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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윤리의 두 축은 사랑과 정의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랑(은혜)에 대해선 강조를 많이 하였지만, 정의는 외면해온게 사실입니다. 이제라도 복음에서 말하는 정의의 의미를 되새겨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비유 #정의 #은혜 #사랑 #하나님나라
참고도서
Blomberg L. Craig, Interpreting the Parables(비유해석학), 김기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 1996
Ellul Jacques, On Freedom, Love, and Power(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 전의우 옮김, 비아토르, 2017
Jeremias Joachim, Die Gleichnisse Jesu(예수의 비유), 허혁 옮김, 분도출판사, 1988
Bailey E. Kenneth, Jesus Thought Middle Eastern Eyes(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
Stegemann, Ekkehard W., Urchristliche Sozialgeschichte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손성현, 김판임 옮김, 도서출판 동연, 2012
Wright N. Thomas, Matthew for Everyone(part2)(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2), 양혜원 옮김, IVP, 2010
김학철, 정의롭고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 신약논단 23(4), 2016. 12. P89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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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와 구원의 이해

주를 좇는 자의 보상을 설명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 그것과 관련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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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nhd.net

Date Published: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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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포도원의 주인과 품꾼 비유(1)

그 후 예수님은 이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부연 설명을 하신 게 오늘의 비유이다. 이 비유의 대략은 이렇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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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8/15/2021

View: 1671

열린다 비유 : 포도원 품꾼 이야기>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천국은 마치 …과 같으니'(The Kingdom of God is like…)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일련의 비유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마태는 자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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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4/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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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포도원 비유

마가복음 12장에는 포도원 비유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에 갔고 때가 되어 포도원의 소출을 받고자 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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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lphis.or.kr

Date Published: 3/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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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3- 포도원 품꾼 이야기 – 두란노서원

22살때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나는 성경을 읽으며 마태복음의 포도원 품꾼 비유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12시간을 꼬박 일한 일꾼과 1시간 일한 일꾼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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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9/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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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포도원 품꾼 비유를 오해했다. / 하나님 나라 정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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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포도원 의 비유

  • Author: 로고스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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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0.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4whCpPcgpcQ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와 구원의 이해

최세창 목사 / 1977년 감리교목사안수, 한국성서신학교 출강, 인천여신 출강, 협성대 출강, 훼이스신학대학원객원교수, *28년간의 1250여 주석대조연구로 신약 전권인 『최세창의 신약주석 시리즈』출판 *논문* “바울의 인간이해” “야고보서의 저자에 관한연구”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문제” “고용주와 고용인의 도리” “부부간의 도리” “부자간의 도리” “기도에 관한 성서적 개요” “서원기도에 관한 연구” “칭의에 관한 연구” “바울의 성 이해” “주석과 설교에 관한 소고” “히브리서의 저자 연구” 외 교계 잡지 연재 및 세미나 인도 다수

주를 좇는 자의 보상을 설명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 그것과 관련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마태의 독특한 기사로 19:30의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로 시작된다. 원문의 첫 부분에는 가르(γάρ)가 있어서 앞 구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천국”은 3:2의 주석을 보라.

“포도원”①과 관련해서 반즈(A. Barnes)는 “유대의 상당 부분이 포도의 문화에 젖어 있었다. 그러므로 기름지고 잘 경작된 장소를 가리키는 데 종종 포도원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가꾸시는 포도원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른 아침에”는 해뜨는 시간을 의미한다.“작업 시간은 태양이 비칠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랍비 문헌들에서 읽을 수 있으며, 시편 104:22, 23에서도 이것을 말하고 있다”(E. Schweizer).

“집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집주인이 이른 아침에 나간 이유는 “큰 도시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오전 6시경에 모이곤 하기 때문이었다”(Eric F. Bishop).②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이 품꾼들을 만나서 한 약속에 대해, 예수님은 【2】“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라고 하셨다.

“한 데나리온”(δηναρίου)은 로마의 은화인데 품꾼의 하루 품삯, 또는 군인의 하루 급료에 해당되었다(10:29의 주석과 18: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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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포도원(사 5:1, 3, 4, 5, 7, 27:2, 렘 12:10-)과 포도나무(시 80:8-19, 사 5:2, 6, 렘 2:21, 19:10, 겔 15:2-, 17:6-, 19:10-, 호 10:1)는 이스라엘로 비유되었다. 이러한 구절들은 이스라엘은 순수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민족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여 멸망의 위기를 초래한 민족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2) Eric F. Bishop, Jesus of Palestine(London: Lutter worth, 1955), 203, in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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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쳐(E. Schweizer)는 “정식 절차가 분명히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정확하게 행해졌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의 집주인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은 【3】“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라고 하셨다.

