)의 복수형으로서’만민'(萬民)을 지칭하는 말인 바, 상반절의 ‘나라’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죄'(*, 하타트)는 원어상 ‘범죄’란 의미와 함께 ‘속죄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욕되게'(*, 헤세드)는 원어상 일반적으로 ‘자비’와 ‘경건’이란 뜻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혹자는 본 구절을 ‘자비(경건)는 백성들의 속죄가 된다’, ‘백성들의 경건(이방신에 대한)은 죄가 된다’라고 번역하나 ‘헤세드’가 이미 ‘치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과 (25:10;레 20:17) ‘죄’가 상반절의 ‘의’와 대조적 의미로 쓰여진 ‘불의’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개역 성경의 번역 그대로가 적당하다(Delitzsch, Zockler). 곧 어느 백성을 막론하고 그 백성들의 종교적, 도덕적 삶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못한 죄적 성향을 가질 때 그들은 하나님과 타 백성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한편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헤세드’를 ‘결핍되다’, ‘실패케 하다’, ‘감소되다’란 뜻의 ‘헤세르'(*)로 읽어 본 구절을 ‘불의(不義)는 백성을 멸절케 한다’란 의미로 번역했다.
레촌 멜렠 레에베드 마스킬 웨에브라토 티흐예 메비쉬
개역개정,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새번역,35 슬기로운 신하는 왕의 총애를 받지만,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 신하는 왕의 분노를 산다.
우리말성경,35 지혜로운 신하는 왕의 총애를 얻지만 수치를 일으키는 신하에게는 진노가 내린다.
가톨릭성경,35 임금의 총애는 사려 깊은 종에게 내리고 그의 진노는 수치스러운 자에게 내린다.
영어NIV,35 A king delights in a wise servant, but a shameful servant incurs his wrath.
영어NASB,35 The king’s favor is toward a servant who acts wisely, But his anger is toward him who acts shamefully.
영어MSG,35 Diligent work gets a warm commendation; shiftless work earns an angry rebuke.
영어NRSV,35 A servant who deals wisely has the king’s favor, but his wrath falls on one who acts shamefully.
헬라어구약Septuagint,35 δεκτος βασιλει υπηρετης νοημων τη δε εαυτου ευστροφια αφαιρειται ατιμιαν
라틴어Vulgate,35 acceptus est regi minister intellegens iracundiam eius inutilis sustinebit
히브리어구약BHS,35 רְצֹון־מֶלֶךְ לְעֶבֶד מַשְׂכִּיל וְעֶבְרָתֹו תִּהְיֶה מֵבִישׁ׃
성 경: [잠14:35]
주제1: [의인과 악인의 마음]
주제2: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
슬기롭게…은총을 입고 – 여기서 ‘슬기롭게'(*, 마세킬)는 ‘신중하게 숙고하다’, ‘이지적이다’란 뜻을 함의하는 바, 본절은 왕을 보필하여 한 나라의 통치 원리를 수립하는 신하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시사해 주고 있다. 곧 그렇게 행한 자의 궁극적인 영예를 우리는 요셉과 다니엘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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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장 강해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잠 14장] [내용개요]
계속해서 악인과 의인의 특성을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주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양자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실한 말을 하며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지만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1-9절). 의인은 죄의 길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 달콤하지만 결코 가까이하지 않으나 악인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악한 길로 가고 만다. 그러나 결국 악인은 의인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앞에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10-19절). 재물은 지혜로운 자에게는 축복이나 미련한 자에게는 오히려 화근이 된다. 또한 진실한 말을 하는 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나 거짓말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20-25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따라 가난한 자를 도우고 의롭게 사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나 악인은 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다(26-35절).
[강 해]한 사람을 의인과 악인, 지혜자와 미련자로 구분하는 기준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모습과 특징 그리고 결과를 결정해 줍니다. 본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혜자와 미련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제시하고 있으며,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함
본장의 2,26-27,31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 두 부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조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연약하고 궁핍한 자들을 돕는 삶을 삽니다. 가난한 이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서로를 돕는 것은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경건한 삶은 그 자신에게 생명의 샘과 같아서 그 자신으로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기 형제 된 가난한 자들을 학대합니다. 그의 행동은 그 형제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그의 패역한 행동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멸망을 가져올 뿐입니다.
a. 하나님의 백성인 가난한 자를 학대함(사3:15)
b.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어리석음(시14:1)
2. 미련한 자와 지혜자
본장의 1,3,5-9,15-18,24,29,33,35절은 지혜자와 미련자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고 악한 자요,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며 의로운 자 입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서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장 지혜로운 자로 여기며 자기의 주장을 굽힐 줄 모릅니다. 한편 그는 어리석고 악한 말에는 쉽게 반응을 보여서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그의 미련함은 그나마 가진 것마저도 무너뜨리고 망케 하여 수중에 미련함만이 남게 됩니다. 이처럼 미련한 자는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도 화를 미치게 하므로 그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술을 지킬 줄 압니다.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고와 권면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그것에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행동을 삼갑니다. 그의 조심스럽고 사려깊은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신뢰와 은총을 얻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지혜는 그의 형통과 면류관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a. 자기 주장만 드러냄(잠18:2)
b. 지혜와 입술 제어(잠10:19)
3. 삶의 지혜
1) 삶의 모습들
본장의 4,13,20-21,23,28절은 세상 삶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농부에게 밭을 갈 소가 없으면 여물통은 비어 있어서 깨끗하지만, 소를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항상 기쁨이나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항상 교차되므로 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난과 부요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 그것에 근거하여 사람을 편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이나, 백성이 없는 왕권은 모두 허울뿐 이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거기서 얻어 낼 수 없습니다.
a. 형통과 곤고(전7:14)
b. 허물뿐인 말(사36:5)
2) 증인
본장 5,25절은 증인에 대해 교훈합니다. 증인의 말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망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형의 경우 두 명의 증인을 요구하는데, 그만큼 증인의 증언은 중요시되었습니다. 악한 증인은 거짓 증언을 하여 사람을 속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맹세의 올바른 사용과 신실한 증인으로서의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를 요청하신 것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언어 생활에서도 옳고 그름이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a. 사형과 두 증인(신19:15)
b. 맹세(마5:34)
3) 마음
본장의 10,30절은 마음과 육신의 관계를 논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마음과 육체의 상관 관계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심령 상태는 타인이 모르는 개별적인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와 매우 밀접한 연계성을 가집니다. 30절의 ‘시기’는 격렬한 흥분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요하고 안정된 심령을 가지고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a. 격렬한 흥분 상태(욥5:2)
b.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벧전3:4)
4. 의인과 악인
본장의 11-12,14,19,22,32,34절은 의인과 악인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결국이 어떻게 대조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악인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데 악인의 악은 자신과 관계를 맺는 이들을 모두 멸망케 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의인이 번성하고 승리하는 데 반하여 항상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 각자의 삶과 그것에서 이 끌어지는 결과까지도 주장하십니다. 때로 의인이 환난을 당하고 죽을 수도 있으나, 의인은 그의 죽음도 소망스러운 것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의는 한 개인과 사회, 국가를 번성시키는 요소이며, 악은 개인과 사회, 국가를 멸망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국(잠13:21)
결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악과 미련함이 아니라 의와 지혜를 선택함으로써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서 삶의 순간마다 믿는 자다운 결정과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복되게 하며 타인을 복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4절. 깨끗하려니와. ‘깨끗한, 정결한, 순결한’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여기서는 수고와 근면이 없음으로 인해 창고가 비게 됨을 의미한다.
23절. 수고. 원어
는 ‘근심, 슬픔’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선한 목적을 위해 겪는 고통과 근심의 수고를 뜻하며 부지런하여 일하는 수고도 나타낸다. 28절. 영광이요. ‘영광, 광휘, 명예’를 뜻하는데 흔히 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신학주제]공동체 윤리의 신약적 연속성. 저자는 본장을 통해 의인의 모습 중에서 공동체 윤리에 관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공동체 윤리의 준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의무 사항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공동체 규범은 신약 시대의 신앙 공동체에서도 여전히 타당하게 적용된다. 그것은 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현대의 신앙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이스라엘은 국가라는 형식을 띠고 있고 신약의 공동체는 외적 통일성이 없고 영적 결합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그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이다. 이스라엘이 국가라는 세속적 형식을 띠고 있으나 일반 국가와는 다른 점이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 국가라는 것이다. 왕은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전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한편 신약의 신앙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 안에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이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다(참조, 엡4:15). 이런 점에서 본장에 나타나는 공동체 윤리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의무 사항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개인의 영적 상태와 구원 문제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영적 상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 삶에 있어서 요구되는 물질적인 면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동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전체의 몫이며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인 것이다.
[영적교훈]저자는 본장에서 진실한 증언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진실한 증언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공정한 증언보다 자기에게 유익한 증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와 인간적인 관계가 있다거나 자신의 마음에 든다든지 하는 이유로 부당한 증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 된 행동이다. 그런 행동이 정직한 사람에게 억울한 결과를 가져다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당한 증언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편 성도들의 증언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어야 한다. 즉 당장 나와 관계없어도 사회 속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대변하고 그들을 위한 사랑을 호소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잠언 14장 주석
잠언 14장 주석
=====14:1
주로 개인적인 의를 기술한 전장(前章)과는 달리 본장에서는 좀더 공의적인 대상으
로서의 가정과 국가의 문제에 주력한다.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 여기서 집
을 세우게 하는 주체는 여인 그 자신이 아니라 ‘지혜’이다. 곧 ‘여인의 지혜’가 그 집
을 세우는 것이다(9:1;12:4 주석 참조)
=====14:2
정직하게…경외하여도 – 원어상 ‘정직하게'(* , 베야쉐로)란 말 속에서
‘베'(* )는 ‘…안에'(in)라는 불분리 전치사이다. 따라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곧 내적인 의의 정신과 규범 안에서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그러한
내적 양심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발생하는 바, 본절은 주부와 술부를 바꾸어
서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잘 살아난다(Delitzsch).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정직
하게 행한다’. 패역하게…경멸히 여기느니라 – 이 또한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주부와
술부를 바꾸어서 읽는 것이 나으며, 각 사람의 외적 행위가 곧 하나님께 대한 내적 자
세의 상태에 따라 상반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벌게이트역은 원전상
하반절에 ‘여호와’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 미루어 본절을 ‘정직하게 행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패역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경멸을 받는다’란 하나의 문장으로
번역했다.
=====14:3
미련한 자는…매를 자청하고 – ‘매'(* , 호테르)는 고대 탈굼역에서 왕의
‘홀'(* , 호테라)로 번역되어 ‘미련한 자의 입에서 교만의 홀이 있고’로 읽혀
졌으나 여기서는 징계와 징책의 매(막대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3:24). 한편 본
구절은 그 징계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이견 때문에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징계의 대상을 미련한 자로 보아 그의 교만이 징책의 매를 초래한다는 의미로 이
해한다(10:13 주석 참조, Hitzig, Bertheau, Zockler). (2) ‘막대기’나 ‘칼’이 자주
비판과 정죄를 가리키는 ‘입의 혀’를 상징하는 말로 쓰여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
련한 자를 징계의 주체로 보아 미련한 자가 자신의 교만으로 타인을 책망하고 징책한
다는 의미로 해석한다(Syr, Delitzsch, Fleisher). 그러나 하반절과의 대조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전자의 견해가 더 낫다. 지혜로운 자는…본전하느니라 – 13:3 주석을
참조하라.
=====14:4
소가 없으면…많으니라 – 여기서 ‘구유'(* , 에부스)는 ‘마구간’이라기보
다는(Umbreit) 가축의 먹이나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을 가리키는 말이다(Delitzsch,
Zockler). 또한 ‘깨끗하려니와'(* , 바르)는 원어상 ‘비어있다’란 뜻인 바, 본절은
‘소’가 흔히 ‘근면함’의 상징이란 점에서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자의 곳간은 텅텅 빌
수밖에 없는 데 반해 부지런한 자는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될 것임을 비유한 표현이다
(12:11).
=====14: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 고대 사회의 법정 제도상 증인의 증언은 재
판의 향방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 증언에 대한 엄중한 명
령이 당시의 모세 율법은(출 20:16) 물론 구약 곳곳과(6:19;12:17) 신약 시대 예수님
의 가르침 속에서도 명시되고 있다(마 19:19). 또한 거짓 증언은 사단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로까지 언급된다(계 12:10). 뱉느니라(* , 야피아흐) – 문자적 의미
는 ‘훅 불다’, 또는 ‘숨쉬다.’ 곧 거짓 증인은 그 거짓 증언을 마치 호흡하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삼는 자이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 없이 쉽게 또
무책임하게 발설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25절 ;19:5).
=====14:6
거만한 자는…얻지 못하거니와 – 여기서 ‘거만한 자'(* , 레츠)는 원어상 ‘조
롱하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지혜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얻어진다는 점에
서(1:7;시 25:9)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는 아무리 지혜를 얻
으려고 노력할지라도 얻지 못할 것임을 보여 준다.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 1:5 주석을 참조하라.
=====14:7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 ‘앞’을 뜻하는 ‘미네게드'(* )가 원어상 ‘…의
면전에’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바, 본절은 이 말의 해석 여하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이를 ‘…의 면전으로’라고 해석하여 본절을 ‘미련한 자의 앞으로 가
라’로 읽는다(Ewald, Umbreit). 이는 하반절과 연계해 미련한 자에게 가보았자 아무
런 유익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역설적 뜻으로 이해된다. (2)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미련한 자의 앞에서(면전에서) 멀리 떠나가라’란 해석이다(사 1:16), 이 견해는 대
부분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문맥상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Luther,
Wette, Bertheau, Zockler, Delitzsch).
=====14:8
슬기로운 자의…아는 것이라도 – 여기서 ‘아는 것'(* , 하빈)은 원어상
‘분별하다’, ‘주의깊게 살피다’등의 뜻을 가지는 바(7:7;시 5:2), 곧 슬기로운 자는
자신이 소유한 지혜로 말미암아 그 행할 바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향으로 잔신의 삶을 규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13:16). 미련한 자
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 혹자는 ‘속이는 것'(* , 미레마)의 대상을 남
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 보고 본 구절을 미련한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을 숙이는 영
영적 소경이기에 어리석은 자라고 해석하며(Zockler) 몇몇 고대역본과 학자들 또한 그
러한 의미에서 ‘속이는 것’을 자신의 ‘오류'(誤謬)라고 번역했다(Syriac, LXX, Jerome
). 그러나 이 말이 성경에서 자신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인 용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타인을 향한 일반적인 악의적 속임 기만등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낫다(Delitzsch
). 곧 미련한 자는 남을 속이고 그들로 하여금 상처를 받게하는 모든 행악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면서도(1:18, 19) 그 가증된 행동을 계속하는 자이기에 어리석
다는 의미이다.
