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장 설교 | 나훔 1강 김기석 목사 \”엄중히 심판하시는 주님\”|Cbs 성서학당 2424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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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화) “나훔 1:1-15” / 작성: 정한조

본문 나훔 1:1-15 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하나님의 공의와 권능(1-8절) 세 장으로 구성된 나훔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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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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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서 강해설교, 나훔 1장 1-8절,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

“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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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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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저자: 나훔서 1장 1절을 보면 나훔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나 1: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저자는 ‘엘고스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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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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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1장 강해(니느웨의 멸망과 유다의 구원) – 다음블로그

나훔 개론 1. 저자와 기록 연대 1)저자 나훔서는 선지자 나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훔’으로, 칠십인역(LXX)에서는 ‘나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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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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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2월 3일. 나훔 1장. – 하늘품은교회

나훔 1장. 심판 날에도 선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평안하다. 1. 나훔서는 오바댜서와 함께 가장 설교되지 않는 성경에 속할 것인데, 선지자 나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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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6/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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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 매일성경큐티 …

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 … 오늘부터 매일 성경 큐티 본문이 나훔서로 바뀌게 됩니다. 본문인 나훔서 1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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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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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1장)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 – 양산중앙교회

니느웨는 나훔 선지자 1세기 전, 요나를 통해서 은혜를 입었던 도시 …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경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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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angsanjungang.or.kr

Date Published: 5/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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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의 하나님 > 예배와 말씀 – 지구촌교회

[주일예배] 나훔강해 – 나훔의 하나님. 2019-10-20. 이동원 원로목사 … 말씀본문 (나훔 1:1-7).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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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iguchon.or.kr

Date Published: 1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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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1:1~15]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 롱청반점

[나훔 1:1~15]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이소식 2022. … 본문: 나훔 1장 1절 ~ 15절 …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 설교. (1) 본문의 전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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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ongchengqt.tistory.com

Date Published: 5/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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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화) “나훔 1:1-15” / 작성: 정한조

본문 나훔 1:1-15

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하나님의 공의와 권능(1-8절)

세 장으로 구성된 나훔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니느웨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는 요나입니다. 요나와 나훔은 100-15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훔은 요나의 후편과도 같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 거리를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외치자, 니느웨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금식했습니다. 거기에는 왕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왕좌에서 일어나 곤룡포(왕의 옷)를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짐승들까지 금식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셔서 심판을 유보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 항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에게 “너는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박넝쿨도 아끼면서,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나 있고, 가축도 많은데 내가 어떻게 아끼지 않겠냐?”라고 반문하시는 것으로 요나는 끝을 맺습니다. 마치 연극 무대의 막이 내리지 않고, 연극이 끝난 것과 같았습니다.

그 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아시리아 제국은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침략하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많은 사람을 잡아가기도 하고, 사마리아에 아시리아 사람들을 이주시킴으로 피를 섞어버렸습니다. 나훔 선지자가 이 말씀을 전할 때에 아시리아 제국은 하향곡선을 긋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동의 패권자이었습니다.

본문 1-8절은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일 뿐만 아니라 크신 권능을 가지신 분이심을 천명합니다.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나훔’은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엘고스’라는 지명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엘고스가 예루살렘 서남쪽의 작은 마을이라고 하기도 하고, 갈릴리 지방의 작은 마을이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니느웨 근처의 마을로 보기도 합니다. 만약 엘고스가 갈릴리 근처의 작은 마을이라면, ‘가버나움’을 뜻할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위로의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나훔’이 ‘위로’라는 뜻이니,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나훔 선지자는 가버나움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합니다.

엘고스가 어디를 뜻하든지 간에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같이 모두가 다 아는 곳에서만 사람을 부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집안이 어떠하든,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의 소유가 어떠하든, 그 모든 것을 다 합해도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 역사하심은 그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니느웨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렇게 천명하십니다.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보복하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질투’는 누군가가 내 영역 속으로 들어와서 내게 속한 것을 가져갈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예를 들어, 내 배우자는 내게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어와서 내 배우자의 마음을 빼앗아가면 질투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와 민족에게 그들의 고유한 영역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역을 침입해 와서 자기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북이스라엘을 침략해 와서, 빼앗아서 갔고, 또 유다도 빼앗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복하다’라는 ‘앙갚음하다’, ‘벌주다’, ‘원수갚다’입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니느웨(아시리아 제국)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향하여 ‘자기를 거스르는 자’, ‘자기를 대적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니느웨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행을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살기등등하여,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을 향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행하는 것을 당신에게 행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3상)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좀처럼 노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시지만, 결코 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 분은 아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신 것을 아주 강력하게 보여주는 예는 니느웨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요나 시대에 니느웨를 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나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을 보고서 심판을 미루어 주셨습니다. 1-2개월이나 1-2년이 아니라 100년도 넘게 미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면, 나훔은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합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어떤 권능을 가지신 분이신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3하-5)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하나님께서 다니시는 길이 ‘회오리바람과 광풍’이라고 하십니다. 태풍이 강하게 불면, 간판도 떨어지고, 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히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미국 토네이도 바람을 다룬 영화 ‘트위스터’에서는 소도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빨려 올라가고, 심지어 거대한 유조차 트럭도 빨려 올라갔습니다. 현대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바람이 휘몰아치면 속수무책입니다.

또 바다와 강도 말리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의 예는 출애굽 때의 홍해를 가르시고 말리신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요단강을 말리신 것입니다. 이 외에도 가뭄, 지진, 해일 등등의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고, 한없이 작음을 확인합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인간을 심판하는 도구도 되지만, 구원하는 도구도 됩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요단강이 마르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구원, 그 자체이었습니다. 애굽에 있었던 10가지 재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삶이 눈물의 골짜기의 연속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도 함께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7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의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에 대한 주권과 권능을 행하시는 분이시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쏟아부으시는 분은 아니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과 전능하시기 때문에 피할 만한 곳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지만 전능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선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오히려 굶주린 사자 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충분히 피할 곳이 되실 정도로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니느웨의 멸망과 유다의 구원(9-15절)

9-15절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과 유다의 구원에 대해 증거합니다.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니느웨가 무슨 계획을 꾸밀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무효화시키고, 니느웨를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1980-90년대에 최고의 복서 중에 한 명이 마이크 타이슨입니다. 그에게 복싱과 예절을 가르쳐 주었던 양아버지(커스 다마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무적이었습니다. 타이슨의 남긴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입(얼굴)에 펀치를 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입니다.

니느웨가 하나님의 펀치를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모든 계획이 사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엉클어진 가시덤불과 술에 취한 사람과 같아서 결국은 불에 타 버린 마른 지푸라기처럼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엉클어진 가시덤불은 풀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취한 사람은 온전함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불에 타버린 마른 지푸라기는 회복 불능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니느웨가 다시는 유다 백성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다’고 말씀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니느웨(아시리아 제국)가 괴롭혔지만, ‘니느웨는 하나님의 도구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통해서 유다를 바르게 세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마지막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 니느웨에게 더 이상 이름이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손이 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또 우상들은 다 없애버리신다고 합니다. 사실 본래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까지 파 놓겠다고 하십니다. 즉 아시리아 제국, 니느웨라는 존재에 마침표를 찍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네가 쓸모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의 문자적인 의미는 ‘네가 가볍기 때문이다’입니다.

다니엘에 보면 바빌로니아의 왕 벨사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지고 온 그릇에다 술을 따라 마실 때에 벽에 손가락이 나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습니다. ‘데겔’이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하다, 가볍다’의 뜻입니다. 당시 아시리아 제국은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니느웨보다 더 무거운 도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푸라기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릅니다.

