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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 Desiring God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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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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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 그리스도의 말씀이 육신이되어 – Wordproject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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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wordproject.org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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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요 1:14)?

일반적으로 전체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고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4:32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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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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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복음 1:14) – 함께걷는교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복음 1:14) · 우리가 사는 곳에 오셨다. · 우리는 그 영광을 두 눈으로 보았다. · 단 하나뿐인 그 영광은 · 아버지 같고,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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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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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 아포슬 한인 …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8-9-20.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1:12~14.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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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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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 1:14)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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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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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Newsong Church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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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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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 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 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 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 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 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974년 봄, 제가 독일에서 신학공부 를 마무리할 때 쯤, 제 지도교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강의를 대신 하기 위하여 오스카 쿨만이라고 하는 위대한 신 약 학자가 바젤 대학에서 뮌헨 대학으로 와서 요한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8주에 걸친 과정 중 무려 13주를 요한복 음의 첫 14개 절에 할애하였습니다. 그처럼 요한복음의 첫 구절들은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한 진리에 대한 크리스마스 메시지

따라서 저는 이 본문을 모종의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선택하였으며 이를 단 한 번의 설교로 전하고자 합니다. 원래는 여러 번에 걸쳐서 깊이 다루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설교로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특별히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 본문은 크리스마스에 전하기에 참으로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4절 내용은 크리스마스에 매우 적합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가 갖는 의미입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태어나심으로써, 이 분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인격 안에서 하나님은 신인 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고른 두 번째 이유는 이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진리로 참으로 충만 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관점들이 유행 하는 오늘날에 이 진리들을 선포하고 이 진리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세상의 주요 비기독교 종교들마저 오늘날 그들이 예수님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어떤 면에서 믿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최근 들어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우리들보다 더 예수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 입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의 치욕적인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므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예수님을 더 존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성경의 그리스도와 다른 종교에서 자기들도 공경한다고 허황되게 주장하는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점을 잘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당시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해 가장 친밀하게 잘 알고 있었던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진술한 이 위대한 진 술을 통해 육신이 된 말씀에 관한 다섯 가지 진리를 규정하고 설명하고 이 진리들을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자 합니다. 그 후, 여 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첨예하게 다른 두 가지의 가능한 반응들을 대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목적은 여러분 이 예수님을 그분의 참된 모습 그대로 보고, 그를 여러분의 주와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영접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미 그를 영접하였다면, 더욱 더 그를 영접하고, 그를 보물로 여기고, 그를 기뻐하고, 그를 따르고, 그를 드러내게 되길 기도합니다.

자, 그러면 이 본문 안에서 “육신이 된 말씀”에 대한 다섯 가지 진리에 대해 시작하도록 합시다.