=====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 여기서 ‘심상히 여겨도'(* , 얄리츠)는
문자적으로 ‘비웃다’, ‘조롱하다’란 뜻이다. 한편 본 구절을 ‘죄’의 원어적 의미와
문장의 배열 관계에 따라 몇 가지의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1) 대다수의 학자들은
본 구절을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해석한다. 곧 ‘미련한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찮게 여기며 오히려 이를 즐긴다'(10:23). (2) 여기서 ‘죄'(* ,
아삼)를 그 원어상 의미 중의 하나인 ‘속죄 제물’로 보아 본구절을 ‘미련한 자의 속죄
제물은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는 무용한 것이다’라고 해석한다(Bertheau, Ewald,
Elster, Stuart). (3) 주어와 목적어를 도치시켜 ‘죄가 미련한 자를 조롱한다’로 해
석한다. 곧 죄가 미련한 자들이 바라던 바를 결코 가져오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을 조
롱하며 낙심시킨다는 의미이다(Hodgson). (4) 원전과는 많이 다른 해석으로 하반절의
‘정직한 자 중에는'(* , 베인 예솨림)을 ‘정직한 자의 집'(*
, 에일림)를 ‘장막'(* , 에할리)으로 읽어 ‘(미련한 자의) 장막은 형벌로
무너지고, (정직한 자의 집은 은혜가 있을 것이다)’로 해석한다(LXX, Hitzig).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 중 (1)의 해석이 의미의 비약이 없는 가장 무난한 해석을 여겨진다. 은
혜가 있느니라(* , 라촌) – 이말은 ‘기쁘게 여기다’, ‘호의를 가지다’란 뜻의
‘라차'(* )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의 ‘은총’과 ‘은혜’뿐만 아니라 사
람들로부터 받게 되는 ‘호의’와 ‘호감’까지를 포괄하는 말이다. 이는 미련한 자가 행
악을 즐겨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멸시와 책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과 좋은 대
조를 이룬다.
=====14: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 레브 요데아 마라트
나페쇼) – 문자적 의미는 ‘마음은 그 영혼의 고통을 안다’이다. 곧 마음이 인간의
전인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과 요소가 무엇인지를 자
신만이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아무리 절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조차 그
고통당하는 자의 아픔에 진정으로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본 구절은
그렇기 때문에 이웃의 아픔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그 아픔을 함께
나누기가 어려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롬 12:15, Zockler).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느니라 – 상반절과 같은 의미로 고통과 즐거움을 대조시키고 있다. 한편
본 구절은 또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곧 모든 인간은 세상에서 진정으로 의뢰
할 대상을 결코 발견할 수 없으며 그렇게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궁극적으로 그러한 인간의 모든 형편을 세심하게 알고 살피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마 10:30).
=====14:11
12:7 주석을 참조하라.
=====14:12
어떤 길은…사망의 길이니라 – 16:25에 그대로 반복되는 말이다. 곧 ‘사람의
보기에’는 그 길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세속적인 단견(短見)과 편협하고 왜곡된 인간의
생각이라는 말이다(롬 1:28;딤전 4:2). 따라서 절대적인 판단의 준거가 되는 하나님
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판단하여 방종하게 행하는 자의 결국은 그
행위의 가증함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심판적 보응을 받게 되리란 의미이다(5:5).
=====14:13
웃을 때에도…근심이 있느니라 – 본절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그 하
나는 웃음과 즐거움 자체에 대한 비관이(전 7:4 비교)아니라 삶의 밝은 면의 이면에는
반드시 고통과 근심이 있음을 알고 그 기쁨과 즐거움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며
고통의 날이 이를 때에도 그때를 기억하며 결코 절망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는
견해이다(마 5:11, 12;벧전 2:19, Delitzsch), 또 다른 의미로는 본절이 12절에 대한
해설로서 악한 길에 빠진 자의 내적 상황을 보여 준다는 견해로 그들은 자신들의 불법
과 부정이 가져다 준 말초적 쾌락과 안일 속에서도 그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적 보응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불안과 근심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
여 준다는 견해이다(Virgil).
=====14:14
마음이 패려한 자는…만족하겠고 – 여기서 ‘마음이 패려한 자’의 히브리어 ‘수
그'(* )는 ‘변절하다’, ‘돌아서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특별히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말로 하나님을 떠나 그 뜻과 명령을 거역하는 ‘배교자’를 가리킨다
(backslider, KJV, LB). 한편 원전에는 ‘보응’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보응’은 죄악의 결과로 주어지는 심판적 보응이 아니라 그 범죄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쾌락과 같은 악의적인 파생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31 주석 참조). 선한 사람도…
그러하리라 – 12:14 주석을 참조하라.
=====14: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 여기서 ‘어리석은 자'(* , 페티)는 원어상
‘단순한 자'(a simple man, NIV)를 의미하는 바(1:22), 본절은 그 마음이 극히 단순해
서 자신의 주관적 판단없이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쉽게 설득당하는 것을 가리
킨다. 이러한 자는 작은 외적 유혹도 견디지 못한다. 혹자는 ‘온갖 말'(*
, 레칼 다바르)을 ‘모든 것’으로 해석하나(Elster) ‘어리석은 자’가 주로 말의 유혹에
관련되어 쓰여졌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럽다.
=====14:16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 본 구절은 ‘두려움’의 해석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곧 ‘두려움'(* , 야레)의 문자적 의미가 ‘경외하다’란 점에서 본 구절
을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악에서 떠난다'(fears the Lord, NIV)로 보는 견해와
(시 34:15;37:27, Zockler), 이를 ‘신중하다’, ‘조심하다’란 뜻으로(cautious, LB,
RSV)보고 본 구절을 ‘신중하게 처신하기에 악을 피한다’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별다른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으며 본 구절은,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고 모든 신중함이 그 지혜에서 파생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맥락
으로 이해할 수 있다(Delitzsch). 어리석은 자는…믿느니라 – 원전상 ‘스스로’란 의
미는 없다. 한편 여기서 ‘방자하여'(* , 보테아흐)는 ‘확신하다'(자만하다)란
뜻과(Zockler) ‘조심성 없는’이란 뜻을(Hitzig) 함께 함축하고 있으며 ‘믿는니라'(
* , 미트아베르)는 ‘지나치다’, ‘건너가다’란 의미를 가지는 바, 곧 어리석은
자는 교만하여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전적으로 확신하든가 아니면 그의 단순한 성격대
로 신중하지 못해서 자신의 상황을 헤아리지 않은 채 그 악을 간과해 버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편 KJV와 Delitzsch는 이를 17절과의 자연스러운 문맥적 연결을 꾀한다
는 측면에서 원어상 매우 다양한 뜻을 함의하고 있는 ‘미트아베르’를 ‘격노하다'(
rageth)로 보고 본 구절을 ‘어리석은 자는 쉽게 노를 발하며 교만하다’라고 해석한다.
=====14:17
노하기를…행하고 – 15:18 주석을 참조하라. 악한 계교를…미움을 받느니라 – 12
:2 주석을 참조하라.
=====14:18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 여기서 ‘면류관을 삼느니라'(* , 야크티루)
는 말은 원어상 ‘(포옹을 위해) 에워싸다’, ‘기다리다’, ‘관을 씌우다’ 등의 의미를
가지는 바, 본절은 ‘지식을 안는다'(Noyes), ‘지식을 끈기있게 기다리다'(Vulgate) 등
으로도 번역되나 여기서는 면류관이 영광과 영예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지식을 통해서
영예를 얻는다(붙잡는다)는 의미에서의 ‘관을 씌우다’란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Delitzsch, Zockler).
=====14:19
엎드리고(* , 솨후) – 이는 문자적으로 ‘몸을 굽혀 절하다’란 의미이다. 곧
악인은 궁극적으로 의인에게 동정을 구하거나 구걸하게 되는 위치로 전략하게 되리란
의미이다(시 37:25 비교). 의인의 문 – 8:34 주석을 참조하라.
=====14:20
가난한 자는…받게 되나 – 이는 곧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꺼려하며
회피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19:4, 7;눅 11:5-8). 혹자는 ‘미움을 받게 되나’란 말을
‘불쾌함을 받게 되나’로(말 1:3) 해석하여 가난한 자가 당하는 모멸과 천대를 부각시
키기도 한다(Zockler).
=====14:21
20절에 계속되는 내용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세 여하에 따른 결과를 보여 준다.
한편 여기서 ‘그 이웃’은 20절의 ‘가난한 자’, 그리고 하반절의 ‘빈곤한 자’와 병행으
로 사용된 동의어이다.
=====14:22
악을…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 곧 악을 꾀하는 것이(3:29) 크게 잘못된 행위임
을 의문의 형식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혹자는 ‘그릇 간다’란 뜻의 원어 ‘이트
우'(* )를 ‘악한 행동’을 뜻하는 ‘예르우'(* )로 읽어 본절을 ‘악을 도
모하는 자들과 그 악한 행동을 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Hitzig). 인
자와 진리 – 3:3 주석을 참조하라.
=====14: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 여기서 ‘수고'(* , 에체브)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노동’을 가리켜며, ‘이익'(* , 모타르)은 그러한 힘든 노동
끝에 얻어지는 ‘풍성한 소득’을 말한다(10:4, 5).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 원어상 ‘입술의 말'(* , 다바르 세파타임)이 ‘헛된 말’이나 ‘어리
석은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욥 11:2;15:3;사 36:5). 곧 본 구절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그러한 말은 결국 무익할 뿐이며 오히려 고통만을 수반할 뿐이라는 사실을 가리
키는 것이다(마 12:36, Delitzsch, Bertheau, Zockler).
=====14:24
곧 재물의 소유주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재물의 효용 가치와 씀씀이의 결과가 달라
진다는 의미이다. 곧 지혜로운 자는 정당한 수고의 대가로 얻은 재물을 의롭고 유용
하게 사용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영예를 얻게 한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재물을 자신의 정욕과 쾌락을 위해 탕진해 버린다는 의미이다.
=====14:25
5절 주석을 참조하라.
=====14:26
여호와를…있나니 – 여기서 ‘견고한 의뢰'(* , 미브타흐 오즈)는
‘강하고 확실한 안전’이란 뜻이다. 또한 본절은 주어(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앞에
특별히 어떠한 자를 강조하여 지칭하는 불분리 전치사 ‘베'(* )가 첨가되어 있어 그
확고한 안전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다(사
26:4, Hitzig, Delitzsch). 그 자녀들 – 이들이 누구의 자녀인가에 대해 세 가지 견해
가 있다. (1) 하나님의 자녀란 표현이 구약에서도 종종 쓰여진 바 있다는 점에서(시 7
3:15;호 11:1) 이는 곧 상반절에 나타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는 견해이다(
LXX, Hitzig). (2)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녀’들로
본다(출 20:6;시 103:17). 곧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확고한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3) (1)과 (2)의 절충적인 견해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여호와를 경외하는자는 물론 그들의 혈통적 자손 대대로까지 하나님이 피난
처가 되신다는 의미로 본다(창 17:7;출 34:7;왕상 11:12). 여기서는 (3)의 견해가 종
교적 보응의 구약적 용례와 잘 어울린다.
=====14:27
10:11;13:14 주석을 참조하라.
=====14:28
백성이…영광이요 – 고대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특성상 백성의 증가와 번성은
국가의 강대함과 더불어 그 치리자인 왕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 외적 표식이었다(왕
상 4:20). 특별히 이스라엘에 있어 자손의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진 바 있다
(창 12:2;15:5). 백성이…패망이니라 – 상반절의 내용으로 볼 때 백성이 적다는 것은
곧 국력의 쇠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패망이니라'(* , 메히타트)는 원어
상 ‘소멸하다’, ‘폐허가 되다’란 뜻을 가지는 바, 역사적으로 그러한 나라는 강대한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 에레크 아파임) – 문자적 의미는 ‘콧구
멍이 긴자’이다. 곧 ‘콧구멍’은 히브리어 관념상 분노의 감정이 표출되는 곳으로 인
식되어졌다는 점에서 이 말은 그 분노를 급하게 발하지 않는 자, 다시 말해서 성급하
지 않고 인내함으로 자신의 감정 표출을 절제하는 신중한 자를 가리킨다. 한편 70인
역 등은 이와 유사한 의미로서 ‘오래 참는 자'(patient man, NIV)로 번역했다. 조급한
자(* , 케차르 루아흐) – 문자적 의미는 ‘짧은 숨’으로 상반절의 원어적
의미와 비교하라.
=====14:30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 여기서 ‘마음’은 히브리 관념상 전인격의 중심을
가리키며, ‘화평'(* , 마르페)은 ‘건강하’, ‘건전한’이란 뜻을 가지는 바(a
sound heart, KJV), 본 구절은 전인격이 건전할 때 그의 육체 또한 원기와 생기를 얻
을 수 있다는 의미로 육체적인 병의 근원이 바로 마음의 근심과 부패에 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한편 학자득은 ‘화평’을 ‘고요한’, ‘온유한’이란 뜻으로 번역해(전
10:4) 하반절과의 의미상 대조를 더욱 좋게 했다(LXX, Delitzsch, Zockler).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 ‘시기'(* , 키느아)는 원어상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열정적
인 열심’을 뜻하는 말인바, 이는 상반절에 나타난 ‘시기’나 ‘질투’의 의미보다는 보편
적인 감정에 있어서의 ‘격렬한 흥분 상태’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인 듯하다(욥 5:2
, Zockler). 한편 본절의 세부적 의미는 12:4 주석을 참조하라.
=====14:31
본절은 빈부 귀천(貧富貴賤)을 무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격적인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천하보다 귀한 존재
라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곧 가난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고 학대하는 것은 그 사
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자란 사실에 비추어 하나님 자신과 그 섭리를 멸시
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Delitzsch). 한편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와 호의는 본서에
나타난 지혜의 중요한 실천 원리 중의 하나이며(21절;10:2;11:24,25) 성경 전반에 걸
쳐 언급되고 있는 주요한 신앙적 지침의 하나이다(출 22:21-27;신 15:11;마 25:35-40;
약 1:27;2:5-9).
=====14:32
의인은…소망이 있느니라 – 혹자는 바벨론 포수기 이전에는 히브리인들에게 있
어 영생과 부활에 대한 사상이 없었다고 보고 ‘그의 죽음에도'(* , 베모토)란
말을 ‘그의 신뢰할 수 있는 행실로'(* , 베툼로)라고 해석한다(LXX, Hitzig).
그러나 영생의 사상이 희미하나마 포로기 이전의 문서 속에서도 보여지고 있다는 점에
서(11:7;12:28;욥 27:8;시 31:5) 본절은 의인의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그 믿음
에서 비롯되는 영생의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고 이해되어도 무방하겠다(12:28 주석 참
조, Delitzsch, Zockler).
=====14:33
지혜는…머물거니와 10:14;12:23 주석을 참조하라.