니느웨에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는 약속을 선언하셨습니다.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유다를 그토록 괴롭히던 니느웨(아시리아 제국)가 물러가고, 평화를 누리게 될 때에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으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니느웨에게 망하고, 유다도 니느웨에게 고통을 당했던 이유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세속적 가치관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짐은 모든 것이 흐트러지는 것의 출발과 마침이 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회복은 모든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의 출발과 마침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뒤, 100-150년 후의 니느웨의 모습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들은 목자가 찾아낸 잃은 양과 같았고, 또 여인이 찾아낸 잃은 드라크마와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간 후에 그들은 다시 목자를 거부한 양과 같았고, 다시 여인의 손 안에 있기를 거부한 드라크마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비질을 해도 그들은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신앙은 한 순간 회복된 것으로 마쳐지지 않고, 회복된 것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즉 신앙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신앙의 선을 잘 지켜가는 사람이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 맞추고 사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난 뒤, 백 수십 년이 지난 후의 니느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회개는 한 순간의 점으로 끝나고, 선이 되지 못함으로, 온 나라가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 신앙의 선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진리를 수 놓아가는 삶을 살게 하시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사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는 잊혀진 마을, 엘고스 출신의 나훔을 부르셔서 선지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지금 당신이 극복해야 할 약점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어떤 부분을 기다려주셨으며,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셨습니까?

3. 하나님은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신 것은 언제이었습니까?

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나누는 삶을 살며,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나훔서 강해설교, 나훔 1장 1-8절,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

나훔 1:1-8 나훔의 묵시

“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이우는도다 5 그로 인하여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의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솟아 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지난주까지 요나서를 보았는데 요나서에서는 니느웨 성이 망하리라는 소식을 듣고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지서의 순서대로라면 그다음이 미가서인데 나훔서를 먼저 보는 것은 나훔서 역시 니느웨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에 연결해서 보고자 합니다.

요나서와 나훔서가 둘 다 이방나라에 대한 내용이지만 일차적인 청중은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입니다. 요나서는 니느웨의 회개와 구원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주를 의지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훔서는 니느웨의 멸망의 소식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도 이스라엘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봅니다.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인데 그 경고를 묵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시란 계시의 다른 말입니다. 그러므로 묵시란 이 세상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묵시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심판의 소식이요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묵시를 오해하여 세상 사람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너무나 좋아하고 있습니다. 왜 좋아하는가 하니 이 묵시를 영어로 번역하면 ‘비전’입니다. 비전은 예언자의 선견이라는 뜻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하는 비전이란 마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미래에 이룰 희망이나 꿈들을 말합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교회든 세상이든 소망을 빌고 빕니다. 그 소망을 비전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사람의 책을 소개하면서 ‘열정의 비전메이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마음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전 메이커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묵시가 주어질 때는 결코 사람들이 환영할만한 내용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의 묵시와 거짓 선지자들의 묵시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묵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의 허탄한 상상을 묵시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배후에 거짓말하는 영이 역사하여 그렇게 되지만 그들은 자기의 묵시가 참된 묵시라고 합니다. 그들은 힘도 있고 숫자도 많습니다. 이들의 묵시란 대중들이 좋아하는 소식입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의 귀에 좋은 이야기를 합니다. 심판이 임박한데도 심판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평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묵시를 바르게 받은 선지자들은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외칩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핍박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작정을 하지만 전하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전하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당하는 것이기에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묵시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입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바른 말씀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귀에 이로운 것만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나훔 선지자의 묵시를 들어봅시다.

1:2절입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투기하시고,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참으로 낯선 하나님이 아닙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라서 그저 예수만 믿으면 복을 주신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전도를 할 때 어떤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까 구걸하고 있는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데 죄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니 예수님을 믿으면 죄도 용서받고 이 세상의 복도 받는다면서 예수 믿어주기를 구걸하고 있는 현상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시편 7:11-13절입니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하나님께 매일 분노하십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모두 심판을 당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치 아니하면 심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전도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여기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비가 많으셔서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그 더디 하시는 기간동안 회개의 기회가 됩니다. 니느웨 성에 심판을 선포 하시면서도 40일간의 기회를 주신 것은 노하기를 더디 하신 것입니다. 노하기를 급히 하셨다면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심판해 버리실 것입니다. 그렇게 심판하셔도 어느 누가 항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이시기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 오래 참으심이 구원받는 자들에게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서 진흙과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시고자 진노의 그릇이 준비되었지만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을 보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1:16절에서,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15절에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이나 우리가 심판받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입니다. 그 오래 참으심을 모르고 여전히 회개치 아니하면 그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구원받을 만한 때요 은혜의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어떤 자에게 진노하시고 보복하시는 것입니까 2절 끝에 보시면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을 때에 그 언약의 저주대로 외국 나라가 쳐들어와서 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학대를 받는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자기 백성에게 영원히 행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심판을 통하여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도 자동적인 구원이 아니라 심판을 통하여 자기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임을 알게 하시고서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것이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란 모세 앞에서 반포하신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34:6-7절입니다.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요나서에서도 나온 말씀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죄인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이름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어떻게 계시되고 있습니까 3절 하반절에서 6절까지 봅니다. 회리바람과 광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불어버리시면 날아가지 아니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라고 합니다.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려버리고 모든 강을 말리십니다. 그 앞에서 산들의 꽃들도 지게 됩니다. 산들이 진동하고 녹아지고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자들이 속아 오르게 됩니다.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바위가 깨어집니다.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요단 강물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시내산이 요동을 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견디어낼 피조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본 자들의 공통된 고백은 자기들이 죽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주께 피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로 이 세상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1:7-8절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 즉 신뢰하는 자는 주님께서 선하시기에 환난 날의 산성이 되십니다. 그러나 대적하는 자는 진멸하시고 흑암으로 쫓아내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권능을 오늘 이 시대에는 어떻게 나타내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풍랑 이는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습니까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을 행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권능을 행하심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서 죄사함의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22-24절입니다.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베드로 사도가 성전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멸망을 받을 것인데 그 선지자에 대해서 사무엘부터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말한다고 합니다. 나훔도 물론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훔의 묵시의 궁극적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는 곧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이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은혜인지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가기를 소원합니다.

나훔 1:9-15 아름다운 소식 2005. 1. 12.

“9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찌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15 ○볼찌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찌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나훔서는 온통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런 멸망의 소식이 누구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되겠습니까 앗수르에 의하여 침략과 약탈을 당하는 이스라엘에게 아름답고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훔의 이러한 묵시와는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어떤 상태입니까 여전히 앗수르는 강한 나라입니다.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12절에서 그들은 강장하고 중다하다고 합니다. 여러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강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무너지고 망한다는 소식을 믿음이 없이는 아름다운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영원하리라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과는 아무른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늘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 땅이 장차 무너질 성이라고 합니다. 불에 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있고 또한 살려고 하는 세상은 다 눈에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조차 눈에 보이는 대체물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24-25절입니다.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이미 구약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강대국들이 큰 소리를 치면서 약한 나라를 괴롭히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입니까 자기들보다 더 의로운 나라를 치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이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편에서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소망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훔 선지자의 묵시의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앗수르가 도저히 무너지지 아니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앗수르가 망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나훔 1:9-10절을 봅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세상만을 믿고 바라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망할까봐서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가 온전히 멸하시는 것입니다. 마른 지푸라기처럼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말씀이 이러하여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이 세상이 망하지 아니하도록 끊임없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인구가 자꾸 줄어드니 계속하여 출산장려책을 내어 놓습니다. 인구가 작아지면 그만큼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인구가 많아서 문제라고 산아제한을 하였습니다. 결국 세상이란 그 시대마다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계속하여 강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진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책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통할 것 같습니까

이사야 40:15-17절입니다.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열방은 통의 한 방울의 물, 저울의 적은 티끌,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같이 여기시기에 모든 열방이 없는 것 같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들의 세계를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어서 영원하겠노라는 그 죄의 유혹을 이겨낼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력이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현실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도록 악을 꾀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나훔 1:11절입니다.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특한 것이란 벨리알을 말합니다. 벨리알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의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런 벨리알이 본문에서는 앗수르의 왕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왕들 중 성경에 나타난 여러 이름이 있는데 그 중에 산헤립의 경우를 봅니다.