육신이 된 말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17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예수”는 “구 주”를 뜻하는 말로서 요셉이 주의 천사에게서 전해들은 이름입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 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 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유대인들이 그 민족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고 세상 정사를 그 어깨 위에 메실 분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온 왕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베드 로에게 말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41).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그리고 요한이 덧붙임]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따라서 이 구절들에서 말하고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라 알려진 분입니다. 그리고 각 이름은 엄 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구주이면서 왕이십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은 사람으로 지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으로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라는 구절과 “이 말 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두 개의 구절들에 담겨져 있는 신비에 저항하는 종파 그룹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어 왔습니다 . 그들은 단지 인간의 개념에 속박되어서, 이 두 어구가 함께 성립하는 신비를 보지 못하고 이 두 어구가 함께 성립할 수는 없다 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셨거나 하나님과 함께 계셨거나 둘 중 하나만 성립하지 둘 다 성립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이시면 하나님과 함께 계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두 문장 의 진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들은 때때로 번역을 바꾸기까지 합니다(여호와의 증인에서 그렇게 하듯이). 이렇게 말입니다. “말씀 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시니라.” 하지만 요한복음이나 성경 다른 부분들에서 볼 때, 기독 교 회가 그러한 가르침을 참되고 정통적인 가르침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에는 마땅한 문법적 이유와 문맥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1절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분은 육신이 되시기 전에 하나님이셨고, 그의 아버지도 하 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와 아들 두 위격이 표현되어 있고 동시에 한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삼위일체로 알고 있는 진리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중 한 위격이신 아들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요한복음 20:28에서의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육신이 되시기 전의 그 분을 요한은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 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왜 그분은 “말씀”이라고 불렸을까요? 만일 말씀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면 과연 무엇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적절했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행동”이라고 불렸다면 어떨까요: “태초에 행동이 있으니라 이 행동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행동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행동과 말씀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행동은 훨씬 더 모호합니다. 우리 말들도 때때로 그 뜻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경우가 있는데, 행동은 그 의미가 훨씬 더 불명확하고 모 호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설명할 때 통상 행동을 사용하지 않고 말을 사용합니다. 말은 행동보다 의미를 더 명확 하게 담아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가운데 많은 능력의 행동들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어떤 우선권을 부여하십니다. 제 생각에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명확성과 의사소통을 중요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요한이 “말씀”대 신 “생각”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태초에 생각이 있으니라 이 생각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생각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만 생각과 말씀은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은 의사 소통을 형성하기 위하여 생각하는 사람의 외부로 나와 표현되는 것입니다 . 요한 사도가 여기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나타나시기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느낌”이라고 불렸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느낌이 계시니라 이 느낌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느낌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만 느낌이라는 말도 어떤 명확한 개념이나 의도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행동처럼 느낌도 모호한 면이 있으며 말에 의하여 추가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말씀”이 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는 의사소통 혹은 교통을 위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영원부터 아 버지와의 의사소통 혹은 교통을 위하여 존재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신적인 의사소통 혹은 교통이 되셨 는데, 이는 이차적이지만 우리에게 무한히 중요합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부른 것은 그분이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 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은 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사도가 여기서 이 말씀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밑줄 그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즉각 적으로 창조주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의 기원이십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하였을 때, 이는 그가 하나님이시고 피조물이 아님 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10절에 나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 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이는 세상의 죄악된 눈멂의 심각성과, 예수님에 대한 거부 안에 있는 세상의 악의 거대함을 강조하고 있 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우리를 만드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오시나, 세상은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 금까지 육신이 되신 말씀에 대하여 살펴본 것은 무엇입니까? 1) 그는 예수 그리스도, 구주이며 기름부음 받은 왕이십니다. 2) 그 는 하나님,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십니다. 3) 그는 말씀–교통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 니다

요한복음 1:4입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모든 생명은 이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본 바와 같이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촛점은 필시 영적인 생명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들이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거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 로 죽어 있고 그러므로 영적으로 눈 먼 자들입니다. 요한 사도는 여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문제들 모두에 대 한 해결책이 되십니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이 생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빛이 됩니다.

요 한복음 5:21은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다시 말하면 , 그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죽은 자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셔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과 같은 일을 우리를 위하여 영 적으로 행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의하여 주어진 그 생명은 빛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 방식으로 관련 됩니다. 첫째, 그 생명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죽은 사람에게 생명이 주어질 때, 그들은 보게 됩니다. 즉, 사람이 태어 날 때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영적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길,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 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따라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그 후 생명은 빛–영적인 실재를 보는 능력–이 됩니다.

둘째, 예수님 자신이 보여지는 빛이십니다. 우리가 불신자일 때, 우 리는 과연 무엇에 대하여 눈 멀었던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즉 예수님의 영광에 대하여 눈 멀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고 말할 때, 그는 필시 육신이 되 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광휘를 보는 능력이신 동시에 그 광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라는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는 요한복음 17:24의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 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두 번에 걸쳐 주장하신 ”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한복음 8:12; 9:5) 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육신이 되신 말씀께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그는 볼 수 있는 능력이며 눈이 열린 자들이 보게 되는 광휘이십니다.

요약하면, 육신이 되신 말씀에 관하여 살펴본 다섯 가지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는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주시며 하나 님께서 기름부으신 만유의 왕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불리셨습니다: 교통하는 하나님(God-in-communication),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God- Expressing-Himself)이십니다.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 자신은 피조 물이 아니십니다. 그는 생명과 빛이십니다: 보게 하는 살아 있는 능력이시며 그를 보는 자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시는 찬란한 영광을 가진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 모든 계 시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가능한 반응들 중 하나: 나는 그를 모르며 그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 중 한 반응에 대하여 10-11절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 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를 모르며 그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며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빛이신 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말입니다. 제발 간청하노니,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반응: 나는 그분을 알며 그분을 영 접합니다.