=====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 여기서 ‘의’는 윤리적 측면에만 적용되는 것이
(Umbreit, Hitzig)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측면에 대한 포괄적인 ‘올바름’을 가리킨
다(Zockler). 또한 ‘나라'(* , 고이)는 원어상 ‘이방 국가’를 가리키는 말인
바, 본 구절은 그 교훈의 대상이 단지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포
함한 보편적인 국가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곧 한 나라의 진정한 번영은 경제력,
군사력과 같은 외형적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 신앙에
따른 공의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 여기서 ‘백성'(
* , 레움밈)은 ‘공동체’, ‘백성’을 뜻하는 ‘레움'(* )의 복수형으로서
‘만민'(萬民)을 지칭하는 말인 바, 상반절의 ‘나라’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
편 ‘죄'(* , 하타트)는 원어상 ‘범죄’란 의미와 함께 ‘속죄제’라는 뜻을 함축
하고 있으며, ‘욕되게'(* , 헤세드)는 원어상 일반적으로 ‘자비’와 ‘경건’이란 뜻
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혹자는 본 구절을 ‘자비(경건)는 백성들의 속죄가 된다’, ‘백성
들의 경건(이방신에 대한)은 죄가된다’라고 번역하나 ‘헤세드’가 이미 ‘치욕’을 의미
하는 말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과 (25:10;레 20:17) ‘죄’가 상반절의 ‘의’와 대
조적 의미로 쓰여진 ‘불의’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 구절은 개역 성경의 번역 그대로
가 적당하다(Delitzsch, Zockler). 곧 어느 백성을 막론하고 그 백성들의 종교적, 도
덕적 삶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못한 죄적 성향을 가질 때 그들은 하나님과 타 백
성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한편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헤세드’를 ‘결핍되다’, ‘
실패케 하다’, ‘감소되다’란 뜻의 ‘헤세르'(* )로 읽어 본 구절을 ‘불의(不義)는
백성을 멸절케 한다’란 의미로 번역했다.
=====14:35
슬기롭게…은총을 입고 – 여기서 ‘슬기롭게'(* , 마세킬)는 ‘신중하게
숙고하다’, ‘이지적이다’란 뜻을 함의하는 바, 본절은 왕을 보필하여 한 나라의 통치
원리를 수립하는 신하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시사해 주고 있다. 곧 그렇게 행
메튜 헨리 주석, 잠언 14장
14:1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잠언 14:1) 1. 좋은 아내는 한 가문의 큰 축복이 된다. 아이 많이 낳는 아내로 인해 자녀들로 한 가문이 번창해지고 채워지며, 가문이 세워진다. 그러나 경건하고 부지런하며 신중한 아내, 곧 슬기로운 아내로 인해서는 가내 제절이 원만하게 되어 부채는 없어지고 소득이 증대하며 양식이 비축되고, 자녀들은 잘 교육되고 부양된다. 그래서 그 가정 안에는 위안이 있고 밖에서는 신망이 있는 가정이 된다. 이와 같이 하여 그 집은 세워진다. 이런 슬기로운 여인은 비록 가정을 주관하는 것이 남편이 본분이 줄 알지만(에 1:22) 집안을 보살피는 것을 자기 소관사로 간주한다.
2. 많은 가정이 그릇된 남편의 도리뿐만 아니라 나쁜 아내의 도리로 인해서도 파탄에 이르게 된다.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없고 자기 일을 중시하지도 않으며, 고집이 세어서 방자하고 낭비벽이 심하며 변덕스러운 여자이다. 그녀는 자기 안일과 욕정을 탐하며, 나들이나 잔칫집에 가는 일, 노름이나 극장가는 일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 시집오더라도 그 집을 가난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되도록 낭비하여, 마치 “그집을 자기 손으로 허는”것처럼 파멸시킨다. 그런 여인의 남편은 아무리 애써도 그런 파멸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아내는 한 가문의 큰 축복이 된다. 아이 많이 낳는 아내로 인해 자녀들로 한 가문이 번창해지고 채워지며, 가문이 세워진다. 그러나 경건하고 부지런하며 신중한 아내, 곧 슬기로운 아내로 인해서는 가내 제절이 원만하게 되어 부채는 없어지고 소득이 증대하며 양식이 비축되고, 자녀들은 잘 교육되고 부양된다. 그래서 그 가정 안에는 위안이 있고 밖에서는 신망이 있는 가정이 된다. 이와 같이 하여 그 집은 세워진다. 이런 슬기로운 여인은 비록 가정을 주관하는 것이 남편이 본분이 줄 알지만(에 1:22) 집안을 보살피는 것을 자기 소관사로 간주한다.많은 가정이 그릇된 남편의 도리뿐만 아니라 나쁜 아내의 도리로 인해서도 파탄에 이르게 된다.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없고 자기 일을 중시하지도 않으며, 고집이 세어서 방자하고 낭비벽이 심하며 변덕스러운 여자이다. 그녀는 자기 안일과 욕정을 탐하며, 나들이나 잔칫집에 가는 일, 노름이나 극장가는 일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 시집오더라도 그 집을 가난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되도록 낭비하여, 마치 “그집을 자기 손으로 허는”것처럼 파멸시킨다. 그런 여인의 남편은 아무리 애써도 그런 파멸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이다.
14: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잠언 14:2) 1. 은혜와 죄의 본색. 은혜 주도형은 하나님을 추앙하고, 무한히 크시고 높으신 그에게 존귀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마땅히 돌려 드려야 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은혜와 죄의 본색. 은혜 주도형은 하나님을 추앙하고, 무한히 크시고 높으신 그에게 존귀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마땅히 돌려 드려야 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일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죄가 주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딴 어떤 일에서 보다도 천사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죄는 극히 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고, 그것과 그의 약속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 하고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과 그의 모든 속성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2. 참 빛으로 드러난 은혜와 죄. 우리는 이로써 은혜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지배하는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직하게 행하며”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충실하다. 그가 멈추어 서거나 한 걸음 내딛는 것은 무엇이나 다 규칙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다. 참 빛으로 드러난 은혜와 죄. 우리는 이로써 은혜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지배하는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직하게 행하며”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충실하다. 그가 멈추어 서거나 한 걸음 내딛는 것은 무엇이나 다 규칙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짐짓 자기의 욕망과 정욕을 따르며, 불공평하고 부정직하며 신앙과 모순되게 행동하는 자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신앙이 독실한 체 가장하더라도 그는 악인이며, 하나님께는 자신을 모멸하는 자로 간주될 것이다.
14:3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입술(잠언 14:3) 1. 자신을 드러내 놓는 교만한 우매자. 심중에 교만이 있고 머리에는 그 교만을 억누를 만한 지혜가 없다면, 대개 그 말 가운데에서 교만이 스스로 나타나게 된다. “그 입에는 교만이 있으니,” 교만하여 자랑하고, 교만하여 비난하고, 교만하여 냉소하고, 교만하여 명령하며 법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것은 “교만의 매,” 혹은 가지이다. 자신을 드러내 놓는 교만한 우매자. 심중에 교만이 있고 머리에는 그 교만을 억누를 만한 지혜가 없다면, 대개 그 말 가운데에서 교만이 스스로 나타나게 된다. “그 입에는 교만이 있으니,” 교만하여 자랑하고, 교만하여 비난하고, 교만하여 냉소하고, 교만하여 명령하며 법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것은 “교만의 매,” 혹은 가지이다. 이 나뭇가지라는 말은 이사야 11장 1절과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그것은 마음 속에 있는 쓴 뿌리에서 자라 나오며, 그 줄기에서 나온 가지이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우리는 이 가지를 정복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또 치고 때리는 회초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그것은 딴 사람을 치는 “교만의 매”이다. 자기 혀로 교만한 자는 자기를 전후 좌우로 공격하는 자요 쾌락을 향해 연방 주먹을 날리는 자여서 종내에는 자기 자신에게 대한 매가 될 것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입의 말로 인해 치욕스러운 징계를 당하게 될 것이며 군인처럼 칼로 베임을 당하는 게 아니라 종처럼 지팡이로 두들겨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몽둥이에 맞을 것이다(시 64:8). 2. 자신을 구하며 자신이 이익을 꾀하는 겸손한 지혜자.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지혜자의 입술은 딴 사람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교만한 자들이 자기 혀로 남을 해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또 그의 입술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초래하는 일도 하지 않는데 반하여 거만한 냉소자들은 흔히 이런 자멸 행위에 빠지는 것이다. 자신을 구하며 자신이 이익을 꾀하는 겸손한 지혜자.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지혜자의 입술은 딴 사람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교만한 자들이 자기 혀로 남을 해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또 그의 입술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초래하는 일도 하지 않는데 반하여 거만한 냉소자들은 흔히 이런 자멸 행위에 빠지는 것이다.
14:4 근면의 유익함(잠언 14:4) 1. 농사의 태만은 빈궁에 이르는 길이다. 땅을 갈고 탈곡하는 “소가 없으면” 텅빈 “구유는 깨끗하느니라.” 그러나 가축에게 줄 여물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공급할 빵도 없게 된다. 궁핍은 “이가 한가한 것”으로 표현된다(암 4:6). “소가 없으면” 밭에서 할 일이 없고 그렇게 되면 땅에서 얻을 것도 없다. 두엄이 없다면 “구유”는 참으로 “깨끗할”것이다. 이것은 깔끔하고 정결한 것을 만족시킬지는 모르나 농사에는 도저히 합당하지 못한 일이다. 농사에는 너무나 더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를 팔아 구유를 깨끗이 하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농사에는 수고 뿐만 아니라 소의 두엄도 소용이 되는데 더러움과 수고를 덜기 위해서 소를 판단 말인가? 이것은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느라고 농촌의 일마저 유의하지 않고, (소위)암소보다 말을 많이 기르며 돼지보다 개를 많이 키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 준다. 그런 자들의 가족은 틀림 없이 그로써 고통을 당하게 된다.
2. 자기 땅 주위로 돌아다니며 수고하는 자는 그 땅의 이익을 거둘 것이다. 자기 주변에 외관이나 장식을 위한 게 아니라, 쓸모있고 용도가 있는 것을 가꾸며 종복보다 농군을 더 많이 거느리는 자들은 번성하게 될 것이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짐승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지으심을 받았기에 사나 죽으나 유용한 동물인 것이다. 농사의 태만은 빈궁에 이르는 길이다. 땅을 갈고 탈곡하는 “소가 없으면” 텅빈 “구유는 깨끗하느니라.” 그러나 가축에게 줄 여물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공급할 빵도 없게 된다. 궁핍은 “이가 한가한 것”으로 표현된다(암 4:6). “소가 없으면” 밭에서 할 일이 없고 그렇게 되면 땅에서 얻을 것도 없다. 두엄이 없다면 “구유”는 참으로 “깨끗할”것이다. 이것은 깔끔하고 정결한 것을 만족시킬지는 모르나 농사에는 도저히 합당하지 못한 일이다. 농사에는 너무나 더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를 팔아 구유를 깨끗이 하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농사에는 수고 뿐만 아니라 소의 두엄도 소용이 되는데 더러움과 수고를 덜기 위해서 소를 판단 말인가? 이것은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느라고 농촌의 일마저 유의하지 않고, (소위)암소보다 말을 많이 기르며 돼지보다 개를 많이 키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 준다. 그런 자들의 가족은 틀림 없이 그로써 고통을 당하게 된다.자기 땅 주위로 돌아다니며 수고하는 자는 그 땅의 이익을 거둘 것이다. 자기 주변에 외관이나 장식을 위한 게 아니라, 쓸모있고 용도가 있는 것을 가꾸며 종복보다 농군을 더 많이 거느리는 자들은 번성하게 될 것이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짐승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지으심을 받았기에 사나 죽으나 유용한 동물인 것이다.
14:5 신실한 증언과 거짓 증언(잠언 14:5) 사법의 행사에서는 증인을 많이 의존한다. 그러므로 증인은 마땅히 해야 할 원칙을 따르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1. 양심적 증인이라면 조금이라도 부실한 증언을 감히 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선의로든 악의로든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지도 않고, 누구 귀에 즐겁든 거슬리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대로 증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판결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2. 그러나 뇌물을 먹거나 편견에 사로잡거나 협박에 넘어간 증인은 마치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기라도 한 양 기꺼이, 그리고 자신있게 “거짓말을 뱉느니라”(그것을 망설이거나 놀라지도 않고). 양심적 증인이라면 조금이라도 부실한 증언을 감히 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선의로든 악의로든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지도 않고, 누구 귀에 즐겁든 거슬리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대로 증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판결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그러나 뇌물을 먹거나 편견에 사로잡거나 협박에 넘어간 증인은 마치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기라도 한 양 기꺼이, 그리고 자신있게 “거짓말을 뱉느니라”(그것을 망설이거나 놀라지도 않고).
14:6 지혜를 얻는 자의 명철함(잠언 14:6) 1.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올바른 원리 올바른 방법으로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만한 자들이어서 훈계도 냉소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며,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조롱하고 트집잡는다.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져서 그의 대답으로 혐의를 잡아 고소하려 그를 시험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지혜를 당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시몬 마구스가 자만심과 탐심을 충족시키려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듯,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자. 그들은 잘못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 헤롯은 기적을 보기가 소원이었지만 거만한 자였기에 거절당했던 것이다(눅 23:8). 이와 같이 조롱하는 자들은 기도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2. 올바로 이해하고 “악에서 떠나는”자들은(바로 그것이 “명철”이므로) 하나님과 그의 의지에 대한 “지식을 얻기가 쉬우니라.” 조롱하며 거만한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더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어렵게 하였으나, 배우기를 즐겨하는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밝혀 조명하여 똑 같은 것을 더욱 간명하고 알기 쉽게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마 13:11, 15, 16). 동일한 말씀이라도 거만한 자들에게는 “사랑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나, 겸손하고 신실한 자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된다. “악에서 떠나고”(이것이 “명철”임으로) 편견을 버리며 모든 부패한 성향과 애착심을 던져버릴 정도로 “명철한 자”는 교훈을 쉽사리 이해할 것이고 그 감화를 받을 것이다.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올바른 원리 올바른 방법으로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만한 자들이어서 훈계도 냉소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며,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조롱하고 트집잡는다.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져서 그의 대답으로 혐의를 잡아 고소하려 그를 시험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지혜를 당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시몬 마구스가 자만심과 탐심을 충족시키려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듯,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자. 그들은 잘못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 헤롯은 기적을 보기가 소원이었지만 거만한 자였기에 거절당했던 것이다(눅 23:8). 이와 같이 조롱하는 자들은 기도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올바로 이해하고 “악에서 떠나는”자들은(바로 그것이 “명철”이므로) 하나님과 그의 의지에 대한 “지식을 얻기가 쉬우니라.” 조롱하며 거만한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더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어렵게 하였으나, 배우기를 즐겨하는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밝혀 조명하여 똑 같은 것을 더욱 간명하고 알기 쉽게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마 13:11, 15, 16). 동일한 말씀이라도 거만한 자들에게는 “사랑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나, 겸손하고 신실한 자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된다. “악에서 떠나고”(이것이 “명철”임으로) 편견을 버리며 모든 부패한 성향과 애착심을 던져버릴 정도로 “명철한 자”는 교훈을 쉽사리 이해할 것이고 그 감화를 받을 것이다.