열왕기하 19:20-22절입니다.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쳐들어와서는 얼마나 교만한지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신들이 그 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유다를 향하여 항복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 대한 대적이요 교만이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는데 그 이유는 다윗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성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다 송장이 되고 산헤립은 돌아가 그 신 니스록 묘에 경배하다가 신하에 의하여 살해당하는 것입니다.

나훔 1:12-13절입니다. 앗수르 왕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징계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몽둥이로 사용하셨으나 이제 그 몽둥이를 부수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나훔 1:14절입니다. 앗수르에 대하여 명하십니다. 그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신들과 우상들이 다 멸절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처럼 앗수르는 역사 속에서 멸망당하여 사라졌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라진 것인지 니느웨 성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되기까지 성경에 나타난 앗수르의 내용이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나훔 1:15절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다고 합니다. 앗수르가 망한다는 소식이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 당시에 무너지지 아니할 것 같은 강대국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그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가 망하고 바벨론이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하게 절기를 지키거나 서원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아름다운 소식은 미루어졌습니다. 부분적으로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아름다운 소식은 또다시 미래로 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52:7절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 아름다운 소식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소식입니다. 그 구원의 소식은 이사야 52장과 53장에 나타나는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이 성취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그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시는 것으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이 아름다운 소식을 복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서 기뻐하기 보다는 안색이 변하고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아 망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앗수르만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세상의 것들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아름다운 소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서 이 세상의 무너질 것들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시고 경영하실 그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8장에 보시면 바벨론이 무너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바벨론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다 집중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이 무너질 때에 그 바벨론을 의지하고 있던 자들이 함께 통곡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한 자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그런 자들이 모여서 주님의 날이 임하기를 서로 격려하는 것이 복음 안의 교제이며 예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으로 들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훔 2:1-13 야곱의 영광 2005. 1. 19.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찌어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이는 약탈자들이 약탈하였고 또 그 포도나무 가지를 없이 하였음이라 3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 그 병거는 거리에 미치게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 저리 빨리 가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 번개 같도다 5 그가 그 존귀한 자를 생각해 내니 그들이 엎드러질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예비하도다 6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7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 그 모든 시녀가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9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10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어린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 수사자가 그 어린 것을 위하여 식물을 충분히 찢고 그 암사자를 위하여 무엇을 움켜서는 취한 것으로 그 굴에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에 채웠었도다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들을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2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강대국인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약탈을 당한 상태에서 앗수르가 망하게 되면 야곱의 영광이 회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의 멸망소식은 이스라엘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됩니다.

그러면 야곱의 영광,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앗수르가 망하고 나면, 앗수르처럼 군사강대국이 되어서 다른 나라를 계속 정복하여 앗수르가 가졌던 그런 세상의 영광을 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셨기에 그 언약의 땅이 회복되어지면서 샬롬이 주어지는 것이 야곱의 영광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이러한 영광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입니다. 다윗이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때의 땅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경계입니다. 그 이상의 땅은 여력이 있어도 정복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내용이란 세상의 나라들처럼 군대나 무기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말과 은금과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17:14-19). 그러므로 다윗은 전쟁 시에 말과 병거를 노획하고서는 그 말들의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습니다(삼하 8:4).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시편 33편 16-19절입니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군대의 힘이나 용사의 힘이나 말의 힘으로는 구원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사망에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는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사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여호와를 경외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부터 수많은 정략결혼을 하면서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왕들도 계속하여 주변의 강대국들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며 그들이 믿는 힘을 좋아한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행위이기에 그 언약의 저주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심판이 그렇게 좋아하던 강대국들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고 자기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부녀자들이 약탈당하여 가고. 성전의 보물들까지 약탈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몽둥이로 앗수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시기를 다윗의 자녀들이 범죄하면 사울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것 같이 하지는 않으시고 그들의 징계하시되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삼하7:14). 그 말씀대로 지금 앗수르에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앗수르를 멸망시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미 징계를 받았고, 앗수르는 교만하였기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0:5-19절을 봅니다. “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8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11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14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18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앗수르가 왜 멸망하는지 그 이유를 상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앗수르가 망하게 되면 야곱의 영광이 회복되는데 그 회복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이어지는 20-23절입니다.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남은 자만 돌아옵니다. 이들의 특징은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합니다. 즉 세상의 힘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자는 이스라엘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돌아옵니다. 이런 모습은 야곱의 개인의 모습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곱 개인의 경험을 이스라엘 전체의 경험으로 만들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영광이고 이스라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으나 살아가기는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 야곱의 야망이 깨어지는 순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자기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하고 꾀를 쓰며 살았는지 야곱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리를 치시자 이제는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평생 절룩거리며 지팡이를 의지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운명이란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만 되는 나라입니다. 결국 야곱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영광이라면 이스라엘의 영광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의 영광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의 힘에 굴복되고 심판을 받게 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매 그들의 복역의 기간을 끝내고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어떻게 망하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1-7절입니다. 또다른 하나님의 몽둥이인 바벨론의 군대가 앗수르를 치는 것입니다. 그동안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의 가지를 없이 하였던 앗수르를 물리치는데 앗수르의 군대보다 더 강하고 빠른 바벨론의 군대들이 붉은 방패와 옷으로 무장하여 앗수르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급히 앗수르가 방비를 하여도 막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자 그들의 왕후가 벌거벗고 달아나고 시녀들이 울면서 도망갑니다.

2:8-12절입니다. 앗수르가 망하자 그 안에 쌓여있던 은과 금이 약탈당하는데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다고 합니다. 앗수르의 연대기에 따르면 앗수르의 왕들이 외국을 지배하고 약탈하고 조공을 받고 사로잡아 온 사람들의 숫자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마 어마한 양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자처럼 자기의 굴에 먹을 것을 채워 넣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니 니느웨가 공허하고 황무하며 거민들이 낙담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고 모든 허리가 아프고 얼굴이 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수한 금과 은이 그들의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강한 군대와 무기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2:13절입니다. 여호와의 대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높이면서 하나님을 대적한 세력이 앗수르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교만하여졌습니다. 그들의 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력들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앗수르가 망하는 것을 보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사야 10:20-23절 말씀처럼 다시는 자기를 친 앗수르 같은 강대국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신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남은 자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에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 가운데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신뢰하여야 합니까 모든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자기들의 힘으로 삼는다면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다른 힘들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세상의 권력과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유대인들이나 미국이나 간에 앗수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을 우리가 좋아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힘이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단장하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할 때 그것이 영광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만물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무궁토록 돌릴지어다. 아멘!

나훔 3:1-19 니느웨의 멸망 2005. 1. 26.

“1 화 있을찐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2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4 이는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5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 네 치마를 걷어쳐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열국에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열방에 보일 것이요 6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로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도다.”

나훔서는 니느웨 성이 망한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이스라엘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야곱의 영광의 회복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니느웨 성이 어떻게 망하는지 그 망하는 모습을 시와 그림처럼 그려놓고 있습니다. 시와 그림이 아름다움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무시무시한 것을 표현할 수 있듯이 나훔서는 니느웨의 심판을 무섭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니느웨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왜 망했습니까 지난주에 살펴본 바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몽둥이가 되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교만함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이며 그로 인하여 망하게 된다는 내용을 이사야 선지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앗수르 멸망의 구체적인 죄목이 오늘 본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1절을 봅니다. 피 성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로 건설된 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안에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고 늑탈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다른 나라를 약탈하면서 빼앗아온 물품들이 한이 없었습니다. 온갖 보물들을 다 약탈하여 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 있고 강한 나라치고 이렇게 이루어지지 아니한 나라가 있겠습니까 무력으로 정복하고, 오늘날은 경제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소유하게 된 것으로 무엇을 하였을까요

4절입니다. 마술의 주인 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이라고 합니다. 온갖 궤휼로 열국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미혹하는 것입니까 피를 흘리든지 약탈을 하든지 부자가 되었으니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기를 치장하기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들로 가득한 성읍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창기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스스로를 꾸미고 치장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음행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스스로 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금은보석으로 치장을 하든, 명예로 치장을 하든, 인간의 착함으로 포장을 하든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창기와 같은 짓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나라는 모르지만 이스라엘은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 자기를 치장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어 버리실 것입니다.

