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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10 옥중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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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옥중서신 – 다음블로그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 · 1. 에베소서: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지금 터키 땅) 교인들에게. 보냈음. · 2. 빌립보서: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지금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6/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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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옥중서신, 기록배경과 옥중 서신의 전달자. – 네이버 블로그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1차 투옥 되었을 때, 에베소서(AD 62), 골로새서(AD 62), 빌레몬서(AD 62) 그리고 빌립보서(AD 63), 네 권의 옥중서신을 기록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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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과 목회서신 은 바울의 기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옥중서신 사도 바울이 옥중서신에서 사용한 기도와 관련된 …
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6/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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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바울서신) – Pensées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다시 풀려나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지 않는 4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 기록한 …
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5/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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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옥중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바울의 옥중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 바울의 옥종서신이라 부른다. ·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 골로새 교회의 장로 에바브라 …
Source: weddingkgm.tistory.com
Date Published: 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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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 옥중서신 빌립보서 4장 > 패밀리네트워크
4장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
Source: youth.suhrim.or.kr
Date Published: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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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옥중서신 – YES24
사람의 믿음이나 간구보다도 훨씬 더 크고 풍성하며 능하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앞에 에베소교회가 온전히 서도록 기도하였던 사도바울의 심정과 사랑에 …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9/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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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신약. 바울의 옥중서신(에, 빌, 골, 몬) 빠른 답변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 · 1. 에베소서: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지금 터키 땅) 교인들에게. 보냈음. · 2. 빌립보서: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지금 …
Source: you.covadoc.vn
Date Published: 3/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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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열정과 공통교훈 > 주일말씀
본론 : 에베소서 4:1~16. 옥중서신이란? 바울사도가 로마감옥에서 지역교회에 보낸 편지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디모데후서가 있습니다.
Source: www.daedeok.org
Date Published: 5/16/2022
View: 619
옥 중 서 신 (The Prison Epistles)
獄中書信은 주님의 종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했던 서신이라 하여 옥중서신이라고 분류하고 불러지고 있다. 기록되어진 책은 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
Source: sangcho.com
Date Published: 7/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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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도 바울 옥중 서신
- Author: 명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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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Wob8hqEVGk
성경으로 돌아가자!!!
교회 저녁 성경공부반은 지난 4.25 부터 바울서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바울 서신 13 권 중 4 권이 옥중서신입니다 .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3 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 황제로부터 재판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로마군에 의해 로마로 압송되어 로마옥에 갇혔습니다 . (4차 전도여행). 바울은 거기서 에베소서 , 빌립보서 , 골로새서 , 빌레몬서를 써서 각개 교회로 보냈습니다 . 아래는 옥중서신을 읽고 심령에 와닿는 중요 성경구절을 요약한 것입니다 . 은혜를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
——————— 아래 —————
1. 에베소서 :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 ( 지금 터키 땅 ) 교인들에게 . 보냈음 .
엡 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2. 빌립보서 :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 ( 지금 그리스 땅 ) 교인들에게 보냈음 .
빌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의라 .
3. 골로새서 :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 ( 지금 터키 땅 ) 교인들에게 보냈음 .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4. 빌레몬서 :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 ( 지금 터키 땅 ) 교인들에게 보냈음 .
빌레몬서는 주님의 사랑과 중보사역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 오네시모는 본래 빌레몬의 도망간 노예였습니다 . 사도 바울이 그 주인된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편지를 쓴 것이 빌레몬서입니다 .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 있는 감독 ( 오늘의 목사 ) 입니다 . 바울의 편지를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가지고 골로새 교회로 갑니다 .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자기를 영접하는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
로마 시대에 노예들은 대단히 비참했다고 합니다 . 당시 노예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스타르타쿠스 입니다 .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노예가 처형되는 십자가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종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 즉 자유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 고로 우리는 바울같이 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 할렐루야 ! 아멘 .
① 골 4:10-18 ( 복음에 매인 삶의 은혜 ), 사도는 동료들이 전하는 문안과 골로새 주변 지역에 인사를 전하고 친필 서명과 함께 성도들에게 복음에 매인 삶의 은혜를 기원합니다 . 모두 자기 만을 위해 사는 때에 나를 위해 살면 나 하나도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부족을 느낍니다 .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위로와 구원을 얻습니다 .
② 삼상 14:1-23 ( 믿음과 마음을 같이하여 ), 요나단에게는 사울이 모르는 하나님이 계시고 사울이 이해하지 못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
③ 삼상 16:1-23 ( 성령이 떠난 왕 , 성령이 임한 왕 ), 다윗이 궁에 들어간 것은 그를 사울에게 추천한 무명의 소년 때문입니다 . 오래전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이끈 것도 무명의 사환입니다 (9:3).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이름 없는 이들의 수고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
④ 삼상 17:28-40 ( 낙담하지 마십시오 ),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당당하고 골리앗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것은 평소 양을 칠 때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 그러니 말씀과 함께 주를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중히 여기며 차곡차곡 마음에 간직해 두십시오 .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 아 – 멘 !
남기영 서리집사
바울의 옥중서신, 기록배경과 옥중 서신의 전달자.
바울의 옥중서신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1차 투옥 되었을 때, 에베소서(AD 62), 골로새서(AD 62), 빌레몬서(AD 62) 그리고 빌립보서(AD 63), 네 권의 옥중서신을 기록하였다.
골로새서가 제일 먼저 쓰여 졌고, 빌레몬서, 에베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립보서가 쓰여 졌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골로새 교회의 장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의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로 바울을 찾아왔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교회가 아니라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개척하여 세운 교회이며(골1:7), 장로인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모임을 가졌다 (몬1:2).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아울러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그의 종(오네시모)을 용서하라는 편지도 썼다(몬1:17-21).
편지를 가지고 가는 두기고가 분명히 에베소 항구에 들를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3년 동안이나 눈물로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도 같이 써서 보냈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며, 기독교 역사상 3대 중요도시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중의 하나다.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세 통의 편지를 가지고 떠나서 에베소와 골로새 교회, 빌레몬에게 직접 전달하고 바울의 소식을 자세히 전해 주었다(골4:7-9).
빌립보서는 빌립보에서 파견되어 바울을 돕다가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이제 완쾌되어 돌아가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다(빌4:18).
바울의 기도 Ⅱ
옥중서신·목회서신
최 순 봉 광신대학교 신약학교수
바울의 삶
바울의 삶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지속되었다. 그 교제의 중심에 바울의 기도가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기도는 복음의 사역으로 자신을 부르신 분과 연결하는 특별한 통로였다.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과 목회서신 은 바울의 기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옥중서신
사도 바울이 옥중서신에서 사용한 기도와 관련된 명사는 우리말 성경에서 ‘기도’로 번역된 ‘프로슈케’proseuchv1와 ‘간구’로 번역된 ‘데에시스’devhsi~2이다. 동사로 등장한 단어는 ‘머리를 숙인다‘란 뜻의 ‘캄프토’kavmptw와 ‘기도한다’의 동사형인 ‘프로슈코마이proseuvcomai 3를 사용한다. 그 외에 한 서신에서만 사용된 단어도 있다. 예를 들면, 빌립보서에서는 ‘그노리조’gnwrivzw 독특하게 알게 하다의 수동태 명령형인 ‘그노리제스토’gnwrizevsqw가 사용되었고, 골로새서에서는 ‘아이테오’aijtevw 간구하는의 현재분사형인 ‘아이투메노이’aijtouvmenoi가 쓰였다. 일반적으로 이 표현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직한 간절한 기대와 바람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이 사용된 서신들의 본문과 그 지시 내용을 눈여겨보면서 사도 바울이 당시에 품었던 기도에 대한 생각들을 음미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목회자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1. 에베소서
에베소 교회는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과 장벽을 허물고 한 주님과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었다2:11 이하; 3:1.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화합과 기독교인의 올바른 삶을 제시하면서 네 부분에 걸쳐 기도를 언급한다1:16; 3:14~15; 6:18; 6:19. 이 본문에 언급된 기도와 간구는 문맥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지시한다. 그리고 이 본문들은 수신자에게 기도의 필요와 그 내용을 권유하거나 강조할 뿐 아니라 바울의 깊은 성도 사랑을 보여 준다. 복음을 전한 자와 받은 자들의 영적 교제인 이 기도의 내용은 감사, 기쁨, 그들을 향한 바람과 주의사항 등을 골자로 한다. 네 개의 옥중서신 중 이 서신에서 바울은 기도를 특히 강조한다.
첫째,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과 기도로 연결되어 있다1:16. 편지의 서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목적을 기술한다. 기도하는 바울에게 에베소 성도에 대한 기억은 반복되는 기도의 제목이 되었다. 비록 바울은 자신이 옥중에 있어 몸은 떨어져 있는 상황이지만, 거리와 관계없이 기도로 에베소 성도와 영적인 교통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바울이 사용한 기도란 단어가 분사형태를 취한 것은 이와 같은 바울의 기도가 지속됨을 암시한다.4 바울이 에베소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은 기독교 진리의 내용이 성도에게 온전히 정립되기1:17~19를 원하는 ‘기도’proseucw`n프로슈콘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그들이 알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둘째,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성도의 신앙의 성숙을 위한 기도다3:14. 특별히 자신과 관련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바울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본문에 사용된 ‘무릎을 꿇고 빈다’는 표현은 매우 특이하다. 로마서 11:4에서도 ‘빈다’kavmptw캄프토란 표현은 ‘머리를 숙인다’ 또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내어 놓는다’란 의미이다.5 이 단어에는 종교적 헌신을 그 배후에 두고 있다.6 이는 단순히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만을 향한 이스라엘, 즉 선민적 행동이다.7 즉, 신을 향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맹세와 같은 의미다롬 14:11; 사 45:23 70인역; 빌 2:108. 이 표현에서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항상 느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도의 신앙성숙이 바울에게는 자신의 신앙적 헌신의 중요한 결과이다. 궁극적으로 이 바울의 기도는 1장에서 언급된 내용의 반복과 강조이다. 바울이 기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원하는 내용은 환란을 당하여 낙심하는 에베소 성도가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 땅에서 온전한 신앙인의 삶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겉 사람이 아닌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강건한 삶이다.
셋째, 바울의 기도 부탁은 성도의 영적 전투와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한 것이다6:18이하. 바울은 두 가지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하나는 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한 기도다. 기도하는 성도는 먼저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며, 깨어 있을 뿐 아니라 오래 참고 간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매우 긴 영적 전투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단의 어두움의 세력과 악한 영과 전투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그 세력을 소멸하는 영적 전투를 반복하여6:11, 13 강조하면서 성도의 기도의 중요성을 지시한다.9 특히 깨어 있고, 오래 참음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18는 표현은 이 전투를 임하는 많은 성도와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이 종국에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기도를 강조하는 형식인 명사와 동사를 함께 사용한다; ‘기도와 간구’proseuch`~ kai; dehvsew~프로슈케스 카이 데에세오스 그리고 ‘기도하다’proseucovmenoi프로슈코메노이는 단수 여격 형태의 ‘간구’dehvsei데에세이이다. 바울은 이 구절과 더불어 19절에서 다시 에베소 성도에게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면서 ‘간구’devhsi~데에시스10란 용어를 반복 사용한다. 이 본문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오래 참고 간구하여 바울은 기도와 간구를 구분하는 인상을 준다. 복음 전파는 바울에게 생명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비록 그는 감옥에 있지만,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는 사역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의 부탁을 한다. 기도를 부탁하는 바울의 고백에서 당대의 뛰어난 선교사요 목회자였던 바울도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려는 바울의 의지가 분명하게 표현된 본문이다.
2. 빌립보서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성도들을 향하여 큰 기쁨으로 자신이 기도 내지는 그들의 필요를 위하여 간구하고 있음을 기록한다. 빌립보 성도는 바울에게 매우 특별하다. 그들은 바울이 유럽 첫 성에 도착했을 때 세운 교회의 구성원이고, 이 공동체와의 교제는 지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여전히 연결되고 있다. 이 공동체가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에바브로디도의 보냄은 매우 의미가 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도움말고도 이미 빌립보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4:16 이하. 이러한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이 사용한 기도란 용어로 1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간구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종종 그의 서신에서 등장했던11 용어인 ‘데에시스’는 바울의 내면세계를 엿보게 할뿐 아니라 바울이 가진 성도 사랑을 알게 한다.
첫째, 바울의 ‘간구’dehvsei데에세이에는 기쁨이 있다1:4. 1:4에서 간구 내지는 기도로 번역되는 ‘데에시스’devhsi~가 2회에 걸쳐 등장한다. 바울은 서두에서 기도를 말할 때 이 단어가 아닌 본래 기도란 뜻을 가진 ‘프로슈케’proseuchv를 사용한다롬 1:10; 살전 1:2. 바울은 이 단어를 11절에서 사용하고, 서두에는 간구를 썼다. 바울이 기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빌립보 성도가 전도를 받은 후에 전혀 흔들림 없이 계속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립보 성도의 지속적인 사역을 위해 바울은 하나님께 꾸준히 간구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간구하고 있는 그 영적 노력을 이 본문에서 보여 준다.
복음의 사역은 인간 스스로 행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깨우치사 알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사용한 ‘간구’라는 단어의 본래 뜻이 결핍 이나 필요를 내포하고 있는데,12 이는 바울이 오직 하나님 만이 인간의 부족함이나 결핍을 해결하신다고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복음 전파는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특별한 기도 제목이다.13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의 첫 사역 이후에도 그 역사가 쉬지 않는 것은 바울의 기도가 열매를 맺은 것이고, 이로 인한 바울의 기쁨은 적지 않았다.
비록 이 지역에 설립된 교회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했고, 여러 어려움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들을 향한 감사가 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경우 늘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쓴다. 빌립보서에는 유난히 기쁨에 대한 강조가 많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에게 이 기쁨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빌립보 성도는 사도행전에 언급된 빌립보 교회의 설립과 관련하여 이미 겪은 시련이 있다. 그 시련은 바울에게 있어서도 잊지 못하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겪은 그러한 혹독한 시련이 빌립보라는 유럽의 첫 성에 하나님의 교회의 설립을 견고하게 했다. 이는 유대인의 회당이 들어서기도 전에 그곳에 기독교회가 나타난 것이다. 유럽선교의 교두보적 역할을 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한 경험을 가진 그들은 바울이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성숙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역시 바울에게도 복된 사역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비록 바울이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기도를 ‘기쁨으로’meta; cara`~메타 카라스 지속한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 간구에는 성도의 부족함을 채우는 사랑의 실천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깊이 묻어 있다.