14:7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고(잠언 14:7) 1. 우리는 어리석은 자를 식별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인임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는 그가 “미련한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하며” 그의 담화 속에서 경건한 맛이나 향기를 찾지 못하고, 그의 전달이 전부 부패한 것이거나 부패케 하는 것이며 그 안에는 “교훈하기에 선하고 유익한”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창고가 나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우리는 그런 자를 멀리해야 하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이는 그를 동무 삼아 얻을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그로 하여금 해를 입을 위험이 있는 줄 “네가 알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악한 말을 견책하고 반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악한 무리를 결별하고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를 식별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인임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는 그가 “미련한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하며” 그의 담화 속에서 경건한 맛이나 향기를 찾지 못하고, 그의 전달이 전부 부패한 것이거나 부패케 하는 것이며 그 안에는 “교훈하기에 선하고 유익한”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창고가 나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우리는 그런 자를 멀리해야 하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이는 그를 동무 삼아 얻을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그로 하여금 해를 입을 위험이 있는 줄 “네가 알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악한 말을 견책하고 반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악한 무리를 결별하고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14:8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잠언 14:8) 1. 지혜롭고 선한 자의 훌륭한 행실. 그는 스스로를 잘 관리한다. 본문이 칭찬하는 것은 사색에만 칩거하는 학자의 지혜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의 지혜”이다. 그것은 실력이 있으며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시해 주는 데에 쓸모가 있다. 그리스도인 슬기란 것은 “우리의 길을” 올바로 “아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그네 들이고 길가는 자의 관심은 노중의 경물을 음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로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거나 참견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 보며 “우리 발이 달려갈 첩경을 평탄케 하고(헤아리고)” 우리 길의 방향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길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길을 아는 것은 우리 길에 있는 위험을 살피고 그 길의 난관을 피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함이며, 또 우리 길을 잇점을 살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데에 기준을 삼아야 할 규칙과 우리가 향해야 할, 그리고 행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다.
2. 악인의 악한 행실. 그는 자기자신을 속인다. 그는 자기 길을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길을 잘못가며 그 잘못된 길로 계속 행하게 된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그들의 어리석음은 자신을 속여 파멸로 자초한다. 모래 위에 세운 자의 어리석음을 바로 속이는 것이었다. 지혜롭고 선한 자의 훌륭한 행실. 그는 스스로를 잘 관리한다. 본문이 칭찬하는 것은 사색에만 칩거하는 학자의 지혜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의 지혜”이다. 그것은 실력이 있으며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시해 주는 데에 쓸모가 있다. 그리스도인 슬기란 것은 “우리의 길을” 올바로 “아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그네 들이고 길가는 자의 관심은 노중의 경물을 음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로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거나 참견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 보며 “우리 발이 달려갈 첩경을 평탄케 하고(헤아리고)” 우리 길의 방향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길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길을 아는 것은 우리 길에 있는 위험을 살피고 그 길의 난관을 피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함이며, 또 우리 길을 잇점을 살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데에 기준을 삼아야 할 규칙과 우리가 향해야 할, 그리고 행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다.악인의 악한 행실. 그는 자기자신을 속인다. 그는 자기 길을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길을 잘못가며 그 잘못된 길로 계속 행하게 된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그들의 어리석음은 자신을 속여 파멸로 자초한다. 모래 위에 세운 자의 어리석음을 바로 속이는 것이었다.
14:9 미련한 자의 죄와 정직한 자의 은혜(잠언 14:9) 1. 악인은 어떻게 자신의 악함 중에서 강퍅해지는가? 그들은 “죄를 심상히 여기느니라.” 그들은 딴 사람의 죄를 우스운 일로 여기고 마땅히 슬퍼해야 할 그것에 대해 자신과 그 친구들로 더불어 즐거워한다. 그들은 또한 죄의 유혹을 받거나 죄를 범할 때도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긴다. 그들은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사 5:20), 농으로 죄를 지으며 죄를 향해 달려가고(렘 8:6), 그것을 계속 행하더라도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죄로써 어떤 악을 행하든지 상관하지 않으며, 자기들에게 그 악에 대해 말해 주면 비웃기까지 한다. 그들은 죄를 변호하는 자들이며 죄에 대한 변명을 꾸며내는 데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미련한 자는 속죄제를 심상히 여기느니라”(이렇게 해독하는 이도 있다). 즉 죄를 경시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얕보는 자들이다. 또한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은 우매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탄식하시고 그리스도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을(암 2:13) 얕잡아 생각하므로 그들은 곧 달리 생각하게 될 것이다.
2. 선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선함 속에서 격려를 받는가?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그들은 어떤 일로 실족하게 되더라도 곧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선의를 품으며, 그러한 그들의 모임에서는 범죄의 경우에라도 상호 긍휼이나 동정이 있을 뿐이며 심상히 여기고 우습게 보지는 않는다. 악인은 어떻게 자신의 악함 중에서 강퍅해지는가? 그들은 “죄를 심상히 여기느니라.” 그들은 딴 사람의 죄를 우스운 일로 여기고 마땅히 슬퍼해야 할 그것에 대해 자신과 그 친구들로 더불어 즐거워한다. 그들은 또한 죄의 유혹을 받거나 죄를 범할 때도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긴다. 그들은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사 5:20), 농으로 죄를 지으며 죄를 향해 달려가고(렘 8:6), 그것을 계속 행하더라도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죄로써 어떤 악을 행하든지 상관하지 않으며, 자기들에게 그 악에 대해 말해 주면 비웃기까지 한다. 그들은 죄를 변호하는 자들이며 죄에 대한 변명을 꾸며내는 데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미련한 자는 속죄제를 심상히 여기느니라”(이렇게 해독하는 이도 있다). 즉 죄를 경시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얕보는 자들이다. 또한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은 우매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탄식하시고 그리스도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을(암 2:13) 얕잡아 생각하므로 그들은 곧 달리 생각하게 될 것이다.선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선함 속에서 격려를 받는가?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그들은 어떤 일로 실족하게 되더라도 곧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선의를 품으며, 그러한 그들의 모임에서는 범죄의 경우에라도 상호 긍휼이나 동정이 있을 뿐이며 심상히 여기고 우습게 보지는 않는다.
14:10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잠언 14:10) 이 말씀은 “사랑의 사정과 그 성미의 변화를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란 고린도 전서 2장 11절 말씀과 일치한다. 1. 누구든지 자신의 무거운 짐에 대해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며, 자신의 심령에 대한 짐은 특히 그러하다. 흔히 심적 부담을 가리워져 있고, 직접 고통을 당하는 자 혼자서 그 고충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실제 당하는 고충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딴 사람의 비탄을 혹평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타격은 아마 그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2. 많은 사람이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며, 특히 하나님의 위안 하심을 은밀히 만끽하고 있다. 그런 위안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며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참회자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신자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는”일이므로 그 즐거움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도 없다. 누구든지 자신의 무거운 짐에 대해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며, 자신의 심령에 대한 짐은 특히 그러하다. 흔히 심적 부담을 가리워져 있고, 직접 고통을 당하는 자 혼자서 그 고충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실제 당하는 고충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딴 사람의 비탄을 혹평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타격은 아마 그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많은 사람이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며, 특히 하나님의 위안 하심을 은밀히 만끽하고 있다. 그런 위안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며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참회자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신자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는”일이므로 그 즐거움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도 없다.
14:11 정직한 자와 악한 자의 흥망(잠언 14:11) 1. 죄는 큰 가문도 파멸시킨다. “악한 자의 집”은 아무리 견고하고 높게 지어져 있더라도 “망할”것이며, 빈궁과 치욕에 이르러 드디어는 사몰될 것이다. 하늘에 대한 그의 소망이나 그가 의지하는 집은 서지 못할 것이며 비바람이 몰아치면 넘어질 것이다. 홍수가 와서 그 집을 깨끗이 쓸어가버릴 것이다.
2. 의는 보잘 것 없는 가문도 흥하게 하며 든든하게 한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설령 이동시의 누추한 천막이더라도 만약 무한하신 지혜자가 좋게 보시기만 한다면 외적 번영이란 면에서 뿐만 아니라 참 부귀와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은혜와 위로 속에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도 “흥할”것이다. 죄는 큰 가문도 파멸시킨다. “악한 자의 집”은 아무리 견고하고 높게 지어져 있더라도 “망할”것이며, 빈궁과 치욕에 이르러 드디어는 사몰될 것이다. 하늘에 대한 그의 소망이나 그가 의지하는 집은 서지 못할 것이며 비바람이 몰아치면 넘어질 것이다. 홍수가 와서 그 집을 깨끗이 쓸어가버릴 것이다.의는 보잘 것 없는 가문도 흥하게 하며 든든하게 한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설령 이동시의 누추한 천막이더라도 만약 무한하신 지혜자가 좋게 보시기만 한다면 외적 번영이란 면에서 뿐만 아니라 참 부귀와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은혜와 위로 속에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도 “흥할”것이다.
14:12 자기 기만의 종국(잠언 14:12) 우리는 본문에서 아주 많은 영혼이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길과 그 종말을 대하게 된다. 1. 그들의 길은 외관상으로는 아름답다. 그 길은 그들 스스로 “보기에는 바르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이 당위와 합치되며, 자신의 생각과 실행이 선하고 자기들을 끝까지 버티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길은 무지와 부주의의 길이며 세속적인 것과 지상의 것에만 몰두하는 길이다. 또 그것은 육욕의 길이며 육을 즐겁게 하는 길이다. 이런 길은 그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 바른 것같이 보인다. 더욱이 종교적 위선이나 의식하는 행위, 미봉적(彌縫的)개혁이나 맹목적 열성의 길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이러한 길이 자기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에 가서 만사가 잘 될 것으로 보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실로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며, 그들의 실수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사망의 길”이요 영원한 죽음의 길이다. 그들의 불의는 정녕 그들의 파멸이 될 것이며, 그들의 자신의 오른팔같이 믿던 거짓말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를 기만하는 자들은 종국에 가서 자기를 멸망하시키는 자로 판명될 것이다. 그들의 길은 외관상으로는 아름답다. 그 길은 그들 스스로 “보기에는 바르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이 당위와 합치되며, 자신의 생각과 실행이 선하고 자기들을 끝까지 버티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길은 무지와 부주의의 길이며 세속적인 것과 지상의 것에만 몰두하는 길이다. 또 그것은 육욕의 길이며 육을 즐겁게 하는 길이다. 이런 길은 그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 바른 것같이 보인다. 더욱이 종교적 위선이나 의식하는 행위, 미봉적(彌縫的)개혁이나 맹목적 열성의 길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이러한 길이 자기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에 가서 만사가 잘 될 것으로 보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실로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며, 그들의 실수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사망의 길”이요 영원한 죽음의 길이다. 그들의 불의는 정녕 그들의 파멸이 될 것이며, 그들의 자신의 오른팔같이 믿던 거짓말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를 기만하는 자들은 종국에 가서 자기를 멸망하시키는 자로 판명될 것이다.
14:13 세상 환락의 헛됨(잠언 14:13) 본문은 세상의 환락이 헛된 것임을 말해 주며, 솔로몬이 웃음에 대하여 “그것은 미친 것이라”고 한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 1. 웃음 속에도 슬픔이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왕왕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나 아니면 모종의 큰 곤란을 당하게 되는 때에는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즐거운 듯이 하여 저희 근심을 은폐시키고 기쁜 얼굴로 그들의 슬픔을 얼버무린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을 휘감을 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이 실제로 즐거운 때조차 저희 열락 속에는 이런 저런 불순물이 들어 있으며 그들의 쾌활함에 찬물을 끼얹는 점이 있어서, 그들의 모든 명랑함으로도 마음으로부터 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호 9:1). 그들의 볼 수 있는 것은 그 환락의 허무감밖에 없다. 영혼의 신령한 기쁨은 영혼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의식하는 자의 기쁨은 외면적인 잇빨에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요 16:22; 고후 6:10 참조).
2. 그 웃음 다음에 오는 것은 더욱 비참한 것이다. 웃음 속에도 슬픔이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왕왕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나 아니면 모종의 큰 곤란을 당하게 되는 때에는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즐거운 듯이 하여 저희 근심을 은폐시키고 기쁜 얼굴로 그들의 슬픔을 얼버무린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을 휘감을 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이 실제로 즐거운 때조차 저희 열락 속에는 이런 저런 불순물이 들어 있으며 그들의 쾌활함에 찬물을 끼얹는 점이 있어서, 그들의 모든 명랑함으로도 마음으로부터 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호 9:1). 그들의 볼 수 있는 것은 그 환락의 허무감밖에 없다. 영혼의 신령한 기쁨은 영혼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의식하는 자의 기쁨은 외면적인 잇빨에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요 16:22; 고후 6:10 참조).그 웃음 다음에 오는 것은 더욱 비참한 것이다.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솔 밑에서 따닥거리면서 타논 가시나무와도 같이 즐거움은 곧 끝이 난다. 만약 양심이 눈을 뜨고 있다면 모든 죄스럽고 속된 즐거움은 씁쓸하게 반성될 것이고, 양심이 잠자고 있다면 “이 모든 일에 대해” “죄인을 하나님께서 심판에 회부”하실 때에는 근심이 훨씬 더 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근심은 영원한 기쁨으로 끝이 나지만(시 126:5) 미련한 자의 웃음은 끝없는 울음과 통곡으로 끝날 것이다.