2:7절에서 왕후가 벌거벗고 사로잡혀 가는 것입니다. 온갖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우아하게 사는 왕후인데 벌거벗겨 사로잡혀 가는 것은 죽기보다 더한 수치가 아니겠습니까 3:5절을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 네 치마를 걷어치워 얼굴까지 들어올려 벌거벗은 것을 열국에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열방에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모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의 영광과 권세라는 것이 이런 모습입니다. 창녀가 꾸며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의 영광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실 것을 세상의 강대국들을 심판하시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강하고 튼튼한 성읍, 온갖 보물들이 가득한 니느웨 성이 어떻게 처절하게 망하는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3절입니다. “2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렇게 심판이 집행되면 열국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6-7절입니다. 가증하고 더러운 것을 던지신다고 합니다. 온갖 우상들과 함께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욕을 당하고 구경거리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는 사람들이 다 도망하며 니느웨가 황무하였다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위로할 자를 구하겠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앗수르가 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외침은 단지 위협정도로 들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이 망하고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하는지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을 성경은 우상숭배요 음행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조차 성경의 이런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선지자는 외치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는 인도의 지진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도 세상은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너질 세상의 것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설마 세상이 망하겠느냐고 느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3:8-10절을 봅니다. 앗수르가 아직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겠지요 그러자 선지자는 노아몬의 예를 듭니다. 노아몬은 이집트의 테베를 말합니다. 이집트의 우상인 태양신 아몬을 섬긴다고 해서 이곳을 노아몬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강대한 곳인지 나일 강물로 요새화하였으며 구스와 애굽과 붓과 루빔이 그의 돕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강한 노아몬이 어떻게 망하였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어린 아이들이 길모퉁이에서 메어침을 당하였고, 대인들이 사슬에 결박되었다는 것입니다.

3:11-19절입니다. 노아몬이 망한 것처럼 니느웨 성도 망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너도 한번 피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피난처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모든 산성은 무화과 나무처럼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고 합니다. 지금 선지자는 니느웨 성을 조롱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껏 재주를 발휘해보라는 것입니다. 물을 길어 예비하고, 산성을 견고케 하고,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는 것입니다. 적이 쳐들어오니 방비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비를 하여도 그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너의 땅의 성문들은 너희 대적 앞에서 넓게 열리고 빗장은 불탈 것이라고 합니다. 벽돌 가마에서 벽돌을 구우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불이 나와 삼키며 칼이 베기를 늣의 먹는 것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아무리 숫자를 많게 하고, 상고를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지만 황충이 날개를 펴서 날아감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 방백들은 메뚜기 같고 대장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 울타리에 깃들었다가 날이 따뜻하면 나아가서 그 있는 곳을 알지 못함 같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쉰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자고 쉬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니 이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들이 죽으니 백성들은 산들에 흩어지지만 모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다친 것은 고칠 수가 없고 상처는 중하여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열방들이 손뼉을 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악행을 받지 않는 자가 없지 않느냐고 질문으로 마감합니다. 요나서의 끝도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네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질문으로 마칩니다. 나훔서도 질문으로 끝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질문을 해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갑니까

요한계시록 17-18장에 보시면, 나훔서에 기록된 말씀들과 같은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앗수르의 왕후가 음행한 기생으로 나오는데 바벨론의 음녀라고 나옵니다. 상고들이 나옵니다. 앗수르가 망하는 것처럼 온 열국으로 미혹케 한 바벨론이 하루 동안에 망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면서 멀리서서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바벨론은 세상 영광의 중심지입니다. 온갖 무역을 통하여 사치와 부가 가득한 곳입니다. 앗수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강대한 나라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끊임없이 망하여 왔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땅의 영광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힘을 비축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바벨론이 되고자 합니다.

그 중심이 교회가 서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경제력으로 교회의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바벨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마귀가 유혹한 것이 무엇입니까 빵 문제와, 세상의 영광과 종교적인 기적입니다.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물리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그런 것들을 추구한다면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아니라 바벨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세상의 강대국들이라고 큰소리치던 나라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수많은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과 영광스러운 것으로 치장을 하였더라도 왕후가 벌거벗겨져서 수치를 당하듯이 그렇게 부끄러워 도망갈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세상의 금은보화나 명예나 권세로만 자기를 치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치장한 것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율법으로 치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화 있을진저! 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의 의를 가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의란 누더기와 같은데 그 옷을 고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방나라의 심판의 소식은 이스라엘과 무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역시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2:1-3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결국 이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의가 없어서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의만을 바라봅니다. 이런 자들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의 죄와 수치를 알기에 스스로 위장하려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다 누더기와 같기에 자기 옷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기 피로 만드신 의의 세마포 옷으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이 망하는 세상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20201113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나훔 1장 15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 저자:

나훔서 1장 1절을 보면 나훔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나 1:1)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저자는 ‘엘고스 사람 나훔’입니다. 성경에는 엘고스가 어디인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엘고스가 정확하게 어느 지역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이 부분 외에는 저자 나훔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의 이름 ‘나훔’의 뜻은 ‘위로자’ 또는 ‘위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읽어보면 전혀 위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니느웨에 대한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로라는 의미의 선지자 이름과 심판의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랜 세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왔던 원수 앗수르의 몰락과 멸망에 대한 예언 메시지는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일제 치하 시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이나, 일본의 멸망의 메시지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독립에 대한 기대로 인한 위로와 기쁨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진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훔서 3장 7절을 봅시다. “(나 3: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도다” 멸망하는 앗수르를 보며 애곡하며 “니느웨가 폐허가 되었다. 이를 어찌할꼬?”하고 슬프게 눈물 흘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누구도 앗수르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거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앞서 선지자 나훔의 이름의 뜻이 ‘위로자’라고 했지요?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말씀 중반에 ‘위로할 자’란 단어가 나옵니다. 즉 앗수르를 향하여 “너에게는 멸망 가운데 너를 위로할 자, 즉 나훔이 없구나?”하고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에게는 나훔, 즉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셔!”하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위로’란 뜻의 이름을 가진 선지자 ‘나훔’과 이스라엘의 압제자 앗수르의 멸망이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오랜 원수 앗수르의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큰 기쁨이고 위로인 것입니다.

● 기록연대:

이 책은 주전 7세기, 정확하게는 주전 620년경 즈음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따가 다시 보겠습니다만 나훔서 3장 8절을 보면 애굽의 도시 중 하나인 ‘노아몬’이란 곳이 멸망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주전 663년경에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나훔서는 주전 663년 이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또한 나훔서가 예언하고 있는 니느웨의 몰락은 주전 612년에 일어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주전 663년과 주전 612년 사이에 기록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그와 함께 사역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와 스바냐 입니다.

● 시대상황:

선지자 나훔이 활동하기 약 130여 년 전,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에 가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때 니느웨에서는 도시 전체가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하나님은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계획을 철회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흘러 약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나훔이 활동할 당시 니느웨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또 다시 죄악이 가득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선지자 나훔을 통해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서와 나훔서의 공통점은 둘 다 니느웨를 향한 예언이란 점입니다. 그러나 두 선지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요나서에서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가 함께 주어진 반면에, 나훔서는 오직 심판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니느웨가 저지른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죄악들로 인해 그들의 멸망이 불가피함을 선포했습니다.