둘째, 바울의 기도에는 성도를 향한 사랑이 갖는 본질적 목적이 있다1:11. 바울은 성도가 이 땅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열매가 그들에게 가득하기를 원하며, 이러한 삶이 이루어 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임을 주장한다. 실제로 여기서 ‘기도한다’proseuvcomai프로슈코마이14고 말하는 그 내용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바라는 궁극적 내용이다. 이러한 바울의 바람은 단순히 빌립보 교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기독교인이 희망하는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목적은 시대와 상관없이 성도의 삶 가운데 반복되어 나타나야 하는 신앙인의 열매이다
셋째,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간구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나는 너희의 간구diav th`~ uJmw`n dehvsew~디아 테스 휘몬 데에세오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우심으로 이 일복음 전파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을 안다1:19. 이미 1:4에 언급한 것과 같이, 이 간구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특별한 요구를 반영하며, 특별히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많은 이들의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보여 준다.
넷째, 기도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아뢰는 것이다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할 것을 감사함meta; eujcaristiva~메타 유카리스티아스으로 하나님께 아뢰라’gnwrizevsqw pro;~ to;n qeovn그노리제스토 프로스 톤 테온. 다른 곳과는 다르게 이 본문은 ‘알게 하다’gnwrivzw그노리조의 수동태 명령형인 ‘그노리제스토’gnwrizevsqw가 등장한다. 바울은 이와 같은 표현을 계시의 개념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고전 15:1; 갈 1:11.15 기도를 표현하는 이 두 명사가 인간 편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 동사는 매우 특이하다. 그와 함께 이 행동을 하는 동사 또한 ‘구한다’gnwrivzw그노리조란 독특한 동사의 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아시게 하라’는 뜻을 암시한다.
요한복음 15:1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듯한 이 본문의 경우 바울은 ‘기도와 간구’th`/ proseuch`/ kai; th`/ dehvsei테 프로슈케 카이 테 데에세이를 동시에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
현은 다른 서신에서도 사용되었다엡 6:8; 딤전 2:1; 5:5. 이는 이 두 방법으로 이 땅의 성도는 삶의 해결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많은 경우 기도란 통로를 통하여 확신을 얻는다. 빌립보서의 내용을 통해 기도를 표현하는 두 단어의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프로슈케’proseuchv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의 기대를 담고 있다. 이는 ‘데에시스’devhsi~ 간구가 어떤 결핍으로부터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다르게 하나님께 미래의 바람을 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다른 이를 위해서 구할 수도 있다.
두 용어가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용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기도의 성격을 지닌다.
3. 골로새서
골로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설립된 다른 교회와 달리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곳을 방문한 적도 없다2:1. 실제로 바울은 부르기아 지방을 지나면서도 남쪽 부르기아에 있던 이 골로새 교회를 지나가지도 않았다행 16:6; 18:23. 그랬던 바울이 이 교회에 편지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그러나 1:7의 암시를 보면, 이 교회 역시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위임 받고 가서 세운 교회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1:7~9.
첫째, 바울은 성도의 믿음의 성숙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간구했으며, 그 결과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1:3~11. 바울이 골로새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간구한다는 본문에는 감사의 표현이 깊이 묻어난다. 바울의 감사에는 골로새 교회가 바울의 선교나 방문 없이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기 때문이다1:4. 비록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글로 쓰지만, 그 글에는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지속적16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그가 기도하는 시간마다 반복되었다.
골로새서 1:3에 사용된 ‘기도할 때마다’peri; uJmw`n proseucovmenoi페리 휘몬 프로슈코메노이는 빌립보서 1:4에 ‘간구할 때마다’pavntote ejn pavsh/ dehvsei판토테 엔 파세 테에세이 와 비교된다. 빌립보 교인에게 보낸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바울의 삶을 보여 주듯이 이 표현 또한 골로새 성도를 향한 바울의 온전한 목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2:1. 바울은 자신이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사역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며, 그가 전하는 복음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 속에 진행되어짐을 인식한다. 그래서 그의 감사는 예외 없이 언제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다1:3, 12. 특히 1:9의 바울의 ‘기도와 간구’proseucovmenoi kai; aijtouvmenoi프로슈코메노이 카이 아이투메노이는 골로새 성도가 지향해야 할 성숙한 신앙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은 6~8절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왜냐하면 그 본문이 9절의 내용에 기초하기 때문이다.17 골로새 교회의 문제는 지나치게 사변화된 사색과 철학적 이론으로 신앙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신앙의 진정한 성숙은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임을 강조한다. 특히 그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진정으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하는 것이며, 그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모든 지식의 근본임을 강조한다1:15 이하. 여기에서 눈에 띄는 바울의 표현은 간구를 표현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쓰던 표현 ‘데에시스’devhsi~가 아닌 ‘아이테오aijtevw18의 현재 분사형인 ‘아이투메노이’aijtouvmenoi의 사용이다참고 막 7:26. 이 표현을 어떤 부정적인 상황의 극복을 요청할 때 사용했다엡 3:1319.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7비교 눅 11:9에서 하신 명령을 떠올리게 한다. 바울이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표현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였는가를 보게 하는 또 하나의 본문이다.
둘째, 바울은 언제나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4:2.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골로새서 4:2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는데, 그 목적을 개인의 영달이 아닌 복음 전파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한다. 바울은 이 복음의 전파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바울이 사용한 이 계시를 표현하는 전문용어인 ‘그리스도의 비밀’to; musthvrion tou` Cristou`토 뮈스테리온 투 크리스투20은 삶의 목적이었고, 자신의 ‘아낭케’ajnavgkh 숙명이다고전 9:16. 이를 위하여 그는 부름을 받았고, 그는 자신의 모든 세속적 가치를 포기했다. 이 과업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바울은 이미 자신이 겪은 많은 환란과 핍박을 통하여 자명한 사실로 체험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바울은 감옥에 있다4:3, 18. 따라서 바울의 이와 같은 요청은 단순히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특별한 인도하심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는 진지한 마음의 표현이다.
셋째, 바울의 기도proseuchv프로슈케는 골로새 성도가 가진 믿음의 확신을 위한 것이다4:12. 그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힘써 기도하되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온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한다4:12하. 이미 얻은 믿음의 가치를 강조한 바울은 골로새 공동체가 많은 철학적 내지는 종교적 사설들을 경험하면서 썩어져 가는 이론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굳건히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기도의 목적은 바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공동체를 위하여 늘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ejn pantiv qelhvmati tou` qeou`엔 판티 텔레마티 투 테우 이루어지고, 온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4. 빌레몬서
이 서신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빌레몬에게 바울이 개인적으로 보낸 짧은 서신이다. 바울과 빌레몬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5절, 이 서신을 쓰게 된 바울의 목적은 빌레몬에게 종으로 있다가 도망한 오네시모란 사람이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그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그가 주인으로부터 달아난 이유는 주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몬 1:11, 15~16. 이런 오네시모가 감옥에 있는 바울을 만났고, 그는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10절. 그리고 바울이 그를 나의 아들
10절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매우 친밀한 사이로 보인다. 이제 복음 전파를 위해 오네시모가 바울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나, 법적으로 주인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그를 가족처럼 받아들여 달라는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바울이 사용한 ‘기도’proseuchv프로슈케란 말은 22절에 한번 나타난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가고자 하는 뜻을 전하는 이 구절에서 바울이 사용하는 기도란 말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요청이 아니라 기대나 희망을 이루고자 한 부탁의 표현이다.21 바울은 자신이 계획을 세워 가려고 했으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유럽으로 가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비록 바울이 빌레몬에게 가려 한다 해도 성령의 인도가 있어야 갈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구하는 기도이다.
목회서신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세 권의 편지를 18세기 이후부터 목회서신으로 분류한다. 이 서신들은 다른 바울서신과 목적을 달리하고 있다. 즉 목회를 하는 사람에게 목회 활동에 필요한 지침들을 지시하고 권면하는 것이 이 편지의 주 내용이다. 목회서신에 등장하는 기도란 단어는 옥중서신에서 언급된 두 용어 ‘프로슈케’proseuchv 기도와 ‘데에시스’devhsi~ 간구를 사용하지만,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른 편지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또 다른 표현e[nteuxi~엔툭시스 기도22이 나타난다. 이 표현은 목회서신에서만 기도를 지시하는 데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바울이 기도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단어와 다른 형태의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들이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목회서신만이 가진 또 다른 기도의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디모데전서
디모데전후서는 믿음으로 낳은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로,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목회의 지침을 주고자 기록했다. 그러나 이 편지가 회람되도록 염두에 두었고, 이는 공식적으로 회중 앞에서 낭독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타나는 기도의 언급은 앞의 옥중서신과 다른 형태를 가진다.
첫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앙생활을 안정된 가운데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권한다2:1. 이는 다른 서신에서 바울이 요청하거나 권했던 기도나 간구의 내용과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다른 내용의 본문이다. 지금까지는 성도 간에 행하던 기도와 간구였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 범위를 넘어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위정자왕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신앙의 모든 경건과 삶의 평온을 위해서다. 지금까지 전투적인 인상을 주었던 바울의 기도와는 그 대상과 목적 그리고 기도의 내용 또한 다르다. 이 글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내용은 이미 목회를 시작한 상황을 반영한다. 따라서 디모데의 목회가 안정된 가운데 진행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바울은 기도와 간구와 중보와 감사를 동일 선상에 놓고 기술한다. 문맥을 따라 보면 이 네 단어들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열거 되었다. 그것은 이 땅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용어들은 동의어적 성격을 지닌다. 이 본문에서 사용된 기도의 또 다른 표현은 우리말 성경에 중보로 번역된 단어e[nteuxi~엔툭시스 기도이다. 물론 이 세 단어를 동어반복同語反覆으로 보고 세밀하게 구분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23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4:5에서 기도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두 단어 대신에 이 표현을 실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기도’proseuchv프로슈케의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2:8. 남자들에게 분노나 다툼 없이 기도하라는 바울의 표현은 다분히 유대적 정서를 반영한다.24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는 말은 예배 시 회중의 한 남자가 대표기도를 인도하고자 할 때 의사표시를 하는 방법이다. 이로써 예배의 질서를 잃지 않는다.25
셋째, ‘기도’ejnteuvxi~엔툭시스는 성화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이다4, 5. 4절에 언급된 내용인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다 좋으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를 전제로 5절의 내용을 적고 있다. 이 맥락에서 보면, 기도는 감사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 수단이다.26 이 두 가지 사항은 바울이 영적인 아들에게 7절에 언급한 ‘성화’aJgiasmo~하기아스모스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27 수동형aJgiavzetai하기아제타이으로 사용된 것은 훈련이 요구되는 과정을 암시한다. 바울은 목회를 하는 디모데에게 이 기도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바울이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 표현만 쓴 것은 다른 기도란 용어와 이 단어를 동일시 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2. 디모데후서
자신의 죽음을 보는 듯한 암시를4:6~8 적고 있는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낳은 아들인 디모데를 향하여 사역에 도움되는 권면을 한다. 경험을 통하여 얻은 목회지식을 전하면서, 고난을 견디며, 거짓 진리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3:1이하, 자신에게 배운 건전한 지식을 견지하면서 말씀을 선포할 것을 당부한다4:1~5.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간구’devhsi~데에시스의 일관된 삶을 소유했다. 바울의 기도하는 생활은 내가 밤 낮으로 간구dehvsesin데에세신하는 가운데1:3 란 표현28에 잘 드러난다. 이러한 모습은 빌 1:3에도 잘 나타나 있다. 비록 사도 바울은 또 다시 로마의 감옥에 있고, 곧 순교가 올 것을 예상하는 자리에서도 간구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기도의 내용이 디모데의 신앙을 위해서이든 아니면 그가 목회하는 연약한 교회를 위해서이든29 바울은 일생 일관된 기도의 삶을 가졌다.
3. 디도서
디모데와 더불어 바울의 동역자로 알려진 디도는 그레데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는 바울에 의해 복음 전파의 사역에 동참했고, 할례도 받았다행 16:3. 디도가 바울과 동행했던 기록은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행 17:14~15; 18:5; 19:22; 20:4; 살전 1:1; 살후 1:1; 고후 1:1.19; 빌 1:1. 그뿐 아니라 바울의 신뢰받은 디도는 바울을 대신하여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다살전 3:2; 고전 4:17; 16:10; 빌 2:19, 23. 디도서에서 비록 기도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나,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와 같이 기원을 볼 수 있다. 바울의 기원에는 기독교의 오랜 기도의 형식을 담고 있다1:4; 3:15. 특별히 은혜의 강조가 두드러진다. 바울의 축복기도는 유대인의 샬롬과 다르게 은혜의 강조가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인사이다.
바울의 삶과 기도
옥중서신과 목회서신으로 분류되는 바울의 글들에서 바울이 기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기도란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서신의 처음과 마지막에 언급된 기도문이나 찬양의 문구들의 내용은 기도를 하거나, 찬양을 하는 부분이기에 그 자체로 기도였다. 사도 바울은 편지 받는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했다. 자신의 세속적 이익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개인적 필요를 구하지도 않았다. 사도 바울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진리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성도를 위한 그의 기도 목적이었다. 바울의 기도는 사랑의 교제를 암시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로 하는 이 교제를 통하여 바울은 떨어져 있는 교회들과 언제나 같이했다. 바울은 성도와 기도로 연결된 공동체 의식을 공유했다. 왜냐하면 기도는 바울과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성도와 언제나 연결하는 교제의 끈이었기 때문이다. 바울 스스로에게도 기도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옥중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는 감옥에서의 삶을 단순한 고통이 아닌 사역의 연장으로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삶에 놓인 많은 환란에 굴하지 않고 기도로 극복하였다. 모두가 절망이라고 말하는 그 시점에도 바울은 자신의 소명과 복음을 품고 있었고, 이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기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이며 바울이 하늘로부터 얻는 위로의 원천이었다. 또 바울에게 있어 기도는 절망을 넘어서는 영적 능력이었다. 이는 지금의 상처 입은 목회자가 자신을 다시 추슬러 세우는 통로이다.
바울은 수없이 많은 배신을 당했다딤후 4:10, 14. 그러나 놀랍게도 바울은, 그 와중에 드린 기도를 통해 자신의 적은 구약의 기자들이 생각한 것 같이 자신에게 해를 가한 어떤 악한 인간이 아니라 어두운 영적 세력인 사단으로 보았다. 이 땅에서 철저히 고난 가운데 진행되는 삶을 살아도, 그는 자신의 삶에 놓인 어려움들을 기도로 승화하는 목회자, 하나님의 사역자의 진정한 모델을 보여 주었다.
목회서신에서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한다. 바울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었다. 따라서 바울의 삶이 기도로 점철된 삶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과 자신을 꾸준히 연결시키는 바울의 삶은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고통스런 긴 시간을 바울은 기도라는 도구를 통하여 가치 있게 보냈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늘 서있는 바울의 모습은 진정한 ‘코람 데오’Coram Deo의 실천이다.
최 순 봉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대학교(B.Th.), 총신대학원대학교(M.Div), 독일 튀빙겐대학교(Dr.thel.)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광신대학교 신약학교수로 있다.