14:14 죄인과 의인에 대한 보응(잠언 14:14) 1. 죄인의 불행은 저희 죄에 대한 영원한 범람이 될 것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고생을 두려워하고, 이익이나 쾌락을 바라 하나님과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자로서 “자기의 행위로 만족하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일을 지겹도록 주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수용과 정욕을 버리지 아니하고 고수할 것이어서, 그것은 저희의 영원한 공포와 고통이 될 것이다.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러울 것이다.” “아들아, 기억하라”는 말이 “그들 자신의 행위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겠고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진열시킬 것이다. 배교(背敎)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불신앙의 악한 마음이다. 모든 죄인 중에서도 특히 배교자는 “자기의 형편”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가장 많은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눅 11:26)
2. 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대한 증거와 조건으로서 은혜 중에 영원히 만족될 것이다. “선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신 것으로 풍성히 “만족하리라.” 그는 “기뻐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다”(갈 6:4). 죄인들은 지옥에 이를 때까지 죄를 지어도 결코 충분히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같이, 성도 역시 천국에 이르기까지 은혜를 족하게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죄인의 불행은 저희 죄에 대한 영원한 범람이 될 것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고생을 두려워하고, 이익이나 쾌락을 바라 하나님과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자로서 “자기의 행위로 만족하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일을 지겹도록 주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수용과 정욕을 버리지 아니하고 고수할 것이어서, 그것은 저희의 영원한 공포와 고통이 될 것이다.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러울 것이다.” “아들아, 기억하라”는 말이 “그들 자신의 행위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겠고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진열시킬 것이다. 배교(背敎)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불신앙의 악한 마음이다. 모든 죄인 중에서도 특히 배교자는 “자기의 형편”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가장 많은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눅 11:26)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대한 증거와 조건으로서 은혜 중에 영원히 만족될 것이다. “선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신 것으로 풍성히 “만족하리라.” 그는 “기뻐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다”(갈 6:4). 죄인들은 지옥에 이를 때까지 죄를 지어도 결코 충분히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같이, 성도 역시 천국에 이르기까지 은혜를 족하게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14:15 신중한 행동의 이로움(잠언 14:15) 1. 남을 쉽사리 믿고 뜬 소문에 유의하며,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온갖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평이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신뢰하고, 우호적으로 대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지하며,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신용해 버리는 일은 미련하다. 이처럼 “온갖 말을 믿는 자”는 실로 “어리석은”자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과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 거짓말쟁이가 아닌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의 모든 말씀을 분명한 신앙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2. 신중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슬기로운 자는 신뢰하기 전에 시험해 볼 것이며 증거의 확실성과 증언의 가능성을 달아보고나서 그 일이 나타나는 대로 판단을 하거나, 아니면 분명히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할 것이다. “범사를 시험해 보고,” “영을 다 믿지 말라”(요일 4:1) 남을 쉽사리 믿고 뜬 소문에 유의하며,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온갖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평이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신뢰하고, 우호적으로 대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지하며,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신용해 버리는 일은 미련하다. 이처럼 “온갖 말을 믿는 자”는 실로 “어리석은”자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과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 거짓말쟁이가 아닌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의 모든 말씀을 분명한 신앙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신중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슬기로운 자는 신뢰하기 전에 시험해 볼 것이며 증거의 확실성과 증언의 가능성을 달아보고나서 그 일이 나타나는 대로 판단을 하거나, 아니면 분명히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할 것이다. “범사를 시험해 보고,” “영을 다 믿지 말라”(요일 4:1)
14:16 두려움과 방자함(잠언 14:16) 1. 경건한 두려움은 모든 거룩한 일을 훌륭히 수호해 주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지켜 준다. “악에서,” 악의 재앙으로부터 떠나며, 따라서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 즉 경건한 질투로써 자신에게 대해 질투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품으며 죄의 구역에 접근하거나 죄의 시초에 닿게 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지혜이다. 지혜로운 자는 해(害)를 두려워하여 해로운 길에서 스스로 멀리하며, 자기가 시험에 드는 것을 자각할 때는 깜짝 놀라 돌이킨다.
2. 주제넘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을 때, “방자하여 스스로 믿고” 저돌적으로 계속 밀고 나가며, 제지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무시하며, 자기의 반역을 고집하고, 대담하게도 범죄를 야기시키며 위태한 곡예를 부리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그는 자기 이성과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미련한 자이며 급속한 파멸이 그의 어리석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경건한 두려움은 모든 거룩한 일을 훌륭히 수호해 주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지켜 준다. “악에서,” 악의 재앙으로부터 떠나며, 따라서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 즉 경건한 질투로써 자신에게 대해 질투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품으며 죄의 구역에 접근하거나 죄의 시초에 닿게 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지혜이다. 지혜로운 자는 해(害)를 두려워하여 해로운 길에서 스스로 멀리하며, 자기가 시험에 드는 것을 자각할 때는 깜짝 놀라 돌이킨다.주제넘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을 때, “방자하여 스스로 믿고” 저돌적으로 계속 밀고 나가며, 제지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무시하며, 자기의 반역을 고집하고, 대담하게도 범죄를 야기시키며 위태한 곡예를 부리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그는 자기 이성과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미련한 자이며 급속한 파멸이 그의 어리석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14:17 분노와 악한 계교(잠언 14:17) 1. 객기를 부리는 자는 조소를 당해 마땅하다. 성질이 꼬여서 불칼같고 조금만 자극되어도 무슨 일에나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느니라.” 그들은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을 하여 자신을 천대의 표적으로 드러내놓는다. 그러나 열기가 가시면 성냈던 일을 그들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할 때, 특히 지혜와 명예로 정평이 난 자들이라면 자신의 격정을 극히 조심하여 제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경원되고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한층 위험하고 유해로운 인간들인 것이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자기가 복수당할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그 분노를 눌러 끄고 있으며,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자기 이웃을 해하며 골려 줄 수 있을까 하고 은밀히 음모를 꾸민다. 이런 사람은 온 인류에게 증오를 받는다. 성내는 사람의 특성은 그래도 동정할 만하다. 급히 밀어닥치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안정을 잃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하지만 그의 분노는 곧 가라앉으며, 그는 그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한과 복수심에 불타는 자기 특성은 보기에 역겹다. 그런 자는 막을 담도 없으며 치료책도 없는 것이다. 객기를 부리는 자는 조소를 당해 마땅하다. 성질이 꼬여서 불칼같고 조금만 자극되어도 무슨 일에나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느니라.” 그들은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을 하여 자신을 천대의 표적으로 드러내놓는다. 그러나 열기가 가시면 성냈던 일을 그들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할 때, 특히 지혜와 명예로 정평이 난 자들이라면 자신의 격정을 극히 조심하여 제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경원되고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한층 위험하고 유해로운 인간들인 것이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자기가 복수당할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그 분노를 눌러 끄고 있으며,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자기 이웃을 해하며 골려 줄 수 있을까 하고 은밀히 음모를 꾸민다. 이런 사람은 온 인류에게 증오를 받는다. 성내는 사람의 특성은 그래도 동정할 만하다. 급히 밀어닥치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안정을 잃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하지만 그의 분노는 곧 가라앉으며, 그는 그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한과 복수심에 불타는 자기 특성은 보기에 역겹다. 그런 자는 막을 담도 없으며 치료책도 없는 것이다.
14:18 어리석은 자의 지식(잠언 14:18) 1. 죄는 죄인의 수치이다. 어리석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으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느니라.” 그들은 “기업에 의해” 그 어리석음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 타락된 본성은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유래하였는데 우리는 이에 부수하는 모든 재난을 현품으로 상속받는 셈이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인류에게 전해 준 상속물이었고 유전병이었다. 인간은 상속받은 자가 유산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 만큼이나 이 타락한 본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실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저희 어리석음의 결과는 미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미련한 선택에 대하여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2. 지혜는 지혜로운 자를 존귀하게 한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으며” 지식을 가장 찬란한 장식물로 간주하는데, 그들이 그것만치 탐내는 것은 달리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을 면류관으로서 자기들의 머리에 매며 그것을 절대로 벗어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지식의 정상과 완전함을 향해 강행군하며 그것은 그들의 시작과 발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칭송도 받을 것이다. 즉 지혜로운 머리는 마치 면류관을 쓴 머리와도 같이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죄는 죄인의 수치이다. 어리석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으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느니라.” 그들은 “기업에 의해” 그 어리석음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 타락된 본성은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유래하였는데 우리는 이에 부수하는 모든 재난을 현품으로 상속받는 셈이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인류에게 전해 준 상속물이었고 유전병이었다. 인간은 상속받은 자가 유산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 만큼이나 이 타락한 본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실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저희 어리석음의 결과는 미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미련한 선택에 대하여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지혜는 지혜로운 자를 존귀하게 한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으며” 지식을 가장 찬란한 장식물로 간주하는데, 그들이 그것만치 탐내는 것은 달리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을 면류관으로서 자기들의 머리에 매며 그것을 절대로 벗어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지식의 정상과 완전함을 향해 강행군하며 그것은 그들의 시작과 발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칭송도 받을 것이다. 즉 지혜로운 머리는 마치 면류관을 쓴 머리와도 같이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지식에다 면류관을 씌운다”(그렇게 읽는 자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게 명예를 입힌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14:19 악인의 비참함(잠언 14:19) 1. 악한 자는 때때로 가난하게 되고 비천하게 된다. 그들은 악함 때문에 곤경에 떨어지게 되어 구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반면 선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부유하게 되고 구제할 능력이 생기며 심지어 악인에게도 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생명을 허용하시는 이상 생계도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악인에게조차 자기 백성의 훌륭함을 인정하도록 강요하신다. 악인은 언제나 “선인 앞에 엎드려야” 마땅하다. 때로 악인이 선인에게 복종하게 되고 “하나님이 선인을 사랑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계 3:9). 따라서 악인은 선인의 은총(에 7:7)과 기도를 희구하는 것이다(왕하 3:12).
3. 정직한 자가 다스리게 되는 날이 오고 있다(시 49:14).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와서 기름을 구걸할 것이고 의인이 들어간 주님의 문 앞에서 두드릴 터이나, 그것은 허사일 것이다. 악한 자는 때때로 가난하게 되고 비천하게 된다. 그들은 악함 때문에 곤경에 떨어지게 되어 구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반면 선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부유하게 되고 구제할 능력이 생기며 심지어 악인에게도 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생명을 허용하시는 이상 생계도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악인에게조차 자기 백성의 훌륭함을 인정하도록 강요하신다. 악인은 언제나 “선인 앞에 엎드려야” 마땅하다. 때로 악인이 선인에게 복종하게 되고 “하나님이 선인을 사랑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계 3:9). 따라서 악인은 선인의 은총(에 7:7)과 기도를 희구하는 것이다(왕하 3:12).정직한 자가 다스리게 되는 날이 오고 있다(시 49:14).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와서 기름을 구걸할 것이고 의인이 들어간 주님의 문 앞에서 두드릴 터이나, 그것은 허사일 것이다.
14:20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잠언 14:20) 이 말씀은 세상의 당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례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곧 빈한 자가 기피되고 부한 자는 애호받는다는 사실이다. 1. 딴 점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세상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자면 거의 어느 누구도 따뜻한 얼굴로 맞아 주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긍휼히 여겨 주고 격려하며 구제해 주어야 당연한데, 오히려 그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고”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소외된다. 그가 수치를 당하게 되기 전에는 이웃도 그와 흉허물 없이 지내며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하였는데 이렇게 표변한 것이다. 거개의 사람은 제비 족속의 친구들이어서 겨울이 되면 떠나가 버리고 만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 친구로 모신다는 것이 좋다. 그는 우리가 가난하게 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세상이 미소를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는 달리 가치있는 자도 아닌데 누구든지 비위를 맞추려든다.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이 친구들은 재물의 친구가 되려는 자들로서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어 보려는 바램으로 친구인 척하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이기심이나 이해타산의 조종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런 것은 결코 참된 우정이 아니며 지혜로운 자는 그런 것을 존중하거나 신용하지 않는다. 세상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거의 다 우상화하고 그런 것이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의 산물이기도 하는 양 그것을 구한다. 딴 점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세상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자면 거의 어느 누구도 따뜻한 얼굴로 맞아 주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긍휼히 여겨 주고 격려하며 구제해 주어야 당연한데, 오히려 그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고”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소외된다. 그가 수치를 당하게 되기 전에는 이웃도 그와 흉허물 없이 지내며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하였는데 이렇게 표변한 것이다. 거개의 사람은 제비 족속의 친구들이어서 겨울이 되면 떠나가 버리고 만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 친구로 모신다는 것이 좋다. 그는 우리가 가난하게 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세상이 미소를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는 달리 가치있는 자도 아닌데 누구든지 비위를 맞추려든다.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이 친구들은 재물의 친구가 되려는 자들로서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어 보려는 바램으로 친구인 척하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이기심이나 이해타산의 조종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런 것은 결코 참된 우정이 아니며 지혜로운 자는 그런 것을 존중하거나 신용하지 않는다. 세상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거의 다 우상화하고 그런 것이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의 산물이기도 하는 양 그것을 구한다.
14:21 멸시와 동정(잠언 14:21) 여기에서는 사람들의 성품과 처지가 어떻게 평가되며 파단되는지 살펴 보자.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그들의 태도로 되어 있다. 1. 불쌍한 이웃을 괄시하는 자들에게는 나쁜 특징이 지적되어 있으며, 그 처지도 그것에 준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이웃”이 세상에서 지위가 낮으며 미천한 신분의 출신에다 조야한 교육을 받은 자로서 초라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여 그를 “업신여기며,” 그를 아는 체하거나 사귀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자기의 양지키는 개와 동렬에 두는 자는 “죄인”이며 죄를 범하는 자요, 더 악한 길에 서 있는 자로서, 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자는 불행하다.
2. 자기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특성에 따라 좋은 형편에 처할 것이라고 본문은 말해 주고 있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딱한 이웃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도리를 선뜻 행하며 그로써 그를 존중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복이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께 즐거움이 될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 자신이 후에 생각해 보아도 크게 흡족해 할 일이 될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가난한 자의 허리가 그들을 복되다고 축복해 줄 것이며, 그 일은 의로운 자의 부활시에 풍부하게 보상될 것이다. 불쌍한 이웃을 괄시하는 자들에게는 나쁜 특징이 지적되어 있으며, 그 처지도 그것에 준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이웃”이 세상에서 지위가 낮으며 미천한 신분의 출신에다 조야한 교육을 받은 자로서 초라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여 그를 “업신여기며,” 그를 아는 체하거나 사귀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자기의 양지키는 개와 동렬에 두는 자는 “죄인”이며 죄를 범하는 자요, 더 악한 길에 서 있는 자로서, 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자는 불행하다.자기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특성에 따라 좋은 형편에 처할 것이라고 본문은 말해 주고 있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딱한 이웃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도리를 선뜻 행하며 그로써 그를 존중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복이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께 즐거움이 될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 자신이 후에 생각해 보아도 크게 흡족해 할 일이 될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가난한 자의 허리가 그들을 복되다고 축복해 줄 것이며, 그 일은 의로운 자의 부활시에 풍부하게 보상될 것이다.
14:22 악행과 선행에 대한 도모(잠언 14:22) 1. 악을 행할뿐더러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비참한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릇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 참으로 그들은 잘못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점은 안다. 그들은 교묘한 재주와 기발한 꾀로 범죄하고, 딴 사람들보다 한층 지능적으로 술책을 부려 음모를 진행시키면 자기들의 죄가 타인들보다 더 훌륭히 처리하게 될 것이고 결과도 더 나을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기지로도 능가할 수가 없다. 자기 이웃에게 대하여 악을 도모하는 자는 크게 그릇가는 자이므로 틀림 없이 그 일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자신의 파멸로 끝날 것이다. 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가!