● 핵심메시지:

거대 제국이었던 앗수르는 막강한 군사력과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려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매우 잔인했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정복지에 반역의 의지를 원천부터 꺾어 버리고, 다른 민족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전쟁 시 적의 피부를 벗겨 성벽에 붙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처럼 높게 쌓았습니다. 말뚝을 가지고 사람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찍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은 병사들의 시체로 높은 더미를 쌓아 놓고 자랑했습니다.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잘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게 했고, 때로는 남편의 머리를 잘라 아내가 들고 행진하게 했으며, 또한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 자녀들이 들고 거리를 돌게 함으로써 지배국가와 민족에게 반역을 저지를 수 없도록 엄청난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이 앗수르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들의 수도 니느웨의 별명이 ‘the blood castle’(피의 도성)입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악명높으면, 선지자 요나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싫어서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자신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을 쳤겠습니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주변 국가들이 앗수르 앞에 벌벌 떨면서도, 속으로는 누가 제발 앗수르를 무너뜨려 주기를,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일들을 보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너무나도 막강했기에 그 누구도 이 나라를 건들지 못했습니다. 이 당시 앗수르 제국의 땅이 얼마나 컷는가 하면, 오늘날로 말하면 이집트,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그 밖에도 수많은 나라가 앗수르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막강해 보이는 원수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이 바로 나훔서의 주제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쾌한 메시지고 큰 기쁨과 위로의 말씀입니까? 그래서 우스개소리로 “선지자 요나가 가장 좋아할 구약성경이 ‘나훔’이다”라고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분명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나훔은 바로 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죄악이 범람하는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오래된 원수요 민족의 압제자인 니느웨의 멸망 메시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즉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서의 핵심구절인 1장 15절을 보면 니느웨의 멸망 소식에 대하여 아름다운 소식, 화평 즉 평화를 전하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1장 15절을 읽겠습니다. “(나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원수의 멸망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이 그 유명한 로마서를 쓰며 바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모든 인류를 괴롭혀왔던 오래된 원수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 죄의 통치가 무너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소식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음을 선포하는데 이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이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소식 즉 복음임을 가르쳐줍니다. 나훔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로 이루어진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마침내 정의를 완성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 나훔서의 특징:

나훔서는 언뜻 읽으면 이스라엘의 가장 큰 압제였던 앗수르 제국과 그 수도인 니느웨의 몰락을 선포하는 내용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나훔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1장 그 어디에서도 니느웨와 앗수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니느웨와 앗수르 이야기는 2장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에 대한 심판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모든 오만하고 폭력적인 세력들을 영원히 용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든 시대의 폭력적이고 오만한 세력들과 사람들을 꺾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나훔서는 악한 원수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임을 보여줍니다.

● 나훔서의 구조

1장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선포

1) 열방 중의 악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출현

이제 본격적으로 나훔서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순서적으로 1장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만, 그전에 한 번 전체적인 구조를 봅시다. 구조를 보면, 2장에서는 니느웨의 멸망을, 3장에서는 앗수르의 멸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열방에 맞서서 그들의 악함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란 내용입니다. 1장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투기’라는 단어는 ‘질투’라는 뜻입니다.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원래 주님께서 받으셔야 했던 사랑과 영광을 이방 나라들이 우상을 섬김으로써 빼앗아간 일이 대하여 반드시 보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 창조주이신 주님을 버리고 거짓 우상들과 거짓 신들을 섬긴 자들에게 진노를 내리십니다.

분명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원히 참기만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 크신 권능으로 모든 악인들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임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모스서의 경우,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시매 풀밭이 시들고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가 메말라 버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미가서의 경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시자 산들이 녹아버리고 골짜기가 갈라져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훔서도 이와 같이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하나님의 출현으로 인한 자연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3-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나 1: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이우는도다 (나 1:5) 그로 인하여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의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나 1: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하나님께서 회오리 바람과 광풍으로 임하십니다. 4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니 바다가 마르고, 모든 강이 마릅니다. 홍해가 마르고, 요단강이 바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바다도 힘을 못 씁니다. 4절에 바산과 갈멜, 레바논 세 도시가 등장하는데요, 이는 당시 가장 비옥하기로 소문난 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면 그 비옥한 땅들이 메마르고 꽃봉오리가 시들어버립니다. 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오시니 산들이 진동합니다. 작은 산들이 아예 녹아버립니다. 6절을 보니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로 인하여 바위들이 깨져버립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장면입니까? 나훔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악을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을 심판하시고 정의를 회복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임하시지만, 주님의 심판은 무차별적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악인을 심판하시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나 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선지자 나훔은 6절까지 천지를 진동시키고 산을 녹일만큼 두려운 하나님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이 어려움을 다할 때에 친히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그려줌으로써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번 그의 이름 뜻대로 ‘나훔’ 즉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8절입니다. “(나 1:8)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쓰나미나 홍수가 나면 물이 도시 전체를 쓸어가 버리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거처를 마치 홍수와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완전히 멸명시키고, 그들을 어둠으로 쫓아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심판이 앗수르에게 적용되고, 앗수르와 같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에게도 적용됩니다.

2)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운명’과 ‘하나님께 충성된 신실한 자들의 운명’ 대조

이어서 9절부터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나 1:9)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나 1: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 나훔이 묻습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대항해 음모를 꾸민다 하여도 그것이 통할리가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하실 것이다. 그분의 대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마치 담장에 친 가시덤불처럼 엉크러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술 취한 자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마른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불에 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심판을 받을 자가 니느웨로부터 나왔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나 1: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니느웨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계획을 꾀하고 사악한 조언자들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나 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고 병사들의 숫자가 많다하더라도 반드시 멸망시키실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남 유다의 남아있는 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나 1:12)…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2절 후반부에서는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유다야, 내가 너를 심판했지만 다시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그들이 네게 지운 멍에를 내가 꺾어 버리겠다. 너를 묶어 놓은 사슬을 내가 끊어 버리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향해 영원토록 노를 품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이제 앗수르가 지운 멍에를 주님께서 꺾어 버리시고, 사슬을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니느웨를 어떻게 멸하시는지 봅시다. 14절입니다. “(나 1: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선지자 나훔이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에 대해 명령을 내리셨다. ‘네 이름을 이어 갈 후손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네 신전에 있는 새겨 만든 우상들과 녹여 만든 우상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고 악하기에 내가 네 무덤을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악인을 심판하실 무덤까지 다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무찌르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알리는 복음과 같습니다. 원수 사단은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나 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15절은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수 니느웨의 멸망 소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름답고 좋은 소식이 됩니다. 평안을 선포하는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이기셨음은 너무 기쁘고 좋은 소식이라, 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산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라톤이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간 이유와 같다.)

이제 유다는 앗수르의 침략이나 압제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축제의 절기를 지키고, 앗수르 사람들 눈치 않보고, 그들에게 조롱당할 염려없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마음껏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5절 후반부에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악인들을 완전히 멸하셨음으로 이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1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출현과 오만하고 폭력적인 민족들의 파멸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구원자요 피난처 되심을 보여줍니다.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나훔 개론

1. 저자와 기록 연대

1)저자

나훔서는 선지자 나훔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훔’으로, 칠십인역(LXX)에서는 ‘나움’으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나훔’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 뜻은 ‘위인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뜻을 지닌 ‘나훔’이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는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나1:1에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출생지가 엘고스라는 것밖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엘고스라는 마을은 그 위치가 있어서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저작 시기는 대략 주전 663-612년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본 서의 기록(나3:8)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현재의 ‘티벳’인 노사몬의 멸망을 주전 661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니느웨의 멸망(나1:12)을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데, 이 예언은 니느웨가 멸망당하기 이미 4년 전에 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2. 특징과 목적

1) 특징

본 서는 요나서와 함께 동일한 대상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 내용상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요나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에게 내려질 심판이 유보되었지만, 나훔의 예언으로 인해 니느웨는 멸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2) 목적

본 서의 목적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결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요나서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들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고 있다. 앗수르의 심판은 유다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다가 당하는 고통은 앗수르의 죄악된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본 서의 내용으로 보아 앗수르의 압제를 받는 유다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은 유다인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요, 희망의 소식이었다.

3. 메시지와 주제들

1) 메시지

나훔서의 전하고자 하는 예언은 정확한 것이다. 나훔의 메시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심판당하는 니느웨의 모습이다 .

2) 주제들

본 서의 주제는 한 가지 통일된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다인을 억압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니느웨의 모습이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니느웨가 완전히 멸망당하였다는 흔적은 그곳을 지나던 헬라의 군인들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민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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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제 1 장 강해 (니느웨의 멸망과 유다의 구원)

오늘부터 나훔서를 공부합니다. 이 나훔서는 교만하고 사악한 앗수르에 대해 담대히 저주와 멸망을 선포하는 책입니다 .