“유대의 날은 해가 뜨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됐고, 그 시간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산되었는데, 오후 6시는 공식적으로 다음 날이 시작된 시간이었다”(W. Barclay). 그러므로 “제 삼 시”는 오전 9시경에 해당되는 것이다.

“장터”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상품을 팔고 사는 장소이다. 얼레(R. Earle)는 “장터(agora)는 중앙의 집회소인데 각 도시에 있었으며, 그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놀기도 하고(11:16),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도 하며(agorazo는 사다), 법관들이 재판하기도 하고(행 16:19), 철학가들은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행 17:17).”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자리를 구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러므로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는 일하기 싫어서 놀고 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감을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은 【4】“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로 뒷받침된다.

그 집주인은 그들에게 특정한 품삯을 약속하는 대신에 “상당하게 주리라”, 즉 일한 만큼 보수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약속을 들은 그들은 그 포도원으로 갔다.

그 후의 집주인의 같은 행동에 대해, 예수님은 【5】“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라고 하셨다.

“제 육 시”는 정오쯤을 가리키고, “제 구 시”는 오후 3시경을 가리킨다.

집주인은 더 이상 같은 행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에도 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6】“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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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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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십일 시”는 오후 5시경을 가리킨다. 이 시간에 고용되면,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품꾼들이 그 날은 공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집주인은 그런 그들에게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라고 물었고, 그들은 “품꾼으로 써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에게 품삯을 정하지 않은 채, “포도원에 들어가라”라고 하였다. 이 품꾼들은 먼저 고용된 품꾼들보다 더 기뻐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일하는 시간이 끝나고 품삯을 지불할 때가 되었을 때에 집주인이 한 일에 대해, 예수님은 【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라고 하셨다.

“저물매”는 오후 6시경을 가리킨다.

‘Red Vineyards at Arles’ (1888) by Vincent Van Gogh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의 “청지기”는 에피트로포(ἐπιτρόπῳ)이며 ‘관리인’, ‘청지기’(마 20:8), ‘장관’, ‘집사’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집주인이자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모든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라고 하였다. 집주인의 지시는 품삯을 당일에 지불하라고 하는 신명기 24:15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이때는 최후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J. A. Bengel).

그런데 맨 나중에 온 품꾼들에게 지불된 품삯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9】“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이라고 하셨다.

“제 십일 시” 곧 오후 5시경에 와서 한 시간 정도만 일한 품꾼들이 와서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들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을 것이다. 집주인은 한 시간 정도만 일한 품꾼들에게 일한 분량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에 사랑을 베풀어 준 것이다. 이 처사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의 의지의 표현이다.

그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는 것을 본, 먼저 온 품꾼들의 반응에 대해, 예수님은 【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라고 하셨다.

제 삼 시(오전 9시경)에 온 품꾼들과 제 육 시(12시경)에 온 품꾼들과 제 구 시(오후 3시경)에 온 품꾼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먼저 온 자들, 즉 이른 아침(오전 6시경)에 온 자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한 약속을 알고 있었지만, 훨씬 적게 일한 품꾼들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고는 그들보다 “더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한 데나리온씩 받은, 먼저 온 자들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은 【11】“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하셨다.

“원망하여”는 계속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형인 에공귀존(ἐγόγγυζον)이며 ‘원망하다’, ‘불평하다’, ‘투덜대다’ 등을 의미한다.

포도원에 먼저 와서 약 열두 시간 동안 힘들게 일하면서 더위를 견딘 품꾼들이 원망한 이유는, 맨 나중에 와서 한 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먼저 온 품꾼들의 시기와 불평 또는 원망이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약속된 한 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처럼 가난한 품꾼들이 일이 없어 괴로운 마음으로 놀고 있을 때, 그것도 공치는 날로 여길 수밖에 없는 십일 시경(오후 5시경)에 그 품꾼들을 고용해 주고, 게다가 1 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품삯인 한 데니리온을 준 집주인에 대해 감사한 마음과 존경심을 가졌어야 했다. 실상, 집주인의 처사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의로웠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었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다.