2.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지혜로와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이것은 부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그들은 자기들이 아무 것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고백할 것이다) 자비의 상급이며, 단지 인자하시기 때문에, 약속에 따르는 인자이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빚쟁이가 되기를 즐거워하시는 인자와 진리의 상급이다. 아낌없이 줄 것을 도모할 정도로 후하고, 선행할 기회를 찾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자선을 가장 광범위하게 베풀 수 있으며 그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가장 기쁘게 용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자들은 “고명한 일(혹은 “후한 일”)에 서리라”(사 32:8). 악을 행할뿐더러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비참한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릇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 참으로 그들은 잘못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점은 안다. 그들은 교묘한 재주와 기발한 꾀로 범죄하고, 딴 사람들보다 한층 지능적으로 술책을 부려 음모를 진행시키면 자기들의 죄가 타인들보다 더 훌륭히 처리하게 될 것이고 결과도 더 나을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기지로도 능가할 수가 없다. 자기 이웃에게 대하여 악을 도모하는 자는 크게 그릇가는 자이므로 틀림 없이 그 일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자신의 파멸로 끝날 것이다. 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가!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지혜로와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이것은 부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그들은 자기들이 아무 것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고백할 것이다) 자비의 상급이며, 단지 인자하시기 때문에, 약속에 따르는 인자이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빚쟁이가 되기를 즐거워하시는 인자와 진리의 상급이다. 아낌없이 줄 것을 도모할 정도로 후하고, 선행할 기회를 찾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자선을 가장 광범위하게 베풀 수 있으며 그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가장 기쁘게 용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자들은 “고명한 일(혹은 “후한 일”)에 서리라”(사 32:8).
14:23 말과 실천의 차이(잠언 14:23) 1. 말하지 않고 일만 하는 자는 부하게 될 것이다. 머리나 손의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느니라.” 그런 수고는 이모저모로 유익하게 환산될 것이다. 근면한 사람들은 대체로 번영하며 무엇인가 행하면 무엇인가 얻어지는 게 있는 법이다. “움직이는 손이 한 푼이라도 번다.” 그러므로 일을 쉬지 않으며 계속 활동하고 우리 손이 해야 할 일이면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2. 일하지 않고 말만 하는 자는 가난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일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떠들어대기를 즐기며, 아덴 사람들같이 잡담이나 새로운 일을 말하거나 듣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화제를 통해 향상해 보겠다는 구실로 자기 위치에서 그 날 해야 할 일을 태만히 하는 자들은 가진 것을 낭비하여 자이며,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궁핍을 이룰” 뿐이고 곤궁으로 끝날 것이다. 말하지 않고 일만 하는 자는 부하게 될 것이다. 머리나 손의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느니라.” 그런 수고는 이모저모로 유익하게 환산될 것이다. 근면한 사람들은 대체로 번영하며 무엇인가 행하면 무엇인가 얻어지는 게 있는 법이다. “움직이는 손이 한 푼이라도 번다.” 그러므로 일을 쉬지 않으며 계속 활동하고 우리 손이 해야 할 일이면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일하지 않고 말만 하는 자는 가난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일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떠들어대기를 즐기며, 아덴 사람들같이 잡담이나 새로운 일을 말하거나 듣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화제를 통해 향상해 보겠다는 구실로 자기 위치에서 그 날 해야 할 일을 태만히 하는 자들은 가진 것을 낭비하여 자이며,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궁핍을 이룰” 뿐이고 곤궁으로 끝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도 타당한 이치가 된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 수고하며 간절한 기도로 애쓰는 자들은 그 일에서 이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신앙이 모두 잡담과 헛소리에서 끝이 나고 기도는 입술의 움직임에 지나지 않게 되면 그들은 영적으로 가난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14:24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재물(잠언 14:24) 1. 만일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재물까지 있으면 그들은 그로인해 더욱 존귀하게 되고 유능하게 된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니라.” 재물로 인하여 그들은 더욱 많은 존경을 받게 되고 더 많은 권위를 지니게 되며 타인들에게 대한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큰 재산과 아울러 그 재물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도 같이 소유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세상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큰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혜”는 “유업”이 없어도 아름다우나 그것이 있으면 더욱 훌륭하게 된다.
2. 악하고 부패한 자에게는 그들의 재산이 그들을 더욱 노출시켜 줄 뿐이다. “미련한 자의 소유는” 어떤 상황에 둔다고 해도 “미련한 것이어서,” 미련함이 스스로 드러나 그들에게 수치를 안겨 줄 것이다. 그들에게 재물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악행을 하고 자기들의 미련한 행위 속에서 한층 강퍅케 될 것이다. 만일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재물까지 있으면 그들은 그로인해 더욱 존귀하게 되고 유능하게 된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니라.” 재물로 인하여 그들은 더욱 많은 존경을 받게 되고 더 많은 권위를 지니게 되며 타인들에게 대한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큰 재산과 아울러 그 재물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도 같이 소유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세상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큰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혜”는 “유업”이 없어도 아름다우나 그것이 있으면 더욱 훌륭하게 된다.악하고 부패한 자에게는 그들의 재산이 그들을 더욱 노출시켜 줄 뿐이다. “미련한 자의 소유는” 어떤 상황에 둔다고 해도 “미련한 것이어서,” 미련함이 스스로 드러나 그들에게 수치를 안겨 줄 것이다. 그들에게 재물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악행을 하고 자기들의 미련한 행위 속에서 한층 강퍅케 될 것이다.
14:25 진실한 증인과 거짓 증언(잠언 14:25) 1. 진실한 증인에게는 매우 많은 칭찬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는 결백한 허위로 무고당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 못지 않게 소중한 그들의 아름다운 이름까지도 구해준다. 성실한 자는 허위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자들을 구조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극히 큰 자의 노여움조차 불사하려 들 것이다.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참되이 증거하는 신실한 목사는 이로써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생명을 구원하는 데 이바지한다.
2. 거짓된 증인은 손톱만치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날조하면서도 무죄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극히 자신만만하게 그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러므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위증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거짓말까지도 색출하여 엄단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 즉 진실은 국가 단결의 집합체가 되는 것이다. 진실한 증인에게는 매우 많은 칭찬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는 결백한 허위로 무고당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 못지 않게 소중한 그들의 아름다운 이름까지도 구해준다. 성실한 자는 허위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자들을 구조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극히 큰 자의 노여움조차 불사하려 들 것이다.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참되이 증거하는 신실한 목사는 이로써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생명을 구원하는 데 이바지한다.거짓된 증인은 손톱만치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날조하면서도 무죄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극히 자신만만하게 그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러므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위증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거짓말까지도 색출하여 엄단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 즉 진실은 국가 단결의 집합체가 되는 것이다.
14:26 여호와에 대한 경외(잠언 14:26,27) 이 두 성귀는 경건한 신앙 생활에 수반되는 이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한 경외 속에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격려해 준다. “여호와께 대한 경외”는 여기에서 은혜로운 실례를 산출하는 모든 은혜로운 원리로서 표현되고 있다. 1. 이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거룩한 안보와 마음의 평정이 생겨난다. 그 원리 안에는 “견고한 의뢰”가 있다. 무슨 사례가 발생하든지 간에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여전히 자기 순수성과 화평을 능히 고수할 수 있도록 해 주며,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담대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내가 의롭게 여김을 받을 줄로 아노니 이런일들로 요동하지 않노라.” 하는 것이 바로 이 견고한 의뢰의 상용어가 되는 것이다.
2. 이 원리는 후손에게 축복을 상속해 준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자기 의로자로 삼는 이들의 자녀는, 하나님이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요 그 자녀에게는 도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 때문에 용기를 얻게 될 것이며, 또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독실한 부모의 자녀들은 때때로 부모의 훈계와 모범보다 더 나은 훌륭한 행동을 나타내며 저희 믿음과 기도로 하여 더욱 행복하게 된다. “우리 아비가 당신을 신뢰하였사오매 우리도 그렇게 하겠나이다.”
3. 이 원리는 넘쳐 흐르고, 항상 흐르는 위로와 기쁨의 셈이다. 그것은 “생명의 샘”이어서 영혼에게 항구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가져다 주며 순수하고 신선한 기쁨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영혼에게 생명이 되며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다시는 메마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생수의 샘”이어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며 또 영생의 증거가 된다.
4. 그것은 죄와 유혹에 대해서는 둘도 없는 특효약이 된다. 신실하고도 경건하게 하나님을 따라 사는 생활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본 자들은 죄의 미끼에 혹하여 낚시 바늘을 삼키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 줄테니 따라오라”고 큰 소리치는 것이 있어도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 따라서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며” 자기 발이 그 그물에 붙잡히지 않도록 지키기가 용이하다. 이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거룩한 안보와 마음의 평정이 생겨난다. 그 원리 안에는 “견고한 의뢰”가 있다. 무슨 사례가 발생하든지 간에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여전히 자기 순수성과 화평을 능히 고수할 수 있도록 해 주며,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담대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내가 의롭게 여김을 받을 줄로 아노니 이런일들로 요동하지 않노라.” 하는 것이 바로 이 견고한 의뢰의 상용어가 되는 것이다.이 원리는 후손에게 축복을 상속해 준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자기 의로자로 삼는 이들의 자녀는, 하나님이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요 그 자녀에게는 도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 때문에 용기를 얻게 될 것이며, 또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독실한 부모의 자녀들은 때때로 부모의 훈계와 모범보다 더 나은 훌륭한 행동을 나타내며 저희 믿음과 기도로 하여 더욱 행복하게 된다. “우리 아비가 당신을 신뢰하였사오매 우리도 그렇게 하겠나이다.”이 원리는 넘쳐 흐르고, 항상 흐르는 위로와 기쁨의 셈이다. 그것은 “생명의 샘”이어서 영혼에게 항구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가져다 주며 순수하고 신선한 기쁨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영혼에게 생명이 되며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다시는 메마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생수의 샘”이어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며 또 영생의 증거가 된다.그것은 죄와 유혹에 대해서는 둘도 없는 특효약이 된다. 신실하고도 경건하게 하나님을 따라 사는 생활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본 자들은 죄의 미끼에 혹하여 낚시 바늘을 삼키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 줄테니 따라오라”고 큰 소리치는 것이 있어도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 따라서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며” 자기 발이 그 그물에 붙잡히지 않도록 지키기가 용이하다.
14:28 왕의 영광과 패망(잠언 14:28) 여기에는 두 가지의 정치적 금언이 나오는데 그 금언은 그 자체의 논증을 동반하고 있다. 1. 백성이 많은 나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임금의 커다란 명예가 된다. 그것은 그 임금이 잘 다스린다고 하는 것과 그의 시민이 안락하게 산다는 것을 표시해 준다. 타국인들조차 그의 보호 아래 와서 정착하도록 이끌려질 정도이다. 그것은 또 그와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산적이고 번식시키는 효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의 힘을 나타내며 그를 무시할 수 없는 자로, 두려운 자로 만들어 준다. “화살을 그 전통에 가득히” 가지는 임금, 곧 그 나라의 아비는 복되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4, 5). 이와 같이 온화하고 절도 있게 다스리며, 교역과 농업을 장려하고, 자기 치하에 있는 모든 자를 편안히 해줌으로써 국민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통치자는 지혜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영예가 일취월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 그의 교회에 많은 것을 추가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2. 백성이 줄면 그 통치자는 약화된다.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교역이 침체되고 경작되지 못하는 땅이 생기며 군대는 보충할 신병이 딸리고 전함에는 승선할 인원이 부족하게 되는 모든 현상은 인구가 충분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된다. 이와 같이 통치자의 존영과 안전은 자기 국민에게 많이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왜 통치자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고 가혹하게 통치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무엘 하 24장 13절에서 보듯 군주는 인구를 감소시키는 심판을 통하여 징계를 당한다. 백성이 많은 나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임금의 커다란 명예가 된다. 그것은 그 임금이 잘 다스린다고 하는 것과 그의 시민이 안락하게 산다는 것을 표시해 준다. 타국인들조차 그의 보호 아래 와서 정착하도록 이끌려질 정도이다. 그것은 또 그와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산적이고 번식시키는 효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의 힘을 나타내며 그를 무시할 수 없는 자로, 두려운 자로 만들어 준다. “화살을 그 전통에 가득히” 가지는 임금, 곧 그 나라의 아비는 복되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4, 5). 이와 같이 온화하고 절도 있게 다스리며, 교역과 농업을 장려하고, 자기 치하에 있는 모든 자를 편안히 해줌으로써 국민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통치자는 지혜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영예가 일취월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 그의 교회에 많은 것을 추가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백성이 줄면 그 통치자는 약화된다.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교역이 침체되고 경작되지 못하는 땅이 생기며 군대는 보충할 신병이 딸리고 전함에는 승선할 인원이 부족하게 되는 모든 현상은 인구가 충분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된다. 이와 같이 통치자의 존영과 안전은 자기 국민에게 많이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왜 통치자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고 가혹하게 통치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무엘 하 24장 13절에서 보듯 군주는 인구를 감소시키는 심판을 통하여 징계를 당한다.
14:29 격정의 억제(잠언 14:29) 1. 겸손은 지혜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 그 의무와 그의 이익이 무엇인지, 인간성의 약점과 인간 사회의 제도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깨닫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 뿐만 아니라 타인의 허물도 용서해 줄줄 알고, 자기 분노를 지체시키고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로서 어떤 자극에 의해서도 자신의 영혼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다.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은 참으로 이지적인 자로서 지혜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
2. 주체하지 못하고 격정을 발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광고하는 것이 된다.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조금만 자극되어도 마음이 가랑잎 타듯 하고, 소위 그 성정이 온통 불과 화약덩어리 같은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위엄이 나타나고 자기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줄로 생각하나, 실제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높이 쳐들면 누구에게나 잘 보이듯 그는 자신의 우매를 알리며, 높아진 자의 통치에 자신을 내어 주는 셈이된다(본문의 “나타낸다”의 단어는 “높인다”의미이다:역주) 겸손은 지혜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 그 의무와 그의 이익이 무엇인지, 인간성의 약점과 인간 사회의 제도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깨닫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 뿐만 아니라 타인의 허물도 용서해 줄줄 알고, 자기 분노를 지체시키고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로서 어떤 자극에 의해서도 자신의 영혼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다.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은 참으로 이지적인 자로서 지혜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주체하지 못하고 격정을 발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광고하는 것이 된다.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조금만 자극되어도 마음이 가랑잎 타듯 하고, 소위 그 성정이 온통 불과 화약덩어리 같은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위엄이 나타나고 자기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줄로 생각하나, 실제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높이 쳐들면 누구에게나 잘 보이듯 그는 자신의 우매를 알리며, 높아진 자의 통치에 자신을 내어 주는 셈이된다(본문의 “나타낸다”의 단어는 “높인다”의미이다:역주)
14:30 마음의 화평과 시기(잠언 14:30) 이 앞의 구절은 우리의 신망이, 그리고 이 구절은 우리의 건강이 격정을 잘 조절하고 성미를 잘 다루는 데에 따라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 간곡하고 우호적이며 명랑한 기질, 그리고 사랑과 온유함으로 구성된 치료의 심령은 “육신의 생명”이다. 그러한 마음은 신체가 좋은 상태를 갖도록 한다.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한 사람은 살이찌기 마련이다.