나훔이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자’인데 앗수르의 가혹한 통치와 억압 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위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1:2-8). 나훔과 비슷한 이름이 ‘느헤미야’이지요 .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 또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이지요 . 이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엘고스는 유다 남쪽 지방의 한 성읍인 시므온 지역에 속한 마을로 추정됩니다 . 그 외에는 나훔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

그가 예언 활동을 한 시기는 주전 633-612 년으로 추정합니다 . 그리고 본 예언은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이 함락되었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유대 땅에서 선포되었습니다 . 본 서의 대상은 물론 앗수르 나라의 백성들 , 특히 니느웨 사람들 그리고 유다 백성들입니다 .

주전 약 700 년경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니느웨를 수도로 정하였는데 612 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됩니다 . 이 앗수르는 주전 722 년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때 쓰임 받은 도구였습니다 . 그런데 이 앗수르가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나훔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앗수르 군대는 매우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유명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 앞에서도 나훔 선지자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

지난주에 살펴 본 오바댜서와 같이 나훔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교만하고 사악한 앗수르 족속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확증합니다 . 그러므로 이 나훔서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 , 심판과 구원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

본문 말씀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 절은 서론이며 2-8 절은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말씀합니다 . 9-15 절은 니느웨의 심판과 동시에 유다의 구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 이제 좀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1 절 : 나훔은 이 서문에서 죄악으로 가득 찬 니느웨에 대해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음을 선포합니다 .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살던 백성들은 나훔서가 기록되기 100 년 전에는 요나의 경고를 받아들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한 바가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더욱 교만해져서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개역 성경에 나오는 ‘경고 (oracle) ’라고 하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무거운 짐 (burden) ’이란 뜻이 있습니다 . ( 출 23:5; 왕하 5:17) 그러니까 이 나훔의 예언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선포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노아의 아들인 함의 손자 니므롯 ( 창 10:11-12) 에 의해 창건된 도시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성읍이었다고 합니다 .

2-8 절 :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능과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 특히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면서 ( 시 18:29; 합 3:4-7)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2 절 ), 오래 참으시고 (3 절 ), 전능하시며 (3-6 절 ), 선하시며 (7 절 ), 거룩하신 분 (8 절 ) 으로 묘사하면서 니느웨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원인과 그 필연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 특히 이 부분은 부분적인 답관체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

2 절 :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인간의 죄에 대해 질투하시며 보복하십니다 . 여기서 질투 ( 투기 ) 한다는 것은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 또는 강력한 감정을 뜻합니다 .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본 절에서는 반복적이며 점증법적인 표현을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도 담겨 있습니다 . 즉 바로 그 죄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들 , 하나님의 사랑과 그 법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확실하고도 철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 여기에 하나님께서 보수하신다는 의미는 곧 그 백성의 대적들 앞에서 그 백성의 권익을 옹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 그분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자기 백성에 대해 질투하시는 분이시며 ,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시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3 절 :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칫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이 즉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할 때 실망하기 쉽습니다 . 왜 하나님께서 김일성을 그렇게 호위 호식하도록 허락하셨을까 , 김정일을 왜 당장 심판하시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때에 분명히 그 공의는 드러날 것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은 권능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 회오리바람과 폭풍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요즈음 카리브 해 연안에 부는 허리케인을 보면 잘 알 수 있겠지요 . 이제 니느웨를 심판하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황폐케 하는 회오리바람과 폭풍처럼 파괴해 버리시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

4 절 :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가에 대해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바다를 꾸짖어 말리우심은 홍해 사건을 암시하고 강을 말리우심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던 사건을 암시합니다 . ‘바산’은 팔레스틴 동북쪽에 위치한 산으로서 비옥한 토양과 방대한 목장으로 유명합니다 ( 암 4:1). 갈멜은 팔레스틴의 서쪽에 있어 포도 재배로 유명합니다 . 레바논은 북쪽에 있어 꽃과 나무로 유명했습니다 . 이 세 지역은 이스라엘 전 국토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지역이었는데 이들이 쇠한다는 것은 곧 팔레스틴의 모든 영광이 쇠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앗수르의 심판을 선포하던 나훔 선지자가 팔레스틴을 갑자기 언급하는 것은 이 팔레스틴을 하나의 모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6 절 :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자가 없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왕하 18:35 을 보시면 산헤립의 군대장관은 다음과 같이 히스기야를 모욕합니다 . “여러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 그 어느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기에 , 주 너희의 하나님이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낸다는 말이냐 ? ” 그러나 앗수르는 최후의 승리자가 앗수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제 머지않아 배우게 될 것입니다 .

7 절 :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는 선하시므로 , 환난을 당할 때에 피할 피난처가 되신다 . 주께 피하는 사람은 주께서 보살펴 주”신다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동시에 그를 의뢰하는 자에게 선하시며 신실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 니느웨 사람들은 자기들이 요새 안에 있으니 아주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위로와 안전함에 비한다면 그들의 안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잠시잠깐의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8 절 :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는 범람하는 홍수로 쓸어버리시고 , 원수들을 흑암 속으로 던지신다 . ”고 선포하십니다 . 여기서 ‘범람하는 홍수’는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를 침략하려고 오는 바사 , 즉 페르시아를 가리킵니다 . 이와 동시에 니느웨가 멸망할 때 실제로 티그리스 강과 고스르 강이 범람하여 니느웨 성벽의 일부가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겠다는 말씀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적 상태 , 그들의 피할 수 없는 패배 , 그리고 궁극적인 영원한 심판 등에 대한 상징입니다 .

9-15 절 : 니느웨에 대한 심판과 유다의 구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 그동안 유다를 괴롭혀 왔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멸망함과 동시에 유다에 평화의 소식이 전하여집니다 . 이 아름다운 시적 표현은 사도 바울에게서 구원의 복음으로 인용되었습니다 ( 롬 10:15). 물론 이 예언의 성취는 주전 612 년 앗수르가 멸망 ( 습 2:13-15) 하고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 개혁 ( 왕하 22:3-23: 27) 으로 나타났지만 ,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될 구원의 복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특별히 샬롬 ( ‘화평’ ) 의 선포는 이사야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보여 주면서 ( 사 9:6, 7; 32:17; 53:5; 54:10, 13; 55:12; 57:19) 구속의 약속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

9 절 : ‘두 번까지 수고하지도 않으실 것이다’는 표현은 비록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시켰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남왕국 유다는 멸망시킬 수 없을 것임을 뜻합니다 . 사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던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후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재공격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

10 절 :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지고’라는 표현은 앗수르인 ( 니느웨인 ) 들이 서로를 해치며 ,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게 더욱 성가신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

11 절 : ‘음모를 꾸미는 자’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을 가리킵니다 . ( 재위 주전 705-681) 그는 주전 701 년에 유다를 위협하였으나 함락은 하지 못했습니다 . ( 사 36-37 장 )

12-13 절 : 이제 여호와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멸망당한 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은 ‘나 주가 말한다 . ’라는 문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 이것은 그동안 어느 누구의 침략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초강대국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에 대해 선포하신 이 경고의 메시지가 반드시 성취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13 절 : 앗수르의 마지막 왕이었던 앗수르바니팔 ( 주전 669-627) 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유다 왕 므낫세에게 조공을 요구합니다 . 그러나 그러한 멍에를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깨뜨리시며 그 결박을 끊으시겠다고 선포합니다 .