1. 이 단어는 바울이 빌립보 사역을 기록하는 사도행전 16:13, 16에 등장한다. 이 경우 이 용어는 모두 기도하는 장소로 언급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단순히 기도란 뜻만이 아니고, 기도하는 장소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이것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해당하는 장소이며, 그 장소는 회당(행 16:13, 16)을 의미한다. 참고 W. Bauer,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Berlin New York, 1988), 1429.
2. ‘간구’로 번역된 이 단어의 동사형(devomai데오마이)은 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언급된다. 바울 서신 가운데는 옥중서신이나 목회서신에는 나타나지 않고, 고린도전서 5:10과 10:2과 갈라디아서 4:12에 등장
한다.
3. 구약에서 많이 사용된 ‘기도’(hLPt) 또는 ‘기도한다’(lLPt)는 70인역에서 주로 ‘프로슈케’(proseuch)와 ‘프로슈코마이’(proseuvcomai 기도하다)로 번역되었다.
4. Schnackenburg, R., Der Brief an die Epheser, EKK X, 72.
5. A. Sand, ‘Kavmptw,’ EWNT II, 612.
6. W. Bauer,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 816.
7. Strack-Billerbeck, Die Briefe des Neuen Testament und die Offenbarung Johannes(Munchen, 1994), 594.
8. 보다 자세한 내용은 H. Schlier, ‘Kavmptw,’ ThWNT III, 599~600를 참고하라.
9. 이와 같은 대적을 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경우는 구약의 시편에서도 등장한다. 바울은 구약의 대적을 사단으로 표현하고, 이 땅의 전투를 영적 전투로 기술하였다. 시편의 기도에 대하여는 Jung, K., Prayer in the Psalms in Teach us to pray, ed. D. A. Carson (Exeter, 1990), 50~1, 56~7를 참고하라. 이와는 다르게 바울서신 가운데는 인간을 대적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한 경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10. Nestle-Aland 27에서 이 단어는 18절에 나타난다.
11. 고후 1:11; 9:14; 엡 6:18; 빌 1:4; 4:6
12. Greeven, H., ‘데오마이’(devomai간구하다) , ‘데에시스’(devhsi~), ThWNT II, 39~41. 신약 성경에는 이 단어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부탁 또는 ‘간청’의 의미로 사용된다. 특별히 바울서신에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뜻한다.
13. F. G. Hawthorne, Philippians, WBC 43, 17.
14. Nestle-Aland 27에 따른 본문에서 이 단어는 9절에 나타난다.
15. O. Knoch, ‘Unwrivzw,’ EWNT I, 616~7.
16. P. T. O’Brien, Colossians, Philemon, WBC 44, 10. 바울 당시 이 지속적이란 표현은 매일 아침, 정오, 저녁에 하는 세 시간 정도의 기도를 뜻한다.
17. R. Martin, Colossians and Philemon, NCB, 50.
18. 구약에서 이에 상응하는 표현은 ‘샤알’이다. 참고.?BDB, 981.
19. W. Bauer,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 49.
20. H. Krmer, ‘Musthvrion,’ EWNT II, 1102~04.
21. 이는 빌레몬에게 자신의 방문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감옥에서 나와 방문하려는 바울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참고 P. Stuhlmacher, Der Brief an Philemon, EKK XVIII, 54~55.
22. 이 용어는 본래 로마나 희랍 당시의 지방 의회나 관청에 제출하는 청원서 또는 진정서를 뜻했다. 참고 W. Bauer,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 542.
23. A. T. Hanson, The Pastoral Epistles, NCB, 66.
24. Strack-Billerbeck, Die Briefe des Neuen Testament und die Offenbarung Johannes, 645. 기도에 임하는 유대인의 마음의 자세를 표현하는 말 중에서 ‘분노 없이’(Ohne Zorn)가 있다. 이는 기도 시에 서두르거나, 원수를 생각하지 말며, 쫓기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 것을 명한다.
25. A. T. Hanson, The Pastoral Epistles, 70.
26. J. Roloff, Der erster Brief an Timotheus, EKK XV, 227.
27. 참고 W. Bauer, Worterbuch zum Neuen Testament, 15. 이러한 용법은 로마서 6:19, 22 디모데전서 2:15 등에서도 사용되었다.
28. A. Weiser, Der zweite Brief an Timotheus, EKK XV/1, 97. 이는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바울의 생활을 보여 준다.
29. A. T. Hanson, The Pastoral Epistles,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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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바울서신)
옥중서신이란?
옥중서신은 감옥에서 편지를 썼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힌 시기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가이샤라에 갇힌 것과 로마로 이송되어 로마 감옥에서의 시기입니다. 학자들은 가이샤로에서는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어 약 2년 가까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때가 1차 수감기간입니다.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다시 풀려나 사도행전에 기록되어있지 않는 4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때 기록한 편지들이 [목회서신]으로 알려진 디모데 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약 30% 정도가 내용이 같을 만큼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바울에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 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고대 사본에는 에베소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에베소서가 바울의 서신이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단지 사본상의 문제일 뿐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보기에 바울이 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닮아 있다는 것은 바로 누군가 인용했기보다 그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글은 그 사람의 성향이 묻어 있고, 단어나 문장의 패턴이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동일한 한 사람, 바울이 썼다고 확신합니다.
에베소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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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옥중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옥중 서신이란 무엇인가?
에베소서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문제.옥중에서 쓴 것처럼 보이는 바울의 편지는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어떤 순서로 기록되었는가?
해석.
a. 바울은 10년 동안에 걸친 제 1차, 2차, 3차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편견과 핍박과 투옥이었다.성전에서 폭도들에게 붙잡힌 바울은 천부장 루이사와 로마 군인들의 출동으로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사도행전 22장에서, 피투성이의 바울은 층대 위에 서서 그를 죽이려하는 백성들에게 간증적인 설교를 한다.23장에서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 불려가서 자기를 변명합니다.24장은 총독 빌릭스 앞에서, 25장은 총독 베스도 앞에서, 26장은 헤롯 대왕의 증손자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자서전적 간증을 한다.그러나 2년이나 기다려도 석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바울은 로마 시민의 마지막 권리를 사용하여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결심한다.
사도행전 27장과 28장에서 바울은 드디어 로마로 출발한다.그가 평소에 늘 복음 전파를 위해 가고 싶어 하던 것을 죄수의 모습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바울 일행은 바울과, 누가와,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였으며,총 276명의 죄수와 군인들 그리고 선원들이 승선한 (27:37)아드라뭇데노 배는 순풍에 돚을 달고 로마로 출발하였다. 율리오는 바울 일행에게 천절 하였다.그것은 아마도 바울에게 호감을 가졌던 베스도의 배려였을 것이다.그러나 바울 일행은 큰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배를 버리고 상륙한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난후 드리어 평생을 가고 싶어 하던 로마에 도착한다.환호성 속에 영접 받는 사도로서가 아니라 감시받는 죄수로서 로마에 도착했다.압비오와 삼관까지 마중 나온 형제들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그러나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면서 2년 동안 열심히 복음을 전파한다.그러면서 4권의 서신, 즉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였다.이 네 권의 책을 바울의 옥중서신이라고 부른다.
b. 옥중서신 중 바울이 제일 먼저 쓴 편지는 골로새서이다.골로새서는 이단 문제에 시달린 골로새와 그 주변교회가 그들의 지도자인 에바브라를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파견하여 그의 지도를 구하자 바울이 써서 보낸 편지이다.골로새 교인들을 괴롭힌 이단 문제는 주로 그리스도론에 관한문제이다.바울은 여기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한다.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400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가 많고 번화한 도시였다.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니었지만 간접 설립자라고 볼 수 있다.바울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온 아시아에 3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각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행19:10).에바브라는 바울의 제자로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였고 골로새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풀리스 등 근방 교회의 개척에 선구자였다.
골로새 교인들을 괴롭힌 이단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영지주의자, 혹은 이교의 철학자들, 철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유대인들, 에세네의 금욕주의자들 등이 추측할 수 있는 이단들이지만 확실히 파악하기는 힘들다.그러나 그들이 “세상의 초등학문”(2:8)을 가르치고 천사를 숭배하며(2:18), 금욕주의자(2:21)인 것을 보아 당시 교회들을 괴롭힌 원시 영지주의(Proto-Gnosticism)의 일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의 해답을 찾는다.그리고 그 내용을 적은 골로새서를 두기고 에게 주면서 동시에 소아시아의 모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교회론을 적은 편지와자기에게 피신해 있는 골로새 교회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를 받아주기를 간청하는 편지도 같이 보낸다. c. 골로새 교회의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골로새서를 쓴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빌레몬에게 극히 개인적인 편지를 써서 골로새서와 함께 보낸다.그때 마침 골로새의 빌레몬 장로 집에서 도망쳐 온 한 노예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바울을 시중들고 있었다.바울은 이 노예 오네시모를 옛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용서하여 주기를 탄원하고 있다.그러므로 빌레몬서는 주인에게서 도망친 한 노예를 위한 바울의 탄원을 담은 극히 개인적인 서신이다.웅대한 신학을 담은 그의 다른 서신과 좋은 대조를 이루지만 빌레몬서는 바울의 교리와 신학을 뒷받침하는 그의 인격과 사랑을 잘 나타내고 있다.도망친 일개 노예를 형제로 대접하면서 그가 용서받도록 하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간곡히 허락을 구하는 바울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비천한 노예 문제를 다루는 이 서신에서 우리는 고귀한 인간 정신의 승리와 인간 바울의 참 모습을 본다.
d. 에베소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중 세 번째로 쓴 책일 것이다.로마로 바울을 찾아온 골로새 교회의 장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의 문제들을 바울에게 고하였고골로새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이 쓴 편지를 두기고가 가지고 아시아로 가는 길에 빌레몬서와 에베소서도 전달하도록 에베소서를 기록하였다.에베소서의 수신자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다.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3년이나 머물면서 눈물로 목양한 교회이다(행20:17~35).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론이다(행20:17~35).에베소는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의 중심이었고 어머니 교회였다.따라서 에베소 교인들은 올바르고 건전한 교회 관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장엄한 찬송과 명상으로 시작하는 에베소서는 예수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했으며 기독교 교회관의 내용들과 새로운 의미를 제시했다.
기록 연대와 목적은 다음과 같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골로새 교회의 에바브라가 찾아와 골로새 교회의 긴급한 문제들을 상의하고 바울의 지도를 구했다.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권면하는 편지를 써서 두기고 편에 보내면서 에베소와 빌레몬서도 같이 기록하여 보냈다.물론 빌레몬의 종 오내시모도 이때 주인에게 돌려보내졌다. AD 61~63년경 바울이 오마의 감옥에 있을 때였다.문제를 가지고 바울에게 의논하러 왔던 에바브라는 오네시모 대신 바울을 돕느라고 골로새로 돌아가지 못했다.
e. 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중 제일 나중에 쓰여진 편지서이다(AD61~63).복음이 온 시위대 안에 전파되었다는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1:13).옥중서신 중 다른 편지서들(에베소서,골로새서,빌레몬서)은 두기고가 가지고 소아시아에 가서 전달했으나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파견한 에바브로디도가 직접 전달하였다(빌2:25).로마에 온 에바브로디도는 죽을병이 들었고 그의 병은 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근심하게 하였으나(빌2:26).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병이 나아 빌립보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유럽의 첫 성이다.빌립보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 회집시켰으며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 그를 치료해 주었기 때문에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으며 거기서 만난 간수를 구원하였다.(사도행전 16장을 자세히 읽을 것).그런 특별한 인연 때문인지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특별히 사랑하여 그의 쓸 것들을 공급하고 감옥에 있을 때는 그의 옥바라지를 도맡았다.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그런 정성을 감사히 여겨 그의 편지에서 여러 번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고후11:9,빌4:16).
빌립보에서의 특징은 첫째로 기쁨과 감사의 편지라는 것이다(1:3,4,18,25; 2:17,18; 3:1; 4:4,10,18).성경의 어느책,바울 편지서의 어떤 책보다도 기쁨과 감사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감옥에서 쓰여진 편지가 기쁨과 감사에 넘친다는 것은 바울의 믿음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둘째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교리적인 데 비하여 빌립보서는 실천적이고 간증 적이다.물론 빌립보서에도 교리적인 부분이 있지만(빌2:6~11) 일반적으로 권면과 간증으로 이루어진 책이다.따라서 일견 비조직적인 글로 보이기도 하지만 빌립보 교회와 그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따뜻한 감사가 절절히 배어 있는 편지서이다.
요약.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네 권의 책을
바울의 옥종서신이라 부른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골로새 교회의 장로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의 이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로 바울을 찾아왔다.
바울은 즉시로 펜을 들어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아울러 골로새 교회의 장로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그의 종을 용서하라는 편지도 썼다.
편지를 가지고 가는 두기고가 분명히 에베소 항구에 들를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3년 동안이나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도 같이 써서,
빌립보에서 파견되어 바울을 돕다가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이제 완쾌되었습니다
출처: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2&docId=265478645&qb=67CU7Jq47J2YIOyYpeykkeyEnOyLoA==&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TF6bqwpVuEVssZy67GRssssst0N-499634&sid=k6UP4o%2BSYpi4bK3kQWQg4A%3D%3D
바울의 옥중서신
동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총회신학교 신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반석중앙교회 담임목사, 장로교 총회신학원 교수, 총회신학교 미주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늘푸른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굿모닝 프리칭』,『주님과 동행하는 삶』,『천국의 소망 요한계시록』등이 있다.
동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총회신학교 신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반석중앙교회 담임목사, 장로교 총회신학원 교수, 총회신학교 미주 노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늘푸른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굿모닝 프리칭』,『주님과 동행하는 삶』,『천국의 소망 요한계시록』등이 있다.
사도 바울 옥중 서신 | [성경통독] 신약. 바울의 옥중서신(에, 빌, 골, 몬)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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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중 서 신 (The Prison Epistles)
옥 중 서 신 (The Prison Epistles)
필라델피아 선교신학 대학교 교수.목사.이상조박사
獄中書信은 주님의 종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했던 서신이라 하여 옥중서신이라고 분류하고 불러지고 있다. 기록되어진 책은 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빌레몬서 그리고 디모데 후서이나 디모데 후서는 디모데 전서를 이어 목회서신으로 보기 때문에 옥중서신으로 포함하지 않으나
마지막으로 연구 하여 비교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 이번 학기에 연구 하고자 하는 부분 =
옥중서신의 硏究
1.옥중서신으로 보는 정당성.
2.옥중서신의 대표적인 사상.
3.어느 옥중에서 기록되어졌는가?.
4.서신의 기록된 순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5.각 서신의 연구.
6.옥중서신이 목회자들에게 주는 영향.
7.옥중서신이 성도들에게 주는 영향.
이 내용을 가지고 시간과 진도 방향이 허락하는대로 연구해 보면서 사도 바울을 통한 신약시대의 복음 사역과 특히 그의 많은 복음 서신 중에서도 옥중서신을 연구해 봄으로서 각 교회를 향한 그의 사상과 영향을 연구해 보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부름을 받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복음의 사역과 진로에 영향력있는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옥중서신으로 보는 정당성에 대한 연구.