다른 반응은 12-13절에서 발견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저는 오늘 아침에 도 이런 반응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하신 분,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분을 영접하십시오. 그를 구주로 그리고 왕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그리고 말씀으로 그리고 창조주로 그리고 생명으로 그리고 빛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 든 것이 당신을 위하여 있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어두운 사망의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게 하신 날입니다. 동굴 입구에서 불을 피우고 동굴 안으로 불을 던져 넣는 방법 대신에 그는 동굴 입 구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죽었으니 빛을 향해 밖으로 나오너라. 나를 너의 하나님, 너의 대속 물, 너의 보물로 영접한다면, 나의 죽음은 너의 죽음으로 계산되고 나의 의는 너의 의로 계산될 것이며, 너는 영생을 갖게 될 것 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육신이되어

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요 1:14)?

질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요 1:14)?

답변

“말씀”이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신약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두 개의 헬라어가 있습니다. 바로 레마(rhema)와 로고스(logos)입니다. 이 두 단어는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레마”는 일반적으로 “구어”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38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레마]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그러나 “로고스”는 더 광범위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 1장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체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고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4:32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로고스]이 권위가 있음이러라”고 말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특별한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전하신 전체적인 메시지를 듣고 놀랐습니다.요한복음 1장의 “말씀”(로고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하기를 원하시는 메시지의 전부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1절), 만물의 창조에 참여하셨으며(3절), “사람들의 빛”이십니다(4절).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십니다(골 1:19; 2:9; 요 14:9).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과 구속의 메시지는 수세기 동안 무시되어 왔습니다(겔 22:26; 마 23:37).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쉽게 무시하고 죄와 반역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로 인해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마 1:23; 롬 8:3; 빌 2:5–11).헬라인들은 “마음”이나 “이성” 또는 “지혜”를 지칭하기 위해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한은 이 헬라어의 개념을 사용하여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들고(시 33:6) 궁핍한 자를 구원했습니다(시 107:20).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영원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호소합니다.예수님은 누가복음 20:9–16에서 왜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선지자들을 거부했고 이제 아들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는 이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요 10:16; 갈 2:28; 골 3:11).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약함도 온전히 이해하시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히 4:15).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8-9-20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1:12~14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서 난 자들이라 (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설교 요약]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큰 그림에서 말씀 가운데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구원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온전히 이루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땅에 오실 인류를 구원할 자,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2가지 이름>을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 ‘임마누엘’ (Immanuel);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God with us) (마. 1:23)

둘째 ‘예수’ (Jesus);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자”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마. 1:21)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2가지 이름의 의미를 통해서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를 중심으로 그분이 이루신 구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오실 메시야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9:6/ 빌.2:6/ 요.1:1). 바로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성자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탄생과 관련된 2가지 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극명하게 증거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것은

첫째 ‘성육신’ (Incarnation)인데 <성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서 예수님의 ‘완전하신 하나님’되심을 밝혀 줍니다.

둘째 ‘동정녀 탄생 (Virgin Birth)인데 <구약에 예언된 대로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께서 태어나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간’되심을 증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오신 나사렛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과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 (=화목제물)이 되셔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음주 마지막 시간에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통하여 예수님이 성도들의 삶 속에 생명으로 거하시면서 허락하시는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녀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계획과 그 은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는지?’ ‘누구를 통하여 세우셨는지?’ 그리고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가?’라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언제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셨고, 누구를 통해서 이 일을 성취시키신 것인지를 <구원의 계획과 성취>라는 큰 그림에서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세우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자녀를 택하신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더욱 구체적적으로 이해해 나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점점 더 깨닫아 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깨닫아 날마다 주님의 생명 안에서 구원의 즐거움을 누려 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출생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4). 하나님 아버지께서 처녀의 몸에서 한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인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Immanuel)이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데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God with us) (마.1:23)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있은지 700여년 후에, 주의 사자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0~21) 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사자를 보내셔서 그와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아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낳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시고 나서,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라는 것입니다.