집주인은 부당하게 투덜대며 원망하는 그 품꾼들 중의 한 사람을 “친구”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은 계약한 대로 이행했기 때문에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하나님께서는 약속 이행은 물론, 사랑으로 역사하신다. 그러한 “하나님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더욱 나쁜 것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J. A. Bengel). 실상, 더 많은 시간을 일한 것이 더 많은 대우를 받을 필연적 조건은 아니다.

계속된 집주인의 말에 대해, 예수님은 【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라고 하셨다.

집주인은 그 품꾼에게 정당한 그의 몫인 약속된 품삯이나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나중에 온 품꾼들에게 그와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은 자신의 뜻이라고 하였다.

집주인은 더욱 강조하여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하였다.

주인이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할 권한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가난한 품꾼들을 사랑한 선한 주인을 악하게 보느냐는 것이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주장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인간과 만물의 창조주인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로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일에 대해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구원과 믿는 사람들의 보상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의 결론적 말씀에 대해, 마태는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19:30의 주석을 보라.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524-529.

[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포도원의 주인과 품꾼 비유(1)

이 비유는 앞 장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앞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마 19:30)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 예수님은 이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부연 설명을 하신 게 오늘의 비유이다.이 비유의 대략은 이렇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구하러 아침 9시, 낮 2시, 낮 3시, 낮 5시에 나가서 일꾼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자 많이 일한 사람이 원망하는 일이 발생했다.이에 주인이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본래 처음에 약속한 것을 준 것이라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베드로에게 한 말과 똑같은 얘기로 끝이 난다. 이때 예수님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그 대답이 조금 특이하다. 일반적으로는 천국의 비유를 ‘지역’으로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물(포도원 주인)’로 표현했다.(1절)그렇다면 그 주인의 마음, 주인의 의도를 이해하면 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은혜’이다. 왜 은혜인가. 1절을 보면 주인이 일꾼을 찾고 또 찾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포도원의 일이 급해서도 아니고, 사람이 없어서 할 일을 못 해서도 아니다.주인이 일꾼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포도원을 가꾸기 위함도,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주인은 지금 집 나간 자녀를 찾듯이 일꾼을 찾아다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일을 주기 위해서이다.이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면 그가 왜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성인의 하루 품삯이다. 그 돈이 있어야 가족이 하루를 버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관심은 일꾼이 포도원에서 일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 일꾼이 자신에게 부양된 가족을 돌보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그것은 일을 마친 후 주인이 돈을 줄 때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주인은 처음 온 자부터 주지 않았다. 나중 온 사람들부터 주었다. 왜 그랬을까. 주인의 배려이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심란했을 것이다. 이 저녁에 어디를 가서 나머지 돈을 채워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그것을 주인은 너무나 잘 알았다. 더군다나 처음에 온 사람은 가격을 얘기했는데 나중에 온 사람은 얼마를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로 인해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안심하라는 차원에서 먼저 불러서 넉넉한 일당을 지급했다.반면 일찍 와서 내가 주인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일꾼은 감사가 없다. 약속한 대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작다고 느꼈다. 주인이 하루를 살게 해주었다는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주인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했다.지금 베드로는 정확히 이 먼저 온 일꾼 같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불렀을 때는 주 앞에 엎드려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그가, 3년이 지난 지금은 예수님에게 보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내가 주를 위해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로 인해 스스로 대견스러운가. 이때 이 말씀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내가 쓸 만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음을…. 그것을 기억할 때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로 내 삶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이수용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목사