2. 마음이 초조하고 샘이 많으며 불만투성이인 자는 그런 마음자체가 형벌이 된다. 그런 마음은 육신을 초췌하게 만들고 동물적인 심령을 파먹고 살며 용모를 창백하게 만들기에 “뼈의 썩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딴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자들은 “이를 갈면서 소멸해야”할 것이다(시 112:10) 간곡하고 우호적이며 명랑한 기질, 그리고 사랑과 온유함으로 구성된 치료의 심령은 “육신의 생명”이다. 그러한 마음은 신체가 좋은 상태를 갖도록 한다.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한 사람은 살이찌기 마련이다.마음이 초조하고 샘이 많으며 불만투성이인 자는 그런 마음자체가 형벌이 된다. 그런 마음은 육신을 초췌하게 만들고 동물적인 심령을 파먹고 살며 용모를 창백하게 만들기에 “뼈의 썩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딴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자들은 “이를 갈면서 소멸해야”할 것이다(시 112:10) Rumpatur, quisquis rumpitur invidia.-즉 시기심이 폭발하는 자는 그 자신을 폭발할지이다.
14:31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와 동정(잠언 14:31)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대우를 보시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시고 계시다는 것을 본문이 말해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가해진 피해를 자신에게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신다. 가난한 자에게 몹쓸 짓을 하고 그가 가난한 자이며 도와 줄 이도 없는 자라고 하여 착취하는 자들은 그들 “지으신 이”를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지으시고 그 존재를 부여하셨으며,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도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 한 아버지, 한 조물주를 모시고 있다. 욥이 이 점을 얼마나 유의했는가를 살펴 보라(욥 31:15). 하나님께서는 빈자를 가난하게 지으시고 그의 분깃을 그렇게 정해 주셨다. 따라서 누구에게든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비난을 돌리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이 짓밟힐 수 있도록 낮고 천하게 만드심으로써 그들에게 가혹한 대접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자에게 주어지는 온정을 보시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이신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대우를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고 따라서 그들에게 자신의 흡족하심을 표명하실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도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품은 자들은 그것을 빈자에게 대한 동정심으로 표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특별하신 방법을 사용하셔서 불쌍한 이들을 보호하시고 후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가해진 피해를 자신에게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신다. 가난한 자에게 몹쓸 짓을 하고 그가 가난한 자이며 도와 줄 이도 없는 자라고 하여 착취하는 자들은 그들 “지으신 이”를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지으시고 그 존재를 부여하셨으며,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도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 한 아버지, 한 조물주를 모시고 있다. 욥이 이 점을 얼마나 유의했는가를 살펴 보라(욥 31:15). 하나님께서는 빈자를 가난하게 지으시고 그의 분깃을 그렇게 정해 주셨다. 따라서 누구에게든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비난을 돌리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이 짓밟힐 수 있도록 낮고 천하게 만드심으로써 그들에게 가혹한 대접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자에게 주어지는 온정을 보시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이신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대우를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고 따라서 그들에게 자신의 흡족하심을 표명하실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도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품은 자들은 그것을 빈자에게 대한 동정심으로 표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특별하신 방법을 사용하셔서 불쌍한 이들을 보호하시고 후원하신다.
14:32 악인과 의인의 종말(잠언 14:32) 1.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악인이 처하게 되는 절망적 상황.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지느니라.” 그는 세상에 너무나 집착심이 강하여 세상을 떠나갈 마음이 추호도 없지만 거기서 ?겨나게 된다. 그의 영혼이 그에게서 나오도록 요구되며 강요된다. 또한 죄는 그에게 너무나 굳게 밀착되어 있어서 그와 분리가 불가능하다. 죄는 저 다른 세상에까지 그와 더불어 간다. 그는 “자기 환난에 엎드러지고” 자기 죄 가운데서, 범죄와 죄의 권세 아래서 죽으며, 불의한 자로 여겨지고 성별되지 못한다. 그의 악함은 바람 앞의 겨와 같이 그를 빨리 날려 버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축출해 버리는 폭풍이다.
2. 경건한 자가 자기의 길을 끝마칠 때 누릴 안락한 상황.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그에게는 죽음 저편에도 행복이 있고, 이 세상에서 평생 누렸던 것보다 더 훌륭한 것들이 저 세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는 “의인”이 그 속에서 소망의 은혜를 얻게 된다. 비록 고통이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들은 소망하는 선한 것들을 목전에 가지고 있으며,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소망의 축복을 자기들 앞에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악인이 처하게 되는 절망적 상황.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지느니라.” 그는 세상에 너무나 집착심이 강하여 세상을 떠나갈 마음이 추호도 없지만 거기서 ?겨나게 된다. 그의 영혼이 그에게서 나오도록 요구되며 강요된다. 또한 죄는 그에게 너무나 굳게 밀착되어 있어서 그와 분리가 불가능하다. 죄는 저 다른 세상에까지 그와 더불어 간다. 그는 “자기 환난에 엎드러지고” 자기 죄 가운데서, 범죄와 죄의 권세 아래서 죽으며, 불의한 자로 여겨지고 성별되지 못한다. 그의 악함은 바람 앞의 겨와 같이 그를 빨리 날려 버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축출해 버리는 폭풍이다.경건한 자가 자기의 길을 끝마칠 때 누릴 안락한 상황.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그에게는 죽음 저편에도 행복이 있고, 이 세상에서 평생 누렸던 것보다 더 훌륭한 것들이 저 세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는 “의인”이 그 속에서 소망의 은혜를 얻게 된다. 비록 고통이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들은 소망하는 선한 것들을 목전에 가지고 있으며,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소망의 축복을 자기들 앞에 대하고 있는 것이다.
14:33 지혜에 대한 겸손 (잠언 14:33) 1. 겸손은 지혜의 표지이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는 자기 보물을 자랑하지 않도록 그것을 감춘다(마 13:44). 그는 비록 자기가 받은 재능을 묻어두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팔고 사지는 아니한다. 그의 “지혜는 그 마음에 머무느니라.: 그는 자기가 있는 것을 소화하여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기는 하나 그것을 가지고 불필요하게 말하거나 떠들어대는 법이라곤 없다. 마음은 애정의 온상이며 지혜는 그곳에서 마음의 실천적 사랑 속에 안주해야 하며 머리속에서 헤엄치고 있어서는 안된다.
2. 겉으로 나타내고 허세부리는 것은 어리석음의 표시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나부랭이라도 조금 가지게 되면 매우 걸맞지 않은 경우에조차 그 지식을 과시하려 하며, 그 지식을 머리와 어깨로 실현하려 한다.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우매는 그들의 입빠른 말로 “나타나느니라.”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가 자기 지혜를 나타내는 게 가치있는 일인가의 여부를 생각하느라고 고심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기 어리석음을 나타내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다. 겸손은 지혜의 표지이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는 자기 보물을 자랑하지 않도록 그것을 감춘다(마 13:44). 그는 비록 자기가 받은 재능을 묻어두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팔고 사지는 아니한다. 그의 “지혜는 그 마음에 머무느니라.: 그는 자기가 있는 것을 소화하여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기는 하나 그것을 가지고 불필요하게 말하거나 떠들어대는 법이라곤 없다. 마음은 애정의 온상이며 지혜는 그곳에서 마음의 실천적 사랑 속에 안주해야 하며 머리속에서 헤엄치고 있어서는 안된다.겉으로 나타내고 허세부리는 것은 어리석음의 표시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나부랭이라도 조금 가지게 되면 매우 걸맞지 않은 경우에조차 그 지식을 과시하려 하며, 그 지식을 머리와 어깨로 실현하려 한다.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우매는 그들의 입빠른 말로 “나타나느니라.”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가 자기 지혜를 나타내는 게 가치있는 일인가의 여부를 생각하느라고 고심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기 어리석음을 나타내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다.
14:34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의(잠언 14:34) 1.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정의는 곧 그 나라의 명예가 된다. 정부의 의로운 정치, 사람과 사람간의 공평 무사한 평등, 경건한 신앙에 대한 공적인지지, 미덕의 전반적 실천과 공인, 유덕한 자의 보호와 보존, 타국인에게 대한 동정과 자선(“보시”(布施)는 때로 “의로움”이라 칭호해진다) 등등, 이러한 것들은 “나라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그러한 것들은 권좌를 받들어 주고 국민의 마음을 고양시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적합한 국가를 만들어 주며, 그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의 “성민”으로서 높은 민족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신 26:19).
2. 한 나라를 지배하는 악은 곧 그 나라의 수치가 될 것이다. “죄는” 어떤 성읍이나 나라든지 “욕되게 하며,” 그들을 자기 인근 도시나 국가 가운데서 멸시받게 만든다. 흔히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면에 대한 본보기가 되었던 백성이다. 그들이 선했던 때에는 크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저버렸던 때에는 그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그들을 모욕을 하고 유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의 억압과 덕의 옹호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통치자의 권세요 도리이다.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정의는 곧 그 나라의 명예가 된다. 정부의 의로운 정치, 사람과 사람간의 공평 무사한 평등, 경건한 신앙에 대한 공적인지지, 미덕의 전반적 실천과 공인, 유덕한 자의 보호와 보존, 타국인에게 대한 동정과 자선(“보시”(布施)는 때로 “의로움”이라 칭호해진다) 등등, 이러한 것들은 “나라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그러한 것들은 권좌를 받들어 주고 국민의 마음을 고양시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적합한 국가를 만들어 주며, 그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의 “성민”으로서 높은 민족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신 26:19).한 나라를 지배하는 악은 곧 그 나라의 수치가 될 것이다. “죄는” 어떤 성읍이나 나라든지 “욕되게 하며,” 그들을 자기 인근 도시나 국가 가운데서 멸시받게 만든다. 흔히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면에 대한 본보기가 되었던 백성이다. 그들이 선했던 때에는 크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저버렸던 때에는 그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그들을 모욕을 하고 유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의 억압과 덕의 옹호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통치자의 권세요 도리이다.
14:35 슬기로운 신하와 욕된 신하(잠언 14:35) 본문은 질서가 잘 잡힌 조정이나 정부에서는 공적소임을 맡은 자들의 공적에 따라 웃음과 은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솔로몬은 다음 규칙을 따라 행하겠노라고 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1. 슬기롭게 행하는 자들은 그들을 남몰래 해치려고 노력하는 원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존중될 것이며 총애를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 어떤 사람이든지 봉사를 하기만 하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한 집단을 즐겁게 하거나 그를 좋아하는 이의 마음에 들게 될 것이다.
2. 이기적이고 거짓되며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빈자를 압제하며, 불화를 심고 이처럼 “욕을 끼치는” 자들은 어떤 후원자가 그들을 변호해 주더라도 축출당하고 조정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사실. 슬기롭게 행하는 자들은 그들을 남몰래 해치려고 노력하는 원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존중될 것이며 총애를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 어떤 사람이든지 봉사를 하기만 하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한 집단을 즐겁게 하거나 그를 좋아하는 이의 마음에 들게 될 것이다.이기적이고 거짓되며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빈자를 압제하며, 불화를 심고 이처럼 “욕을 끼치는” 자들은 어떤 후원자가 그들을 변호해 주더라도 축출당하고 조정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사실.
잠언 14장. 하나님 경외함은 인간 관계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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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14장. 하나님 경외함은 인간 관계에서 나타난다 (찬 539)
1. 성경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눈다. 흑백적 구분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결국 역사의 마지막에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있다. 잠언은 이 사실을 꾸준히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해서 2, 26~27, 31절이 말한다. 행실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경멸하는지 알 수 있다(2). 교회생활과 종교생활을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체적인 행실을 보고 아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견고한 요새를 가진 사람과 같아서 요동하지 않는다(26). 사람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반영이다(31). 요한일서의 말씀대로, 보이는 형제에게 잘 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잘 할 수는 없다(요일 4:20; 약 2).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경외함은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참된 경건은 참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이런 경건한 어른들이 교회에 많아져야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자리로 초대하신다.
3.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대조가 기술된다(1,3,5-9,15-18,24,29,33,35). 지혜가 집을 세워 사람들을 초청하듯(잠 9) 지혜로운 여인도 집을 세우지만 미련한 여인은 집을 허문다(1).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은 거만한 사람인데 그는 지혜를 구해도 얻을 수가 없다(6). 권위를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미련한 자의 특징이다. 또 미련한 자는 죄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9). 죄에 대한 태도는 지혜와 미련의 갈림길이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미련은 분별력이 없어서 모든 말을 믿는 경향이 있다(15). 미련한 자는 지혜 곧 신중함이 없이 성급히 덤비는 자이다(16). 지혜있는 자에게는 재물과 소유가 면류관처럼 어울려도 미련한 자의 소유는 미련을 드러낼 뿐이다(24). 미련한 자는 성급하게 화를 내지만 명철한 자는 노하기를 더디 한다(29). 미련은 왕 곧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35).
4. 의인과 악인에 대한 구분이 다루어진다(11-12,14,19,22,32,34). 12절은 일반적인 기준이 영적 기준과 다름을 보여준다. 사람 보기에 바른 길이 꼭 옳은 길은 아니다. 의인은 죽음이라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다고 선언한다(32). 이것은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인가!
5. 본문은 또 많은 상황 속에서의 지혜를 말한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해서 청소를 할 필요도 없겠지만, 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도 없을 것이다”(4). 인생에는 기쁨만 있거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교차되어 나타나는데, 그 모든 환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13).
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또한 죄를 중히 여기고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지혜를 주옵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이 있음을 알게 하사 경건한 어른으로 빚어져 가게 하옵소서.”
매튜헨리주석643-잠언 14장
잠언 14장
Ⅰ.잠언 십사장 14:1-35
1. 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1)
좋은 아내는 한 가정의 커다란 축복이다. 경건하며 근면하며 신중한 슬기로운 아내로 인해 가사는 번창하며 부채는 청산하게 되고 자녀들은 훌륭하게 자라난다. 그래서 그 가정은 안으로는 평안하고 밖으로는 신망을 얻는다. 이렇게 해서 집이 세워진다. 남편 때문만이 아니라 주부가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해서 파멸하게 되는 가정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고집이 세며 낭비가 심하고 나들이나 잔칫집에 가고 노름하며 극장가는 것을 좋아하는 미련한 여자는 ‘자기 손으로 집을 허무는’ 것같이 집안을 망하게 한다.
2.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2)
은혜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으며 죄가 있는 곳에는 오직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만이 있다.
3.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입술(3)
마음에는 교만이 있고 머리 속에는 그 교만을 억제할 만한 지혜가 없다면, 대개 그 말속에 교만이 드러난다. 그 입에는 교만이 있어서 자랑하며 냉소한다. 이것은 교만의 매이다. 이것은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에서 자라난다. 뿌리째 뽑아 내지 않으면 이 가지를 제거할 수가 없다. 또한 이것은 치고 때리는 매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을 치는 교만의 매이다.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교만한 자가 혀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않도록 지켜 주며 거만한 자들이 흔히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과는 달리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준다.