옥중서신(Prison Epistle.독 Gefangenschafts,Briefe)은 그 각서신들 속에서 그 책들이 옥중에서 기록 되어졌음을 확실하게 밝혀 지므로써 옥중서신임을 증거할수가 있다
1.’갇힌 자’ — 엡 3:1, 4:1, 골 4:10, 몬 1, 23.
2.’매임’ — 빌 1:13-14, 골 4:18, 몬 10, 13.
3.’쇠사슬에 매임’ — 엡 6:20.
4.’시위대’ — 빌 1:12-14.
그 외에도 빌 1:7, 골 4:3, 몬 7, 딤후 1:16-17.
==>참고 1.
*옥중서신의 대표적인 사상 연구:
1.옥중서신은 基督論의 사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진 것이 특징이다.
*옥중서신은 어느 옥중에서 기록 되어 졌는가?:
크게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에베소 옥중설이요, 두번째는 로마 옥중설이다. 그러나 보통 많은 신학자들이 에베소 옥중설 보다는 로마의 옥중설을 더 주장한다. 그 이유를 네가지로 보면 그
첫째는 빌레몬서에 보면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에 오네시모가 회개하게 되었다(10절)고 했다.
오네시모는 주인의 눈을 피하여 도망하였고 그러므로 에베소 보다는 먼 로마로 가서 있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또한 당시의 에베소 보다는 세계적인 도시 로마가 주인에게 잡힐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옥중서신 끝에 보면 바울의 동료 이름 가운데 디모데, 데마, 누가(골 4:14), 두기고(엡 6:21), 아리스다고(골 4:10)가 있는데 그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던 곳은 역시 로마이다.
세째는 빌립보서 4:22에 보면 “가이사의 집 사람”이 문안을 전한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로마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로마에서 이 옥중서신을 썼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네째로 빌립보서 1:20-24, 2:17절에 바울이 최후로 당할 죽음을 생각하고 그의 결의를 표명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역시 로마에서 최후 판결을 기다릴 때 한 말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옥중서신은 사도행전 28:30-31절에 언급한대로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던 때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옥중서신이 기록된 순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먼저 빌립보서가 옥중서신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되었는가,아니면 제일 나중에 기록되었는가,하는 문제와, 다음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중에서 어느 서신이 먼저 기록되어졌는가 하는 문제가있다. 먼저 빌립보서는 디이젠(Thiessen)의 주장대로 옥중서신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되어졌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네가지로 볼수 있는데:
(1)바울의 도착 소식이 빌립보에 전달되어야 한다.
(2)그 후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에서 로마로 와야 한다.
(3)로마에서의 에바브로디도의 병에 관한 소식이 다시 빌립보까지 전해져야 한다.
(4)빌립보 교인들이 에비브로디도의 병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로마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빌립보서가 옥중서신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 되어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기록 순서가 문제인데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부족하지만 에베소서 보다는 골로새서가 먼저 기록 되어졌다고 본다. 그 이유와 원인은 본문을 연구하면서 발혀 보도록 하겠다.
*각 서신의 연구.
1.골로새서(The Colossian):
골로새서는 리커스(Lycus) 강을 바라보는 돌 많은 산에 위치한다. 에베소에서는 약 100마일 동쪽에 있고 라오디게아에서는 12마일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기원 전 5 세기 페르샤 전쟁 때에는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으나 그 이웃에 있는 라오디게아 및 히라포리스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쇠퇴한 도시이기도 하다. 바울이 골로새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은 사도행전에는 없다. 다만 사도행전 19:10절에 “이 같이 두 해 동안을 하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아마 이 때 골로새 교회가 설립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골로새 교회를 세웠을까?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바울의 동역자 중 한 사람인 디모데가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르는 동안 라오디게아. 골로새로 다니면서 교회를 세웠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1:1절에 디모데의 이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라오디게아나 골로새의 주민 가운데 어떤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설립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예를 들면 에바브라(골1:7-8, 4:12-13)나 눔바(골 4:15) 또는 빌레몬(몬 1-2)이 에베소로 여행했다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를 세웠을지도 모른다.다만 확실한 것은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설립하고 목회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골로새서 2:1절을 통해서도 분명하다.”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한 것은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에는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은 거의가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2:13(참고.엡 2:1)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란 이방인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란 이방인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무할례”( )란 이방인을 위한 칭호이다(롬 2:24-27, 눅 2:11). 따라서 골로새서 1:21절의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란 구절은 잃었던 이방인들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엡 2:11-12, 4:17-18).
(가) 기록자:
골로새서의 기록자에 대하여는 1838년 메이어호프(Mayerhoff)가 사도 바울의 기록설을 부정한 이래로 바워(F.C. Baur)나 튜빙겐 학파에 의해서 바울의 기록설이 부정되어 왔다. 그러다가 홀쯔만(Holtzmann), 바이스(J. Weiss)등에 의하여 첨가설이 제창되기도 했으나 디베리우스(Dibelius)와 로메어(Lohmeyer), 퍼시(Percy)에 의해서 인정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으나 볼트만 학파에 의해 다시 부정되는 곤욕을 치러왔다. 그러면 골로새서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수가 있다.
첫째는 반영지주의적 교리가 골로새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영지주의는 2 세기 전에 나타난 일이 없으므로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골로새서에 나타난 기독론이 다른 바울 서신에 나타난 것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상 창조에 그리스도께서 참여 하셨다(골 1:16-17)는 것은 다른 바울 서신에 나타난 기독론과 모순이 된다고 했다.
세째는 단어와 문체가 다른 인정된 바울 서신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네째로는 에베소서와의 공통된 점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것은 골로새서가 에베소서를 모방한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상에서 지적한 네 가지 이론은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고 본다. 물론 2세기 이전에 영지주의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1947년에 사해 사본이 발견 되면서 영지주의와 유사한 사상이 그 이전에 이미 유대교 종파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 영지주의(靈知主義)란 어떤 사상인가? 쉽게 말하면 영적인 것은 선(善)하고 물질은 악(惡)하다고 보는 이교(異敎) 사상에 근거를 둔 사상적 체계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악한 물질적 육체를 가진 이상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
로 하나님께 간구하려면 천사나 성자같은 중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가복음 7:21-22과 반대되는 것이다.”속으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고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 –
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디모데 전서 2:5절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음은 골로새서의 기독론 문제인데 그리스도의 선재론(先在論)은 골로새서만의 특징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빌립보서에도(2:9-11) 그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의 세상 창조의 참여는 바울 서신으로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고린도 전서 8:6에도 나타나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골로새서의 기독론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세번째는 단어(34개)나 문체가 다르다는 것는 사실이다. 바울이 즐겨 쓰는 “의”( ), “율법”( ), “계시”( ) 등의 단어가 골로새서에는 없다, 그러나 바울이 영지주의적 사상의 잘못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자연히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들을 인용하는 것은 당연하며, 문체란 대상이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어나 문체의 차이는 결정적증거가 되지 못한다.
끝으로 에베소서와 공통점이다. 마손(Masson)은 골로새서가 에베소서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골로새서가 에베소서 보다 후에 기록되어졌다는 전제 하 에서만 가능한 주장이다. 이것은 미톤(Mitton)의 비교 연구 가운데서 지적된 것이지만, 그러나 논리적으로 그것은 바울의 기록을 부인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공통점은 그들이
거의 같은 때에 동일인(바울)에 의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외증과 내증을 통하여 골로새서의 확실한 기록자를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익니티우스의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제 10장)에서 보면 골로새서 1:23절을 암시하고 있고, 바나바 서신(제 12장)에도 골로새서 1:16절을 암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드, 터툴리안, 오리겐 및 구(舊) 라틴어역과 구(舊) 수리아역, 그리고 무라토리의 정경에도 나타난 것으로 보아 바울의 기록설은 오래 전부터 인정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내증인데 골로새서에 세번씩이나 자신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골 1:1, 23, 4:18). 또 디이센(Thiessen)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일반적으로 용납한 일이며 이 서신에 기초한 실제적인 권고는 순전히 바울적이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골로새서의 기록자는 확실하게 사도 바울임이 틀림이 없다.
(나)기록한 연대와 장소:
기록한 연대와 장소에 관해서는 옥중서신 초두에 이미 자세히 언급했으므로 따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요컨데 A.D 62년에 골로새서는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되었다.
(다)골로새서의 목적과 특징:
바울이 아시아 지방을 떠나 2년 이상 있는 동안 골로새 교회에는 영지주의적 사상을 가진 이단들이 일어나 교회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르친 사상은 크게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이다. 그들은 할례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이나 안식일에 대하여 복음과 다른 규례(골 2:11-16)를 가르친것이다.
둘째는 금욕주의적 사상을 주입했다. 그것은 골로새서 2:20-23절에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내용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세째로 영지주의적 철학을 가르쳤다. 그것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경계한 바울의 권고(골 2:8)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골 2:9, 참고 1:19)하고 천사숭배(골 2:18-19)를 가르친 그들의 교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사상을 퍼뜨리는 이단자들이 교회를 혼란시키자 에바브라는 혼자의 힘으로 이것을 해결할 수가 없어 로마로 가서 바울과 상의(相議)한 것이다(골 1:7-8). 그러나 로마의 옥중에 있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펜을 들어 기록한 것이 골로새서이다.
골로새서의 특징은 에베소서와 쌍동이 서신이라는 점이다. 본 서신에서 55개 이상의 구절이 단어까지도 닮았다. 이 점에 대하여는 헨드릭슨(Hendriksen)의 {에베소 주석} 서론에 잘 나타내고 있다.
두번째 특징은 영지주의적 사상과 페르샤의 점성학(占星學)및 혼합주의(Sycretism)적이란 사상에 대한 강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에 일어난 이단의 모습을 비교적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라)골로새서의 내용:
구조적인 면에서 본 내용
1:1 – 8 | 머리말
1 장 | 그리스도의 탁월성
2 장 | 이단 사상의 경고
3:1 – 4:6 | 새 사람의 생활
4:7 – 18 | 맺는말(개인 소개와 인사)
내용 요약:
A)머리말(1:1-8)
B)그리스도의 탁월성(1:9-29)
(1)바울의 기도(1:9-14)
(2)그리스도의 인격(1:15-20)
(3)그리스도의 업적(1:21-29)
C)이단 사상의 경고
(1)바울의 관심(2:1-5)
(2)이단에 대한 경고(2:6-15)
(3)이단의 성격(2:16-23)
D)새 사람의 생활 표준
(1)생활의 기초(3:1-4)
(2)생활의 원리(3:5-17)
(3)생활의 적용(3:18-4:6)
a)아내들의 생활 표준(3:18)
b)남편들의 생활 표준(3:19)
c)자녀들의 생활 표준(3:20)
d)부모들의 생활 표준(3:21)
e)종(노동자)들의 생활 표준(3:22-25)
f)주인(기업주)들의 생활 표준(4:1)
g)교인들의 생활 표준(4:2-6)
E)맺는 말(4:7-18)
* 참고 1.
골로새서의 이단 문제: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나 갈라디아서를 쓸때 인식했던 그런 나름대로의 어떤 특별한 주장들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서신을 쓰게 했던 위급한 사태 및 골로새에서 일어났던 제반 문제점들이 그에게는 골로새 교회의 가장 중대하면서도 불길한 특성으로 보였을 것임이 더욱 분명하다. 왜냐하면, 후에 영지주의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단적 운동의 첫번째 징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시골 마을(골로새)에 나타났기 때문인데 사도 바울은 이 지역에서 그것이 발생할 것을 이미 예견한 바 있었고(행 20:29-30),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는 운동이었다. 소위 “골로새의 이단”의 정확한 본질과 기원을 확인하기란 어렵다. 그것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이 서신을 검토하게 되면서 다음의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1)이 교훈은 철학적 특성을 자처한다(2:8. 3-4을 비교).
(2)그것을 변호하는 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유대주의자들 이다(2:11,14,16-17).
(3)그들은 천사 숭배를 행했는데 그들은 천사들의 힘을 과장했다(1:16, 2:10,15,18-19).
(4)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금욕주의적 규칙들을 가르쳤으며, 육신의 삶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겼다(2:20-23).
(5)그들의 전체적인 제도는 그리스도의 위대성과 권위,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성을 제한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1:14-20, 2:8-10,17,19).