14 절 : 산헤립이 섬기는 신들의 집은 이제 산헤립의 죽음을 증거해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왕하 19:37).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니느웨의 여신 이스달의 신상이 니느웨의 파괴된 잔해들 속에 머리가 잘린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고 합니다 . 이 예언은 겔 32:22-23 에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 같이 한번 읽어 보시지요 . “그 곳에는 앗시리아가 묻혀 있고 , 그의 군대가 함께 묻혀 있다 . 사방에 그들의 무덤이 있다 . 그들은 모두 칼에 찔려 죽은 전사자들이요 , 칼에 쓰러진 자들이다 . 앗시리아의 무덤은 구덩이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마련되었고 , 그 무덤의 둘레에는 앗시리아의 군대가 묻혀 있는데 , 그들은 모두가 칼을 맞고 쓰러진 자들 , 칼에 찔려 죽은 전사자들 ,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던 자들이다 . ”

15 절 : 여기서 ‘좋은 소식’은 무려 백 여 년 간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앗수르의 멸망에 관한 소식입니다 . 나훔 선지자는 이것이 마치 이미 일어난 일처럼 예언을 합니다 . ( 예언자적 완료시제 )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사 52:7 에서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이것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으로도 사용합니다 . 동시에 이는 또한 신약의 복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즉 롬 10:15 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마귀의 쇠사슬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아름다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 .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그를 의뢰하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지만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 이러한 사랑과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지만 앗수르와 같이 사악함과 폭정에 의해 세워진 나라는 결국 패망하고 맙니다 . 롬 11:22 에 보시면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에게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 그런 사람도 잘릴 것입니다 . ”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영적으로 각성하면서 우리의 삶이 주님 보시기에 온전하면서 거룩한 주의 백성답게 경건을 연습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지하면서 아직도 믿지 않는 많은 심령들에게 복음 들고 가서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참조:브뤼셀 한인 교회

매일말씀묵상. 12월 3일. 나훔 1장. > 매일말씀묵상

(아래 관련링크 클릭하여 드라마바이블을 들으면서 묵상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

나훔 1장. 심판 날에도 선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평안하다.

1. 나훔서는 오바댜서와 함께 가장 설교되지 않는 성경에 속할 것인데, 선지자 나훔에 대해서는 나훔서 외에서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나훔서에서도 엘고스 사람 나훔이라고만 소개되고 있습니다(1). 그 이름의 의미는 ‘위로’입니다. 엘고스도 어디에 있는 지명인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멸망 후, 앗수르로 붙잡혀간 사람들 중에 있었는지, 유다에서 예언을 하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다에서 예언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활동 연대는 대략 추정이 가능한데, 그가 앗수르의 니느웨 멸망(주전 612)을 예언했으므로 그 이전에 활동했을 것이고, 또 애굽의 수도 노아몬(데베스)의 멸망(주전 664)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서, 주전 663~612년에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내용상 , 나훔서는 요나서의 후속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요나가 주전 8 세기 초반 , 니느웨에 가서 예언을 하자 회개했던 니느웨는 , 나훔이 활동한 7 세기가 되자 다시 그 악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 나훔은 이런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이미 이스라엘과 애굽을 삼킨 대제국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30미터 높이로 한꺼번에 네 대의 수레가 함께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성곽을 쌓았으며, 이 성곽은 약 130킬로미터에 달했습니다. 이도 모자라 넓이 42미터, 깊이 18미터의 성곽 주변의 호를 만들어서, 모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대비한 요새화된 성이 니느웨였습니다.

3. 그러나 모든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훔을 통하여 그 나라의 멸망을 선고하십니다 .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않고, 자기 힘을 의뢰하는 모든 자가 니느웨 같은 운명을 겪는다는 것은 세상 역사를 통해 확인한 부인할 수 없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나훔서에서 도울 힘이 없는 방백이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가지고 살아가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4. 나훔서는 시작부터 분명한 메시지를 밝히는데 , 그것은 ‘ 니느웨에 대한 경고 ’ 입니다 (1). 1~6 절에 설명되는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고 ,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a). 하나님은 마음이 나누어진 채 주님을 섬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보복하고 진노하십니다(2b).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긍휼도, 은혜와 사랑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나훔 선지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은 비록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반드시 심판을 행하는 분이십니다(3). 그 노하심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 벧후 3:3~13). 그 오래 참으심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존재는 없습니다(3b~6). 이렇게 선지자 나훔은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있습니다.

5. 심판에 대한 무서운 메시지 속에서도 ,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7).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십니다. 여기서 ‘아신다’는 표현은 실제적이고 강한 표현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날에도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한 자들을 알아주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만한 업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근거는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였다는 사실 뿐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심판의 날은 구원의 날이 됩니다.

6. 니느웨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은 온전히 그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9). 그런 와중에도 니느웨에서 악을 꾀하는 자가 나와서 악을 권할 것입니다(11).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그들은 멸절될 것입니다(12). 자신만만했던 교만한 제국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다시는 네 이름이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고 니느웨에게 말합니다(14). 그리고 모든 우상들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니느웨가 쓸모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4). ‘쓸모없게 되었다’는 말은 본래 가볍다는 뜻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 가벼운 존재라는 말입니다.

7. 이제 선지자는 멀리 포로에서 돌아오는 백성들을 바라봅니다 .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산들을 넘어서 승리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15).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발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롬 10:15; 사 52:7 참조).

8.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 나훔 선지자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사정과 상황과 심지어 그 마음까지도 속속들이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확신이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심판의 날에도 저희가 주님을 알고 주님께서 저희를 아시기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이 은혜의 확신을 누리며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 매일성경큐티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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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매일 성경 큐티 본문이 나훔서로 바뀌게 됩니다. 본문인 나훔서 1장의 말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하며, 하나님을 산성으로 삼고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됨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고 정리한 후에 새벽 설교로 준비하였습니다.

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설교 전 찬송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나훔 1장 1절-15절,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라

질투하시는 하나님

요나서에 나타난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모습과는 달리, 나훔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두려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나훔서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질투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보복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본문의 2절에서는 하나님을 “질투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나훔서의 니느웨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이며 동시에 대적하는 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감당할 자가 없도다

이같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자들의 최후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훔 1: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기에, 3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과 같이, 자연마저도 두려움으로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이든 인간이든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고 6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니느웨가 수도인 앗수르와 같은 당대의 강대국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호와는 산성이시라

하지만, 또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산성이시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 함께 7절을 읽겠습니다.

나훔 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만,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피하는 하나님의 겸손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애굽 땅을 탈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에 이르렀을 때, 두려움과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애굽의 전차 부대가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적들과 대신 싸워 주시며 구원해 주십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며, 애굽의 전차 부대를 홍해가 삼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어 주시며, 두려움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2. 여호와께서 칼로 치게 하시다

미디안의 엄청난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시고 단 300명만을 데리고 미디안과 싸우라 명령하십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사기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성이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기 백성은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우리의 삶에는 계속해서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고난이 찾아오며, 질병으로 인하여 아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산성과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붙잡는 성도, 잘 될 때나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에도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 속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함께 할 기도

나의 산성이시며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교회가 되게 하소서.

어르신들과 우리 자녀들, 환우들의 건강을 지켜 주소서.

복음 전해야 할 한 사람이 생각나게 하소서.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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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중앙교회 : 담임목사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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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의 하나님 > 예배와 말씀

말씀본문 (나훔 1:1-7)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훔 1:1~15]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나훔 1:1~15]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날짜: 2022년 4월 25일 월요일

본문: 나훔 1장 1절 ~ 15절

영적 상태: 평안, 감사, 갈급함

시작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새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시고,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깨닫고, 그 말씀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1. Lectio Divina(거룩한 읽기)-3번

1 An oracle concerning Nineveh. The book of the vision of Nahum of Elkosh.

2 The Lord is a jealous and avenging God;

the Lord is avenging and wrathful;

the Lord takes vengeance on his adversaries

and keeps wrath for his enemies.

3 The Lord is slow to anger and great in power,

and the Lord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His way is in whirlwind and storm,

and the clouds are the dust of his feet.

4 He rebukes the sea and makes it dry;

he dries up all the rivers;

Bashan and Carmel wither;

the bloom of Lebanon withers.

5 The mountains quake before him;

the hills melt;

the earth heaves before him,

the world and all who dwell in it.

6 Who can stand before his indignation?

Who can endure the heat of his anger?