과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우리 인간과 같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모든 구원의 계획을 남김없이 성취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알아 나간다는 것은 우리 각자의 평생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성도의 목표 (=과제)일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르신 주님의 2가지 이름, 즉 ‘임마누엘’과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주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위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는지를 이해하기 원합니다.

먼저 <예수>(Jesus)라는 이름 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아이가 장차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그의 이름을 통해 밝히고 계십니다. 바로 이 아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가 될 것이라고. 그런데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여러 선지자들이 바로 ‘예수’라는 이름이 지적하는 데로 ‘그의 백성들을 그 죄에서 구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공통적으로 예언하고 있음을 봅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의 종으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장차 십자가 위에서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 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사. 53:5~6)라고.

대부분의 크리스챤이 잘 이해하는 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신을 믿는 자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설명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기를 믿는 자들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3:16).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 내시는 ‘구원자’ (Savior)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히 그분의 ‘존재 (=본질)’이 무엇이며,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위해서 이루신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입니까? 성경은 한결같이 그분은 어떤 인간도, 어떤 천사도 아니며, 본질 상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임을 선언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6) (사.9:6/요.1:1~3/창.1:26~27)라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3)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설명합니다. 곧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본질 상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Trinity God)의 제2위격인 ‘성자 하나님’ (The Son of God)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세상 모든 만물의 창조사역에서 전적으로 그 사역을 담당하셨음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분명히 설명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3)라고 말입니다. 바로 성자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본질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교리는 그의 탄생과 관련한 ‘성육신’ (Incarnation) 과 ‘동정녀 탄생’ (Virgin Birth) 사건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2가지 교리는 구약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앞에서 언급한 그분의 본질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교리입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초자연적인 기적들 가운데서도 ‘성육신’사건은 가장 신비롭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불가능한 사건의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먼저 ‘성육신 사건’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 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고 선언하고 나서, 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는데, 이렇듯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에 그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떤 피조물도 심지어 천사들도 자격미달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겠지만 그런 사실이 성자 하나님이 반드시 오셔야만 한다는 뜻은 아닌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성자 하나님은 완전한 인간 아담이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심은 두말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셔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하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밝히시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사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다면, 이 ‘동정녀 탄생’사건은 영적으로 볼 때 반드시 실현되어야 만 하는 사건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인간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 부모로부터 아담으로 물려받은 원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는 그 원죄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아담의 죄를 대신 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이사야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4) 라고.

이사야가 ‘동정녀 탄생’을 예언하고서 700여년이 지나고 나서,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 예언이 성취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다고요?!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마.1:20~21)고. 아담으로부터 물려 받게 되는 원죄로부터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으로 죄 없는 씨를 동정녀의 몸에서 자라게 하는 방법이 아니고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으로 죄 없는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의 탄생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육신 사건>은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하나님 되심을, 그리고 <동정녀 탄생>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 되심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탄생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2사건은 지난 시간에 <안셀무스>의 책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서 3번째 질문인 “왜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이어야 하는가?” 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 까지가 대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탄생에 관련한 중요한 교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무엇이 <예수께서 구원을 위해 이루신 역사>입니까? 이것은 가장 핵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셨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3:25, 5:10~11).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대속적인 죽으심> (redemption death)는 신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게 언급되고 강조되는 주제의 하나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propitiation) 되심’을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 (롬.3:25) 그리고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5:10)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성도 여러분을 도전하기 원합니다. 과연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놀라운 화목제물 되심으로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심을 단지 성경지식적으로 만 이해합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 되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깨닫아 나가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우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 되셔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남김없이 흘려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순간 이렇게 크게 외치셨습니다. “~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요.19:30) 라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저를, 아니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실 수 있는 완전한 구원을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말입니다.

저는 다음 주 마지막 시간에,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의 뜻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뜻과 완전성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을 통해 거듭날 뿐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영적 어린아이로 머무르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이 단순히 죄사함 받는 것이 전부라는 잘못된 구원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예수 믿어 죄사함 받는 것은 구원받음에 있어서 중요한 출발이지만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닌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 안에 영원토록 함께 계신 주님의 생명으로 말입니다. 날마다 주의 생명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이런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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