(6)그들은 여전히 기독교 선생들의 인격을 가장했으며, 기독교인들을 더 높고 더 확실한 신령한
삶으로 이끌고 있다고 자처했다(1:23,28, 2:3-10,16-18,23, 3:1,14,15).당시 골로새의 이
러한 오류들은 철학적이고, 유대주의적이며, 환상적이고, 금욕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이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1세기의 종교적 사상 경향에 있어서, 과연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지난 약 200년동안, 분산된 유대인 사회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 자체내의 지적 운동의 중심지가 되어왔는데, 그곳의 유대교는 모세 체제의 외적구조는 조심스럽게 유지시키는 한편, 헬라 철학 및 동방 신비주의를 결합함으로써 유대교의 내적 특성을 깊이 변화시켰다. 이 과정의 결과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및 사도 바울과 동시대 사람인 필로(Philo)의 광범위한 작품이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시기의 헬레니즘적 사상의 방향에 관한 필로의 증거는 그가 본래부터 타고난 저술가가 아니라 그가 소속했던 유서깊고 영향력 있는 학파의 웅변적인 해설자였음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그의 교훈의 첫째 원리들 가운데에는 항상 동방(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접신론(接神論, theosophy)의 상투어가 되어온 것들이 있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본질적인 악의 교리들과 신(神)과 창조된 세계 사이의 절대적인 분리의 교리들이다. 그의 유대교는 천사들, 권세들, 말씀들(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필요한 중개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유대교는 그 의식적이고도 관례적인 예배도 상당히 수정하여 세련되게 했는데 그 의식적이고도 관례적인 예배에 의해서 인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적인 요소는 천사의 도움울 받아 조잡한 물질적 방해물들을 극복하게 되어 있었고 그 영적인 요소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을 다시금 뵬수도 있게 되는 것이였다. 헬라 철학은 필로 체계의 용어와 방법을 제공했는데 필로의 체계는 종교를 분석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더 높은 이성에 속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비적이고도 명상적인 지식이 되게 했으며 영적인 사람으 로 철학자와 동일시했다. 이 교훈은 대부분 율법책에 대한 정교한 해설의 형태를 취했는데 그것은 우화야 말로 역사적 사전과 율법의 명령들을 영해(領解)하게 하고 알렉산드리아 철학의 교의들을 입증 및 예증시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체계는 70인역의 본산에 거주하는 이집트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우세하고 전통적이었으며 그 원리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헬라주의 유대인들과 헬라인 개종자들 중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특별히, 알렉산드리아와 활동적으로 교제 했기에 유사한 정신적 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었던 소아시아 서부에서 필로의 교훈에 의거한 영지주의가 교육 받은 유대인 사회에 이미 퍼져 있던 교의였음을 추정할 수가 있다. 요세푸스를 통하여 잘 알려졌으며 필로가 기술하여 공감을 받은 바 있는 팔레스틴의 엣센주의는 이방의 접신론과 금욕적 요소가 유대교에 얼마나 침투되어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주의 깊은 랍비들이 율법에 울타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신비주의가 팔레스틴의 심장부로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 경로는 알렉산드리아 및 서방을 통했거나 아니면 페르시아 및 동방을 통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헬라 세계에서는 얼마동안 이교적 엣센주의로 묘사될 수도 있는 오르페우스 교(敎)(헬라 신화에서 수금의 명수, 동물, 나무, 바위까지 황홀하게 만들었다고 함) 및 피타고라스의 신비적 교훈들이 광범위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이아나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of Tyana)-금욕적, 신비적 철학자이며 기적을 행하는 자가 걸어온 그 놀라운 이력을 살펴 보게 되면 우리는 마술적이면서도 영지주의적인 접신론이 아무리 유치한 구조로 되어 있고 엄청난 과장을 하고 있더라도 그 접신론의 발전을 위하여 1세기 소아시아의 풍토는 너무나 적절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확실히,그 당시에 이 서신에서는 유아기 형태로 발견되는 그 영지주의가 발생될 만한 때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선교가 그렇게도 놀라운 성공을 거둔 그 낯선 동서양 경계지의 어느 교회에서도 그의 생애동안 이 형태의 접신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실로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볼로 라는 사람을 통해 바울의 기독교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행 18:24-19:1). 그의 성서적 학식과 결합되고 세련된 헬라식 웅변은 이 교사로 하여금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그렇게도 환영받게끔 했다(고전 1:12, 3:4-6). 확실히 그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학파의 더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훈련에 덕을 입었다. 또한 히브리서는 그 저자가 누구이든 기독교 신학과 필로(Philo)의 종교 철학 사이에는 많은 접촉이 있었으며 사도 바울이 가르친 복음이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가장 좋은 열매들을 충분히 흡수하고 동화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령 아볼로같이 알렉산드리아 문화에 젖은 철학적이고 웅변적이며 금욕적이고 야망적 기질을 자진 어떤 유대인이 소아시아의 기독교 교훈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는 아볼로와는 달리 복음을 그의 철학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새로운 믿음과 알렉산드리아의 지적 체계를 혼합시키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지역적인 영향을 힘입어 수정하기도 했다고 하자, 뿐만 아니라 그는 이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 마치 자신이 사도 바울의 교훈을 확장시키고 완성시키고 있으며 더 개화되고 영적인 교회 회원들에게는 더 진보된 지혜, 즉 참된 하나님의 신비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하자, 사실 이런 따위의 현상은 그 제설혼합주의적 시대에 계별적으로 많이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다. 마술사 시몬의 경우나 그 후대에 속하는 게린투스(Cerinthus)의 경우는 다르다. 그러나 본 가정이야 말로 “골로새의 이단”의 발흥을 설명하기위해 필요한 전부이다. 당면문제는 사도 바울 시대의 “노스틱 파”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S.데이빗슨 박사의 신약 개론 참고). 개별적인 교사들 및 때때로 일어나는 경향의 출현은 항상 명백한 분차의 형성에 선행되는 법이다. 사실 본 서신 자체의 암시만 가지고 본다면, 그 이단은 쇠퇴해가고 중요하지 않는 골로새의 마을에서 단 한 사람에 국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교(異敎)의 창시자는 획실히 웅변과 영향력의 교사였다(골 2:4,8,23). 또한 그의 교훈은 비록 그것이 골로새에서 조차 우세하게 되지는 않았지만(골 2:5), 뛰어난 매력을 지녔다. 따라서 사도 바울에게는 이것이 어디로 성장하게 될 것인가 하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되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에베소에 장기체류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이미 환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곳 교회에 바야흐로 임하고 있는 절박한 투쟁에 대해서도 이미 경고를 한 바가 있었다(행 20:29-30). 바울이 비록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지라도 아볼로와 친밀한 사이였던 까닭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사상에 대한 제반 원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그 에게는 웅변을 과대 평가하고 기독교 진리를 철학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을 환영하는 헬라작 풍조를 비난할 기회가 있었다(고전 1:17-2:16, 15:12). 로마에 편지를 쓰면서 역시 그는 그릇된 금욕주의적 규칙들을 받아들인 “연약한 형제들”을 다뤄야만 했다(롬 14장). 그러므로 에바브라가 골로새에 나타난 이상한 교리때문에 바울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당활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그곳에 왔을 때 사도 바울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 것이 본 서신을 쓰게했던 주님의 뜻이고 성령님이 원하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사랑과 마음이었다.
참고 2.
골로새서 3장 11절에 있는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Here there is no Greek or Jew,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an, Scythian, slave 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
<참고성구> 갈 3:28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6:15 –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
니라
엡 2:19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고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4:25 –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고전 12:13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롬 15:5-12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
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몬 15-16 –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요 17:20-23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
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다.
13:12-17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눅 22:24-27 –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사실을 부인할 뿐만아니라 그 가능성까지도 부인하는 ______ 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면 이것은 고전 6:5(R.T)을 볼 때 의심스럽기 짝이없다. “그리스도 안”에는 이런 구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앉을 여지가 없고 그런 것들이 들어앉을 자리도 아니다. 이것들과 뒤에오는 말들은 목적에 해당하는 “지식에 까지” 이르고 이상이요 표준인 “형상을 쫓을”때 골로새인들이 성취하게 될 발전적인 신생계(新生界)를 가리킨다. 그것은 이러한 구별들이 도외시될 때에만 성취될수가 있다. “새 사람”은 그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적대감이 제거될 때 거기서 자라난 악의와 어리석음도 살아질 것이다.(8-9, 비교 롬 15:7, 엡 4:25).
갈 3:28에서는 “유대인”을 먼저 언급하고 있으며 성(性)의 구별이 첨가되어있다. 여기에 열거된 구별들은 헬라인측에서 바라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신약에서는 여기에서만 “헬라인”이 “유대인”보다 순서상 먼저 언급되어 있다(비교 롬 1:16, 고전 12:13 등).
“야인”(롬 1:14)과 “스구디아인”(신약에서는 여기에만 나옴)은 꼭 갗이 “헬라인”과 상반 되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외국인이라는 점보다는 오히려 문화의 결핍이란 점을 시사하기 위한 용어였다. 왜내하면 스구디아인은 야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천박한 족속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멸적인 용어가 소아시아에서는 헬라인들에 의해 원주민에게 쓰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철학적인 문화를 구가하는 체하는 무리들(2:8,23)이 아마 순진하고도 훈련받지 못한 그리드도인들을 가리켜 그렇게 불렀을지도 모른다(1:28절 참고). (‘할례당’에 대하여 2:11절을 참고하고 3:9절과의 연결을 위해서는 갈라디아서 6:15절을 참고).
“자유인”과 “종”(당시에 자주 분류했다)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오네시모 및 빌레몬에 대한 생각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관계에 대해서 그 다음 단락에서 보다 자세히 진술하고 있다(3:22-4:1). 서로 상반되는 용어로 이루어진 네 쌍의 어구는 (1)”인종적인 차별”, (2)”종교적인 특권의 차별”. (3)”문화적인 차별”. (4)”사회적인 지위의 차별”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에베소서(The Ephessians)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두번째 서신으로 골로새서와 거의 같은 시기
에 기록된 서신이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예루살렘, 안디옥과 함께 三大 중요 도시 중에 하나이다. 이 도시가 생긴 것은 B.C 11세기 경으로서 고대 7대 경이의 하나인 다이아나(로마식 이름) 또는 아데미(헬라식 이름)라고 불리우는 여신의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행 19:35). 그 외에도 25,000석의 좌석을 가진 극장과 운동 경기장이 있다. 당시 에베소는 많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3년동안 전도를 했고(행 19:23-41) 그 밖에도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디모데 등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 2차 전도 여행 때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였으나 성령님께서 금했고(행 16:6), 그래서 그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에 잠깐 머물렀으나(행 18:18-19), 하나님의 뜻 가운데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떠났다(행 18:19-21). 그후 그의 제 3차 여행 때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 에베소에 다시 오게 되었다. 그는 사도행전 19:1-7절에 보면 그가 최초로 만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12제자 들이였다. 그때 제이의 오순절이라고 불리우는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그곳에서 일어났다.
사도 바울은 그 곳에서 석달동안 그곳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 했으나 반대자들이 많아서 두란노 서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2년이상을 머물러서 복음사역을 이루어 갔다. 그때의 상황을 사도행전 18장 23절 에서 19장 20절 까지의 내용에서 ‘이 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라고 기록 하고 있읍니다. 아마도 이때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힘으로 개척된 것 같다. 당시의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의 특별한 노고로 크게 번창하였다. 당시 그곳에서 교회의 번성 으로 당시에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고 또는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활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시민들을 선동하여 사도 바울을 떠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다시 그 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에베소서를 연구하여 볼때에 이 서신을 받아보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찿아야 되고 알아야 된다. 본서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다. 그런데 ‘에베소에 있는'( )이란 구절이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 그리고 체스터 베티 파피루스(Chester Beatty Papyrus)에는 없다. 그래서 이 서신은 에베소 교회 뿐 만이 아니고 주위에 있는 소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돌려 보기 위해서 답신자난을 비워 두고 받아 보는 쪽에서 ‘에베소에 있는’처럼 답신자가 기록하도록 한 순회 서신일 것으로 본다. 그런데 아시아의 여러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이 들어간 것은 최종 수신 교회가 에베소 교회이든지 아니면 여러가지 사정상 에베소 교회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용상으로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본서에서는 어떤 특정한 교회에 해당하는 특정한 문제나 쟁점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이 서신에서 쓰는 공식적인 어조(특정한 사랑의 표현이 전혀 없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특별히 약 3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사역을 했음)나 사이가 먼 듯한 표현(1:15, 3:2)등이 에베소에게 보내는 서신이 아니고 모든 소 아시아에 보내는 순회 서신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학자들은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골 4:16절). 만일 본 서신이 아시아 전 교회에 보내는 순회 서신이였다면 아시아 교회중 첫번째인 에베소 교회가 가장 먼저 이 서신을 접했을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본 서신은 직접 에베소 교회에 보낸 것인데,아시아의 모든 교회에도 유익하게 쓴 것이라는 것이다. 정확한 것은 아직 밝혀 지지 않고 있다.
1)기록자: 에베소서의 기록자에 대하여 슐라아엘마하(Schlelermacher, 1768 – 1834)이후 계속
문제가 되어 왔었다. 특히 드.벳테(De wette)는 에베소서를 골로새서의 확대판으로 보았다.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 기록을 부인 하는 학자들은 바워(Baur)를 중심한 류빙겐 학파와 최근
에는 모팟(Moffatt), 굳스피드(Goodspeed), 디베리우스 등이있다. 이제 에베소서 기록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네가지의 주장이 있다. 그 주장의
첫째는 골로새서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155절중 78절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서신은 같은 처지에서 기록되어진 것이므로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에베소서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42개나 다른 그의 서신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란 점이다. 더욱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는 그가 흔히 쓰는 “사탄”( )이란 말대신
“마귀”( )란 말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에베소서는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그러나 이 단어 문제는 골로새서의 기록자를 논할 때에 이미 언급한 대로 대상과 형편,
그리고 주제에 따라 단어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더욱 바울이 서신을 기록할 때
대필한 사람이 각기 다른 사람이였을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다.
세번째 이유는 에베소의 신학적 개념들이 더 발전한 후대의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골로새서 1장
26절에 “성도”( )란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하는데 비해
그 평행 구절인 에베소서 3장 5절은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했다.
네번째로 당시 교회에는 아직도 “일군”( )같은 조직화된 직분이 없었는데, 3:7,
6:21절 같은 구절에 일군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기록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을 변증해 보면 사도 바울이 사역하는 당시의 교회는 무정부적인 것도,
또는 순 카리스마적인 것도 아니였기 때문이다.현제 보다는 덜 발달된 형태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러나 그런데로 조직과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다섯번째는 본 서신에서는 저자가 에베소에 전혀 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말들이 많다
는 것이다.예를 들면 1:15에 저자가 에베소인들의 믿음 등을 소문으로 들었다는 것과 3:2-3
절에 에베소인들이 그에게 부여된 은혜의 경륜을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라는 말과 4:21절에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라는 말 등에서 보여진다. 그런 말들은 그들의 입장과 지식에
대한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섯번째로 본 서신에서는 바울이 그간 오랫동안 체류하고 있어서(행 20:31절) 친숙해져
있던 에베소 교인들에게 대 하는 친밀한 인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곱번째는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는데(행 19:8-10,17) 본 서신은
전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보내진 것이며, 또한 주로 사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된 유대인
이 가진것과 동일한 귀중한 특권들에 대해 다룬것이다는 것이다.
여덟번째는 문체나 감정이나 목적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바울의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가설은 로마에 거주하던 한
유력한 인사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이 서신을 썼으며, 이 서신이 권위있
게 받아들여지도록 사도 바울의 이름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본 서신이 전적으로
위서는 아니다고 보는 것은 본서의 대부분의 내용이 골로새서에서 표현한 사도 바울의 견해
로 이루어 졌으며, 본질적으로 그것은 사도 바울의 사상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비판적이지 아니 하였고 그것을 순수한 바울의 서신으로 받아 들였다.
이제는 內證과 外證을 검토해 보도록 하면, 먼저 외증으로는 로마의 클레멘트의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36장)에서 에베소서 1:18절과 유사한 말을 쓰고 있고, 46장에서는 에베소서 4장 4-6절과 유사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익나티우스(Ignatius)는 그의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12장)에서 3:3 – 4:9장을 연상케 하는 구절을 쓰고 있고폴리캅에게 보내는 편지(12장)에서는 에베소서 5장 25절의 구절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알랙산드리아의 클레멘트(Alexandrinus 의 Clemens), 이레니우스(Ireneus), 히폴리투스,
무라토리의 정경 등에도 에베소가 인용 또는 인정되고 있다.
본 서신에
많은 논제들이 골로새서에 취급된 것과 동일한 것은 사실이나 에베소서의 톡특한
내용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예를 들면 2장에 있는 은혜에 의한 구원의 주장과 3장에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등이다. 또한 본 서신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개인적인 인사를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개인적인 인사는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결코 그의 평상적인 습관
이 아니였다. 더우기 본 서신은 그가 크게 신임했던 두기고에 의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인사는 두기고 편에 구두로 전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사도 바울이 개종시킨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자가 에베소에 절대로 간적이 없다는 사실의 증거로 인용된
바로 그 표현인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라는 표현을 발견한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의 교인에 대해서는 유대인들로 부터 대체로 간교한 반대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몇가지
사건들이 있다(행 19:9, 13, 14, 20:19 등).