His wrath is poured out like fire,

and the rocks are broken into pieces by him.

7 The Lord is good,

a stronghold in the day of trouble;

he knows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8 But with an overflowing flood

he will make a complete end of the adversaries,[a]

and will pursue his enemies into darkness.

9 What do you plot against the Lord?

He will make a complete end;

trouble will not rise up a second time.

10 For they are like entangled thorns,

like drunkards as they drink;

they are consumed like stubble fully dried.

11 From you came one

who plotted evil against the Lord,

a worthless counselor.

12 Thus says the Lord,

“Though they are at full strength and many,

they will be cut down and pass away.

Though I have afflicted you,

I will afflict you no more.

13 And now I will break his yoke from off you

and will burst your bonds apart.”

14 The Lord has given commandment about you:

“No more shall your name be perpetuated;

from the house of your gods I will cut off

the carved image and the metal image.

I will make your grave, for you are vile.”

15 Behold, upon the mountains, the feet of him

who brings good news,

who publishes peace!

Keep your feasts, O Judah;

fulfill your vows,

for never again shall the worthless pass through you;

he is utterly cut off.

<우리말성경>

1 니느웨에 관한 묵시입니다. 엘고스 사람 나훔이 본 환상을 기록한 책입니다.

2 여호와께서는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는 복수하시고 진노하시는데 그분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그분의 원수에게 진노하신다.

3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는 데 더디시고 힘은 강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죄인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분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폭풍 속에 있고 구름은 그분의 발의 흙먼지다.

4 그분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마르게 하시고 모든 강들을 마르게 하신다. 그래서 바산과 갈멜이 시들고 레바논의 꽃봉오리가 시든다.

5 산들이 그분 앞에서 진동하고 언덕들이 사라져 없어진다. 그분 앞에서 땅, 곧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두가 뒤집어진다.

6 그분의 분노 앞에서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그분의 노여움을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분의 진노는 불처럼 쏟아지고 그분에 의해서 바위들이 깨진다.

7 여호와께서는 선하시다.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신다. 그분은 그분께 피하는 사람들을 아신다.

8 그러나 그분에게 맞서는 사람은 넘치는 홍수로 완전히 멸하시고 그분의 원수들은 어둠 속으로 쫓아 버리실 것이다.

9 너희가 여호와께 대항해 음모를 꾸며도 그 분께서는 완전히 없애실 것이다. 반항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0 그들은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져 있고 술꾼들처럼 취해 있다.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불에 타버릴 것이다.

11 여호와께 대항해 악을 도모하는 사람, 사악한 조언자가 바로 네게서 나왔다.

12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빈틈없고 숫자적으로 많을지라도 그들이 잘려 나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내가 네게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제 다시는 네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13 이제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부수고 너를 묶고 있는 것을 끊어 버리겠다.”’

14 여호와께서 너에 대해 명령을 내리셨다. “네 이름을 이어 갈 후손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네 신전에 있는 새겨 만든 우상들과 녹여 만든 우상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에 내가 네 무덤을 만들 것이다.”

15 보아라. 저기 산 위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발걸음을. 그가 평안을 선포하는구나! 유다야, 네 정해진 절기를 지키고 네가 한 서원을 지켜라. 악한 사람들이 다시는 너를 휩쓸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2. 본문 묵상하기

본문의 연구(관찰/연구)

(1v) 니느웨에 관한 묵시임. 엘고스 사람 나훔이 본 환상을 기록한 책임

(2v) 여호와께서는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심. 여호와께서는 복수하시고 진노하시는데 그분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그분의 원수에게 진노하심

(3v)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는 데 더디시고 힘은 강하신 분이심. 하지만 죄인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심. 그분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폭풍 속에 있고 그분은 그분의 발의 흙먼지임

(4v) 그분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마르게 하시고 모든 강들을 마르게 하심. 그래서 바산과 갈멜이 시들고 레바논의 꽃봉오리가 시듦

(5v) 산들이 그분 앞에서 진동하고 언덕들이 사라져 없어짐. 그분 앞에서 땅, 곧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두가 뒤집어짐

(6v) 그분의 분노 앞에서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그분의 노여움을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분의 진노는 불처럼 쏟아지고 그분에 의해서 바위들이 깨짐

(7v) 여호와께서는 선하심.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심. 그분은 그분께 피하는 사람들을 아심

(8v) 그러나 그분에게 맞서는 사람은 넘치는 홍수로 완전히 멸하시고 그분의 원수들은 어둠 속으로 쫓아 버리실 것임

(9v) 너희가 여호와께 대항해 음모를 꾸며도 그분께서는 완전히 없애실 것임. 반항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임

(10v) 그들은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져 있고 술꾼들처럼 취해 있음.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처럼 완전히 불에 타버릴 것임

(11v) 여호와께 대항해 악을 도모하는 사람, 사악한 조언자가 바로 네게서 나왔음

(12v) 여호와께서 그들이 빈틈없고 숫자적으로 많을지라도 그들이 잘려 나가 사라지고 말 것이며, 내가 네게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제 다시는 네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음

(13v) 이제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부수고 너를 묶고 있는 것을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심

(14v) 여호와께서 너에 대해 명령을 내리시기를 네 이름을 이어 갈 후손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네 신전에 있는 새겨 만든 우상들과 녹여 만든 우상들을 내가 없애 버리겠다고 하셨고,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에 내가 네 무덤을 만들 것이라고 하셨음

(15v) 저기 산 위에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발걸음을 보라고 하심. 그가 평안을 선포하고 있음. 네 정해진 절기를 지키고 네가 한 서원을 지키라고 하심. 악한 사람들이 다시는 너를 휩쓸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심. 그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음

본문의 구조(흐름 문장/본문의 명제)

* 흐름 문장 *

1. 이 책은 나훔이 본 환상을 기록한 책인데, 먼저 하나님께서는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선하신 분이심(1~7v)

2. 하지만 그분에게 맞서는 사람을 멸하시고, 쫓아 버리시며, 그분을 대항해 음모를 꾸며도 그분께서는 완전히 없애시는 분이심(8~11v)

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었지만 이제 다시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니 정해진 절기를 지키고 네가 한 서원을 지키라고 말씀하심(12~15v)

* 본문의 정리: 나훔은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나훔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더디 진노하시고,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대적자들의 음모를 완전히 없애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해진 절기를 지키고, 서원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 본문의 명제: 하나님께서 너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이니 너희는 절기를 지키며 서원을 지켜 나가야 한다.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 설교

(1) 본문의 전개

1. 하나님의 속성

a.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는 데 더디하시고, 힘이 강하신 하나님.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

b. 질투가 많으시고, 복수하시는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강하신 하나님,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심

2. 환난 날의 피난처

a. 대적들이 여호와께 대항해 음모를 꾸며도 그분께서는 그들을 계략을 물거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b. 그분에게 맞서는 사람들의 음모를 완전히 없애시고, 그들의 도모가 물거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

3. 우리가 해야 할 일

a.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여 주실 것이니 너희는 정해진 절기를 지키고 네가 한 서원을 지켜 나가야 함

b.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셨지만 다시는 어려움이 없게 해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으니, 그분의 백성으로서 그분께 한 서원을 지켜 나가야 함

(2) One Point의 Main Idea: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셨지만 이제 다시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그분께 드린 서원을 지켜 나가야 한다.

3. 기도하기

오늘의 기도어구: 당신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시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당신을 계시해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 오늘 본문에서 만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당신을 계시해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실천하기 /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 내 삶 속에서 당신을 보여 주시고, 당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시해 주시고, 당신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를 올려 드리자!!!

– 어렵고 힘든 상황들 속에서 그분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분께서 배우고 성장하길 바라시는 부분들을 잘 깨닫고, 내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 가자!!!

– 내게 어려움을 주셨지만, 이제 다시는 어려움을 없을 것이라 약속해 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여, 다시금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그분께 올려 드린 서원을 지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자!!!

5. 기도하기(기도한 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마음이 흩어질 때 오늘 본문에서 만난 하나님을 되내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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