4. 근면의 유익(4)
농사를 게을리 하면 가난해지기 마련이다. 땅을 갈고 곡식을 떠는 ‘소가 없으면 구유는’ 비어서 깨끗하려니와 가축에게 줄 여물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사람이 먹을 양식도 없는 법이다. 구유가 두엄이 없이 깨끗하다면 깔끔한 사람을 만족시킬지는 모르나 그 안이 더러워진다고 소를 팔고 구유를 깨끗이 한다는 것은 농사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안 된다. 이는 전원 생활을 좋아하면서 농사짓는데 마음이 없고 소보다 말을 많이 키우고 돼지보다 개를 많이 키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준다. 그로 인해서 가족들은 틀림없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땅에서 수고하는 자들은 땅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5. 신실한 증언과 거짓 증언(5)
재판할 때는 증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증인은 도의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수적이다. 양심적인 증인이라면 조금도 사실이 아닌 일은 감히 증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뇌물을 받았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협박에 넘어간 증인은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인 것처럼 자신있게 ‘거짓말을 뱉는다.’
6. 지혜를 얻는 자의 명철함(6)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지혜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만한 자들이어서 훈계를 구하는 것도 놀리려는 마음에서 한다. 악에서 떠나고 편견을 버리며 악한 습성을 모두 버리고자 하는 명철한 자는 교훈을 쉽게 이해하고 감화를 받는다.
7.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고(7)
악인은 미련한 자이다. 그런 자를 멀리하고 그들 곁에서 떠나라. 악한 말을 견책하기 위해서는 간혹 악한 무리와 결별하고 악한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상책일 때가 있다.
8.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8)
여기서 칭찬하고 있는 것은 생각만 있는 학자의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슬기로운 자의 지혜이다. 남의 일에 참견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살피고,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잘 아는 것이 바로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다. ‘악인은 자기 자신을 속인다. 악인은 자기의 길을 바로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자기가 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길을 잃어 버리게 된다.
9. 미련한 자와 정직한 자(9)
악인은 악을 행하는데 완악하다. 그들은 죄를 심상히 여긴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보고는 우스운 일로 여기고 자기의 죄를 보고 가벼운 일로 여긴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가볍게 여긴다. 선한 사람들은 죄를 짓더라도 속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다. 그들은 서로 선의를 갖고 있다. 그들 가운데 범죄가 있는 경우에는 서로 동정하고 긍휼을 베풀지언정 죄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
10. 마음의 고통와 즐거움(10)
고통 특히 마음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혹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음하는 이상으로 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맛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더욱이 함께 참여하지 못 하는 것이다.
11. 정직한 자와 악한 자의 흥망(11)
죄는 훌륭한 집도 망하게 한다. 의는 아주 보잘것없는 가문도 흥하게 하며 견고하게 한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아무리 접고 펴는 누추한 것이라도 무한하신 지혜가 선히 보시기만 하면 흥할 것이다.
12. 자기 기만의 결국(12)
무지하고 부주의하며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길은 그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바른 것같이 보인다. 더욱이 종교적 위선과 외식하는 행위와 말뿐인 개혁과 맹목적인 열심의 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오른팔같이 믿던 거짓말로 멸망하게 된다. 자기를 속이는 자들은 결국 자기를 멸망시키는 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13. 세상 환락의 헛됨(13)
죄인들은, 때로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큰 곤란을 당하게 된 경우에도 그런 것같이 보이기 싫어서 즐거운 듯이 가장해서 슬픔을 감춘다. 실제로 사람들이 즐거울 때에도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또한 있어서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양심이 말해 준다(호9:1). 그 기쁨의 허구성을 볼 수밖에 없다. 신령한 기쁨은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위선자의 기쁨은 입가에만 있다. 즐거움과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죄인과 의인에 대한 보응(14)
고생하는 것을 싫어하고 쾌락만을 바라서 하나님과 자기의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자라지 않게 그 행위를 갚아 주실 것이다.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러울 것이다. 선한 사람도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역사해 주신 자기의 행위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죄인들은 지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천국에 이르러서야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5. 신중한 행동의 유익함(15)
온갖 뜬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무조건 신용하며, 갚겠다고 말만 하면 믿어 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슬기로운 자는 믿기 전에 시험을 해본다.
16. 두려워함과 방자함(16)
경건함을 지니고 있으면 온갖 거룩한 것으로 인도해 주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지켜 준다. 악에서 떠나며, 죄의 근처에라도 가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죄의 첫 발자국을 딛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방자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는데도 ‘방자하여 스스로 믿고’ 열렬히 계속하며 반역하기를 고집하고 모험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17. 분노와 악한 계교(17)
성미가 까다롭고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멸시받게 한다. 복수할 기회가 올 때까지 분노를 숨기고 있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 성질이 급해서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화가 곧 가라앉고 화낸 것을 후회하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보기에 가증스럽다. 그런 사람은 치료한 방법도 막을 방법도 없다.
18. 어리석은 자의 지식(18)
죄악은 죄인의 수치이다. 어리석은 것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자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 그들이 귀중히 여기는 것도 사실은 어리석은 것이다. 지혜는 지혜로운 자의 영화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지혜로운 머리는 면류관을 쓴 머리처럼 존경을 받는다. 지혜는 자기의 자녀들에게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을 받는다.
19. 악인의 비참함(19)
악인은 종종 빈곤하고 비천해진다. 그래서 구걸해야만 하게 되고, 악함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 반면에 선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부해지고 베풀 것이 많아지며 악인에게까지 줄 수 있게 된다. 즉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시는 한 생계를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0.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20)
가난한 자는 동정하고 구제해야 함이 당연한데 도리어 미움을 받고 이웃까지도 그를 멀리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떠나 버리는 철새 친구들이다. 하나님을 친구 삼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할 때에도 우리를 저버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부요한 자에게는 친구가 많은데, 그들은 도움받을 것이 있나 하고 바라는 친구들이다.
21. 멸시와 동정(21)
사람의 성품은 가난한 이웃을 대하는 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출생이 천하고, 교육을 못 받고, 남루한 옷차림을 했다고 해서 이웃을 업신여기며 그에게 관심갖는 것을 창피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죄인이며 죄인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해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는 자이다.
22. 악행과 선행을 도모하는 자(22)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악을 꾀하는 것은 교묘하게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지능적으로 꾸민 바를 이루면 훨씬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지나칠 수는 없다. 이웃에게 대하여 악을 도모하는 자는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파멸로 끝이 날 것이다. 인심이 후해서 후히 줄 일을 도모하고 선을 행할 기회를 찾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방법을 모색하는 자들은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사32:8).
23. 말과 실천의 차이(23)
근면한 사람들은 대개 번창하는 사람들이다. 손을 움직여야 한 푼이라도 번다. 자기 일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떠들어대기 좋아하며 잡담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자들은 가진 것을 낭비하며 궁핍을 이루게 될 뿐이다. 이것은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고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에 힘쓰는 자들은 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신앙이 말에서만 끝이 나면 영적으로 빈곤해지며 거지가 될 것이다.
24.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재물(24)
지혜롭고 선한 사람에게 재물이 있다면, 재물로 인해서 그 사람은 더 존귀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며, 더 영향력있는 사람이 된다. 재물과 함께 그 재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세상에서 선을 행할 귀중한 기회가 있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재물로 인해 그 악함이 드러날 뿐이다.
25. 진실한 증인과 거짓 증인(25)
진실한 증인은 무고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생명만큼이나 귀중한 명예까지도 구해낸다. 거짓 증언은 거짓을 날조하며 자신 만만하게 그 거짓을 내뱉는다. 거짓 증거를 찾아내서 엄단하는 것은 국가에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진실이 사회를 하나되게 하기 때문이다.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26,27)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은혜로운 행동을 가져오게 하는 온갖 은혜로운 원리로 표현되어 있다. 이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는 마음의 평강과 안정이 있다. 이 원리를 고수하면 화평을 능히 지킬 수 있으며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담대할 수 있다. 이 원리는 후손에게까지 축복을 물려준다. 경건한 자의 자녀는 종종 부모의 훈계와 모범으로써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되며 부모의 신앙과 기도로 인해서 더 평탄한 길을 걷곤 한다. “우리 조상들이 당신을 신뢰하였사오매 우리도 그렇게 하겠나이다.” 이것은 영원히 넘쳐흐르는 위로와 기쁨의 샘이다. 이는 또한 죄악과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는 특효약이다.
27. 왕의 영광과 패망(28)
여기서는 정치에 있어서 두 가지 철칙이 나온다.
(1) 백성이 많다는 것은 왕의 명예이다. 그것은 왕이 통치를 잘한다는 표이다. 그럼으로써 외국인들까지도 가서 그 왕의 보호 아래 정착하며, 백성들은 평안히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화하고 절도 있게 나라를 다스리며 무역과 농업을 장려해서 인구가 증가하도록 촉진시키는 통치자는 지혜로운 것이다.
(2) 백성이 줄어들면 왕권은 약해진다.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무역은 침체되고 토지는 남아돌며 군대에는 보충할 신병이 부족하고 전함에는 승선할 인원이 부족하다. 이 모든 것이 인구가 충분치 못한 데서 기인한다.
28. 격정의 억제(29)
온유는 곧 지혜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며 자신의 허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도 용서해 주는 방법을 알고 어떤 자극을 받아도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자는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인간 본성의 약점을 바로 아는 자이다. 주체하지 못하고 격정을 발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공개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서 조그만 자극에도 마음이 가랑잎 타듯하고, 마음이 온통 불과 화약덩어리 같은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권위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나 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9. 마음의 화평과 시기(30)
건강은 격정을 잘 다스리고 기분을 평안하게 하는데 달려 있다. 사랑과 온유로 빚어진 건강한 마음 그리고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명랑한 기질은 ‘육신의 생명’이다. 이것은 신체도 건강하게 한다.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한 사람은 살이 찌기 마련이다. 마음이 초조하고 샘이 많으면 불평이 가득한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뼈가 썩게 된다.
30.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와 동정(31)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들은 누구나 그를 만드신 자를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만드셨으며 그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다 한 아버지, 한 창조주를 모시고 있다. 가난한 자들에게 행해진 친절을 하나님은 자신을 높이는 일로 생각하시며 따라서 하나님이 그로 인해 기뻐하고 계심을 보여 주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주었도다.’
31. 악인과 의인의 종말(32)
악인은 세상에 너무나 집착해서 세상을 떠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쫓겨나게 된다. 영혼이 그에게서 나오도록 요구되고 강요된다. 그는 악을 행하는 가운데 쫓겨나게 되고 죄 중에서 죽는다. 경건한 사람은 자기 길을 끝마칠 때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그는 죽음 저편에 있는 행복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누렸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저 세상에서 누리게 될 것을 소망한다.
32. 지혜에 대한 겸손(33)
겸손은 지혜의 상징이다. 지혜는 마음에 머문다. 그는 자기가 아는 것을 잘 소화해서 언제나 쓸 수 있도록 준비는 하고 있으나 그것을 떠들어대지는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아는 것이 조금만 있어도 과시한다.
33.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의(34)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정의는 곧 그 나라의 명예이다. 정부의 의로운 정치, 사람 사이의 평등, 외국인에 대한 동정과 긍휼은 보좌를 튼튼하게 해주며 백성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만한 나라로 만들어 준다. 한 나라의 악은 곧 그 나라의 수치이다. 죄는 어떤 도시나 나라도 욕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했을 때에는 왕성했지만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에는 주위의 모든 민족이 그들을 모욕하고 유린하였다.
34. 슬기로운 신하와 욕된 신하(35)
질서가 잘 잡힌 정부나 조정에서는 공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의 공적에 따라 은총이 돌아간다. 지혜롭게 행하는 자들은 존경을 받고 총애를 받는다. 봉사를 하기만 하면 집단이나 사람의 인정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이기적이고 거짓되며 나라를 반역하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불화를 심는 자는 추방을 당하게 된다.
잠언 14장 1절-19절, 매일성경에 따른 본문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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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여인이 집을 세울 수 있습니다. 여인의 힘이 약해 보이지만, 여인의 지혜는 온 집을 흔들리지 않게 세워갈 수 있습니다. 또한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는 말씀은 희생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역시 여러 종류의 교훈을 통하여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 14장 1절-19절, 개역개정성경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잠언 14장 1절, 집
지혜로운 여인의 가정을 의미합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집을 아름답게 세우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고대 근동 사회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가정의 아내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가정의 모든 경제들을 돌보았었습니다.
잠언 14장 2절,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는 지혜 문학에서나 구약 성경에서나 전체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경건한 태도를 지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포함하는 태도입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교훈합니다(1:7, 9:10).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14장 3절, 미련한 자의 입
미련한 사람은 충동적으로 함부로 말하고 논쟁적으로 타인과 대화하기 때문에 자주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10:19; 17:27)과 지혜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하는데, 이러한 신중한 언행이 곧 그에게는 안전을 보장합니다(11:9, 12-13).
잠언 14장 4절,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만약에 농부에게 소가 없다면, 구유는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가 없기 때문에 우유나 고기 등의 여러 음식물들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해야만 추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잠언 14장 6절,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거만한 자들은 훈계와 교훈을 멸시하기 때문에 결코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13:1; 15:12).
잠언 14장 8절,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지혜로운 자들은 지혜를 추구하고 얻음으로써 실질적인 유익을 얻고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사람들이 매사에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21:29).
잠언 14장 9절, 죄
여기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인 ‘아솸'(אָשָׁם)은 속죄제(특별한 유형의 희생, 레 5:1)나 일반적인 죄(창 26:10)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의미는 어리석은 자들은 교만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며 범죄하였을 때 회개하거나 화해를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오만함(잠 21:24)과 악한 것을 좋아하는 것(10:23; 13:19)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책임마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잠언 14장 11절,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장막은 그 사람의 삶의 상태와 행복을 나타내는 단어로 자주 사용되어 왔습니다(욥 8:22). 잠언은 성공적인 삶이 곧 지혜와 의의 보상의 한 형태이라고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언 14장 12절,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16장 25절에 반복되는 바와 같이, 잠언에서는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날 수도 있는 음란한 여인의 길에 대해 언급합니다(5:3-7; 7:25-27).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의 길은 즐거움과 화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3:17-18).
잠언 14장 13절,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전도서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다소 비관적인 잠언의 이 부분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비관적인 희노애락은 또한 인류의 궁극적인 종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전 7:2-4).
잠언 14장 14절, 굽은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인 “수그”(סוּג)는 유턴을 하여 되돌아오는 전환점에 대한 용어입니다. 이 단어는 자주 하나님으로부터 되돌아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시 44:18; 55:3; 사 59:13).
잠언 14장 15절, 어리석은 자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인 “페티”(פְּתִי)는 중요한 것을 무시하거나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어리석다기보다는 “단순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페티는, 거만한 자들과는 달리 배움의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잠 21:11; 1:4).
잠언 14장 16절, 악을 떠나나
사악함을 거부하고 선함을 추구하는 것 둘 다를 의미합니다(시 34:14; 37:27).
잠언 14장 18절,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지식이나 지혜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보상이 되며(잠 12:4; 14:24; 16:31; 17:6), 무지한 자(단순한 자)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 ㅟ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잠언 14장 19절,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악을 이기는 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묘사입니다. 패배한 자들은 승리한 자들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종이 되겠다는 맹세를 해야만 했었습니다(창 37:7-8; 사 6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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