그러므로 교인의 대다수가 이방인들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문체와 어조와 감정이
여러가지 면에서 바울의 것이 아니라는 주자에 어떤 중요성도 부과될 수 없다. 본문의
특징 중에서 구원의 근거를 은혜에서 찾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존귀하게 하는 것,
새 시대의 자유를 선포하는 것, 권면 속에 교리와 의무를 적당하게 주입하는 것, 그의
독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담대한 행동을 고
무시키기 위해 군사적인 나팔을 울리
는 것 등, 이 모든 것 보다 더 명확하게 바울적인 것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증인데 에베소서 1장 1절과 3장 1절에 기록자는 자신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내용의 전개도 바울이 언제나 사용하는 인사와 감사로 시작해서 교회의 문제
와 실제적(또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다음 개인적인 문제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직접 기록을 했던, 그의 제자들이 대필을 했든지 본 서신
은 사도 바울의 기록임이 확실하다.
2)기록한 연대 와 장소
사도 바울이 A D 60-62년에 처음으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옥중에서 서신을
기록하게 되었는데 그는 비교적 자유로운 감옥 생활을 할수가 있었다. 그 당시에 골로새
에서 활동하던 이단들이 에베소에서와 그 외의 소아시아 전 지역에서 활동이 활발해 지게
되자 사도 바울의 동역자 ‘두기고’편에 보내기로 하고 기록하였는데(엡 6:21 – 22), 그때에
골로새서도 같이 기록하여 보낸 것으로 추측이 된다(골 4: 7 – 9).
3)에베소서의 목적 과 특징
목적:본 서신은 골로새서와 기록한 연대나 시기가 같고 기록한 내용이 비슷한 점이 많아
쌍동이 서신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거짓된 이단들이 득성하여 교회들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
고 그 이단들에 대한 경고와 짭은 기간이지만 믿음으로 성장한 에베소 교인을 향하여 성도
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써 경건하고 깨끗하게 생활하기
를 권고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특별히 에베소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곳
으로, 바울은 제 2 차 전도 여행 당시 잠시들러 복음을 증거하였고(행 18:19-21), 제 3 차
전도 여행 때 다시 방문하여 약 3년간 머물며 눈물과 정성으로 사역을 하였던 곳이다(행
19:1-41).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유달리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사실
은 그의 제 3 차 전도 여행 귀환 때 밀레도 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권면한 사실(행
20:17-35)과 훗날 디모데를 파송하여 성도들을 지도케 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딤후
4:5). 이에 바울은 본서를 통해 먼저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인근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올바
른 교회관(敎會觀)을 심어주기 위한 일련의 신학 원리적 교훈들 곧 교회의 근원,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 교회 본질에 대해 기록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유대인이든 이방인
이든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일치(一致)하고 화합(和合)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하
였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성도 간의 일치와 화합, 및 성도의 가정 생활과 하나님의 거룩
한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삶과 영적성숙을 위한 신앙의 무장에 관한 일련의 실천적 교훈들
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특징: (1)순회 서신(The Circular Epistle) 이다.
본 서신에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약 3년의 사역이 있었지만 정적이고 친근감이
있는 서신이라기 보다는 로마서 처럼 논문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에베소 교회에게만 보
내는 서신이 아니고 순회하는 서신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용적인 특징에는 주제가 보편적
교회로서 그 성격과 세상에서의 목적등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2)내용상으로 성령론(Pneumatology)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성령의 인격에 대해서는, 거룩하며(1:13), 지혜와 진리를 계시한다(1:17, 3:5). 또한 슬퍼
하기도하고(4:30), 약속을 이루신다(1:13), 그리고 한 성령(2:18), 그의 성령(3:16),
하나님의 성령(4:30)으로 불리워 진다. 성령의 사역은 다양하여 신자를 믿는 순간에 인치시
고(1:13), 성도들의 기업에 보증이 되신다(1:14). 또한 성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2:18),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설립된다(2:22). 그리고 성령을 통하
여 영적 진리가 계시 되어지고(3:5), 성도들이 힘을 얻는다(3:16). 또한 성도들이 성령으로
채워지며(5:18), 그 안에서 기도
하게 된다(6:18). 그리고 성령은 전신갑주의 하나인 하나님
의 말씀을 준비한다(6:17).
4)에베소서의 내용
(1)구조적인 면에서 본 에베소서
본 서신은 모두 6장이며 그리고 155절로 되어있다.
+————–+
|1:1 – 2절 | 인사
+————–+———–+
| 1 장 | 영적인 축복
+————————–+————+
| 2 – 3장 | 보편적인 교회와
| | 그 목적
+————————–+————+
| 4 장 | 교회의 통일성
+————————–+————+
| 5 – 6장 | 새사람의 윤리
| +——————-+
| | 6:10 – 20절 | 신앙의 무장
+——————-+——————-+
| 6:21 – 24절 | 맺는 말
+——————-+
* 1 – 3장은
교리적 교훈, 그리스도인의 위치(특권).
* 4 – 6장은 윤리적 교훈, 그리스도인의 실천(책임).
(2)본서의 요해
1-3장은 명령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4-6장에서는 약 35개의 명령이 있어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생활에도 반드시 책임있는 생활이 있음을 알수가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하늘에서 시작하여 가정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끝을 맺는다. 예배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1-3장까지와 4-6장까지로 나눌 수가 있다.
I. 서언.인사(1:1-2).
II.1-3장까지를 그리스도인의 지위 또는 위치(교리적인 교훈).
1)영적인 축복 (1:3-23).
(1)성부의 사역–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3-6절).
(2)성자의 사역–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구속하신 것(7-12절).
(3)성령의 사역–약속의 성령이 우리를 인치신 것(13-14절).
(4)바울의 기도–참된 진리를 깨닫게 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15-23절).
2)보편적 교회와 그 사명 (2:1-3:21).
(1)구원의 방법–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인 구원(2:1-10절).
(2)하나님의 권속으로서의 교회–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됨(2:11-22).
(3)교회의 목적–진리의 비밀이 밝혀짐(3:1-12).
(4)바울의 기도–바울의 두번째 기도.성령의 권능으로 더욱 강건해지고 영적으로 성정하기를
바라는 기도 (3:13-21).
III.4-6장까지를 그리스도인의 실천(윤리적인 교훈).
1)윤리적인 교훈 (4:1-6:2
0).
(1)교회의 통일성(4:1-6절).
(2)은사의 성질과 목적(4:7-16절).
(3)거룩한 생활(4:17-5:17절).
(4)성령 안에서의 생활(5:18-21절).
(5)성도의 생활 표준(5:22-6:9절).
a)아내들의 생활표준(5:22-24절).
b)남편들의 생활표준(5:25-33절).
c)자녀들의 생활표준(6:1-3절).
d)부모들의 생활표준(6:4절).
e)종(노동자)들의 생활표준(6:5-8절).
f)주인(기업주)들의 생활표준(6:9).
(6)신앙의 무장인 하나님의 전신갑주(6:10-20).
2)맺는 말 (6:21-24).
*본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4:1절로 보는 데 그 이유는 본서신의 교리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을 가장 날카롭게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서의 내용 분석:
1.골로새서의 내용중 구체적인 특징:
1)본서는 모든 성경들 중에 기독론에 대하녀 가장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즉 본서에는 가장 분명한 형태로, 또 가장 다양한 형태로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a)’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1:13)
b)’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1:15)
c)’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자'(1:15)
d)’만물을 창조하신 분'(1:16)
e)’교회의 머리'(1:18)
f)’만물의 의뜸'(1:18)
g)’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신 분'(1:19,2:9)
h)’화목 제물'(1:20-22)
i)’영광의 소망'(1:27)
j)’하나님의 비밀'(2:2)
k)’정사와 권세의 머리'(2:10)
l)’성도의 생명'(3:4)
m)’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 분'(3:11)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이러한 여러 묘사들은 그리스도가 절대적 주권자 이며 유일한 구속자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읍니다.
2)본서에는 바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던 용어들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철학'(2:8), ‘충만'(2:9), ‘신성'(2:9), ‘정사와 권세'(2:15), ‘겸손'(2:18), ‘빼앗기다'(2:18), ‘자의적 숭배'(2:23)와 같은 말인데 이 용어들은 당시의 이단자들이 많이 구사하던 용어로 바울이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한 이유는 그들이 구사하던 용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잘못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것 같다.
3)성령에 대한 교훈이 없다. 이는 본서와 더불어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수신지에 보낸 빌레몬서에도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바울이 성령의 가르침에 대하여 소흘히 하였다기 보다는 아마도 골로새 교회의 이단들에 대한 변증으로 기독론에 대하여 강조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2.골로새서의 개요:
<도입부:머릿말> 1:1-12
1)문안 인사 1:1-2
2)신앙 진보에 대한 감사 1;3-8
3)신앙 성숙을 위한 기도 1:9-12
<제 1 부 그리스도의 우월성> 1:13 – 2:23
1)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 1:13-23
a)구속주인 그리스도 1:13-14
b)창조주인 그리스도 1:15-17
c)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 1:18-19
d)화목주인 그리스도 1:20-23
2)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사역> 1:24-2:7
a)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파 1:24-29
b)교회를 위한 염려 2:1-5
c)교회를 위한 권면 2:6-7
3)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 2:8-23
a)이단의 공허함과 그리스도의 충만의 비교 2:8-10
b)여러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 2:11-22
.율법주의에 대한 경계 2:11-17
.천사 숭배에 대한 경계 2:18-19
.금욕주의에 대한 경계 2:20-22
c)이단 경계에 대한 결론 2:23
<제 2 부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삶> 3:1 – 4:6
1)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 3:1-4
2)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 3:5-4:6
a)새 사람인 성도의 일상 생활
.새 사람인 성도가 버려야 할 것 3:5-11
.새 사람인 성도가 갖추어야 할 것 3:12-17
b)새 사람인 성도의 가정 생활 3:18-4:1
.아내와 남편 3:18-19
.자녀와 부모 3:20-21
.종과 상전 3:22-4:1
c)새 사람인 성도의 기도 생활과 사회 생활 4:2-6
.기도 생활 4:2-4
.사회 생활 4:5-6
<종결부:맺는 말> 4:7 – 17
1)개인적인 전언 4:7-17
a)두기고와 오네시모에 대한 추천 4:7-9
b)바울의 동역자들의 소개와 문안 4:10-14
c)라오디게아 교회와 아킵보에 대한 분부 4:15-17
2)축도 4:18
3.골로새서의 구조적인 면에서 본 내용:
+——————————-+
| 1:1-12 | 머릿 말:도입부
+——————————-+———-+
|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사역 1:13-23 |
+——————————————+
|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사역 1:24-2:7 | 그리스도의 우월성
+——————————————+
|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 2:8-23 |
+———————————–+——+
|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 3:1-4 |
+———————————–+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삶
|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 3:5-4:6 |
+—————————+——-+
| 4:7-18 | 맺는 말:종결부
+—————————+
3.빌레몬서(PHILEMON)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의 서신의 가운데 아직도 완전하게 보관되어있는 유일한 서신이다. 본 서신의 주인공인 빌레몬(뜻 “친구” 또는 “애정있는 사람”)는 본 서신의 수신인 이였으며 아네는 “압비아”였고 그는 헬라인 크리스챤이였다. 그리고 그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회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본서 19절에서 능히 추론할 수가 있다. 그는 본래 브루기야의 골로새인이었을 것이며 사도 바울이 본 서신을 그에게 보낼 당시에 그는 골로새에 살고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 사실은 다음을 통하여 확인 할 수가 있다.
(1)본서 1절과 골로새서 4:17절을 비교해 보면 빌레몬이 아킵보와 고향이 같으며 아킵보의
“사역”이 골로새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2)빌레몬의 종(16절) 이었던 오네시모가 골로새서에서(골 4:9) “너의에게서 온 사람”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까닭이다.
아킵보가 언급되어 있는 골로새서 4:17이 골로새서 4:15-16절고 연관되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아킵보가 라오디게아인 아라고 하는 주장은 결정적이지 못되는 주장으로 Wieseler(Chronoligie)가 내세운 주장이다. 그 까닭은 이 구절들이 논지에서 이탈된 구절이거나 하나의 삽입구에 불과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 자신이 직접 골로새에 간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며, 그가 빌레몬과 만나서 빌레몬으로 하여금 회심케 한 것도 다른 장소였음이 분명하다(골 2:1). 그러나 라오디게아와 골로새는 서로 이웃하고 있었고 둘 사이의 거리가 10마일을 넘지 못 했을 것이기 때문에 별문제는 되지 않는다.
빌레몬은 부유하고 지체높은 사람이였음이 명백하다. 집안도 넓었을 것이며, 손님들에게 대하여 마음껏 후한 대접을 하는 데에도 익숙했을 것이다. 여러 서신에서 등장하고 있는 빌레몬은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후 빌레몬이 골로새의 감독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Apost. Constit. vii. 46). 주후 5세기 중반에 구로의 감독이였던 Theodoret의 진술에 의하면 빌레몬의 집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줄 곧 골로새에 있었다고 한다(‘Proem. in Epist. Phil’).