(마가복음) 포도원 비유

마가복음 12장에는 포도원 비유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맡기고 타국에 갔고 때가 되어 포도원의 소출을 받고자 종을 보내니 때리고 죽이었기에 아들을 보내면 될 것이라 하여 아들을 보내었더니 그 마저도 죽였다는 내용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1장과 누가복음 20장에도 나오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다른 여느 비유에 비하여 쉽게 보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같은 경우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님께서 별도로 풀이까지 해 주셨던 것에 비하면 이 비유는 듣고 있던 유대인들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에서 쉬운 비유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영화의 스포일러, 즉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면 내용이 쉽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요 메시아라는 것을 다 알고서 성경을 봅니다. 그래서 그것에 기초하여 성경을 보기만 해도 많은 부분이 이해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비유를 하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우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었으니 이 비유는 상당히 어려운 비유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것이 자신들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오늘날 소위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오늘날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자신이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고 하면서도 그 행동이 기도나 성경 보는 것이라서 율법 신앙이 아니라고 무덤에 회칠하듯 착각하고 있으면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 비유는 단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냈는데 유대인들이 그 아들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의 한정된 내용이 아닙니다. 또 종들이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했다는 것과 같은 부연 설명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나중에 포도원 주인이 왔을 때 항거도 하지 못하고 쫓겨날 정도의 존재들이 포도원을 차지할 심산이었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포도원 비유에서 우리가 집중해서 보아야 할 것은 ‘왜 포도원인가?’ 하는 것과 ‘농부들은 왜 소출을 주지 않고 오히려 종과 아들을 죽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난데없이 건축자의 버린 돌에 관한 말씀 인용이 이 포도원 비유에 왜 끼여 있을까?’ 하는 것이 더 궁금하고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혹시 이런 것에 대하여 설교를 들어 보셨습니까?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비유의 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알아들었지만 오늘날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도 이것을 모릅니다. 모르니 설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포도라는 것은 또한 짓이겨지고 상할수록 더 가치가 올라가는 과일입니다. 포도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지은 포도원 주인은 포도를 소출로 얻겠다는 것이니 결국은 그리스도를 얻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사람에게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아들의 성품인 그리스도의 본성이 나오는 것을 원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을 바라심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가 모든 만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만드신 본질적인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라는 형상을 가진 사람의 삶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시고자 세상 곧 포도원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농부에게 포도원을 맡기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그 삶을 맡기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학자들이 말하는 ‘자유의지’가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의로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며 살 것인지에 대하여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삶의 소출을 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표현한 것이 있는지를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지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밥을 주었는지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그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이 그 소출을 구하러 보낸 종을 잡아서 때리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은 포도원 주인이 구하는 소출과 그들이 생산한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하여 건축자의 버린 돌이 성전 모퉁이 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농부 곧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소출이 있었는데 주인이 다른 것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건축자가 볼 때는 전혀 쓸모없어서 버린 돌이 되었는데, 성전의 의와 가치로는 그 돌이 주춧돌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이 소출에 대하여 가진 가치관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를 드리려 하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 맞추어 기도하는 정성, 새 돈으로 헌금하는 정성, 억지로 일어나서 봉사하는 것을 포도원의 소출로 여겼는데 포도원 주인은 그저 포도만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고 금식하며 거룩한 행세를 하고 다니며 길에 서서 기도하고 성경을 쓰고 읽고 묵상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출이라 여겼습니다. 그렇게 공로를 쌓는 가치관으로 보니 예수님이란 돌은 버리는 것이 마땅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수고와 공로나 제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옳다는 것에 의하여 죄인이 되고 종이 되어 섬기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요 하나님 아들의 성품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뜻하신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금식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도하고(사실은 육신의 것을 구함) 성경보고(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고 공부하는 것)을 포도원의 소출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소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것을 구하러 온 종과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자기들이 이때껏 포도원 주인을 위하여 온 것을 가치 없는 것이라 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건축자와 성전의 안목과의 차이였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교회에서 경건해야 하고, 예배는 사람들이 정한 격식에 따라 드려야 하며,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을 열심히 해야 사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단번에 ‘신학도 안 한 것이 어디?’라고 하거나 ‘네가 목사냐?’와 같은 반발을 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이 이때까지 쌓은 공로가 무력화 되는 것에 크게 반발을 합니다. 소출을 구하는 종과 아들을 죽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듯 이 포도원의 비유는 세상을 만드신 창세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일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놀라운 비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그 명제를 문장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이 비유를 보니 알 것 같다고 쉽게 아는 듯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해외 관광지 사진을 보고 아는 척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알아들은 유대인보다 절대적인 무지 상태인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보여주신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자 그리스도의 본성이 육신을 가진 인생에게 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포도원의 소출을 삼으려 한다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지켜 행한다고 하니 옛날 유대인들 이야기인줄로만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그 말이 얼마나 공로주의적인 것인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바로 그런 소출을 내는 농부들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구하는 하나님의 종과 아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포도원 비유의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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