그러나 빌레몬은 평신도 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그를 “동역자”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가 결코 공식적인 직함은 될 수가 없다. 본 서신에만 해도 이 용어가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같은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되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곳(2절)에서는 이 용어가 평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는데, 그는 이 용어와 유사한 용어(어근이 같은 말)를 그의 다른 서신에서도 열 여섯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본 서신은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쓰여졌는데, 오네시모는 골로새의 사람이였다. 그의 고향이 골로새임은 골로새서 4:9에서 오네시모가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는데서 짐작할 수 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다른 근거들도 물론 제시할 수가 있는데, 곧 골로새가 대(大)브루기아의 한 성읍이였으며 “브루기아인”이라는 이름이 “노예”라는 말의 동의어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오네시모의 이름의 뜻은 “쓸모있다”,”이익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R.V 에서는 “도움이 된다”라는 뜻으로 해석).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성질을 형용하는 하나의 별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당시의 노예들에게 쉽게 붙여지는 명칭이였다. 그는 출옥후의 생활에 대하여 언급이 없지만 그가 사도 바울의 요구에 따라서 빌레몬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Apostolic
Constotutions'(vii. 46)에는 그가 사도 바울에 의해 베뢰아의 감독으로 임명을 받았다가 마침0내는 순교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기록 연대
골로새서 4:7-9절에서 골로새서가 두기고와 오네시모에 의해서 골로새롤 보녀어쟀다느 ㄴ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편지를 전달한 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본 서신에서는 비록 명백한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도 본 서신의 전달자 역시 두기고와 오네시모이거나 아니면 오네시모 혼자일 가능성은 거의 매 구절 구절에서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골로새서의 연대와 같은 것으로 본다. 주로 사도 바울의 옥중 생활의 말기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2)기록하게 된 이유와 배경
본 서신의 기록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대부분 추론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의 대부분이 사적(私的)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의 지배를 벗어나 도망쳤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암시되어 있다. 그가 어디로 도망쳤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로마였을 것이다라고 보는 쪽이 지배적이다. Attica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 있던 노예들의 숫자는 방대했다. 당시에도 노예 상인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으나 노예 상인들은 노예 매매에 의하여 부를 축적하는 일이 흔했다. 노예를 부려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었고 노예는 단지 자본 투자의 한 방편으로 까지 생각되고 있었다(Demosth, `In Aphob.’ i). 노예 체제가 로마나 이탈리아 보다 헬라나 소아시아 지방에서 더 엄한 감이 있었다. 그곳의 노예들은 주로 농사일이나 가사일에 종사했으며 성격에 있어서도 대체로 유순했다. 그래서 탈출을 하거나 반란을 이르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 로마에서는 노예를 해방 시켜주는 일은 극히 적었고 노예를 보호하거나 받아주고 도와 주는 사람은 법에 저촉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도망나온 노예들은 다른 소 도시에 숨어 사는 것 보다도 로마에서 사는 것을 더 안전하게 생각하고 생활 했으며, 대부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곳 보다 더 안전하게 오래 생활할 수 있는 곳도 역시 로마였다. 인근 지역(당시에는 ‘세계’라고 했음)의 나라에서 세계적인 무역과 상업등의 세계 만민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 로마이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으로 연결되어지는 통로가 되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이 로마를 택한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오네시모도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오네시모가 (구입된 노예) 였건 (주인의 집에서 태어난 노예) 였건 간에, 주인에게는 매우 가치있는 노예 였음이 틀림이 없다. 따라서 18절과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피해를 준 그 금전적인 보상은 사도 바울 자신이 회계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빌레몬 자신에게는 적지않은 피해가 있었음이 확실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그가 도주할 당시 주인의 돈이나 재산을 사용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어떻게 돈 한 푼 없이, 아니면 그에게 일한 삯으로 얼마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골로새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로마까지는 근 일천 마일 이나 되는 거리를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은 의문할 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주인격으로, 사태의 자초지종을 18절에서 “불의를 하였거나”(wronged)와 “진것”(owes)이란 말로 표현하면서 회개자 오네시모가 자기에게 털어놓은 주인에 대한 갖가지 과오들을 잘 분별하고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그 엄격한 법률 속에서 그가 주인에게 어떤 빚을 진 채 생활해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주인도 자기가 부리는 노예에게 빚(품삯)을 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Gaius’ i.ii,iv). 물론 그는 주인의 돈을 훔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절도 행위에 대하여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과 오네시모는 어떻게 해서 로마에서 만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져 있지 않지만 오네시모는 이 위대한 전도자의 승리에 찬 진지한 태도와 화술에 이끌려 마침내 그와 인간적이면서도 신앙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네시모의 모든 사정을 사도 바울은 다 알게 되었고 가능한 그가 자기의 잘못한 행위를 모두 고백했으며 자신의 모든 문제를 사도 바울에게 맞겼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책임감을 전적으로 의식했고 오네시모는 교회에 대해 큰 기여를 했고 사도 바울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둘 사이에 강하게 맺어진 주님안에서의 관계로 사도 바울은 그를 “나의 심복”, 즉 “나의 아들”(my son)(R.V에서는 “my very heart”로 번역)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도 강한 정표를 확인할 수가 있다. 당시의 로마의 법대로 하자면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취할 권리가 있었고 바울은 고집을 부릴 사람이 아니였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도방했던 종에 대한 적개심을 참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사도 바울 입장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데까지 힘써서 그가 온전히 용서 받을 수 있도록 해놓지 않고야 회개한 오네시모를 이 엄청난 위험에 그대로 내 맡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에게 입힌 피해 액수를 갚기 위한 조처를 개인적으로 취했던 것이다. 드디어 오네시모를 돌려 보내기에 적당한 시기가 다가 왔다. 아니면 그런 기회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두기고가 에베소 및 그 이웃 지방에 전도 여행을 가거나 또는 가게 되었는데, 당시에 두기고는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믿음직한 형제로서 여러 차례(골 4:7-8, 엡 6:21-22, 딛 3:12, 딤후 4:12, 행 20:4,17) 사도 바울의 사자(使者)가 되었던 자였다. 이때 두기고가 가지고 갔던 “소개장”이 훗날 빌레몬서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3)본서의 내용과 구성
내용: 본서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빌레몬의 믿음과 선행을 칭찬하면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가 된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겸손하게 간구하였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용서를 받고서 복음의 사역자로서 새롭게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오네시모로 인하여 생긴 재산 피해는 바울 자신이 갚겠다고 약속하였다(1:18).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실천적인 사랑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본서는 오네시모를 위한 개인적 부탁의 서신이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이웃에게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한다는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구성: 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도입부, 본론부, 그리고 결론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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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점 | 빌레몬에 대한 칭찬 |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 | 바울의 개인적인 부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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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1:1 1:8 1:22 1:25 |
| 단 +————————–+————————–+————————–+
| 구 | 빌레몬에 대한 | 오네시모를 위한 |
개인적인 부탁과 |
| 분 | 감사 기도와 칭찬 | 중재 | 작별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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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 | 바울의 중재 | 실천적인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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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체 | 기독교의 근간인 사랑의 정신을 실제 생활에 적용시킨 개인적인 서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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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로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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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 | A.D 61 —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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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요지:
(1)도입부(서두.인사말) 1:1-7절
본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나누고(아내인 압비아와 그의 아들로 추축되는 아킵보를 들어 인사를 하고) 그의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감사의 인사와 하나님께 드렸던 감사기도를 전하면서 그의 믿음과 형제 사랑을 칭찬했다. 본 서신에서는 다른 사도 바울의 서신과는 특이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의 사도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른 서신과는 다르게 본 서신은 지시하고 주장하고 책망하고 명령하는 다른 서신에 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하고 용서를 빌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수신자인 빌레몬을 높임으로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보겠다. 깊은 의미적으로는 빌레몬이 칭찬받을 만한 생활인 형제 사랑으로서 자기 종 오네시모도 기꺼이 용서해 주며, 복음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으면 하는 바울의 바람이 담겨있다.
(2)본론부 1:8-21절
본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하여 두가지 부탁을 하고 있다. 첫째는 오네시모가 그에게서 도망친 노예이긴하나 이제 그가 회심한 후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되었으므로 그를 용서해달라는 부탁과(1:8-14), 둘째는 이제 그가 빌레몬의 용서를 받고서 복음의 사역자로서 새롭게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1:15-21). 이러한 부탁을 하면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로 인하여 당한 재산상의 피해를 자신이 손수 배상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는데(1:18-19), 이것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셨던 그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 줄 뿐만이 아니고 더 큰 사랑을 보여 줄 것을
확신했다(20-21절).
(3)결론부 1:22-25절
본 단락에서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결국 실현되지 못했지만)을 전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처소도 예비해 두라는 부탁을 함께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역자들의 안부도 전하면서 축도로 본문을 마쳤다.
*참고:{사도 바울은 어디에서 이런 돈이 있었을까?}
본 서신에 사도 바울이 재산상의 피해액을 갚아주겠다(1:18-19″But if he has wronged you or owes you anything,put that on my account. I Paul, am writing with my own hand,I will repay – not to mention to you that you owe me even your own self besides”.KJV)고한 그 말에는 빌레몬이 설마 그 돈의 액수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고한 말일 뿐인가? 결코 사도 바울의 인격과 성품으로 보아 그렇게 얇팍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고전 9:11-16, 고후 12:13,14,15,16, 살후 3:8). 그러면 그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본인은 세가지로 추측해 본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자력으로 번 돈이 항상 있었을 것이다(행 18:3, 20:34, 고전 4:12, 9:6, 살전 2:9, 살후 3:8). 그 돈은 자신의 세상적인 삶을 위해서 모아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교 사역과 자신은 어렵게 생활할 지라도 불쌍한 이웃을 구제하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항상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결코 자신이 보관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동역자중에서 항상 보관하고 있으면서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사용했을 것이다.
.행 20:34-35″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의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살전 2:9″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累)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
둘째는 주의 성도들로 부터 보내온 선교헌금이 항상 있었을 것이다(고후 11:9, 빌 4:16). 그래서 그 선교헌금으로 옥중에서도 복음 전하는데 긴요하게 사용되었고 또 쓸곳을 찾아 보관하고 있는 돈이 충분하게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는 회심하기전에 세상에서 살 동안 축척해둔 돈이나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많은 돈이 있었을 것이다. 그 돈은 자신의 삶에 관심 밖에 있다가 이번 사역에 긴요하게 쓰고자 했을 것이다(빌 4:12″풍부에 처할 줄도알아 `to abound’-KJV, `to have plenty’-NIV”, 3:5-6, 행 23:6″히브리인, 바리새인, 교회를 핍박한자”=경제적,지위적,정치적인 지도층의 위치, 3:8″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세상적인 것 포함)”, 행 22:26-28″태어나면서 로마의 시민권자”=경제적인 부유층 ), 행 22:3″가마리엘 문하생”=상당한 지위와 경제적인 배경이 없으면 수학할 수없는 유학생활).
4.빌립보서(Philippians)
빌립보 시(市)는 에게해(海)에서 약 9마일 떨어진 비옥한 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는 마게도니아 왕이 주전 4세기경에 건설한 도시로서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방문한 곳이다. 주민은 대부분이 로마의 시민이었다. 다른 큰 도시와는 달리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반유대적 성격을 띈 곳이였는지도 모른다.왜냐하면 그곳은 상업도시가 아니라 군사도시였기 때문에 그곳에는 유대인이 없는 관계로 회당이 없었고 단지 프로슈게(Proseuche)라고 하는 기도처가 강가에 있었다(행 16:13).사도 바울과 신라는 기도처를 향하여 강가로 갔고 그곳에서 소수의 여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훗날 위대한 교회들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두아디라의 상인, 루디아가 그 가족과 함께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게 되었다(행 16:12-15). 그리하여 루디아의 집은 집회 장소가 되어 구라파의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탄생된 것이다. 코니베어(Connybear)는 루디아가 계 2:18절의 두아디라 교회를 세우는데 더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나 자세한 것은 아직 발혀지지 않았다.그러나 빌립보 교회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루디아 다음으로 수고한 사람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었는데, 그녀가 회개하자 그녀로 인해 많은 돈을 벌던 주인에게는 재산상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바울과 신라를 로마의 관원에게 고발하였다. 그 죄목은 이상한 풍습을 전하여 빌립보성을 요란케 한다는 것이였다. 그 결과 바울과 신라는 처음으로 태형으로 맞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서 왜 그의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았는지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어째든 그 결과로 간수의 가정을 구원하고 그 가정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가 설립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감옥의 형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빌립보의 감옥은 주로 땅 속에 있어서(렘 38:6) 습하고 햇볕은 들지 않고 악취가 나며 더우기 큰 죄수라고 생각되면 발과 손에 착고를 채웠던 것이 당시의 보통 감옥이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처에 있던지 – – –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그의 고백이 말해 주듯이 오히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주의 종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것이 큰 역사와 기적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빌 4:11).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후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기쁨”(Rejoice)이란 단어를 무려 18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사도 행전 16:25절에서는 사도 바울과 신라가 그런 지옥 같은 옥중에서도 “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옥중의 죄수들은 다 듣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옥중 전도가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들이 열리고 착고들이 풀렸다.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감옥의 간수들 이였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죄수들이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법은 간수가 죄수를 놓칠 경우, 간수가 대신 그 죄수들의 형을 받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수는 끌려가서 불명예스럽게 형을 받느니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명예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살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행 16:24-34). 그후 사도 바울은 누가만 남기고 데살로니가로 떠나니 이것이 빌립보 교회가 설립되게된 형편이였다. 빌립보 교회는 어떤 이미에서 사도 바울이 최고로 사랑을 던져 준 교회이다. 빌리보 교회에는 특별히 충성된 여 성도들이 많이 있었으며(빌 4:2-3)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선교헌금도 보내준 교회이다(빌 4:16).
< 빌립보서의 목적과 특징 >
빌립보서의 제 1 차적인 특징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의 재정적 도움을 위하여 보낸 헌금과 그의 복음사업에 협력하라고 에바브라디도를 보낸데 대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들로 하여금 확고하고 겸손한 신앙을 갖도록 권고하려는데 있었다. 그 밖의 목적은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자신(사도 바울)의 옥중생활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 것(1:1-30),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합해야지 분열되어서는 안되며(2:1-8), 세째로 디모데가 곧 그들을 방문할 것을 알리고(2:18-24), 네째로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낫게 된 사유의 설명, 다섯째는 유대주의 자들에 대한 경고(3:1-4:1), 여섯째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영적 연합에 대한 권고(4:2-3), 일곱째는 재정적 원조에 대한 감사(4:10-20)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빌립보서의 특징은 사도 바울 서신 중 가장 개인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1인칭 단수로 된 대명사만 52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복음에서 – – – 교제”(1:5),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1:7), “복음의 진보”(1:12), “복음을 증명”(1:17).”복음에 합당한 생활”(1:27), “복음의 신앙”(1:27),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4:3), “복음의 시초”(4:15)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빌립보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쁨”이란 단어가 18번이나 나올 정도로 내용 전체를 통하여 영적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빌립보서에서는 사도 바울의 생의 목적이 나주 분명하게 표현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 그 외에도 3:10-11절등은 사도 바울의 인생관을 바라 보는 듯하다.
< 빌립보서의 내용 >
구조적인 면에서 본 빌립보서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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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1 | 인사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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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 |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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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장 |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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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 30 | 로마에서 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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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장 | 사도 바울의 경고
+——————–+—–+
| 4 장 | 마지막 권면과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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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의 내용 요약
1.인사와 감사(1:1-11)
1)인사 (1:1-2)
2)빌립보 교회에 대한 감사와 기도 (1:3-11)
2.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생활에 대한 보고(1:12-26)
1)로마에서의 복음의 진보 (1:12-14)
2)복음 전도자 간의 시기와 질투 (1:15-18)
3)사도 바울의 소망과 두려움 (1:19-26)
3.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권면(1:27-2:18)
1)복음에 합당한 생활 (1:27-30)
2)한 마음 (2:1-4)
3)겸손한 마음 (2:5-11)
4)시종일관 (2:12-18)
4.로마에서 온 소식(2:19-30)
1)디모데를 보내겠다는 소식 (2:19-24)
2)에바브로디도를 곧 보냄 (2:25-30)
5.사도 바울의 경고(3:1-21)
1)유대주의에 대한 경고 (3:1-16)
2)도덕 폐지론에 대한 경고 (3:17-21)
6.마지막 권면과 인사(4:1-23)
1)유오디아와 순두게의 화해를 부탁(4:1-3)
2)사도 바울, 자신의 본을 따르라는 권면 (4:4-9)
.기뻐하라 (4:4)
.기도하라 (4:5-7)
.모든 선을 추구하라 (4:8-9)
3)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 (4:10-20)
4)인사 (4:21-22)
5)축도 (4:23)
==> 참고 1.옥중서신의 내적 증거 연구
에베소서 3:1절에서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 – -”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로, 그리스도의 일로 말미암아 갇힌 자라는 뜻이다. 즉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인하여 갇힌 자가 된 것이다(엡 4:1). 바울은 이방인들도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다는 진리를 전파함으로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 결과로 체포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20절에서도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이란 표현에서도 사도 바울이 옥중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사신이 되다'( )는 ‘전권 대사가 되다’는 뜻인다. 이는 왕의 소식을 가지고 파송된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신그리스도의 대사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1:7절과 13절에 “나의 매임”은 사도 바울의 옥중 생활을 설명하는 말로서 이 바울의 매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졌으므로 복음이 진보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바울의 매임이 어떤 악한 죄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가이사랴의 옥에 있을 때 부터 입증된 것이다(행 25:9). 그리고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책임을 맞았던 백부장은 바울이 죄가 없으며 복음을 위하여 세움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임을 인식했다(행 27:9, 28:6). 뿐만이 아니라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2년여 동안 바울이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므로 그의 매임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이 널리 알려진 바 되었다. 이러써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파될 수 있었다. 또한 빌립보서 1:13절에 ‘온 시위대’는 사도 바울을 감금하기 위하여 동원된 군대 곧 집정관의 시위대를 뜻한다. 그리소 빌립보서 1:12절에 ‘나의 당
한일'( )은 바울이 로마 옥에 투옥된 사실을 가리킨다(엡 6:21, 골 4:7). 바울은 그의 투옥으로 불안해 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그의 투옥이 오히려 복음 중거의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바울의 투옥은 복음을 전 로마 지역에 전하기 위해 바울이 스스로 택한 길이였다(행 25:11-12, 26:31-32). 그러므로 빌립보서 1:14절에 말하는 바울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된 두번째 사실이다. 여기서 ‘진보'( )는 본래 군대를 위해 길을 개척하여 그 진군을 돕는 것고 관련하여 사용되었던 말로 여기서는 복음전파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딤후 2:9). 그리고 여기서 ‘형제’는 로마에 있는 신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한다’는 말은 주 안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의 투옥된 일로 더욱 주님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로마의 신자들은 감옥에 갇혔으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의 믿음과 용기를 보고 더욱 하나님을 신뢰함은 물론,나아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의 투옥은 복음의 패배가 아니라 복음의 진보요 승리였던 것이다(빌 1:7). 또한 골로새서 4:10절에서 ‘나와 함께 갖힌 이리스다고’라는 말을 통하여 아리스다고는 바울고 함께 로마의 감옥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빌레몬서 1:23절에 에바브로가 바울과 함께 갇힌 자로 나타나는 것을 볼때 그들은 사도 바울을 돕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교대로 일브러 갇혀서 바울을 도왔던 것으로 많은 신학자들은 주장을 한다(Meyer. Abbott 등). 또한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에베소에서 바울고 같이 일하다가 ‘은장색 데메드리오’소동으로 가이오와 함께 투옥되기도 하였다(행 19:29). 그후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할때도 동행하였으며(행 20:4), 바울이 로마로 갈 때
에도 동행하였다(행 27:2). 골로새서 4:3절에 나오는 ‘매임을 당하여’란 말도 로마의 투옥사건을 지적하는 말이다. 빌레몬서에서 나타나는 사도 바울의 옥중 표현은 다른 서신에 비하여 서신 첫 머리에 표현해 놓은 것은 오네시모를 위한 간청을 하고자 다른 서신에서 나오는 사도권 보다 자신을 겸손히 낮춤으로서 수신자인 빌레몬의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Lightfoot).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갇힌 자 되었다는 것은 그의 1차 로마 투옥사건을 가리킨다. 즉 바울은 3차 전도 여행(A.D 53-57)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때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행 28장). 사도 바울은 이처럼 감옥에 갖혀 있는 중에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한 것이다(A.D 61-63). 그리고 빌레몬서 10절에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낳았다’는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영적인 아비의 역활을 했다는 뜻이다(고전 4:15). 또한 ‘아들'( ) 이라고 하는 본래의 뜻은 ‘어린이’ 또는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매우 부드러운 표현이다(Robertson). 이곳에서 발견할수있는 두가지 사실은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쉬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아무리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인격체로 보았다는 것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하였다가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서 회심한 빌레몬의 종이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죄수의 신분이였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을 접견하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행 28:23-31).
13절에서도 ‘갇힌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당시에 사도 바울은 옥에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하여 수족처럼 자유롭게 일할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회심한 후 사도 바울을 신복처럼 섬긴자 이므로 복음의 일을 잘 해낼 책임자였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의 허락과
상관없이 오네시모를 자신의 동역자로 곁에 두고 있을 수도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네 대신’ 이라는 말을 통하여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빚(19절)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바울이 강권적으로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어도 무방하다는 일종의 당위성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일단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 보냈다(12, 17절). 이는 오네시모로 하여금 빌레몬의 용서를 받은 후 복음의 사역자로서 새롭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3절에 “또한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라는 표현은 본 서신의 마지막 맺는 인사에 해당하는데 ‘-와 함께 갇혔다’라는 것은 에바브라(Epaphras)가 바울고 같이 체포되어서 옥중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옥중에서 바울을 보필함으로써 함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Meyer.Eadie). 왜냐하면 에바브라는 자유롭게 왕래하며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전해 준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골로새 사람으로(골 4:12) 골로새 교회를 설립하였고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였다(골 4:13). 그는 바울을 위해 자주 로마를 왕래하였으며 영지주의자들과도 대결해 진리를 수호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의 일군이였다(Robertson).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하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 차고 2. 옥중서신들을 기록한 형편과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을 때 에바브라(골 1:7)에게서 골로새 교회에 대한 달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거짓 교훈으로인해서 교회가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 거짓 교훈의 내용은 첫째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골 2:11-16)였으며, 둘째는 금욕주의(골 2:20-23)였고, 세째는 영지주의적 철학이었다(골 2:8). 그렇다고 옥중에 있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방문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골로새서이다. 그때가 A.D 62년경 이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사정은 에베소 주변의 여러 교회에도 있었다.그래서 에베소 지역에 침투하려는 이단들을 사전에 막고 에베소 일대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활 하도록 하기 위하여 에베소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에베소서에는 그가 3년 가까이 목회한
교회이면서도 개인적인 친근감을 느낄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 주변의 여러 교회에 까지 순회하고록 기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순회서신적 성격).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세번째 서신이 빌레몬서이다. 빌레몬서가 기록된 동기는 두기고의 소개로 알게 된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바울을 시중들었다. 그러나 그가 본래 빌레몬의 종으로서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로마로 도망(몬 18.19절)왔기 때문에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없이 시중을 들게 할 수 없다고 본 바울은 두기고 편에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화해시키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따라서 빌레몬서에는 기업주와 고용인들 사이에 지켜야 할 기독교의 사회윤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아뭏든 위에 세 옥중서신은 주후 62년 봄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다.
이 무렵 빌립보 교회에서는 바울의 제정적 도움을 위해 헌금을 모우고 또 바울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에바브라디도를 파견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감사의 표현을 함과 동시에 빌립보 교인들로 하여금 확고하고 겸손한 신앙을 갖도록 권고하기 위해 옥중서신의 마지막 책인 빌립보서를 기록한 것이다. 아마 바울 서신중에서 빌립보서 만큼 바울의 사랑과 친근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은 없을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기쁨>이란 단어가 18번씩이나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참고 3.골로새서의 분서 연구
사도 바울의 골로새서의 서신의 핵심은 2장에 있는 이단의 경고인데 그 경고를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먼저 골로새 교회에 인사를 하고 칭찬을 먼저 아끼지 않았으며 그들을 위한 기도와 그리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확실하게 설명하면서 본론적인 이단의 습성과 허구성과 경고를 하는 것이 본서의 전반부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값있고 위대하며 그리스도인의 진실된 삶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내용과 결론적으로는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한 동역자들을 설명하는 내용과 마지막으로 간절히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축도해주는 순서가 본문의 후반부이다.
<머릿말>
1.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설명 (1절): 본서신을 쓸수있는 자격과 지도할 수 있는 확실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2.중보기도 (3절):
(仲保기도의 이해): 사도 바울은 교회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많이 하였고, 또한 성도를 에게
중보기도를 많이 부탁하신것은 중보기도의 필요성과 위대성을 인정하기 때문이였으며 그
중보기도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지금도 현실적으로 확실하게 증거되기 때문이다
(창 18:23-33, 출 32:32, 요 17:1-26, 엡 6:18, 약 5:14 —)
(중보기도의 정의):仲保란 둘 사이에 어떤 일을 주선하는 행위나 주선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중보기도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보기도의 근거):근본적으로 인간이 초월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
께서 인간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찿아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
다면 인간의 기도는 지금까지도 불신자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
하는 우상 앞에서 중얼거리는 것에 불과 할 것이다(시 115:4-7). 그러나 기도(Prayer)는
본래 하나님과 기도자 사이의 은밀한 개인적인 교제의 통로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서 실제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성도들에게 중보 기도를 명령하고 있다(엡 6:18,약 5:14). 이와 같이 성도들의 중보
기도가 가능하게 된것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찿아 오심과 중보 기도의 응답에 의한 것
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서로 교통하며 연합
하여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축복의 길로써 또 주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한
은혜의 길로써 중보 기도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처럼 중보 기도의 근원이 불변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중보기도의 의의):중보 기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또 하나님을 통하여 성도들간에 영적
교제를 나누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즉 중보 기도는 믿음이 약하여, 또한 고난으로 인하여
지쳐 있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함으로써 믿음에 있어 강건케하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방편이 되며 동시에 믿음이 강한 자는 더욱 열심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방편이 되는 것
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의는 이 중보기도가 곧 주님의 이웃 사라의 가장 확실하고 진실한
표현이요 모습이다는 점에서 응답의 효과나 그 의미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3.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9-12):
1)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령한 지혜를 얻도록 기도함(9).
2)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기도함(10).
3)범사에 주를 기쁘시게 하도록 기도함(10).
4)모든 선한 일에 열매 맺도록 기도함(10).
5)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장하기를 기도함(10).
6)모든 일에 주의 능력을 힘입어 행하기를 기도함(10).
7)기쁨으로 모든 일을 견뎌 내기를 기도함(11).
8)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기도함(12).
<제 1 부 그리스도의 우월성>
4.만물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16-20):
1)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됨(요 1:3, 골 1:16).
2)그리스도는 만물위에 계심(요 3:31, 롬 9:5).
3)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케 하심(고전 15:27, 엡 1:22).
4)그리스도는 만물위에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엡 1:22).
5)그리스도는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심(엡 1:23).
6)만물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됨(골 1:16).
7)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심(골 1:17).
8)그리스도는 만물의 의뜸이 되심(골 1:18).
9)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만물이 화목케 됨(골 1:20).
10)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심(히 1:3).
5.세상 학문을 쫓을때 나타나는 여러가지 증상들(2:8-2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 궁극적 문제인 삶과 구원에 대하여 논하기는
하되 실제적으로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하는 철학을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에 불과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8절). 여기서 인생의 참 진리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에게서 나온것도
아니며 인생의 내세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는 철학은 곧 세상 모든 학문의 대명사
인것 처럼 나타나지만 이런 어리석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주로 다음과 같다.
1)의심이 많아짐(창 3:1-6).
2)세상의 지식만을 절대시함(잠 14:15).
3)근심이 많음(전 1:18).
4)사람들의 칭찬을 좋아함(마 6:2).
5)남을 시험하기를 좋아함(눅 10:25).
6)지나친 증거를 요구함(요 20:24-25).
7)변론을 좋아함(행 17:18).
8)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음(행 17:19-21).
9)교만해짐(고전 8:1, 딤전 6:3-5).
10)궤휼에 빠짐(고전 3:18-20).
11)이생에서의 자랑만 쫓음(고후 11:18).
12)겉으로 나타난 것만 중시함(골 2:16).
13)모든 것을 비판함(골 2:16).
14)위선적인 겸손을 보임(골 2:18).
15)신비한 개인적 체험을 과장함(골 2:18).
16)옳다 여기는 것을 우상시함(골 2:23).
17)금욕주의등에 빠지기도 함(골 2:23).
18)도덕적 방종에 빠지기도 함(벧후 2:2).
19)말만 많고 행위는 없음(요일 3:18).
20)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추종함(골 2:22).
6.그리스도에 대하여 본서에서 나타내는 표현(2-10):
1)하나님의 사랑의 아들(1:13).
2)구속을 주시는 분(1:14).
3)하나님의 형상(1:15).
4)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분(1:15).
5)만물을 창조하신 분(1:16).
6)교회의 머리(1:18).
7)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1:18).
8)만물의 의뜸(1:18).
9)성부의 신성이 충만하신 분(1:19).
10)화목케 하신 분(1:22).
11)영광의 소망(1:27).
12)하나님의 비밀(2:2).
13)지혜와 지식의 보화(2:3).
14)정사와 권세의 머리(2:10).
15)성도의 생명(3:4).
16)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신 분(3:11).
<제 2 부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삶>
7.성도가 입어야 할 것과 벗어야 할 것(3:7-14):
(입어야 할 것)
1)의의 옷(욥 29:14).
2)용서(마18:35).
3)빛의 갑옷(롬 13:12).
4)자비,온유,오래참음(고전 13:4).
5)새 사람(엡 4:24).
6)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1).
7)겸손(골 3:12).
8)거룩한 사랑(골 3:14).
9)하나님의 긍휼(벧전 2:10).
10)의의 세마포(계 19:7-8).
(벗어야 할 것)
1)훼방(마 12:31).
2)옛 사람(엡 4:22).
3)거짓된 모든 행실(엡 4:25).
4)분노(엡 4:26).
5)악의(엡 4:31).
6)악한 정욕과 탐심(골 3:5-7).
7)부끄러운 말(골 3:8).
8)옛 사람의 행위(골 3:9).
9)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히 12:1).
8.성도의 말하는 자세(4:3-6):
1)신중하게 함(전 5:2).
2)참된 것만을 말함(엡 4:25).
3)더러운 말은 하지 않음(엡 4:29).
4)덕스러운 말을 함(엡 4:29).
5)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함(골 3:17).
6)은혜스럽게 함(골 4:6).
7)다른 이에게 본이 되게 함(딤전 4:12).
8)책망받지 않게 함(딛 2:8).
9)잘 듣고 난 뒤에 말함(약 1:19).
10)할 말을 잘 분별하여 말함(약 1:26).
9.우리 성도들에게 알려진 상징적인 문(4:3):
1)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하늘의 문(창 28:17).
2)의의 문(시 118:19).
3)구원의 소망의 문(호 2:15).
4)믿음의 문(행 14:27).
5)전도의 문(골 4:3).
6)하나님의 보좌로 통하는 하늘 문(계 4:1).
7)새 예루살렘의 문(계 21:12).
8)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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